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의료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활 습관을 바꾸고 질병을 예방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메티컬 피트니스’(Medical Fitness)가 주목받고 있다.
“이제 지팡이 없이 걷게 됐어요!” “몇 년 만에 스스로 세탁물을 널었어요.” “먹는 약의 양이 줄었네요.” 메디컬 피트니스 이용자들의 소감이다.
메디컬 피트니스는 재활, 간호 케어, 간호 예방, 생활습관병 개선, 건강 유지, 활동성 향상 등 폭넓은 분야를 아우른다. 재활 시설, 간호·간호 예방 시설, 질병 예방 운동 시설, 지정 운동요법 시설, 운동형 건강증진 시설 등에서 메디컬 피트니스를 도입하는 추세다. 메디컬 피트니스의 목적은 건강 유지, 질병 예방이다.
메디컬 피트니스 키우는 정부
일본건강스포츠연맹에서 운영하는 메디컬피트니스협회는 ‘건강 만들기’를 실현하기 위해 메디컬 피트니스를 보급한다. 의료와 임상 스포츠 등 운동 분야를 연결해 운동 습관 보급, 지도자 육성, 체력 증진, 질병 예방, 질병 조기 발견 등을 포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개인의 건강관리가 의료비 절감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며 해당 산업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협회는 간호 예방 운동 트레이너와 워킹 트레이너를 육성한다. 간호 예방 운동 트레이너는 간호를 받아야 하는 시점을 늦추는 것이 목표다. 현재 간호를 받아야 하는 상태라도 더 악화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간호 예방 운동 트레이너는 치매, 행동과학, 영양 관련 지식과 근력 향상, 전도 예방 등 운동 관련 지식을 모두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
워킹 트레이너는 고령자의 자립 유지를 돕는다. 이를 위해서는 운동 습관, 식생활 개선 등이 필수다. 따라서 단순 운동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보행을 통해 건강을 지키고, 적절한 운동 습관을 만들어 유지하도록 지도한다.
정부는 의료비 절감 차원에서 메디컬 피트니스를 주목하고, 고령자의 건강관리를 위해 해당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하거나 세제 혜택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3년 건강증진법을 시행했는데, 이 법에 근거해 질병 치료와 예방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시설(지정 운동요법 시설)에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따라서 지정 운동요법 시설에서 메디컬 피트니스 서비스를 받는다면 치료비로 인정받아 의료공제를 받을 수 있다. 현재 일본에 지정 운동요법 시설은 약 210곳이다. 이곳에서는 고혈압・지질이상증・당뇨 등 생활습관병으로 분류되는 질병을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의사의 운동처방전에 따라 주 1회 이상, 8주 이상 운동하도록 한다.
데이터 기반 개인 맞춤형 지도
메디컬 피트니스의 핵심은 ‘의료’가 결합돼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 운동 기구만이 아니라 개인의 건강 정보를 기록하는 데이터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개인에게 적합한 방식의 의료・운동 지도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니가타시의 메디컬 피트니스 ‘쿠오레’(Cuore)는 네쿠야마 미야오 병원 내에 있다. 회원 평균 나이는 56.7세다. 60대가 가장 많고 70대 이상은 14%를 차지한다. 후기고령자인 만큼 생활습관병이 있는 사람이 많다. 병원 소속 의사가 혈액 검사, 체지방 분석, 복부 내장지방 검사 등을 하면 그 결과에 따라 건강 운동지도사가 맞춤형 프로그램을 설계한다. 매월 ‘피트니스 리포트’를 제공하는데, 이에 맞춰 영양과 생활 지도도 이어진다. 6개월 후 운동 효과를 확인하고, 효과를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 변경이 이뤄진다. 신조정형외과의원은 정형외과를 찾는 환자들이 대체로 무릎 통증과 요통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근력 저하가 악화되지 않도록 단련하는 메디컬 피트니스 리후레(リフレ)를 운영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메디컬 피트니스 센터 개설을 지원하거나 센터와 연계한 이벤트를 여는 방식으로 고령자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운동의 지속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야마가타현의 무라야마시는 지역에 있는 폐교를 메디컬 피트니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군마현 다카하시시에는 구로자와 병원이 운영하는 ‘메디컬 피트니스 & 스파 발레오 프로’가 있다. 운동 프로그램뿐 아니라 센터에 다니는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볼링 등 스포츠 동호회 이벤트, 뷔페 행사 등을 연다. 지난 6개월간 시설 탈퇴 회원은 1%도 안 된다. 이시카와현의 고마쓰시 ‘다이내믹 클럽’도 의료 점검과 운동 지도뿐 아니라 서예・회화 등의 20여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2023년 7월 도쿄에 문을 연 피트니스 클럽 ‘리버스’(Re-Birth)는 물리치료사・운동지도사 등 전문가가 상주하고, 의사의 운동처방전을 기반으로 맞춤형 트레이닝을 한다. 운동 기구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이 탑재돼 있어, 운동 머신이 회원의 당일 몸 상태에 따라 의자 높이를 조절하거나 운동량과 강도를 정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스마트워치 등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24시간 생활 데이터를 기록, 일상에서도 건강을 관리하는 메디컬 피트니스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일본의 드러그스토어는 일반의약품 · 건강기능식품뿐 아니라 처방약도 다루는 점포가 늘어나는 추세다. 신선식품을 포함한 생활용품 판매 영역도 넓어지면서 매출 1조 엔이 넘는 기업이 탄생하기도 했다.
일본의 드러그스토어는 약국과 편의점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 법인 약국으로 ‘건강생활 스테이션 역할을 한다’를 목표로 한다. 건강과 관련된 모든 부분을 한 곳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약을 짓는 조제 약국과 드러그스토어는 구분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반의약품부터 생필품 전반을 다루는 드러그스토어에서 의사의 처방을 받아오면 약사가 약을 지어주는 조제 약국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 늘고 있다.
지역 생활 지키는 드러그스토어
일본 체인드러그스토어협회에 따르면 2022년 드러그스토어 수는 약 2만 2100곳이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102% 성장했다. 협회는 “조제를 하는 드러그스토어가 증가한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진단한다. 2만여 개 점포 중 조제를 병행하는 곳이 35%를 차지한다. 2021년에는 조제 병행 드러그스토어에서 조제 매출액만 1조 2811억 엔을 기록했다.
