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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로 중상 입은 중년 여성과 신경외과 전문의의 라뽀
- 사고는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평소에 충분히 잔병치레를 했다고 봐주는 일은 없다. 부양하는 가족이 있어도 피해가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것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다. 강서 나누리병원에서 만난 이미정(李美正·54)씨도 그랬다. 연이어 시험에 들듯 시련이 다가왔지만, 그저 묵묵히 이겨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배정식(裵政植·41) 병원장을 만난 것은 자신과 주변 것들에 대해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삶에 준 선물 같은 보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그저 즐거운 일뿐이었다. 악몽 같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전조는 없었다.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사우나의 열기가 아직 몸에 미열처럼 남아 있었지만, 바람을 시원하게 느끼게 해주는 기분 좋은 것이었다. 옆자리 동네 언니와의 대화 주제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었지만 언제나처럼 즐거웠다. 늘 다니던 길 위에서 달리는 차들이 주는 공포도 없었다. 그때였다. 승용차 한 대가 벼락같이 나타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차는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속도를 줄일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속도는 왜 줄이지 않는 건지,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는 건지, 찰나에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그 의문들이 머리를 떠나기도 전에 섬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엄청난 충격이 그녀를 덮쳤다. 사이렌 소리에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구급차 안이었다. 음주 차량이 빼앗아가 버린 삶 이미정씨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유난히 미간을 찌푸렸다. “2010년 사고가 났어요. 나중에 들었는데, 가해 차량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했다더라고요. 제대로 감속할 생각도 못하고 냅다 들이받았나 봐요. 119 구조대원들이 저를 차에서 꺼내기 위해서 절단 장비까지 써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결국 그날의 사고는 이미정씨의 몸에 생채기를 냈다. 치아가 4개나 부러졌고, 늑골도 부러져 꽤 오랫동안 고생해야 했다. 하지만 정말 치명적인 상처는 다른 곳에 났다. 바로 허리였다. “허리 디스크 파열이었어요. 디스크 수핵이 터져 수술을 받아야 했어요. 대학병원에서 수술 후 퇴원하기까지 3주나 걸렸어요.” 사고 후 몇 년이 지나면서 허리는 조금씩 나아지는 듯싶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동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상황이 됐지만, 성급한 그녀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반찬장사를 하면서 보낸 십수 년의 세월은 그녀를 뭐든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성격이 이번에는 화를 불렀다. “건강에 좋다고 등산을 다녔어요. 허리 아픈 사람한테는 쥐약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죠. 허리가 아파오길래 더 열심히 운동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반대였어요.” 상태는 수술 직후보다 더 좋지 않았다. 집에서 20분 거리인 시장까지 한 번에 걸어갈 수가 없었다. 10분만 걸으면 온몸의 맥이 풀리면서 주저앉았다. 밤이 되면 다리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저려왔다. 그 고통의 날들 속에서 배정식 병원장을 만났다. ‘척추수술 후 통증 증후군’으로 다시 병원에 배정식 병원장은 이미정씨를 쉽지 않은 환자로 기억했다. “임상적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전후 사정이 좀 복잡했어요. 일단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오신 상태였고, 또 그 수술이 잘못된 수술은 아니었으니까요. 이미정씨의 경우는 두 가지 증상이 겹친 상태였어요. 척추에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인 척추관이 좁아져서 생기는 척추관협착증 증세도 있었고, 척추수술을 한 환자에게서 간혹 나타나는 척추수술 후 통증 증후군 증상도 있었죠.” 증후군은 치료 과정에서 섬세한 주의가 필요하다. 트라우마라는 심리적 불안이 병의 치료 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특히 만성통증 환자는 우울증을 동반하기도 해서 배 원장은 신체적인 치료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환자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가가 치료에 많은 영향을 끼쳐요. 환자의 표정을 보면 치료가 어떻게 진행될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데요, 경험상 환자가 시술에 대한 믿음이 높으면 수술이나 예후가 좋은 경우가 많아요. 의심하거나 불안해하면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요.” 척추관협착증은 시니어들이 노화 과정에서 자주 겪는 병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 척추가 노화되면서 척추 뼈마디가 굵어지고 뼈와 뼈 사이에 있는 인대가 두꺼워지는데 이 과정에서 신경이 압박당하기 때문이다. 허리 디스크와 구분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허리를 굽혀보는 것이다. 허리를 굽히거나 쪼그려 앉았을 때 통증이 사라지면 척추관협착증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허리보다 허벅지나 엉치 같은 부위에 더 큰 통증이 있다. “허리를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분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어요. 농부나 주부에게서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곤 하죠. 보통은 약물을 이용한 주사 요법으로 3개월 정도 치료해보고 수술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심한 경우 대소변 기능 장애가 오기도 해요. 하지만 실제로 수술을 하는 경우는 1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허리 질환 예방은 근육 강화가 최고 그렇다면 건강한 허리를 유지하는 방법은 없을까? 배 원장은 허리 근력을 강화할 수 있는 운동을 하라고 권고한다. “척추 근육이 단단해지면 뼈와 신경, 인대에 주어지는 스트레스가 분산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허리 디스크에 무리를 주지 않는 운동을 통해 근육을 강화하면 허리 질환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배 원장이 추천한 운동은 30분 정도 속보로 걷는 것이다. 시간을 30분 정도로 제한한 것은 너무 많이 걷게 되면 오히려 척추관협착증을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일 차량으로 이동하는 일상이라면 두 정거장 정도 미리 내려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배 원장의 설명이다. 또 다른 추천 운동은 수영이나 아쿠아로빅 같은 수중 운동. 물속에서 운동을 하면 척추나 무릎 관절에 중력으로 인한 부하가 적게 걸리기 때문에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바닥 생활은 허리에 안 좋다. 바닥에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의 반복이나 바닥에 허리를 굽히고 앉는 자세, 무거운 물건을 드는 자세는 허리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배 원장은 설명한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는 가급적 물건과 몸을 밀착시켜 들고, 정면을 바라보면서 들어야 허리 부상을 예방할 수 있어요. 쉴 때는 가급적 등받이 있는 의자를 이용하시고요. 재채기할 때도 복압으로 인해 디스크 파열이 올 수 있으니 체중 분산 등 주의가 필요해요.” 허리수술 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정씨도 약물 요법으로 치료를 시작했지만, 예후가 그리 좋지 않았다. 결국 배 원장은 수술을 결정했고, 이씨는 수술 결정에 동의하는 데 큰 걱정은 없었다고 한다. “사고를 당하고 처음 수술대에 누웠을 때가 무척 겁이 났죠. 허리수술은 위험하다는데 큰 사고로 수술까지 하게 됐으니까요. 하지만 두 번째 수술은 담담하더라고요. 수술을 결정하는 것도, 수술대에 누워서도 마음이 편안했어요. 원장님을 믿고 모든 걸 맡기자고 생각했어요.” 외과의사 입장에선 의사를 믿고 몸을 맡겨주는 환자가 고맙다. 허리수술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와 소문들이 쌓이면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환자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배 원장도 그런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실제로 무조건 수술을 거절하는 환자도 있어요. 하반신에 마비가 올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데 말이죠. 치료는 모든 방법을 다 고려해야 해요. 약물이나 비수술적 처치도 당연히 고려해야 하고, 만약 수술이 필요하다면 해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치료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검토하고, 환자 상태에 맞는 치료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치료법만 고집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미정씨가 병을 의연하게 이겨낼 수 있었던 데는 딸의 존재가 컸다. 