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탤런트 극단이 창단하면서 올린 첫 연극 시연회에 기자 자격으로 초대 받아 갔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이었다. 최안규 각색, 정세호 연출, 안지홍 음악으로 되어 있다. 이 연극은 1952년 런던 앰배서더 극장에서 초연한 이래 세인트 마틴 극장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연하는 작품이란다. 올해 66년째이다. 최장기 연극 공연이며 매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로 SH 아트홀 앞에는 낯익은 연예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 연극이 MBC 탤런트 극단이 마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시연회 이다 보니 이번 출연진 뿐 아니라 복수 캐스팅 되어 있는 다른 배우들도 총 출동한 모양이었다. 극장은 소극장보다는 규모가 커서 안락했다. 맨 앞줄에는 쟁쟁한 MBC탤런트들이 자리 잡고 바로 뒷줄에 앉았다. 2월1일부터 3월25일까지 목금토일에 2회씩 공연되므로 주인공 역은 무려 6명이 교대로 출연한단다.
쥐덫의 스토리는 미리 알고 가면 재미없다. 추리극은 결말을 모르고 같이 추리하면서 몰입해야 재미가 있는 것이다. 런던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폭설이 쏟아진 작은 호텔에 8명이 갇힌다. 형사가 나타나고 주인집 부부는 물론 투숙객 모두가 용의자가 된다. 그 와중에 한 명이 살해된다. 범인은 누구일까로 궁금해진다. 다음 희생자는 또 누구일까 분위기가 긴장된다. 이런 추리극은 초반에 졸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반전이 일어나는 결말도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출연진은 양희경, 임채원, 박형준, 윤순흥, 장보규 등 현역 탤런트들이므로 쟁쟁하다. 연기력 면에서는 나무랄 것이 없다. 다만 TV드라마와 연극의 차이가 있기는 있다. TV 드라마는 카메라에 맞춰 돌아가므로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다른 배우들은 안 보인다. 그러나 연극에서는 한눈에 전 출연진이 다 보이는 몹 씬이므로 관객들은 한눈에 다 본다. 이 점은 시연회가 끝나고 1시간 정도 가진 평론가와 기자들에 의해 옥의 티로 지적되었다.
MBC탤런트는 15년 전 공채에서 끝났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미 막내 기수가 40대 중반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인 사람들이 450명 정도 된다고 했다. 15년 전 공채가 끝나고는 연기도 기본적으로 배우는 아이돌 스타 등이 특채로 들어오면서 공채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다. 출연 드라마가 늘 있는 것도 아니고 평생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연극이라고 결론지었다는 것이다. 연극 계 출신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지만, 연극무대야 말로 탤런트 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대학로 연극이 좋은 연기자들도 떠나고 좋은 관객도 많이 잃었다고 자평했다. 이런 때에 프로 연기자들이 아마추어리즘으로 다시 연극계에 들어 온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입장료가 너무 비싸 보였다. VIP 66,000원, R석 5만원은 대학로 평균 입장료의 배 수준이다. 물론 중견 연기자들의 무대이니 그만큼은 받아야겠다며 책정된 금액이겠지만, 비싼 것은 사실이다. 영화 한편 보고 식사까지 할 수 있는 금액이다. 출연 배우들은 이 공연에서 출연료도 책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연극이 좋아서 연기할 뿐이라고 했다.
카드 회사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딱 6일간의 기한을 주고 해당 카드로 5만 원 이상의 물건을 사면 5000원을 할인해준다고 한다. 필자를 VIP 고객이라고 추켜세우고 문자를 받는 고객에게만 베푸는 특혜라고 한다. 5만 원의 5000원은 10%다. 은행금리가 2%대인데 10%라니 그것도 공짜로! 당장 뭘 사야겠다는 생각이 확 든다. 뭘 사지? 옷이나 운동회를 살까? 누굴 불러내 술이나 먹지고 할까? 요즘 아내도 아들네 집에 가고 없어서 혼자 결정을 해야 했다. 그렇다고 이런 걸 누구에게 물어보자니 소심해 보이고 쪼잔한 놈으로 보일 것 같았다.
그 뒤 카드 회사 문자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나서 확인해 보니 4일이 훌쩍 지났다. 더는 시간이 없다 저질러보자는 심정으로 대형마트에 가서 먼저 눈 쇼핑을 하며 뭘 살까를 둘러봤다. 나이 든 남자들은 자기 옷을 직접 사본 적이 별로 없다. 갑자기 액수를 정해놓고 물건을 사려니 살 것이 없다. 부피는 작고 값이 나가는 것은 그래도 고기다. 정육 코너로 갔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포장해 가격표를 붙여놓은 것이 있어 6만 원어치를 샀다. 얼리지 않은 냉장육이라 해서 값이 제법 비쌌다.
