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먹고살기도 빡빡한 시대에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게 유난스럽게 느껴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세상은 유난스러운 사람들이 바꾼다고 생각해요.”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날, 유난스러운 공동체를 만든 양소희(28) 씨를 만났다. 차분하고 반짝거리는 그의 눈동자 속에서 우리 사회의 어른을 보았다.
‘유난무브먼트’는 다정하고 유능한 어른을 꿈꾸는공동체다. 유난스러운 흐름(Movement)이라는 뜻이면서 ‘유난’(YOUNAN)에는 ‘영 어덜트 네트워크’(Young Adult Network)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개인을 넘어서는 흐름
소희 씨는 폭우가 내리던 날 수색 중 사망한 해병대 일병 사건,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등 2030세대가 죽거나 다치는 뉴스를 보면서 제도나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중심을 잡아주는 ‘어른’이 없어서라는 생각을 했다.
“어른, 그러니까 사람이라는 사회 안전망이 없어서 공백이 생긴다고 느꼈어요. 그렇다면 누굴 원망하거나 탓하지 말고 우리가 스스로를 어른으로 세우자 제안하고 싶었어요. 어른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럴 마음이 있고, 기꺼이 준비됐고, 해보고 싶은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싶었죠.”
‘좋은 어른’이 그에게는 큰 화두였기에 블로그 ‘소히월드’에 생각을 쌓아가는 중이었다. 소희 씨의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블로그 이웃이 되고, 생각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블로그 이웃은 키워드로 연결되는 관계거든요.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발전하면서 타인과의 공존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분들이 많더라고요.”
구독자 채널을 키워 개인의 파워를 키우는 게 요즘 대세라지만, 소희 씨는 개인을 넘어서는 ‘흐름’을 만들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모여보자는 공지를 올리자마자 이틀 만에 40여 명이 모였다. 유난무브먼트의 시작이다.
좋은 어른, 도착점 아닌 지향점
소희 씨는 ‘각자도생이 요즘 청년의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청년들이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책임이라는 게 거창하고 대단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내 손 닿는 곳까지 챙기는 것도 책임”이라고 생각하기에, 각자도생하지 않고 책임지는 마음을 복구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메일로 발송하는 정기 뉴스레터인 ‘유난레터’를 발행하면서 구독 신청란에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의 기준’을 물었다. 응답을 모아보니 1위가 타인, 2위가 책임, 3위가 자신, 4위가 사랑이었다. 1위가 타인이라는 점이 의외라고 느꼈다고.
“유난무브먼트가 좋은 어른들의 커뮤니티가 아니라 좋은 어른을 ‘지향하는’ 공동체인 이유는 좋은 어른이 도착점이 아니라 계속 유지되는 상태라고 생각해서예요. 어른 됨은 결국 성숙한 시민성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다정함과 유능함을 추구하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정의했어요.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죠. 여기에 ‘기꺼이 괴로워할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의 기준으로 덧붙이고 싶어요. 타협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순간에 어떤 괴로움이 닥칠지 알면서도 괴로움을 회피하지 않는 게 어른다운 태도 같습니다.”
다정함이 주변을 돌보고 챙길 수 있는 마음의 에너지라고 한다면, 유능함은 변화나 효능감을 만들어내는 책임이다. 소희 씨는 다정한 마음과 유능한 책임을 가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사회에 흐름을 만드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비영리 법인으로서 활동을 위한 펀딩 모금을 진행하고 있고, 올해 상반기 중에는 멤버십을 시작할 예정이다. ‘어른다움을 개발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드는 멤버십이다. 올해 말에는 스웨덴의 시민정치 축제 ‘알메달렌’처럼 ‘어른이 많아진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상상하고 ‘나의 어른 됨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어른 컨퍼런스를 열 계획이다.
소희 씨는 유난무브먼트가 어른 됨을 훈련하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물리적으로 나이는 먹지만, 그에 맞는 성숙함을 가지려면 충분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못난 어른이 99명 있다 해도 단 1명의 좋은 어른이 있다면 최악으로 무너지지 않는 안전망 역할을 한다고 믿어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이렇게나 다양한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연결돼 있지 않아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유난무브먼트가 이들을 잇는 공동체가 되어 나를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은 사회를 같이 그릴 수 있기를 꿈꿔봅니다!”
노년에 접어들면 사회의 어른으로 기능하려는 책임감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나이만 먹었다고 다 존경받는 어른이 될 순 없기에, 부담은 커지고 마음은 위축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른’의 책임을 노년에 한정하지 않는다. 청년·장년·노년 등 우리 사회 성인들이 세대 구분 없이 모두 하나의 어른으로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서로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노년의 책임은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살며 사회의 짐이 되지 않는 것. 그는 이러한 노인의 모습이 고령사회 존경받는 어른의 롤모델이 될 수 있으리라 예견한다.
본지는 우리 시대 어른의 표상을 논하고, 세대 간 존경심을 엿보기 위해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2030·5060세대(500명)의 약 80%, 즉 대다수가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반응했다. 이는 10년 전 본지가 진행한 동명의 조사 결과보다 10%p 이상 높아진 수치로, 세대 간 갈등은 더욱 고조된 셈이다. 평소 노년의 삶을 연구하고, 세대 간 교류를 고민해온 정순둘 교수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을 덧붙였다.
“세대 간 갈등의 심각성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어떤 ‘경각심’을 드러낸 결과로 보여요. 갈등이라는 게 표면적으로 구체적인 뭔가가 나타나서 문제되기도 하지만, 어떤 징후를 갖고도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가령 노인을 향한 혐오 표현이 계속 생겨나는데, 이제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자제하고 주의해야 하지 않느냐는 경각심인 거죠. 그런 측면에서도 해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각심 높이는 갈등, 세대와 시대 이해해야
앞서 언급한 ‘노인 혐오’처럼 나이 든 어른을 공경하고 존경하던 문화는 사라져가고 있다. 게다가 ‘노시니어존’(노인 출입금지 구역)까지 생겨나며 자꾸만 세대를 구분 짓고 배척하는 분위기다. 이에 정 교수는 먼저 세대 갈등을 다루고 이해하려면 ‘생애주기’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그 세대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고려하는 과정이다. 한때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라는 노래가 유행했다. 그러나 자신의 젊은 시절 경험만을 잣대로 삼았다간 자칫 시대착오적인 견해를 드러낼 수 있다.