사실 이씨가 큰 병을 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녀의 표현대로 “웬만한 병원은 다 가봤다”고 할 정도로 이런저런 질환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2007년에는 갑상선암 수술을 했고, 그다음 해에는 난소에 문제가 생겨 절제를 해야 했어요. C형 간염 합병증으로 간 수치가 위험할 정도로 올라간 적도 있고요. 그때마다 딸아이가 제 간병인 역할을 했는데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했어요. 당연히 허리 때문에 입원했을 때도 큰 도움을 받았죠. 그런 경험 때문인지 지금은 사회복지 쪽으로 진로도 변경했어요. 간병이요? 전문 간병인보다 나아요(웃음).” 그녀를 다시 일어서게 해준 신앙의 힘 이어지는 육체적 고통 속에서 그를 구원한 존재는 또 있다. 바로 신앙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씨는 최근 총회신학대학원 과정을 수강 중에 있다. 졸업 후 목사 안수를 받는 것이 꿈이다. 그녀는 힘들 때마다 예수님의 고통과 희생을 생각했다. 그러면 자신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릴 때 그분에게 서운한 것이 있어 잠시 교회를 멀리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종이 되어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여러 가지 병이 겹치면서 우울증으로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는데,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죠. 어릴 때 제 꿈 중 하나는 힘든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 같은 시설을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지금도 그 꿈은 유효해요. 건강을 되찾으면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는,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수술 후 재활을 통해 다시 정상적인 삶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몸을 써야 하는 직업인데다, 급한 성격이 허리에 가끔씩 무리를 주는 탓이다. “조심해야 하는 건 아는데 괜찮다 싶어 최근 몸을 좀 움직였더니 다시 상태가 나빠지려고 해요. 이전보다 몸이 많이 둔해진 걸 알면서도 자꾸 마음이 앞서나 봐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일에도 이젠 익숙해져야겠어요. 요즘엔 다시 조심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스트레칭도 자주 하고, 걷는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허리를 관리하고 있어요. 또 병원 신세 져서 딸아이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요(웃음).”
- 2017-05-05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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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 과태료 13만원짜리 고지서 받아봤나요?
- 아니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표현이 생각날 정도로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는 중 현관 옆 우편함에 낯선 우편물이 들어 있어 “이게 뭐지?” 하며 뜯어봤더니 세상에, 생각지도 않았던 교통범칙금 고지서였다. 필자를 더욱 놀라게 한 건 범칙금 액수였다. 3만원도 아니고 5만원도 아닌 무려 13만원이었다. 13만원짜리 교통범칙금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고 화가 끓어올랐다. 필자는 운전을 무척 조심스럽게 하는 편이다. 위반을 하며 운전했다는 기억이 없는데 도대체 어찌된 걸까?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난해 교통위간 딱지를 뗀 일이 있다. 골목에서 나와 직진 차선으로 들어가려는데 차가 많이 서 있어 끼어들지 못하고 끝 차선에서 옆 차선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가만 보니 필자 뒤로 우회전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서 굳이 왼쪽 차선으로 옮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에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자 그대로 직진을 해버렸다. 그러면서 좀 찜찜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길 건너에서 교통경찰이 차를 세우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아차, 걸렸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반성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래, 그 차선은 우회전 차선이었어. 하지만 이런 정도로 벌금을 내야 하는 건 억울해’라는 생각도 동시에 떠올랐다. 더욱이 우회전하는 차량을 방해하지는 않았으니까. 필자는 교통경찰에게 몰라서 그랬고 다음부터는 안 그럴 테니 범칙금을 작은 거로 주시라고 비굴한 웃음까지 보였다. 뒤편에 필자처럼 위반한 차가 또 오고 있어 바빠지신 교통경찰은 다음부터 조심하라는 당부와 함께 3만원짜리 범칙금 딱지를 떼어준 뒤 뒤차로 갔다. 그때는 필자가 충분히 잘못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빨리 납부를 하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13만원짜리 범칙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위반한 일이 있다면 머릿속에 조금의 기억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전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고지서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날짜를 보니 그 장소를 지나가긴 했다. 그래도 위반한 기억이 없다는 생각에 교통과에 전화를 걸었더니 자동카메라가 찍은 사진으로는 분명 신호 위반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곳은 어린이 보호구역이라 두 배의 벌금이 나온다는 설명이었다. 아마 신호가 바뀌려는 순간 필자가 서지 않고 그냥 지나는 걸 자동카메라가 잡은 모양이었다. 평소 교통규칙은 잘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운전을 했는데 이렇게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위반을 하고 말았다. 13만원이 아까워서 분하긴 했지만 자동카메라가 찍은 증거가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더욱 신경 써서 교통규칙을 잘 지키는 수밖에. 예전에는 심심치 않게 교통범칙금을 내곤 했다. 유턴하는 차선의 점선이 없는 곳에서 차를 돌렸는데 위반 딱지를 받았다. 그다음부터는 유턴 차선에선 앞에 차가 없어도 꼭 점선이 끝나는 곳까지 우직하게 가서 차를 돌리곤 한다. 한 번 경고를 받으면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으니 한 번쯤은 경고만으로 일깨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지도 않았던 범칙금을 받고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서 안전운행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벌금이 두 배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 2017-05-0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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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화력격멸훈련’ 참관기
- 요즘 연일 뉴스를 통해 북한의 군사 도발적 언행과 핵 실험이 보도되고 있다. 필자는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면 너무나 무섭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정책기자단에 4월 26일 경기도 포천에서 한미 연합 훈련을 한다는 공지가 떴을 때 꼭 참석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방부는 2017년 4월, 강한 국군의 위용을 과시하고 적 도발 시 강력한 응징, 격멸 능력을 시현하기 위해 한미 연합 및 합동훈련인 ‘2017 통합화력격멸훈련’을 시행했다. ‘통합화력격멸훈련’이란 한미 및 육·공군의 합동작전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이다. 1977년 6월 처음 시작하여 총 8회를 시행해온 이 훈련은 원래 5년에 한 번씩 하는데 올해는 북의 위협으로 2015년 8월 이후 2년 만에 실시하는 것이란다. 이번 훈련은 국군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를 한데 모아 적을 압도할 수 있는 최강의 화력을 보여줌으로써 어떠한 위협에도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겠다는 우리 군의 의지와 강력한 국방력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또한 우리 군의 확고한 대비 태세와 강력한 한미 연합 및 합동작전수행 능력을 대내외에 과시해 적의 도발 의지를 분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훈련이었다. 이제 봄날의 화려하고 아름답던 꽃의 향연은 끝나가고 연초록의 나뭇잎들이 싱그러운 계절을 알려주고 있다. 참으로 쾌청한 날 오전 9시 반 집합 장소인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갔다. 정책기자단은 사무관님과 14명의 기자가 함께 출발했다. 한 시간 반쯤 걸려 도착한 포천의 승진 훈련장은 휴전선 남방 25km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공개 모집한 일반 참관단과 중·고교생, 국내외 주요 인사, 외국 군인, 우리나라 군인 그리고 우리 기자단 등 각계각층의 2000여 명은 훈련장이 내려다보이는 참관석에 앉아 훈련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기대에 찬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하늘을 보니 사파이어 빛으로 깨끗했고 흰구름은 솜사탕 같은 모습으로 떠 있었다. 그 아래 가, 나, 다, 라와 같은 숫자로 표시된 훈련장 풍경이 내려다보였다. 이제 훈련이 시작되면 평온해 보이는 저곳이 타깃이 되어 포탄과 화력으로 망가질 것이다. 아름다운 산하에서 폭격 연습이 이루어진다니 우리나라의 현실이 가슴 아프고 안타깝기만 했다. 드디어 훈련이 시작되었다. 심장을 터뜨릴 듯 굉음이 울리고 탱크에서는 무서운 화력이 뿜어져 나왔다. 날씬한 전투기와 헬기가 하늘 위에서 포탄을 명중시키는 소리도 연이어 터졌다. 