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노벨문학상 유력 수상 후보로 거론됐던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 에서 “죽음은 삶의 대극(大極)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재해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일상과 무관하고, 삶과 거리가 있게 느껴지지만 사실 죽음은 늘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대단히 죽음에 인색하다. 입에 올리는 것마저 거북해한다
전날 밤 늦게 잠이 들어 아침 기상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 커튼을 여니 환한 햇살이 눈부시고 내다보이는 바깥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반짝 눈이 떠졌다. 그보다는 아기들이 먼저 잠에서 깨어 필자를 흔들어댔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의 즐거울 시간을 상상하니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이번 여행은 아들, 며느리의 계획에 전적으로 따르기로 했기 때
글 박원식 소설가
대전에서 은행원으로 살았던 홍성규씨(75)가 명퇴 뒤 귀촌을 서둘렀던 건 도시생활에 멀미를 느껴서다. 그는 술과 향락이 있는 도회의 풍습에 착실히 부응하며 살았던 것 같다. 어지럽고 진부한 일상의 난리블루스,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돼 있는 게 삶이라는 행사이지 않던가. 그러나 문득 쇠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정색을 하고 화드득 나를 돌아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에 멋진 연극 한 편을 보았다. 윤석화의 .
1998년 첫 공연 이후 17년간 이어진 공연이라니,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윤석화라는 연극인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터 클래스는 세계적인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가 노래하지 못하게 된 후 젊은 성악가들을 위해 연 심화 과정의 특별 수업이다. 인생의 전부였던 목소리를 잃고 사랑도 잃은
지난 몇 년간 필자는 창경궁을 돌아 창덕궁으로 가는 율곡로를 지나며 궁금한 생각을 했었다.
어느 날부터 율곡로에 있던 종묘와 창경궁을 잇는 구름다리가 싹둑 잘려서 창경궁 담에 바싹 붙어 형체만 조금 남았기 때문이다.
율곡로는 지난날 청춘 시절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며 지나다녔던 곳으로 필자에게는 추억이 담긴 특별한 거리라 할 수 있다.
그때 그곳을 지나며 올려
자서전은 지나온 삶을 성찰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훌륭한 자기계발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때론 가슴을 적시는 소설이 되기도 하고, 희로애락이 한껏 버무려진 희곡이 되기도 한다. ‘내 이야기’ 즉, 직접 겪은 일을 자기 감정을 토대로 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내가 직접 쓰는 게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자서전을 만들고 싶지만
함께 있다 보면 닮게 된다. 같은 관심사가 생기고 비슷한 부분에서 웃고, 울고, 기억을 저장하고 추억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한성대학교 문화인류학 교수이자 (사)글로벌발전연구원장(ReDI) 이태주(李泰周·54)의 서재가 그렇다. 함께해 온 흔적과 이야기, 좋아하는 것,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책 사이이 남자의 서재, 책 말고 다른 물건(?)도 많다와 책상 위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자손들은 하얀색, 검은색 상복을 입고 마지막 예의를 갖췄다. 수십 년 전 욕심이 한계를 넘던 어느 날의 이야기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또 살기 위해 끼니를 기다렸다. 김이 퐁퐁 나고 기름이 좌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을 보자 눈을 크게 굴려가며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어머님을 보내드리는 고된 일정에 온 가족들은 허기가 진 모양이었다.
요즘은 현금보다 카드를 많이 쓰는 추세다. 누구나 물건값을 낼 때 돈 대신 쓸 수 있는 카드 한두 장씩은 가지고 있다. 필자도 얼마 전까진 여러 은행의 신용카드를 갖고 있었다. 은행마다 장점을 자랑하며 권하는 바람에 멋도 모르고 여러 장의 카드를 만들었지만 쓰다 보니 하나의 카드로 몰아서 소비하는 게 포인트를 모으는 방법도 될 수 있고 각 카드마다 있는 연
프랑스 남동부, 론 강과 알프스가 합쳐진 지역을 ‘론 알프스(Rhone-Alpes)’라고 한다.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4807m)이 있고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접경지대다. 스위스 제네바와 이탈리아 토리노, 밀라노와 가깝다. 이 일원을 사부아(Savoie)라 일컫는데 안시(Annecy)는 오트 사부아(Haute-Savoie) 주의 중심 도시다. ‘안시’는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