점포의 크기도 커지고 있다. 150 ~300평 크기의 점포는 전체의 45.5%를 차지한다. 300평 넘는 초대형 점포는 2022년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협회는 2025년까지 10조 엔 규모로 산업을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약국 체인 마쓰모토키요시는 PB상품으로 저렴한 생필품을 선보이고, 코코카라파인은 조제 병설 지점을 늘려 소비자를 유도했다. 2021년에는 마쓰모토키요시가 코코카라파인을 인수합병해 마쓰키요코코카라&컴퍼니를 출범시켰다. 점포 크기뿐 아니라 기업의 대형화도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드러그스토어와 편의점의 경쟁이 심화할것으로 내다봤다.
조제 약국도 체인화하며 규모를 키우고 있다. 조제 전문 약국 체인으로 유명한 스기약국은 약국 한 곳에서 의료기관 600여 곳의 처방전을 수용한다. 스기약국 우에노히로코지점은 한 달에 약 3000건의 처방전을 접수한다. 이는 대체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처방전의 80% 정도가 ‘성분명’ 처방을 한다. 우리나라는 ‘제품명’으로 처방하기 때문에 효능이 같은 다른 약으로 대체하려면 약사가 의사에게 확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애초에 성분명으로 처방하고 2002년부터 대체조제를 도입하고 있어, 의사가 처방한 의약품보다 저렴한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으로 바꿔서 약을 줄 수 있다.
협회는 코로나19 이후 외출을 자제하면서 대형 매장으로 가지 않고 자택 인근 소매점에서 생활필수품을 구매하려는 경향이 강해져 드러그스토어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들이 의약품이나 방역용품을 구매하면서 겸사겸사 생필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 양상을 보이는 만큼, 드러그스토어는 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해 지역 생활권을 지키는 역할을 강화할 계획이다.
시니어에게 글쓰기가 그렇게 좋다던데, 정말일까. 글쓰기 강사, 출간 작가, 출판 전문가 이야기까지 듣고도 글쓰기 교실의 생생한 목소리가 궁금해 책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서울 양천구 개울건강도서관의 시니어 특화 프로그램 ‘마음이 치유되는 글쓰기’ 일일 수강생으로 함께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살면서 있었던 일을 다시 곰곰이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내 인생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뭐랄까, 단단해지는 느낌? 사방에 생각의 조각들이 흩어진 채 정신없이 살았는데 이제 정돈되는 것 같아요.” - 성영옥 씨
“한풀이가 되더라고요. 내 마음에서 다 끄집어 내놓으니까 병이 낫는 거죠. 정말이에요. 그동안 꽤 아팠어요. 그게 다 ‘내가 소심해서 오해하고 곡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먼저 손을 내밀게 되더라고요. 몇 년간 껄끄러운 관계였던 지인과 최근 다시 가까워졌어요.” - 이정임 씨
“이런 게 마음 치유구나 싶어요. 이젠 ‘어디까지 오픈해야 하나’ 하는 고민으로 넘어갔어요. 마음의 옷을 하나하나 벗다가 발가벗게 될 것 같아서요.(웃음)” - 김용희 씨
간증이 아니다. 글쓰기를 시작한 뒤로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냐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온 고백이다. “어 맞아, 맞아. 그런 게 있어!” 중간중간 수차례의 맞장구가 오간 열띤 증언이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찾은 곳은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개울건강도서관 2층 어울림실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필기구를 챙겨 든 시니어들이 빼곡한 책 사이를 가로질러 도서관 내 아담한 교실에 모이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독서 문화 프로그램 ‘마음이 치유되는 글쓰기’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마음이 치유되는 글쓰기’는 고령 이용자가 많은 개울건강도서관이 마련한 시니어 특화 프로그램이다. 노년을 대상으로 한 시니어 인문학으로 ‘서울형 독서문화 프로그램’ 우수 사례에 선정되기도 했던 개울건강도서관은 지난해부터 자체적으로 시니어 특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올해 개설한 프로그램은 ‘마음 건강’을 키워드로 한 글쓰기 교실이다. 박혜옥 도서관운영팀 주임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했다. “시니어층의 독서문화 프로그램 수요는 꾸준히 있었어요. 강의실 규모 때문에 10분만 모집하기로 했는데, 초과 접수됐습니다. 현재 11분이 해나가고 있고요. 이따 보세요. 출석률이 되게 높아요.”
맨 뒤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숨을 고르자 자리가 속속 채워지기 시작했다. 박 주임이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었다. 8회 차 수업 역시 출석률 100%로 막이 올랐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이미지 카드를 가지고 왔어요. 본인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이미지를 골라보시겠어요? 나와서 한 장씩 가져가세요. 고른 이유도 말씀해주시고요.” 박경숙 강사의 안내에 수강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학자가 꿈이었습니다. 거기까지 못 갔는데, 책이 쌓여 있는 이미지를 보니 그때 생각이 딱 났습니다.”
“제 인생에 장기 해외여행은 2~3번 남았을까요? 손녀딸, 며느리와 이탈리아 여행 가는 것이 꿈입니다. 제가 비용을 다 지불하더라도 여자들끼리만 한번 가보고 싶어요.”
글쓰기는 돌아가며 발표를 마친 뒤 짧게는 2분, 길게는 10분씩 이어졌다. 박경숙 강사의 교수법이다.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말하듯이 쓰라’는 거예요. 다들 말은 재밌게 잘하는데 막상 글로 쓰면 그렇지 않거든요. 특히 시니어들은 어렵고 고급스러운 글이 좋은 글이라는 고정관념이 다들 조금씩 있어요. 어려운 어휘나 고사성어를 넣으려고 하죠. 저는 그걸 빼는 쪽으로 피드백해요.”
