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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대 막내가 운전 도맡아” 위기의 교통 사각지대
-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고령화에 갈 곳 잃은 교통난민] 제1부 인국절벽에 가로막힌 노인 이동권 제2부 전용 교통수단으로 활로 찾은 일본 제3부 첨단 기술과 공유경제, 미래 이동권의 키워드 “혼자 살고 보행이 불편해서 면허 반납은 꿈도 못 꿔요.” 충청남도 홍성군 한 경로당에서 만난 70대 여성이 운전면허 반납에 대한 생각을 얘기했다. 읍·면·리에 거주하는 지방 고령자는 특히 운전대를 놓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운전과 생계 활동이 직결되기도 하고,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하루에 5대 내외로 교통이 불편한 경우가 많아서다. 그렇다면 지방 고령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감각·인지·신체 기능이 떨어진 고령 운전자는 사고 발생률이 높다. 이에 따라 지자체에서는 운전면허 자진 반납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한 고령 운전자는 11만 2896명으로, 전체 고령 운전자(474만 7426명)의 2.4%에 불과했다. 현재 정해진 기준으로는 면허 반납자에게 10만 원의 교통카드를 제공한다. 여기에 지자체별로 10만~20만 원의 추가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보상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의 필요성 지역별로는 부산(3.5%)의 반납률이 가장 높았다. 이어 서울(2.9%), 인천·대구(2.6%), 경기·대전(2.5%) 등의 순이었다. 반대로 반납률이 가장 낮은 곳은 세종(1.0%)이었다. 다음으로는 경북(1.6%), 충남·울산(1.7%) 등에서 반납률이 낮았다.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대도시 고령자의 반납률이 높았다. 지방 소도시는 이동권 및 생존권이 연결돼 반납을 꺼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지자체에서 무조건 반납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도로교통공단에서는 ‘고령 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을 실시한다. 만 65세 이상부터는 교통안전교육이 권장되며, 75세 이상 운전자는 반드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찾아가는 고령 운전자 교통안전교육’도 진행한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육장 방문이 어려운 교육 대상자의 불편을 덜어주고자 거주지 지역 내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고령자의 운전은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적성검사를 받고, 건강 문제가 없으면 운전을 지속해도 된다. 그러나 문제가 발견되거나 스스로 느낀다면 자진 반납을 고려해야 한다. 더불어 국내에서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자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도입을 추진, 현재 연구 중에 있다. 조건부 운전면허는 고령과 질환 등으로 안전운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개인별 운전 능력에 따라 시간·공간 제한 및 첨단 안전장치 부착 등 맞춤형 운전 조건을 부과하는 제도다. 야간 운전, 고속도로 운전을 금지하고, 속도제한 등의 조건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준호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대중교통이 부족한 지방 고령자의 경우 운전이 생활에 필수적이고, 야간 운전, 고속도로 운전의 빈도가 낮아 제도 도입에 거부감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한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를 시행하는 해외 사례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엿볼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70세 이상 운전자는 운전면허 재심사를 받는데, 의료 평가에 따라 보충적 주행 능력 평가도 치러야 한다. 일리노이주는 75세 이상은 4년, 81세에서 86세는 2년, 87년 이상은 매년 운전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호주의 75세 이상 운전자는 매년 의료 평가와 운전실기 평가를 모두 받는다. 뉴질랜드는 75세 이상부터 2년 주기로 면허를 갱신해야 하며, 이때 의사의 운전면허용 진단서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아직 낮은 상황이다. 본지에서 전국 만 60~74세 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에 대해 ‘몰랐다’는 응답이 75%에 달했다. 25%만이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를 알고 있다고 답했는데,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69%가 ‘필요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DRT부터 생활 SOC까지 교통 관련 전문가들은 지방 고령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지방 소멸을 막는 방법으로 공공 교통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수요응답형 교통체계(Demand Responsive Transport, DRT)가 증진되어야 한다고 본다. 노선을 미리 정하지 않고 이용자의 수요에 따라 운행 구간, 정류장 등을 탄력적으로 운행하는 여객 운송 서비스다. 교통 사각지역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전라북도에서 처음 도입했다. 충청북도 청주시의 ‘청주콜버스’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읍면 전역에 도입한 수요응답형 버스다. 이용 요금은 500원이며, 한 달 평균 2만 8000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최근 청주시는 고령자의 이동 편의를 위해 기차역, 마을회관, 경로당 등 400여 곳에 호출벨을 설치했다. 경기도의 ‘똑버스’는 신도시 및 농촌 지역에서 운행하며 교통 취약계층의 불편을 해소했다. 수요응답형 공공택시를 실시하는 지자체도 있다. 전라북도 김제시, 강원도 횡성군 등에서는 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지역에서 100원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DRT뿐만 아니라 모빌리티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민간 교통연구소는 첨단 운전 보조시스템(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 ADAS) 중 하나인 비상자동제동장치(Advanced Emergency Braking System, AEBS)를 고령 운전자 차량에 장착하면 추돌사고가 22.5%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전라남도 여수시, 장성군, 화순군 등에서는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차선이탈 경보장치’ 설치를 지원한다. 차량 내부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전방 차선의 상태를 인식하고 방향지시등 없이 차선을 이탈할 경우 운전자에게 경고음 등을 울려 사고를 예방하는 시스템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생활 SOC(Social Overhead Capital) 구축이다. SOC란 사회간접자본으로, 도로·항만·철도 등 경제활동이나 일상생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간접적으로 필요한 시설을 말한다. 고령자가 이동권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이유도 결국 SOC와 연결됐다. 본지 설문조사에서 이동권을 제한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를 묻자, 의료 서비스 이용이 37.3%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장보기(쇼핑 포함) 25.7%, 여가 활동 13.0%, 친지 만남(육아 포함) 11.7% 순으로 응답이 나타났다. 고준호 교수는 “고령자가 될수록 이동성이 떨어지므로 집을 중심으로 생활 반경에 필요한 SOC가 갖춰져야 한다. 