
저는 어린이집 교사입니다. 그리고 두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제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저는 유아교육과에 들어가서 아이들 교육에 대해 공부하고,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며 다른 누군가의 아이를 돌보고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돌보면서 바쁘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오히려 아이들 교육에 대해 새로 생각하게 된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아서 좋았습니다. 부모들이 대부분 직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맡아 교육하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교사로 지내며 사랑스런 아이들의 환한 미소를 보면 힘든 가운데서도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며 방긋방긋한 순간과 말문이 제대로 터지는 순간, 친구들과 갑자기 토라져서 내 품에 안겨 위로받던 순간순간이 행복한 걸 보면 저한테 어린이집 교사는 딱 맞는 일이었습니다. 가끔은 문득 그런 행복한 순간에 내 아이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편치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어린이집 교사로 지내면서 받은 월급으로 내 아이들 학교 보내고 좋아하는 책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 먹이며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소소한 일도 많습니다. 해마다 1월이면 새 학기에 맡게 될 연령과 반을 정하기 위해 면담을 진행합니다. 저는 2세반을 지원했고 감사하게도 원하는 반에 배정됐습니다. 그런데 1세에서 2세로 올라오기로 한 영아들이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겨가기로 하면서 2세반 운영이 위태로운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린이집으로 가기로 한 영아의 부모들과 절실한 마음으로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두 명 다 그대로 재원하기로 해 무사히 2세반이 구성되었죠. 덤으로 동생까지 등록했습니다. 나름 저의 노력이 좋은 결과를 얻어 기뻤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며 느끼는 좋은 감정과 함께 이런 소소한 일도 내가 무언가 하고 있구나 하는 작은 성취감을 주기도 합니다.
드디어 새 학기가 무사히 시작됐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40대에 뒤늦게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시작한 어린이집 일이라, 일 자체는 힘들어도 행복하고 뿌듯한 일입니다. 하지만 나이 오십 중반을 넘어서니 저의 어린이집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백세시대라는데 어린이집에서 은퇴하고 나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돈 버는 일이 여전히 필요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도 몸도 아직 젊고 뭔가 일을 하고 싶은데…’ 최근 몇 년 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화두였습니다. 그래서 쉬는 날 도서관에 가서 책도 열심히 읽고 유튜브도 보고, 겁 많은 제가 시간을 내 여러 가지 공부에도 도전했습니다. 그래도 퇴직 후를 생각하면 늘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희미한 생각들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사춘기 소녀처럼 두근거렸습니다.
‘부모 교육 강사.’
2세반 구성을 위해 절실한 마음으로 진행했던 부모 상담이 어느새 꿈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알아보고 심사숙고해서 새로운 도전으로 결정했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도 대가족이 온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아이를 키우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젊은 부모가 아이 키우기에 미숙해도 할머니가 있었고, 고모가 있었고, 동네에 따뜻한 이웃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촌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산업이 발달하고 고도화되면서 우리나라도 마을에서 골목에서 아이들 소리가 사라지고, 젊은 부모들은 단절된 관계 속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홀로 아이를 키우며 어려움에 처한 부모들에게 ‘어린이집 교사로 생활하면서 배운 아이들에 대한 이해와 양육 노하우를 알려주고 도움을 주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많이 생각하고 알아봤습니다. 몇 년 동안 인터넷을 검색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다가, 모 단체에서 진행하는 ‘긍정적으로 아이 키우기’ 부모 교육 전문강사 양성 과정을 발견하고 신청을 기다렸습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사람들 앞에서 간단한 발표조차 어려워하던 제가 부모 교육 강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교육 일정이 7월 말 어린이집 방학 기간부터여서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소심하고 겁 많은 저의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는 것. 그래서 우선 가까운 곳에 있는 문화센터의 시민연극 기초반에 등록하고, 수업에 나가 연습을 하면서 무대 공포를 이겨내고자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긍정적으로 아이 키우기’ 강사 교육에 참여했는데, 가보니 다들 아동센터 센터장이거나 어린이집 원장, 혹은 강사로 활동하는 쟁쟁한 분들이어서 약간 주눅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분들에게 배울 것이 많아 좋을 것 같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더 커서 열심히 교육에 참여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 일과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의 일들에 덧붙여 시간을 내고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지만, 예전 학교 다닐 때의 고3처럼 예습과 복습을 하며 다행히 교육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가족들도 뒤늦은 그런 시도를 격려해주고 배려해주어 힘든 가운데서도 부모 교육 강사 교육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사 교육과정은 수업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의 실제 실습 과정을 진행해야 마무리됩니다. 실습 과정은 교육생들이 스스로 찾아서 만들어야 하는데, 경험이 없던 저에게는 이게 수업 듣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습니다. 교육받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교재 전체를 필사하며 복지관과 도서관에 ‘강의 제안서’를 보내고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실습 장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교육과정은 실습 장소와 실습 대상을 모집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실습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해 상심하던 중에, 함께 교육받았던 분과 통화하다가 다행히 장소와 사람들 모집 등 실습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게 돼어 함께 실습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여러모로 감사할 일이 참 많은 한 해였습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실습 장소와 실습 대상을 모집해준 파트너 강사님이 고마워 제가 강의에 필요한 자료를 도맡아 많이 준비했습니다. 실습 프로그램이라지만 강사로서 참석하는 부모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강의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처음 대중 앞에서 하는 강의라 어설픈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준비를 많이 해야 했습니다. 어린이집 끝나고 오면 피곤했지만 강의안을 작성하고 수십 번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내용을 숙지해야 강의에서 말이 막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머릿속으로 강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잠들곤 했습니다.