당장 고기를 먹을 일은 없어 냉동고에 집어넣었다. 무심코 한 행동에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냉장육을 사서 냉동고에 넣으면 처음부터 냉동고기를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5000원 덕 보려다 헛일하는 것 아닌가! 갑자기 웃자고 한 어느 며느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먹기 싫은 음식을 시어머니로부터 받은 며느리가 “어머님 저희들은 이런 음식 먹지 않아요, 지금 버릴까요, 아니면 냉장고에 넣었다 버릴까요?” 했다고 한다. 내가 꼭 그 짝이다. 당장 먹지도 않을 고기를 5000원 할인받으려고 샀으니 냉장고 전기요금만 더 들어가게 생겼다. 나중에 아내로부터 왜! 이런 부위의 고기를 샀냐고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카드 회사가 5000원이라는 미끼를 던진 것이고 필자가 그 미끼를 덥석 물은 꼴이다 미끼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필자의 잘못이지 미끼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미끼는 카드 회사 마케팅의 일환일 뿐이다.
신용카드를 안 만들려고 하는데도 다섯 개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만들었다. 각 카드마다 특장점이 있어서 이럴 땐 이 카드를 쓰고 다른 경우에는 다른 카드를 쓰는 것이 이익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이익 메뉴를 모조리 기억하기도 어렵고 이득 보는 금액 또한 미미해서 카드란 다 똑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카드를 여러 개 갖고 다니면 분실 우려도 있고 지갑 부피만 커져 주머니에 넣기도 불편하다 그래서 딱 하나만 갖고 다닌다.
카드 회사에서 통계를 내보니 필자같이 한 카드만 쓰는 고객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고객의 주머니에서 자사 카드를 계속 쓰도록 만드는 방법이 결제대금 일부 감면이라는 미끼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미끼를 던지려면 미끼 값도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낚시질로 잡은 물고기 값에 비하면 낚시 미끼 값은 아주 미미해서, 카드 회사도 그 정도 미끼는 오히려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미끼 상품은 마케팅이 발달할수록 점점 더 많아진다. 하나 사면 하나 더 주겠다는 것도 알고 보면 미끼요, 이것 사면 저것도 주겠다는 것도 미끼다 할부로 팔겠다는 것도 미끼요, 무이자 판매도 미끼다. 미끼를 제대로 무는 현명한 소비자에게는 미끼야말로 신나는 일이고 공짜이니 더 좋다. 미끼를 잘 받아먹는 소비자는 낚싯밥만 똑 따먹고 도망가는 얄미운 물고기는 아니다. 오늘날에는 현명한 소비자다.
‘가성비(價性比)’ 라는 단어가 등장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가심비(價心比)’가 떴다. 가성비란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뜻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격이 싸면 품질이나 성능도 떨어지는 것이 일반 상식인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더라는 것이다. KS기준처럼 어느 정도 품질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시장에 내놓지 못하는 세상이니 품질이 조악해서는 출시 자체가 무리이다. 먹거리도 마찬가지이다. 커피 값이 천차만별이듯이 먹는 것도 반드시 비싼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잘 모르면 비싼 것으로 고르면 틀림은 없다”는 말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싼 것도 가격에 비해 그런대로 좋은 것이 많은 세상이다.
그렇다면 ‘가심비’는 ‘가격 대비 마음’이라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즉 ‘마음의 만족도’를 말하는 것이다. ‘가성비’는 가격이 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가심비’는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마음이 만족하는 정도가 더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작은 사치’라고 수입으로 봐서는 사치에 속하지만 단가 자체가 큰 금액이 아니면 가장 비싼 것을 사 본다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것일 때 예전에는 자신이 희생했지만, 요즘은 자신을 위한 이런 욕망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소비 풍조로 올해 트랜드 중의 하나로도 꼽을만하다.
필자는 1993년에 ‘시시비비’라는 시사 평론집을 자비 출판했다. 당시 1천만 원이 들었다. 책을 내봐야 팔리지도 않을 텐데 굳이 출판까지 해야겠느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책을 3쇄까지 찍었다. 책은 전국 유명 서점 및 GS25 편의점까지 호기 좋게 배포되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자 무참히도 상당한 양이 반품되어 폐기처분해야 했다. 그런데도 ‘가심비’ 면에서는 만족스러웠다. 당시만 해도 책을 출판한 사람이 많지 않아서 나름대로 저서가 프로필에 올라가며 스펙을 한 단계 올려놓는 효과가 있었다. 1999년 대통령 표창을 받을 때 이 책이 결정적인 차별화 요소가 되었다. 이것이 단초가 되어 3,410페이지 초대형 볼륨의 ‘캉캉의 댄스 이야기’라는 책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책을 11권을 내게 되었다.
2003년 영국에 댄스스포츠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갔을 때도 1천만 원이 들었다. 댄스로 먹고 살 것도 아닌데 그런 투자가 필요하겠느냐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8개월의 대장정을 댄스스포츠 국제지도자 자격증(IDTA:International Dancesport Teachers Association) 취득이라는 결과로 가심비를 만족시켰다. 그 후로 위상이 달라지니 날개를 달고 댄스 계를 풍미했다. 1천만 원으로 제2의 인생에서 운명이 바뀐 것이다. 돌이켜 보면 역시 필자 인생에서 ‘가심비’를 만족 시킨 잘한 결정이었다.