“5060세대도 20~30대를 살아왔지만, 현재 2030세대가 사는 세상은 당시와 사회적 기반과 환경이 아예 달라요. 1970년대 20대와 2020년대 20대를 비교할 순 없죠. 기성세대의 청년기와 다르게 요즘 청년들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자신의 부모 세대만큼 풍족한 일자리 기회나 좋은 집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들은 오늘날 5060세대보다 더 불행한 노후를 보낼지도 모르죠. 그런 데서 오는 좌절감, 무력감을 기성세대가 이해했으면 해요. 역으로 현재의 5060세대는 고성장 시대 주역으로 살며 많은 것을 이뤘고 경제력도 있지만, 그들의 부모처럼 봉양을 받긴 어려운 처지잖아요. 게다가 유례없는 긴 노후를 준비해야 하죠. 그런 점에서는 2030세대 또한 기성세대가 느끼는 고충을 헤아려주면 좋겠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이 쏟아지고, 나날이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요즘. 기성세대는 이러한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체득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2030세대에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년 세대 또한 사회 변화와 생애주기 간 속도가 어긋나는 괴리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청년들의 라이프사이클은 느려지는 상황입니다. 과거 20~30대라면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겠지만, 요즘은 그 시점이 점점 뒤로 가고 있잖아요. 그런데 중장년들은 자신의 생애주기에 맞춰 ‘왜 아직도 취직을 못 했냐’, ‘나이가 몇인데 여태 결혼을 안 하냐’며 2030세대를 재촉하고 나무라곤 하죠. 즉 현재보다 빠른 라이프사이클을 살아왔지만 변화에 대한 적응은 느린 기성세대와, 변화에 대한 적응은 빠르지만 과거보다 느린 라이프사이클을 사는 젊은 세대 모두 나름의 고충이 있는 거예요. 서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데서 오는 관점과 가치관의 차이가 결국 세대 간 차이와 갈등을 일으키는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5060세대, 고령사회 새로운 롤모델이 되다
현재의 5060세대가 겪는 고충은 또 있다. 그들이 본보기로 삼고 따라갈 롤모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윗세대보다 노후가 훨씬 늘어난 데다, 그로 인해 일자리, 여가, 관계 등 다방면에서 삶의 양식과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30세대가 5060세대에게 조언을 구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듯, 그들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앞서 말한 본지 조사에서 ‘어른의 부재가 가져올 악영향’을 묻자, 적지 않은 이들이 ‘다음 세대 어른의 부재’(25.8%, 복수 응답)를 꼽았다. 정 교수 또한 같은 맥락에서 우려를 내비쳤다.
“존경받는 어른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롤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이 아닐까 해요. 그러한 존재가 없다면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다거나,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질 거예요. 그런 상황이 가장 염려스럽습니다. 현재 5060세대는 고령사회에서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해나가야 한다고 봐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고 하면 어쩐지 부담과 책임감이 밀려온다. 그런 이들에게 정 교수는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냄으로써 어른의 책임을 다할 수 있고, 그것으로도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노년, 즉 스스로 액티브 에이징(Ative Aging)을 실천하시길 권합니다. 건강한 존재로 사회에 짐이 되지 않는 것, 그게 노년의 역할이자 책임일 수 있죠. 긴 여생을 아무런 역할 없이 살아간다는 건 당사자도 힘들지만, 사회의 짐이 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 역할을 갖기 위해선 무엇보다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경제력이 생기는 장점도 있지만 사회활동을 해야 여러 세대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소외나 고립도 예방한다고 봐요. 기왕이면 노년에는 그 일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공헌 활동이면 더 좋고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사회적으로도 평생 일자리와 고령 인력 활용이 이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현재 고령사회연령통합연구소장으로도 활동 중인 정 교수는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연령통합’의 개념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연령통합은 곧 연령으로 인한 장벽을 없애는 거예요. 가령 65세가 되면 은퇴해야 한다, 고령자는 고용이 어렵다, 다 ‘나이’가 기준이잖아요. 이런 부분을 개선하려면 결국 연령을 기준으로 삼던 제도들의 개혁이 필요해요. 이렇게 연령통합은 연령의 유연성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연령의 다양성 측면도 있어요. 지금은 세대가 너무 끼리끼리 뭉치잖아요. 카페나 식당을 가도 ‘여긴 젊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 분위기면 들어서길 민망해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세대가 분리되기보다는 함께 섞여 지냈으면 하는 거죠. 제도적으로나마 세대 교류 공간을 확충해갈 수 있다고 봐요. 요즘은 아파트 몇 세대 기준으로 경로당을 짓잖아요. 그런 공간을 노인만이 아닌 아이들도 놀러 가고 청년들도 차 한잔하러 가는 동네 사랑방 같은 장소로 만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보면 세대 간 갈등을 완화하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생각해요.”
나이가 주는 ‘노인’ 타이틀, 괘념치 말아야
정 교수는 지난해부터 제33대 한국노년학회 회장과 국민통합위원회 ‘노년의 역할이 살아 있는 사회’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작년 10월 발족한 특별위원회는 ‘노인의 역할과 세대 간 존중이 살아 있는 사회’를 목표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나가는 중이다. 여기에서도 그가 그동안 연구해온 연령통합의 개념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렇듯 여러 역할을 통해 정 교수가 우리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궁극적으로는 65세라는 나이의 틀, 그로 인해 노인이 된다는 두려움이 사라졌으면 해요. 나이가 들고 ‘어른’으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마찬가지예요. 어른은 통상 청년, 장년, 중년, 노년 모두를 아우르는 거잖아요. 나이를 기준으로 누구는 젊은이, 누구는 늙은이 나누지 말고, 그저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바라봤으면 해요. 개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그렇게 바뀌어야겠죠. 그렇게 나이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연령통합 사회’라고 봅니다.”
정 교수 또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연령통합 사회를 희망하고 있다. 끝으로 오랜 세월 노년의 삶을 연구해온 그가 자신의 노후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지 물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 나이 제한이 있으니, 65세가 되면 저도 은퇴하겠죠. 제2의 인생에서 선택은 두 가지예요.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계속하는 것, 또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이쪽 일을 계속한다면 경험과 지식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겠지만, 그러다 꼰대가 될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렇게 되면 노후의 좋은 모델은 아닌 듯해요.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보려고요. 한편으론 저 같은 노후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교육제도도 열려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평생교육이 있지만, 이 또한 세대를 분리한 교육이잖아요. 가령 어떤 분은 50세 넘어도 반도체학과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런 접근이 필요해요. 물론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죠. 나이를 떠나 더 자유롭게 대학에서 제2의 전공도 공부하면서 제2의 인생을 꾸려보면 좋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고령화에 따라 호스피스·연명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부는 치매, 심부전증, 신부전증 등 대상 질환을 늘리고 호스피스 전문 기관도 2028년까지 2배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지난 2일 밝힌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24~2028년)’은 ‘누구나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보장받는 사회’를 비전으로 삼고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결정의 △이용자 선택권 보장 확대 △제도 이행의 기반 강화 △제도 인식 개선 및 확산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말기 질환을 가진 환자와 가족에 대해 완치적 목적의 치료가 아닌 생애 말기 삶의 질에 목적을 둔 총체적 치료와 돌봄을 의미한다.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은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결정을 말한다.
노인 인구 증가 추세 및 생애 말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호스피스 서비스 확대 및 연명의료결정제도 확산에 대한 국민의 요구 역시 증대되고 있다. 이에 따른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은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라 호스피스와 완화 의료 및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의 제도적 확립을 위해 5년마다 수립하고 있다.
우선 호스피스 서비스 수요 등을 반영해 대상 질환의 단계적 확대를 추진한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13개) 및 학계 의견 등을 고려해 현행 5개 대상 질환(암, 후천성 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만성 간경화, 만성 호흡부전)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치매, 심부전증, 신부전증 등을 추가할 전망이다.
또한 연명의료결정 대상을 합리화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관리를 강화한다. 우선, 의료진과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소통을 조기에 시작할 수 있도록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시기를 확대한다. 지금은 질환의 말기 진단을 받은 이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으나, 말기 이전에도 작성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할 예정이다.
