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누군가는 ‘복길이’ 이미지에 가둬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그 이미지를 벗기 위해 김지영은 부단히 노력했다. 어느덧 데뷔 30년 차 배우가 됐는데, 이제는 자신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또한 연기학과 교수로서 후배들을 이끌고 있으며, 삶을 관망하는 여유도 생겼다. 유명인과 일반 대중의 관계는 ‘인기’로 증명되는 터. 그는 “인기란 야속한 것 같다.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다”면서 양면성을 언급했다. 현재는 큰 인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들한테 인기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희귀병을 앓아 부모님 속을 썩였다고 생각하는 딸이기에 자식을 향한 애정이 더욱 특별하다.
‘전원일기’와 가족의 탄생
MBC ‘전원일기’와 복길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복길이 이미지 때문에 다른 역할을 못 맡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디션도 많이 보고, 사이코패스 악역, 유흥업계 인물 등 갖은 역할에 도전해봤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복길이로 인해 지금의 제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죠. 나이 들고 보니 배우로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라도 있으면 성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매우 고마운 작품이죠. 그리고 좋은 선배님들과 호흡하면서 연기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전원일기’는 결국 저의 학교였다고 생각해요.
SBS ‘토마토’에서 악역 연기를 펼쳐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때가 전성기였을까요?
MBC에서 ‘그대 그리고 나’(1997년)로 신인상을 수상한 후라 자신감이 올라와 있었죠. 악역 제안이 들어왔을 때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겠단 생각에 출연했고, 촬영도 재밌게 했죠. 광고도 그때 제일 많이 찍었어요. 그렇다고 그때를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매번 진심을 다해 연기해서 작품 할 때가 늘 전성기라고 느껴요.
남성진 씨와는 동료에서 남편이 된 케이스인데, 관계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셨나요?
‘전원일기’를 8년간 촬영하면서 정말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냈죠. 이후 남편의 고백으로 사귀었는데 연애 기간은 불과 6개월이었어요. 그중 5개월은 제가 중국에서 촬영했죠. 연애다운 연애를 한 적이 없는데 바로 결혼하려니 조금 무섭고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우정과 사랑을 구분 못 한 것이 아닌가 싶었죠.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결혼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사람, 내 가족이 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끼면서 사이가 깊어졌고, 고마워하고 있어요.
부부간 소통은 어떻게 하세요?
저희 부부는 성격이 극과 극이라서 지금도 종종 싸워요. 남편이 화가 많고, 버럭하는 스타일이에요. 불 같은 성격이죠. 그래서 말다툼으로 번지는데, 다행히도 저희 둘 다 금세 잊어 버리곤 해요.
어느 순간부터는 의견 차가 커도 남편한테 ‘고쳐줬으면 좋겠어’, ‘맞춰줘’ 등의 요구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남편의 말에는 짜증이 섞여 있지만, 내용은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어요. 그래서 서로 이성적으로 대화가 될 때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려고 해요. 특히 아이 문제로 대화할 때는 아이의 생각을 가장 먼저 수렴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정을 내리죠.
얘기를 나눠보니 아드님에 대한 사랑이 크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이가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할 수 있는 엄마가 되는 게 제 꿈인 것 같아요. ‘그렇게 살면 네 삶이 너무 없지 않아?’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게 제 삶이라고 생각해요. 일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아이 옆에 많이 있어 주려고 노력했어요. 평소에는 편지나 메모를 남겨서 마음을 표현했고, 촬영이 없는 날에는 즉흥적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죠. 그런데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같이 있는 시간이 줄었어요. 나중에 성인이 되고 여자 친구가 생기면 나와 놀아줄 시간이 있을까 싶어요.(웃음)
과거 방송에서 보니 아드님도 배우가 되고 싶어 하던데요. 3대 배우 가족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더니,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요. 부모님, 조부모님한테 먹칠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더라고요. 그 부담감은 당연한 것 같아요. 저도 시부모님이 배우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남편은 평생 그 부담을 안고 살았죠. 우리 아이는 그 부담이 배로 커진 거잖아요.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연기가 정말 하고 싶으면 해라. 너의 색깔을 찾으면 된다’고 조언해주고 있습니다.
시어머니인 배우 김용림 씨와의 고부 관계가 특히 주목받는데요.
굉장히 순탄한 고부 관계라고 생각해요. 같은 분야에 있으니까 잘 이해해주세요. 제가 종갓집 며느리인데 촬영 때문에 제사를 못 지낼 때도 있고, 촬영이 늦어져 새벽 5시에 집에 들어갈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 어머니께서 이해를 넘어 ‘얼마나 힘드니’라고 위로해주시죠. 그런데 여느 관계와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길 때도 있어요. 어머니께서 섭섭했던 부분을 말씀하시면, 저도 속상한 점을 얘기하기도 하죠. 어느덧 어머니와 함께한 세월이 20년 이나 되다 보니,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어떠신지 알겠더라고요. 전화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 있는 것 같으면, 바로 달려갑니다.(웃음)
삶과 인연을 소중하게
부모님에게는 어떤 딸이었나요?
어릴 때부터 희귀병으로 몸이 약했으니까 늘 집안의 걱정거리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부모님의 사랑을 더 느낄 수 있었어요. 배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몸도 안 좋은 애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셨겠죠. 그런 마음을 아니까 창피하지 않은 자식이 되고 싶어서 더욱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사실 어느 순간, 너무 우리 애만 챙기느라 부모님에게 신경을 못 썼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후회가 남지 않게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합니다.
희귀병 투병으로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겠어요.
등에 혈관이 엉겨 붙는 혈종이 있었는데,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요. 가족들이 저를 살려보겠다고 별걸 다 해봤는데,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죠.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유서를 써놓기도 했어요. 말로 전하지 못한 얘기들을 남겨놓기도 했죠.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수술 후 완치돼 지금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 다시 주어진 삶이 감사하고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찌 보면 배우 활동이 체력이 강해진 기반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제 50대가 되었는데, 중년 배우의 삶은 어떤가요?
20대 때는 작품을 한 번에 2~3개씩 하면서 바쁘게 보냈어요. 결혼 후인 30대, 40대 때 삶도 안정되고, 연기를 진심으로 생각하게 됐죠. 5년 전쯤부터 선배로서 안주하고 싶지 않고, 변화와 발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려고 했죠. 선배님 또는 감독님이 부르면 예술 영화도 카메오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예술대학교 연기예술과 학과장을 맡은 지도 7년이 됐네요.
저는 선생님이라기보다 선배라고 생각해요. 먼저 연기한 사람으로서 습득한 기술을 알려주려고 하죠. 오히려 제가 열정을 수혈받고 있어요. 사실 연기 활동을 하면서, 아이도 돌보면서, 학교 일도 하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학생들과의 연계성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김지영에게 ‘관계’란 무엇일까요?
저는 소심하기도 하고, 관계에 예민한 편이에요. 지인들에게 마음 표현도 잘 못 했는데, 이제 용기 내서 먼저 다가가려고 해요. 모든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죠. 그런데 중요한 건 관계의 주체가 자신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좋은 관계도 성립되고, 많은 상처를 받지 않을 테니까요. 또 너무 애쓰지 않아야 재밌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요?
Bravo Question
나에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감사한 마음 아닐까요. 저부터 시작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그 마음을 간과하느냐, 신경 쓰고 있냐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한데, 그 마음을 품고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힘이 큰 사람도 아니고, 능력이 출중한 스타일도 아니에요. 그런 마음이 하나하나 쌓여서 저 자신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하나하나 이루어온 거죠.
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분량의 문제다. 쓸 수 있는 만큼, 쓰고 싶은 만큼 쓰면 못 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문제는 정해진 분량만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원고지 10매 분량을 써야 한다고 가정하면, 어떤 이는 원고지 10매가 너무 많아 부담스러울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하고 싶은 말에 비해 분량이 너무 적어 글을 쓰기 어려울 수 있다. 주제에 따라 어떤 내용은 길게 쓰는 게 쉬울 수 있고, 또 어떤 내용은 짧게 쓰고 싶으나 분량에 맞춰 써야 한다.