작년에 KDB 시니어 브리지 아카데미 총동문회장을 맡고 올해 마지막 사업으로 동문회보를 내기로 했다. 역시 수요도 조사해보지 않고 100만원이나 드는 공약을 꼭 해야 하느냐는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밀고 나가기로 했다. 초등학교 총동문회장 시절 때도 동문회보 발행으로 호평을 받았고 ‘가심비’로 볼 때 충분히 승산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니어들은 가진 재산을 노후에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해볼 나이이다. 한창 돈을 모을 때는 ‘가성비’를 따졌지만, 이제는 ‘가심비’를 따져봐야 할 때이다. 내가 그 중심이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보건의료와 복지 분야의 가장 큰 정책 변화는 국가의 책임성 강화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국정 목표로 다양한 제도가 개선되고 있는데, 2018년은 이러한 시도가 도입되는 주요한 기준점이다.
이 중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나 치매국가책임제와 같은 정책 기조는 시니어에게 환영받을 만하다. 시니어의 건강을 위해 어떤 변화가 이뤄지고 있고,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올해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연령별 특성에 맞는 건강 검진주기의 조정이다. 이를 들여다보면 고령화 시대를 맞이해 시니어가 좀 더 촘촘하게 건강검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변경된 것을 알 수 있다. 중년 이후 발병이 잦은 질환의 경우 검사주기를 늘려 조기 발견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했고, 시니어에게 필요한 검진항목은 확대했다.
확 바뀐 치매제도, 예방부터 치료까지
우선 시니어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치매 관련 제도가 바뀐다. 치매의 조기진단을 위해 인지기능장애검사는 66세 이후부터
2년마다 실시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66세부터 3회만 실시했다. 인지기능장애검사항목도 15개 항목의 인지기능장애검사를 매번 실시하게 된다. 지난해까지는 5개 항목으로만 1차 간이검사하고 필요할 경우 15개 항목을 실시했다.
‘인지지원’ 등급이 신설돼 신체적 기능과 관계없이 치매가 확인된 경증치매 환자도 장기요양보험의 대상자가 될 수 있게 된 것도 변화된 부분이다. 그간 치매 장기요양등급 판정은 신체기능을 중심으로 1등급에서 5등급까지 판정했기 때문에 치매가 있어도 신체기능이 양호하면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또 치매 증상 악화 지연을 위해 주·야간보호 기관에서 인지기능 개선 프로그램 등 인지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오는 7월부터는 모든 1~5등급 치매 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방문 간호서비스도 제공된다. 등급 판정 후 첫 2개월간 전문 간호인력 방문은 4회까지 무료로 진행된다.
치매 이외에도 우울증과 골다공증의 검사주기가 확대됐다. 골다공증은 66세에 한 번 검진받던 것을 54세와 66세로 확대했다. 우울증 역시 40세부터 70세까지 10년 주기로 변경돼 검진이 기존 2회에서 4회로 늘어났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자를 위한 검진도 확대됐다. 노인신체기능검사의 경우 66세에 한 번으로 끝났던 것을 70세와 80세에도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생활습관평가도 40세 이후 10년마다 받을 수 있게 됐다.
보건복지부 임숙영 건강증진과장은 “연령별 특성 및 근거를 기반으로 한 검진주기 조정을 통해 검진의 효과성을 높이고, 고혈압 당뇨병 유소견자는 자주 이용하는 가까운 병·의원에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어 수검자의 편의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시니어 의료비 부담도 줄어
시니어의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노인외래정액제 개선안도 시행된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개정을 완료해 지난 1월부터 65세 이상 환자가 의원급 외래 진료를 받을 경우 본인부담을 완화했다.
그동안 총 진료비가 1만5000원 이하에서는 환자가 1500원을, 1만5000원을 초과할 경우에는 4500원(30%)을 부담했지만, 올해부터는 구간에 따라 10~30%를 부담하도록 개선됐다. 1만5000원 초과 2만 원 이하 구간은 10%를, 2만 원 초과 2만5000원 구간은 20%를 환자가 부담하게 된다. 치과의원도 마찬가지다. 한의원의 경우는 처방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약국도 금액에 따라 세분화했다. 1만 원 이하는 1200원에서 1000원으로, 1만 원 초과 1만2000원 이하 구간은 30%에서 20%로 본인부담이 낮아졌다.
소득하위 50% 계층에 대한 건강보험 의료비 상한액은 연소득의 약 10% 수준으로 인하된다. 소득이 가장 낮은 하위 1분위는 본인부담 상한액이 122만 원에서 80만 원, 2~3분위는 153만 원에서 100만 원, 4~5분위는 205만 원에서 150만 원으로 낮아진다. 이번 본인부담상한제 개선으로 저소득층(소득하위 50%)은 연간 40만~50만 원의 의료비가 줄어들며, 올해 약 34만 명이 추가로 본인부담 상한제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요양병원의 경우, 사회적 입원에 대한 대책 차원에서 입원일 수가 120일 이하이면 이번에 인하된 상한액을 적용하지만, 120일을 넘겨 장기 입원한 경우에는 현행 상한액을 적용하게 된다.
