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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구례 산동면 지리산 자락에 사는 정부흥 씨
- 어디로 귀촌할까, 오랜 궁리 없이 지리산을 대번에 꾹 점찍었다. 지리산이 좋아 지리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단다. 젊은 시절에 수시로 오르내렸던 산이다. 귀촌 행보는 수학처럼 치밀하고 탑을 쌓듯 공들여 더뎠으나, 마음은 설레어 일찌감치 지리산으로 흘러갔던가보다. 지금, 정부흥(67) 씨의 산중 살림은 순조로워 잡티나 잡념이 없다. 인생의 절정에 도달했다는 게 아닌가. 처음엔 미친 짓이라는 소리를 흔히 들었다지. 정부흥 씨는 임야 1만8000평을 사들여 일을 개시했다. 이 거창한 행세에 쓴소리들이 난무했던 모양이다. 외지고 으슥하고 가파른 산 덩어리여서다. 긴 고행이 빤히 보여서다. 그러나 기꺼이 자청한 고행은 고행이 아니라 순행(順行)이다. 절박한 눈으로 뒤를 돌아본 정 씨는 도시에서의 지난 생이 오히려 고행에 가까웠음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어라? 나를 목줄 채워 끌고 다닌 도시를 벗어나겠다는 데 왜들 난리람! 아마도 그쯤의 생각과 각오가 머릿속을 굴렀을 게다. 정 씨는 전남대학교 자원공학과를 나온 공학 박사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다 2012년에 퇴직했다. 임야는 은퇴 이전에 이미 사뒀다. 수시로 터를 드나들며 정을 붙였다. 귀촌 마스터플랜을 근사하게 준비하고서 임야에 길을 닦고, 기반공사를 하고, 임시 거처를 지었다. 퇴직 후에는 완전한 이주를 하고 본집을 거하게 지었다. 크고 너른, 반듯하고 웅장한 그의 거처는 이제 숲속 대궐에 가깝다. 부부 단둘이 살기엔 너무 방대한 규모로 보이지만 정 씨의 꿈과 이상이 실린 공간이다. 그의 수완과 통과 너름새가 비치는 구색이다. 터에 들어선 품목들이 크고 많으니 해온 일, 헤쳐나온 시련이 산더미였을 것이다. 신역도 신산(辛酸)도 자심했을 테지. 그러나 그는 일에 신명을 냈더란다. 오지게 터진 일복에 심취할 절호의 찬스를 만났다는 투로. 그렇다면 그는 근력 짱짱한 장한(壯漢)? 실은 정반대다. 지병을 달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50대 후반쯤 당뇨병 여파로 들이친 풍을 맞아 반신마비에 빠졌고, 강철 같은 의지로 마비에서 탈출했으나 여전한 당뇨는 신중히 관리하며 지내왔다. 지리산으로 가자, 그게 살길이다! 그는 그렇게 부르짖으며 산중으로 귀촌했다. 몸이 망가졌으니 흐느껴 나온 생각들이 많았을 게다. 마음의 비장한 물결에 젖어 한탄을 거두고 속으로 다진 것도 많았을 테지. 그럴 즈음 지리산이 그를 호명했고, 그는 득달같이 응했던 모양이다. 이 불운하고도 야무진 사람의 눈은 단춧구멍처럼 간신히 째졌을 뿐이지만, 얼굴엔 자주 홍소(哄笑)가 출렁거린다. “직장생활이라는 게 스트레스 많은 정신노동의 연속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두주불사가 잦았어요. 결국 몸을 망쳐 당뇨와 뇌졸중이 겹치는 지경까지 갔던 겁니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극심한 시련이었죠. 5년여에 걸친 재활치료로 다행히 반신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대로 계속 도시에서 살다간 죽을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귀촌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어요.” “귀촌이, 산골생활이 건강을 호전시킨 셈인가요? 귀촌을 통해 중병을 고쳤다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두 가지 요인에 힘입어 건강을 도모할 수 있었어요. 하나는 아내의 헌신적인 조력입니다. 까다로운 식이요법을 아내 덕분에 철저하게 행해왔으니까. 생명의 은인이랄까, 그런 아내에게 제가 꼼짝을 못합니다.(웃음) 또 하나의 요인은 귀촌을 해서 만난 좋은 자연환경이에요. 숲길을 날마다 걸었어요. 배수진을 치고, 즉 목숨을 걸고, 운동 아니면 죽음이다, 라는 각오로 줄기차게 걸었죠. 요즘도 마찬가지예요. 아직 당뇨병이 있지만 내 몸 안에 들어온 평생 친구라 생각하며 관리하는 중이에요.” “이 너른 터전과 다수의 건조물, 숲과 텃밭, 이런 것들을 어떻게 능히 짓고 가꾸고 관리해왔죠? 온전치 않은 건강으로 말이죠.” “젊음과 자금력, 이 둘의 추진력이었어요.” “인생의 하오에 젊음이라니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이 산골에 들어온 초기엔 엄청 젊었던 것 같아요. 하늘을 잡고 도리뱅뱅이질을 쳤죠. 무모하긴 했어요. 그거 아세요? 저희 같은 연구원들의 특질이 뭐냐면, 항상 도전한다는 거.” 끊이지 않았던 사건 사고 그가 도전한 종목은 여럿이다. 귀촌의 성공 모델을 본때 있게 실현하겠다는 것, 몸을 아끼기보다 닳도록 써 건강을 살리겠다는 것, 자연과 호형호제하며 마음의 평화를 누리겠다는 것, 오누이처럼 부부가 다정하게 잘 늙어 여생을 동행하겠다는 것. 가련하고 허무한 게 인생사이지만 선한 지향이 뚜렷한 사람의 발길엔 정채(精彩)가 서린다. 안간힘을 다하면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그는 열렬한 활보로 귀촌의 나날들에 생기를 부여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정 씨는 거의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해왔다. 울울한 숲을 파헤치는 토목공사를 주도했다. 귀촌을 위해 미리 배워둔 목공기술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목공실을 만들어 수많은 목재를 손수 자르고 깎고 다듬었다. 3차원 건축설계 소프트웨어를 활용, 60평과 40평짜리 두 채의 집 설계도 직접 해치웠다. 건축 공사도 업자에게 도급을 주지 않고 직영했다. 이 많은 일들을 해내는 중에 사고도 많았다지. 요상하게 줄줄이 이어진 사건기록을 들어보시라. “귀촌 초기, 사건 사고들이 끊이질 않았어요. 한번은 석축을 쌓다가 바윗돌에 깔렸는데, 발목뼈가 여러 조각으로 부서집디다. 덕분에 반년 동안 깁스를 했고, 1년 반 정도 재활치료를 받았죠. 포클레인 작업 중 전복사고를 당해 부상을 입기도 했어요. 예초기로 풀을 베다 벌집을 건드려 벌떼의 집중 공격을 당하기도 했고. 그때마다 응급실에 실려가 누울 수밖에 없었고요. 하하핫! 아내에게도 역시 사고가 많았어요. 집사람이 소형 덤프트럭을 몰아요. 어느 날 언덕에서 트럭이 뒤집혀 굴렀어요. 해충과 독충에게 시달리는 건 소소한 일상이었죠. 아내는 독사에게도 물렸어요. 응급실에 달려가 해독주사를 맞고 위험을 면했죠.” “아이쿠, 괜히 산골에 왔어, 돌아가야겠어, 그런 회의는 없었나요?” “모든 사고들이 알고 보면 다 인재(人災)였어요. 숙달 과정으로, 필수적인 시행착오로 여겼어요. 요령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기에 나쁜 것만도 아니었어요. 회의나 후회는 조금치도 없었고요. 산골살이는 오래 묵은 꿈이었으니까.” “대부분의 아내들은 귀촌에 흥미를 못 느껴요. 고생길이 훤히 보여서죠. 잘난 당신이나 혼자 내려가소서! 그런 소리 나오기 십상이죠.” “산골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 정서가 기본적으로 필요하겠죠. 조용한 자연 속에서 과연 즐겁게 살아갈 소양이 있는가를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는 거. 저나 아내는 그런 면에서 시골과 적성이 맞았어요. 그러나 아내가 귀촌을 선뜻 동의하진 않았어요. 지역 선정에 반영할 네 가지 조건을 겁디다.” “어떤?” “대학병원 수준의 병원이 15분 안짝 거리에 있는 곳, 평소 늘 해왔던 요가를 계속할 수 있는 요가원이 있는 곳, 수필가로서 독서를 좋아하는 아내가 쉽게 찾아갈 도서관이 있는 곳, 항상 온천욕을 할 수 있는 곳. 이렇게 네 가지였어요. 이곳 구례군은 갖가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아내의 요구조건을 충분히 충족할 수 있는 지역이죠. 저절로 생긴 수입 마당에 서서 바라보는 경관이 후련하고 수려하다. 노고단을 중심으로 어깨를 겯고 일렁이는 능선 마루로 파란 하늘 자락이 겹쳐진다. 빼어난 뷰! 동향으로 앉은 집이니 새벽이면 침실 창으로 햇살이 두근대며 들이칠 게다. 