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호텔 앞에서였다. 막 그곳을 통과하던 필자는 좀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친 한 남자가 머리에 갓을 쓰고 있었다. 한 손에 부채를 든 채로 여유 있게 사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가 일본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화가 났다. 조선의 선비가 쓰는 갓을 청바지 위에 함부로 쓰고도 점령군처럼 안하무인이라니. 필자의 눈에선 퍼런 레이저가 발사
누구나 첫사랑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봐도 필자에겐 누가 첫사랑인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외가의 옆집에 살던 그 남자아이일까? 그때도 그 아이를 보면 마음이 설레고 즐거웠으니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니 너무 어린 나이여서 제외한다면 그럼 고등학교 때 흠모하던 선생님? 고교 시절 필자 마음이 열렬했지만,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못 보던 입간판이 눈에 확 들어 왔다. 눈에 확 들은 이유는 그 입간판의 색상 때문인 것 같다. 샛노란 바탕에 까만 글씨가 선명했는데 ‘낮술 환영’이라고 쓰여 있다.
요즘 우리 동네에 상권이 많이 변했다. 원래 조용한 동네였는데 국립공원으로 등산하러 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없던 커피집이나 음식점, 술집이
필자는 강아지를 좋아한다. 길 가다가 지나는 강아지를 보면 그 개가 예쁘건 못생겼건 다 귀여워서 한 번씩은 꼭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지금 강아지를 키우진 않는다.
예전에 키웠던 강아지와의 이별이 너무나 슬펐기 때문이다.
개로서는 명을 다한 15살의 나이였지만 우리 가족의 충격은 매우 컸다.
어떤 동물이건 한 번 키우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돌봐줘야 하는데
이투데이 뉴스 화면에 관심 가는 기사가 떴다. 바로 우리 동네 경전철 이야기이다.
‘난항 겪는 서울 경전철, 우리 동네 경전철 어디까지 왔나?’라는 제목으로 위치를 보니 필자가 사는 동네를 지나는 우이~신설동 노선이다. 필자가 사는 동네는 북한산 국립공원이 있는, 서울에서도 개발이 덜 되고 자연적 환경이 좋은 곳이다. 이곳은 풍치지구로 지정되어 높은 건물
이른 아침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들었다. 올케였다.
“오빠가 중환자실에 계셔.”
오빠의 의식이 이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싸늘해지는 기분. 입원했다는 말도 없었는데 중환자실이라니?
사흘 전, 감기 기운이 있어 의원에서 약을 지어 먹고, 저녁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들었는데 호흡이 힘들다고 했다. 응급실에 가자고 했더니, 늦었다고 해서 이튿날 종합병원
어른들은 누가 봐도 잘못을 범했다는 게 확실한 일인데도 그걸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힘든 작업 같다.
미안하다 아니면 용서해달라고 하는 말을 해야만 한다면 나이어린 아이들에게라도 하는 습관을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어왔다. 그러나 그런 어른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인격에 도달한 사람이 드물다는 증거라고 보인다. 그런데 일
우리 시니어 모두다 세상에 애기로 태어나서 자라나 어린이로 학생으로 성장하여 특별한 경우 외에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자녀를 결혼시키고 나이 들어가는 과정이 계속 되고 있다. 부모로서 지혜로운 삶의 지혜를 말해도 다 잊어버리거나 자신의 부모가 하는 말은 늘 하던 잔소리로 들을 수 있기에 글로 써본다.
1.공부하는 자녀들에게
낳아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너
새로운 단어가 방송에서 나온다. 그러면 순식간에 전국 방방 곡곡 모든 사람들이 그 말들을 순식간에 사용하는데 놀라운 속도다.
내가 살고 있을 때 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었다. 난 그 말이 나온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이를 막론하고 그런 의미의 말을 사용할만하면 정확하게 전 국민이 사용하는 거다. 그 전파 속도도 놀랍지만 발음도 의미도 정확
전기 없는 생활은 상상 할 수 없도록 문명 이기중 전기가 으뜸이다. 전기는 재가 없는 청정 에너지이며 스위치를 켜고 끄는 동작만으로 다양한 역할을 시킬 수 있으므로 우리 생활 곳곳에 들어와 있다.
그러다보니 해마다 전기로 인한 화재사고가 전체화재의 25~30 % 정도 차지하고 그 피해액만 600억 원이 넘어서고 있다. 또한 감전으로 인한 사망 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