분량과 관련하여 글 쓰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많이 쓰고 줄이는 것이다. 쓰고 싶은 만큼 몽땅 쓰고 정해진 분량이 될 때까지 줄인다. 다른 하나는 쓸 수 있을 만큼 쓰고 조금씩 늘리는 것이다.
요약으로 쓰기
우선 많이 쓰고 줄이는 방법부터 알아보자. 많이 쓰고 줄이는 걸 ‘요약’이라고 한다. 요약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쓸거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글쓰기 강의를 하며 만나본 사람 중에는 ‘내가 안 써서 그렇지 쓰기로 마음만 먹으면 책 열 권 분량도 쓸 수 있다’고 자신하는 분들이 있다. 이건 빈말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분은 막상 쓰기 시작하면 거미가 엉덩이에서 실을 뽑아 그물을 치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글을 써 내려간다. 하지만 이렇게 쓸거리가 풍부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할 필요 없다. 자기 안에 쓸거리가 없는 사람은 밖에서 찾으면 된다. 자료 검색을 통해 쓸거리를 끌어모으면 되는 것이다. 자기 안에 쓸거리가 있든, 검색으로 그러모았든, 다음 할 일은 요약이다. 그러니까 쓸거리 아니면 검색 능력, 그리고 요약하는 역량만 있으면 줄이기로 글을 쓸 수 있다.
요약하는 게 뭐 대수냐고 큰소리치는 분들이 간혹 있다. 학교 다닐 적 선생님 말씀 받아 적고, 교과서나 참고서의 중요한 곳에 밑줄 긋는 등 늘 하던 게 요약 아니냐고 말이다. 맞다. 요약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많이 한 작업 중 하나다. 가장 단순한 요약은 발췌다. 바로 밑줄 긋기와 별표 치기. 다음은 불필요한 걸 버리는 요약이 있다. 중복되거나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걸 버리고 남는 것으로 요약하는 방식이다. 버리는 요약 방식과 반대로 중요한 걸 뽑아내는 요약도 있다. 글을 읽을 때도 어떤 사람은 불필요한 걸 삭제하며 읽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중요한 걸 추출하면서 읽는다. 가장 어려운 요약은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주제를 파악한다는 건 글의 배경과 맥락을 통해 글쓴이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이처럼 요약에도 발췌하기, 버리기, 뽑아내기, 주제 찾기 등의 방식이 있다.
손쉬운 요약 요령
청와대에 들어간 2000년, 상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글쓰기는 요약의 역순이다. 요약이 줄이기라면 글쓰기는 늘리기다. 잘 줄이는 사람이 잘 늘릴 수 있다. 군대에서 총기 분해를 잘하는 사람이 조립도 잘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글을 잘 쓰려면 요약 능력부터 키워라.” 그러면서 칼럼을 서른 개 뽑아오라고 한 후 다섯 가지 숙제를 주었다. 첫째, 각 칼럼의 가장 중요한 한 문장에 밑줄을 그어라. 둘째, 각 칼럼을 세 문장 이내로 압축해라. 셋째, 각 칼럼에 중간 제목을 달아라. 넷째, 각 칼럼의 주제문을 파악해라. 다섯째, 파악한 주제문으로 글을 써라. 이렇게 다섯 단계의 요약 훈련을 한 후 글쓰기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자, 이렇게 요약 능력을 키웠다면 이제 실전 요약 글쓰기를 할 차례다. 요약 글쓰기 1단계는 쓸 수 있는 만큼 쓰는 것이다. 2단계는 써둔 것과 관련 있는 내용을 이곳저곳에서 찾아 붙인다. 이때 최대한 양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글쓰기는 ‘생각하기’가 아니라 ‘행동하기’다. 행동으로 양을 늘려라. 양을 늘리는 데는 재능이 필요 없다. 늘어난 양이 재능으로 둔갑하도록 하라. 양은 많을수록, 주제와 관련성이 높을수록, 흔하지 않은 최신 것일수록, 무엇보다 정확하고 믿을 만한 것일수록 바람직하다. 3단계는 요약하는 것이다. 4단계는 요약한 것을 비슷한 내용끼리 분류한다. 5단계는 분류한 덩어리 하나하나를 갖고 글을 쓴다. 6단계는 덩어리를 배열한다.
첫 문장으로 쓰기
많이 써서 줄이는 글쓰기가 있다면, 적게 써서 늘리는 방식도 있다. 이렇게 늘려서 쓰는 방식은 다시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첫 문장부터 쓰기다. 첫 문장을 쓴 후 계속 이어나가는 글쓰기다. 글을 써본 사람은 알듯이, 좋은 첫 문장이 떠오르면 그 문장이 다음 문장을 물고 오고, 그다음 문장은 또 다른 문장을 낳으면서 줄줄이 글이 써진다. 문제는 첫 문장을 떠올리는 일이다. 글에서 첫 번째 문장을 찾는 일은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찾는 일과 같다.
내가 처음 글을 쓸 때 하던 방식이 있다. 신문 칼럼 100개에서 첫 문장만 긁어다 빈 문서에 붙인 후, 유형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그랬더니 첫 문장으로 쓰인 내용이 10여 개 남짓으로 정리됐다. 질문으로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인용한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 사고나 최신 트렌드 등을 소개한다, 무언가의 정의를 내린다, 필자가 겪은 일화나 경험을 언급한다, 글의 주제를 밝힌다 등등. 첫 문장은 짧으면서도 전체 내용을 암시하거나 함축해야 한다. 또 그러면서도 글의 내용에 관해 궁금증을 자아내야 한다. 글쓰기는 이런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연결하는 일이다. 좋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생각나면 글을 상당 부분 완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 작가 조앤 디디온이 그랬다. “첫 문장은 대단한 문장일 필요가 없다. 조잡한 문장이어도 좋다. 일단 첫 문장을 써라. 그 문장의 마침표를 찍기 무섭게 다음 문장을 써라. 그러면 된다.” 나는 여기에 한마디를 보태고 싶다. 글을 다 쓴 후엔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 반드시 첫 문장을 손봐라. 그만큼 첫 문장은 중요하다.
보태기로 쓰기
적게 써서 늘리는 두 번째 방법은 야금야금 보태기다. 눈덩이 굴리듯 조금씩 살을 붙여나가는 식이다. 이 방식은 처음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으나, 계속 해나가면 속도가 붙는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이 방식으로 글을 쓸 때는 노트북 화면 정중앙에 내가 써야 할 문서를 갖다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침에 들어갔을 땐 아무 생각도 안 나다가 오후에 들어가면 불현듯 떠오른다. 길을 걷다가, 차를 마시다가도 보탤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보태기로 글을 쓸 때 중요한 건 몰입이다. 써야 할 주제에 몰입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 주제에 관한 책을 읽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누군가를 만났을 때도 이 주제에 관해 말해본다. 그러다 보면 불쑥불쑥 보탤 내용이 추가된다.
먼저 아무거나 생각나는 것으로 글쓰기에 착수한다. 이렇게 시동을 걸어놓으면 우리 뇌는 여기에 살을 붙이고 여백을 채우려고 힘을 쓴다. 이를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한다. 러시아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이 동네 식당에 갔는데, 종업원들이 계산이 끝난 주문 내용은 잘 기억하지 못했지만 아직 서빙하지 않은 주문 내용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처럼 우리 뇌는 끝나지 않거나 진행하고 있는 임무는 그것이 끝날 때까지 잊지 않고 기억한다. 보태 쓰기는 이런 뇌의 특징을 활용하는 글쓰기인 셈이다.
