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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 코로나19에 지쳐 있거나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할 때 위로와 휴식을 위한 ‘힐링 영화 보기’. 저마다 소중히 품고 있는 해외 핫 플레이스를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 과거의 기분을 되살리고 감동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을 준비해봤다. 유튜브 검색창에 ‘도시이름+ASMR’을 입력한다. ‘런던도서관 ASMR’, ‘로마의 아침 풍경 ASMR’, ‘뉴욕의 밤거리 ASMR’, ‘치앙마이 빗소리 ASMR’, ‘도쿄 카페 ASMR’….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나의 여행은 대개 이런 식이다. 인적 드문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떠나고 싶은 여행지의 소음을 들으며 잠시 숨을 고르는 것.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백색소음 삼아 커피를 마실 때, 외국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종류의 여행자다. 누군가에겐 일상일지도 모를 낯선 풍경 속에서의 기분 좋은 위화감이야말로, 여행지에서만 새길 수 있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유난히 더울 거라는 올여름 더위 전망을 보고 있자니 벌써부터 마스크를 끼고 보내야 할 한 철이 두려워진다. 손님이 거의 없는 동네 카페 구석에 이어폰을 꽂고 앉아 ‘파리 카페 ASMR’을 재생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던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의 테라스에 어색하게 앉아 있던 여름날을 떠올린다. 카페 드 플로르는 헤밍웨이를 비롯해 당대의 많은 철학자와 시인, 예술가가 주로 찾았던 문학카페다. 생 제르맹 거리에는 유독 유명한 카페가 많은데, 카페 드 플로르 건너편 카페 레 되 마고(Cafe´ Les Deux Magots)도 그중 하나다. 계약결혼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두 철학자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도 이 거리의 카페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하루 8시간을 꼬박 글만 썼다. 레 되 마고에서 집필한 소설이 ‘구토’, 카페 드 플로르에서 탄생한 철학서가 ‘존재와 무’라 하니, 두 카페가 문학과 철학을 사랑하는 여행자들의 성지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낮의 생 제르맹 거리는 활기로 가득했다. 파리 시민들에게는 일상을 넘어 삶 그 자체인 공간에 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심지어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가 와인을 마시며 작품에 대해 토론하던 카페라니,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의 주인공 길 팬더처럼 1920년대 파리로 시간여행이라도 떠나온 것 같다. “정말 끝내준다! 이런 도시는 어디에도 없어. 비 올 땐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 1920년대 파리를 상상해봐. 비에 젖은 파리를. 예술가들, 작가들… 여기서 소설이나 쓰며 살 수 있다면 베벌리힐스 집 같은 건 없어도 그만이야.” 영화는 미국의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 길 팬더와 그의 약혼녀 이네즈가 파리로 여행을 오면서 시작된다. 값비싼 앤티크 가구와 보석, 럭셔리 호텔 말고는 관심이 없는 이네즈와 달리 길 팬더의 꿈은 과거 황금시대의 예술가들처럼 파리에서 소설을 쓰며 사는 것이다.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길 팬더는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홀연히 나타난 차에 올라타, 1920년대의 파리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헤밍웨이가 카페 구석에서 생굴 한 접시에 백포도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낡은 다락방에서 머물며 예술을 논하던 황금시대의 파리로. 카르디날 르무안 거리의 작은 아파트에서 지내던 헤밍웨이는 찬비가 내려 음울하고 서글픈 겨울, 방을 데워줄 장작을 사는 대신 생 제르맹 거리의 카페로 향하거나 플레뤼스 거리 27번지에 있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아파트에 들르곤 했다. 헤밍웨이가 스타인의 집으로 가기 위해선 생 테티엔 뒤 몽 교회를 지나쳐야 했는데, 영화 속에서 길 팬더가 클래식 푸조에 올라타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나는 자주 이 교회를 찾았다. 영화 속 길 팬더처럼 돌계단에 앉아 영화의 OST를 듣기도 하고, 헤밍웨이처럼 뤽상부르 공원 벤치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기도 했다. 카페 드 플로르 같은 고급스러운 카페에서 커피라도 마신 날에는 1유로짜리 바게트로 끼니를 때웠다. 허기가 져 일부러 음식 냄새가 나지 않는 길로만 다녔다던 헤밍웨이처럼 배고픔을 교훈으로 삼으며 잘도 걸어 다녔다. “내 책을 좋아하나보군.” “좋아해요? 사랑하죠! 선생님 작품 다요!” “그래요. 좋은 책이죠. 정직한 책이니까… 영 아닌 소재는 없소. 내용만 진실하다면. 또 문장이 간결하고 꾸밈없다면.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용기와 품위를 잃지 않는다면.” 물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적도 있다. 헤밍웨이의 단골집이었다는 폴리도르 레스토랑(Polidor Restaurant)에서였다. 1920년대로 시간여행을 떠난 길 팬더가 헤밍웨이를 처음 만난 곳이다. 1845년에 문을 연,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중 한 곳이라는 이 레스토랑은 170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다. 적당한 소음이 기분 좋게 들려오고, 익숙한 리듬이 배어 있는 웨이터의 몸짓이 마음을 살랑이게 만드는 곳. 프랑스식 소고기찜인 뵈프 브루기뇽(bœuf bourguignon)과 레드와인을 곁들인 점심식사 후에 넉넉해진 마음으로 향한 곳은 파리의 예술가와 작가, 그리고 낯선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돼준 영문학 전문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1919년 미국인 실비아 비치가 문을 연 이 서점은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 같은 작가들이 책을 빌리고 모여서 문학 토론도 하고 홍차를 마시던 문학 살롱 같은 곳이다. 물론 지금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1920년대의 ‘그’ 책방이 아니다. 1941년 전쟁으로 실비아 비치가 운영하던 서점이 문을 닫자 친구인 조지 휘트먼이 센 강 옆에 ‘미스트랄’이라는 이름의 서점을 열었고, 1964년 윌리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맞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개명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지금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역시 실비아 비치가 그랬던 것처럼 오갈 데 없는 작가들에게 침대를 내어주고, 글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2층으로 이루어진 이 서점은 작지만 성실하게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책들로 빼곡했다.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낯선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마라.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서서 반대편 벽에 새겨진 문장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배고픈 예술가들에게 다락방을 내어주었다던 이곳에 이토록 어울리는 문구가 또 있을까.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파리를 배경으로 한 또 다른 영화 ‘비포 선셋’(Before Sunset)에서 두 남녀 주인공인 제시와 셀린이 9년 만에 재회한 장소이기도 하다. 빈에서 보낸 셀린과의 하룻밤을 소설로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제시가 작가와의 대담을 위해 파리의 서점을 찾았는데, 그곳이 바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다. 삐걱거리는 계단 소리를 들으며 2층에 오르니 누구라도 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책장 사이사이 여백에는 헤밍웨이의 얼굴이 담긴 낡은 액자가 걸려 있었고 소파 위에선 고양이들이 단잠에 빠져 있었다. 조지 휘트먼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가리켜 세 단어로 된 한 편의 소설이라고 했는데 내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공간이었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현재가 아닌 과거의 황금시대를 그리워하며 살던 길 팬더는 1890년대의 벨 에포크로 돌아가서야 깨닫는다. 과거에 대한 동경은 무의미하다는 것. 과거에 머물면 그곳이 또 다른 현재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는 “상상 속의 황금시대를 좇을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라”는 메시지를, 파리를 사랑했던 수많은 예술가의 입을 빌려 들려준다. 코로나19 시대에 여행을 간다는 건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인다. 영화를 따라 파리를 걷던 3년 전이 오래된 일처럼 아득하다. 마스크를 낀 채 견뎌내야 할 올여름이 두렵긴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현재가 소중한 건, 평범했던 일상이, 지겹도록 무난했던 보통의 날들이 당연하게 주어진 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죽기 전 인터뷰에서,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어딜 가든 당신 곁에 머무를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나도 언제든 어디서든,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녹음된 소리만으로도 3년 전의 파리를 떠올릴 수 있으니까. 다 마신 커피 잔을 반납하고 카페를 나서며 생각했다. 마스크 낀 채로 꿋꿋이 현재를 살아내고 싶다고. 미래를 두드리면서, 헤밍웨이의 말처럼 가끔은 이렇게 파리를 뒤적이면서.
