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핫했던 전시로 ‘아트 오브 뱅크시’ (The Art Of Banksy : Without Limits)를 꼽을 수 있다. ‘얼굴 없는 화가’로 유명한 뱅크시(Banksy)는 영국의 미술가 겸 그래피티 작가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1000만 명대로 생존하는 화가 중 가장 인기가 많다. 도대체 뱅크시가 누구길래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뱅크시와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뱅크시는 누구인가?
‘뱅크시’는 가명이고, 얼굴, 나이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뱅크시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지만, 모두가 그가 누군지 안다”라는 말까지 생겼다. 뱅크시의 본명은 로버트 뱅크스이며 1974년 영국 브리스톨 출생으로 추정된다. 로버트 델 나자(영국 유명 밴드 ‘매시브 어택’ 멤버)도 뱅크시로 의심받은 적이 있는데, “우리는 모두 뱅크시다”라는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이는 뱅크시가 개인이 아닌 창작 집단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추가했다.
뱅크시는 1990년대부터 활동 중이다. 브리스톨의 지하 무대에서 성장해 점점 전 세계 도시의 거리, 벽, 다리 위로 작품 활동을 뻗어나갔다. 뱅크시는 전쟁과 난민, 불평등, 비인간성, 자본주의, 권위주의, 기후 온난화 같은 사회적 주제를 다루며 비판적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특히 2018년 ‘풍선과 소녀’(Girl with the Balloon) 파격 퍼포먼스로 유명해졌다.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100만 유로 이상으로 그림이 낙찰된 순간, 뱅크시는 미리 프레임 밑에 장치해둔 분쇄기를 원격으로 가동해 그림을 즉석에서 분쇄했다. 돈으로 구매하는 자본 미술 시장을 비판한 퍼포먼스였다.
‘아트 오브 뱅크시’, 짝퉁 전시인가?
‘아트 오브 뱅크시’는 개막 당시 ‘짝퉁 전시’ 논란이 일었다. 알고 보니 오리지널(원본) 작품 전시가 아니었고, 더욱이 뱅크시의 허락을 받지 않은 사실이 알려졌다. 뱅크시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내 이름을 내건 전시회 중 나와 합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이름을 내건 모든 전시는 가짜(FAKE)”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시 주최사는 “대표 벽화 등 뱅크시의 예술 세계를 재현한 작품 외에도 ‘POW(뱅크시가 2003년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설립한 딜러) 인증’을 받은 뱅크시의 원작들이 포함돼 있다”라며 “이런 소란마저 뱅크시스럽다”고 밝혔다. 전시회 작품 중 오리지널은 27점, 나머지 120여 점은 레플리카(복제본)로 알려졌다. 주최사는 뱅크시의 작품 세계를 공감각적으로 이해하고, 그가 던지는 메시지를 공유할 수 있는 전시라고 강조했다.
‘아트 오브 뱅크시’ 직접 가보니
‘아트 오브 뱅크시’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입장료 2만 원이 아깝다”와 “뱅크시가 궁금하다”로 나뉜다. 이에 직접 전시회를 찾아봤다. 여전히 사람은 많았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지루하지 않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공간 활용률이 높은 전시였다. 뱅크시의 세계관과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꼼꼼히 채워져 있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많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뱅크시의 작품 대부분은 스텐실 작업(종이에 글자나 무늬, 그림을 그린 후 그 모양을 오려서 구멍에 스프레이를 뿌려 완성하는 방법)을 거쳤다.
또한 영국에서 5주간 한정 운영했던 ‘디즈멀랜드’를 재현한 퍼포먼스, 멀티미디어로 재창작된 작품들도 눈에 띈다. 전시회 중앙에는 뱅크시의 대표작 ‘풍선과 소녀’의 멀티미디어 작품이 있다. 시리아 내전의 아픔이 전해져온다. 뱅크시의 작품에는 전쟁 혹은 빈곤의 어두운 배경 속에 아이들이 있다. 이를 통해 그는 ‘희망은 있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그런가 하면 사전 지식이 없어도 뱅크시가 영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영국인으로서 자부심도 있으면서 비판적인 시선도 갖고 있다. 영국 고위층을 꼬집는 작품이 많다.
뱅크시는 인간을 원숭이로 많이 표현한다. 특히 그는 ‘원숭이 여왕’(Monkey Queen)이라는 작품으로 영국 여왕을 원숭이로 표현해 화제를 모았다. 뱅크시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한 ‘위임된 의회’(Devolved Parliament)에서는 브렉시트를 논의하는 하원들의 모습이 침팬지로 표현됐다. 뱅크시 작품 속 원숭이는 인류의 본성을 풍자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원숭이 말고 쥐도 많이 등장한다. 쥐는 노동자의 삶을 사는 일반 소시민을 표현한 듯하다. 또한 반체제적인 성향의 뱅크시는 경찰들을 풍자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왕실근위대가 소변을 보는 발칙한 그림도 있다.