정리하면 보태기로 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글을 쓰는 시간과 시간 사이에 인터벌을 두어 머릿속에 고여 있던 추가할 내용이 그 시간 동안 숙성 발효되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읽기와 듣기 등으로 외부에서 자극을 줌으로써 보탤 내용을 떠올리는 것이다.
문단으로 쓰기
적게 써서 늘리는 세 번째 방법은 문단 쓰기다. 문단은 하나의 짧은 글이다. 글쓰기는 어휘에서 시작해 문장으로, 문장이 모여 문단으로, 문단이 쌓여서 완성된다. 긴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문단 수준의 짧은 글을 쓰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한 쪽짜리 글을 쓰려면 네댓 개의 문단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한 쪽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각각의 짧은 글, 문단 네댓 개를 쓴 후, 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자는 얘기다. 네댓 개의 글을 생각나는 대로 쓴 후 순서를 부여하면 된다. 통상 우리는 글을 쓸 때 다음에 나올 내용까지 염두에 둔다. 그래서 글쓰기가 힘들다. 그러니 짧은 글 하나만 완성하자는 생각으로 문단을 만들자.
단 문단은 갖춰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문단은 하나의 완성된 글이어야 한다. 그 문단만 따로 떼어냈을 때 홀로서기가 가능한 글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문단의 완결성’이라고 한다. 둘째, 문단은 하나의 메시지를 갖고 있어, 제목을 붙일 수 있어야 한다. 그 하나의 메시지와 관련 없는 내용은 모두 빼야 하며, 한 문단에 메시지가 두 개면 두 문단으로 쪼개야 한다. 그러니까 한 문단은 하나의 주제를 향해야 하고, 모든 문장이 그 주제와 일맥상통해야 한다. 이를 ‘문단의 통일성’이라고 한다. 셋째, 문단 안에 있는 문장들의 관계가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를 ‘문단의 연결성’이라고 한다. 나는 주로 주제 문장을 문단의 맨 앞에 배치한다. 결론부터 내놓고 다음 문장을 쓴다. 두괄식으로 쓰는 것이다. 그게 쓰기도 쉽고, 읽기도 편하다.
개별 문단을 다 쓰고 나면 문단과 문단을 연결해야 하는데 시간 순이나 공간 순으로 할 수도 있고, 인과관계 순으로 할 수도 있다. 개연성 있게, 논리적으로 연결하면 된다. 다만 비슷한 내용의 문단이 중복되거나, 문단과 문단 사이에 내용 비약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람마다 짧게 쓰기가 편한 사람이 있고, 길게 쓰는 게 쉬운 사람이 있다. 나는 길게 쓰기가 어렵다. 아마도 머릿속에 쓸 말이 많지 않고 자료를 찾는 데도 서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우엔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짧게 쓰기가 어려운 사람은 요약 훈련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와 함께 시나 광고 카피 등 함축적 문장과 친해지길 권한다.
아무튼 글을 쓰려는 사람은 반드시 두 가지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많이 써서 줄이거나, 조금 써서 늘리거나. 이 두 가지만 할 수 있다면 못 쓸 글은 없다.
베이비붐 세대, X세대, MZ세대 등 직장 내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요즘, 세대 갈등 이슈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대립 양상은 기업 문화를 흩트리고 업무 성과를 저해하는 등 악영향을 불러오곤 한다. 기업에서는 세대 간 화합과 소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최근 각광받는 솔루션 중 하나가 ‘리버스 멘토링’이다. 단순히 나이와 직급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세대 간 고정관념이나 생활방식을 뒤집어보는 기회로도 작용하고 있다. 사진 제공 및 도움말 금천구청
‘불치하문’(不恥下問)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배움에는 나이가 따로 없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기존의 ‘멘토링’과 반대 개념인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 역멘토링) 또한 멘토(시니어)와 멘티(주니어)의 역할을 바꿔봄으로써 세대 간 학습과 이해를 도모하는 방식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고령화 흐름에 따라 리버스 멘토링의 필요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내 한 논문(‘기업 내 세대 교류의 가능성: 국내외 리버스 멘토링 프로그램 도입 및 성공요소 사례연구’, 2021)에서는 “한국 사회가 고령사회에 진입하며 노동 현장에서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상황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리버스 멘토링이 노동 현장에서 고령 세대와 신세대를 연결하는 새로운 도구로 부상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단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측면뿐 아니라 일자리 다양성, 삶에 대한 가치관, 글로벌 감각 등 신세대의 감각과 관점을 접하고 배우는 측면까지 포괄한다. 이를 통해 기업 내 임직원과 각 세대가 서로 분리되거나 소외되지 않고 조직 내에서 적극적으로 통합되는 효과가 기대된다”며 리버스 멘토링의 장점과 효과를 내다봤다.
시니어도 원하는 리버스 멘토링
이러한 이점들에 대해서는 기성세대도 인지하고 리버스 멘토링을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 채용 포털 ‘인크루트’가 2021년 직장인 102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베이비붐 세대 및 X세대 등 기성세대 직장인의 92.4%가 ‘회사에 리버스 멘토링 제도가 도입된다면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28.9%), ‘세대 간 소통할 수단이 필요해서’(25.3%) 등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기업 내 리버스 멘토링의 시초로 알려진 건 글로벌 제조사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GE의 잭 웰치 회장이 젊은 엔지니어에게 인터넷의 중요성에 대해 배우면서, 500명 넘는 고위 간부들에게 젊은 사원과 1대1로 팀을 이뤄 리버스 멘토링을 실천한 사례다. 이러한 일화가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을 통해 전파되며 IBM, 구찌, 에스티로더 등 해외 유수 기업에서도 리버스 멘토링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도 2010년대 후반부터 상당수 기업이 이러한 효과에 착안해 관련 프로그램을 시도해나가고 있다. 해외와 비교해 나이와 연공서열 중심으로 수직적인 구조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는 좀 더 수평적이고 탈권위적인 조직문화 개선을 목표로 진행되는 상황이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 공공기관 및 기업 등에서 조직 내 ‘리버스 멘토링’ 사례가 알려지고 있다. 그 예로 서울에서는 금천구와 강서구, 지방에서는 안양시·포천시·제천시 등이 있고, 한국해양공사·경기도성남교육지원청·경기주택도시공사 및 삼성생명·KB라이프생명·유진그룹·동양 등이 리버스 멘토링을 실천했다. 특히 정부 조직인 인사혁신처와 법제처는 조직 내 기관장을 포함한 국·과장급 이상 간부들과 MZ세대 공무원들이 소통하는 ‘역으로 조언하기’(리버스 멘토링) 프로그램을 수년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조직은 기존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지난해 최초로 기관 간 리버스 멘토링을 위한 ‘거꾸로 학교’를 시행했다. 이는 후배 공무원이 다른 기관 선배 공무원의 멘토가 되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형식적으로는 상하관계를 역전한다고 하지만, 젊은 세대의 솔직한 생각을 기성세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이러한 부담을 덜기 위해 직접적인 연관성이 적은 타 기관 선후배 간 역멘토링을 진행함으로써 더욱 허물없는 교류를 꾀한 것이다.
경직된 조직문화 풀어주는 윤활유 역할 톡톡히
올해 초 금천구는 국장급 공무원(4급)과 과장급 공무원(5급) 등을 대상으로 ‘리버스 멘토링’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세대 간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와 수평적인 업무 환경을 조성해 업무 효율과 성과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진행됐다. 앞서 금천구는 당해 행정혁신 과제 중 하나로 탄소배출 절감을 위한 ‘종이 없는 회의’를 도입했다. 이에 주요 회의 자료를 종이에서 전자 문서로 대체하면서 태블릿 PC를 도입했는데, 이러한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간부 공무원을 위한 적응 교육 차원에서 리버스 멘토링을 활용하게 됐단다.