- 2020-08-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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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의 산책길에서 만난 작은 행복
- 서초구 양재천 영동1교에서 영동2교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다 보면 양재천 한가운데에 작은 섬이 하나 있다. 하천 퇴적물이 쌓여 생긴 이곳에 철학자 칸트를 테마로 한 산책길이 있다. 2017년에 조성된 공간이다. '사색의 문'으로 불리는 부식 공법 철제문을 지나 작은 목조다리를 건너면 바로 칸트의 길이 나온다. 독일 철학자의 이름이 왜 양재천 산책길에 등장한 걸까? 생뚱맞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벤치에 앉아 있는 칸트 청동상 옆에 새겨진 문구를 읽다 보면 금세 이해하게 된다. 벤치 좌우에는 칸트의 행복론이 씌어 있다.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 산책로 작은 숲속 길 곳곳에 만들어진 벤치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볼 수도 있고 원형으로 만든 나무 데크에 누워 나뭇잎에 가려진 푸른 하늘을 볼 수도 있다. 매트를 깔고 요가를 하기에도, 책을 읽기에도, 가만히 눈 감고 명상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원형 데크다. 사색 깊은 철학자의 행복론이라 하기에는 너무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행복은 산 너머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작은 일상이 중요하고, 내 옆에 늘 있어주는 가족과 지인들이 소중하며, 내게 맡겨진 일과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라는 것을. 어느덧 50대를 훌쩍 넘겨 장년층에 들어가니 걷고 산책하며 주위를 바라보는 게 좋아졌다. 운전하고 다닐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소소한 즐거움이다. 특히 마음이 복잡할 때나 머리가 어수선할 때는 운동화에 모자 하나 푹 눌러쓰고 이 길 저 길 가리지 않고 걸어 다닌다. 단지 두 다리로 걷기만 했을 뿐인데 걷고 난 후 땀에 흠뻑 젖은 몸이 개운하다. 이리저리 마음 괴롭히던 잡생각들도 사라져 마음도 한결 가볍다. 칸트는 매일 산책을 하며 사색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가만히 앉아 나를 되돌아보는 일은 ‘잠시 멈춤’을 넘어 스스로를 다독이고 격려하는 힐링의 시간이다. 또 격조 있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 서울 도심 속 양재천 한복판에 있는 작은 섬, 칸트의 산책길이 내게 소중한 이유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주춤하지만 한때 젊은이들이 일본 교토로 여행을 많이 떠났다. 그 여행 코스에 빠지지 않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은각사 옆에 위치한 철학자의 길이다.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산책하면서 사색을 즐겼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작은 마을을 흐르는 천 옆에는 오래된 벚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벚꽃이 만발하는 봄에 방문하면 벚꽃이 눈처럼 날리는, 말 그대로 꽃비가 내리는 운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이제 사색을 할 수 없다. 관광객이 길을 가득 메워 길을 걷다가도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양재천 칸트의 산책길을 걸으며 문득 교토의 철학자 길이 떠오른 건 ‘본질에 충실하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산책길을 한 바퀴 돌고 오니 다시 출발했던 그 길이다. 들어갈 때는 행복에 관한 문구를 봤는데 나올 때는 다른 글이 보인다. “한 가지 뜻을 세우고 그 길로 가라, 잘못도 있으리라, 실패도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라, 반드시 빛이 그대를 맞이할 것이다.” 칸트의 행복론을 새기며 걷다가 이번에는 나의 꿈과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다. 양재천의 흐르는 물을 잠깐 바라봤다. 두 아이가 물을 건너기 위해 징검다리를 조심조심 걸어가고 있다. 아이가 물에 빠질까봐 다정스레 손을 잡아주는 아빠의 모습도 보인다. 작은 일상의 행복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아니 모른다 해도 상관없을 듯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작은 미소가 퍼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니 말이다.
