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나이, 성별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만날 수 있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하지만, 서로의 감정이나 반응을 깊게 이해하며 인연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오해가 쌓여 오히려 관계를 해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로운 환경에서 내 생각과 취향을 공유하며 유대감은 쌓되, 타인과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네이버 밴드,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처럼 다양한 SNS로 나를 표현하고 남들과 교류하는 이들이 늘었다. 소통 방식은 각자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공유하고 싶어 하는 반면, 누군가는 이런 행동을 질색하며 경조사나 업무 등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소통하려 한다. 개성 있고 자유로운 SNS 활동도 중요하지만 타인을 배려하며 예의를 지킨다면 더 돈독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한 번 더 짚어야 할 예절
누군가를 만날 때는 늘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한다. 온라인 환경도 다르지 않다. 말이나 행동은 우리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게시물이나 댓글이 타인에게 나의 가치관과 성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못된 행동이나 무례한 말투로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SNS는 글 형태의 메시지가 주된 소통 수단이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표현이나 과도한 외래어, 전문 용어 대신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는 편이 좋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개인적인 소식을 무분별하게 공유하는 행위도 지양해야 한다. 급한 용건이 아니라면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직접 혹은 단체 공간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더욱 피하자. 개인 채널에 게재하는 사진이나 글이 상대방에게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가 고민해봐야 한다. 폭력성·음란성을 띠거나 차별적인 콘텐츠는 타인에게 상처로 남기 십상이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이야기의 수위와 완급을 조절하듯 SNS에서도 마찬가지다.
관계 맺은 친구와 내가 무조건 같은 이용 행태를 보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룹이나 페이지에 동의 없이 초대하거나, 좋아요 버튼을 누르라고 강요하거나, 바로 댓글 달기를 바라면 안 된다. 가장 가까운 가족도 포함이다. 관계의 확장이나 활동 주기는 스스로 정하도록 하는 존중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직장에 출근한 시간대에만 SNS나 모바일 메신저를 활발하게 주고받는 ‘출근 친구’ 사이도 등장했다. 퇴근 시간이나 주말에는 최대한 인간관계의 피로감을 줄이고 개인 시간을 지켜주는 셈이다.
저작권 침해 및 개인정보 노출 주의
만남과 소통, 정보 교류, 문화 창조가 이루어지는 무궁무진한 공간이지만 사생활을 침해받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높아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생년월일, 주소, 휴대폰 번호 등 필요 이상의 개인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프로필 공개 범위를 신중하게 설정하자. 모르는 사람이 친구를 신청한다고 해서 함부로 수락하면 보이스 피싱이나 로맨스 스캠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의심스러운 링크나 첨부파일을 클릭하지 말고,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이종구 SNS소통연구소 대표는 안티바이러스, 방화벽, 경찰청 사이버캅, 시티즌코난 등 보안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할 것을 권했다.
SNS 활동에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면서 오히려 소외감, 뒤처짐, 외로움에 직면하기도 한다. SNS 사용으로 직접 만남을 통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다. ‘중년 여성의 스마트폰을 통한 SNS 사용 경험’ 보고서에 따르면, 42~52세 여성 10명을 심층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을 통한 타인의 사생활 엿보기는 면대면 상호작용 없이도 생활을 공유한다고 오해해 직접적인 연락 횟수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일과 가정의 경계가 불분명해져 나만의 시간 확보가 어려워졌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 대표는 “트렌드 파악뿐 아니라 인맥 관리, 비즈니스 관계 맺기, 멘토링 받기 등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지만 과도한 이용은 금물”이라며 “개인적인 공격이나 비방을 삼가고 최대한 침착하고 예의 바르게 소통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실 인간관계의 본질은 같다. 1936년에 출간된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지금까지 자기 계발 분야 베스트셀러에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시대를 거듭할수록 사회적·문화적 변화와 함께 사람들 사이 소통 방식과 관계의 범위 등 많은 것이 달라졌다.
새로운 사람과 만났을 때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한 번에 완화할 수 있는 한국 사회 속 ‘필승 전략’이 있다. 학연, 지연, 혈연이다. 우연히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걸 알았을 때 주변 맛집, 교내 명소, 동아리 등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다 보면 금세 친해진 기분이 든다. 지연이나 혈연은 말할 것도 없이 서로를 이끄는 매력 중 하나다.
속상한 일이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세 요소 중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상대와 거리를 좁히긴 쉽지 않다고 여긴다. 공통점을 찾거나 재미있을 만한 주제를 꺼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내다 결국 출신 성분으로 다시 돌아가고 말 때도 있다. 그러나 최근 인간관계의 지평이 흔들리고 있다. 흐름을 파악해 또 다른 필승 전략을 찾아 적용해보는 건 어떨까.
◇취향을 통한 ‘모임 속 모임’
전염병이 도래하면서 3여 년 동안 사람들의 교류가 일시적으로 단절됐다. 서로 간 소통의 빈도와 강도는 단박에 복구되기 어려웠다. 그 사이 취향을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재편되기 시작했다. ‘2023 트렌드 모니터’에 따르면 나이, 사회적 지위, 의례 강요와 같은 견고한 전통적 기준을 통한 관계 맺기를 탈피하고자 하는 정서가 짙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취향이 비슷하면 관계가 더 돈독해질 수 있다고 말한 비율이 84.7%에 달했다.
일부는 익숙한 관계와 개인의 취향이 결합한 모임을 선호하기도 한다. 자신의 과거를 고려한 동창회나 회사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취향 맞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려 한다는 의미다. 직장 내 살롱문화(책, 와인, 스포츠, 맛집)가 그 예다. 수평적 형태만 유지된다면 한 번의 모임으로 사내 인맥 관리와 취미를 동시에 취할 수 있다. 가벼운 경험 공유 소재 외에 자신의 가치관과 사회적 의미(비건, 환경보호, 정치 성향)를 공유하고자 하는 모임도 생기고 있다.
◇찐친과 겉친 사이
‘2024 트렌드 모니터’에 따르면 무조건 인맥을 확장하려는 욕구는 줄고, 좁고 깊은 관계를 통해 관계의 효율을 추구하는 추세다. 일부는 SNS도 폐쇄형식으로 운영한다. 최근 개인 SNS의 공개나 운영은 대체로 이미 ‘잘 아는 관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었고(65.8%), 해당 관계끼리만 소통을 시도하는 편이었다.(65.3%) 반면, ‘찐친’ 외에는 필요할 때만 찾는 일회성 관계로 여기기도 한다.
‘티슈 인맥’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는 목적과 친밀도, 중요도에 따라 의도적으로 색인을 붙여 분류하는 ‘인덱스 관계’를 소개했다. 이명수 연세라이프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온라인 만남이 익숙해진 만큼 다양한 관계를 맺게 될 기회도 급격히 늘었기 때문에 목적을 기반으로 인맥을 관리하는 경우가 나타난 것”이라며 “다만 활동 기록이나 메시지 답장 시기가 실시간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서로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상식? MBTI
“MBTI가 어떻게 되세요?”는 처음 본 사람에게 서먹함을 깨는 용도로 빠지지 않고 사용된다. 최근 온라인에 간이 검사법이 확산되면서 광풍이 불었다. MBTI는 심리학자 칼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개발된 성격 유형 검사다. 여러 문항을 통해 외향(E)과 내향(I), 감각(S)과 직관(N), 사고(T)와 감정(F), 판단(J)과 인식(P) 4가지 지표 중 각각 어떤 특성에 가까운지 분류한 뒤 해당 지표를 조합해 총 16가지 유형 중 하나로 성격을 구분한다.
SNS나 유튜브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MBTI 유형별 연애·공부·관계법 등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특히 주목받는 지표는 T와 F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고 흐름과 반응 양상에 큰 차이가 있다. 만약 친구가 “나 우울해서 미용실 가서 머리했어”라고 말했을 때 T 유형은 “어떤 스타일로 했어?”, F 유형은 “무슨 일 있는 거야?”로 반응이 나뉜다고 한다.
이명수 원장은 “MBTI는 원래 팀 프로젝트를 할 때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협업 능력을 높이고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라며 “타인과 대화할 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성향인지, 상대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재미로 파악해볼 수는 있지만 그 특성 안에만 갇히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은퇴 후 소원해지는 인간관계에 실망하는 이가 적지 않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안부도 주고받고 종종 식사도 했던 사이인데, 회사를 나오니 연락도 만남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명함이 없다고 얕보나’, ‘내가 돈을 안 번다고 무시하나’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자. 혹시 ‘내가’ 스스로에게 그런 편견을 갖고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만약 그렇다면 주변은 잠시 제쳐두고 나와의 관계부터 돌아봐야 할 때다.