집 뒤 숲엔 편백나무 수림이 조성돼 있고, 숲 사이로는 구불구불 휘어지는 산책로와 정자를 꾸며뒀다. 뭐 하나 빈틈도 결함도 없어 보이는 입지이자 장원(莊園)이자 저택이다. 이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정 씨는 서울에 있었던 아파트 두 채를 처분했다. 이제는 수고롭게 돈 버는 일은 작별이야. 부부는 그렇게 합의하고 내려왔다. 그러나 돈이 저절로 들어오는 일이 생겼다. 뜻밖의 수익이란다. “저희 임야 안에 고로쇠나무들이 다수 있어요. 봄철이면 수액을 받는데, 이걸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 약간의 노동이 필요한 채취 작업을 해 연간 1000만 원쯤 수익을 올립니다. 비워두었던 아래채 2층집에서도 수입이 발생할 걸 미처 몰랐어요. 1층은 월세를 주고, 2층은 민박 손님을 받았더니 해마다 1000만 원 정도의 돈이 들어오더라고요. 가끔 귀촌인 상대의 목공 강의를 통해서도 약간의 강사료가 들어옵니다. 이렇게 모아지는 자금은 해외여행 경비로 씁니다.” 이래저래 이젠 순풍에 미끄러지는 돛배처럼 순항이다. 지루하진 않을까? 그렇잖아도 함께 오래 살아온 부부가 새삼 24시간을 늘 같이 지내야만 한다는 건 끔찍한 일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귀차니즘’이 풍선처럼 부푸는 건 아닐까? “제가 집사람에게 독불장군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요. 간간이 마찰이 없을 리 없죠. 대판 다투고 난 뒤 아내가 잠시 가출을 하기도 했어요.(웃음)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나름의 독립적인 생활방식을 찾게 됐어요. 오전엔 같이 텃밭이나 마당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함께 산책을 하지만 저녁식사 후엔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가 각자의 일을 합니다. 아내는 1층에서, 저는 2층에서.” “귀촌인들은 흔히 조언해요. 가급적 집을 작게 지어라! 작은 집이라야 유지 관리가 쉽다는 얘기죠. 선생께서 집을 크게 지은 이유는 뭐죠?” “내 손으로 한 번은 집다운 집을 제대로 짓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어요. 자손들이 찾아오면 맘껏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도 싶었고. 하지만 바람직한 집은 아니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곤 해요. 우리 둘 가운데 하나만 남을 날이 머잖아 찾아올 텐데, 그땐 혼자서 이 너른 집과 터를 어떻게 간수할꼬, 그런 염려도 생기고.” “산골살이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죠?” “계절마다 달마다 날마다 다변하는 자연을 느끼며 배우며 사는 즐거움이 으뜸입니다. 몸이 녹아나는 혹독한 노동의 날들도 즐거웠어요. 건강을 유지할 에너지를 얻었으니까. 뭔가 떳떳하다는, 죄짓지 않고 산다는 기분 역시 노동을 통해 실감했어요. 노동에 휴식을 가미한 생활방식을 취하면서는 만족감이 더 커지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인생의 정점에 올라섰다는 행복감이 커요. 그러나 모자란 사람일 뿐이죠. 자연은 저토록 온전한데 나는 틀려먹었구나!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불가(佛家)에서 가르치는 ‘공(空)’을 마음속으로 늘 되뇌이고…. 한 마리 배추벌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걸 또한 기억하려 하고….” 세상의 탐욕과 광기가 침범 못할 이 고요한 산중. 몸 낮춰 마음을 평온으로 채운다면 고요마저 열락(悅樂)이겠지. 정부흥 씨가 주는 귀촌 Tip •사전에 시골생활을 체험하자. 한두 달로는 부족하다. 최소한 1년 정도는 월세 집이라도 얻어 살며 물정을 파악하는 게 좋다. •집을 지을 경우 사전에 집짓기 교육을 받아두는 게 좋다. 건축은 업자에게 맡기지 말고 직영을 하자. 건축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대신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귀촌생활에 텃밭은 필수다. 그래야 적당한 노동의 즐거움을 누리고, 깨끗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다.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 2018-12-0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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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팔 요리전문점 ‘두르가’ 대표 비노드 쿤워
- ‘딱 1년만 있다 돌아가자’ 하고 한국에 들어왔다. 타국에서의 시절이 호락호락할 리 없었다. 체념도 희망도 아닌 시간들이 안간힘을 쓰며 흘러갔고 20대 네팔 청년은 어느새 40대 중반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토끼 같은 아이들도 태어났다. 섬유공장 30여 만 원 월급으로 시작해 인도·네팔 요리전문점 ‘두르가’를 7호점이나 연 네팔인 비노드 쿤워(Binod Kunwor·45), 이제는 귀화해 ‘서민수’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주한 네팔인협회장을 거쳐 국제부위원으로 지내는 그의 하루는 너무도 바빠, 인터뷰하러 간 날 하마터면 바람맞을 뻔했다. 오후 2시 ‘두르가’ 종로 1호점에서 그를 기다린 지 30분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만나기 전 미리 문자메시지도 보냈는데 무슨 일인가 해서 전화를 했더니 병원이라고 했다. 30여 분 뒤 그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네팔에서 일하러 온 사람이 뇌출혈로 쓰러졌다고 해서 급하게 병원엘 다녀오느라 인터뷰가 있는 걸 그만 까맣게 잊었네요. 돈 벌러 왔다가 다치면 의사소통도 안 되고 병원비도 없어 딱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제가 주한 네팔인협회 일을 보고 있는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네팔인들이 4만 명가량 되다 보니 일도 많이 생기고, 그래서 늘 바쁩니다.” 인도·네팔 요리전문점을 7개나 운영하는 대표라 점포 일로만 바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국에서 지내는 네팔인들에게 일이 생기면 통역도 해주고 모금활동을 통해 물질적 도움을 주는 등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느라 더 눈코 뜰 새 없었다. 미지의 나라에서 묶여버린 발 그가 한국에 온 것은 1992년, 스무 살 때였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 전부였다. 당시에는 북한이 자원이 풍부한 나라로 더 많이 소개됐는데, 남한과 북한이 한민족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경제적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한국에 와서야 알았다. “법대에 다니고 있었는데 좀 따분한 나날들이었어요. 그 무렵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형이 한국에 갔다 왔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저도 네팔을 떠나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일본에 갈까 한국에 갈까 고민하다가 한국행 비행기를 탔어요.” 네팔에서 그의 집은 꽤 유복한 편. 어느 날 한국에 가겠다고 차비 좀 달라고 하자 아버지는 “가려면 네 힘으로 가라”며 꿈쩍도 안 했다. 계속 고집을 피우자 부모님은 결국 100만 원을 내놓았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꽤 큰돈이었다. 