- 2020-07-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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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함께 돌자 지구 한 바퀴
- 등산의 바이블로 통하는 미국의 등산 도서 ‘마운티니어링’(mountaineering)의 부제는 ‘산에 자유가 있다’이다. 이 제목을 빌려 필자는 ‘트레킹에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트레킹은 등산보다 난이도가 낮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 아름다운 자연과 교감하며 걸을 때, 얼마나 자유로운가. 트레킹을 즐기려면 그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트레킹이 등산과 다른 점, 건강에 좋은 이유, 철학자들의 트레킹 예찬론, 시니어들이 즐길 때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알아보자.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온 언택트 시대에 트레킹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비교적 감염 걱정 없이 자연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트레킹은 느리고 고지식한 여행이다. 일반 여행은 차를 타고 여러 관광지를 찍고 다니지만, 트레킹은 온전히 두 발로 길을 여행한다. 속도가 느리기에 길에서 만난 새와 나무, 풀 한 포기와도 친구가 된다. 자연과 호흡하며 걷다 보면 느린 속도에 적응되고,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낄 수 있다. 치유는 트레킹이 은밀하게 건네는 선물이다. 느린 여행, 트레킹의 매혹에 빠지다 트레킹의 사전적 정의는 다소 애매하다. 백과사전에는 ‘목적지가 없는 도보여행 또는 산과 들과 바람 따라 떠나는 사색 여행’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목적지 없이 바람 따라 떠나는’ 트레킹은 없다. 트레킹은 목적이 뚜렷할수록 좋다. 그래서 필자는 나름대로 트레킹에 대한 정의를 내려봤다. 일반적으로 등산은 산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행위를 말한다. 반면 트레킹은 정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정상을 대신하는 새로운 목적을 찾아야 한다. 산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이런 이유로 트레킹의 영역은 무한히 확장된다. 개인 취향에 따라 꽃길, 물길, 단풍길, 눈길, 강길, 섬길, 문학예술, 유적답사 등 다양한 목적과 테마를 잡을 수 있다. 그래서 트레킹은 육체적 행위이며 상상력이 강조되는 정신적 행위다. 트레킹은 걷기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 유산은 인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꾸준히 걸으면 누구나 건강해질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이 낫고,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기가 더 낫다”고 쓰여 있다. 우리 선조들은 걷기의 위대함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걷기가 각종 암과 성인병을 예방하고 치유한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인간은 걸으면서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존재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의 발을 다양한 교통수단이 대신하고 있다. 프랑스의 작가 다비드 르 브르통은 자신의 저서 ‘걷기 예찬’을 통해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주장했다. 걷기를 통해 느끼는 행복한 감정은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이다. 걷기를 삶의 모토로 삼고 불꽃처럼 살다 간 사람은 19세기 철학자 니체다. 그는 우울증을 걷기로 치유했다. 스위스 엥가딘 고원의 실스마리아(Sils Maria) 마을에 방을 얻어 지내며 호수를 걸었다. 이곳에서 역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탄생했다는 건 널리 알려졌다. 니체는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며 대부분의 작품을 걸으면서 완성했다. “앉아서 지내는 삶은 성령을 거스르는 진정한 죄악이다. 걷기를 통해 나오는 생각만이 어떤 가치를 지닌다”는 말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어디 니체뿐인가. 칸트, 루소, 디킨스 등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가 걷기를 예찬했다. 시니어 트레커들이 주의해야 할 점 필자는 모험적 트레킹을 즐긴다. 모험은 인간의 피를 뜨겁게 하는 힘이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목표를 이뤘을 때의 느끼는 희열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모험의 목표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체력과 능력에 맞게 정하면 된다. 북한산 또는 지리산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백운대나 천왕봉에 오르는 걸 목표로 하면 된다. 북한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완주는 더없이 훌륭한 목표다. 몇 년 전 필자는 오랫동안 꿈꿨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다녀왔다. 포터 없이 홀로 히말라야를 자유롭게 걷자는 목표를 세웠다. 어깨를 짓누르는 짐의 무게와 고산병에 시달리며 죽을 고비도 넘겼지만, 끝내 목표를 달성했다. 이른 아침 맑은 공기를 마시며 병풍처럼 둘러싼 설산을 향해 걸어갈 때 느꼈던 행복함과 충만함은 아직도 깊게 남아 있다. 히말라야 산속 어느 로지에서 만난 5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혼자 온 트레커들이었다. 한국, 미국, 독일, 러시아, 이스라엘 등 국적도 다양했다. 트레킹을 좋아해 세상 구석구석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들과 밤새 수다를 떨었다. 나는 한국의 제주 올레길을 추천했고, 그들에게 알래스카, 아이슬란드, 러시아 등의 알려지지 않은 코스를 알려줬다. 10년 후에 알래스카에서 만나자는 우리의 두루뭉술한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시니어들이 트레킹을 즐길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체력과 건강을 항상 점검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고는 무리하고 얕잡아볼 때 나온다. 자연 앞에서는 겸손하고 솔직해야 한다. 관절이 안 좋으면 스틱을 사용해 무릎이 받는 하중을 줄이는 게 필수다. 스틱은 관절이 받는 하중의 30%를 줄여준다. 트레킹 코스는 무리하게 짜지 말고 여유롭게 움직이는 게 좋다. 걸을 때는 되도록 술을 마시지 말자. 술은 과음을 부르는 법이고, 취하면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 술은 걷기를 마치고 마시는 걸 원칙으로 정하자. 트레킹에는 등급이 없다. 걷기를 통해 행복을 즐기는 자가 최고의 트레커다. 지구 한 바퀴의 거리는 약 4만 ㎞다. 하루에 11㎞ 정도를 1년쯤 걸으면 약 4000㎞다. 10년쯤 걸으면 지구 한 바퀴 거리다. 그 과정에서 얻는 건강과 반짝반짝 빛나는 사유는 보너스다. 그렇게 꾸준하게 걷다가 하늘이 부르면 미련 없이 떠나자. 나의 묘비명은 이렇게 쓰이면 좋겠다. ‘열심히 걷는 모습이 아름다웠던 사람’. 진우석 시인이 되다 만 여행작가, 걷기 달인으로 통한다. 학창 시절 지리산 종주를 시작으로 20년 넘게 걸었다. 저서로 ‘대한민국 트레킹 바이블’,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이 있다. 현재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두발로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 2020-07-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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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딸과 함께 읽고 싶은 도서들
- > 딸과 함께 읽고 싶은 도서들 - by 한성희 나는 젊음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찰스 핸디 저)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지닌 각계각층 60대 여성 29명의 이야기. ‘요즘 60대의 초상’을 콘셉트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경영철학자인 찰스 핸디가 글을 엮고,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 핸디가 사진을 찍었다. 온 더 무브 (올리버 색스 저) 인간의 고독을 바라보며 얻은 통찰을 글로 담아낸 시대의 지성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사람과 지적 탐구에 대한 열정, 성 정체성에 대한 고뇌 등을 비롯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 과학자들과의 우정 등을 들려준다.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저) 20세기 청춘들을 열광하게 한 성장소설. 사립학교의 문제아인 주인공이 퇴학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며칠간의 일화를 그린다. 10대들의 언어를 고스란히 살린 문장과 기성세대를 향한 예리한 성찰이 돋보인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호모 사피엔스부터 인공지능까지, 방대한 역사를 한 권에 담았다. 생물학, 경제학, 종교학 등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의 시원부터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 인간의 끊임없는 진화를 조명한다.