뱅크시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전시회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는 그냥 평범한 영국 사람이었다. 우리는 때로 정부가 답답할 때도 있고, 전쟁으로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환경이 보존되기를 바란다. 뱅크시는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한, 용기가 조금 더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야 그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이유를 알겠다. ‘우리 모두는 뱅크시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경제력 있는 중장년층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골프가 ‘짝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에도 오히려 골프 인구가 늘자, 골프용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품귀현상이 일어나는 판국이다. 이에 ‘짝퉁’ 골프용품이 기승을 부리면서 시니어 골퍼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가 지난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국 501개 골프장 이용객은 4673만 명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4170만 명)보다 503만 명(12.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지난해 골프 인구는 2019년보다 9.8%(46만명) 증가한 515만명으로 추정된다. 탁 트인 필드에서 한정된 인원으로 즐길 수 있어 코로나19 이후 골프에 대한 수요가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자 골프용품 수요도 치솟고 있다.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1년 상반기 및 6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에 따르면 백화점 상품 중 아동·스포츠 용품 매출이 35.1% 늘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해외여행에 대한 제약이 지속되면서 유명 브랜드의 매출이 큰 폭으로 늘었고, 골프 관련 상품도 판매호조를 보였다”고 말했다.
골프용품 수요가 폭증하면서 중국산 짝퉁 제품도 기승을 부리는 모양새다. 미국 매체 USA투데이는 17일 “일부 업자들이 유명 브랜드를 모방한 중국산 가짜 용품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6월 있었던 세 차례 단속에서 중국 둥관시에서만 1만 개가 넘는 짝퉁 클럽이 압수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세관에서 적발한 골프용품 가품 건수는 PXG만 3657건에 달했다. 타이틀리스트, 마크앤로나, 캘러웨이, 스카티 카메론, 혼마 등 다른 골프용품 전문 브랜드까지 고려하면 1만 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청탁용 짝퉁 골프채를 받아 감봉 3개월에 그친 판사 사례도 보도된 바 있다. 수천만 원대에 달하는 골프채가 알고 보니 감정평가액 50만 원에 그치는 짝퉁 물건이었던 것이다. 골프클럽 말고도 골프공, 골프웨어나 클럽의 일부 부품이 짝퉁인 경우도 많다.
온라인 적발 건수는 줄고 있지만 중국 등 해외에서 유입되는 가품이 적발되는 건수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지난해 가품 적발 금액은 PXG만 20억 원이다. 이는 진품 소비자가로 환산하면 6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타이틀리스트와 PXG 등의 유명 골프용품 브랜드들은 전담팀을 꾸려 짝퉁 문제에 대응하고 있지만 적발이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가품 판매자들은 ‘병행제품’, ‘특별품’ 같은 단어를 기재해 시니어 구매자들을 속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바바나 쿠팡 등의 오픈마켓, 네이버 밴드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도 가품 판매자의 주된 판매처다. 타이틀리스트 관계자는 “정품과 가품은 재질에서부터 차이가 크다”며 “입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가품은 정품 대비 50~60% 싼 가격에 판매되며 SNS를 통해 판매되는 상품은 가품일 확률이 아주 높다”며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명품인 줄 알고 샀는데 짝퉁임을 확인했을 때의 기분이랄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작품이며 그 감독이 유명한 코폴라 패밀리의 일원이라는 정보만 믿고 기대에 차서 본 영화인데 보고 난 후 조금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글쎄 칸이 보는 관점과 필자의 시각이 달라서일까? 소피아 코폴라가 칸을 설득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필자를 설득하는데 미흡했던 것은 분명하다.
영화 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에 있던 가톨릭 여자 기숙학교 판즈워즈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치열한 전쟁 한복판에 있는 학교는 사람들이 대부분 떠나버리고 교장과 여교사 그리고 다섯 명의 학생만 남아 있다. 나무들이 잘 관리된 너른 정원과 중세풍의 우아한 흰색 건물은 이곳이 전쟁 중임을 잊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워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그 적막한 공간에 한 남성이 침입한다.
학생 에이미(우나 로렌스)는 늘 하던 대로 버섯을 따러 정원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다리 부상을 입고 군대를 이탈한 북군 병사 존(콜린 파렐)을 발견한다. 그는 교장 마사(니콜 키드먼)의 지휘로 안으로 옮겨지고, 적군이지만 기독교적 박애 정신으로 치료받는다. 물론 그 적군은 미남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여자로만 구성된 집단에서 당연히 주목받고 여자들 간에 미묘한 긴장감이 조성된다.
그중에서 두드러진 관계는 많은 사연을 지닌듯한 여교사 에드위나(커스틴 던스트)와 선천적인 팜므파탈의 끼를 지닌 조숙한 학생 알리시아(엘르 패닝) 사이에서 벌어진다. 알리시아는 노골적으로 유혹하고 에드위나는 자기를 사랑한다는 존의 고백에 흔들린다. 마사는 마사대로 존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는다. 영화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존은 그들과 모두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런 상황을 즐긴다.
치료에 대한 보답으로 정원을 돌보며 이곳의 일원이 되어가던 존은 어느 날 애정행각이 발단되어 운명이 한순간에 뒤바뀐다. 에드위나가 자신을 사랑한다던 존이 알리시아와 침대 위에 있는 모습을 보게 되고 변명하려던 존을 밀치자 계단에서 구르며 정신을 잃는다. 상처가 터진 모습을 본 마사는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썩어들어 간다며 그가 기절한 사이 존의 다리를 잘라낸다.
