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숙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얼마나 바쁜가 하면, 동시에 네 작품의 촬영 스케줄을 소화해야 할 정도다. 많은 작품에서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인정받는 배우라는 뜻이다. 그러나 서이숙은 아직 목마르다고 말한다. 전성기 또한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언제, 어떤 작품을 통해 서이숙(56)이라는 배우를 알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는 JTBC ‘부부의 세계’ 속 최 회장의 아내로, 누군가는 tvN ‘호텔 델루나’의 마고신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서이숙이 드라마에 출연해 연기를 펼친 지는 1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혜성처럼 등장한 배우가 아니다. 그가 드라마에 출연하기까지 무려 2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중에 무명 연극배우로 지내며 빛을 보지 못한 시간이 20년이다.
서이숙은 긴 어둠의 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믿는 시간의 공력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시간의 공력이란 시간을 들인 만큼 값진 결과가 언젠가는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이숙은 시간의 공력 끝에 행복의 경지가 있고, 언젠가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저는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럼 도대체 전성기는 뭘까 하는 질문이 생기죠. 제 연기에 대한 만족감이 10점 만점에 5점을 넘겨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아직 전성기가 안 왔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언젠가는 올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시간의 공력을 믿거든요.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초조함이 없답니다.”
갑상선암, TV 출연으로 전화위복
서이숙은 배우로서 행복을 연극 무대에 섰을 때 마지막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그때도 자신의 연기에 만족해서는 아니었다. 관객과의 호흡을 통해 짜릿함을 느꼈다. 그는 “정동환 선생님과 함께한 ‘고곤의 선물’과 ‘오이디푸스’ 무대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꼈다”면서 “내 연기에 관객들이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행복을 느끼기까지 서이숙은 지난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스무 살에 우연히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서이숙은 수원예술극장 단원에 지원해 합격했다. 궁핍한 배우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1989년에 극단 미추에 입단했지만, 15년간 코러스로 무대에 올라야 했다.
그러다가 2003년, 마침내 보상의 시간이 찾아왔다. ‘허삼관 매혈기’로 첫 주연을 맡은 서이숙은 동아연극상 연기상,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 등을 휩쓸었다. 동시에 연극계에 서이숙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까지 거의 2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허삼관 매혈기’ 때 연기가 정말 재밌었어요. 대본이 좋으면 연기가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20년 만에 주연을 맡은 것인데, 시간의 공력이 저를 그렇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허삼관 매혈기’로 상을 받기 시작했으니까 인생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드라마는 아직 인생작을 못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드디어 인생의 빛을 보려던 때인 2011년, 서이숙은 갑상선암을 선고받았다. 그는 “진짜 이건 뭐지 싶었다. 열심히 20년 넘게 연기한 것밖에 없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갑상선암 치료와 수술로 무대에 서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서이숙은 이때부터 방송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2010년 홍창욱 감독의 SBS 드라마 ‘제중원’을 통해 드라마에 발을 내딛은 상황이었다.
“제가 활동하는 산악회 모임에 홍창욱 감독님도 계셨죠. 감독님께서 ‘제중원’을 준비 중이셨어요. 명성황후 역할이 있는데 신선한 얼굴을 캐스팅하고 싶으셨나 봐요. 저한테 출연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중원’에 출연했고, 시청자분들이 ‘저 배우 누구야, 목소리 좋다’ 하면서 관심을 보이셨죠. 그 이후 계속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온 거죠. 그때를 생각하면 인생이 마냥 코너로 몰리지는 않는구나, 힘든 일도 결국은 지나가는구나 하고 느껴요.”
이후 서이숙은 MBC ‘짝패’, ‘기황후’, KBS2 ‘착하지 않은 여자들’, tvN ‘호텔 델루나’, JTBC ‘부부의 세계’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최근작은 tvN ‘슈룹’이다. 폐비 윤 씨 역을 맡은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열연을 펼쳤다. 서이숙을 향한 시청자의 연기 호평은 나날이 쌓여가는데, 그는 여전히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지 못한다.
“드라마를 처음 찍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연극배우로서는 베테랑일지 모르지만 방송국에서는 초보잖아요. 매일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가면 그때 그렇게 하지 말걸 하는 후회만 남는 거죠. 지금 10년이 지났는데도 똑같이 매일 후회해요. 제가 성향상 한번 연기한 것을 다시 반복하는 것을 힘들어하거든요. 드라마는 똑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어야 하는데, 저는 매번 100%의 감정이 나오지 않는 거죠. 드라마 위주로 활동한 배우들은 그 감정 배분을 잘하더라고요.”
촬영 때 100%의 감정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한 번에 100%의 감정을 쏟기 때문에 촬영이 지속되면 그 강도의 에너지가 계속 나오긴 어렵다는 뜻이다. 연극할 때의 연기가 몸에 밴 그는 상대방이 연기할 때도 100%의 감정을 실어 리액션을 해주기 때문이다. 서이숙은 이 부분을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만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은 장점으로 본다.
현재 ‘여배우가 찾는 여배우 1순위’로 통할 만큼 이러한 연기 방식은 방송가에 입소문이 났다. 호흡을 맞춰본 배우들은 그때의 감동을 기억하며 서이숙을 또 찾는다. 같이 연기를 해본 적 없는 배우들도 소문을 듣고 러브콜을 보낸다는 후문이다.
그렇다면 서이숙이 가장 호흡이 좋았다고 느낀 배우는 누구일까. 단번에 ‘부부의 세계’에서 만난 김희애라는 답이 돌아왔다. 서이숙과 김희애가 ‘부부의 세계’ 첫 신을 찍을 때 주고받은 에너지는 압도적이었다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표현했다. 서이숙과 김희애는 넷플릭스 드라마 ‘퀸 메이커’로 재회했다. 올 상반기 방영 예정으로 두 사람이 보여줄 시너지가 기대를 모은다.
건강하게 잘 늙어가기
서이숙은 좋은 연기를 펼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도 결국 사람이고, 그가 살아온 인생이 연기에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다. 그는 연극계의 거장으로 통하는 고(故) 장민호의 연기를 보고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장민호 선생님은 ‘3월의 눈’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명장면을 남기셨어요. 어떤 특별한 장면이 아니고, 그냥 선생님이 걸어가다가 의자에 앉는 장면이에요. 선생님이 걸어가는 모습에서 살아온 삶이 보이더라고요. 이게 연기구나, 살아온 삶이 연기구나라고 그때 깨우쳤죠. 그게 연기의 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아직 답이 안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저의 답은 죽을 때 나올 것 같아요.”
연기는 삶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달은 서이숙. 그래서 그의 목표는 ‘잘 늙어가기’다. 한해 한해 나이가 들수록 잘 늙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느낀다고. 서이숙은 최근 갱년기를 겪었다는 사실도 고백했다. “내 나이쯤 되면 흔히 겪는 병이겠거니 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보통 병이 아니더라”는 토로가 이어졌다.
갱년기는 어느 날 불쑥,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찾아왔다. 서이숙은 신체적인 변화보다 정신적인 변화가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세상에 재밌는 일도, 맛있는 것도 없어졌다. 젊었을 때는 사람들과 술 마시고 수다 떠는 것이 재밌었는데 이제는 뭘 해도 재미없다”면서 “그래서 시니어들이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다. 잘 늙어가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서이숙은 사람들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동료들이 많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는 “인간관계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면서 “나의 제일 친한 친구는 반려견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1년생인 반려견 ‘노을이’와 ‘준이’를 키우고 있다.
서이숙에게 반려견들은 가족 그 이상의 존재다. 이를 두고 “사람하고 살아야지 왜 개하고 사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이숙이 결혼하지 않고 미혼으로 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좋은 사람이 있으면 결혼하고 싶다”면서도 “사람 만나는 횟수를 줄이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안 될 것 같다”고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결혼할 때를 놓친 것 같아요. 20대 때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사회적으로 여자는 결혼하면 집에서 밥하고 애를 낳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죠.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어머니도 일찍 결혼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제가 연극을 할 때라 돈이 없기도 했죠. 딸이 결혼해서 고생만 할까 봐 어머니가 더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해요.”
서이숙은 하나뿐인 가족,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다.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고, 남동생은 중학생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모녀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열심히 살았다. 서이숙은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가 이제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어머니 생각을 하던 그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어머니는 1938년에 태어나셨어요. 전쟁을 겪은 보릿고개 세대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저를 홀로 키우시면서 정말 힘든 삶을 사셨죠. 돈이 없어서 집에 냉·난방기기가 하나도 없었어요. 한 여인으로서 어머니의 삶이 너무 안쓰러워요. 잘해드리고 싶어서 용돈을 드려도,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잘 안 쓰려고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이 또 안타까워서 저도 마음과 다른 말이 나오게 되고…. 참 속상합니다.”
서이숙은 어머니에게 잔소리하는 자신을 보면서 ‘말실수를 줄이자’는 새해 다짐을 했다. 또 다른 목표는 ‘후회 좀 하지 말자’, ‘내 건강에 신경 쓰자’다. 그중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건강’이다. 그래야 잘 늙어가고, 좋은 연기도 나오는 법이니까. 나이가 들수록 더 짙어질 서이숙의 연기가 기대된다.
“누군가에게 인사할 때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얼마나 소중한 말인지 몰랐는데, 이제 너무 잘 알죠. 잘 늙으려면 먼저 건강해야 하는 것 같아요.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고, 욕망과 미움도 사라지죠. 시니어 독자 여러분, 올 한 해 더 건강하시고 소망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
세상은 모든 게 빠르게 흘러간다. 자고 일어나면 유행이 바뀌어 있고, 며칠 전 신나게 쓰던 신조어는 한물간 취급을 받는다. 좁히려 해도 좁혀지지 않는 급격한 변화의 틈,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을 한눈에 파악하고 싶은 시니어를 위해 알다가도 모를 최신 문화를 파헤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소개한다.
온라인 명품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과거 오프라인에서 주로 거래됐던 명품은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까지 확장돼 온라인 명품 거래 플랫폼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1년 출범한 머스트잇을 비롯해 발란, 캐치패션, 트렌비가 대표적이다. 거래액은 지난해 기준 각각 2500억 원, 1080억 원, 560억 원, 512억 원을 기록했다.
