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마리 퀴리 이야기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한복선(韓福善·66) 한복선식문화연구원장. 그녀는 허구의 소설보다는 사실적인 전기(傳記)를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소설보다 감동적인 실화를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요즘 가장 강력한 희망의 기운을 주는 책은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저)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1997년 초판이 나오고 뉴욕타임스 19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던 책이지만 그녀는 최근에서야 를 접했다. 올해로 93세인 고모님이 당신의 딸(한 원장의 고종사촌 언니)에게서 2년 전 선물받은 책을 다시 한 원장에게 선물한 것이다. 책에는 ‘사랑하는 엄마에게 드립니다’라는 손 글씨와 함께 고모님의 흔적이 더해져 따뜻함이 물씬 느껴졌다.
“어느 날 고모님이 제게 줄 것이 있다며 부르셨어요. ‘나는 떠나야 하니 남기는 것 없이 가야겠다’며 이 책과 동의보감, 한씨 족보, 손수 쓰신 편지를 주셨죠. 자신의 모든 짐을 주변 사람들 각자의 성향에 맞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골라 주셨는데, 이 책이 제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신 거죠. 우리 고모님은 저에게 ‘매일 아침에는 희망에 살고, 낮에는 노력에 살며, 밤에는 반성에 산다’는 붓글씨도 써주셨던 분인데, 이 책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며 두고두고 읽으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니나 다를까. 정말 두고두고 제게 희망을 주고 도움이 될 만한 책이었죠.”
사랑한다면 칭찬하기
고모님의 붓글씨처럼 책에는 희망, 노력, 반성을 이끄는 메시지가 가득했다. 그녀는 책에 담긴 모든 이야기가 인생의 연륜과 경험을 쌓은 인물들의 실화라는 점에 더욱 감탄했다. 자신과 비슷한 경험,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것들, 이제부터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다짐 등을 떠올리며 책을 읽는 내내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배움과 가르침을 위한 수프’의 한 이야기다. 미네소타 주 성모 마리아 학교의 므로슬라 수녀는 반 아이들에게 급우들의 이름을 백지에 모두 적게 한 뒤, 그 이름 옆에 자기가 생각하는 그 학생의 좋은 점과 훌륭한 점들을 적게 했다. 그리고 다른 종이에 친구들이 말한 그 아이의 장점들을 모두 기록해 다시 나누어 주었다. 훗날 베트남에서 전사한 한 아이의 지갑에서 자신의 장점이 적힌 종이가 나왔는데, 놀라운 것은 그의 장례식장에 온 다른 학생들도 저마다 그 종이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래된 종이 한 장을 인생의 보물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한 원장은 옛 추억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 교생 선생님께서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적은 뒤 각자 사귀고 싶은 친구를 화살표로 그어보라고 하셨어요. 그때 많은 친구가 제게 화살표를 줬는데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죠. 이것에서 한 단계 발전된 것이 책에 나온 장점 종이가 아닐까 생각해요. 저는 ‘칭찬’의 힘을 믿어요. 칭찬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집중적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표현이에요. 사실 저는 엄마(궁중음식의 대가 고 황혜성 교수)에게 ‘엄마는 훌륭해’, ‘예뻐’, ‘사랑해’ 이런 말들을 마음에만 간직하고 표현은 못 했어요. 후회를 안 하는 성격인데 그건 정말 후회로 남더라고요. 그래서 딸들에게 ‘너희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나도 칭찬 좀 해줘’라고 말하곤 하죠.”
묵은지보다는 ‘젊음 겉절이’
한 원장은 2013년 첫 음식 시집 ‘밥 하는 여자’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음식 시집 ‘조반은 드셨수’를 펴냈다. 음식 시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의 제목과 내용은 모두 음식과 연관돼 있다. 그녀는 음식의 역사와 조리법, 개인적인 추억까지 담아 100년 후에 시집을 보았을 때 우리 음식의 역사와 사회상을 엿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깍둑깍둑’, ‘댕강댕강’, ‘호물호물’ 등 아름다운 우리말이 어우러진 그녀의 시들 중에서 ‘젊음 겉절이’라는 시가 눈에 띄었다.
“나도 노인이지만 우리 노인들은 표정이 너무 근엄해요. 무섭기도 하고. 어찌 보면 너무 어른답게 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노인을 비유하는 단어로 ‘묵은지’를 많이 쓰죠.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아요. 묵은지처럼 내가 이렇게 묵었으니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가르침보다는 늘 싱싱한 겉절이를 담가 젊은이들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고 싶어요. 아이들에게도 김치나 젓갈을 넣은 겉절이처럼 전통은 전수하지만 오렌지주스를 넣은 겉절이도 괜찮으니 각자 자신만의 겉절이를 담가보라고 하죠. 저 역시 새롭고 싱싱한 나만의 겉절이를 담가서 묵은 훈계보다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공유하려고 해요.”
뜸이 잘 든 차진 인생을 위하여
‘어둡고 무거운 더듬고 가는 안개 속 세상/ 맛있게 살려고 뜸 들여 가지만/ 다 익지도 못하고 우리 설컹히 가는구나’ 그녀의 시 ‘뜸 들이다’의 마지막 연이다. 뜸을 잘 들여야 인생이 맛있어진다는 그녀. 한 원장의 인생 뜸도 잘 들여지고 있을까?
“우리는 아직도 철들지 못하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잖아요. 다들 뜸 들이고 있는 과정이죠. 뜸이 다 들고 익으면 성인(聖人)이 되겠지만, 아마 우리는 이 삶이 끝나고 뚜껑을 열었을 때 그 뜸이 잘 들었는가를 알 수 있을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사사로운 고민과 걱정에 휩싸이게 되잖아요. 아주 작은 일로도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고요. 그것은 결국 나의 수양이 부족해서죠. 세상에 번잡하고 화나는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하지만 그런 것을 다 내뱉는 것은 오히려 피곤해요. 다른 쪽으로 해소하는 방법이 필요하죠. 저는 그런 것들을 시로 쓰거나 그림을 그리며 뜸을 들이는 편이에요. 지금은 나이도 있으니 저도 뜸이 한 70%는 들었겠죠. 나머지 푹 익히고 싶은 30%는 시와 음식,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채워 가면 되지 않을까요?”
글. 김숙기 나우미 가족문화연구원장
case1. 사춘기 손주가 말 한마디 안 건넬 때
손주들이 커가는 것을 보는 것이 힘들어도 명절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더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할 때는 너무 서운하다. 손주들이 어렸을 때는 보내준 사진만으로도 흐뭇했는데 클수록 더 멀어지는 것 같다.
이럴 때 해결책 서운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손주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하라. “공부 잘했냐”, “밥 잘 먹고 다니냐” 등 뻔한 이야기나 “엄마 아빠 요즘도 싸우냐”, “어느 대학 갈 거냐” 등 대답하기 곤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말자. 대신 문자, 카카오톡 등으로 간단한 메시지를 보내고 이모티콘을 많이 활용해보자. 아이들은 권위적이고 훈계하는 어른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case2. 사돈집에 추석선물 보내도 답례가 없을 때
없는 돈 긁어서 매년 두 사돈댁에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첫째 사돈댁에서는 선물만 받고 아무런 답례가 없다. 사돈댁과 오고가는 정이 있어야 하는데 한두 해도 아니고 무시당하는 심정이 된다. 그렇다고 둘째 사돈댁만 보내는 것도 그렇고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럴 때 해결책 지금처럼 하면 된다. 다만 기대하는 마음을 버리고 선물하라. 사돈댁에서 답례가 없다고 해서 둘째 사돈댁에만 선물을 보내면 가족 간 보이지 않는 갈등이 생길 여지가 많다. 집안마다 처해진 상황이나 여건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사돈댁도 마찬가지다. 내 기준으로 생각해서 감정을 키울 필요가 없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또는 “지금 무엇인가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 할 도리는 했으니 마음은 뿌듯하다” 고 생각하라.
case3. 이번 추석에 처가에만 가겠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아들이 얼마 전 이번 추석에 처가에만 가겠다는 전화를 했다. 사돈댁이 부산인데 아이들 데리고 3박4일 놀다오겠다는 것이다. 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며느리가 “왜 명절 때마다 당신 집에만 가야 하느냐”며 불평을 터뜨려 싸움이 많았다고 한다. 아들이 한 명인데 너무하지 않은가.
이럴 때 해결책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지 말고 며느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배려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들 부부가 상의해서 처가에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면 차라리 이번에 며느리에게 전화해서 “그동안 친정에 못가서 힘들었지? 명절에 못 보게 돼 서운하지만 조심해서 잘 다녀와라”고 쿨하게 말해라. 이렇게 본가와 처가의 거리가 먼 경우 한 해씩 번갈아가는 가정이 많아졌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서운한 마음을 다른 것으로 채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case4.며느리와 신경전을 벌였는데 남편과 아들이 며느리편만 들 때
며느리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한마디 할 때가 있다. 지난 명절에도 친인척이 모인 자리에서 너무 짧은 옷을 입고 있어 민망해 한마디 했더니 남편과 아들이 눈치 없이 “괜찮은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느냐”고 오히려 나를 타박한다. 이제는 눈치 보여서 며느리가 잘못한 일이 있어도 말도 못하고 속만 태운다.