독지가란 ‘사회사업 따위의 비영리사업이나 뜻있는 일에 특별히 마음을 써서 협력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연말이면 신문에 종종 독지가 얘기가 실린다. 이름도 알리지 않고 좋은 일에 써달라며 큰돈을 기부하는 사람들이다. 영수증도 안 받아갔으니 세금 감면을 받기 위한 회사 차원의 기부도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었다.
필자가 이끄는 KDB 시니어브리지아카데미 동문회는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사회 공헌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기본적인 재원은 연회비로 하고 있으나 자발적인 참여의 열기가 약해 기금 모음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상계동 연탄 배달 봉사에 참여했던 한 회원이 100만원을 기부했다. 총동문회가 사회 공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기부를 결심했다는 것이었다. 그간 여러 가지 행사에서 본 기부나 후원은 금액도 크지 않았고 마지못해 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며 용도를 묻지 않겠다고 하니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었다. 어떤 마음으로 기부를 쾌척하는지도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돈이 많으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때는 잘 벌었지만, 그때는 그만큼 기부를 많이 했고 지금은 무직 상태라서 수입도 없다는 것이었다.
독지가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보고 싶어 과거사를 물었다. 너무나 가난해서 공장에 다니고 있을 때 외국 기관의 후원으로 야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보험회사에 취직해서 보험 왕까지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 때 그 사람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학교 진학은 꿈도 못 꾸고 공장 생활을 이어갔을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들 덕분에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은혜를 갚고 싶다는 것이었다.
기부는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잘 나갈 때는 1억 원이 넘는 돈도 기부한 적이 있고 크고 작은 기부를 많이 했다는 것이었다. 기부하고 나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고 희한하게도 그 만큼의 수입이 따라 오더라는 것이다. 혹시 종교가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란다. 종교계의 기부 풍토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필자도 시각장애인 파트너를 처음 만났을 때 기부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당시 60대 후반부터 70대 후반 사람들인데 현역에서 물러난 상태라서 수입이 없으니 대부분 생활이 어려웠다. 어차피 이 세상 떠날 때 빈손을 갈 것인데 자녀들은 이미 자립했으니 더 이상 필자 도움이 없어도 되고, 이런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막연하게 얼굴도 모르는 불우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돈을 기부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분들은 곧 은퇴를 했고 30대~40대 시각장애인들이 들어왔다. 대부분 현역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오히려 필자보다 나은 사람도 많았다. 그 바람에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독지가와 얘기해보면서 기부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부는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던 신조어를 이제는 일상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글 파괴, 문법 파괴라는 지적도 받지만, 시대상을 반영하고 문화를 나타내는 표현도 제법 있다. 이제 신조어 이해는 젊은 세대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필요해 보인다.
01 순삭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뜻으로 순간 삭제의 줄임말이다. 인터넷 게임에서 유래한 말로 게임 시작과 동시에 캐릭터가 죽었을 때 ‘순삭 당했다’라고 말한다. 지금은 주말이 순식간에 사라졌을 때 ‘주말 순삭’, 분명 치킨을 시켰는데 흔적도 없이 다 먹어 치웠을 때 ‘치킨 순삭’, 술 먹고 필름이 끊겼을 때 ‘기억 순삭’ 등 다양하게 사용한다.
02 그뤠잇, 스튜핏
연예계 대표 짠돌이 김생민이 출연한 KBS2 예능 프로그램 ‘김생민의 영수증’을 통해 화제가 됐다. 근검절약하는 이의 사연을 접하면 대단하다는 의미를 담은 ‘그뤠잇(great)!’을, 낭비하는 이에겐 어리석다는 뜻의 ‘스튜핏(stupid)!’을 외치며 소비전략 설계를 도왔다. 유행어가 된 ‘그뤠잇’과 ‘스튜핏’은 실생활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지난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포기하면 스튜핏, 끝까지 열공! 그뤠잇’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눈길을 끌었다.
03 TMI
‘너무 과한 정보(Too much Information)’의 준말로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는 지나치게 상세한 정보를 뜻한다. 예를 들어 친구가 오랜만에 사우나를 갔는데 때가 엄청 많이 나왔다며 알려준다거나, 지각한 이유가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느라 늦었다고 설명한다면 “TMI”라고 말할 수 있다.
04 코노
카운터에서 금액을 내고 일정 시간 동안 노래할 수 있는 노래방과 달리 요즘엔 곡의 수에 따라 지폐나 동전을 넣고 이용할 수 있는 코인노래방이 인기다. 1인 가구 시대를 맞아 새로운 여가문화 장소로 떠오른 코인노래방은 1~2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크기로 500원을 넣으면 2곡, 많게는 5곡까지 부를 수 있다. 코인노래방을 줄여 ‘코노’라고도 한다.