전체 명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작지만, 주 이용층인 MZ세대 외 다른 세대 유입도 예상돼 성장 가능성이 크다. 이에 각 사는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주지훈, 김혜수, 조인성, 김희애 등 유명 배우들을 CF 모델로 내세우며 경쟁하고 있다.
명품 거래의 장벽을 허물다
온라인 명품 플랫폼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플랫폼이 명품 거래의 장벽을 허물기 때문이다. 플랫폼을 이용하면 번거롭게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오프라인에서 명품 거래를 하려면 오픈런(개장 전 매장 앞에서 줄을 서다 문이 열리면 안으로 뛰어가는 것)을 거쳐야 한다. 길게 늘어진 줄에서 기다리다 매장에 입장해도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명품은 재고가 적고, 인기 많은 상품은 금방 팔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랫폼을 이용하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힘들게 매장에 들어가 구경조차 못 하고 허탕 치는 일은 없다. 온라인 명품 플랫폼을 이용하면 PC, 모바일 화면에서 여러 상품을 구경하고 손쉽게 비교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물리적 장벽뿐 아니라 심리적 장벽도 허물어진다. 명품은 비싸다. 구경은 자유지만 구매할 여력이 부족하다면 고가의 물건들이 즐비한 매장에 들어섰을 때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플랫폼에서라면 부담 없이 오프라인보다 더 많은 종류의 상품을 아이쇼핑할 수 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오프라인에서 실제 물건을 보는 기쁨이 있지만 전시돼 있는 물건만 봐야 한다”며 “온라인 플랫폼은 명품들을 화면에 펼쳐놓고 비교하면서 구경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명품 거래 호황의 중심은 MZ세대다. 온라인에 익숙한 MZ세대는 플랫폼에서 여러 상품의 가격을 비교해 합리적으로 소비한다. 구매에 그치는 게 아니다. 이들은 좋은 물건을 사서 거기에 웃돈을 얹어 파는, 이른바 ‘리셀’을 통해 수익을 내기도 한다. 명품을 단순 소비 대상으로만 여기는 게 아니라 투자 대상으로도 삼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가품 논란
온라인 명품 플랫폼의 이점은 MZ세대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중장년층도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면 합리적인 명품 거래를 할 수 있다. 다만 온라인 명품 거래를 하기 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적절한 플랫폼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최근 명품 거래 플랫폼에 가품 문제 등 소비자 피해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며 “플랫폼을 이용하기 전 각 플랫폼이 어떤 방식으로 명품을 수입하는지, 어떤 플랫폼에 소비자 신고가 많이 접수되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유통경로다. 최근 업계 후발주자인 캐치패션이 플랫폼들의 명품 유통경로에 문제를 제기했다. 캐치패션은 동종 업계 3사인 발란, 트렌비, 머스트잇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캐치패션은 3사가 해외 주요 명품 판매 채널과 정식 계약을 맺지 않았음에도 상품 정보를 사용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해외 공식 유통 플랫폼이 제작한 이미지와 상품 정보를 무단으로 사용해 명품 업체들과 정식 계약을 맺은 것처럼 표시했다는 것이다. 반면 3사는 계약을 맺은 것이 맞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유통경로가 확실하지 않으면 가품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플랫폼별로 해외 명품 매장, 해외 온라인 플랫폼, 병행 수입 등을 활용해 물건을 들여오다 보니 유통 과정에서 가품이 섞일 우려가 있다. 이 교수는 “명품을 유통하는 방법이 혼재돼 있는 상황”이라며 “현실적으로 소비자 개인이 가품을 가려내기 어려우므로, 소비자들이 가품 걱정을 하지 않도록 자체 검수 과정을 강화하는 플랫폼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반도 전체가 독립의 외침으로 물들었던 3.1절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매년 3.1절에는 각종 지자체 및 공공기관에서 각종 기념행사를 열곤 했지만, 올해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될 계획이다. 거리에서 만세 삼창을 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으로나마 기념하고 싶다면 영화를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시대적 정신을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3.1절에 볼 만한 가슴 벅찬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항거:유관순 이야기 (A Resistance, 2019)
‘3.1운동’ 하면 가장 먼저 어떤 인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가. 누구나 그러하듯 ‘유관순’이라는 이름 석 자는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1919년 3.1운동 이후 서대문 감옥 8호실에 갇힌 유관순 열사(고아성)와 여성 독립운동가의 1년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30여 명 가까이 되는 여성 수감인의 투옥 생활은 처참하다. 세 평도 안 되는 좁은 방에서 다리가 부을까 다 같이 빙글빙글 돌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내하고, 모진 고문과 핍박도 이를 깨물고 견뎌낸다. 그럼에도 “하나뿐인 목숨 내가 바라는 것에 맘껏 쓰다 죽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는다. 영화는 유관순 열사의 삶과 함께 유관순 열사의 선배 ‘권애라’(김예은), 산모 ‘임명애’(김지성), 다방직원 ‘이옥이’(정하담), 기생 ‘김향화’(김새벽) 등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서사도 재조명한다. 극적인 연출, 혹은 흥행을 위해 3.1운동 당일의 내용을 담을 수도 있었지만, 영화는 그날의 뒷이야기만을 과장 없이 정직하고 묵직하게 담았다. 그래서 더욱 깊고 진한 울림을 남긴다.
2. 박열 (Anarchist from Colony, 2017)
건들건들한 걸음걸이에 정리되지 않은 머리, 무엇 하나 두려운 것 없다는 표정. 겉모습만 보면 패싸움을 하며 온갖 사고를 칠 것 같은 이 남자는 조직폭력배의 우두머리가 아닌 항일운동단체 ‘불령사’의 리더 박열이다. 진짜 건달은 아니지만, 사고를 치긴 한다. 오직 조국 독립을 위해서다. 영화 ‘박열’은 관동대지진 후 발생한 조선인 대학살에 정면으로 맞선 청년 박열(이제훈)과 그의 동지 겸 연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의 이야기를 다룬다. 박열이 일제에 저항하는 방식은 거친 외양처럼 저돌적이다. 끔찍한 현실에서는 감옥이 더 안전할 거라며 제 발로 감옥에 들어가고,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국왕 암살 계획을 자백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자살폭탄 역할을 자처하면서도 한 치의 두려움이 없었던 그는 재판대에 서는 순간까지 한복을 입고 등장하며 독립에 대한 기개와 의지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성냥처럼 활활 타올랐던 박열의 삶은 시대를 막론하고 불의에 맞설 정의와 용기가 있는지 반문하게 만든다. 배우 이제훈의 밀도 높은 연기가 몰입도를 더한다.
3. 허스토리 (Herstory, 2017)
과거를 되새기고 기억하는 것만큼 현재를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 또한 모든 국민의 역사적 숙제이다. 영화 ‘허스토리’는 이 같은 메시지를 평범한 인물 ‘정숙’(김희애)의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영화는 1992년부터 6년간 일본과 부산을 오가며 힘겨운 법적투쟁을 벌인 위안부 할머니와 승소를 위해 함께 싸운 정숙의 이야기를 다룬다. 부산에서 큰 여행사를 운영하는 정숙은 역사보다는 먹고사는 일, 혹은 눈앞의 현실에 더 관심이 많은 인물이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여행사 사무실에 위안부 피해 신고 전화를 설치하면서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분노하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돕기로 나선다. 자신밖에 몰랐던 그녀가 재산을 털어 할머니들의 조력자가 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혼자 잘 먹고 잘살았던 게 부끄러워서”다. 영화는 주변 인물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고, 지워질 수 없는 아픔에 귀 기울이며 연대할 것을 호소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새삼스레, 계속해서 곱씹게 되는 영화다.
한 달 이상 화제성 1위에 시청률도 매회 상승곡선이다. 19세 시청 등급에 밤 11시라는 늦은 시간 편성이어서 찐한 불륜 드라마인가 예상도 해 보았다. 그런데 선정성보다 더한 건 필터링 없는 폭력적인 장면이 너무 잦다는 것. 그러다 보니 이젠 느닷없이 치고받고 깨부수고 피가 흐르는 자극적인 장면이 나오면 그만 좀 하지 싶다. 복수에 폭력 사주와 돈과 권력이 빈번히 이용되는 모양새가 이젠 슬슬 피곤하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영국 BBC원작 '닥터 포스트'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불륜의 진행과 살벌한 폭력성이 어쩐지 우리 정서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다. 빠르게 파국으로 치닫다가도 감정의 소용돌이 속의 막장 스토리가 자칫‘사랑과 전쟁’을 방불케 한다. 현재로선 불륜과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오간다. 우리가 하는 말로 좀 세다.
남편의 불륜을 아내만 완벽히 빼고 이미 다 알고 있는 주변 친구들은 그들끼리 여행도 다녀온다는 사실, 돌아버릴 일 아닌가. 모두가 사이코이거나 콩가루 인간들의 집단 같지만 직업은 영화감독, 의사나 회계사... 등의 소위 자기 일을 좀 한다는 조합들이다. 친한 사람들끼리의 가면 속에서 저따위 짓들을 하고 지내는 것이었다. 불륜과 맞바람에 스릴러가 연상되는 폭력성 등 평범한 사람들의 정서로는 이해 안 되는 불편한 지점이 종종 있다.
의사 지선우로 분한 김희애가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중심에 있다. 이런 불륜 드라마에 안 어울릴 듯한 우아한 그녀지만 이미 드라마 '밀회'에서 20년 나이 차이가 나는 연하남과의 아슬아슬한 관계에 빠진 여자로 완성도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 낸 적이 있다. 그때의 파격적이고 치명적인 매력을 나이를 조금 더 먹은 지금 더욱 노련한 모습으로 재현해 냈다.
'완벽했다'. 자신의 현실을 그녀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극 중 대형병원 부원장 지선우로서 남편과 아들 이렇게 세 식구가 이룬 가정의 평온한 행복감에 충만했다. 그러나 남편의 외도를 알고부터 시작되는 거센 풍파, 김희애의 연기력이 진가를 발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게 죄야? 나는 두 사람을 동시에 다 사랑해." 이게 말인지 뭔지. 영화 작업한다는 명분으로 아내의 지원에 힘입어 한량처럼 사는 남자 이태오, 게다가 바람까지 피우면서 죄책감도 책임감도 없이 당치도 않은 합리화를 한다.
