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hibition
◇유에민쥔(岳敏君) 한 시대를 웃다!
일정 5월 9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장샤오강, 왕광이, 팡리쥔과 더불어 중국 현대미술 4대 천왕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유에민쥔의 국내 최초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다. 1989년 발생한 천안문 사태에 혐오를 느낀 유에민쥔은 다음 해 베이징에서 화가로 등단해 특유의 시니컬한 웃음으로 그가 겪은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작품에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활짝 웃는 얼굴이 등장하지만, 이는 사회주의 붕괴를 목격한 국민으로서의 절망을 역설적이고 자조적인 웃음으로 나타낸 것이다. 국내외를 통틀어 최대 규모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유화부터 대규모 조형 작품, 최근 선보이는 꽃 형상의 얼굴 작업까지 1990년부터 이어지는 유에민쥔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 총 6개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되며, 각 섹션은 유에민쥔의 트레이드마크인 웃음 속 감춰진 의미를 삶과 죽음, 인간 사회 등 다각도로 바라본다. 전시 기간 코로나19로 인해 도슨트의 대면 해설 대신 앱 ‘도슨트’로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며, 아이돌 그룹 샤이니 온유가 따뜻한 음성으로 읽어낸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일정 5월 30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1934년 시인 이상은 서울 종로에 다방 ‘제비’를 열었다. 벽에는 그의 절친 구본웅의 그림과 쥘 르나르의 경구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예술가들은 미샤 엘만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르네 클레르의 영화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1930~50년대 격동의 시기, 장르는 다르지만 한마음 한뜻으로 시대의 전위를 꿈꿨던 문예인들의 뜨거운 연대를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막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전은 정지용·이상 등 문학인과 구본웅·황술조 등의 화가를 통해 일제강점기 및 해방기 문학과 미술의 밀월 관계를 조명한다. 총 4부로 나누어 구성된 이번 전시는 다방 ‘제비’를 배경으로 한 공간을 시작으로 신문·잡지 등 인쇄 미술, 대표적인 문학·미술인 커플의 관계도,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던 작가의 글까지 총 300여 점의 다양한 시각 자료로 두 장르의 지적 연대를 살핀다. 가난과 모순으로 가득 찬 시대 속에서도 정신적 풍요를 잃지 않았던 예술가들의 숭고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 Book
◇조금 알고 적당히 모르는 오십이 되었다 (이주희 저·청림출판)
50대에 들어선 저자가 여유롭고 건강한 인생 후반기를 위해 필요한 어른의 태도를 책에 담았다. 유쾌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오늘날 중년들의 걱정 근심을 속 시원하게 풀어낸다.
◇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 (이나미 저·쌤앤파커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나미 박사가 황혼으로 접어든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 노년의 삶을 성찰한다. 죽음과 이별 등 무거운 주제를 담담하고 소탈하게 풀어내 공감과 울림을 선사한다.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박찬일 저·인플루엔셜)
셰프 박찬일이 평균 업력 64년 노포의 장사 철학을 한데 모았다. 우래옥부터 할매국밥, 청진옥까지 화려한 장사 기술과 손익 계산 없이 ‘자기다움’으로 승부하는 노포의 성공 비결을 소개한다.
● Stage
◇팬텀
일정 3월 17일~6월 27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박은태, 카이, 전동석, 규현, 김소현, 임선혜, 이지혜, 김수 등
“세상이 무너진 이 순간, 너의 음악이 되리라.” 뮤지컬,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장르로 진한 감동을 전하는 뮤지컬 ‘팬텀’이 3월 네 번째 시즌의 막을 올린다. 팬텀은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흉측한 얼굴 탓에 오페라 극장 지하에 숨어 살아야만 했던 ‘에릭’의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1991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으며, 국내에서는 2015년 관객과 처음 만나 예상 밖의 흥행을 거두며 ‘뮤지컬의 결정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렇게 그대 품에’, ‘그대를 찾아내리라’, ‘그의 얼굴을’ 등 캐릭터 간 서사를 강화하는 곡을 새로 추가하고, 작품의 백미인 발레 장면의 비중을 높여 몰입도를 더했다. 어둠 속에 사는 에릭에게 빛 같은 존재인 크리스틴이 있듯이, 뮤지컬 ‘팬텀’이 힘든 시기를 보내는 관객을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위로할 예정이다.