05 얼굴 천재
얼굴과 천재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얼굴이 일 다 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월한 외모를 가진 연예인에게 ‘얼굴 천재’라는 별명을 붙이면서 비슷한 의미로 ‘얼굴 멘사’, ‘얼굴 하버드’ 등의 파생어를 낳기도 했다. 시대상이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과거 황신혜의 미모를 가리켜 ‘컴퓨터 미인’이라고 부르던 것과 비슷한 의미다.
종활(終活, 슈카쓰)은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한 다양한 준비 활동을 뜻하는 일본 사회의 신조어다. 보통 일본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공채 시기에 맞춰 취직활동(就職活動)에 노력하는 것을 슈카쓰(就活)라고 줄여 부르는 것에 빗댄 것. 발음까지 같다. 취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기업 면접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처럼 죽음이 머지않은 시니어도 그만큼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종활은 지금 어디쯤 왔을까?
일본에서 종활이란 단어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유명 매체인 주간 아사히(週刊朝日)에서 이에 관한 연재가 진행되면서 일본인들 입에서 종활이란 단어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유력 출판사가 선정하는 ‘신조어·유행어 대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대중화가 됐다.
일본에서의 종활은 단순한 장례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미리 내 삶을 정리하는 대표적 아이콘인 ‘엔딩노트’의 작성에서부터, 이달 국내에서도 시범사업이 마무리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도 연관이 있는 연명의료 혹은 존엄사에 대한 논의도 포함된다.
일본 사회에서 종활은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자신이 묻힐 묘지 동기들과 온천여행을 통해 친분을 쌓는 서비스 등 고령화 사회를 등에 업고 이와 관련된 사업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장례식 찾아줄 지인 없어”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종활을 준비하는 일본인들에게 걱정 중 하나는 비용이다. 일본은 절에 고인을 모시고 친척이나 직장동료, 지인 등 손님을 맞이하는 장례 형태가 일반적인데, 이럴 경우 우리 돈으로 2000만~3000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물론 이는 일본인들에게도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일본도 우리처럼 조의금 문화가 있는데, 보통 1만 엔(10만 원) 전후의 금액을 전달한다.
문제는 장례식을 찾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고인의 사망 시점에는 직장과 같은 인적 교류가 이미 단절된 상태인 경우가 많기 때문. 부를 사람도 많지 않고, 부르고 싶어도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실적으로 찾아줄 사람이 없다면 장례비용이 유족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 또 상조회사의 높은 상품가격에 대한 불만도 장례에 대한 시선 변화에 불을 지폈다.
이로 인해 가족들끼리만 장례를 치르는 ‘가족장’ 등 소규모 장례식을 선택하는 일본인이 늘고 있다. 화장만 하면 우리 돈으로 200만 원 내외, 가족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장례식은 500만 원 이하로 가능하다. 최근에는 이런 소규모, 저비용 상품을 내놓는 상조회사가 늘면서 가격이 점점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죽기 전 지인들과 이별하는 ‘생전장’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의 생전장(生前葬)도 종활의 새로운 방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사실 일본 사회에서 생전장은 최근에 생긴 문화가 아니다.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만담가나 군인이, 현대에는 연예인 등이 죽기 전 지인을 만나는 마지막 기회로 활용하는 행사를 가져왔는데 이를 생전장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활동의 종료를 알리는 수단인 셈이다. 죽은 자가 없는 장례식인 만큼 자서전 출판기념회나 파티 등의 형태를 띤다.
지난해 10월 21일에는 프로레슬러 김일과의 대결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전직 프로레슬러이자 사업가인 안토니오 이노키(アントニオ猪木)가 자신이 선수로 활약했던 료고쿠 경기장(両国国技館)에서 생전장을 치렀다.
이런 행사는 ‘유명인’의 행사로만 인식됐지만 종활이 대중화되면서 생전장의 대상도 일반인들에게 확대되고 있다. 지인들을 불러놓고 사진이나 기록 등을 보며 과거를 추억하고, 그간의 신세에 대해 감사를 전하는 식이다. 선물을 전달하기도 하고, 노래방 기계를 놓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생전장의 장점은 당사자가 원하는 대로 행사의 형식을 정할 수 있고, 본인의 뜻과 전언을 직접 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또 형식이 자유롭다 보니 비용면에서도 유리하다. 다만 일본 내에서도 완전히 대중화된 문화는 아니어서 낯설어하는 지인들에게 이해를 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우주장, 애완동물 종활 서비스도 등장
최근 종활과 관련해서 눈에 띄는 서비스 중 하나는 바로 우주장(宇宙葬) 서비스다. 미국과 일본 회사가 준비하고 있는 일종의 상조상품으로 상업용 로켓을 이용해 고인을 화장한 골분을 대기권 밖까지 이동시켜주는 방식이다.