제 앞가림 알아서 잘하는 자식이라 믿고 지원해준 돈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그는 난감한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처음엔 염색공장에서 일했어요. 한 달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이 30만 원 남짓밖에 안 됐는데 그 돈마저 떼이기 일쑤였죠.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대우가 좋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노동 환경이 정말 열악했어요. 차별도 심했고 피해를 입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죠. 딱 1년만 일하고 돌아가자 하고 왔는데, 한 푼도 모으질 못한 거예요. 월급을 떼이면 직장을 옮기고 거기서 또 월급을 떼이는 일이 반복됐으니까요.” 인도·네팔 요리전문점 대표가 되다 그 후 1년만 더 있어보자 한 것이 귀화까지 하게 됐다. IMF, 금융위기를 차례로 겪으며 경제적 활동이 순조롭지 못했지만 그의 도전 욕구는 오히려 불타올랐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태어났다. 가장으로서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했기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국면 전환의 기회를 엿봤다. 사정이 조금씩 나아진 건 한국과 네팔을 오가며 무역업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동대문에서 옷, 가방, 모자 등을 떼어다 네팔에 팔았어요. 돈을 모아 식료품점도 열었죠. 그때 동남아 바이어들과 자주 만났는데 그분들이 한국에 오면 갈 만한 식당이 전혀 없었어요. 특히 인도 사람들은 고기를 안 먹는 사람이 많아 식사 대접이라도 하려면 곤란했죠. 그러다 문득 한국 사람들도 카레 음식을 좋아하니 인도 음식점을 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네팔 사람이니까 네팔 음식도 곁들여 선보이면서요. 인도 음식은 향신료를 좀 더 쓸 뿐 네팔 음식과 거의 비슷해서 복잡할 건 없었어요.” 그는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이었다. 사업 계획을 세우자마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그렇게 해서 2006년 서울 종각역 근처에 1호점을 연 인도·네팔 요리전문점 ‘두르가(Durga, 힌두 여신 가운데 가장 숭배받는 여신)’는 현재 7개 점포나 된다. 물론 그동안 부침(浮沈)이 없었던 건 아니다. “‘두르가’를 오픈할 때 자신감 하나로 덤볐어요. 처음에는 손님이 없어서 힘들었죠. 월세 400만 원에 주방장과 직원들 월급 주느라 허리가 휘었어요. 그러자 동업자가 겁이 났는지 슬금슬금 손을 빼더군요. 이대로 혼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을 때 언론에 저희 음식점이 소개됐어요. 며칠 뒤 전화통에 불이 나더군요. 기사를 본 손님들이 몰려오고 매상이 쑥쑥 올라갔죠. 그렇게 1년간 입소문을 타면서 비로소 안착할 수 있었어요.” 두르가 주방장은 모두 네팔인이다. 인도·네팔 요리를 맛보고 싶어 하는 손님들에게 제대로 된 요리를 제공하려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그의 점포는 물론 한국의 네팔 요리점에 그가 소개한 주방장이 100여 명이나 된다. 알게 모르게 네팔인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해온 셈이다. 한국에 와서 이만큼 성공했으면 유연자적하듯 살 만도 한데 그는 여전히 바쁘다. 아내는 그래서 불만이 한가득이다. 좀 천천히 살라는 의미에서 남편에게 서(俆) 씨 성까지 지어줬건만 소용이 없었다. “아내가 어느 날 밖으로만 돌아다니는 저를 보고 ‘너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 안 했어’ 하더라고요. 아이들과 아내에게는 미안하죠. 좀 쉬면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게 잘 안 되네요. 제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거든요.” 이 정도면 일 중독자가 분명하다. 일을 벌이는 데도 거침이 없다. 요즘은 한국과 네팔 양국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구상 중이라면서, 이미 네팔에서 수력발전 사업을 추진해 곧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모노레일 사업, 심지어 해외송금 관련 금융 사업까지 그의 머릿속은 일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네팔 정부 고위층도 한국에 오면 꼭 그를 찾는다고 한다. 서민수 씨만큼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 대한 차별, 속상하다 한국에 온 지 5년째 되던 해에 그는 아내 이지형 씨를 만났다. 이웃으로 지냈는데, 함께 밥 먹고 대화하다가 정이 들어버렸다. 그가 먼저 프러포즈를 했다. 처가의 반대가 심했지만 무사히 결혼에 골인했다. 네팔 부모님도 섭섭해하긴 했어도 큰 반대는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성공을 이룬 건 아내 덕이 크다. 한국 문화에 어두워 곤란한 일이 생길 때마다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그가 일을 벌이면 아내가 쫓아다니며 궂은 업무를 도맡아 하는 식이었다. 2005년도에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귀화도 결정했다. 아들딸에게 부족한 부모가 되지 않으려 두 사람은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런데 경제적 여유도 생기고 30여 년간 살며 적응도 되어 한국에서의 생활이 별 문제 없을 줄 알았는데, 그는 요즘 꽤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귀화를 해도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심한 것 같습니다. 우리야 상관없지만 아이들은 어린 마음에 상처가 큰 모양입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니는데 힘들어하더군요. 아이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 사람인데 생김새가 다르다고 외국인 취급하니까 억울하고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지금 학교에서 겪는 일들을 앞으로 직장에서도 겪을 테고, 또 결혼할 때도 분명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부모로서 자식의 험난한 인생 여정이 예상되는데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답답하네요.” 그는 경제적 어려움까지 겪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더 심한 상처를 받고 있다며 속상한 마음을 내비쳤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구나’ 하면서 상심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도 가끔은 “그럼 그렇지, 네가 네팔인이지 무슨 한국인이냐?” 하는 소리를 듣는데 아이들이 그런 말을 들으면 정체성 혼란은 물론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 말했다. “대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을 2~3년간 유학 보내볼까 합니다. 좀 더 큰 세상에서 살면서 마음이 열리길 바라면서요. 내가 바뀌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아이가 빨리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에게도 차별로 인한 번민의 시절이 있었을 터. 아들의 상처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그의, 아비의 눈은 순간 한없이 깊어졌다.
