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대한민국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건배사를 외친다. 함께 외치며 안면을 익히고, 친목을 다지고, 우의를 키운다. 요즘은 연말연시도 아닌 데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행사와 회식이 줄어 건배사 외칠 일이 거의 없다. 그래도 끊임없이 새것은 나온다. 만들 건 만들어야 되나보다.
얼마 전까지 “나라도”를 선창하면 “잘하자”로 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라꼴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의 건배사일 것이다. 내가 가장 최근에 들은 것은 ‘정경심’이다.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석방된 이후에 나온 거 같은데, 말이 재미있다. “정, 정치 이야기(정경심 이야기?) 하지 말고, 경, 경제문제 따지지 말고, 심, 심각한 이야기 하지 말고” 이런 뜻이다. “정경심!” 하고 외치면 “아멘!”으로 받는다. “아, 멘트 좋다!” 그 말이다. “멘트 좋다!”는 “멘트 좋~고!”일 수도 있고, “멘트 쥑이네”일 수도 있고, “멘트 끝내준다”일 수도 있지.
모임에서건 카톡방에서건 정치나 종교 이야기 꺼내면 골 아파진다. 최근엔 ‘4·15 부정선거’ 주장을 퍼뜨리거나 윤미향 사건을 계기로 친일과 토착왜구를 시비하는 사람들 때문에 서로 피곤하고 어색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딴 이야기 하지 말자고 나온 게 ‘정경심’이다. 정말 필요한 건배사 아닌가. 애들 울거나 떼쓸 때 “뚝!” 하고 말리는 것 같은 효과를 거둘 수도 있겠다.
건배사는 원래 중·노년의 몫이다. 젊은이들은 이런 거 말고도 할 일과 놀 거리가 많은데 굳이 건배사를 찾을 필요가 없다. 시니어들이 즐기는 건배사는 나이야 가라, 백두산(백 살까지 두 다리로 산에 가자),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죽자), 이기자(이런 기회를 자주 갖자), 이런 것들이다. 늙기 싫고 병들어 아프기 싫은 마음이 담긴 건데, 이런 말을 모르는 사람들은 삶의 진도가 늦는 걸 반성하라.
시니어들이 모이면 뒤풀이와 건배사까지 해야 모임이 끝난다. 코로나 이전 상황이겠지만 어떤 사람이 지하철 풍경을 써놓은 인터넷 글이 재미있다. “산악동호회 한 열댓 명 탔는데, 동호회 회장이 산만 타고 뒤풀이 빠짐. 어떤 아줌마가 회장에게 ‘위하여 해야지’라며 스피커폰으로 전화기 켜놓고 ‘위하여 좀 혀~’ 하자 그 사람이 ‘나 지금 지하철이라 힘들어’ 그랬더니 열댓 명이 몽땅 ‘지하철이라 힘들어~!’ 하고 소리침. ㅋㅋㅋ”
시니어들이 애용하는 건배사엔 ‘노발대발’도 있다. “노인이 발기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는 말인데, “노발!” 하고 외치면 “대발!”로 받는다. 노인은 발광하거나 발작하거나 발발거리며 (남의) 발목이나 걸지 말고 발기나 잘되면 제일 좋겠지. “노인이 발전해야…”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다. 역시 발기가 가장 잘 어울리는 말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1주기에 이 건배사가 등장했다. 봉하마을 추도식이 끝난 뒤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여권 인사들과 오찬을 할 때 “노발대발”을 외쳤다고 한다. 앞에서 설명한 그 노발대발이 아니라 “노무현 재단이 발전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는 뜻이었다. 본인이 주도한 건지 참석자들과 함께 외친 것뿐인데 그렇게 보도된 건지는 모르겠다. 노발대발 건배사는 같은 날 다른 지역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회식에서도 나왔다. 여기서는 ‘노’가 ‘노무현 재단’이 아니라 ‘노무현 정신’이었다고 한다.
노발대발은 노동자단체도 많이 쓴다. “노동자가 발전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 또는 “노총이 발전해야 대통령도 발전한다.” 이런 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0월 24일 노동계 대표단을 청와대로 초청한 만찬행사에서도 이 건배사가 나왔다. ‘노발대발’은 한국노총이 제작하는 노동 전문 팟캐스트 방송의 이름이기도 하다. ‘노동자 편파방송’이라는 슬로건 아래, ‘갑에 치이고 삶에 지친 2천만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방송’을 표방하고 있다.
노발대발로 다른 말은 없을까? 인터넷 뒤져보니 이렇게 변형해서 외친 사람들도 있긴 있더라. “노가리만 풀지 말고/발바닥 불 나게 일해(뛰어)/대한민국/발전시키자”, “노력하고 노력하라/ 발바닥도 건강하게/ 대단한 성과와/ 발전을 위하여.” 그러나 좀 억지스럽고 어색한 건 사실이다.
노발대발은 원래 성이 나서 화를 내고 또 크게 낸다는 반복 표현이다. 다산 정약용의 ‘여름에 술을 대하다’[夏日對酒]라는 시에는 “자식 놈이 그제야 노발대발하면서”[兒乃勃發怒]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발발노(勃發怒)가 곧 노발대발이다. 활발(活潑)보다 활발발(活潑潑)이 더 생동하는 것처럼 노발대발보다 더 생생한 표현 같다. ‘勃’은 노할 발, 발끈할 발, 일어날 발 자다.
노발대발을 바꾸어 대발노발이라고 하면 어찌 될까? 대한민국이 발전해야 노(노무현 재단이든 노동자든 노숙자든 노래방이든 노인이든)가 발전한다는 뜻이 되겠지. 케네디가 취임연설에서 그랬잖아?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 그가 처음 창안해낸 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길이 기억되는 역사적 명연설이다. 바로 그런 것.
하지만 즐겁자고 외치는 건배사를 가지고 이것저것 따질 거 있나? 코미디하자는데 왜 다큐를 찍느냐고 시비 거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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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읽고 싶은 도서들 - by 한성희
나는 젊음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찰스 핸디 저)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지닌 각계각층 60대 여성 29명의 이야기. ‘요즘 60대의 초상’을 콘셉트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경영철학자인 찰스 핸디가 글을 엮고,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 핸디가 사진을 찍었다.
온 더 무브 (올리버 색스 저)
인간의 고독을 바라보며 얻은 통찰을 글로 담아낸 시대의 지성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사람과 지적 탐구에 대한 열정, 성 정체성에 대한 고뇌 등을 비롯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 과학자들과의 우정 등을 들려준다.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저)
20세기 청춘들을 열광하게 한 성장소설. 사립학교의 문제아인 주인공이 퇴학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며칠간의 일화를 그린다. 10대들의 언어를 고스란히 살린 문장과 기성세대를 향한 예리한 성찰이 돋보인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호모 사피엔스부터 인공지능까지, 방대한 역사를 한 권에 담았다. 생물학, 경제학, 종교학 등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의 시원부터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 인간의 끊임없는 진화를 조명한다.
1800년대 중반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의 정치혁명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변화의 중심에 철도가 있었다. 빠른 속도의 이동은 세상을 보는 방식과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영향을 끼쳤다. 접이식 이젤, 튜브형 물감의 등장으로 밖에 나가서 직접 보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쉬워졌다. 이런 변화들은 빛과 색채의 회화를 도입하려는 세잔, 드가, 르누아르, 모네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등장을 촉진했다.
점차 발전되는 경제적 풍요와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으로 그림의 대상도 변했다. ‘자연의 풍경’에서 ‘풍요롭고 여유로운 지금 여기의 삶’으로 바뀌었다. 그리고자 하는 모든 것이 그림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그렇게 세상이 변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파리의 상징 에펠탑이 1889년 완공되었다. 에펠탑은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새로운 기술 발전과 변화는 과학적 광학 이론에 따른 색채 구사를 필요로 했다. 여기에 맞춰서 ‘조루즈 쇠라’ 같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나타났다.
한편, 인상주의의 성공을 넘어 본질적이고 영원한 것에 갈망을 품은 화가들도 있었다. 이들은 파리를 떠났다. 세잔, 고흐, 고갱이 그들이다.
