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해요’

기사입력 2017-04-07 08:56 기사수정 2017-04-07 08:56

필자가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결혼 11주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때 친정어머니께서는 필자의 집, 친정집, 병원을 매일같이 오가셨다. 남편과 어린 두 아들은 전기 압력밥솥으로도 밥을 할 줄 몰랐고, 세탁기는 더더욱 사용할 줄 몰랐다. 그래서 친정어머니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딸의 집 식사와 빨래와 청소를 하시면서 한 달간 아주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퇴원 후 남편과 아들에게 집안일을 조금씩 가르쳤다. 다행히 두 아들은 재활용 분리수거와 청소, 식사 준비를 조금씩 스스로 하게 됐고 남편은 아주 어쩌다 건조된 세탁물 정리와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계속 연습을 시키고 습관을 들인 결과인지 결혼한 두 아들은 현재 재활용 분리수거나 식사 준비 등 직장을 다니면서도 며느리를 많이 도와주면서 재밌게 살고 있다. 재활용이나 주방일을 도움받을 때마다 필자는 아들들에게 “미래의 며느리가 어머니가 정말 잘못 가르쳐서 제가 힘들다구요”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그 말이 효과를 본 것 같다.

자녀를 모두 분가시키거나 결혼시킨 후 단출하게 사는 시니어 부부의 경우 그렇게 살다가 누가 먼저 세상을 뜰지 모르기 때문에 집안일은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일상적인 일조차 전혀 적응이 안 된 분이 혼자 남겨질 경우 정말 힘들다고 한다. 이는 남자이든 여자이든 다 마찬가지다. 여자가 혼자되면 남자보다 적응을 잘하고 산다는 얘기도 있지만 예외도 있다.

잉꼬부부였던 지인이 몇 년 전 사별을 했다. 사업가였던 남편은 정말 자상해서 살아 있을 때 아내가 힘들어할까봐 재활용 분리수거는 물론 장도 같이 보러 다니고 장본 물건들을 차에 싣고 날라주고 했다. 또 어쩌다 아내 없이 혼자 식사를 하게 되더라도 설거지는 물론 행주까지 깨끗하게 빨아 탁탁 털어 잘 마르도록 정리해놓았다고 한다. 그렇게 자상했던 남편이 암 진단 받고 얼마 안 돼 세상을 떠나니 재활용 분리수거할 때도 남편 생각이 나서 힘들고 장보는 날에도 힘들게 물건을 들고 오다 보면 짐 무게만큼 마음의 상처도 컸다고 한다.

며칠 전 70대 중반의 형님들과 점심식사를 같이하기로 했는데, 항상 약속 장소에 먼저 와 계시던 분이 늦게 나타나셨다. 웬일인가 여쭈어보니 세끼 식사를 꼬박 챙겨 드시는 남편을 위해 점심을 챙겨드리고 나오느라 늦으셨다는 것이었다.

나이 들고 보니 ‘혼자서도 잘해요’라는 프로그램 제목이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식사도 혼자 할 줄 알아야 장수시대가 더 이상 재앙이 되지 않는다. 함께 어울리는 관계도 중요하지만 혼자서 시간을 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 여럿이 모여 건배사 날리면서 시끌벅적한 모임도 좋지만 혼자서 술도 차도 밥도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시니어뿐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혼자서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훈련하는 대한민국 가정과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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