연명의료중단 이행 시기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한다. 현행 연명의료 중단의 이행은 임종기로 국한되어 있어,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에 제한점이 되고 있다. 환자의 의사를 알 수 없고 결정할 수 있는 가족이 없는 경우,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불가했으나,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할 예정이다. 아울러,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미설치 기관도 연명의료 정보 조회가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연명의료 중단 등 제도 이행의 연속성을 제고할 계획이다.
호스피스·연명의료 인프라도 대폭 늘린다. 지난해 기준 188개소인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2028년까지 360개소로 확대한다. 입원형 기관은 15개소를 증가한 109개소, 자문형 기관은 116개소를 늘어난 154개소로 확대할 계획이다. 가정형 기관의 경우 5년 내 두 배 늘려 80개소를 확충한다. 연명의료 중단 가능 의료기관에 설치된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지난해 430개소에서 5년 뒤 650개소로 확대한다. 종합병원은 전체의 75%, 요양병원은 전체의 20%까지 위원회 설치를 확대할 방침이다.
아울러 서비스 질을 향상하기 위해 현재 제도 중심의 호스피스 전문기관 평가 지표를 의료진·환자·보호자 만족도 등 이용자 중심의 질 평가 지표를 포함해 개선한다. 호스피스 전문기관의 인력 기준을 기존 ‘병상수’에서 ‘환자수’ 기준으로 변경할 계획이다.
호스피스·연명의료중단 제도에 대한 대국민 인식 개선에도 나선다. 노인뿐만 아니라 학생, 청년, 중장년을 대상으로 연령별 교육 과정을 개설해 '어떻게 삶을 마감할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제도를 이용하는 환자의 가족을 돌볼 시스템도 준비 중이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존엄하고 편안하게 생애를 마무리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라며, “누구나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보장받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이번 종합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이견이 없었다.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어른은 누구일지 고민했던 편집회의에서 기자들은 나태주 시인을 꼽았다. 만장일치였다. 대중도 마찬가지다. MZ세대를 포함한 모든 세대에게 그는 인기를 넘어 추앙에 가까운 현상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그는 이제 막 낯익어진 마이너한 시인일 뿐이라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팬덤 같은 것이죠. 날씨도 팬덤이 되고 계절도 팬덤이 돼요. 눈과 비가 고르지 않게 한꺼번에 내리는 것처럼 사람들이 몰리는 것뿐이죠. 낯익고 익숙한 것을 찾는 거예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얘기다. 최근 출간된 그의 신간 ‘좋아하기 때문에’는 발매 2주 만에 1만 부나 팔렸다. 요즘같이 책을 멀리하는 시대에 꿈같은 이야기다. 사람들이 단지 친숙함에 습관처럼 살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그는 책을 통해 “시인은 세상 사람들의 감정을 돌보는 서비스맨”이라고 말했는데, 아마 그것이 통했던 것 같다. 마치 ‘풀꽃’의 한 구절처럼 나를 자세히 그리고 오래 봐주길 기대했기 때문일까. 책을 내놓을수록 20~30대 사이에서 강한 소구력을 발휘했다. 그 소감의 물결에선 희망과 위로, 치유 같은 단어들이 떠다녔다.
타인 감수성과 꼰대
이런 공감대 속에는 어른다움이 있다. 젊은 세대가 ‘꼰대’에 저항하는 이유를 그는 어른의 이해와 변화가 없어서라고 말했다. 그는 이해의 기준으로 ‘타인인지 감수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미투 현상’이 사회를 뒤흔들 때 익숙해진 ‘성인지 감수성’에서 온 말이다. 이제 세상은 내 입장만 고집하며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주변에선 ‘타인 감수성’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니까, 시인은 더 좋은 표현이라며 그 말을 되뇌었다.
“세상은 나 하나와 나머지의 너로 나뉘어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요. 나를 빼면 모두 ‘너’이기 때문에, 너를 감지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자꾸 나 때만 얘기하려 들고, 네 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네 때는 그렇구나, 그거 참 힘들겠다 하고 관심 갖고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한 거죠.”
그는 책 속에서도 꼰대를 상징하는 신조어 ‘라떼’를 지적했다. 어른과 젊은이 쌍방이 조금씩 물러서서 상대를 이해하기를 기대했다. 어른 쪽에서 권위를 내세우며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젊은이도 변화할 것이라고 믿었다.
소위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만큼 다양한 약속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지만, 가장 즐거운 일정이 있다. 젊은 세대와 만나는 강연회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아이들을 만나서 어려운 점, 괴로운 점, 그늘진 점을 봐요. 겉으로는 멀쩡하고 좋아 보이는 청춘들도 소통을 해보면 문제가 있어요. 결혼이 싫은 여성, 학교가 힘든 선생님, 취업이 힘든 청년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해주려 노력하고 있죠.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을 나무라지 않고, 기다려주고, 도움 주는 말을 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낳아주고 길러주는 것만으로 부모 노릇이 끝났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져주고,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해요. 어른이 됐다는 건 졌다는 것이니까요.”
젊은 세대가 갖는 아픔에도 주목했다. 학자금 대출 등으로 ‘젊은 빚쟁이’가 되고, 구직난에 직장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지만, 망가진 경력은 쉽게 되돌릴 수 없어 ‘손닿는 직장’을 선택하기도 어려운 고충에 대해서다. 그는 “가서 막일이라도 해라”가 어른 눈에는 맞는 말 같지만, 쉽게 하지 못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심정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달라진 세상에 대해 어른들이 더 주목해주길, 그리고 스스로도 변화하길 당부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유교 사회도 농본주의 사회도 아니에요. 편리한 것, 새것을 좇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이미 젊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데 무조건 어른을 따르라 요구할 수 없어요. 또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떠도는 (디지털) 유목 사회가 됐어요. 내가 만든 우유 한잔도 휴대폰을 뒤져보지 않으면 팔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모두가 노마드처럼 살고 있는데 과거의 잣대를 들이밀 수 없죠.”
바뀐 세상에 맞춰 그 스스로도 변화를 택했다. 그는 “나 역시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한창 일했던 시기보다 정년퇴직 후 내 생활은 더 많이 바뀌었죠”라고 말했다.
모두 비워내야 좋은 어른
최근에는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고민하는 어른이 많아졌다. 인문학 강좌의 주제로도 인기가 많다. 세대 간 갈등이 부각되면서 스스로를 고민하는 기성세대가 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나태주 시인은 이러한 모습을 ‘굉장히 좋은 상태’라고 이야기했다.
“젊은 시절은 스스로를 채워야 하는 기간이에요. 이기적인 삶이 되죠. 가지고 싶은 것도 많아요. 돈도 명예도 지위도 얻으려면 채우는 데 집중해야 해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달라요. 이타적인 삶의 태도를 취해야 해요. 공부도 마찬가지예요. 젊을 때는 남을 이기기 위한 공부를 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상 타는 것도 돈 버는 것도 아닌 내 내면의 기쁨을 위해서 공부하는 겁니다. 철이 드는 과정이죠. 이것을 위해서는 젊을 때 스스로를 꽉 채워놓을 필요도 있어요.”