- 2020-05-2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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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정에서 심취하다, 물과 빛에
- 내비게이션을 따르다 보니 차가 산으로 들어간다. 자연을 한 자락 슬쩍 걸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연 속에 있는 미술관이라 들었다. 그러나 이토록 깊은 산중일 줄이야. 씨억씨억 초록을 뿜는 숲 사이 언덕을 올라 주차장에 도착하자 아예 산꼭대기이지 않은가. 기발하게도 산정(山亭) 미술관이다. 그래서 뮤지엄 산(山)? 그러나 ‘山’이 아니라 ‘SAN’이다. 공간(space), 예술(art), 자연(nature)을 합성한 약자다. 산정이라 사방에 보이느니 산이다. 세상을 분할한 하늘 절반, 산봉우리들 절반. 하늘과 산 사이에 뮤지엄이 슬쩍 끼어든 형국이다. 간신히 자연에 가담한 약세(弱勢)가 아니다. 부지는 넓고 건물은 우람해 훤칠하다. 우람하나 이물감이 없다. 건물의 태와 됨됨이에 뾰족하게 튀는 게 없어 자연과 불화 없이 조응한다. ‘건축의 철학자’로 불리는 안도 다다오(安藤忠雄·79)의 작품이다. 그는 자연과 건축, 그리고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본때 있게 구현하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이 뮤지엄의 설립자는 어떻게 산꼭대기에다 일을 벌일 발상을 했을까? 자연을 애호하는 못 말릴 취향과 세상의 추세를 읽는 시퍼런 촉이 아니고선 감행하기 어려운 역사(役事)다. 삼성가 이병철 회장의 장녀로 한솔그룹을 이끌었던 이인희 고문(2019년 작고)이 세웠다. 그는 열렬한 아트컬렉터. 평생 모은 소장품을 자연으로 끌어들여 건립한 산상 미술관으로 허를 찌르듯 관습을 흔들었다. 뮤지엄 산의 태동부터가 이렇게 전위적이다. 판석을 깐 진입로를 따라 ‘플라워 가든’으로 들어선다. 뮤지엄의 초입일 뿐이지만 완상할 게 많아 벌써 다른 세상이다. 패랭이꽃 군락과 하얀 자작나무들, 조각정원이 어울려 뮤지엄의 서장을 열어준다. 산정의 적막한 허공엔 흩날리는 꽃잎들. 피어나는 봄꽃들 지천이라 몸에 묻을 듯 농밀한 건 꽃향기. 길은 곧게 나아가다 휘어지거나 급하게 꺾인다.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콘크리트 담장이 보도의 흐름에 편승해 시야를 슬쩍 가려주거나 별안간 확 트이게 한다. 인위적으로 풍경의 변주를 꾀한 설치다. 정교한 의도에 따른 구성이다.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풍경은 여실해 명쾌하지만, 보일 듯 말 듯, 보였다 안 보였다 변전하는 풍경은 삶을 은유한다. 노골적이어서 온전한 게 있던가. 보이면 있고 안 보이면 없는가. 높낮이와 커브의 각도를 세밀하게 재단해 조성한 담장의 효과로 풍경에 철학이 실린다. 이건 뮤지엄의 절정을 보러 가는 길목에서 만난 전희? 애피타이저? 풍경을 요리하는 수완에 즐겁다. 시각적 충격에 걸음 멎어 이제 ‘워터 가든’이다. 뮤지엄 산의 예술적인 외부 공간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유별한 곳이다. 여기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풍경이 존재한다. 산상 대지에 물을 가득 채워 꾸민 ‘물의 소국’(小國)이 있으니 말이다. 널따란 사각형 수조들에 담긴 물과 물빛으로 찬연한 공간이다. 갑작스런 물의 등장, 그 급속한 풍경의 변이라니. 시각적 충격에 걸음이 멎는다. 나는 지금, 물을 분할하며 본관으로 관입하는 보도 위에 서 있지만 수면을 밟고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보도와 수면이 수평을 이루어서다. 워터 가든의 물 경치에 흥취를 느끼는 사람이 많다. 수변 테라스엔 커피를 마시며 물과 산과 하늘을 바라보기에 적격인 벤치가 놓여 있다. 거기에 앉고 싶지만 이미 사람들이 앉아 있다. 도시라는 욕망의 경기장을 벗어나 고요한 수변에서 차를 마시며 모처럼 자연을 만끽하는 사람의 행복이여! 행복이 아니라 고독이면 어떤가. 물가에선 ‘나’를 바라보기 좋다. 저 투명한 물빛처럼 나도 한때 순수했다고, 내 안에도 물이 있어 눈물도 많아 슬프다고, 저 무심한 수면에 물살을 일으키는 실바람은 어디로 가며 나는 흘러 어디로 가는가, 라고 요모조모 쓸모 있는 상념을 굴려볼 만한 물가이지 않은가. 그러라고 안도 다다오가 워터 가든을 설계했다. 그의 건축적 오브제는 물, 햇빛, 바람 등 자연의 질료들이다. 그의 정신적 테마는 관조(觀照) 혹은 명상이다. 자연을 불러들인 건축으로 사람의 오감과 내면을 일깨우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일컬어 노상 하는 말들의 요점이 그렇다. ‘뮤지엄 산’이 완성됐을 때 그는 “그저 조용한 상자 같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술회했다. “사람들 모두가 자연과 예술에 대한 감성이 풍부해져,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도 썼다. 본관 복도로 들어서자 조명부터 침침해 구미에 맞다. 미술관들의 과한 조명에 나는 일쑤 김새더라. 인공조명은 안도 다다오의 자연주의에 위배된다. 가급적 자제! 그는 집요하게 자연의 빛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였다. 복도 벽면의 상부와 하부에 낸 창으로 빛이 들이치게 했다. 천장을 뻥 뚫어 빛과 함께 하늘을 수용한 전시실도 있다. 노출 콘크리트 벽과 기둥, 기하학적 선형, 번뜩이는 예각 구조물, 텅 빈 중정(中庭)…. 그의 건축적 키워드를 이루는 형태와 기법이 거대한 미술관의 세부에서 깨알처럼 구현돼 요동친다. 거장들의 작품 번갈아 전시 아이들은 천진해 이 웅장하고 복잡한 미술관에서 ‘비밀의 성’(城)을 본다. 상상을 펼쳐서다. 어른들은 압도될 테다. 상상을 잃어서다. 예술이 위대한 건 상상력의 거친 날개로 신과 맞먹으려 비상한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상상력 외에 자유정신의 높이, 자연을 읽는 섬려한 안목,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무한한 존중. 그런 게 안도 다다오의 건축세계를 가능케 했을 터인데, 햐, 그는 말하길 ‘창의적 체력’이야말로 개중에 관건이라 했다. 