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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도 크고 통은 더 큰 사람 백범, 그가 머문 숲
- 걷기 쉬운 둘레길이다. 산이 높지 않고 구간 거리도 짧은 편이니까. ‘백범 명상길’ 2코스(3km)를 걸을 경우 한 시간 반이 소요된다. 볼 것 많은 거찰, 마곡사 답사도 즐겁다. ‘정감록’은 마곡사 일대를 난리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의 하나로 꼽았다. 마곡사(麻谷寺) 들머리. 노보살의 허리가 기역자(子)로 휘었다. 향초가 들었을까? 야윈 등허리에서 작은 배낭이 대롱거린다. 그마저 무거워서겠지. 발걸음은 추를 매단 듯 더디다. 하지만 아랑곳없다. 안간힘을 다해 오르고 또 오른다. 노인은 오늘 불단 앞에 엎드려 알량한 아들놈의 복덕을 빌려나? 까마득한 고대에도 우리네 어머니들은 저렇게 절을 찾았을 게다. 부처 아니고선 기댈 언덕이 없어, 삶의 절박한 굽이를 만날 때마다 산을 올랐을 게다. 모든 어머니의 모든 기도는 시공을 초월해 애절하다. 불자들만 절을 찾는 건 아니다. 세상 쓴맛을 본 사람들도 곧잘 절집을 찾아든다. 백범 김구. 그도 마곡사에서 짧은 한때를 보냈다. 보리심(菩提心)에 이끌린 출가가 아니었다. 몸을 숨기려는 입산이었으니까. 간도 크고 통은 더 컸던 사람. 그의 행보엔 거침이 없어 파란도 많았다. 1896년, 백범 나이 스물하나 때엔 이른바 ‘치안포 사건’을 야기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에 대한 분노가 들끓던 때였다. 혈기 방장했던 청년 백범은 일본군 특무장교 하나를 척살했다. 이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집행일 직전, 탈옥(고종의 형집행정지 명령으로 가출옥했다는 설도 있다)에 성공했다. 그 뒤 마곡사에 은신했던 거다. 마곡사는 태화산 품에 안긴 절이다. 마곡사로부터 산 곳곳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엔 ‘백범 명상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백범이 명상했던 길이란다. 세상의 명명(命名)들은 왜 이렇게 화려할까? 도망자 신세가 된 백범의 뒤엉킨 젊은 가슴에 명상이 고일 자리가 있기나 했을까. 억울하고 서러워 갈피없이 흔들리지 않았을까. 그저 백범을 명상하는 길이라 읽자. 백범의 굳센 기개를, 은신의 고독을, 시대에의 울분을 헤아리며 천천히 걷기에 좋은 둘레길. 산이 있으니 물이 흐르고, 절이 있으니 향내가 번진다. 마곡사 경내엔 진초록을 뿜는 향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백범 향나무’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어느덧 노경에 접어든 백범이 마곡사를 다시 찾아 심은 나무라지. 옹골차게도 자랐다. 거목은 아니지만 거목이다. 백범이라는 거인의 아우라 아롱져서. 그렇다면 저 고결한 향나무, 백범이 후세에 건넨 숭고한 봉헌이라 해두자. 변하지 않는 세상의 실없음과 누추함을 질책하는, 신랄한 역설의 봉헌. 산길을 오른다. 도회의 익숙한 길에서 빠져나온, 이 들썩이는 기분은 해방감? 상가와 차량으로 너절한 도시에서와 달리, 숲에서 둘러보면 모든 게 순도를 머금고 다가온다. 풀들은 낮은 바닥에서도 얼마나 태연한가. 나뭇가지를 툭 치며 세차게 날아오르는, 저 조막만 한 새의 생존은 얼마나 자립적인가. 어쩌면 산에 사는 것들이야말로 진실을 구현한 존재다. 사람만 부질없다. 진실을 캔다 하고서 제 무덤을 판다. 그게 사람만의 일도 아니지. 역사도 시대정신도 대개 진실과 거리가 멀다. 암살로 생을 마친 백범의 불행이라니. 어처구니없음이라니. 궁색한 잡념을 굴리다 백련암에 들어선다. 백범이 은거해 도를 닦았다는 암자다. 산중턱 작은 암자라 별안간 앞이 탁 트인다. 모든 별안간 탁 트이는 순간들은 희열을 가져다준다. 그마저도 말 그대로의 순간일 뿐이고, 이내 기갈(飢渴)이 몰려든다. 백범은 작은 암자에서 어떻게 견뎠을까. ‘백범일지’를 보면, 그는 ‘굴갓 쓰고 염주 걸고 바랑 지고’ 한동안 중 생활을 했다. 개울가에서 삭발례를 하고, 원종(圓宗)이라는 법명까지 얻었으니, 위장 은신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는 아무나 닦는 게 아니다. 