◇검은 사제들
일정 2월 25일~5월 30일 장소 유니플렉스 1관
연출 오루피나 출연 김경수, 이건명, 박가은, 지혜근 등
5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검은 사제들’이 창작 뮤지컬로 재탄생한다. 올해 초연 무대를 올리는 뮤지컬 ‘검은 사제들’은 신학생 ‘최부제’와 교단의 눈 밖에 난 ‘김신부’가 악령에 시달리는 소녀 ‘영신’을 구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원작의 서사를 유지하면서도 무대와 연출, 음악 등으로 오컬트 분위기를 극대화해 숨 막히는 긴장감과 으스스함을 선사할 예정이다.
◇마지막 사건
일정 2월 15일~5월 9일 장소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
연출 성재준 출연 김종구, 홍승안, 김찬종, 정민, 조풍래, 백기범 등
최고의 추리 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과 그의 손에서 태어난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이다. 의사였던 도일이 탐정물에 관심을 보이고 세기의 작가로 데뷔하기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40여 년 동안 셜록 홈스를 주인공으로 4편의 장편과 56편의 단편 소설을 쓴 도일의 강렬한 열망과 내면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습정을 위한 추천 도서 -by 정민
열하일기 (박지원 저)
18세기 말 청나라를 다녀온 뒤 집필한 연암 박지원의 기행문. 단순한 여행 기록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 걸친 박지원의 뛰어난 안목과 사유, 조선 사회에 대한 풍자 등을 해학 넘치는 문장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책을 읽고 양을 잃다 (쓰루가야 신이치 저)
오랜 세월 편집자로 살아온 저자가 고서 애호가로서의 긍지를 담아 펴낸 에세이다. ‘장자’의 고사에서 따온 제목은 독서에 열중한 나머지 양을 잃었다는 뜻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독서의 힘을 드러낸다.
일본인 이야기1- 전쟁과 바다 (김시덕 저)
역사적 인물부터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오가던 상인, 해적, 노예까지 전쟁과 바다가 만들어낸 인물들을 조명하고, 이들이 내린 결단에 주목한다. 일본을 더 깊고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와 통찰력을 갖게 해준다.
완역 정본 택리지 (이중환 저)
‘택리지’는 18세기 이후 조선 사회의 변화와 구체적 실상이 담긴 인문지리서다. 지리를 보는 이중환의 독창적인 관점이 돋보이며, 과거는 물론 오늘날까지 주거지 선택과 산수 유람에 참고할 만한 책으로 손꼽힌다.
“말하여 바로잡는 것도 앎이고, 침묵하여 바로잡는 것도 앎이다. 때문에 침묵을 안다 함은 말할 줄 아는 것과 같다.” ‘순자’(荀子)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남의 말 듣기를 거부하고, 제 말만 하는 사람들로 세상은 조용할 틈이 없다. 남 탓하며 분노를 키우는 사이, 정작 내 안의 소중한 무언가는 빛바래 간다. 정민(鄭珉·59) 한양대학교 교수는 침묵이 주는 힘, 고요함이 빚어내는 무늬를 잊어버린 세태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에 고요히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갖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습정’을 펴냈다.