인상주의의 전성기는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의 시기였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식민지 획득과 물질문명의 발달에 대해 비판하는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네, 고야 등이 대표적이다. 이어서 회화는 마티스 등 야수파와 피카소 등의 입체파로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인간의 탐욕과 물질의 팽창은 전쟁으로 폭발했다. 이후의 그림은 고통과 비극이었다. 그래서 인상주의가 오랫동안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미술 사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마침 이 시기에 해당하는 프랑스의 대표적 그림들을 모아 ‘프렌치 모던:모네에서 마티스까지’전이 ‘고양아람누리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곳으로 그림 감상 여행을 떠났다.
1800년대 중반 대대적인 도시 정비로 파리가 지금의 형태로 재편되는 시기에 파리 근교에 모여 순수한 자연과 농민들의 가치를 그린 화가들이 있었다. 사실주의 화가 밀레, 카미유 코로 등이다. 이들은 신화나 영웅 이야기가 아닌 농촌을 중심으로 눈 앞에 펼쳐진 환경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밀레의 농촌 그림은 인기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쥘 브르퉁’의 농민 그림이 더 인기가 있었다.
전시회에서 내가 첫 번째로 만난 여인도 ‘쥘 브르통’의 ‘양초를 들고 있는 농민 여성’이었다. 대서양에 접하고 있는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흑백색 전통 의상을 입은 노파가 양초와 묵주를 든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당시 급속도로 변하는 세상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검소하고 소박한 종교적 자세와 전통을 고수하려는 고집이 화폭에 담겨 있다.
‘쥘 브르통’의 다른 작품으로 감자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민 여성을 그린 '귀갓길'도 있다. 세 명의 젊은 여성들이 감자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 모습이다. 1848년 혁명의 영향 때문인지 농촌 노동자들을 영웅화하고 싶어 한 당시 사회의 허구가 반영되어 장밋빛 하늘을 그린 배경이 눈에 띄었다. 가운데 그려진 여인은 농촌에서 일하는 여성의 얼굴이라고 하기에는 세련되고 곱다. 그것은 고흐의 말처럼 작업실에서 그림이 그려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주의의 한계를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농부는 농부답고, 밭 가는 사람은 밭 가는 사람다워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두 번째 만난 여인은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스파르타의 젊은 여인’이다. 야외에서 직접 그린 스케치를 바탕으로 화실에서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작업을 한 그는 가장 좋아하는 모델을 선택해 자신의 시정을 불어넣는 방법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따라서 그림에 나오는 여인은 작가의 이상적 여성상이었다. 집시 복장 차림의 나른한 자세와 눈길에서 작가의 마음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이어서 ‘앙리 팡탱 라투르’의 ‘마담 레옹 마스터’를 만났다. 마네의 영향을 받은 작가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사이를 넘나들었다. 이 그림 역시 명암을 깊게 해 정확히 신중한 묘사를 한 사실적인 초상화다. 그녀가 입은 화려한 이브닝드레스와 그 뒤에 감춰진 우울한 분위기가 당시의 경제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이라는 모순된 시대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여인의 체념한 눈빛은 기본적 욕구와 욕망마저 포기한 무너져버린 생의 의지가 보여 애잔한 아픔의 해일이 밀려왔다.
주최 측의 의도였는지 바로 이어서 애잔한 가슴을 먹먹한 비애로 만든 조각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스 신하에 나오는 ‘다나이드 이야기’를 주제로 형벌을 받아 밑바닥이 빠진 항아리에 계속 물을 채워야 하는 ‘다나이스’를 표현한 로댕의 조각 작품이다. 이 ‘다나이드’는 로댕에게 조각적,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제자이자 연인 ‘카미유 클로텔’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이 여인을 만난 순간 잔뜩 웅크린 채 울고 있는 가냘픈 등줄기와 팔에서 살갗의 온기가 느껴졌다. 벗어나고 싶은 운명을 말하듯 방향을 돌린 얼굴과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전하는 절망에 대한 공감 때문에 미술관 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슬픔, 고통, 불행이 너무나 아름다운 우아한 선과 볼륨으로 표현되어 여인의 운명을 품앗이 하고 싶다는 깊고 깊은 한숨의 울림이 가슴 속에서 들려왔다.
이어서 ‘다나이드’와는 완전히 다른 여인을 만났다. 당시의 경제적 번영과 문화예술의 번창을 상징하는 여인으로 이탈리아 출신 ‘조반니 볼디니’의 ‘여인의 초상’이다. 초상화가로 유명했던 작가는 뉴욕의 자선가 ‘플로렌스 블루멘탈’을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표현했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검은 머리카락과 드레스가 하얀 피부가 대조를 이루었다. 특히 역동적인 자세를 순간 포착한 구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여인의 옆에 있는 의자에 눈길이 멈췄다. 곡선을 ‘가우디’는 신의 선이라고 말했지만,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선이 그림 속에 있었다.
야수파를 대표하는 화가 ‘앙리 마티스’가 그린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여인’도 만났다. 마티스의 개인적 경험 때문인지 북아프리카를 여행한 후 그린 이 그림에서 그는 모델인 이탈리아 여성 ‘로레토’에게 모로코 전통 의상을 입혀 그림을 그렸다. 분홍색 천의 의자, 길고 검은 머리카락, 녹색 간두라에서 야수파의 특징인 보색대비가 잘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만난 여인은 ‘드가’의 ‘몸을 닦는 여인’이다.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달리 실내 빛의 효과와 순간을 포착하는 그림을 즐겨 그린 특성이 나타났다. 드가는 주로 매춘부들을 모델로 고용해 누드화를 그렸다. 그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번성했던 당시 매춘업의 실태와 작가의 여성에 대한 남성 중심적 시각이 나타난 현상이다. 그림은 단색의 밑그림으로만 돼 있어 미완성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관람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는 모델의 자세는 작가의 훔쳐보는 시선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노골적인 여성 혐오주의자였던 드가가 가지고 있던 자기모순의 내면을 드러낸 것은 아닐까?
올해에는 벚꽃놀이도 없었고 봄꽃의 흐드러짐도 만나지 못하였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새도 없이 지나는 가장 젊은 날의 봄이 아쉽다. 연두색 새잎이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5월을 느끼기 좋은 곳이 어딜까 고민하다 창덕궁 후원을 떠올렸다. 가을에는 몇 번이나 갔으나 봄은 처음이다.
창덕궁은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 때 만들어졌다. 형제의 피를 묻히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경복궁으로 돌아가는 것을 꺼렸다. 1405년 새롭게 창건된 창덕궁은 이궁(離宮)이었으나 조선의 역사 속에서 종종 법궁(法宮)의 역할을 하였고 현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 평가받고 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들어서면 회화나무 여덟 그루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백 년 된 노구에 연두색 새잎이 돋고 있다. 궁궐 안의 가장 오래된 돌다리인 금천교를 건너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정전인 인정전이 나온다. 그 뒤로 편전이었던 선정전, 왕의 침전이었다가 편전으로 사용한 희정당과 대조전이 있다.
왕과 왕비의 침실이기도 했고 왕자와 공주의 교육 장소로 쓰였던 대조전은 조선 멸망을 지켜본 비운의 전각이다. 한국을 일본에 넘기는 합병조약이 이곳에서 체결되었고 ‘창덕궁 전하’라 불리던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이곳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전각들은 대부분 촘촘하게 붙어있어 수월하게 둘러볼 수 있다. 사대부 양식의 건물인 낙선재만 주 전각들과 약간 떨어져 있다. 이에 반해 후원은 꽤 발품을 팔아야 한다.
양옆에 긴 담벼락이 늘어선 길을 따라 후원으로 들어간다. 비밀의 정원답게 들어가는 입구가 길다. 이때부터 초록 샤워기를 틀고 그 아래에 선 듯 느껴진다. 대여섯 살 정도 된 딸 둘과 고궁 나들이에 나선 한 가족이 앞서 걷다가 감탄사를 터뜨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구부러진 길 끝부터는 더 깊은 초록의 터널이다.
싱그러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치열하게 달린다. 뽕나무, 은행나무, 쪽동백나무, 함박꽃나무, 느티나무.... 나뭇잎을, 그러쥐어 꾹 짜면 연두와 녹색이 절묘하게 섞인 5월의 색이 주르르 흘러내릴 듯하다.