이럴 때 해결책 우선 남편이나 아들이 있을 때는 며느리를 절대 야단치지 마라.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대신 며느리 혼자 있을 때 조용히 이야기를 하자.
내 기준이 다른 가족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잘못한 것, 틀린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이야기할 때에는 “내가 생각할 때에는~”, “내가 봤을 때는~” 을 먼저 말하고 뒷말을 잇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남편에게 중간에 끼어들지 말라고 미리 요청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case5. 사위가 아무것도 안 해서 얄미울 때
딸만 있는 가정인데 큰딸이 작년에 결혼해서 사위와 명절을 두 번 보냈다. 사돈집이 미국이기 때문에 명절 연휴를 우리와 보내고 있다. 문제는 장인도 팔 걷어붙이고 열심히 집안일에 동참하는데 젊은 사위가 우리 집에 오면 아무것도 안 하고 거실에서 TV만 보거나 방에 들어가 잠만 자다 간다. 교사인 우리 딸이 평상시에도 혼자 집안일까지 다 맡아서 하는데 명절에도 이런 꼴을 보니 너무 얄밉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지만 시대가 달라지지 않았나.
이럴 때 해결책 이럴 때일수록 “내 딸이 자네 만나 너무 고생한다” “내 이럴 줄 알았으면…” 등 대놓고 뭐라고 하는 것은 금물. 그러기 전에 사위가 처갓집과 잘 섞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반감이 생기지 않도록 장모는 “자네가 많이 피곤했나 보네…” 정도로 끝내고 장인이 나서줘야 한다. 명절 연휴 기간 서로 분담해 할 일을 정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서로 잘 할 수 있는 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나누어서 우선 사위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 “명절 기간에는 남녀 공평하게 나눠 일하고 함께 즐기도록 하자”고 장인이 유도해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case6. 며느리가 빨리 돌아갈 생각만 할 때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음식 다 차려놓은 뒤 도착해서 명절 때 친정 갈 생각만 하는 며느리가 얄밉다. 명절 당일 아침 먹고 조금 있다가 시누이들 보고 가라며 은근히 눈치를 주어도 가기 바쁘다. 아들은 더 있다 가고 싶어 하는 눈치인데 매번 이런 꼴을 보고 있자니 답답하다.
이럴 때 해결책 명절 전에 며느리와 사전에 상의하도록 하자. 그동안 안 했다고 해서 이번 명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네가 이런 부분은 준비해줬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말하고 며느리의 의견을 들어보자. 며느리 입장에서는 시댁에서 다 준비를 해 놓으니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거나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할지 몰라 눈치만 보고 있을 수도 있다. 명절 당일에 몇 시쯤 출발할 예정인지도 아들 며느리와 사전에 합의해놓는 게 좋다. 미리 언제 떠날지를 알면 매번 신경전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
case7. 며느리와 딸 사이가 안 좋아서 중간에서 곤란할 때
며느리와 딸 사이가 너무 나빠 고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친해지겠거니 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지난 명절에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불만을 얘기해보라고 했다가 결국 싸움으로 끝났다. 그동안 며느리에게는 딸 입장을 이해하라고 하고, 딸에게는 며느리 편을 들었는데 그것에 대한 불만도 많은 거 같다. 이번 추석에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데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때 해결책 중간 역할을 잘못하거나 차별적인 요인은 없었는지 살펴보자.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은 ‘역시 시부모라 딸만 생각하는구나’, ‘이 집안은 며느리가 상전이구나’ 라고 생각돼 각자 서운함, 적대감, 소외감을 키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것. 사실 상황보다는 마음을 이해받지 못한 아픔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자. 며느리와 딸에게 상대 입장을 이해시키기 전에 각자 처해 있는 어려움이나 불만 등을 들어보고 중간자 입장에서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추석에는 두 사람 모두 소중한 우리집 식구라는 것을 잘 전달하고 집안일도 중간에서 공평하게 분담해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좀 과장해 온 방송이 ‘먹방(먹는 방송)’이고 ‘쿡방(요리 방송)’이다. 정규 편성표를 가득 점령한 본방송에, 채널을 가리지 않고 거의 무한 재생되는 재방송까지 더하면 브라운관에서 요리하고 먹는 장면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덕분에 이른바 스타 셰프들이 연일 미디어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다. 어떤 이는 만능 요리 비법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주방 안으로 끌어들이고, 또 어떤 이는 허세 가득한 동작과 신출귀몰한 요리 기술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미디어의 중심에 선 이들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심영순, 홍신애 등 여성 요리인 또는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의 활약이 돋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허셰프’라는 별칭으로 사랑받는 최현석을 비롯해 샘 킴, 이찬오, 레이먼 킴 등 최근의 요리 유행을 이끄는 주동력은 역시 남성들이다.
하필 지금에 이르러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는 “인간의 대표적 본능인 ‘식탐’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한 분석이 아닐까 싶다. 식탐을 자극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최근 들어 갑작스레 만들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성적으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라는 추측 역시 마찬가지. 요리 잘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유독 요리 유행이 도드라진 데는 분명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중심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아가는 도중에 필연적으로 생겨난 현상’이라는 분석은 귀 기울일 만하다. 남성의 도움 없이도 생활할 수 있게 된 여성들이 강한 남성보다는 모성적 남성을 원하면서 요리 잘하는 남성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더불어 남성들이 요리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는 주장이다.
가족 해체 등의 사회 불안이 이른바 ‘집밥 열풍’의 주요인이라는 설도 설득력을 갖는다. 먹고살기 힘들어지면서 남성들이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을 때와 같은 편안함을 갈구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복고주의’라는 견해도 있다. 원시사회 때부터 임신 및 육아가 여성의 몫이었던 반면, 식량 획득과 요리는 남성의 몫이었으므로 최근의 유행은 과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성적 분업 이론(남성과 여성의 생리학적 특징의 차이에 따라 일이 나뉜다는 학설)에 근거한 주장이다. 개인적으로는, 돌아가려는 시기와 현재 사이의 간격이 터무니없이 멀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런 맥락과 비슷한 주장들이 최근 유행과 더불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요리에 진실로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더러는 지겨울 만도 하다. 튀기는 소리, 지지는 소리, 끓는 소리에 맛있다는 호들갑까지 더해진 천편일률적 요리 방송이 시청자들에게 쾌감만 선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이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저술가이자 환경운동가’라고 설명하는 마이클 폴란은 저서 에서 현대인들이 직접 요리하지 않고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통해 요리에 심취하는 현상을 ‘요리의 역설(Cooking Paradox)’이라 지칭했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요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잘난 듯 떠들어대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요리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폴란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가정에서 식사 준비에 필요한 시간은 하루에 고작 27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또 다른 저서 에서는 “우리는 음식의 홍수에 빠져 있지만 정작 ‘진짜 음식’은 드물다. 슈퍼마켓 선반에서 ‘진짜 음식’이 사라지고 ‘그럴싸한 음식’을 가장한 가공식품이 빼곡히 들어찼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 요리 유행의 핵심은 손쉬운 요리, 값싼 요리, 다가가기 쉬운 요리다. 폴란은 그런 요리들을 떠받쳐줄 기둥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라고 다를 리 없다. 음식평론가 황교익 씨는 우리나라 특유의 ‘치맥’ 유행을 ‘값싼 육류를 제공하려는 정부와 산업계의 노림수가 대중에 통한 결과’라고 비판하고, 요리사 겸 저널리스트인 박찬일은 모 언론에 기고한 칼럼 ‘달걀의 운명’에서 달걀이 대량 생산되는 현실을 두고 ‘이 불안한 풍요가 실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불안해한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운 닭고기와 달걀의 현실이 이럴진대 다른 식재료는 오죽할까.
요리 방송이 주로 밤 시간대에 편성된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먹지 않아도 될 시간에 식욕을 지나치게 돋움으로써 건강상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굳이 렙틴(Leptin)이니 글렐린(Glehlin)이니 하는 신경호르몬 이름을 들먹이지 않아도, 요리 방송의 부추김에 떠밀려 맥주 캔과 더불어 기름진 안주거리를 찾은 경험이 누구든 한두 번쯤은 있을 터. “이른바 ‘쿡방’ ‘먹방’의 영향으로 뇌에 내성이 생기고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돼 비만 등 건강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사들의 진언은 괜한 걱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바람을 선선하게 느낀다. 갖가지 역효과에 눈 감으려는 무책임함 때문이 아니다. 어떤 잇속이 걸려 있기 때문도 아니다. 무엇보다 나쁜 영향 못지않게 결정적으로 좋은 영향이 분명 그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요리는 무슨 존재인가
요리 늦바람이 골프나 주식투자보다 재미있고 가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남이 해주는 요리만 먹던 ‘상남자’들이 아내의 전유물로만 여기던 칼을 집어든 이유는 뭘까.
은퇴한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것과 달리 중년 부부의 경우 아내는 점차 밖으로 활발하게 움직인다. 남자들의 요리는 가정 평화는 물론, 고령화시대에 대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수 학습으로 회자되고 있다.
남자들의 요리는 생의 진실을 담아낸 영화처럼 따뜻하며 때로는 코끝 찡하게 먹먹하다.
