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에는 그곳만의 정서가 있다. 간판, 차림표, 의자, 그릇, 음식 그리고 주인과 오랜 단골들까지. 곳곳의 요소들이 어우러져 하루아침에 꾸며낼 수 없는 세월의 내공을 자랑한다. 이처럼 희로애락을 머금고 삶의 내공을 지닌 한국 노인의 초상(肖像)에 주목한 이가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화가 아론 코스로우(Aaron Cossrow, 37)다. 그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그리며 켜켜이 쌓인 개인의 추억을 나누고, 그 속에서 가장 한국다운 문화를 발견해낸다.
15년 전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20대 청년 아론 코스로우는 영어 강사로 일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았다. 예술가의 길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방황하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그림을 놓아본 적은 없었다. 벽화, 아크릴화, 애니메이션, 만화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자신의 진로를 끊임없이 고민해나갔다. 그는 한때 ‘소주킹’(Sojuking)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태원을 배경으로 한 일러스트를 창작했는데, 독특한 그림체로 누리꾼들 사이에 알려지기도 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으니 기분 좋은 성과로 받아들일 만한데도, 아론 코스로우는 여전히 갈증을 느꼈다. 그는 한 단계 높은 도약을 위해 유화를 시작했다. 도통 그림 실력이 늘지 않아 좌절하는 나날도 많았지만, 차분히 자신을 수련해나갔다. 동시에 초상화 모델을 찾기 위해 서울 곳곳을 누비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의 눈에 흥미로운 피사체가 포착됐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자 첫 유화 작품의 주인공인 ‘신당동 대장장이’였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제겐 예술가로서 기회도 없었고, 기술도 부족했어요. 그러나 예술가가 자신의 길을 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했죠. 유화를 처음 시작했을 땐 너무 어려웠어요. 몇 년을 해도 늘지 않아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다 포토샵으로 디지털 페인팅을 하면서 조금씩 갈피를 잡았고, 작품을 해도 좋겠다 싶었죠. 당시 모델이 필요했는데, 신당동 대장장이가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40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해온 장인이셨죠.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아내분께 대신 부탁드려 허락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첫 작품 이후 열흘에 한 명꼴로 새로운 인물을 그렸고, 현재까지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곳곳에 어린 영감, 한국은 거대한 미술학교
아론 코스로우는 2021년 1년가량 그린 작품을 모아 첫 개인전 ‘얼굴을 보이다: UNMASKED’를 열었다. 같은 해 두 번째 전시 ‘초상화 2021: Portraits’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는 20여 점의 초상화 작품을 망라해 ‘탑골공원의 소년들: The Guys in the Park’로 관람객을 맞았다. 전시는 작품의 주제와도 밀접한 탑골공원 인근, 서울노인복지센터 내 탑골미술관에서 한 달간 진행됐다. 탑골공원에 모여 매일 장기 두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소년의 마음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시를 안내한 실버 도슨트 최명락(70) 씨는 “아론이 ‘한국은 나에게 거대한 미술학교와 같았다’는 인상적인 말을 했다. 그만큼 한국에는 작품에 영감을 주는 요소가 많다는 거였다. 관객들도 그런 작가의 작품에 감탄하고 여운을 많이 느낀다는 반응”이라고 전했다.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이태원 거리의 구두닦이, 불광동의 목재상, 을지로4가의 점심식사 배달부, 그리고 탑골공원에서 장기 두는 노인들까지. 특유의 색감과 질감 덕분에 인물의 정서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정취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또 사실적인 요소들의 묘사가 가득해 단조로움을 느낄 새가 없다. 그림의 대상을 포착하고 그려내는 과정에서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또한 배경과 디테일이다. 아론 코스로우는 이 모든 것을 통합하고 어우러지게 하는 일이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요소로 가득한 흥미로운 장소에서 흥미로워 보이는 인물일 때 모델로 선택하는 것 같아요. 제 작품에는 대략 100가지 디테일이 담겨 있다고 보는데요. 가령 ‘한남동에서의 치킨 파티’ 같은 그림을 보면 술자리를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 테이블 위의 소주병, 껍질을 까놓은 귤과 옛날통닭까지 모든 요소 하나하나를 아름답게 어우러지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세부적인 것들로 그림을 가득 채웠을 때 관객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전달되는 것 같아요. 종종 제 작품을 본 분들이 어떤 공통된 경험을 말하거나 추억이 떠올랐다고 하는데, 그런 반응을 들을 때 가장 기쁩니다.”
사라져가는 장인들의 초상을 기록하다
그동안 한국에 살며 그가 흥미를 느낀 배경은 이태원, 인사동, 을지로, 종로 등이다. 특히 을지로에서는 꽤 의미 있는 작업도 진행했다. 바로 ‘을지로3가의 장인들’ 프로젝트다. 아론 코스로우는 최근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노동자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언젠가 사라질지 모르는 지역민들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했고, 작품 중 가장 큰 사이즈의 대형 유화를 그렸다. 그림에는 총 23명의 을지로 장인들의 모습이 담겼다. 작품이 완성됐을 때 그는 을지로 골목에서 팝업 전시를 열고 주인공들과 함께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국적을 떠나 따뜻한 정을 나누고, 그들의 상황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기존 노동자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게 너무 슬펐습니다. 저는 그런 개발이 진정한 개발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기존의 고유한 문화를 파괴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파트를 들여놓는 게 과연 유익할까요? 프로젝트 당시 저는 100년 넘은 인쇄기를 보기도 했고, 수십 년 세월 숙련된 장인들도 만났습니다. 그런 오랜 역사를 지닌 동네는 갑자기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도 없고, 돈으로 살 수도 없습니다. 사실 역사라고 말하는 걸 좋아하진 않아요. 왜냐하면 그건 그들이 사라졌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그들은 아직 존재하잖아요. 나중에 진짜 역사로 남게 된다면,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며 이곳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되새겼으면 해요. 아마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 특별함을 깨닫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이 거리가 흔하디흔한 카페와 뷰티숍 등으로 뒤덮이는 순간, 과거의 활기찼던 문화를 그리워할 테죠.”
아론 코스로우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 쌓여 세월이 묻어난 것들에 애착을 갖는다. 그런 요소들이야말로 가장 꾸밈없이 진실된 모습으로 짙은 아름다움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통해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정서를 강하게 느낀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모델로 그들을 바라보지만, 성실히 자신의 삶을 꾸려온 그들의 모습에서 그가 살아가야 할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제가 그려온 노인 대부분은 지난날 매우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매일매일 신발을 고치는 구두수선공, 새벽부터 지하철 역사를 깨끗이 치우는 청소원,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식당 주인. 모두가 멋진 삶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며, 저 또한 좋은 삶을 위해 평생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곤 해요. 제가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삶이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고 발전해서 더 많은 대중에게 제 작품을 선보일 수 있길 바랍니다.”