그때 지금은 적에게 어떤 공격을 하고 있고 어떻게 대응하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드디어 적을 무찔렀다는 멘트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영화에서 봤다는 그저 신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계속 펼쳐졌다. 그러나 실전에 대비한 훈련 상황이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한편으로는 이런 무기로 이렇게 강력하게 대비하면 걱정 없겠다는 든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미동맹은 지난 3월부터 전략폭격기, 항모강습단, 핵잠수함 등 다양한 전략자산으로 북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비한 확고한 대북 억제 및 응징 능력을 과시한 바 있다. 이번 ‘통합화력격멸훈련’은 강력한 한미 연합작전수행 능력과 우리 군의 위용 및 발전상을 과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훈련이 끝난 후 아파치 헬기 등 33종의 장비 견학이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무엇보다도 국방비는 든든하게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아들 같은 군인들의 늠름하고 멋진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들이 지켜주기에 우리가 편히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가 총성에 파괴되지 않도록 전쟁은 절대 일어나면 안 될 것이다. 이렇게 훈련과 대비를 해서 우리나라를 굳게 지켜내야 할 것이다.
- 2017-05-0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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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도 ‘쉼표’가 필요하다
- 필자가 회장을 맡고 있는 모임에서 친목도 다지고 내년 모임의 방향을 잡는 행사를 열었다. 고문을 맡고 있는 H형이 소유하고 있는 가평 소재 별장 겸 연수원을 행사 장소로 추천했다.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과 3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수시설이 있는 펜션 스타일의 집이었다. 그런데 입구 간판에 적힌 이름이 ‘삶의 쉼표’였다. 행사 일정이 마무리되고 저녁을 먹고 즐거운 환담의 시간이 이어졌다. H형에게 펜션 이름을 삶의 쉼표라고 지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음악이나 글에는 쉼표가 있어요! 글에 마침표만 있고 쉼표가 없으면 너무 지루하지요. 또 문장이 길어지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요점을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노래를 부를 때 쉼표가 없으면 숨이 막히고 말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 소중한 인생을 살면서 쉼표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어요. 100세 시대에 더 멋진 인생,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쉼표가 있어야 합니다!” H형에게는 더 큰 꿈이 있었다. “그저 달리기만 하는 직장인들은 중간에 퇴직을 하거나 정년을 맞으면 제2의 삶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살아간다는 것이 안타깝지요. 저는 이곳이 퇴직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명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기 퇴직이나 은퇴를 ‘끝이나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은퇴를 ‘Re+tire’, 즉 ‘타이어를 바꿔 끼다’라는 의미의 Retire로 생각한다. 은퇴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을 쉬고 다시 시작하라는 중요한 메시지이자 새로운 출발의 휘슬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회사에서 오래 쓴 PC가 고장이 나면 업무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수리를 한다. 그러나 직원들이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고민이 있을 때는 PC처럼 수리를 할 수 없다. 그러다보면 스트레스는 우울증이나 과로사 같은 돌이키기 힘든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경제 10대 강국을 자처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국가가 됐고, 하루 40여 명이 자살하는 ‘자살 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강제된 상황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유로운 상황에서의 몰입이 중요하다. 불안이 없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환경과 즐거운 웃음이 존재할 때 새로운 발상이 떠오른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지금 당장 산, 바다, 하늘이 모두 푸르러 청산(靑山)이라 이름 붙여진 작은 섬 청산도로 달려가보자. 2007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슬로시티, 그리고 세계슬로길 1호로 지정된 곳이다. 쉼표가 있는 음악처럼, 삶에도 쉼표가 필요하다.
- 2017-04-2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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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
- 그렇게나 화사하고 황홀하게 아름답던 꽃이 한때 내린 비바람에 떨어져 이제는 마당 한쪽에 예쁜 연분홍의 꽃잎 융단을 만들었다. 이렇게 꽃이 지면 연초록에서 진초록 세상으로 변하며 봄은 우리에게 ‘안녕‘을 고할 것이다. 떨어진 꽃잎을 밟으며 예술의 전당으로 연극을 보러 갔다. 꽃이 져서 우울한데 연극도 우울한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필자가 대학생일 때도 무대에 올랐고 지금까지 수많은 공연이 펼쳐진 작품이다. 수많은 공연이어도 출연진에 따라 분위기가 달랐을 텐데 이번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어떤 느낌일지 기대하며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을 찾았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국 연극계의 일인자인 ‘아서 밀러’의 작품으로 1949년에 뉴욕드라마 비평가협회 상과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이다. ‘아서 밀러’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사람인 ‘마릴린 먼로’와 결혼하고 이혼하기도 한 사람이다. 이 연극은 현대의 산업사회에서 좌절하고 패배하는 미국의 소시민인 한 세일즈맨을 통해 인간소외 현상과 산업사회의 비정함을 고발하고 있다. 연극이 시작되자 어두운 무대 한편에서 무거운 가방을 든 초로의 남자가 지친 어깨와 발걸음으로 힘없이 집에 돌아오고 있다. 63세의 늙은 세일즈맨 ‘윌리 로먼’이다. 그 모습을 보니 벌써 그의 비극적인 인생이 감지되어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는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세일즈맨으로 성공해 자기 사업체도 가질 수 있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에게는 가정적이고 착한 아내 ‘린다’와 사랑하는 두 아들 ‘비프’와 ‘해피’가 있으며 대출을 받기는 했지만 집 한 채도 있다. 대출을 갚아가며 몇십 년이 지나면 그 집은 자기 소유가 될 것이다. 자식들의 미래에 희망을 품은 그의 가정은 항상 밝은 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 ‘로먼’의 이런 꿈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무너져만 간다. 처음 창업했던 사장이 죽고 아들이 사장이 되자 젊은 사장은 점점 실적이 떨어져 가는 ‘로먼’을 탐탁지 않아 한다. 나이가 들어 세일즈하기가 힘들어진 그가 내근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하자 젊은 사장은 비정하게 해고해 버린다. 자존심 강한 ‘로먼’은 자신의 실직을 가족에게 말하지 않는다. 희망을 걸었던 아들들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엇나가기만 하니 기대를 배신당한 슬픔과 피로, 늙은 육체로 인한 절망감, 잃어버린 인생의 회한은 그를 광기로 몰고 간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좋은 시대였던 과거의 환영과 현재의 힘든 생활이 교차하며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현실과 자식들에게 배반당하고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던 완고한 ‘윌리’는 늘 다투던 큰아들 ‘비프’와 화해하던 날, 아들에게 보험금을 물려줄 생각으로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아 자살한다. 그의 죽음으로 나온 보험금은 집의 마지막 대출을 갚는 정도의 액수였다. 연극을 보는 동안 느낀 건 가족과의 갈등과 대화 단절이 무서웠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아버지도 자존심만 생각하지 말고 고민을 아내와 자식들과 나누었다면 그런 비극적인 결말은 맞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다. 아버지의 기대에 짓눌렸던 큰아들 ‘비프’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둘째 아들 ‘해피’도 가엾다. 항상 온화하고 순종적이던 아내도 안쓰럽고 무엇보다도 평생 외로운 고집쟁이였던 아버지가 안타깝고 슬프다. 냉혹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소모품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존재하려고 발버둥 쳤던 세일즈맨의 가족들이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 사람 사이에서 사랑과 소통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깊이 느끼게 해 준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이 감동적이었지만, 필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해서 슬픈 마음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좀 무거웠다.
