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 달오름으로 창극 '흥보 씨'를 보러 갔다.
마침 티켓이 여러 장이라 친구들에게 연락하면서도 조금은 걱정스러움이 있었다.
구닥다리처럼 창극이 뭐냐고 할 줄 알았는데 모두들 좋다며 환호한다.
사실 필자는 음악이라면 모든 장르를 다 좋아한다. 그렇지만 아직 창극이나 판소리공연은 가보지 못했다.
젊은 날 팝송과 샹송, 칸초네를 듣고 거기에 잘 이해하지도
허비되기 쉬운 건 청춘만은 아니다. 황혼의 나날도 허비되기 쉽다. 손에 쥔 게 많고 사교를 다채롭게 누리더라도, 남몰래 허망하고 외로운 게 도시생활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에 들어온 지식, 가슴에 채워진 지혜의 수효가 많아지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은하계를 덧없이 떠도는 한 점 먼지이지 않던가.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한다.
일 년 쉬고 다시 장애인댄스 강습에 참여했다. 한창 뛸 때도 힘들었지만, 과연 일 년이나 쉬고도 다시 댄스 강습을 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다. 우선 다른 스케줄로 일상이 채워져 그 스케줄을 뒤로 하고 장애인댄스에 시간을 내야 하니 어려웠다. 봄꽃이 한창이라 밖에서는 나오라고 유혹하는데 눈 질끈 감고 지하 연습실로 가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고민
국민 드라마 의 바르디바른 둘째 아들 용식, 뜨거운 열정과 헌신으로 무대에서 빛나는 베테랑 연극인, 그리고 막말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문화체육부 장관까지. 어느새 올해 67세를 맞이한 유인촌의 이미지는 이렇듯 여러 갈래로 만들어져 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매스컴의 요란한 스포트라이트에서 어느 순간 사라져 연극인으로 돌아간 그는 OBS의 대담 프로그램 M
처음엔 진지하고 무게 잡아 딱딱하던 종편 채널 정치 평론가들이 많이 달라졌다. 아마 방송국의 요구도 있었겠지만, 요즘은 마치 ‘준 연예인’이라도 된 듯하다. 어느새 인기 패널도 생겼단다. 그래서인지 시종 소란스러운 정치판을 다루는데도 여성 팬이 많아졌다는 소식이다. 필자도 어느새 시간에 맞추어 고정적으로 그들의 입담을 즐기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도 어김없
필자가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결혼 11주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때 친정어머니께서는 필자의 집, 친정집, 병원을 매일같이 오가셨다. 남편과 어린 두 아들은 전기 압력밥솥으로도 밥을 할 줄 몰랐고, 세탁기는 더더욱 사용할 줄 몰랐다. 그래서 친정어머니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딸의 집 식사와 빨래와 청소를 하시면서 한 달간 아주 고생을 많이 하셨다.
시골의 봄은 담장 너머에서 오고, 도시의 봄은 처녀의 옷차림에서부터 느껴진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말, 이젠 바꿔야겠다. 도시의 봄을 알리는 중년의 패션 그리고 컬러.
요즘 속속 론칭되는 브랜드들을 보면 유난히 강조하는 단어가 있다. 뷰티는 물론이고, 패션, 주얼리 업계에도 ‘에이지리스(Ageless)’라는 단어가 브랜드 소개에 꼭 들어간다. 전통적으
“어 이게 누구야”
“너 여기 숨어있었구나”
바람도 살랑대는 어느 맑은 가을날 오후
내가 봉사하는 경로당에 입당하러 오신 어르신과 총무님께서 마냥 어린애 되셨다
그 후 두 분의 대화는 함께하시는 어르신들이 다 외울 정도로 그게 그 얘기였지만 정작 두 분은 한 이야길 또 하며 그때마다 호탕하게 웃고 즐기신다.
늘 남의 말에 갈고리 걸어 다툼을 일으키시는 대머
그녀는 철없고 순진하다. 세 번의 이혼과 파산 등 여배우로서는 너무나도 가혹한 상황을 견디며 살았는데 고생한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10대에 이미 화려한 스타로 누릴 대로 누리다가 편안하게 그대로 곱게 중년이 되어버린 여자처럼 보인다. 40대가 되면 누구나 얼굴이 책임지고 살아온 인생을 투영한다고 말하는데 이상아의 얼굴은 반칙이다. 노란색을 아주
광활한 사막을 사나이가 홀로 걷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아득한 수평선엔 끝없는 모래와 하늘이 가느다랗게 맞닿아 실눈을 뜨고 있었다. 머리 위의 뜨거운 태양도 간혹 부는 모래바람도 그를 달래주지는 못했다. 발에 푹푹 파이는 모래를 바라보며 걷던 사나이는 돌아섰다. 그리고 비로소 안도했다. 모래 위로 난 자신의 발자국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너무 외로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