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반가운 얼굴을 만나게 됐다. 그 주인공은 코미디언 이홍렬. 대한민국 대표 코미디언 중 한 명인 그는 유튜브에 자신의 채널인 이홍렬TV를 직접 만들어 개인 방송을 시작했다. 평생 입으로 살아온 노장 이홍렬(64)은 커피를 마시면서부터 인터뷰, 메이크업, 그리고 표지 촬영을 할 때까지 시종일관 떠들었다. 정말 누구 말처럼 입을 틀어막
소청도를 출발한 ‘코리아킹’은 불과 10여분 남짓 달려 대청도 선진포항의 선착장에 닿았다. 멀리서 봐도 아담하고 각양각색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선착장에는 미리 연락을 받고 여행사에서 버스 한 대를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아직은 저녁 먹을 시간이 어중간하여 일단 해안을 돌면서 일몰구경하기로 했다. 대청도 선진포항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물건이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는 잘 몰라도 그 물건은 장롱 서랍에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가끔 그 물건을 꺼내 만져보고 소꿉놀이를 하며 가지고 놀기도 했다. 그 후 수십 년이 흘렀다. 살던 집에서 이사했고 오래된 장롱과 함께 그 물건은 기억 속에서 잊혀 버렸다. 간혹 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 어쩌다
검정고무신, 아이스께끼, 초가지붕, 푸세식 화장실…. 지금은 까마득한 시절의 우리나라 풍경을 오롯이 기억하는 사람. 1969년 미8군 장병으로 한국을 방문한 스물한 살 청년은 소와 함께 밭을 갈고, 어른을 공경하며 사는 순박한 사람들의 나라가 무작정 좋았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어떻게 하면 한국에 가서 살 수 있을까 궁리하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마침내
통상 남자들이 주도하는 종친회 일을 오랫동안 수행 봉사하는 여자 친구들이 있었다. 친해져서 물어보니 오빠나 남동생 없이 자매들만 있다 보니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더 친해져서 자세한 가정사를 물어보니 한스러운 사연을 토로했다.
“우리 집은 어렸을 때부터 여자들만 있었어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언니와 나. 이렇게 넷이서요.”
“어떻게 그렇게 되셨어
장승(長丞)은 오래전부터 마을의 입구나 경계에 세워져 수호신으로 모시던 민간신앙 조형물이었다. 그러다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교와는 무관하던 장승이 사찰의 경계표시나 지킴이로 변모하여 사찰장승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사찰장승은 절 입구에 세워 이곳부터 절집이라는 성역 표시와 함께 절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호법신 역할을 했다. 경북 상주
풍패지향(豊沛之鄕) '전주'
전주(全州)는 조선 왕실 가문의 관향(貫鄕)으로 전주 이씨의 시조(始祖)와 조상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즉, 조선 왕실의 뿌리가 그곳인데 전라도의 수부(首府) 전주(全州)로 부르기보다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고 부르는 것을 더 높이 섬기고 받든다.
이는 천하를 최초로 통일한 중국의 진(秦) 나라가 3대를 넘기지 못하
송홧가루 날리는 5월의 산천(山川)은 풍요롭기 그지없다. 새빨간 덩굴장미가 담장을 타고 굽이굽이 올라가는 모퉁이에서 단발머리 소녀가 손짓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5월 중순의 어느 날, 철원평야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창 모내기 철의 철원평야에는 싱그러움이 내려앉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묻어난다. 얼마쯤 달렸을까? 영북면을 지
지금은 다 성인이 된 아들과 딸의 출생일자는 양력 일자다.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했고 담당의사의 출생증명서를 첨부해 출생신고를 했으니 틀림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때는 달랐다. 대부분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왔다. 주민등록부에 있는 출생일자와 실제 출생일자가 똑같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당시에는 출생 사실을 늑장신고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늑장
북촌 8경길, 여의도생태순환길, 서리풀공원길 등 서울 시내에 산책 삼아, 운동 삼아 걷기 좋은 길들이 많아졌다. 그중 어디를 걸어도 좋지만, 원하는 먹거리와 볼거리를 즐길 수 있는 코스라면 더욱 환영이다. 서울 곳곳 50가지 걷기 코스의 지도, 소요 시간, 여행 정보 등을 비롯해 길의 역사와 문화 정보까지 알차게 담은 ‘서울 산책길 50’을 책방에서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