- 2018-11-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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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한 달 살기 후 올레길 트레킹 마스터로 정착한 서우성 씨
- 하루를 빡빡하게 채우는 스케줄과 수많은 모임, 그리고 사람에 치여 도시생활은 점점 지쳐만 갔다. 쉼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느꼈다. 예전부터 막연히 꿈꾸던 제주 올레길도 걷고 싶어졌다. 그렇게 지난해 말 잠시 쉬어보겠다며 찾은 제주는 이제 서우성(54) 씨의 삶의 터전이 됐다. “작년 11월 말쯤부터 한 달여 머물렀어요. 보통 제주에 한 달 살러 가는 분들은 예산을 짜기에 공들이는데 저는 사실 준비를 안 했어요. 숙소도 운 좋게 먼저 정착한 후배가 있어 그 집에서 지내기로 했죠. 제주에 갔을 때가 11월이었는데, 날도 포근하고 마냥 좋더라고요.” 물론 무턱대고 비용 걱정 없이 떠난 건 아니다. 서 씨는 원래 서울에서 문화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했는데, 때마침 제주의 한 호텔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급여는 많지 않았지만, 제주에서의 생활비는 충당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이 역시 녹록지 않았고, 이내 호텔을 나오게 됐다. “호텔을 나온 뒤 다행히 귤 수확철이라 농장에서 귤, 한라봉 등을 따며 일당으로 생활비를 마련했어요. 저처럼 생활비를 벌어가며 제주에서 한 달 사시는 분이 적지 않아요. 제주에 지인이 없어도 인터넷 제주 모임 카페 등 알바를 구하는 곳은 많으니, 본인 의지만 있다면 제주생활은 충분히 개척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 달여 시간이 흐른 뒤, 제주에서의 여유로운 생활에 매료된 그는 결국 이곳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내는 서울에서 계속 공부를 해야 했기에, 나 홀로 제주행을 택했다. 삶의 터전을 이루려면 안정적인 일자리는 필수. 리조트 업무를 하던 중 우연히 트레킹 가이드 일자리가 나와 주저 없이 지원해 현재는 올레길 트레킹 마스터로 활약하고 있다. 서우성 씨가 속한 올레힐링캠프는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에서 한 달살이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는 자신처럼 제주에서의 낭만을 안고 찾아온 이들과 함께 걸으며 올레길 코스뿐만 아니라 한 달살이의 팁도 전수한다. “안전하고 저렴한 숙소를 얻는 것이 중요해요. 최근에는 숙박시설과 게스트하우스가 많이 생겼어요. 인터넷을 통해 알아봐도 되지만, 의외로 현지에서 발품을 팔면 알려지지 않은 좋은 숙소를 구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 달 동안 무엇을 하며 즐길 것인지 콘셉트를 확실히 정하는 게 좋아요. 가령 한라산 코스를 완주한다든지, 360여 개 오름을 정복한다든지 등등. 그렇지 않으면 숙소에서 어영부영 한 달을 지내다 가기 일쑤입니다.” 그는 제주가 관광지라는 특수성을 꼽으며, 이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제주도 물가가 엄청 비싸졌습니다. 아무래도 관광지니까요. 또 번화한 곳은 거의 외지인들이 자리 잡고 있죠. 그들이 식당을 열고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월세를 충당하느라 상품이나 음식 가격을 높여 내놓을 수밖에요. 가능한 한 믿을 만한 지인을 통해 정보를 많이 알아보고 숙소나 생활비 등을 고려해 오셔야 합니다.” 평소 육지에서의 한 달보다야 비용은 더 들겠지만, 그만큼 얻어지는 ‘자유’가 있기에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이유일 테다. 서우성 씨 역시 현재 누리는 자유로운 일상이 가장 큰 매력이라 말한다. “언젠가 TV를 보는데, 한 연예인이 집에서 ‘아, 수영하고 싶다’ 하더니 곧바로 차를 몰고 바다에 가서 풍덩 뛰어들더군요. 수영을 하고 나와 바위에 앉아 젖은 머리를 말리며 바다를 응시하는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래, 바로 저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저도 차를 몰고 가다 멋진 석양을 보면 멈춰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마음 내키면 주저 없이 물에 들어가 수영도 해요. 그래서 제 차에는 수영복과 수건이 항상 있습니다. 언제 바다에 뛰어들고 싶을지 모르니까요.” 서우성 씨가 추천하는 ‘제주 한 달 살기’ 겨울철 명소 제주는 곳곳이 명소입니다. 그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보물 같은 곳을 소개합니다. 먼저 지미봉 오름입니다. 성산과 우도를 한눈에 담을 수 있고, 한반도 모양의 밭을 볼 수 있는 곳이죠. 서귀포 저지오름 또한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확인할 수 있는 명소입니다. 겨울철 성산 신천리의 바다목장은 넓은 초원 위 귤껍질을 말리는 전경이 압권이지요. 물론 주변의 이국적인 바닷가와 초원도 멋집니다. 올레길 6코스의 범섬을 보며 걷는 해안도로도 적극 추천합니다. 끝으로, 사람들이 한라산 하면 대개 백록담만 보러 올라가는데, 어리목이나 영실로 올라가셔서 한라산 남벽을 꼭 보시길 권합니다.
- 2018-11-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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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를 잘 잡아야, 제주 한 달이 즐겁다
- 한 번쯤은 들어보고, 한 번쯤은 이뤄야겠다고 다짐하는 버킷리스트. 그러나 막상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애써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도 어떻게 이뤄가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매달 버킷리스트 주제 한 가지를 골라 실천 방법을 담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앞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시니어를 대상으로 진행한 버킷리스트 서베이에서 7위를 차지한 ‘제주에서 한 달 살기’에 대해 알아봤다. 도움말 제주도 한 달 살기 프로젝트·제주알리미닷컴 송유미 대표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크게 시간과 돈이다. 중장년의 경우 은퇴 후 이 두 가지를 대부분 충족하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어렵지 않게 이뤄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꿈꾸는 이들을 상대로 사기 사건이 일어나고, 막연히 떠났다가 예상보다 거액을 탕진하고 오는 등의 문제도 적지 않다. 수백만 원의 큰 금액을 써야 하는 만큼 철저한 비용관리가 관건. ‘제주도 한 달 살기 프로젝트·제주알리미닷컴’의 송유미 대표에게 조언을 들어봤다. Q 제주에서 한 달 살기, 가장 먼저 확인할 부분은요? 당연히 금액 문제입니다. 그중에서도 숙박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요. 그 외 맛집이나 관광지 등을 다니려면 평소보다 2~3배의 생활비가 드니, 이 점을 고려해 예산을 짜야 합니다. Q 중장년층에게 추천할 만한 숙소 형태는 어떤 게 좋을까요? 중장년층은 대개 은퇴 후 부부가 함께 살러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경우 자녀나 손자들이 하루 이틀 놀러와 머물 것을 고려해 원룸 형태보다는 여분의 방이 있는 숙소를 추천합니다. 도시의 아파트나 빌라 등에서 사시는 분들은 제주에서만큼은 마당이 딸린 숙소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마당이 있는 독채는 200만 원 이상 예산을 잡아야 합니다. Q 한 달 동안 여러 숙소에서 머무는 방법은 어떨까요? 제주에서 한 달 동안 사는 숙소는 월세 개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한 달 동안 임대를 하는 셈이지요. 예를 들어 호텔을 이용했을 때, 아무리 작은 원룸이라도 최소 하루 5만 원은 줘야 합니다. 그걸 한 달 치로 계산하면 150만 원이 됩니다. 그러나 그 정도 선이 최소라는 겁니다. 하루 이틀 머물 때는 10만 원(평균적으로) 내외의 숙박업소도 덜 부담스럽지만, 한 달이면 3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저곳 머물게 되면 숙박비가 더 들 수 있습니다.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겠지만, 금액적인 부분만 고려한다면 한 곳에서 월세를 내고 지내는 편이 낫습니다. Q 지역민과의 불화 등 다른 불편 사항은 없을까요? 다들 억지로 가는 게 아니고 자발적으로 편히 지내러 오기 때문에 대체로 만족도가 높습니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고 마음에 들어 다시 오거나 아예 정착하는 분도 많습니다. 지역민과의 불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 달 살기 숙소들은 대부분 신축 건물입니다. 즉, 제주 토박이 주민들이 사는 동네와는 거리가 있는 편이지요. 근처에는 대체로 한 달 살기를 목적으로 온 가구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며 잘 지냅니다.