- 2017-04-2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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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미풍이 아빠’ 배우 한갑수
- 처음 그를 봤던 그때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마치 온몸에 전기가 감돌고 있는 전기맨(?) 같았다. 연극이 끝나고 극장 로비에 나온 젊고 낯선 배우는 차갑고 깊은 까만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바로 MBC 드라마 에서 열연한 배우 한갑수(韓甲洙·48)다. 불꽃 카리스마로 연극 무대를 내달리더니 어느 날 갑자기 TV 속에 나타났다. 그것도 강아지 같은 함박웃음과 함께 말이다. 연기 인생 30년. 그 누구도 몰랐던 반전 연기로 사랑받은 배우 한갑수를 만났다. 아직도 사람들의 시선이 익숙하지 않다는 대세 배우의 삶과 가족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이고 어른이고 많이도 알아봅니다 “촬영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다가와서 친구 부르듯 그냥 이름을 불러요. 제가 아무리 ‘이놈! 아저씨한테!’라며 무서운 표정을 지어도 신이 나서 그러는 거예요.” MBC 주말 드라마 는 한갑수에게 드라마 하나 끝난 것 그 이상의 의미 있는 작품이 됐다. 배우로 살면서 처음 가져보는 기분을 안겨줬다고나 할까. 무대에 올라 관객의 박수를 받아왔지만, 조명이 없는 거리로 나서면 박수갈채는 온데간데없었다. 이 드라마는 달랐다. 촬영장에 모인 아이들은 한갑수를 “아바디”를 목 놓아 외치는 또래 친구 대훈이로 대했다. 드라마가 끝난 다음에는 사람들이 알아봐도 너무 알아보니 인기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인생을 바꿔준 대박 드라마가 된 것. 지금 와서 하는 얘기이지만 한갑수는 방송 연기 초반 배우로서 자존심이 상해 고사하는 일이 많았다. “캐스팅 디렉터들이 제 연극을 봤는지 연락을 해오더라고요. 한 회 잠깐 출연할 수 없냐고요. 그런데 처음에는 기분 나쁘다고 안 한다고 했어요. 내가 연극을 몇십 년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연락을 해오던 디렉터 중 한 명이 한갑수의 마음을 움직였다. 연극은 많이 했어도 카메라 연기는 안 해봤으니 경험해보라 권유했다. 미디어 매체에도 시선을 줬으면 한다고 말해줬다. 연극을 많이 했지만 생각해보니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이후 경찰이건 면접관이건 주어지는 역할은 작건 크건 열심히 해냈다. 한갑수가 시청자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한 작품은 MBC 드라마 과 이다.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특히 이휘향에게 간 이식을 해주는 오빠 역할을 했던 은 인생작 로 가는 도움닫기 역할을 해주었다. “의 김사경 작가님이 을 보시고 저를 추천하셨어요. 당시 북한 외교관 태영호씨가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제 역할이 그와 비슷한 북한의 고위직이라더군요. 이제는 좀 지성인을 연기하나 싶었죠. 드라마가 시작하고 한참 지나 제가 등장하는 대본이 나왔다며 작가님이 연락하셨어요. 그런데 열 살 아이 연기가 가능하냐고 묻더라고요.” 연극 에서는 피바람을 일으키는 윤원형을, 유진 이오네스코의 잔혹극 에서는 잔인한 방법으로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 역할을 했던 그다. 무대 위 선 굵은 배우, 아이를 연기하다 잔인함과 공포를 연기하던 배우가 열 살 아이 지능을 가진 연기라니. “네? 저는 열 살 연기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어요. 바보냐고도 물어봤어요.” 걱정돼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일상의 언어로 흐르는 드라마에 나이 든 남자가 아이처럼 연기하는 것이 과연 어울릴까 걱정에 걱정을 더해갔다. 이에 김사경 작가는 두 가지를 요구했다. 아이처럼 본능대로 말할 것과 북한 아이만의 순수함을 표현해 달라고 했다. “순수를 어떻게 하지? 일단은 맑게 웃자는 것이 큰 콘셉트였어요. 내가 눈도 크고 쌍꺼풀도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걸 시청자가 귀엽게 봐줬던 거 같아요. 그리고 이휘향 선배님과 (임)수향이가 너무 악한데 제가 팍팍 시원하게 요즘 말로 사이다처럼 이야기하니까 많이들 좋아하신 것 같아요. 두 분이 잘했기 때문에 제가 덕 본 겁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사이가 나빴지만 평소에 제일 친했어요.” 연기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영역이었다. 시청자에게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에 자신의 능력보다 함께한 선후배의 도움이 컸다며 겸손하게 공을 돌리는 배우 한갑수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얼굴, 꽤 쓸모 있습니다 경남 거창 출신인 한갑수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지역의 한 청소년 극단에 들어가 허드렛일을 도우며 연극을 시작했다. 무일푼 극단 생활 3년 만에 배우로 무대에 오른 그는 경남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연극제의 연기상을 휩쓸었다. 괴물 같은 연기력을 눈여겨본 연출가 이윤택이 2001년 그를 서울 무대에 올려세웠다. 30대 중반의 한창 물이 오른 남자 배우의 연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의 역할은 늘 실제 나이에 비해 한참이나 많았다. 지금도 주어지는 역할은 실제보다 열 살 이상 많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KBS 2TV 저녁 일일 드라마 에서도 주인공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나이가 많은 선배 연기자가 아들로 혹은 동생으로 등장하는 일은 이제 다반사다. 본인의 나이와 맞지 않은 역할을 하는 게 서운하지 않을까? 아니라고 했다. “연출가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도 연출가님한테 흰머리가 좀 있는데 염색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제 헤어스타일이 좋다면서요. 한 촬영 감독님은 오히려 제가 늙어 보이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왜냐하면, 실제 나이가 육십이 넘어가면 대사 암기가 좀 어렵고 50대 연기는 남자 배우나 여자 배우나 할 수 있는 배역이 많이 없다더라고요. 