지루하게 흘러가던 영화가 이 지점부터 스릴러로 변신한다. 깨어나 다리가 잘린 것을 알게 된 존은 괴물로 변하고 격분한 남자와 일곱 여자의 대결로 치닫는다. 그래도 미련이 남은 에드위나는 미친 듯이 날뛰는 존에게 다가가 사랑을 나누고 나머지 여자들은 그를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그를 처음 발견했던 에이미가 독버섯을 따오고 마지막 만찬이 차려진다.
자, 여기까지 스토리는 매우 흥미진진하지만, 영화의 초점이 불분명하여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여자들 중 여교사 에드위나만이 어느 정도 심리와 욕망이 드러나 있을 뿐 마사와 알리시아의 심리는 불확실하고 행동의 개연성도 부족한 채 그저 예쁨만 있다. 더구나 존은 내면이 없이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자아가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니 전반부는 지루하고 후반부는 맥 빠진 스릴러가 되고 말았다.
원작이 그러한가 하여 관람 후 검색해 보니 원작과 많이 달라져 있고, 1971년도에 만들어진 영화와도 관점이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원작에 있던 흑인 하녀도 빠져 있고, 무엇보다도 1인칭 시점으로 처럼 등장인물이 각기 다른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인물의 깊이를 창조했던 원작과 달리 밋밋한 3인칭 시점으로 스토리를 끌고 가기에 바쁘다 보니 생긴 허점들이었다.
굳이 소피아 감독 입장에서 변명하자면 아름다운 화면과 스타일을 중시하는 감독의 취향 때문으로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왔던 1971년 영화와 달리 소피아가 여성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것도 이 영화가 정적인 흐름을 형성한 이유일 것이다. 다만 칸이 이런 여성적 정물화를 선호한다고 본다면 수상을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끝까지 남는 의문은 마사가 존의 다리를 자른 것이 정말 의학적 필요에서일까? 질투심에서일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입는 바지는 벨트를 하지 않아도 되는 바지가 대세다. 벨트를 하면 어딘지 아저씨 분위기가 난다. 젊은이들의 상징인 청바지도 요즘은 벨트를 안 하고 입는다. 벨트는 남성 바지의 필수품이었다. 바지는 일단 벨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형식을 탈피하고 싶어 한다. 골반 바지라 해서 흘러내린 듯한 바지가 유행이기도 하다. 이런 바지에 벨트를 하면 이상하다. 벨트는 한때 멋쟁이의 패션이었다. 여성들처럼 다양한 멋을 낼 수 없었던 남성들이 한껏 멋을 낼 수 있었던 것이 넥타이와 벨트 버클이었다. 명품 버클을 몸의 중앙에 고정시켜놓고 자신의 품격을 보여줬던 것이다. 그래서 짝퉁 버클이 많이 유통되기도 했다.
벨트는 몸의 중앙을 가로로 자르는 듯한 느낌을 주어 아래위로 길게 보이고 싶어 하는 시각적 효과에 반한다. 여성들의 옷도 마찬가지다. 특히 바지와 컬러가 같은 벨트는 덜하지만 컬러가 다를 경우 상체와 하체를 분리하는 시각적 효과가 생긴다. 컬러가 같더라도 질감의 차이도 시각적으로 거슬린다.
멜빵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멜빵은 배가 많이 나온 사람들이 벨트로는 감당이 안 되어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래는 신사들이 많이 착용했던 것으로 클래식한 분위기가 풍긴다. 파자마나 추리닝처럼 끈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나름대로 색다른 멋이 있다. 고무줄로 되어 있는 바지도 있다. 미관상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상의를 바지 속으로 넣지 않고 겉으로 입는 경우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일본제 바지들을 보면 벨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시도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겉에서는 안 보이지만 허리 사이즈를 조절하는 장치도 있다. 안쪽 앞부분 또는 양옆으로 벨트 없이도 허리를 고정시키는 장치를 고안해서 내놓고 있다. 턱시도나 파티드레스에는 벨트가 없다. 바지를 입는 사람 허리 치수에 맞게 만들기 때문이다.
벨트가 없는 옷이 편하긴 하다. 굳이 벨트를 바지에 맞춰 고르지 않아도 되고 벨트의 두툼한 질감이 없으니 편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굳이 벨트를 해야 한다면 버클 고정 위치가 자유로운 직조 벨트를 권하고 싶다. 편한 것을 선호하는 추세에 따라 넥타이에 이어 벨트도 사양 품목이 되어 가는 추세다.
영화가 굳이 심각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한 시간 반을 영화에 투자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적지 않다. 사상이나 이념같이 불필요하게 무거운 지적 허세도 있지만, 우울한 마음을 위로하는 경쾌한 코미디도 있고, 말초 감정을 자극하는 쾌락도 있다. 심지어는 요즘 문화 트렌드에 맞춘 실용적인 영화도 등장한다. 예컨대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여행 가이드 영화, 먹는 걸 즐기는 이를 위한 먹방 영화.
모처럼 영화 시사회에 초대되어 남편과 함께 참석했다. 의외로 남편이 순순히 따라나선 데는 주연인 다이안 레인의 힘이 컸다. 어떻게 늙어가나 보자는 핑계로 동행했다. 여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필자는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파리로 가는 길이라니. 이제는 오래되어 낡은 흑백 사진처럼 빛바랜 에펠탑이나,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 정도가 떠오르는 20년 전의 기억을 안고 시사회장에 들어섰다.