초상화를 그리는 그에게 꼭 필요한 마중물이 있다. 바로 그림의 모델이 될 인물이다. 끝으로 그는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그리고 주인공이 될 한국의 어르신들에게 감사 인사를 남겼다.
“제 경우에는 작품 하나만으로 의미를 전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모두 아울러 종합적인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봐주시면 좋겠고, 그 속에서 공유되는 어떤 메시지가 전해지길 원하죠. 제가 만나온, 만나게 될 분들의 삶을 관통하는 ‘모두의 기억’을 포착해나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제가 사진 찍고, 그림 그리고, 이야기를 듣도록 허락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제 작품 의뢰에 응해주시고 관대하게 대해주신 어르신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수많은 작품을 만들고, 지금의 실력을 키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제겐 여러분이 진정한 인생의 챔피언입니다.”
취재 협조 탑골미술관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의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 프로젝트가 이태원에서 시작을 알렸다. 소상공인들을 1조 원의 기업가치가 있는 유니콘 기업형으로 육성하고, 지역의 상권이 글로컬(글로벌+로컬)로 거듭나도록 만들 계획이다.
지난 1일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이자 이태원 상권 회복 프로젝트로 진행된 팝업스토어 ‘헤리티지 맨션’이 문을 열었다.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은 로컬크리에이터와 소상공인의 협업으로 지역의 인적·물적 자산을 연결하고, 상권관리 모델 도입과 자체 역량 강화를 통해 골목상권을 브랜드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 5월 서울 이태원(어반플레이), 인천 개항로(개항마을), 공주(제민천), 군산 영화타운((주)지방)을 ‘로컬브랜드 상권 창출팀’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2일 이태원에서 간담회를 열어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의 시작을 알리고, ‘헤리티지 맨션’을 둘러보며 이태원 소상공인을 응원했다.
이영 장관은 “퇴근하고 대중교통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어떨까? 동네가 바뀌면 온 동네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다”고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생활 속 창업에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방문하는 이태원의 독특한 문화, 역사, 가치들을 모아 상권을 개발하고자 했다”면서 이태원 상권 회복을 응원했다.
이태원에서 지역 소상공인들과 협업해 헤리티지 맨션을 기획한 어반플레이 홍주석 대표는 “우리나라 로컬크리에이터의 시작은 이태원”이라면서 “이태원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다양한 문화 프로젝트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 상인 700여 명의 감사의 뜻을 담아 제작한 감사패를 이영 장관에게 깜짝 전달하기도 했다. 유태혁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회장은 “(지난해 참사 이후)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중기부 지원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희망을 보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중기부는 소상공인을 기업가로 키우는 지원 사업들을 연계할 계획이다. 지역의 상인들을 ‘라이콘’(라이프스타일 유니콘)으로 성장시키고, 지역이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는 글로컬 상권으로 재도약하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이번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에 선정된 지역 중 이태원 헤리티지 맨션을 시작으로 공주 제민천 창업실험실, 마계인천 유니버스, 군산 술익는 마을 순으로 팝업스토어, 축제, 네트워킹 데이가 연속 개최된다.
이태원의 낮과 밤 담은 “헤리티지 맨션”
헤리티지 맨션은 도시 콘텐츠 전문 기업 어반플레이가 이태원의 로컬크리에이터, 소상공인과 협업해 만든 팝업스토어다. 독특한 지역성을 가진 이태원의 문화와, 시대를 선도하는 문화를 제안해온 이태원 구성원들의 유산을 담은 공간이다.
이날 헤리티지 맨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했다. 오후 4시가 되자 DJ의 디제잉이 이어지며 마치 클럽에 온 듯한 느낌도 주었다. 헤리티지 맨션 자체가 곧 이태원이었다.
최은지 어반플레이 PD는 “9월 한 달 동안 앵커스토어인 헤리티지 맨션 팝업스토어를 중심으로 8군데의 지역 상인들의 공간에서 동시다발적 프로그램이 열린다”고 설명했다.
헤리티지 맨션에 방문하면 누구나 웰컴키트를 받을 수 있다. 이 안에는 이태원의 헤리티지(유산)를 보여주는 헤리티지 프로젝트에 관한 설명과 함께 이태원 일대를 돌아다니며 모을 수 있는 키링이 들어있다. 봉투 안의 키링을 가지고 쿠폰에 적혀있는 공간을 방문해 1만 원 이상의 소비를 하면 각 카테고리별 색깔의 열쇠 모양 키링을 받을 수 있다.
맨션 1층에는 웰컴레코즈(WELCOME RECORDS), 웝트(WARPED)의 제품들을 볼 수 있다. 한 편에는 이들을 지원하는 위스키 브랜드 짐빔의 하이볼을 맛볼 수 있는 부스가 있고, 옆에서는 매주 금, 토, 일 오후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 DJ들의 릴레이 공연이 이어진다.
2층에는 암스테르담에서 믹스미디어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전윤일 작가가 이태원에서 7일 동안 실제로 살면서 담은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태원의 색깔을 담은 F&B 부스가 운영된다.
3층에서는 비슬라(VISLA) 매거진의 ‘이태원의 낮과 밤’을 주제로 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전시에 담겨있지 않은 이태원 사진들은 포스터로 구매할 수 있다. 한편에는 관광특구도시인 이태원의 특징을 담은 굿즈가 판매된다. 보이롱페이스 작가와 협업해 그래피티를 넣은 티셔츠와 이태원 도시 명칭과 함께 헤리티지 맨션의 위도와 경도가 그려진 수건 등이 있다.
또한 매주 금요일에는 댄스 등의 공연이 열리며 매주 일요일에는 플리마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헤리티지 프로젝트는 오는 9월 24일까지 진행된다.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단연 DJ 문화일 것이다. 웰컴레코즈는 DJ들을 서포트하기 위해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번 헤리티지 프로젝트에서도 DJ를 지원하기 위해 헤리티지 맨션과 컬래버레이션 한 LP를 선보이며, 볼레로(BOLERO)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웝트는 서브컬쳐나 발굴되지 않은 문화를 옷으로 표현한다. 홍콩, 뉴욕 등 전세계 아티스트들의 러브콜을 받는 팀이다. 헤리티지 맨션에서 선보인 옷들은 해외 아티스트들과 작업한 것들로 국내에는 없는 수입 제품들이다.
