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미국 CNN은 ‘굿바이 어린이집, 헬로 요양원’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의 인구 위기 문제를 보도했다. 당시의 기사 제목은 실상을 그대로 담았다. 어린이집·유치원 등 영유아 시설이 문을 닫은 그 자리에 요양원·주야간보호센터 등 노인 요양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한 초등학교 옆에 있는 학원 상가 건물이 눈길을 끈다. 아이들로 붐빌 것 같은 이곳에 ‘우리함께요양원 포유 수원점’(이하 ‘우리함께요양원’)이 있다. 갑작스런 요양원의 등장이 뜬금없다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 이곳은 과거 정원 200명의 대형 유치원이었다.
과거 아이들이 오순도순 모여 놀던 놀이터는 어르신들의 휴식 공간이 됐고, 동요 대신 구수한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아이들이 신나게 오르락내리락하던 계단은 이제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고, 대신 그 옆에 생긴 엘리베이터가 주요 이동수단이 됐다.
저출산·고령화로 타의 반 변신
매년 2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졸업식이 열린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원내의 마지막 졸업식이 진행되는 경우가 상당했다. 출산률 0.78명 시대.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원장들은 직격타를 그대로 맞았다. 급격히 줄어든 원생 수로 인해 운영이 힘들어진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폐원을 선택했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 어린이집은 2018년 3만 9171개소에서 2022년 3만 923개소로 8248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유치원은 9021곳에서 8562곳으로 줄었다. 반대로 노인 복지시설은 2018년 7만 7395개에서 2022년 8만 9643개로 5년 사이 1만 2248개나 늘었다. 노인 복지시설은 요양원, 재가노인복지시설, 경로당, 노인복지관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영유아 시설이 노인 요양시설로 바뀌고 있어 눈길을 끈다. ‘손주가 다니던 유치원이 할머니의 노치원이 됐다’는 말은 통계를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영주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에서 제출받은 ‘장기요양기관 전환 현황’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으로 운영되던 곳이 장기요양기관으로 전환한 사례가 총 194건인 것으로 확인된다.
형태별로는 요양원 같은 입소시설 89곳, 주야간보호·방문요양센터 같은 재가시설이 105곳이다. 시도별로는 광역도 기준 경기도가 36곳으로 가장 많이 전환됐다. 이어 경상남도(25곳), 충청남도(20곳) 순이다. 광역시는 광주(17곳), 인천(15곳), 대전(9곳) 순으로 나타났다.
전환사례 비율이 가장 높았던 해는 2022년(50건)으로 전체의 26%를 차지한다. 2023년은 9월 말 기준 전환사례 34건(17.7%)으로 2023년 1월부터 9월까지의 건수가 이미 2020년과 2021년을 뛰어넘은 것으로 분석됐다. 산후조리원이 장기요양기관으로 바뀐 사례도 나왔다. 2021년 11월 충북 충주시, 2023년 8월 전북 정읍시에서는 산후조리원이 장기요양기관으로 전환됐다.
우리나라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점이 실감된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17년 말 735만 6000여 명에서 2022년 말 926만 7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고령화가 현재 속도로 지속될 경우 2030년까지 주·야간보호기관 약 3만 1000개소, 입소시설 약 1만 6000개소 등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인 인구 진입이 본격화되면서 질 좋은 공립 요양시설이 대폭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영주 의원은 “최근 저출산으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고령화로 인해 노인 장기요양시설 수요가 증가하면서, 어린이집 등의 요양시설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출생 아동이 급감하고 있어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정부는 장기적으로 유치원 폐업과 노인 돌봄시설 수요를 조사하여 적정 규모의 전환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영유아 시설이 노인 요양시설로 탈바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신속하게 업종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 건축법상 건축물은 9개 시설군으로 나뉜다. 영유아 시설과 노인 요양시설은 모두 6군인 ‘교육 및 복지시설군’ 중 ‘노유자시설’에 속한다. 이에 따라 복잡한 허가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업종 전환을 할 수 있다.
또한 어린이집과 유치원 원장의 입장에서는 돌봄 대상이 영유아에서 노인으로 바뀔 뿐 업무 자체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노인 요양시설을 설립하기 위한 조건은 의료면허 소지자(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 등), 요양보호사 취득 후 경력 5년, 사회복지사 2급 또는 1급 중 하나 이상 부합해야 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원장의 자격과 경력은 직접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다만 대부분의 영유아 시설 원장들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사 없더라도 그들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불어 폐원을 앞둔 원장들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하는 추세다.
“우리도 전환” 리모델링 문의 늘어
‘우리함께요양원’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이곳을 운영하는 지인그룹의 김창환 대표는 20년 넘게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해왔다. 현재 노후 건물을 요양시설로 개발·운영하는 데 주목하고 있는 그는 이곳에 요양원을 세우면 성공하겠다고 판단했다. 유치원이 폐원한 지 2년 넘었는데 매도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김창환 대표는 “이곳 인근 아파트, 빌라 등을 합치면 1만 세대 이상 거주한다. 고령화 시대에 승산이 있을 것이라 봤고, 요양시설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주민들의 거부 반응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이 요양원의 장점은 초등학생들의 소리가 들려서 정겹고 야외 텃밭과 휴식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면서 “보통은 영유아 시설 원장이 노인 요양시설로 사업을 이어가는 경우가 80% 이상이다. 나머지는 나처럼 요양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원장들의 컨설팅 문의가 많이 오는데, 요즘은 요양원보다 주야간보호센터를 선호하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인 요양시설로의 전환이 쉽지만은 않은 이유는 노인 요양시설은 설계 기준이 있어 리모델링을 필수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인 요양시설은 입소 어르신 1인당 연면적 23.6㎡(약 7.14평), 1인당 침실 면적 6.6㎡(약 2평)로 정해져 있다. 또한 지하층에는 부대시설 외에 침실을 둘 수 없다.
‘우리함께요양원’의 경우 유치원 시절 연면적이 1420㎡(약 430평) 규모였는데, 지하층만 660㎡(약 200평)에 이른다. 이에 따라 김창환 대표는 3층 상가 전용 130㎡(약 40평)를 추가로 매입해 정원 49명 수용이 가능한 요양원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요즘은 영유아 시설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수도 많이 줄어 학원 상황이 많이 어렵다고 한다. 우리 상가 학원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들려온다”면서 이와 같은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계속되면 요양원의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노인 요양시설에는 모든 층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야 하며, 휠체어를 타고도 이동이 편하도록 주 출입구에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엘리베이터 설치는 리모델링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는 부분이다. 김 대표는 “엘리베이터 설치가 필수인데 이곳은 도저히 자리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외벽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고, 이에 따라 대문부터 내부로 들어오는 동선이 유치원 때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김창환 대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선택한 원장들의 도전을 응원하는 한편, “어쨌거나 요양 사업을 시작하는 것인데, 복지 사업에 대한 비전이 확실하고 자산이 있는 분에게 추천한다. 단지 돈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시설 전환을 원하는 이들은 영유아 시설 원장으로 쌓은 경력과 돌봄의 지혜를 기반으로 노인을 대할 때는 또 다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경영자를 할 것인지, 운영자를 할 것인지 정하고 비전을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요양 사업을 시작하면 어르신을 섬겨야 하고 직원을 모셔야 합니다. 영유아 시설 교사들과 비교해보면 요양시설 재직자들은 연령대가 높은 편입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직원을 대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처음부터 돈을 벌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1~2년 지나면 순환 구도가 만들어져 행복한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소맥이 진리로 통하는 한국 주류 시장에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뛰어든 이대로 댄싱사이더 컴퍼니 대표를 만났다. 그는 양조장에서 사이더라는 술을 만들지만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를 전파하고자 창업의 길에 뛰어들었다.