절구통처럼 진득이 눌러앉는 취미가 있는 자여야 수행에 목을 걸 수 있다. 백범은 그런 개성이 아니다. 그가 한 마리 잉어라면, 자기 배만 채우고 마는 게 아니라, 강물을 통째 퍼다 모든 배들을 채워줘야 직성이 풀리는 잉어가 아니었을까. ‘백범일지’를 또 보면, 그는 ‘중놈’이 된 것을 ‘자소자탄’하며 마곡사의 날들을 견디었다. 한마디로 고(苦)라! 진통제를 삼키고 돌아가는 세상을 가만 두고 볼 수 없었으니. 승냥이 우는 산방에 홀로 머물며 소나기처럼 울고 난 뒤였을까? 백범은 어느 날 홀연히 절을 떠났다. 은사에겐 금강산에 공부하러 간다 했다. 그러곤 광복운동 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숲길 군데군데, ‘백범 명상길’ 팻말이 걸려 있다. 명상은 오간 데 없으나, 마음엔 샘물이 고인다. 백범의 행장 한 자락 훔쳐보자니.
- 2019-10-0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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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싸한 겨울 바다를 벗삼아 걷는 길 ‘외옹치 바다향기로’
- 겨울에는 왠지 속초에 가야 할 것 같다. 눈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갯배를 타고 건넜던 청초호, 눈에 파묻힌 아바이마을, 영금정에서 봤던 새해 일출, 이 딱딱 부딪혀가며 먹었던 물회의 추억이 겨울에 닿아 있어서일까. 이번에도 속초 바닷길과 마을길, 시장길을 구석구석 누비는 재미에 빠져 남쪽 외옹치항에서 북쪽 장사항까지 걷고 말았다. 걷기 코스 속초고속버스터미널▶외옹치 바다향기로(속초해수욕장~외옹치항 왕복)▶ 설악대교▶ 아바이마을▶갯배▶속초관광수산시장▶동명항▶영금정전망대▶해돋이전망대▶속초등대(택시)▶속초시외버스터미널 바다 위를 걷는 느낌 외옹치 바다향기로 속초 도보여행 첫 코스는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외옹치 바다향기로’다. 속초해수욕장부터 외옹치해수욕장을 거쳐 외옹치항까지 이어진 바닷길을 걷는다. 길이가 약 1.74km이며, 속초해수욕장 850m 구간과 외옹치 해안데크산책로 890m 구간으로 나뉜다. 천천히 걸어도 편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서 속초해수욕장 정문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 금세 눈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코끝이 찡한 날씨에도 겨울 바다를 찾은 이가 꽤 많다. 바닷가 포토존 너머로는 가마우지들이 모여 사는 조도(鳥島)가 보인다. 삿갓 모양의 조도와 철썩이는 파도를 감상하며 모래밭 옆 산책로를 거닌다. 속초해수욕장과 연결된 외옹치해수욕장에 다다르면 외옹치 해안데크산책로 입구가 나온다. 외옹치 해안은 1970년 무장공비가 침투한 이후부터 작년까지, 65년 동안 미개방 군사 작전 지역이었다. 작년 4월 외옹치 바다향기로를 개통하면서 개방됐다. 해안데크산책로는 암석관찰길, 안보체험길, 하늘데크길, 대나무명상길 등의 주제로 나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해안 철책과 초소가 있는 안보체험길을 지나면 ㄷ자형 전망대가 나온다. 송혜교, 박보검 주연의 tvN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두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 사랑을 싹틔운 장소다. 바다 풍광이 가장 멋진 구간은 하늘데크길이다. 지네바위, 굴바위 등 이야기가 있는 갯바위와 은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를 마주 보며 걸을 수 있다. 겨울철 09:00~17:00, 여름철 09:00~19:00 개방. 아날로그 감성 갯배 그리고 아바이마을 외옹치항에서 속초해수욕장으로 되돌아올 때는 바닷가 산책로 옆 해송숲길을 선택한다. 숲 분위기가 그윽해 사색하며 걷기 좋다. 