숲 터널 끝에 자리한 부용지가 은밀하다. 사각의 연못을 가운데 두고 동쪽에는 영화당이 남쪽과 북쪽에는 각각 부용정과 주합루가 서 있다. 정조가 즉위한 해인 1776년에 만든 주합루는 계단식 구조물 위에 2층 누각 형태를 띠고 있는데 1층은 도서관인 규장각이, 2층은 학자들의 배움터이자 토론장으로 애용되었다.
부용지를 나와 숙종 때 만들어진 애련지와 조선 시대 양반가옥을 본떠 만든 연경당을 둘러보고 다시 시작되는 초록 샤워 길을 지나 왕의 휴식공간이었던 존덕정에 이르러 발길을 멈춘다. 쉼조차 싱그러운 봄이다. 너른 숲길에 작은 오솔길이 나 있다. 길을 따라 들어가면 인공적으로 물길을 낸 옥류천이 나타난다. 이곳 또한 휴식처이다.
5월의 창덕궁은 어느 곳 하나 싱그럽지 않은 곳이 없다. 전각과 후원의 생기 가득한 풀과 나무 사이를 걸으며 코밑까지 온 봄을 느낀다. 숨바꼭질 동무를 찾아 기쁘듯 숨어있다 얼굴을 내미는 연못과 정자에서 휴식의 기쁨을 누린다. 가는 봄날의 아쉬움이 달래 진다.
관람 안내 : 창덕궁의 전각은 휴관 일(매주 월요일)을 제외하면 상시 관람이 가능하지만 후원은 궁궐 전각 관람료(대인 3000원)와는 별도의 후원 관람료(대인 5000원)를 내고 들어간다. 후원 관람은 90분 정도 소요되며 해설사와 함께 회차 별 100명으로 입장을 제한하고 있다. 예약은 6일 전 오전 10시부터 입장 전날까지 받는다. 예약인원 50명, 당일 발권 50명이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해설사 없이 회차별로 입장하여 자유 관람하는 형태로 운영 중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제롬 파월 의장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미국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주최한 화상 연설에서 “심각한 경기 하강 위험이 있다. 깊고 긴 충격은 경제 생산성에 지속적인 충격을 가할 수 있다”며 “가계와 기업체의 파산이 현실화되면 수년간 경제에 부담을 가할 수 있다. 연준의 통화정책 도구를 최대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의 범위와 속도는 전례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떤 경기 침체보다도 훨씬 더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의 경기 침체는 바이러스에 기인한 것이다. 확산을 제한하기 위해 취한 조치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역사상 있었던 경기 순환에 따른 기존의 침체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또한 마이너스 금리에 대해 “연준의 시각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그 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조치가 아니다”고 말했다. 도 “마이너스 금리의 실효성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우리는 좋은 정책 도구들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모든 것이 코로나19로 멈춰진 세상. 그러나 4월 초 예술의전당에서는 반짝이는 보석들과 그 주변을 둘러싼 적지 않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감탄이 배어나왔다. 코로나19를 막으려는 개개인의 긴장감 속에서도 전시품들을 향한 뜨거운 관심이 느껴지던 이 자리는 바로 보석 디자이너 김정희의 개인전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어워드에 유일한 한국인 심사위원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내 멜라니아 여사를 위한 브로치를 만들며 국내 최고의 보석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그녀를 만나 작품 세계와 삶에 대해 들어봤다.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평가받는 김정희 보석 디자이너는 지난 3월 28일부터 4월 5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 전시기간 내내 자리를 지켰다. 직접 사진 촬영과 편집까지 하며 준비한 전시회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본 그녀는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전시를 치른 소감을 묻자 감동받았다고 대답했다.
“악조건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이 와서 관심을 보여주시더군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목적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희망을 얻었어요. 두 개의 나뭇가지가 결국 한몸이 된 ‘연리지’ 작품을 보면서 상처 입은 나뭇가지가 상처 안은 나뭇가지를 밀어내지 않고 안아주고 보듬어주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감상평을 해주셨어요. 저, 너무 행복했어요.”
그녀는 시간을 품은 듯한 작품을 만들 때마다 자연과 사람을 끊임없이 고찰한다. 재료도 일반적인 귀금속에 얽매이지 않고 디자인에 맞춰 자유롭게 선택한다. 18K 핑크골드 가지를 힘차게 뻗게 하니 다이아몬드와 투어멀린 그리고 해수진주로 꽃을 피워 핑크와 블루 사파이어로 물결치듯 열매를 맺게 한다. 여인의 꿈이 진주가 되어 귀걸이로 피어나게 하고, 그리움을 별로 승화해 목걸이를 걸치게 하고, 소나무의 절개를 브로치로 반짝이게 하고, 천년의 사랑은 다이아몬드 오로라를 만나 링이 되게 한다.
이처럼 그녀의 작품들은 예술성과 순수한 아름다움을 함께 아우르며 영혼까지 투영해야 얻을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멜라니아 여사를 위해 브로치를 만들다
이번 개인전에 나온 170여 점 중 20여 점은 개인 소장품이다. 보석의 오너들은 김정희의 전시 제안에 기꺼이 함께했다.
“저는 작품을 만들 때 스토리를 넣으려 노력해요 보석이 아름다운 건 화려함 속에 개인의 추억과 역사를 담을 수 있어서죠.”
그녀의 작품을 소장한 사람 중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내인 멜라니아 여사도 있다. 2017년 한미정상회담으로 트럼프 대통령 내외가 방한을 준비하던 시기에, 주한미군 사령부에서 그녀에게 연락해 작업 의뢰를 했다. 아직 방한 관련 소식은 언론에 보도되기 전이었기에 그녀는 아무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누구냐고 물었다. 주한미군 쪽에서 온 대답은 ‘말할 수 없다’였다.
“아무런 내용도 없이 의뢰하신 분이 붉은색(red)을 선호한다는 것이 전부였어요. 받는 분에 대한 정보 없이는 도저히 작업이 안 된다고 하니 며칠이 지난 후 사진을 한 장 보내왔어요.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가 찍힌 사진이더군요. ‘그녀는 붉은색을 좋아한다’라고 딱 한마디 적혀 있더군요.”
그녀의 모든 작업은 스토리텔링으로 시작되는 만큼 용도에 맞게 매듭 형태 하나하나와 실크 컬러까지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노리개 겸 브로치는 나비매듭을 모티프로 디자인에 착수했고 마침내 주얼리로 탄생했다. 여덟 개의 매듭으로 되어 있는 나비매듭은 장수와 부부의 화합을 상징한다. 또한 나비는 희망을 상징한다.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정상회담인 만큼 화합과 희망을 중요한 메시지로 담았다. 물론, 색은 붉은색이었다. 작품을 전달한 후 그녀는 멜라니아 여사가 굉장히 만족해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비 모양의 주얼리 장신구와 탈부착이 가능한 나비 브로치를 멜라니아 여사에게 선물로 전하면서 대한민국 주얼리 문화외교의 품격을 한층 높이는 계기도 마련했다.
세계 디자인 어워드의 유일한 한국 심사위원
김정희는 사실 국내 보석 디자인 분야의 1세대라고 해도 될 인물이다. 그녀가 처음 이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보석 디자인과 관련한 학술적 영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할 때도 보석 감정사는 있었지만 보석 디자이너는 없었다. 학교에서 관련된 공부를 한다 해도 장식 오브제나 목공예 정도나 배우던 시절이었다.
“일은 1993년부터 시작했죠. 방학 때 신세계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주얼리를 접했어요. 혼자 나름대로 보석에 대해 공부한 게 있어서 그걸 적용해봤죠. 당시 일당이 보통 만팔천 원이었는데 저는 삼만팔천 원을 받을 정도로 매출을 높였죠. 그게 인연이 돼서 주얼리 업체에 스카우트돼 졸업하기 전에 취업했어요.”
우리나라 경제사에서 가장 혹독했던 IMF 외환위기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수출 파트를 맡아 1위로 올려놓았다. 대단한 커리어우먼이었다.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보석시장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주얼리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더하고 싶었어요.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같은 학과를 전공한 후 보석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디자인을 위한 보석 연구에 몰입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1999년에 퇴사하면서 보석디자인연구소를 열었고 2001년에 첫 브랜드를 론칭했어요.”