이대로 대표는 유년기를 미국에서 보냈다. 그의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턴에서 창업을 했다. 크래프트(수제) 사이더 브랜드 ‘다운이스트 사이더’다. 사이더는 사과즙을 발효시켜 만든 술이다. 사과의 달콤함, 탄산의 상쾌함, 높지 않은 알코올로 가볍게 즐길 수 있다. 미국에서는 2010년 이후 전역에서 크래프트 사이더 붐이 일었고, 사이더 시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지금은 많은 이들이 즐기는 주류가 됐다. 친구들의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는 걸 보며 이 대표는 사이더 시장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사이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왜 한국에서는 아무도 만들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국내에는 ‘사이더’라는 주류 카테고리조차 없었죠. 사과와인을 만드는 분들은 있었지만, 사과 맛이 진하면서 청량감도 좋은 대중적인 사이더를 만드는 곳은 없었어요.”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금융권에서 일하면서도 이 대표는 사이더 시장에 계속 관심을 가졌다. 열정만 가지고 창업을 한 게 아니라 5년이라는 시간을 공들여 고민하고 시장을 조사했다. 2013년 즈음만 하더라도 다양한 주류 규제와 주세법 때문에 국내에서는 크래프트 주류 시장이 성장하기 어려웠다. 2016년 이후 수제 맥주에 대한 규제가 개선되면서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늘기 시작했다. 사이더가 우리나라에서도 통할 거라고 생각한 이 대표는 공동창업자 구성모 이사와 함께 2018년 충주에서 댄싱사이더를 창업했다.
사과 혁명을 꿈꾸다
이대로 대표는 소맥 위주의 우리나라 주류 시장에 애플사이더로 일으킬 ‘사과 혁명’을 꿈꿨다.
댄싱사이더 컴퍼니 직원들은 직함 대신 서로를 ‘선수’라고 부른다. 소비자는 ‘댄서’다. 이 대표는 선수가 만든 사이더의 매력에 댄서가 자신의 방식대로 춤추며 즐긴다는 의미를 ‘댄싱사이더’라는 회사 이름에 담았다. 그의 말처럼 사이더를 즐기는 데 정답은 없다. ‘Drink Different’라는 댄싱사이더의 슬로건처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자유롭게 춤추며 즐기면 된다.
“춤이라는 장르는 정답이 없잖아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요. 경직된 회식 자리에서 소맥만 마시는 우리 술 문화를 외국의 파티 문화처럼 편하게 바꿔보고 싶었어요. 강압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시고 싶은 술을 내가 원하는 만큼 마시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죠.”
댄싱사이더의 양조장은 충북 충주에 있다. 충주는 사과가 맛있기로 유명하지만 물이 좋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원물의 퀄리티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에 충주에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사과 품종의 70%는 ‘부사’다. 해외에서는 디저트로 사용하는 사과로 그만큼 당도가 좋아 설탕이나 인공 재료를 넣지 않고도 사과 본연의 단맛을 구현할 수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나라 주세법상 사이더는 ‘과실주’에 속한다. 이 대표는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사과를 아끼지 않았다. 제일 처음 선보인 ‘스윗마마’와 ‘댄싱파파’는 330ml 한 병에 사과가 2개나 들어간다. 최근 새로 개발한 사과 증류주 ‘댄싱22’는 375ml인데 여기에는 7개의 사과가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농산물을 제품에 녹여내면서도 어떻게 하면 사이더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을까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런 제품을 만들었다. 그는 댄싱사이더 제품이 해외의 사이더와는 다른 ‘한국적인’ 사이더라고 말한다.
“해외 사례를 많이 공부했고 탐방했어요. 우리나라에서 나는 사과와 농산물을 원물로 사용하는 우리만의 강점은 무엇일지 고민했죠. 해외의 맛을 그대로 낸다면 과연 한국의 맛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리면서 국산 농산물 특징을 살리는 맛에 더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댄싱사이더의 8개 제품은 뉴욕, 미시간, 영국, 일본, 한국 등 5개 국제 사이더 품평회의 총 2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맛과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한국적인 사이더의 맛을 구현하고자 했기에 더 값진 결과다.
‘사업이 아니라 운동을 시작하라’
‘창업의 시대, 브루독 이야기’라는 책의 서두에 나오는 말이다. 사업을 시작하는 주된 목적이 돈이 아니라 회사를 대표하는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의미다. 이대로 대표는 “회사의 바이블 같은 책”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댄싱컴퍼니에 합류하는 모든 직원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
“재미있는 비즈니스 책이지만, 성공할 수 있는 기본적인 철학이 다 나와 있어요. 크래프트 주류 회사로서 이 책에서 말하는 기본과 반대로 간다면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죠. 직원들에게 책을 선물한 이유는 우리 회사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니 참고해달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 점을 지적해달라는 마음이에요.”
브루독은 2010년 스코틀랜드에서 탄생한 수제 맥주 회사다. 2명이 설립한 회사지만, 크래프트 맥주계의 이단아로 불리며 580명의 직원을 이끄는 회사로 성장했다. 전 세계에 바를 열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 브루독의 사명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맥주 산업에 혁명을 일으키고 맥주 문화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이대로 대표는 이런 브루독의 철학이 말하는 ‘본질’과 ‘가치’에 공감한다. ‘한국적인 맛과 멋에 집중한 유일무이한 애플사이더 브랜드로서 대한민국 애플사이더 혁명을 일으키는 데 앞장선다’는 가치를 세우고 국내 사이더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한국에 없던 것이면서도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회사이기에 살아남기 위해 이익을 내야 하지만, 이익이 회사의 목적, 즉 존재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미션은 대한민국에서 사이더 고객을 계속 유치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주류를 생산하는 제조회사이기에 제품의 품질을 최고로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저희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댄싱사이더의 브랜드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게 목표입니다.”
이대로 대표는 댄싱사이더의 양조팀이 발효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창업 후 3년은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앞만 보고 달리면서 재미있게 일했다. 창업 5년 차인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외형적으로 꾸준히 성장해왔지만 이제는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판단한다. 코로나19 이후 어려워진 경제 상황은 댄싱사이더도 피해가지 못했다. 자생하는 힘을 키우고 싶어 투자를 받기보다 스스로 시장을 헤쳐온 그다. 매년 성장하다 창업 후 첫 고비를 겪고 있다. 이 대표는 “돌아보니 그동안 운과 타이밍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댄싱사이더는 소주나 맥주처럼 대중적인 주류를 만드는 회사가 아님에도 5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동안 외형적으로 성장해왔다면 앞으로는 밀도를 높여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댄싱사이더를 시작할 때 가진 목표, 꿈, 비전이 있는데,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결정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현재에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직원이 늘어나고 회사도 커지면서 무게감을 더욱 느끼고 있어요. 최근에는 처음으로 외부 투자도 받았습니다. 다음 단계로 올라서려면 질적인 성장 없이는 힘든 것 같아요.”
