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부(富)와 자유를 얻었다. 길바닥에서 닦은 내공을 쏟은 덕분에…

입력 2025-12-31 06:00

[박원식이 만난 귀촌 생활] 충북 보은군 산외면 시골에 사는 김수향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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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이 62세인 김수향(‘보은대추 산외농장’ 대표)의 귀농은 그저 시골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단순한 충동에 이끌려 이루어졌다. 시골 태생인 데다 가끔 놀러 다니며 맛본 약간의 농촌 경험이 있어 시골에 문외한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귀농교육을 미리 받거나, 목가적인 전원을 물색하기 위해 곳곳을 돌아다니진 않았다.

“이왕이면 고향 땅으로 가는 게 좋겠어!” 그렇게 남편과 단박에 합의하는 것으로 준비를 완료했을 뿐이다. 그러곤 서울 생활을 정리, 김수향의 탯줄 자리인 보은군 시골로 내려왔다. 즉 이모저모 꼼꼼히 재고 따지기를 완전 생략하고 냉큼 귀농을 결행했다. 다분히 낭만적이고 무모한 시골행이었다. 이는 그 용감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을망정, 전혀 권장하지 않는 귀농 유형이다. 아무런 준비 없는 귀농은 실패의 필살기라고 알려져 있지 않은가.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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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웬일! 그의 농사는 초장부터 성황을 이뤘다. 순풍을 꽁무니에 매달고 쏜살같이 내닫는 돛배처럼 귀농 12년 세월 내내 순항했다. 보은은 대추 명산지. 김수향이 대추 농사에 뛰어든 건 지역의 특화 작물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추 농가들의 레이스는 치열하다. 내로라하는 농가도 많다. 그러나 김수향을 추월하는 선수는 드물다. 그가 대추로 거둔 근래 연 매출은 평균 7억~8억 원. 압도적인 성적이다. 농사 경험이 전무했던 부부. 그럼에도 까다로운 농사에 도전해 가뿐히 산정에 올라서다니.

비결이 뭘까. 하늘이 김수향을 어여삐 여겨 특별한 자비를 베풀었을 리 없다. 그의 농장에만 유독 기름진 햇볕과 비가 내렸을 리 만무하다. 부부의 합심과 노력으로 일군 성과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비지땀을 드럼통 가득 차도록 쏟아도, 길게는 10여 년쯤 고초를 겪고서야 안정적 기반을 잡을 수 있는 게 농업이다. 김수향 부부에겐 남다른 게 하나 있다. 특별한 과거가 있다. 시종일관 이렇다 할 고난 한 번 겪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농사를 지속한 비결이 바로 그 ‘과거사’에 있다. 여기에 관한 건 잠시 미루고, 일단 대추 농사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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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해 농사 상황은 어땠나? 보통 첫 농사는 전전긍긍하다 끝나던데.

“크게 어려운 건 없었다. 맨땅에 대추나무 재배 하우스를 설치하고 나무를 심어 농사를 시작했다면 고생이 많았겠지만, 우린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매물로 나온 대추 농장 3306㎡(약 1000평)를 통째 사들여 일을 시작했으니까. 자동화 설비가 갖추어진 농장이라 재배가 수월했다. 게다가 아주 재미있었다. 대추나무에 잎이 나고, 꽃이 피고, 마침내 붉은 열매가 달리는 게 너무도 신비했다. 너무도 예뻤다. 혼자 중얼거릴 때가 많았다. ‘와, 농사짓기 참 잘했네. 이게 바로 내가 바라던 거야!’라고.”(웃음)


작황은 괜찮았나?

“당시 이상기온으로 보은의 대추 농사에 흉년이 들었지만 우리 농장은 풍작을 거뒀다. 수익금 6000만 원을 뽑아냈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셈이다. 물론 가만히 앉아 얻은 결과물은 아니다. 초심자의 한계에 갇히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었다.”


무엇보다 재배 기술 습득이 필요했을 것 같다.

“농사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의존한 건 보은군농업기술센터였다. 뭐든 답답한 게 있으면 센터에 도움을 청해 해결했다. 어휴, 공무원들은 엄청 친절했다. 전화하면 바로 달려오더라. 나보다 먼저 농장에 도착해 기다리곤 했다. 주변 농부들의 훈수에도 귀를 기울였다. 이런 조력 덕분에 좋은 작황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판로였다. ‘대체 어디에 어떻게 팔아야 하나?’ 난감했다. 그렇다고 속 터질 일도 아니었다. 길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낙관했다.”


어떤 방법으로 활로를 개척했나?