화장한 유해 모두를 하늘 위로 올리는 것은 아니다. 가로·세로·높이가 모두 1cm 정도의 작은 캡슐에 유골의 일부를 담는다. 무게로 따지면 1g 남짓 된다. 다른 신청자들과 함께 로켓에 실려 발사된 후 대기권 밖에 도달하면, 위성궤도에 캡슐이 뿌려진다. 캡슐은 궤도를 따라 지구 주변을 돌게 되는데, 어느 시점이 되면 중력에 이끌려 대기권으로 추락해 재로 변한다. 우주 쓰레기처럼 대기권 밖을 떠돌거나 위성 등 다른 시설에 방해가 될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비록 유골의 형태이지만 삶의 마지막에 우주와 지구 전체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는 로맨틱한 내용이 마케팅 포인트다. 이런 우주장 서비스를 받으려면 1인당 28만5000엔, 우리 돈으로 약 300만 원 정도 비용을 내야 한다.
애완동물을 위한 종활 서비스도 있다. 이동식 화장 차량을 통해 애완동물을 화장할 수 있고, 장례 서비스도 지원된다. 사람 장례식 못지않다. 원할 때 만날 수 있는 납골당도 준비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인의 이러한 종활 붐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종활 따위 그만두세요(終活なんておやめなさい)’의 저자이자 불교 학자인 히로 사치야(ひろさちや)가 대표적이다. 600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하며 일본 불교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그는 이 저서를 통해 “종활은 사후를 위한 불필요한 준비에 불과하며 지금 즐거운 인생을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하면서 “상속 등 사후에 벌어질 일들 역시 남아 있는 유족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이 있어서 은행에 통장정리를 하기로 했다. 필자는 대부분의 은행 업무를 인터넷으로 처리하다보니 한 달에 수십 건의 은행일도 안방이나 직장의 책상에서 대부분 해결 한다. 그러나 별 중요하지도 않으면서 꼭 은행을 방문해야 하는 일이 통장정리다. 인터넷으로 다 확인 한 일이지만 통장정리를 해 오던 습관으로 은행에 가서 통장정리를 하고 다 쓴 통장은 보관하고 새 통장을 발급받는 일이다.
거래하던 은행에 10시경 가보니 대출상담이나 펀드가입 등 차원 높은 은행업무일을 보는 사람은 별도의 창구에서 한산하게 있고 일반 창구에는 전부 노인 분들이 고객이다. 이 분들이 무슨 은행 업무를 보는지 옆에서 한참을 지켜봤다. 첫째로 돈을 여직원이 있는 창구에서 직접 찾는다. 카드로 현금지급기에서 직접 찾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되돌아오는 대답이 카드 자체가 없다고 한다. 카드 분실의 위험이 있어서 아예 만들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찾는 돈도 10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의 소액 금액이 대부분이다. 한 할머니는 출금전표에 이름과 금액을 적어야 하는데 자신이 없는지 은행원의 도움을 받고 있다.
두 번째로 전기요금 등 각종 공과금 고지서를 직접 들고 와서 현금으로 납부한다. 공과금 자동이체를 해두거나 납부기한일 전에 인터넷 뱅킹을 하면 좋으련만 통장과 도장을 갖고 와서 현금을 찾고 찾은 돈으로 다시 공과금을 납부한다. 결과적으로 시간이 제법 걸린다.
은행에서는 수익성이 별로 없는 이런 잡다한 일에 인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대책을 만들 모양이다. 우선 은행 방문객을 인터넷 뱅킹으로 유도하여 창구 방문을 줄이도록 한다. 그런데도 인터넷 뱅킹을 마다하고 창구로 오는 고객은 업무는 처리해 주되 수수료 징수 등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강구하는 모양이다. 앞으로 종이 통장도 없앨 태세다. 은행입장에서 바라볼 때 충분히 이해는 한다.
하지만 컴퓨터나 인터넷에 익숙하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참 불안하겠다는 생각이다. 종이통장을 직접 눈으로 보거나 종이 영수증을 보관해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 노인의 특성이다. 남들에게 은행 업무를 부탁하는 것도 노인 특유의 의심이 많은 성품으로 볼 때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믿었던 사람에게 금전적 사기를 당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까딱하면 자신이 옳게 처리한다고 믿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바로 보이스피싱이었다는 황당한 사실들이 방송에 나오므로 노인 분들이 컴퓨터 전산을 더 무서워한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은행에 직접 찾아가서 은행에서 보증하는 창구 직원과 면대면 방식으로 업무를 하고 싶어 한다. 이를 수수료 징수라는 제도로 막으려는 것은 경제적 약자에게 너무 가혹하다.
이런 나이든 분들의 은행 업무를 보조할 시니어 은행도우미를 은행에서 채용하면 좋겠다.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정금액을 지원하는 노령연금 수혜자에게 일을 시키고 돈을 주는 것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무조건 나이 많은 은행고객을 경비절감과 편의 위주로 전산화로만 몰아넣을 것이 아니라 현실성도 심각히 생각해볼 문제다.