창의적 체력이란 건강한 몸뚱이의 에너지를 말한다. 79세 노인인 그는 오늘 아침에도 들입다 뛰었을 게 틀림없다. 흥미로운 유형의 인간이지 싶다. 그에겐 세상을 달관한 시늉이 없어 미덥다. ‘목숨을 건 강인한 도전 정신’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적 건축을 추구하는 리얼리즘과 적당한 금욕 추구도 멋있다. 뮤지엄 산의 건축미를 즐기기 위해선 안도 다다오의 이러한 성향들을 참고하는 게 좋겠다. 뮤지엄의 많은 전시실 가운데 인기를 누리는 공간을 볼까? 페이퍼 갤러리. 이곳은 종이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는 국내 최초의 종이 전문 박물관이다. 종이 관련 국보와 보물, 진귀한 유물과 공예품을 전시한다. 약하디약한 게 종이이지만 강하디강한 게 또한 종이. 인류의 역사는 종이의 발명과 함께 진보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이기심으로 살고 종이는 이타심으로 존재한다. 아낌없이 나를 내주길 운명으로 삼은 종이이니 이미 득도했다. 페이퍼 갤러리에 머문 시간은 ‘종이부처’와 만난 추억을 안겨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종이 재료로 쓴 파피루스도 여기에 있다. 유리온실 안에서 억새와 비슷한 파피루스가 푸르게 자란다. 순전히 파피루스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는 관람객도 있다. 청조갤러리는 뮤지엄 산이 소장한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이쾌대 등 거장들의 작품을 번갈아 상설 전시한다. 매년 두 차례 기획전도 열린다. 현재 ‘회화와 서사’ 전이 진행 중이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위해서는 특별히 독립공간을 마련했다. ‘백남준 홀’로 작품 ‘커뮤니케이션 타워’를 전시했다. 전깃줄을 뭉쳐 만든 타워 형태의 기반에 TV와 민속탈을 주렁주렁 매단 작품. 이게 뭔가? 현대와 전통의 통섭? 문명 굿판? 자화상? 어떻게 봐도 답일 게다. 엿장수 맘대로! 그냥 그렇게 내가 느끼는 대로 보고 즐기면 일단 그만이지 않을까. 현미경을 들이대고 종일 초파리의 겨드랑이 털 개수를 세는 곤충 학자처럼 골똘히 미술작품을 파고들 일 아니다. 궁리를 너무 하면 왜곡이 쉽고, 생각을 너무 조이면 좁아진다. 백남준이 금언을 설했다. “옷도 헐렁하고, 생각도 헐렁하고, 행동도 헐렁헐렁, 헐렁이가 일을 낸다구. 진짜 예술가는 헐렁이야!” 삶도 예술도 틀을 만들면 갇힌다는 얘기이겠다. 예술의 헐거운 정신을 보는 게 작품 감상법이라 들어도 무방하다. 백남준은 노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때 더듬더듬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중얼거림은 뜻밖에도 쓸쓸한 것이었다. “신은 참 불공평해. 내가 왜 쓰러져야 하나?” 아주 특별한 두 곳 마침내 자문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의 마음이란 물결처럼 요동치기 쉬운 것. 이걸 어떻게 다잡아야 할까. 뮤지엄 산에선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뮤지엄 내·외부 공간에 있는 미술작품 감상 자체가 명상적이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명상 체험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 두 곳이 있다. 제임스 터렐 전시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은 ‘빛의 예술가’로 세계에 알려진 작가다. 화가라면 당연히 ‘빛’과 무관할 수 없다. 빛을 탐구하고 묘사하는 게 화가의 본분이니까. 그러나 제임스 터렐의 작업은 많이 다르다. 그는 빛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빛을 ‘사용해’ 작품을 만든다. 일정한 공간에 빛을 집어넣으면, 즉 빛과 공간이 조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관한 오랜 실험 끝에 그는 놀랄 만한 ‘빛의 아트’를 정립했다. 터렐의 작품은 빛과 공간, 그리고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프로그램에 의해 세밀하게 조정된 자연광이나 인공광을 공간에 투입, 작품을 완성한다. 다시 말해 공간이라는 캔버스에 빛이라는 물감을 투사, 다양한 테마를 신비스럽게 풀어낸다. 터렐 전시관에서 관객은 네 가지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 가장 기이한(?) 작품은 간츠펠트(Ganzfeld, ‘완전한 영역’이라는 뜻)로 동굴 형태의 공간에 50여 종의 LED 빛을 순차적으로 살포하면서 작업을 진행한다. 이 작업의 목적은 관객에게 착시를 경험하도록 하는 데 있다. 동굴 속에 들어간 관객은 형언하기 어려운 신비와 환영에 즉각적으로 빠져들고 만다. 예컨대 공간 가득 짙은 안개가 끼고, 좁았던 공간이 무한히 확장된다. 이 돌연한 환각에 관객은 신비감과 황홀감 또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작업 종료 뒤, 빛이 보여준 강렬한 환상의 의미를 자문하기에 이른다. 여기서부터는 명상이다. 내가 빛을 보고 살았다, 하지만 빛이 보여준 게 참일까? 삶과 세상은 허상이지 않을까? 남에게 나는 허상으로 비치지 않을까? 이 일련의 의식 흐름을 통해 마침내 묻는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 명상관 지난해, 뮤지엄 산 개관 5주년 기념으로 개설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만든 돔 형태의 건물이다. 바닥에서 천장으로 길게 이어지며 초승달 모양으로 뚫린 틈새로 하늘이 보이고 빛이 들이친다. 쉼 명상, 여유 명상, 싱잉볼 명상 등을 전문가가 도와준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입소문이 나 참가자가 많다. 안도 다다오는 다음처럼 명상관의 의도를 피력했다. “태양의 움직임과 함께하는 공간에서의 명상으로, 자연과 우주를 만나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터렐 전시관과 마찬가지로 명상관을 이용하려면 별도의 입장권을 사야 한다.