“돌아오는 게 변변치 않은 공판장 출하는 일단 배제했다. 대신 직거래망을 구축하기 위해 500만 원어치에 달하는 대추를 지인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반응이 매우 좋았다. ‘꿀처럼 달고 사과처럼 아삭한 대추가 다 있네!’ 칭찬이 쏟아진 거다. 자신감을 갖고 국내 굴지의 대형마트 상품 기획자들과 교섭해 판로를 뚫었다. 가을철 지역 축제들을 돌며 상품을 팔았다. 농업 관련 박람회에도 쫓아다니며 홍보활동을 했다. 해볼 건 다 했다. 그러자 우리 대추를 알아주는 이들이 늘기 시작하더라. 주문이 쇄도했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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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게임 1라운드에 확실하게 승기를 잡은 형국?

“바로 그렇다. 대추 농사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곳에 정착해도 무방하다고 판단해 한 해 동안 살았던 컨테이너를 치우고 이층집을 지었다. 대추밭 4960㎡(약 1500평)를 새로 사들이기도 했다. 이후 해마다 규모를 늘려나갔다. 현재 재배면적은 4만 9590㎡(약 1만 5000평)다. 규모 확대에 비례해 매출도 우상향 곡선을 이어나갔다.”


홍보를 열심히 해도 상품의 맛이 시원찮으면 외면당한다. 일거에 소비자의 환심을 산 대추의 풍미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좋은 대추를 생산하고자 초심을 유지하며 분발했다. 우리 부부에겐 그것이 무엇이든 매사 상황을 바로 판단하고 적시에 개입하는 힘은 있다. 예컨대 농약을 살포할 경우 무조건 자주 또는 다량을 뿌리지 않고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춰 적정량을 공급한다. 양분이 풍부한 액비를 손수 만들어 쓰기도 한다. 자식을 기르듯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대추나무 돌보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농장을 성장시킨 에너지의 원천은 과거의 인생 경험에 있다. 과거의 일이 성공적인 농사를 가능케 한 비결이라는 얘기다.”


어떤 과거이기에?

“우린 귀농 전 10여 년간 노점상을 했다. 온갖 풍파를 겪으며 길바닥에서 장사를 해 큰돈을 벌었다. 그때 좋은 경험을 얻어고, 그것을 살려 농사에 활용했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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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경험이 농사 성공의 비결

인생은 기묘한 것. 발밑이 반석이려니 믿지만 자칫 지뢰를 밟고 일순간 무너질 수 있다. 김수향의 남편이 그랬다. 잘나가던 건축업자였으나 졸지에 불운이 방문해 30억 원에 달하는 빚을 짊어지게 됐다. 차가운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상황이었다고 한다. 부부가 노점상으로 나선 배경이 그렇다. 체면이니 품위니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인생의 깜깜한 ‘중세 시대’가 이렇게 발칙하게 도래했다. 그러나 부부는 젖 먹던 힘까지 박박 긁어모아 뚝심과 배짱을 발동했다. 운명의 횡포와 맞짱 떴다. 그 결과는 해피엔딩!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김수향은 당차고 영리하게 노점을 운영했다. 또는 신바람 나게 노점상의 한 시절을 차라리 즐겼다. 돈이 마구 벌리더라는 게 아닌가.

“처음 한동안 시댁에서 운영하는 콩나물 공장 배달부로 뛰다가 노점상으로 전향했다. 이른바 짝퉁 용품이나 망한 회사들에서 나온 땡처리 물건을 닥치는 대로 떼어 작은 트럭에 싣고 다니며 팔았다. 노점상의 포인트는 목 좋은 자리를 확보하는 데 있다. 서울의 재래시장이나 지하철역 출입구 같은 곳에 매트를 깔고 물건을 쏟아놓으면 실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하루에 한 트럭분 전체가 완판되기도 했다. 판매 마진율은 90% 이상이니 신바람 날 수밖에.(웃음) 수백만 원의 매상을 올린 날이 흔했다.”


주로 어떤 물건을 팔았나?