전윤일 작가는 7일간의 이태원에서의 생활을 기록했다. 실제 이곳에서 소비한 영수증, 필름, 가게의 소품으로 만든 오브제 등을 선보인다. 또한 이태원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태원의 헤리티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태원이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담은 다큐멘터리도 상영한다. 이태원 곳곳에 그래피티 작업을 한 작가의 그래피티도 감상할 수 있으며 매주 달라지는 F&B도 즐길 수 있다.
종이 잡지로 시작해 글로벌 에이전시로 활동하고 있는 비슬라 매거진은 서브컬쳐를 주류로 끌어오는 힘이 있다. 이태원 출신의 사진작가들을 섭외해 ‘이태원의 낮과 밤’을 담았다. 낮에는 조용하고 비어있는 듯한 이태원이 밤이 되면 화려하고 다양한 문화가 섞이는 이중적인 모습이 이태원의 매력이라는 점을 사진으로 표현했다.
중장년 세대에게 잡지는 공기와 같이 자연스러웠다. ‘어깨동무’를 통해 세상을 보기 시작했고, ‘보물섬’을 통해 꿈을 키웠다. 커서는 ‘스크린’이나 ‘키노’ 한 권쯤은 있어야 문화적 소양을 증명할 수 있었다. 사전만큼이나 두꺼운 시사잡지는 현실을 알게 해줬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지령 100호를 맞이한 지금,
사회는 변화했고 잡지는 더 이상 세상의 중심에 있지 않다. 하지만 아직 잡지의 힘을 믿는 사람이 있다. 백종운 한국잡지협회 회장이다.
잡지는 늘 우리 사회를 선도해왔다. 국내 최초의 잡지는 1908년 최남선이 발행한 월간지 ‘소년’이다. 당시 이 잡지는 청소년 계몽과 함께 항일 정신 고취를 목적으로 발간됐다. 그 유명한 신체시(新體詩) ‘해에게서 소년에게’도 ‘소년’ 창간호를 통해 발표됐다. 실제로 이 잡지는 일제에 의해 발매 금지와 정간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우리와 일본의 관계가 재조명되는 이 시기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국잡지협회도 지난해 새로운 문화적 선도를 위해 애썼다.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잡지협회는 풍성한 행사를 이어나갔고, 그 중심에는 백종운 한국잡지협회 회장이 있었다. 그는 2월 14일 열린 정기총회를 통해 회원들에게 다시 신임을 받고 2년의 새로운 임기를 시작했다.
지난 2년보다 남은 2년이 중요
“2년이라는 길지 않은 임기 동안 해온 일들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었죠. 압도적 투표 결과가 아니어서, 더 노력하고 잘하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도 잡지협회에도 특히 지난해는 많은 의미를 지닌다. 예기치 않은 여러 사건들로 활동에 굴곡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 협회의 위상을 올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협회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으니까요. 특히 ‘잡지가 있는 삶’이란 주제로 진행된 잡지주간 행사는 최초로 문화체육관광부 공식 행사로 진행되기도 했고, 이외에도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를 준비했는데 뜻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이는 지난해 10월 29일 있었던 이태원 참사를 말한다. ‘근현대 잡지 특별전’의 개막 행사 다음 날이었고, 국립극장에서 제57회 잡지의 날 기념식을 개최하기 3일 전에 사고가 터졌다. 이태원 참사는 그 자체로 비극이었고, 협회 측도 애도의 마음을 담아 행사 일부를 축소해야 했다. 1년간 야심 차게 준비한 것들이 대중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
“아쉬웠던 점은 더 많았죠. 문체부의 ‘정기간행물 진흥 5개년 계획’에 잡지 분야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구체적인 예산 증액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우수콘텐츠 지원사업이나 해외진출 지원 등도 규모가 늘지 않았고요. 또 도서 구입이나 박물관 입장권 등은 소득공제 적용을 받을 수 있는데, 유독 잡지 구매비만 빠졌어요. 관련 법안이 몇 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상태입니다.”
백 회장은 지난해의 부족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기고, 마스크 제한 해제 등 행사를 위한 더 나은 환경이 조성된 만큼 올해 행사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독자들에게 우리 우수한 잡지들을 소개할 수 있는 행사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특히 ‘탈서울’에 집중하고 있어요. 지방에서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많이 만들어 잡지에 대한 관심을 전국적으로 이끌어내고 싶습니다.”
잡지를 위한 플랫폼 시동 ‘눈앞’
미디어 환경은 해를 거듭할수록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레거시 미디어들의 언론 권력은 빠르게 축소되고 있고, 유튜브 채널 같은 1인 미디어, 그리고 배달음식처럼 기호에 맞춰 콘텐츠를 제공하는 OTT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 가운데 잡지는 여전히 밀려나는 위치에 서 있다. 빠른 흐름을 거슬러 오르기에는 아직 힘이 부치는 상황이다. 잡지업계의 수장으로서 그는 “그래도 콘텐츠의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자신한다.
“잡지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콘텐츠가 유통되는 플랫폼 환경 변화에 잡지사들이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지면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던 잡지 콘텐츠가 온라인 등 변화된 플랫폼 환경에 적응했어야 하는데, 바뀌는 속도에 맞추지 못했죠. 또 새로운 미디어들이 잡지와 경쟁할 만한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는 것도 잡지업계를 어렵게 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백 회장은 아직도 잡지가 가진 가능성과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자신감의 원천은 바로 ‘전문성’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100회 넘도록 중장년 대상의 전문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살아남은 잡지 대부분이 ‘전문지’ 이름표를 달고 뛰는 주자들인 만큼 콘텐츠의 질은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릇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잡지 콘텐츠들은 오랜 기간 업계에서 활동해온 저력 있는 매체, 경험 많은 기자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을 전문잡지의 시대라고 표현할 만큼 각 잡지사들이 쌓아온 전문성은 쉽게 따라올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이러한 깊이 있는 정보와 지식이 독자에게 전달되지 못한다면 사회적 낭비가 되고 말아요. 때문에 이 콘텐츠를 모두 담아 소비자에게 전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콘텐츠 생산을 온라인 유통과 연결해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는 것.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거대 포털이 지배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의 핵심은 수익에 있습니다. 수익이 각 잡지사에 배분될 수 있어야 질 높은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할 수 있죠. 이런 수익 모델을 갖춘 잡지만의 플랫폼을 준비 중입니다. 고급 정보를 이 플랫폼에서만 만날 수 있다면 구독경제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큰 저항 없이 잡지 콘텐츠를 환영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백 회장이 이런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잡지의 날 기념식에서 그는 참석한 정치권 인사들에게 “한국의 문화 콘텐츠 경쟁력 향상을 위해 잡지업계에 대한 디지털 혁신 투자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는 요원했다. 결국 협회는 스스로 자구책을 찾기로 결정했다.