나쁜 습관 덜어내기를 한 지 어느덧 두어 달. 수강생들은 글쓰기 실력이 나아졌다며 눈을 밝혔다. 수업 내내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른 ‘열혈 수강생’ 성영옥 씨도 그중 한 명이다. “블로그를 하고 있어요. 그동안은 생각나는 대로 써서 올렸는데, 이제는 어떻게 풀어나갈지 구상하고 써요.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더 잘 전달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짝꿍 김용희 씨도 얼른 말을 보탰다. “저도 수백 번 글을 썼지만, 다 내 맘대로 쓴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가이드라인이 생겼어요. 내 글을 피드백 받아보는 경험도 했고요. 배운 점을 유의해서 쓰니까 사실 글쓰기는 더 어려운데(웃음) 참 유익한 것 같아요.”
며느리의 권유에 가벼운 마음으로 등록한 이정임 씨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자서전 쓰기를 버킷리스트에 넣었어요. 한동안 어딜 가든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드니까 괜히 위축됐는데 여기 와서 생각이 바뀌었거든요. 글쓰기는 정년이 없잖아요.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연장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수강생들은 글쓰기 실력 외에 마음 처방전을 각자 하나씩 챙겨 들고 어울림실을 나섰다. 10월, 그 손에는 4개월 동안 써낸 글을 모은 문집까지 쥐어질 예정이다.
방문 진료 전문 의료기관 ‘건강의집의원’을 운영하는 홍종원 원장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의 길을 과감히 내던졌다. 대신 동네 청소를 하고, 옆집 이삿짐을 옮기며, 약과 주사가 닿지 못하는 삶을 돌본다. 사회의 손길과 멀어진 곳에서 과연 건강하게 사는 건 무엇일까? 신간 ‘처방전 없음’에는 아픈 몸들을 위한, 병원 밖 의사의 인생 실험이 담겼다.
서울시 강북구 번동. 수더분한 옷차림에 커다란 가방을 둘러메고 동네 곳곳을 쏘다니는 수상한 의사가 있다. 가방 속에는 청진기, 혈압계, 주사기, 붕대 등 각종 의료용품이 한가득 들었다. 그는 바쁜 걸음을 옮기면서도, 연신 울리는 휴대전화 소리를 놓치지 않고 받아 챈다. 홀몸 노인, 중증장애인, 쪽방촌 사람들의 이웃으로서 곁을 살피기 위해서다. 홍종원 건강의집의원 대표원장은 흰 가운을 차려입고 쾌적한 진료실에서 환자를 맞이하는, 드라마에 나올 법한 ‘엘리트 의사’와는 사뭇 다르다.
조금은 다른 건강
“2019년 건강의집의원을 개원하고 방문 진료를 한 지 5년 가까이 됐네요. 사실 특별한 신념을 가졌던 것도,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공학을 전공해 기술 개발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쪽이 더 재미있을 거라 느꼈죠. 하지만 입시 준비 과정에서 우연히 지원한 의과대학에만 합격했어요. 그때부터 의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나는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의료봉사 동아리 활동을 통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집을 드나들면서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 볕 들지 않는 집, 널브러진 이불과 담배, 모아둔 폐지들을 보고 있자면 장애가 있는 이에게, 홀몸 노인에게 어떤 처방을 내릴 수 있을지 혼란스러웠다. 몸에 해로우니 담배는 피지 않는 게 좋겠다고, 신선한 채소를 자주 섭취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병원 치료 이후의 삶은 누가 보듬어줄 수 있는 건가. 거주지, 음식의 종류, 경제적 능력 등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각자의 건강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데. 환자들의 삶은 모두 병원 밖에 있구나.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질병이나 장애, 가난 등으로 인해 사회와 멀어진 사람들을 면면히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지역사회로 뛰어들었다.
‘처방전 없는’ 삶
“번동으로 이사 온 것도 어떻게 보면 실험이에요. 이 동네는 의료 접근성이 취약한 동네고, 저소득층 밀집 지역입니다. 주민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하면서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고자 했어요. 마을 어르신들과 형, 동생 하고 지내면서 부대껴 살았죠. 가운을 입고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 그저 의사와 환자 관계 이상을 넘어서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건강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아픈 몸도 아픈 대로의 삶이 있더라고요. 노쇠나 장애는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이기 때문에 완치를 목표로 하는 분은 드물어요. 그저 각자의 일상을 인정하고 해내려 하죠. 그게 ‘진짜 건강한 삶’으로 가는 첫 단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홍 원장의 진찰 시간은 길고 진득하다. 환자가 생활하는 공간을 둘러보고, 어떤 형편에 놓여 있는지, 평소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듣는다. 건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맥락 안에 있다고 생각해서다. 처방 약보다 건강기능식품과 민간요법에 의지하고 있더라도, 상황에 따라 건강의 기준이 다르기에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다. 아쉽거나 속상할 때도 있다. 상태를 완화하는 수준에 그치거나, 환자를 낫게 할 수 있을지 확신조차 못 할 땐 만감이 교차한다. 하지만 차분히 소통하면서 서로 희미하게나마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쯤, 환자의 몸이 좋아지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때문에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공감과 연대라고 생각한다. 신간 ‘처방전 없음’에는 홍 원장의 방문 진료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속사정, 그리고 진짜 건강한 삶에 대한 사유를 풀어냈다.
“‘처방전 없음’을 읽은 분들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기도 해요. 누군가는 이상주의자의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극한 상황에서도 자기만의 ‘품’을 만들어내던 환자들을 보며 내린 결론이에요. 고통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 건강을 같이 고민하는 것 또한 제 일이죠. 그러나 더 나아가서 환자들과 주어진 시간을 함께 웃으며 채워나가고,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존재였으면 합니다. 그러다 보면 치료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식은 취업이 안 돼 애가 타는데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둥, 의사 며느리를 봤다는 둥 묻지도 않은 자기 새끼 자랑하는 동창 녀석이 나를 욱하게 한다. 심지어 자랑질하면서 술값도 밥값도 안 내니 더욱 욱한다.
좋은 대학 졸업시켜놨더니 일할 궁리는 안 하고 독립은커녕 내 연금 타 먹으며 같이 살겠다는 딸이 나를 욱하게 한다.
‘삼식이’ 노릇도 징글징글한데 비만 오면 술 한잔 걸칠 생각에 부침개 부치라고 독촉하는 남편이 나를 욱하게 한다.