퇴직 이후의 삶이 길어지며, 노후 대인관계가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다만 원활하고 지속적인 관계 형성을 위해서는 자신과의 관계를 다지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 ‘은퇴의 말’, ‘은퇴의 맛’ 등의 저서를 펴내며 수많은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들을 만나온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은퇴 후 얼마나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는 자신과의 관계에 달렸다”고 언급했다. 그는 “직장 생활로 생겨난 공적 관계망은 보통 퇴직 후 6개월 이내 소멸된다. 특히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명성을 얻은 분일수록 이러한 변화에 취약하다. ‘그동안 나를 잘 따랐던 부하 직원들이 연락하겠지’ 같은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크고, 실망이 쌓이면 절망하게 된다. 점점 위축되고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작은 일에도 버럭 하고 화를 내는 등 이른바 ‘앵그리 올드’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주변에서는 회피하고 멀리하게 마련인데, 결국 대인관계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군들 좋아할까
한혜경 교수의 경험에 의하면 은퇴 후 화가 많아지고 이를 표출하는 중장년이 적지 않다고. 겉으로는 타인을 향해 화를 내는 것 같지만, 이는 결국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과 같단다. 스스로에게 답답하고 불만스러운 심정을 그러한 방식으로 토로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과의 관계가 평온하고 긍정적인 이들은 타인과의 관계 또한 순조로운 편이다. 한 교수는 “최근 뇌과학 분야 연구 중에 흥미로운 결과가 있었다. 나에 대한 정보처리와 타인에 대한 정보처리가 동일한 뇌 신경망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풀어 설명하자면 나를 좋게 보는 사람이 남도 좋게 보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 남도 존중한다는 얘기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와의 관계, 자기 내면과의 소통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이 곧 타인과의 관계에도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나와의 관계가 편안하고 능숙한 사람들은 웬만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회복탄력성 또한 높다. 반대로 자신에게 불만이 많고 소통이 어려운 이들은 사소한 일도 크게 힘들어하고, 회복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 교수는 “살다 보면 유난히 사람들이 미워지거나 괜히 무시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혹시 내가 나를 미워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봐야 한다. 마치 거울처럼 누군가에게 갖는 나의 마음이 알고 보면 나를 향한 마음은 아닐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인정중독에서 벗어나 ‘셀프 칭찬’ 필요해
경쟁과 성취를 강조해온 한국 사회에서 현재의 중장년 세대는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다. 어떤 이들은 타인에게 인정받아야 잘 사는 삶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가령 어느 대학과 직장을 다닐지, 얼마만큼의 집을 사고 무슨 차를 타야 할지 등 자신보다 타인의 인정이나 평가를 따르는 경향이 적지 않다.
한혜경 교수는 “이러한 삶이 계속되다 보면 인정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거부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타인 때문에 상처받으며 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았을 때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30~40대에는 타인의 관심과 인정이 성장의 디딤돌이 되기도 하지만, 50대 이후까지 이에 얽매이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와의 관계를 더 행복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주파수에 나를 맞추지 말아야 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엔 차이가 존재한다. 그 사실을 먼저 받아들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나아가 잘난 척, 괜찮은 척이 아닌 솔직한 나를 드러낼 수 있을 때 개인적으로도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으로는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하면서도 실제 자신을 향한 칭찬에는 의구심을 갖거나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엄격하고, 스스로의 능력과 장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반응이다. 한 교수는 자신의 좋은 점과 강점 등을 발견하는 과정이 매우 가치 있기에, 때때로 스스로를 칭찬해보는 시간도 마련해보길 권했다.
나를 위한 삶, 건강한 자기중심성 갖기
은퇴 후 또는 자녀 출가 후에도 끊임없는 희생을 감수하는 부모들이 있다. 가령 노후자금이 부족한데도 자녀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준다거나, 몸이 아프고 힘든데도 손주 육아를 돕는 등 자신보다는 자녀를 중심으로 노후를 살아가는 것이다. 타인 중에서도 자녀가 주는 기쁨이 상당하지만, 결국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지속적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자녀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 정작 자신의 인생을 누리지 못하고, 나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행복한 노후를 가꿔가기 어렵다.
한혜경 교수는 “초고령사회, 수명은 길어지고 1인 노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어떻게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누가 끝까지 나를 돌봐줄까’, ‘누가 내게 삶의 기쁨이 남아 있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꼭 해봐야 한다.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독립돼야만 자신을 스스로 돌보며 잘 지낼 수 있고, 자신을 잘 돌볼 수 있어야 자식이나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도 건강한 관계를 오래오래 유지하면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나를 위하고 사랑해줄 사람, 내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할 사람은 곧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위하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인본주의 심리학자로 유명한 로저스(C. Rogers)는 말년에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더 많이 돌보게 됐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나는 나를 좋아한다. 나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알아보았고, 그것을 충족시키려고 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삶을 살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내가 매우 아프지만 내 삶을 사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한 교수는 “로저스의 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결국 나이 들수록 ‘건강한 자기중심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건강한 자기중심성은 본인의 가치와 독특성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태도다. 스스로를 홀대하고 혹사하는 건 짧고 굵게 살던 시대의 논리다. 100세 넘게 사는 요즘 시대에 필요한 건 자기중심적인 삶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스스로의 고유한 가치와 개성을 존중하고 사랑할 때, 타인도 나를 그렇게 존중하고 사랑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의 역사 쓰기’로 회복하는 나와의 관계
교수 은퇴 후 현장에서 중장년을 대상으로 ‘나의 역사 쓰기’를 운영하고 있는 한혜경 교수는 글쓰기를 통해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나의 역사를 쓴다고 해서 유명인이 자서전을 내듯 거창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나의 삶을 한 권의 책이라 여기고 목차를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은퇴 후에는 대인관계를 비롯해 여러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내 인생의 해답 또한 내 안에 있는 법. 찬찬히 과거의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스스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발견하게 된다.
한 교수는 “나의 역사 쓰기란 내가 나에게 나에 대해서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다. 현역 시절 이력서에 보기 좋게 썼던 나의 모습과 달리,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적어보는 것이다. 퇴직 이후 인생 2막 또는 3막을 준비하려면 과거와 현재의 나를 잘 이해해야 한다. 나를 헤아리는 과정 속에서 자신과의 갈등 고리를 풀어내기도 하고,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나의 역사 쓰기도 너무 말년에 했다가는, 과오를 발견하고도 ‘이제 와서 달라질까’, ‘너무 늦었구나’라며 개선할 시간이 없다고 여겨 절망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나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나의 역사를 꼭 한번 써보시길 바란다”고 권했다.
도움말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기꺼이 오십, 나를 다시 배워야 할 시간' 저 , '나의 역사 쓰기' 운영)
“인생이 곧 관계 맺음이에요. 그러니 관계가 틀어지면 내 삶이 행복하지 않겠죠? 사는 것만큼 관계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임정민 임파워에듀케이션 대표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인간관계는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평생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나이 먹어도 어려운 게 바로 ‘관계 맺음’이다.
한국리서치 ‘2023 인간관계 인식조사’에 따르면 현재 인간관계에 만족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 중 82%는 ‘지금의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답했다. 동시에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해 노력’(51%)했거나 ‘인간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노력’(48%)했다고도 했다. 이처럼 인간관계는 유지하고 늘리고 줄이는 상황을 동시에 반복하는 복합적인 영역이다.
전문가들은 관계 맺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에 대한 인식’이라고 강조한다. 윤서진 코칭경영원 파트너 코치는 관계가 어려운 이유로 ‘나를 잘 모른다는 점’을 꼽았다. “나를 알아야 누구와 잘 맞고 안 맞고를 알 수 있는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요. 그 상태에서 타인에 대한 기대심리가 커지면 ‘우리 관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데?’라며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임정민 대표도 공감했다. “나와 상대는 기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상대를 잘 알지 못하는 게 당연한데, 알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알려면 우선 자기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죠.”
이처럼 관계 맺음에 앞서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하기에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점검하고, 나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준비했다.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관계를 더할지 뺄지 혹은 어떻게 유지하면 좋을지 파악해보자.
