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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초등학교 전학] (9) 알림장 노트와 지라시(학교에서 보내는 알림종이)
- 처음 전학해서 학교 갔다 온 아이 둘이 똑같이 알림장이란 노트 한 권씩을 가지고 왔다. 학교에서는 부모에게, 부모는 담임에게 알려야 할 일이나 조심시킬 일 등을 거기에 적어서 보내면 아동지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엄마가 알고 있으면 좋을 일이나 특이사항, 엄마가 담임에게 알리고 싶은 일이나 부탁하려는 일등을 간단하게 알려 담임과 엄마가 서로 아이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었다. 내 아이의 학교생활이 어떻다는 것과 조심해야할 사항들을 서로 교환하며 도와간다는 방법으로 좋았다. 더군다나 일일이 학교 안 찾아가는 나 같은 엄마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이상한 방향으로 악 이용하지만 않는다면 정말로 학생지도에 필요한 일이라 생각되어졌다. 수학여행을 간다는 소식이나 어머니회를 한다는 것을 부모들에게 보내는 지라시를 간간히 받았다. 일본어는 몰라도 중간 중간 섞여 있는 한자로 모든 내용들은 틀림없이 알 수가 있어서 좋았다. 그 내용은 간단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게 전달할 사항만 간단명료하게 적혀 있었다. 전학 와서 가장 먼저 본 것이 어머니들의 모임이 있다는 글이었다. 형제가 다니는 것을 감안해서 어머니가 어느 학년에 갈 것인지를 미리 알려달라는 것이 특이했다. 또 참석한 교실에서 끝나면 다른 아이의 반에 들렸다 가면 참석 못했어도 정해진 사항들을 알려 준다고 친절하게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작은 일에도 신경 써 주는 데 대해 감탄했다. 그 알림종이 크기는 큰 시험지 4분의 1이었다. 거기에 꼭 알아야 될 날짜와 장소 그리고 시간은 크게 명시되어 있고 생각해 올 일에 대해서도 의견을 가져 오라고 적혀 있었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물자 아낌의 감동을 충분히 갖게 했다. 그 다음에 큰애가 수학여행을 간다는 일정이 적힌 알림장이 왔는데 아이들이 갈 곳을 먼저 학부형 중에 반에서 2~3명이 시설과 준비상태 점검으로 가야 하니 희망자는 알림장에 의견을 적어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가능한 일이라면 가겠다고 써서 보냈다. 며칠 후, 동행하게 되어 대단히 감사하다며 답이 즉시 왔다. 닛꼬(日光) 여행이란다. 큰 애 덕으로 일본에 와서 첫 여행을 하게 된 것이었다. 아이들이 먹는 것과 자는 방등 그리고 어느 코스 등등을 고대로 엄마들이 사전여행을 경험하며 자세하게 체크해가며 잘못된 것들은 시정하도록 조치하고 준비가 부족한 것들을 전부 체크해서 대답을 듣고 확인하는 팀에 낀 것이었다. 이렇게 먼저 간 엄마들의 역할은 큰 것이었다. 한국 사람이며 일본 생활이 얼마 안 된 나를 한 사람의 반대도 없이 택해주는 그들의 넓은 아량에 감사했다. 내 아이들을 위해서 똑바르게 모든 것들을 자세히 꼼꼼하게 빠짐없이 챙겨가며 책임과 의무감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것인 셈이었다. 정말로 엄마들의 눈은 예리했고 사전에 일어 날 수 있을지도 모를 위험 같은 걸 찾아내려는 노력에 놀랐다. 계단이 비가 와서 약간 허물어진 곳도 전부 체크되었고 음식재료에도 까다롭게 질문을 했고 응답하는 쪽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자세하게 했다. 서로가 아주 세심하게 마음을 쓰는 모습들에 감탄했다. 아주 작은 불상사도 일어나면 안 된다는 사전 주의에 모두 힘을 합해서 의견을 냈고 그것들을 반영시키겠다고 정중한 자세에 난 고개 숙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이렇게 하니 세월호사건 같은 게 안 나는 나라로구나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정말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 2016-09-1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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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생 끝 영화
-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부임지로 떠나는 화려한 사또 행차를 밭 매는 남루한 아낙이 부러운 듯 한마디 합니다. ‘저 사또의 아내는 얼마나 행복할까?’ 사또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가마에서 내려 아낙에게 다가 옵니다. ‘이 여인아 조금만 더 참지!’ 사또가 한숨 쉬며 한 말입니다. 그 아낙은 장원급제하기전의 사또의 본처였는데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개가 한 여인입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참을 인(忍)자 세 번을 마음속으로 쓰면 살인(殺人)할 일이 없다고 참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오늘 전철에서 60대 후반의 할머니 두 분이 내 옆에 앉았습니다. 두 분의 대화를 자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바람을 피워서 집에 들어오지 않는지가 1년이 되었고 며느리는 10살 된 아들과 살고 있는데 언젠가는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살고 있는 걸 보면 기특하기도 하고 마음이 짠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어머니세대는 남편이 첩을 얻거나 아내를 유기하여도 꾹 참고 남편이 돌아오기만 기다렸습니다. 착한 며느리는 직장 다니면서 할머니가 아프다면 병원에 모시고 가고 용돈 쓰라고 지난달에도 백 만 원이나 보내왔다고 합니다. 며느리가 안쓰러워 아들과 동거하고 있는 여자네 집에 가서 여자를 때려죽인다고 벼르고 갔는데 이 여자가 말하길 ‘나는 오직 이 남자만 있으면 됩니다. 혼인신고도 바라지 않고 돈도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무릎 꿇고 애원하는 바람에 ‘왜 진작 만나지 늦게 만나서 이 고생을 하느냐!’ 는 말만하고 그냥 돌아왔다고 합니다. 결혼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들을 때려죽인다고 가야지 아들은 감싸며 금지옥엽 남의 딸을 때려죽인다는 마음이 옳지 못한 것 같아 쓴 웃음이 나왔습니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왕관도 버린다고 합니다. 숭고한 사랑은 어떤 역경도 헤쳐 나갈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불륜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남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식이 있는 본처에게 대부분 돌아옵니다. 