우리 가족은 6·25 전쟁 납북 피해자 가족이다. 저의 시부모님은 일제 강점기 시절 동경 유학 생활 중에 만나서 당시로서는 드문 연애 결혼을 하셨다. 시어머님은 3남 1녀를 낳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시던 중 6.25 전쟁의 발생으로 시아버님이 납치 되신 것이다.
어머님은 6·25당시 34살의 젊디 젊은 나이에 혼자 되셔서 갖은 고생을 하시면서 자제분들을 대학까지 교육시키셨다. 어머님은 저의 결혼 후 평생 우리랑 함께 사시다가 5년전 95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는데 얼마 전 6·25를 맞아서 정부로부터 를 받고 남편은 많은 감회에 젖었다. 남편은 아버님의 납치 후 직장 생활 초기에는 혹시라도 이북의 아버님과 접촉할까봐 출장 허가도 힘들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맞벌이로 직장에 다니던 필자는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 때는 지금처럼 건강 프로그램도 별로 없어 뇌졸중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회복은 했으나 후유증으로 지금까지도 몸이 불편한 상태이다. 내가 쓰러지자 가정 생활은 즉시 엉망이 되었고 또 남편은 곧 정년 퇴직을 하게 되었다.
서울의 모 방송국에서 30 년 넘게 근무하고 정년 퇴직을 한 남편의 퇴직금은 그 때로서는 많은 금액이었다. 그 때는 퇴직금도 미래가 어떨지 모른다며 매달 지급되는 연금으로 받지 않고 일시불로 받던 시대였다. 그리고 당시엔 은행의 이자도 상당히 높아서 이자로만 살아도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 할 수 있었다. 또 그 때만 해도 장수 시대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 은퇴 후의 생활 준비도 하지 않았고 당연히 어떻게 퇴직금을 관리 해야할 줄도 몰랐다. 그 때는 지금 유행하는 ‘은퇴 이후의 재무 설계’ 같은 말은 존재 하지도 않았다.
남편이 할 일을 못 찾아 힘들어 하던 어느 날 필자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찾은 주례 협회에서 직업적 주례사를 모집한다는 걸 보고 남편 몰래 응모를 했다. 남편이 방송국에서 방송 경험이 있으니 주례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실제로 주례 경험도 많았기에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남편 대신 응모 서류를 보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을 할 정도로 궁핍하진 않았지만 하루 하루 똑같은 무료한 생활로 시간 보내는 남편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나름대로 활력을 줄수 있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예상대로 합격 통지를 받고 남편에게 기쁜 마음으로 말을 했더니 엄청 화를 내면서 누굴 뭘로 보냐며 자기를 무시 했다고 몇 달 동안 나와 눈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가 그런 아르바이트를 하면 남이 자길 얼마나 궁하게 보겠냐며 자긴 앞으로 돈을 버는 일은 절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는 거였다. 사실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남편 출근만 하면 하루 종일 온통 내 세상이었는데 갑자기 하루 종일 붙어 있기가 참으로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필자의 단순한 생각이 남편을 화나게 만든 것이었다. 요즘은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요령이 생겨, 퇴직 초기처럼 싸우지도 않고 서로 각자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필자를 보면 대견한 생각이 든다.
브라보 앙코르 라이프
우리는 잘 늙고 잘 죽기 위해 잘 살려고 한다. 그래서 인생 후반기 여러 필수교양 지침 가운데서도 비우기, 내려놓기, 나누기를 배우고 훈련하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시니어 세대는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고들 이야기한다. 돈을 벌어야 하고 모아야 하고 자녀들에게 해주어야 하는 강박 속에서 성실하게 노력하고 희생하며 살았다고 하는 그 공로를 돌이켜보면 사실 나와 가족을 위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다른 사람 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재능이나 금전을 기부하고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기부’문화에 익숙지 않았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배운 적이 없다. 미국의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같은 사람들은 미국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삼성 같은 대기업도 사회공헌 차원에서 기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개인이 기부를 하는 일은 아주 드믄 일이다. 기부 DNA가 아예 없는 사람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보통의 사람들도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기부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기기 쉽다.
퇴직을 하고 일정한 가처분소득 없이 사는 마당에 기부하고 싶어도 형편이 그렇다. 대부분 이런 생각일 것이다. 퇴직 후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든지, 연금이나 일정 자산소득이 있든지 간에 어느 정도의 기간이 될지 불투명한 자신의 노후를 생각하면 불안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향후 30~40년을 위한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보통의 시니어라면 말이다. 얼마가 있어야 안심이 될까? 준비가 되어 있다 해도 소유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면 행복하지 않다. 단언컨대.