◆STEP 1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임정민 대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 ‘에고그램 진단’을 추천했다. 미국 정신의학자 에릭 번이 창시한 교류 분석 이론 중 자아 상태의 기능 분석에 속하는 것인데, 미국 심리학자 존 M. 듀세이가 발전시켜 성격을 시각화한 진단법이다. 임 대표는 이 진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성격을 화끈이, 포용이, 침착이, 솔직이, 끄덕이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건강을 위해 탄수화물,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 지방이라는 다섯 가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하는 것처럼, 성격 유형에도 밸런스가 무척 중요하다. 너무 점수가 높은 유형은 줄이고, 점수가 낮은 유형은 높여 균형을 잡아야 한다.
◇에고그램 진단하기
나는 어떤 성격 유형을 높이고 어떤 성격 유형을 낮춰야 할지, 다음 에고그램 간이 진단 테스트로 알아보자. 아래 체크리스트는 간소화한 버전으로, 정확한 진단을 해보고 싶다면 QR코드를 활용하면 된다.
ㆍ문장을 읽고 빠르게 응답한다. 이상적으로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평소 모습을 떠올려 비슷하면 O, 다르면 X를 하얀색 칸에 표시한다.
ㆍO는 2점, X는 0점으로 계산해 세로 총합을 합계란에 적는다. 각 유형별 최고점은 8점, 최하점은 0점으로 점수가 높은 것일수록 내가 관계 맺음에서 주로 취하는 성격 유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성격 유형별 특징
“권위적이고 비판적인 화끈이” 지시를 내리고, 통제하려는 모습을 주로 보인다. 도덕과 윤리를 중요하게 여기며 목표 지향적인 타입.
“부드럽고 다정한 포용이” 누군가를 보호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공감하고 배려하는 말과 행동이 먼저 나가는 타입.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침착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말과 행동을 주로 한다. 통계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타입.
“감정 표현에 충실한 솔직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행동이나 감정 표현이 자유분방한 타입.
“순응하며 소극적인 끄덕이” 주위 눈치를 보며 행동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억압, 드러내지 않는다. 순응하며 참는 타입.
◆STEP 2 관계, 늘릴까 줄일까?
STEP 1에서 나의 관계 맺음 유형을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관계의 필요성을 점검해보자. 내가 인간관계를 늘리고 싶어 하는 게 맞는지, 관계 정리를 어려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관계 맺음을 어려워하는 마음 이면에는 기대심리가 있다. 귀찮아서, 충분해서, 바빠서 새로운 관계를 늘리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상대에게 거절당하거나 상처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윤서진 코치는 “자신의 틀을 깨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나도 몰랐던 나를 알아갈 수 있다”면서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는 두려움을 용기 내 이겨보자”고 조언했다.
새로운 관계 맺음에 대한 욕구가 있다면, 반대로 관계를 정리하고 싶은 욕구도 있다. 많은 사람이 ‘내가 이 사람에게 얼마나 잘했는데’를 생각하면서 손해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죄책감을 가지기도 한다. 이럴 때 자신의 기준이 없으면 상대를 이해해보려다 끌려다니거나 이용당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윤 코치는 현명한 관계 정리를 위해서 첫째 서두르지 않기, 둘째 상황에 맞는 방법 선택하기, 셋째 후유증 관리하기를 제안했다. 먼저 관계를 정리해야 할지 말지 고민된다면 스리아웃 제도를 적용해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 상대가 같은 실수를 세 번 반복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준다면 과감히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다만 상대에게 힘들고 불편한 지점을 미리 알려준 뒤 속으로 숫자를 세어보자. 또한 관계를 정리할 때는 말없이 잠수 타거나, 상대를 차단하는 방식을 택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서서히 만남·연락 횟수를 줄이는 편이 좋고 혹은 상대에게 관계를 종료하겠다고 명확하게 선언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상대와 보낸 지난 시간을 후회하거나 상처 줬다는 자책을 하거나 제3자에게 험담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STEP 3 관계의 핵심은 인정하기!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소통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기대를 내려놓는 일이다. 나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누구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대치가 너무 높으면, 압박을 느끼게 돼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급함이 생기기도 하고, 상대에게도 내가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기대하게 된다. 나에게도 한계가 있고, 모든 사람과 잘 맞을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하자.
상대를 인정해주는 말을 표현함으로써 신뢰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윤서진 코치는 “대부분의 사람이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은 생략하고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은 자신의 의도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신뢰를 쌓는 가장 빠른 방법은 상대를 충분히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인정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다. 흔히 “너 이거 참 잘한다”라는 칭찬의 말을 인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평가에 해당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고서를 작성해온 부하 직원에게 상사가 “잘 썼다”고 말하는 건 평가다. 하지만 잘했는지 못했는지와 상관없이 “기한 맞춰 보고서 작성하느라 정말 애썼어”라고 말하는 건 인정이다. 상대의 가치를 알아주고 인정하는 것이 신뢰 형성의 시작임을 잊지 말자.
이처럼 나를 인정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관계에 있어 핵심이긴 하지만,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의 사이에서는 인정이 무척 어렵다. 싫어하는 상대를 인정한다는 게 마치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윤 코치는 이럴 때 공감과 동감을 구별해보자고 말했다. 상대가 어떤 말을 했을 때 “맞아, 나도 완전 그렇게 생각해”라고 말하는 건 동감이다. 공감은 생각이 다르더라도 “네 마음이 그랬구나”라고 알아주는 것이다. 누군가 불만을 이야기하면 “너는 이런 부분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구나”라고만 말해도 공감하는 것이다. 이도저도 어렵다면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잘 맞지 않는 상대가 가족이라면 관계의 끝을 생각해보자. 가족은 끊을 수 없고 회피할 수 없는 친밀한 사적 관계여서 선을 넘거나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가 많다. 관계의 끝이 남남처럼 지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소통을 개선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조율할 것인지 생각하고 표현하는 게 좋다.
임정민 대표는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던 말 습관을 바꿔볼 것을 권유했다. 좋은 말은 더 좋은 표현으로, 부정적인 표현은 긍정적인 말로 바꿔보는 것이다. ‘좋아, 멋지다’는 긍정적인 표현이지만 다른 상황에서 매번 같은 표현을 반복하면 상대에게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좋은 선택이야, 근사하다, 생기있다’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면 상대와 더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는 불편한 마음이 있는 게 당연한데, 이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더 나은 표현으로 순환하는 것이 좋다. 임 대표는 긍정 회로를 만드는 방법으로 “자주 만나는 사람과 했던 대화나 상황을 돌이켜보고 내가 했던 말을 더 좋은 표현으로 바꿔보는 연습을 해볼 것”을 제안했다.
인간관계는 곧 우리의 삶이며, 관계 맺음에서는 소통이 중요하다. 둘 중 한 사람의 생각이 맞다는 관점을 고수하면 인정은 더 어려워진다. 맞고 틀리는 문제 풀이가 아닌, 서로 다른 동등한 존재임을 알아가는 것이 관계 맺음임을 잊지 말자.
도움말 윤서진 코칭경영원 파트너 코치, 임정민 임파워에듀케이션 대표
●Exhibition
◇누구의 숲, 누구의 세계
일정 6월 2일까지 장소 대구미술관
전시는 전 지구적으로 중요한 주제인 환경과 생태계 위기에 대해 살펴본다. 작가 13명의 작품 70여 점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구는 누구의 숲이며, 누구의 세계인지 질문한다. 첫 번째 섹션 ‘봄이 왔는데도 꽃이 피지 않고 새가 울지 않는…’에서는 미래 환경의 위험성을 이야기한다. 정주영 작가의 변화하는 기후·구름·우주, 김옥선 작가의 외래종 나무, 장한나 작가의 새로운 형태의 돌(New Rock 프로젝트) 작품을 소개한다. 두 번째 섹션 주제는 ‘잊혀진 얼굴, 봉합된 세계’로 문명의 발전 이면에 발생한 인간의 욕망과 자연에 관한 태도에 주목했다. 강홍구, 김유정, 백정기, 송상희, 이샛별, 이해민선의 작품이 소개된다. 마지막 섹션 ‘세계에 속해 있으며, 세계에 함께 존재하는’에서는 권혜원, 정혜정, 아니카 이, 토마스 사라세노의 작품을 통해 자연에 대한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시선을 엿본다. 박보람 학예연구사는 “도시 문명, 환경, 생태계 문제에 대해 다채로운 관점을 담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반성적 감각을 회복하고 인류세 시대, 그 이후에 관한 공생, 생태적 감각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화첩으로 보는 나의 프로필
일정 5월 31일까지 장소 영인문학관
영인문학관에서 10년 만에 열리는 서화첩(글씨와 그림을 모아 만든 책)전이다. 문인, 화가, 서예가, 섬유예술가, 패션디자이너 등 60여 명의 정상급 예술가들이 서화첩 한 권에 프로필을 채웠다. 자화상, 좌우명, 애송시, 자전적 글 등 담긴 내용은 다양하다. 소설가 김채원은 언니 김지원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시기에 그린 우는 자화상을 서화첩에 넣었고, 부친을 여읜 서예가 김병기는 ‘아버지가 애송하던 한시를 통해 슬픔을 달랜다’는 발문과 함께 58쪽의 글을 썼다. 한편 작가의 방은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김상옥의 방을 재현했다. 특별 전시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서재를 재공개한다. 예약을 통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에 관람 가능하다.