왕성한 홍보가 없어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스크린이 몇 안 되는 작은 영화였다. 다만 코폴라 가문의 영화라는 브랜드가 박혀 있어 짝퉁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를 만들어 할리우드의 자존심이 된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 가문의 딸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이미 상당한 필모그라피를 쓰고 있으나 엘레노어 코폴라 감독은 낯설다. 그녀는 프랜시스 코폴라 아내로 이 작품이 데뷔작이란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영화 제작자인 남편 마이클(알렉 볼드윈)을 따라 칸에 온 앤(다이안 레인)이 갑작스러운 귀의 통증으로 다음 행선지인 프라하로 떠나지 못하고 남편과 떨어져 마이클의 동료인 프랑스 남자 자크(아르노 비야르)의 안내를 받아 파리로 직접 간다는 자전적 이야기다. 그런데 하루면 도착할 길을 40시간이나 걸려 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대책 없이 낭만적인 프랑스 남자 덕분이다.
대부분의 낭만적 로드무비가 그렇듯이 이 영화도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양한 명승지의 풍광이 있고, 곳곳마다 풍성한 음식이 있으며, 맥락은 없지만 적절한 로맨스가 조미료처럼 들어 있다. 게다가 미국 여자와 프랑스 남자라니! 캐릭터도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창의적이지는 않지만, 이미 익숙하고 우아한 미감의 엔틱 가구처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안락의자인 셈이다.
별다른 스토리가 없다 보니 프라하로 떠난 일밖에 모르는 남편은 줄곧 전화에다 대고 “프랑스 남자 조심해!”만 되뇌고 있고, 도덕적인 미국 여자는 “파리로 곧장 가요.”라는 대사만 읊고, 느글느글한 프랑스 남자는 “파리는 어디 안 가요.” 하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간혹 풀밭에서 피크닉 기분을 내며 세잔의 ‘풀밭 위의 식사’ 장면을 패러디 한다든가 하는 재치는 보이지만, 대체로 익숙한 기시감의 연속이다.
이야기의 빈곤을 느낀 감독이 끼워 넣은 장면들은 맥락이 분명치 않아 조화를 깨뜨린다. 예컨대 우연히 엿들은 전화 통화에서 돈에 쪼들리는 자크의 상황을 드러내는 장면은 그의 허세를 과장하려는 의도겠지만 뜬금없고, 서로 어두웠던 과거를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내용은 작위적이다. 아무리 프랑스라 해도 동료의 아내에게 필요 이상으로 들이대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그러나 코폴라 사단의 도움 때문인지 영화는 더 이상 일탈 없이 적절하게 마무리된다. 80대에 접어든 엘레노어의 데뷔작치곤 박수를 보낼만하다. 홍보의 필요로 그랬겠지만, 주연급으로 소개된 알렉 볼드윈은 사실 카메오라 해도 할 말 없는 정도로 5분 뒤 화면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그러면 어떠랴 한 시간 반 동안 프랑스 관광과 음식 구경 푸짐하게 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10여 년 전부터 압구정에서 놀았다. 3호선 압구정역 2번 출구로 나가면 오페라 동호회 '무지크 바움'이 있다. 4번 출구로 나가면 탱고 동호회 '땅게리아'가 있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가무를 즐겼다. 초등학교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동생 연희와 함께 비좁은 방에서 노래하며 춤추곤 했다.
'진달래 피었구나. 눈 녹은 산에…'
물론 안무도 필자가 했다. 그런데 50대가 되면서 탱고와 왈츠에 필이 꽂혔다. '그래 탱고와 왈츠를 열심히 익혀서 춤추며 즐겁게 살자.' 탱고를 배우겠다고 작정을 한 뒤 수소문하여 찾아간 곳이 땅게리아였다. 땅게리아는 연대 출신의 여성분이 운영하는 곳이다. 탱고의 본고장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탱고를 배우고 온 이분은 탱고 관련 영화에도 여러 번 출연한 ‘탱고의 고수’다.
" 나 초보걸랑, 접근 금지!"
10년 전 어느 토요일 밤이었다.
남자들이 젊으나 늙으나 필자하고 탱고를 추겠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파트너가 된 남자는 이제 막 중년이 된 듯 보였다. 당시 남자들은 소위 필자 옷빨에 넘어가 필자를 탱고의 달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그때 입은 옷은 프랑스 디자이너 임마누엘 웅가로가 디자인한 원피스였다(물론 동대문표 짝퉁이다). 몸의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나는 착 달라붙는 55사이즈의 검은색 비로드 천으로 만들어진 옷이었다. 옷 길이는 발목까지 내려왔고 가슴과 허리선은 드레이프로 자연스럽게 늘어졌으며, 어깨는 끈나시, 왼쪽 치마폭은 허벅지에서부터 길게 슬릿이 들어간 아주 엣지 있는 디자인의 옷이었다. 여기에 기다란 검은색 비로드 장갑까지 끼었다.