- 2020-05-1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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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마무리를 생각하며
- 올해 여든일곱 살이신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이상하다는 연락이 왔다. 가슴 부위가 답답하다고 하신다. 며칠 전 ‘혈관이 막히거나 터졌을 때 발생하는 병’에 관한 방송을 우연히 봤었다. 그래서인지 심장 부근의 혈관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예감이 들었다. 아버지를 모시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코로나19’로 인해 병원의 풍경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외부와의 통로를 한 곳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출입구 앞에서 간단한 신분 작성과 체온 검사, 최근 이동 경로와 마스크 착용 여부, 손 소독 등을 확인받은 후 병원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됐다. 이렇게 조치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누구도 불평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정말 멋진 시민의식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몇 가지 검사를 한 결과 예상했던 대로 심장 쪽 동맥의 혈관이 좁아지는 부위가 두 곳 발견되었다. 좁아진 혈관 부위를 넓혀서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기 위한 스텐트 삽입 수술을 받으셔야 했다.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버지 얼굴을 보았다. 해가 다르게 변하신 얼굴에 가슴이 미어졌다. 아버지를 향한 연민의 정이 샘처럼 솟아났다. 수술실 앞 의자에 앉아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지금 아버지의 모습이 몇 년 뒤 내 모습인데... 생로병사는 인간의 삶을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틀인데... 인간에게 늙는다는 것은 생체의 변화이자 물질대사가 원활하지 않은 것뿐이지... 단지, 운동의 속도가 느려지고 행위의 빈도가 줄어들 뿐인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의 시간이라는 마지막 순간을 향해 가는 여정을 사는 것이고 그것이 곧 인생인데...’ 생각은 이어지고 이어져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이반일리치의 죽음'이 떠올랐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절망에 빠진 이반일리치는 자기의 죽음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인정했지만,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과정을 평생 삶과 죽음의 문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톨스토이가 실감 나게 글로 표현하였다. 끝없는 절망의 늪에서 죽어가던 이반일리치는 “용서해줘”라고 말하는 순간 빛을 보게 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아들인다. 기적 같은 축복으로 세상에 태어난 인간에게 죽음이란 종말, 종식 즉 의미가 없어지는 끝을 말한다. 죽음이라는 끝은 자신이 사는 시간과 공간에서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본인에게는 생명의 기능이 멈추는 것이며 모든 계획과 삶이 끝나는 현상이다. 타인에게는 존재에서 무존재로 떠남으로써 슬픔을 느끼게 하는 것이 죽음이다. 하지만 진정 죽음이 끝인지 새로운 시작인지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오직 죽음만이 확실할 뿐이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와 성인들이 아름다운 마무리, 죽음을 통해 완성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을 이야기했다.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실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회한과 가책이 생기지 않도록 나를 추슬러야 할 거 같다. 아버지가 하실 마지막 말씀이 “용서해줘” 가 아니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사랑한다.”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퇴원을 위해 병원비 계산서를 받아 본 후 나는 깜짝 놀랐다. 진료비 총액이 930만 원인데, 환자 부담금은 45만 원 정도 나왔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원무과에 다시 확인하니 스텐트 삽입 3개까지 의료보험 적용대상 항목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의료 시스템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서구의 나라들에 비해 얼마나 멋진 나라임을 새삼 느꼈다. 퇴원 후 부모님 집으로 두 분을 모셔다 드리는 차 안에서 나 역시 늙어가는 처지에서 내 삶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어떻게 나이를 먹어갈 것인가?’ 몇 가지 방향을 정리해 보았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면서 살자(슬픔과 고통도 견뎌내는 삶을).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가장 중요한 것을 늦기 전에 당겨서 실천하자. 죽는 날 까지 만나서 공감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만남을 가지자(남 이야기나 잘난 척하는 만남 말고). 진심과 배려를 갖춘 자세로 양보하고 베풀면서 젊은 세대의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되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1번의 선율이 들렸다. 며칠 동안의 긴장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아파트 계단에 발이 걸려 기우뚱거리는 아버지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이~ 아버지 조심하셔야죠. 계단에서는 발도 좀 높이 들고....” 순간적으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내 목소리가 귀에서 맴맴 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 얼굴이 겹쳐졌다.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 2020-04-2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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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움이 있는 한, 젊음은 ‘현재진행형’
- “배움을 그만둔 사람은 20세든 80세든 늙은 것이다. 계속 배우는 사람은 언제나 젊다.” 자동차 왕으로 불리는 ‘포드’의 창립자 헨리 포드가 남긴 말이다. 또 나이와 무관하게 배움을 즐기는 시니어들은 말한다. “지금 공부가 진정한 인생 공부”라고. 그러니, 백발이 성성해도 배움이 마르지 않는다면, 진정한 젊음은 언제나 ‘현재’에 머무를 것이다. 도움말 박미경 서울자유시민대학 운영팀장 자료 제공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학업이나 취업을 위해 지식을 쌓던 젊은 시절의 공부와는 다르게, 중년 이후의 공부는 주로 지혜를 얻고 삶을 성찰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고대 철학자 루키우스 세네카는 “지혜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자만이 진정한 여가를 즐길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살아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중장년 시기의 배움은 그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일상의 활력과 생기를 부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길어진 수명으로 ‘평생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지역마다, 기관마다 성인 학습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대학 평생교육원, 지자체 문화원 및 동사무소, 백화점 문화센터 등 곳곳에 포진한 교육장을 들여다보면 그중 핵심이 되는 연령층은 50대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울러 서울시50플러스캠퍼스 및 센터, 모두의학교(평생교육기관) 등 시니어 대상 학습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하는 기관들도 주목받고 있다. 배움으로 달래는 노년의 사춘기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서울자유시민대학’(서울시 평생학습 플랫폼)의 경우 인문학, 사회경제학, 미래학 등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는데, 수강생 중 70%가량이 50대 이상 중장년층이다. 또 그중 38%는 퇴직자다. 이들은 중장년기의 질풍노도를 주로 인문학, 철학 등 심도 있는 자기 공부를 통해 성찰하며 다독인다. 아울러 젊은 세대와 함께 교류하고 학습하며 긍정적인 동기부여도 얻고 있다. 박미경 서울자유시민대학 운영팀장은 “모든 수업은 시니어뿐만 아니라 20~30대도 함께한다. 