“디지털 혁신 투자가 필요한데 마냥 기다릴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민간기업과 손잡고 협업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협회가 직접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높은 초기 투자 비용 때문에 파트너를 물색했습니다. 적합한 상대를 만나 이야기가 잘 진행 중이니 조만간 결과물을 독자들 앞에 선보일 수 있을 겁니다. 이 플랫폼은 잡지사들이 콘텐츠를 보내주면 온라인에서 독자들과 만날 수 있도록 유통을 담당하고, 또 구독이 늘면 부수적인 광고 수입도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또 잡지사 입장에선 지면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중장년에게 잡지는 ‘추억’
고령화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중장년 세대는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지만 이들을 위한 전문적인 콘텐츠는 많지 않다. 백 회장은 그중 ‘잡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장년층은 잡지가 익숙하고 잡지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어요. 서점이나 지하철 가판대에서 손쉽게 잡지를 사고 소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대죠. 하지만 이들이 잡지를 만날 가판대는 사라졌고, 서점도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같이 중장년을 타깃으로 한 잡지는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특정 세대를 겨냥하는 것은 잡지업계에서 자연스러운 트렌드지만, 중장년 세대를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매체는 많지 않잖아요.”
그는 마지막으로 지령 100호를 맞이한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대한 애정 담긴 응원도 잊지 않았다.
“100호 기념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단순한 정보 제공을 뛰어넘어 고령화 사회의 상황을 담고 독자와 상생하는 매체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중장년 세대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역할을 함으로써 건강하고 품위 있는 고령화 사회에 기여하고 있어요. 노고에 감사드리고 발전을 기원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오는 2025년까지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이 1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고령화에 따라 노인 돌봄 서비스의 수요 또한 빠르게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 ‘시니어케어’ 시장은 영세 사업자들을 위주로 형성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전문적이고 다양한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관련 업계에서도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소비자에 최적화한 시니어케어 서비스
시장 수요의 확대에 발맞춰 프리드라이프는 첫 번째 전용 상품으로 시니어케어 서비스를 탑재한 간병비 지원 신상품 ‘늘 든든’을 선보였다.
‘늘 든든’은 매년 증가하는 노령층 인구를 위한 맞춤형 상조 상품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 기업 에임메드와 협업을 통해 전문적인 시니어케어 서비스와 간병인 지원, 프리미엄 장례 서비스를 제공한다.
상품에 가입한 고객은 병원 입원 상황 발생 시에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58만 원 상당의 간병비 지원 포인트를 일시에 제공받을 수 있다. 또한 분할식 납부 방식으로 비용 부담을 낮추는 등 소비자의 이용 편의성도 끌어올렸다.
시니어케어 서비스로는 가입 후 10년간 시니어 인구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먼저 14개 진료과목 전문의로 구성된 의료진의 건강상담, 전국 50여 개 대형 병원과의 진료협력 네트워크를 통한 종합병원 진료 간편 예약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요양병원 비교견적 및 장기 요양 등급 컨설팅 등 노년기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와 혜택을 ‘늘 든든’ 상품 하나로 만나볼 수 있다.
프리미엄 상조 서비스를 동시에
‘늘 든든’은 프리드라이프의 프리미엄 상조 서비스도 함께 누릴 수 있는 상품이다. 프리드라이프는 차별화된 ‘장례 토탈 케어 시스템’을 기반으로 사전 상담부터 사후 유족 케어까지 고객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시니어 소비자들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크루즈 여행 ▲수연 ▲AI 추모서비스 등 다양한 전환 서비스도 선보이고 있다. 프리드라이프의 크루즈 여행 상품은 로얄캐리비안 크루즈를 비롯한 세계적인 선사 5곳과 제휴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특별한 추억을 선물하는 리마인드 웨딩과 환갑, 칠순 등 뜻깊은 날을 위한 수연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인공지능(AI) 기술로 고인의 모습을 구현해 그리운 추모 대상자를 만나보고 회상할 수 있는 AI 추모 서비스를 추가했다.
프리드라이프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다양한 멤버십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멤버십 적용시 제휴된 전국 건강검진센터에서 종합 건강검진 우대를 받을 수 있으며, 한화 리조트와 켄싱턴 리조트도 회원가로 이용 가능하다. 또한 프리드라이프 직영 장례식장 할인과 심리전문가의 상담을 통해 유족 케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업계 최대 자산 규모와 고객 서비스
프리드라이프는 ‘늘 든든’ 상품을 비롯해 고객의 생애 주기 고려한 라이프 서비스를 선보이며 상조 업계 선진화에 앞장서고 있다.
2002년 설립된 프리드라이프는 공정거래위원회 정보 공개 기준 자산 및 선수금 모두 1위를 기록한 업계 선두 기업이다. ‘좋은라이프’, ‘금강문화허브’, ‘모던종합상조’와의 상조 4개사 통합에 이어 올해는 여행 전문 법인인 ‘프리드 투어’ 합병을 완료하고 1위 기업으로서 입지를 더욱 강화했다. 현재 전문경영인 체제하에 약 19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5개사 합산 규모는 지난 12월 말 기준으로 총 선수금 약 1조 8천억 원, 총자산 2조 2천억 원을 초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전국 139개 사업점, 1156명의 LP(Life Partner) 등 전국 영업망을 바탕으로 국내 어디서든 24시간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는 의전 조직을 갖추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프리드라이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가장에 참여할 만큼 최고의 의전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故 노무현 前 대통령 국가장, 사할린 강제 동원 희생자 유해 귀환 사업, 이태원 참사 합동 분향소 운영 등에 참여한 바 있다.
장례부터 토탈 라이프케어까지
프리드라이프는 ▲장례 ▲웨딩 ▲축연 ▲여행 ▲홈 인테리어 등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선택이 가능한 토탈 라이프케어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또한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의 생활패턴과 디지털 서비스 니즈를 반영해 24시간 모바일 장례 접수 서비스, QR코드 활용한 디지털 추모관, AI추모서비스 등을 출시하며 디지털 전환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프리드라이프 관계자는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며 시니어 시장의 규모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소비자 니즈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업계 선두 기업으로서 프리드라이프는 변화하는 시대에 최적화된 시니어케어 서비스를 선보이며 든든한 토탈 라이프케어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도 역시 다사다난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고, 국민MC 송해도 세상을 떠났다. 10월 29일에는 비극적인 이태원 참사도 있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는 연말을 맞아 중장년 관련 2022년 10대 뉴스를 꼽아봤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공식 취임했다. 1960년생인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출신의 첫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썼다. 김건희 여사 리스크와 대통령실 이전 논란, 이태원 참사 등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4개 여론조사기관 공동 NBS(전국지표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잘하고 있다’(매우+잘함)라는 긍정적 평가는 34%를 차지했다. ‘잘못하고 있다’(매우+못함)라는 부정적 평가는 56%였다. 특히 60대(52% 대 44%), 70대 이상(61% 대 26%)에서 긍정평가가 부정평가보다 높게 나타나면서 중장년층의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확인케 했다.