이 대표는 댄싱사이더의 가치를 실행하기 위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방향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잘 다져둔 땅에 집짓기를 잘하려면 기초를 잘 올려야 하는데, 지금이 그 시기라고 생각한다. 국내 사이더 시장의 개척자로서 때로는 누군가 함께 경쟁하며 시장을 넓혀갔으면 싶을 때도 있지만, 그는 더 먼 미래를 보고 있다. 이 대표에게 금융권에서 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는 없냐고 묻자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와닿는 시기”라는 답을 내놨다.
“지금 편하면 나중에 힘들고, 지금 힘들면 나중에 편하더라고요. 언제 힘들고 언제 편할 거냐의 문제 같아요. 국내외 성공 사례들을 보면 최소 10년은 걸리는 것 같아요. 지금 잘하고 있는 회사들은 그 이상의 시간이 걸렸죠. 처음부터 장기전이라 생각하고 뛰어들었어요. 단지 가만히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린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미래 도약을 위해 실력을 키우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선선한 가을밤에는 전국 문화재 야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지역별 문화재 야행을 알아보고 문화 체험도 소개한다.
경복궁 별빛야행
10월 8일까지 | 경복궁
외소주방에서 궁중음식체험과 전통 공연을 관람하고, 전문 해설사와 함께 별빛 산책도 할 수 있다.
예산 문화재 야행
9월15~16일 | 예산군청 일원
예산 성당, 예산호서은행본점 등을 방문하며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한 야간 문화 향유 콘텐츠를 체험하자.
보은 회인 문화재 야행
9월15~17일 | 회인 인산객사, 회인로 일원
도깨비 마을로 변한 보은 회인에는 천연염색체험, 무형문화재 줄타기 등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부여 문화재 야행
9월 15~17일 | 부여 정림사지
백제의 문화유산 정림사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야간 역사문화체험을 하면서 사비백제의 밤을 누비자.
충주 문화재 야행
9월 22~23일 | 충주 중앙탑 사적공원 일원
가족, 연인, 반려견과 함께하는 문화재 야행. 문화재 스탬프 랠리와 공연 등을 즐기며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임업후계자 교육은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증에서 출발해 미래산림연구소의 ‘귀산촌·임업후계자 과정’ 수업에 동행했다.
미래산림연구소는 산림청 지정 전문 교육기관이다. ‘귀산촌·임업후계자 과정’은 5일간 40시간 수업이 진행된다. 3일간은 귀산촌에 대해 비대면 강의를 진행하고, 2일간은 현장 교육을 한다. 귀산촌 현장을 찾아 선배로부터 임산물 재배와 귀산촌 경험을 공유받는다. 조경진 미래산림연구소 대표는 국립산림과학원,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등에서 일한 전문가다.
그가 이끄는 이번 6기 수업은 7월 11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됐다. 13일에는 강원도 평창과 홍천에서, 14일에는 충청북도 충주에서 현장 교육을 했다. 본지는 충주 현장 교육에 함께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16명 수강생의 열정은 시들지 않았다.
조경진 대표는 “보통 50대 중반이 수업을 많이 듣는다”고 전했다. 이날 교육에는 부녀가 다정한 모습으로 동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전원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받고자 수업을 듣게 됐단다. 조 대표는 “꼭 귀산촌이 아니더라도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다양한 이유로 수업을 듣는다”라면서 “은퇴 후 귀산촌을 생각한다면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이날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충주 수안보면에 위치한 순수자연주의 농장 ‘슬로우파머’다. 정성훈 대표는 건설회사에 다니다 퇴사하고 귀산촌했다. 정 대표는 슬로우파머를 친환경 임산물 체험과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농촌 체험지로 발전시켰다. 지난해에는 치유농업 프로그램으로 ‘제17회 생활원예 중앙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정성훈 대표는 처음 귀산촌을 했을 때부터 자리를 잡기까지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특히 이웃 주민들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또한 정 대표는 직접 농장을 돌면서 곰취, 산마늘, 능개승마 등의 임산물 재배 방법에 대해 소개했다. 이어진 점심 식사에는 수육과 슬로우파머에서 재배한 나물들이 나와 건강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충주시 소태면의 ‘보늬숲밤농장’이다. 이곳의 김의충 대표는 열아홉 살부터 밤농사를 짓기 시작해 42년 차에 접어들었다. 현재 김 대표는 아들과 함께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닭도 함께 키우는데, 밤을 먹고 자란 닭과 달걀은 건강하고 맛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3만 5000평의 농장에는 김의충 대표가 사랑으로 키운 밤나무가 가득하다. 김 대표는 친환경 농법으로 밤을 재배한다면서 농사꾼의 마음가짐과 열정에 대해 강조했다. “농사짓는 사람은 나무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밤나무에 대한 지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인생을 바꿔야지!” 새벽 2시, 야근 후 돌아와 죽어도 농부가 되겠다는 남편의 아우성에 아내는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어제까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던 남편은 청바지를 입고 밭으로 향했다. 땅에 심은 건 포도나무였지만, 부부는 꿈을 심었노라 말한다. 그들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남편은 뭐든 이뤄진다 하고, 아내는 뭐든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다 한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들의 꿈은 자연히, 그리고 자연이 이뤄가리라는 것이다.
테루아(Terroir)는 프랑스어로 ‘땅’을 의미한다. 와인이 만들어진 땅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한다. 충주의 와이너리 ‘작은 알자스 레돔 테루아’(이하 작은 알자스)는 소설가 아내 신이현(57)과 농부 남편 도미니크 레몽 에으케(53)의 꿈을 심은 땅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직접 과일을 농사지어 ‘내추럴 와인’을 만든다. 작은 알자스에 도착했을 때, 부부는 ‘웰컴 드링크’처럼 내추럴 와인을 내왔다. 풋사과 시드르였다. ‘폭’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리더니, ‘꼬르르르’ 미세한 탄산이 잔을 타고 미끄러졌다. 그 맛은 어떤가 하니, 마치 와인계의 평양냉면이라고 할까? 깔끔하면서도 은은하게 산뜻함이 감돌았다. 단순히 ‘맛있다’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걸맞은 단어를 고르던 차, 아내 신이현이 제대로 설명에 나섰다.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 과일을 수확해 착즙한 뒤 필터링이나 살균 등을 거치지 않고 만든 와인입니다. 흔히 ‘맛있다’고 표현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 인위적인 첨가물을 넣지 않고 자연이 준 그대로 발효해서 만든 거예요. 즉 그 과일이 자란 땅이나 한 해의 기후 등에 대한 솔직한 설명과 같죠. 가령 비옥하지 못한 땅에서 나온 와인은 심플한 맛이 나기도 하는데, 그 역시 나름의 개성으로 보는 거예요. 고로 세상에 맛없는 내추럴 와인은 없습니다. 과일이 자라던 땅과 나무, 바람과 햇볕을 느끼고 즐기면 그뿐이죠.”