박해준 배우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천하의 수재가 미련 없이 속세를 등지고 절에 들어간 겸덕 스님 역일 때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생각이 깊고 욕심 없는 스님을 찰떡처럼 잘 연기할까. 툭툭 던지는 선문답과 깊이 있는 인간의 정서를 보여주었던 배우. 이번엔 극단적 찌질 캐릭터를 끝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큰 키에 긴 코트 펄럭이며 성큼성큼 걸어갈 때는 스타일 멋지단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도 욕받이 이태오 보다는 무소유의 겸덕 스님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
이런 남자의 바람에 걸려든 여자 다경은 아무리 보아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한참 젊고 이쁘다. 재력가 부모와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란 그녀다. 무엇 때문에 이런 남자에게 빠졌는지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다. 사랑에 속물 같은 잣대가 뭔 말이냐 반문하겠지만 여기선 설득력 없다. 순수한 사랑이라 우겨도 혼전임신이라 해도 전전긍긍하는 모습 공감 안 된다. 스스로 발 등 찍었다고 할 밖에 개연성 찾기가 어렵다. 안스럽지만 시종일관 속 터지게 하는 아들, 다경 아버지의 권력 남용과 부유층의 위선, 어떻게 평생 한 여자 하고만 하냐며 여자 사냥을 일삼는 예림 남편 제혁, 소름 끼치는 데이트 폭력의 인규와 현서 커플, 나쁜 남자 시리즈다. 잘 풀어나갈 것 같았던 정신과 의사의 정체도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이 와중에도 인물들의 사회 구조 속에서 인간관계의 본질을 파고드는 표현이나 심리 변화엔 감정이입이 잘 된다. 각자의 직업과 지위, 욕망을 위해서 얽혀있는 현실이 이해에 도움을 준다.
현재 인규의 죽음으로 스릴과 미스터리가 뒤엉켜가고 인물들의 치열한 진실게임이 펼쳐졌다. 그러다가 아직도 정사 장면이 훅 들어오는 건 뭔지. 별스럽지 않은 남자 하나 두고 나름대로 잘난 두 여자가 시앗 싸움하듯 보여주는 모양새도 참 알 수 없다. 징글징글한 애증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걸 언제까지 보게 될지.
지선우가 이혼 후 바닥을 치고 처절한 감정 혼자 겪어내야 하는 스산함을 이해해 본다. 또한 재혼한 여자와 익숙지 않은 환경과 감정 교류의 삐거덕거림이 있다 한들, 앞으로 어떠한 변곡점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간간이 고구마 넘기는 기분일 때가 있다. 그런데도 드라마는 여전히 그 자체로 시청자의 호기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요즘 여자들이 모였다 하면 빠지지 않고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이야기를 나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부터 시작돼 ‘밀회’를 거쳐 폭발한 김희애의 불륜 연기는 의사, 음악가 등 고스펙 불륜녀의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됐다.
이번 ‘부부의 세계’에서는 너무 완벽한 삶의 조건으로 균열 하나 있을 것 같지 않던 부부 사이가 어느 한순간 갑자기 남편의 오래된 불륜으로 급격하게 돌기 해 부부의 삶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인생까지 소용돌이치게 되는 부부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사실 간통죄까지 폐지된 마당이라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전대미문의 불륜들이 우리 주위에 넘실댄다. 드라마나 영화가 현실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거침없고 솔직한 불륜들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은 이제 정치적인 은유는 물론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면서 남의 허물만 나무란다'라는 뜻으로 청소년들까지도 사용하는 대중적 언어가 된 지 오래다.
가만 생각해보면 한국의 중년 여성들에게 '불륜'이라는 단어가 은밀하게 회자하기 시작했던 건 아마 이 영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너무 단아해 불륜이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가 조용조용 속삭이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개봉된 지 벌써 25년이 흘렀다.
아일랜드 시인인 예이츠의 시를 읽고 이탈리아 가곡을 듣는 지적이고 단아한 가정주부, 메릴 스트리프(프란체스카)는 아내의 취향은 전혀 모른 채 큰 소리로 떠들고 문을 쾅쾅 닫아 프란체스카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그런 남편과 살고 있다. 엄마가 이탈리아 가곡을 듣고 있으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자녀들은 요즘 유행하는 팝송으로 재빨리 바꿔버려 집안에서 프란체스카의 자리는 없다.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 시간은 서로 나눌 이야기도 없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없는 침묵의 시간으로 변한 지 오래. 가족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 채 그저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부속품처럼 그렇게 하루하루 생활에 찌들어가던 프란체스카에게 어느 날 남편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바깥세상의 살아 숨 쉬는 인생을 동경하게 해주는 그런 남자가 불현듯 나타난다.
배경은 1965년, 미국 중부 아이오와주 매디슨 카운티의 조용한 시골 마을.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조만간 철거될 이 마을의 명물인 로즈먼 다리를 찍기 위해 이곳으로 트럭을 몰고 온다. 낡은 청바지에 셔츠, 니콘 카메라를 메고 프란체스카가 동경하는 세상의 냄새를 풍기며 조근거리는 목소리로 ‘로즈먼 다리가 어디 있냐?’고 물어온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었다. 마침 남편과 두 아이는 나흘 동안 일리노이주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떠나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결혼 이후 처음 가족과 떨어져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된 프란체스카는 로버트가 길을 묻는 그 순간에도 가족들의 빨래를 널고 있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지구를 사랑하는 패션 브랜드로 알고 있지만 이 잡지는 지구의 자연을 보호하고 현대화로 사라지고 있는 옛것들을 찾아 기록으로 남겨놓는 전통의 잡지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격조 높은 잡지다. 그러니 전 세계를 다니며 오지와 천혜의 자연을 촬영하는 로버트라는 사진작가의 영혼이 얼마나 깊고 넓을지 쉽게 상상하고도 남는다.
결혼한 지 15년이 넘어 자신의 꿈을 접은 채 한 남자와 자식만을 위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던 프란체스카에게 세계의 풍물과 삶의 모습들을 렌즈에 담는 로버트의 인생은 동경 그 자체였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사는 로버트가 부럽기만 했다.
게다가 그와의 대화는 익숙하다 못해 더 이상은 나눌 이야기가 없는 남편과 나누는 대화와는 차원이 달랐다. 문학과 여행, 음악과 미술… 그 자체로서 너무나 환상적인 감정이입의 순간들을 공유한다.
두 사람의 섬세한 감정이 떨릴 듯 화면에 전해지던 장면이 있다.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저녁에 초대해서 함께 부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프란체스카는 로버트에게 감자 스튜를 만들어주기 위해 부산스럽기만 하다. 감자는 미국 중부를 상징하는 아이오와주의 대표적인 농산물.
프란체스카의 부산스러움을 느낀 로버트는 “제가 도와드릴까요?” 란 말로 그녀의 맘을 빼앗아 버린다. 너무나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남편과의 생활에 익숙한 프란체스카는 로버트가 요리를 도와주겠다고 하자 깜짝 놀라며 “요리를요?” “예… 요리를” “당근을 깎아주세요” “이거 말인가요” “예… 끝은 이렇게 다듬어야 해요”
짧은 단답식의 대화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낯선 두 남녀가 한 발짝 한 발짝 자신의 세계를 향해 들어오는 타인에게, 문을 열어주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부엌에서 함께 채소를 손질하고 감자 스튜를 저으며 그렇게 완성해갔다.
서로에게 배우자가 있다고 해도 어느 날 운명 같은 사랑이 나타날 수 있다. 뒤늦게 사랑의 열병을 앓다 제자리에 도로 주저앉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운명적인 사랑을 따라 지금까지 가꿔왔던 자신의 세상을 박차고 떠나 새로운 삶을 꾸리기도 한다.
대부분 우리는 순서가 잘못돼 '만났어야 할 운명의 파트너'를 만나 인생을 살고 있기보다 '스치고 지나갔어야 할 그 누군가'를 만나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며 산다. 착각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 믿으며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된다.
이렇게 착각으로 쌓아 올린 결혼이라는 견고한 성안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일상을 쌓고 그 일상이 다시 모여져 삶의 결로 퇴적된다. 퇴적된 내 인생의 결이 어느새 작은 봉우리가 되고 제법 봉긋한 작은 산 하나 만들어질 때쯤 우리네 인생은 노년의 삶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오래전 이 영화를 보면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 중년 남성과 중년 여성의 사랑이란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당시는 아직 중년의 감성은 아니었기에 100% 감정이입을 못했지만, 육체적 관계의 선을 넘는 것이 아닌 '정신적 교감'을 나누고 ‘시선을 맞추며 안타까워하는 그런 '선'을 나름대로 느낄 수 있었다.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그렇게 부산스럽게 타오르지 않는 사랑, 스튜처럼 오래 끓이며 뭉근히 재료의 맛을 우려내고 깊어지는 사랑. 하지만 ‘불륜’은 그러하지 못할 경우가 많으므로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속전속결로 잡아먹을 듯이 집안을 화염에 휩싸이게 한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며칠간의 만남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대화하며 깊은 울림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자신들의 사랑을 흔히 남녀들이 하는 것처럼 세속에서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 함께 떠나자는 로버트의 간절함을 뒤로하고 프란체스카는 이 작은 마을에 남아 가정을 지키고 자녀에게 헌신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로버트의 유품이 프란체스카에게 도착한다. 로버트가 로즈먼 다리를 찍은 사진이 표지로 담긴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와 니콘 카메라, 그리고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에게 남긴 다리 위의 쪽지.
프란체스카는 이 유품을 간직해오고 있다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유서를 남긴다. “살아온 인생은 가족을 위해 살아왔으니 죽은 뒤에는 가족묘지 대신 화장을 해서 다리에 뿌려 달라.”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로버트에 대한 숨겨왔던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영화도 연령대에 따라 감상했을 때 차이가 크게 난다. 예전에는 이 부분이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았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프란체스카가 자신이 죽은 후, 가족묘지 대신 화장을 해서 다리 위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말의 뜻이 이제 정확하게 이해된다. 프란체스카는 죽어서까지 가부장적인 가족의 굴레에 매여있기 싫었던 것이다.