통행도 불편한데 생활 SOC마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사람들이 지방 거주를 주저하게 되며, 지역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에서는 현재 SOC 사업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며 집중하고 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 5월 ‘2024 교통대토론회’에서 “교통망과 연계한 국토·도시 개발을 기반으로 지역별 성장거점을 육성하고, 국가 균형발전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현장 탐방 대중교통 사각지대 가보니…유일한 운전자 “언니들 이동 책임져야” 충청남도 지역은 유독 교통사고가 잦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전국 1위를 한 적도 있다. 올해 상반기(1~6월)만 해도 교통사고로 107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51명으로 48%를 차지한다. 이러한 사연이 밑바탕이 되어 사단법인 충청남도교통안전문화협회(이하 교안문협회)가 출범했다.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안전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낀 교안문협회는 경로당, 마을회관을 찾아다니며 교통안전교육을 실시한다. 지난 8월, 구자애 교안문협회 사무국장이 교육을 진행하는 현장에 동행했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홍성군 홍성읍 소향2리 마을회관이었다. 구자애 사무국장은 교통안전송을 통해 교육을 재밌게 진행했고, 10명의 주민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한국도로교통공단 예산운전면허시험장 세종충남대전지부 협업으로 임건희 과장도 일정을 함께했다. 그는 주민들에게 65세 이상은 5년, 75세 이상은 3년마다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안내했다. 안전운전 컨설팅을 통한 자진 반납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또한 지부에서는 하반기에 ‘찾아가는 고령 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을 추진할 예정이다. 10명의 주민 가운데 운전면허증을 소지한 이는 단 한 명, 송선옥(63) 씨뿐이었다. 그는 일을 하느라 오토바이를 20년 넘게 탔으며, 자동차를 운전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마을회관의 막내를 맡고 있는 그는 “여기 계신 언니들을 집 또는 병원 등에 자주 데려다드린다”고 말했다. 박석원(84) 씨는 81세에 운전면허를 반납했다며 “80세까지는 무사고 운전을 했는데, 이듬해 갑자기 운전하다가 깜빡 조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반납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는 가끔 운전할 때가 그립고, 불편함을 겪을 때도 있다고 얘기했다. 이어 두 번째로는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 4구 광경동 마을회관을 찾았다. 이곳에서도 11명의 주민 가운데 운전자는 70대 한 명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혼자 살고 거동이 불편해 운전면허증이 꼭 필요하다고 했으며, 80대까지는 반납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두 명의 주민은 젊은 시절 운전면허증을 취득했지만, 운전을 한 적은 없다고 했다. 주민들은 “여기는 마트, 병원 등을 도보로 이동할 수 있어 운전면허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생활 인프라와 이동권의 상관관계가 체감되는 부분이다.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노인세대의 이동권 침해를 받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 해결 방안 논의를 위해 특별 기획 ‘고령화에 따른 이동권 문제’를 3개월에 걸쳐 연재로 발행합니다. 제1부 ‘인구절벽에 가로막힌 노인 이동권’, 제2부 ‘전용 교통수단으로 활로 찾은 일본’, 제3부 ‘첨단 기술과 공유경제, 미래 이동권의 키워드’ 순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당 기사는 오프라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온라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2024-09-09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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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칫덩어리 곤충 농장, 귀촌 4년 만에 탈피하고 날개 돋다
- 곤충농장을 운영하며 살아온 지 올해로 7년째. 이지현(54, 꿈트리곤충농장 대표)은 하루하루가 즐겁다. 아침이면 콧노래를 부르며 농장으로 나간다. 원하던 삶을, 원하던 곳에서, 원하던 방법으로 누린다. 행복이 별건가? 따개비처럼 들러붙는 불만과 불편을 털어내고 자족하며 살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이지현이 그 본이다. 음대를 나온 그녀는 도시에서 오랫동안 피아노학원을 운영했다. 전공 따라 길을 걸었던 셈이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던 게 곤충농장을 꾸리면서 변했단다. 농장은 이지현에게 만족의 샘이다. 그녀의 눈빛과 태도에선 농장에서 길어 올린 기쁜 샘물이 찰랑거린다. 귀농 초기엔 시련이 유일한 길동무였다. 막다른 길로 몰리다시피 했다. 지금이야 곤충농장이 고맙기 짝이 없지만, 고초를 겪던 당시엔 골칫덩어리에 불과했다. ‘아아, 내가 어쩌자고 이런 짓을?’ 아마도 후회와 자책으로 괴로웠으리라. 대체 어떤 상황이었을까? “당시 식용 곤충 산업이 농가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급부상해 많은 이들이 뛰어들었다. 매스컴의 요란한 보도에 이끌린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잠깐 반짝하고 그만이었다. 사육 농가가 별안간 늘어나면서 판로 확보가 날로 어려워지는 상황이었다. 굼벵이 가공식품을 생산하고도 판매하기가 실로 어려웠다.” 미리 판로 문제에 관한 공부나 모색을 하진 않았나? “자신감 하나 가지고 일을 벌였다. 생산만 잘하면 판매는 저절로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참 안일했다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다.” 다양한 작목 가운데 곤충 사육을 선택한 이유는? “농사에 뜻을 세우고 한동안 고민했다. 세 가지 조건을 선택지로 삼았다. 첫째, 혼자 해낼 수 있는 작물일 것. 둘째, 미래 지향적인 농업일 것. 셋째, 리스크가 적은 일을 찾을 것. 이 셋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게 곤충농사라는 결론을 내리고 일을 착수했다.” 농사를 가볍게 보고 덜컥 귀농하는 이들이 의외로 드물지 않다. 그게 실패를 예약하는 행위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바로 그런 케이스에 속한다.(웃음) ‘나도 농사나 지어볼까?’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곤충농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농사처럼 어려운 게 없더라.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굼벵이를 잘 키워놓기만 하면 러시아로 고가에 수출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찾아온 이에게 금전적 손실을 봤으니까.(웃음) 이래저래 난항이 많았다. 그러나 극복했다. 방향 전환으로 위기를 넘어섰다.” 치유농장, 누구나 생기 회복하는 공간 뜻밖의 벽에 부닥친 이지현은 숙고 끝에 농장의 주제를 갱신했다. 단순한 상품 생산 체제에서 진일보한 곤충 체험농장을 띄워 활로를 찾기로 했다. 이쯤에서 그녀는 비로소 농업에 필요한 식견과 실력을 쌓기 위해 농업교육장을 드나들며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뒤늦게 기초 쌓기에 나선 것. 앞서가는 곤충 체험농가들을 찾아 기법을 배우는 건 물론, 요건을 갖춰 영농후계자 자격을 얻었고, 갖가지 기술 자격증을 따 향후의 약진을 도모했다. 공예와 원예에 관한 교육까지 받은 건 그 역시 체험농장 운영에 필수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체험농장으로 전환하고 난 뒤엔 참으로 부지런히 뛰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졌으니까. 기존 가공식품 생산은 그대로 지속했다. 거기에 체험 프로그램을 접목했으니 일의 양이 한결 늘어날 수밖에. 우선 체험 공간을 구비하는 게 필요했다.” 농장 구조를 보면 매우 기능적이다. 유기적인 동선의 흐름도 자연스럽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효율적인 구성을 한 농장이라는 인상을 준다. “키위를 재배했던 비닐하우스에 갖가지 유실수와 화초를 넣어 원예 체험을 할 수 있는 치유온실로 변경했다. 치유텃밭과 치유정원도 조성했다. 곤충 관찰을 비롯해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실내 체험장도 만들었다.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구성해 틀을 갖추었다. 