- 2018-11-2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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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붕 세대공감, 일부 방 월세 놓을 수 있다
- 주택연금에 가입한 주택은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들 한다. 남는 방을 임대하고월세를 받아 생활비에 보탤 수 있다. 바로 서울시의 ‘한 지붕 세대공감’이다. 이는 시니어와 대학생을 이어주는 홈쉐어링에서 출발했다. 201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한 지붕 세대공감’은 고령층 복지정책 및 거주 취약계층 주거 안정을 위한 제도다. 방 1개 이상 주택을 소유한 60세 이상의 고령자와 대학생을 연결하여 고령층에게는 임대수입을 보장하고 대학생에게는 저렴한 주거공간을 제공한다. 세를 들어가는 대학생에게는 보증금 없이 시세의 50% 수준인 월세를 받는다. 또한, 월세를 놓기 위한 도배나 장판 교체비용 등 방 1개당 100만 원 한도로 지원받을 수 있다. 주택연금 수령액에 월세를 추가할 수 있게 되어 노후생활비 마련을 늘릴 수 있다. 실제 사례를 찾아봤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사는 C 씨는 69세에 4억 원 나가는 아파트를 2016년에 주택연금에 가입하여 매월 125만 원을 받는다. 남는 방 2개 중 1개를 대학생에게 임대하여 매월 25만 원을 받아 생활비에 보탠다. 주택연금 125만 원과 합해 150만 원을 노후생활비로 쓰게 되어 적정 노후생활비 146만 원(개인 기준) 이상을 확보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생과 함께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의 간단한 도움을 받고 고독감을 해소하는 역할도 하여 바람직하다. 주택연금 가입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원으로 입소하여 주택을 비워 두어야 할 경우에도 SH공사 공공임대제도를 활용하여 주택 전체를 월세로 임대할 수 있다. 노후생활비 확충의 한 방법으로 활용해 볼만한 주택연금 제도의 보완책이다.
- 2018-10-2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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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세대가 알아두면 좋은 세법개정안
-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18년 세법개정안’은 소득재분배에 초점을 맞췄다. 저소득층을 지원하고 부동산 세제 강화로 ‘부자 증세’의 흐름을 이어간다는 큰 그림이다. 종합부동산세 인상에 이어 임대소득 과세 강화로 사실상 ‘집 부자’를 정조준했다는 평가다. 특히 주택 임대소득 연 2000만 원 이하에 적용되던 비과세 혜택이 올해로 사라지게 되면서, 은퇴 후 월세 수익으로 생활하는 시니어의 세 부담이 늘어난다. 세법개정안에 따라 개정되는 세금제도 항목은 총 246개에 달한다. 이 중 은퇴 세대가 알아두면 도움이 될 주요 세법개정안을 추려봤다. 종부세 인상, 3주택자 0.3%포인트 추가 정부는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개편으로 부동산 자본가에 대한 과세 의지를 확고히 했다. 종부세의 과세표준을 정할 때 적용하는 공시가격의 비율인 ‘공정시장 가액비율’을 현행 80%에서 90%까지 인상한다. 2019년엔 85%, 2020년 90%로 연 5%포인트씩 올린다. 세율도 올렸다. 종부세 과표 중 6억~12억 원 구간의 누진세율은 0.75%에서 0.85%로, 12억~50억 원 구간은 1%→1.2%, 50억∼94억 원 구간은 1.5→1.8%, 94억 원 초과 구간은 2→2.5%로 개편했다. 특히 3주택 이상 다주택자는 종부세가 적용되는 모든 과표 구간에서 0.3%포인트 추가 과세한다. 3주택 이상 추가과세 대상은 1만1000명으로 추산된다. 이번 세법개정안이 시행돼도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한 1주택자의 추가 부담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공시가격 16억5000만 원인 주택을 가진 1주택자의 경우 세금이 현행 187만 원에서 내년 215만 원으로, 28만 원 정도 올라간다. 그러나 주택 3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의 경우 세 부담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 공시가격 총합 35억 원인 3채의 주택을 가지고 있는 다주택자는 세금이 현행 1576만 원에서 내년에는 2575만 원으로, 약 1000만 원 늘어난다. 임대사업자 등록 안 하면 ‘세금폭탄’ 월세를 받아 노후생활비로 쓰려던 은퇴자나 은퇴 예정자들에게 빨간 불이 켜졌다. 연간 2000만 원 이하의 주택 임대소득에 대해서도 소득세가 부과되며, 소형 임대주택 과세 면제 대상도 축소된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을 경우 세 부담은 더욱 늘어난다. 우선 연간 2000만 원 이하의 주택 임대소득에 대한 비과세 특례가 예정대로 올해 말로 종료된다. 내년부터 2000만 원 이하 주택 임대소득에 대해서도 14% 세율로 분리과세한다. 이때 필요 경비율 공제금액은 임대주택 등록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등록임대사업자는 기본공제 400만 원(주택 외 종합소득금액이 2000만 원 이하인 경우)·필요경비율 70%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반면, 미등록 집주인은 기본공제 200만 원·필요경비율 50%가 적용된다. 간주임대료(전세보증금을 은행에 예금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이자) 과세할 때 배제되는 소형주택 범위도 좁혀진다. 현재는 공시가격(기준시가)이 3억 원 이하이고 60㎡ 이하의 소형주택이면 과세 면제 대상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소형주택 범위는 기존 60㎡에서 40㎡ 이하로 축소되고, 금액도 기준시가 3억 원 이하에서 2억 원 이하로 좁혀진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간 임대사업자 신규등록이 전월보다 20% 가까이 늘었다. 7월 신규등록 임대주택 수는 2만851채로 전월보다 18.7% 증가했다. 이 가운데 8년 이상 임대주택이 1만2552채를 차지했다. 정부는 올 하반기 임대사업자 등록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측한다. 세법개정안에 따라 등록사업자는 임대소득세와 양도소득세, 종부세 혜택이 주어진다. 예컨대 연간 1956만 원의 임대소득을 얻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내년부턴 등록하지 않은 집주인은 세금으로 109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반면 등록임대사업자(8년 이상 임대)는 6만5000원만 내면 된다. 임대주택 등록 여부에 따라 세금 차이가 16배 이상 벌어질 수 있다. 임대주택 등록자의 경우 건강보험료도 40~80% 감면된다. 농어민 아니면 비과세 혜택 사라진다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농·수협 등 상호금융에서 판매하는 ‘비과세 통장’은 정식 조합원만 가입할 수 있다. 현재는 농어민이 아니라도 1만 원 내외 소액만 내면 준조합원 자격을 얻어 3000만 원(출자금 1000만 원)까지 이자·배당소득에 대한 과세를 면제받고 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준조합원(고소득층)은 저율 분리과세로 바뀐다. 2019년에 5%, 2020년엔 9% 분리과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조합원·회원에 한해서는 비과세 혜택이 3년 더 연장된다. 근로·자녀 장려금, 최대 370만 원 지원 2018 세법개정안은 ‘부자 증세’와 더불어 저소득·서민층의 세제지원 강화가 주요 축이다. 근로장려금(EITC)과 자녀장려금(CTC)을 중심으로 소득 향상을 지원하는 카드를 내놨다. 우선 정부는 근로장려금의 소득·재산요건을 완화하고, 지급액은 인상해 일하는 저소득 가구를 지원한다. 소득요건은 단독, 홑벌이 가구, 맞벌이 가구 등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총급여액이 단독가구는 1300만 원→2000만 원 미만으로, 홑벌이 가구는 2100만 원 미만→3000만 원 미만, 맞벌이 가구는 2500만 원 미만→3600만 원 미만으로 각각 상향된다. 연령요건도 폐지됐다. 현행 단독가구는 30세 이상이었지만, 내년부터는 연령조건이 사라지면서 연 2000만 원 미만을 버는 1인 가구 청년들도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재산요건은 가구당 재산합계액이 1억4000만 원 미만에서 2억 원 미만으로 완화된다. 단 1억4000만 원 이상이면 장려금이 50%로 감액된다. 근로장려금의 지급액은 최대 300만 원으로 크게 늘어난다. 단독가구는 85만 원→150만 원, 홑벌이 가구는 200만 원→260만 원, 맞벌이 가구는 250만 원→300만 원으로 최대 지급액을 상향했다. 만 18세 미만의 부양 자녀가 있는 가구를 위한 자녀장려금도 상향된다. 자녀장려금은 근로·사업종교인 소득이 있고 만 18세 미만의 부양 자녀가 있는 가구로서 연간 총소득 4000만 원 미만이며, 가구원 재산 합계가 2억 원 미만이면 받을 수 있다. 최대 지급액은 50만 원에서 70만 원으로 올라간다. 자녀 1명당 장려금을 지급한다.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은 동시 수급이 가능해 요건에 따라 연 최대 37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그동안 대상에서 제외됐던 생계급여 수급자도 장려금을 받게 됐다.