프로그램을 기획‧담당한 금천구 기획예산과 조성익 주무관은 “종이 없는 회의를 실현하려면 태블릿 PC 사용이 필수였다. 하지만 최신 디지털 장비를 도입하는 데 조직 구성원, 특히 간부 공무원의 거부감이 상당했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감을 넘어설 방법이 필요했다”며 리버스 멘토링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태블릿 PC 사용에 익숙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거리낌 없는 신규 직원들(7급 이하 직원 7명)이 모였다. 이들 리버스 멘토끼리 여러 상황을 가정하여 운영 방안을 마련한 후, 간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리버스 멘토링을 실행했다.
조 주무관은 “태블릿 PC 사용 능력은 간부 공무원 간에도 개인 편차가 존재했다. 그러나 단순히 디지털 기기의 사용 방법을 교육하는 것을 넘어 종이 없는 회의라는 정책을 수용하는 측면에서 멘토-멘티 간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며 “간부 공무원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리버스 멘토링이 긍정적 수단이 됐다. 아울러 상명하복 관계라는 관료제의 분위기를 탈피하고, 평등한 분위기에서 새로운 지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리버스 멘토링은 경직된 조직문화를 유연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천구 멘토·멘티의 후일담 “리버스 멘토링 직접 해보니”
“당시 일을 시작한 지 고작 6개월밖에 안 된 때였습니다. 새내기 어린 공무원이 간부급 공무원을 가르치는 상황은 이례적이기에, 멘토링 전 긴장을 꽤나 했습니다. ‘시간도 없는데 뭐하러 이런 걸 하냐’라는 분위기이면 어쩌나 걱정도 앞섰습니다. 그런데 우려와 달리 멘티로 나온 국장님들은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교육에 응해주셨습니다. 알려드리는 것 외의 기능에 대해서도 물어보시면서 적극적으로 배움에 임하셨습니다. 그동안 선배들에게 물어가며 일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완전히 뒤바뀐 위치에서 국장님들의 질문에 답해드린 경험이 신기하고 새로웠습니다. 이후 진행되는 회의에서는 국장님들이 적극적으로 태블릿 PC를 활용하려는 의지도 자주 보여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조금 뿌듯함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익히 들어왔던 경직된 공직사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많이 보았습니다. 시니어 멘티들의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 적극적인 참여가 뒤따른다면 오랜 시간 굳어졌던 체계도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행정은 법령과 규칙에 따라 공정하고 정확하게 추진해야 하므로, 역할과 기능상 경직성을 띠게 됩니다. 더욱이 공직사회는 연공서열로 이루어진 큰 조직이라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곤 합니다. 하지만 민간의 변화에 따라 행정에도 변화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공직사회에도 사회 변화에 맞추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졌습니다. 그동안 우리 구에서는 사회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행정 혁신을 일상적으로 수용하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중 한 사례가 ‘리버스 멘토링’입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선배’의 지식이라도 모두 유용한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후배’가 아는 것이 없다고 외면하기엔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 중 값진 것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연령이나 직급과 무관하게 조직 구성원은 누구에게든 배우고 공유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과 경험을 나눌 수 있도록 리버스 멘토링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겠습니다.”
중년이 되면 초조함에 휩싸일 때가 있다. 어영부영하다가 인생이 허무하게 지나가 버리면 어떡하나 싶다. 세상은 그 나이 먹도록 해놓은 게 얼마나 있냐고 다그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괴감에 빠져든다. 그래서일까? 딸이 당연히 알아서 잘살고 있으리라 여기면서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한성희 원장의 신간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는 그 걱정에서부터 시작됐다.
한성희 원장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한 살 아기부터 85세 노인까지 마음이 아픈 사람이면 누구든 만났다. 그 과정에서 평생에 걸쳐 맞닥뜨릴 수 있는 여러 정신적 문제를 지켜보고 치료해왔다. 43년간 다양한 사례를 접한 그지만 자식에게는 서툰 엄마였다. 10여 년 전, 딸이 공부를 위해 떠난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한다 했을 때 깨달았다. 더 이상 품 안의 어린아이가 아님을, 이제는 독립할 만큼 자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에겐 했지만 정작 딸에게는 하지 못한 말이 많았다. 그 마음을 담은 글은 2013년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로 세상에 나왔고, 독자들의 공감을 받으며 21만 부가 판매됐다.
“살면서 작가라고 불리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죽기 전에 책을 한번 내보면 좋겠다는 어렴풋한 생각은 있었지만요.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가 이렇게까지 좋은 반응을 얻으리라 상상도 못 했어요. 이제 아이가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고, 서로 떨어져 산 지 15년이 됐네요. 작년에 직접 마흔 번째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어 미국에 갔는데, 늘 앳돼 보였던 딸이 나름의 고민도 생긴 것 같고 지쳐 보였어요.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었던 거죠.”
중간 지점, 또 한 번의 파도
한 원장도 서른일곱에 떠난 미국 연수 당시 이른 ‘중년의 위기’를 겪었다. 진로 문제로 고민하며 초조한 와중에 일은 홍수처럼 쏟아졌다.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혀도 경력이 쌓이는 만큼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야 했다. 자유로운 시기는 끝났다고 여기며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로 살았다.
딸의 얼굴에서 과거의 자신이 겹쳐 보였다. 만약 마흔 살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면 엄마로서, 정신분석가로서 너무 늦기 전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신간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는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바람 잘 날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전하는 응원을 담았다.
“두 돌이 지나면 말이 시작돼야 하듯, 인생 단계별 발달 과업이 있어요. 40대는 생산성을 다뤄야 할 단계입니다. 삶의 스펙트럼이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회사와 가정의 일을 모두 신경 써야 하는 시기거든요. 매일매일 전쟁일 거예요. 요즘 40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다고 느껴요.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고요. SNS가 지배하는 세상에는 이미 부와 명예를 이룬 사람투성이죠. 그러다 보니 보통의 삶은 부족한 것이 돼버리고, 박탈감이 들 수 있어요. 게다가 오늘 열심히 한 그 일을 내일도 똑같이 반복해야 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온전한 ‘나’는 없다며 우울해질 때도 있을 겁니다.”
더불어 바쁜 일상에 지치면 뭐든 새롭지 않다. 벌써 해봤거나, 했던 것의 변주 정도다. 무엇을 먹어도 비슷한 맛이고, 누구를 만나도 비슷한 얘기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 지루하다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고, 옛날에 재미있었던 순간만 기억난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과 습관에 갇히게 된다. 다 해봐서 새로울 게 없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현재를 과거의 방식대로 살려고 하니 매사 심드렁해진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까닭이다.
딛고 나아가며 성장하기
마흔 이후 혼란을 겪더라도 한 원장은 “겁먹지 말고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간은 유한하고 힘든 시절은 영원하지 않으며, 지나고 보면 가장 풍성한 때였구나 알게 된단다. 지금이야말로 세상의 기준에 맞춰오느라, 세상이 부여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느라 억눌러온 내면의 욕구를 돌아봐야 한다.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었던 모습을 찾다 보면 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게 되고, 어떤 시련이 오든 무너지지 않을 힘이 생길 테다. 남들이 뜯어말려도 강하게 끌리고 포기가 안 되는 길이 있다면 가보는 것도 방법이다. 나이가 몇이든 무슨 상관이랴. 처음엔 의아한 선택처럼 보여도 선택이 쌓이고 쌓여 고유한 스토리가 된다. 대신 방향을 완전히 틀어 새로운 도전을 하기보다, 인생의 여정에서 좀 더 집중할 만한 거리를 찾는 게 먼저다.
“그저 더 나아지고 싶은 건강한 본능을 들여다보면 됩니다. 저는 환자 한명 한명을 심도 있게 치료하고 싶어 오십에 뒤늦은 개원을 준비했고, 지금까지 해왔던 정신분석 공부를 좀 더 깊이 있게 해보고자 예순에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주변의 시선이 호의적이지 않았고 고민이 깊었지만, 시작도 해보지 않고 그만두기는 싫었어요. 의사로서 걸어온 길이 흔히 말하는 성공 공식과는 거리가 멀었죠. 그래도 자신의 느낌을 믿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게 행복한 인생이지 않을까요. 스스로 완전한 어른이 됐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제야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구나 짐작해요.”