주위에도 보면 남편이 중풍이 들어 첩에게 버림받고 본처에게 돌아오거나 늙어서 찾아오는 경우를 봅니다. 이렇게 돌아온 남편을 보고 고생 끝에 영화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아름다워야 할 젊은 날은 세월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렸는데 무슨 염치로 병든 육신을 끌고 본처라고 아내의 집을 찾아오는지 참 뻔뻔합니다. 이제 돌아와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둘 부부사이에 사랑과 이별은 그렇다 치고 거기서 태어난 아이는 어찌 합니까 어머니가 시시때때로 아버지의 원망을 알게 모르게 내 뱉었을 텐데 아이가 정상적인 성격으로 자랐을 것이라 믿으면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에서도 별거나 이혼을 쉽게 그리고 있습니다. 거기서 파생되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드라마는 부족합니다. 더욱 불행하게 하여 시청률을 높이고 있습니다. 전철에서 듣게 된 할머니의 아들이 더 늦기 전에 본처에게 돌아오고 재산도 필요 없고 오직 그 잘난 사랑밖에 난 몰라 하는 여자도 정신 차리고 새 출발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2016-09-1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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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슬픈 창녀의 추억'
- 나는 부모님처럼 늙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뼈와 진을 녹여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소진되어 버렸다.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한 노년은 무료한 일상과 건강을 잃어버린 신체 때문에 고통스러워 보였다. 이런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습관처럼 되뇌었다. 그러다가 나도 늙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의 추억’을 읽고 난 후다. 거기에는 ‘늙음의 첫 번째 증상이 자신의 부모와 비슷해지는 것’이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천장에 새는 비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의 외모를 닮아가고, 아버지의 말투를 쓰고있던 나는 책을 읽으면서 늙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이 소설은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르케스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가 쉰다섯 무렵 파리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일곱 시간 동안 잠자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며 소설을 구상하였다고 알려졌다. 주인공은 90살의 신문사 칼럼이스트다. 평생을 창녀들과 함께 보내느라 결혼할 시간이 없었던 그는, 돈을 지불하지 않고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랑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90세 생일을 맞아 스스로에게 꿈같은 하룻밤을 선물하기로 한다.14세 숫처녀를 소개 받은 그는 그녀를 점점 사랑하게 되고, 사랑의 떨림과 기대, 흥분 등을 경험하면서 사랑에 빠져든다 사랑에 빠진 그의 변화가 재밌다. 어머니가 억지로 읽게 시켜도 읽지 않았던 낭만주의 문학작품에 빠져드는가 하면, 평생 고수해 왔던 전통적 만평형식 대신 연애편지 형식의 칼럼을 게재해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한다.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시적 방종에 불과하다고 믿던 그가 사랑 때문에 죽는 일은 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사랑 때문에 죽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내 고통의 달콤함을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사랑에 푹 빠진 것이다 . 우리는 90세라는 나이가 사랑이라는 감정과는 거리가 먼, 퍼석퍼석한 나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틀렸다. 주인공은 죽는 날까지 아름답고 황홀한 감정을 간직하고 건강한 심장으로 백 살을 산 다음, 어느 날 행복한 고통 속에서 사랑을 느끼며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 소녀에게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는다. 노동에 지친 그녀는 그에게로 와서 잠만 잘 뿐이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걸 깨닫는다. 자기가 태어난 침대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아흔살 노인은 생애 처음 자신에게 온 첫사랑의 설레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오십 줄에 들어서자 나도 기억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안경을 쓰고도 안경을 찾고,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찾아 헤맨다. 아는 얼굴과 이름을 일치 시키기 힘들 경우가 빈번해지고,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도 많아진다. 이런 일에 대해 마르케스는 소설에서 ‘노인들이 본질적이지 않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은 생의 승리다. 우리는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자기 보물을 어디에 숨겼는지 잊어버리는 노인은 없다’는 키케로의 말을 인용했다. 늙는다는 건 나이 앞에 무릎 꿇는 일이 아니라 내 보물을 발견해 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으니 인생 2막이 설레이기도 하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을 많이 덜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 2016-09-0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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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변화가 된 이 한권의 책] 퇴계에게서 배우는 인생과 지혜