결국 우리의 인생이 맵고 짜고 달고 시큼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는 섬처럼 고립된 개인들을 잇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를 위해 상을 차리고 함께 나눠 먹는 것은 상대방의 입맛과 식습관, 식탁 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영화 의 주인공 도완득은 언제나 혼자 밥을 먹고 등·하교하며 자신의 삶에 누구도 초대하지 않는 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서 끈질기게 거절하던 반 친구의 “라면이나 먹고 가자”는 말에 “그러자”고 답한다. 그는 이제 누군가와 함께 밥상에 앉는 것을, 자신의 삶에 타인이 들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화 은 핀란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공과 각자 상처를 지닌 채 식당을 찾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따뜻한 영화다. 카모메 식당은 우리나라의 분식집쯤 되는 작은 동네 식당. 세 여인은 이곳에서 시나몬 롤과 오니기리를 먹으며 각자의 상처를 치유한다.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것은 상대와 유대관계를 맺겠다는 적극적 신호다.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에서 자주 들어왔던 “한술 뜨라”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언어 습관은 바로 그 정신에서 출발했다.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의 걸출한 코미디 영화 에서 타인을 거부하던 시절의 주인공 멜빌 유달(잭 니컬슨)은 홀로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기만 한다. 그러다가 이웃집에 사는 게이 화가 사이먼(그레그 키니어)을 받아들이면서부터는 중국식 수프를 나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주인공이 게이 화가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음을 보여주는 장치로서 음식을 선택한 것은, 실로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다. 음식에는 그런 힘이 분명히 있다.
지금의 요리 열풍에도 그처럼 명쾌한 힘이 내재돼 있다. 그 동안 우리 가장들은 나쁜 의미에서 독야청청했다. 전통적 가부장제의 영향으로 근엄함과 배타심을 구분하지 못하고 스스로 차단막을 내걸었던 이가 많았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로 인해 자기 고립의 함정 속으로 스스로 빠져들고 말았다.
‘삼식이’라는 말을 아시는가? 은퇴 후 삼시세끼를 부인이 해주는 식사로 해결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뉘앙스부터 천박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으니 바람직하지 않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생산 가능 인구(15세에서 64세 사이)와 생산 불가능 인구 사이의 비율이 2060년에 이르러 50대50이 된다는 고령화 사회에서 누구도 그 유행어의 비극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쉽게 말해, 한때 배달의 기수였던 남성들이 현대에 이르러 계륵 같은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요리 유행은 계륵과 가족 사이에 음험하게 드리워진 차단막을 걷어내도록 하고 있다. 음식을 타인과 나누는 요리의 정신이 계륵들로 하여금 스스로 벽을 허물게 만들고 있다.
최근 요리 열풍의 핵심에 나이 지긋한 남성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차줌마’로 일컬어지는 차승원, ‘백 주부’라는 애칭으로 사랑받는 백종원, 중화요리의 대가라는 이연복 등은 모두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 남성들이다. 그들은 방송의 중심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요리는 어렵지 않다”,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외치면서 그 동안 요리에서 소외돼 있던 계층, 다시 말해 중년 남성들을 주방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 점이 오히려 쉽게 요리에 접근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닐까.
백 주부는 자신의 요리를 세발자전거에 비유했다. 어린 아이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자전거를 한 번도 안 타본 사람도 겁내지 않고 타 볼 수 있는 세발자전거처럼 누구나 시작해 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는 용기를 주어 다음에는 두 발 자전거 타기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주방 안으로, 관심 속으로
최근 은퇴 전후 남자들에게 요리교실이 인기다.
실제로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초문화원의 ‘아버지요리교실’은 정원 25명으로 3개월씩 진행하는데, 은퇴 전후의 50, 60대가 주축이다. 서울대 노화고령화사회연구소와 이화여대 글로벌식품영양연구소, 순창군이 함께 시행하는 ‘골드쿡’ 프로젝트는 은퇴 전후의 중·장년층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요리실습이다. 서울특별시 양천구청이나 강남구청 등이 꾸준히 운영해온 중년 남성 대상의 ‘아버지 요리교실’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남양주 시청의 ‘아버지 요리교실’, 광주광역시 농업기술센터의 ‘아버지 요리교실’ 등 최근의 요리 유행에 힘입어 개설된 아버지 대상의 요리교실 역시 하나둘이 아니다.
고양시 ‘젠틀맨 생활 요리 교실’은 55세 이상의 은퇴 남성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남성을 위한 요리 교실로, 실생활에서 꼭 필요한 간단한 생활 요리법을 전수해준다. 수업 소개란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남성만의 요리 교실로, 새로운 인간관계와 자아를 재정립하고 그동안 소원했던 가족들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익한 강좌’라고.
여기에 경기 부천시, 광명시, 고양시, 충북 음성군, 강원 영월군, 경북 칠곡군 등 군 단위에서 시행되는 남자 요리교실과 ‘시니어 요리교실’ ‘행복남요리교실’ ‘츠지원’ 같은 사설 요리 강좌까지 합치면 중년 남성 대상의 요리 강좌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해외 유명 셰프를 초빙하는 경우도 있고 값비싼 식자재와 조리도구를 사용한다. 8~10명 정도의 수강생만 받아 소수 정예로 운영되는 만큼 전문직이나 높은 사회적 위치와 함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수강생들이 찾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강좌에 참가하는 남성들의 마음은 한결 같다. 가족을 비롯한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요리를 대접하겠다는 것, 그래서 그들과 좀 더 가까워지려는 것이다.
요리 잘하는 최철주 전 중앙일보 논설 고문은 “나이 먹은 남자들의 요리는 치유일 수밖에 없다”며 “가족을 위해, 혹은 지친 누군가를 위해 배려와 진심을 담아 요리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말했다. 요리는 다름 아닌, 자신의 진심을 상대에게 전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강력한 한 방법이다.
마이클 폴란은 요리 방송이 요리에 대해 떠들기 좋아하게 만들 뿐 요리 자체로 끌어들이지 못한다고 역설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요리 유행은 그와 양상이 사뭇 다르다. “요리는 어렵지 않다”는 어떤 요리인의 주장에 고무돼 실제로 많은 남성들이 요리에 도전하고 있으며, 적어도 도전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요리는 사람들의 유대관계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부작용을 여럿 양산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요리가 가족 또는 타인과의 벽을 허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최근의 요리 유행을 반갑게 맞이하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밥’은 중요한 소통 수단이다. 어느 종교 지도자는 밥을 나눈다는 것은 음식과 시간을 함께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꿈과 비전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중년 남자들이 ‘먹방’과 ‘집밥’을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은 ‘맛’이 아닌 ‘정’이고 ‘온기’가 아닐까. 분명, 요리라는 행위에는 그처럼 명쾌한 힘이 있다.
{ 남자가 가도 괜찮은 요리 수업 }
양천구 ‘아버지 요리 교실’
3·6·9·12월, 1년에 4회 양천구 지역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요리 강좌. 한 달 과정으로 매주 토요일 4회 수업한다. 장어구이, 들깨수제비 등 비교적 난도 있는 요리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초문화원 ‘아버지 요리 교실’
10~12월 3개월 12주 과정으로 진행하며, 강의 신청은 10월 31일까지 받는다. 매주 목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수업한다. 단호박 밤수프부터 제육볶음, 황태찜, 연어 스테이크 등 반찬과 일품요리를 두루 배울 수 있다.
롱런아카데미 ‘아빠 요리 교실’
분기별로 2개월 8주 과정. 매주 월요반과 수요반 2회 운영한다. 두 강좌 모두 요리의 기본인 계량법과 밥 짓기로 시작해 떡갈비 같은 접대용 음식은 물론이고 생선 손질법과 찌개 끓이는 법 등 생활에 꼭 필요한 지식을 알려준다.
고양시 흰돌종합사회복지관 ‘젠틀맨 생활 요리 교실’
은퇴한 남성이 노후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개설한 요리 강좌로 기본적 요리 용어부터 꼼꼼하게 알려준다. 매주 목요일 12회 수업을 진행한다.
언론인 출신 시인 유자효의 시에는 부모님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추석’, ‘가족’ 등의 일상 시에 젖어 있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유독 눈에 띈다. 거기에는 고난의 시대에 비극적이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아버지 유육출 씨와 어머니 김순금 씨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다. 특히 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삶은 그가 어떤 역경이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다. 그의 아버지 유육출 씨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다.
“부위독급래”
대학교 4학년생 유자효에게 어느 날 전보가 날아왔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니 신속하게 부산으로 내려오라는 내용. 상황을 살펴볼 틈도 없이 부랴부랴 짐을 꾸리던 찰나, 또 하나의 전보가 날아든다.
“모사망급래”
전보를 본 유자효의 가슴이 미어진다. 또 그 미어지는 가슴의 틈새로 피어오르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은 그 슬픔의 무게를 더 무겁게 했다. 46세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그의 어머니 김순금 씨. 그 나이에 돌아가신 것조차 오래 버텼다고 느껴질 정도로 고난의 인생을 살았다.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는 어머니에게 큰 고통이었다. 어머니는 내색하지 않고 그저 숨어서 울 뿐이었다.