●Book
◇느리게 나이 드는 기억력의 비밀(김희진·앵글북스)
동년배보다 보통 20~30년 젊은 뇌를 가진 사람을 슈퍼에이저(Super-ager)라고 부른다. 그들은 젊은 사람만큼 뛰어난 기억력과 인지 능력을 가졌다. 저명한 치매 전문의 김희진 한양대학교 신경과 교수는 인간의 노화란 예정된 것이 아니라 소모에 의해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 신체를 어떻게, 얼마나 잘 관리하면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뇌가 나이 드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습관이 기억력과 뇌 건강을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책의 1부는 ‘이해하기’ 파트로 뇌의 구성과 각 부분의 기능을 설명한다. 여러 실험과 사례를 통해 풀어내고 있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따라 하기’ 파트인 2부에서는 일상 점검을 비롯해 식단과 운동, 감정과 스트레스 관리, 수면과 약 복용법 등 올바른 생활 습관을 총 7가지로 나누어 소개한다. 부록에는 많은 이들이 실제로 효과를 본 다양한 방법과 저자도 실천하고 있는 작은 습관들을 상세히 담았다.
그러나 슈퍼에이저의 습관을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뇌에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조건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희진 교수는 “실제로 자신에게 맞고 큰 효과를 가져오는 행동 지침들을 선별해 30일 두뇌 관리 루틴을 세워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문재인의 독서노트(문재인·평산책방)
문재인 전 대통령이 쓴 102권의 독후감을 ‘취임 이전’, ‘재임 시기’, ‘퇴임 이후’로 나누어 담았다. 일상을 포착한 40여 장의 사진도 함께 수록됐다.
◇밥묵자(꼰대희·21세기북스)
개그맨 김대희의 부캐인 ‘꼰대희’는 50대 후반 꼰대 아저씨를 콘셉트로 한다. 책은 인·의·예·지 네 파트로 나뉘어 있고, 세대 간 화합을 이끈다.
◇하이 애나, 나는 한국 할머니란다!(류관순·미다스북스)
워킹맘으로 살던 저자는 외동딸과 미국인 사위 사이에서 태어난 손녀 덕분에 초보 할머니가 됐다. 손녀와 함께 성장하며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
●Stage
◇영웅
일정 5월 29일 ~ 8월 1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김민영
출연 정성화, 양준모, 민우혁, 김도형, 서영주, 최민철 등
‘영웅’은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뮤지컬이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재현하며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극은 애국심과 감동을 자아낸다. 2009년 초연 이래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국내 창작 뮤지컬 중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을 세웠다. 이번 시즌은 15주년 기념 공연으로 안중근 역에 정성화, 양준모, 민우혁이 캐스팅됐다. 특히 정성화는 초연부터 이번 시즌까지 출연하며 ‘영웅’과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간다. 제작사 에이콤의 윤홍선 대표는 “관객 여러분 덕분에 어느덧 15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시즌을 맞이할 수 있었다”라며 “한층 더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봄
일정 5월 8일 ~ 6월 7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연출 이기쁨
출연 왕은숙, 문희경, 오성림, 예지원, 황석정, 유보영 등
중년 여성들의 인생 2막을 그린 뮤지컬 ‘다시, 봄’이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꿈, 갱년기, 폐경, 은퇴 등에 대해 왁자지껄한 수다를 펼친다. 31회 공연이 더블 캐스트로 운영된다. 서울시뮤지컬단 단원들이 주축인 ‘다시 팀’과 내로라하는 여배우들로 구성된 ‘봄 팀’이다. 황석정은 ‘다시 팀’에, 뮤지컬에 첫 도전한 예지원은 ‘봄 팀’에 각각 합류했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장은 “‘다시, 봄’을 통해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50대 여배우들을 비추고, 객석은 중장년층 관객들이 차지했다. 뮤지컬 관객 저변이 더욱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벤자민 버튼
일정 5월 11일 ~ 6월 30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조광화
출연 김재범, 심창민, 김성식, 김소향, 박은미, 이아름솔 등
뮤지컬 제작사 EMK가 새롭게 선보이는 창작 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단편 소설을 원안으로 한다. 극 중 타이틀 롤인 벤자민 버튼은 김재범, 심창민, 김성식이 연기한다.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인물로 재즈 가수 블루와의 사랑을 쫓는다. 특히 2003년 그룹 동방신기로 데뷔한 심창민은 21년 만에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다. 그는 “뮤지컬을 연습하며 가수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중년이 되면 초조함에 휩싸일 때가 있다. 어영부영하다가 인생이 허무하게 지나가 버리면 어떡하나 싶다. 세상은 그 나이 먹도록 해놓은 게 얼마나 있냐고 다그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괴감에 빠져든다. 그래서일까? 딸이 당연히 알아서 잘살고 있으리라 여기면서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한성희 원장의 신간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는 그 걱정에서부터 시작됐다.
한성희 원장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한 살 아기부터 85세 노인까지 마음이 아픈 사람이면 누구든 만났다. 그 과정에서 평생에 걸쳐 맞닥뜨릴 수 있는 여러 정신적 문제를 지켜보고 치료해왔다. 43년간 다양한 사례를 접한 그지만 자식에게는 서툰 엄마였다. 10여 년 전, 딸이 공부를 위해 떠난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한다 했을 때 깨달았다. 더 이상 품 안의 어린아이가 아님을, 이제는 독립할 만큼 자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에겐 했지만 정작 딸에게는 하지 못한 말이 많았다. 그 마음을 담은 글은 2013년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로 세상에 나왔고, 독자들의 공감을 받으며 21만 부가 판매됐다.
“살면서 작가라고 불리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죽기 전에 책을 한번 내보면 좋겠다는 어렴풋한 생각은 있었지만요.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가 이렇게까지 좋은 반응을 얻으리라 상상도 못 했어요. 이제 아이가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고, 서로 떨어져 산 지 15년이 됐네요. 작년에 직접 마흔 번째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어 미국에 갔는데, 늘 앳돼 보였던 딸이 나름의 고민도 생긴 것 같고 지쳐 보였어요.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었던 거죠.”
중간 지점, 또 한 번의 파도
한 원장도 서른일곱에 떠난 미국 연수 당시 이른 ‘중년의 위기’를 겪었다. 진로 문제로 고민하며 초조한 와중에 일은 홍수처럼 쏟아졌다.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혀도 경력이 쌓이는 만큼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야 했다. 자유로운 시기는 끝났다고 여기며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로 살았다.
딸의 얼굴에서 과거의 자신이 겹쳐 보였다. 만약 마흔 살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면 엄마로서, 정신분석가로서 너무 늦기 전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신간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는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바람 잘 날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전하는 응원을 담았다.
“두 돌이 지나면 말이 시작돼야 하듯, 인생 단계별 발달 과업이 있어요. 40대는 생산성을 다뤄야 할 단계입니다. 삶의 스펙트럼이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회사와 가정의 일을 모두 신경 써야 하는 시기거든요. 매일매일 전쟁일 거예요. 요즘 40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다고 느껴요.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고요. SNS가 지배하는 세상에는 이미 부와 명예를 이룬 사람투성이죠. 그러다 보니 보통의 삶은 부족한 것이 돼버리고, 박탈감이 들 수 있어요. 게다가 오늘 열심히 한 그 일을 내일도 똑같이 반복해야 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온전한 ‘나’는 없다며 우울해질 때도 있을 겁니다.”