-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은 말이 있다. 바로 ‘저놈 인간 안 될 놈’이라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들으면서 항상 어떻게 사람 노릇하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닮고 싶은 롤 모델을 찾는 것이었다. 꿀맛을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한 숟가락 입에 넣어주면 끝나는 것 아닌가. 필자가 그렇게 지나한 노력으로 찾아낸 것이 바로 퇴계 이황이었다. 1. 사람의 근본인 효의 실천 이황은 어린 시절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과 관을 바르게 하고는 어머니를 문안했는데 한 번도 어긋남이 없이 명랑하고 공손하며 삼갈 것은 삼갔다고 한다. 여럿이 생활할 때도 종일 단정히 앉아 옷과 띠를 반듯이 하고 말과 행동은 삼갔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늘 실천한 효심이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다. 2, 나라를 걱정하되 벼슬에 연연하지 않는다 벼슬에 올라도 받지 않아야 마땅한 것이 있다면 힘써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는 것을 도리라고 여겼다. 자기의 분수를 헤아리지 않고 마땅한지 여부도 묻지 않고 그저 받음은 있되 사양함은 없으며 나아감은 있고 물러남이 없다면 임금을 섬기는 공손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의 능력은 고려치 않고 연줄을 이용하여 승진 운동만 하는 현대의 공직자에게는 큰 귀감이 될 몸가짐이다. 3.건강해야 지혜로운 삶을 산다 술이 사람을 망친다고 탄식하며 술이 한사람에게 들어가서는 그 몸을 망치고 한 나라에 들어가서는 나라를 엎어버리는 독이라고 생각했다. 최고의 한약인 중화탕(中和蕩)은 의사가 못 고치는 병을 고친다고 하는데 중화탕은 약초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중화란 우리 양심의 본래 모습과 함께 세상 살이하면서 흔들리는 양심이 본래의 지극히 선한 상태로 돌아가면 만 가지 병이 생기지 않고 헛된 기운이 침범하지 않고 오래도록 편안히 살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4, 배움이 큰 즐거움이다 높이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하고 멀리 가기위해서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 한발도 들어 올리지 못하는데 갑자기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꾸짖거나 아직 수레바퀴가 구르기도 전에 멀리 나기기만을 바란다면 성공할 수 없다. 배우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여기고 밑바탕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 빨리가기보다 가는 방향이 옳아야 한다. 5, 자연은 큰 스승이다 선생의 자연사랑은 유별났다. 고향에서 지낼 때나 벼슬살이할 때 임지에서도 맑고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풍류를 즐기는 선비다운 삶을 영위 할 수가 있었고 많은 풍류시를 남기고 있다. 각박해 지려는 현대의 삶에도 틈틈이 자연을 노래하면 마음 부자로 삶을 살 것 같다. 선생은 실천을 강조했다. 입으로만 나불되고 실제 행동은 딴판인 엉터리 지식 꾼을 배격했다. 지식과 실천은 수레의 두 바퀴나 새의 두 날개와 같다. 선생의 삶을 년도 별로 잘 정리된 '퇴계 선생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라는 책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 2016-09-0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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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변화가 되는(된) 이 한권의 책] 최인호의 '인연'
- 예전 마당 넓은 친정집에는 책이 많았다. 어머니는 유난히 책 읽는 걸 밝혀서 사랑방 한쪽 면에 책장을 세우고 벽면 가득 책을 채웠다. 그 당시 우스갯소리로 졸부들이 집안을 번쩍거리는 모양의 전집을 한 번 꺼내 읽지도 않으면서 과시하듯 진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정말 책을 좋아해서 사들였고 그래서 지금도 누구와 이야기해도 지지 않을 만큼의 지식을 갖고 있다. 필자도 그때 갖가지 책을 섭렵했다. ◇최인호 세상 뜨자 다시 읽은 ‘인연’ 나이 들면서 눈도 침침해지고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는데 몇 년 전 어느 날 작가 최인호가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도 가슴 아프다며 그의 소설 몇 권을 사오라고 했다. 전에 읽은 적이 있으나 새로 사 온 ‘인연’을 다시 읽으니 무언가 잔잔하고 그리운 감정이 피어올라 목이 메었다. “생에 크고 작은 인연이란 따로 없으며 우리가 얼마나 크고 작게 느끼는가에 모든 인연은 변한다. 운명이 그러하듯 인연의 크고 작음 또한 우리들의 마음먹기에 달린 게 아닐까”라는 구절에서 인연이란 정말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젊은 시절 방황 속에 등불 같은 존재 그러고 보면 필자도 어떤 작은 인연은 있었다. 20대 중반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도 안 하고 결혼도 못 한 채 빈둥빈둥 놀고 있을 때였다. 당시 최인호는 재기 넘치는 필치로 많은 베스트셀러를 내놓고 있었다. 그중 ‘별들의 고향’이 영화화된다고 했다. 엄마의 육촌 동생으로 전채린(충북대 불문학과 교수) 아주머니가 있다. 남편은 하길종 감독이다. 어느 날 아주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주머니 집에 ‘별들의 고향’ 영화 제작 논의 차 영화감독 이장호와 최인호가 모인다는데 여주인공을 누구로 할지를 의논한다고 했다. 이들은 주인공 오경아 역으로 안인숙(나중에 안인숙이 캐스팅)과 김창숙을 고민 중이지만 신인을 써보자는 의견도 있으니 필자를 한 번 보내보라는 전화였다. 필자는 영화배우가 될 꿈은 전혀 꾸지 않았으나 좋아하는 작가 최인호가 온다니 신나서 방문해 그를 만난 기억이 있다. 그 정도로 최인호는 필자의 우상이었다. 그의 작품 ‘인연’을 읽으며 필자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필자는 젊었을 때 성당에서 교리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았다. 한동안 잘 다녔는데 살면서 여러 가지 희로애락을 겪으며 어느 날부터 성당에 나가지 않아 냉담자(세례를 받았지만 성당에 나가지 않는 사람) 가 되었다. 최인호는 가톨릭 신자였다. 