그는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안정을 통정성에 빗대 이야기했다. 살아온 삶 전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면 스스로의 잘못도 인정할 수 있게 돼요. ‘그 대목은 참 미안하게 됐다. 어쩔 수 없었고, 지금 같으면 안 할 텐데 그때는 내가 그랬다’고요. 어른이라면 자신을 속이거나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고, 자기 잘못까지 인정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해요. 우리 사회나 국가 운영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젊을 때 맘껏 채우고 나면 이후에는 비우는 과정이 찾아온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생각을 해야 돼요. 어떻게 비우고 갈 것인지. 때려 부숴서 비우고 갈까, 곱게 정리해서 도움이 되게 할까 말이죠. 지금 운영하는 풀꽃문학관도 나를 비우는 작업이에요. 그간 모아놓은 것들을 쓰레기가 아닌 보물이 되도록 정리하고 있어요. 이것들을 욕심내 집에 데려가는 순간 쓰레기가 될 거예요.”
그렇게 잘 비우고 간 인물 중 하나로 나태주 시인은 이어령 선생을 꼽았다. 청년 시절 누구보다 채우기에 열중했고, 말년에는 자기를 완전히 비워놓은 ‘선비’ 같았다고 평가했다.
“옛날 교사 시절, 태풍이 휩쓸고 간 운동장에 떨어진 나뭇잎들을 모아다가 태운 적이 있어요. 아직 푸르름이 남아 있는. 그 잎들을 태우면 아주 역겨워요. 아직 살아갈 수 있는 여력이 남아 그런 것 같아요. 그에 반해 가을이 되어 탈색되고 말라 떨어진 낙엽들을 태우면 냄새가 고숩고, 가볍게 훨훨 타요. 모두 비워냈기 때문이고, 사람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다가오는 선거로 인해 정치적 성향이나 세대, 지역 사이의 갈등이 점점 커지는 요즘이다. 서로가 상대의 생채기를 기대하며 날선 감정을 말과 글에 담아 던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는 성숙한 어른이라면 그럴 이유가 없다고 단언한다.
“산 정상에 올라가면 사방팔방이 열려 동서남북이 다 보여요. 산꼭대기에 올라간 사람이 왜 동쪽 사람, 서쪽 사람, 남쪽 사람, 북쪽 사람에게 욕지거리를 내뱉나요. 다 동지고 친구죠. 인생의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죽일 사람도 살릴 사람도 없어요. 성인들처럼 훌륭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BTS와 이생망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도 고민이다. 앞길이 창창한 청년들은 가야 할 길이 멀어 고민이지만, 중년이 넘으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급해진다. 나태주 시인은 청년과 중년 혹은 노년은 접근이 달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청년들은 미래를 위해 10년짜리 계획이 필요하지만, 중년은 5년 계획을 세우고, 그 다음 5년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청년은 차근차근 꿈을 이뤄나갈 수 있도록 충분한 기간을 갖고 준비해야 하고, 중년은 꼭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요.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방식도 달라져요. 젊은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잘하는 일만 하려다가는 더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상처를 입어요. 좋아하는 일은 노력하면 잘할 수 있지만 잘하는 일이 좋아지긴 어렵죠. 길게 보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야 해요. 그래야 중도에 포기하거나 지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반대예요. 잘하는 일을 선택해야 남은 인생 동안 성공을 맛볼 수 있을 테니까요.”
늘 말과 글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그는 요즘 말에도 관심이 많다. 신조어와 노래 가사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BTS의 노랫말을 모티브로 한 노래산문집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야기 나누는 동안 요즘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젊은 엄마들이 쓰는 ‘육퇴’(육아퇴근)가 그랬고, ‘독박육아’나 ‘라떼’(꼰대를 상징하는 말)가 그랬다. 그는 ‘이생망’을 지목했다. ‘이번 생은 망했으니 돌이킬 수 없다’는 뜻으로, 젊은이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줄임말이다.
“요즘 말 중에 가장 마음 아픈 말이에요. 절망적이죠. 왜 망했다고 생각해요? 이번 인생이 망했으면 다음 인생도 망한 인생이 돼요. 좀 부족해도 모든 사람의 인생은 아름답고, 포기할 수 없어요. 모두 성과에 급급하니 나오는 말이에요. 사회적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써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청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줘요.”
그는 젊은 세대에 대한 당부를 이어갔다. 많은 장소에서 만난 힘들고 지친 청년들이 잊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청년들에게는 너무 큰 꿈에 매이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커진 꿈을 원해요. 마치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악마와 계약을 맺듯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바치려고 하죠. 하지만 집채만 한 큰 것을 바라다가 안 되면 부숴버리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어져요. 그래서 이룰 수 있는 꿈을 꾸고, 그것을 성취하는 아름다움을 느껴보길 권하고 싶어요.”
[창간 9주년 기념 특집 기획] 우리 시대, 어른을 찾아서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
불확실한 미래에 앞날을 의논하고 갈피를 잡아줄 어른은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우왕좌왕하던 청년기를 지나 어느덧 한 사회의 어른 위치에 놓인 5060세대. 나는 어떤 어른인지, 왜 어른이 돼야 하는지,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뒤따르는 시기다. 이에 본지는 월간지 창간 9주년을 맞아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전국 2030·5060세대 500명 △2024년 2월 29일~3월 4일 △표본 오차 ±4.4% △신뢰수준 95%)를 실시했다. 해당 결과와 2014년 진행된 동명의 조사 데이터를 비교·분석해 현대 사회 어른의 시대상과 세대 간 존경에 대한 인식을 조명해본다.
본지가 진행한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5060세대의 인식 개선과 노력을 오늘날 2030세대는 잘 알지 못하는 눈치다. ‘존경받는 어른이 되기 위한 노력’을 살피는 항목에서 5060세대는 ‘소통을 위한 젊은 층 이해’(41.6%)를 비롯해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노력’(25.2%), 도덕적 양심적 생활(14%) 등을 한다고 응답했으나, 2030세대는 ‘잘 모르겠다’(31.6%)고 반응했다. 그밖에 항목들에 대해서도 5060세대의 답변 비율보다는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였다. 그러는 한편 자신들이 5060세대가 됐을 때 현재의 기성세대와는 다를 것이라 말하는 2030세대는 2014년에 이어 70%를 웃돌았다.
박민선 사회복지학 박사(연령통합고령사회연구소)는 “결국 노력의 방식이 잘못됐다고 본다. 요즘 중장년들을 보면 나름 젊은 세대와의 소통이 중요함을 인지하고 그들과 가까워지려 애쓴다. 다만 사적인 이야기를 하려한다거나, 회식 자리를 만드는 등 요즘 2030세대가 부담스러워 하는 방법을 택해 오히려 벽을 쌓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세대갈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다보면, 직장 등에서 상당수 5060세대가 2030세대의 눈치를 보더라. 그런 분들은 역으로 청년들이 불편해하고 싫어할 까봐 아예 대화에 안 끼거나, 회식 자리에서 빠지는 식으로 거리를 둔다. 이렇게 아예 소통이 단절된 상태가 되다 보니 기성세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무슨 노력을 하는지, 2030세대 입장에서는 모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상단 도표에서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은 10년 사이 눈에 띄게 줄었다(43.3%→25.2%). 더불어 ‘존경스러운/존경스럽지 않은’ 5060세대의 모습을 묻는 질문에서도 경제력을 키워드로 한 항목의 비율은 현저히 줄어든 모습이다. 2014년만 해도 5060세대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보일 때 2030세대가 존경할 것’(24.9%), ‘경제적 능력을 갖지 못할 때 2030세대가 존경하지 않을 것’(31.4%)이라 여겼다. 10년이 흐른 현재, 각각의 항목 수치는 절반 이상 낮아졌다. 역으로 2030세대는 해당 수치가 상대적으로 미미하게 높아졌지만, 전체 중 최하위 항목인 만큼 절대적인 수치는 매우 낮은 상황이다. 2014년 결과에선 ‘경제력’ 관련 항목이 두 세대 간 의견 차가 가장 심했지만, 10년이 뒤 격차가 줄어든 점은 긍정적이다.