그녀처럼 나도 죽으면 화장해서 유골을 태평양에 뿌려달라고 딸아이에게 말했더니 눈을 살짝 흘긴다. 바다를 떠다니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딸아이가 엄마가 보고 싶을 때 갈 곳이 없어서 곤란하겠다. 이런 생각이 드니 ‘난 또 어쩔 수 없이 엄마구나’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난 연휴 주말 방영된 ‘부부의 세계’에서 김희애가 자신의 아들에게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게 할 수 없다며 아무도 도우려 하지 않는 전 남편의 알리바이를 증언한다.
뒤를 이어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가운데 이미 헤어진 부부가 뜨겁게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고 옷이 흐드러진 침대를 보여주면서 끝나 전국의 여성들이 갑론을박 난리가 났다.
한번 갈라진 부부의 길은 다시 합쳐지지 않는다. 잠깐 합쳐지는 듯하다가도 이미 다시 파국을 맞는다. 사랑의 유효 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최고 스펙의 의사도 자신의 감정 다스리기는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부부의 세계’를 시청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 19의 극복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부 혹은 가족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다 알아야 하고 간섭해야 하고 내 뜻대로 콘트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내들이 의외로 많다. 내 눈앞에서 안보일 때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내 가시권 안에 있을 때는 완벽한 평강공주가 온달에게 시혜를 베푸는 모양새다. 흔히 똑똑하고 성공했다는 고스펙 여성들의 결혼생활은 평강공주 신드롬에 빠져 온달들을 관리하느라 부산스럽기 그지없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부부 사이의 적정한 거리 두기는 결국 나에 대한 객관화로 이어져 보다 성숙한 자아의 실현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제발, 몰빵 하지 말 것이다.
사랑은 다 가질 수 없어 안타깝고 그래서 귀한 것이다. 오늘을 사는 시니어들은 감자 스튜 같은 뭉근한 사랑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프라이팬에 와인을 부으면 불같이 일어났다가 금세 스러지는 그런 불꽃 같은 사랑을 꿈꾸나? 곰곰이 우리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마치 1980년대 극장가를 휩쓸었던 영화 ‘돌아이’의 주인공 황석아가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전영록은 어리숙하면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뜨거운 청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채 인터뷰 내내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와 같은 명곡들을 부른 주인이자 ‘바람아 멈추어다오’,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등 히트곡 작사 작곡자, 그리고 영화비디오테이프, 만화책, LP판, 심지어 피규어까지 수집하는 소문난 마니아다. 다양한 재능과 취미를 갖고 있는 전영록을 만나 그때 그 시절 7080 추억들을 꺼내 감성과 낭만의 시간으로 꽉꽉 채웠다.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 속에서 만능 엔터테이너의 모범을 보여줬던 이로 전영록을 지나칠 수는 없다. 당대 최고의 가수이자 흥행 배우로서, 그리고 작사 작곡까지 하는 아티스트로서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최고의 자리에 서 있었던 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들려온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그가 심각한 암 환자였고 사경까지 헤맸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아니 그게… 용종이 좀 큰 상태였는데 방송에서 이홍렬이 한 말을, 그걸 편집해서 사람을 암 환자로 만들더라고. 환장하는 줄 알았어요. 난 오래 살 거예요. 아니, 오래 살 거 같아.(웃음)”
일단 그가 암 환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정말 다행이었지만 이번에는 코미디언 이홍렬 씨와 그가 친구라는 게 또 놀라웠다. 그가 동안의 대명사라 믿기지 않았지만 실제로 이홍렬 씨와는 65세 동갑내기이며 중학교 동창이라 했다. 그는 여전히 젊다. 그러나 그 젊음이 외모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요즘은 블랙핑크가 좋다
“예전에 보람이에게 ‘난 티아라보다 포미닛이 좋다. 현아가 있어서’라고 말한 적이 있었죠.(웃음) 큰아들은 요즘 아이린을 좋아해요. 둘째는 쯔위를 좋아하고. 저는 블랙핑크가 좋아요. 걸크러시잖아요. 제가 이러고 살아요. 음반사에서 레드벨벳 포스터 구해놨다고 하면 얼른 가져와서 아들 방에 붙여주고.(웃음)”
전영록의 딸 전보람은 걸그룹 티아라의 멤버였다. 티아라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포미닛은 티아라의 라이벌 그룹이었으니, 그는 딸 앞에서 딸의 라이벌 그룹이 더 좋다고 칭송(?)한 셈이다. 요즘 아이돌 그룹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그가 말하는 아이린, 쯔위, 블랙핑크와 레드벨벳이 누구인지 이해가 잘 안 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 요즘 잘나가는 걸그룹과 아이돌 이름이다. 전영록의 취향 안테나는 그렇게 여전히 현재를 달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골프 좀 치러 다니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난 아들들 케어해주는 게 더 좋아요.”
삶의 보람, 두 아들과 눈 맞추기
그 말처럼 두 아들 전유빈, 전효빈 군은 그의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아들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요즘 아이들이 왜 부모와 얘기를 안 할까 고민해봤어요. 결론은 부모의 태도예요. 아이들이 대화를 좀 해보려 해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네가 뭘 알아, 어서 밥 먹고 공부나 해’라고 말하기 일쑤죠.”
그는 자식들을 존중한다. 어떤 때는 거의 친구처럼 대할 때도 있다고 한다.
“‘아빠가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응원이야. 물질적인 지원은 없어’라고 말하곤 해요.(웃음)”
그의 이러한 태도가 그를 젊게 만드는 걸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일상에도 여전한 젊음이 있었다.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마니아 전영록은 요즘도 행복한 마니아로 살아가고 있었다.
“음반을 한 20억 원 어치 정도 샀어요. 피규어 레진은 지금도 모으고 있고. 피규어는 한 3억 원 어치 샀을 거예요. 영화, 만화, 게임 관련 자료들도 모으고 있고…. 물론 아내가 싫어하죠.(웃음)”
음반, 피규어를 사는 데 수십 억을 썼다면 집 안은 거의 박물관 수준이 아닐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에 해결책이 생겼다.
“평창 알펜시아에 세계에서 가장 큰 피규어 박물관이 들어선대요. 친한 동생이 2층은 스튜디오로 쓰고 1층은 박물관으로 만든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 거 다 가져가라고 했죠.(웃음) 이런 제 취미 때문에 그동안 마음고생한 집사람이 그 얘길 듣고 너무 좋아하더군요.”
영화계와 만화계의 만남을 주선하다
물론 전영록의 ‘특별한 취미’가 아무 의미 없이 아내에게 스트레스만 준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 영화계가 만화를 소재로 영화로 만들기 시작한 게 바로 자신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이장호 감독에게 만화책을 갖다 준 건 ‘돌아이’ 시리즈 3편이 나올 무렵이었다. 처음 이 감독의 반응은 ‘야, 장난하냐?’였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형님, 보시고 별로면 버리시고, 이 만화로 영화를 만들어볼 의향이 있으면 이현세라는 만화가에게 연락해보세요’라고 했다. 그때 그가 건네준 만화책이 바로 이현세 원작의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 이 만화는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만들어져 대성공을 거뒀다. 이 작품이 1980년대 중후반 한국 영화의 흥행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돌아이’를 제작한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은 전영록의 이러한 감각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전영록에게 메가폰을 잡아보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제가 액션 신을 찍으려면 카메라가 여러 대 필요하니 다섯 대만 준비해 달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이 사장님이 ‘미친놈, 돌아이 짓 또 하네’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못했어요. 정말 하고 싶었는데.”
내가 스티브 잡스를 싫어하는 이유
전영록의 얘기를 듣다 보니 그는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독특한 얼리어답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스마트폰의 ‘스’ 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20년 동안 폴더폰을 쓰고 있는데 한 달 전에 고장이 나서 스마트폰 기능이 있는 폴더폰으로 겨우 교체했다. 당연히 카카오톡도 모른다.
“얼마 전에 지인을 통해 전유성 선배 어머니 부고 소식을 듣게 됐어요. 그런데 오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을 페북에 올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물었죠. 페북이 뭐냐고.”
그는 아날로그가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 고장 난 폴더폰을 또다시 폴더폰으로 바꿨다. 그러니까 그는 새로운 것이라고 무조건 받아들이고 애정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오랜 세월 빚어진 자신만의 공고한 세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요즘 세태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제가 스티븐 호킹 박사를 좋아하는데, 그분이 스티브 잡스를 싫어하셨어요. 저도 스티브 잡스를 싫어해요. 호킹 박사는 스마트폰에 매달리면 인성이 없어질 것이라 했거든요. 그 말대로 요즘 세대는 인성이 부족한 것 같아요. 애들이 잘못 배우고 있는 거예요.”
그는 최근의 미디어 문화와 예능 프로그램들에 대해 걱정이 많다. 요즘 사회가 점점 험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미디어에서는 절대 나쁜 말, 나쁜 행동을 하면 안 돼요. 그런데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한 건데 그걸 방관한 게 문제였죠. 아이들이 예능인들의 거친 행동과 말투를 보고 자라면서 인성이 사라졌다고 봐요. 힙합만 봐도, 랩은 거의 욕이고 남을 헐뜯는 내용이잖아요? 그걸 왜 놔두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가수가 맛있게 불러주면 그걸로 만족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고 물으니 전영록은 ‘뮤직 셰프’라고 답했다. 그가 요즘 꾸준하게 밀고 있는 명칭이다.
“뮤직 셰프란 음악에 MSG를 쳐서라도 맛있게 들려준다는 의미예요. 아구찜이나 갈비찜에 설탕 풀어넣어 보세요. 정말 맛있어져요.”
음악인 전영록은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최고의 가수이자 작사 작곡가다. 그래서 그가 ‘요즘 애들은 다 베껴서 창작이 없다, 공부를 안 한다’고 한탄할 때 그 말에는 자연스럽게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쓴 것은 40곡이고 드린 분은 여섯, 일곱 명 정도 돼요. 인순이 씨에게는 초창기에 줬던 게 있고 정수라, 김희애, 양수경, 이은하, 민해경… 얼마 전에는 남진 선배에게 ‘잘살고 싶소’를 드렸죠.”