육십 평생 뼈 빠지게 일하고 은퇴했더니 내가 번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처자식이 나를 욱하게 한다.
내 얘기에 집중하지 않고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는 친구가 나를 욱하게 한다. 무시당한 것 같아 속에서 천불이 난다.
화장실 휴지가 떨어졌는데 다음 사람 생각도 안 하고 근처에 있는 새 휴지 갈아 끼우지 않고 나간 앞사람이 나를 욱하게 한다.
안톤 슈낙(Anton Schnack, 1892~ 1973)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수필을 썼다면, 필자는 ‘우리를 욱하게 하는 것들’을 씁니다.
인디언 추장 이야기
옛날 어느 인디언 추장이 손주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 마음 안에는 두 마리 늑대가 살고 있단다. 한 마리는 하얀 늑대로 용기, 희망, 자신감, 신념, 확신 등을 먹고살지. 또 한 마리는 까만 늑대로 분노, 좌절, 공포, 짜증 등을 먹고살아.”
그러자 어린 손주는 “그럼 두 늑대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라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가 먹이를 주는 쪽이 이긴단다.”
툭하면 욱하는 사람들
하루에도 몇 번씩 욱하고 화내는 이놈의 성질머리를 고치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냐는 75세 사례자 질문에, 법륜스님은 ‘즉문즉설’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그 성질 고치지 말고 그냥 살라고 답변합니다. 그래도 꼭 고치고 싶다는 애원에 스님은 주저하다 비방 두 가지를 알려줍니다. 하나는 바로 전기충격기를 사서 욱하고 화가 치밀어오를 때마다 몸에 갖다 대는 것입니다. 죽었다 깨어나지 않으면 그 오랜 습관 고치지 못한다고 하면서요. 다른 한 가지는 화가 날 때마다 3000번 절을 하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왜 화가 날까요 : 기대와 영역 그리고 비교
화는 보통 상식을 넘어선 말이나 행동, 경우에 맞지 않은 행위를 할 때 일어납니다.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를 하지 않았을 때도 화가 솟구칩니다. 그렇다면 상식이나 경우, 도리는 누구의 기준일까요? 사람마다 시대마다 상황마다 기준이 달라 갈등이 생기고 화가 납니다. 내 기준과 기대치를 상대가 충족하지 못할 때,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해주지 않을 때 우리는 욱하고, 화내고, 분노합니다. 상대에게 묻지도 않고 나 혼자 세워놓은 기준과 기대를 요구합니다. 또 자신은 바꾸기 싫으면서 상대만 바꾸려고 합니다. 내 영역만 소중하고 상대 영역은 무단침입하려 합니다. 친구와 친척, 이웃과 비교하고 저울질당할 때도 욱합니다.
화(火)의 실체
화는 실체가 있을까요? 화는 실체가 따로 없다고 합니다. 도로에서 앞차가 신호 없이 끼어들 때 어떤 사람은 차를 세워 몽둥이로 상대 운전자를 때리거나 차량을 부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많이 급한가 보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사람, 똑같은 말인데 누구는 격분하고, 누구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그냥 넘깁니다.
화는 오로지 내가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말은 내가 화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화가 났을 때 화내지 않고 꾹 참는 것은 좋은 것일까요? 가족이나 친구, 곁에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니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화를 참는 것은 화를 내는 것과 똑같은 에너지, 그 독기(毒氣)와 살기(殺氣)가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가 언젠가는 남에게 폭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참기보다 잘 달래야 합니다.
객기(客氣)와 정기(精氣)
화는 주인이 아닙니다. 내가 반쯤 미쳐 있는 상태입니다. 제정신이 아니란 말입니다. 화는 손님, 객식구입니다. 손님은 잘 대접하고 고이 보내야 하듯 ‘객기’(客氣)인 화도 잘 달래고 풀어줘서 보내야 합니다. 손님을 보내고 ‘정기’(精氣)인 나 자신으로 돌아와 주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화는 캔에 든 콜라와 같습니다. 당장의 조갈(燥渴)은 해소하겠지만 좀 있으면 또 목이 마릅니다. 쏟으면 얼룩이 지고 흔들면 폭발합니다. 정기는 맑은 물과 같습니다. 갈증 해소는 물론 쏟아도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할 때 오히려 우리는 마음의 주인이 아니라 화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화가 나의 주인 행세를 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을까요.
울화병에 대한 ‘동의보감’ 처방전
욱하고 성내고 화내는 게 잦고 깊어지면 화병(火病)이 되기 쉽습니다. 한의학에서 울화병(鬱火病)으로 불리는 화병은 ‘Hwa-byung’이라는 병명으로 등재될 만큼 공식적인 용어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잡병(雜病)편 화문(火門)에 ‘화를 조절하는 방법’(制火有方)으로 마음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마음을 기르라고 강조한 것은, 화가 함부로 동하고 날뛰는 것을 막는 근본적인 처방이기 때문입니다. 화가 동하는 것은 마음에 그 원인이 있기에 마음을 안정하는 것이 바로 화라는 불길을 끄는 방책이라는 것입니다. 화 일기 쓰기로 그 어렵다는 마음을 다스려볼까요.
화 일기 1
저는 이혼하고 혼자가 된 뒤 오빠 집에 같이 사는데 친정엄마가 밤 10시에 시작하는 ‘미스터 트롯’을 보시는 거예요. 조카들 숙제하고 독서하는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 올케언니 눈치가 보여서 화가 났어요. 아이들이 실제 공부하는 시간대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버럭 화가 치밀어 엄마한테 막 해댔어요.
저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제가 엄마의 여가와 즐거움에 대해 인정도 이해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드라마 보는 것은 죄악이고 성경 읽기만 바람직한 행위라는 이분법에 갇혀 있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를 통해서든 대중가요를 통해서든 종교적 깨달음을 통해서든 삶의 여유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또 내가 엄마 인생에 개입해왔네요. 함부로 단죄하고 평가하기를 일삼고 엄마만의 즐거움에 대해 무시하고 모른 체하면서요.
