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해온 것일까요? 나라는 존재는 상대가 없으면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개념인지도 모릅니다. 그 상대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성찰함으로써 나의 독자성, 개별성을 알게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 시조에 재미있는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누가 지은지 몰라 무명씨 작으로 돼 있습니다. “내라 내라 하니, 내라 하니 내 뉘런고/내 내면 낸 줄을 내 모르랴/내라서 낸 줄을 내 모르니 낸동 만동 하여라.”
이 시조에는 ‘내’가 아홉 번, ‘낸’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언어유희 같기도 한 말을 통해 자아에 대한 탐구의 진지성을 알게 해줍니다.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이 의문이 무명씨의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우리 옛시조에 이렇게 자아를 탐구한 작품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고 다행스럽습니다. 수직적 질서와 순종적 윤리 덕목에 의해 유지되던 왕조시대에는 나에 대한 자각, 개인의 자유와 독자성에 대한 인식이 계발될 수 없었습니다. 두드러지는 개별적 자아는 장려되기는커녕 오히려 모진 수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표암 강세황(1713∼1791)의 69세 때 자화상(1782년)에는 이런 화제(畵題)가 씌어 있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인가. 수염과 눈썹이 하얗구나. 머리에 오사모를 쓰고 야인의 옷을 입었네. 이것으로 알 수 있지. 마음은 산림에 있지만 이름은 조정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스스로 낙을 찾아 즐길 따름일 뿐.”
표암의 모습은 갓 쓰고 자전거를 타거나 트레이닝복 차림에 베레모를 쓴 격입니다. 자화상이 이렇게 특이한 이유는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산림에 은거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그는 집안이 몰락해 초야에 묻혀 살면서 서화로 이름을 날리다 60세가 넘어 영조의 배려로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명문가 출신이 벼슬 욕심이 없을 리 없었지만 막상 벼슬살이를 해보니 다시 산림이 그리워진 것입니다. 한 화면을 통해 드러난 두 마음은 이율배반이나 이중성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인간감정의 발로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상(1910~1937)의 시 ‘거울’은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딱한 귀가 두 개나 있다, 거울 속의 나는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왼손잡이다, 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지만 또 꽤 닮았다,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다” 등의 말이 이어집니다.
이런 현대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옛글에서도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품을 쉬 볼 수 있습니다. 자화상에 마음을 부치기도 하고 거울 속의 자신과 대화하거나 죽음을 앞두고 삶을 차분히 정리하기도 합니다. 참된 나를 찾는 모습은 자만(自挽) 자명(自銘) 자전(自傳) 자지(自誌) 자찬(自讚) 등 다양한 문체를 통해 드러납니다.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살다 간 선비 홍길주(1786~1841)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도 그런 글입니다. “나는 자네와 일심동체일세”라고 말을 걸기 시작한 이 글은 자신의 독서 경향을 질타하고 경계하면서 반성을 촉구하더니 “내가 자네와 함께 도에 나아갈 수 있다면 아주 큰 행운이겠네”라고 말합니다. 요즘 말로 쉽게 이야기하면 청언소품(淸言小品), 즉 짧고 감성적인 에세이만 즐겨 읽으려 하는 자신에게 “그러지 말고 사서삼경 등 고전으로 돌아가라”고 일깨우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교훈적이고 딱딱한 고전만 읽을 수 있겠습니까? 밥도 먹고 군것질도 해야 하고 술도 마셔야지요.
그런데 홍길주가 살던 시대는 청언소품이 크게 유행해 글쓰기 방식마저 달라지는 바람에 정조가 문체반정(文體反正)으로 지식인들을 윽박지르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기분열과 갈등의 문장, 남들에게 자신의 ‘알리바이’를 밝히는 글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재미있다기보다 딱하고 안타까운 글입니다.
다시 현대로 돌아와 김광규의 시 ‘나’의 전문을 읽어봅니다.
“살펴보면 나는/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나의 아들의 아버지고/나의 형의 동생이고/나의 동생의 형이고/나의 아내의 남편이고/나의 누이의 오빠고/나의 아저씨의 조카고/나의 조카의 아저씨고/나의 선생의 제자고/나의 제자의 선생이고/나의 나라의 납세자고/나의 마을의 예비군이고/나의 친구의 친구고/나의 적의 적이고/나의 의사의 환자고/나의 단골술집의 손님이고/나의 개의 주인이고/나의 집의 가장이다.//그렇다면 나는/아들이고/아버지고/동생이고/형이고/남편이고/오빠고/조카고/아저씨고/제자고/선생이고/납세자고/예비군이고/친구고/적이고/환자고/손님이고/주인이고/가장이지/오직 하나뿐인/나는 아니다//과연/아무도 모르고 있는/나는/무엇인가/그리고/지금 여기 있는/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나는 무수히 많고, 모순되기도 하고, 다 아는 것 같아도 아무도 모르는 존재입니다. 더욱이 이걸 하고 싶은데 실제로는 그렇게 할 수 없고, 이렇게 행동하고 있지만 속마음은 정반대인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경험하며 삽니다. “차가운 진실보다는 따뜻한 기만이 낫다”는 말도 갈등을 느끼게 합니다. 제도와 규율 때문이든 체면과 위신 때문이든 자신을 절대적으로 속이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 나의 화해 또는 통일이며 나와 남의 조화입니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군자는 남과 함께 어울리되 같지 않지만 소인은 남과 같은데 어울리지 못한다”는 논어의 말도 이런 조화를 강조하는 것이겠지요. 이 말이 나와 남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면 文質彬彬 然後君子(문질빈빈 연후군자), “겉과 속이 함께 빛나야 군자”는 나 자신의 조화와 균형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는 나는 남이 아는 나와 다르고, 내가 아는 남은 남이 아는 남과도 다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기는 참 어렵습니다. 자기보다 큰 적은 없다고 합니다. 중국 송 나라 때의 보제(普濟)선사는 “나 말고 누가 나를 괴롭히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것도 나, 나를 망치는 것도 나입니다. 그러니 자기부터 이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논어에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라”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나옵니다. 노자 도덕경 33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로울 뿐이지만 자신을 아는 자라야 명철하다.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센 데 불과하지만 자기를 이기는 자라야 진정한 강자이다.”[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남을 아는 것은 상대적 분별이지만 스스로를 아는 것은 절대적 자각입니다. 바로 이 절대적 자각을 탐색하고 궁구하는 것이 인류역사이며 사상사의 발전이 아니겠습니까?
한 해가 바뀌는 시점에는 누구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지나온 일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삶을 위한 다짐에는 ‘자지자명(自知者明)’의 가르침이 절실합니다.
그런 자지자명의 반성으로 이제 ‘BML 칼럼’을 접으려 합니다. 2년 동안 서투르고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길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해묵은 손때’를 떠나보내려 합니다.
>> 임철순(任喆淳)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