세대 간 갈등 없이 ‘배움’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서로 기분 좋은 자극을 얻으며 귀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면서 “수업과 연관해 ‘시민연구회’도 조직하는데, 구성원은 20대부터 70대까지 아우른다. 이들은 하나의 공유 콘텐츠를 중심으로 세대를 초월한 배움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 시니어의 스마트 스터디 박 팀장은 “인문학, 역사학 강좌는 시니어들에게 인기가 높다”면서 “최근에는 미래학이나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분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중장년이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은 서울자유시민대학뿐만 아니라, 타 교육기관에서도 마찬가지. 커리큘럼만 살펴보더라도 문해 교육이나 신체놀이활동 등에 머물렀던 과거에 비해 최근에는 드론이나 3D프린터 입문, 유튜브 크리에이터 과정 등 젊은 세대의 트렌드와도 괴리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액티브 시니어의 인터넷, 스마트폰 활용 능력이 증대하고, 관련 학습에 대한 욕구도 자연스레 높아진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2019 서울시민 평생학습 참여 실태조사’에 따르면, 55~64세 중장년층의 경우 인쇄매체나 도서관 등을 이용하기보다, 컴퓨터나 인터넷을 활용해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습득한다는 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 2020-04-2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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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몬트 숲 속에서 산 스무 해의 기록”
- 시대를 앞서간 명사들의 삶과 명작 속에는 주저하지 않고 멈추지 않았던 사유와 실천이 있다.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사랑과 우정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서 인생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이번 호에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온몸으로 살았던 헬렌과 스코트 니어링을 소개한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봤을 바이블 같은 책이 있다. 바로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과 스코트 니어링(Scott Nearing) 부부가 쓴 ‘조화로운 삶’(Living the Good Life)이다. 1930년대 초 뉴욕을 떠나 시골 버몬트의 한 낡은 농가에서 살았던 20년간의 일상을 기록한 이 책은, 생태적 삶을 실천하며 욕심 없이 사는 모습을 솔직하게 그려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전 세계가 경제공황의 늪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자” 스코트 니어링은 188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동 노동의 착취와 전쟁을 반대하다가 강단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그는 경제학자로서 왕성한 저술활동을 펼치며 존경받던 대학 교수였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대학 측과 마찰을 빚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은 무난하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실천적 지식인이 되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결국 해임 통보를 받고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후 주류 사회의 배척이 이어지면서 강연은 물론 언론 매체에 글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 여파로 첫 번째 아내와도 헤어지고 자녀들까지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헬렌을 만난 건 그 무렵. 스코트의 나이 45세, 그녀의 나이 24세 때였다. 한때 인도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기도 했던 헬렌은 1904년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예술과 명상과 우주 질서에 관심이 많고 자유분방했던 그녀는 1928년 스코트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새로운 삶의 길로 들어선 건 스코트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고자 했다. 그러나 직장도 잃고 생계수단마저 막혀버린 스코트에게는 당장 먹고사는 일이 절박한 문제였다. 미친 듯이 서두르며 속도를 내는 세상에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경제적 독립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답은 자급자족밖에 없었다. 그들은 도시를 떠나기로 했다. 시골 버몬트로 이사한 뒤 거칠고 쓸모없어 보이는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손수 살아갈 집을 지었다. 돈을 벌기 위해 애쓰지 않았으나 그때그때 필요한 현금은 단풍나무 수액을 채취해 시럽과 설탕을 만들어 팔아 마련했다.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양식이 마련되면 일도 하지 않았다. 대신 독서와 명상, 여행 등을 하며 여가시간을 즐겼다. 그러면서도 오늘 할일을 내일로 미루는 게으름은 철저히 경계했다. 두 사람이 쓴 ‘조화로운 삶’에는 당시의 일상들이 다음과 같이 묘사돼 있다. “우리는 할일을 했고, 그 일을 즐겼다. 충분한 자유시간을 가졌으며, 그 시간을 누리고 즐겼다. 먹고살기 위한 노동을 할 때는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했다. 그렇지만 결코 죽기 살기로 일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더 많이 일했다고 기뻐하지도 않았다.” 스코트 니어링의 유언 헬렌과 스코트는 버몬트에 개발 붐이 불자 1952년, 몇십 배로 가격이 오른 땅을 대부분 마을에 기부하고 떠났다. 새로운 삶의 터전은 메인이었다. 그곳에서도 그들의 집은 늘 열려 있었다. 문명에서 물러난 삶을 몇십 년째 살고 있는 이 기이한 부부를 보러 오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고 귀농 붐도 일어났다. 야채, 과일, 곡물로 차린 소박한 밥상을 즐긴 두 사람은 잔병치레 없이 오래도록 건강했다. 90대가 되자 스코트의 육체적 기력은 예전 같지 않았지만 98세에도 강연을 할 정도로 정신만큼은 꼿꼿했다. 그러나 곧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 1983년, 100세를 눈앞에 둔 어느 날 그는 지인들과 마주앉은 자리에서 “나는 더 이상 먹지 않으려 합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고는 음식을 서서히 끊었고 물만 마시다가 7주 후에 세상을 떠났다. 헬렌은 훗날 자서전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통해, “우리는 누워서 병을 앓으며 무력한 삶을 계속 살아갈 필요도 없고, 요양원에서 이루어지는 긴 사멸의 공포를 느낄 필요도 없다”고 강조하면서 “스코트가 단식으로 자기 몸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은 느리고, 품위 있고, 평화롭게 떠나는 방법이자 스스로 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80세 되던 해 썼다는 스코트의 유언은 오늘날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였던 셈이다. 헬렌 니어링도 삶의 마지막을 그렇게 맞이하고 싶어 했지만 그 바람은 이루지 못했다. 1995년, 그녀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91세의 생을 마쳤다. 스코트가 건강할 때 미리 작성해뒀다는 유언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1. 마지막 죽을병이 오면 나는 죽음의 과정이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 - 나는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 -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죽음이 다가왔을 무렵에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 있기를 바란다. - 나는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 그러므로 죽음이 다가오면 나는 음식을 끊고, 할 수 있으면 마찬가지로 마시는 것도 끊기를 바란다. 2.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어떤 진정제,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없다. 3. 나는 되도록 빠르고 조용하게 가고 싶다. - 따라서 주사, 심장충격, 강제급식, 산소주입 또는 수혈을 바라지 않는다. - 회한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리를 함께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 위엄, 이해, 기쁨과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나누기 바란다. - 죽음은 광대한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느 경우이든 환영해야 한다.
