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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주 아주대 총장 '연결의 시대'를 말하다
- 과거엔 필요한 지식은 전수조사해 모조리 공부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새로운 지식이 업데이트되는 요즘, 박형주(朴炯柱·54)아주대 총장은 지식의 시대를 넘어 통찰의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방대한 정보 중에서 유의미한 결론을 끄집어내고 취사선택하는 통찰력이 중요하다는 것. 나아가 이러한 통찰의 시대를 지나 ‘연결의 시대’가 다가오리라 예측했다. 그는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닌 ‘잘 배우는 사람’이 살아남는 미래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고’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박 총장은 ‘연결의 시대’에는 각종 전문지식으로 무장했다는 자신감보다는 살아가며 그때그때 필요한 지식을 학습하는 유연함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런 점에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보편적인 사람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책을 통해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두고 어른 세대가 함께 고민해보길 바랐어요. 우리가 젊은 시절엔 대학만 나오면 어느 정도 취업이 보장됐고,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할 수 있었죠. 이제는 학교에서 배운 전공만으로 평생 먹고 사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요. 뭐든 금세 옛 지식이 되어버리거든요. 때문에 전처럼 한 우물 파는 건 무모한 거예요. 요즘은 기업에서도 특정 부서가 필요성이 적어지면서 축소되거나 완전 새로운 분야로 대치되기도 하죠. 다양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들을 연결할 줄 알아야 자기 분야가 대세에서 물러나도 다른 분야로 이동이 가능해집니다.” 우리 시대 중장년의 경우 수십 년을 한 분야에 종사하다 은퇴한 경우가 적지 않다. 박 총장의 말대로라면, 100세 시대 노후준비를 위해 재취업을 고민하는 이들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인생 이모작, 삼모작이라는 말들 많이 하잖아요. 어떤 일을 몇십 년 해왔는데 그 분야가 예전보다 덜 중요해지거나, 파이가 적어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합니다. 예전처럼 ‘내가 하던 일 평생 하다가 은퇴할 거야’라는 생각이 이젠 안 통하는 거예요. 결국 원하지 않더라도 커리어 체인지는 앞으로 많은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나겠죠. 과거보다 대학 평생교육원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기존 취미 개념의 문화교양 강좌에서 제2직업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진입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해요. 최근 아주대학교를 포함한 많은 대학에서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꼰대로부터 탈피하는 대화의 프레임 소위 옛날 방식으로 젊은 사람에게 고리타분한 말을 하는 시니어를 일컬어 ‘꼰대’라고 부른다. 박 총장은 이러한 꼰대 마인드는 현시대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경험이나 직관에 따라 충고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앞두고 있을 때, 본인들의 젊은 시절 경험을 토대로 조언해요. 가령 무작정 공부 잘하면 의대 가라고 하잖아요. 앞으로는 원격 의료기술 등의 발달로 예전보다 병원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 겁니다. 물론 병원 방문자가 줄어든다고 의사가 사라진다는 말은 아녜요. 그만큼 연구를 하는 의사가 늘어날 거라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하루에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를 유능하다 하지만, 미래에는 치료법을 개발하거나 환자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능력이 의사의 소양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이렇게 계속 직업의 속성과 내용이 바뀌고 있죠. 아직 어린 자녀들이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려면 10년, 15년 뒤인데 직관만으로 조언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박 총장은 대학 진학이나 취업에 대해 자녀와 의논할 때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부모 세대의 조언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사유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끊임없는 사유의 과정을 거쳐 어떠한 결론에 다다르는, 즉 합리적 사유의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데이터를 통해 결과를 끄집어내는 건 모든 세대에게 통하는 방식이에요. 또, 서로에게 접점이 생기는 유일한 방법이죠. 이러한 프레임을 통해 세대 간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기본 데이터가 달라졌는데도 여전히 과거의 데이터를 갖고 대화를 하면 소통이 안 되는 거죠.” 박 총장은 기성세대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실수해도 괜찮다’는 문화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프랑스 교육을 모범사례로 들었다. “프랑스식 수능 ‘바칼로레아’는 나폴레옹 시대 때 만들어져 200년이 넘은 제도인데, 100% 서술형 평가입니다. 답이 틀리더라도 풀이 과정에서 부분 점수를 주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시험 문제에 접근할 수 있어요. 그에 반해 우리는 객관식, 단답형 평가이기 때문에 모험을 했다가 실수로 답이 틀리면 손해를 봐요. 즉, 모험이 리워드를 주는 게 아니라 패널티를 주는 셈이죠. 겉으론 모험심 강한 아이들로 기른다고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은 거예요.” 그는 프랑스의 교육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이 한 가지 더 있다고 했다. 바로 12학년(고등학교 3학년) 때 철학 과목을 가르치는 방침이었다. “프랑스는 대학 진학률이 낮은 편이라 대부분 학생에겐 12학년이 마지막 교육 과정이에요. 그때 철학을 가르치죠. 그렇게 중요한 과목이라면 왜 1학년 때부터 진작 가르치지 않는지 의아했는데, 그 이유를 들으니 납득이 가더군요. 12학년이 되기 전까지 아이들은 한국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수학, 과학, 역사 등 정규 수업 과정을 거치죠. 공부하다가 어려우면 좌절도 하고, 내가 이걸 왜 배워야 하냐며 짜증도 내요. 그 고달픈 시간의 끝에 피니싱터치, 즉 화룡점정을 철학이 찍어줘요. 철학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과목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그것이 우리 세계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게 되죠. 배움의 이유를 깨닫게 해주는 겁니다.” 유연성으로 키우는 문제해결력 지난 과정을 겪기 전에는 철학을 배워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끝나기 때문에 미리 가르치지 않는단다. 박 총장은 프랑스 아이들이 10여 년 동안 배운 것들을 철학 과목을 통해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한다고 표현했다. 이처럼 특별한 계기나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것에도 관심을 두다 보면 언젠가 그것들이 꿰어지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그는 여러 분야를 연결하는 능력과,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유연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살다 보면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죠. 난제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분야의 방식을 가져오는 겁니다. 이 분야에서는 어렵지만 엉뚱한 분야에서는 쉬운 해결책이 있기도 해요. 여러 영역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있어야 재빨리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연성은 다양한 분야에 대해 깊지 않더라도 꾸준하게 호기심을 유지하는 데서 길러져요. 분야를 편식하지 않고 잡독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인터뷰 내내 “여러 우물을 파야 한다”고 강조한 박 총장. 수학자로서 한 우물을 파고 있는 듯 보이는 그가 현재 파고 있는 또 다른 우물은 무엇일까? “물론 수학에 대한 사랑은 유지하겠지만, 시간이 주어진다면 빅 데이터나 인공지능 문제에 기여할 기회를 찾고 싶어요. 실제 세상의 많은 일을 해결하는 데 수학이 유용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의사들과 함께 의료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도 하죠. 수학과 유관하면서도 다른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참여하다 보니 제가 하는 일의 영역이 더 넓어지고 있다는 걸 느껴요. 그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연결인데, 앞으로도 더 활발하게 여러 우물을 파볼 계획입니다.”