박민선 박사는 “과거에는 경제적인 능력도 하나의 권위와 존경의 덕목으로 인식되곤 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자식들에게 부담 안 지우면 어른 도리를 한 것이라 여기는 이도 많았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젊은 세대는 경제력만으론 존경심을 표하지는 않는다”며 “최근의 결과를 보면, 2030세대의 생각을 현재의 5060세대가 수용하고, 이해하려 노력해나가는 흐름으로 읽힌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10년 전과 비교한 조사 결과를 볼 때 양 세대 모두 소통의 필요성을 느끼고, 원한다는 측면에서 다행스럽고, 희망적이라고 본다. 다만 세대 간 존중과 소통을 위해서는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 자꾸 5060세대가 회피하는 방식을 취하다 보면 앞선 결과처럼 2030세대가 윗세대의 처지를 모르거나, 소통의 필요성을 못 느낄 수 있다. 너무 거리를 두기보다는 조금은 충돌하면서, 서로 부딪힐 기회를 만들어도 좋겠다. 세대를 나누지 않고 공통 관심사와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기반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창간 9주년 기념 특집 기획] 우리 시대, 어른을 찾아서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
불확실한 미래에 앞날을 의논하고 갈피를 잡아줄 어른은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우왕좌왕하던 청년기를 지나 어느덧 한 사회의 어른 위치에 놓인 5060세대. 나는 어떤 어른인지, 왜 어른이 돼야 하는지,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뒤따르는 시기다. 이에 본지는 월간지 창간 9주년을 맞아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전국 2030·5060세대 500명 △2024년 2월 29일~3월 4일 △표본 오차 ±4.4% △신뢰수준 95%)를 실시했다. 해당 결과와 2014년 진행된 동명의 조사 데이터를 비교·분석해 현대 사회 어른의 시대상과 세대 간 존경에 대한 인식을 조명해본다.
5060세대는 스스로 2030세대에게 존경받는다고 느낄까?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의 2014년 결과에서는 5060세대의 41.6%가 ‘존경한다’고 인정했는데, 2024년에는 24.4%만이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수치로는 17.2%p 하락했다. 더군다나 항목 중 ‘매우 존경한다’를 택한 5060세대는 아무도 없었다(0%).
한편 2024년 세부 조사 결과를 보면(2014년에는 5060세대만 진행) 2030세대 3명 중 1명 이상(37.6%)이 ‘5060세대를 존경한다’고 답했다. 특히 조사 대상 중 가장 젊은 세대인 20대는 절반가량(44.3%)이 같은 의견을 나타냈다. 즉, 요즘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생각보다는 스스로 ‘존경받지 못 한다’고 느끼는 셈이다. 이러한 결과를 미루어볼 때 현 시대의 5060세대가 다소 위축되고 의기소침한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가정에서도 나타났다. 부모세대는 40.6%가 ‘(자신을)자녀에게 존경받을 만한 어른’이라고 답했다. 자녀세대는 그보다 많은 66.8%가 ‘자신의 부모를 존경받을 만한 어른’으로 생각했다. 특히 ‘매우 그렇다’(매우 존경한다)를 택한 2030세대는 38%로 전체 중 비율이 가장 높았다. 같은 항목을 택한 5060세대는 4.1%로, 수치상 약 10배의 차이를 보였다.
박민선 사회복지학 박사(연령통합고령사회연구소)는 “생애주기로 볼 때 50~60대는 퇴직 등으로 사회적 역할이 전성기에 이르렀다가 내려오는 시점이다. 노화가 시작되고 체력도 떨어지며 건강 문제도 생긴다.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최근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한 ‘꼰대’의 이미지가 부각하며 사회적으로 저평가된 부분이 적지 않다. 반면 청년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위로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다. 물론 젊은 세대가 처한 어려움도 크지만, 계속되는 사회의 냉대 속에서 기성세대는 갈 곳을 잃고 의기소침해진 듯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조심스럽지만, 사회에서 위축된 경험이 가정으로도 이어졌다고 본다. 가령 요즘 유행하는 ‘금수저 흙수저’ 같은 이야기도 젊은 세대는 농담처럼 가볍게 넘기기도 하지만, 부모세대가 느끼는 무게는 다르다. 자신의 과오나 책임으로 여기기도 하며, 그러면서 가정에서도 위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창간 9주년 기념 특집 기획] 우리 시대, 어른을 찾아서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
불확실한 미래에 앞날을 의논하고 갈피를 잡아줄 어른은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우왕좌왕하던 청년기를 지나 어느덧 한 사회의 어른 위치에 놓인 5060세대. 나는 어떤 어른인지, 왜 어른이 돼야 하는지,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뒤따르는 시기다. 이에 본지는 월간지 창간 9주년을 맞아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전국 2030·5060세대 500명 △2024년 2월 29일~3월 4일 △표본 오차 ±4.4% △신뢰수준 95%)를 실시했다. 해당 결과와 2014년 진행된 동명의 조사 데이터를 비교·분석해 현대 사회 어른의 시대상과 세대 간 존경에 대한 인식을 조명해본다.
본지는 2014년 지면 창간 준비를 위해 동명의 설문조사(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2014년 조사 참여자의 과반수(68.2%)가 ‘세대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는데, 10년 후 조사에서도 대다수(79.8%)가 같은 의견을 냈다. 수치로는 11.6%p 상승했는데, 이러한 변화는 갈등 양상이 과거보다 더 고조됐음을 시사한다.
세대 갈등 요인에 대해서는 2014년 절반에 가까운(46.7%) 응답자가 ‘소통이나 세대 이해의 부족’을 꼽았는데, 최근 조사에서는 그 수치가 10%p가량 줄었다. 그럼에도 해당 항목은 여전히 2030세대가 말하는 갈등 요인 1위다.
반면 5060세대의 결과에서는 1위가 바뀌었다. 오늘날 기성세대의 42%는 ‘가치관이나 취향의 차이’가 세대 갈등을 일으킨다고 봤다. 10년 전(24.4%)과 비교해 수치 차이가 가장 큰 항목이기도 하다. 2030세대의 결과에서 이전과 비교해 두드러지는 부분은 ‘부나 기득권의 편중’을 택한 비율이다. 2014년에는 6%에 머물렀는데, 2024년 13.2%에 이르며 10년 전 수치의 2배를 웃돌았다. 역으로 5060세대는 7.4%에서 5.2%로 비율이 소폭 감소했다.
박민선 사회복지학 박사(연령통합고령사회연구소)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과거부터 X세대 등 새로운 세대는 계속 생겨나고, 이들과 기성세대 간 갈등은 늘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많은 부분이 온라인·디지털화되면서,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나 취향, 문화 등이 매우 다양해졌다”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에서, 기성세대는 과거와 너무나 다른 신세대의 등장에 이들의 문화를 따라가기 어려운 형편이다. 반면 문화의 중심에 있는 젊은 세대는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기에 기성세대가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소통이 안 된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라 말했다.