이 모든 요소는 계속 보강됐으며, 그건 현재진행형이다.” 관건은 체험자들을 어디서 어떻게 하나라도 더 불러들이느냐에 있었겠지? 사람이 좀체 오지 않아 문을 닫는 체험농장도 있다. “비교적 수월하게 체험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농업교육을 받은 기관들의 조력을 받은 덕분이었다. 부지런히 교육장을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교류한 이들이 농장의 홍보사절 역할을 해준 효과가 컸다. 현재 아동, 초중등 학생, 청장년층, 경증 치매 노인, 독거 노인 등 다양한 신분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체험객으로 참여하고 있다.” 곤충 체험농장으로 전환하고 4년여가 지났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나? “그간 점진적인 성장을 해 이젠 안심할 수 있는 궤도에 올라섰다. 가장 만족스러운 건 적성과 취향에 맞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이 즐겁다. 활동량은 많지만 피로감 없이 일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게 너무도 좋다.” 아동들이 왔다고 치자. 그들은 이곳에서 어떤 활동을 하나? “프로그램에 따라 다양한 체험을 한다. 이를테면 누에, 누에나방, 장수풍뎅이 등 곤충들을 관찰하고 돌보게 함으로써 곤충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을 키울 기회를 제공한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보기도 하고, 누에똥을 활용한 비누 만들기도 한다. 치유온실에 들어가 식물들의 생태 이벤트를 접하고, 온실에서 채취한 허브로 각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시간도 갖는다. 텃밭과 치유정원에서도 아동들은 평소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한다. 나무나 풀과 함께 소꿉놀이를 한다. 아이들은 이 모든 체험활동을 이색적인 놀이로 받아들이며 환호한다. 웃음꽃을 터뜨린다. 순식간에 몰입해 즐기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낀다.” 체험자들의 반응에 보람을 느낀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선한 영향력이라 할까, 난 농장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런 걸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뜻을 이루고 있다는 실감을 자주 하는 거다.” 바람에 날아다니는 비닐봉지 하나를 움켜쥐고도 신나게 노는 게 아동이다. 순진하고 즉흥적인 충동에 취해서. 마치 행위예술가처럼. 그토록 민감한 영혼을 품은 아이들을 어른들은 일상의 틀 속에 가둔다. 그녀는 그게 마땅치 않다. 딱딱한 일상의 틀을 흔들어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감성 발육을 돕는 게 곤충 체험농장이라는 것.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진정성 있는 공간이라는 것. 이지현은 그런 취지의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더 많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용케 나도 하고 있다는 자긍심도 비친다. “체험농장을 통한 치유 효과가 결코 작은 게 아니다. 처음엔 말 한마디 하지 않던 발달장애인이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표정이 서서히 밝아지고 드디어 입을 연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치매 노인도, 고독한 독거 노인도 이곳에 와선 표정부터 부드럽게 변한다. 동네 어르신들도 마찬가지다. 생기를 회복한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자연을 품은 농업의 힘이 이렇게 크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아울러 귀농을, 아니면 귀촌을 적극 권유하고 싶다.” 농장으로 거두는 소득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치유농장으로 바꾼 후 수입이 해마다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남편이 벌어들이는 월급보다 많은 수익을 얻고 있다.” 시골을 오해하지 마라 이지현의 남편은 대기업 근무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시골 생활을 통해 인생을 좀 더 좋은 쪽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아내와 함께 시골에 내려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낙향을 했다. 연로한 부모님을 돕고, 부부애를 돋우며, 한결 쓸모 있는 활동을 하면서 앞으로 남은 유한한 시간을 낭비 없이 살고자 했다. 물론 이지현도 남편의 뜻에 공감했다. 부부는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시골로 내려가는 게 현명한 판단이라고 봤다. 남편은 이곳에서 자신이 원했던 일을 찾아내 전념하고 있다. 그러니까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만의 직업을 가진 거다. 각자의 취향과 지향에 부합하는 일을 갖고 신뢰에 찬 부부 관계를 유지한다. 남편은 틈틈이 아내의 농장 일을 거들어준다. 그러나 거의 전적으로 이지현이 농장을 주도한다. 이건 매우 공정하고 진취적인 귀농 스타일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런데 주변 귀농인들은 다들 무탈할까? 이지현의 얘기는 이렇다. “흔히 나만은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귀농한다. 그러나 궁지에 몰리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문제는 세 가지 요인에서 발생한다. 무리한 초기 투자, 미진한 사전 준비, 경영 마인드 부재…. 심각한 상황에 이르러 도시로 돌아가는 농가도 봤지만 그리 많진 않다. 다들 일단 어떻게든 버틴다.” 남편은 귀농을 원하지만 아내의 반대에 봉착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나? “시골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문화적 환경이 열악하다는 선입견 말이다. 사실은 도시 못지않게 풍성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게 요즘의 시골이다. 자연과 동행하는 게 농업이라는 걸 감안해도 귀농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다양한 보조금 지원 정책, 자연재해에 관한 보험제도 완비 등 예전보다 귀농 환경이 훨씬 좋아졌다. 육체노동에 대한 거부감, 권태, 텃세 등도 관점의 폭을 넓히면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다.” 요즘 고민이 있다면? “프로그램 발굴 문제다.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강화하기 위해 여전히 고심한다.” 귀농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다른가? “도시에선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통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그래 촌에 내려와 농사를 하는 것인데, 어느덧 삶의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치유농장을 통해 나 자신을 치유한 결과다. 한때 경제상의 대형 사고가 발생해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태평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이지현에겐 ‘암말도’라는 별명이 있었다. 도무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 붙은 별명이다. 이마저 과거의 일이 됐다. 어느덧 할 말 딱 부러지게 하는 유형으로 진화했다. 게다가 속사포처럼 말이 빠르다. 요컨대 그녀는 무척 다른 사람이 됐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바뀌었다. 이지현이 알려주는 귀농 Tip •반드시 사전에 귀농교육부터 충분히 받고 귀농하자. •귀농인들의 실태 파악을 위한 현지답사도 필수조건이다. 발품을 많이 팔수록 얻는 게 많다. 남의 농장에 무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며 농사를 배우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가급적 지역 특산 작물을 선택해 농사를 시작하자. 기술 숙달과 유통 측면의 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플랜을 수립하고 귀농하자. 목표를 뚜렷하게 설정하라는 얘기다. •과학적인 농사를 하라. 진부한 관행 농업으로는 정착하기 어렵다. •지역의 봉사단체에 가입해 공익적인 활동을 하라. 보람도 크지만 어디에나 있는 텃세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무릎 관절에 문제가 있을 경우 미리 치료하고 귀농하자. 쪼그려 앉아 일하는 시간이 많은 게 농사다.