유자효는 어머니의 죽음을 대속(代贖)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죽음으로 아버지를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에 일가친척이 모두 우리 집에 모였습니다. 1층에서 아버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어머니가 2층에서 홀로 운명하셨던 것입니다. 친척들은 야단이 났습니다. 당장 초상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죠. 당시 아버지도 중태에 빠졌기 때문에 환자를 집에 둔 채 초상을 치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친척들이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저에게 연락을 했던 겁니다.”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심으로써 아버지가 입원을 하게 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뇌혈관이 터졌던 아버지는 조금만 늦었더라도 사망할 수 있었던 위기의 순간이었다.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 하지 말라는 의사의 당부가 있었지만, 유자효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병상에서 이미 어머니의 변고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아버지의 감은 눈에서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봤기 때문이다. 그가 그토록 강인하고 담대한 아버지의 눈물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 아버지의 성공신화
“제가 초등학생 때 아버지는 당시 부산 지역에서 소득세 납부 2위를 했어요. 건축업을 시작으로 청과물 회사까지 승승장구했던 것이죠. 담대하고 남자다운 아버지는 타고난 사업가였습니다.”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柳爾胄) 가문의 7대손이었던 아버지는 10대에 무작정 집을 뛰쳐나온다. 양반의 집안이었지만, 7세 때 경남 삼천포로 이거한 후 곤궁했던 삶에 뾰족한 해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출을 한 후 유육출이 기회의 땅으로 삼은 장소는 바로 인천이었다. 거기에서 일본인 건설업자에게 일을 배우며 상당한 부를 축적해 가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파릇파릇한 20대. 그렇게 건설업으로 승승장구를 할 때 찾아온 광복은 그의 사업에 날개를 달았다.
6·25전쟁도 그는 또 다른 기회로 삼아 청과물 회사를 차렸다. 경남 지역에서 오는 모든 청과물은 그 회사를 거쳐 부산 일대의 소비자들에게 공급됐다. 그렇게 청년 사업가 유육출은 어느새 부산의 소득세 납부 순위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성공해야 한다는 그의 불굴의 의지가 빚어낸 결과였다. 유육출은 그때 분명 미래가 장밋빛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첫 번째 시련이 닥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 화마(火魔)가 일으킨 ‘재기’의 광기(狂氣)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로 아버지가 운영하던 청과물 사업장이 모두 잿더미가 됐습니다. 영주동에서 발화한 불은 남포동과 국제시장 일대를 휩쓸었고, 결국 중구 일대가 모두 폐허가 됐죠. 당시 보험 제도라는 게 없었던 터라 어디서 보상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그 부담은 고스란히 아버지에게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땅을 팔아 납품했던 화주들에게 보상했어요. 아버지 사업에 첫 제동이 걸린 순간이자, ‘재기’를 위한 광기에 사로잡힌 순간이었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유자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재기에 미친 사람’이었다. 광산업, 경마장, 극장, 간척사업 등 재기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았던 아버지였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결단에 있어서 그것을 제어하기 위한 브레이크는 없었다.
재기의 발판을 찾던 유육출이 경남 지역의 고령토 광산의 채굴권을 사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폭력배들의 기습과 협박에 결국 채굴권을 포기하고 만다. 그 고령토 광산의 소유는 결국 지역 연고가 있는 사람의 손으로 넘어간다. 혼란의 시대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손을 댄 것은 경마장 사업. 그러나 이 역시 변변한 경주마가 아닌 조랑말로 운영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만다. 극장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지역 최초의 극장이라는 타이틀로 자랑스럽게 문을 열었지만, 구매한 영사기가 말썽이었다. 음향은 제대로 나오지 않고, 필름은 끊기기 일쑤. 첫 날부터 분노한 관객들의 환불 요구 소동에 휩싸이다 결국 얼마 못 가 문을 닫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업 실패는 다음 이야기를 위한 서막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큰 타격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가덕도 간척사업이다. 분명 이 사업은 유육출의 인생에서 가장 큰 기회였다. 결과적으로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말이다.
그가 계획한 가덕도 간척 사업은 당시 국토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장면 정권의 국책과 맞는 일이었다. 제방을 쌓아 농경지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퍼부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5·16 쿠데타는 그 모든 계획을 수포로 돌려놓았다. 역사가 뒤바뀌는 순간에 가덕도 간척사업은 그저 조그마한 에피소드로 여겨졌고, 이것에 눈을 돌리는 정부인사는 전무했다. 그도 이 사업에 모든 것을 걸고, 공사를 진행해 왔던 터라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Go’할 것이냐 ‘Stop’을 할 것이냐는 기로에서 그는 과감히 ‘Go’를 선택했다. 자신의 모든 사재를 털어 가덕도에 투자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간척지는 메워지지 못했고, 재산은 모두 바닥이 났다.
“그렇게 빚더미에 앉게 됐죠. 소송이 빗발치고, 어머니는 빚쟁이들 앞에서 반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재기를 꿈꾸었어요. 이후에도 부산 산업전시회 개최를 하려고 백방으로 뛰어 다녔으니까요.”
◇ 나를 지탱해 주는 힘, 아버지
시인 유자효가 결혼을 하기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되신 아버지를 두고 결혼을 하기엔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버지의 재혼. 마침 응암동 시장에서 교제를 하고 있던 사람이 있어 혼례를 치렀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고부간의 갈등이 하늘을 찔렀고, 불화가 가정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유자효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저분과 헤어져 주십시오!” 그 한마디에 아버지는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알았다. 일어나거라. 네가 먼저 죽겠구나.”
다음 날 어찌된 영문이지 유자효의 새어머니는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평소에 그렇게 사납던 사람이 조용하게 떠난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아버지도 얼마나 헤어지기 괴로웠겠어요. 그런데 몸과 정신이 부실했던 상황에서도 그렇게 결심하고 처리하는 것을 보니 젊은 저보다도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만큼 강인하고, 고통 속에서도 의연했습니다. 그리고 당당했죠. 종교가 없는 제가 살아가면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버지의 생애라는 저의 거울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를 지탱해주는 힘이기도 하죠.”
유자효는 아버지가 운명하는 날까지 자신을 배려해 돌아가셨다고 얘기한다. 장례를 치르기 좋은 1990년 맑은 가을에 하늘로 떠났으니 말이다.
역모 혐의로 능지처참을 당한 허균(1569~1618)은 수많은 조선조 인물 가운데 여러 모로 특이한 사람입니다. 고리타분한 유교질서에 염증을 냈던 허균은 어머니 상중에도 기생을 끼고 놀아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광해군일기에는 ‘천지간의 괴물’이라고 기록된 인물입니다.
그가 광해군 3년(1611)에 귀양지인 전북 함열에서 엮은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 ‘도문대작(屠門大爵)’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8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를 소개한 음식 안내서입니다. 귀양살이를 하다 보니 지난날에 먹었던 음식 생각에 견딜 수 없어 종류별로 기록해 놓고 때때로 보아가며 한번 맛보는 것처럼 한다는 게 집필 동기였습니다.
허균이 참 가엾습니다. 처형 직전에 “잠깐 할 말이 있다”고 소리쳤지만 무시당한 채 처참하게 죽은 그는 마지막으로 무슨 음식을 먹고 갔을까?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이 처형장에서 지은 절명시(絶命詩)에는 “황천길엔 주막 하나 없다는데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잘까?”[黃泉無一店 今夜宿誰家]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곧 죽을 사람들이 왜 먹는 생각을 할까? 음식이란 몸을 살찌우거나 생존을 이어주는 영양소만이 아니며 정신의 허기를 달래고 불안을 덜어주는 그 무엇입니다. 생존의지에 관한 행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음식은 마시고[飮] 먹는[食]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저작(詛嚼)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심신을 기르고, 세상과 함께 하면서 사람들과 정을 다지고, 그 시대와 사회를 섭취합니다.
음식남녀 인지대욕존언(飮食男女 人之大慾存焉), 예기(禮記)가 갈파한 대로 음식과 남녀의 정, 쉽게 말해 먹는 것과 섹스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원초적 본능을 다스려 사회질서와 양속(良俗)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제도와 절차를 만들고 규제와 금지 장치를 마련해왔습니다.
음식은 예절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숟가락 젓가락 포크는 어떻게 쥐고 어른 앞에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배운 뒤 식사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됩니다. 밥상머리교육은 인간의 품성을 결정하는 원초적 교육기제입니다.
쌀을 뜻하는 글자 ‘米’를 파자(破字)하면 八十八이 됩니다. 옛 어른들은 쌀 한 톨을 얻기 위해서는 88번이나 농부의 손길이 가야 하는 걸 알라며 이 글자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예절은 먹는 방법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음식 자체에 대해 지켜야 할 예의가 있습니다. 먹을 게 귀하고 쌀이 모자라던 시절에는 밥풀을 남기면 꾸중을 들었고, 맛있는 것만 먹거나 같은 반찬을 두 번 떠가는 것도 남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최근 번역된 댄 주래프스키 교수(미 스탠퍼드대·언어학)의 ‘음식의 언어’(The language of food)에 의하면 고급한 식사일수록 에티켓을 따집니다. 요리의 이름이 길수록, 식재료의 출처를 거론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음식 값이 비싸집니다.
