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매우 차가워졌다. 이제 정말 깊은 겨울의 길목에 들어선 듯하다.
쨍한 공기를 코끝으로 느끼며 대학로로 뮤지컬을 보러 나갔다.
제목만 보아서는 어떤 이야기일지 가늠이 안 되었지만, 박칼린 씨가 연출했다고 한다.
실력 있는 공연 연출가의 작품이니 탄탄하고 멋진 무대일 것으로 기대가 되었다.
주말의 대학로는 젊은이로 넘쳐났다.
생기발랄한 그들에 묻혀 필
버스나 기차를 탈 때 운임을 내지 않고 타면 무임승차가 된다. 그러나 법적으로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유공자이거나 지하철의 경우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해당된다. 특히 지하철의 적자 운운하면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무임승차를 문제 삼으며 신분당선의 경우 독자적으로 경로무임승차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단순히
늦은 밤 아직 다 못 치운 부엌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켜놓은 TV에서 귀에 아련한 노래가 들려왔다.
'찬바람이 싸늘하게에~' 그리고는 '아아아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 따라 가버렸으니'
특별하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도 들리는 멜로디와 가사가 오늘 왜 이리 필자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걸까?
물 묻은 손 그대로 TV 앞으로 가
배우 남경읍(59)의 경력을 보니 그가 처음 뮤지컬을 한 것은 이라는 작품으로,
어언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야말로 한국 뮤지컬 1세대라고 불리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 후로도 그는 꾸준히 뮤지컬 활동을 하며 척박했던 뮤지컬 장르를 지금의 보편적 문화계로 올려놓는 데 기여했다. 또한 수많은 연극과 영화, 드라마에서의 활약으로 정통 연기자
1972년부터 1979년까지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디바 정미조가 오랜 우회로를 거쳐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개여울’과 ‘휘파람을 부세요’와 같은 다양한 히트곡들이 가수 정미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르겠지만, 사실 그녀는 가수로서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화가로서의 인생 2막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인생의 제3막에서 가수로 돌아온 그녀
어렵든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나이가 들면 눈물샘이 쪼그라들고 말라버리는지 알았다. 그래서 어지간한 슬픈 일을 당해도 스쳐가는 바람 대하듯 무덤덤해 지는 방관자가 될 것으로 믿었다. 아니다. 조금만 소외되어도 잘 삐지게 되고 서러움의 눈물이 이슬처럼 맺힌 후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감성적으로 그냥 슬프고 울고 싶을 때가
지난 10월 9일에는 1979년 담임을 한 제자들을 37년 만에 만났다. 당시 고 3 야간반 학생들이었다. 제자들은 공부를 하고자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이 많아서 자취를 하며 주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었다.
간절히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내가 처음으로 담임한 제자들이었다. 내 온 열정과 첫정을 듬뿍 주어서 가르친 제자들이기에 그 의미가 이만저만
노년 생활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독후감을 쓴 필자의 블로그를 보고 어느 분이 댓글을 달아 주셨다. “이제는 더 바랄 것도 없고, 살면서 놀랄 일만 없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맞는 얘기 같아 필자 입장도 그렇다며 회신 댓글을 보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말이 있다. 평소 형제들이나 자식들과 왕래가 많지는 않은 편이다.
문학모임 단톡방에 올라온 나훈아 쇼를 보니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야성미 넘치는 그의 모습이 반갑다. 그는 완전 카리스마 쩌는 남자이다.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그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클리프 리차드는 70년대 미국의 팝가수이다. 그가 우리나라 이대 강당에서 공연할 때는 흥분한 이대생
삶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면? 아마도 누구나 현재의 삶과 다른 쪽으로 ‘나’를 데려갈 것이다. 금쪽같은 여생을 진정 자신이 원했던 방식으로 누리고자 할 것이다. 절박하면 길을 바꾸게 마련이다. 중년 이후의 귀촌은 머잖아 닥쳐올 노년, 그 쓸쓸한 종착에 대한 대책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절박한 기색을 머금는다. 노후의 안정과 평안을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