그는 25년 동안 곡을 안 썼다. 이유는 간단했다. ‘싫어서’. 그러나 어느 순간 다시 곡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진 선배를 필두로 선후배 가수들에게 자신이 만든 노래를 주고 있다. 그가 마음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기고 싶은 거죠. 저작권료는 사후 70년까지 나오니까. 쓸 만큼, 먹을 만큼, 입을 만큼은 남겨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계속 만들고 있어요. 이 나이에 서점 가서 사전 보면서 작업하니까 재밌어요. 예전에도 가만히 있질 못했던 편이죠. 맛있는 거 나오네? 괜찮겠네? 그럼 썼으니까요.”
그는 선후배 가수에게 노래를 줄 때 작사 작곡비도 안 받고 그냥 줬다고 한다. 히트곡을 엄청나게 보유한 사람인데 아무것도 안 받았다니,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러나 아쉽지 않다고 했다. 그저 가수가 자신이 만든 노래를 맛있게 잘 부르면 그걸로 족하다는 것이다. 과연 뮤직 셰프다운 대답이었다.
연예인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
연예인 생활 46년 동안 어려운 순간을 잘 이겨낸 원동력이 무엇인지 묻자 ‘사람과 잘 안 만나고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만큼 그는 음악을 체질적으로 업으로 삼았다. 문득 그의 집안이 연예인 가족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의 아버지는 200여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영화배우 황해, 어머니는 ‘봄날은 간다’를 부른 가수 백설희다. 심지어 딸 둘도 아이돌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갑자기 가족이 연예인인 집안 분위기는 어떨까.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나쁘죠. 안 바빠도 바쁜 척, 아닌 척해야 하니까. 방송 촬영은 아침부터 나와서 김밥 먹으며 리허설을 계속해야 하니 그것도 힘든 일이고.”
그는 부모님에게 ‘유전자만 물려받았다’고 했다. 꽤 엄격한 부모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 다 벽이었어요 벽. 당장 당신들이 인정을 안 하는데 뭘. ‘아버지, 연기 지도해주시면 안 돼요?’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내가 너에게 지도를 해주면 넌 황해가 된다. 전영록은 없어’라고 대답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자식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해라’ 잔소리 안 해요. 그러면 전영록이 되는 거니까요. 알아서 해야지.”
죽을 때까지 노래 만들고 싶다
최근 오랜만에 그의 싱글 앨범이 나왔다. 작사 작곡가 전영록의 부활과 함께 가수 전영록 또한 출격을 준비해왔던 것이다.
“전유성 선배가 어머니 빈소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갔어요. 그런데 조덕배와 이문세가 먼저 왔다 갔더라고요. 얘기를 들어보니 덕배도 요즘 곡을 쓰기 시작했답니다. 덕배의 음악세계를 좋아하는데 반가운 소식이었어요.”
그는 음악 활동과 함께 연기도 다시 시작했다.
“이천희가 주연인 영화를 찍었는데, 거기 카메오로 나와 달라고 해서 오프닝과 엔딩에 등장해요. 그리고 현재 제작 중인 드라마에 방송 PD 역할로 나갑니다. 좋잖아요.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거니까. ‘나 암 환자 아니다’라는 거고.(웃음)”
12월 미국 공연을 준비 중인 그는 여전히 공연의 엔딩곡을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로 끝낼 거라 한다. 팬들과 함께 부르기에 좋기 때문이다.
“팬들은 저와 과거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들이 제 노래를 들으면서 자기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인터뷰 중 그의 30주년을 회상하면서, 그때 그에게 헌정하기 위해 모인 가수들이 기라성 같은 이들이었음을 얘기했다. 그러자 “이제 그들은 다 원로가 됐고, 나는 고스트가 됐다”고 말했다. 함께 한바탕 파안대소했다. 스스로를 ‘고스트’라고 칭하는 이 유쾌한 남자의 미래 계획은 ‘죽을 때까지 지인들에게 곡을 주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노래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고스트’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나 이 영원할 것 같은 젊음의 아이콘은 그 말이 안 되는 일을 말이 되게 만들 것 같다.
“이제 배우로서의 삶과 더불어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만났습니다. 예쁘게 잘 살겠습니다.” 스타 배우 김하늘(38)이 3월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한 살 연하의 사업가와 백년가약을 맺으면서 한 말이다. “평생 존중하며 사랑하고 ‘나’를 위한 인생이 아닌 ‘우리’를 위한 인생을 위해 살겠습니다.” 가수 가희(36)도 3월 26일 세 살 연상의 사업가 양준무씨와 미국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처럼 올해 들어 여자 스타들이 속속 결혼하고 있다. 탤런트 김유미(37)는 두 살 연하 배우 정우와 1월 16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결혼했다. 걸그룹 핑클 출신 연기자 이진(36)은 2월 20일 미국 하와이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여섯 살 연상의 미국 교포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탤런트 황정음(31)은 2월 2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세 살 연상 프로골퍼 출신의 사업가 이영돈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또한, 스타 연기자 김정은(40)은 4월 29일 금융업에 종사하는 동갑내기 재미교포와 결혼했다. 걸그룹 쥬얼리 출신 연기자 박정아(35)는 5월 15일 두 살 연하의 프로골퍼 전상우와 부부의 연을 맺을 계획이다.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중의 시선을 모은다. 그중에서도 여자 스타의 웨딩드레스, 결혼사진, 신혼여행지, 결혼식 장소와 형태 등 결혼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높은 관심을 끈다. 오죽했으면 ‘여자 스타 결혼식은 스타 마케팅의 종합전시장’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여자 연예인의 배우자는 대중의 관심을 넘어 사회적인 화제가 된다. 한류가 거세지면서 우리 스타의 결혼은 외국 언론의 주요한 기사 아이템이 됐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여자 연예인의 결혼식은 일반인의 소비와 라이프 트렌드를 이끌고 배우자관에 큰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그동안 여자 스타의 배우자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연예인 역시 일반인처럼 결혼 배우자가 매우 다양하지만,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위상의 변화와 함께 여자 연예인의 결혼 상대자도 크게 달라졌다.
대중문화 초창기였던 1900~1950년대에는 유교적 인식이 엄존해 연예인들의 사회적 위상이 낮았고 연예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많았다. 1900~1950년대 대중문화 초창기에는 여자 연예인과 일반인 결혼이 많았다. 또한, 백설희-황해, 전옥-강홍식, 황금심-고복수 커플처럼 상당히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동료 남자 연예인과 결혼했다.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위상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고 TV 등 매스미디어가 본격 등장한 1960~1970년대에는 여자 스타의 배우자는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스타들의 우상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이 시기에는 여자 연예인의 결혼 상대는 매우 다양해졌다. 특히, 이 시기 눈길을 끈 것은 여자 스타와 재벌 혹은 중견기업 오너와의 결혼이었다.
영화배우 문희는 1971년 당시 한국일보 부사장이었던 故 장강재 한국일보 회장과 결혼했고 영화배우 안인숙은 1975년 미도파백화점 사장이었던 대농그룹 박영일 전 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또한, 펄시스터즈의 배인순은 1976년 최원석 동아그룹 전 회장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중앙산업 조규영 회장과 결혼한 스타 정윤희를 비롯해 황신혜, 고현정, 김희애, 김성령, 이요원, 최정윤, 박주미 등 여자 스타들이 재벌 혹은 중견기업 대표와 결혼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결혼했다 이혼한 고현정은 “결혼 당시 많은 사람이 재벌과의 만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우연히 만나 사귀게 됐고 사랑해 결혼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재벌이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일부 여자 연예인들이 재미교포 등 외국 교포와 결혼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물론 엄앵란-신성일, 윤복희-남진, 김지미-나훈아 커플처럼 동료 연예인끼리의 결혼 역시 성행했다.
대중문화 시장이 급성장하고 대학생이나 대학 졸업자의 연예계 진출이 두드러진 1980년대에는 연예인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 이 시기 관심을 끈 여자 연예인의 배우자는 연예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결혼 후에도 연예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송사 PD, 영화감독 등 대중문화 분야 종사자였다. 원미경은 1987년 MBC 이창순 PD와, 양미경은 1988년 KBS 허성룡 PD와 결혼했다. 임예진 역시 드라마PD 최창욱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근래 들어서도 박성미-강제규 영화감독, 문소리-장준환 영화감독, 김민-이지호 영화감독처럼 여자 연기자와 영화감독의 결혼이 이어졌다.
원미경은 “결혼 후에도 연기를 계속하고 싶었어요. 연예계가 일반 직장과 성격이 크게 달라 배우자는 연예분야를 알았으면 했어요. (남편이) 드라마 PD라 연애할 때도 결혼 후에도 저를 많이 이해해주고 격려해줘요”라고 말했다.
대중매체가 급증하고 연예산업이 산업적 기틀을 갖추어 스타가 엄청난 이윤을 창출하는 주체로 떠오른 1990년대부터는 연예인을 발굴하고 육성, 관리하는 연예 기획사가 스타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하게 됐다. 이에 따라 연예 기획사 대표와 연예인의 결혼이 흔치 않은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1998년 가수 양수경과 예당컴퍼니 변두섭 회장과의 결혼을 시작으로 배우 신은경-김정수 커플처럼 1990년대부터는 연예기획사 대표, 연예인 매니저와 결혼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많아졌다.
또한, 1980년대 최미나-허정무, 최란-이충희 커플처럼 스포츠 스타와 결혼하는 여자 연예인이 등장하기 시작해 1990년대부터는 스포츠 스타와 결혼하는 여자 연예인이 급증했다. 톱스타 최진실이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과 결혼한 것을 비롯해 이혜원-안정환, 김성은-정조국, 슈-임효성, 한혜진-기성용, 유하나-이용규 등이 여자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커플의 대표적인 사례다.