가만히 서 있는 듯하지만, 그의 손과 눈과 귀는 바삐 움직인다. 손목으로 주전자를 돌리며 커피를 내리고, 필터로 빠져나오는 커피 방울을 눈이 빠지게 지켜본다. 방울이 컵에 또르르 떨어져 쌓이는 소리를 듣는다. 박이추(74) 명장은 지금 커피와 대화 중이다. 커피 생각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는 그는 가끔 꿈에서도 커피를 만난다.
“이런 제가 비정상이라거나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미치지 않으면 맛있는 커피는 세상에 나올 수 없습니다.”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보헤미안박이추커피공장’에서 커피업계의 큰어른 박이추 명장을 만났다. ‘바리스타 1세대’ 1서 3박(서정달·박원준·박상홍·박이추) 가운데 유일하게 현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에 드립커피 대중화를 이뤄낸 인물이다. 박 명장은 어른이라는 표현에 손사래를 치며 “바리스타 1세대로 불리는데, 짐을 메고 있는 기분이 든다. 부담이 아닌 숙제를 안고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 같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박이추 명장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본점에 출근한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쉬는 까닭은 손목과 팔을 우려해서다. 하루에 300잔의 커피를 만든 적도 있다는 그는 현재도 하루 100여 잔을 손님에게 대접한다. 바리스타로 일한 지 40년이 되어가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커피가 탄생했을까. 그럼에도 명장은 아직 커피에 대해 다 깨우치지 못했노라고 겸손한 고백을 한다.
“몸, 마음, 커피가 하나 될 때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만들 때 어떤 생각을 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사실 저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죠. 그러나 아직 맛있는 커피를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내가 만든 커피가 맛이 없다거나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스로 만족, 납득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커피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해야만 하죠. 내가 발전해야 커피 맛도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서울, 강릉, 그리고 울진
“커피를 배우지 않았다면 목장을 운영하고 있겠죠?” 갑자기 웬 목장이냐 하겠지만, 박이추 명장의 본래 꿈은 낙농인이었다. 재일교포인 그는 1974년 한국으로 와 경기도 포천에서 2만 5000평의 목장을 일궜다. 이후 경기도 광주, 강원도 원주에서도 소를 키웠지만, 모두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다시금 도시에 살고 싶어져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려면 기술 하나쯤 갖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배운 것이 바로 커피 만드는 방법이다.
“외식 산업에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를 배우다가 우연히 커피를 만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커피에 대한 마음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죠. 커피는 커피콩 수확, 로스팅, 핸드드립으로 내리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커피나무를 볼 때가 가장 좋더라고요. 아무래도 자연을 좋아하나 봅니다. 2018년 라오스에 6000평짜리 커피 농장을 세웠습니다. 보통 3000평에 2000~3000그루를 심는 편입니다. 코로나 후에 못 가봤는데 나무들이 잘 있는지 궁금해서 가보고 싶네요.”
1988년 다시 한국에 돌아온 박이추 명장은 서울 혜화동에 ‘가베 보헤미안’을 열었다. 이후 고려대 인근인 안암동으로 옮겨 10년을 보냈다. 믹스커피가 커피의 전부인 줄 알았던 1990년대. 박이추의 핸드드립 커피는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새롭고 고급스런 커피 맛이 입소문 나면서 카페에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시작했을 때 카페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은 컸지만, 정작 커피 만드는 실력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손님을 만났지만, 서울에서 카페 할 때 만난 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건강이 좋지 않은 분이었는데, 의사가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도 한 달에 한 번은 저를 찾아왔죠. 그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셨기에 커피 내리는 입장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온전히 커피에 집중하고 싶었고, 바다를 보고 싶었던 박이추 명장은 이번에는 강원도로 내려갔다. 강원도 곳곳을 전전하던 그는 2004년 지금의 본점인 카페를 차리며 강릉에 정착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며 강릉까지 찾아오는 일이 벌어졌다. 거기에 더해 2009년 강릉 커피축제가 개최되면서 강릉은 현재 커피의 메카가 됐다. 이러한 사연으로 강릉 커피의 원조로 통하는 그는 “저는 그냥 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보헤미안박이추커피’는 서울에 두 곳(상암동·여의도), 강릉에 세 군데 있다. 연곡면의 본점, 사천면의 커피공장, 그리고 아버지의 추천으로 커피를 배운 아들 박태철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경포점. 이처럼 강릉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박 명장은 2025년 경상북도 울진군으로 옮겨갈 계획을 갖고 있다. 그곳도 그가 가면 커피로 유명해질지 모를 일이다.
“강릉은 제게 특별한 곳이고 축복의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울진으로 가려는 이유는 강릉이 싫어져서가 아니에요. 서울을 떠나왔던 것과 같은 이유로, 사람이 아닌 커피와 대화하고 싶어서 조용한 곳을 찾아가는 겁니다. 커피와 가까워져야 하니까요. 그런데 내년이면 삼척~ 울진~포항을 잇는 철도가 개통된다고 해서 조금 걱정입니다. 하하.”
행복을 주는 사람
대한민국은 어느새 커피 공화국이 됐다. 시장조사 회사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05잔으로, 전 세계 소비량(152잔) 대비 두 배 이상 높았다. 박이추 명장은 “현대인에게 커피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각 전환도 됩니다. 커피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죠. 저는 하루에 커피를 2~3잔 마십니다. 커피 마실 때도 물론 좋지만, 커피 생각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맛있는 커피로 행복을 주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제가 만든 커피로 누군가 행복해진다면, 그것이 또 행복 아니겠습니까?”
커피 애호가가 늘어나면서 커피 산업이 활성화된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듯이, 커피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고 업계에 뛰어드는 사람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손을 거치는 모든 커피에 애정을 쏟는 박이추 명장이 가장 우려를 표하는 지점이다.
“제게 커피를 배운 제자들도 커피를 돈으로만 볼 때가 있어요. 정말 가슴 아픈 일이죠. 커피로 돈을 벌려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마음이 급해져서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카페를 열게 되죠. 커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카페를 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페 사장이기 이전에 바리스타로서 커피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하죠. 저는 사람이 아닌 커피를 위해서 커피를 만듭니다. 그저 주인공인 커피가 빛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니까요.”
로봇 바리스타의 등장에 대해 박 명장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커피를 한땀 한땀 장인정신으로 만드는 사람으로서 허무함을 느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AI가 우수하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로봇이 커피를 만드는 시대가 왔다니 신기하다”면서 “맛은 사람만큼 안 날 수 있지만, 일손 해결 등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로봇 바리스타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뤄진 일이지만, 커피로 돈을 벌려는 사람은 마음을 잘못 품은 것이기에 그 점을 질책한 것이라 해석된다.
박이추 명장은 커피를 ‘인생의 동반자’라고 표현한다. 커피를 못 만드는 날은 아마도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라고 덤덤하게 말하면서, 앞으로도 커피를 인생의 친구로 두고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박 명장은 어느 책에서 본 ‘맛있는 커피는 당신의 팔자와 운명을 바꾼다’는 문장을 언급하며, “나는 이 말을 믿는다”고 밝혔다. 그 말이 사실이 될 수 있음을 박 명장은 이미 증명하지 않았는가.
중장년 사이 유행이 번지는 속도는 MZ 세대 못지않다. 최근 트렌드 중 하나는 단연 ‘맨발걷기’다. 전국 유명 관광지마다 맨발 산책로 조성 열풍이 불고 있다. 올해 맨발걷기 길이 생기는 공원은 서울에만 네 곳(효창공원, 응봉공원, 성촌공원, 이촌어린이공원)이나 된다.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과 신진대사에 좋다. 각종 성인병 극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니다. 걱정 섞인 시선도 존재한다. 김창연 대전자생한방병원 병원장은 족저근막에 부상을 입기 쉬우니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맨발 걷기에 앞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요?