열매가 좋아하는 날을 기다리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술, 내추럴 와인을 한잔 마시는 것은 한 움큼의 땅을 먹는 것과 같다고 했다. 와인 맛이 다른 것은 땅이 다르기 때문이고, 땅이 다른 것은 땅마다 스며 있는 농부의 땀방울이 다름일 테다. 더군다나 오롯이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내추럴 와인의 경우엔 가히 그 땅에 농부의 철학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미니크는 어떤 농부라 말할 수 있을까? 그는 “땅을 키우는 농부”라 일컬었다.
“농부는 나무만 키우는 게 아니라 땅도 함께 키워야 해요. 일반적으로 포도밭을 한다고 하면 포도가 주렁주렁 많이 열리고, 그것을 수확해 큰돈을 얻는 게 목적이겠죠.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다릅니다. 나무와 땅이 있다면, 우린 땅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 당장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보다 땅을 살리는 기쁨이 더 크거든요. 그렇다 보니 농사짓는 방법도 다른 거죠.”
땅을 키우는 차별화된 농법으로 도미니크는 ‘생명역동농법’을 택했다. 생명역동농법이란 한마디로 우주의 기운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다. 식물에 영향을 주는 별자리의 움직임을 기록한 달력을 농사에 적극 반영한다. 꽃식물이나 잎식물, 열매식물 등 각기 다른 식물은 저마다 좋은 기운이 있는 날엔 활짝 생명을 펼치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조용히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는단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도미니크는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옮길 때 항상 별자리 달력을 펼쳐놓고 식물에게 좋은 날을 찾는다. 와인 역시 같은 방법으로 만든다. 가령 포도를 따거나 착즙할 때는 열매에게 좋은 날을 골라 작업한다. 씨를 뿌려 열매를 수확하고 내추럴 와인이 탄생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인간은 ‘돕는 자’의 역할을 할 뿐 그밖의 모든 것은 자연의 힘에 맡긴다. 그 이름처럼 ‘내추럴’(Natural)하게 말이다. 애당초 땅에 그러한 철학을 심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들의 삶에도 그러한 양식이 깃들었기에 가능했다. 혹자는 이런 부부를 보고 마치 물 따라 바람 따라 유유자적 산다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이에 아내 신이현은 “그저 가만히 내버려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건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가령 농사에서 ‘자연스러운’ 것은 수확을 위해 인간의 손이 가장 덜 가게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게 가능하려면 실제로는 초반에 아주 많은 손길이 필요해요. 농부의 상당한 노력을 투여해야만 결국 자연스럽게 식물이 자라고 열매 맺는 시간이 찾아오죠. 물론 몸은 고단하고 힘들어요. 그런데도 자연에 맞춰 산다는 게 엄청난 철학이 있어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는 우리는 그냥 그게 좋더라고요.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일이 나에게도 즐거움이 되고, 그것을 목표로 삼으니 소소하지만 매 순간 성공하는 듯한 기분도 들고요.”
농업의 꽃 술, 농부의 손으로부터
부부는 매 순간 성공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정신승리라 하겠다. 물론 그들에게는 그 말이 진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타자로서 일련의 과정을 듣노라면 매 순간 결코 녹록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 위대한(?) 서막은 그들이 프랑스에서 한국에 오고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익히 알듯 포도농사와 와인 양조라면 프랑스의 여건이 더 나았을 테다. 농사에 관해선 고집스런 도미니크지만, 한국행을 택한 데에는 아내의 의견이 컸다. 사실 도미니크는 농사만 지을 수 있다면 어느 땅이라도 좋다고 했지만 말이다.
“남편이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프랑스 남쪽으로 밭을 보러 다녔어요. 피레네산맥 근처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었는데, 비싸지도 않고 환경도 괜찮았죠. 그런데 제게는 너무나 낯설었어요. 남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포도 따는 외로운 동양 할머니로 늙어갈 걸 상상하니 그건 싫더라고요. 마침 한국에 포도 와인은 많지만 사과로 만든 시드르는 없길래, 도미니크에게 한국은 어떠냐고 권했죠. 그렇게 파리의 아파트를 팔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단순히 남편은 농사를 짓고 싶고, 아내는 한국에 살고 싶어 무작정 삶의 터전을 바꿨다. 한국의 땅값이 얼마인지, 양조장을 짓는 데 얼마가 들지, 생활비는 어떻게 벌지 등등 구체적인 계획도 대책도 없었다. 원대한 꿈만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 망해도 좋다. 적어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말은 할 수 있겠지”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렇게 중고차 한 대를 구입해 새 터를 잡기 위해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농업기술센터에 찾아가 자신들의 처지를 털어놓기도 했고, 공공기관에 도움도 요청했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사과연구소도 가보고 포도작목반에도 갔다.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특히 과일을 직접 농사지어 와인을 만들겠다고 하자 반응은 더욱 냉랭했다. 근처에서 과일을 구입해 양조하는 것이 돈과 수고가 덜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의 훈수가 더해질수록 도미니크의 철학은 되레 견고해졌다.
“농업의 꽃은 술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좋은 술은 농부의 손에서 시작됩니다. 때문에 와이너리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기본이라고 봐요. 농부가 뙤약볕 아래 허리를 구부려 일하는 것은 배를 채우기 위함, 즉 생존을 위한 것이죠. 그러나 농업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술은 휴식과 즐거움을 위한 액체니까요. 우리가 먹는 쌀, 밀 같은 농산물은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그 농산물로 만든 술은 온전히 즐거움을 위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술을 만드는 일 속에서 가장 인간다운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애처롭고도 숭고한 농부의 삶
아쉽지만 첫해 사과 농사는 망했다. 안타깝지만 두 번째 농사도 망했다. 그 후로도 장마, 가뭄, 병충해 등 고난은 계속됐다. 자연의 힘에 맞서기 위해 다른 농부들은 관수를 대고, 비닐을 깔고, 농약을 치기도 했지만, 내추럴 와인을 고집하는 도미니크에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자연의 섭리대로 땅을 일궈온 것처럼, 야속할지언정 편법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쓰라린 경험은 고스란히 초보 농부에게 귀한 밑거름이 됐다.
“점점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아요. 흉년이든 풍년이든 자연이 주는 것을 우리가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고, 또 너무 기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건데, 그럴수록 나무가 깊게 뿌리 내릴 수 있는 좋은 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땅이 좋고 뿌리가 깊이 나면 나무들도 어려운 환경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거든요. 당장은 좀 힘들더라도 먼 훗날을 위해 그 토대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온종일 땅과 씨름하는 도미니크를 보고 있노라면 아내는 뭉클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애처로운 마음마저 든다. 남편이야 꿈을 이루느라 그렇다 하지만, 소설가 신이현의 꿈이 ‘농부의 아내’는 아니었을 터. 그러나 한국 생활이 서툰 남편의 뒷바라지는 고스란히 아내의 몫이 됐다. 생명역동농법을 위해 소똥이며 꿀벌이며 안 구해본 것이 없고, 갖가지 서류 준비며 비즈니스며 고객 응대며 자신도 처음 해보는 일들을 해내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옳고 가치 있는 일임을 알기에 그녀는 오늘도 기꺼이 꿈의 조력자가 된다.