제가 사실 많이 하는 역할이 주인공 아버지 역할입니다. 대부분 60대 역할일 수밖에 없죠.” 이번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도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다. 상대 배역으로 등장한 배우가 예순두 살이었는데 한갑수가 오히려 나이가 더 들어 보였던 것. 결국, 상대 배역을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하려고 분장팀이 분주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나는 내가 노안이라는 걸 알아요. 어디 가서 나이 얘기하면 깜짝 놀라더라고요. 변희봉 선생님이 저에게 ‘몇 살이냐’고 물어봐서 ‘오십입니다’ 했더니 ‘애’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또 좋은 건 역할도 역할이지만, 나이가 한참 들어 보이니까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 않더라고요(웃음).” 천생 배우 어린 아내의 특급 매니지먼트 한갑수는 소속 회사 없이 아내 변혜경(39)씨와 촬영 현장을 다니고 있다. 아내가 한갑수의 매니저인 셈. 드라마를 하게 되면서 단 하루도 떨어져본 적이 없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 가면 사람들이 아내 변혜경씨를 더 많이 찾는다. 배우 이휘향도 그랬다. “미스 변 어디 있느냐고 이휘향 선배님이 그러세요. 밥 먹으러 가야 한다고요. 나랑 가자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랑요. 감독님도 너무 좋아하셨어요.” 아내는 현장 스태프와 친해질 수 있게 해주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잘 웃고,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인사를 잘했다. “만약 저 혼자 다녔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제 스타일이 원래 연기에 집중해야 하니까 누구랑 말도 안 하고, 친해질 수 없거든요. 그런데 옆 사람이 분장이나 의상 스태프랑 친하니까 편안하게 이것저것 부드럽게 부탁합니다. 우리 집사람 덕분에 참 좋죠. 현장에서 저 혼자 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을 아내가 해주고 있습니다.” 배우 한갑수의 아내로 매니저로 사는 변혜경의 직업 또한 배우다. 그것도 천부적인 연기실력을 갖춘 몇 안 되는 배우. 무대 위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관객과 호응하던 모습이 생생한 멋진 배우였다. 열 살 차이 어린 여배우는 2001년 무대에서 연기 연습을 하는 한갑수를 보고 반해버렸다. “거창에서 연희단거리패로 옮겨서 연극을 할 때였는데 밀양에서 합숙생활을 했어요. 아내는 연희단 소속 배우였고요. 아침마다 단원들이 조별로 다 모이는데 한 달 내내 아내가 ‘한갑수 내 꺼다’ 하고 소리치는 겁니다. 정말 장난인 줄 알았어요. 저리 가라고도 했어요.” 장난 같던 아내 변혜경의 고백은 사실이었다. 결국 연극의 주인공으로서 공연을 닷새 앞두고 아내는 사랑의 탈출(?)을 하고야 말았다. 장례가 촉망되는 여배우의 결혼을 극단은 반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하고도 극단 대표인 이윤택 선생님 마음에 우리가 남으셨나봐요. 진주에서 신혼살이할 때 그 지역으로 강연을 오신 적이 있었어요. 강연하시다가 ‘한갑수 저놈이 우리 혜경이를 훔쳐갔어요’ 그러셨답니다(웃음). 이 선생님이 아내를 딸처럼 예뻐해서 상심이 크셨을 거예요.” 최악의 궁합을 이기고 최고 부부가 되다 “결혼 전에 저희가 결혼하면 아내가 죽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애를 못 낳거나 낳아도 불구가 될 거란 말을 들었어요. 다행히 애도 낳고 별일 없는가 싶었는데 아내가 아이 낳고 100일 만에 쓰러졌습니다.” 깨소금 냄새나는 신혼생활도 잠시, 시련의 연속이었다. 아이를 낳고 얼마 안 있어 아내 변혜경씨에게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다.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고 급기야 상대방의 말도 왜곡돼 들린다고 하다 정신을 잃었다. 뇌전증이라고 했다. “병원에 다녀도 원인이 나오지 않았어요. 한의원에도 갔었고, 심지어 신병이란 말도 들었어요.” 처가에서 아이를 대신 키워주고 병원비 대부분을 지원했지만, 가족 부양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장인어른이 서울대병원 앞에 가서 시위도 했어요. 딸의 머리라도 한 번 열어봐 달라고요.” 발병 7년 만에 아내 변혜경씨는 뇌 수술을 받았다. 수술 두 번째에 문제의 위치를 찾아냈고, 세 번째 누운 수술대에서 원인을 제거했다. 수술 직후 만난 아내는 딸도 한갑수씨도 못 알아봤다고. 그래도 젊은 사람이라 의료진이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몸이 좋아졌다. 배우가 숙명인 한갑수의 해피스토리 작년 하반기 한갑수는 가족과 함께 경남 진주에서 서울 근교로 이사 왔다. 이곳으로 오고 얼마 안 있어 드라마를 하게 된 것뿐만 아니라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자신의 직업이 가진 숙명적 불안감과 사랑 사이에서 여전히 고민하는 진짜 배우였다. “배우는 오래가기 쉽지 않습니다. 소모되고 금방 잊히죠. 평생 숙명처럼 배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나를 찾아줘야죠.” 한갑수라는 배우가 지금보다 선명해질 때까지 소속사에 들어가는 일 없이 아내와 함께 일할 생각이다. 지금의 상태로 소속이 되면 다작을 해야 하거나 정체성이 모호해질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가 다시 배우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우스갯소리로 ‘10년 후에는 나는 일을 좀 쉬고 아내가 열심히 연기했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몸도 완쾌되고 아이도 다 키웠으니 아내도 연기를 많이 하고 싶어 해요. 하지만 조급해하지 말라고 말해줍니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혜경이가 나이 들면 연기자로서 더 빛을 낼 것이라고 봅니다. 현장을 같이 다니는 이유가 많이 보고 배웠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거든요.” 현장을 함께 다닌 덕에 아내 변혜경씨도 잠깐이나마 에 얼굴을 비치기도 했다. 매니저 일을 하는 틈틈이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아내가 대견스럽다. “부부생활 15년을 해보니 조금씩 서로 알게 된 거 같습니다. 힘든 것이 좀 거쳤으니 저뿐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갔으면 합니다.”