엄마의 사생활과 삶의 즐거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내 기준으로 엄마의 삶을 좌지우지하지 않고 판단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올케 눈치라는 핑곗거리를 내세울 게 아니라 엄마는 엄마대로, 조카는 조카대로 지켜보며 간섭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몇 년 전 필자가 분노 조절 수업에서 같이 나누었던 사례입니다. 화 일기를 쓰면서 화난 자신을 바라보고, 왜 화가 났을까 스스로 분석하다 보면 나와 상대방을 조금은 더 이해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마치 유체이탈(遺體離脫)하듯이 내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하는 셈입니다. 또 다른 화 일기를 볼까요.
화 일기 2
많이 베풀어도 고마움을 모르는 시동생과 동서 때문에 화가 납니다.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분노가 치밀까 생각해봤습니다.
‘난 왜 꼭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 하지. 내가 뭔가 대가나 보상을 바란 것은 아닐까. 시동생네 살아가는 모습과 내 모습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괴로워하는구나.’
지금 형편이 많이 여유로워졌는데도 나는 자신을 위해 돈을 쓰지 못하는 반면, 시동생네와 시어머니는 내가 베푼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것 같아 못마땅해하고 있었네요.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내가 간섭할 영역이 아닌데 자꾸 내 잣대로만 평가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해서 베풀었으면서도 고맙다는 말이나 보상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사례는 실제 우리 주변에서 비근하게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다행히 당사자는 화가 났다는 것을 얼른 알아차렸고, 자기 마음을 잘 들여다봄으로써 시댁 식구들을 이해하게 된 거죠.
국수 삶기에서 배우는 분노 조절
분노, 화는 글자 그대로 불같은 감정입니다. 불이 타는 듯, 폭발할 듯 끓어오르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분노 조절에는 두 가지 등급, 고수와 중수의 처방이 있습니다. 국수 삶을 때 물이 끓어 넘치면 어떻게 하나요? 바로 옆에 둔 찬물을 한 사발 붓습니다. 그것도 잠시, 금방 또 끓어오릅니다. 다시 찬물을 붓고 이렇게 세 번쯤은 해야 국수가 쫄깃하니 맛나게 삶아집니다. 내 안의 화도 같지 않을까요. 나만의 찬물이 필요합니다. 심호흡, 1부터 10까지 세기, 산책, 무엇이든 좋습니다.
찬물 처방이 중수라면 끓어 넘치지 않게 국수를 삶는 사람이 바로 고수입니다. 찬물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크고 깊고 넓은 그릇만 있으면 됩니다. 필자가 직접 실험해봤으니 믿으셔도 됩니다. 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찬물 없이도 내 마음 그릇을 키우면 화를 줄이고 분노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분노 조절의 최종 목표
해와 달은 서로를 비교하는 법이 없습니다. 단지 자신의 시간대에서 빛날 뿐입니다.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제 노릇만 그저 할 뿐 비난하거나 평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교하지 않고, 지나치게 기대하지 않고,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 화가 훨씬 덜 납니다. 나아가 상대를 대할 때 거리낌이 없고 거스름이 없고 막힘이 없는 상태, 화를 안 내는 것이 아니라 진정 화가 안 나는 단계가 분노 조절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하나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평화로울까요. 거창하거나 어렵지 않게 안정과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같이 해보실까요.
▶ “그렇겠네”, “그랬구나” 맞장구치면서 있는 그대로 들어줍니다.
▶ “그러니까 내 말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합니다.
▶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말 끊지 않고 궁금해하며 충분히 말하게 합니다.
“성냄은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화해야 하는 것이다.”
- 토머스 애덤스
“분노에 집착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숯을 움켜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 석가모니
초고령화시대, 처방전이 길어질수록 약을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면 더욱이 그렇다. 대표적으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환자가 알아야 할 약 먹는 법을 소개한다.
고혈압
① 고혈압 약 중 일부는 복용 시 마른기침, 소변량 증가, 쇠약감, 어지럼증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증상이 나타나면 의사, 약사 등 전문가에게 알리고 상담을 요청한다.
② 의사와 상의 없이 복용을 중단하지 않는다.
【KEY POINT】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하고, 꾸준히 치료받아 적절한 혈압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뇨병
①혈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약품 복용을 주의해야 한다.
혈당을 높이는 약물: 이뇨제, 갑상선 호르몬제, 결핵약, 부신피질 호르몬제, 시럽제
②당뇨 약 복용 중 저혈당 증상이 나타나면 사탕이나 음료수를 즉시 섭취하고, 나아지지 않으면 전문가에게 알린다.
【KEY POINT】 정기적으로 혈당을 측정해 기록하고, 규칙적으로 진찰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고지혈증
①고지혈증 약 중 스타틴 계열은 근육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근육통이나 쇠약감이 있는 경우 즉시 전문가에게 알린다.
②고지혈증 약 중 일부는 간 기능 약화를 유발할 수 있다. 간 기능이 약할 경우 처방 전 의사와의 상의가 필요하다.
【KEY POINT】 고지혈증 환자는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 규칙적으로 진찰받고 검사 수치를 기록하도록 하자.
2022년 4월부터 일본에서는 ‘리필 처방전’ 제도를 도입했다. 한 번의 진찰로 받은 처방전을 최대 세 번까지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불필요한 의료비를 줄이고 고령자의 편리를 높이는 제도지만, 환자의 건강 유지가 어려워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뇨가 있는 고령자라면 같은 약을 오랜 기간 복용해야 하는데, 전문의약품이라는 이유로 매번 의사의 처방전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후생노동성은 단순히 처방전만 받아가는 의료비 지출을 줄여야 한다며 2014년부터 ‘리필 처방전’ 제도의 도입을 강조해왔다.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등 해외에서는 이미 운영되고 있는 제도다.
만성질환자 70% “리필 처방 원해”
‘일본 트렌드 리서치’가 30~70대 각 200명씩 총 1000명을 대상으로 ‘리필 처방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결과에 따르면 58.7%가 리필 처방전을 이용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중에서도 정기적으로 약을 먹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56.1%)의 70.1%는 리필 처방전을 이용하고 싶어 했다.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4월 리필 처방전을 도입했다. 처방전 1장당 최대 3회까지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90일분의 약을 리필 처방한다면 1회 30일분의 처방전에 이용 가능 횟수 3회라고 기재해 발행한다.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 등 ‘약사에 의한 복약관리하에 일정 기간 내 처방전 반복 이용이 가능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향정신의약품과 같이 투약량에 한도가 정해진 의약품이나 습포약은 적용되지 않는다.