- 2024-07-12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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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암과 폐섬유증 수술 후, 귀촌 통해 찾은 건강한 ‘새 인생’
- 건강을 잃고서야 절절한 심정으로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는 게 사람이다. 위중한 병을 얻었을 때 인생의 유한함을, 시간의 소중함을 비로소 뼈저리게 절감하며 새롭게 눈을 뜬다. 함지애(58, ‘지애의 봄향기’ 대표)는 40대 때 폐암 1기 선고를 받고 투병을 했다. 용케 조기에 발견된 암인 데다 수술이 잘돼 예후가 좋았다. 천운으로 병마를 다스렸으니 정상적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듯싶었다. 하지만 얼마 뒤 폐암보다 무섭다는 폐섬유증(폐가 굳어지면서 심각한 호흡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환)이 다시 기습했단다. 어이하나? 어떻게 일어서야 하나? 폐섬유증 수술을 마친 함지애는 고심 끝에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김제로 내려갔다. 그건 요양을 위한 낙향이었지만 귀농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남은 인생을 덤으로 여기고, 이제 시골에서 제대로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는 점에선 당찬 투신이자 기꺼운 모험이었다. 서울에 살 때 그는 의류유통업을 했다. 중년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동대문 상가, 남대문 상가에서 뛰었다. 뛰더라도 그냥 뛴 게 아니라 경주마처럼 열렬한 질주를 했나? 그의 가게엔 자주 고객들이 줄을 섰다지. 아마도 그의 천성일 패기와 근성이 성과를 불러들였던 것 같다. 마침내 자수성가로 우뚝하게 일어선 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몸에 중병이 찾아와 위세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면 서울을 뜰 일이 없었으리라. 시골살이? 그건 그의 사전에 아예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시골 생활은 무섭고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병을 통과하면서 생각이 변했다. 삶의 방향이 확 바뀌었다. 이렇게 뜻밖에 찾아온 변곡점은 차라리 하나의 기쁜 선물이었다. 낙향 이후의 삶이 한결 새롭고 만족스럽다는 게 아닌가. 시골에 내려와 비로소 인생의 향긋한 열매를 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왕 삶을 바꿀 거라면 다 내려놓고 가자!” 낙향 때 그의 머리에서 나부낀 기치가 그랬다. 인생을 레이스하는 데 쓸모가 큰 방편으로 여겼던 욕심과 경쟁심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물질이든 행복이든 가급적 손아귀에 한가득 움켜쥐고자 했던 지난날의 타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생존의 정글에서 지친 노루가 쉴 만한 물가를 찾아가듯이 마음을 비우고 낙향했다. 사람이 마을을 비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무가치한 것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다 버렸다. 그게 병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유력한 길이라고 봤다. 함지애가 김제로 내려간 건 2012년. 초기 한동안은 요양에 전념했다. “텃밭 농사로 거둔 깨끗한 채소류를 먹거나, 산야에서 약초를 얻어 섭취했다. 도시에 비할 수 없이 맑은 공기도 몸에 좋았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시골 생활이 주는 평온함이었다. 마음이 그토록 편안해지다니, 예상과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맛보며 안도했다. 건강도 좋아졌다. 빠른 속도로. 웃음을 달고 살다시피 했으며, 이웃들과 좋은 사이로 지냈다. 아, 시골에 오기를 잘했어. 좀 더 빨리 내려올걸!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유능한 강소농 모델로 떠올라 잃었던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으면서 함지애는 슬슬 농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고즈넉한 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 성장한다는 게, ‘일에 대한 불타오르는 열정이 있어야 즐거울 수 있다’는 게 그가 인생에서 배운 일종의 공리다. 농사에 뛰어드는 방식은 다분히 조직적이었다. 여러 농업 교육기관을 통해 공부부터 충실히 하는 한편, 대담하게도 5000여 평의 전답까지 마련해 바닥을 다졌다. “농토에 벼, 찹쌀, 보리, 콩 등을 재배했다. 농사 방법은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기로 했다. 안전하고 깨끗한 농산물로 고추장, 된장, 청국장, 간장을 만들자는 게 기본 방향이었다.” 혼자서 5000평이나 되는 너른 전답에 농사를?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주로 위탁영농 방식으로 농사를 했다. 이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 봄철의 논밭 갈이부터 가을철 수확까지 전 과정을 대행해주니까. 그런데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다. 사전에 부지런히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난 나름대로 열심히 농업을 공부했다. 건강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농사에 뛰어들었지만, 사실 초기 5~6년은 수련기였다. 거의 공부 기간이었다. 이때 다수의 농업 관련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았나?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 가공학과에 적을 두고 배웠다. 버섯과 화훼 공부도 병행했다. 김제에 있는 농업기술센터를 통해서도 배운 게 많았다. 전통장류, 조청, 꽃차 등에 관한 이론과 실재를 교육받았으니까. 이렇게 공부하며 농어촌체험지도사, 전통장류제조사, 꽃차 소믈리에, 천연발효식초 제조관리사 등 자격증 여러 개를 취득했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판로 부문이다. 판로와 관련해서도 사전에 공부해둔 게 있었나? “판로 문제야말로 농업 경제의 핵심이라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정보화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농사 시작과 동시에 SNS 마케팅을 위해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농사의 출발은 식초 사업으로 열었다지? “2018년에 식초 생산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작업장과 체험장을 지어 생산과 체험 교육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가공 분야 가운데 식초를 선택한 이유는? “아까 말했지만 난 농업 관련 공부에 많은 시간을 썼다. 딴엔 제법 공부를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느 수준인지, 뭐 좀 실력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테스트할 필요가 있었다. 테스트 수단으로 식초 사업을 택한 건 식초가 사람 몸에 가장 좋은 식품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남의 건강을 위해서도 식초만큼 좋은 게 없다고 봤으니까.” 촘촘한 사전 준비에 힘입어 식초 사업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특유의 현미식초를 만들어 특허 등록을 냈으며, 연잎식초라는 희귀한 제품을 만들어 역시 특허를 받았다. 스스로 설정한 테스트를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 셈이다. 이후 그는 식초의 이웃사촌인 술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전통주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해둔 상황에서였다. 