- 2018-11-2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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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트로에는 추억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 LP플레이어, 검정 교복, 불량 식품, 필름 카메라, 만화 잡지 등 ‘레트로(retro)’는 과거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문화적 소품이나 콘텐츠를 지칭한다. 예능과 다큐는 물론 영화, 드라마에서도 이런 소품이나 콘텐츠를 마치 레트로의 본질적인 것인 양 부각한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지나치게 지엽적이다. 그것들 사이를 관통하고 있는 보편적인 코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사치일 수도 있겠다. 레트로가 제대로 복권(復權)된 것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복고는 온갖 비난과 폄하를 당해왔다. 특히 고성장기에는 무조건 앞으로 전진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한때 레트로는 단순 복고로 여겨져 세 가지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분위기가 남아 있다. 이런 시선을 밟고 나가야 레트로의 본질에 닿을 것이다. 우선 문화 지체로 보는 시선이 있었다. 복고는 취향과 선택이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지 못하다고 진단되었다. 복고 소재를 다루는 문화 콘텐츠의 경우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답습하고 우려먹기 식으로 제작한다고 비판했다. 다른 하나는 현실 도피로 보는 시선이었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과거로 퇴행한다는 비판이었다. 이 때문에 정신병리학적 측면의 진단이 내려지기도 했다. 미래 전망이 불투명할 때 매번 복고 열풍이 일어난다는 규정이었다. 마지막은 복고를 일시적 트렌드로 보는 시선이었다. 그래서 복고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묻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복고는 항구적이다. 다만 시기와 대상이 달라질 뿐이다. 1970~80년대 문화가 1990년대로 이동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실제로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줬다. 얼마 안 있으면 2000년대가 레트로의 시공간으로 등장할 것이다. 레트로에는 단순한 추억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본질적인 맥락은 복고풍에 있다. 즉 복고 스타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레트로가 단순히 옛날에 사용하거나 즐겼던 대상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옛날에 쓰던 물건이나 즐기던 문화 활동이 다시 등장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똑같은 음악이나 옷, 가구가 아닌 과거의 스타일을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다. 옛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차별화된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젊은 세대에 레트로는 재발견의 대상이다. 필름 카메라와 현상 사진은 새롭게 재발견되어 개인 취향이 된다. 그런데 필름 카메라는 단순히 옛날에 쓰던 물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디지털의 장점을 결합시켜 새로운 디자인을 보여준다. 궁궐이나 한옥마을에서 입는 한복도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젊은 세대가 입는 한복은 기성세대가 입던 한복보다 더 화려하고 블링블링하다. 중년 세대에게 레트로는 추억이다. 그것도 아름답고 애틋함을 자아내게 만드는 황금 같은 기억들을 담고 있다. 친숙한 것들은 인지심리학적으로 편안함을 준다.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지 않아도 되어 뇌의 활동이 거의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과거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시각이다. 레트로는 자기진화를 하는 경향이 있다. 중년 이후의 세대가 복고에 관심을 갖는 것은 청춘기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도 젊게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그래서 과거의 시간을 데려와 현재의 시간과 융합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라도 추억과 향수의 대상은 재창조되어야 한다. 젊은 세대의 재발견과 중년 세대의 추억을 변증법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뉴트로(new-tro)다. 이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향유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과거 스타일로 보이지만,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져 기성 세대에게는 익숙한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이러한 뉴트로 제품은 새 것이면서도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빈티지한 느낌을 하나의 스타일로 가전제품, 가구, 포장지 디자인에 적용하는 것이 그 예라 할 수가 있다. 이러한 유행, 즉 뉴트로 트렌드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물품이나 콘텐츠에서만 생겨나는 게 아니다. 뭔가 보편적 가치와 매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누구라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가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뉴트로’라는 신조어가 생겨나지 않았을 때는 리메이크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일반 생활용품에만 적용되지 않았을 뿐이다. 영화나 음악작품의 리메이크는 과거의 콘텐츠를 새로운 감각에 맞게 재창작하는 것이다. 이때 레트로는 새로운 창조의 수원지 역할을 한다. 세대 교감과 통합의 매개 역할도 한다. ‘불후의 명곡’이나 ‘히든 싱어’에 나오는 노래들은 과거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작품으로 자리매김됐다. 이것들은 더 이상 낡은 것이 아니고 새로운 유행의 시작이다. 중년 세대만이 친숙하게 생각할 것 같은 복고는 레트로를 통해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낸다. 레트로는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경험의 문을 열어준다. 또한 가벼운 트렌드가 아닌 깊이와 품격을 지닌 고급문화를 알게 해준다. 신구 세대의 만남이 레트로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세대 간의 문화적 갈등은 줄고 미래지향적 흐름이 존재하게 된다. 레트로는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 끊임없는 콘텐츠로 다시 태어난다. 그것은 분명 젊은 세대의 감각과 융합 기술이 있기에 가능하다. 다만, 한국의 레트로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형성, 창조되지 않는 면이 있다. 대중매체와 대기업이 대형 마케팅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레트로의 창조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유명 장소, 유행 콘텐츠를 따라 하거나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레트로 스타일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레트로의 생명력이 세대 간을 가로질러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다.
- 2018-10-2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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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보다 나은 삶 향해” 너싱홈그린힐