우선 경로에 돌부리 같은 요철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걷는 중에는 틈틈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귀가 후에는 온수 족욕으로 발을 풀어주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됩니다. 과체중인 경우에는 보행 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체중 감량도 필요합니다. 단 족저근막염 의심 증상이 있거나 이미 질환을 겪은 경우라면 맨발 걷기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족저근막염은 무엇인가요?
족저근막이란 발바닥 근육을 감싸고 있는 얇고 긴 막으로, 발바닥의 탄력과 아치 모양을 유지하고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족저근막이 지속적인 외부 충격으로 손상을 입으면 염증과 통증이 발생하는데 이를 족저근막염이라 합니다.
족저근막염이 중장년층에 흔한가요?
실제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40대 이상 족저근막염 환자가 24만 9265명으로 전체의 약 74%에 달했습니다. 50대가 25%로 가장 많았고, 60대(20%), 40대(18%)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족저근막염 증상은 어떤 게 있나요?
주요 증상은 아침에 일어나 첫발을 디딜 때 나타나는 극심한 통증입니다. 오래 걷거나 서 있을수록 통증은 커지는 양상을 보입니다. 족저근막염이 생기면 발바닥과 발뒤꿈치에 간헐적으로 통증이 나타나는데, 이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방치하면 통증 부위가 넓어지고 발이 뻣뻣해지면서 보행조차 힘들어집니다. 비슷한 증상이 있으면 조기에 전문의를 찾아 발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좋습니다.
발 관리법 ① 발바닥 스트레칭
의자에 앉아 아픈 발을 반대쪽 무릎 위에 얹는다. 한 손으로 발가락 전체를 감싸 쥐고 다른 손으로 엄지나 검지를 이용해 발의 움푹 들어간 부분을 가볍게 지압한다. 15초간 자세를 유지한다. 이 과정을 3회씩 총 3세트 반복한다.
발 관리법 ② 아킬레스건 스트레칭
벽을 바라보고 30cm가량 떨어져 선 뒤 손을 어깨너비로 벌려 벽을 짚는다. 통증이 있는 발을 뒤로 빼고 반대쪽 발은 앞으로 내민다. 발바닥 전체를 바닥에 붙인 채 체중을 앞으로 실어 벽을 민다. 최대한 종아리 뒤가 당기는 느낌이 나도록 10~15초간 자세를 유지한다. 전체 동작을 3회 반복한다.
김창완
○○○님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셨는데…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다만 외로움에 빠지지 마시고 외로움이 세상을 보는 창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람은 누구나 외롭습니다. 그걸 어떤 사람은 감옥으로 여기고 어떤 사람은 손을 내밀 문으로 삼는 것입니다. 우선은 님의 외로움을 껴안으세요.
-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사연 답장 중
나태주
다시 중학생에게
사람이 길을 가다 보면
버스를 놓칠 때가 있단다
잘못한 일도 없이
버스를 놓치듯
힘든 일 당할 때가 있단다
그럴 때마다 아이야
잊지 말아라
다음에도 버스는 오고
그다음에 오는 버스가 때로는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떠한 경우라도 아이야
너 자신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너 자신임을 잊지 말아라.
- 《마음이 살짝 기운다》 중
밀라논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저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시작할까? 말까? 나 또한 내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숱한 고민을 했고 그때마다 되도록 단순하게 생각했다. “재밌으면 해보면 되지!” 모든 어른과 아이가 자기 인생에 마땅히 용기를 내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주저 말고 시작해 보라. 그것에 대한 결과와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짊어지면 된다.
-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중
김창옥
내게 “괜찮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엄마 아빠가 없었다면 그냥 내게 그런 부모가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세요. 그리고 상처 난 마음이 낫고 싶으면, 나 자신을 터치해주세요. 사람은 기억을 머리에만 남기는 게 아니라 온몸에 남긴다고 해요. 그래서 내가 나를 안아주는 건 나의 지워지지 않은 기억을 안아주는 것과 유사하대요. 스스로를 두 팔로 안고 토닥토닥해주세요.
- 《지금까지 산 것처럼 앞으로도 살 건가요?》 중
●Exhibition
◇유람일지: 유(儒)를 여행하다
일정 4월 21일까지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에서 만나는 충청 유교 문화유산’을 주제로 하는 전시는 조선시대 선비의 삶을 ‘고택’, ‘서원’, ‘구곡’(九曲)으로 나눠 소개한다. 집, 학교, 자연이라는 공간을 통해 나고 자란 선비의 삶의 궤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닮았다. 1부 ‘고택유람’은 충청도 명문가인 파평 윤씨 가문의 명재고택을 중심으로 한다. 윤증의 초상 초본, 문중의 교육 공간인 종학당의 디오라마(실물 축소 모형) 등을 볼 수 있다. 2부 ‘서원유람’에서는 충청도 유일의 유네스코 등재 서원인 돈암서원을 통해 배움과 실천을 지향한 선비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예학을 정립한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 그리고 송준길, 송시열은 서원의 대표 선비로 꼽힌다. 3부 ‘구곡유람’에서는 율곡 이이의 정신적 이상향이자 선비들이 자연에 은둔하며 학문을 수양했던 공간인 ‘구곡’을 디지털 화폭에 담아낸 수묵 미디어아트 영상을 전시한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선비들이 이야기하는 시대정신, 일상의 가치, 타인을 대하는 태도, 자연을 품은 풍류 등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힐링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제길 : 빛 사이 색
일정 5월 12일까지 장소 전남도립미술관
평생 ‘빛’을 쫓으며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한 우제길(1942~) 작가의 회고전. 총 10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1부 ‘기하학적 추상의 시작’은 ‘빛’을 주제로 하기 전인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그의 과도기적 작품을 살펴본다. 2부 ‘어둠에서 찾은 빛’에서는 절단된 면의 틈 사이로 솟아나는 빛 작품들과 어두운 배경에 작가 특유의 직선이 강조된 대작들을 소개한다. 3부 ‘새로운 조형의 빛으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구도가 다양해지고 밝은 색채가 등장하며 확장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4부 ‘색채의 빛’은 원색의 빛을 다양한 실험적 방식으로 구현한 작품들을 소개하며, 5부 ‘지지 않는 빛’에서는 신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Book
◇어른의 말습관(김진이·다른상상)
같은 말이라도 어떤 사람은 반감을 사고, 어떤 사람은 호감을 얻는다. 그 이유는 바로 ‘말하기’의 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경인방송 아나운서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진이는 책 ‘어른의 말습관’을 통해 성숙하게 말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어른답게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분명히 말할 줄 알고, 그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또 서로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고 관계의 중심을 단단하게 지킬 줄 안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는 단순히 말투만 바꾼다고, 기술만 답습한다고 되지 않는다. 내 말 속에 숨어 있는 디테일과 패턴, 즉 말하는 습관을 돌아보고 바꿔야 한다. 노력만이 말습관을 기르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책에서는 서투른 언어를 다듬어 말하는 법, 각각의 상황과 내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 말과 태도를 장착하는 법, 사람들과 주파수를 맞춰나가며 내 세계를 확장하는 법, 부정적 말의 패턴을 소거하는 법, 감정을 차분히 다스려 담백한 말로 갈무리하는 법 등 여러 가지 말하기 방법을 소개한다. 자기 말의 주인이 되어 일, 관계, 인생을 더욱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 보자.
◇멋진 인생을 위해 오십부터 해야 할 것들(김옥림·미래문화사)
‘가슴이 뛰는 한 영원한 청춘’이라는 시인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나답게 사는 것이 인생 후반기를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위험하고 매혹적인 제로 이야기(찰스 세이프·DKJS)
제로(0)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자 철학, 종교, 수학, 물리학의 근간이다. 저자는 0의 출현, 억압, 성장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시니어를 위한 슬기로운 디지털 생활(조진화·임지윤·포레스트북스)
디지털 전문 강사인 모녀가 합심해 만들었다. 스마트폰·키오스크 사용법 등 부모님이 알았으면 하는 디지털 정보 10가지를 안내한다.