습정(習靜), 고요함[靜]을 익힌다[習]는 뜻이다. 갈수록 세상은 시끄럽고 혼란스러운데, 내면은 충족되지 않은 채 껍데기만 남은 듯하다. 정 교수는 이러한 공허함을 습정을 통해 채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요함을 익히는 과정에서 비움과 채움의 길항작용이 일어나죠. 멈춤의 시간 없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늙어가는지 모르고 정신없이 살다 보면, 어느 순간 허망해집니다. 그러다가 화가 나죠.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에게 불공정한가, 왜 나만 이런가 하고요. 그건 세상에 반항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바깥 소음에 일희일비하다 보면 내 안에 나는 없고, 남만 잔뜩 들어 있게 되죠. 스스로 균형을 잡지 않으면 그런 시비에 휩쓸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가, 무엇을 견제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가치판단을 위해서는 주체성 회복이 시급해요.”
그는 롤러코스터 같은 삶 속에서 강제로라도 멈춰 가라앉히는 시간을 보내야만 헛헛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의 고요함은 단순히 물리적인 침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 인디언이 사냥하려고 달려가다가 갑자기 멈춰 서기에, 왜 그러냐고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내가 너무 빨리 와서 아직 마음이 따라오지 못해 기다린다’고요. 그 말처럼 마음은 저 멀리 두고 계속 달리기만 하면 허깨비 인생이 되는 거죠. 열심히 살았고 부지런히 노력했더라도 결국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거예요. 그러니 짧게라도 계속 습정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입 다물고 어디 산으로 들어가라는 건 아녜요. 절간에 있어도 마음이 복잡하면 저잣거리에 있는 것과 같죠. 가끔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때, 사람 많고 시끄러워도 깊이 몰두하면 나와 책만 놓인 듯한 경험을 하잖아요. 그런 내적인 고요함을 익히라는 뜻입니다.”
내 안에 고이는 습정의 독서
습정을 통해 나와 대면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고민이 생겨날 수 있다. 정 교수는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하다), 즉 과거의 경험에서 현재 문제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번 책에서도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귀감이 될 만한 옛글들을 모아 엮었다. 그는 번역가, 전달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사설은 최소화하기로 했다. 글에 대한 가치판단 역시 독자의 몫이라 여긴 까닭에서다.
“저는 학자로서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옛글을 찾아 해석하고 옮기죠. 이때 중립적으로 보여주려고만 하지, 어떤 의미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때론 제 의도와 다르게 글을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죠. 그러나 그 역시도 읽는 사람의 판단에 맡길 뿐이에요. 요즘 자기계발서를 보면 스스로 통찰하도록 원리를 짚어주는 게 아니라 단편적인 요령만 가르치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런 글들은 계속 소비될 뿐, 내 안에 고이지는 않죠. 독자가 글을 곱씹어보고 자기 언어로 소화해야 비로소 책을 통한 성찰이 이뤄진다고 봐요. 또 그런 자기 언어를 갖게 됐을 때 자연히 바깥으로 향하는 말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신의 말을 아낀 것 역시 독자의 습정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그가 무어라 말하지 않더라도, 책을 읽다 보면 침묵과 성찰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은 자신의 가치를 점검하고 높여주는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었다.
“책에 ‘자모인모’(自侮人侮)라는 말이 나옵니다. 내가 나를 업신여기니, 남도 나를 업신여긴다는 뜻이죠. 이는 ‘인필자모연후인모지’(人必自侮然後人侮之, ‘맹자’)와도 같은 맥락인데, 스스로 모욕하여 수양하지 않으면, 남도 나를 모멸하고 함부로 대한다는 거예요. ‘왜 사람들이 날 우습게 보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 결국 그 원인 제공자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자꾸 남 탓하고 분노하기 이전에, 그 화를 내 안으로 돌려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가치판단을 위한 생각의 중심추
물론 모든 일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기엔 너무 버거울 수 있다. 중요한 건 내 탓을 할 일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내는 안목. 이 역시 습정을 통해 키울 수 있는 덕목이다.