음식은 정입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밥 한 끼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가요? “음식 끝에 의 상한다”는 말, “콩 한 쪽도 나눠먹는다”는 말에서는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인심과, 누구에게나 똑같은 고통인 가난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술꾼 3형제는 명절에 모이면 소주를 궤짝으로 갖다 놓고 마시면서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웁니다. 어차피 가실 분인데, 병상에 누워 “한 잔만, 한 잔만” 하는데도 끝내 술을 드리지 않았던 불효를 그들은 지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또는 주부는, 또는 아내는 가족을 위해서 정으로 다듬고 무치고 사랑 양념을 넣어 음식을 만듭니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는 제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려서 어머니가 해주었던 반찬이나 요리가 맛이 없어지면, 그때는 죽을 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과학적 근거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음식은 소통입니다. 왕조시대에 기근이 들고 흉년이 심하면 왕은 부덕의 소치라고 자성하며 하늘에 빌면서 반찬 가짓수를 줄였습니다. 이른바 감선(減膳)의 소통정치라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서로 자기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손님 접대랍시고 내놓은 두루미와 여우의 우화는 달리 해석하면 서로 다른 음식을 통한 소통의 시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음식은 배려입니다. 우리는 요리를 잔뜩 빚어 내놓고도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십시오” 하고 인사를 합니다. 예전에 중국인들은 “이미 익힌 걸 날것으로 되돌릴 수 없지요”[熟不還生]라고 말하며 식사를 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고(장 지글러 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세계의 절반은 먹거나 더 먹거나 또 먹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기아의 진실, 과식과 체증의 진실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중국 북송시대의 명재상 범중엄(范仲淹·980~1052)은 ‘강상어자(江上漁者)’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강 위를 오가는 사람들/농어 맛을 즐길 줄만 아는데/그대들 보시게나 작은 배 하나/풍파 속에 출렁거리는 것을.”[江上往來人 但愛?魚美 君看一葉舟 出沒風波裏] 농어만 즐기지 말고 농어를 잡는 이들의 고생도 알라는 뜻입니다.
굶주리는 이들도 많고, ‘혼밥’이나 불기 없는 1회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족과 따뜻한 음식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이걸 좋아한다고 내세울 만한 음식이 없는 사람, 함께 먹자고 남에게 권할 만한 메뉴나 음식점에 무지하거나 무신경한 사람, 무엇이든 한 가지라도 남을 위해 만들어 먹일 수 있는 음식이 없는 사람의 삶은 끝내 불행합니다. 구차하고 용렬합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어느 책에서 “여성이 매일같이 요리를 하는 것은 작은 기적을 만들어 내는 일상의 기도와도 같은 것”이라고 썼습니다. 이제는 남자들도 나를 위해, 남을 위해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TV화면을 점령하다시피 한 먹방, 쿡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조류입니다.
요리는 본질적으로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 먹을 것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 생명을 살게 합니다. 그러니까 역설적이지만 음식은 삶입니다. 그리고 살림입니다. 이 경우의 살림은 생계를 꾸려가는 일이나 세간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들이 목숨을 이어가게 해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움직이는 것, 푸른 것, 부드러운 것, 따뜻한 것, 촉촉한 것, 선한 것, 맛있는 것입니다. 일용(日用)하고 장복(長服)하는 음식을 통해 삶과 살림의 길을 찾아가는 일이 늘 즐거움과 행복이 되기 바랍니다.
21년 동안 108억 원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기부한 기업인이 있다. 1994년 8월에 창립해 국가유공자들의 복지 증진과 한미 우호 증진을 기업 목표로 삼고 유통, 서비스, 판매 사업을 하고 있는 상훈유통의 이현옥(李鉉玉·77) 회장이 주인공이다. 알게 모르게 꾸준하게 이뤄진 그의 기부는 정부로부터도 인정을 받아 2014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보훈 관련 단체에서는 ‘기부천사’라고 불리는 이 회장의 삶과 실천을 통해 돈 쓰는 철학을 짚어본다.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눈다는 것은 사회에 대한 배려 그 자체다. 돈이 있는 사람만이 나누는 건 아니다. 각자 자신만의 ‘달란트(재능)’를 필요로 하는 타인이나 단체에 선물하는 ‘재능기부’도 확산되고 있다. 일회성 봉사나 한시적인 거창한 후원보다는 소박한 실천적 나눔으로 사회 곳곳에 다가서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기부이다. 나눔과 기부가 ‘있는 사람들’만의 문화가 아님을 알려주는 일이다.
연매출 300억~400억 원의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이현옥 회장은 첫 대면에서 겸손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따뜻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곧 자신의 따뜻함을 남과 함께 나누고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또한 어느 순간부터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되어 기부에 ‘중독된’ 대표적인 경영자다. 보훈처 퇴직 후 상훈유통을 설립한 다음 해인 1995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국가유공자와 보훈단체에 성금을 기탁한 이 회장이 낸 돈의 액수는 108억 원. 10억 원이 부(富)의 대표적 기준이 된 사회에서 이 회장은 그 열 배가 넘는 돈을 자신의 주머니 속이 아니라 남의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러나 그 막대한 기부금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25년이 된 30평짜리 작은 빌라에 살고 있다.
국가 은혜 갚으려고 국민으로서 기부한다
이 회장은 베트남전에 하사로 참전했던 국가유공자이기도 하다. 격렬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잔혹함과 죽어나가는 전우들, 그리고 국가가 없는 삶의 비참함을 깨달은 이 회장은 국가 보훈을 위한 기부를 반드시 하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베트남전에서 복귀한 이후 20여 년간 보훈단체에서 공직 생활을 한 그는 상훈유통을 세울 때 국가 보훈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일을 진행했다. 상훈유통은 SOFA 면세품 양도 양수 사업, 한국인삼공사 정관장 홍삼 제품 및 홍삼 음료 판매 사업 등을 갖고 있으며 1사 1촌 농촌사랑운동의 일환으로 자회사인 상훈영농조합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다.
그의 기부 대상은 당연하다는 듯 보훈 단체들이었다. 국가유공자단체와 보훈병원에서부터 광복회, 전몰군경 유족회, 미망인회, 월남전참전자회, 상이군경 복지회관, 안중근의사기념관, 천안함 관련 단체 등등 그는 보훈을 위해 만들어진 곳을 향해 아낌없이 돈을 냈다. 국가유공자들의 자녀들에게 지급하는 나라사랑 큰나무 장학금도 운영하고 있다. “부국의 원천은 강병이요, 강병의 뿌리는 보훈에 있다”라고 누누이 말하는 그다운 일이다. 그는 보훈이야말로 국민의 도리요, 의무이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힘닿는 데까지 동참하자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거창한 기부가 아닌 작은 배려와 실천의 기부로 행복을 누리자”
“덕을 베풀고 나누다 보니까 행복해지더군요. 복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되고요.”
이 회장은 “좋은 생각, 좋은 마음, 좋은 일을 실천하며 살자”고 말했다. 지금까지 인터뷰했던 전형적인 기부중독자들과 똑같은 말이다. ‘남에게 베푸는 것이야말로 곧 행복’이며 ‘그래서 자신은 기부를 멈출 수가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기부라는 행복을 깨달은 사람이라지만 25년 동안 검소한 빌라에 살면서 100억 원이 넘는 기부금을 낸 건, 정말 그게 가능할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회장은 그게 가능한 사람이었다. 돈을 기부에 쓸 수 있었던 것은 회사를 세운 후 21년 동안 매년 수익금의 50%를 기부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을 들으면 웬만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수익금의 50%를 기부금으로 낸다니, 가족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그러나 이 회장은 그러한 아버지를 자식들이 이해해주고 욕심을 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자식들에게 가업을 이어주지 않고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싶어 했다.
“억지로 시킬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가업 승계 문제는 전적으로 자식들 본인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한다고 하더라도 능력이 없으면 넘겨 줄 수 없습니다. 회사에는 좋은 경영 성과를 내는 직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회사를 넘기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소유하느냐보다 누가 기업을 존속할 수 있게 하느냐가 훨씬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죠.”
자신에게 맞는 작은 실천이 큰 힘
인터뷰 내내 말을 아꼈던 이 회장은 기부의 보람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만큼은 수다쟁이가 됐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작은 것들이라도 모이면 큰 힘을 낸다는 말인데, 제 기부 철학을 그대로 표현한 문구인 것 같습니다.”
이 회장은 많은 이가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작은 나눔에 동참한다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가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 회장이 기부를 통해 꿈꾸는 미래기도 했다.
베푸는 일은 자기의 위치에서 적당한 규모로 하는 것이 좋다. ‘쓸 수 있는 돈을 가진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바르게 쓰는 법까지 알고 있으면 더욱 좋다’는 유태인의 속담이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은 보기만 해도 행복한 에너지를 선물 받게 되죠. 우리는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남들과 행복을 나누는 사람이 되자고 늘 다짐해요. 나누지 않는 사람은 이 기쁨을 모를 겁니다. 직접 기부를 해보고 기부가 어려운 게 아니라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창하게 하는 것이 아닌 작은 배려와 실천이 얼마나 소중한가를요.”