“도미니크가 만약 다른 일을 한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돕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 사람이 하는 일이 굉장히 뜻깊다는 걸 느꼈고, 때론 그 모습이 감동적이기도 해요. 남편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옆에서 보면 ‘아, 저 사람이 하는 일이 굉장히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죠. 물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집안에서는 인정을 못 받는 것처럼 저도 바가지를 긁곤 해요. 그러고 나면 또 미안하고, 힘들어도 도와주게 되고. 사실 이 나이에 제게 새로운 꿈이랄 건 없지만, 차차 땅과 일이 안정되면 양조장을 떠나 조용한 곳에 가서 판타지 소설이나 써볼까 상상해봅니다.(웃음)”
포도밭에서 피어나는 예술
부부가 그리는 ‘작은 알자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물었다. 이에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저 하루하루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주어진 일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하자는 마음가짐 정도?
“시골에 산다고 하면 ‘힘들게 어떻게 사느냐’며 촌이 가진 소외감을 떠올리는 이도 있고, 전원주택 짓고 제2의 인생을 여유롭게 사는 모습을 그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식으로 시골이 주는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는데, 우리 생각은 달라요. 가령 문화, 예술 이런 걸 왜 도시에서, 갤러리에서만 해야 한다고 여기는지 모르겠어요. 최근 양조장에서 ‘농부 요리사 예술가’라는 작은 축제를 열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예술가를 비롯해 마을분들도 오시고 함께 기타 치며 노래도 불렀는데 활기가 넘쳤죠. 그렇게 밭은 수확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얼마든지 예술을 위한 창작의 장으로도 쓰임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렇게 자연을 향유할 때 땅도 더 즐겁지 않을까요?”
작은 알자스의 첫 와인이 출시된 지 이제 5년 차. 아직 농부로서도 사업가로서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부부는 서두르지 않는다. 와인 사업이 대박 나서 돈방석에 앉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에 그렇다. 그저 현재처럼 원하는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그뿐, 수익은 나중 몫이다. 그런데도 주변 이들은 흔히 “대박 나시라! 성공하시라”는 말로 그들을 재촉한다. 이에 그들은 말한다.
“그런 응원은 사실 별 의미 없습니다. 이미 원하는 인생을 사는걸요. 어쩌면 남들 눈에는 불안해 보일지라도 지금이 나쁘지 않거든요. 그러니 제발 그런 걱정은 넣어두셨으면 해요.(웃음) 적어도 우리는 지금 후회 없이 꿈꾸고 있다 말할 수 있으니까요.”
김치 맛이 나는 하이볼 칵테일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토치로 살짝 그을린 인삼정과가 올라간 생강 향의 칵테일은? ‘K-문화’ 열풍이 이국적일 수밖에 없는 공간 ‘바’(bar)에까지 가 닿았다. 전통주로 재현해낸 클래식 칵테일과 2022년 버전으로 재해석한 한국적인 안주가 기다리는 공간, 포시즌스호텔 서울의 컨템퍼러리 바 ‘오울’(OUL)이다.
오울 바는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통주와 한국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선보이자는 취지로 탄생했다. 바의 이름 ‘오울’(OUL)은 서울의 영문 스펠링 ‘SEOUL’에서 착안했다. 또한 올빼미를 뜻하는 영어 단어 ‘OWL’ 발음과의 유사성을 통해 잠들지 않는 도시 서울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메뉴판과 함께 제공되는 웰컴 드링크와 웰컴 푸드부터 독특하다. 김치누룽지 칩과 우엉조림이 스낵처럼 담겨 나온다. 웰컴 드링크는 주기적으로 바뀌는데, 충주 사과로 만든 로제 사이더를 활용한 드링크가 제공될 예정이다.
오울의 칵테일은 전통 시대, 근대, 현대의 세 가지 콘셉트에 따라 나뉜다. 취향에 따라 직접 술을 빚어 마시던 가양주 문화의 전통 시대, 맥주나 와인 등의 서구 주류가 막 유입되던 근대, 전 세계 주류 문화가 모여드는 현대의 서울을 대변한다. 모두 한국의 식재료나 주류를 활용해서 만들었으며, 한국 전통 음료를 모티브로 탄생했다. 크래프트 소주를 베이스로 한 ‘식혜’나 ‘수정과’ 등이 대표적이다. 안주 역시 떡볶이나 라면, 튀김 등 대중적인 음식을 활용해 모든 세대를 아우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철따라 달라지는 계절 메뉴도 있다. ‘화채’라는 칵테일은 제철 과일을 활용하는데, 지난달까지는 딸기화채가 손님들을 맞았다. 오울의 칵테일 개발을 담당하는 유승정 시니어 바텐더는 “여름에는 수박, 가을에는 배, 겨울은 모과를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4050 중장년층에게 가장 반응이 좋은 칵테일은 ‘서울뮬’과 ‘폭탄주’다. 모스코뮬(Moscow Mule) 칵테일의 한국식 변주인 서울뮬은 유 바텐더가 가장 애정을 갖는 칵테일이기도 하다. 볶은 마늘과 버터를 선비 보드카에 숙성시키고, 간 마늘과 생강으로 만든 시럽과 라임주스를 섞어 완성한다. 모스코뮬의 상징과도 같은 구리 머그잔은 방짜유기 잔이 대신한다.
이름만 봐선 도수가 어마무시하리라 생각되지만, 사실 폭탄주는 오울 바에서 취급하는 칵테일 중 가벼운 편에 속한다. 크랜베리를 훈연해 향을 첨가하고 애플 사이더(사과 증류주)를 섞어, 스모키하면서도 사과의 달달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소주잔을 따로 제공해, 칵테일 잔에 직접 소주잔을 빠뜨려 섞어 마시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굳이 성별 구분을 하자면 여성에게 식혜 칵테일과 랍스터 떡볶이 페어링, 남성에게 서울뮬 칵테일과 육회 페어링을 추천한다. 토끼 소주를 베이스로 한 식혜는 편하게 즐기기 좋다. 서울뮬은 알싸한 마늘 향과 탄산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칵테일과 마늘 향이라, 상상하기 쉬운 조합은 아니지만 막상 접해보면 그 맛과 향이 조화롭다. 서울뮬과 잘 어울리는 오울의 안주는 육회다. 이색적인 맛을 좋아하거나 새롭게 도전하기를 즐긴다면 한국의 블러디메리 같은 김치하이볼을 추천한다. 물론 육회는 오울의 모든 칵테일과 무난하게 잘 어울리므로 김치하이볼과의 페어링도 좋다.
오울에서는 메뉴에 없는 칵테일이라도 취향이나 선호하는 칵테일을 따로 주문하면, 전통주로 재현해낼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제공하고 있다. 페루와 칠레 등 남아메리카에서 주로 마시는 피스코 사워는 문배주로, 마티니는 국내에서 생산된 진으로 구현하는 식이다.
한국적인 분위기에 맞추기 위한 센스는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아이스버킷이 된 항아리, 워터 저그로서 충실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양은 주전자만 봐도 그렇다. 바텐더와 서버의 유니폼은 한복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제작됐다. 족자를 닮은 메뉴판, 병 단위로 따로 판매하기도 하는 투명 담금주 항아리도 오울만의 즐길거리다. 형형히 빛나는 네온사인 호랑이 민화, 바 내부를 가득 채우는 디제잉 음악이 낯설 수는 있지만, 그대로 발걸음 돌리기는 아쉽다.