“가령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불이익까지 모두 내 탓으로 여겨 감내하라는 건 무책임한 이야기죠. 반면에, 지하철을 탔는데 알고 보니 반대 방향인 경우가 있어요. 그럼 그때라도 내려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점점 목적지와 멀어져 엉뚱한 곳에 내리고 말죠. 그래놓고 나는 열심히 왔는데 왜 나를 이런 곳에 내려놓았느냐고 남 탓할 수는 없잖아요. 두 가지 경우는 다소 결이 다른 상황입니다. 무엇을 내 탓으로 돌려야 할지, 생각의 중심추를 바로잡아 현명하게 판단해야 해요. 아무리 스마트 시대이고, AI가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지만, 이러한 문제는 인간의 통찰력이 발휘돼야 해결됩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인문학의 역할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인문학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예순에 이른 정 교수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고 했다. 무엇부터 할지가 문제이지,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없다고. 어쩌면 그런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살지도 모르겠다. 그는 ‘할 것이 없다’고 토로하는 중장년이 혹 있다면 ‘자모인모’를 되새기길 권했다.
“무엇부터 할 것이냐, 즉 우선순위를 따질 때 몇 가지 질문을 해봅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하면 더 잘되는 일은 무엇일까? 이제 와서 남이 해도 똑같은 일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나의 가치를 올려주고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야 의미 있죠. 자모인모, 내가 내 가치를 올려주지 않는데 누가 올려줄까요? 자기 고민 없이 남을 통해 내 일을 만들려고 하니, 소위 갑질을 하게 되는 겁니다. 결국 남의 노력을 뺏고 훔치는 짓인데, 그건 부끄러운 일이에요. 스스로 가치를 발견하고 거기서 힘을 발휘해야만, 비로소 남도 나를 가벼이 대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2020년 한 해 두고두고 읽을 만한 책 - by 유성호
단순한 진심 (조해진 저)
프랑스로 입양된 주인공이 임신 후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을 찾으며 벌어지는 일화를 그린다. 소설 속 인물들은 시공간을 넘어 우연히 마주치는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 몰두하며 차츰 타인과 소통하고 서로의 삶에 스며든다.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이은규 저)
2012년 첫 시집 ‘다정한 호칭’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했던 이은규 시인이 7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이다. 이번 책에 담긴 49편의 작품들에서도 시인의 섬세한 시선과 아름답고 우아한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정민 저)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가 30여 년 학문의 길을 걷는 동안 삶의 길잡이가 되어준 사람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무수한 시절이 빚어낸 삶의 단면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필자 특유의 필치가 녹아든 산문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
윤동주 평전 (송우혜 저)
민족시인 윤동주의 삶과 시를 되새길 수 있다. 북간도의 역사와 당시의 시대 상황, 일경의 극비취조문서, 일본 경도재판소의 판결문 등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한 작가의 예리한 분석이 숭고한 시인의 삶을 재조명한다.
은퇴한 국제 분쟁 전문기자 연옥과 저명한 역사학자 정민. 두 중년 남녀가 매주 목요일 각기 다른 주제로 토론을 이어간다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연극 . 작품을 창작한 황재헌 연출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중년을 주인공으로, 목요일마다 토론을 한다는 설정을 연극으로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몇 해 전, 알베르 카뮈의 무덤 앞에서 시시포스(Sisyphus) 신화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남녀관계의 본질이 그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불어 오래전에 읽었던 프랑스 소설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황혼을 바라보는 남녀의 이야기였습니다. 신화와 소설을 내용과 형식으로 삼아 작품을 구상했습니다.
초연 또는 지난 공연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극장 구조에 맞게, 관객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강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개성과 매력에 설득력을 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좀 더 여유롭고 부드럽게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세상과 작품을 바라보는 시야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연출뿐만 아니라 직접 극본도 작업했는데요. 주인공의 대사 중 가장 공감하는 대목은 무엇인가요?
