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지기 시작했다. 일본 애들은 반바지 차림으로 다닌다. 며칠간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긴 바지를 입고 등교하더니 우리도 그냥 반바지를 입고 다니겠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무릎이 빨갛게 되면서 추워 보이는 게 안쓰러워서, 저 애들은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어 괜찮지만 너희들은 이제껏 긴바지였으니 그냥 그대로 다니면 안 되겠느냐 해도 아니란다. 바람의 아들은 추
◇학교 소개를 부탁하였다.
“학생 수는 800 명 정도이며 600여 명이 독서에 참여하고 있다. 도서는 2만 5000여 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매월 1만 여 권의 책이 대출되고 있다.”
서울 관악구 서울미성초등학교는 ‘학교도서관 활성화상, 독서교육대상’ 등 서울시 교육감 단체상과 개인상을 수상하였다. 도서관 활동을 매우 잘하고 있다는 주위의 평가다.
필자가 어린 시절 자주 찾던 절이 있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칠장사 절이다. 소풍을 늘 이곳으로 갔었다. 칠현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에 있다. 역사도 오래되고 제법 큰 절이다. 혜소국사와 일곱 명의 도적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일곱 명의 도적 중 한 명이 표주박으로 물을 먹으려 하자 황금표주박이 놓여 있었다. 몰래 표주박을 가져와 동료들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봉덕사종(奉德寺鐘)’보다는 ‘에밀레종’이란 이름이 우리한테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범종에 스며 있는 설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필자가 우리나라 사찰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범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업 때면 과목의 본질보다는 국사 시간에나 걸맞은 것들을 재미있게 들려주던
교통수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버스 타기가 무섭다. 버스는 승객을 상대로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소중한 손님에게 기본적인 친절함은 사라진 지 오래인 듯하다.
남편의 사고 며칠 후, 경찰서에서 출석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필자 부부는 서둘러 관할 경찰서로 나갔다. 버스 회사로부터 블랙박스를 넘겨받아 그 잘잘못 판독을 하기 시작했다. 버스기사는 미리
대전의 보문산(寶文山) 사정(沙亭)공원에는 시비(詩碑)들이 있어, 언제 가도 느리고 깊은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1879~1944)의 이란 시가 발길을 붙잡는다. ‘출세의 해탈도 꿈입니다.’ 가슴에 꽂히는 구절을 새기며 추수 김관식(秋水 金冠植·1934~1980)의 를 읽는다. ‘저는 항상 꽃잎처럼 겹겹이 에워싸인 마음의 푸
어른들에게는 누가 봐도 잘못을 범했다는 게 확실한 일인데도 그걸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은 힘든 작업 같다.
미안하다 아니면 용서해달라고 하는 말을 해야만 한다면 나이어린 아이들에게라도 하는 습관을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어왔다. 그러나 그런 어른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인격에 도달한 사람이 드물다는 증거라고 보인다. 그런
전학한지 한 일주일 되었을 가였을 때, 혼자 집안 청소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외국에 가서 제일 겁나고 무서운 게 전화 벨 울리는 것이다. 영어는 그래도 배웠다는 게 있어서 그런지 덤벙거리지만 말고 침착하게 잘 듣고 있으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단어의 뜻이라도 알 수 있어 짧은 대답 장도는 무난했다. 그러나 일어는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고 상대방
한때 필자의 별명은 스테미나 여사였다. 다들 춥다고 웅크릴 때 필자는 추위를 안 탔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거나 몇 날 며칠 여행을 가도 피곤하다거나 지칠 줄을 모르니 친구들이 부럽다며 그렇게 불러주었다. 그래서 필자도 필자 자신이 건강하다고 믿으며 살았다. 엄마 아버지와 윗대로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혈압이 높았으니 조심하라는 말씀을 항상 들었지만, 집안 내력인
나는 1952년 경남 합천군 초계면의 한 시골 마을 방앗간 집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우리 집은 아들만 여섯인 아들 부자 집이다. 원래 어머니는 아들만 일곱을 나으셨는데 첫 째는 돌도 못 넘기고 잃었다고 한다. 그 후 집안의 귀한 첫 아들로 태어난 나는 태어난 후 사흘 동안 눈을 뜨지 않아 부모님의 애를 태웠고, 어릴 때 비행기만 떠도 놀라서 경기가 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