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면서 결혼 후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게 되면 그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힘겹게 이어나가게 된다. 특히 육아 문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거의 불가능 하다. 우리 세대 역시 일을 병행하려면 육아는 누군가가 대신해야 주어야만 했고 그 대역은 대부분 조부모였다. 세대가 바뀌었어도 어려운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맡기던 사람이 맡
어느 날 고등학생 아들이 자퇴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필자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도 않고 아들과 대화도 많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담임선생님에게 털어놓은 고민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엄마가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고 참견도 심하게 해서 스트레스가 많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아들에게서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고백이라서 놀라움
글 박원식 소설가
항구에 닻을 내린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그러자고 배를 만든 게 아니다. 항해에 나선 배라야 배답다. 거친 파랑을 헤치고, 멀거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배는 인생을 닮았다. 모험이나 도발이 없는 삶이란 수족관처럼 진부하지 않던가. 도시에서 회사원으로 살았던 이기순(52)씨가 남편 이병철(57)씨의 손을 잡아끌어 시골로 들어간 건 모험적
백수는 옛말로는 한량, 지금 용어로는 프리랜서가 아닐까. 백수는 여유있게 산다. 경제적으로 반드시 풍부하지 않지만 정신적 자유를 만끽하고 산다.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 퇴계 이황, 이덕무, 이익, 김시습, 김삿갓 등이 대표적인 백수가 아닐까. 백수가 되는 동기와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공통적인 기질은 구속받고 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리라. 연암 박지원
뒤늦게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남자가 있었다. 의대 입학을 준비하던 사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의대에 진학한다 해도 6년이란 시간이 지나야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하루는 남자가 한 친구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6년 후면 난 마흔네 살이 돼! 너무 늦지 않을까?”
“늦는다고? 의대를 다니지 않는다 해도 6년이 지나면 자넨 결국 마흔네 살이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스크루지 영감이 떠오른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필자도 좀 구두쇠이기 때문에 더 공감이 간다. 그래서 반성도 하며 교훈을 얻어 지침으로 삼는다. “그 친구를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어. 처진 어깨 다독여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하는 거였어.” 특히 이 구절을 늘 가슴에 품고 지낸다.
아
“다시, 다시, 다시!” “그러니까 연습하는 거야. 해남아, 해남아. 연주하다가 틀리잖아? 그럼 다시 해야지 고쳐져. 그냥 지나가면 안 돼!”
학예회(?)를 일주일 앞둔 아현초등학교 졸업생들의 연습실은 시끌벅적했다. 기타와 바이올린, 하모니카 소리와 노래 소리, 키득키득 웃는 소리, 와글와글 수다 떠는 소리에 정신이 없다. 이들 행동과 말투 그리고 동심
1971년 크리스마스이브.
제대 후 복학하고 처음 맞는 성탄절이다. 통행금지도 없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의기투합해 생일을 따져 의형제를 맺은 동갑내기 형과 아우가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각자 장래를 약속한 여인들까지 여섯이서 만났다. 어쩌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성탄이 될 것 같은 생각에 이른 시간에 만나 함께 온종일 몰려다녔다.
예수님이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언제나 교회로부터 시작한다. 정기적으로 점집을 드나드는 어머니와 굿, 고사 등에 익숙하던 필자가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미션스쿨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어려서 필자에게 각인된 교회 이미지는 색색으로 물들인 부활절 삶은 달걀과 화사한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함박눈이 쌓인 뾰족한 첨탑의 이미지와 함께 온다.
중3 때 크리스마스도 그렇게 흥청거리
58년 개띠인 필자는 사십대로 접어드는 해에 IMF를 당했다. 그때까지 잘나가는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가 한순간에 파산 상태로 접어들었다. 가족과 빚만 남고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직원들 월급은 고사하고 당장 끼니를 이어갈 생활비도 없는 상태에서 카드 돌려막기를 하면서 폭음을 하고 다녔다. 대인관계도 다 끊었다. 어느 순간 고혈압, 불면증, 공황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