1990년대에는 여자 스타의 배우자 중 가장 많은 것이 연예인이다. 하희라는 1993년 최수종과 결혼했고, 신애라는 1995년 연기자 차인표를 배우자로 맞았다. 이후 유호정-이재룡, 채시라-김태욱, 고소영-장동건, 유진-기태영, 이효리-이상순, 원빈-이나영 커플처럼 수많은 여자 스타들이 동료 연예인과 결혼했다.
신애라는 “같은 드라마 에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교제를 시작했다.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은 연예계에서는 작품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료 연예인과 사귀고 결혼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시선을 모은 스타 결혼식 중 하나가 최명길의 경우이다. 1995년 정치인 김한길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이후 흔치 않지만, 여자 연예인과 정치인의 결혼이 간간이 이어졌다. 심은하-지상욱, 황혜영-김경록 커플이 여자 연예인과 정치인의 만남으로 관심이 쏠렸다.
연예인이 청소년들의 직업 1순위로 부상하고 대중문화 산업이 만개한 2000년대 들어서는 여자 스타들의 배우자는 전문직 종사자에서부터 사업가, 스포츠 스타, 동료 연예인, 일반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해졌다
염정아-정형외과 의사 허일, 한지혜-서울지검 검사 정혁준, 전도연-사업가 강시규, 이영애-사업가 정호영, 소유진-요식업 사업가 백종원, 차수연-연예기획사 판타지오 대표 나병준, 전지현-금융업 종사자 최준혁, 한혜진-프로축구선수 기성용, 김지우-셰프 레이먼 킴 커플에서 보듯 최근 들어서는 여자 연예인의 결혼 배우자의 스펙트럼은 사업가에서부터 전문직 종사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어졌다.
2000년대 들어 한류가 거세지면서 외국 스타와 결혼하는 여자 스타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해 등 중국 드라마에 출연한 채림은 2014년 중국 배우 가오쯔치(高梓淇)와 결혼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에서 드라마 회당 출연료로 1억원을 받는 스타로 부상한 추자현도 최근 올해 중국 배우 위쇼우광과 결혼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추자현은 예비신랑 위쇼우광(于曉光)에 대해 “힘들고 지칠 때 힘이 되어주고 연기자로서 발전을 도와주는 동료이자 연인이다. 중국인이라는 점이 결혼을 결정할 때 장애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여자 스타들의 결혼 배우자는 시대 상황과 연예인에 대한 인식과 위상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또한, 과거에는 여자 스타들이 결혼과 함께 활동을 중단하거나 인기가 하락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들어서는 대부분의 여자 스타들이 결혼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제 결혼은 여배우의 인기의 무덤이 아니라 인기 상승 기폭제 역할까지 하고 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일이 정말 보람 있어요. 강의하면서 젊은이들의 열정과 신세대의 문화코드를 배우기도 하지요.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학생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해 강단에 서는 것이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드라마, 영화, 연극무대를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견 연기자 이순재의 또 다른 직업은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다.
대학가는 3월 입학식과 함께 활기찬 새 학기가 시작된다. 최근 들어 대학 캠퍼스에 교수나 강사로 나선 연예인들의 모습이 크게 늘었다. 방송, 연예, 연극, 영화, 음악 등 연예인 지망생이 급증하면서 대학교들이 경쟁적으로 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학생 수를 늘려 대학 강단에 서는 연예인들도 많아졌다. 무엇보다 방송, 연예, 연극, 영화 관련 학과에선 풍부한 현장 경험과 실무가 중요하므로 학생들이 연예인 교수를 선호한다. 또한, 연예인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전문성, 대중적 인지도가 대학교 홍보나 학생 모집에 큰 도움이 돼 유명 연예인을 교수로 임용하는 대학이 증가하고 있다.
모델 활동을 하면서 대학 강의를 병행하다 전업 교수로 돌아선 김동수 동덕여대 모델학과 교수 같은 경우도 있지만 강단에 서는 연예인 대부분은 연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대학 강의를 하는 연기자, 가수, 개그맨, 방송인, 모델 등은 석좌교수, 정교수에서부터 초빙교수, 객원교수, 특임교수, 강사 등 다양한 형태로 강의하고 있다. 출강하는 곳도 4년제 대학에서부터 전문대학, 특수 직업학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다.
생생한 현장이야기 학생들 좋아해
이순재는 세종대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가천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20년 넘게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에게 연기론을 강의하고 있다.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정교수로 있는 중견 연기자 장미희도 지난 1998년부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순재나 장미희처럼 대학 강단에 서는 연기자들이 적지 않다. 중견 배우 최란은 한서대 교수를 거쳐 2015년 2학기부터 서강대 영상대학원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연기 세미나’ 과목을 강의한다. 드라마와 연극무대에서 정교한 연기력을 보이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정보석은 수원여대 연극영상과 부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스타 연기자 고현정은 2014년부터 동국대학교 연극학부 겸임교수로 위촉돼 매체 연기 과목을 강의하고,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탤런트 배종옥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 최불암 유인촌 유동근 서인석 노주현 정동환 이인혜 명세빈 이영하 류승룡 이범수 김성령 남성진 등 많은 연기자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현재는 강의하고 있지 않지만, 한때 김희애처럼 교수로 재직하며 대학 강단과 인연을 맺었던 연기자들도 적지 않다.
정보석은 “연기자 교수들은 연기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므로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실기 강의를 하는 데 유리하다. 연예계에 진출하려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전달하고 조언도 해줘 학생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또한, 최란은 “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학생들에게 현장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산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강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가수와 뮤지컬 배우 지망생이 급증하면서 각종 대학의 실용음악과와 뮤지컬학과에서 강의를 하는 가수와 뮤지컬 배우들도 크게 늘었다.
가수 장혜진은 지난 2009년 한양여자대학교 실용음악과 전임교수로 임용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장혜진은 “전임교수로 실용음악과 보컬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가수로 활동하고 있기에 가수 지망생인 학생들의 강의 참석률이 매우 높다. 실기뿐만 아니라 이론도 철저히 지도한다”고 강조했다.
가수 옥주현은 겸임교수 자격으로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실용음악과에서 강의한 바 있으며 현재 동서울대학 공연예술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뮤지컬을 지도하고 있다. 가수 김연우는 서울종합예술학교 실용음악예술학부 전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인순이는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실용음악학부에서 강의하고, 바비킴은 서울예술전문학교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 겸 감독인 박칼린은 호원대학교 방송연예학부의 뮤지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밖에 대학 강단에 서는 가수로는 송대관 김경호 알리 등이 있다.
개그맨들의 대학 강단 진출 바람도 거세다. 개그맨 이윤석은 서울예술전문학교 방송연예학부 학과장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이봉원, 김한석은 한국방송예술진흥원에서 개그맨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희극 연기론을 강의하고 있다. 슬랩스틱 코미디와 다큐 예능의 1인자 김병만은 백제예술대학 방송연예과 겸임교수로, 개그맨 박준형은 경인여자대학 방송연예과에서 강사로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남희석 이영자 김미연 김수용 등도 대학 강단에 서는 개그맨으로 유명하다.
방송인, 모델, 쇼호스트 역시 속속 대학 강단에 서고 있다. 아나운서로 활동한 뒤 성신여대에서 후학들을 지도했던 손석희 JTBC 사장처럼 아나운서 중에는 대학 강의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KBS 등에서 명진행자로 활동하는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이금희는 모교인 숙명여대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MBC 아나운서 출신인 김경화는 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 겸임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임성민 문지애 박혜진 서현진 김병찬 김성경 등이 아나운서 출신으로 대학 강의를 하는 방송인이다.
일부 연예인 교수들 부실강의로 문제
김동수 동덕여대 모델학과 교수처럼 모델 출신 대학 강사, 교수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모델 박둘선은 한국예술원 모델과 전임교수로 활동하고, 한국모델협회 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향기는 대덕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유난희를 비롯한 쇼호스트들 역시 대학의 방송학과나 쇼호스트학과에 출강하고 있다.
이처럼 연예인들이 대학 강단에 서는 이유는 자신이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 등을 후학들에게 전수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연예인들이 대학 강의를 하면서 공부와 연구를 통해 새로운 정보와 지식, 이론을 습득해 연기나 무대에 적용해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도 대학 강단에 서는 이유다. 이 밖에 대학 강의가 연예인의 이미지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도 대학에 진출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서인석은 “열정이 넘치는 학생들을 보면서 연기자로서 초심을 잃지 않게 된다. 연기와 대학 강의를 병행하는 것은 힘들지만, 대학 강의를 하면서 새로운 이론을 공부하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어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상당수 연예인 교수들이 탄탄한 실기 실력과 풍부한 현장 경험으로 학생들에게 유익한 강의를 해 학생들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하지만 일부 연예인 교수들은 부실한 강의 등 문제점도 드러내고 있다. 시간강사, 겸임교수, 초빙교수, 전임교수, 정교수 등 각종 형태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는 연예인 중 일부가 방송연예 활동과 강의를 병행하는 관계로 잦은 수업 결강, 부실한 수업 내용, 신변잡기로 일관하는 강의 등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유명한 연예인 교수 수업을 신청했다가 강의 내용이 부실해 실망을 표하기도 한다. 새 학기에 강단에 서는 연예인 교수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해 내실 있는 강의로 학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를 원하고 있다. 경북 경산의 대경대학 방송학과 학과장으로 방송 MC 진행 실기, TV 예능 화법, 코멘트론, 아이디어 개발론 등을 강의한 바 있고 요즘에는 특강 형태로 대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개그맨 남희석은 “대학 강단에 설 때 학생들이 정말 수강을 잘했다는 말이 나오도록 강의에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나 한 사람이 잘못하면 연예인 전체에 누를 끼치게 된다. 연예인들은 대학 강단에 서는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걸크러시(Girl’s Crush)’. 여자가 여자에게 반하거나 동경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신조어다. ‘여자의 적(敵)은 여자’라는 옛 말이 무색하게 요즘의 젊은 여성들이 같은 여자를 동경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 여성부호들에게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찾는 젊은 여성들이 많이 늘었다. 전보다 많은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와중에, 권위적이고 남성적인 조직문화에 좌절하지 않고 성공을 이뤄내는 이들의 모습에 반하는 것이다.