- 2017-04-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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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엣말 쏟아내는 '재미' 가족들과 나누다 “할아버지 할머니 보라카이 또 가요”
- 최근의 여행 트렌드는 친구나 연인과의 여행보다는 가족과 함께 떠나는 테마 여행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여행의 보편화와 맞물리는 현상으로 보인다. 여행이 일상이 된 현재, 보다 일상적인 이벤트로서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시인 류시호씨는 며느리, 사위, 손주 등 온 가족과 자주 여행을 떠난다. 이번 5월에 떠나는 여행지 그곳의 시간이 느리게 흘렀으면 좋겠다. 류시호 시인ㆍ수필가 얼마 전, 가족 9명을 데리고 보라카이로 여행을 떠났다. 큰아들 부부와 작은아들 부부가 직장을 다니며 고생하기에 손주들과 시원한 바다에서 여유롭게 쉬도록 우리 부부가 경비를 마련했다. 여행은 어디를 가든 즐겁다. 준비할 때부터 기분이 좋다. 우리 가족은 그동안 강원도 양양의 바닷가에서, 강원도 영월에서, 그리고 충북 수안보에서 숙박을 하면서 여러 번 가족여행을 했기에 서로가 여행 분위기를 잘 느낀다. 이번 가족여행은 해외로는 처음 가는 것이라 어린 손주 3명이 걱정스러웠다. 이동 중 간식을 먹이는 문제도 그랬고 장거리 비행 중 아프지나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염려가 됐다. 어린아이들 때문에 인천공항까지 가는 길에도, 비행기에 탑승할 때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게이트 번호가 100번이 넘는 곳이라 탑승구로 가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 열차를 타고 가서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탑승시간에 임박해서 겨우 게이트에 도착했다. 그동안 여러 번 해외여행을 했지만, 공항 내에서 지하철로 이동한 것은 처음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이륙할 때 큰 손주는 좋아서 웃고 작은 손주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장거리 비행기를 타다 보니 둘째 손주가 기내 공기가 안 좋아서인지 좁은 곳이 갑갑해서인지, 며느리 가슴에 음식물을 토하기도 했다. 막내 손주는 인천공항 비행기가 이륙할 때, 그리고 보라카이 섬과 가까운 칼리보 공항으로 비행기가 착륙할 때 울어댔다. 기압 차이로 귀에 통증이 왔던 것이다. 막내 손주가 어디가 불편한 건지 표현을 잘 못해 며느리가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 외 시간은 비행기 안에서도 잘 놀아 다행이었다. 작년과 재작년에 필자가 방문한 베트남과 미얀마는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한국인들을 우대해줬는데 이곳은 세관 심사가 너무 까다로웠다. 보라카이 휴양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 하루에 이곳을 찾는 여행객이 2만 명이나 된다 하니 작은 섬의 인기가 대단하다. 이 섬의 치안은 안전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10년 전 필리핀을 여행할 때도 총기사고가 있었다. 최근에는 불법으로 유통되는 총기가 100만 정이나 된다는 뉴스도 있었다. 심지어 총기 규제가 허술하니 ‘필리핀에서는 택시를 타지 말라’는 경고도 있다. 칼리보 공항에 내리니 밤이었다. 그곳에는 한국인 가이드가 아닌 필리핀 가이드가 서 있었다. 필리핀 가이드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한국인을 바꿔줬다. 그분이 하는 말이 오늘 한국 여행객들이 많이 와서 안내하느라 자신이 두 시간 거리인 보라카이에 있으니 현지 가이드와 같이 오라고 한다. 공항에서 낯선 필리핀 사람이 우리 가족들 이름이 쓰인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고 약간 실망도 했는데 어두운 밤에 그 외국인을 따라 목적지인 보라카이로 가려니 걱정도 됐다. 그러나 가는 동안 필리핀 가이드와 대화를 한 뒤 불안감은 조금 가셨다. 얼마 후 보라카이 섬으로 들어가는 부두에 도착했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배를 타니 한국 여행객들이 많았다. 그제야 비로소 안심이 됐다. 섬에 도착하니 보라카이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자전거 택시 베디카부와 오토바이를 개조해 좌석을 몇 개 만든 3륜 오토바이 트라이시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을 타고 우리 가족은 호텔로 이동을 했다. 10여 년 전, 마닐라를 방문했을 때는 미군이 사용하던 군용 지프를 개조한 작은 버스 지프니가 대중교통 역할을 했다. 우리 가족이 예약한 호텔은 이 지역에서 꽤 유명한 호텔로 시설이 아주 좋았다. 다음 날 호텔 수영장을 배경으로 한국인 모델이 촬영을 하고 있어 관계자에게 문의하니 인기 있는 호텔이라 한국에 선전하려고 찍는다고 했다. 그만큼 괜찮은 호텔이라는 의미라서 기분이 좋았다. 보라카이는 세계 3대 화이트비치라는 소문에 세계 여러 나라의 자유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보아하니 한국인들도 많이 온 것 같았다. 숙소인 ‘파라다이스 가든’에는 넓은 부지에 야자수를 비롯한 다양한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조용한 휴식과 레저 스포츠를 즐기기에도 적합해 보이는 이곳은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상쾌한 물줄기를 내뿜는 인공폭포가 마련된 옥외 수영장이 인기였다. 전체적으로 안락한 분위기에 우수한 시설로 불편이 없었고 도보로 5분 거리에 화이트비치가 있어 참 편리했다. 호텔에서 주는 아침은 열대식물이 있는 정원에서 가족 9명이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먹었다. 아름다운 섬 보라카이의 멋진 정원에서 식사를 하니, 대기업에서 스트레스받으며 일하는 큰아들 부부, 부부 공무원으로서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며 일하는 작은아들 부부가 기분이 좋은지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손주들도 신이 나는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파트에 사는 손주들에게 늘 했던 “조심하라”는 말을 안 해서 필자도 즐거웠다. 옥외 풀장에서는 가족 모두가 물놀이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우리 부부가 손주들과 놀아주니 아들과 며느리들이 오랜만에 해방된 기분이라며 이구동성이다. 점심은 보라카이 다운타운 디몰(D-mall)에서 먹기로 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많아서인지 멕시코식, 일식, 그리스식, 스페인식, 이탈리아식, 스위스식, 한식 등 여러 나라 음식이 많았다. 우리 가족은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필리핀 음식점에서 닭고기와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을 주문했다. 공장에서 만들었는지 종이에 싼 밥도 나왔다. 손주들과 며느리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기분이 좋았다. 후식은 자리를 옮겨 필리핀 특산물인 망고로 만든 망고쉐이크를 주문했다. 가족들 모두가 좋아했다. 길을 걷다가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젤라토를 사 먹기도 했다. 그런데 큰손주가 망고쉐이크가 맛있다고 또 사달라고 하니, 둘째 손주도 덩달아 자기도 사달라고 해서 할머니가 지갑을 분주히 열고 닫아야 했다. 가족들 모두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사는 맛이 났다. 다음 날, 바다에서 물놀이도 하고 밀가루 같은 모래로 손주들과 두꺼비집도 지으며 놀았다. 큰손주는 신이 나서 아예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이어서 필리핀 전통 선박으로 엔진 없이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돛으로만 이동하는 세일링 보트를 탔다. 그물망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보라카이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즐겼고, 가족 모두가 흥겨워하니 쪽빛 바다, 흰 파도, 그리고 멋진 모래사장이 있는 이곳으로 여행을 잘 온 것 같다. 저녁에는 가족 모두가 방에 모여 맥주와 위스키,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손주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만끽했다. 