- 모든 분야에는 기존의 길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보통 이들을 우리는 개척자라고 부르는데 국내의 요양시설에도 이런 개척자는 존재한다. 너싱홈그린힐도 그중 하나. 국내에서 간호사가 설립한 노인의료복지시설 중 1세대다. 정책에 따라 움직여왔다기보다 제도를 이끌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게 느껴질 정도. 너싱홈그린힐을 찾아 노인요양시설의 덕목은 무엇이고, 소비자들이 요양원을 선택할 때 어떤 부분을 확인해야 하는지 알아봤다. 소비자들에겐 너싱홈이란 단어가 생소할 수 있다. 너싱홈(nursing home)은 치매나 중풍 등의 만성질환을 앓아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노인을 돌보는 장기요양기관 중 간호사에 의해 설립되거나 운영되는 기관을 말한다. 국내에선 낯선 개념일 수 있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해외에선 가정집을 개조해 ‘집에서 어른을 모시듯’ 운영되는 소규모 시설도 흔하다. 영국의 너싱홈에서 영감 얻어 너싱홈그린힐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요양원으로 건물을 둘러싼 정원이 인상적이다. 원래는 인근의 가정집을 개조한 작은 규모였지만 이곳으로 옮겨와 증축을 거듭하면서 지금은 65병상 규모가 됐다. 일하는 직원만 130여 명. 너싱홈그린힐의 조혜숙 원장은 1992년 영국 여행 중 현지의 너싱홈을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해보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혔다고 말한다. “1992년 영국으로 여행을 갔는데, 작고 아름다운 소도시 사이사이에 너싱홈들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생각도 못했던 시설이라 기웃거리기만 했는데, 정원에서 쉬고 계시는 어르신들 표정이 너무나 편안해 보이더라고요. 그 무렵 국내 요양시설은 ‘고려장’이라는 모욕까지 받고 있었으니 완전히 대비되는 광경이었죠. 간호사 입장에서 국내에도 내 부모님을 모실 만한 이런 시설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2년 말 노인의료복지시설장 자격에 대한 법률이 완화되면서 국내에서도 너싱홈 설립의 문호가 개방됐고, 이미 실무를 익히며 창업을 준비 중이었던 조 원장은 다음 해 너싱홈그린힐을 설립한다. 그리고 1세대로서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다른 시설과 함께 활약을 시작한다. 너싱홈그린힐이 국내 의료계에서 하나의 모델로 자리 잡은 데에는 조 원장의 논문이 단초가 됐다. 2000년 창업과 함께 진학한 고려대학교 간호대학 박사과정에서 발표한 논문 ‘한국 노인간호요양시설의 질 관리 지표 개발’이 그것.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제도 시행을 준비하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 논문을 주목하고 평가지표 도구개발 위원으로 조 원장을 위촉했다. 조 원장이 국내 요양시설의 모델 개발 과정에서 투영한 이상향이 너싱홈그린힐이라는 결과물로 완성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너싱홈그린힐은 장기요양시설 평가가 시작된 이래 5회 연속 A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너싱홈그린힐의 특징 중 하나는 시설 곳곳에 가득한 꽃과 나무다. 정원만 7가지 종류가 있다. 한 관계자는 “이곳에서 생활하시는 어르신 대부분이 최소 5년에서 10년 이상 함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하면서 “소파나 식탁, 침대를 가능한 한 가정에서 많이 쓰는 목재 제품으로 구성하고, 화초를 많이 키우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배려와 애정 때문인지 이곳의 최장수 어르신은 104세이고, 18년 동안 이 시설을 떠나지 않고 지내는 있는 이도 있다. 용도에 따른 정원이 시설 곳곳에 시설의 내실이나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외형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자녀들이 부모를 시설에 모셨다는 괜한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 중 하나다. 물론 너싱홈그린힐의 공간 구성에는 외적인 요소만 고려된 것은 아니다. 입소자와 가족의 동선, 안전 등을 생각해 공간을 구성했다. 정원만 해도 면회를 위한 정원과 치료정원, 산책을 위한 정원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내부 시설은 이제는 표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유니트 케어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다. 일정 공간 안에서 입소자의 생활이나 치료, 활동이 가능한 구조다. 정원이 65명인 너싱홈그린힐에는 다섯 곳의 거실과 식당이 침실 사이에 존재한다. 평범한 가정에서 식구들이 보통 생활하는 공간이 각자의 방보다 거실이 되는 것처럼, 일정 인원마다 거실과 식당이 마련되어 있어 침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다. 식사도 치료 과정의 일환 대규모 프로그램실 역시 입소자의 동적인 활동을 유도하는 공간으로 쓰인다. 학교 강당 같은 이곳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수업이나 놀이는 인지장애 개선 효과뿐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가는 재미까지 부여한다. 오전에 나와 오후 프로그램을 마칠 때까지 침실 밖에서 지내고, 하루 세끼를 침실 밖에서 먹는다. ‘눕혀놓는’ 열악한 시설들과는 삶의 질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너싱홈그린힐이 갖는 또 하나의 경쟁력에 대해서 직원들은 바로 자신들이라고 평가한다. 한 관계자는 “일했던 다른 시설에 비교하면 입소자당 근무자 수가 월등히 많아 어르신들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큰 경쟁력”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런 환경이 어르신들의 다양한 요구에 모두 응대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주고 결국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너싱홈그린힐의 인력 구성에는 조 원장의 철학이 녹아 있다. “인력이 부족하면 식사도 침상에서 하게 하고, 제공하는 서비스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침상에서 내려와 거실에서 생활하는 것도 재활입니다. 경영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하지만 어르신들의 재활과 서비스를 위해 인력을 충분히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력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노인전문간호사와 호스피스전문간호사 등 숙련된 인력들이 함께 움직인다. 요양보호사와 입소자들 사이에서 젊은 직원들도 눈에 띄는데, 바로 간호대학 실습생들. 너싱홈그린힐이 전국 주요 간호대학의 실습기관으로 지정돼 입소자들이 어떻게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 실습생들이 직접 경험하면서 눈으로 확인한다.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요양원에 비해 비용은 높은 편. 장기요양등급과 관계없이 부담하게 되는 자기부담비용이 4인실은 월 105만 원, 2인실은 135만 원 수준이다 .
- 2018-10-1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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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아직 멀쩡해!
- 친정엄마가 치매판정을 받고 일 년이 넘었다. 그 전에 같은 말을 반복하는 시간단위가 점점 빨라지는 낌새가 있긴 했다. 그래도 ‘우리엄마가 설마’했다. 주변 지인들 부모나 어르신의 치매로 안타까워하는 당사자들의 마음이 그대로 나의 현실이 되었다. 직접 치매환자를 돌보며 경험 했던 같은 교회의 자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자매의 어머니는 ‘어르신놀이방(주간보호센터)’에 다니고 있다. “처음엔 가족들이 엄청 당황스럽죠. 근데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에요. 백세인생이라는데 백세근처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겠어요. 우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연락해서 장기요양등급 신청하고 등급을 받으세요. 등급이 나오면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할 때 85%를 지원받을 수 있어요.” 두 달여의 기간을 두고 나는 엄마를 설득했다. 공단에서 사람이 방문한다는 걸 알렸다. 엄마가 혹시 '어르신놀이방'에 가게 되면 등급이 필요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알겠어. 니가 무슨 말 하는 줄 내가 안다고. 내가 그렇게 정신없는 늙은인 줄 아니? 나 아직 정신 멀쩡해!" 엄마는 공단 얘기만 나오면 왠지 예민했다. '내가 그렇게 바보는 아니다'라든지, '아직은 멀쩡하다'라는 말을 자주했다. 당신도 치매가 어떤 건지 어렴풋 알고 있지만, 지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저항의 다른 표현이었다. "이를 닦아보라구요? 어머, 이런 걸 못하겠어요? 자 이렇게 하면 되죠?" 공단에서 나온 사람이 '어르신~. 침대에서 일어나보실래요?’, ‘이번엔 세수 한번 해 보세요'라고 요구했다. 엄마는 너무나 일상적인 걸 해보라는 공단직원이 하는 말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건 날마다 거르지 않는 생활이기에 엄마의 몸이 먼저 인지하고 있었던 걸까. 그러나 다음 질문에서는 달랐다. "어르신,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글쎄요. 나 팔십 넘었나?" "어르신, 이름이 뭐에요?" "이름요? 음... 이름이 지금 왜 필요해요?" 엄마는 당신의 나이를 우물대며 애매하게 웃었다. 이름을 말해보라고 할 때는 짜증 섞인 말투로 따지듯 말했다. 이름을 모른다고 말하면 스스로 치매를 인정하는 것 같아 버럭 화를 낸 건 아닐지. 직원은 친절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질문하면서 엄마의 상태를 체크했다. 치매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는 시간은 십 여분 정도가 걸렸다. 결과는 한 달 안에 우편으로 배달된단다. 치매 약을 복용 중이고, 병원 의사의 소견을 제출했지만 엄마는 결국 등급을 받지 못했다. 5등급 정도를 기대했던 나는 공단 담당자에게 물었다. 인지가 조금 떨어졌지만 신체적 활동에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등급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등급을 받기위해서 치매어르신이 꼼짝 않고 누워있어야 하는 건지 판정기준이 불만스러웠다. 담당자는 두어 달 후, 기간차이를 두고 다시 재신청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엄마가 언니네 집에 가있는 동안 그 지역(충남 서산)의 공단에 다시 신청 했다. 올해 여름이 오기 전, 엄마는 5등급을 받았다.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시기로 했다. 가끔씩 딸네 집에 바람 쐰다고 오긴 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아흔 살 엄마와의 동거, 어린아이 같은 엄마에게 어른이 필요하다. 난 ‘너그러운’어른이 될 수 있을까.