- 2018-08-3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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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늘꽂이와 피 뽑는 선비 마누라
- 시어머니는 처음 뵈었을 때부터 쪽진 머리였다. 동그스름하고 몽똑하게 붙은 뒷머리 가운데로 은빛 비녀가 반짝였다. 농사일로 두 손을 호미 삼아 거의 평생을 사신 어머니. 그 시절 부녀자들에게 달리 돈이 될 유일한 게 머리카락을 파는 거였다. 젊은 시절엔 당신의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내주고 항아리나 그릇 등을 장만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만든 바늘꽂이를 받았다. “머리카락 바늘꽂이는 녹이 안 슬어. 큰 바늘은 이불 꿰맬 때 쓰거라.”나일론 자투리 헝겊에 특별할 것 없는 무늬. “이걸 언제 쓴대요?”라고 되물으며 나는 조금 웃었다. 생활에 쫓겨 허덕이는 내게 바늘꽂이는 영 동떨어진 분위기였다. 어머니 생전에 내가 들었던 ‘피 뽑는 선비 마누라’ 이야기가 있다. 결혼해서 이 얘기를 몇 번이나 들었던 걸까. 그 얘기를 당신만 알고 있는 비밀인 듯 나직하고 조심스럽게 했다. 나 또한 그 이야기가 생의 비밀을 품은 실타래처럼, 어머니를 통해 마치 주문을 외는 제사장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결혼하면서부터 어머니와 시동생들과 함께 살았다. 첫애를 낳고 얼마 후, 시동생 결혼으로 우리는 시댁 근처 동네로 분가했다. 다락이 있는 단칸방 월세를 거쳐 방 두 개가 딸린 전셋집을 얻었다. 다락의 책들이 내려와 방 한 칸을 차지했다. 책 사이로 겨우 바람이 통한다 싶을 때 아이는 둘로 늘었다. 아침에 눈을 떠 밤늦게까지 육아와 생계를 잇는 노동으로 여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생활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의 시선이 당신 아들의 책에 머물렀다. 필요한 살림보다 책이 주인인 것 같은 방. 공부하는 아들이 시간제로 강의를 한다는데 그럴듯한 밥벌이는 아닌 것 같았는지 어머니는 짐짓 내게 물었다. “애비 공부는 언제까지 하는 거여?” “언제까지란 게 있나요. 죽을 때까지 하는 게 공분데.” “음, 그렇긴 허지.” 속 시원한 답을 기대한 건 아닐 터였다. 당신보다 한술 더 뜬다 싶은 며느리 말에 막연히 불안했을까. ‘피 뽑는 선비 마누라’ 이야기가 나오는 적절한 상황은 이때다. 어머니는 “서방이란 사람이 돈 될 일 하기는커녕,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책만 들여다보는 서방. 그렇게 가망 없겠다싶은 날들을 보내던 차에 쌀이 떨어졌다는구나. 논에서 피 뽑아 겨우 생계 유지하던 마누라가 부아가 나 그만 보따리를 쌌다지 뭐니” 하며 이야기를 늘어놓으신다. 이쯤에서 어머니의 의도는 알고도 남았다. 나도 찔리는 구석이 없진 않았다. 식구들이 잠든 어느 일요일 새벽, 집을 나왔다. 전날 술에 절어 들어온 남편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남편 옆으로 여덟 살, 세 살, 두 아이들이 송이버섯처럼 나란히 자고 있었다. 집을 나선 건 계획된 게 아니었다. 식구들을 떠나 나를 돌아봐야 했다. 넘어질 것 같은 내 자신을 추스르려고 안간힘을 썼던 때였다. 얘기 속, 보따리를 싼 마누라는 공부만 하는 서방을 떠나 좀 편하게 살자 했으나 피를 뽑고 사는 궁핍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한다. 조금만 더 참았다면 영광이 있었을 텐데,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고 서방을 떠난 마누라를 어머니는 당신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머리카락이 들어간 바늘꽂이는 어머니의 체온인 양 은은하다. 평소에 바르시던 동백기름 향이 나는 것도 같다. 바늘꽂이를 보고 있으면 당신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머니는 백수를 한 해 앞두고 소천하셨다. 살아가는 동안 세상 욕심으로 힘들고 외로울 때, ‘비밀’처럼 들려주던 옛날이야기는 나를 부드럽게 꾸짖으며 따뜻하게 위로하는 메시지가 되었다. 바늘꽂이의 큰 바늘은 행여나 마음속 해지지 않게 한 땀, 한 땀 나를 꿰맨다.
- 2018-08-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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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소공녀’를 보고, 미소를 응원하다
- “그 사랑 참 염치없다야.” 영화 ‘소공녀’ 속 부잣집에 시집간 선배가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주인공 미소를 여러 날 재워주고 결국 한 말이다. 미소는 집이 없다. 그러나 담배와 한 잔의 위스키를 무척 사랑한다. 자기만큼 가난한 남자친구 한솔은 물론이고.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에서 영화 ‘소공녀(Microhabitat)’를 보았다. 좋은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서 반갑다. 동화책과 같은 영화 제목 옆에 있는 ‘Microhabitat’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봤다. 미소(微小, 즉 미생물, 곤충 등)의 서식에 적합한 곳이란다. 아이러니하게도 음(音)이 주인공 ‘미소’와 같았다. 화면 속 그녀의 웃는 얼굴(미소)과는 대조적으로 청년 주거문제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영화다. 주인공은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돈을 번다. 담뱃값도, 위스키 가격도 훌쩍 오르자 월세로 살던 집을 나와 큰 캐리어를 들고 대학 밴드 친구, 선후배 집 등을 찾아다닌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잘나가는 친구는 미소를 만나는 점심시간 틈을 타 스스로 수액을 꽂아 맞으며 피로를 풀 정도로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결혼해 시부모와 좁은 공간에서 살면서도 미소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친구는 꿈을 잃은 채 지겨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산다. 결혼 8개월 만에 아내가 떠나버린 울보 남자 후배는 월급 190만 원 중에 매달 아파트 대출금으로 100만 원씩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한다. 그것도 무려 20년간. 선배의 집도 찾아간다. 아주 늙은 총각인 아들에게 미소가 찾아오자 어떻게든 엮어보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짠하다. 전고운 감독은 관객에게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청년 주거문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과 거리가 먼 직장인의 과로, 자신의 꿈과 정체성은 접어둔 젊은 전업주부의 삶, 대출 때문에 짐이 되어버린 집, 신혼 이혼 문제, 노총각의 애환, 학자금대출을 갚느라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는 미소의 남자 친구까지. 분명 우리나라는 나름 경제대국인데, 배고파 굶는 사람보다 영양 과잉으로 다이어트 고민과 성인병을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인데,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우울하다. 집이 있으나 없으나,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대한민국은 왜 이렇게 우울한 사람이 많을까? 답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50플러스서부캠퍼스에서 영화를 보고 나면 자유롭게 ‘의견 나누기’ 시간이 있다. “숙식이 제공되는 일자리도 많은걸요.” “미소의 처지에 술, 담배를 꼭 해야 하나요?” 관객의 대부분이 시니어들이라 미소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시험지 정답 같은 말들을 쏟아낸다. 나도 마이크를 잡아보았다. “사람의 결은 모두 다릅니다. 그래도 주인공이 몸을 팔거나, 자살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자기 삶에서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삶입니다.” 영화를 함께 본 몇 명의 젊은이에게 공개적으로 물어보았다. 어른인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우리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들어주세요.” 답은 간단해 보이면서도 또 어렵다. 그래도 영화를 보고 세대를 뛰어넘는 이러한 대화가 그 첫걸음이리라 믿는다. 음악과 자유를 사랑하고, 청소와 요리를 잘하는 여자,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마음 따뜻한 여자, 한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하얗게 세는 병을 가진 여자, 키가 커서 더 슬픈 여자, 남의 집을 방문할 때 달걀 한 판을 사들고 가는 여자. 그런 미소가 힘내기를 응원한다.