- 2020-03-0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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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의 족보에 오른 실험적 사랑
-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새해 아침, 한 중견 시인의 시집 제목에 마음이 출렁였다. “무슨 끝이 있나요”라는 물음이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일찍이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인간의 성찰 없는 사랑을 비판하며 “오늘날의 사랑 담론은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해관계’만 작동하는, 흔해빠진 결판의 스토리만 분분한 탓이다. 세기의 족보에 기록된 저 유명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사랑은 어땠을까. 자기 존재에 대한 결사항전의 나날이 아니었다면 진즉 서로의 손을 놔버렸을 것이다. 51년간 유지된 계약결혼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 20세기의 프랑스 최고 지성 커플로 불리는 이름이다. 규정된 인간이 아닌 행동하는 주체로서 살려고 노력했던 두 사람은 정식 결혼을 하지 않은 채 평생 연인이자 동지적 관계를 유지했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의 관계가 내 인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성과였다”고 말했고,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에 대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 “나의 검열관” 등으로 표현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만난 건 1929년. 당시 그의 나이는 24세, 그녀는 그보다 세 살 어렸다. 보부아르는 배움에 대한 호기심이 남다른 모범생이었다. 한마디로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인이었다. 반면 사르트르는 160cm도 안 되는 작달막한 키에 한쪽 눈은 시력을 거의 잃은 사시(斜視)였다. 첫인상은 쉽게 호감이 안 가는 외모였지만 그는 해박한 지식과 유머로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요즘 말로 뇌섹남이었다. 어느 날, 밤새 논쟁을 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가 완벽한 대화 상대자임을 알게 됐다. 지적 반려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자신들의 운명을 동시에 꿰뚫어본 것이다. 실제로 보부아르는 아무도 말 걸어오지 않는 상태를 죽음으로 봤다. 사르트르가 죽자 “더 이상 그와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매우 슬퍼했다. 이들이 2년간의 계약결혼을 시작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건 까다로운 철학교수 자격시험에서 각각 수석(사르트르)과 차석(보부아르)으로 합격하고 나서였다. 그 후 둘 사이의 계약은 51년간 파기되지 않았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2년 동안은 함께 살면서 둘 중 누구도 자유를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고, 그 후에는 각자의 길을 가며 자유를 누리되 헤어지지는 말 것. 상대가 찾을 때는 반드시 응해줄 것, 강압과 관습에 방해받지 않는 관계가 될 것, 숨기는 일이 없어야 하며 거짓말도 하지 말 것, 각자 경제적으로 독립할 것.” 전통적인 결혼제도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었던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이 제안을 즉각 받아들였다. 여성의 창조적 본성을 억누르지도 않고 가사노동자로 전락하게 만들지도 않을 이상적 삶의 모델이라고 생각했고, 그를 사랑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훗날 사람들은 두 사람의 특별했던 결혼생활을 관습과 제약에 매이지 않고,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추구한 실험적 사랑이었다고 평가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사르트르가 남긴 이 명언에는,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수많은 선택 앞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르트르와 그의 연인 보부아르도 자신들의 존재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실천하며 살았다. 물론 두 삶에 제3의 인물이 끼어들면서 종종 질투와 분노를 일으키고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끝까지 사랑의 총량을 채워나가며 서로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견지했다. 1970년대 초, 사르트르는 시력을 점점 잃어갔고 더 이상 그가 쓴 글을 아무도 해독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그런데도 1980년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가 떠난 후 그의 고통스러운 말년을 기록한 ‘이별의 의식’을 출간했다. 그리고 6년 뒤 그녀도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전부가 되려고 하지 않았기에 죽을 때까지 함께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사르트르와의 관계에서 더 고독했어야 했다고 고백했다. 호사가들은 이들의 삶에 흠집을 내기 위해 두 사람에게 닥쳤던 위기와 다양한 인물들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를 파헤쳤다. 그러나 사랑의 통념들에 저항하기 위해,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하기 위해, 완전한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 이들이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해야 했는지도 알게 됐다. 사르트르와 잠시 헤어져 있던 그녀는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 누워 있는 사르트르 곁으로 돌아갔다. “사랑하는 남자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삶이에요!”라고 말했던 보부아르는 늘 ‘여인들’이 끊이질 않아 온전히 독차지할 수 없었던 남자와 영원히 함께 있게 된 것이다.
- 2020-01-2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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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를 기다리며 읽을 만한 신간
- ◇ 제2의 직업 (신상진 저ㆍ한스미디어) 커리어컨설턴트인 저자가 적성과 비전에 최적화된 생애 두 번째 직업 찾기 노하우를 소개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수명 연장으로 평생직장과 정년의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다. 60대 이후에도 안정적이고 유익한 노후를 보내려면 제2직업에 대한 고민은 필수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장기적 둔화와 자동화 기술의 발달로 양질의 일자리는 부족한 실정이다.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가치관을 고려하기보단 빠른 취업을 목표로 하는 이가 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경우 이직이나 전직을 위해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일쑤라고 지적한다. 책의 초반부에는 자신의 특성을 분석하고 제2직업을 탐색하는 방법이 담겨 있다. 이어 대표 유형별 직업 특징을 정리하고, 자기주도형 직업인 창업, 창직, 프리랜서에 대해 소개한다. 후반부에서는 주목할 만한 새로운 직업과 성공적인 경력 관리를 위해 염두에 둘 점들을 일러주며, 제2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것을 조언한다. ◇ 심방골 주부의 엄마손 집밥 (심방골 주부 저ㆍ청림Life) 유튜브 구독자 32만, 누적 조회수 6000만 뷰에 빛나는 심방골 주부의 집밥 요리책. 40년 차 주부의 내공을 살려 건강한 식재료로 맛을 낸 엄마표 밥상 비결을 공개한다. 기본 반찬부터 일품요리, 김치까지 간편한 레시피로 풀어냈다. ◇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 웨인 W. 다이어 저ㆍ토네이도) 동기부여 전문가이자 심리학자, 영성가로 알려진 웨인 다이어 박사의 유고작이다. 삶의 현자로 불리는 작가, 철학자 등 다양한 인물의 목소리를 통해 ‘발밑에 있는 죽음’을 기억하라고 강조하며 현재의 순간을 사는 데 집중하도록 한다. ◇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원제 저ㆍ불광출판사) 2011년부터 블로그와 SNS에 수행기를 올리며 신선한 반향을 일으킨 원제 스님의 글 모음집이다. 수행은 곧 수많은 물음을 열어젖히는 과정이라 강조하며 저자는 끊임없는 갈등과 성찰을 통해 ‘알 수 없는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 고양이와 할머니 (전형준 저ㆍ북폴리오) 길고양이와 할머니들의 교감을 그린 포토 에세이다. 저자가 5년 넘게 부산 곳곳에서 촬영한 수많은 길고양이의 사진들이 수록돼 있다. 또 투박하지만 정겨운 부산 할머니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어우러져 독자들에게 가슴 따뜻한 위로를 선사한다.
- 2019-12-04 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