- 2018-10-1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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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상회'로 기나긴 연휴 나기
- 애초 부모님이 북쪽에 고향을 두고 계셨던 까닭으로 명절이 되어도 어디 갈 곳이 없다. 그저 관성처럼 TV를 통해 남들 귀성행렬을 바라보며 설이나 추석이 되었거니 느끼며 살았다.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지만 올 추석은 유달리 썰렁했다. 유난했던 세계적 자연재해와 경제 침체로 흥이 날 리 없기도 하다. 게다가 명절 연휴만 되면 고향보다 해외로 나가는 유행이 거리를 더욱 한산하게 만들었다. 늘 그래왔듯이 긴 시간 집에만 있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일단 신문에서 추석 연휴 TV채널 일정표부터 챙긴다. 형광펜으로 볼만한 프로그램에 색을 입힌다. 추석이면 늘 나오는 외국인 노래자랑은 식상하기에 주로 영화를 챙겨본다. 예전에 비해 나아진 것이 있다면 홍콩 배우 성룡이 주연한 영화가 자취를 감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잔잔한 예술영화보다는 액션 대작이 추석 안방극장을 차지했다. 취향은 잘 안 맞지만, 공짜인데 어쩌랴. 우선 외국영화에 눈길이 가서 ‘셜록 홈스 시리즈’ 등 몇 편을 골라 본다. 류승완 감독의 2017년 작품 ‘군함도’ 등 소위 블록버스터 몇 편도 관람 대상이었다. 영화 개봉 당시 큰 관심이 없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영화를 보다보니 연휴 절반이 휙 지나갔다. 연휴 3일 째 되던 날 모처럼 소박한 작품을 보게 됐다. 바로 다. 생각해 보니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보려다 놓쳐 아깝다 싶던 작품이다. 노인 중심 영화는 흥행되기 어려워 영화로 만나는 일이 흔치 않은데 ‘쉬리’의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흥미를 끌었던 작품이다. 게다가 tvN의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에 등장했던 두 배우가 나와서 관심 또한 높았다. 그리고 바로 이 영화가 올 연휴 하이라이트가 됐다. 영화는 홀로 사는 성격 괴팍한 노인 김성칠(박근형)과 이웃에 이사 온 예쁜 꽃가게 주인 할머니 임금님(윤여정)의 알콩달콩 로맨스로 진행된다. 온 동네 사람들이 이들의 연애를 응원한다. 거칠고 한 성질 하는 영감은 장수상회 점원으로 일하는데 아무리 사고를 쳐도 해고되지 않는다. 또한 이 동네를 재개발하려 하는데 이 영감의 반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다. 어느 날 이들의 연애는 노인의 기억력 장애로 어려움에 처한다. 이쯤 되면 그렇고 그런 노년의 로맨스에 얽힌 이야기로 치부될 법하다. 그러나 서서히 지루해지려는 그 순간 놀라운 반전이 있다. 알고 보니 이 둘은 원래 부부 사이이고 노인은 장수상회의 주인이었다. 다만 노인의 치매 증상으로 아내와 가족을 알아보지 못 하고 아내가 췌장암 말기에 다다르자 따로 살게 된 것이다. 노인이 비밀 일기장을 통해 자신의 치매증상에 대해 인지하고 다가올 위험에 고뇌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결국 시간이 흘러 어느덧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에 처하고 만다. 아내의 병이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들어갈 때 젊은 시절 불러주었던 노래를 기억해낸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갖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소.” 문득 인간의 존재 양식이 단지 기억력이라는 허약한 기반 위에 세워졌음에 놀란다. 이 영화는 치매의 진행 과정을 보여주기보다 그것이 악화한 후로부터 출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병으로서의 치매가 아닌 기억이 지닌 존재가치를 부각했다. 올 추석의 기억도 추억의 책갈피에 소중히 간직해본다.
- 2018-10-0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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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재산과 노후자금 지키는 세 파수꾼
- 15년 전에 살던 서울 광진구에 있던 아파트를 올 3월에 팔았다. 6월 4일 잔금 수령 일 등도 관계인들 요청으로 5월 말로 당겨 처리하였다. 현직에 있을 때 계약관계 일들, 법률적인 일들을 오래 처리한 경험이 있어 임차인과의 관계, 새 매입자 또는 매입자가 물색한 새 임차인과의 관계 등 복잡한 4자 관계에서 금전 정산일 들도 모두 정리하고 열심히 처리했다. 직접 모든 것들을 확인하며 발로 뛰며 처리했지만 돌아보니 미진한 점들이 많다. 현직에서 주어진 일들에 성실히 임하며 부모 역할도 열심히 한 후, 집 한 채와 일정 금액의 노후자금을 가진 은퇴자들이 본인의 재산과 일정 금액의 현금을 보호하고 활용하는데 내가 겪은 필수적인 몇 가지 정보와 지식은 상당히 유용하리라 생각되고 최소한 방어적으로 조심하도록 권유하고 싶다. 그것들은 질권, 재산세 부과기준일, 채권양도이다. 1 질권 근대사회 및 자본주의는 근대민법의 3대 원칙인 사유재산권(소유권) 절대의 원칙, 계약자유(사적자치의 원칙, 과실(자기)책임의 원칙에 따라 급속도로 발전했다. 물론,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빈부의 격차와 경제적인 공황 등으로 신의성실의 원칙,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이 보완되었다. 이중 소유권 절대의 원칙은 공산주의와 구분되는 큰 기준이거니와 여기에서 용익물권이라는 지상권/지역권/전세권과 담보물권이라는 유치권/질권/저당권이 나온다. 질권은 시계를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는 것 같이 목적물을 유지하는 권리와 우선변제를 받는 권리이다. 시계 대신 임대차보증권/지명채권/주식 등 권리질을 잡을 수도 있다. 광진구에 2004년에 마련한 우리 부부의 새 아파트는 정년을 준비하며 잘 이용했고 3자녀들이 수도권에 적응하는 과정에 잘 사용하였다. 정년 후에도 잘 이용하다가 아내가 맞벌이하는 큰딸 부부의 의 두 아들, 즉 외손자들을 봐 줄 사정이 생겨 용인시로 이사 오면서는 전세(임대차)를 내주었다. 내 집같이 아끼며 사는 세입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 보니 4년 전인 2014년에는, 세입자께서 사업자금이 필요하여 은행으로부터 전세자금 3억 5천만 원을 융자받겠다며 절차상 필요한 소유주의 동의를 요청해 왔다. 동의를 해주겠다고 하니 첫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에 필요한 법적 요건인 질권 설정을 해야 하니 필요 절차와 서류의 동의절차를 요청해 왔다. 그러자고 했더니 먼저, 은행을 돕는 어떤 법무법인이 신원을 확인하며 직원을 용인 집에까지 보내 이런저런 서류에 도장을 받아갔다. 그런 다음 첫 융자은행은 친절한 안내문을 보내주었다. “임차인은 임대차보증금을 담보로 제공하고 저희 은행에서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임대차보증금에 대해서는 본 은행이 임차인보다 먼저 반환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동시에 8가지 경우 발생 시에는 반드시 알려달라는 주의사항들을 안내해 왔다. 