●Stage
◇러브레터
일정 4월 4일 ~ 4월 27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연출 김민정
출연 정보석, 박혁권, 하희라, 유선
연극 ‘러브레터’는 30개 언어로 공연된 세계적인 스테디셀러 작품이다. 밀도 높은 2인극이 특징으로, 무대에는 50년 동안 편지를 매개로 서로의 인생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앤디와 멜리사만 존재한다. 글을 사랑하는 모범생 앤디 역은 정보석과 박혁권이 맡아 연기한다. 그림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멜리사 역에는 초연 당시 몰입도 높은 연기를 보여준 하희라와 함께 유선이 캐스팅됐다. 제작사 측은 “깊은 내공으로 다져진 베테랑 배우들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사랑과 이별, 그 무수한 사연들도 디지털 기기의 버튼 하나로 정리되는 요즘, 잊고 있었던 우리의 순수성을 깨워주는 작품이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친정엄마
일정 4월 20일 ~ 5월 26일
장소 서울 한전아트센터
연출 김재성
출연 김수미, 이효춘, 신이현, 선예, 김도현, 박장현 등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 ‘친정엄마’는 2004년 원작소설 출간 이후 연극,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특히 뮤지컬은 주크박스 뮤지컬의 진수로 통하며, 실력파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이번 시즌에는 하루에도 열두 번 넘게 딸을 걱정하는 친정엄마 봉란 역에 김수미와 이효춘이 캐스팅됐다. 김수미는 초연부터 봉란 역을 연기하고 있으며, 이효춘은 뮤지컬에 첫 도전한다. 엄마와 티격태격하다 이내 사랑을 깨닫게 되는 딸 미영 역은 신이현이 지난 시즌에 이어 연기하며, 원더걸스 출신 선예가 새롭게 합류했다.
◇클로저
일정 4월 23일 ~ 7월 14일
장소 플러스씨어터
연출 김지호
출연 이상윤, 진서연, 김다흰, 이진희, 최석진, 유현석, 안소희, 김주연
연극 ‘클로저’는 1997년 초연 이후 50개국 100여 개 도시에서 공연됐으며, 2004년에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극은 현대 런던을 배경으로 앨리스, 댄, 안나, 래리라는 네 명의 남녀가 만나 서로의 삶에 얽혀드는 과정을 그린다. 국내 공연은 8년 만인 가운데, 원더걸스 출신 안소희가 연극에 첫 도전해 눈길을 끈다. 앨리스 역을 맡은 그는 “연극이라는 무대와 관객들과의 교감에 긴장과 더불어 설레는 마음이 있다”며 좋은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근데, 이 나이에… 해도 돼요?”
치아교정을 결정하기 직전에 물었다. 어느덧 서른 중반. 교정 상담받으면서 가장 걱정되는 건 비용도 소요 시간도 아니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진짜 문제였다.
대단한 콤플렉스가 있지는 않았지만 늘 마음속 어딘가에 ‘교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남이 보면 “에이, 그냥 살아. 너 정도는 안 해도 돼” 하는 수준이고, 나 역시 그런 마음이 아주 안 드는 건 아니어서 진짜 그냥 살았는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미련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 중반. 나이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생긴 대로 살기엔 살아갈 날이 너무 길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 어느 날, 충동적으로 치과를 찾아 교정을 결정했다. 그 후 수개월이 지났다. 현재까지 대만족! 헬스 코너 담당 선배께 중장년도 ‘이 나이에…’ 하고 있을 거라고 취재를 요청했다. 이번엔 선배가 물었다.
“이 나이에… 해도 돼요?”
나이 들어서도 치아교정이 가능한가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치아 뿌리가 튼튼하고 치조골이 충분히 있다는 조건만 맞는다면요. 40대는 물론 60대 이상도 가능합니다. 다만 세포 활성도가 젊은 층에 비해 느려 자극을 약하게 줘야 합니다. 그러면 교정 기간이 좀 더 걸릴 수 있습니다.
중년에게 치아 교정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중년은 대개 두 가지 이유로 교정을 합니다. 평생의 콤플렉스였지만 시기를 놓친 경우, 또는 노화로 인해 치아가 변화한 경우입니다. 나이가 들면 점점 윗니는 벌어지고 아랫니는 틀어집니다. 이를 노화의 사인으로 보면 우울해지는데요. 교정으로 기능적·심미적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교정 치료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인데, 중년은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어도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교정하면 치아와 잇몸 상태가 안 좋아진다던데요?
잘못 알려진 속설이 많습니다. 사실 교정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치아가 자연적으로 좋은 위치에 자리 잡는 경우는 거의 없고, 나이가 들면 틀어지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더 틀어지고 더 잇몸이 나빠진다고 교정 안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치아 위치와 잇몸이 안 좋으면 그만큼 양치하기 어렵고, 나이 들어 치아가 더 쉽게 망가집니다. 물론 잇몸이 안 좋은 환자는 악화될 수 있으니 교정을 지양해야 하지만요.
중장년 교정은 10~30대 교정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교정의 적절한 시기는 없지만, 청소년기 교정이 가장 좋다고 하는 이유는 잇몸뼈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중장년은 잇몸뼈가 비교적 약해진 상태고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지니까요. 그래서 과한 변화는 주지 않는 게 좋습니다. 발치 또한 제한적으로 하는 편입니다. 설측 교정과 부분 교정도 많이 합니다. 그러면 비용이 비교적 적게 든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인생을 같이 가는 사람이죠.”
박건우 교수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다. 치매 환자가 가지고 있는 지혜를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그들과 함께 늙어가고 있단다.
박건우 교수는 치매·파킨슨병·소뇌위축증 분야의 권위자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신경과 전문의를 모두 취득하고 치매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모두 돌보고 있다. 치매 예방과 조기 발견,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과 가족 치유에 앞장선 공로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박 교수는 치매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인의 가치’를 보존해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노인의 가치는 무엇인가
박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신경·뇌·심리를 공부하는 의사들과 함께 고려대학교에 지혜과학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인지장애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노인의 가치란 무엇일까’를 고민한 결과다.
“2000년대 당시에도 지금처럼 노인 인구가 증가해 고령화사회가 된다, 연금도 건강보험 재정도 고갈된다, 이런 말이 계속 나왔어요. 환갑을 맞아 잔치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이 들어가는 자체가 마치 사회에 재앙이 되는 것처럼 묘사돼요. 그러니 나이 들어 뭐하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나이 드는 게 부끄러워지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왜 건강하게 살려고 할까요? 나이 들어 건강한 내 자신이 사회에서 재앙이라니 모순 아니에요? 저는 의사인데 환자를 열심히 살려서 건강하게 만들었더니, 사회의 재앙을 양산하는 꼴이 된 거예요.”
과거에 우리는 왜 환갑을 축하했을까. 노인이 된다는 건 축복일까, 재앙일까. 근본적인 고민에 빠졌다. 박 교수는 수많은 인지장애 환자들을 만나면서 나이 듦의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나침반 같은 존재가 노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이 들면서 더 나아지는 능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요즘은 무슨 일이 생기면 포털 사이트에 묻지만, 예전에는 큰일이 생기면 동네 어른한테 물어봤어요. 어른에게 무언가 묻는다는 건, 그의 경험에 기반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물어보는 거거든요. 현대에 와서 속도나 효율을 중요시하는데, 아무리 빨라도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결국 삶이 무너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옛 마을 어른의 그 경험을 우리는 ‘지혜’라고 정의하자 했죠.”