오랜만에 만나는 외국인 친구나 외국인 바이어를 대접할 때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젊은 신입사원들과의 회식 때 찾는다면 ‘센스 있는’ 상사가 될 수도 있다. 혹은 1990년대에 처음 마주한 바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면서, 지금의 오울 바에서 ‘힙’(Hip)함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당시의 추억을 간직한 옛 친구들과 함께한다면 전통주 칵테일의 맛이 배가 될 테다.
오리지널 크래프트 사이더 하우스 댄싱사이더 컴퍼니가 뉴욕 국제 사이더 품평회인 NYICC (New York International Cider Competition)에서 각각 금상(Gold), 은상(Silver), 동상(Bronze), 브랜드상(Individual Winners)을 받으며 4관왕을 달성했다.
NYICC 는 미국 사이더 메이커 협회(USACM)의 공식적으로 인정된 카테고리를 사용하는 유일한 국제 품평회다. 미국 주류 유통사, 뉴욕 유명 호텔, 바이어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블라인드 시음으로 엄격하게 심사를 진행한다.
이번 2022 NYICC에는 300개 이상의 제품이 출품되었는데, 댄싱사이더는 과일 사이더(Fruit Cider) 장르에서 △와쥬블루-금상 △치키피치-은상 △허니문배-동상을 수상했다.
더불어 아시아권 제조사로는 유일하게 브랜드상을 받아 4관왕을 달성했다.
사이더(Cider)는 사과즙을 발효해 만든 술이다. 해외에서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 사과의 달콤함과 적당한 탄산감, 3~9% 알코올 도수 스펙트럼이 있어 센 술을 즐기지 않는 중년 여성들이 즐기기 좋은 술이다.
이대로 대표는 "해외 제품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우리나라 과일과 농산물로 오리지널 애플사이더를 만들고 있다"며 "우리만의 독창적인 애플사이더를 크래프트 사이더의 본 고장인 미국에서 인정받아 뿌듯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도 한국적인 미를 잘 표현한 제품들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댄싱사이더는 사과의 고장 충북 충주에서 한국의 애플사이더를 생산하는 크래프트 사이더 하우스로, 갓 짠 사과즙으로 국내 애플사이더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미국 유학 도중 애플사이더에 푹 빠진 이대로 대표는 한국 사과의 단맛을 살려 독창적인 애플사이더를 개발하고자 충북 충주에서 댄싱사이더를 시작했다.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을 즐거운 분위기에서 마셨으면 하는 의미를 담아 '댄싱'이라고 이름 붙였다.
댄싱사이더는 우리나라 과일과 농산물을 조합해 이전에 없던 독창적인 사이더를 개발하고 있다. 국내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입장에서 우리나라 사이더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퀄리티에 진심을 담고 있다. 댄싱사이더 한 병에는 사과가 2개 이상 들어가고 물은 거의 넣지 않고 있다.
댄싱사이더 직원들은 서로를 '선수'라고 부르며, 충주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댄싱사이더 마니아들을 '댄서'라고 부르며 소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한국관광공사(이하 관광공사)와 함께 주민들이 지속 가능한 지역관광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6월 13일(월) 오후 2시까지 ‘2022년 관광두레 신규 주민사업체’를 모집한다.
‘관광두레’는 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숙박이나 식음, 기념품, 주민 여행, 체험 등의 분야에서 지역 고유의 특색을 지닌 관광사업체를 창업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 사업이다. 2013년에 처음 시작해 올해 10년째가 되는 관광두레 사업은 2022년 5월 현재 65개 지역의 241개 주민사업체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이번 공모 대상은 올해 선정된 관광두레 신규 지역 19곳과 기존 관광두레 선정지역 26곳 등 총 45개 기초지자체에서 주민여행사, 숙박, 체험, 식음, 기념품 등의 관광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3인 이상의 창업 준비 또는 경영 개선을 희망하는 주민사업체다. 약 200개 사업체를 선발할 계획이다.
신규(19개 지역) △ 경기(부천, 남양주), △ 인천(미추홀, 동구), △ 강원(영월), △ 충남(보령, 금산), △ 충북(충주), △ 전북(전주, 완주), △ 광주(북구, 서구), △ 전남(영암, 무안), △ 경북(성주, 청도), △ 경남(창원), △ 부산(부산진구), △ 울산(남구)
기존(26개 지역) △ 경기(광주, 안산, 안성), △ 강원(강릉, 정선), △ 대전(유성, 대덕), △ 충남(천안), △ 충북(청주, 음성), △ 전북(고창, 임실), △ 전남(목포, 장성, 영광), △ 대구(북구, 달서), △ 경북(고령, 영천, 포항, 영덕), △ 경남(양산, 창녕, 고성), △ 부산(영도), △ 울산(울주)
신규 주민사업체, 최장 5년간 창업과 성장을 위한 맞춤형 지원
관광두레 주민사업체로 선정되면 최장 5년 간 최대 1억 1천만 원이 지원된다. 지원금 한도 내에서 교육, 견학, 상담, 시험(파일럿) 사업, 법률/세무 등 맞춤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 주민사업체의 경영 여건에 따라 성장단계별(예비, 초기, 성장) 맞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특히, 성장단계에 있는 주민사업체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스타 주민사업체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전담 상담, 투자 설명회(IR) 지도, 시연회 등 사업체 육성 프로그램을 지원할 계획이다.
관광두레 사업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주민공동체는 지역별 담당 관광두레 피디(PD)와 협의해 6월 13일(월) 오후 2시까지 관광두레 누리집에서 회원 가입 후 신청서와 붙임서류를 접수하면 된다. 관련 신청서와 관광두레 피디 연락처는 관광공사와 관광두레 또는 해당 지역 시·군·구청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청서 접수 이후에는 6월 서류평가와 7월 현장실사 및 소양 교육 아카데미, 8월 발표평가 등의 과정을 거쳐 8월 말에 최종 주민사업체를 선발할 예정이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이제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조금씩 일상을 회복해가고 있는 만큼 관광산업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시기”라며, “지역 주민들이 직접 자신들의 지역 관광산업을 활성화해나갈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설 연휴를 앞두고 지자체에서 홀몸노인을 비롯, 기초수급자와 장애인 등 소외된 이웃에게 명절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는 서초어르신행복e음센터·방배노인종합복지관에서 독거어르신 1080분께 손 편지와 명절 복(福)꾸러미를 직접 전달한다. 복꾸러미에는 떡국세트와 한과, 털모자, 마스크 등이 담겨 있어 취약 어르신들이 따뜻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결식 우려 어르신을 위해 무료급식 및 밑반찬을 제공한다. 방배·양재·서초중앙 노인종합복지관 3개소는 무료급식 어르신 330명에게 명절 특식을 전달할 예정이다. 양재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전통시장 소상공인들에게 저소득 어르신 500명에게 쌀, 떡국 떡, 유과, 과일 등을 담은 선물을 설 연휴 전까지 전달할 계획이다.