이 중에는 매매 등으로 소유권이 변경되는 경우와 다른 금융기관의 전세자금 담보대출을 허락한 경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2년이 지나 전세 계약 기간이 연장되었고 3년이 지나자 임차인께서 이번엔 은행을 갈아타면서 전세자금 융자 이자를 줄이는 융자를 하겠다며 동의를 요청해 왔다. 세입자도 60대여서 이자율을 낮추면 노후자금에 여유가 생길 터여서 또 동의해 줬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은행에선 전화확인만 해오고 사람을 보내어 서류 확인 등의 절차는 밟지 않았다. 아파트가 매매되고 6월 초에 매매 잔금을 받으려는데 임차인께서 5월 말에 두 번째 은행의 융자를 갚아야 하니 임대보증금을 맞춰서 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은행에 확인해 보니 임차인 명의의 융자금이 없다고 했다. 급기야는 첫 은행에 아파트 매매 사실과 그전에 임차인이 타 은행에 변경 융자한 사실을 알리며 임대차(전세)보증금을 아파트 소유자는 누구에게 환급할 의무가 있느냐고 확인했다. 그제야 임차인이 2016년 말에 융자금을 상환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무책임했다. 그리고 기어이 2016년 12월 20일 자로 질권 해지 통지서를 직접 받았다. 은행의 질권 설정 서류엔 2018년 6월 초까지 임대차기간이 명기됐었기에 그래야 법률적인 분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5월 말 임대차(전세)보증금을 돌려주면서 임차인과 두 번째 은행에 같이 가서 해당 융자금을 상환함을 직접 확인했다. 그래야 3억 5천만 원의 질권분쟁에서 벗어나고 아파트 매매에 따른 심적 부담을 개운히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선의로 임차인의 편의를 위해 질권 설정을 동의해 준다 해도 엄청난 법적 책임과 직접 발로 뛰는 확인 일들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을 인지하고 동의해줄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질권 설정 금액의 두 배 이상 금액에 대한 분쟁과 손실 우려가 발생할 수 있겠다. 2 재산세 부과일 기준 광진구 아파트의 매매 전후의 하자보수비에 대한 매매 당사자들과 기존 임차인 및 새 임차인 간의 하자보수 책임과 비용 분담 등 잔잔한 일들을 다 정리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7월 어느 날 해당 아파트에 대한 재산세가 부과됐다. 매매 사실과 5월 말에 잔금 처리된 사실을 관계구청에 알리고 재산세 부과 정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매년 6월 1일 기준으로 재산세 반이 부과되고 9월에 나머지 반이 부과된다고 한다. 우리 부부 아파트의 소유권 변경 등기이전이 6월 1일 이후에 이뤄졌으므로 재산세 부과 정정을 않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9월에 부과되는 것만이라도 새 매입자에게 부과해 달라고 했으나 그것도 6월 1일 기준이라 안 된다고 한다. 근대민법의 3대 원칙 중에 가장 근간이 되는 소유권절대의 원칙에 따르면 소유 없이 재산세를 내는 격이니 고쳐야 한다고 본다. 매년 6월 1일을 기준으로 재산세가 부과되는 것은 다분히 행정편의를 손해를 끼친 것이므로 고쳐져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런 논쟁과 부담에서 벗어나려면 6월 1일 기준으로 재산세가 부과됨을 알고 특약조항에 재산세 납부자를 명기하거나 소유권 이전 의무 일을 합의하면 되리라고 본다. 혹은 매매대금 협상 시 알고 반영하면 될 일이다. 3 채권양도 20여 년 전 단독주택 2층에서 거주할 때 임차인이 1층 몇 칸을 얻어 우유 배달업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사업이 성장일로이더니만 어느 날 전세보증금을 양도하고 우유 회사가 양수인이 되었음을 통보해 왔다. 급기야는 임차인이 이사하겠다고 하면서 전세보증금 반환 준비를 해달라고 해왔다. 채권양도양수 통보를 받은 후 수년이 지나서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법정관리가 되고 회사정리법에 따른 복잡다단한 정리채권 확정의 소송들을 진행하던 때여서 양도채권의 효력을 알고 있었다. 받을 채권, 즉 금전에 대하여 압류, 임시압류, 추심명령, 이전명령 등 소위 법적 보전처분들이 뒤엉켜 있어도 채권양도가 통지된 이후엔 양도된 채권이 가장 효력이 강하여 이후의 보전처분들은 전혀 힘을 못 쓰는 것이었다. 만일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내줬다면 우유 회사에 동일금액을 이중 반환할 법적 의무가 생기는 것을 알았기에 정중히 이해시키고 우유 회사와의 직접정산을 권유했다. 이렇게 질권, 재산세 부과 기준일, 채권양도 세 가지만의 기본 개념과 법적 효력을 잘 알고 구체적인 사례에 대처한다면 젊었을 때 오래도록 애써 모은 각자의 재산과 노후자금은 예기치 않는 손실이나 법적 분쟁을 막을 수 있는 파수꾼이 되리라고 본다.
- 2018-09-0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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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약자가 아니라 노익장으로 살아 가즈아
- 노령기에 접어들면 의욕과 기력이 점점 떨어진다. 노화로 근육위축 현상이 일어나 근육량의 감소로 근력이 떨어져 기력이 쇠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꾸준한 근력 운동으로 이 현상을 지연시켜 활력 넘치는 노익장의 삶을 누릴 수 있다. 노인이 되어 근력운동을 안 할 경우 근육량이 점점 줄어 25% 이상 감소하는 반면 단백질 합성이 잘 안 되며, 빠져나간 근육 자리는 체지방으로 채워진다. 필요한 근육은 줄어들고, 해로운 체지방은 늘어나 건강을 해치게 된다. 근력운동을 하면 근섬유의 일부가 파괴되고, 그것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더 큰 근섬유가 만들어져 근육이 커진다. 따라서 운동 후에는 양질의 단백질 섭취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근육발달에 좋다. 노후 근력운동은 남녀 모두에게 필요하다. 근력운동 시 호흡은 근육수축 시(힘을 쓰는 시점) 숨을 내쉬고, 근육 이완 시(힘을 빼는 시점) 숨을 들이쉰다. 역기를 들 때는 빠르게 들어 올리면서 숨을 내뱉고, 천천히 내리면서 숨을 들이쉰다. 역기를 들 때보다 천천히 내릴 때 운동 효과가 더 크다. 다음의 체중 부하 운동도 힘을 쓸 때는 빠르게 하면서 숨을 내쉬고, 힘을 풀 때는 보다 천천히 하면서 숨을 내쉰다. 근력운동을 매일 하면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 5가지 1 신진 대사량 증가: 기초대사량이 증가하여 체지방의 연소 효과가 커진다. 2 뼈의 강화: 체중 부하 운동이 골밀도를 높여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노화 지연) 3 숙면 유도: 수면의 질을 개선 우리의 건강을 전방위적으로 증진해 준다. 4 뇌 기능향상: 가벼운 인지장애를 앓는 노인들의 인지 기능을 향상한다. 5 스트레스 해소: 세로토닌과 엔도르핀의 분비량을 늘어나 행복감을 높아진다.