장마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아무리 기분 좋은 쇼핑이라도 여름에는 지치고 버겁다. 이럴 땐 시원한 거실 소파에 앉아 쇼핑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몸도 편하고, 가격도 저렴한 데다 마음에도 쏙 드는 온라인 홈쇼핑을 찾아보자.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쇼핑몰 ‘오아후(oahu)’
오아후는 ‘오십 대부터 시작하는 아름답고 후회 없는 삶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쇼핑몰’의 줄임말이다. 말 그대로 50대 이상 중·장년 고객을 위한 온라인 쇼핑몰로, 기존 GS홈쇼핑의 시니어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GS홈쇼핑 사이트와 비교했을 때 14폰트 이상의 큰 글씨와 약 1.8배 더 큰 제품 이미지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장점이다.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고르고 결제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고객들을 배려해 TV홈쇼핑처럼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지 전화로 상품 상담부터 주문 및 결제까지 가능하게 했다.
이외에도 온라인 쇼핑 중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처와 시간을 남기면 상담원이 전화하는 콜백(call back)서비스와 컴퓨터 조작을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한 원격지원 서비스도 제공한다. 회원 가입을 하면 ‘오하우 쇼핑 카탈로그’를 1년간 무료로 받아볼 수 있고, 스마트폰을 이용할 경우 ‘오하우’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면 더욱 편리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도메인 www.oahu.gsshop.com
문의 080-890-4545(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센스 넘치는 여인의 선택 ‘마담4060(madam4060)’
마담4060은 쇼핑몰 메인 페이지부터 ‘40~60대 고품격 부인복 쇼핑몰 1위’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고 있다. 그만큼 중년 여성고객들의 취향에 맞춘 다양한 패션 아이템들이 가득하다. ‘젊은 마담(도시적인 시크 스타일)’, ‘러블리 마담(여성스러워지고 싶은 엄마들의 로망)’, ‘내추럴 마담(편안하면서도 어디에도 매치하기 좋은 옷)’ 세 가지 콘셉트로 나눠 저렴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의상들을 선보이고 있다.
모임이나 결혼식 등에 알맞은 원피스나 블라우스, 정장 등이 있는 ‘모임 의상’과 넉넉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모아놓은 ‘빅 사이즈’ 카테고리도 선호도가 높다. 특히, ‘코디 세트’ 카테고리에서는 상의와 하의를 조화롭게 매치한 한 벌의 의상을 따로 구매할 때보다 10% 정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중년 고객들의 편리한 쇼핑을 위해 전화주문 서비스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함께 운영한다.
도메인 www.madam4060.com
문의 1544-3617(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 점심시간 정오~오후 1시)
믿고 살 수 있는 멋스러운 빈티지 가구 ‘호메오(homeo)’
라틴어로 ‘항상 같은’, ‘변치 않는’이라는 뜻을 지닌 호메오는 그 의미처럼 오랫동안 두고 쓸 수 있는 빈티지 수입 가구를 판매한다. 단순히 가구를 취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추억을 담아둘 수 있는 공간 창조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호메오는 개성 넘치는 독특한 빈티지 가구의 대중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인더스트리얼 가구의 수입이 시작된 곳이면서 국내 유일의 영국 전통브랜드 티모시 울튼(Timothy Oulton)의 수입업체로도 가구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호메오는 디자이너와 전문 MD들이 현지에서 제품을 직접 선정하거나 디자인하고 있다. 선정한 제품이 국내에 수입되면 전용 공방에서 1차 검수를 통해 파손 여부나 불량 여부를 꼼꼼하게 검사한다. 판매된 모든 가구의 AS가 가능하다. 다양한 가구를 직접 보면서 신선한 원두커피를 맛볼 수 있는 ‘카페&퍼니처’ 콘셉트의 오프라인 멀티숍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본사 전시장 겸 카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59)
도메인 www.homeo.kr
문의 031-946-1727
요리가 어려운 싱글 시니어의 레시피 박스 ‘푸드마스(foodmas)’
푸드마스는 매주 2~3가지의 레시피와 그에 맞는 신선한 식재료를 보내 주는 온라인 글로서리 마켓(Grocery Market)이다. 실제 요리를 하려고 장을 보다 보면 필요한 재료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되고,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더라도 일일이 따로 주문해야 돼 번거롭다. 특히, 싱글족이나 부부가 단 둘이 사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양의 식재료를 사야 할 때가 있어 처치가 곤란하기 일쑤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푸드마스는 인원수에 따라 레시피에 알맞은 양의 식재료를 제공한다. 배달 음식이나 반 조리 식품이 아닌 신선한 식재료를 구매해 직접 요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요리 순서와 방법이 담겨 있는 종이도 함께 배달한다. 이 밖에도 온라인 사이트를 이용하면 다양한 레시피 자료와 조리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푸드마스 레시피 박스는 매주 메뉴가 업데이트 되며, 2인분, 4인분, 6인분 단위로 주문할 수 있다.
도메인 www.foodmas.co.kr
문의 070-8244-4787(평일 오전 10시~오후 6시)
경제성장이 불투명한 지금, 부모에서 자식으로, 손주에게 자산을 배분하는 ‘세대간 원조’가 필요한 시대이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밝힌 부등식 자본의 수익률(r)이 경제성장(g)을 능가한다는 의미[r>g]다. 즉 자본가가 주식과 투자로 번 돈이 일반국민의 소득 성장보다 커져 격차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이런 격차의 시대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주를 위해 자산을 남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자신의 세대만 행복을 누릴 것이 아니라 쌓은 재산은 다음 세대에게 선물해야 한다. 자산가들은 금융자산, 부동산, 현금 등 세 가지 별로 남기는 사람과 남기지 않은 사람들 두 가지로 분류된다.
정리 이태문 동경 통신원 gounsege@gmail.com
◇ 금융자산
>> 남기자 파
△ 장기투자로 자산을 늘린다
장기투자란 자신이 응원하고 싶은 기업에 투자해 그 성장과 함께 돈이 늘어나 되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장기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시작하는 시기는 이를수록 좋다. 일반적으로 일해온 사람이라면 막대한 자산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걸 더욱 늘려서 처음으로 ‘어떻게 남길까’라고 생각할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퇴직 후에도 20년 정도 인생은 계속되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활이 불가능해질 가능성도 있다. 장기투자를 시작하면 돈이 느는 흐름을 타고 생활할 수 있어 여유를 유지하게 된다.
△ 장기투자를 후세에 남긴다
진짜 투자가는 ‘돈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 세상에 돌린다’는 가훈 아래 일하고 기업을 응원하는 것으로 사회에 공헌하며 몇 대에 걸쳐 부를 축적해 가는 것이다. 알뜰하게 쌓아올린 돈이기에 소중하게 길러가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는 것이다. 자산을 물려줄 때는 자손에게 그러한 교육도 함께 할 필요가 있다.
돈이 세상을 위해 일한다는 점, 자신이 그 기업을 응원하는 이유 등을 자식과 손주에게 알려줄 것. 그러면 후손들도 돈과 함께 ‘그런 식으로 살아가라’라는 당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받아들여 의미 있게 돈을 쓸 것이다.
예를 들어 1000만엔이라는 돈을 상속해도 받은 쪽은 2~3년 놀며 살면 끝나 버린다. 과연 그게 좋은 상속이라고 하겠나?
그리고 어떤 투신도 소액으로 현금화할 수 있어 주식과 달리 받는 측도 쪼개서 상속세를 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식과 손주의 부담도 배려해야 한다.
>> 안 남기자 파
△ 의미 있는 기부를 한다
돈을 소중히 키우면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기부는 자신의 꿈과 생각, 인간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이다. 기부를 할 때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죄 만들기’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부를 받는 곳의 활동이 시간이 걸리는 경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사정으로 기부를 그만두면 겨우 움직이기 시작한 기부처의 활동도 중지되고 만다. 특히 기부의 도움으로 활동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낭패를 당하게 된다. 돈을 내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자기 세대에서만 기부가 끝나지 않도록 자식과 손주에게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알리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기부하면서 활동에 참가
돈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는지 불투명한 곳에는 기부하지 말 것. 그리고 기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부처에 노동력을 제공하면 더 의미있게 사회공헌을 할 수 있다. 가능한 범위에서 도우미 활동을 지원한다. 기부만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고령자도 정년 퇴직 후 평생 사회와 이어질 수 있다. 자식과 손주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돈만이 아니라 기부활동에 관한 생각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 부동산
>> 남기자 파
△ 신축 아파트 경영
부동산을 똑똑하게 남기는 대표적인 방법은 신축 아파트 경영이다. 갖고 있는 자금으로 땅을 대출 구입해 아파트를 짓고, 월세로 경영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 젊은 사람들은 도심에서 살기를 동경한다. 그런 20~30대의 젊은 세대를 겨냥한 아파트 경영은 장래에도 안정된 투자라고 하겠다.
자신은 월세 수입으로 얻은 돈에 연금을 얹어 입지 조건이 좋은 아파트를 빌리든지 사든지 해서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면 된다. 그리고 10~20년 뒤 도심에 구입한 아파트 대출을 다 갚은 시점에 손주에게 물려주면 된다. 그렇게 하면 손주에게는 월세수입이 큰 도움이 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도 있다.
△ 좋은 대출은?
임대 병용 주택을 지어서 한쪽은 빌려주고 또 다른 한쪽에 사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월세 수입으로 대출을 갚고 남은 돈을 생활비로 돌린다. 그 경우 아파트 대출(투자대출)이 아니라 주택대출을 받을 수 있어서 더욱 낮은 금리로 융자를 받을 수 있다.
부동산 투자에서 ‘좋은 대출’이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입주자가 갚도록 하는 것이다. 남은 월세수입은 자신의 재산.