한편 홀몸노인이 명절에도 외롭지 않도록 ‘AI(인공지능) 스마트 맞춤형 돌봄서비스’ 등 맞춤형 돌봄 서비스가 제공된다. 지난해부터 서초구에서 도입한 돌봄 로봇 ‘서리풀복동이’에 만족하는 어르신들이 많아, 올해는 100대를 추가로 지원할 예정이다. 천정욱 서초구청장 권한대행은 “코로나 장기화로 힘든 독거 어르신들을 위한 세심한 지원으로 따뜻한 설 명절을 보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의왕시내손2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지난 20일 김 세트와 떡국 떡이 담긴 설명절꾸러미를 홀몸노인,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정 등 저소득층 50가구에 지원했다. 지영숙 내손2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은 “쓸쓸하게 명절을 보내는 이웃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며 “작은 정성이지만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혼자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늘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2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도 26일 관내 취약계층 30가구에 ‘설맞이 선물꾸러미 나눔’에 나섰다. 지역 희망이웃 후원금으로 구입한 곰탕, 떡국 떡과 유과를 포장해 각 가정에 안부인사와 함께 전했다. 윤장식 선부2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민간위원장은 “설맞이 선물꾸러미 나눔을 통해 홀몸노인, 장애인가정 등 어려운 이웃들도 행복한 명절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충주시 용산동행정복지센터에서는 25일과 26일 양일간 경로당 13곳을 방문해 새해 인사를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 지역 노인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건강과 안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조수정 용산동장은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경로당 운영 축소로 혼자 계신 시간이 많아진 어르신들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충북 충주시노인복지관 역시 설 연휴를 앞둔 26일 홀몸노인 600명과 선별진료소 의료진 100명에게 한과와 식혜를 전달했다. 홀몸노인의 따뜻한 명절나기를 기원하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최전선에서 힘쓰고 있는 선별진료소 의료진을 응원하기 위함이다. 김웅 충주시노인복지관 관장은 “설을 맞아 가족과 만나지 못하는 어르신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의미있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긴긴 산중 살림을 정리하고 충주 시내 복판에 있는 아파트를 정처로 삼은 것도 어쩐지 그답지 않지만, 술을 자못 꺼리는 기색이야말로 이변이라면 이변이다. 마주 앉자마자 술부터 목으로 털어 넣는 게 김성동(75)의 관습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객이 들고 간 술병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6, 7년 만에 재회한 참이다. 완연하기론 무자비한 세월이 그를 훑고 지난 뒷자리의 스산함이다. 백조 털처럼 희디흰 머리칼이야 개결한 느낌을 주지만, 눈빛에 실린 기운은 예전과 딴판이다. 억병으로 취하고도 몽롱해지는 일 없이 시퍼렇던 눈빛에 이젠 우수와 피로가 반반씩 얹혀 있다.
김성동은 시대가 낳은 소설가다. 시대를 대표할 지경으로 이름을 드날린 작가이기도 하지만, 질곡의 한 시대가 그를 문학의 바다에 밀어 넣었던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친이 살았던 시대의 파랑이 그에게까지 엄습해 평생의 족쇄로 작용했다.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문학이라는 쪽배를 얻어 타지 않았다면 벗어나기 어려웠을 굴레였다.
“나 같은 출신이 정상적으로 살 수 있었겠나? 좀도둑, 부랑아, 또는 알코올중독자로 전락하기 십상이었다. 나에겐 그나마 재능이라는 게 있어 타락하지 않고 소설가로 살아온 셈이다.”
김성동이 말하는 ‘출신’이란 실로 광기에 찬 시대의 산물이며 천형처럼 가혹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빨갱이’의 자식, 불온한 씨앗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좌익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는 한국전쟁 와중에 처형됐고, 남편의 이념과 이상을 공유했던 어머니 역시 지역의 여성동맹 위원장으로 활동한 죄목으로 옥살이를 했다. 할아버지와 큰삼촌 역시 좌익 간부였다. 집안이 통째 소용돌이에 뛰어들었으니 이후의 풍비박산과 후유증의 크기와 깊이에 대해선 두말하면 잔소리. 김성동은 철들기 전부터 철창 없는 감옥 같은 세상에 던져졌으며, 철들고 나서는 두려움과 외로움 외에 자신의 내면에 들어 있는 정서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주와도 같은 붉은 낙인. 삐딱한 시선들. 전망 부재의 미래. 무엇보다 괴로운 건 연좌제의 사슬이었단다.
“연좌제에 묶여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웠다. 공무원으로 취직할 수 없었고, 군인이 되더라도 장교가 될 수 없었으며, 사법고시에 붙을 경우에도 임용의 길이 막혀 있었다. 이게 연좌제에 따른 ‘삼불(三不)의 덫’이다. 출세를 꿈꾸기는커녕 당장의 호구지책이 막막했지. 그래 고3 때 출가해 절밥을 얻어먹고 살았다. 절 아니고는 갈 곳이 없었고, 중 아니고는 할 짓이 없었던 거다.”
승려 생활을 하다가 소설가로 등단했지? 장편 ‘만다라’로 문단과 대중을 사로잡았고.
“세상에서 박수를 치더라고. 돈과 명예도 얻었다. 이렇다 할 ‘쯩’을 가지기 힘들었던 나에게 소설가라는 ‘쯩’이 주어진 건 하나의 활로였다. 연좌제가 나를 문학으로 밀어 넣은 셈이다.”
2018년엔 6권짜리 대하소설 ‘국수’(國手)를 출간해 저력을 과시했다. 자그마치 27년간의 집필을 통해 완간한 이 소설로 선생의 존재감이 새삼 부각됐다. ‘국수’를 완간한 감회가 각별했겠다.
“일을 좀 해냈다는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꼈다. 미심쩍긴 하지만 비로소 말년에 소설을 좀 썼다는 기분, 그런 거.”
미심쩍다?
“제대로 된 소설이 아니라는 얘기다. 원래 15권으로 완성을 보려 했으나 미완에 그쳤으니까. 한 시대의 뒤안길에서 이름 없이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장강대하로 펼치고자 한 의도에 미달한 작품이라 만족할 수 없었다. 그보다 아쉬운 건 순수한 조선말을 더 많이 찾아내 문장에 끌어들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수’를 완독한 평론가가 있을까?”
‘국수’는 조선 말엽의 정치사회적 격변을 민중사적 관점으로 세밀하게 풀어헤친 작품이다. 세월 따라 허공으로 흩어진 전통사회의 토속어들을 푸짐하게 되살려내기도 했다.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듯이 지독한 집념으로 수집한 조선말을 문장에 대대적으로 도입했는데, 이는 ‘국수’가 가진 정체성의 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 때 손에 든 책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대중의 관심을 사기도 했다.
나는 김성동 소설의 애호가지만 ‘국수’를 다 읽지 못했다. 조선말들의 도도한 행진에 질려서다. 오염되지 않은 순정한 토속어들은 아름답고 고귀하지만 소화하기 어렵더라. 평단의 반응은 어땠나?
“반응? 평론? 그런 거 거의 없었다. 평론은 고사하고 ‘국수’를 완독한 평론가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순수한 우리말들 앞에서 다들 그냥 나가떨어진 것 같다.”