따라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단 필이 꽂히면 냅다 덤벼들어 몰두하는 평소의 습성과 기량을 풀가동해 전통주 개발과 생산에 주력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가 주어졌다. 각종 경연대회에 출품한 그의 술이 큰 상을 연달아 받으며 일약 알아보는 눈이 꽤 많은 실력자로 부상했다는 게 아닌가. 그는 2019년 충남도 농업기술원이 후원한 ‘우리 발효술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21년엔 ‘대한민국 명주대상’ 경연에서 청주 부문 대상을, 2022년엔 광주MBC가 주관한 ‘우리 술 어워즈’에서 ‘왕중왕’상을 거머쥐었다. 전통주 초심자가 거둔 만만치 않은 성취였으니 이변이라 말 못 할 것도 없겠다. 이제 그는 술과 더불어 유능한 강소농의 모델로 떠올랐다.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것 “난 술에 미친 여자다.(웃음) 좋은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양조엔 디테일한 기술력이 필수다. 누룩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효모로 단맛과 신맛 등 풍미를 지닌 술을 빚어내기 위해선 반복적 실험이 선행돼야 한다. 술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다. 미치지 않고선 도달할 수 없는 게 양조다.” 어떤 술들을 만들고 있나? 가장 자부하는 술을 꼽는다면? “현재 6종류의 술을 생산한다. 대표 상품은 ‘초야’(初夜)라는 청주다. 신혼 첫날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술에 담았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탁주인 ‘순애보’ 역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술이다.” 시중에 수많은 민속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신의 술은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나? “남들은 흔히 말한다. 여러 가지 꽃을 양조 재료로 삼은 꽃술은 함지애의 것이 뛰어나다고. 민속주를 만드는 이라면 누구나 ‘이게 바로 한국의 술이야!’라고 자신할 만한 술을 만들고자 노력할 텐데,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술의 풍미 수준을 가르는 건 기술력보다 정성스러운 마음과 손길에 달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어린 자식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 때처럼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 그게 좋은 양조의 비결이라 믿는다.” 양조란 창의적 감각이 요구되는 난해한 장르다. 자력으로 단기간에 일정한 성취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하다. 누군가에게 도제식 수업을 받은 적은 없었나? “운 좋게도 좋은 스승들을 만났다. 명품 전통주 ‘호산춘’의 명인 이연호 선생님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인 박록담 선생님을 통해서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 스승들 덕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시골에 내려온 이후 나는 이렇다 할 실패나 착오를 겪지 않았다. 이건 순전히 좋은 인간관계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좋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좋은 걸 배웠고, 배운 걸 토대로 일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일뿐만이 아니다. 삶의 질 자체가 아등바등 살았던 서울에서보다 훨씬 좋아졌다.”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일과 생활, 양면에서 선순환을 해왔다는 얘기다. 남의 가르침과 의견을 경청해 피드백으로 삼기. 이웃과 도타운 우정을 나누는 일에도 사업 이상의 정성을 쏟아 감흥을 누리기. 이쯤이면 결함 없는 생활이다. 인생의 중세시대라 할 만한 투병기는 어느덧 종료됐다. 여러 측면에서 서울에 살 때와 완연하게 변했다. 이제 그가 지닌 지배적인 감정은 만족감, 그 하나란다. 다만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지되고 있는 양상이 있으니, 여전히 바쁘게 산다는 게 그렇다. 함지애가 만드는 건 식초와 전통주만이 아니다. 들에선 곡물을 생산하며 장류 사업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대파에서 피어나는 보랏빛 꽃을 부재료로 가미한 이색 꽃두부도 생산한다. 마을 부녀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다. 김제 시내에 오픈 스튜디오를 두고 대표를 맡고 있는 ‘징게맹갱 우리술 협동조합’의 기지로 활용하고 있기도. 독거노인과 결손가정을 돌보는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시내의 침체된 구역 일부를 놀이문화 공간으로 재생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일의 가짓수가 이토록 넘치다니. 그는 남몰래 비명을 지르는 건 아닐까? 일에 치여 부질없이 소비되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거라고 생각하자 모든 게 감사하게 다가왔다. 희로애락은 여전하고 때로 눈물도 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비로소 하고 있다는 실감으로 행복하다. 돈을 벌려고 바동거렸던 과거에서 벗어난 것만도 어딘가? 밝고 에너지 넘치는 본성을 회복한 건 또 어떻고? 욕심을 내려놓고, 짧고 굵게 살다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가진 게 많다는 걸 알면서도 흔히들 까먹고 산다. ‘욕심에 휘둘리는 삶은 이제 싫어!’ 함지애의 드라마를 난 그런 외침으로 새겨두기로 했다. 함지애가 주는 귀농 Tip •땅과 집을 마련하기 이전에 귀농 교육부터 충분히 하라. 지자체마다 운영하는 ‘1년 살아보기 프로그램’ 같은 걸 통해 농촌 생활을 미리 경험하는 것도 좋다. 그 과정에서 나의 숨겨진 역량을 발굴할 수 있으며, 과연 귀농을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농 초기 3년 정도는 성공을 위한 수련기로 삼아 나를 알아가는 시간 내지는 농사의 방향을 모색하는 기간으로 활용하자. 농업의 경제 효과는 현명한 운영을 했을 경우에도 대체로 귀농 5년 이후에나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도시에서 쌓은 경륜이나 특기를 살려 재활용하라. 이를테면 꽃에 조예가 있다면 꽃차 사업에 도전하는 식으로. •여성의 단독 귀농을 두려워하지 마라. 다만 남다른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귀농 초기엔 소득 발생이 전혀 없을 가능성이 많다. 예비비 확보가 필수다.
- 2023-08-1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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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촌을 아는 것 산촌 체험의 첫걸음
-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귀에 익숙한 노랫말에 나오는 산 너머 남촌은 산촌일까? 산촌일 가능성이 높지만 산촌이 아닐 수도 있다. 산자락 마을일지라도 개간을 통해 넓은 경지를 품고 있다면 산촌이 아니다. 또한 사람이 살기 좋아져 인구가 많아진다면 이때도 산촌은 아니다. 이런 차이가 생겨나는 것은 산촌의 구체적인 법적 정의가 대통령령(산림기본법 시행령 제2조)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제1호. 행정구역면적에 대한 산림면적의 비율이 70% 이상일 것 제2호. 인구밀도가 전국 읍·면의 평균 이하일 것 제3호. 행정구역면적에 대한 경지면적의 비율이 전국 읍·면의 평균 이하일 것 우리가 정서적으로 인식하는 노랫말이나 서정시 속의 산촌과 산림기본법에서 정하는 법적인 산촌은 이렇게 다르다. 지역 사례를 통해 산촌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3가지 법적 조건 충족돼야 산촌 인제, 양구, 화천은 강원도 북부 내륙에 자리한 산골 중의 산골이지만 이곳에도 산촌이 아닌 곳이 있다. 펀치볼로 유명한 양구군 해안면은 면 전체가 너른 분지를 형성하고 있어서 산림면적 비율이 70%에 미치지 못한다. 3개 군의 나머지 14개 읍면은 모두 산촌이다. 김제는 경지면적 비율, 즉 농사짓는 땅이 많기 때문에 산촌이 아닌 농촌이다. 전북 김제시의 1읍·14면·4동 중 산촌은 금산면 한 곳이다. 