필자의 파트너는 춤을 추는 동안 땀을 뻘뻘 흘렸다. 춤을 못 춰도 너무 못 추는 필자를 만나 생고생을 했던 것이다. 이튿날이었다. 필자 곁에는 남자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저 여자 선천적 몸치야 절대 접근 금지!'
그새 동네방네 소문이 쫙 나버린 결과일 터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5년 여름날, 서초동을 걷고 있는데 한 남자가 문득 서 있었다. 오매! 놀래라! 바로 그였다. 멀리서부터 아우라가 느껴져 쳐다봤더니 문제의 그녀가 서 있더란다. 이런 우연이 있나!' 우린 오래전, 그것도 단 한 번 탱고 파트너였을 뿐인 서로를 선명히 기억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인간의 기억이다. 필자는 그때 파트너를 너무 힘들게 한 것이 너무 미안해서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파트너도 자신을 힘들게 한 여자로 기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를 다시 만나면 '그때 미안했어요. 제가 너무 못 춰서요. 많이 힘 드셨죠?' 할 참이었다. 뜻밖에도 그는 "그때 그 모습이 너무 이뻤어요! 그래서 어디론가 데려가고 싶었어요" 했다. 'ㅋㅋ 그랬구나!' 필자를 처음 만났을 때 카이스트 연구원이었던 그는 요즘 가산 디지털단지에서 자그마한 IT 회사를 운영하고 있단다.
감미롭기도 하고 강렬하기도 한 멜로디가 귓가에 맴돈다.
‘캔 리브~~리빙 이스 위다웃 유~’ 너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애절하고도 달콤한 노래로 젊었을 때 팝송에 빠져있던 필자가 좋아한 노래 중 하나였다.
대표적인 가수로‘ 해리 닐슨’이 이 노래로 4주 연속 빌보드차트 1위를 장식했었으니 큰 성공으로 사랑받는 노래임이 틀림없겠다.
그 외에도 ‘머라이어 캐리’ ‘에어 서플라이’ 등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되며 널리 알려졌다.
느린 템포에 조용하고 그윽한 선율, 슬픔을 참으려는 내면적 고통이 아름답게 표현된 사랑의 상실에 대한 황폐한 고독을 담고 있는 이 노래는 알고 보니 참으로 쓸쓸하고 슬픈 이면이 있었다.
이 곡은 ‘배드 핑거’라는 4인조 록 그룹의 멤버 두 명이 서로의 곡을 접목해 완성한 곡이다.
필자는 젊었을 때 여러 장르의 수많은 음악을 즐겼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뮤지션을 꼽으라면 두말할 것 없이 ‘비틀즈’다.
‘배드 핑거’라는 그룹은 그리 유명하진 않았어도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매우 불운했다.
음악성도 좋고 노래도 괜찮았지만 ‘비틀즈’의 그늘에 가려 ‘비틀즈’의 아류라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으니 말이다.
‘비틀즈’처럼 4명으로 결성된 ‘배드 핑거’는 그들 나름대로 음악을 펼쳤지만, 사람들은 ‘비틀즈’의 짝퉁이라는 시선에서 벗어나질 않았다.
사실 제작자도 ‘비틀즈’를 표방해 이 그룹을 만들었다고 한다.
승승장구하던 ‘비틀즈’가 어느 날 해체를 선언했다. 수많은 열혈 팬들은 절망감과 함께 분노까지 느꼈다.
그래서 ‘배드 핑거’가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비틀즈’의 짝퉁 노래는 듣지 않겠다며 야유하고 거부했다고 한다.
훌륭한 실력을 갖췄음에도 시기를 잘 못 만났으니 안타까운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 ‘배드핑거’ 멤버 두 명이 합작해 만든 곡 ‘without you'를 앨범에 수록했으나 팬들은 들으려 하지 않아 사장될 위기에 닥쳤는데 이 곡을 들은 ’해리 닐슨‘이 그들에게 그 곡을 사겠다고 제안을 했다.
앨범에 수록되었지만, 대중이 들어주지 않으니 그들은 ‘해리 닐슨’에게 헐값으로 노래를 팔았다고 한다.
그런데 1972년 ‘해리 닐슨’이 이 곡을 편곡해 발표하자 빌보드 차트에 4주나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며 사랑받기 시작했다.
발라드에 강한 비트가 들어간 당시로써는 차별화된 멋진 음악이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들이 만들었음에도 대중의 눈길을 받지 못하고 싼 가격으로 팔아넘겼는데 그 곡이 명곡이 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니 ‘배드 핑거’는 상대적 박탈감을 이기지 못한 듯하다.
1975년 이 곡을 만든 ‘배드 핑거’의 ‘피터 햄’은 스튜디오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8년 후 1983년에는 공동작곡자인 ‘토마스 에반스’ 역시 자살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사람들은 왜 ‘배드 핑거’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일까? 생각해 보면 매우 아깝고 안타깝기만 하다.
‘비틀즈’에 열광했고 지금도 그들의 수많은 명곡을 기억하며 멤버 하나하나 다 좋아하고 있지만 그렇게 유명한 그룹에 가려져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사라져 간 ‘배드 핑거’가 애틋하다.
그저 나의 좁은 소견으로 대중이 알아주지 않아도 열심히 곡을 만들고 꾸준히 활동했더라면 언젠가는 음악성을 인정받고 훌륭한 록 그룹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 한 감미로운 노래에 이런 사연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마음이 아프다.