특히 손주들이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즐거워하니 아들과 며느리들도 만족스러운지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동안 국내 여행을 자주 함께하며 가족 간 사랑을 나눴던 게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부모와 형제는 수족 같고 처자식은 의복과 같다고 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사랑을 받아야 삶의 활력이 생긴다. 사랑은 살아가는 이유가 될 만큼 아름다운 감정이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어깨 위에 올려놓은 자식과 손주를 절대로 짐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녀들은 가족이 함께 있을 때는 소중함을 잊고 살지만 공부와 취업, 그리고 결혼 때문에 떨어져 살거나 부모 중 한 분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제야 부모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각자 자기 둥지에서 살다가 인간관계, 심리적인 문제 등이 생겼을 때, 가족을 찾는다. 가족이 가장 편하고 세상 어느 누구보다 든든한 지지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머니는 늘 따뜻한 마음으로 자녀들을 안아주고, 아버지는 투명한 빛으로 자녀들의 길을 밝혀주기에 부모가 오래 곁에 있다면 최고의 복이다. 이 세상에서 가정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집이 대궐같이 으리으리하고 돈이 많아도 가족 간에 사랑이 없으면 행복한 가정이라 할 수 없다. 가정의 행복을 맛본 사람은 인생의 햇볕을 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빛으로 아름다운 삶의 꽃을 피울 수 있다. 보라카이로 떠난 가족여행은 행복했고, 무사히 귀국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덕분에 가족들의 아름다운 미소는 오랫동안 우리 가정의 풍경이 되고 에너지가 됐다. 주말에 큰손주가 오면 “할아버지 할머니 보라카이 또 가요. 그리고 망고쉐이크 사주세요” 한다. 그 말에 필자와 아내는 싱긋이 웃는다. 그리고 또 다른 여행 계획을 짜본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큰 행복이다. 재충전의 기회도 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동안 가족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다면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떠나보자.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는 시간 속에 어쩌면 꽃보다 더 아름답고 향기로운 웃음꽃이 만발할 것이다. >>류시호 시인ㆍ수필가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임한 후 시인과 수필가로 등단해 현재 중부매일신문의 오피니언 ‘아침뜨락’에 2008년부터 고정필진으로 있다. 이외 대구일보와 현대문학신문의 필진으로 있으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16년 문학 창작금 수혜(受惠)를 받았다. 서울특별시장의 ‘서울사랑 이야기 공모전’ 수상 외 6건을 수상했고, 저서로 과 등 4권이 있다.
- 2017-04-2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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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청의 미덕
- 언젠가 두 시간 과정의 강의를 들으면서 좀 황당했던 적이 있다. 그 강사의 나이는 오십대 후반이었다. 강사는 자신의 프로필을 화면에 띄워놓고 장장 30분 동안 자기를 소개했다. 강의시간 사분의 일을 자기소개에 할애한 것이다. 그리고 강의 후반에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슬라이드를 건너뛰면서 강의를 진행했다. 물론 자신을 자랑할 이야기가 많은 강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말이 전도된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고 강사 소개를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할 수도 없다. ‘나이 들어가면서 말이 많아진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특히 젊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많이 하는 어른은 환영받지 못한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쓸데없는 말도 하게 되고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하고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잔소리로 들릴 말도 많이 하게 된다. 시니어들의 모임에 가 보면 실제로 말들이 많다. 자기주장이 강해서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시니어도 많다. 서로 주고받는 대화라기보다는 각자 자기 이야기만을 반복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지도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고령사회를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시니어들은 수많은 커뮤니티에 몰려다니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오프라인 모임도 여러 군데 가입하여 활동하는 시니어가 많다. 어딘가 소속감을 갖지 않으면 불안해 지는 심리로 이해된다. 여기저기 무료 교육프로그램도 넘쳐난다. 필자도 시니어를 대상으로 노후 행복주거를 주제로 강의한다. 강의를 다니다 보면 강의 장마다 아는 얼굴이 몇 분씩 보인다. 다른 강의 장에서 몇 차례 안면이 있는 시니어들을 계속 만나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찾아다니고 여러 모임을 쫒아 다니다 보면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자리가 많아진다. 자기소개는 나를 알리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짧게나마 타인의 경력을 들을 수 있고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계획으로 미래를 준비하는지 듣는 것만으로도 참 의미 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의미 있는 자기소개 시간에 문제가 있다. 인원이 적은 모임에서는 어느 정도 집중이 된다. 그러나 인원이 좀 많은 경우는 계속 이어지는 소개에 집중이 잘 안되고 자칫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인원이 많을 때는 각자 자기소개 시간을 제한 해 주지 않으면 너무 소개 시간이 길어져서 일정에 차질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행사일정에서 아예 자기소개 시간을 없애버린 행사에 참석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런 행사는 단발성에 그친다. 시니어들에게 있어서 서로 자기소개를 한다는 것은 관계망을 넓히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또한 소개 순서가 끝난 사람들이 잡담을 하거나 경청을 안 하는 경우도 생긴다. 심지어 일어서서 본인 소개를 하고 있는데 좀 짧게 하라던 지 그만 끝내라는 식의 야유성 멘트를 날리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강의를 하러 다니다 보면 어떤 날은 말이 좀 꼬이기도 한다. 반대로 술술 잘 나와서 아주 재미있고 유창하게 강의하고 나서 뿌듯한 경우도 있다. 당일 컨디션이 안 좋아서 강의가 잘 안될 때 수강생들이 눈치 채고 더 귀 기울여 주고 지지해 주는 눈빛을 보내주는 걸 느낄 때는 감동이 밀려온다. 강의 장에 앉아있는 수강생이나 강사나 누구랄 것도 없이 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 아닌가. 조금 불편하고 나와 다르더라도 타인을 지켜보고 기다려 줄 수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 2017-04-1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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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상과 성형