1회 처방전의 투약 기간, 총 횟수 등은 의사의 진찰로 결정된다. 처방전을 두 번째 사용할 때는 처음 약을 받아간 날을 기준으로 하며, 투약 기간이 끝나는 날 두 번째 처방을 받도록 계산한다. 약사는 두 번째 예상 처방일 전후 7일 이내에 약을 조제해야 한다. 다만,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약을 조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진찰을 권장할 수 있다.
리필 처방 제도의 장점은 여러 가지 있다. 먼저 진찰 환자가 줄어들기 때문에 의사의 업무 부담이 줄어들고 환자의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 매번 긴 대기시간을 보내고 매회 진찰을 받아야 하는 환자의 부담도 줄어든다. 고령자의 경우 병원에 오고 가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 있어 한 번 진료로 약을 여러 번 받을 수 있다면 편리한 제도다.
‘환자 건강 악영향’ 우려도
리필 처방 제도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의사가 진찰하고 약사가 처방전을 통해 약을 조제하면 처방에 관해 의료진이 두 번 확인하는 셈이다. 하지만 리필 처방은 두 번째 회차부터 약사 혼자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의료사고에 대한 우려도 있다.
또한 의사가 진찰하면서 환자가 미처 몰랐던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적절한 치료를 할 수도 있는데, 대면하지 않기 때문에 병이 악화되는 경우 발견이 늦어질 수 있다. 혹은 리필 처방에 익숙해지면 환자가 필요한 진찰조차 받지 않게 돼, 건강 유지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뿐 아니라 만성질환자나 고령 환자가 많은 의료기관의 경우 수입이 줄어들 수 있으며, 의약품 재판매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일본의 의료 헬스케어 기업 메들리의 아베 에이(阿部瑛) 클리닉스사업부 마케팅팀장은 “리필 처방전은 처방약을 받기 위해서만 진찰을 받는 만성질환자에게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면서도 “오랜 시간 진찰을 받지 않으면 병이 악화될 수 있는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약사의 상황 판단에 따라 환자의 건강 유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약사가 환자의 상황을 더 정밀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의료 종사자 전용 사이트 ‘엠쓰리닷컴’(m3.com)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제도 도입 후 한 달 동안 리필 처방 제도를 이용한 의사는 5%인 것으로 나타났다. 리필 처방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기존에도 만성질환의 장기 처방이 필요한 환자라면 최대 90일 처방이 가능하므로 리필 처방전을 사용하는 대신 90일분을 처방한다”, “3개월에 한 번은 진찰해야 환자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 “약사와 의사 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등의 답변이 나왔다.
최소 3개월에 한 번은 진찰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고, 리필 처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아직 활발하게 이용되지 않고 있다. 조사에서는 리필 처방전을 원하는 환자에게 90일 장기 처방으로 대응했다는 답변도 있었다. 이 제도가 더 활발하게 활용되려면 문제점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과 더 큰 이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 세대의 창업을 통한 도약을 지원하기 위해,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을 펼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점프업5060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에 성공하고 새 인생을 펼치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도로 귀퉁이에 핀 꽃 한 송이, 빌딩 옥상 정원의 나무 한 그루. 삭막한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존재들입니다. 이렇듯 식물을 통한 초록빛 도시재생을 꿈꾸며 권수정 씨는 ‘점프업5060’에 지원했습니다.
권수정 씨는 결혼과 출산으로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의 삶을 살던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숲에서 열린 원예 강좌를 들은 뒤, 그녀에게 도전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숲 도시정원사 수업을 들었는데 내용이 정말 좋았어요. 흔히 ‘자연이 소중하다’고 하잖아요. 그 말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죠. 무엇보다 함께 참여했던 분들이 식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잘 이해하셔서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권수정 씨는 자신이 깨달은 자연의 소중함을 가까운 곳부터 알려나갔습니다. 거주지인 서울 응봉동에서 마을공동체 ‘중장년 리셋 타임’ 사업을 시작한 것이죠. 지역 학생, 주민을 대상으로 숲 체험, 가드닝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공동 정원 가꾸기 봉사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처럼 경단녀를 벗어나 원예 전문가로 거듭난 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차차 관련 분야 인연이 쌓이며 권수정 씨에겐 ‘원예사회적기업’이라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저 같은 경단녀 주부들이 그동안 공부해온 것들을 각자가 아닌 사회적 기업을 통해 함께 펼치면 좋겠더라고요. 마침 우연히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점프업5060’ 온라인 설명회를 접하게 됐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우리가 꿈꾸는 일의 기반을 다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막 50세가 됐던 권수정 씨는 그렇게 ‘점프업5060’의 막내세대로 합류했습니다. ‘싹을 틔우다’는 뜻을 담아 ‘티움’이라는 이름을 짓고, 원예사회적기업을 위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까’라는 말처럼, 처음부터 모든 목표를 이뤄내기엔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결국 아쉽게도 최종 목표였던 사업화 지원금까지 해내지는 못했지만 이번 프로젝트로 배운 점이 많았다는 권수정 씨입니다.
“원예사회적기업이라는 그럴싸한 꿈을 갖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던 것이죠. 사업적으로 무언가를 제안하고 시행하려면 문서작업이나 프레젠테이션 능력도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한편으론 추진력이 미흡했던 게 아닌가 생각도 해요. 크라우드펀딩으로 사업을 확장할 기회도 있었는데, 실상 놓쳐버렸거든요. 그래도 ‘점프업5060’을 통해 또래의 (예비)창업가들을 만나 소통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기부여도 됐고,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어요. 결과는 조금 아쉽지만, 모든 것을 귀한 경험으로 생각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려 합니다.”