열심히 성당에 나갔던 부모가 매주 가져오는 주보에 최인호의 글이 실린 것도 보았고 그의 투병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인연’을 읽었다. 필자의 가슴 속엔 항상 어떤 죄책감이나 무거운 기운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성당에 나갈 결심을 했다. “우리 모두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입니다. 이 별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소멸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입니다. 이 신의 섭리를 우리는 인연이라고 부릅니다. 인생의 밤하늘에서 인연의 빛을 밝혀 나를 반짝이게 해 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삼라만상에 고맙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인연’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신의 섭리, 인간이 어쩌지 못 한 일에 닥쳤을 때 인간은 결국 신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 같다. 최인호의 말대로 필자도 수많은 필자와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고맙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2016-09-0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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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변화가 된 이 한권의 책] 나이 건강 지킴이로 등록
- 체질학을 10년도 넘게 공부하고 있다. 듣고 또 듣고 시간이 나면 저절로 내 발길이 닿는 교실이다. 그러나 듣고 뒤로 돌아서면 가물가물해서 이거였었던지 저거였나? 하며 정리가 안 되어 또 가게 되곤 했다. 수업은 이주일 단위로 되어 있지만 10년이 넘었는데도 계속 듣고 있고 그래도 전연 싫증이 안 난다. 어이없게도 매일 새로운 걸 하나씩 더 알아져 가는 재미가 있다. 한 번 낸 수업료로 본인이 원하면 언제라도 죽기 전까지는 눈치 안 보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사람에게는 음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음식으로 병을 고칠 수가 없는 병은 없다. 고로 먹는 것을 잘못 먹어서 모든 병은 온다고 한다. 병의 원인이 먹는 것에 있다는 걸 몇 천 년 전부터 연구해 온 기록들이 있고, 그 유명한 히포크라테스도 음식의 중요성을 그의 저서에 증명해 놓고 있다. 그만큼 먹는 게 우리 삶에는 퍽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는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을 거 같다. 먹는 것을 시작하는 입은 말하기도 하고 그 안에는 혀가 있어 맛을 담당해 주고 이가 있어 먹은 것들을 씹게 해 주고 삼키는 것과 소화를 도와주는 침도 나온다. 모든 것이 다 중요하지만 맛이란 것을 하나하나 체크해 주는 혀가 가장 가운데 있는 것을 보면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음이다. 똑같은 찌개를 놓고 여러 사람에게 맛을 보여주고 말하게 해보면 한 사람은 맵다며 질색을 하나 어느 사람은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이라며 달게 먹고 짜다는 둥 싱겁다는 둥 자기 입맛대로 표현하는 것을 자주 만난다. 왜 그럴까? 모든 사람에게 자기대로의 좋아하는 맛과 필요한 맛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즉 매운 게 필요한 사람, 짠 게 필요한 사람, 단 것이 필요한 사람... 이 있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자기 입맛대로 먹으면 건강해진다고 하는 말이 우리 몸의 처방이라는 말이다. 단 거 먹지 마라, 짠 거 먹으면 안 된다 식의 영양학적인 지식으로 우리 몸을 지킬 수 없다는 이 공부에 끝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는 93세지만 놀랍도록 건강을 잘 지키고 있다. 어머니가 언제나 손 가까이에 놓고 즐겨 찾기를 하는 책이 서너 권 있다. 일어로 되어 있는 작고 얇은 책들이다. 그 중 이란 제목에 관심이 발동 걸려 확 집어 들었다. 내가 배워 왔던 체질학과 같은 맥락. 내 다가오는 삶의 지침서로 안성맞춤인 책. 급기야 ‘엄마, 이 책 나 가질게’ 해서 승낙을 받아냈다. 물론 지금은 어머니와 같이 펼쳐보는 책이지만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나의 마지막 꿈을 완성시켜 가는 건강지킴이 일을 꼭 하고 말겠다는 버리지 못한 희망 속에 이 책 한권은 나의 길잡이가 되어 주리라. 이 낡은 책과 만나던 날의 벅차오르던 기쁨과 함께 이상한 징후가 몸에 생길적마다 혼자 비밀스럽게 검색하며 건강을 지켜온 어머니가 다시 보였었다.
- 2016-09-0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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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가 막힌 나만의 아지트 대공개] 7살이 되어가는 나의 방
- 이 방과 처음 만나 건 7년 전이 2010년.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어머니가 혼자 있는 집에 다녀가는 기분보다는 적적함을 나누며 살아가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에, 여러 번 이 얘기 저 얘기 나눈 뒤에 쉽지는 않겠지만 이해해가며 살아보자는 의견일치를 보게 봤다. 어느 누구도 주위에서 잘 하는 일이라고 칭찬이나 격려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옛날 어렸을 때처럼 모녀 간이니 적당히 그렇게 지내면 되겠지 하며 일용품과 옷가지들이 섞인 이삿짐이 오던 날 축하(?)주로 짠! 까지 해가며 가지가지 옛날을 회상하는 얘기들을 펼쳐가며 슬픔+희망을 나누며 편하게 보냈다. 서울에 볼 일 있는 날에는 ‘늦을라, 어서 가라’는 재촉에 내가 내 아들 출근시킬 때와 같으려니 여겨 가볍게 외출하곤 했다. 마음과 말과 행동에 전연 다른 것들이 복선으로 깔려 있다는 걸 전연 모르고 지낸 거다. 나이든 어머니 마음엔 전연 다른 기대와 받고저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한 덜렁이 딸이 나중, 나중에 여동생에게 전해 듣고서야 가슴도 아프고 섭섭해지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꼬여갔다. 할 때 이 작은 방이 나의 기를 조금씩 살려줬다. 기가 막히게 날 보호해주고,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었고 일들을 조리 있게 착착 진행시켜주는 고마운 마음의 쉼터 아지트가 되어 줬다. 