필자는 꼭 명품 옷이나 백을 들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아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거나 좋아하는 색상이면 싸구려라도 즐겨 가지고 다닌다. 때로는 필자가 입은 옷이나 가방이 비싼 게 아닌데도 명품으로 오해해주는 친구가 있어 즐거울 때도 있다.
우리 집 옷장 안에는 내 핸드백이 10여 개 들어 있다. 최근엔 핸드백을 구매하지 않지만 젊었을 때는 명품을 몇 개 사기도 했다. 그래도 대부분은 선물 받은 상품권으로 구매한 금강, 에스콰이어, 엘칸토 등 우리나라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다. 마음에 들긴 해도 내게 너무 부담스러운 가격의 핸드백을 장만한 날에는 며칠 동안 끙끙대며 후회하기도 했다. 매스컴을 통해 명품만 선호하는 여성들에 대한 비난과 아무 거리낌 없이 비싼 물건을 산다는 일명 된장녀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한심하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물론 여유가 있어 고가의 물건을 살 수 있으면 괜찮겠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인데도 비싼 명품을 장만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곱게 보이지 않는다. 생각하기 나름인데 들기 편하고 마음에 들면 되지 꼭 그렇게 비싼 명품을 선호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막냇동생이 사는 동부이촌동에는 가끔 가짜 명품 가방을 파는 트럭이 온다고 한다. 비록 짝퉁이지만 동네 멋쟁이 여자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어 구경한다고 하니 A급, B급부터 특A급까지 진짜 명품과 똑같은 모양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가보다. 진품이면 몇백만 원을 호가하지만 비슷한 제품을 이삼십 만 원에 살 수 있으니 불티나게 팔려나간다는 것이다.
막냇동생도 구경하다가 가짜 고급 브랜드 제품을 하나 샀는데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다며 내게 주었다. 디자인이 세련되고 좋아서 얼른 받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동창 모임에 그 핸드백을 들고 나갔더니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백화점 매장에서 보았다면서 아는 체하며 예쁘다고 했다. 필자는 그냥 “으응.” 하며 어색하게 웃고 말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영 가볍지 않았다. 진품이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아닌 척하고 온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아까는 말 못했는데 그거 가짜야.”라고 말했더니 “어쩜 매장에서 보았던 것과 그렇게나 똑같니.” 하면서 자기도 사고 싶어 한참을 봤지만 너무 비싸서 눈요기만 했다고 깔깔대며 웃었다.
우리나라 짝퉁 제품 생산 규모가 매우 크다고 한다. 뉴스를 보다가 엄청난 물량의 가짜 명품을 폐기하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보았는데 끊이지 않고 적발되는 걸 보면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짝퉁이란 가짜, 모조품, 유사품, 이미테이션의 의미를 가진 신조어로 너무 비싼 가격, 한정된 공급 등의 문제와 공급 면에서 이익에만 몰두하는 얄팍한 상인들의 상술, 그리고 정교한 이미테이션의 기술이 어울려 탄생한 가짜 상품을 말한다. 특히 최근에는 위조기술이 더욱 정교해지면서 전문가조차 진위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남이 어렵게 이루어낸 업적을 손쉽게 베껴 싼 가격에 파는 행위는 도둑질과 다름없다. 그래도 여전히 짝퉁 제품이 유통되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체면과 겉치레를 중요시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는 결코 명품에 집착하지 않는다. 명품이 싫은 사람이야 없겠지만 분수에 맞는 소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품을 가지려고 무리해서 빚까지 내는 여성들도 있다 하니 걱정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TV를 통해 어마어마한 물량의 짝퉁 제품을 소각 폐기하는 장면을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저 물건들을 다른 방법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언젠가 관세청에서 진품과 가짜를 구별하는 전시회를 연 적이 있는데 짝퉁 의류와 신발 등에 그림을 직접 그려 넣어 다른 나라에 기증하는 재활용 행사도 있었다고 하니 좀 더 생각해볼 일이다. 위조 상품은 폐기가 원칙이지만 자원 낭비와 오염 유발의 문제점이 있어 상표를 제거한 후 원래 상품권자의 동의를 얻어 국내 사회복지시설에 나누기도 했고 새롭게 디자인해서 캄보디아나 리비아 등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나라에 보내주기도 한단다. 그냥 태워서 없애는 것보다는 나은 방법이지만 아예 위조품이 없다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다.
그래도 기왕 공짜로 얻었으니 오늘 외출에 이 짝퉁 핸드백을 들고 나가려 한다. 꼭 명품을 좋아해서가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나 자신에게 변명해본다.
언젠가 KBS1 TV에서 ‘noodle road’라는 다큐메터리를 제작 방영한적이 있었다. 세계 각처에서 공통으로 먹는 음식으로 조리법과 굵기의 차이가 다소 있지만 noodle의 모양은 한결같이 몸에 비해서 그 길이가 길게 만들어 진다는게 특징이다. 우리나라의 칼국수를 비롯하여 파스타, 소바, 면 등등의 많은 이름이 있지만 우리식으로 쉽게 표현하자면 그들은 다 국수의 모양이고 세계 공통으로 noodle 이라고 부른다.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서 하나의 음식을 각자 다른 이름으로 즐기는 현상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말지만 왜? 어떻게? 의 시선을 가지고 보면 꽤 흥미롭다.