프로젝트 이후 권수정 씨는 ‘위치맘’이라는 작은 카페를 열었습니다. 단순히 수익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창업을 한 것은 아닙니다. 뭐든 돕는 일을 좋아하는 권수정 씨는 함께해온 원예 전문가들을 기관이나 강의 등에 연결해주는 메신저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이들을 위한 매개 공간으로써 카페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꿈도 열심히 키워가는 중입니다.
“지금처럼 꾸준히 봉사와 원예를 하며 언젠가는 실버타운을 짓고 싶습니다. 이런 꿈을 이야기하면 다들 사회복지사 따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저는 원예치유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 영국에서는 원예치유가 처방전에 쓰일 정도로 효능을 인정하는 분위기죠. 그렇게 원예가 어르신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점프업5060’에서의 시행착오를 밑거름 삼아 꿈을 위해 한발 한발 다가가겠습니다.”
창업을 꿈꾸는 5060에게
“코로나19 당시 다른 분야와 다르게 원예 쪽은 수요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거리두기로 인한 답답한 일상에 초록 식물이 활력을 준 덕분이죠.
또 ‘힐링’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 원예가 주는 치유 효과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원예는 창업 아이템으로도 전망 있다고 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먼저 지역 숲을 찾아 관련 프로그램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일본의 베이비부머 세대(1947~49년생)인 단카이 세대가 모두 75세를 넘기는 시점은 2025년. 이때 일본의 고령화율은 3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보장 비용 증가, 간호 인력 부족 등으로 일본 정부는 의료비를 낮추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민 스스로 관리해 간호받는 시점을 최대한 늦추도록 예방하자며 ‘프레일’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단카이 세대가 75세를 넘는다는 건 단순히 일본 인구 중 고령자가 많아진다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75세 이상을 후기 고령자로 분류하는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신체와 정신 활동이 급격히 저하돼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고 요양이 필요한 상태에 다다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곧 사회보장 비용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진다. 2022년 일본의 의료, 간호, 연금과 같은 사회보장 관련 비용은 36조 2000억 엔. 우리나라 돈으로 약 375조 4000억 원이다. 2022년 전체 예산의 30%를 차지한다.
게다가 일본은 의사, 간호사 등 의료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는 2017년 기준 평균 3.5명인데, 일본은 2.4명 수준이다. 후생노동성은 2040년 일본에 필요한 보건의료 분야 종사자 수는 1070만 명이지만, 실제 인력은 974만 명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의료 서비스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고령자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의료 인력은 줄어들어 의료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의료 비용 줄이고 인력 보충하고
후생노동성은 정책적으로 의료 비용 줄이기와 부족한 의료 인력 보충, 국민 개인의 관리로 간호 필요 시점 늦추기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올해 4월부터는 ‘리필 처방전’ 제도를 시행했다. 예를 들어 당뇨가 있는 고령자라면 같은 약을 오랜 기간 복용해야 하는데, 전문의약품이라는 이유로 매번 의사의 처방전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야 했다. 후생노동성은 단순히 처방전만 받아가는 의료비 지출을 줄여야 한다며 2014년부터 해당 제도의 도입을 강조한 바 있다.
의료 인력 확충에도 집중하고 있다. 부족한 간호 인력은 영주권 또는 정주자 비자, 유학생 비자, 기술 실습생 비자, 특정 비자 1호를 소지한 외국인을 간호보조자로 채용해 보충하고 있다. 앞으로는 간호사·약사 등이 의사의 업무 일부를 분담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의사의 업무를 분담하는 ‘태스크 셰어’와 업무 중 일부를 간호사에게 일임하는 ‘태스크 시프트’ 등의 의료 개혁 부분을 2022년 후생노동백서에 반영할 계획이다. 현재 일본 의료법은 의사, 간호사, 약사의 업무 범위를 상세하게 규정해두어 업무 공유가 불가능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약사가 약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할 수 있고, 영국과 스웨덴은 어떤 조건에서 간호사가 약을 처방할 수도 있다”면서 의료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직종 간 다툼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사회는 간호사 등이 의사의 일부 업무를 공유해야 한다 하더라도 의사의 관리 아래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셀프 관리로 간호 늦추는 ‘프레일’
후생노동성은 간호의 대상이 되기 직전, 관리를 통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관리 대상을 ‘프레일’(フレイル)이라 정의하고 ‘개호(요양 혹은 간호) 예방’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프레일은 영어 ‘Frail’로 ‘노쇠한, 허약한’이라는 뜻이다. ① 체중 감소(6개월간 2~3kg 이상 감소) ② 악력(근력) 저하 ③ 피로감(최근 2주간 어쩔 수 없이 지치는 느낌) ④ 보행 속도 ⑤ 신체 활동 등의 평가 기준에 따라 3개 이상 항목에 해당하면 프레일이라고 본다. 일본 정부는 고령자의 10%인 약 360만 명이 프레일이라고 추정한다.
정부는 프레일 고령자를 관리함으로써 ‘개호 예방’ 효과를 얻으려 한다. 개호 예방이란 간호를 받아야 하는 상태를 가능한 한 늦추는 일이다. 후생노동성은 “단순히 노인의 운동 기능이나 영양 상태 개선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심신 기능 개선이나 환경 조정을 통해 개별 노인의 생활 기능이나 사회 참여를 높여 생활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고령 인구의 건강을 관리하는 프레일 산업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적절한 영양 섭취와 근력 운동이 강조되면서 식품 시장에서는 단백질 관련 제품이 쏟아지고 있으며, 고령자 전용 헬스장, 찾아가는 이동 트럭 슈퍼마켓 등의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층간소음을 대하는 자세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마음을 좀 바꿔보았거든요. 윗집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에 짜증만 낼 게 아니라 차라리 그 시간에 도서관 가서 시원한 바람 쐬며 밀린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퇴근하고 나서 집에서 좀 쉴라치면 매번 위층 아이들 콩콩콩 쿵쿵쿵 뛰어다니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는 청취자 사연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옵니다. 분노가 폭발해 인터폰을 누르고 쳐들어갈까 별 생각을 다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아, 내가 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답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놨던 독서 목록도 챙기고 이참에 은퇴 이후 설계도 할 겸 주택관리사와 노무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사연의 주인공은 아주 밝은 목소리로, 마음을 탁 달리 먹었더니 퇴근하는 발걸음이 전처럼 무겁지 않고 한결 가벼워졌다고 고백합니다.