2001년은 아직 30대이던 시절이었다. 생기발랄하고 의욕이 넘치던 그 시절의 작품들은 추상적으로 자연을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는 비로소 자연을 제대로 형상화해 풀어내게 되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주얼리 디자인의 세계는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워낙 값비싼 재료를 취급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작업을 시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녀는 철학이 있는 차별화된 보석 디자인을 추구해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아시아 3대 디자인 어워드 ‘K-DESIGN AWARD’ Winner로 선정된 그녀는 2017년,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어워드 'Italy A'Design Award'에 도전했다. 세계 180개국, 110개의 디자인 카테고리에 6만 5000점이 출품되었다. 이중에서 선택된 1780점의 입상자 작품 중 그녀는 안경·시계·주얼리 카테고리에서 은상을 받았다. 그 당시 175명 전 세계 심사위원 명단에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된 그녀는 두 번째도 다시 도전해 은상을 받으며 세계 랭킹 4위에 레전드 디자이너라는 평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마음먹게 됐죠. 다음 목표는 심사위원이 되어야겠다고. 제가 그 길을 개척해보겠다고 소신을 가지고 도전했어요.”
그 다짐은 결국 이루어졌다. 그녀는 올해부터 ‘Italy A'Design Award’ 심사위원이 됐다. 한국인으로선 최초이고 현재 단 한 명인 쾌거다.
작품의 영감이 된 ‘어머니’
김정희 디자이너의 인생에서는 어머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의 삶 전반뿐만 아니라 작품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영향력은 곳곳에 숨어 있다.
“어머니는 누굴 따라가기보다는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라고 하셨죠. 제 정신적 지주였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어요. 어머니가 없었으면 영감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2남 2녀의 장녀인 그녀는 어머니와 친구처럼 지내면서 작품이 만들어지면 가장 먼저 보여주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지금 세상에 없다.
“제 작품 ‘그리움이 향기로 피어나다’의 나무(미선나무 꽃)들은 어머니의 향기를 품고 있고 함께했던 정서가 담겨 있어요. 어머니는 2018년 2월 5일 의료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제 곁을 떠나시기 전날 목욕을 시켜드렸죠. 그때 어머니 손을 계속 잡고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녀의 작품들 중 상당수는 어머니와 연관이 있다. 예를 들어 ‘생명의 나무’ 연작은 어머니를 살려내고자 하는 의지로 만든 작품이다. ‘생명의 나무’의 마지막 작품 ‘하늘에 뿌리를 두다’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났지만 마침내 하늘로 올라가는 인간사를 형상화했다. ‘나비 되어 날다’라는 작품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는 49일 동안 산소를 찾았다. 어머니는 매일 꿈에 나왔다. “네가 계속 우니까 내가 떠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49일째 되는 날 산소에 갔는데 햇살도 따뜻하고 아지랑이도 피어올랐고 꽃도 피었더라고요, 그날 진짜 떠나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어느 날은 어머니가 늘 앉아 계시던 정원에 앉아 있는데 노랑나비가 와서 제 옆에 앉더군요. 제가 움직이니까 나비가 정원을 날아다녔어요. 저는 나비를 따라다녔죠. 그러다 나비가 사라졌어요. 그러고 나선 꿈에 안 나오시더라고요. 제 ‘나비’ 작품들은 그때 영감을 받고 만들어졌죠.”
장롱 속 잠자는 주얼리에 새 생명을 불어넣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보석 대물림. 그녀가 그 보석들을 새롭게 리폼해 재창조한 ‘Reborn’ 작품들은 시간을 거스르는 특별한 예술품으로 빛나고 있다.
김정희 디자이너는 ‘Reborn’ 작품 의뢰를 받으면 의뢰자의 삶의 철학, 나이, 생활 패턴, 물려받은 동기, 왜 의뢰를 하게 됐는지 등등 희로애락의 모든 걸 듣고 그 스토리를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한다.
“주얼리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라 위로와 행복, 감동을 줄 수 있는 생활 속의 예술품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저의 디자인 철학입니다. 작품 하나하나에 삶의 깊이가 묻어나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작업할 때는 오로지 그 생각만 해요. 영감을 받아야 하니까요.”
장롱 속에서 잠들어 있던 귀한 패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한 사람만을 위한, 세상에 하나뿐인 주얼리’로 재탄생시키는 일. 혼을 담은 그녀의 손끝으로 빚어낸 주얼리들은 자손들에게 마음의 보물로 간직할 가보로 물려줄 수 있을 만큼 가치가 있다. 보석 자체의 화려함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디자인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창조해내려는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보석 디자인은 디자인이 주연이며 보석은 디자인을 빛나게 하는 조연이어야 한다. 그러한 관점이 다른 보석 디자인과 그녀가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말한다. 보석이 시선을 압도하는 디자인보다는 디자인이 더 돋보이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작품을 만들 때 그 사람을 담아야 한다는 기준을 지키려면, 그 작업시간이 보통 걸리는 일이 아닐 터. 그러나 그녀는 일만 하며 사는 삶이지만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한다. 다만 작품을 떠나보낼 때는 와인을 한 잔 한다. 허전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가장 작품을 많이 만들었죠.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이었어요.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어머니의 그리움이 희망의 씨앗이 되어 꽃으로 피어나는 작품을 만들었죠.”
보석을 통해 보여주는 다양한 조형예술 세계
그러나 주변의 연락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보는 것은 당분간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스케치만 해놓고 작품을 못 만든 게 많아요. 특히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봉황이죠. 봉황이 나타나면 태평성대가 열린다는 얘기가 있으니까요.”
그녀가 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생활에 밀착한 조형 예술로서의 보석 디자인이다.
“생활 속 예술로서 감동과 위로, 소통할 수 있는 보석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이미 보석 디자인은 작은 조형예술이에요. 그렇다면 큰 조형예술로도 가능하겠죠. 그래서 완전한 조형예술의 한 분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어요. 제 삶이 멈추지 않는 한 항상 꿈을 꾸며 도전할 거예요.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하는 삶은 살지 않으려 합니다.”
그녀에게 보석은 희망, 지속되는 꿈이다. 그래서 보석을 볼 때마다 새로운 세계로 빠져든다고 말한다. 그녀가 보석을 통해 만들 더 넓고 다양한 예술세계를 기대해본다.
내비게이션을 따르다 보니 차가 산으로 들어간다. 자연을 한 자락 슬쩍 걸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연 속에 있는 미술관이라 들었다. 그러나 이토록 깊은 산중일 줄이야. 씨억씨억 초록을 뿜는 숲 사이 언덕을 올라 주차장에 도착하자 아예 산꼭대기이지 않은가. 기발하게도 산정(山亭) 미술관이다. 그래서 뮤지엄 산(山)? 그러나 ‘山’이 아니라 ‘SAN’이다. 공간(space), 예술(art), 자연(nature)을 합성한 약자다.
산정이라 사방에 보이느니 산이다. 세상을 분할한 하늘 절반, 산봉우리들 절반. 하늘과 산 사이에 뮤지엄이 슬쩍 끼어든 형국이다. 간신히 자연에 가담한 약세(弱勢)가 아니다. 부지는 넓고 건물은 우람해 훤칠하다. 우람하나 이물감이 없다. 건물의 태와 됨됨이에 뾰족하게 튀는 게 없어 자연과 불화 없이 조응한다. ‘건축의 철학자’로 불리는 안도 다다오(安藤忠雄·79)의 작품이다. 그는 자연과 건축, 그리고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본때 있게 구현하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이 뮤지엄의 설립자는 어떻게 산꼭대기에다 일을 벌일 발상을 했을까? 자연을 애호하는 못 말릴 취향과 세상의 추세를 읽는 시퍼런 촉이 아니고선 감행하기 어려운 역사(役事)다. 삼성가 이병철 회장의 장녀로 한솔그룹을 이끌었던 이인희 고문(2019년 작고)이 세웠다. 그는 열렬한 아트컬렉터. 평생 모은 소장품을 자연으로 끌어들여 건립한 산상 미술관으로 허를 찌르듯 관습을 흔들었다. 뮤지엄 산의 태동부터가 이렇게 전위적이다.