해송숲을 지나 방파제와 나란히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청호동 아바이마을을 만난다. 실향민 정착촌인 아바이마을은 한국전쟁 때 함경도에서 피란 온 실향민 다섯 가구가 백사장에 터를 잡으며 생겨났다. 마을 동쪽은 바다, 서쪽은 청초호와 접해 있다. 청초호와 바다를 연결하는 신수로를 건설하면서 마을이 남북으로 나뉜 것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로 위로 붉은 아치형의 설악대교를 세웠다. 설악대교를 건너기 전에 교각 아래의, 실향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아트플랫폼 갯배’에 들른다. 전시장과 카페로 꾸민 공간이다. 2층 창가에 앉아 신수로를 오가는 어선들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긴다. 설악대교 교각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리 위로 올라가면, 진한 바다 냄새가 풍기는 아바이마을과 속초항의 풍경이 펼쳐진다. 수로를 건넌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바로 북쪽 아바이마을에 도착한다. 주택가인 남쪽 아바이마을과 달리 이곳은 실향민들이 함경도 음식을 파는 식당가다. 좁은 골목에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 명태순대, 가자미회냉면, 막국수 등을 파는 식당이 빼곡하다. 단천식당과 신다신식당이 함경도 음식 원조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신다신식당에서는 함경도식 육개장인 가리국밥을 판다. 아바이순대와 소고기, 대파 등을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인 국인데, 소고기국밥과 맛이 비슷하다. 다음 코스인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가기 위해 아바이마을 갯배 선착장으로 향한다. 갯배는 주민들이 청초호를 건널 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무동력 운반선이므로 중앙동 선착장과 아바이마을 선착장 사이에 걸어놓은 쇠줄을 갈고리로 잡아당겨야 움직인다. 아바이마을 주민이 탑승해 줄을 끌어당기지만, 승객들도 눈치껏 힘을 보태야 한다. 갯배 요금은 편도 500원이며 운행시간은 3분이다. 시장 골목에서 발견한 헌책방 갯배에서 내려 생선구이 골목을 지나면 속초의 명동이라 불리는 로데오 거리에 자리한 속초관광수산시장이 코앞이다. 속초를 잘 아는 이에겐 중앙시장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 시장 안에 수산물 골목, 청과물 골목, 순대 골목, 잡화 골목 등 취급 품목별로 골목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시장 지하에는 활어회 센터가 있다.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은 제철 생선을 볼 수 있는 수산물 코너다. 가게마다 몸통이 물풍선처럼 빵빵한 곰치가 좌판을 차지하고 있다. 옛날에는 어부들이 잡은 즉시 바다에 버려서 물텀벙이라 불렸던 생선인데, 지금은 금값이다. 곰치로 국을 끓이면, 곰치 살이 입안으로 호로록 들어갈 만큼 부드러운 데다가, 국물 맛이 시원해 겨울 별미로 손꼽힌다. 시장 골목을 요리조리 구경하다가 대경중고서점을 발견한다면, 보물을 캔 것과 마찬가지다. 속초에 하나뿐인 귀한 헌책방이니 말이다. 책방 안에는 천장 턱밑까지 책이 꽂혀 있다. 책 무게 때문에 등이 휜 나무 선반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헌책방 주인장은 소녀처럼 수줍음이 많은 전경화 씨. 속초 토박이인 전 씨는 “제가 헌책방을 인수해 장사한 지도 25년이나 됐네요. 이곳 역사가 50년은 됐을걸요. 영업 이익만 생각하면 문 닫아야죠. 많은 사람이 좋아해주셔서 그 보람으로 책방을 지켜요. 우리 책방은 A급 중고 책만 취급하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요”라고 말하며 속초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속초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식당과 좋아하는 음식들을 술술 풀어놓는다. 