더불어 바쁜 일상에 지치면 뭐든 새롭지 않다. 벌써 해봤거나, 했던 것의 변주 정도다. 무엇을 먹어도 비슷한 맛이고, 누구를 만나도 비슷한 얘기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 지루하다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고, 옛날에 재미있었던 순간만 기억난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과 습관에 갇히게 된다. 다 해봐서 새로울 게 없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현재를 과거의 방식대로 살려고 하니 매사 심드렁해진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까닭이다.
딛고 나아가며 성장하기
마흔 이후 혼란을 겪더라도 한 원장은 “겁먹지 말고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간은 유한하고 힘든 시절은 영원하지 않으며, 지나고 보면 가장 풍성한 때였구나 알게 된단다. 지금이야말로 세상의 기준에 맞춰오느라, 세상이 부여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느라 억눌러온 내면의 욕구를 돌아봐야 한다.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었던 모습을 찾다 보면 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게 되고, 어떤 시련이 오든 무너지지 않을 힘이 생길 테다. 남들이 뜯어말려도 강하게 끌리고 포기가 안 되는 길이 있다면 가보는 것도 방법이다. 나이가 몇이든 무슨 상관이랴. 처음엔 의아한 선택처럼 보여도 선택이 쌓이고 쌓여 고유한 스토리가 된다. 대신 방향을 완전히 틀어 새로운 도전을 하기보다, 인생의 여정에서 좀 더 집중할 만한 거리를 찾는 게 먼저다.
“그저 더 나아지고 싶은 건강한 본능을 들여다보면 됩니다. 저는 환자 한명 한명을 심도 있게 치료하고 싶어 오십에 뒤늦은 개원을 준비했고, 지금까지 해왔던 정신분석 공부를 좀 더 깊이 있게 해보고자 예순에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주변의 시선이 호의적이지 않았고 고민이 깊었지만, 시작도 해보지 않고 그만두기는 싫었어요. 의사로서 걸어온 길이 흔히 말하는 성공 공식과는 거리가 멀었죠. 그래도 자신의 느낌을 믿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게 행복한 인생이지 않을까요. 스스로 완전한 어른이 됐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제야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구나 짐작해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1년 진료비 통계지표에 따르면, 위장 질환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480만 명을 넘어선다. 한국인 10명 중 1명은 위장병에 걸렸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위장 점막이 염증으로 파인 상태를 말하는 위궤양은 40대 이후 중장년층에게 많이 발병하고 있다. 위궤양에 대한 궁금증을 강석형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와 함께 풀어봤다.
위벽은 5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 점막층은 위산으로부터 위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부분이 손상돼 생긴 염증을 위염이라고 한다. 위궤양은 두 번째 층인 점막하층까지 손상이 진행돼 파인 듯한 형태의 상처가 생긴 상태를 말한다. 심할 경우 세 번째 층인 근육층까지 노출된다. 즉 위염이 심해지면 위궤양이 될 수 있다.
위궤양의 원인으로는 진통제 복용, 스트레스, 흡연 등이 꼽히는데, 주요 원인은 헬리코박터균(위 점막을 공격하는 세균) 감염이다. 특히 중장년층은 헬리코박터균 감염자가 많아 위궤양 발생 위험도 높다. 서울대학교 의대는 중년층의 70%, 노년층의 90% 이상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다고 밝힌 바 있으며, 2018년 위궤양으로 진료받은 환자(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 가운데 50대가 22만 5345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로 60대 19만 8730명, 40대 16만 7948명 순으로 나타났다.
위궤양의 대표적인 증상은 가슴뼈 아래쪽의 타는 듯한 통증이다. 식욕 부진, 구토, 체중 감소 등의 증상도 나타난다. 위염과 증상이 상당히 흡사해 위내시경 검사를 통해 질환의 구분이 가능하다. 위궤양 진단 방법으로는 위장조영술과 위내시경 검사가 있다. 그중 헬리코박터균 조직 검사가 가능한 위내시경 검사를 추천한다.
Q.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십이지장궤양은 젊은 층에서, 위궤양은 중장년층에서 발병률이 높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은 소화성 궤양으로 점막 손상을 유발하는 공격인자(위산 및 펩신)와 보호하는 방어인자(점액 및 중탄산염 분비, 점막 내 혈류, 점막세포의 재생 능력)의 균형이 깨지면서 발생합니다. 십이지장궤양은 공격인자가, 위궤양은 방어인자가 주요하게 작용합니다. 젊은 층은 스트레스로 인한 위산 분비 등 공격인자 활성도가 높으며, 고령층은 노화나 약물 등으로 방어인자 능력이 감퇴되어, 연령에 따른 궤양의 호발 부위가 다른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위궤양은 주로 식후 통증이 나타나며, 십이지장궤양은 공복 시 통증이 주 증상으로 식후에 호전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Q. 노년층이 되면 약물 복용률이 높아지는데, 위궤양 발병에 미치는 영향이 궁금합니다.
A. 약물, 특히 진통소염제와 아스피린은 위궤양의 발병 원인 중 하나입니다. 노년층은 심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아스피린, 퇴행성 관절염으로 인한 진통소염제를 복용하는 경우가 많아 젊은 층에 비해 약물에 의해 유발된 위궤양 발병 빈도가 높습니다. 참고로 약물 유발 위궤양은 통증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그래서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위장관 출혈이 발생했을 때 내원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위험이 따릅니다.
Q. 위궤양에 걸리면 위암에 걸릴 확률 또한 높아지나요?
A. 위궤양과 위암은 전혀 다른 병이지만, 유발인자가 겹칩니다. 헬리코박터균 감염 및 잘못된 식습관은 위궤양뿐 아니라 위암도 유발합니다. 위궤양 환자에게서 위암 발병률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위궤양과 위암은 육안적인 소견으로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꼭 조직검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위궤양은 재발 위험이 높아 2개월간 약물 치료를 받은 뒤 반드시 추적 위내시경 검사를 해야 합니다.
Q. 헬리코박터균을 무조건 치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A. 헬리코박터균은 소화성 궤양뿐 아니라 위암의 주된 유발 요인이므로 특정 금기 사항이 없다면 제균 치료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위 MALT 림프종,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이 있는 경우에도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치료 약제의 부작용 위험이 높아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 결정해야 합니다. 이미 위축성 위염이 진행된 고령자는 제균 치료를 하더라도 위암 발생률을 낮추지 못한다는 보고가 있어 신중해야 합니다.
Q. 위궤양 치료는 약물 복용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데, 수술적 치료는 어떠한 경우에 진행하나요?
A. 위궤양은 위산 분비 억제제로 대부분 호전되는데, 주로 양성자펌프억제제를 사용합니다. 약제의 발달로 수술적 치료를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궤양 출혈이 내시경이나 혈관조영술로 지혈되지 않거나 깊은 궤양으로 인해 천공이 발생했을 때는 수술적 치료를 진행합니다. 또한 치료만큼 중요한 것이 재발 방지입니다. 위궤양의 원인을 파악해 교정해야 하는데, 만약 흡연이 원인이라면 금연을 해야 합니다.
Q. 위궤양 예방에 도움 되는 음식과 생활 습관에는 무엇이 있나요?
A. 위궤양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음식은 많지만, 대부분 그 효과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우유는 위산을 중화해 일시적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으나, 우유에 포함된 단백질과 칼슘이 위산 분비를 촉진해 오히려 궤양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특정 음식을 챙겨 먹기보다는 규칙적인 식습관을 통해 고르게 영양 섭취를 하고, 금연과 적절한 운동으로 전신 상태를 관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도움말 강석형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노년에 접어들면 사회의 어른으로 기능하려는 책임감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나이만 먹었다고 다 존경받는 어른이 될 순 없기에, 부담은 커지고 마음은 위축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른’의 책임을 노년에 한정하지 않는다. 청년·장년·노년 등 우리 사회 성인들이 세대 구분 없이 모두 하나의 어른으로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서로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노년의 책임은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살며 사회의 짐이 되지 않는 것. 그는 이러한 노인의 모습이 고령사회 존경받는 어른의 롤모델이 될 수 있으리라 예견한다.
본지는 우리 시대 어른의 표상을 논하고, 세대 간 존경심을 엿보기 위해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2030·5060세대(500명)의 약 80%, 즉 대다수가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반응했다. 이는 10년 전 본지가 진행한 동명의 조사 결과보다 10%p 이상 높아진 수치로, 세대 간 갈등은 더욱 고조된 셈이다. 평소 노년의 삶을 연구하고, 세대 간 교류를 고민해온 정순둘 교수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을 덧붙였다.