◇노인 일자리 축소 논란
정부는 2004년부터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사업’을 시행, 만 60세 이상 어르신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8월 2023년도 예산안이 공개됐는데, 노인 일자리 수는 올해 84만 5000개보다 2만 3000개 줄은 82만 2000개였다.
그중에서도 정부는 공공형 일자리를 올해 60만 8000개에서 내년 54만 7000개로 6만 1000개로 대폭 축소했다. 공공형 일자리 참여자는 기초연금을 받는 저소득층 노인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정부의 정책은 노인빈곤율 심화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정부는 노인 일자리가 축소된 것이 아니라는 견해다. 공공형 일자리는 줄였지만, 민간·사회서비스형 노인 일자리는 3만 8000개 늘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송해 별세
“전국노래자랑!” 일요일 아침마다 들리던 송해의 힘찬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국민 MC’ 송해가 지난 6월 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백세 인생의 아이콘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 송해의 사망은 대한민국에 슬픔을 안겼다.
송해는 1988년부터 34년간 KBS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았다. 국내 최장수 MC를 넘어 지난 4월 ‘최고령 TV 음악 경연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송해의 후임으로 김신영이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유독 슬픈 소식이 많았다. KBS ‘가족오락관’을 25년간 진행한 또 다른 ‘국민 MC’ 허참과 ‘원조 월드 스타’ 배우 강수연도 세상을 떠났다. 해외의 유명인들도 세상을 떠나 별이 되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9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피살 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동산 시장 급락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급등하던 부동산이 꺾였다. 올해 들어서만 부동산 가격이 10% 이상 급락했다. 과거 부동산 침체기와 달리 매매·전세 가격이 동반 하락했다. 서울 강남 아파트에 대한 수요마저 줄었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전세 가격 10% 하락 시 4만 가구가, 40% 급락 시 13만 가구가 보증금을 돌려받기 힘들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는 부동산 규제 정책을 마련했다. 8·12%로 설정된 다주택자 대상 취득세 중과세율은 4·6%로 완화한다. 내년 5월까지 한시 유예 중인 양도소득세 중과배제 조치는 일단 1년 연장한 후 근본적인 개편 방안을 찾기로 했다.
◇고독사 증가
한국의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고독사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더욱이 고독사 10명 중 5명은 50· 60대의 중년 남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4일 보건복지부는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실태를 조사한 것이다. 고독사 사망자는 지난해 3378명으로 2017년 2412명보다 40.0% 증가했다.
노년층보다 50·60대 중장년층 남성의 고독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50대가 1001명(29.6%)으로 가장 많았고, 60대가 981건(29.0%)으로 뒤를 이었다. 50·60대 중장년층이 60% 가까이(58.6%) 차지한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전체 사망자는 고연령층일수록 많지만 고독사는 50대~60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특징이 있다”며 “50대 남성은 건강관리와 가사노동에 익숙지 못하며 실직·이혼 등으로 삶의 만족도가 급격히 감소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 희망퇴직 시작
금리 인상으로 올해 큰 실적을 거둔 시중 은행들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적극적인 감원에 나섰다. 최대 5억 원에 달하는 퇴직금을 조건으로 내걸면서 내년 초까지 약 2000명의 은행원이 짐을 쌀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은행은 한 번 들어가면 정년까지 다닌다는 이른바 ‘철밥통’ 직장으로 여겨졌다. 디지털 전환 바람으로 기류가 바뀌었다. 앱 비대면 서비스 이용객이 늘면서 인력 효율화를 노려야 하는 은행의 상황과 핀테크 기업 등 인터넷 은행으로 이직하고 싶어하는 은행원들의 바람이 맞아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현상은 은행권에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2023년에는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오징어 게임’, 에미상 수상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았다. ‘오징어 게임’은 지난 9월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황동혁 감독), 남우주연상(이정재)을 포함해 6관왕을 차지했다. 비영어권 작품이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것도 상을 받은 것도 모두 최초였다.
‘오징어 게임’은 한국 문화의 새 역사를 썼다. 우리의 전통 놀이문화가 외국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K-컬처의 위상이 더욱 드높아졌다.
◇ 이태원 10·29 참사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는 악몽 같은 참사가 발생했다. 핼러윈을 즐기기 위한 엄청난 인파가 몰렸지만,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한 것. 총 158명이 사망했고, 196명이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 대부분이 2~30대 젊은이들로, 어린 자녀를 둔 중장년들을 더욱 비통케 만들었다.
10·29 참사는 정부가 이전과는 다른 대응 태도를 보이면서, 영정 없는 분향소, 뒤집힌 근조 리본, 희생자 표현 사용 금지, 마약 부검 등 다양한 논란을 낳기도 했다.
희생자의 이름과 영정이 공개된 합동 분향소는 참사 후 한 달이 넘은 지난 14일에야 차려졌다. 현재는 분향소 설치를 반대하는 일부 보수단체 항의의 대상이 되면서 조롱과 멸시가 도를 넘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누리호 발사 성공
올해 우리나라는 7대 우주 강국으로 우뚝섰다. 지난 6월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발사에 성공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도 8월 5일 발사에 성공, 달 궤도에 안착했다.
누리호 프로젝트는 2010년 3월 시작돼 2022년 6월 발사에 성공하기까지 장장 1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총예산 1조 9572억 원이 투입됐다. 누리호의 성공 뒤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진 250명의 피, 땀, 눈물이 서린 노력이 있었다.
성공의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조기주 항우연 발사체추진기관체계팀장은 “2002년 나로호 사업을 시작으로 항공우주연구원이 되었고, 벌써 20년이 지났다. 나로호, 누리호 발사체 개발을 하면서 연구·개발하는 모든 것이 우리나라 우주 개척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자긍심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 같다”면서 감격의 소감을 본지에 전한 바 있다.
◇월드컵 16강 진출
‘2022 월드컵’에 대한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친 국민을 위로해줬다. 이번 월드컵은 카타르에서 열려 경기가 늦은 밤 또는 새벽에 진행됐지만 많은 국민은 경기를 시청하면서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이번 월드컵에 대한 열기는 2002년 월드컵에 비교할만하다. 그때의 추억을 안은 중장년층은 특히 열광했다.
국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한국은 12년 만에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축구 강국을 이기고 얻은 성과로 대한민국의 저력을 입증했다.