속상한 일들이 차츰 사라졌다. 집에 있는 날, 이 방에 들어와서 내내 글을 쓰던가, 편지 쓰고 책 읽고 전화도 편하게 걸고 받을 수 있는 곳. 무슨 일을 해도 내게 화를 내거나 내게 불만을 표시해 주지 않는 비밀 아지트였다. 마음대로 웃고, 그리고 싶은 그림도 열심히 그릴 수 있는 방. 특히 모녀가 몇 시간이라도 두런두런 싫증 안 날 만큼 대화의 꽃도 피우지만 내가 이 방에 있는 한 어머니도 본인이 하고픈 일들을 맘껏 할 수 있게 된 자유가 주어진 게 공로상 깜이다. 서로가 오로지 본인만의 시간을 즐기고 누구의 간섭 없이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는 건 귀중한 거다. 어머니가 부르면 아쉽지만 벌떡 또 식사 때는 즉시 나간다. 이제는 어머니 얼굴 눈썹 날리는 것만 봐도 마음의 행로를 알게끔 숙련되었다고나 할까? 그야말로 잽싸게 요 방으로 들어와서 어머님 심사를 안 건드리고 내 일을 기쁨과 행복함에 휩싸여서 할 수 있게 된 거다. 작지만 큰 행복을 마음껏 누리게 해 주는 나만의 비결을 자꾸자꾸 개발하게 해 준다. 맛있는 게 있거나 즐거운 소식이 있을 때는 어머니랑 시간을 나누면서 즐긴다. 어머니가 피곤해 한다거나 별로 얘기가 하기 싫은 눈치면 얼른 주무시도록 모든 것을 대강 준비하며 섣불리 신경 거슬리는 행동일랑 감추고 얼른 이 방으로 피신한다. 심호흡 명상법으로 안쓰러운 마음에 공연한 얘기 꺼내 좋았던 감정 흩트리는 일이나 서로 감정 상하는 일 없도록 배려하고, 귀찮아도 웃는 얼굴과 눈에 힘 빼고 목소리는 언제나 상냥하게 가다듬어야 한다는 걸 이 방이 되 뇌이게 해줬다. 모녀관계의 지혜를 쌓는 공부도 인터넷을 찾아보며 남의 글을 읽으며 내 글도 쓰며...엄청 많이 도와준다. 이 방은 나를 고품질의 모녀관계 유지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시니어의 바른 생활과 앞선 건강한 시니어로서의 태도와 겸손을 배우고 깨우쳐 주는 방이다. 7년 전의 마음가짐을 이 방이 이렇게 발전시키고 있는 거다. 7살이면 초등학생이 되는 나이 아닌가!?
- 2016-09-0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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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사람] <백년을 살아보니> 저자 97세 김형석 교수, “두 친구가 가고 없는 세상, 텅 빈 것 같다”
- 드물디드문 ‘90대 철학 교수’이자 글로써 1960~1970년대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김형석(金亨錫) 연세대 명예교수는 요즘 활발한 강연과 집필 활동을 통해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에 100세를 바라보며 만든 책 (덴스토리 펴냄)를 출간한 김 교수는 오랜 세월 동안 겪은 다양한 경험과 깨달음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담담하게 펼쳐놨다. 결코 흔치 않은 100년 동안의 시간을 경험한 노교수의 삶과 지혜를 살펴보자. 한 시절 젊은이들은 1960년대 등과 같은 그의 수필을 읽으면서 밤을 지새웠다. 김 교수의 수필을 읽던 청년들이 어느덧 50, 60대가 됐지만 지금도 그는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며 세상과 만나고 있다. 연세대 명예교수인 김형석 교수의 이야기다. 시대를 뛰어넘고 있는 김 교수는 최근 출판가에서 가장 ‘묵직한’ 저자다. 90살을 넘어 100살에 가까워진 김 교수지만 작년 한 해 동안 활발한 외부 활동으로 그 이름을 다시금 각인시키더니 와 의 두 저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름으로써 스스로 현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작가임을 증명했다. 그런 그가 그동안 강연했던 내용을 묶어 사랑과 희망이 있는 이야기가 담긴 책 를 내놨다. 90대에 다시 맞이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즐거움 “를 작년에 내놨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내놨던 와 를 개정하여 다시 출간했죠. 는 워낙 오래된 책이라 처음에는 출간이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출판사 사장이 직접 찾아와서, 자기 할아버지가 그 책을 꺼내 주면서 꼭 내라고 했다는 거예요.” 김 교수는 사람들이 예수를 객관적으로 알아야 하는데, 교회가 감싸니 예수가 어떤 화두를 가진 사람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찾아보자는 문제의식을 갖고 만든 책이 바로 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시대를 앞선 책이기도 했다. “과거에 책이 나왔을 때는 호응이 없었는데, 지금 읽히기 시작하니 교회 안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이나 호응이 있고 반응이 좋아요. 젊었을 때 써서 지금보다 문장도 좋고. 내가 봐도 훌륭해(웃음).” 김 교수는 백 살이 가까운 지금도 200자 원고지에 친필로 글을 쓴다. 타자기는 안 쓰고 스마트폰도 안 쓴다. 그는 지난 1년 반 동안 조금 무리했다고 말했다. “이라는 계간지에 1년에 200자 원고지 400장을 쓰는 게 있어요. 그런데 3개월 후에 쓰는 걸 반복하는 것보다는 원고를 미리 써놓는 게 좋겠다 싶어 한꺼번에 쓴 거죠. 그게 좀 무리가 됐어요. 그래서 금년에는 안 써요(웃음). 할 때 하자 싶어서 한 일인데, 그렇게 무리했던 게 나은 거 같아요.” 가족이 떠나니 집이 비고 친구가 떠나니 세상이 비었다 “우리 어머니가 10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죽음을 담담한 운명으로 받아들이셨어요. 그분은 더 오래 사는 게 걱정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직계 중에 먼저 돌아가신 사람이 없는데 자신이 그보다 늦게 갈까 봐 그랬던 거예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한 달쯤 전에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내가 먼저 갈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나는 가면 되고, 네 처가 가게 되면 집이 빌 텐데 집이 비면 어떡하지?’라고 말씀하시데요. 어머니가 가시고 아내도 가고 그러니 정말 집이 빈 거예요. 외국 여행하고 돌아올 때 오고 싶지 않고 공항에 내려도 ‘빈 집에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있고 아침에 잠에서 깨면 아무도 없다는 걸 알게 됐죠. 어머니와 아내가 집이었어요.” 를 보면 김 교수의 절친한 친구인 김태길 교수와 안병욱 교수의 이야기가 나온다. 무엇보다 그의 인생에서 소중한 인연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두 친구, 서울대의 김태길 교수, 숭실대 안병욱 교수였다. ‘철학계의 삼총사’로 불렸던 이들은 반세기 동안 사랑이 있는 경쟁을 벌인 ‘축복받은 관계’였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인촌 김성수 선생 다음으로 자신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준 사람은 바로 이 두 친구였다고 그는 고백한다. 80대 중반쯤의 어느 날, 안 교수가 “더 늙기 전에 셋이서 1년에 네 번쯤 만나자”고 제안한다. 