“세대 간 갈등의 심각성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어떤 ‘경각심’을 드러낸 결과로 보여요. 갈등이라는 게 표면적으로 구체적인 뭔가가 나타나서 문제되기도 하지만, 어떤 징후를 갖고도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가령 노인을 향한 혐오 표현이 계속 생겨나는데, 이제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자제하고 주의해야 하지 않느냐는 경각심인 거죠. 그런 측면에서도 해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각심 높이는 갈등, 세대와 시대 이해해야
앞서 언급한 ‘노인 혐오’처럼 나이 든 어른을 공경하고 존경하던 문화는 사라져가고 있다. 게다가 ‘노시니어존’(노인 출입금지 구역)까지 생겨나며 자꾸만 세대를 구분 짓고 배척하는 분위기다. 이에 정 교수는 먼저 세대 갈등을 다루고 이해하려면 ‘생애주기’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그 세대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고려하는 과정이다. 한때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라는 노래가 유행했다. 그러나 자신의 젊은 시절 경험만을 잣대로 삼았다간 자칫 시대착오적인 견해를 드러낼 수 있다.
“5060세대도 20~30대를 살아왔지만, 현재 2030세대가 사는 세상은 당시와 사회적 기반과 환경이 아예 달라요. 1970년대 20대와 2020년대 20대를 비교할 순 없죠. 기성세대의 청년기와 다르게 요즘 청년들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자신의 부모 세대만큼 풍족한 일자리 기회나 좋은 집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들은 오늘날 5060세대보다 더 불행한 노후를 보낼지도 모르죠. 그런 데서 오는 좌절감, 무력감을 기성세대가 이해했으면 해요. 역으로 현재의 5060세대는 고성장 시대 주역으로 살며 많은 것을 이뤘고 경제력도 있지만, 그들의 부모처럼 봉양을 받긴 어려운 처지잖아요. 게다가 유례없는 긴 노후를 준비해야 하죠. 그런 점에서는 2030세대 또한 기성세대가 느끼는 고충을 헤아려주면 좋겠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이 쏟아지고, 나날이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요즘. 기성세대는 이러한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체득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2030세대에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년 세대 또한 사회 변화와 생애주기 간 속도가 어긋나는 괴리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청년들의 라이프사이클은 느려지는 상황입니다. 과거 20~30대라면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겠지만, 요즘은 그 시점이 점점 뒤로 가고 있잖아요. 그런데 중장년들은 자신의 생애주기에 맞춰 ‘왜 아직도 취직을 못 했냐’, ‘나이가 몇인데 여태 결혼을 안 하냐’며 2030세대를 재촉하고 나무라곤 하죠. 즉 현재보다 빠른 라이프사이클을 살아왔지만 변화에 대한 적응은 느린 기성세대와, 변화에 대한 적응은 빠르지만 과거보다 느린 라이프사이클을 사는 젊은 세대 모두 나름의 고충이 있는 거예요. 서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데서 오는 관점과 가치관의 차이가 결국 세대 간 차이와 갈등을 일으키는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5060세대, 고령사회 새로운 롤모델이 되다
현재의 5060세대가 겪는 고충은 또 있다. 그들이 본보기로 삼고 따라갈 롤모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윗세대보다 노후가 훨씬 늘어난 데다, 그로 인해 일자리, 여가, 관계 등 다방면에서 삶의 양식과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30세대가 5060세대에게 조언을 구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듯, 그들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앞서 말한 본지 조사에서 ‘어른의 부재가 가져올 악영향’을 묻자, 적지 않은 이들이 ‘다음 세대 어른의 부재’(25.8%, 복수 응답)를 꼽았다. 정 교수 또한 같은 맥락에서 우려를 내비쳤다.
“존경받는 어른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롤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이 아닐까 해요. 그러한 존재가 없다면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다거나,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질 거예요. 그런 상황이 가장 염려스럽습니다. 현재 5060세대는 고령사회에서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해나가야 한다고 봐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고 하면 어쩐지 부담과 책임감이 밀려온다. 그런 이들에게 정 교수는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냄으로써 어른의 책임을 다할 수 있고, 그것으로도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노년, 즉 스스로 액티브 에이징(Ative Aging)을 실천하시길 권합니다. 건강한 존재로 사회에 짐이 되지 않는 것, 그게 노년의 역할이자 책임일 수 있죠. 긴 여생을 아무런 역할 없이 살아간다는 건 당사자도 힘들지만, 사회의 짐이 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 역할을 갖기 위해선 무엇보다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경제력이 생기는 장점도 있지만 사회활동을 해야 여러 세대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소외나 고립도 예방한다고 봐요. 기왕이면 노년에는 그 일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공헌 활동이면 더 좋고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사회적으로도 평생 일자리와 고령 인력 활용이 이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현재 고령사회연령통합연구소장으로도 활동 중인 정 교수는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연령통합’의 개념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연령통합은 곧 연령으로 인한 장벽을 없애는 거예요. 가령 65세가 되면 은퇴해야 한다, 고령자는 고용이 어렵다, 다 ‘나이’가 기준이잖아요. 이런 부분을 개선하려면 결국 연령을 기준으로 삼던 제도들의 개혁이 필요해요. 이렇게 연령통합은 연령의 유연성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연령의 다양성 측면도 있어요. 지금은 세대가 너무 끼리끼리 뭉치잖아요. 카페나 식당을 가도 ‘여긴 젊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 분위기면 들어서길 민망해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세대가 분리되기보다는 함께 섞여 지냈으면 하는 거죠. 제도적으로나마 세대 교류 공간을 확충해갈 수 있다고 봐요. 요즘은 아파트 몇 세대 기준으로 경로당을 짓잖아요. 그런 공간을 노인만이 아닌 아이들도 놀러 가고 청년들도 차 한잔하러 가는 동네 사랑방 같은 장소로 만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보면 세대 간 갈등을 완화하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생각해요.”
나이가 주는 ‘노인’ 타이틀, 괘념치 말아야
정 교수는 지난해부터 제33대 한국노년학회 회장과 국민통합위원회 ‘노년의 역할이 살아 있는 사회’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작년 10월 발족한 특별위원회는 ‘노인의 역할과 세대 간 존중이 살아 있는 사회’를 목표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나가는 중이다. 여기에서도 그가 그동안 연구해온 연령통합의 개념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렇듯 여러 역할을 통해 정 교수가 우리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궁극적으로는 65세라는 나이의 틀, 그로 인해 노인이 된다는 두려움이 사라졌으면 해요. 나이가 들고 ‘어른’으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마찬가지예요. 어른은 통상 청년, 장년, 중년, 노년 모두를 아우르는 거잖아요. 나이를 기준으로 누구는 젊은이, 누구는 늙은이 나누지 말고, 그저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바라봤으면 해요. 개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그렇게 바뀌어야겠죠. 그렇게 나이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연령통합 사회’라고 봅니다.”
정 교수 또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연령통합 사회를 희망하고 있다. 끝으로 오랜 세월 노년의 삶을 연구해온 그가 자신의 노후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지 물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 나이 제한이 있으니, 65세가 되면 저도 은퇴하겠죠. 제2의 인생에서 선택은 두 가지예요.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계속하는 것, 또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이쪽 일을 계속한다면 경험과 지식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겠지만, 그러다 꼰대가 될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렇게 되면 노후의 좋은 모델은 아닌 듯해요.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보려고요. 한편으론 저 같은 노후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교육제도도 열려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평생교육이 있지만, 이 또한 세대를 분리한 교육이잖아요. 가령 어떤 분은 50세 넘어도 반도체학과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런 접근이 필요해요. 물론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죠. 나이를 떠나 더 자유롭게 대학에서 제2의 전공도 공부하면서 제2의 인생을 꾸려보면 좋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글쓰기가 힘들다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내 대답은 간명하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30년 넘게 글 쓰고 책 써서 먹고산 내게도 글쓰기는 힘든 일이다.