김유준 프리랜서 기자 dongbackproject@gmail.com
장르 영화에는 관습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영화 유형에서 보편화된 극적 요소나 제재 또는 양식화된 표현방법’으로, 영어로는 컨벤션(convention)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서부영화에는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이 황야에서 말을 달려 추격을 펼치고 마지막에 결투를 벌여 악당을 물리치고는 고독한 모습으로 떠나는 모습이 종종 그려진다. 주인공이 못나게도 악당 짓을 하거나 “그리하여 스티브는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하고 끝나는 서부영화를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말, 질주, 추격, 결투, 고독한 주인공 등은 서부 영화의 대표적인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멋지다는 이유로 벤 존슨이라는 마부가 서부 영화에 기용되어 일약 영화계의 스타가 된 것은 그 덕분이다. 영원한 청춘스타라는 제임스 딘이 남긴 세 작품은 모두 현대극이지만, 그 작품들은 서부 영화의 전통에 따라 젊은 주인공을 고독하고 투쟁적으로 그림으로써 영화의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의 이른바 ‘치킨 런’ 장면이 오래도록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청바지를 입었거나 카우보이모자를 쓴 제임스 딘의 스냅 사진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여성, 과연 걸림돌이었나?
역설적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에 등 뒤에서 총 쏘는 것은 예사에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일 보는 상대에게 총격을 가하는 등의 비열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관습을 뒤집어 서부극을 사실적으로 승화했다’는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석권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관습은 액션이나 스릴러 같은 장르 영화에도 뚜렷이 존재한다. 여성이나 어린아이가 맡는 역할은 대표적인 예. 그들은 불꽃 튀기는 영화에서 자랑스러운 배역들을 맡지 못해왔다. 그들은 언제나 남성 주인공들의 질주를 가로막는다. 주인공이 파죽지세로 적들을 물리치려는 순간,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성은 약속이나 했다는 듯 적에게 인질로 잡힌다.
악당은 여성의 목을 팔로 휘어 감고 여성의 정수리에 총을 겨누고 있다. 그 광경을 남성 주인공은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어떤가?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은가?
카우보이 영화의 전통을 고스란히 현대에 이어받아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한 액션 영화 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형사 존 매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의 부인인 홀리(보니 베델리아)는 마지막 장면에서 한스 그루버(앨런 릭맨)에게 인질로 잡힌다. 매클레인은 등 뒤에 숨겨둔 권총으로 악당을 처치하고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입김으로 훅 분다. 전형적인 서부 영화의 컨벤션이다.
구태여 옛날 작품들을 예로 들 것도 없다. 의 이정범 감독이 장동건을 주연으로 내세운 신작 에서도 이런 장면은 여지없이 등장한다.
지금껏 장르 영화에서 여성은 ‘걸림돌’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그 정도에 머물렀음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여성, 스토리라인 끌어가고 있다
이제 영화 교과서의 이런 예들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최근 영화들에서는 더 이상 여성이 나약하게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영화에서 여성들은 스토리라인을 적극적으로 끌어나가고 있다.
액션 영화 장르의 대표주자 격인 시리즈부터 변화가 뚜렷이 감지된다. 최근작 에서 여주인공 일사(레베카 퍼거슨)는 기존의 여성 배역과 다르다. 누구 못지않은 역량의 소유자로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남자 주인공 에단 헌트(톰 크루즈)를 들었다 놨다 한다. 2000년도에 오우삼 감독이 연출했던 작품과 비교하면 차이는 확연하다. 2편의 니아(탠디 뉴턴)가 헌트에 종속돼 있는 캐릭터라면 일사는 단연 독립적인 존재. 나아가 헌트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내기도 한다.
조지 밀러 감독의 에서는 숫제 캐릭터의 비중이 뒤바뀌었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작 에 이르러 타이틀롤인 맥스(톰 하디)보다 여성 캐릭터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가 더 두드러진다.
외국 영화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영화는 오히려 한발 더 앞서 나간다. 일찍이 박찬욱 감독은 라는 완전무결한 ‘여성 주인공의 영화’를 발표한 바 있다. 박찬욱 감독은 제작 발표회에서 “우리나라에서 감독은 두 가지로 나뉜다”며 그 두 종류가 “배우 이영애와 작업해본 감독과 그렇지 못한 감독”이라고 말했다. 그가 얼마나 여성 배우와 캐릭터에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신작인 또한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 여성 중심의 영화가 분명하다. 정확한 구성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귀족 여성과 소매치기 여성이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고 알려졌다.
그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또 한 명의 거장 봉준호 감독은 라는 걸출한 영화에서 강인한(또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머니 상을 표현했다. 신작 에서는 10대 소녀인 여성 주인공이 그 역할을 떠맡는다.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1000만 관객을 불러들이는 최동훈 감독 역시 여성을 보는 시각이 전향적이다. 그의 초기 대표작인 이나 에서부터 여성들이 맡은 배역이 범상치 않았지만, 대단한 흥행을 기록한 에 이르러서는 안옥윤(전지현)이 맡은 비중이 다른 어떤 영화보다 크다. 어떤 평론가는 “전지현에 의한, 전지현을 위한, 전지현의 영화”라고까지 말했을 정도.
할리우드에서 돌아온 김지운 감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의 제목은 . 송강호와 공유라는 두 배우가 주연을 맡아 항일무장투쟁 운동을 펼치는데, ‘밀정’이라는 제목 캐릭터가 다름 아닌 여성이라는 후문이다.
여성이 당당히 주역
이런 현상은 영화뿐 아니라 대중문화의 다양한 장르에서 폭 넓게 드러나고 있다. 같은 뮤지컬, 등의 TV 드라마, 같은 게임에서 강인한 여성이 주역을 맡고 있다. 무엇보다 상업성에 민감한 대중예술 제작자들이 여성을 주인공을 내세우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그러한 여성 캐릭터가 지금의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는 남성 대중이 혀를 끌끌 찼을 여성 캐릭터들을 요즘 사람들은 바람직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알파걸’이니 ‘걸크러시’니 하는 낯선 용어들이 언론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심심찮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게 된 이유에 관해서는 비교적 분석이 완료된 느낌이다. 서울대 배은경 교수(여성학 협동과정)는 대학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적 변화가 이런 현상을 낳았다. 경제적 능력을 통해서만 안정적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지위가 높은 전문직· 고연봉 여성들이 칭송받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현상이 대중문화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경제 불황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분석도 많다. 이런 시기라면 남성들이 사회에서 경제력을 잃어가는 대신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과거에 비하면 바람직한 편이지만 여성의 활약만 강조되었을 뿐 불평등한 사회 구조는 여전하며 이에 대한 비판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에는 이런 지적에 대한 반성까지 대중문화에 투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성난 엄마’의 출현이다. 여성 중에서도 어머니들이 나서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같은 영화들은 모두 어머니가 가족을 잃고 복수에 나선다. 영화뿐만 아니다. 지난해 방영된 서울방송의 을 비롯해 올해 문화방송이 공개한 과 서울방송 등은 아예 제목에서부터 어머니가 주인공임을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그들은 하나같이 여성이나 어린이 같은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 권력층의 부패 커넥션 등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의 주인공 조강자(김희선)는 자녀와 관련된 사회문제에 분노하고, 그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우리 시대의 ‘앵그리 맘’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은 아예 어머니로서의 주인공보다는 여형사로서의 캐릭터에 더 집중한다. 강력계 형사인 주인공 최영진(김희애)은 누가 봐도 ‘나쁜 아빠’인 강태유(손병호)가 상징하는 남성 중심적 권력의 부조리와 강력히 맞붙어 싸운다. 단지 여성의 몫이 늘어난 정도가 아니라 과거의 투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이다. 남성들과 경쟁해 성공한 여성들의 모습은 같은 여성들에게 당연히 쾌감을 준다. ‘롤모델’이 된 여성 리더들은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여권(女權) 문제를 공식석상에서 거론하면서 여성들의 대변인이 돼주기도 한다.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성의 몫이 늘어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부터 그런 양상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최근의 현상들은 지난날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이며 더불어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과거의 힘센 여성들이 단지 자신들을 핍박하는 남성에게 대항했다면, 요즘 여성들은 사회라는 시스템 자체에 저항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여성들의 활약은 수준과 차원을 드높이고 있다. 지금의 여성들은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다.
# 알파걸 Alpha Girl 공부, 운동, 대인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또래 남학생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성과를 보이는 엘리트 계층의 여성을 일컫는다. 그리스 알파벳의 첫 자모인 알파(α)에서 유래됐다. ‘첫째가는 여성’이라는 의미에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아동 심리학자인 댄 킨들런 교수가 북미지역에 거주하는 113명의 소녀를 인터뷰하고 남녀학생 900여 명에게 편지로 설문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만든 개념으로 2006년 그의 저서 <알파걸, 새로운 여성의 탄생>을 통해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 걸 크러시 Girl Crush 어떤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느끼는, 일반적으론 섹슈얼한 감정이 동반되지 않은 강렬한 호감 혹은 감탄을 뜻한다. 남성들이 스포츠 스타들에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된 의 여성 래퍼들이 여성 팬들에게 강력하게 지지받은 것은 대표적인 걸 크러시 현상으로 꼽힌다.
역사상 중년이란 연령층이 이처럼 주목을 받은 적이 있을까? 중년은 생물학적으로 꺾이면서 신체적 노화가 본격화되는 시기다. 여기에 조기 퇴직 등으로 사회경제적 위기와 불안이 가세하는 시기다. 위기의 중년에 주목해온 사회학자 김찬호는 중년에 부딪히는 난감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오로지 앞으로만 내달려왔건만 인생의 절반에 이른 가파른 고비에서 이정표가 갑자기 사라진다. 앞길은 온통 오리무중, 가속 페달을 밟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속도를 늦출 수도 없다.”
중년은 이렇듯 위기와 불안을 표상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찬미되고 있다. ‘꽃중년’ 등 중년을 지칭하는 수식어는 중년을 과거와 다른 ‘새로운’ 세대로 호출한다. 유례없는 일이다. 지금의 중년담론은 이렇듯 두려움과 찬미, 불안과 영광의 양면을 지닌다.