- 2018-08-2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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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요리연구가 문성희, 숨심과 밥심으로 존재와 마주하다
- ‘평화가 깃든 밥상’ 시리즈, ‘문성희의 쉽게 만드는 자연식 밥상’ 등을 통해 다양한 자연요리 레시피를 선보여 왔던 문성희(文聖姬·68). 그의 첫 에세이 ‘문성희의 밥과 숨’, 얼핏 소박하면서도 거대한 물음을 줄 것만 같은 제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읽는 내내 삶의 행복과 자유를 좇아 끊임없는 질문과 마주했다. 그러다 답은 결국 제목에서 찾고 만다. 문성희(존재로서의 한 인간), 밥, 숨. 존재 그 자체로서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건 단 세 가지라는 것을 말이다. 일과 관계, 거대한 문명의 소용돌이 안에 매몰돼 허우적거리던 30대. 기쁨보다 고민이 많았고, 기도로 달래보아도 좀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소로의 ‘월든’을 읽고 책 속의 삶을 동경했으나, 자신과 딸아이의 생존이 걸쳐 있는 삶의 터전을 당장 놓아버릴 수 없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내가 되지 못하는 불행 속, 자기주도적 삶을 위해서는 도시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을 둥둥 뜬 마음으로 보낸 뒤에야, 이윽고 중학생 딸의 손을 붙잡고 철마산 오두막으로 향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그토록 갈망하던 삶, 그는 과연 만족스러웠을까? “만족스럽다기보다는 기쁨과 희열이 대단했어요. 많은 것을 버리고 왔음에도 오히려 모든 게 가득 차 있었죠. 산에 와서 여러 실험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세탁기 없이 살아보자는 거였어요.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더군요. 옷이 두 벌이면 된다는 거였죠. 벗으면 당장 빨아야 하니까.(웃음) 세탁기가 있으면 빨래를 계속 쌓아두게 되잖아요. 그렇게 문명에 의존하던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면서 좀 더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었어요.” 생명을 살리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 그는 자신의 삶을 산에 들어오기 전과 후로 나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법을 몰라 한없이 흔들리고 나약했던 존재에서, 삶의 기술을 터득하고 무언가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된 것. 그러나 산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또 다른 고민이 생겨났다. “자연에 살면서 하늘, 바람, 계곡이 있어 행복을 느꼈는데, 결국 이 또한 의존하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어떠한 대상에게서 오는 행복이라면, 문명에 기대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도시든 시골이든 내 존재로서 행복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때쯤 저처럼 살고 싶다며 찾아오는 분도 많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 행복을 찾아 산에서 살 수는 없는 거잖아요. 아, 그럼 도시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대안은 뭘까? 그걸 찾고 싶더라고요.” 산에 오르고 내리는 사이 변화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도 한때 20여 년 요리학원 원장으로 살며 방송, 강연 등을 통해 감각적이고 화려한 요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오랜 경험 끝에 가장 훌륭한 요리는 재료 본연의 생명력으로 자연 그대로의 향과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푸성귀와 생식을 먹으며 점차 몸 세포가 변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고, 비로소 생명을 살리는 음식에 몰두할 수 있었다. “우리의 영혼이 몸 안에 들어 있을 때 휴먼 빙(human-being), 즉 인간이고 삶이죠. 그것이 떠났을 때가 죽음인 건데, 일단 사람의 몸을 갖고 있을 때는 물질을 취하잖아요. 흔히 지수화풍(地水火風)이라고 하는데, 이걸 더 깊이 쪼개면 빛과 진동이죠.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결합해 어떤 생명체가 된 거예요. 내가 마신 공기, 먹은 음식, 내 안의 사유 등과 어우러져 몸이 되고, 우리 영혼은 그 몸과 교감하는 거죠.” 그는 단순히 잘 먹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섭취하는 식재료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인간이 다른 생명 종과 차이 나는 건 생각하는 힘이 있다는 거예요. 그저 동물처럼 먹고 산다면 진화할 수 없다는 얘기죠. 더 본질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내가 먹는 이 낟알조차도 땅과 연결되고 물과 연결되고 또는 다른 생명과도 연결된다는 걸 인식해야죠. 또 음식이 지닌 에너지와 칼로리는 달라요. 패스트푸드나 가공음식은 영양을 보충해줄지는 모르지만 생명의 에너지는 전혀 담겨 있지 않죠.” 진정 깨달았다면 그대로 살 수 없다 책에서 문성희는 인생의 40년, 그러니까 절반 이상의 시간을 자신이 이번 생에 가지고 온 카르마(karma, 업)를 해결하는 데 보냈다고 술회한다. 아울러 부모가 남긴 유·무형의 빚을 갚고, 자신의 생존에 대한 의무와 자식을 키워야 하는 책무까지,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만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여러 사건이 있겠지만 모두 내가 감내해야 하는 카르마의 굴레죠. 사실 그건 카르마이기도 하지만 배움이기도 해요. 내가 사는 이 인생은 학습의 장이거든요. 삶을 통해서 성취하고, 성장하고, 배우고 결국 전인적인 존재가 되는 게 목표죠. 내 삶의 카르마, 즉 의무를 다했을 때 자유로울 수 있고요.” 이제는 카르마에서 벗어나 홀가분하다며 미소 짓는 그의 얼굴에 ‘자유’라는 두 글자가 아른거렸다. 자연스레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화제를 던졌다. 이에 그는 지천명(知天命)이 되고 나서야 진정한 자유를 알았다고 말했다. “질서를 벗어난 자유는 없더라고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잖아요.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혼자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걸 다 한다고 자유로운 건 아니거든요. 세상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되, 그 속에서 얽매임을 느끼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걸 깨달았어요.” 문성희가 나눈 인생의 깨달음에 감명하고, 동의하며 그와 같은 삶을 동경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실천이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내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원한다면 이렇게 한번 살아보라 말해요. 그럼 직장이 어떻고, 자식이 어떻고 이래저래 안 되는 이유를 대요. 그땐 기다리라고 얘기하죠. 정말 마음이 그렇게 살지 않으면 못 살겠다고 느껴질 때 선택하면 되거든요. 그렇지 않다는 건 지금의 삶이 그 사람에겐 최적이라는 거예요.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는 건, 그저 ‘지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죠. 그 깨달음을 정말 이해하고, 통했을 때는 도저히 그대로 살 수가 없어요.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잊히지도 않죠. 그러면 삶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바뀌게 마련이에요.” 내가 있어야 우주도 존재한다 환경에 의존하지 않고, 상황에 얽매이지 않는 그는 종종 우주과학 영화를 보며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직접 가볼 수는 없지만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주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광활한 우주와 비교했을 때 인간은 티끌처럼 미미한 존재라 여긴다. 그러나 이에 문성희는 “극히 단순한 것과 극히 광활한 것은 일맥상통한다”며 이야기를 뒤집는다. “아무리 큰 우주라도 봐주는 관찰자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 우주를 봐주는 게 바로 나잖아요. 내가 있어야 우주도 존재하는 거죠. 그러니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해요? 우주로서는 자기를 봐주는 인간이 너무나 고맙고 소중할 수 있죠. 내가 해와 달을 보고, 그들이 기뻐하는 걸 느낄 수 있을 때, 내 존재가 굉장히 고양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우주 만물이 수없이 많지만, 내가 있음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내가 없으면 모든 게 다 사라진다는 것, 그걸 느끼는 내가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존재의 의미 아닐까요.”