글쓰기가 힘든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글쓰기는 나의 민낯을 드러내는 일이다. 글은 내가 아는 지식과 정보의 수준, 내 생각의 깊이와 감정의 변화, 내가 살아온 여정을 만천하에 공표한다. 벌거벗고 남들 앞에 서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더욱이 글은 누군가의 평가가 따른다. 말처럼 흩어지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기록으로 남아 있다. 글쓰기는 또한 이런저런 역량을 요구한다. 어휘력, 문장력, 논리력 등등. 집중력과 끈기도 필요하다. 사람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지적인 부하가 걸리는 작업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쓰자
글쓰기처럼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는 첫 번째 길은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글쓰기가 두렵고 힘든 이유는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이 커서다. 기대 수준을 낮추고 어깨의 힘을 빼면 누구나 쓸 수 있다. 누가 당신에게 천하의 명문을 쓰라 했는가. 글을 못 쓰면 패가망신당할 일이라도 있는가. 왜 못 쓰는가. 한글을 모르는가? 쓸 수 있는 종이와 펜이 없는가? 못 쓰는 이유는 단 하나, 잘 쓰려는 욕심 때문이다.
욕심을 내려놓는 방법이 있다. 자주 쓰면 된다. 곧바로 또 쓸 것이므로 지금 쓰는 글에 목숨 걸지 않는다. 지금 못 보여준 것이 있으면 다음 글에서 보여주면 된다. 지금 못 써도 다음에 만회할 기회가 있기에 그냥 쓴다. 하지만 가끔 쓰면 그냥 쓰기 어렵다. 모처럼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기 마련이다. 물론 글을 자주 쓰다 보면 또 다른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작가들은 이런 욕심 앞에서 낙심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쓰면 쓸수록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욕심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차후 문제다. 우선은 자주 쓰는 것으로 욕심을 잠재워보자.
독자에게 주눅 들지 않는 방법
욕심과 쌍을 이루는 글쓰기 장애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주눅이다. 글은 독자가 있고, 독자는 내 글에 감 놔라 대추 놔라 상관할 권한을 갖고 있다. 이에 시비를 걸어서는 안 된다. 다행히 대다수 글 쓰는 사람은 그럴 생각이 없다. 오히려 여기에 손뼉을 맞추기라도 하듯, 독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안달이다. 이런 조바심이 글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독자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한다. 문제는 주눅 들면 글을 잘 쓸 수 없다는 점이다. 잔뜩 얼어붙은 손으로는 자판을 두드릴 수 없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머릿속으로만 썼다 지웠다 반복한다.
겁이 많고 남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나는 늘 독자 앞에 서면 오금이 저린다. 그런 내가 글쓰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두 가지 시도를 하면서다. 하나는 아내를 글동무로 두는 것이다. 직장에 다닐 적에는 아내가 내 글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어디 나가지 않으면서부터 쓴 모든 글의 첫 번째 독자는 아내가 됐다. 아내는 내 글을 늘 좋다고 칭찬한다. 물론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기탄없이 지적도 하지만, 대부분 괜찮다며 격려한다. 나는 이 말에 기대어 글을 쓴다. 아내에게 보여줄 요량으로 후다닥 글을 쓴다.
독자에게 주눅 들지 않기 위해 활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독자를 특정하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내가 잘 알고 내게 우호적인 한 사람을 정해서 내 머릿속에 앉혀놓고 쓰면, 그 독자는 무섭지 않다. 그 독자를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 대상을 주로 직장 생활할 때 알고 지내던 사람 중에서 고른다. 써야 할 글에 따라 그에 맞는 독자를 선택한다. 보고서 관련 글이면 내가 아는 30대 여성 김 모 씨를 소환하고, 지금 쓰는 이런 글은 입사 동기이자 오랜 친구인 박 모 씨를 불러다 내 앞에 앉힌다. 그리고 이들에게 얘기한다 생각하고 조곤조곤 쓴다. 이렇게 쓰면 독자가 두렵기는커녕 그들이 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 훤히 알 수 있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간절함까지 더해져 좀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루틴으로 쓴다
욕심과 두려움을 어느 정도 잠재우고 나면, 그다음 할 일은 습관 들이기다. 글은 쓰고야 말겠다는 의지로는 쓰기 어렵다. 일상적으로 의욕을 불태우기가 어디 쉬운가. 이런 의지와 의욕은 오래가기 어렵다. 우리 뇌는 이런 일에 쉬 지친다. 아니, 자기를 옭아매려는 이런 시도 자체를 싫어한다. 글쓰기를 루틴화해야 한다. 나는 하고 싶은 일 사이에 글쓰기를 끼워 넣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한 후 글을 쓰고, 하고 싶은 일로 보상하는 것이다.
첫 책 ‘대통령의 글쓰기’를 쓸 때 다니던 출판사에서 두 달간의 유급 휴직을 받았다. 집에 들어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20여 일간 거의 글을 쓰지 못했다. 매일 의지를 다지며 글쓰기를 시도했지만 써지지 않았다. 글을 쓰진 못했어도 그 기간에 매일 하던 일이 있었다. 산책과 커피 테이크아웃, 샤워가 그것이다. 그렇게 20여 일이 되던 어느 날, 그날도 여느 때처럼 산책을 마친 후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주문한 후 집에 돌아가 글을 쓰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자마자 빨리 집에 가서 글을 쓰고 싶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니 쓸거리가 막 떠올랐다. 그것들을 잊을까 봐 몸을 씻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바로 그날부터 봇물이 터지듯, 봉인이 해제되듯, 산책을 나가면 내 뇌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쓸거리가 떠올랐다. 그렇게 글을 쓴 후에는 막걸리 한 병씩 마시며 나 자신을 칭찬했다. 이런 소소한 보상은 상승효과를 가져와 내 뇌는 막걸리 먹고 싶은 마음에 쓰기를 재촉했다.
습관은 글쓰기 제조 라인이다. 정해진 루틴 위에 나를 올려놓으면 뇌는 써야 할 시간임을 인지하고 글을 쓴다. 이쯤 되면 안 쓰고 버티는 것보다 쓰는 게 더 편하고 익숙해진다. 나만의 얘기가 아니다.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만난 시인•소설가 모두 글쓰기 전후에 자신만의 루틴을 갖고 있었다. 어떤 이는 글을 쓰기 전에 연필을 깎고, 어떤 이는 음악을 들었으며, 또 다른 이는 카페에 갔다. 이런 루틴이 없는 작가는 없었다. 그들의 글은 루틴의 산물이었다.
시간만 들이면 누구나 쓸 수 있다
마음의 준비가 되고 습관이 몸에 배었으면 이제 남은 건 시간을 들이는 일이다. 글쓰기에서 가장 필요한 것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시간을 꼽는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은 시간이다. 나는 시간에 의지해 글을 쓴다. 내게 시간이 있다는 건 늘 희망이었다. 시간만 들이면 글은 언제든 쓸 수 있다. 써질 때까지 쓰면 써지는 게 글이니까. 아는 게 부족하다고? 글쓰기 실력이 없다고? 시간은 이 모든 걸 채워주고 키워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가.
내가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섯 가지다. 첫째, 글 쓰는 시간을 낸다. 당신은 글을 쓰는 데 시간을 얼마나 할애하는가? 하루에 몇 시간씩 글을 쓰라는 게 아니다. 나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다만 나는 하루에 몇 줄이라도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블로그나 SNS에, 메모장에 한 줄이라도 쓴다. 글을 전혀 쓰지 않는 날은 없다. 이것이 중요하다. 누가 작가인가. 오늘 글을 쓴 사람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작가는 오늘 하루 잠시라도 글을 쓰는 데 시간을 낸 사람이다.
둘째,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다. 나는 짬짬이 글을 쓴다. 글을 써야겠다고 정색을 하고 쓰면 잘 안 써진다.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처럼 굳이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오히려 글이 잘 써진다. 학교 다닐 적에도 시험 기간에는 공부하기 싫다가 시험이 끝나고 놀아도 되는 시간에 하는 공부는 꿀맛이었다. 누구에게나 짬이 난다. 그 시간에 글을 써보라. 쓰고 있는 자신이 대견하고 쓰는 행위에서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셋째, 사람마다 글이 잘 써지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찾아서 공략하자. 새벽녘일 수도, 심야일 수도 있다. 우울하거나 심심할 때일 수도 있고, 텐션이 올라 의욕 충만한 시간일 수도 있다. 나는 도서관에 앉아 있을 때가 그 시간인 적도 있고, 카페에서 그런 시간을 만난 적도 있었다. 무언가를 읽거나 들은 직후에 그런 시간이 온다는 걸 안 후부터는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다.