극 중에서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연옥의 모습을 바라보며 정민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너한테 거짓말 좀 하지 마”라고요.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 그리고 받아들인다는 것. 모든 불행과 행복의 근원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배우가 주인공인 연극과 비교해 중견 배우들을 중심으로 하는 연극에서 얻는 시너지가 남다를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소재의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니까요. 더불어 중견 배우들의 연기에는 삶의 경륜이 묻어나옵니다. 그 연륜과 내공만큼 관객에게도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 중장년이 보았을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연극인가요?
애인, 부부, 부모 자식 등등. 남자와 여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관계에 대한 고민에 빠진 모든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황재헌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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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6월 27일~8월 20일, 윤유선, 진경, 성기윤, 조한철, 김수량 등 출연
내게는 두 딸이 있다. 첫째 딸은 현재 LA에 살고 있고 딸만 한 명이다. 둘째 딸은 쌍둥이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모 그룹의 호주 지사장으로 발령이 나서 가족 모두가 호주에서 4년 동안 살다 얼마 전에 귀국했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 호주로 떠난 손주들은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지금은 귀국해서 서초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귀국하기 전 4년 동안 나는 전화와 카톡으로 손주들과 거의 매일 대화를 나눴다. 세상이 참 좋아져 무료통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손주들을 향한 내 사랑
휴가 때면 한 달씩 서로 오가며 만나기도 했지만 손주들에 대한 그리움은 나를 우울하게 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세상에 태어나 사랑한다는 말을 제일 많이 한 것은 그때였다. 내 사랑의 대상은 당연히 손주들이다. 내 자식 키울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랑이 솟는다. 내 자식 키울 때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부담이 커서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손주들하고 대화할 때 꼭 안아주며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또 손주들이 내 집을 방문할 때는 옛말로 표현해서,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긴다. 손주들이 네댓 살쯤 되었을 때는 손주들 키에 맞춰 앉아 신발도 직접 벗겨줬다. 올망졸망한 발을 보고 있으면 너무 사랑스럽고 행복했다.
나는 손주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좋아할 만한 간식을 직접 만들어 준비해놓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연휴를 맞아 함께 임진강 근처로 놀러갔다. 오가는 시간이 서너 시간 걸리는 거리여서 둘째 딸이 간식을 준비해 왔지만 나도 차 안에서 손주들에게 먹일 수 있는 간식거리를 준비했다. 내가 늘 먹을거리를 준비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손주들은 교외로 나갈 때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무엇을 싸오셨을까?’ 하고 소풍 도시락 열어보듯 설레어한다. 내가 힘들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손주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이려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땀 뻘뻘 흘리며 과일 잼도 직접 만들어 먹인다.
아이들은 보는 대로 배운다
얼마 전에 손주들한테 용돈을 줘야 할 일이 생겼다. 나는 용돈을 줄 때마다 새 지폐를 마련해 반드시 짧은 글이라도 써서 깨끗한 봉투에 넣어서 준다. 헌 돈과 새 돈의 가치는 똑같지만 시장에서 거스름돈으로 더럽혀지고 심하게 구겨진 돈을 받았을 때는 새 돈을 받았을 때와 기분이 다르다. 은행이 막 찍어낸 듯한 빳빳한 새 돈을 받으면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돈처럼 귀중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용돈을 줄 때도 정성을 다하는 것은 손주들이 어려서부터 돈을 귀하게 여기도록 하려는 교육적인 의미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주들이 용돈 봉투를 열고는 “와~ 새 돈이다!” 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다. 그래서인지 손주들도 내게 줄 선물을 준비할 때는 정성을 다하고 예의를 갖춘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맞다.
시간이 흘러도 남아 있는 사랑의 흔적들
사랑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과 글로 표현하는 것은 그 느낌과 강도가 다르다. 손주들도 그것을 아는 것 같다. 말은 그 순간에 제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지만 편지로 정성스럽게 표현한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손주들 책갈피에서 종종 다시 발견되기도 하니 말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주고 내가 써준 편지들을 보고 자란 탓인지 아이들도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참 행복하다.
