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굽이굽이 숲 속 사이에 자리 잡은 공장 사택에서 태어났다. 붉은 화로가 이어진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짙푸른 나무 숲, 맑은 물, 흐르는 산골 출신이라 생각할 테지만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 도시로 이사한 이후에도 이모가 살고 계신 그곳으로 방학 때가 되면 찾아갔다. 내 고향 공장 근처 저수지에서 죽어 있는 물고기들을
집에서 가까운 올림픽 공원 내 소마 미술관에서 세계적인 누드화 전시가 있다 하여 가봤다. 8월 11일부터 12월 25일까지란다. 모처럼 갔는데 휴관일이 아닐까 걱정되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10월30일까지는 휴관일이 없다고 되어 있어 안심하고 가봤다. 소마 미술관은 종종 가봤는데 휴관일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가야 한다. 평소에는 여러 가지 기획전을 하고
필자는 옥수수를 무척 좋아한다. 상앗빛의 알이 고른 옥수수를 하모니카처럼 들고 먹는 생각만 해도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상상이 돼 입안에 침이 고인다. 한창 잘 먹을 땐 앉은 자리에서 10개를 먹은 적도 있다. 시장에 가니 막 쪄서 올려놓았는지 커다란 솥 위의 쟁반에 윤기 나는 옥수수가 김을 내며 탐스럽게 쌓여 있어 한 봉지에 3개 들어 있는 옥수수를 사왔다
‘깨달음’이라는 단어는 필자 같은 평범한 사람에겐 해당이 안 되는 말인 줄 알았다. 부처님이나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성현이나 훌륭한 사람들이 얻는 고귀한 생각일 거라고만 짐작했다.
친한 친구 삼총사 중 한 명인 이 여사는 독실한 불자다. 그래서인지 폭넓게 우리를 포용해주고 마음 씀씀이가 컸다. 그녀는 집에서 가까운 절에 열심히 다니기도 하고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화가인 엄정순(57) 디렉터는 오래전부터 이 질문이 화두였다. 보이는 것 이면에 무언가 있을 것 같은데 이해하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답답함. 엄 디렉터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즐거움, 그 밖의 세상에 있는 진실과 본질 등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그 생각이 ‘눈을 쓰지 않는 세계’에 대한 관심과 탐험으로 이어졌고 ‘우리들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트레비네는 조용한 강변 마을이다. 레오타르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트레비슈니차 강이 마을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소도시. 오스만 시대의 아치형 다리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마을을 잇는다. 고요한 소읍은 한 폭의 수채화를 만든다. 강물 속으로 마을 풍치가 풍덩 빠져 반영되어 흔들거리면 긴 여행자의 묵은 시름이 사르르 치유된다.
요즘이 휴가철이긴 한가보다. 꽉 막힌 고속도로를 보니 확실히 느껴진다. ‘다들 어디 가려고 이렇게들 나온 걸까?’ 했지만 우리처럼 여름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일 것이다. 밀리면 밀리는 대로 여행 시작의 들뜬 기분은 필자를 설레게 한다.
참 오랜만에 여름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아이가 어릴 땐 여름, 겨울 꼭 휴가를 갔는데 한동안 휴가 여행이라는 걸 생각하지
서둔야학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약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들판을 지나서 가다 보면 5월의 훈풍이 필자의 볼을 간지럽혔고 넓은 들판의 보리가 바람에 넘실대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보리밭 한가운데서 종달새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내려왔다 까불대며 명랑하게 지저귀었고, 멀리서 구슬프게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는 필자의 가슴을 깊이깊이 파고들었
성긴 마대로 캔버스를 만들고 물감을 뒷면에서 앞으로 밀어내어, 마대 올 사이로 자연스럽게 흐르게 한 뒤, 앞면에서 최소한의 붓질만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사용하는 물감도 회색이나 검정, 청회색 등 단색으로 단조로우나, 보는 이들에게 고요한 명상에 잠기게 한다.
화가 하종현(河鍾賢, 1935~)은 1960년대 우리나라 앵포르멜(informal, 비정형) 추상
필자가 화가 케테 콜비츠(Käthe Koll witz, 1867~1945)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지인이 얼마 전 독일 언론 매체에 실린 케테 콜비츠 탄생 150주년과 관련한 칼럼을 보내왔다. ‘반전(反戰) 화가’이자 ‘인권 화가’인 케테 콜비츠의 출생 연도가 1867년에다 생일이 7월 8일이라 적절한 시기에 그녀를 재조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