이어 “요즘 젊은 세대 문화의 한 갈래 중 ‘소비’에 대한 이슈도 적지 않다. 과거보다 부동산, 재테크 등에 대한 정보를 취하기 쉽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소비문화를 접하기 때문”이라며 “소비문화를 향유하려면 상대적으로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필요한데, 이는 기성세대 쪽에 편중됐다. 오늘날 청년들이 볼 때 과거 5060세대가 젊은 시절엔 부의 축적이나 일자리에 대한 기회가 더 많았던, 소위 기득권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2030세대는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그럼 심정이 조사 결과에 드러났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창간 9주년 기념 특집 기획] 우리 시대, 어른을 찾아서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
불확실한 미래에 앞날을 의논하고 갈피를 잡아줄 어른은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우왕좌왕하던 청년기를 지나 어느덧 한 사회의 어른 위치에 놓인 5060세대. 나는 어떤 어른인지, 왜 어른이 돼야 하는지,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뒤따르는 시기다. 이에 본지는 월간지 창간 9주년을 맞아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전국 2030·5060세대 500명 △2024년 2월 29일~3월 4일 △표본 오차 ±4.4% △신뢰수준 95%)를 실시했다. 해당 결과와 2014년 진행된 동명의 조사 데이터를 비교·분석해 현대 사회 어른의 시대상과 세대 간 존경에 대한 인식을 조명해본다.
‘어른’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조사에 참여한 2030세대와 5060세대는 모두 ‘책임감(있는)’이라는 키워드를 1순위로 꼽았다.(39.8%) 2030세대의 경우 ‘존경받는 어른의 덕목’을 묻는 항목에서도 3명 중 1명꼴(32.4%)로 ‘책임감’을 최우선 덕목으로 택했다. 질문을 바꿔 ‘존경받지 못하는 어른의 모습’을 묻자 전 세대 평균 1위 답변은 ‘무책임함’(20.8%)이었다. 어른의 이미지나 덕목, 이상향 등이 ‘책임감’에 무게가 실린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다.
‘가까이 소통하고 대화할 존경하는 어른이 있다’고 말한 비율은 2030세대 72.4%, 5060세대 56.8%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만난 ‘존경할 만한 어른은 몇 명인가’라는 세부 질문에서도 전 세대의 과반수가 ‘3명 이하’라고 답했는데, 그 비율을 보면 2030세대가 68.4%, 5060세대가 72.8%로 더 높았다. 나이나 연륜이 많다고 해서 존경하는 어른을 많이 만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존경하는 어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치하는 의견을 보였다. ‘존경하는 어른의 필요성’을 살펴본 결과 전체의 92%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반반이다’라는 의견을 제외하고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은 1.9%로 매우 극소수였다.
한편 존경받는 어른의 부재가 가져올 악영향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세대 갈등’(24.6%)을 가장 우려한다는 반응이다. 이어 ‘개인주의 심화’(20%), ‘사회 구성원 책임감 결여’(15%), ‘다음 세대 어른의 부재’(11.2%), 고령자 소외와 고립(8.8%) 등을 악영향으로 꼽았다. 특히 ‘다음 세대 어른의 부재’의 경우 세대별로는 2030세대의 13.6%, 5060세대의 8.8%가 해당 항목을 선택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기성세대보다는 청년세대 쪽에서 다음 세대 어른의 부재를 더 우려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나이 많은 사람은 늘어나고 있지만 전문가들이나 관련 통계, 트렌드 서적에서는 어른이 줄어들다 못해 ‘없다’고 말한다. 진짜 ‘어른’이란 어떤 존재일까? 대한민국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아무래도 현시점에서 어른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필요해 보인다.
‘트렌드 모니터 2024’에 따르면 요즘 사람들에게는 어른, 친구, 직장 동료가 부족하다고 한다. 무엇이 올바르고 잘못됐는지 구체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을 주변인이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고, 상식에 어긋나는 의사결정을 할 때 바로잡아 주고, 함께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시대상이 됐다.
대중도 누군가의 부재를 내포한 모양새다. 책조차 아주 가까운 사람이 술자리에서나 해줄 법한 서슴없는 조언을 담은 ‘세이노의 가르침’, 거의 모든 현대인이 바라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현실을 직시하는 ‘원씽’ 등에 열광한다.(교보문고 상반기 베스트셀러 비교) 저자들은 어떤 사건에 대한 사전적 지식보다 당대에 먼저 겪어본 감정을 공유해준다.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삶에서 조언 제공자, 인생 선배와의 소통에 결핍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날것의 충고를 전한다. 어쩌면 우리는 친구든 직장 동료든 이웃이든 관계와 나이를 떠나 먼저 판단해본, ‘진짜 어른’을 갈망하는 걸지도 모른다.
#믿고 따를 만한 존재가 없다?
어른이 없다고 생각하는 데는 여러 전제가 있다. 우선 ①사회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이 많아서일 테다. 어른의 요건으로 간주하는 일들이 치솟는 물가와 취업난, 끝없는 경쟁과 압박 탓에 점점 지연되는 추세다. 10~20년 사이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을 하면서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이제는 직접 번 돈으로 집을 사고, 결혼 준비를 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N포 세대’라는 용어가 생긴 지도 오래다. 연애, 결혼, 출산, 경력, 집, 인간관계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한 이들을 일컫는다. 보장되지 않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보다 즐기겠다는 ‘욜로’, ‘탕진’과 같은 말까지 파생됐다.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없다 보니 자연스레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진다. 흔히 떠올리는 책임감과 포용력을 갖고 주변을 돌보는 모습과는 반대다.
②간혹 어른이 필요 없다 여기는 이들도 있다. 해당 현상은 1980~199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부터 두드러진다. 성장 경험이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 지속적인 산아제한정책의 추진으로 형제 수가 줄어들면서 부모의 자원을 독차지하게 됐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창구도 늘었다. 물질적·정서적 결핍을 느낄 일이 비교적 줄어든 셈이다. 이민영 T&D 파트너스 대표는 “시대를 거듭할수록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늘고 있다”며 “궁금한 점이 생기면 검색을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료를 얻으니, 선배에게 질문 있다며 먼저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른을 굳이 찾지 않고 원하지 않다 보면 자연스레 어른의 필요성 또한 사라질 수 있다.
③어쩌면 우리는 슈퍼맨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 하나 부족하지 않은 인간이 과연 있을까. 어른의 기준은 명확히 세우기 어렵다. 내가 꿈꾸거나 남에게 바라는 바를 자세히 떠올리다 보면 마치 옛 영화에 나오는 슈퍼맨이나 성인군자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의지하고 싶은 존재란 누구인지, 어른은 어떤 가치를 전해야 하는 건지 모호하다. 조관일 창의경영연구소 대표는 “세계적으로 덕망 있고 존경받는다고 알려진 이도 부족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라며 “완벽한 한 명을 오매불망 기다릴 게 아니라 친구나 가족, 상사가 가진 고유한 매력 중 배우고 싶은 부분을 골라 체득하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툭하면 꼰대 취급, ‘나이·경력 무관’
‘꼰대’는 어른 하면 꼭 따라붙는 단어다. 갈등이 심화된 세상에서 서로를 공격하는 최고의 수단이기도 하다. 상대를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무턱대고 내뱉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 이처럼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흔치 않다. 멀쩡한 사람도 이 한 단어를 덧씌우면 아무 소리 못 하고 형편없는 사람이 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대 간 갈등을 보여주는 증표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젊은 꼰대’까지 등장하며 나이와 경력이 상관없어졌다.