“냄비, 접시, 속옷, 양말, 커피, 포도, 난초 등 뭐든 헐값에 나오는 것이 있으면 떼다 팔았다. 소비자들은 싼 맛에 물건을 샀고, 난 마진이 높아 부지런히 상품을 발굴해 퍼 날랐다. 어려운 점도 있었다. 단속반에 쫓기거나, 물건의 출처를 찾아내 거래 교섭을 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전력투구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노점상 10년간 번 돈으로 빚을 정리했고, 서울에 아파트도 한 채 장만했다. 이후 바로 귀농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노점상 운영 경험이 대추 농사의 성공 비결이 됐다는 얘기의 뜻은 듣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밟힐수록 야물어지는 잡초처럼, 김수향은 어쩌면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인 노점에 앉아 삶의 질곡을 건너는 법을 배운 나머지 더 강해지고 더 똑똑해졌던 것이리라. 농사를 엄연한 경영으로 바라보는 관점. 돈의 흐름을 꿰뚫는 판단력. 소비자의 심리를 읽고 구미를 맞춰주는 태도. 유통망 확보를 가능케 한 협상력. 이렇게 김수향은 흔히 농부들이 간과하는 광역 스킬을, 또는 내공을 노점상 운영을 통해 충분히 돋우고 농촌에 데뷔했던 것이다. 노점 장사로 얻은 실력에 기름칠을 해 대추 농사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데 투입했다. 흥미진진한 삶이다. 곡절과 반전으로 엮인 명품 드라마처럼.


대추 농사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데 너무 일에 치여 사는 건 아닌가? 이젠 인생을 즐겨도 무방한 시점이지 않나?

“오해 마라. 날마다 즐겁게 산다.(웃음) 농사 자체가 즐거움의 원천이다. 순탄한 농장 운영에서 오는 보람과 재미 덕분에 얼굴 찌푸리고 살 겨를이 없다. 게다가 바쁘게 일하는 건 대추 수확기인 가을 한 철의 한 달 보름 정도일 뿐이다. 나머지 기간엔 시간 여유가 충분하다. 원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시골에 들어왔는데, 다행히도 그 꿈을 이뤘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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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만 빼고 날마다 뛰다시피 사는 게 농부들이지 않나?

“일거리가 많긴 하다. 그러나 숱한 일의 상당 부분을 우리는 인력의 손을 빌려 처리한다. 대추밭 하나는 인건비 지출 용도로 가동하고 있다. 최대한 부부의 노동량을 줄이며 농사를 짓자는 게 애초의 복안이기도 했다. 과중한 노동으로 건강을 망가뜨리는 바보짓을 하고 싶진 않았다. 일에 시간을 낭비하기도 싫었다.”


여유시간은 어디에 쓰나?

“요즘 시골엔 즐길 거리가 놀랍도록 많다. 읍내의 문화공간에서 여는 갖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국내외 여행도 수시로 하고, 골프도 친다. 사회단체에 가입해 봉사활동도 한다. 도시에선 상상조차 못 한 재미와 만족감을 느끼며 산다.”


인생관의 변화랄까, 시골에서 새롭게 느낀 게 있다면?

“과거엔 내일을 위해 오늘은 굶는 식으로 돈 모으기 하나에 집중했다. 집 사고, 땅 사고, 건물 사는 게 잘 사는 거라 믿었다. 지금은 다르다. 올해는 해외여행을 다섯 차례나 다녀왔다. 아낌없이 쓰자, 자유를 즐기자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높은 산에 오르면 보인다, 세상이 아름다운 게. 천신만고 뒤에 성취가 있으면 안다. 이제 자유를 누릴 시간이라는 걸. 김수향은 비로소 개안(開眼)했다.


김수향이 주는 귀농 Tip

•농사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재배면적의 규모화가 필요하다. 적은 투자로 소규모 농사를 지어 적은 소득을 거두는 귀농 형태를 모색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오산이다. 고생만 하고 소득은 미미한 상황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귀농지의 특산 작물에 도전하자. 유통, 재배 기술, 지원 정책 등의 측면에서 매우 유리하다.

•대추 농사를 할 경우엔 기존 대추 농장을 사들이자. 초기 비용이 더 들지만 길게 보면 이득이다. 농장 규모는 최소 4960㎡(약 1500평)는 돼야 타산이 맞다. 자금이 부족하면 대추밭을 빌려 써라.

•귀농을 준비할 때 흔히 빈집을 빌려 살길 원한다. 그러나 대부분 상태가 불량해 개보수 비용이 많이 든다. 게다가 고쳐 쓰다 주인의 요구로 퇴거해야 할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차라리 당분간 컨테이너를 놓고 지내는 게 좋다.

•원주민과 좋은 관계를 맺자. 동네 대청소 날, 주민 생일잔치 등 마을 행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우호적으로 만들 수 있다.

•‘나홀로 귀농’으로 성공한 사람은 없다. 부부가 동행해야 일이 잘 돌아간다.

•사전 귀농교육보다 중요한 건 현장 농부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괜한 잔소리로 치부하지 마라.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만 고집하다간 오류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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