세계 5대 패션위크 중 하나로 꼽히는 밴쿠버 패션위크. 지난 10월 ‘2023 S/S(Spring/Summer) 패션위크’가 성대하게 열린 가운데, 무대 위에 오른 한국인 시니어 모델 두 명이 이목을 사로잡았다. 시니어 모델이 입은 의상을 만들고 쇼를 기획한 사람은 젊은 디자이너 이성빈(29)이다. 신구 조화를 이룬 무대가 완성되기까지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남성 의류 브랜드 와이쏘씨리얼즈(Why socerealz!)를 운영하는 이성빈 디자이너는 지난 7월 시니어 모델 오디션 ‘올드 보이’(Old Boy) 모집 공고를 냈다. 올드 보이는 밴쿠버 패션위크 무대에 설 최후의 2인, TOP 2를 선발하는 오디션이다. ‘나이 많은’(Old)과 ‘소년’(Boy)이 합쳐진 오디션 이름처럼, 이 디자이너는 순수함을 지닌 시니어 모델을 원했다.
1차 오디션에서는 8명이 뽑혔다. 이들은 8월 29일부터 30일까지 1박 2일간 합숙하며 서바이벌 경쟁을 펼쳤다. 뜨거운 경쟁 속에 살아남은 최후의 2인은 김진환과 이충희다. 두 사람은 밴쿠버에서 시니어 모델로 정식 데뷔하며 꿈의 나래를 펼쳤다.
“사실 최후의 2인 김진환 님, 이충희 님은 제가 처음 생각했던 우승자는 아니었어요. 시니어 모델로서의 헌신과 열정, 노력이 빛났기 때문에 뽑혔다고 생각합니다. 초반에 탈락할 줄 알았던 분들이 점점 성장하며 최후의 2인까지 되는 과정을 보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모든 참가자분이 오디션에 진심으로 임해주시니까 저도 어느 순간 엄청나게 몰입한 거죠. 또 두 분이 밴쿠버에서 멋진 무대를 보여주셔서 감사했어요.”
시니어 모델 오디션 탄생기
“사실 저도 시니어 모델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어르신들이니 제가 만드는 옷이 괜히 올드한 이미지를 얻게 되는 건 아닌가 싶었죠.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시니어 모델들 덕분에 더욱 많은 도전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자신의 무대에 젊고 멋있는 모델이 서길 바라는 마음은 어느 디자이너나 똑같을 터. 젊은 디자이너인 이성빈도 시니어 모델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있었다. 시니어 모델과 작업을 해본 뒤 그는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해 12월, 이성빈 디자이너는 올 4월 밴쿠버 패션위크 무대를 준비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시니어 모델 전문 아카데미 ‘EMA’(엘리트 모델 에이전시)에서 패션쇼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디자이너는 “밴쿠버 무대는 와이쏘씨리얼즈의 첫 번째 패션쇼로 매우 중요했다. 그 전에 경험을 쌓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EMA 패션쇼에 참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성빈 디자이너는 “시니어 모델들은 은퇴 후 제2의 직업을 가진 분들이지 않나. 순수하고 열정이 넘치셨다”면서 “시니어 모델들과 함께하면서 시야도 넓어졌고, 기대 이상의 효과를 봤다”고 소감을 밝혔다. 무엇보다 그는 ‘그냥 무엇이든 해도 되는구나’를 경험을 통해 배웠다. 정식 패션쇼를 앞두고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쇼에 앞서 시니어 모델들의 사진을 보고 착장을 정했죠. 그런데 피팅할 때 뭔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모델들께 입고 싶은 옷을 골라서 입으라고 했어요.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으니 모델들의 포즈도 자연스러워지고 자신감도 넘치시더라고요. 시니어 모델들과 함께하면서 배운 게 많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덕분에 밴쿠버에서 좀 더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이성빈 디자이너는 첫 번째 패션쇼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독특한 무대를 펼친 그는 ‘이런 패션쇼는 처음’이라는 해외 언론의 호평도 받았다. 출발선을 잘 끊었으니 본격적인 다음 무대를 제대로 보여줘야 했다. 이성빈 디자이너는 10월 밴쿠버 패션위크에 초청받아 다시 무대에 서게 됐다. 이때 EMA의 알렉스 강 대표가 밴쿠버 무대에 설 시니어 모델을 뽑는 선발대회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득이 될까, 독이 될까.’ 이성빈 디자이너는 고민이 많았다. 최종적으로 득이라고 생각해 도전을 강행했다. 4월 패션위크 당시 현지 모델만 기용한 이성빈 디자이너는 소통의 한계를 느껴, 자신이 원하는 연기력과 에너지를 완벽하게 채우지 못했다. 한국인이면서 열정 넘치는 시니어 모델이라면 당시의 아쉬움을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성빈 디자이너는 이왕 할 거면 선발대회를 재밌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올드 보이’ 오디션을 생각해냈다. 그는 “‘선발대회’라고 하면 보수적이고 재미없는 느낌이 든다. ‘슈퍼스타K’를 즐겨 본 터라 서바이벌 오디션을 기획하게 됐다. 영상도 찍어서 유튜브에 순차적으로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영상에는 TOP 2가 되고자 고군분투하는 시니어 모델 참가자들과 함께 심사위원인 이성빈 디자이너와 알렉스 강 EMA 대표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다.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두 사람의 심사가 인상적이다.
“키 크고 잘생긴 것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심사 기준은 얼마나 미션을 잘 이해하고 수행하느냐, 얼마나 담대하고 재밌게 연기를 펼치느냐가 중요했죠. 김진환 님, 이충희 님이 뽑히신 이유예요.”
이성빈 디자이너가 시니어 모델을 이번 패션쇼에 기용한 가장 큰 이유가 있다. 와이쏘씨리얼즈의 2023 S/S 콘셉트와 시니어 모델이 잘 맞았기 때문이다. 와이쏘씨리얼즈는 영화 ‘다크 나이트’ 속 조커의 명대사 ‘Why So Serious?’(왜 이렇게 심각해?)라는 물음에 위트 있게 대답하는 브랜드다. 재치 있고 독특한 옷을 통해 심각하고 완벽한 것에 대한 집착으로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한다.
“2023 S/S 콘셉트는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장 3~5절)라는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우리는 고통을 인내하면서 성품이 생기고, 그 성품이 생겨서 희망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에요. 시니어분들이 연단의 대명사잖아요. 시니어 모델이 무대에 선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한계가 없는 인생과 패션
밴쿠버 패션쇼에서 시니어 모델 두 사람은 외국인 모델들이 지나간 뒤 마지막에 등장했다. 이충희는 조커를 연상케 하는 분장을 하고 범상치 않게 나타났다. 소리를 지르며 모델을 끌고 나와 공포감을 형성했다. 이어 등장한 김진환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비둘기 분장을 한 것도 모자라 손에 비둘기 모형을 들고 있었다.