조관일 대표는 “이전에는 ‘케케묵은 사고방식으로 거들먹거리는 어른’을 뒷전에서 비아냥대거나 흉보는 은어나 속어 정도였지만, 이제는 상용어가 됐고 면전에서도 꺼낼 정도”라며 “사람을 규정하고 옥죄는 프레임으로 진화했다”고 전했다. 이어 “어쩔 수 없이 모두가 어울려 일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별거 아닌 이유로 골이 깊어진다면 피차 손해다”라고 꼬집었다.
조 대표는 모든 관계의 문제가 입장 차이에서 온다고 이야기한다. 상사와 부하, 시어머니와 며느리같이 처지가 달라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입장의 차이는 인식의 차이를 가져온다. 또래라 하더라도 역할이 다르면 관점과 논리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렇게 소통에 장애를 일으키고 불통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을 자주 던지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게 답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짐작해서다.
#뻔하지만 가장 어려운 존중과 공존
‘어른의 부재’는 10년 전에도 화두였다.(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 2014) 이민영 대표는 서로의 목마름을 해결하고 어른답게 살려면 ‘경청과 공감’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물론 부와 명예, 책무를 떠나 내면의 소리를 면밀히 듣고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 먼저다. 자신만의 선입견으로 현상을 바라보거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과거에 알던 것에 집착하고 남에게 생각을 강요하면 안 된다.
조 대표는 선배 세대에게는 ‘우·황·청·심·원’(①우월적 지위는 잊어라 ②상황이 변했음을 알라 ③청년 시절을 돌아보라 ④심판하지 말라 ⑤원칙을 지켜라)을, 후배 세대에게는 ‘이·미·자·이·사’(①이유 없이 삐딱하지 말기 ②미래에서 오늘을 보기 ③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알기 ④이상과 현실을 직시하기 ⑤사람의 소중함을 알기)를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능력이나 경험은 타인이 알아줘야 가치 있고, 존경은 권리가 아니라 성취다”라며 “‘어쩌다 어른’일지라도, 최소한 합의된 역할을 잘 수행하며 더불어 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미 결정한 일에도 실수가 있을 수 있고, 부작용 또한 예상하기 힘들다”며 “나이와 관계없이 서로를 조금씩 보듬어주며 벌어진 틈을 좁혀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 한갓진 시골에 아담한 카페가 하나 있다. 귀농한 부부가 운영한다. 아내는 낙천적이고 남편은 신중한 성향의 소유자다. 이상적인 조합이다. 대략 큰 그림을 그려놓고 꿈을 좆아 달리려는 아내의 과속을 남편이 적절히 견제해 균형을 잡아가니까. 매사 협의 과정엔 충돌이 잦지만 결국은 중간 지점을 찾아 절충한단다. 귀농 가부 문제에서부터 부부의 주장이 엇갈렸다. 귀농 이후에도 의견이 상충하는 때가 많았다. 폐가에 가까웠던 농가 주택을 근사한 카페로 재생하면서도 자주 옥신각신했다. 아무려나 카페는 잘 돌아간다. 딱히 주변 경관이 수려한 입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잘것없는 곳은 아닌 데다, 카페의 담백한 외관과 내부의 소박한 디테일이 어우러져 손님들의 호감을 산다.
부부가 귀농한 지 올해로 6년째. 전에 살던 곳은 인천. 남편 이태호(46, 카페 ‘홍담’ 대표)는 IT 업계를 거쳐 다년간 자영업을 하다가 이곳 충남 홍성군 구성면 시골로 귀농했다. 귀농을 먼저 제안한 건 아내 우연희(41)였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에서 살맛나게 살아보자는 아내의 느닷없는 제안에 이태호는 아마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것 같다. 부부 공히 시골 생활 경험이 없는 데다 귀농이 자칫 가시밭길을 걷는 고행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아니, 시골 생활을 장난으로 아나?’ 아내의 귀농 제안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그랬다.(웃음) ‘언덕 위의 하얀 집’을 짓고 소탈하게, 마음 편하게 살아보자는 게 아내의 목적이었다. 그건 여러모로 무모한 도전에 불과했다.”
아내의 생각을 꺾어놓을 필요성을 느꼈다는 얘기인가? 무모한 도전이 없는 인생은 따분할 수 있다.(웃음)
“여러 날을 숙고했다. 내가 싫다고 아내의 뜻을 묵살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 차분하게 생각해봤는데 시골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TV에 나오는 ‘자연인’처럼 남자들에겐 수렵 생활에 대한 로망이라는 게 다들 있지 않나? 결국 아내의 뜻을 따르게 됐다.”
사전 귀농 준비는 했나?
“이 대목에서도 아내와 이견이 있었다. 매사 긍정적인 전망을 하는 아내는 ‘일단 그냥 내려가자, 내려가서 적응하면 된다, 귀농이 어렵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우리만큼은 다를 거다,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했다. 착각에 빠져 있었다.(웃음) 이런 아내의 주장까지 동의할 수 없었던 나는 양재동에 있는 aT센터를 드나들며 관련 정보부터 수집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귀농귀촌종합센터를 통해 귀농교육도 받았다. 아내의 손을 잡고 곳곳을 돌며 귀농 투어를 하기도 했다. 농업시설업자들을 통해 유용한 팁도 얻었다.”
충실한 사전 준비를 한 셈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도출할 수 있었을 테고.
“기본적인 방향 하나를 미리 확정할 수 있었다. 흔히 농토는 빌려 쓰고 대신 시설 설비에 자금을 투입하라는 얘기를 하지만, 이건 위험한 방법이라는 걸 현장 답사를 통해 알았다. 만약 농사에 실패할 경우 시설비를 몽땅 날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 자금은 전적으로 토지 구입에 쓰고 시설은 지원금을 받아 하자는 원칙을 세우고 귀농지 선정에 나섰다.”
홍성군을 귀농지로 선택한 이유는?
“경상도나 전라도는 너무 멀어 일단 배제했다. 1년의 절반은 추운 겨울인 강원도도 제외했다. 경기도도 뺐다. 땅값이 너무 비싸니까. 결국 충청도로 가기로 했는데, 우리가 귀농할 당시 충북권은 예산 부족으로 귀농지원금이 적다고 해 충남권이 적합하다고 봤다. 해서 충남 곳곳을 돌아다니며 귀농교육을 받는 한편 토지를 물색, 마침내 이곳 홍성에 터를 잡게 됐다.”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는 데는 아내도 동의했나?
“동의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실랑이를 피할 길이 없었다.(웃음)”
나이 든 남편들은 흔히 말한다. 아내의 뜻을 따르는 게 신상에 좋다고. 살아보니 아내의 머리가 더 현명한 걸 알겠더라, 그리 판단하는 거다.(웃음)
“난 아내를 존중한다. 하지만 삶터 문제는 워낙 중요한 대목이라 양보할 수 없었다. 아내는 마을 한가운데 나온 매물을 사자고 했는데, 가격이 저렴하다는 매력이 있는 땅이었다. 그러나 130여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의 복판에 거주할 경우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각별한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자신이 없어 반대했다. 본의 아니게 마을에 민폐를 끼칠 수도 있어 조심스러웠다. 결국 아내가 양보해서 마을과 떨어진 이곳의 매물을 사게 되었다.”