판석을 깐 진입로를 따라 ‘플라워 가든’으로 들어선다. 뮤지엄의 초입일 뿐이지만 완상할 게 많아 벌써 다른 세상이다. 패랭이꽃 군락과 하얀 자작나무들, 조각정원이 어울려 뮤지엄의 서장을 열어준다. 산정의 적막한 허공엔 흩날리는 꽃잎들. 피어나는 봄꽃들 지천이라 몸에 묻을 듯 농밀한 건 꽃향기. 길은 곧게 나아가다 휘어지거나 급하게 꺾인다.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콘크리트 담장이 보도의 흐름에 편승해 시야를 슬쩍 가려주거나 별안간 확 트이게 한다. 인위적으로 풍경의 변주를 꾀한 설치다. 정교한 의도에 따른 구성이다.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풍경은 여실해 명쾌하지만, 보일 듯 말 듯, 보였다 안 보였다 변전하는 풍경은 삶을 은유한다. 노골적이어서 온전한 게 있던가. 보이면 있고 안 보이면 없는가. 높낮이와 커브의 각도를 세밀하게 재단해 조성한 담장의 효과로 풍경에 철학이 실린다. 이건 뮤지엄의 절정을 보러 가는 길목에서 만난 전희? 애피타이저? 풍경을 요리하는 수완에 즐겁다.
시각적 충격에 걸음 멎어
이제 ‘워터 가든’이다. 뮤지엄 산의 예술적인 외부 공간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유별한 곳이다. 여기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풍경이 존재한다. 산상 대지에 물을 가득 채워 꾸민 ‘물의 소국’(小國)이 있으니 말이다. 널따란 사각형 수조들에 담긴 물과 물빛으로 찬연한 공간이다. 갑작스런 물의 등장, 그 급속한 풍경의 변이라니. 시각적 충격에 걸음이 멎는다. 나는 지금, 물을 분할하며 본관으로 관입하는 보도 위에 서 있지만 수면을 밟고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보도와 수면이 수평을 이루어서다.
워터 가든의 물 경치에 흥취를 느끼는 사람이 많다. 수변 테라스엔 커피를 마시며 물과 산과 하늘을 바라보기에 적격인 벤치가 놓여 있다. 거기에 앉고 싶지만 이미 사람들이 앉아 있다. 도시라는 욕망의 경기장을 벗어나 고요한 수변에서 차를 마시며 모처럼 자연을 만끽하는 사람의 행복이여! 행복이 아니라 고독이면 어떤가. 물가에선 ‘나’를 바라보기 좋다. 저 투명한 물빛처럼 나도 한때 순수했다고, 내 안에도 물이 있어 눈물도 많아 슬프다고, 저 무심한 수면에 물살을 일으키는 실바람은 어디로 가며 나는 흘러 어디로 가는가, 라고 요모조모 쓸모 있는 상념을 굴려볼 만한 물가이지 않은가. 그러라고 안도 다다오가 워터 가든을 설계했다.
그의 건축적 오브제는 물, 햇빛, 바람 등 자연의 질료들이다. 그의 정신적 테마는 관조(觀照) 혹은 명상이다. 자연을 불러들인 건축으로 사람의 오감과 내면을 일깨우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일컬어 노상 하는 말들의 요점이 그렇다. ‘뮤지엄 산’이 완성됐을 때 그는 “그저 조용한 상자 같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술회했다. “사람들 모두가 자연과 예술에 대한 감성이 풍부해져,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도 썼다.
본관 복도로 들어서자 조명부터 침침해 구미에 맞다. 미술관들의 과한 조명에 나는 일쑤 김새더라. 인공조명은 안도 다다오의 자연주의에 위배된다. 가급적 자제! 그는 집요하게 자연의 빛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였다. 복도 벽면의 상부와 하부에 낸 창으로 빛이 들이치게 했다. 천장을 뻥 뚫어 빛과 함께 하늘을 수용한 전시실도 있다. 노출 콘크리트 벽과 기둥, 기하학적 선형, 번뜩이는 예각 구조물, 텅 빈 중정(中庭)…. 그의 건축적 키워드를 이루는 형태와 기법이 거대한 미술관의 세부에서 깨알처럼 구현돼 요동친다.
거장들의 작품 번갈아 전시
아이들은 천진해 이 웅장하고 복잡한 미술관에서 ‘비밀의 성’(城)을 본다. 상상을 펼쳐서다. 어른들은 압도될 테다. 상상을 잃어서다. 예술이 위대한 건 상상력의 거친 날개로 신과 맞먹으려 비상한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상상력 외에 자유정신의 높이, 자연을 읽는 섬려한 안목,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무한한 존중. 그런 게 안도 다다오의 건축세계를 가능케 했을 터인데, 햐, 그는 말하길 ‘창의적 체력’이야말로 개중에 관건이라 했다. 창의적 체력이란 건강한 몸뚱이의 에너지를 말한다. 79세 노인인 그는 오늘 아침에도 들입다 뛰었을 게 틀림없다. 흥미로운 유형의 인간이지 싶다. 그에겐 세상을 달관한 시늉이 없어 미덥다. ‘목숨을 건 강인한 도전 정신’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적 건축을 추구하는 리얼리즘과 적당한 금욕 추구도 멋있다. 뮤지엄 산의 건축미를 즐기기 위해선 안도 다다오의 이러한 성향들을 참고하는 게 좋겠다.
뮤지엄의 많은 전시실 가운데 인기를 누리는 공간을 볼까? 페이퍼 갤러리. 이곳은 종이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는 국내 최초의 종이 전문 박물관이다. 종이 관련 국보와 보물, 진귀한 유물과 공예품을 전시한다. 약하디약한 게 종이이지만 강하디강한 게 또한 종이. 인류의 역사는 종이의 발명과 함께 진보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이기심으로 살고 종이는 이타심으로 존재한다. 아낌없이 나를 내주길 운명으로 삼은 종이이니 이미 득도했다. 페이퍼 갤러리에 머문 시간은 ‘종이부처’와 만난 추억을 안겨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종이 재료로 쓴 파피루스도 여기에 있다. 유리온실 안에서 억새와 비슷한 파피루스가 푸르게 자란다. 순전히 파피루스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는 관람객도 있다. 청조갤러리는 뮤지엄 산이 소장한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이쾌대 등 거장들의 작품을 번갈아 상설 전시한다. 매년 두 차례 기획전도 열린다. 현재 ‘회화와 서사’ 전이 진행 중이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위해서는 특별히 독립공간을 마련했다. ‘백남준 홀’로 작품 ‘커뮤니케이션 타워’를 전시했다. 전깃줄을 뭉쳐 만든 타워 형태의 기반에 TV와 민속탈을 주렁주렁 매단 작품. 이게 뭔가? 현대와 전통의 통섭? 문명 굿판? 자화상? 어떻게 봐도 답일 게다. 엿장수 맘대로! 그냥 그렇게 내가 느끼는 대로 보고 즐기면 일단 그만이지 않을까. 현미경을 들이대고 종일 초파리의 겨드랑이 털 개수를 세는 곤충 학자처럼 골똘히 미술작품을 파고들 일 아니다. 궁리를 너무 하면 왜곡이 쉽고, 생각을 너무 조이면 좁아진다. 백남준이 금언을 설했다. “옷도 헐렁하고, 생각도 헐렁하고, 행동도 헐렁헐렁, 헐렁이가 일을 낸다구. 진짜 예술가는 헐렁이야!” 삶도 예술도 틀을 만들면 갇힌다는 얘기이겠다. 예술의 헐거운 정신을 보는 게 작품 감상법이라 들어도 무방하다. 백남준은 노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때 더듬더듬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중얼거림은 뜻밖에도 쓸쓸한 것이었다. “신은 참 불공평해. 내가 왜 쓰러져야 하나?”
아주 특별한 두 곳
마침내 자문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의 마음이란 물결처럼 요동치기 쉬운 것. 이걸 어떻게 다잡아야 할까. 뮤지엄 산에선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뮤지엄 내·외부 공간에 있는 미술작품 감상 자체가 명상적이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명상 체험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 두 곳이 있다.