사람의 정신·인지 활동이 건강하게 지속되면 그 사람이 건강한 경험을 누적하게 되고, 그가 겪은 시행착오를 기반으로 사회에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지혜를 축적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경험을 존경하는 사회가 된다면, 사회도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려면 건강한 지혜가 필요하니까 건강한 신체, 건강한 정신, 건강한 성숙을 이끄는 여러 방법을 연구했다. 지혜과학연구소의 탄생 이유다.
지혜가 없어지는 병, 치매
박건우 교수는 치매를 ‘지혜가 없어지는 병’이라고 했다. 운동 능력이나 정신 능력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지혜 능력이 사라져 어리석은 상태가 되는 것이 치매라고 봤다. 박 교수는 치매 예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운동과 관계’라고 했다.
“뇌는 자극이 들어왔을 때 반응하는 기관이에요. 집 안에 멍하게 있는 것보다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운동을 하면 좋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한 일원이 되도록 지속시켜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결속력과 치매에 대한 내성이 강력해야 사회가 치매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의술의 발달은 심장·폐 등 신체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는 기술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뇌는 바꿀 수 없다. 따라서 박 교수는 뇌를 오래도록 건강하게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뇌를 오래 쓰면 치매나 인지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
“치매는 자극을 받았을 때 좀 엉뚱한 방향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죽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내가 알던 반응이 아니라고 해서 치매 노인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치매라는 질병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져요. 85세가 넘으면 3명 중 1명이 치매 환자가 됩니다. 그저 다르다고만 볼 일이 아니에요.”
우리가 치매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치매 환자가 지혜를 유지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기간이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건우 교수는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가 사라지는 것을 걱정했다. 치매 환자가 카페나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도록 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돕는 일본 사례가 종종 언급되는데, 그는 이마저도 지역이라는 울타리가 없으면 힘들다고 봤다. “가족으로 묶인 관계가 혈연, 지역으로 묶인 관계가 지연인데, 가족은 해체되고 지역도 사라져가고 있다”면서 박 교수는 ‘우리’라는 개념이 희미해지는 것을 걱정했다.
“기댈 수 있는 사람과 오래 함께 사는 게 참 중요합니다. 요즘 혼자 사는 사람이 많은데요. 치매뿐 아니라 어떤 질병이든 혼자 살 때 병의 진행이 더 빨라집니다. 함께 버텨주는 사람이 있고 없고가 엄청난 차이를 가져와요. 뇌세포도 그렇거든요. 여러 가지로 붙어 있어야 떨어지지 않는데 결속력이 약해지면 금방 끊어져요. 우리 동네, 우리 가족이라는 개념이 점차 약해지니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범위도 점차 줄어들고 있죠.”
박건우 교수는 그래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더욱 집중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결국 질병을 치료하는 데는 ‘휴먼 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질병이 있더라도 존엄성을 가지고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의사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문자로 ‘선생님 약 주세요’라고 하는 게 편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그저 약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에요. 스러져가는 환자의 삶을 함께 가야 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와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진찰하면서 주고받는 대화가 있어야 하는데, 서로가 반응하지 않으면 치료가 되지 않아요.”
치매 환자는 기억을 점차 잃어가기에 언젠가는 깨어지는 관계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관계는 더 오래 가더라는 걸 오랜 경험으로 깨달았다. 병원을 방문한 보호자들이 “다 못 알아보는데 그래도 선생님은 알아보세요”라고 할 때, 역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더 이상 병원을 방문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 진료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환자에게 주간보호센터라도 꼭 다니시라 당부한다.
기억이 잘린 사람
치매안심센터가 생기면서 치매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치매라는 병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하다. 박건우 교수는 치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볼게요. 사고로 다리가 잘렸다고 합시다. 그 사람의 걸음걸이는 어떨까요? 많이 다르겠죠. 우리는 다리가 잘린 사람의 걸음을 보고 도와주려고 합니다. 치매 환자는 기억이 잘린 사람이에요. 치매 환자에게는 ‘집이 어디세요?’라고 한마디 물어봐 주는 것이 절뚝거리는 사람을 부축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말 한마디가 치매 환자의 행동을 정말 많이 바꿔요. 기억의 어느 한 부분을 찔러줌으로써 언제 그랬냐는 듯 정신이 돌아오는 분이 많거든요. 그런데 무섭고 이상하다고 치매 환자를 도우려 하지 않아요.”
박 교수는 치매에 걸려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특히 120세까지 사는 시대가 되면 치매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질병이 된다고 했다. 에이즈가 과거에는 사망하는 병인 줄 알았지만 기술의 발달로 만성병처럼 취급되듯, 치매 역시 이른 시일 내에 만성병이 될 거라고 본다.
“배회하는 치매 환자를 만나면 경찰서에 꼭 인계해주세요. 치매안심센터에서 발부한 배회 인식표(보통 옷깃 안쪽에 붙어 있다)나 지문으로 환자가 누군지 알 수 있습니다.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다면 치매안심센터에 꼭 가보세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스스로 혹은 가족의 치매가 의심될 때 이를 숨기려 하지 말고 병원에 꼭 들르시길 당부합니다. 치매의 원인에 따라 치료되는 것도 있고, 오랫동안 관리해야 하는 것이 있고, 계속 나빠지는 것도 있습니다. 원인을 알면 대책을 세울 수 있는데, ‘병원에 가도 해주는 게 없다더라’며 진료를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또한 그는 요양 시설에서 생활하는 치매 환자들의 행동장애를 질병 증상 중 하나로 이해해주길 당부했다. 논란이 되는 치매 환자의 성추행이나 성희롱이 병의 증상일 수 있다는 것.
“파킨슨 환자의 경우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증가하는 약물을 복용하는데, 이때 그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이런 경우는 약을 잘 조절하면 됩니다. 치매 환자는 본능을 눌러주는 뇌피질의 능력이 점차 없어집니다. 그러니 아이처럼 자신의 욕망과 본능을 그대로 이야기하게 돼요. 욕을 하기도 하고 바지를 내리기도 하죠. 그런데 이 환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동인지는 조금 살펴봐야 합니다. 치매 환자의 성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은 것 같아요.”
노인을 존중하는 사회
지혜과학연구소가 생긴 지 20년이 넘었지만 안타깝게도 노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분위기는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박 교수는 노인이 설 자리가 더욱 없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요즘은 사회의 방향성을 어른이 아니라 AI에게 묻잖아요. 나이 든 사람들의 가치를 생산성으로 판단하는데, 오히려 그런 AI나 로봇이 생산성을 담당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요즘 시대의 노인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성장기를 겪은 사람들이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의 70대는 부모를 부양했던 세대다. 5060세대는 유례없는 부를 쌓았다. 박건우 교수는 노인이 될 세대가 어떤 생활 습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국가 경제가 영향을 받는 시대가 올 거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노인은 은퇴 후에 재산을 물려주고 빈털터리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노인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요즘이기에, 경제력마저 없어지면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 취급할 걸 잘 알기에, 무조건 자식에게 부를 이전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 거라 본다. 그렇기에 더더욱 노인들이 지혜를 더 오래 유지하고, 그 가치를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누구보다 바란다.
“우리는 120세를 사는 시대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개척자 입장에서는 참 힘들지만, 언젠가는 라이프사이클이 120년인 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시대가 올 거예요. 오래 사는 건 성공했고, 앞으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관건이죠. 건강한 노인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젊은 세대라면 앞으로 4명 중 1명이 노인인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겁니다. 남의 이야기 같지만 결국 나의 이야기예요. 그러니 지금부터 노인에 대한 가치관을 잘 갖춰야 해요.”
박건우 교수는 노인들이 가진 지혜를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전파하며 여생을 마무리하도록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한다. 보통 사람보다 뇌가 빨리 늙어버린 사람들을 만나는 의사, 그들과 함께 늙어가며 서서히 무너져가는 인생을 같이 걷는 의사, 환자와 좋은 관계를 주고받는 의사 생활을 계속하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