“이충희 모델님은 고통을, 김진환 모델님은 희망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충희 님은 소리도 지르고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고요. 김진환 님의 의상은 희망을 상징하는 비둘기를 콘셉트로 잡은 거죠. 마지막에 두 사람이 줄다리기하는 것은 고통과 희망 중 누가 더 센가를 표현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희망이 이겼죠. 관객분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다가 마지막에는 많이 웃으시더라고요. 김진환 님, 이충희 님이 아이디어도 많이 내주시고 적극적으로 임해주셔서 더욱 완성도 있는 무대가 나왔습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이성빈 디자이너. 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옷 역시 독특하고 개성이 넘친다. 그의 컬렉션을 보면 천사와 악마, 조커 등에서 영감을 받은 옷이 많다. 2021 S/S 콘셉트는 ‘Fruits & Veggies’(과일과 야채)였는데, 이 디자이너는 상추·가지·키위 등을 활용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와이쏘씨리얼즈는 당시 ‘프로젝트 라스베이거스 국제 패션박람회’에 참가해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성빈 디자이너는 자신이 만든 옷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고 한계가 없다. 스무 살까지만 해도 그는 부모님이 정해준 삶을 산 착실한 아들이었다. 그렇게 미국의 대학교에 진학했는데, 진짜 자신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계속 다닐 이유가 없었다. 이후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2년간 해외를 돌아다녔다.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자유로웠고, 물 만난 물고기처럼 행복했다. 그때의 여행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새로운 환경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여행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누구의 아들’, ‘어디 사는 누구’, ‘무슨 일을 하는 누구’가 아닌, 그냥 온전한 자신을 마주하게 되죠. 여행을 하면서 제가 옷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어느 나라를 가든 옷 쇼핑이 가장 즐거웠죠. 이제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해보자 생각해서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긴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이성빈 디자이너는 패션 디자인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패션 디자인 학원과 한국패션봉제아카데미를 함께 다녔다. 열정 넘치는 학생이었던 그는 선생님들에게 개인 레슨도 따로 받으며 실력을 연마했다. 동시에 이성빈 디자이너는 이태원에서 유럽 디자이너 브랜드 직수입 편집숍을 운영했다. 디자이너로서 실력을 갖춘 후에는 편집숍에서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다. 그 브랜드가 바로 와이쏘씨리얼즈다.
이성빈 디자이너는 옷에 자신이 투영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에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다. 이 고통 뒤에 좀 더 강해진 내가 있으리라 생각해서 고통과 희망이 주제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디자이너는 앞으로도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옷을 통해 성경의 좋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시니어 모델과의 작업 또한 지속하고 싶단다. 시니어에 대한 젊은 세대의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다.
“갓 서른 살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제가 시니어 모델들과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고통받으면서도 인내하고 지금까지 살아오신 시니어분들을 매우 존경합니다. 제가 상상하지 못할 강함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10월, 대국민의 애도로 번진 ‘이태원 참사’가 있었다. 현장에 있지 않았더라도 다수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사건과 이별의 기억은 쉽게 잊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한 사건이나 경험으로 트라우마(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기도 한다. 트라우마는 ‘트리거’에 의한 것이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트리거에 눌렸다’고 표현한다.
방아쇠의 역할이 파도가 되다
넷플릭스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가 한때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 드라마에는 자살, 중독성 물질 남용, 성폭력 등의 장면이 나온다. 미국 전국어린이병원(NCH) 자살연구가 제프 브리지 박사는 해당 드라마의 영향이 크다고 발표했다. 첫 번째 시리즈가 방영된 2017년에는 한 달간 190명의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논란이 불거지자, 자살 장면은 삭제됐다. 일찍이 생을 마감한 청소년들은 부정적인 감정인 트라우마가 먼저 일어났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트라우마의 촉발제가 바로 ‘트리거’다. 트리거는 개인이 겪는 한 사건의 충격에 따라 생기고, 정신적 트라우마와 함께 붙어 다닌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사냥개에 물렸다고 치자. 이후에 지나가는 강아지가 짖는 것만 봐도 두려움에 떨게 된다. 사냥개에 물렸던 기억이 재생되면서 트라우마가 형성되는데, 강아지가 짖는 것이 A에게 트리거 역할을 한 셈이다.
트라우마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작품의 경우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을 표기해야 한다. 트리거 워닝은 해당 콘텐츠가 불건전한 소재를 담고 있어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문이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도 이슈가 생기자, 뒤늦게 오프닝에 ‘트리거 워닝’ 문구를 삽입했다. 트리거 워닝은 갑각류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음을 표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개인에 따라 해당 문구를 보고 시청을 중단하는 등 정신적 피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간접적 경험도 심각한 트라우마 일으켜
전쟁, 자연재해 등의 사회적으로 심각한 사건을 통해서도 트라우마가 일어나기 쉽다. ‘한국임상심리학회’는 개인이 갑작스러운 사고나 재난을 경험하면 불면증, 피로감 등의 신체적 반응이 나타나고 심리적으로는 불안, 공포, 죄책감 등이 나타난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인한 트리거가 개인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중 하나로 ‘여과 없이 사고 당시의 현장 영상과 사진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해야’한다고 말했다.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2차, 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에도, 현장을 담아낸 영상을 본 것만으로 정신적 충격을 호소한 사람이 많았다. 화면 속에 너무나 생생했던 현장이 심리적 트라우마를 유발한 것이다. 트라우마는 한 번 머릿속에 틀어박히면 떨쳐내기 어렵다. 만약 안 좋은 기억이 자신을 괴롭히고 일상을 방해한다면 반드시 주변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고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예기치 못한 재난과 사고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에게 치료 프로그램, 정신건강 교육 등을 진행한다. 홈페이지를 접속하면 더욱 상세한 정보를 볼 수 있다.
긍정적 의미의 트리거
트리거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세계 최고의 리더십 전문가라고 불리는 마셜 골드스미스는 ‘트리거’(Triggers)를 집필했다. 책의 주제는 트리거를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심리적 자극을 트리거라고 본다. 목표를 이루고 변화하고 싶은 이들에게 다양한 방법을 알려준다. 골드스미스는 하루 질문 22가지를 만들어 자신이 최선을 다했는지 숫자로 1부터 10까지 점수를 매긴다. 그러고 나서 각 22가지 질문마다 일주일 평균 점수를 낸다고 한다. 이 책의 많은 독자가 일의 효율성과 자신의 행동 점검에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허휴정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한 편의 칼럼을 보내왔다. 지난 29일 있었던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희생자의 주변인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허휴정 교수는 본지의 ‘브라보 헬스콘서트’ 행사에 참여해 독자들에게 갱년기 이후의 정신건강과 우울증에 대해 조언한 바 있다.