제임스 터렐 전시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은 ‘빛의 예술가’로 세계에 알려진 작가다. 화가라면 당연히 ‘빛’과 무관할 수 없다. 빛을 탐구하고 묘사하는 게 화가의 본분이니까. 그러나 제임스 터렐의 작업은 많이 다르다. 그는 빛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빛을 ‘사용해’ 작품을 만든다. 일정한 공간에 빛을 집어넣으면, 즉 빛과 공간이 조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관한 오랜 실험 끝에 그는 놀랄 만한 ‘빛의 아트’를 정립했다.
터렐의 작품은 빛과 공간, 그리고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프로그램에 의해 세밀하게 조정된 자연광이나 인공광을 공간에 투입, 작품을 완성한다. 다시 말해 공간이라는 캔버스에 빛이라는 물감을 투사, 다양한 테마를 신비스럽게 풀어낸다. 터렐 전시관에서 관객은 네 가지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 가장 기이한(?) 작품은 간츠펠트(Ganzfeld, ‘완전한 영역’이라는 뜻)로 동굴 형태의 공간에 50여 종의 LED 빛을 순차적으로 살포하면서 작업을 진행한다. 이 작업의 목적은 관객에게 착시를 경험하도록 하는 데 있다. 동굴 속에 들어간 관객은 형언하기 어려운 신비와 환영에 즉각적으로 빠져들고 만다. 예컨대 공간 가득 짙은 안개가 끼고, 좁았던 공간이 무한히 확장된다. 이 돌연한 환각에 관객은 신비감과 황홀감 또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작업 종료 뒤, 빛이 보여준 강렬한 환상의 의미를 자문하기에 이른다. 여기서부터는 명상이다. 내가 빛을 보고 살았다, 하지만 빛이 보여준 게 참일까? 삶과 세상은 허상이지 않을까? 남에게 나는 허상으로 비치지 않을까? 이 일련의 의식 흐름을 통해 마침내 묻는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
명상관
지난해, 뮤지엄 산 개관 5주년 기념으로 개설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만든 돔 형태의 건물이다. 바닥에서 천장으로 길게 이어지며 초승달 모양으로 뚫린 틈새로 하늘이 보이고 빛이 들이친다. 쉼 명상, 여유 명상, 싱잉볼 명상 등을 전문가가 도와준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입소문이 나 참가자가 많다. 안도 다다오는 다음처럼 명상관의 의도를 피력했다. “태양의 움직임과 함께하는 공간에서의 명상으로, 자연과 우주를 만나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터렐 전시관과 마찬가지로 명상관을 이용하려면 별도의 입장권을 사야 한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가 수도권 동북부의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다. ‘사통팔달’ 교통 호재를 비롯해 다양한 개발 훈풍이 불고 있는 것. 다산신도시의 주택과 상권에 대한 투자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찾아가 살펴봤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로 수도권 부동산시장이 침체되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 전체 부동산시장이 가라앉은 건 아닌 듯하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가 다양한 호재로 들썩이고 있어서다. 개발이 확정된 교통여건은 다산신도시의 가장 큰 수혜 요인이다. 자연 속 여가활용시설과 생활편의시설을 곁에 둔 아파트 단지, 새로 들어서는 지식산업센터와 관공서로부터 얻게 될 상권수요 등도 지역가치를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8호선 연장사업 등 교통 호재들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다산신도시의 매력은 ‘교통여건’이다. 무엇보다 2022년 완공되는 ‘지하철 8호선 연장사업’은 다산신도시의 가장 큰 투자 포인트다. 이 사업을 통해 암사역~선사역(가칭)~토평역(가칭)~구리역~구리도매시장역(가칭)~다산역(가칭)~별내역 노선의 12.9㎞ 구간이 신설된다. 현재 다산신도시에서 잠실까지 광역버스로 1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연장노선이 개통되면 20분대로 단축된다. 그뿐만 아니라 지하철 2·3·5호선과 분당선으로 환승할 수 있어 다산시도시의 최대 교통 호재로 평가받는다.
2022년 착공 예정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노선사업’으로 인한 교통 호재도 기대된다. GTX-B노선이 개통되면 남양주 마석에서 인천 송도까지 80.1㎞ 거리가 급행철도로 연결된다. 다산신도시의 경우 인근의 풍양역에서 청량리역까지 10분, 서울역까지 15분 만에 이동할 수 있다. 현재 청량리역까지 가는 경춘선의 배차간격이 긴 탓에 GTX-B노선 신설 소식은 다산신도시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교통 호재를 더욱 확장할 또 다른 사업도 거론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광역교통망2030’ 보고서에서 ‘지하철 9호선 남양주 연장사업’을 제4차 광역교통시행계획 수립 과정에서 검토해야 할 과제로 분류하면서다. 9호선 연장사업이 완료되면 현재 중앙보훈병원역에서 하남을 지나 왕숙신도시까지 이동할 수 있다. 9호선 연장의 경우 아직 구체적인 노선이 발표되진 않았다. 하지만 최종 종착지로 유추했을 때 다산신도시를 경유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지하철 8호선 개통시기가 다가올수록 다산신도시의 지역가치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GTX-B노선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 역시 호재로 작용하면서 최근 남양주시 수혜 지역의 부동산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삶의 질 따라가는 집값 상승세
다산신도시에 부는 훈풍은 교통 호재뿐만이 아니다.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체육공간과 생활편의시설 등의 인프라가 점차 늘고 있어 한층 매력적이다. 현재 다산신도시 내에는 남양주체육문화센터, 자전거도로, 황금산문화공원, 생태체험공원 등이 있다. 또 근처 왕숙천 주변으로 수변공원이, 열상산수폭포와 석천계류를 중심으로 중앙공원이 있어 언제든 자연 속에서 쉴 수 있는 입지조건을 자랑한다. 두 공원을 연결하는 선형공원에는 지하철 역사와 중심상업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편리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된다. 현재 이마트 다산점이 들어와 있고,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남양주점이 올해 신규 출점을 앞두고 있다.
이 같은 입지조건과 개발 훈풍에 다산신도시는 수도권 동북부 랜드마크로 부상했다. 다만 정부가 발표한 8·2 부동산 대책에서 투기조정지역으로 분류돼 분양권 전매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투자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집값 상승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데, 이는 주거공간을 찾는 실수요자들이 몰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짐작된다.
특히 아파트 매매가격은 최근까지 상승세를 보였다. 다산신도시 아파트 매매가(전용면적 85㎡ 기준)를 살펴보면 최근 2년 사이 분양가의 두 배가 넘는 시세 차익이 발생한 곳도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북부 다산신도시인 진건지구에 위치한 ‘다산 e편한세상자이’ 매매가는 2018년 3억4500만 원이었으나 올 3월 7억8000만 원에 거래됐다. ‘다산 자연앤e편한세상’도 3억7500만 원이었던 매매가가 올 3월 7억8000만 원으로 뛰었다. 남쪽의 지금지구도 마찬가지다. ‘한화꿈에그린’의 2018년 매매가는 4억1000만 원이었으나 올 3월 5억6000만 원에 거래됐다. 2018년 4억2000만 원에 거래되던 ‘힐스테이트 황금산’은 올 3월 7억 원에 매매됐다.
다산신도시를 눈여겨보는 실수요자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다산신도시는 50% 정도 개발이 완료된 상황이고, 앞으로 더 나은 주거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핵심공약으로 내건 ‘공공개발이익 도민환원제’가 다산신도시 조성사업에 적용되는 점도 지역가치 상승을 예상하게 한다. 경기도시공사는 공공개발이익 도민환원제 일환으로 다산신도시 개발사업 이익금 약 4330억 원을 지역 내 교통문제와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재투자할 예정이다.
양지영 R&C 연구소 소장은 “다산신도시는 잇따른 교통 호재로 강남으로의 접근성이 좋아지는 상황”이라며 “최근 개발 이익금을 지역 인프라 확충 등에 재투자한다는 소식도 전해지면서 주민들의 생활불편 해소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상권은 아직, 안정 요인은 다수
다산신도시 상권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다. 다산신도시 조성사업이 중간단계 수준이라 충분한 자족기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상가가 겪고 있는 공실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는 다산신도시가 품은 호재들과 수도권 마지막 신도시라는 프리미엄이 끌어올린 높은 수준의 분양가와 임대료가 낳은 결과로 풀이된다.