- 2018-07-1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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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후 대비 부동산 투자 전략
-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널리 회자될 만큼, 임대수익이 나오는 부동산 소유는 수많은 현대인의 로망이다. 근로소득이 줄거나 없어지는 은퇴 전후 세대라면 더욱 그렇다. 이미 포화 상태인 창업 시장에 뛰어드느니 월세를 받을 수 있는 부동산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한창 달아오르던 부동산 시장에 최근 냉각 기류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다주택자들에게 칼날을 겨누면서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주택 시장의 열기가 급속도로 식어가는 분위기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규제 영향이 적은 상업용 부동산으로 투자자들의 눈길이 이동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오피스 상가 등 상업용 부동산의 2017년 전국 거래 건수는 38만4182건으로 전년 대비 4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와서는 거래 건수가 더욱 늘어났다. 1~2월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8.1% 증가했다. 그러나 올해 상가와 오피스텔을 포함한 수익형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도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책이 올해부터 본격화하고 있고, 시중 금리 인상에 따라 수익형 부동산 시장도 수익률 하락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상가 분양가 3.3㎡당 3306만 원, ‘역대 최고치’… 수익률 눈높이 낮춰야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상가 평균 분양가가 역대 최고가인 3.3㎡당 3306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2%가량 상승한 수치다. 특히 서울 논현동, 마곡동에서 총 7개 단지가 3.3㎡당 평균 4385만 원에서 공급되며 전체 분양가 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경기·인천(3248만 원/3.3㎡)은 남양주 다산, 하남 미사, 화성 동탄2신도시 등지에서 29개 상가가 분양됐고 그 외 지방은 3.3㎡당 평균 2873만 원 수준에서 공급됐다. 오피스텔 매매 가격도 지난 1분기 0.2% 상승했다. 전 분기 대비(0.33%) 상승폭은 축소됐지만, 0.2% 선을 유지했다. 입주물량 증가, 금리 인상, 규제 강화 등 악재가 겹쳤지만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높은 가격’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부담스럽다. 더욱이 강화된 대출 규제로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당국은 3월 26일부터 RTI(Rent to Interest, 임대수익이자상환비율)를 도입했다. RTI는 연간 임대소득이 대출 이자의 1.5배(주택임대업)나 1.25배(비주택)를 넘어야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제한다. 이에 따라 대출이 까다로워지고 한도도 줄어들게 됐다. 상가의 경우 연 임대소득이 연간 이자 비용의 1.5배가 넘어야 대출이 가능하다. 김민영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당장의 대출 제한으로 상가 시장 내 절대적인 수요량은 소폭 감소하겠지만 목 좋은 우량 상가에 한해 자금력 있는 투자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기존에는 꼬마빌딩에 투자할 경우 자기자본 비율이 50% 미만이어도 가능했다”면서 “앞으로는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령 이전에는 자기자본 20억 원으로 50억 원대 꼬마빌딩에 투자하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레버리지 비율을 낮춰 30억 원대 빌딩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상가 등 수익형 부동산은 경기에 민감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상가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나겠지만, 당장 자영업자들이 인건비 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공실이 서서히 늘어나는 상황을 감안하고 선별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중금리도 올라가고 있다. 대출은 조이고, 금리가 올라가면 투자자들 입장에선 돈을 빌려오기도 힘들고, 어렵게 대출을 받아도 이자 부담이 늘어 수익률이 떨어진다. 수익률의 눈높이를 조정해야 하는 시기라는 진단이다. 선 대표는 “올해 하반기를 지나 내년 상반기에는 대출 금리가 연 5%대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수익형 부동산의 투자 수익률이 지역과 상품에 따라 다르지만 연 5% 안팎인데, 향후 실제 수익률보다 대출 금리가 높은 역전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 '큰 장' 예상, 도시재생지역 눈길 그렇다면 노후 대비를 위해 수익형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연세가 많을 경우 사업이나 창업에 제약이 많아 수익형 부동산이 현실적인 노후 대안일 수밖에 없다”며 “수익형 부동산의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예금 금리 이상이며, 투자 대상 선별에 따라 그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선 대표는 “노후 대비 목적이라면 주식처럼 불확실성이 크고 급등락이 심한 대상은 투자 대안이 되기 어렵다”면서 “수익형 부동산 시장의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시장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노후 대비를 위한 투자라면 수익형 부동산 중에서도 안정적인 대상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지영 소장은 자금 여력에 따라 상가주택과 오피스텔에 관심을 둘 만하다고 했다. 양 소장은 “상가주택은 투자 금액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관리가 용이하고 건물의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땅값 상승 등으로 인해 리스크 요인이 적다”고 말했다. 상가주택의 경우 해당 지역의 특성을 잘 살펴보고 투자해야 한다. 예컨대 대학가일 경우 소형 위주의 상가주택이 유리하고, 1층 상가도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도록 임차 업종을 선별하는 것이 현명하다. 오피스텔은 그동안 공급이 많았기 때문에 기업 등 배후 수요가 받쳐주는 곳, 지하철 개통 예정 등 호재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을 조언했다. 실제 올해 1분기 오피스텔 분양 시장에서는 양극화가 뚜렷했다. 아파트투유에 따르면 경기 수원시 ‘수원호매실동광뷰엘(333실)’의 청약 접수는 3건에 그쳤다. 경남 진주시 ‘신진주역세권줌시티(348실)’는 단 2건만 접수됐다. 반면 경기 화성시 ‘힐스테이트동탄2차(236실)’는 최고 경쟁률 10대 1로 준수한 성적을 보였고, 경기 수원시 ‘광교더샵레이크시티(1805실)’는 26대 1의 최고 경쟁률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2분기에는 1만508실이 분양 예정이다. 임대수익뿐 아니라 매각 시 시세 차익을 기대한다면 상가 투자가 유망할 것으로 추천됐다. 올해 상가 투자 유망 지역으로는 신도시와 도시재생지역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선종필 대표는 도시재생 관점에서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은평구 수색동, 택지개발지구에서 하남시 등을 유망 지역으로 주목했다. 선 대표는 “유망 지역이라 해도 가격 요인을 고려했을 때 매력은 달라질 수 있다”며 “신규 분양일 경우 특히 가격을 낮추는 협상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상혁 선임연구원은 “노후 대비를 위해 시세차익보다 고정수익에 초점을 맞춘다면, 신도시에 새로 형성되는 상권보다는 기존 상권 중에서 상승세 타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말했다. 노년 세대가 직접 상가를 관리하려면 주거지에서 30분 안팎으로 가깝고, 평소 잘 알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도시재생사업 관련 개선될 여지가 있는 지역, 현재 상권이 크지 않더라도 상승 요인이 많은 곳을 눈여겨보라는 관점이다. 투자 적기에 대해선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를 꼽았다. 양지영 소장은 “현재 수익형 부동산 시장에 대한 리스크 요인도 많고, 가격도 고점에서 조정이 되는 구간이라 매수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며 “올해 하반기 또는 내년까지 여유를 갖고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 대표는 “금리 인상 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반기쯤에는 유동성 리스크에 빠진 건물 투자자나 상가 보유자들이 매물을 내놓는 경우가 평소보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금을 보유한 투자자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2018-05-1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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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주택자 양도세 폭탄 피하는 절세전략