- 2018-08-1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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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가요의 번지 없는 주막을 찾아서
- 청중은 젊었던 지난날을 회상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면서 박수쳤고 파안대소가 터져 나왔다. 제2인생을 준비하는 은퇴자를 비롯해 교사, 시인, 사진작가 등 모인 사람들의 나이와 직업도 참 다양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몰입하는 이들 앞에 선 강연자는 이동순(李東洵·68)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다. 시를 쓰는 문학인이라는데 옛 대중가요에 심취해 살다 보니 ‘대중음악 연구가’라는 이름표도 늘 따라다닌다. 중절모를 쓰고 나타난 로맨스그레이 이동순 대표는 강의뿐만 아니라 그에 맞는 노래를 직접 들려주며 이해를 돕는다. 시대의 흐름을 온몸으로 일깨우며 살고 있는 이동순 대표의 이야기를 동년기자가 직접 들어봤다. 6월 말 만난 이동순 대표는 ‘대중가요로 풀어보는 서울미래유산’이라는 주제로 열띤 강연을 했다. 이야기경영연구소가 주최하고 서울미래유산과 서울시가 후원한 이 강좌는 서울미래유산(미래 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현재 문화재 등록이 안 된 서울의 근현대 유·무형 유산) 중 하나인 대중가요를 통해 서울의 옛 모습과 현재를 이어 역사를 이해하고자 마련된 프로그램이었다. 대중가요가 만들어진 배경이나 가수의 인생 스토리는 물론이고 서울의 옛 거리도 슬라이드 사진으로 더해졌다. 이동순 대표가 맛깔나는 목소리로 직접 노래를 부르면, 청중도 따라 부르면서 시간여행을 하듯 추억 속으로 함께 잠겼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대중가요 사랑과 전파에 쏟는 열정은 국보급이다. 이동순 대표는 대구 계명문화대학교 평생교육원의 특임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중가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마음껏 음반도 듣고, 노래도 부르며 힐링하는 곳이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센터 이름을 지었다. 주 활동무대는 대구와 경상도 지역이지만 그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대중가요 연구가이기에 서울은 물론 전국에서 모시기 바쁘다. 지금까지 공연을 겸한 강연을 500회 넘게 한 것 같다고. 대중가요 사랑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이동순 대표는 대학 졸업 무렵이던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시를 쓰는 문인이자 학자로서 천재 시인 백석(白石, 1912∼1996)의 시를 엮어 ‘백석시전집’(1987)을 발간했으며 ‘백석문학상’ 제정에도 큰 역할을 했다. 문학인의 삶 외에 특이한 이력 하나가 바로 ‘대중가요 연구가’라는 타이틀이다. 대중가요에 심취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동순 대표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한자리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산달을 얼마 앞두고 한국전쟁이 발발했답니다. 피란도 못 가고 경북 김천 선산 가까이에 있는 초가에서 저를 낳으시곤 10개월 만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딸자식 둘은 계모 설움 안 받게 해 달라, 포대에 싸여 윗목에 누워 있는 어린 핏덩이는 곧 나를 따라올 테니 걱정 안 한다’는 유언을 남기셨답니다.” 유년 시절이 되니 어머니의 빈자리가 점점 커져갔다. 유난히 설움과 눈물이 많았고, 상처도 쉽게 받았다. 감수성 또한 섬세하고 예민했다. 이 시절의 성격이 시인이 되는 데 일조한 것 같다고 이동순 대표는 회고했다. “전매청 창고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진공관 라디오를 켜놓고 ‘정오의 희망음악’이라는 방송을 듣곤 하셨어요. 이때 대중가요를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장세정의 ‘연락선은 떠난다’, 그리고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 같은 노래가 자주 흘러나왔어요. 여가수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엄마도 저런 목소리였을 거야’라며 상상하곤 했어요.” 라디오에서 여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빈 종이와 연필을 찾아 미친 듯이 가사를 옮겨 쓰기도 했다. 가사를 적으면 노래가 외워지면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아련함이 그를 대중가요에 점점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음반 가득한 친구 집에서 자신을 발견하다 중학교 2학년 때 등하교를 같이하던 길목 친구가 있었다. 친구 어머니 방에는 탐나는 예쁜 전축과 함께 음반이 가득했다. 혼자 몸으로 철공소를 운영하던 친구 어머니는 술만 취하면 전축을 틀어놓고 흐느껴 울었다. 친구 어머니가 외출한 틈을 타 음반이 가득 꽂힌 방으로 들어갔던 어느 날, 온종일 노래를 들으며 대학노트 두 권에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노래 가사를 빼곡하게 써내려갔다. “친구 집에서 기록했던 노래가 지금 내 머릿속에 다 들어 있어요. 한 480곡쯤 될 겁니다. 그게 지금까지 내 대중가요 연구의 밑천이 되었어요. 가요 평론가로 가요 해설가로 또 노래를 부를 때도 당시 기억을 다 써먹고 있습니다.(웃음)” 학창 시절 그는 여기저기 불려 다녀야 했다. 많은 노래를 알고 잘 부르기까지 하니 섭외 1순위가 당연했다. 수학여행, 장기자랑, 친구 집에 놀러갈 때 등 어디서든 칭찬받는 것이 좋아 능청스럽게 무대에 선 듯 노래를 부르곤 했다. “마치 남자 기생이 된 거 같았어요. 심지어 군대에서도 그랬습니다. 선임이 노래 부르게 하고 술 한 잔씩 따라주곤 했거든요. 그야말로 노래 사역을 한 셈이었어요.” 꿈을 포기하고 대중가요에 빠져들다 이동순 대표의 젊은 날 꿈은 방송인이었다. 대학 시절 방송반 활동을 쭉 했기에 당연히 기자나 라디오 PD쯤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입사시험 신원조회에서 친척의 부역 기록이 발견됐다. 연좌제가 발목을 잡았다. 유년 시절부터 꿈꿨던 방송인의 꿈은 펼치지도 못하고 접어야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경북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누구보다 빨리 국문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아 27세의 젊은 나이에 경북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넉넉해진 주머니 사정 덕분에 고서와 음반도 사 모을 수 있었다. 천직처럼 느꼈던 대중가요 연구는 1980년대 충북대학교로 직장을 옮기면서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제가 알고 있는 노래를 살펴보니 일제강점기의 시인, 극작가, 소설가 등 문화예술인이 대부분 가사를 썼더라고요. 그래서인지 가사가 굉장히 품위가 있고 훌륭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대중가요를 ‘뽕짝’ 혹은 ‘딴따라’라고 불렀습니다. 자기모멸적이고 비하하는 말을 많이 했어요. 딴따라는 두드리고 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거든요.” 당시 대중음악가들이 자해의식, 피해의식 등 상처가 많았다고 이동순 대표는 진단한다. “대중음악가가 술집에서 서양음악을 하는 작곡가나 성악가를 만날 수도 있잖아요. 서양음악 가들은 대중음악을 음악으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음악계에 반상계급 의식이 존재했는데 당연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번지 없는 주막, 대중가요 연구에 심취하다 이동순 대표는 대중가요를 ‘문화적 번지를 잃어버린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음악도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서양음악을 생각하면 답답했다. ‘가요’야말로 민족 예술이고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은 도구인데 ‘왜 이렇게 천대를 받나!’ 하는 생각에 1981년 충북대학교로 직장을 옮기면서 가요에 대한 에세이, 신문 칼럼, 논문을 수시로 썼다. 2001년 월간조선에 1년여 기고했던 옛 가요 관련 에세이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가요 연구가로서 대중의 인지도가 높아갈 즈음, 대구MBC에서 연락이 왔다. 옛 가요를 중심으로 한 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싶다고 했다. “놀라운 소식이었어요. 속으로는 좋아서 죽을 지경이었지요. 