>> 안 남기자 파
△ 일찌감치 판다
손주에게 확실하게 월세수입이 있는 아파트를 남기길 권하고 싶지만, ?아파트 경영이란 모험은 못 하겠다’라는 사람들에게 다음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지금 사는 집을 매각할 것. 입지에 따라 다르지만 알다시피 거품이 빠지고 나서 토지가격이 상승할 기미는 없다. 오히려 내려갈 가능성이 더 높다. 지금 매각해서 역 앞 아파트로 이사하는 쪽이 무난하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원리라고 말했는데, 일본에서 현재 두드러진 것은 ‘토지의 격차’다. 값이 오르는 토지와 떨어지는 토지로 양극화됐다.
팔 것을 생각한다면 도심에 사는 사람은 혹시 상승할지도 모르는 토지가격의 변동을 조사하고, 교외와 지방에 사는 사람은 서둘러 매각하길 권한다.
△ 빌린다
입지가 좋은 집이라면 누군가에 빌려주고 자신은 역 앞 아파트에 살자. 20만엔 정도로 빌려주고 10만엔에 역 앞 아파트를 빌리면 남은 10만엔이 생활비다. 다만 ‘아무도 빌리지 않겠지’라고 판단되는 곳이라면 빌려주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살고 있는 집을 매각해 그 집을 빌려 살 수도 있다. 해외에 살고 있는 딸 내외가 귀국해서 살 집을 사전에 구입해 두는 경우이다. 교섭하기에 따라서는 딸 내외가 귀국하기 전까지 싸게 빌려 살 수도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다.
△ 기부한다
전국에 빈집이 820만호나 있는 시대. 인구감소의 사회가 도래하기에 향후 빈집이 증가할 것은 틀림없다.
아무리 집과 토지를 무상으로 기부한다고 해도 지방자치단체와 NPO법인으로부터 ‘필요없다’는 답변을 받는 것도 각오해 둘 필요가 있다. 어느 시의 경우 집을 기부한다고 신청해도 이미 빈집이 1만호나 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해체비용도 들고, 빈터로 만들면 고정자산세가 6배가 된다. 기부를 생각한다면 서둘러 결정하라.
이상교 시인의 동시 ‘남긴 밥’을 읽어봅니다. ‘강아지가 먹고 남긴/밥은/참새가 와서/먹고,/참새가 먹고 남긴 밥은/쥐가 와서/먹고,/쥐가 먹고 남긴/밥은/개미가 물고 간다./쏠쏠쏠/물고 간다.’
따뜻하고 좋은 시입니다. 설마 강아지(개가 아닙니다)나 참새나 쥐가 다른 짐승과 곤충을 위해 일부러 밥을 남기기야 했겠습니까? 작고 여린 것들을 보는 시인의 눈이 그렇게 읽는 것이지요.
여기에서의 남김은 배려와 순환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개미가 먹다 남긴 밥을 먹는 생명체가 또 있습니다. 그런 생명체가 죽어 밥이 되면 그 밥은 다시 시에 나오는 것과 같은 과정을 거쳐 누군가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콩을 심을 때 한 구멍에 세 알씩 심었습니다. 벌레에게 한 알, 새에게 한 알, 우리 인간이 먹을 한 알입니다. 그런다고 벌레나 새가 기특하게 한 구멍에서 한 알씩만 먹고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 친구는 그런 의미와 생명에 대한 외경을 담아 ‘콩 세 알’, ‘三豆齋(삼두재)’ ‘세알콩깍지’라고 호를 지었습니다. 그의 호는 ‘콩밝(空朴)’으로 진화했습니다. 여기에도 배려의 남김이 있습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어머니는 마당에 뜨거운 물을 뿌릴 때 “눈 감아라, 눈 감아라” 그런답니다. 뜨거운 물이 스며들어 땅속의 벌레들에게 미치면 눈이 멀 수 있으니 눈을 감으라고 벌레들에게 일러준 것입니다. 미물들에 대한 배려입니다.
무언가를 남기는 행위는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들은 다 내가 아닌 남, 타자를 위한 남김입니다. 이와 달리 오로지 자신을 위한 남김이 있습니다. 남을 위한 남김이 결과적으로는 내가 남는 일이 될지 몰라도 인간은 기본적으로 남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남김을 지향하며 삽니다.
남긴다는 뜻의 대표적인 한자는 遺(유)입니다. 가랑비, 남기다, 남다, 끼치다, 전하다, 잃다, 버리다, 두다, 떨어뜨리다, 빠뜨리다, 쇠퇴하다, 이런 뜻의 한자입니다. 반대되는 한자로는 遣(견)을 들 수 있습니다. 보내다. 떠나보내다, 파견하다, 떨쳐버리다, 내쫓다, (시집을) 보내다, (아내를) 버리다, 이런 뜻의 한자입니다.
생김새도 비슷한 두 글자가 처음엔 완전히 반대말인 것 같더니 쓰임새가 커질수록 의미가 비슷해지는 게 재미있습니다. 남기는 것은 자신을 위해 뭔가를 간직하는 행위인 것 같지만 실은 버리는 것이라는 의미를 여기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虎死遺皮 人死遺名(호사유피 인사유명),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그러니 바르게 살라는 뜻입니다. 遺를 留로 쓴 경우도 많지만, 남긴다는 뜻에서는 遺가 더 어울릴 것입니다. 流芳百世 遺臭萬年(유방백세 유취만년), 꽃다운 이름은 백세를 가지만 더러운 악취는 만년 동안 남는다는 말도 몸가짐 마음가짐을 바르게 해줍니다.
인간은 나이 들수록 죽음을 생각하고 자신의 죽음 이후에 대비하려 애쓰게 됩니다. 나는 이 세상에 어떤 이름으로 남을까, 자식들에게는 뭘 남겨주어야 할까, 이것은 전적으로 즐거운 일만은 아니며 근심이요 걱정인 경우가 오히려 더 많습니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안 주면 맞아 죽고, 덜 주면 볶여 죽고, 다 주면 굶어죽는다는데, 어떻게 하는 게 슬기로운 일일지 있는 사람들일수록 더 노후가 괴롭고 고달픕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새끼를 위해 제 살까지 먹이로 내주는 늙은 거미와 같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뜯어먹기 좋은 게 부모의 등골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자기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는 사람은 하는 일이 헛되다.”[無孩兒浪營爲]고 합니다. 남김을 통한 명예의 보전과 존재증명의 중요성을 역설한 말일 것입니다. “자식에게 남겨주기에는 황금이 가득한 상자가 한 권의 경서만 못하다”고 책과 글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김과 사후를 생각할 때 지금은 나의 모든 것이 다 짐이 되는 시대입니다. 많은 추억과 사연이 담긴 사진, 그 많은 인연과 손때가 묻은 책들은 내가 아끼는 소중한 물건이지만 자식들에게는 의미 없는 천덕꾸러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걸 다 처분하고 가겠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죽음에 관한 생각을 한 권의 훌륭한 책으로 엮어 낸 학자를 인터뷰하면서 “어떤 인간으로 남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무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삶의 자취 자체를 무로 돌리고 싶다는 바람이 놀라웠습니다.
장자(莊子)는 제자들이 성대하게 장사를 지내려 하자 “땅 위에 있으면 매의 밥이 될 것이요, 땅 아래 있으면 개미와 지네의 밥이 되겠거늘 어찌 남의 밥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구애받지 않고 살아온 사람답습니다. 중국 소설가 루쉰(魯迅)도 “장례식을 위해 누구한테고 한 푼이라도 받으면 안 된다. 서둘러 입관하여 파묻어 치워 버릴 것, 무엇이든 기념행사 비슷한 짓을 하면 안 된다. 나의 일을 잊고 자기 생활에 정신을 돌려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바보다”라는 유언을 했습니다.
이런 유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결심을 하면 할 수 있는 정도의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죽고 난 뒤의 일을 알 게 뭐며 알아서 뭘 하자는 거겠습니까? 고교 교과서에서 배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네가 장차 볼 길 없는 사람들의 칭찬에 그렇게도 마음을 두는 것은 무슨 이유인고? 그것은 마치 너보다 앞서 이 세상에 났던 사람들의 칭찬을 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어리석은 일이 아니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문장으로는 아름답고 거룩하지만 실제 삶은 비루하고 삶의 터는 진흙탕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죽으면서 “나의 영혼은 신에게, 나의 육신은 땅에게 바치며 나의 유산은 내 혈연에게 남긴다”고 말했습니다. ‘르네상스의 거장’이 남긴 말치고는 실망스러울 정도입니다. 누군들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미켈란젤로는 하나마나 한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인간은 결국 유언과 유서,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의미 있는 비명(碑銘)과 영향력이 긴 저작물로 남습니다. 이와 달리 순전히 재산으로 남는 인간의 삶은 금세 잊히고 자칫 갈등과 논란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죽기 전에 남기지 말고 다 쓰자, 사회에서 얻었으니 사회로 되돌려주자, 자식들에게 물려줘봤자 싸움만 날 수 있다, 이런 자세로 재물을 사용하고 소비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다 써야 할 것은 재물이나 인간관계 등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나의 생각과 재능, 그리고 올바른 마음을 나 자신과 남들을 위해 남김없이 다 쓰는 것, 그리하여 꽃다운 이름을 남기는 것, 그게 바람직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나를 위한 남김과 남을 위한 남김의 조화를 지향하면서 그 방법을 찾아가는 게 삶의 후반에 가장 중요한 과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중년부부가 얼마나 될까? 여가 시간이 생기면 함께하지 못해 안달이 난 부부는 또 얼마나 될까? 스킨십이 줄어들고, 각자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요즘 부부들에게서는 찾기 힘든 모습이다. 하지만 손을 잡고 함께하는 시간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참댄스 패밀리 부부 동호회 회원들이다. 동반자(同伴者)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고, 반려자(伴侶者)가 있어 행복한 그들을 만나봤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참댄스 패밀리의 리더 정기철(정기철 크루즈댄스컴퍼니 대표), 남미경(강남대 겸임교수, 대한 댄스스포츠 경기연맹 강남 연수 원장) 부부에게 동호회의 요모조모에 대해 물어봤다.