김태길 교수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이유는 “우리 셋이 다 80대 중반인데, 누군가 한 사람씩 먼저 떠나가야 할 테고, 그러면 다 보내고 남은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이들은 멀리서 마음을 같이하면서 지냈고 김태길 교수는 2009년, 안병욱 교수는 2013년에 세상을 떠났다. 김 교수는 두 친구의 죽음을 겪으며 “집 식구가 떠나니까 집이 텅 빈 거 같은데 친구가 떠나니 세상이 빈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께서 떠나고 5년쯤 지나고 나니 친구들이 가기 시작하는데 둘이 비슷한 때 가더라고. 세상이 비는 거 같았어요. 남들은 잘 몰라요, 나는 그걸 왜 느끼느냐 하면 친구다운 친구를 가졌기 때문이었죠. 독일의 괴테가 임종할 때 의식이 흐려져서 환상 비슷한 걸 보게 되는데 바람에 종이가 날아가는 걸 보더니 저거 쉴러의 편지인데 날아가는 거 아니냐며 걱정했다고 해요, 야스퍼스는 막스 베버가 세상을 떠나자 한 1년 동안 아무것도 못했다고 하고.” 그는 자신도 ‘이젠 인생 마감을 어떻게 할까를 더 많이 생각한다’며 “죽음을 생각하지만 두렵지는 않다”고 말했다. “뭔가 남길 수 있는 사람은 감사한 거죠. 내가 있어서 행복한 사람이 있었고, 내가 있어서 인생을 아름답게 산 사람도 있었고, 내가 있어서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나눈 사람이 있었다면 그게 저한텐 남는 것이지요.” 행복은 인격에서부터 시작 나이 들어서 행복을 맛본다는 건 쉽지 않다. 김 교수는 나이 들어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철학자 가운데 가장 원로 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거든요. 그가 윤리학을 가장 처음 쓴 사람인데 윤리학에서 하는 말이 ‘행복은 누구나 원한다. 그리고 인격이 최고의 행복이다’라는 말이에요. 내 인격이 행복을 만들어서 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행복을 내게 주고 행복이란 그렇게 나눠서 쌓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행복을 만드는 인격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죠. 윤리학자가 문제를 제기하고 결론을 내놓은 셈이에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이 들면서 행복도 커지는 거죠. 나이 들면서 행복해지는 게 인생인 겁니다.” 인격이 최고의 행복이라면, 그 인격이란 무엇일까? 김 교수는 철학자들이나 윤리학자들은 인격을 두 가지로 나눠서 본다고 설명했다. “인격이란 나에게 있어서 성실하게 사는 것, 그리고 이웃에 대해선 사랑을 가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성실과 사랑이에요. 성실한 사람은 항상 노력하고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성실한 사람은 자기를 알기 때문에 겸손합니다. 성실한 사람에게는 진실이 있고, 성실보다 더 귀한 인격은 자신에게 있어선 없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문제의식을 가짐으로써 철학자가 된다 김 교수의 친구 안병욱 교수는 가장 성실하게 산 사람을 공자로 봤다고 한다. 공자는 성실했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았다는 것이다. 석가나 예수는 공자가 한계로 느낀 걸 종교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래서 예수는 성실에 경건이 더해진 철학을 만들었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성실만 갖고 있으면 종교로 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호수에 바람이 불거나 파도가 치면 달그림자가 안 뜹니다. 그런데 조용해지면 달그림자, 별 그림자를 볼 수 있죠. 경건하다는 건 이성이 작용을 멈췄을 때 모든 걸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호수가 조용해졌을 때 별 그림자가 뜨는 것 같은 상태죠. 그때 종교가 오게 됩니다.” 김 교수는 철학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철학이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아마 이렇게 보면 좋을 거예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있는 제자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가 나 보고 4년 동안 대학을 다니고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학교에서 배운 건 다 잊어버렸다고 했습니다. 나도 그런 현상을 잘 알죠. 인상은 남아 있는데 기억을 못하는 것. 알지만 이상하죠? 난 대학 다닐 때 강의 들었던 것, 읽었던 책을 다 기억하는데. 나는 기억력이 좋은 게 아니라 문제의식이 있었던 겁니다. 강의 듣는 것, 책을 읽는 것 다 문제의식이 그릇이 되어 거기에 담았습니다. 그러니 잊을 수 없게 된 겁니다. 철학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류 대학을 나와서도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졸업하면 평범해집니다. 반면 일류 대학이 아니더라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면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철학적 사유를 가진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나에게는 두 별이 있었다 김 교수의 아우라는 긍정적이다. 불안한 요인이 섞여 있지 않다. 아흔을 넘어 백세로 가는 이에게 그러한 긍정의 힘은 놀랍고 희귀한 사례다. 그에게도 하지 않으면 후회될 게 있을까? “93세 때 밤에 자다가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을 정리하면 뭐가 될까?’ 싶었어요. 그래서 일어나서 메모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잤어요. 메모는 세 문장이었습니다. ‘나에게는 두 별이 있었다. 진리를 찾아가는 그리움과 겨레를 위한 마음이었다. 그 짐은 무거웠으나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철학자로서의 나는 진리를 추구했고 사회적으로는 겨레들이 좀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우리 시대는 일제강점기, 공산 치하를 겪어야 했으니. 못해서 아쉽겠다는 건 그 두 가지를 위해서 좀 더 일했으면 좋았겠다는 겁니다. 