넷째, 마감 시한을 정해놓고 쓴다. 글은 완성하는 버릇이 필요하다. 쓰다가 마는 게 아니라 끝까지 써보는 습성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데드라인을 두고 써야 한다. 언제까지 글을 완성한다는 마음으로 쓰고, 실제로 그것을 지켜야 한다. 블로그에 사흘에 하나씩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그렇게 하고, 브런치에 한 달에 한 편씩 글을 올리겠다고 약속했으면 그것을 지키는 것이다. 직장 다닐 때는 보고서이든 기획서이든 늘 마감이 주어졌다. 소심한 나는 늘 마감을 지켰다. 혼나는 게 무섭고 잔소리 듣는 게 싫어서 마감 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다. 직장을 나온 후 지난 10년간은 스스로를 구속하기 위해 신문이나 잡지의 연재를 마다하지 않았다. 마감 지키는 글쓰기를 지속해왔다.
다섯째, 오래 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오래 살아야 한다. 오래 쓰면 잘 쓸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순 넘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칠순을 넘겨 빛을 본 작가들이 부지기수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닥터 지바고’는 그의 나이 63세에 완성됐다. ‘로빈슨 크루소’를 쓴 대니얼 디포는 예순이 다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58세에 썼다. 박완서 선생도 전업주부로 살다가 마흔 살에 등단했다. 작가의 세계만큼 ‘늦깎이’, ‘대기만성형’이 통용되는 분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래 쓰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 나는 매일 걸으면서 쓸 수 있는 날을 늘린다. 당장은 잘 쓰지 못해도 오래 살기만 하면 언젠가는 글을 잘 쓰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오늘도 쓴다. 자, 이제 쓸 시간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에 만족하고 있는가? 혹시 알음알음 퍼진 부정확한 기준과 정보 탓에 서로를 질책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쪽만의 문제, 하나의 이유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까지 알던 섹스는 잊고 인생 2막, 3막을 위해 다시금 사랑의 도움닫기를 해보자.
섹스를 둘러싼 사회적 인식은 예전에 비해 완화됐지만 아직 사람들은 ‘이 주제’를 스스럼없이 말하길 꺼린다. “에이, 결혼한 지도 꽤 됐는데 나이 들어서 가족끼리 왜 그래? 주책이야”라며 서로를 등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섹스는 단순히 쾌락만 추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성’과 ‘관계’ 두 가지가 유기적으로 합쳐진 삶의 소중한 자원이다. 전문가들은 성적으로 친밀할수록 두 사람 사이가 건강하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의 자아 존중감 회복, 삶의 의욕 증가 등 정서적 효과를 누리는 건 덤이다. 성생활을 슬기롭게 지속하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 오해를 바로잡고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섹스=거시기하다’는 인식의 오류
우리는 부모의 사랑과 섹스로부터 태어났다. 2차 성징을 겪은 뒤 어른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며 섹스를 한다. 성은 요람부터 무덤까지 삶의 모든 과정을 포괄하는 개념이자 인간의 근원인 셈이다. ‘거시기하다’며 민망하고 쑥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또한 ‘거시기’(성기)를 통한 삽입 성교만이 전부라 여기기도 하지만, 이는 섹스의 한 종류일 뿐이다. 애무, 오럴섹스, 키스, 포옹, 손잡기 등도 모두 섹스다.
건강한 섹스 경험의 부재
‘나이 들수록 호르몬의 변화와 신체적 제약으로 인해 성행위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발기부전이나 질 윤활액 분비 감소, 감각 둔화 등으로 한계를 느낄 때도 있지만, 의학 기술의 발달로 치료를 통해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보통 과거의 정서와 경험이 현재와 미래의 성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쉽게 말해 75세 노인이라도 청년 시절 행복한 섹스를 했다면 이를 바탕으로 향후 기대와 욕구가 커지고, 25세 청년이라도 관련된 트라우마나 혐오가 있다면 몸과 마음이 섹스를 거부하는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현대로 오면서 유튜브,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쾌락이 늘어난 까닭에 점점 섹스를 경험할 기회가 줄었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는 “현재 한국은 성관계를 적게 하는 섹스리스를 넘어 아예 성관계를 하지 않는 섹스오프 상태에 봉착했다”며 “코로나 시대와 불경기를 지내면서 연애나 사랑이 필수라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이어진다면 개인뿐 아니라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풀리지 않는 매듭은 없다
‘섹스에는 정년이 없다’는 말, 이제는 흔한 표현이다. 그러나 여러 원인으로 성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오랜 시간을 한 상대와, 같은 방식으로, 매번 만족할 만한 섹스를 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젊을 땐 좋았다가도 시간이 흐르면서 반복되는 패턴에 만족도가 떨어진 사람, 특정 이유로 사이가 소원해져 성생활까지 타격받은 사람, 사소한 습관이나 외모 결함 때문에 몸의 대화 자체가 단절된 사람 등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사실 좋은 섹스는 침대 밖에서부터 시작된다.
함께 멋진 식당에서 밥을 먹고, 좋아하는 꽃을 선물하고, 애정 어린 농담을 주고받는 태도가 선행돼야 한다. 관계 시에도 오르가슴을 경험하는 섹스만이 쾌감을 주는 건 아니다. 섹스는 몸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따스한 온기, 떨리는 마음, 촉촉하고 매끄러운 느낌 등으로도 행복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원하는 횟수나 시간대, 자극받고 싶은 부위, 성적 취향 등이 있다면 솔직하게 요구해야 한다. 서로의 신체적·정신적 유대를 더욱 끈끈하게 만드는 단계다.
유외숙 상담21 성건강연구소장은 “연애·결혼 초기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데도 오랜 시간 불만이나 욕구를 참으며 한쪽 또는 둘 다 불만족스러운 섹스를 하는 사람이 많다”며 “좋으면 좋고, 안 맞으면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며 ‘모 아니면 도’라 여긴다”고 말했다. 여기서 관계의 주체는 언제나 나여야 한다. 자신의 욕구를 인지하고 만족을 위해 열심이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대화와 소통으로 중간중간 점검하며 개선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유 소장은 “너무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건강한 노후를 위해 욕구와 방식을 조율하며 서로 잘 싸워야 한다”며 “한 꺼풀, 두 꺼풀 덜어내다 보면 사람 관계의 본질은 같다”고 조언했다.
중년 이후의 행복한 성을 위해 알아야 할 8가지
●부부 사이 성생활의 질은 서로의 친밀감이 좌우한다.
문제가 있을 때는 섹스 문제만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대화 방법을 개선하는 등 친밀감을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규칙적인 성생활은 중년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규칙적인 섹스가 면역력 향상, 노화 방지, 통증 감소, 심장질환 예방, 자궁질환과 전립선질환 예방,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고 수명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중년 이후 성기능 장애 예방을 위해서는 운동이 중요하다.
운동은 남녀 모두의 성기능 장애를 예방할 수 있다. 남성의 걷기·달리기 등 유산소 운동은 발기부전 예방에, 여성의 케겔운동은 실금을 줄이고 성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발기부전 같은 남성 성기능 문제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도록 하자.
중년 이후 발기부전은 당뇨, 심장질환, 고지혈증 등의 첫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어 성인병의 신호탄이다. 발기부전이 있으면 혼자 고민하거나 친구와 상의하지 말고 전문의와 상담하자. 먹는 약이나 주사제로 발기부전을 해결할 수 있고, 성인병 동반 여부도 확인 가능하다.
●중년 여성에게 나타나는 성교 시 통증은 해결할 수 있다.
중년이 되면 질 윤활액 분비가 감소해 성교통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때 윤활제를 사용하면 된다. 이후에도 성교통이 계속된다면 전문의의 상담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충분한 애무를 할 때 만족도가 높아진다.
여성은 삽입 성교만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힘들다. 성행위 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여유 있게 애무해야 여성의 성적 만족이 높아진다. 가장 예민한 성감대는 질 속이 아니라 음핵(클리토리스)이다. 애무는 길게, 삽입은 늦게, 삽입 시기 결정은 여성에게 맡기기를 권한다.
●성적 호기심이 유발되도록 창조적인 변화를 시도하자.
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체위, 새로운 장소와 분위기는 활력을 주기도 한다. 부부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멋진 장소에서 섹스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등 판타지를 이용하는 방법도 좋다.
●용불용설(用不用說), 규칙적인 성생활 여부에 따라 성기능이 유지되거나 퇴화한다.
중년 이후에도 꾸준한 성생활을 통해 성기능이 향상되고, 성적 만족도 높아질 수 있다. 중년 이후 많은 부부가 젊을 때보다 더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즐기고 있다.
출처 ‘2015 대한성학회 추계학술대회’, 정리 이범석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