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이경란 작가가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너는, 글쎄, 이제 나를 잊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함께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얼마 동안이었는지도. 이제는 너와 내가 함께한 시간의 몇 배를 더해야 너와 나의 지금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주였다. 불현듯 네가 보고 싶었다. 나는 조금의 불안도 없이 네게로 갔다. 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으므로. 거친 세월 같은 간판의 불꽃들을 지나고 구불거리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뾰족한 모서리를 돌고 돌면 네가 있을 터였다.
골목 초입에서 안전모를 쓴 사내가 나를 제지했다.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와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왜, 라고. 왜, 라니. 나는 왜 너에게 가려고 했나. 그에게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말았다. 나는 무어라 답을 했던가. 무더위에 묻힌 나의 대답은 내게도 그에게도 가닿지 못했건만 발걸음은 어느새 네게 닿아 있었다.
너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러나 여전하지 않기도 했으므로 나는 만남의 기쁨을 모조리 빼앗겨버렸다. 마침내 어떤 구실도 할 수 없게 된 삭은 문짝 너머로 너의 처참한 몸을 보았을 때 내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래, 네게 어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분명 탄식뿐이었을 것이다. 폐허가 된 너를 앞에 두고 나는 어쩌자고 몇 년 전의 노파를 떠올렸을까. 그때도 이미 제 빛깔을 잃은 문짝은 열려 있었고, 좁은 시멘트 마당을 사이에 둔 방 안에는 잘못 세탁한 스웨터처럼 쪼그라든 노파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노파는 말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옛집에 와보고 싶었다는 내 말이 아마도 노파에게는 퍽 가소로웠던 걸까. 혹은 그런 마음이란 창틀의 들뜬 페인트 조각보다도 쓸모없음을 웅변하는 중이었을까. 그러니 나는 아직 철없이 젊은 사람이었을까.
라일락이 있던 꽃밭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봄이면 한껏 명랑했던 개나리의 흔적도 없었다. 나는 우리의 꽃밭이 거기 존재했다는 증거조차 찾지 못했다. 할머니, 여기 있던 라일락과 개나리는 어떻게 되었나요?
노파는 라일락과 개나리가 무언지 모르는 사람인 양 내 물음을 흘렸다.
할머니, 여기 작은 꽃밭에 분꽃이 있었어요. 분꽃 아시죠? 귀고리를 만들어 걸곤 했어요. 씨앗이 익으면 쪼개서 하얗게 분칠을 하기도 했고요.
나는 노파가 듣건 말건 이제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건 네게 하는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너는 그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노파는 이미 듣지 못하는 귀를 가진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분꽃 아래에 채송화가 있었어요. 그 애들은 키가 너무 작잖아요. 햇볕을 제대로 못 쬐었어요. 그래도 잘 살아남던걸요. 그런데도 빛깔이 고왔어요. 기특하기도 하죠. 잘 먹지 못하면서도 예쁜 아기 같았거든요. 여기는 연탄을 재놓는 광이었는데…. 광 속 아궁이에 장작을 때면 반대편 목욕탕의 물이 뜨거워졌어요. 아버지가 시멘트와 타일로 만들어준 욕탕이, 세상에, 아직도 있네요. 저 작은 욕탕에 우리 자매들이 어떻게 몽땅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혼잣말을 한참 중얼거리다 노파 쪽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너도 기억할 나의 할머니를 보았다.
나의 할머니는 저 자리에서 장죽을 물고 무심하게 연기를 빨아들이곤 했다. 그때마다 할머니의 얇은 뺨 안쪽이 맞닿을 것만 같아 무서웠다.
너를 두고 돌아선 내가 몇 번이나 살 곳을 옮겨 다녔는지 네가 알까. 아니지. 그건 너와 헤어지고 한참 후의 일이다. 나는 도대체 몇 번을 달아나고 쫓겨났는지. 그러나 언제나 꿈속에서 돌아온 곳은 너의 품이었다. 돌아와 안긴 너의 품은 따스하고 시원했으며 포근하고 넉넉했다.
어떤 새벽, 너는 꽃잔디를 깔고 나를 맞았고, 또 어떤 밤에는 장독대 위에 붉은 노을을 융단처럼 펼쳐두기도 했다. 단지 꿈일 뿐이었지만, 너는 국자 하나 들고 쪼그리고 앉은 골목 어귀의 달고나 같았다.
이 계절의 나는 머물 곳을 찾아 또다시 거리를 방황한다. 이것은 나의 유구한 직업이 되었다.
너를 떠난 후 내게 예비되었던 어느 곳 하나 다정하지 않아서, 네가 있는 도시에서 북쪽으로 달아난 나는 오랫동안 거대 도시의 비정에 시달리는 벌을 받았다. 탐욕이 능력이 되는 걸 몰랐던 나는 어느 사이 주기적으로 떠밀리는 사람이 되어 있다. 분꽃인 줄 알았던 내가 채송화처럼 낮은 곳으로 떠밀리는 동안, 너는 나의 비밀스런 기쁨이었고 꺼내놓지 않아도 자랑스러운 보물이었다. 너를 품을 수 있어서 나는 그늘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꽃잎이었다.
네가 있던 자리에는 번쩍이는 빌딩이 들어서리라 한다. 이제 너는 가뭇없이 사라지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나의 할머니는, 그 노파는 어디로 갔는지 너는 아니?
이경란 작가
대구에서 태어나 스무 살에 상경. 서울에선 아직 다정한 곳을 만나지 못했다.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오늘의 루프 탑’이 당선되어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