뜻밖에 찾아온 많은 손님
부부가 구입한 터의 면적은 밭 600평을 포함해 약 800평. 60년 전에 지어져 낡다 못해 쓰러져가는 빈집 한 채가 딸린 터였다. 땅을 결정한 뒤 이태호는 일주일 만에 이사해 귀농 생활에 돌입했다. 가까이 있는 홍성읍내에 셋집을 얻어 임시 거처로 삼고서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귀농 열차에 몸을 싣고 일단 질주하고 싶다는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처럼 신속하게, 거침없이 움직였다. 이사하자마자 즉각 집수리에 나서는 한편 농사에 뛰어들었다는 게 아닌가. 다분히 충실했던 사전 준비에서 나온 추진력이었으리라.
농사 작목은 어떤 걸 선택했나?
“30여 종의 작물을 심었다. 600평에 불과한 작은 밭에 다양한 작물을 재배했던 거다. 귀농 전 막연하게 생각한 건 고구마 농사였다. 소규모라도 고구마 한 가지를 잘 키워 생산하면 부부가 먹고살 만한 정도의 수익은 나오지 않을까, 대충 그런 구상을 했는데 귀농교육과 현장 답사를 통해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 그렇다면 고구마보다 유능한 작물을 찾아내야 했다. 과연 우리 밭의 토질에서 어떤 작물이 잘 자랄지 알아내기 위해 30여 종을 시험 재배했다는 얘기다. 그 결과 블루베리가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현재 블루베리 400주를 기르고 있다.”
집수리는 부부가 손수 했다지?
“비용도 줄이고, 우리의 취향에 맞는 집을 만들고 싶어 거의 모든 공정을 직접 처리했다. 워낙 낡은 집이라 기둥, 서까래, 흙벽 정도만 남기고 털어낸 뒤 보수작업을 시작했다. 옛날 집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고치고 다듬었다.”
수리 과정에서 부부간 의견 충돌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많이 다퉜다.(웃음) 아내는 감성적 스타일로 개성을 살린 구조를 추구했다. 반면 난 실용성과 기능성 중심의 단순하고 깔끔한 공간을 원했다. 결국 절충점을 찾아갔지만 이견 조율하느라 우왕좌왕이 잦았다. 보수를 완료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처음부터 카페로 개조하자는 계획을 가지고 진행했나?
“아니다. 카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작지만 편안한 살림집을 만들되 부부 둘이 차를 마시며 기분 좋게 쉴 수 있는 공간도 꾸미자는 정도의 계획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도중에 바뀌었다. 집 고치기를 지켜보던 마을 이장님이 카페를 하면 괜찮을 거라는 조언을 해준 게 계기가 됐다. 시골 카페라도 운치를 돋운 분위기에 착한 서비스를 할 경우 가능성이 있을 거라 판단했다. 카페를 통해 부진한 농업소득을 보완할 수 있을 거라 봤다.”
결과적으로 카페를 차린 건 탁월한 선택이었나?
“그렇다. 2019년에 오픈하자마자 뜻밖에도 손님이 많이 찾아왔으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 대형 카페들은 손실이 컸지만 우리는 무난했다.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공간이라 강아지를 안고 오는 이들도 많다. 카페가 마을 사랑방 역할도 해야 한다는 걸 감안해 과도한 인테리어는 자제했다.”
시골 생활 만족도 80%
카페의 분위기는 뭐랄까, 영업집이라기보다 정겹게 꾸민 이웃집 사랑방처럼 편안하다. 천장에 노출된 서까래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옛이야기들을 두런거린다. 창밖으로는 바람이 지나가고 구름이 다가온다. 카페 외벽은 온통 하얀 칠을 입혀 정갈하다. 귀농을 선창했던 이태호의 아내는 하얀 집의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즐기는 식의 낭만적인 시골 생활을 갈망했다지. 그 바람이 얼추 이루어졌다. 특히 안도할 만한 건 카페 수익을 통해 원만하게 가계를 꾸려나가게 됐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기본 서사는 부를 축적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시골에서 농사지어 부를 확장하긴 어렵다. 이태호 역시 농업소득만으로는 충족할 수 없다는 걸 온몸으로 경험했는데, 용케 카페 사업에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그는 더 달리고 싶다. 카페는 중간 정거장 정도로 여긴다.
“농사로, 특히 소농으로 돈을 벌기는 실로 어렵다. 우리는 카페를 통해 어느 정도 안정감을 얻었지만 사실 시골 카페의 태생적인 성장 한계는 명확하다. 확장성이 크지 않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이라 보나?
“일의 외연을 넓혀나가고 있다. 우리는 수년 전부터 남의 농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아이들 대상의 방과 후 학습교사를 맡고 있다. 한편 지역의 청년 귀농인들을 모아 농업회사법인을 설립, 다양한 형태의 소득 창출을 도모하고 있는데 이건 성장 가능성이 크다. 이를 중점 사업으로 삼아 키워나가고자 한다.”
귀농 6년 차에 이르렀다. 현재 상황에 만족하나? 원했던 삶을 살고 있나?
“흠, 만족도 80%쯤? 도시에서보다 한결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시골로 내려오면서 우리 부부는 가족 중심의 삶, 가족이 모태가 되는 삶을 목표로 삼았다. 그게 이루어졌다. 게다가 귀농 이후 아이 둘을 얻었다. 4인 가족이 된 거다. 농사의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소박한 살림을 꾸려나가며 가족과 함께 따뜻하게 살 수 있는 현 상황에 순간순간 기쁨을 느낀다.”
모두가 물신(物神)을 숭배하는 세상이다. 돈에 관해선 어떤 생각을 하지?
“돈이 많아야 행복도 가능하다고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밥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을 한다. 금전보다 소중한 가치는 부부애, 가족애에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언사는 수굿하지만 생각엔 단단한 심지가 박혀 있다. 온유한 품성이 느껴지지만 매사 치고 나가는 성향? 지난 귀농의 날들을 그는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한다. “난 치열하게 살았다!”
이태호가 주는 귀농 Tip
•귀농 실패 사례가 드물지 않다. 섣불리 뛰어드는 건 무모하다. 심사숙고하되 일단 귀농을 결정했다면 과감하게 도전하라. 보수적인 접근으로는 부족하다.
•지자체들에서 주관하는 ‘6개월 미리 살아보기’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해 기초를 다지자.
•귀촌과 귀농이 융합된 형태의 시골살이를 모색하자. 소규모 농토를 통해 농업인 자격증을 획득하고 혜택을 받되, 라이프스타일은 귀촌의 방식을 취할 경우 한결 만족도가 높아진다.
•농사 하나에만 의존하지 말자. 과도한 노동에 몸이 망가질 수 있다. 찾아보면 농외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거리가 많다.
•남편만의 단독 귀농은 필패의 지름길이다. 술과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반면 아내가 귀농을 주도해 함께 내려온 경우엔 99%가 정착에 성공하더라.
•부부가 함께 일하는 데 의미를 둘 경우 시골 카페도 권장할 만하다. 단 주변의 시장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결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