취재기자가 마치 실크로드를 찾아가듯이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한 noodle의 근원을 파헤치고 찾아갔을 때 그 진원지가 아시아 하고도 음식의 대국 ‘차이나’에 도달했다는게 재미있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징키스칸의 유럽정복과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의 역사가 인간의 복잡한 속성으로 존재하는한 음식뿐만 아니라 인간이 누리는 모든 문화를 너와 나만의 것으로만 분명히 구분할수 없다는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원칙일수도 있겠다.
음식을 담는 그릇을 어떠할까?
세계의 3대 도자기는 헝가리의 헤렌드, 덴마크의 로얄 코펜하겐 그리도 독일의 ‘마이센’ 이렇게 불리워지고 있다. 그중 마이센도자기는 세계적인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강남구 논현동에 대표 전시매장이 있다.
마이센 (MEISSEN)은 1709년에 독일 '작센'주에 위치한 한 성(castle)의 명칭이었다. 이 성의 요업장에서 유럽최초의 백자를 구워내는데 성공하게 되면서 마이센은 시작된 이름이다. 도자기와 차, 비단 등 멀리 아시아의 나라 중국, 일본등지로부터 건너오던 물건이 18세기 해양 무역의 발달로 대량수입이 시작되고 사치품에 목말라하는 유럽 귀족들이 아시아의 물건에 물쓰듯 돈을 쓰는것을 보면서 작센주의 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는 백자를 구워낼 생각에 몰두하게 된다. 귀족들은 백자를 하얀금이라고 부를만큼 백색과 투명함에 매료된다. 처음에 이곳에서는 유럽의 토질상 백자에 비해 품위와 강도가 떨어지는 적갈색 도자기를 구워낼 수밖에 없었으나 아우구스트 2세의 집념으로 1710년에 유럽최초로 백자도자기를 굽는데 성공을 하게 된다. 백자를 굽는 열쇄인 고령토의 비율과 흙을 굽는 가마의 고온 기술을 마침내 당시의 연금술사 뵈거트로 하여금 백자를 구워내는데 성공, 개발시키기에 이른다. 이 성공으로 인하여 당시 '작센'주의 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의 궁정공방으로 이 설립이 되고 17,8세기 로코코시대 특유의 디자인이 개발되면서 합스부르그를 비롯한 유럽전역에 보급이 되기에 이른다. 사전에도 마이센 자기는 유럽 도자기의 역사라고 기록되고 있다.
마이센도자기 백자는 이런경로를 거쳐 중국 청나라 '오채자기'에 유전인자를 두고 모방에서 시작하여 그 탄생이 출발 되었다. 오채자기는 명, 청시대에 유행했던 백색바탕으로 구운 자기에다 나중에 다섯색 채색으로 무늬를 넣어 장식, 완성하는 자기를 말한다.
위의 사진중 좌측 마이센 도자기는 현재 영국 로얄 알버트 홀 소장으로 18세기초에 제작이 되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자기의 하단부에는 일본도자기 문양이 흉내내어 그려져 있다. 당시 유행했던 일본도자기 문양의 '짝퉁‘ 이 아니었을까..?를 짐작케 한다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짝퉁‘이라는 우아하지 못한 표현은 기자의 표현이다.
서양사람들의 그릇 '커피잔'이라고하는 그릇은 동서양 문화의 교류로 지금의 모양이 되었고 잔의 손잡이는 뜨거운 차를 마시는 중국의 찻잔에서 모방되었고 'saucer'라고 하는 잔받침은 일본의 차문화와 도기에서 흉내내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자기의 영어 표기가 China Ware인 것이 그냥 붙여진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좌측 사진속 자기 하단부의 문양보다 상단부의 그림을 보는 순간부터 나올때까지 내내 여운이 남아 혼자 생각하다가 마침내 우리나라 조선시대 유행했던 민속화 ‘초충도’를 기억해내고 나는 가슴이 뛰었었다.가슴이 뛴 이유는 는 ‘초충도’가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민속화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충도'는 풀, 작은 곤충, 동물을 배합하는 그림의 구도로 중국 원나라 시대의 화조작가 '여 경보'의 작품이 언제인가 일본으로 전래되었고 따라서 이 같은 구도가 우리나라에도 고려시대이후에 전해졌다고 추정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에서는 16세기(조선시대)에 이런 버전의 그림들이 주로 여성들에 의해서 유행하였고 민속화로 분류되고 있고 사임당의 초충도가 대표적이고 '초충도'의 대부분은 사임당의 화첩그림과 비슷한 풍으로 전해질뿐 작품들의 진위도 가리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초충도'가 종이에 그려진 채색화에 비해 일본의 ‘초충도'는 주로 자수를 위해서 그려졌다고 한다. 위 좌측 도자기의 상단 그림 역시 들쥐가 무슨 덩쿨식물의 열매를 먹고 있는 그림이다. 따라서 기자는 저 윗부분의 그림 역시 아시아 그것도 한국에서 건너간 그림의 흉내일것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우습게도 가슴이 뛰었었던 재미있는 기억이 있다.