“내가 조금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그 친구가 죽지 않았을까요?”
그녀는 여행 중에 교통사고로 친한 친구를 잃었다. 사고 이후, 그녀의 머리 속은 마치 고장 난 라디오처럼 그날 하지 말았어야 했던 행동과 했어야 했던 행동을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사고가 난 지 십 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생존자의 죄책감(Survivor’s guilt)’으로 고통받고 있다.
지난 30일 새벽 이태원 참사에 대한 속보를 보며 나는 진료실에서 만났던 그녀를 떠올렸다. 소중한 친구를 잃어버린 사람, 정신없이 몇 시간 동안 CPR(심폐소생술)을 하고도 죽음을 허망하게 목도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대원들과 시민들, 그저 멍한 채로 얼어붙어 꼼짝달싹하지 못한 채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들도 그녀처럼 그날 하지 말았어야 했던 행동과 했어야 했던 행동들을 수없이 떠올리며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생존자의 죄책감은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에서도 트라우마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주요한 증상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어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자신이 살아남은 것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고, 누군가를 구하지 못한 것을 지나치게 자책하기도 한다. 이러한 죄책감은 트라우마로부터의 회복에 큰 방해가 되기도 하고, 때로 자살과 같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심리 지원과 돌봄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생존자의 죄책감으로 괴로운 사람들에게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평생을 괴롭히기도 한다. “왜 하필 거기에 갔나”, “철없이 놀다 죽은 것을 애도해야 하나”, “스스로 선택해서 간 것인데”라는 등의 댓글은 벼랑 끝에 있는 생존자들을 더 큰 고통의 나락으로 내몬다. 누구나 살다 보면 결과가 좋지 않았던 선택을 할 수 있고, 삶과 죽음이 내 능력 밖의 일임을 절감하는 상황을 마주하곤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기치 않은 죽음 앞에 더 신중해지고,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통계에 의하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아가면서 트라우마라고 불릴만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기에 누구나 살면서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예상하지 못한 죽음과 슬픔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각자도생의 방법만으로는 도저히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 전체가 트라우마로부터 회복하는 길이 무엇인지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 곁에 진정으로 같이 서있는 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결국 공감 어린 연대만이 우리를 살아남게 할 것이다. 살아남아 자책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우리가 곁에서 함께 있겠다고.”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 김상우 발행인이 한국잡지협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한국잡지협회는 지난 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제57회 잡지의 날 기념식을 진행했다. 잡지의 날은 우리나라 최초의 월간 잡지인 최남선이 발행한 ‘소년’지의 발행일을 기념해 제정됐다. 행사는 최근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의식해 엄숙하고 조용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기념식에서 백종운 한국잡지협회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속에서 문화 콘텐츠 경쟁력을 통해 문화 강국이 되었고, 그 중심에는 K-매거진이 있다”고 말하고, “잡지 업계 발전을 위해 디지털 혁신투자 방안을 마련 중이며, 정부와 국회의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은 축사를 통해 “비대면 시대가 문화 산업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콘텐츠의 힘이 갖는 위력이 불변한다는 것 역시 증명됐다”며 “정부는 정기간행물 진흥 5개년 기본계획을 통해 잡지 업계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익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역시 “신문등의진흥에관한 법률은 디지털 미디어 발전 등 업계 변화에 맞춰 개편 논의가 필요한 상태”며 “신생잡지 지원 등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지원하고, 잡지 산업의 미래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잡지 업계 공로자 포상에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김상우 발행인의 수상 이외에도 월간 배드민턴의 김기원 대표가 문화훈장을, 월간 문학바탕 곽혜란 대표가 대통령 표창, 월간 전원주택라이프 노영선 대표가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김상우 발행인은 “고령화 시대를 대비해 2015년부터 발행해 온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사회변화에 따라 더욱 주목받고 있음을 실감한다”며 “국내 중장년 문화를 선도할 수 있는 매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9일 서울 이태원에 핼러윈(Halloween)을 앞두고 인파가 몰리면서 최악의 압사 사고가 벌어졌다.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정부는 참사 다음 날인 30일부터 오는 11월 5일 밤 24시까지 일주일이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됐다.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핼러윈은 무슨 날이길래 매년 이태원에 사람이 몰릴까. 핼러윈은 기독교 축일인 만성절 전야제(All Hallows’ Day evening)의 줄인 말이다. 매해 10월 31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축제를 즐긴다.
19세기 중반까지는 중세 유럽에서 켈트와 가톨릭 신앙이 혼합된 형태의 축제였다. 이후 1840년대 아일랜드인이 대기근으로 미국에 대거 이주하면서 오늘날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유령을 쫓기 위해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의상을 입는 켈트족의 풍습이 미국으로 전파됐다. 유령이나 괴물 등으로 분장한 아이들은 핼러윈에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사탕과 초콜릿을 얻는다. ‘Trick or Treat’이라고 외치는데, ‘간식을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야’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초반 본격적으로 핼러윈 문화가 전파됐다. 외국 유학생, 외국인 강사 등이 영어유치원, 영어학원 등에서 핼러윈 문화를 소개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세계 각국의 외국인이 모여 사는 이태원을 통해서도 핼러윈을 즐기는 문화가 빠르게 전파됐다.
외국인들은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에 모여 소규모 파티를 즐겼다. 이태원은 특히 클럽 문화가 발달해, 외국인들은 핼러윈 때 유령·해적·마녀 등 독특한 의상을 입고 이 지역 클럽을 찾았다. 이를 본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코스튬 문화가 빠르게 퍼졌다. 해를 거듭할 수록 참여 인원이 많아지고, 축제의 규모가 커졌다.
어느 순간 젊은이들이 독특한 분장을 하고 이태원 클럽을 찾는 것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MZ세대의 젊은이들이 여의도 불꽃 축제를 즐기고, 크리스마스에 사람이 많아도 명동 거리를 걷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일상에서 벗어나 핼러윈을 즐기는 젊은이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핼러윈은 10월 31일이지만 앞선 주말에 이태원을 찾는 사람이 많다. 압사 사고가 발생한 지난 29일에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몰렸다. 코로나19로 인해 3년 만에 열린 ‘야외 노마스크’ 행사였다. 오랜만에 빗장이 풀리자 그동안의 갈증을 해소하고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이태원 해밀톤호텔 서편 폭 3.2m짜리 내리막 골목길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1일 오전 6시 기준 사망자 154명, 중상자 33명, 경상자 116명 등 총 303명이 인명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