금산면은 모악산을 포함하고 있어서 예외적으로 산지 비율이 높다. 그럼 섬 지역도 조건만 충족된다면 산촌일까? 물론 그렇다. 홍어로 유명한 흑산도와 주변 부속도서를 묶은 행정명칭이 전남 신안군 흑산면인데, 섬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데다 경지는 적고 인구밀도도 낮아 산촌에 해당한다. 신안군 흑산면뿐 아니라 영광, 진도, 완도, 고흥, 여수, 남해, 거제, 통영 등에는 이처럼 바다에 뜬 산촌이 흔하다. 다도해를 품고 있는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 해당하는 얘기다. 정리하자면 오지가 곧 산촌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섬도 산촌이다. 오지가 곧 산촌이 아닌 경우도 통상적인 인식과 실제가 다른 것은 산촌의 정의뿐만이 아니다. 산촌 체험의 범위 또한 모호한 것은 매한가지다. 산촌에서 할 수 있는 체험이란 어떤 것이며, 이런 체험을 통해 방문객과 산촌민은 각각 어떤 이득을 얻게 될까? 우선 산촌 체험의 대강을 살펴보자. ① 임산물 채취 및 요리 : 알밤 줍기, 두릅 따기, 산양삼·버섯·산나물 캐기 ② 숲길 탐방 : 숲 해설 및 삼림욕, 숲 놀이터, 숲속 음악회 ③ 나무공예 : 목공예품 제작, 나뭇잎 조각 및 프린팅 이들 체험의 공통 요소를 꼽자면 산림이다. 산림은 국토환경을 보전하고 임산물을 생산하는 기반으로서 국가발전과 생명체의 생존을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산(산림기본법 제1장 제2조)이다. 이런 소중한 자산을 기꺼이 체험 소재로 활용하는 활동이라면 그 결과는 어떠한 형태로든 체험 당사자에게 이득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때 체험 당사자란 체험자인 방문객과 체험 제공자인 산촌민을 두루 아우른다. 이들 두 당사자를 주체로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산촌 체험을 정의하자면, ‘산촌을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치유와 즐거움을 제공하고 산촌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산촌 지역의 진흥을 가져다주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때 산촌이 진흥된다는 것은 산촌의 소득이 늘어나고 산촌주민의 복지가 증진되는 것(산림기본법 제8조)을 말한다. 시야를 넓혀 산촌 체험을 바라볼 경우, 체험자에게 치유와 즐거움을 주는 행위를 넘어 귀산촌의 전초 과정이 되기도 한다. 한국임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귀산촌 준비의 8개 단계(① 귀산촌에 관심 갖기 ② 산촌 체험 ③ 가족 동의 ④ 작물 선택 ⑤ 기술 습득 ⑥ 정착지 물색 ⑦ 주택·임야 매입 ⑧ 산림 경영계획 수입) 중 두 번째 단계가 산촌 체험이다. 다시 말해 산촌 체험은 자신이 귀산촌 생활에 적합한지를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므로 한국임업진흥원에서 운영하는 귀산촌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등 현장 실습을 해보는 것도 중장기적으로 산촌 체험의 부가적인 이득이 될 수 있다.(강원도 평창은 군 전체가 산촌이지만 고랭지 채소를 임산물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산촌의 소득과 복지 증진이 과제 산촌 체험이 활성화되면 체험자(방문객)도 좋고 체험 제공자(산촌민)도 좋은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산촌 체험이냐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임산물 채취, 숲 탐방, 나무공예 등이 산촌 체험의 대표적인 형태이지만 이들은 태생적으로 농촌 체험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 비근한 예로 나물을 산에서 캐면 산나물로서 임산물이지만 밭에서 길러 수확하면 농산물이 된다. 도라지나 곤드레를 밭에서 캐보고 요리를 해보는 체험은 산촌 체험일까? 농촌 체험일까? 감자와 고구마는 분명한 농산물이지만 산자락 밭에 심은 감자나 고구마를 캔다면 과연 농촌 체험일까? 산촌 체험일까? 이처럼 농촌 체험으로부터 산촌 체험을 골라내는 것은, 농장에서 사육하는 멧돼지가 산돼지냐 집돼지냐를 가르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산촌생태마을이라 알려진 곳을 찾아가 보면 마을의 운영 주체는 대부분 영농조합법인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산촌 체험은 별도의 입지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다. 상황이 이렇다면 산촌 체험은 장소가 아니라 재료를 기준으로 정의 내려야 할 듯하다. 다시 말해 산촌에서 진행하는 체험이 아니고 산림자원을 재료로 하는 체험을 산촌 체험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예를 든 돼지에 비유하자면 집에서 기르더라도 멧돼지는 재료(?)를 기준으로 그냥 멧돼지로 보자는 것이다. 자, 이제 재료를 기준으로 산촌 체험을 다시 분류해보자. ① 임산물로 분류되는 은행, 밤, 잣, 더덕, 도라지, 각종 나물, 구기자, 오미자 등은 자연산이 아닌 밭작물일지라도 산촌 체험의 대상으로 본다. ② 산촌 지역이 아닌 곳에 조성된 숲과 가로수에서 삼림욕 등을 하는 것도 산촌 체험으로 본다. ③ 목재를 체험 소재로 하는 목공예품 제작과 나뭇잎 조각 및 프린팅 등도 산촌 체험으로 본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심도 있는 논의 과정과 그에 따른 정교한 정의가 필요하다. 산촌 체험을 즐기는 사람들의 과제가 될 것이다.
- 2021-12-06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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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김제 시골에 사는 이경주·지관 부부
- 차갑고 흐린 겨울 한낮. 집 앞 황토 구릉지 쪽에서 불어온 맵찬 바람이 나무들의 몸을 흔든다. 이미 누드로 늘어선 초목들은 더 벗을 것도 떨굴 것도 없다. 그저 조용히 삭풍을 견딘다. 좌정처럼 묵연하다. 봄이 오기까지, 화려한 꽃들을 피우기까지 나무들이 어떻게 침잠하는지를 알게 하는 겨울 정원. 봄이면 화들짝 깨어날 테지.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꽃들이 제전을 펼친다지. 6년여를 공들인 정원이다. 정원의 임자는 이경주(61) 씨. 그녀는 귀촌 이후 거의 모든 날들을 정원 가꾸기에 매달렸다. 애초 근사한 정원을 만들고 싶어 귀촌했다. 나무를, 꽃을, 자연을 가꾸고 배우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꿈은 그녀의 오래된 숙원이었다. 하지만 자꾸 미루어야 했다. 도시를 벗어나기 쉽지 않아서였다. 박인환의 시구였던가. ‘인생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적인 것.’ 일과 관계의 고리에 코 꿰어 진부한 일상에 안주하기 십상인 게 삶이다. 그러나 꿈꾸지 않고서도 숨 쉴 수 있는 방법이 있던가. 저마다 오아시스 하나를 내심에 담고 사는 게 아니던가. 이 씨는 시골에 살며 정원을 맘껏 가꾸는 일로 티끌세상을 사뿐하게 넘어서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녀에겐 롤 모델이 있다. 미국의 동화작가 타샤 튜더. ‘타샤의 정원’이라는 책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 타샤는 100여 권의 동화책을 낸 작가이자 지상 낙원과도 같은 정원을 창조한 원예가다. 텃밭을 일궈 거둔 채소와 과일로 특별한 밥상을 차린 요리의 대가이며, 어지간한 생필품은 손수 만들어 조달한 자연주의자였다.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 즈음, 내가 나의 삶을 진정 사랑하며 살아왔던가 하는 회의가 몰려들 즈음, 이 씨는 타샤의 삶과 책에 함빡 필이 꽂혔다. 해서, 타샤의 삶을 닮기로 했다. 타샤가 그랬듯이, 50대 중반에 이르러 시골로 이주했다. 전남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그녀는 서양화가로, 미술교사로 살아왔었다. 귀촌을 통해 정원 가꾸기에 일단 신명을 바친 뒤 그림에도 치열하게 몰두하겠다는 게 그녀의 스케줄. “지난 30대부터 50대까지의 인생이 어쩌면 허송세월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회의가 밀려들었어요. 물론 제가 맡았던 일엔 늘 최선을 다했죠. 리더로 뛰기도 했어요. 찬사도 자주 들었어요. 하지만 한 분야를 깊이 파 이름을 날린다거나 부를 누릴 인물은 아니었죠. 나는 도대체 뭘 했지? 이게 진정 나를 위한 삶이었나? 이젠 바꾸자, 육십이 다 됐지만 뭐 늦은 건 아니잖아? 이제라도 한바탕 근사하게 살아보는 거야! 그런 생각, 그런 작심으로 귀촌했어요.” 