그동안 세대담론은 늘 청년의 몫이었다. 청년은 시대의 아픔이자 시대정신의 표상이었다. 청년은 수구와 기득권의 저항에 맞서는 변화를 상징했고 펄펄 끓는 청춘은 그 자체로 사회의 ‘희망’이었다. 반면 중년은 노년과 청년 사이에 끼어 묵묵히 자식 뒷바라지나 하고 부모 부양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특별한 자기 정체성을 갖기 어려운 연령층이었다.
중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40대부터 50대 초반까지가 생물학적 중년에 가장 가깝다. 이 연령대 중 상당부분이 80년대 대학을 다녔거나 그 시기의 직·간접적 문화권에 있었던 386세대와 겹친다. 주지하다시피 이들이 청년일 때는 학생운동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한 시기는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로 별다른 스펙과 준비 없이도 사회에 진출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20대에서부터 30대까지 한국사회의 변동기에 정치적, 사회경제적으로 열린 기회를 맘껏 누릴 수 있었고 역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지금의 중년담론은 80년대 청년담론의 주역이었던 386세대가 중년이 된 시대, 이들을 주연으로 다시 호출하는 담론인지도 모른다. 이미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이 사회의 주류가 되거나 기득권이 된 386세대는 이렇게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지평 위에서 중년을 조망할 때만이 중년에 대해 제대로 접근할 수 있다.
◇ 중년여성, 당당한 주체로 성장한 세대
현재 중년담론의 가장 큰 축은 중년에 맞닥뜨리게 되는 신체적,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것이다. 중년의 위기와 불안은 여러 방면과 층위에서 엄습한다. 일자리 불안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 불안한 노후와 건강 문제, 그리고 자식세대인 청년층의 불안도 지금의 중년층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중년의 위기와 불안에 대한 담론은 대체로 남성을 염두에 두고 전개된다. , 등과 같이 중년남성을 염두에 둔 힐링서는 도처에 깔려 있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정작 지금의 자신은 초라하고 지질해져 버린 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와 토닥임이 주 내용이다. 물론 ‘꽃중년’ 등과 같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문화적으로도 세련되며 외모의 측면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남성들이 등장해 갈채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극히 소수의 예외적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중년의 위기를 담고 있는 담론에서 중년여성은 비켜서 있다. 중년여성에 대한 서술은 다른 결을 지닌다. 기존의 중년여성은 육체적으로 퇴화한 ‘여성’ 아닌 ‘여성’으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젊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중년여성은 그냥 ‘아줌마’일 뿐이었다. 하지만 의학의 발달로 인해 아름다움에서 젊음이 차지하던 절대적이고 독보적 위치가 약화되고 있다. 경제적 여력이 뒷받침된다면 의학의 힘을 빌려 얼마든지 시간을 멈추거나 심지어 되돌릴 수도 있다. 여기에 내면의 성숙미와 우아함까지 가세할 경우 20대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카피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중년여성은 과거의 중년여성과 다르다.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중년여성이 청년이었던 80년대와 90년대, 성장의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시기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민주주의가 본격화된 시대였다. 여성들도 자연스럽게 성평등 의식을 받아들이면서 남성과 대등한 여성으로서의 주체성, 가부장제에 속박되지 않는 ‘자아’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오로지 아내로서, 엄마로서 ‘희생’해온 엄마 세대와 달리 지금의 중년은 이미 청년시절부터 여성으로서의 주체성을 고민해온 것이다.
중년여성들이 청년이었던 시기, 한번쯤은 접했을 공지영의 소설 는 가부장제 문화와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한 반감과 아울러 여성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보여준 상징적 작품이다. 가족의 행복, 자식의 행복에 앞서 하나의 주체로서 자신의 삶과 행복을 고민하기 시작한 세대, 그것이 바로 지금의 중년여성이다.
◇ 문화와 소비의 주체
문화의 영역에서 중년여성은 중요한 향유층이자 소비 주체다. 이들은 성장기였던 80년대와 90년대 대중문화를 즐기면서 문화적 감수성을 습득했다. 취미와 여가도 적극적으로 즐기며 자신에 대한 투자에도 인색하지 않다.
엄마 세대들에게서 종종 나타나곤 했던 ‘여고 동창회’에서의 과시적, 사치적 소비와는 달리 그 소비는 ‘나’라는 자아, 주체를 향한다. 1968년생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는 중년여성들을 극장으로 대거 불러냈다. 극장을 가득 메운 중년여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환호했고 공감했다.
등 중년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는 불륜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었지만, 한 여성이 속박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주체로서 일어나는 과정에서 ‘불륜’을 설득력 있는 소재로 삼았다. 많은 중년여성들이 주인공 김희애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열광했다.
최근 중년여성의 불륜이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가 잦은데, 소위 ‘막장’ 성격보다는 여성이 주체로 일어서는 과정에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소재로 활용되는 측면이 적지 않다. 한 드라마 평론가의 분석처럼 “결혼이란 제도로 자기 정체성과 삶의 결정권을 잃어버리는 여성이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그 발단을 만드는 자극제로서 ‘불륜’만큼 강렬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 행복의 주체로서 중년여성
행복에 대한 조사를 보면 특이한 대목이 있다. 40대 중년 중에서도 남성과 여성 간 차이가 극과 극에 이른다는 점이다. 한국심리학회가 2010년 발표한 한국인의 행복지수에 따르면 전 연령층 중 40대 남성이 가장 불행했고 40대 여성이 가장 행복했다.
이 조사에서 40대 남성들은 다른 집단과 비교할 때 자신의 성취·성격·건강 등과 같은 개인적 측면은 물론 인간관계·소속집단과의 관계와 같은 사회적 측면 모두에서 만족 수준이 가장 낮았고 삶에 흥미를 느끼는 정도도 전 연령층 중 가장 낮았다.
반면 가장 행복한 집단인 40대 중년여성은 긍정적 정서면에서 모든 연령집단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40대 중후반이면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해 자신만의 시간을 누릴 여유가 생기고 경제적으로도 안정기에 이르는 시기다. 40대 여성의 높은 행복도에는 이러한 점도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중년여성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행복을 갈망하고, 고민하며, 일상에서의 실현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바라는 행복은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충분히 실현가능한 소박한 것에 가깝다.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 지지와 공감을 할 수 있는 친구, 기댈 수 있는 이웃 등. 이처럼 중년여성의 행복은 외부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직접 찾고 얻어낸 것이다. 행복에 이르는 길과 방법을 아는 중년 여성, 그래서 이들은 행복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다.
◇ 행복의 조건과 장애물
중년여성들에게 행복의 조건은 단순하다. 이들은 경제적 안정, 사회적 성공 등과 같이 이루기 어려운 세속적인 욕망을 좇기보다 일과 여가의 조화, 공동체에 대한 헌신 등 다른 길을 찾고 있다.
여가와 놀이는 중년여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핵심 요인이다. 여가를 통해 자신을 성찰할 여유와 힘을 얻게 되고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 이들은 문화적 소비와 자신에 대한 투자에 인색하지 않다.
그동안 가족에 헌신하느라 잊고 지냈던 ‘자아’를 돌아보고 친구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여행을 통해 지나온 삶을, 그리고 함께 나이 들어감을 나누고 공감하는 중년여성들은 도처에 있다. 여기에는 한비아, 김남희 등 여성 여행 작가들의 기여가 적잖다. 자유롭게 자아를 찾아 떠나고 여행을 통해 당당하고 멋지게 성장하는 모습은 중년여성들의 로망이다. 이들은 지침 없는 성장과 변화를 꿈꾼다.
공동체에 헌신하는 중년여성들도 이전과 달라진 변화다. 가족 안에 갇힌 시선을 외부로 돌려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중년여성이 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분노한 앵그리맘들이 자기 자식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차고 나와 부당함을 제기하고 변화를 외칠 때, 이들의 존재감은 그 누구보다 묵직하다. 이들의 사회적 지평의 확대는 정치사회적 사안에서도 남편이나 자식에게 속박되지 않고 주체로 서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년여성의 달라진 위상은 일터에서도 확인된다. 임원 및 관리자급 중년여성들이 많아졌다는 양적인 측면을 넘어 질적인 측면에서 이들은 과거와 다른 존재감을 뿜어낸다. 공감능력, 수직적 위계가 아닌 수평적 연대, 위로와 치유 능력 등은 갈수록 팍팍해져가는 사회 속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해진 덕목들이다. 공감과 배려를 갖춘 여성의 존재는 그 자체로 소중하며 힘이 된다. 수직적 위계 속에서 가파르게 승진하는 사람이 아니라 동료와 교감하며 함께 가는 법을 체득한 중년여성이 존중받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중년여성들의 아킬레스건은 무엇일까? 역시 자식이다. 이들의 주체성과 자아가 자식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헬리콥터맘’과 같이 자녀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고 엄마 마음대로 설계하려는 경우 불행한 결과는 예정되어 있다. 이는 자녀의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자녀를 통해 대리충족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식과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분리 불안증은 중년여성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이다.
◇ 중년여성, 새로운 ‘이륙’이 준비된 층
인생의 절정을 누리고 있는 그들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원칙은 중년의 정체성 확립, 일과 여가의 조화, 용감한 현실주의와 성숙한 낙관주의의 조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배려의 조화, 진지한 성찰과 과감한 실행의 조화, 자신만의 자유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의 조화였다. 이는 중년여성의 삶 속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항목들이다.
중년은 착륙의 시기가 아니라 또 다른 ‘이륙’이 가능한 시기라고 한다. 역사상 어느 세대보다 행복을 갈망하고 실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집단, 개인의 행복을 넘어 좋은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집단이 바로 지금의 중년여성이다. 착륙이 아닌 새로운 이륙을 위해 중년여성은 이미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다.
>> 글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hgy4215@hani.co.kr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회학과를 다녔고 여론분석전문기관 한국사회여론연구소를 거쳐 지금은 한겨레신문사 경제사회연구원에서 사회조사센터장을 맡고 있다. 사회적 변화와 트렌드를 여론이란 프리즘으로 분석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에서 정치사회적 이슈는 물론 세대와 문화 등을 주제로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