인생 후반기 시니어의 차이 나는 경영 노하우는 빼기와 나누기다. 인생 후반기야말로 기부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다. ‘소득의 일정 부분을 기부한다’는 말 대신 소비하는 금액의 일정 부분을 줄이고 빼서 기부금 명목으로 지출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얼마큼씩 빼기를 할 것인가. 물질적으로 나를 비워가는 과정 또한 나를 내려놓는 일 이상으로 중요하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 매달 생활비에서 10퍼센트 혹은 13퍼센트는 떼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나 공익을 위해 애쓰는 단체에 기꺼이 기부하고 나누어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행동에 옮기는 순간 삶의 가치는 고양된다.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긍심은 물론, 줌으로써 누리는 행복감은 나만을 위한 소비가 주는 행복감보다 훨씬 큰 의미를 준다. 신기하게도 기부는 투자의 효과로 내게 어떤 형태로든 돌아온다는 것이다.
기부하는 일에 어린이, 어른, 노인을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에게 기부문화가 그리 친숙하지 않다는 점에서 각 세대에 맞는 기부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공감할 만한 동기부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몇 달 전에 지인들 몇몇과 다음과 같은 궁리를 해봤다.
당신이 누구이든 기부할 돈도 재능도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시라. 우리나라 국민은 만 65세가 되면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을 받는다. 필자도 2년 내에 소위 지공족에 편입된다. 웃음도 나고 머쓱한 기분도 드는 게 사실이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지하철 무임승차로 한 달에 적어도 4만여 원의 지하철 교통비가 절약된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외출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도 2만원 정도는 절약될 것으로 짐작된다. 이거야말로 공돈인데 이럴 때 과감하게 월 2만원을 기부해보라. 이름하여 지공펀딩 캠페인을 벌여보자고 5명의 예비 지공족이 모여 논의했다. 지하철이 공짜라는 희화적 의미의 ‘지공’을 ‘지공(至公)’이라 표기하고 공익을 위해 기금조성을 하기로 한 것이다. 열 명, 스무 명, 백 명, 천 명, 그 이상으로 지공족이 참여한다면 그야말로 지공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고 시니어 문화가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시금석이 될 만하다.
성실하게 일하고 절약하며 살아온 세월은 어디로 가고 무임승차족, 사회비용부담 세대로 비하되고 있는 지금의 시니어에게 비타민 같은 기회로서 기꺼이 동참하고 싶은 제안으로 받아들여지길 기대하고 있다. 공개하기도 전에 벌써 동참의 뜻을 보내온 사람이 30여 명이다. ‘기부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지만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는 이도 없는데 누구한테 기부하라는 거냐’ 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감할 만한 명분이 있고 믿을 만한 단체라면 나도 기꺼이 지공 멤버가 되어 기부자가 되겠다는 의미다. 본격적으로 이런 운동을 전개하면 ‘나도 기부를 한다’는 자부심과 즐거움에 행복해하는 시니어가 많아지리라 본다. 이 운동의 목적이나 목표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기에는 적합한 지면이 아니어서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단, 기부의 마음만 있으면 기부할 돈과 재능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설사 기부를 하고자 해도 누굴 믿고 기부를 하겠는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작금의 사회 분위기가 기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든 것도 사실이다. 어금니아빠 사건, 새희망의 씨앗 전화사기 사건, 미르재단에 이르기까지 최근 1년 사이에 부패한 재단, 기부금 횡령사건이 줄을 이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래서 진정 목적에 잘 쓰이고 있는지 믿을 수 없어 더 이상 기부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 대응이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세먼지가 가득하고 탄소 배출이 증가해도 우리는 숨을 쉰다. 숨쉬기에 필요한 산소는 여전히 공기 중에 존재한다. 기부는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사회를 더 좋게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기부문화가 성숙해가면서 스스로 사회의 자정 장치까지도 만들어낼 것으로 믿는다.
후반기, 다시 시작하되 자장격지(自將擊之)의 자세로 한다. 과식하지 않을 줄도 알고 내 몸의 상태에 맞춰 행동을 조심할 줄도 안다. 그러지 않으면 탈이 나니까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과히 나쁘지 않다. ‘스스로 가지려고만 하지 않고 주려고 한다. 더하기, 곱하기보다 빼기, 나누기를 좋아한다.’ 이런 현상은 연륜의 지혜가 주는 자정기능이고 자기균형 효과라 생각한다. 나이에 걸맞게 노쇠해가는 것이 노익장을 과시하고 노욕을 부리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보기에 자연스럽다. 몸도 마음도 물질도 스스로 비워야 하고 빼야 하는 줄 알게 되니 기쁘다. 나와 내 자녀에게만 주는 것보다 이 사회의 더 많은 사람, 더 필요로 하는 곳에 주면 내가 실제로 준 것보다 더 큰 몫으로 가치가 증대된다. 기부는 소비가 아니라 투자이고 생산이다. 기부하는 사람은 투자자이고 보람과 기쁨이라는 배당을 받는다. 우리 사회의 명예로운 주주가 되는 것이다. 사회를 더 좋게 변화시키는 일에 시니어가 동참하는 것이다.
평범한 당신이 죽기 전에 기부의 즐거움을 누리고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