옳다구나! 내 삶의 행보에 회의가 있고서야 어찌 행복하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늙고 병들어 죽음이라는 놈과 턱 조우하기 이전에 정말 내가 바랐던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는 일이지 않겠는가. 어중간하게 늙은 이제라도 가슴 쿵덕거리는 일에 나를 거침없이 쏟아 붓는 일은 가상한 미담에 속한다. 그녀는 복스럽게도 귀촌 장소를 물색하는 수고는 면제받았다. 유년기에 병아리처럼 뛰놀던 기억이 서린 외갓집에 자리를 잡았으니까. 전북 김제시 백구면의 농촌이다. 이 씨의 외할아버지는 근현대 불교미술의 거장 일섭 스님(1900~1975). 일섭은 자신의 고향인 이곳 백구면에 태고종 사찰 부용사를 창건했다. 현재 부용사의 주지는 이경주 씨 남편인 지관 스님이다. 전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직을 그만두고 돌연 삭발 출가, 아내의 외가 쪽 개인사찰 주지 소임을 맡은 거다. 기혼자가 어이 스님을? 의아해할 수 있지만, 태고종은 승려의 혼인을 허용한다. 남편은 태고종 승려 교수에서 승려로 신분이 바뀐 남편의 뒤를 따라 이경주 씨가 부용사에 딸린 외갓집으로 귀촌한 것은 지난 2012년의 일.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부부가 차례로 오랜 삶터였던 광주를 벗어났다. 주야로 도 닦는 남편과 사는 일은 수월할까?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부처라지? 남편에게 부처님 대접을 받아 날마다 평강하신가? “남편이나 저나 서로 원했던 삶을 산다는 데에 아무런 불만이나 불편이 없어요. 선(禪)을 추구하는 남편, 자연과의 교감을 원하는 나. 서로 다른 길이지만 각자가 바랐던 길을 간다는 게 만족스러워요. 소소한 언쟁은 가끔 벌어지지만 피차 적당한 침묵으로 충돌을 피하죠. 새로운 무기랄까, 그런 건 생겼어요. 아니, 스님이라는 사람이 그래서야 되겠어요? 그리 밀어붙이면 꼼짝 못하니까.(웃음)” “선에 마음을 둔 스님은 속세의 뜻을 이미 접었을 테고, 자연으로 쏠린 이 선생의 마음도 비슷한 풍경일 것 같고, 그렇다면 부부가 공히 수행자처럼 사는 거예요? 부군을 따라 덩달아 출가할 생각을 하진 않았나요?” “살아가는 자체가 수행이라는 게 남편의 생각입니다. 사실 자주 참아야 하고, 자주 져줘야 하는 결혼생활만 하더라도 치열한 수행일 수 있겠죠. 그런 기본 인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남편과 저의 길은 달라요. 각자의 개인적인 삶이니까. 출가?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하질 않았어요. 그럴 만한 인재가 되질 못해서.” “인재? 경 읽고, 우렁차게 목탁 치고, 얌전히 좌선할 힘만 있으면 되는 거 아녜요? 발심(發心)이 선행한다면.” “반듯한 생활에 자신이 없어서죠. 제가 원래 너그럽고 원만하고 순한 천성의 소유자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분방한 성향이에요. 매우 온순해 보이지만 삐딱한 기질도 다분해요. 하지 말라는 건 오히려 더 나서서 해보고서야, 아 그렇구나, 그렇게 직접 느끼고 깨닫는 걸 좋아해요. 그림만 하더라도 대담하고 열정적인 작풍을 좋아하고, 뭔가 격한 기복과 강약 리듬이 있는 생활을 선호했어요.” “교직 역시 적성에 맞질 않았겠어요. 범생이들을 길러내자면 교사 자신부터 범생이 시늉을 해야 할 테니까.” “교직을 일찍 그만뒀죠. 저와 어울리질 않아서. 교사란 보편적이고 모범적이고 규칙적인 생활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틀에 갇히는 게 싫었어요. 내 개성과 성질을 죽여야 하는 공기가 싫었던 거죠.” 미술교사직에서 물러난 그녀는 요상하게도 정당 활동에 뛰어들었다. 처신도 운신도 교묘하게, 머리도 여우처럼 굴려야 할 정치판. 그 북새판에 가담해 실력을 발휘, 모 정당의 여성부장까지 맡았더란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뒷전에서 구경만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하지만 이제 와 날카롭게 돌아보면 그마저 자신의 진정한 일은 아니었다는 것. 실수나 실패의 기록은 드물고 일련의 성취가 뚜렷했지만, 내가 나를 정말 기쁘게 하는 종목은 아니었다는 것. “마음은 점점 자연으로 흘러갔어요. 원래부터 자연을 사랑하는 성향의 여자라는 걸 깨달았던 거예요. 사람들 속에서보다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의 본성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사람과의 대화보다 자연과의 대화가 더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걸 알았던 거죠. 사소한 풀 한 포기를 바라보며 풀꽃아, 너는 왜 그렇게 예쁘니? 이렇게 말을 건넬 수 있는 감성, 맑은 정서, 그런 게 제 본성에 더 가깝다는 걸 알았던 거예요. 이와 같은 자신에 대한 재발견이 귀촌을 추동했죠. 시골에서 정원을 가꾸며 스스로 정직하게 사는 게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길이라 판단했어요. 그게 교직에 있었던 사람의 도리라는 생각도 했고.” 수굿하고 정겨운 정원의 꽃 잔치 이경주 씨의 정원엔 이제 알아주는 눈들, 일부러 찾아와 감상하는 객들이 많단다. 6년여 동안 땀 흘린 덕이다. 애면글면, 그녀는 온몸을 써 노동을 했다지. 온갖 꽃씨를 뿌리고, 갖가지 나무를 심고, 제초를 하고, 거름을 주고, 전지를 하고, 마치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너른 마당을 초목으로 채워나갔다. 정원 전면엔 백련 방죽을 조성했고, 장미나무 터널을 거쳐 연지를 한 바퀴 휘돌 수 있는 산책로를 마련해뒀다. 담장이라는 게 일체 없으니 저편 황토 구릉지와 한달음에 이어지는 조망이 시원하다. 그녀는 인위적 조경을 극도로 배격했다. 최대치의 자연미를 구현한다는 미학을 염두에 두었다. 인위가 만들어내는 허영과 허식에서 벗어나 무위로 돌아가고자 하는 내심을 담았을 수도 있겠지. “어릴 때 보았던 시골의 꽃 풍경을 재현하고 싶었어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동요 ‘고향의 봄’에 나오는 그 곱고 애틋한 경치를 말이죠. 사실 인위적 치장을 할 돈도 없었어요. 비싼 조경수나 조경석을 사들일 형편이 아니었죠. 억척스럽게 모든 걸 자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어요. 손수 정원용 도예 작품들을 만들어 슬쩍슬쩍 꽃밭에 배치했고, 무너진 폐가에 뒹구는 돌이나 기왓장, 인삼밭가에 버려진 폐목을 수시로 손수레로 날라 조경 소재로 재활용했어요.” 자로 잰 듯 치밀하게 꾸민 인공 정원이나, 규모로 압도하는 수목원과 달리 이 씨의 정원은 스산한 이 겨울에 보더라도 각별히 아기자기하고 수굿하고 정겹다. 꽃들이 연달아 피어나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방문자들이 즐비하단다. 그녀는 더욱 많은 사람들을 꽃 잔치에 불러들일 작정이다. 내친 김에 꽃과 자연, 문화와 예술이 남실거리는 공간으로 진급시킬 계획이다. ‘야가(野歌)문화예술촌’이라는 이름도 이미 지어두었다. 뜻을 같이 하는 도시의 지인들을 인근에 귀촌시켜 함께 거사를 도모할 작정이다. 생활도 낭만도 꿈도 도시에서보다 자연의 원초적 숨결이 뜨거운 시골에서 그 성취 가능성이 한층 높다는 게 이 씨의 지론. 그녀는 자연의 그 무엇에 매료를 느낄까? “자연 안에 사는 생명들의 자유스러움이랄까, 태연한 생태와 순환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무상의 혜택이죠. 사람을 순하게 만들고, 안심을 부여해요. 말없는 초목들과의 대화는 얼마나 값진지요. 그건 사람들과의 영혼 없는 대화보다 진실하고 절실해요. 결국은 자기 성찰에 이르게 되죠.” “나름의 파란만장을 겪으며 반백 년 이상을 산 사람들의 배후엔 저마다의 상처가 아른거리죠. 자기성찰이 치유의 길일까?” “일테면, 불가에선 남들에게 미소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보시를 했다 보는데요, 그러나 그게 쉽지가 않아요. 자연 속에 살다 보면 어느 정도는 그게 자연스럽게 됩니다. 귀촌의 이점은 한두 가지가 아녜요.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다질 수 있고, 생활비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고, 영감이 솟구치고, 성숙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으니까. 도시에서 부대끼며 허겁지겁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뭐람.” 도시라고 악조건의 수렁일 리가. 그러나 자연에 삶의 한 자락을 슬며시 걸치고 살아가는 귀촌생활이란 자주 마음을 돌보게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겠지. 삶의 고통을 다루는 기술엔 늘 초심자에 불과한 우리에게, 자연은 성찰의 눈을 달아주기도 하니까.