다행히 실습 강의를 진행하면서 점차 실수가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되어가는 저의 모습에 스스로도 놀라고 뿌듯했습니다. 아, 이러면서 나름 실력이 늘어가고 자연스러워지는구나, 준비를 많이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연습을 많이 해야 자연스러운 강의 진행이 가능하구나 하고요.
보람도 많았습니다. 실습 강의 프로그램은 두 번을 진행해야 했는데, 1차 참여자 중에 베트남에서 일하러 온 엄마가 두 분 있어서 의사소통이 쉽지 않아 번역을 도와주시는 분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며, 처음 하는 강의라서 부모들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면서 배운 방법과 부모들을 상대로 교육하는 방법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어른과 소통하고 어른을 교육하는 방법은 아이들과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과 어른들을 교육하는 부모 교육의 프로그램은 달라야 했기 때문에 강의를 진행하면서 실제로 배우는 것이 참 많았습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할까요.
강의 과정 중에 딸과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는 한 분은 용기를 내 딸에게 전화했고, 강의가 마무리될 때에는 이젠 서로 연락하며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 강의가 이런 면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구나 하고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실습 강의지만 내 강의가 부모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기분도 좋았습니다.
2차 강의는 더 인상 깊었습니다. 서울 동쪽 끝에 사는 저에게는 실습 강의가 진행되는 김포까지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 자체가 꽤 힘들었습니다만, 돌 지난 아기부터 유아를 둔 다섯 쌍 부부들이 9주 동안 진행하는 강의를 빠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아이를 적게 낳는 대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양육과 교육에 더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많고, 그래서 이런 부모 교육 강의를 나름 애타게 기다리는 분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낀 실습이었습니다. 1차 강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는지 진행 기술도 늘었고, 참여자의 구성과 특성에 따라 강의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거기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컴퓨터와 연관된 다양한 도구를 써본 적이 없던 제가 프로젝터를 활용하는 방법도 익숙해졌고, 부모들의 연령대와 구성 특성에 따라 표현하는 용어와 예시도 달라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1세반, 2세반, 3세반 등 연령 차에 따라 다르게 가르쳐야 했듯이, 부모들도 마찬가지로 고려해야 했습니다. 교육 시간 내내 모두가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 역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집중하는 시간과 풀어가야 하는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는 점도 실감 나더군요. 다만 교육 중인 부모들은 어른들이기에 과제를 내고 설문지를 체크하고 확인해서 다음 강의에 참고할 수 있었다는 점이 있어서 보육과는 다른 교육의 특성을 체감했습니다. 나이 들어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정말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수료식을 진행할 때는 강의가 벌써 끝나 아쉽다고 우는 아이 엄마와 옆에서 다독거려주는 아빠들, 그리고 참여자들과 서로 안아주고 격려하고 앞으로의 날을 응원하며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물론 참여한 부모들이 강의를 들으면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데 실제로 적용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실천한다면 도움이 되겠지요.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고, 즉각적인 변화를 기대한다기보다는 꾸준히 원칙을 따르다 보면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그런 게 바로 교육일 테니까요.
저는 이렇게 1차, 2차 실습 강의를 마치고 지금은 부모 교육 전문 강사 자격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이가 차서 어린이집 교사로서의 생활을 마치게 되더라도, 그간의 경험과 공부를 살려서 부모 교육 강사 일을 시작하기 위해 하나씩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생각해보면 그간의 유아교육 공부와 어린이집 교사 생활을 하면서 쌓아온 저 나름의 경험과 지식을 묵히지 않고 잘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걸어 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대학에서 공부한 유아교육과 어린이집 경험, 두 아이의 부모로서의 경험을 살려서 우리 사회에도 나름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예전과 달리 은퇴 후에도 충분히 일할 수 있을 만큼 젊고 활동적인 시니어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경험이 많이 쌓여 있고 머릿속에 담은 지식도 많은데, 육십이 조금 넘었다고 일을 할 수 없다는 건 너무 안타깝고 사회적으로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서 은퇴한 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자체로 저는 나름 행복합니다. 물론 은퇴하고 전적으로 취미 생활을 즐기거나 여행 다니면서 즐기고 쉬는 유유자적한 삶도 의미 있겠지요. 한편으로는 이 정도 일하고 살았으면 그냥 푹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몸이 허락한다면 무언가 의미 있는 일들을 더 오래 하면서 살고 싶고, 그것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강사로서의 삶은 일을 하면서도 여행이나 다른 취미 생활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을 테니까요.
현재는 어린이집 교사 생활을 최대한 성실하게 하며 지낼 것입니다. 그게 현재의 소중한 나의 일이니까요. 지금 하고 있는 일뿐만 아니라 아직 당뇨나 혈압도 괜찮고, 장기적으로 병원 약을 먹어야 될 정도로 건강이 나쁘지 않다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후에 나이 들어서도 이런 활동을 계속하려면 몸이 건강해야 하니까, 매일 산책도 하고 어린이집 마치고 오면 비록 조금씩이지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문화센터나 도서관 등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독서교육이나 그림책 테라피스트 공부 같은 것은 기회가 될 때마다 참여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경험에 도전할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가족이 있어, 오늘도 나는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씩씩하게 집을 나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