멀고 가까운 세계 문화교류의 역사가 재미있지 않나요?원초적으로 나만의것 이라는게 존재하기나 했을까요?
'불량공주 모모코 (下妻物語)'. 일f본 코미디 드라마 영화이다. 원제는 ‘가마가제 소녀’인데 가미가제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고려해서 ‘불량공주’로 바꾼 것 같다. 감독은 나카시마 테츠야, 주연은 모모코 역에 후카다 쿄코, 폭주족 이치코 역에 츠치야 안나가 나온다. 네티즌 평점이 8.3으로 꽤 높다.
이 영화를 보면 일본은 과연 만화 공화국이고 사람들도 만화에 취해 사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것은 어디나 비슷하지만, 어릴 때부터 만화를 많이 보고 성인들도 만화를 많이 보는 일본은 만화처럼 사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만화 같은 삶을 나쁘게 보지 않는 것 같다.
코미디 물이므로 가볍게 보면 된다. 모모코의 아버지는 베르사체 짝퉁 의류를 만들어 팔면서 재미를 좀 보았으나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되어 시모츠마라는 시골로 잠수 차 이사 간다. 이 동네 사람들은 촌이라 편한 추리닝을 선호하여 늘 추리닝 바람이다. 어지간한 옷도 동네에 유일한 마트인 자스코에서 사 입는다. 그러나 모모코는 다르다. 고등학교 2학년이다. 유럽 중세 로코코 풍의 드레스를 좋아해서 언제나 양산을 쓰고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는다. 그런 옷을 사기 위해 아버지에게 거짓말도 해가며 용돈을 타내고 동경까지 가서 그런 옷을 구입해 입는다.
아버지가 짝퉁 판매하다가 재고로 남은 옷들을 모모코가 인터넷에 내 놓는다. 인터넷 광고를 보고 찾아 온 여인은 여자 스쿠터 폭주족의 일원인 이치코이다. 거친 말투와 외모까지 모모코와는 정 반대의 여자이다. 불량배들처럼 침을 칙칙 내 뱉고, 박치기 공격을 하지 않나, 자수를 곁들인 특공복 패션을 하고 다닌다.
이치코는 폭주족의 리더가 결혼한다며 송별폭주 행사에 참가하려는데 리더를 위해 특공복에 전설의 자수명인 자수를 놓겠다며 자수 명인을 찾아다닌다. 돈이 필요하니 빠찡코에 갔는데 엉뚱하게도 모모코가 대박을 터뜨린다. 주인이 속임수를 썼을 거라며 트집을 잡자 앞머리를 길게 한 이상한 모습의 남자가 나타나 모모코 편을 들어준다. 이치코는 이 남자를 첫사랑의 대상자로 찜한다.
모모코는 동경에 간 김에 수제 로코코 드레스 점에 자주 간다. 한번은 벌레 먹어 모자에 구멍이 여러 군데 생겨 손수 자수로 구멍을 활용했다. 그걸 본 점원이 사장에게 얘기하고 사장은 모모코의 재주를 알아본다. 그래서 샘플로 제작한 하얀 드레스에 장미 자수를 놓아달라고 부탁한다.
전설의 자수 명인을 찾아 다니던 모모코와 이치코는 전설의 명인은 가상 인물일 거라며 찾기를 포기한다. 그 대신 어릴 때부터 자수에 소질을 보인 모모코에게 특공복 자수를 부탁한다.
로코코 드레스의 장미 자수가 다 되어갈 무렵, 이치코에게 위기가 생겼다. 빠찡코에서 자기네들 편을 들어준 앞 머리 긴 남자가 폭주족 두목의 남자로 결혼한다고 발표하자 좌절하며 탈퇴를 선언한다. 동료 폭주족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려는 순간에 모모코가 스쿠터를 몰고 나타난다. 야구배트를 하나씩 든 집단 폭행의 살벌한 분위기에서 모모코는 자신이 전설의 자수 명인 딸로서 기법을 전수 받아 이치코의 특공복에 자수를 놓아준 것이라며 분위기를 장악한다. 그 덕분에 이치코와 모모코는 스쿠터로 그 현장을 빠져 나온다. 이치코는 그 후 모델로 성공하고 모모코는 로코코 드레스 회사와 손잡고 일한다.
모모코의 아버지는 짝퉁 옷을 만들어 팔다가 낭패를 본 사람이다. 술집 골목에서 좌절하여 신세타령을 할 때 술집에서 튀어나와 토하던 모모코의 어머니가 눈이 맞아 바로 결혼한다. 모모코를 임신하여 출산 후 얼마 안 가 가출하고 이혼장을 보낸다. 미모가 출중하여 미인대회에도 나간다. 모모코는 치매 초기의 할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란다. 학교에서도 왕따이고 동네에서도 별난 드레스 때문에 손가락질 당한다.
이 영화는 만화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들이 보기에 유치하지 않고 재미가 있다. 일본의 정서를 읽는 것 같다. 폭주족 문화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우리나라 폭주족들도 그런 인식에서 보면 이해할만 하다. 모모코는 별난 드레스 때문에 왕따이지만 자기 세계를 고집한다. 그런 점이 일본이 노벨상을 많이 타는 자원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