- 2018-01-0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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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관광공사 선정 걷기 여행길 어디지?
- 한국관광공사는 '걷기 여행길'(www.koreatrails.or.kr) 웹사이트를 통해 4월 가볼 만한 전국 곳곳의 도보 여행지 10곳을 소개했다. 도보 여행지는 쉬운 코스와 보통 코스 등으로 구분이 돼 있다. 쉬운 코스는 경북 청송군의 주왕산 탐방로 주왕 계곡코스(2.2㎞)다. 대전사에서 출발, 자하교를 지나 용추폭포까지 이어지는 산책하기 좋은 평탄한 길이다. 주왕산의 기암괴석과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을 볼 수 있다. 전남 완도군의 청산도 슬로길 1코스(5.71㎞)는 영화 '서편제'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유채꽃과 청보리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강원 강릉시 바우길 5구간 바다호숫길(16㎞)은 파도를 따라 해변을 걷다가 커피 거리에서 카페에 들릴 수 있는 코스다. 금강소나무 군락, 허균허난 생가, 죽도봉 공원 등을 거쳐간다. 보통 코스중 경남 하동군 '박경리 토지길' 2코스(13㎞)는 화개장터부터 십리 벚꽃길을 지나 불일폭포까지 닿는 구간이다. 4월 벚꽃 축제, 5월 야생차 축제가 열리는 대표적인 꽃길로 알려져 있다. 전남 화순군 무등산 자락에 있는 무돌길 11길(3㎞)에서는 4월 벚꽃에 이어 5월에는 철쭉꽃밭이 펼쳐진다. 무등산 산행 일정에 포함해도 좋다. 전북 김제시의 순례길 6코스(25.9㎞)은 금산사와 모악산 자락을 잇는 코스. 4월 18∼20일에는 모악산축제가 열려 템플스테이나 무형문화재 공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수도권에서는 대부도 해솔길 1코스(11.3㎞)가 가볼 만하다. 해변을 따라 걷다가 북망산에 오르면 인천대교, 시화호 전경 등이 펼쳐진다. 서울에서는 북서울 꿈의 숲 나들길(4.7㎞)과 서울숲 남산 나들길(8.8㎞)이 가족 나들이 코스로 좋은 것으로 꼽혔다. 지하철이나 버스와 연결돼 이동이 편리하고, 숨겨져 있던 서울의 역사적 명소를 둘러보고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 2014-04-1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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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버타운 현주소①]한국 실버타운 무엇이 문제인가?
- 불과 2~3년 전인 2011년만 해도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이 속출했던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 부동산시장이 움츠려든 것은 여전하지만 최근 실버타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들의 주거공간에 대한 수요와 인식이 꾸준히 높아진데다 사업자도 과거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의 노하우를 쌓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도심 고급형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사회에서 소외된 노인이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실버타운이 인기를 회복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전히 운영부실이나 허위과장 광고 등으로 입주한 노인을 울리는 사례가 실버타운을 둘러싸고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허점을 노출한 관련 법안에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까지 겹치면서 남은 인생을 편하게 보내려는 노인들의 마지막 소망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노인복지주택의 현실을 진단하고 향후 발전방향을 모색해본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노인들의 주거공간에 대한 수요와 인식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실버타운을 둘러싸고 피해를 입는 노인의 숫자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오는 9월 완공 예정인 용인시의 노인복지관 조감도. 골든팰리스·노블카운티·시니어스타워·더헤리티지·노블레스타워·더클래식500…. 시니어스타워를 제외하고 이름만 들어서는 노인용 시설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 국내 실버타운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사회복지법인 재성의 ‘유당마을’과 같은 구수한 이름을 사용하는 곳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관련업계에서는 ‘실버타운’이라는 용어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는 분위기다. 노인만을 위한 거주공간이라는 이미지를 줘서는 노년층에 거부감을 불러 일으켜 분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바뀐 것은 이름뿐이 아니다. 위에 언급된 실버타운은 대부분 도심이나 도심근교에 위치한 고급형이다. 과거 실버타운하면 떠오르는 종교단체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전원형은 요즘 인기가 시들해졌다. 지난 2000년 전북 김제시가 지방자치단체로는 전국 처음으로 야심차게 6만4238㎡에 조성한 노인복지타운의 경우 초기에는 대기자가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대표적 전원형 실버타운의 성공사례로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수익성 악화로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면서 시의회와의 갈등 끝에 결국 민간에 위탁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김제시 관계자는 “노인복지타운 근로자들이 노조를 결성하면서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인건비가 상승했고 지자체는 예산문제 등에 규제가 많아 민간위탁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도심에 위치한 고급형이 인기를 끌면서 실버타운 시장에서도 양극화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건국대학교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더클래식500은 문을 연지 4년만인 지난 7월 전체 380세대에 대한 입주계약을 완료하며 입주율 100%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돈이 있어도 빈 세대가 나올 때까지 입주를 기다려야 하는 실버타운이 나타난 것이다. 보증금이 8억8000만원으로 비싼 편이고 월 생활비가 식비를 제외하고도 130만~150만원 이상 들지만 입주를 희망하는 노년층은 늘고 있다. 기존의 통념을 깨고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더클래식500은 일평생 도시에서 생활해 농촌으로 이동하기를 주저하던 은퇴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하철 2호선과 7호선 건대입구역 근처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건국대병원, 롯데백화점, 스타시티 쇼핑몰, 이마트, 영화관 등이 반경 500m내에 위치하고 있다. 의료에서 쇼핑까지 최소한의 이동으로 끝낼 수 있다. 젊은 층에 비해 거동이 불편한 노년층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이다. 무엇보다 도심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기존의 커뮤니티나 가족과 유대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최대의 장점이다. 물론 처음부터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다. 입주초기에는 도심형 실버타운에 대한 생소함으로 노년층에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김민경 더클래식500 대리는 “2009년경 사업 초기에는 금융위기로 부동산 거품이 빠지던 시기였고 액티브 시니어(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니어 세대)와 시니어 레지던스(노인전용주거시설)라는 인식도 약해 분양이 잘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도심형 실버타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24시간 간호사가 상주하는 등의 서비스가 고액자산가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입주율이 치솟기 시작했다. ‘끼리끼리’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부자들의 습성은 거주할 실버타운을 결정하는데 크게 작용했다. 김 대리는 “입주자의 만족도가 높아 입주자들이 지인 분들에 (더클래식500)을 소개해 모시고 오면서 입주율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1960∼70년대 산업화로 이농현상을 거치면서 도시에 터전을 잡은 노년층이 늘어난 것도 도심형 실버타운이 인기를 끄는 원인으로 보인다. 수명이 연장되면서 은퇴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액티브 시니어가 늘어난 것도 도심형 실버타운의 선호도를 높였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수명이 연장되면서 은퇴하고도 사회활동을 하는 노년층의 비율이 높아졌다”며 “이들은 수도권 외곽 자연환경에 대한 동경보다는 도심에 생활하길 원하고 있어 앞으로 다양한 도심형 실버타운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 2014-03-07 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