시장 안 작은 헌책방이 오래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며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속초등대에 올라 겨울 바다 마주하기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동명항에 닿는다. 동명항 활어센터는 자연산 활어회만 취급하며 횟값이 저렴한 곳으로 유명하다. 건물 안에 횟감을 팔고, 손질하고, 매운탕을 끓여주는 구역이 따로 있다. 2층 상차림 식당에는 대게 철을 맞아 손님이 바글바글하다. 동명항 근처에는 속초등대, 영금정, 영금정전망대, 해맞이정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 영금정은 속초등대와 동명항 사이 해안에 펼쳐져 있는 갯바위다. 갯바위 꼭대기에 올라앉은 영금정 전망대에 서면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나간 해맞이정자가 발아래 굽어보인다. 겨울에는 해맞이정자 앞으로 해가 떠 일출 명소로 유명해졌다. 해맞이정자에서 빤히 보이는 속초등대 전망대에 오르면, 왼쪽으로 영금정과 동명항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속초 시가지와 설악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력이 있다면, 속초등대에서 등대해변 쪽으로 내려가도 좋다. 등대해변의 산홋빛 바다색이 아름다워, 입소문 난 횟집과 전망 좋은 카페가 바닷가에 속속 들어섰다. 호반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영랑호도 가까이 있다. 주변 명소 & 맛집 봉포머구리집 봉포머구리집은 잠수부였던 주인장이 작은 가게로 시작해 음식 맛 하나로 큰 빌딩을 세운 곳이다. 해삼, 비단멍게, 문어숙회, 광어회, 성게알, 백골뱅이 등을 소복하게 담아낸 해물 모둠물회를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진다. 여덟 가지 찬과 소면 두 덩이가 밥상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새콤한 육수와 꼬들꼬들한 해산물과 아삭한 채소가 조화를 이뤄 엄지가 절로 척 올라간다. 속초시 영랑해안길 223, 033-631-2021, 09:30~21:30 칠성조선소 살롱 조선업이 쇠퇴해, 칠성조선소에서 배를 만들지 않게 되자, 칠성조선소의 3대 대표가 조선소 건물을 카페와 전시공간으로 개조했다. 배를 만들고 수리했던 허름한 조선소 건물은 전시장이 됐고, 만든 배를 바다에 띄우기 위해 설치했던 마당의 철 구조물들은 벤치 역할을 한다. 복고풍 분위기 덕에 인기 명소가 됐다. 조선소의 너른 부지에서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속초시 중앙로46번길 45, 033-633-2309, 11:00~20:00(수요일 휴무) 문우당서림과 동아서점 문우당서림과 동아서림은 속초에서 오랫동안 뿌리를 내린 대표 서점이다. 책 파는 것을 넘어 작가와의 만남, 시 낭송회 등을 주최해 지역문화를 만들어가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1984년에 개점한 문우당서림은 부부와 귀향한 딸이 운영한다. 2층에 책 읽는 공간을 따로 두고, 독서 모임방을 무료 대관한다. 1956년에 개점한 동아서점은 3대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유명하다. 세련된 서가 배치와 북큐레이션이 돋보인다. 대형 서점에선 볼 수 없는 독립출판물도 취급한다. 동아서림은 문우당서림 뒤쪽에 있다. 속초시 중앙로 45, 033-635-8055, 09:00~22:00 여행 정보 걷기 Tip ➊ 자가용을 이용할 때는, 외옹치항에 주차한 뒤 바다향기로를 걸으면 된다. ➋ 고속버스터미널 하차 후, 외옹치항 바다향기로 입구까지 택시로 이동하면 왕복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 이동은 추천하지 않는다.
- 2019-02-18 1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