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를 가다

기사입력 2019-05-29 11:19 기사수정 2019-05-29 11:19

전투가 치열했던 백마고지를 가는 길이지만 송화가루 날리는 5월의 산천은 아름답기만 했다. 어린 모가 가득한 너른 철원평야를 달리다 보면 한탄강 줄기가 눈에 들어오고 녹음 짙은 금학산이 불쑥 다가서기도 했다.

(사진= 김종억 동년기자 )
(사진= 김종억 동년기자 )

멀리 보이던 백마고지 기념비가 가까이 다가오자 하늘 높이 오를 듯이 발을 번쩍 치켜든 백마의 동상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백마고지 전투 위령비를 지나 위로 올라가니 광활한 평야 건너에 백마고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아스라이 보이는 북녘땅. 말없는 백마산 기슭, 백마고지는 원래 ‘大馬里(대마리) 뒷산’으로 불리는 무명 고지였다. 해발 395m의 고지로 6.25전쟁 때 국군과 중공군이 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정전협정을 앞둔 1952년 10월6일부터 열흘 동안 무려 7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등 아군과 중공군 간의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던 피의 고지였다.

(사진= 김종억 동년기자)
(사진= 김종억 동년기자)

28만 발 포탄이 터지며 피아 1만5,000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24번만에 우리 손에 들어온 격전지였다. 백마고지 전투의 패전으로 드넓은 철원평야를 빼앗긴 김일성은 매우 분해 대성통곡 했다는 얘기도 전해져 온다.

(사진= 김종억 동년기자 )
(사진= 김종억 동년기자 )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백마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백마고지라 부르게 되었다.

6월이 오면 동족상잔의 전쟁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들. 이제는 그런 전쟁의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핀 철원 평야를 지나면서 후손들에겐 그런 아픈 기억 없이 평화로운 이 강산을 그대로 물려줘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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