원래 방송인이 꿈이었으니까요. 기분 좋았는데 한편으로는 어떻게 진행하나 걱정이 앞섰어요.” 방송을 함께할 작가를 구해주기로 했으나 옛 노래에 대해 잘 아는 작가가 없었다. 결국 원고 준비에서부터 내레이션, 노래 선곡까지 이동순 대표 혼자 도맡아야 했다. 1인 방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 했습니다. ‘이동순의 재미있는 가요이야기’라는 타이틀로 주말 저녁 7시부터 8시까지 방송을 했어요. 나들이 갔다가 길이 막힐 때 라디오를 트는 황금시간대였어요. 다행히 반응이 좋았어요. 즐겁고 행복했죠. 무엇보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방송 진행을 마음껏 할 수 있었잖아요.” 자부심도 대단했다. 5년 동안 이어온 방송 진행으로 가요 연구가로서의 인지도도 높아졌다. 지금은 전국에서 강연 초청이 물밀듯이 들어와 정신없다고. 청중에게 직접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아코디언도 배웠다. 악기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생겨나 색소폰, 장구는 물론 판소리할 때 쓰는 소리북과 거문고 등도 익혔다. “삶이 어떻게 보면 단조로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내가 만질 수 있는 악기가 늘어나니까 아주 풍성해지고 다양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이걸로 남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흥이 절로 납니다. 지금은 강연 반, 공연 반 이렇게 합니다.(웃음)” 악기를 배우고 보니 재능을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해 쓰고 싶었다. 경산에 있는 한 요양원을 찾아가 치매 노인들에게 옛 노래를 들려주곤 한다고. “요양원 직원들이 제가 무대에 오르기 전에 치매 노인들을 미리 홀에 모아 앉혀놓습니다, 무표정한 얼굴, 목석처럼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노인들을 위해 연주해요. 그런데 신기해요. 10분, 20분이 지나면,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르고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거든요.” 그들의 잠자는 의식이 깨어나는 것을 느낄 때 전율이 일어난다고 했다. 떠돌이 유랑가수로 대중의 마음을 치유하다 노래방 가사책을 모두 꿰뚫고(?) 있다는 이동순 대표. 스스로를 걸어 다니는 노래방 가사책이라고 자부하는 만큼 전설처럼 전해지는 일생일대의 결투가 있다. 바로 김지하 시인과의 대중가요 부르기 대결이다. 김지하 시인은 가왕(歌王) 조용필도 꺾은 문단계 노래 지존으로 불렸다. 술만 마시면 혼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래를 불러댔다. 보다 못한 김지하의 후배가 “청주 시골뜨기가 더 노래를 잘 부른다”고 놀리자, 김지하는 “그런 놈은 우리가 꺾어야지” 하면서 대결을 신청했다. 배심원도 배석할 정도로 큰 대결이었다. “같은 노래도 안 되고 상대방이 부른 노래도 부를 수 없고 별별 규칙을 다 만들어 노래 대결을 했습니다. 밤 9시에 시작했는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도 안 끝났어요. 김지하 씨가 ‘아이고, 저렇게 징그러운 놈은 처음 보네. 이런 끔찍한 짓은 다시는 안 할란다!’ 하면서 항복했습니다.” 배심원 중 한 명인 김성동 소설가가 이 일화를 이동순 대표가 1987년에 출간한 시집 ‘지금 그리운 사람은’ 발문에 쓰면서 더 많이 알려지게 됐다. 이 대결은 이동순 대표가 대중음악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갖게 한 계기가 됐다. 이동순 대표는 많은 노래를 알고 있고 잘 부르지만 특히 고운봉의 ‘명동 부르스’와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를 즐겨 부른다. 자신의 음색과 정서에 잘 맞기 때문이라고. 가슴에 사무치는 노래는 역시 이화자의 ‘어머님 전상서’, 백련설의 ‘어머님 사랑’, 현인의 ‘비나리는 고모령’ 등이다. 어머니와 관련한 노래나 글자가 나오면 눈물이 핑 돈다. 시간이 지나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학자의 길을 걷지 않고 아코디언을 어깨에 메고 함경도나 만주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유랑극단 악사를 하지 않았을까 상상한다는 이동순 대표. 스스로를 옛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떠돌이 유랑 가수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시인, 옛 노래를 섬세한 감수성과 예리한 시각으로 재발견하는 대중가요 연구가. 이동순 대표의 따스한 미소와 온화한 모습 뒤에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중가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혜안이 숨겨져 있다.
- 2018-08-1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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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을 위한 고독 ‘랜드 오브 베어스’
- ‘랜드 오브 베어스’(2014, 프랑스)는 러시아 극동에 있는 캄차카반도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야생 불곰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캄차카반도는 지도(아래 이미지)에서 보다시피 러시아 동쪽에 위치해있다. 가까운 시일 안에 가봐야 할 여행지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블라디보스토크와도 멀지 않은 거리다. 영화는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고지대 야생의 땅에서 태어난 새끼 곰으로부터 시작된다. 새끼 곰은 태어나 3년간은 어미 곰의 보살핌 속에서 생존과 성장을 한다. 자식을 지켜내고 살아남기 위해 자연과의 투쟁을 벌이는 어미 곰의 모습은 처절하다. 캄차카반도의 고지대 굴속에서 겨울을 보낸 불곰들은 본능적인 배고픔이 먼저인지, 봄이 돌아옴을 인지하는 감각이 먼저인지 모르지만 봄이 오면 대지를 뚫고 나오는 풀의 새싹들을 찾아 저지대로 이동을 한다. 잡식성인 불곰은 겨울 동안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풀의 새순과 추위를 이겨낸 열매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그러다 여름이 오면, 산란을 위해 북태평양 바다에서 비스트라야 강으로 헤엄쳐오는 연어를 만나게 된다. 연어떼 역시 서생지였던 북태평양바다를 두고 종족번식을 위한 산란지 비스트라야 강으로 목숨을 걸고 헤엄쳐 오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굶주린 불곰들과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이 사투에서 살아남은 연어들만이 산란을 하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불곰들 또한 연어를 포획하여 겨울을 이겨낼 식량으로 섭취하고 새끼들을 생존시켜야 한다. 이에 불곰 무리 사이에서도 적나라한 생존 경쟁이 처절하게 펼쳐진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철저히 고독해야 한다. 연어를 잡기 쉬운 길목에서는 경쟁자인 형제나 동료와 함께할 수 없다. 오로지 돌보아야할 새끼 곰만이 곁에 있을 뿐이다. 먹이사슬의 투쟁이 끝난 뒤, 가을이 오면 산란에 성공한 연어는 그곳에서 일생을 마치고 불곰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그들만의 영역인 캄차카반도 고지대로 다시 이동한다. 이렇게 3년을 반복하면 새끼 곰도 성장하여 짝짓기가 가능해진다. 그때가 되면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살아온 어미 곰 앞에서 짝짓기를 한다. 새로운 가족을 이루기 위해 어미 곰을 떠남과 동시에 새끼 곰에게도 역시 어미 곰의 숙명이 시작된다. 독립 생명체가 되면 형제조차도 생존경쟁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기 때문에 지구상 몇몇 동물들과 달리 그들에게 영원히 가족공동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처절한 생존투쟁 뒤에 존재하는 것과 영광이란 무엇인지, 어미 곰의 숙명과 그들의 삶의 순환이 처연하기만 하다.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밤, TV 영화 채널을 돌리다 눈에 들어온 ‘랜드 오브 베어스’. 포스터 속 곰들만 보고는 동화 같은 곰 가족의 이야기이겠거니 하고 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어린 외손주들에게 추천할 요량으로 보았던 영화는 나에게 참 많은 생각을 안겨 줬다.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생각을 떨치고 외손주들 얼굴을 생각하며 잠을 청해 보았다.
- 2018-07-03 1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