부부만을 위한 동호회를 만들게 된 이유
첫 공식 행사는 1999년에 회원들과 함께 새해를 맞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벽 2시까지 춤을 췄던 밀레니엄 파티예요. 하지만 그전부터 조금씩 진행해왔죠. 댄스스포츠와 무용을 전공으로 했던 우리 두 사람이 부부가 되고, 댄스스포츠를 알릴 수 있는 부부모임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댄스스포츠가 많이 보급돼 있지도 않았고, 남녀가 춤을 춘다고 하면 대부분 음성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곤 했죠.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끼리 손을 잡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회원은 부부로만 받자고 원칙을 세우게 됐어요. 그땐 이름이 ‘스튜디오 정 댄스’였는데, ‘다른 이름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회원들과 상의한 끝에 ‘참댄스 패밀리’라는 이름을 만들었죠.
참댄스 패밀리 동호회 분위기
동호회 이름에 있는 ‘패밀리’라는 단어처럼 정말 가족처럼 지내요. 40~50대 때 동호회 초창기부터 함께 시작하셔서 60세가 넘도록 오랜 시간 함께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여러 사람이 모이면 말도 많아지고, 시기도 하는 사람이 생기는데 우리 회원들은 못해도 잘한다고 격려해주고, 서툴러도 예쁘다고 칭찬해주죠.
참댄스 패밀리 회원들의 성향
현재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회원들은 130~140명 정도 되고, 거의 대부분 50대 이상이에요. 평균적으로 7~8년 활동하신 분들이고, 병원장 등 의사나 기업 오너분들이 대다수인데, 의외로 의사분들이 춤을 배우거나 색소폰 연주 등을 하면서 취미생활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또, 부부가 함께 춤을 배우려면 시간 할애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오너분들에게는 부담 없는 취미가 될 수 있죠. 무엇보다 함께 춤을 추려면 부부 사이가 좋아야 하거든요. 그렇게 부부 관계가 좋은 사람들끼리 모이다 보니 좋은 바이러스가 퍼져서 늘 화기애애하답니다.
동호회에 가입하려면?
먼저 부부가 함께 오셔야 해요. 이러한 원칙 때문에 ‘참댄스 동호회에 가입하려면 혼인신고서를 내야 한다’는 농담까지 생기기도 했죠. 1차적으로는 저희(정기철, 남미경 부부)가 수업을 하고 있는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압구정본점이나 킨텍스점에 있는 부부 댄스스포츠 크루즈·파티댄스 커리큘럼을 이수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점차 연습도 하고, 레슨도 받으시면서 동작을 익히시면 돼요. 문화센터 등에 지출하시는 교육비는 별도고, 동호회에 가입하실 때는 부부당 평생 가입비 5만 원만 내시면 돼요. 소속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형식적인 차원이죠. 그리고 연회비 역시 부부당 10만 원이에요. 그 외 연중 호텔파티나 크루즈여행, 골프여행 등은 회비에서 일부를 쓰고 나머지는 개인부담으로 즐기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요.
동호회를 즐기려면?
먼저 춤을 익히는 게 중요하겠죠.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동작을 느낄 수 있어야 즐겁거든요. 탱고, 왈츠, 룸바, 차차차 등 댄스스포츠 종목만 10가지가 되는데 그것을 다 익히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파티에서 분위기를 타려면 한 3~4년 정도는 배우셔야 자신감이 붙어요. 춤도 체력이 돼야 하기 때문에 평소 건강을 유지하시는 것이 중요해요. 무엇보다 부부가 함께 호흡을 맞춰 춤을 춰야 하니까 금실이 좋아야 뭐든 즐겁겠죠?
참댄스 패밀리 동호회의 자부심
해외 결혼식, 크루즈 여행 등을 가봤거나 대사관, 외교관을 지내셨던 분들이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서양의 파티문화예요. 서양인들은 즐거운 날이나 모임이 있을 때면 파티를 열고 항상 춤을 추거든요. 그런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은 어색해하고 쭈뼛거리게 되죠. 영어를 못해서 언어로 어필하지는 못하더라도 춤을 추며 몸의 대화를 통해 매력을 발산할 수 있거든요. 우리 동호회는 1년에 한 번씩 크루즈 여행을 가는데 멋지게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고 밤새도록 춤을 추며 분위기를 즐겨요. 그러면 우리를 구경하는 서양인들도 굉장히 근사하다며 박수를 치고, 서빙하는 직원들도 마치 귀족을 모시듯 대접하곤 하죠. 요즘은 동호회 하면 아웃도어 입고 산으로 가고, 해외여행을 가도 평범하게 즐기다 오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회원들은 우아하게 치장도 하고 품위 있게 춤도 추고 하니 그런 점에서 자부심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동호회 회원들이 가장 만족하는 것
호텔 파티를 할 때 시범 댄스를 선보이는 부부가 있는데 주로 결혼 25주년, 30주년 등 결혼기념일이나 환갑, 칠순 생일 등을 기념하는 분들이죠. 그땐 자녀들이나 다른 가족도 함께 초대돼 부부의 춤을 볼 수 있거든요. 그동안 부부가 함께 열심히 연습한 춤을 사랑하는 이들 앞에서 추는 그때의 벅찬 감동은 잊을 수 없다고들 하세요. 그들을 바라보는 가족들도 마찬가지고요. 중년이 되면, 특히 주부들은 큰 목표 없이 살아가게 되는데 동작 하나, 종목 하나를 배우자와 함께 한다는 목표를 멋지게 이뤄냈으니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하겠어요. 그날만큼은 두 사람이 파티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죠. 회원들은 그렇게 무언가를 배우고, 부부가 함께 꿈을 꾸며, 함께 그 꿈을 이루는 등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일련의 과정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장 만족스러워 해요. 또 춤 자체가 운동이잖아요. 드레스를 입고 근사한 포즈를 하려면 몸매관리를 안 할 수 없거든요. 그렇게 부부의 정신적 건강과 외적 건강을 모두 튼튼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참댄스 패밀리의 미래
요즘 100세 시대라고들 하잖아요. 90세에도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차차차를 추는 부부, 백발머리를 하고도 입에는 새빨간 장미를 물고 탱고를 추는 부부를 상상해보곤 해요. 회원들끼리도 “우리 80세가 되면 다 함께 공연할 거예요”라며 즐거워들 하세요.
무엇보다 처음부터 고집스럽게 지켜온 ‘부부’라는 콘셉트 덕분에 건전하고 안정적으로 모임을 유지해 올 수 있었어요. 먼저 배우자를 떠나보내시고 함께 춤을 출 수 없어 외로워하시는 분을 볼 때면 정말 눈물이 나도록 슬프죠. 그렇지만 부부가 함께하는 동호회인 만큼 회원 간에 슬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마음이 깊어요. 그런 따뜻한 마음으로 늘 건강하게 동호회가 유지됐으면 좋겠어요.
참댄스 동호회 박중진(69), 김경희(69) 부부 회원 인터뷰
婦)아내 김경희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 지는 20년 정도 됐어요. 그런데 정말 엊그제 시작한 것처럼 아직도 즐겁고 신나요. 동작 하나를 완벽히 익히는 데 몇 년씩 걸리거든요. 남편과 천천히 하나씩 터득해가면서 하다 보니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죠. 살아가면서 나에게 활력을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생긴 셈이에요. 우리는 춤을 출 때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는데, 아무래도 더 근사하고 멋지게 보이려면 몸매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거든요. 그런 부분도 서로 챙겨주고 가꿔주게 되니까 더 아름답고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夫) 남편 박중진 중년이 되고 우리 부부가 나이가 들어서도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보통 중년부부들을 보면 함께 하는 것보다는 취미나 여가를 각자 즐기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춤을 통해서 공통 관심사가 생기고 함께 즐길 것들이 많아졌죠. 부부 사이가 좋다고 해서 매일 대화만 하고 살 수는 없는데, 같이 몸을 움직이니 운동도 되고 스킨십도 자연스럽게 하니까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부부댄스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맞추고 상대를 배려해야만 원하는 동작들을 해낼 수 있기 때문에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커지더라고요. 또, 직장에서 찾은 전문성 외에 무언가 내가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는 분야가 생긴 게 좋죠. 한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 시작했으면 해요. 그래야 몸이 더 유연할 때 빨리 습득할 수 있고, 진짜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