현재 분양 중인 진건지구 내 상가는 1층 대부분이 공실로 남아 있다. A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인근 상가의 3.3㎡당 분양가격은 4000만~5000만 원에 달해 투자자들의 부담이 크다”며 “5~10% 할인분양을 해도 계약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곳곳에 건물이 올라가고 있고, 개발이 한창인데 수요 대비 상가가 과잉 공급됐다”며 “상가를 분양받더라도 만족스런 수익을 올리기 쉽지 않고, 높은 임대료에 다시 한 번 부담을 갖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산신도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일반상가 1층의 임대료(33㎡ 기준)는 월 400만 원 수준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상권이 안정될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최근 다산신도시 곳곳에서 지식산업센터 건설이 한창이다. 지식산업센터와 상업시설을 갖춘 ‘다산신도시 블루웨일’과 ‘DIMC 테라타워’가 현재 분양 중이고, 현대프리미어캠퍼스 지식산업센터가 2022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지식산업센터 내 상업시설의 경우 입주 기업 근무자를 고정수요로 품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외에도 지식산업센터가 지속적으로 들어서고 있어 상당수 배후수요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
탄탄한 행정수요도 기대된다. 다산신도시 행정타운에는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시법원, 구리남양주교육청, 남양주경찰서, 남양주시청2청사 등이 있다. 여기에 행정타운과 연계하는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과 의정부지방검찰청 남양주지청이 내년에 입주할 예정이라 행정수요가 늘어 상권 활성화를 위한 호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경의중앙선 도농역의 철도 594m 구간을 복개하고, 상부 공간을 공원·체육시설로 조성하는 ‘경의중앙선 철도복개 및 공원화 조성사업’이 2024년에 준공된다. 개발이 완료돼 철도에 가로막혀 양분된 진건지구와 지금지구 간 통행이 자유로워지면, 유동인구 증가로 상권을 찾는 수요가 풍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뿐만 아니라 다산신도시 내에는 왕숙천, 체육공원 등이 있고 아파트, 학교, 교회 등 시설이 많아 학생부터 가족 단위의 폭넓은 유동인구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다산신도시가 주거·행정·상업 등을 모두 갖춘 완성형 신도시로 거듭나면서 주목받고 있다”며 “상권이 형성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이지만 앞으로 최소 5년 이상 장기적으로 바라보면 분명 호재에 따른 수혜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무 해가 훌쩍 넘어서 다시 온 파리에 낯섦이 기다려주어 다행이다. 그러나 파리는 이전에 보았던 것처럼 수백 년 된 건물에 거뭇하게 묻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센강은 여전히 느리게 흐르고 있었고 퐁네프 다리도 더 깨끗하거나 새롭게 단장되지도 않았다. 센강 양쪽으로 오래된 옛 건물들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산천은 의구하되 나만 바뀌어 왔다.
김영하 작가의 글에 “한 번 간 곳을 또 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걸 볼 수 있어서가 아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오는 '나'만 바뀌어있다는 것, 내가 늙어간다는 것, 그런 달콤한 멜랑콜리에 젖어 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시 가는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조라는 뜻일 것이다."라고 김화영 선생님이 사석에서 말했다며 덧붙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십 년 세월을 훌쩍 넘겨 찾아와 늙어가는 내가 느릿느릿 걸으며 그런 달콤한 멜랑콜리에 젖어보는 건가. 어쨌든 다시 찾은 여행지의 맛을 느껴본다. 다만 그 옛날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제외했다. 에펠탑은 강 건너 빌딩 사이로 멀리서 탑 끄트머리만 힐끗 쳐다보았다. 샹젤리제 거리나 루브르 박물관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센 강 변을 따라 노트르담 성당 쪽으로 걸었다. BC 2세기경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고 파리시의 기원이 된 센 강의 시테(Cite) 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 그 옛날 찬송 미사가 울려 퍼지던 노트르담 성당을 바라만 본다. 이전엔 알아듣지는 못해도 그들처럼 기도하고 오르간 연주와 장엄한 노래를 들으며 예배에 함께 참여했었다. 높은 천정까지 울리는 오르간 연주와 신부님의 기도소가 온몸을 휩싸던 감동의 시간, 순박한 콰지모도가 치는 듯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던 종탑, 에스메랄다의 물 한 모금 얻어 마시듯 성당의 성스러움을 온몸으로 받았던 그 옛날이었다.
흐린 하늘에 바람이 불고 간간이 빗방울이 흩뿌린다. 비를 피해 지하철역으로 얼른 뛰어들어갔다. 이곳 사람들은 비가 오거나 말거나 걷는 속도는 여전하다. 도무지 비를 피할 생각이 없는 모습이다. 일상의 자연 속에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눈과 비도 함께 하듯.
노트르담 역에서 오르세 역까지는 10여 분이다. 역에서 나와 미술관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이 같은 방향으로 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길가 강변의 가게에서 머플러를 하나 사서 둘렀다. 한결 온기를 준다.
오르세 미술관이 먼저 나타난다. 역시 예상한 대로 입장권을 사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빗속에 길게 이어지고 있다. 저 행렬에 서서 보낼 시간이 없다. 애초에 두 개의 미술관 중에 오랑주리 미술관에 갈 생각이었다. 클로드 모네의 필생 역작인 '수련 연작'을 다시 볼 생각이다.
이날은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의 수련과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만 시간을 집중하기로 했다. 오르세 미술관은 오르세 역사(驛舍)를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곳이다. 규모도 크고 볼거리도 엄청나서 한나절을 다 보내야 한다. 그 옛날 그렇게 다리 아프도록 실컷 보았던 오르세 미술관이다.
오르세 미술관을 그냥 지나치고 사랑의 자물쇠가 빽빽이 걸려있는 다리를 건너 조금 더 가면 오랑주리 미술관이 있다. 근처에 다다르면서 익숙함의 안도가 생긴다. 그래, 여기쯤에서 잠깐 앉아있었지. 오래전 엄청 추웠었던 공원은 그대로군... 김영하 작가의 글에서처럼 나만 변해서 다시 하는 여행을 맛본다. 기분이 촉촉하다.
시간이란 게 참 별거 아니다. 스물 몇 해 전 꽁꽁 손이 얼던 겨울 속의 파리를 기억하는 것처럼 이제는 이렇게 촉촉했던 파리를 또 기억하게 되었다.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을 향하는 길의 튈르리 정원은 오래된 정원의 멋이 물씬하다. 튈르리 궁전 정원 별채의 자연광이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의 수련 연작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 천정의 빛과 자연광이 날씨에 따라 또는 일출과 일몰에 따라 환상적이다가 몽환적이다가 하며 최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이다.
흐린 날에 찾아간 모네의 대작들은 조용히 그 자리에서 수련의 멋을 보여준다. 오직 자연의 원초적인 빛을 찾아 그의 영혼을 불어넣은 수련 연작이 갤러리 내부에 가득 차 있다. 모네의 메시지가 무엇일지 생각하며 가슴 벅차게 그의 예술혼을 흐뭇하게 느껴보는 시간이다. 모네의 방에서는 그 날의 자연광에 따라서 수련 연작은 언제든 다른 그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여행자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1차 세계 대전의 종결을 기념하여 모네가 작품을 기증하면서 요청한 조건이 있었다.
1. 작품을 시민에게 공개할 것
2. 장식이 없는 하얀 공간을 통해 전시실로 입장할 수 있도록 할 것
3. 자연광 아래에서 감상하게 할 것.
지하로 내려가면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다닥다닥 전시되어 있다. 고풍스러운 액자도 눈길을 끈다. 모네, 마네, 모딜리아니, 피카소, 르누아르, 루소, 마티스, 위트릴로, 시슬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작품들의 맛을 실컷 느껴볼 수 있었다.
더 꼼꼼히 그림을 즐기기 위해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그리고 가이드 투어를 이용해서 작품 이해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을 들러볼 일이다. 그래야만 오랑주리 미술관의 모네 작품과 연결해서 완전한 감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나와 눈을 들어보면 저편으로 콩코드 광장도 보인다. 파리의 동선은 생각보다 길거나 힘들지 않다. 얼마든지 파리를 느끼며 걷기 좋다. 이날처럼 비 오는 날의 여행은 감성지수를 자극한다.