- 다(多)주택자들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사실 한발 늦었다. 3월 31일까지 주택을 처분하지 못한 다주택자들에게는 양도소득세 감면을 위한 출구가 매우 좁아졌다. 그렇다고 무작정 집을 팔 수 없어 ‘보유’로 가닥을 잡았다면, 지금이라도 증여나 임대주택 등록을 통해 양도세를 줄이는 대안 마련이 필수다. 다주택자 ‘최고 68.2%’ 양도세 중과 수도권 소재 주택 세 채에서 나오는 월세 수입으로 노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는 김모(62) 씨는 당초 아들이 결혼하게 되면 집 한 채를 물려줄 작정이었지만,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세금 압박이 커지면서 증여 시점을 앞당기게 됐다. 부동산 세금에 대한 김 씨의 우려는 괜한 걱정이 아니다. 다주택자를 정조준한 정부의 규제에 무작정 ‘버티기’로 대응할 경우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만일 김 씨의 주택이 조정대상 지역에 있고, 집값이 구입 당시보다 5억 원이 넘게 올랐다면 양도차익의 70% 가까이를 세금으로 내야 할 수도 있다. 4월 1일부터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가 대폭 늘어난다. 조정대상 지역에서 주택을 매각하면 2주택자는 기본세율에 10%포인트, 3주택자는 20%포인트가 추가된다. 여기에 올해 세법 개정으로 양도세 최고세율이 기존 40%에서 42%로 2%포인트 높아졌다. 양도차익이 1억5000만 원을 초과하면 38%, 3억 원을 넘으면 40%, 5억 원 초과인 경우 42%의 세율을 각각 적용받는다. 3주택자인 경우 기본세율에 20%포인트가 추가되고, 양도세의 10%가 다시 주민세로 붙기 때문에 최고 68.2%의 양도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집값 상승분의 70%가량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셈이다. 단 양도세 중과세는 조정대상에 있는 주택을 양도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다주택자라도 조정대상 지역의 주택을 매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중과세는 물지 않는다. 현재 조정대상 지역은 서울 전역(25개구), 경기 7개시(과천, 성남, 하남, 고양, 광명, 남양주, 동탄2신도시), 부산 7개구(남구, 해운대구, 수영구, 연제구, 동래구, 부산진구, 기장군)와 세종시다. ‘부담부 증여’ 양도세 따져라 주택 수는 개인별이 아닌 세대별로 계산된다. 본인 및 배우자 소유의 주택은 물론이고 세법상 동일 세대원의 소유 주택을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별도 세대로 분리할 수 있는 세대원 소유의 주택은 떼어내는 것이 절세 포인트다. 대표적인 것이 자녀에게 증여하는 방법이다. 자녀가 세법상 별도 세대를 구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면 세대를 분리해 자녀에게 아파트를 증여하면 주택 수에서 제외된다. 세법에서는 결혼했거나 연령이 30세 이상, 최저생계비 수준 이상으로 독립생계가 가능한 경우에 한해 독립세대로 인정한다. 앞서 김 씨의 자녀가 결혼했거나 연령이 30세 이상이고, 소득이 있다면 자녀에게 증여해 주택 수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자녀가 미혼이고 독립생계가 어려운 경우라면 증여해도 주택 수가 별도로 계산되지 않는다. 증여 방법은 크게 단순 증여나 부채를 승계하는 부담부 증여 중 선택할 수 있다. 대개 세금을 줄이기 위해 부담부 증여를 선호한다. 부담부 증여는 대출이나 전세보증금 등 증여자(부모)의 채무를 수증자(자녀)가 인수하는 조건의 증여 방식이다. 전체 평가액 중 부채 승계금액을 제외한 금액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내고, 부채 승계금액에 대해서는 양도세가 붙는다. 김종필 세무사는 “4월 이후 부담부 증여의 경우 양도세 중과가 적용될 수 있어, 단순 증여와 부담부 증여 시 세금을 비교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집값이 크게 상승한 경우라면 배우자에게 증여하는 방법도 있다. 배우자에게 증여할 때 주택 수는 달라지지 않지만, 통상적으로 부부간 증여는 6억 원까지 배우자 공제가 적용된다. 가령 3년 전 4억 원에 구입해 6억 원으로 오른 아파트를 아내에게 증여하면, 배우자 공제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 경우 배우자가 아파트를 증여받은 후 제3자에게 6억 원에 매도하면 양도차액이 발생하지 않아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 단 증여 후 단시일 내 양도는 주의해야 한다. 증여 후 5년 이내에 매매할 경우 조세 회피를 위한 것으로 간주해, 애초 취득금액인 4억 원을 기준으로 양도차익이 계산된다. 증여 후 5년이 지나면 증여 당시 평가금액이 취득금액이 되므로, 5년 이상 보유 의사가 있다면 가족 간 증여 후 양도하는 방법이 효과적인 절세 방안이 될 수 있다. 임대사업 등록 … 8년 이상 장기전략 서울 마포구에서 다가구주택을 세놓은 임모(68) 씨는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놓고 고심 중이다. 임 씨는 다가구주택 외에도 현재 거주 중인 주택을 비롯해 아파트 두 채를 소유하고 있다. 임 씨는 “다가구주택에서 나오는 임대소득은 노후 생활비여서 당장의 매각은 고려하지 않지만, 자칫 임대사업 등록으로 소득만 드러나고 실익은 크지 않을 수도 있어 망설인다”고 말했다. 최근 임대사업자 등록을 선택하는 다주택자가 늘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2월 한 달간 신규 등록한 개인 임대주택사업자는 9199명으로 지난해 2월(3861명)에 비해 2.4배 증가했다. 지난 1월(9313명)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2월은 설 연휴로 등록 가능한 근무일수가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평균 등록자는 1월 423명에서 2월 511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는 굳이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국세청은 신고하지 않더라도 임대차 내역을 파악할 수 있다. 직장인의 월세소득공제는 물론, 주민센터를 통해 확정일자 정보도 확인이 가능하다. 따라서 임대 목적으로 다주택을 소유하고 있다면,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각종 세금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조정대상 지역에서 (임대)수익률이 높고 집값 상승 여력이 있는 주택을 가진 경우라면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장기적으로 세금을 줄여나가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양도세 중과를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건강보험료 등이 줄거나 면제된다. 장기특별보유공제 혜택도 있다. 다만 4월 1일 이후 사업자 등록을 고려한다면 선택지는 8년 이상 ‘장기임대’로 좁혀진다. 3월까지 사업자 등록을 한 경우 의무기간 4년의 단기임대주택을 운영할 수 있고, 5년 이상 임대하면 양도세와 종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4월 이후에 양도세 중과 배제와 종부세 혜택을 받으려면 8년 이상 임대주택 등록을 해야 한다. 8년 임대 시 건보료의 80%가 감면되고, 매각 시에는 매매 차익의 70%까지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장기 임대주택 혜택은 시·군·구청과 세무서에 모두 등록해야 하며, 임대료는 의무임대기간 동안 연 5% 범위로 인상폭이 제한된다. 의무임대기간에 주택을 매매할 경우 주택당 최대 1000만 원에 달하는 과태료가 부과되고 감면된 세금도 추징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 2018-03-29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