LA에 사는 손녀는 멀리 있어 행여 할머니 사랑이 부족하면 어쩌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서울에 올 때마다 내가 사용하는 붓과 책 등의 물건들에 “할머니 사랑해요!”라는 글을 몰래 남기고 가는 것을 보면 기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돌아간 후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 손녀의 흔적을 볼 때마다 어린 마음에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 아닌가 해서 짠해진다. 그리고 LA로 돌아가 정성을 다해 쓴 ‘할머니의 Love Letter’를 보고 까르르 웃으며 곧 답장을 보내올 손녀가 그때부터 그리워진다.
손주를 예뻐하느니 홍두깨를 예뻐하라는 옛말이 있다.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으면 그 순간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사랑은 그저 순간순간 느끼면 되고 그 순간이 쌓이면 한 권의 아름다운 책만큼 풍성한 이야기들이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훗날 추억을 더듬듯 그 책을 살며시 펼쳐보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사랑하는 정민, 지민, 성수, 멀리 바다 건너에 살아 자주 볼 수 없는 솔라야 예쁘고 바르고 씩씩하게 성장해줘서 참 고맙다!!!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
1987년 부산에서 쌍둥이로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각각 미국과 프랑스로 입양된 사만다 푸티먼과 아나이스 보르디에가 4년 전 SNS를 통해 극적으로 재회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를 보면서, 그리고 “저 역시 입양아로서 살아온 삶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아나이스 역시 입양의 어두운 면이나 슬픈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저희는 대부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만다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의 입양 현실에 시선이 향한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입양 현황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국내 법원에서 국내외 입양을 허가받은 아이는 1057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국내 입양은 683명으로 2014년의 637명보다 약간 늘어났지만, 국외 입양은 374명으로 2014년의 535명에 비해 줄었다. 국외 입양아 현황을 보면 미국이 전체의 74.3%로 가장 많고 이어 스웨덴(9.6%), 캐나다(5.9%), 노르웨이(2.7%) 순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1년 4206명이던 입양 아동은 2003년 3851명, 2006년 3231명을 거쳐 2013년 2652명으로 크게 줄었다. 그리고 2014년 1172명, 2015년 1057명으로 감소하는 등 입양이 활발하지 못한 상황이다.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역시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이들을 입양해 행복한 가정을 꾸려 입양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며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는 데 일조하는 연예인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차인표-신애라 부부, 중견 연기자 송옥숙, 탤런트 이아현, 개그맨 엄용수, 연극배우 윤석화, 가수 조영남, 개그우먼 이옥주 등이 자녀를 입양해 키우는 대표적인 연예인들이다.
여러 아이를 입양해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우고 있는 브래드 피트-안젤리나 졸리 부부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일반인의 입양에 대한 인식 전환에 크게 기여한 것처럼 입양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엄존하는 한국에서도 차인표-신애라, 이아현 같은 대중의 시선을 받는 연예인 스타들이 입양 문화 활성화에 일조하고 있다.
자녀를 가슴으로 낳아 키우는 연예인들은 입양은 특별하거나 칭찬받을 일이 아니며 입양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과 다른 가족이 더 행복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정민이(큰아들)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부모로 선택하게 했듯 둘째 예은이, 셋째 예진이는 우리가 입양한 것이 아니라 정민이와 다른 방법으로 이 아이들이 우리를 부모로 선택했습니다. 입양은 가정이 절실하게 필요한 아이에게 울타리를 쳐주는 것이며 새 가족과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새 가족이 생기면서 아이가 사랑을 알게 되고 다른 가족들도 입양한 아이로 인해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입양한 예은, 예진으로 인해 가족들이 더 행복해졌어요.” 두 아이를 입양한 차인표-신애라 부부의 말이다.