가끔씩 인터뷰를 하면 기자들이 ‘젊었을 때 낭만이 있었느냐, 연애는 했느냐, 연애 결혼했느냐 중매 결혼했느냐 같은 걸 묻는데 속으론 ‘그건 왜 물어봐. 관심 밖이야’라고 말하곤 해요(웃음).” 김 교수는 자신이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와 우리를 위해 마음 써줬는데 고마운 사람이다.’ “를 쓰고 나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거 같아서 홀가분해요. 아쉽냐고요? 그런 건 생각 안 나요. 이 책 한 권만 쓰고 끝나는 게 아니라 또 쓸 거니까.” 지혜가 묻어나오는 그의 저서에는 ‘성실’을 표현해내는 인격이 반짝인다. 그래서 김 교수의 책은 그리울 수밖에 없다. >> 김형석 교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민주화 운동기를 거쳤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을 듣고 성장했으며 윤동주 시인과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또 김수환 추기경은 후배로, 인촌 김성수 선생은 멘토로 많은 가르침을 준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60세에 뇌출혈로 쓰러져 20년간 투병 한 아내를 떠나보낸 후 연희동 주택에서 10여 년째 홀로 살고 있다. 4녀 2남의 자녀들에게도 “나를 위해 마음 쓰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며 고독을 견디기 위해 글을 썼고, 책을 읽고, 강연을 하는 삶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 2016-08-3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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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간] 우리옛돌박물관 실내 전시실
- 웃는 얼굴, 근엄한 얼굴, 크고 작은 석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어쩌면 100년도 더 넘는 시간동안 비바람을 맞고 어디엔가 쓰러져 있던 석상. 사람의 욕심에 끌려 바다 건너갔다 돌아온 고단한 돌들의 쉼터가 서울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우리옛돌박물관’이다. 우리옛돌박물관은 2000년 경기도 용인에 문을 열었던 세중옛돌박물관을 서울 성북구로 옮겨와 재개관한 것이다. 이곳은 이사장인 천신일씨가 40여 년간 찾아 모으고 일본에서 환수해 온 우리의 석상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미술작가의 작품을 비롯해 우리네 어머니들의 정성이 담긴 자수 작품 등도 만나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석상은 크게 4종류가 있다. 장군, 문인, 동자, 벅수다. 장군, 문인, 동자상은 묘지를 지키는 석상이었고, 벅수는 마을을 지키는 일종의 돌로 만든 장승이었다. 1층 1. 환수 유물관 환수 유물관은 천신일 이사장이 환수해 온 70점의 유물 중 문인석 47점을 전시했다. 일본에 약탈당하고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다 보니까 없어진 것이 많다. 짝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대로 전시했다. 문인석이나 장군석은 키에 따라서 묘주의 신분을 알 수 있었다. 키가 170~180cm정도는 왕릉 혹은 정일품의 묘 앞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 금강역사 사찰 앞에 한 쌍으로 세워졌던 것이다.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을 ‘아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흥금강역사’라고 부른다. 박물관에 있는 것은 ‘흥금강역사’다. ‘아’와 ‘흥’은 산스크리트어의 AtoZ와 같은 의미. 모든 불경을 보호한다는 의미이며 한 쌍의 ‘아흥금강역사’가 사찰을 지켜왔다. 3. 무병장수의 길 1층 오른쪽에는 걸어서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무병장수의 길이 조성돼 있다. 길상을 상징하는 양과 물고기를 낮은 층에 배치했고 올라가는 내내 다복이나 장수 등을 비는 석상들을 배치해 놓았다. 이 외에 여인상, 장명등이 전시돼 있다. 2층 1. 장군석 우리옛돌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다. 화강암임에도 불구하고 눈썹이 날리는 터럭의 모양 등이 잘 표현됐다. 석조유물의 특징은 3등신이다. 3등신이 정확할수록 가치가 높다. 도깨비 문양이 칼과 양 어깨에 있다. 옛날 석공들은 도면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각 모양을 비슷하게 잘 만들었다는 것은 기술이 대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동자석과 벅수 동자석과 벅수가 발전한 곳은 제주도다. 동자석은 원래 서울·경기 지역에서 시작했지만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런데 제주도는 섬이고 전파가 되고 나서 거기서는 계속 발전했다. 무덤 앞에서 주인의 시중을 드는 역할을 했고 장군과 문인이 있는 무덤에서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장군, 문인, 동자가 석공이 조각을 한 것이라면 벅수는 손재주가 있거나 여행을 좀 해봤다 하는 사람들이 직접 민간에서 만든 작품이다. 장승의 돌 버전이다. 암수가 있다. 노인 형상을 한 벅수는 장수와 지혜를 상징하고 마을 사람들이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에서 만들어졌다. 3. 카페테리아 카페테리아 쪽으로는 한국 여성들의 정성이 깃든 자수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작은 골무에서부터 보자기, 바느질 용구, 주머니 등이 있다. 3층 1. 양이 조선시대 길상이었던 이유 이성계가 조선의 왕이 되기 전에 양 꿈을 꿨다고 한다. 꿈에 양을 잡으려고 양의 뿔을 잡았는데 뿔이 떨어져 나갔다, 꼬리도 잡았지만 꼬리도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꿈이 이상해 무학대사에게 물어 보니 왕이 될 꿈이라고 했다. 그 이유가 양(羊)에서 뿔이 빠지고 꼬리가 빠지면 왕이 된다는 의미였다. 조선시대 유난히 양을 조각한 석조 유물들이 많다. 2. 3층 기획 전시실 근·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3층은 바깥 전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테라스로 연결돼 있다. 날씨가 맑으면 제2 롯데월드도 보일 만큼 시야가 탁 트여 있다. 전시안내 전시(도슨트) 설명 오전 11시, 오후 2시, 3시 (50~60분 정도 소요) 멤버십카드 연회비 1만원 혜택 1년간 전시 무료 관람, 박물관 소식 메일링 서비스 가입문의 - KOSA@ksmuseum.com - 안내데스크에서 현장 가입할 수 있다. - ‘문화가 있는 날’은 매월 마지막 수요일.
