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주는 존재, 자식은 받는 존재 김미나 동년기자
‘내 몫은 얼마나 될까’, ‘언제쯤 주실까?’
그러나 짜다는 소리 들으며 부를 축적하신 부모님께 성화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투잡을 뛰고 하얀 밤 지새우며 일했지만, 누구는 연봉 3억이란 말에 손을 떨궜다. 언젠가는 주시겠지 하는 느긋한 마음도 아이들이 자라고 사교육에 등골이 휠 때마다 절
“안 된단 말이야. 데구루루… 너무 아팠어요.” “어디 보자. 우리 채소들이 얼마나 잘 자랐나. 허허, 녀석들 예쁘구나!”
목을 쭉 빼고, 깍지 낀 손가락 위에 턱을 괴고, 고개를 갸우뚱. 점점 빠져든다. 입가에 웃음이 배는 건 어쩔 수 없다. 입담에 알록달록 교구와 손 유희가 어우러지니 잠시 잊고 있었던 동심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세대와 세대를 잇겠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물건이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는 잘 몰라도 그 물건은 장롱 서랍에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가끔 그 물건을 꺼내 만져보고 소꿉놀이를 하며 가지고 놀기도 했다. 그 후 수십 년이 흘렀다. 살던 집에서 이사했고 오래된 장롱과 함께 그 물건은 기억 속에서 잊혀 버렸다. 간혹 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 어쩌다
50년 전쯤 편지를 주고받았던 짧은 인연에 기대어 그대에게 다시 편지를 씁니다. 그 사이 어떻게 지내셨나요?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 되어서 그대나 저나 서로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이가 되고 말았지만 밤잠을 설치며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편지를 이어가던 까까머리 시절의 기억은 아직 저의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답니다.
그때의 청소년들은 참 답답한 오
처음에는 “무슨 추모공연이냐” 반문하며 차갑게 돌아섰다. 공간예술을 하던 이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추모한다는 말인가. 의미 없다며 외면하려던 찰나 불현듯 생각났다. “선배님이 이 연극에서 연기 참 잘했지.” 좋은 작품을 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평소 성격답게 세상과 쿨(?)하게 안녕하고 떠난 그녀를 대신해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조명이 켜진다. 카
이자연은 최근 여성 최초로 대한가수협회장에 당선되었다. 호칭을 회장님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자연의 대표곡 ‘찰랑찰랑’을 부를 때 그녀의 목소리와 몸짓을 떠올리면 회장님보다는 찰랑찰랑대는 맛깔스러운 가수가 훨씬 더 어울린다. 대외적인 그녀의 나이는 63년생이지만 사실은 58년 개띠. 이봉규와 갑장이어서 더 말이 많았다.
그녀가 데뷔할 당시 여
비가 촉촉이 내리던 어느 날. 조미옥 씨의 가슴 한구석이 비에 젖은 새처럼 떨려왔다. 라디오 주파수를 타고 색소폰 연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곧바로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지금 틀어준 곡이 무엇이냐 물었다. 케니 지의 ‘포에버 인 러브(Forever in Love)’였다. 그는 다짐했다. 어느 비 오는 날 홀로 창가에서 저 노래를 꼭 연주하리라. 그러던
숲으로 들어서자 솔 그늘이 짙다. 부소(扶蘇)란 ‘솔뫼’, 즉 소나무가 많은 산을 일컫는 백제 말이란다. 부소에 산성을 쌓았으니 부소산성이다. 백제 당시에는 사비성이라 불렀다. 산의 높이는 겨우 106m. 낮고 평평하나, 이 야산에 서린 역사가 애달파 수수롭다. 부소산성은 나당연합군에게 패망한 백제의 도성(都城). 백제 최후의 비운과 아비규환이 화인(火
명절이 다가오면 시아버님의 새벽 전화도 덩달아 대목을 맞이한다.
“에휴, 이번 추석엘랑 오지 말어. 뉴스 보니께 차도 많이 밀리고, 그럼 안 그렇겠어?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니께~ 느그들 왔다 가면 도착했다는 말 들을 때까지 당췌 마음이 안 놓여. 다음에 길 한가헐 때나 한 번 오든가.”
아버님의 새벽 전화는 명절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다.
엄마 친구 집 대문을 열다
7월의 뜨거운 열기조차 서늘하게 느껴질 만큼 사무친 그리움을 안고 고향 순창으로 갔다. 얼마 전 뇌졸중이 재발되어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였다. 한적한 골목길을 거닐다 어느 집 앞에 멈춰 섰다. 엄마의 오랜 친구 정봉애(89) 씨가 사는 집 앞. 한참을 서성이다가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반갑게 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