“결혼 전 입양을 해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슴으로 낳은 아이도 배 아파 낳은 아이와 똑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둘째를 입양하고 키우면서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셋째도 입양을 하게 됐지요.”신애라의 말이다. 신애라의 적극적인 입양 의사에 남편 차인표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입양단체 관계자들은 스타 부부 차인표-신애라의 두 아이 입양은 많은 사람들에게 입양에 대해 관심을 끌게 하고 국내 입양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한다.
“입양했다고 하면 왜 칭찬받는지 솔직히 저는 반감이 듭니다. 내 딸들은 나를 있게 해준, 살게 해준 사람들입니다. 딸들이 아니었으면 너무 힘들어서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2007년 첫째 딸 유주(9)를, 2010년 둘째 딸 유라(6)를 입양한 탤런트 이아현이다. 이아현은 입양은 특별한 일이거나 찬사를 받을 일이 전혀 아니라고 했다.
혈연에 대한 집착, 법과 제도 문제 등 한국에서 입양이 활성화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자녀들을 입양한 연예인들은 강연과 홍보대사, 그리고 방송 등을 통해 입양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입양한 아이를 잘 키워 결혼까지 시킨 코미디언 엄용수는 방송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녀 셋 중 둘이 ‘가슴으로 낳은 애들’이다. 피 한 방울 섞이고 안 섞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가족을 이루면 되는 것이다”라며 입양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설파한다.
입양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연극인 윤석화는 방송 등 대중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유교적인 사상이 많고, 국내 입양에 대한 편견이 아직도 많은 것 같아요. 외국의 사례나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정말 아이들이, 생명이 크는 것은 사랑이 가장 우선이고, 오히려 DNA(혈연)보다 더 중요한 게 사랑이고,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아직도 많은 아이가 해외로 입양 가고 국내 입양이 잘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죠”라며 국내 입양이 활성화했으면 하는 바람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입양 문화가 이전보다 개선됐다고 하지만 장애아나 혼혈아 입양을 꺼리는 인식은 여전하다. 2015년 한 해 장애나 건강에 이상이 있는 아동 중 국내 입양은 24명이었지만, 해외 입양은 99명이나 됐다. 정부가 해외 입양을 통제하지 않았던 시기인 2002년에는 해외로 입양 간 장애아가 827명에 달했고 국내 가정에 입양된 장애아는 16명에 불과했다.
필리핀계 혼혈아를 2007년 입양해 가정을 이룬 중견 연기자 송옥숙은 “입양한 아이가 혼혈이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혼혈아에 대한 사회의 시선에 개의치 않았다.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는 것만이 중요했다”고 말하며 장애아나 혼혈아에 대한 입양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입양아 가정에서 고민이 많은 입양 공개 여부에 대해서도 연예인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자녀를 입양한 연예인들 대부분은 외국처럼 입양 공개에 대해 찬성하고 있다. 가수 조영남은 “아이를 입양한 것은 세상의 빚을 갚는 심정이었어요. 아이를 공개 입양한 것은 입양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려고 한 거예요. 결과적으로 입양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아이를 밝게 키운 것 같아요”라고 했다. 차인표-신애라 부부는 “저희가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비밀 입양이라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비밀 입양은 아이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부모야 본인이 선택한 거지만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은 비밀 입양을 할 경우 숨겨야만 하는 음지가 생기는 것이지요”라며 입양 공개 찬성 이유를 밝혔다.
개그맨 엄용수는 여섯 살 때 입양해 2007년 결혼해 가정을 꾸린 딸 엄현아(35)씨가 아이를 낳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입양은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다시 한 번 깨달았다며 더 많은 사람이 입양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입양은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게 아니라 소중하게 태어난 생명을 하나의 인격체로 키워내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따뜻한 가정 안에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할 권리가 있고, 어린아이들을 사회적 인재로 키워내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입양은 내 삶에 가장 잘한 일이다.” 2003년 공개 입양으로 아들 매튜를 가족으로 맞은 영화배우 故 김진아가 생전에 나와 인터뷰하면서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