진땀을 빼게 하는 작품이 ‘국수’만은 아니다. 김성동이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는 구도소설 ‘꿈’에서도 조선말을 소낙비처럼 쏟아냈다. 원로작가 서정인은 ‘꿈’에 대해 말하길, ‘이를 악물고 읽었지만 완독에 실패했다’고 했다.
쉽게 읽히면서도 재미와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니고선 독자들의 환심을 사기 어려운 게 요즘의 독서 시장이다. 조선말을 과도하게 구사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전혀! 조선말에 관한 나의 관심은 신앙에 가까울 정도다. ‘찔레꽃머리’라는 조선말의 뜻을 아나? ‘모내기철’을 뜻하는 단어인데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 조상들이야말로 타고난 시인이었다.”
언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천한다. 시대의 감수성을 반영하며 자생적으로 유전한다. 게다가 한글은 어떤 말이든 흡수하는 포용력을 갖고 있지 않나?
“요즘의 우리말은 이미 왜색과 양색에 물들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적어도 시인과 소설가라면 모국어의 원형을 지켜낼 책무를 다해야 하지 않겠나? 순교처럼 치열하게.”
작가라면 다들 개성을 돋우기 위해 방울방울 피를 뿜듯이 글을 쓴다. 한국 작가들의 소설 품질에 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기만의 빛깔을 내는 작가가 드물더라. 하나같이 영어나 일본어 번역체 문장에 길들여져 개성을 느끼기 어렵다. 저자의 이름을 가리고 작품을 읽어보면 한 사람이 쓴 소설처럼 문체가 다 똑같더라고. 문장 한 줄만 읽고도 누구의 작품인지 대번에 알 수 있는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가 하나라도 있던가?”
김성동은 널찍한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베란다로 들이치는 햇살을 비스듬히 받으며 의자에 고즈넉이 앉은 그의 몸에 음영이 짙게 드리워져 한 점 조각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벽마다 가득 채워진 책장. 심심파적으로 쓴 서예들. 그가 ‘성자’라 부르는 부모님 사진들. 비승비속(非僧非俗)의 그가 새벽마다 그 앞에 좌정하는 미륵불상 하나. 예전의 산중 살림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집 안 풍경이지만 뭔가 밋밋한 분위기다. 문장의 미화 작업에 도가 튼 반면, 환경미화엔 젬병이라 그저 어질러놓고 사는 건 여전하지만 생기의 함량이 예전과 다르다. 전에는 발이 달렸는지 날개가 달렸는지 책들이 우르르 책상과 방바닥으로 내려와 춤을 추었다. 육필 원고 더미들이 덩달아 생동하는 스텝을 밝았다. 말하자면 전엔 창작 열기로 후끈했다. 그가 사는 곳이 창작의 천국 아니면 지옥임을 알게 했다. 한데 지금은 공기가 다르다.
연좌제와 사찰이 글 쓸 힘을 추동해
내가 아는 김성동은 소설이라는 기저질환을 앓는 이다. 온몸으로 소설의 현(鉉)을 탄주하는 인물이다. 소설이 써지지 않으면 마치 지구에 빙하기가 도래한 듯 몸을 떨며 절규하고, 날밤을 지새워 술을 마시며 뜻대로 풀리지 않는 작품에 사무쳐 각혈과도 같은 넋두리를 토하기를 밥 먹듯이 하던 사람이다. 그의 술타령은 과도해 징그러운 구석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순정한 문학정신엔 경이로웠다. 그런데 이제 소설을 손에서 놓았나? 75세란 물러설 나이? 그가 말하길 “힘이 빠져 소설을 쓸 엄두를 낼 수 없다”는 게 아닌가.
“소설은 기운이 있어야 쓸 수 있다. 난 ‘국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다. 나이도 있고, 이제 일을 벌이기보다 정리하는 단계다. 절대적인 에너지를 갖고 소설에 몰입했던 시절은 저문 셈이다. 여전히 글을 쓰긴 한다. 소설 대신 역사 에세이를.”
올해 72세인 하루키는 새벽마다 1시간씩 마라톤을 한다더라. 재능보다 체력으로 승부를 내는 세계, 그게 소설 쓰기의 한 측면일지도.
“힘이 달리면 글을 물고 늘어질 수 없다. 단어 하나를 끝없이 파고드는 게 나의 글쓰기인데 그게 되지 않더라고. 몇 날 몇 밤씩 육필 원고를 쓸 수 있었던 과거의 체력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술 마시기도 힘에 부치더라.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필름이 딱 끊기거든. 뭘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소설을 쓰지 않는 선생을 예상하지 못했다. 죽는 그날까지 펜을 잡을 기세에 충천했었으니까.
“요즘 내가 평생 맛보지 못한 안도감을 느낀다. 왜냐고? 연좌제 사슬이 풀렸기 때문이다. 2년 전에 어머니가 타계하면서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사찰(査察)에서 비로소 해방됐거든. 어머니 작고 전에는 매달 한 번씩 기관원이 찾아왔었다. 그 공적 라인이 사라지자 평온감이 몰려들더라고. 한편으로는 서운하던데!”
후련한 게 아니고 서운했다고?
“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평생 글 감옥에 갇혀 살았다. 목이 조여드는 것 같은 강박감을 가지고 소설을 썼거든. 사방팔방으로 꽉 막힌 유폐의 심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소설이었으니까. 소설이 아니고선 살 수 없었다. 바꿔 말하자면 연좌제와 사찰이 나로 하여금 글 쓸 수 있는 힘을 추동시켰다고. 그런데 사찰이 끝나자 긴장감이 확 풀리더군. 이게 소설을 쓸 힘을 앗아간 요인이기도 하다.”
비바람의 횡포가 있어야 꽃을 피우는 나무. 그가 체화한 창작의 생태계가 그쯤? 족쇄가 사라지자 맥이 풀려 소설 쓸 맛을 잃었다는 얘기에 삶의 역설이 느껴져 씁쓸하다. 감시와 억압의 공기를 마시며 우울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뒤늦게 찾아온 평온과 고통의 산물인 소설의 빛, 이 둘 중 어느 쪽이 더 값진 인생의 열매일까.
노년이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좋은 때다. 눈길이 순해지고, 적당한 둔감으로 인생을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을 터인데, 김성동의 구름처럼 나른한 눈빛으로 보자면 그는 어느덧 바깥보다 안을 무심히 들여다보는 일에 익숙해졌나 보다. 맵찬 언설을 예사로 쏟아냈던 그의 입에서는 이제 온순한 언어들이 데굴데굴 굴러 나온다. 이런 그를 여전히 기습하는 건 외로움, 또는 허무다.
“불경(佛經)은 가르치길 일체가 무상하니 집착을 놓으라 한다. 그러나 무슨 수로 집착에서, 욕망에서 벗어나겠나? 소설이라는 반성문을 통해 정직하게 나를 들여다보기를 거듭했지만 가벼워지기 어려웠다. 끈질기게 들러붙는 건 늘 외로움이라는 놈이었다. 실존의 고독, 이건 어쩔 수 없는 화두다. 더 큰 덩어리에서 보면 인생은 결국 허무한 것이고.”
보이는 것 없는 길 위에서 홀로 앓기. 인생사 그렇게 덧없더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