화살의 방향과 성격 유형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나 고통을 당할 때 이웃집을 탓하고 남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눈앞에 닥친 불행과 갈등을 오로지 자신을 탓하며 자책하고 절망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화살의 방향을 외부로 겨눌수록 점점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에너지가 자신을 둘러싸고 사방팔방으로 퍼집니다. 비난과 원망과 책임 전가라는 독화살을 누구에게 쏠지 그 궁리로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온통 뾰족한 가시를 두른 사람에게 누가 가까이 가서 손을 내밀까요. 그 화살은 자기 자신에게 향할 때도 마찬가지로 치명적입니다. 화살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생각해보면서 나는 어떤 유형인지 살펴볼까요.
‘남 탓 형’과 ‘내 탓 형’ 인간
자신에게 어떤 사건이나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남 탓을 하는 유형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일이 꼬인 것은 그 사람 탓이야’, ‘내가 마마보이가 된 것은 순전히 우리 엄마 탓이지’ 이런 식으로 아내는 남편을, 자식은 부모를 탓합니다. 탓할 사람이 없으면 친구를 탓하거나, 직장 상사를 탓하거나, 아니면 길에서 부딪혔거나 지하철에서 만났던 사람조차 탓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 자식, 배우자 등 가까운 사람부터 탓하기 쉽습니다. 이렇게 남을 탓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는 경우를 ‘남 탓 형’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매사에 남 탓을 하는 사람은 정작 자기는 멀쩡합니다.
“나 걔랑 헤어졌어. 내가 찼지. 애가 좀 사이코야. 베풀 줄도 모르고. 수십 번 만나도 밥은커녕 커피 한잔을 안 사더라고, 인색하기 그지없어. 아 시원하다.”
연애가 깨졌어도 상대방 때문에 그렇다고 판단을 내립니다. 자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굳게 믿는 탓에 스트레스도 별로 받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기분이지 남 사정이나 생각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정신의학에서 인간이 방어기제로 흔히 사용하는 ‘투사’(Projection)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문제의 원인이 자기 외부에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매사 남 탓을 하면 불안과 죄책감에서 잠시나마 피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가 ‘내 탓 형’입니다. 어떤 일이 터질 때마다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겁니다. 모든 일을 무조건 내 탓으로 돌리는 ‘내재화’(Introjection)라는 방어기제도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화살의 방향을 떠올리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겉으로는 착하고 겸손해 보일지 모르지만, 어떤 사건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자신을 꾸짖고 벌주고 심판하고 자책하고 자학하는 유형입니다. 분노나 불안을 억눌러놓아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겁’과 ‘오만’ 사이
남 탓을 하는 경우는 한마디로 비겁한 병에 걸린 분들입니다. 자기는 쏙 빼고 다른 사람을 들들 볶는 사람이니까요. 거꾸로 내 탓 형은 오만한 병에 걸린 경우입니다. 자기 자신을 달달 볶는 사람입니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그때 그렇게 행동했으면 안 되는데’, ‘거기서는 이 말을 했어야 했는데’ 이러면서 자꾸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고 자책하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유형입니다. 두 유형 모두 부족하고 실수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게 아니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완강하게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자신이 없을 때 그렇습니다. 어떤 선택이나 판단에서 책임을 자신이 지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기 때문에 비겁합니다.
어떤 유형이 더 위험할까요?
내 탓 형이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자신을 완벽하고 빈틈없고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라 규정합니다. 거기에서 바로 오판이 시작되고 ‘오만(傲慢) 병’이 비롯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높은 기대치에 도달했던 몇몇 순간의 모습만 자기 본모습이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착각과 불행이 쌍두마차로 자신을 끌고 가기 시작합니다. 그로 인해 두 가지 유형 모두 상처를 입고 불행한 상황에 놓이는데, 더 심각한 것은 남 탓을 하는 것보다 내 탓을 하는 경우입니다.
남 탓도 종종 해야 합니다!
하지만 남 탓을 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때가 의외로 참 많습니다. 살다 보면 내가 원인이 아닌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인과가 분명해 보이는 문제는 대안을 찾아 자기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는 문제까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하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처방전처럼 헛짓거리를 하게 됩니다. 최소한 남 탓이라도 하면 삶을 놓아버리는 극단적 선택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그럽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남 탓은 필수라고요. 남 탓을 열심히 해야 자신이 정신적으로 안정된다고 말입니다. 고칠 수 없는 문제에 자기 탓을 하면 자존감은 추락하고 마음은 갈수록 조급해져 불안과 우울을 달고 살 수 있으니까요.
남 탓을 하기는 쉽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탓은 위험합니다. 자신을 탓하는 병에 걸리면 그 오만함이 어떻게 펼쳐지냐면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 허물에 겉으로는 관대한 척하고 다 품고 배려하는 척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으로는 무시하고 경멸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세운 높은 기대 수준을 타인에게도 부지불식간에 요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오만함은 위험천만한 부분입니다. 당신은 어느 쪽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십니까?
탓탓탓 말고 타타타!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요? 이 노래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음음음 어 허허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후략)
‘꽃순이를 아시나요’, ‘은하철도 999’ 주제가를 불렀던 김국환이 1992년 세상에 선보인 노래, ‘타타타’. 마지막에 ‘어허허허허허!’ 웃음소리가 백미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타타타’는 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뜻합니다. 변하지 않는 궁극적인 진리라고도 하며,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이라고 합니다. 걱정이나 고통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없는 걱정도 만들어서 일평생을 살아가는 게 우리입니다. 이 세상을 ‘탓탓탓’ 하지 말고 ‘타타타’ 하면서 살아 볼까요. 편 가르고 고집과 만용을 부리며 대립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삶으로 남은 인생 아름답게 수놓아볼까요. 그럴 때 ‘탓 병’이 치유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더위와 습기 탓하지 말고 허허허 웃으며 몸도 맘도 건강하시길 빕니다. 마음 미장공 여덟 번째 이야기 마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