미술관을 벗어나니 센강엔 파리지엔느들이 하나둘 나와 걷고 있다. 바람 불거나 비가 오거나 햇살 좋은 어느 날 오후 미술관 정원을 거닐며 가끔 센 강 변을 거닐며 그렇게 여행자가 되는 파리 사람들, 센 강을 배경으로 여행자처럼 사진을 찍는다. 내가 사는 곳에서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감성은 축복이다. 일상 속에서 즐기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발걸음은 풍경이다. 나는 어떤 여행 중인가.
여행이 끝났어요. 즐거움이 남아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제는 내가 파리와 모네의 정원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에펠탑은 어땠니?' 하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답니다.
'에펠탑은 볼 시간이 없었어.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을 봐야 했거든....'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모네의정원에서 중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요즘. 바이러스를 둘러싼 궁금증과 그 해답을 정리해봤다.
감수 및 도움말 이찬희 충북대학교 미생물학과 교수
참고 및 발췌 도서 ‘우리가 몰랐던 바이러스 이야기’(대한바이러스학회)
Q1 바이러스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아직 바이러스의 기원은 명백하지 않다. 먼저 자체적으로 증식하지 못하고 다른 생명체에 기생하는 특성 때문에 생명체 출현 이후 나타났다고 보는 측면이 있다. 한편 가장 기본적인 생명 요소인 유전자와 단백질로 구성돼 있기에 세포보다 먼저 출현했다는 주장도 있다.
Q2 인간이 바이러스를 만들 수도 있을까?
2003년 미국 생물에너지대안연구소에서 단 14일 만에 인공 바이러스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2008년에는 한국 과학자들이 치료 목적의 암세포 킬러 인공 바이러스를 제조해냈다.
Q3 바이러스의 크기는 얼마나 작은 걸까?
막대 모양 바이러스는 수백 ㎚(10억 분의 1m)이며, 둥근 모양 바이러스는 수십 ㎚에 불과하다. 일반 세균은 ㎛(100만 분의 1m) 단위로, 바이러스에 비하면 1000배 정도는 큰 입자인 셈이다.
Q4 지구상의 바이러스, 얼마나 될까?
1989년 노르웨이 베르겐대학교 연구팀은 전자현미경을 통해 바닷물 1㎖ 속에서 2억5000만 개에 달하는 바이러스를 찾아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지구상의 바이러스 수가 1030개에 이른다고 하는데, 일렬로 죽 세우면 그 길이만 무려 2억 광년이 넘는다. 이는 태양계 너머 은하수의 가장자리에 다다르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치다.
Q5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실제로도 둥글까?
코로나19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많은 바이러스가 정20면체 구조를 가진다. 정20면체는 정다면체 중 면의 수가 가장 많고, 구에 가까운 안정된 구조다.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을 둘러싼 단백질 껍데기(capsid)가 정20면체 모양을 띠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외부 충격으로부터 유전물질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증식할 수 있다.
Q6 모든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해로울까?
바이러스 99.9%는 인간이 아닌 다른 숙주에 서식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0.1%만이 인간에게 감염되는 바이러스인 셈인데, 이 또한 절대량으로 보면 무수히 많다. 그렇다고 모든 바이러스가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 대부분 바이러스는 우리 몸에 감염돼도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Q7 착한 바이러스, 나쁜 바이러스?
‘박테리오파지’는 다양한 병원성 세균을 파괴하고 섬멸하는 바이러스다. 이러한 특징을 이용해서 항생제 대신 전염병을 치료해 일명 ‘착한 바이러스’라 불린다. 이와 반대로 ‘나쁜 바이러스’도 있다.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가 이에 해당하는데, 대표적으로 조류 인플루엔자를 꼽을 수 있다. 원래는 야생 조류에게만 감염되던 바이러스였는데 돌연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도 감염을 일으킨다.
Q8 바이러스의 생존기간은 얼마나 될까?
바이러스의 생존과 관련해 흔히 ‘바이러스가 죽었다’는 표현을 쓰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바이러스가 감염성을 잃어버렸다’(불활화)고 설명하는 게 정확하다. 바이러스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온도와 습도가 맞으면 수일은 물론 수년까지도 감염성을 지닌다. 최근 유행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자외선이나 열, 에탄올 함량 70% 및 염소 함유 소독제 등에 노출되면 감염성을 잃는다.
Q9 바이러스가 생태계 균형을 맞춘다?
해양 생태계에 존재하는 박테리아의 20~40%는 매일 바이러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그 덕분에 수계 내 세균 개체 수가 조절된다. 이렇듯 바이러스가 특정 숙주 집단이 지나치게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걸 억제함으로써 생태계의 다양성이 유지된다.
Q10 간염 바이러스는 몇 종류일까?
A, B, C, D, E형 총 5가지
Q11 바이러스 감염이 암으로 진행될 수 있나?
전 세계 암 환자 중 약 12%가 ‘바이러스 감염’ 때문에 암에 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암 유발 바이러스는 총 7가지인데, 20여 종의 암과 연관돼 있다. 자궁경부암과 B형 간암을 제외하고는 아직 백신이 없어 감염 예방이 최선이다. 이러한 바이러스에 감염됐더라도 건강 상태에 따라 영향이 다르니, 면역력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Q12 열대 모기 전염 바이러스는 안심해도 될까?
다양한 열대 바이러스성 질병은 모기로부터 전파된다. 우리나라에서 지카 바이러스, 뎅기 바이러스 감염이 일어날 확률은 극히 드물지만 지구온난화로 열대 모기를 숙주로 삼던 바이러스들이 온대 지방의 모기에도 적응한다면 안심할 수만은 없다. 뎅기나 지카의 경우 아직 치료제와 백신이 없어 바이러스가 창궐할 경우 그 여파는 상당할 것이다.
Q13 인간은 어떤 경로로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Q14 성인 90%는 암 유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인간에게서 최초로 발견된 암 유발 바이러스는 ‘엡스타인-바 바이러스’다. 놀라운 건 전 세계 성인의 90% 이상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암에 걸릴까? 결론은 아니다. 엡스타인-바 바이러스는 주로 유아기에 가족에 의해 타액으로 감염된다. 그러나 성장하는 동안 면역 세포에 의해 거의 제거되고, 극히 일부만이 암을 유발한다.
Q15 중장년만 지닌 바이러스 기억면역세포가 있다?
1980년 WHO가 지구상에서 박멸됐다고 선포한 천연두가 다시 출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렸을 때 천연두 예방접종을 받았거나 약하게 감염된 적 있는 어느 정도 나이 든 성인의 일부만 이 바이러스에 대한 기억면역세포를 갖고 있어 이로 인한 대규모 집단감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예방접종 없이 지내다가 만약에라도 이러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면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Q16 우리나라에도 ‘스페인 독감’ 영향이 있었나?
우리나라도 약 740만 명이 감염되어 14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스페인 독감이 창궐한 1918년이 무오년이어서 ‘무오년 독감’으로 기록됐다. 당시 인구가 1770만 명 정도였으니, 얼마나 위협적인 상황이었을지 짐작이 된다.
Q17 역사상 최초의 팬데믹 사태는?
1918년 미국과 유럽에 퍼지기 시작한 스페인 독감이다. 이 바이러스로 인해 약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미군 병사 4만3000여 명이 사망했다. 이로 인한 전투력 상실로 제1차 세계대전을 앞당겨 끝낼 수밖에 없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당시 전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 스페인 독감을 앓았으며, 이는 제1차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인명 피해를 입힌 최악의 바이러스였다.
Q18 코로나19 이전 우리를 위협했던 바이러스는?
전 세계적으로 발병을 일으킨 여러 바이러스가 있지만, 아무래도 한국인의 뇌리에 남아 있는 건 사스(2002년), 신종플루(2009년), 메르스(2012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Q19 코로나19 사태 언제까지 계속될까?
코로나19 완치 후 재확진을 받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그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으나 가능성 중 하나가 재발감염이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잠복해 있다가(이때는 바이러스가 없는 것처럼 보임) 특정 조건에서 다시 증상을 보이는 현상이다. 입술 포진이나 감기처럼 코로나19 역시 잠복과 재발이 일어나며 우리 일상에 만연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