- 2016-08-3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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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 마이 라이프> 를 빛낸 시니어 세대 한자리에서 만나다
- 지난 23일, 서울시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단행본 출간 기념회가 있었다. 20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에어비앤비는 자기 집, 혹은 집의 일부분을 숙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또 찾는 일종의 ‘인터넷 장터’다. 특히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일상생활도 하면서 자신의 집 남는 공간을 빌려주는 형식이기 때문에 은퇴 뒤 제2의 인생을 사는 시니어 세대에게 매력적이다. 반면, 지금까지 우리의 정서상 사촌이나 혈육이 아닌 사람에게 집을 내어주는 것이 납득 가지 않는 부분도 있을 듯. 은 에어비앤비에 관한 이해를 돕고 시니어 호스트의 참여를 바라는 마음에 나온 책으로 에어비앤비의 ‘시니어 호스트(50세 이상의 호스트)’ 12명의 이야기를 실었다. 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들 는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여행 속으로]라는 섹션으로 에어비앤비 시니어 호스트의 이야기를 담아왔다. 본지를 통해 소개했던 4명의 시니어 호스트가 마침 12명으로도 소개돼 출간기념회에서 다시 한 번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2월 ‘여유가 흐르는 집’으로 소개했던 파주 헤이리 모티프원의 이안수씨. 파주 헤이리예술마을 촌장이자 에어비앤비에서 강력 추천하는 시니어 호스트 중 한 명이다. 흰 수염 곱게 내리고 너털너털 웃으면 함께 따라 웃을 수밖에 없다. 나이를 막론하고 세상 모든 여자에게 ‘누나’라 부르지만 본인은 정작 특별한 호칭으로 불리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 젊은 날 잡지사 국장까지 지냈다는 이안수씨는 자유롭게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다. 자신의 집 또한 세계가 통하는 플랫폼으로 만들어 놓아 소통하는 중이다. 최근 (남해의 봄날)이라는 제목으로 ‘모티프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냈다. 4월 ‘도심 속에서 어머니의 품을 느끼다’에서 소개된 ‘북촌유정’의 박소자씨와 남편 이형술씨도 만날 수 있었다. 남편 이형술씨는 ‘북촌마을’의 촌장으로 ‘북촌’이라는 지명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북촌유정은 종로구 계동의 작은 한옥으로 에어비앤비 호스트뿐만 아니라 미술작가들의 갤러리로도 활용하고 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기 전 오랫동안 하던 자원봉사를 못하게 돼 우울증세를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은 삶의 의욕과 활력을 되찾았다는 박소자씨. 시니어 호스트로서 건강하게 손님들을 맞이하며 여전히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5월 옥상정원에서 만났던 김향금씨는 아름다운 외모 덕에 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이날 오전에 있었던 기자 간담회와 함께 출간 기념회에 다니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는 김향금씨. 곱게 생활한복을 입고 나와 책과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대표하는 표지모델로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김향금 씨는 지난 3월,서울 리빙 페어에서 처음 만났다. 에어비앤비를 홍보하는 시니어 호스트로 방문객 맞이하며 활동적인 액티브 시니어의 모습을 보였다. 김향금씨의 옥상정원에서는 맛있는 커피도 내려주고 또, 타로카드도 직접 봐주기도. 취재 때 꽃이 없어 서운했는데 꽃이 지기 전 꼭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마지막으로 7월에 1박 2일로 방문했던 영월 앞뜰농장의 주인 장미자씨. 장미자씨의 앞뜰농장은 소프트웨어가 강한(?) 에어비앤비다. 활동할 것뿐만 아니라 먹을 것도 많은 곳. 1박 2일 동안 장미자씨를 따라가 술을 만들고, 밭에 나가 풀을 뽑고, 동네 언니들과 장미자씨 뽕밭에서 오디도 따며 완벽한 시골 생활을 즐겼다. 아쉬운 점 하나! 영월 맑은 다슬기를 좀 채취를 했어야 했는데 못하고 왔다. 좀 더 추워지기 전 꼭 한 번 방문해야겠다. 는 활기차게 살아가는 시니어 세대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에어비앤비의 시니어 호스트처럼 멋진 제2 인생을 살아가는 시니어들을 를 통해 발굴하고 또 소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모티프원, 북촌유정, 옥상정원, 앞뜰농장은 소개된 시니어 호스트들이 살고 있는 집의 이름이다.
- 2016-08-24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