- 얼마 전 관상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 적이 있다.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한 이라는 영화도 있었다. 관상이란 얼굴의 생김새인데 수명이나 운명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생김새를 보면 그 사람의 운명이나 복 등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고난 얼굴 그대로 살아가지만, 요즘은 성형을 통해 불만스러운 얼굴 부위를 고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전에는 그저 예뻐지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관상을 통해 운명을 바꿔보려는 관상수술이 유행이라고 한다. 과연 성형으로 고친 관상이 정말 운명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일까? 한 역술인은 성형은 겉모습만 바뀌는 것이지 내면까지 바꾸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오랜 옛날부터 사주, 관상, 풍수, 성명 등으로 인간의 운명이나 길흉화복을 점치는 풍습이 있었다. 사주와 관상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고 풍수와 성명은 후천적으로 그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데 그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에 의해 운명이 결정지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전혀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흔히 관상가들이 이런 점은 좋고 이런 점은 나쁘다고 말했을 때 좋은 평가인 경우 덕담으로 듣고 넘어갈 수 있지만 안 좋은 말을 들은 사람은 찜찜하고 기분이 나쁠 수 있다. 옛말에 ‘관상이 수상만 못하고 수상이 심상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올바른 마음을 갖춘 사람이야말로 외형과 상관없이 복 있는 사람이 아니겠냐는 논리다. 최근 역술인에게 관상을 보고 병원까지 소개받아 성형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하는데 심지어 역술인이 병원 브로커 역할을 한다는 소문도 있다. 취업도 안 되고 삶이 어려운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한 역술인과 병원의 상술이라는 지적이 있다. 시대가 바뀜으로써 달라지는 사회상도 참으로 재미있다. 예전엔 영화배우나 연예인이 성형을 하면 여론으로부터 큰 뭇매를 맞았고 팬들도 등을 돌렸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성형 사실을 숨기느라 살이 빠져서 그렇다는 등 부인하고 숨기기 바빴다. 그러나 요즘은 당당하게 성형한 사실을 밝히고 또 인정해주는 추세다. 성형은 필요하면 해도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니 필자가 어렸을 때의 여배우들은 성형을 하지 않아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요즘 연예인들은 예쁘기는 하지만 서로가 너무 닮은 모습이다. 성형술이 발달해서 똑같은 모습으로 찍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또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얼굴 고치기를 주저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 같다. 모두들 어떻게 그리 용감한지 모르겠다. 필자는 예쁜 귀걸이를 한 사람을 볼 때마다 부러워했다. 진주나 반짝이는 작은 보석을 귀에 딱 붙인 모습이 정말 예뻐 보였다. 그러나 필자는 귀를 뚫는 게 무서워서 한 번도 귀걸이를 해보지 못했다. 그 정도의 아픔도 감수하지 못해 귀걸이도 못하는데 얼굴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어찌 수술로 고칠 생각을 했겠는가? 꿈에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더구나 고친 얼굴이 마음에 안 들면 어쩌겠는가. 필자 친구 중에 쌍꺼풀 수술을 한 사람이 있다. 본인은 만족할지 모르겠으나 무섭게 부릅떠진 눈매에 다들 놀라서 안 하니만 못하다고 뒷말들을 했다. 그런데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성형에 최근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이 먹은 생각은 못하고 왜 이렇게 보기 싫은 얼굴이 되었는지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그럴 때 눈을 치켜 올려보기도 하고 뺨도 당겨보면서 성형을 생각해본다. 한편으로는 세월에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늙는 게 당연한 거라고 마음을 다독이기도 한다. 요즘 V라인이 대세라 너도나도 턱을 깎는 위험한 양악 수술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관상에 따르면 뾰족한 턱보다는 둥그스럼한 턱선이 말년에 좋은 상이라 한다. 두툼한 필자의 턱을 쓰다듬으며 만족한 미소를 띠어본다. ‘말년이 좋은 관상이 최고 아닌가?’ 하면서….
- 2017-04-07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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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 모임에서 친구들과의 수다 중에 한 친구가 남편이 꽃바구니를 사 들고 들어온 이야기를 했다. 5명의 친구들 반응은 반반으로 갈렸는데 두 명은 “어머, 좋았겠다.”였고 필자를 포함한 3명은 “아유~난 꽃 선물은 싫어,”였다. 필자를 포함 싫다고 한 사람들은 꽃바구니 선물 받은 친구가 부러워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정말 꽃을 선물 받으면 반갑지 않다. 꽃보다는 케이크이나 초콜릿이 더 반가우니 이런 필자자신이 참으로 낭만적이지 못하고 팍팍한 것 같아 속이 상하기도 하다. 그러나 처음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받을 땐 싱싱하고 예쁘던 것이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 시들거리다가 마침내 꽃잎도 축 늘어지고 색도 변하면서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하게 되는 것이 안타깝고 불쌍하게 생각되는 게 내가 꽃 선물을 반가워하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랄 수 있다. 예뻤던 꽃이 추하게 변하여 내다 버리는 것도 일이었고 사람에게 비교해 보면 어리고 젊을 때 한창 예쁘다가 나이 들어 늙으면 이렇게 보기 싫어지는 게 서글프게도 닮아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한 것이다. 아름다운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꽃은 무언가 사람에게 보는 것만으로 위로 해 주는 힘이 있기도 하고 우울한 기분을 사라지게도 한다. 동양의학 이론으로는 꽃 중의 여왕 장미는 갱년기 여성의 심리적 육체적 불안감을 달래주는 효과가 있으며 특히 장미의 향기는 심신의 피로에서 회복시켜준다고 한다. 장미의 향은 꽃보다 잎에서 더 많이 나오기 때문에 꽃꽂이를 할 때 잎을 너무 많이 쳐내지 말라는 말도 있다. 그리고 잎과 꽃의 습기 조절 작용이 활발해 건조해지기 쉬운 실내공기의 적정 습도를 지켜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휴식공간인 침실에는 숙면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꽃이 좋은데 안개꽃이나 아이리스가 있으며 이런 꽃은 긴장을 완화시켜주고 편안한 기분이 들게 해 준다고 한다. 고혈압 환자에게는 프리지어처럼 맑고 상쾌한 향기가 나는 꽃이 좋으며 향기가 교감신경에 직접 작용해 흥분된 신경을 억제하고 혈압을 정상적인 수치로 되돌려 주는 효과가 있는 꽃이라고 한다. 흰색 분홍색 국화는 두통 어지러움에 도움이 되며 노란색 국화는 식욕을 증진시키고 심신을 편안하게 달래주기도 한단다. 이렇게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몸에 좋은 효과도 볼 수 있게 해주는 꽃을 왜 반갑게만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낭만을 사랑하던 시절과 다르게 꽃값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웬만한 일에 축하한다고 3만 원이나 5만 원 하는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준비하기가 쉽진 않다. 꽃을 기르는 분들에겐 죄송한 말이지만 꽃값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다. 무식하게 말한다면 먹을 수도 없는 것이 그냥 잠깐 보고 즐기려고 사기엔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인데 나도 원래 이렇게 무식하게 꽃을 돈으로 생각하는 여자는 아니었다. 친구에게 멋지게 포장한 꽃다발 선물하는 것도 좋아했고 때때로 남대문시장 꽃가게에서 작은 꽃망울의 예쁜 꽃들을 한 아름 사 신문지에 싸 와서 항아리에 꽂으며 즐거웠던 적도 있었는데 나이 들면서 예쁜 호르몬이 다 없어졌는지 이렇게 투박해져 버렸다. 요즘은 축하할 일이 생기면 꽃보다 케이크를 사 들고 간다. 이렇게 감정이 무뎌져 버린 내가 안타깝고 아쉽기는 하다. 낭만을 사랑하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 2017-04-04 1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