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골프 덕에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입력 2026-02-24 07:00

파크골프가 중장년의 삶을 바꾸는 이유

전영창 한국프로파크골프협회 수석부회장


(스민스튜디오)
(스민스튜디오)

1999년 일본 후쿠오카. 공항 인근의 한 공원에서 전영창 사단법인 한국프로파크골프협회 수석부회장은 낯선 풍경을 마주했다. 잔디밭 위를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들, 연인과 부모, 아이와 노인이 뒤섞여 공을 치는 모습이었다. 이용료는 커피 한잔 값보다 저렴했다. 당시 우리나라 공원 풍경과는 정반대였다. 잔디는 ‘보는 공간’이지 ‘들어가는 공간’이 아니었고, 운동은 특정 시설에서만 허락되는 활동이었다. 그는 “선진국은 잔디를 막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말한다. 파크골프의 재미보다 공공공간을 대하는 태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골프장을 만드는 집안에서 자란 그는 골프란 ‘별도의 공간에서, 비용을 들여야만 가능한 운동’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일본의 파크골프는 달랐다. 잔디는 닫혀 있지 않았고, 운동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그날의 경험이 전영창 수석부회장의 인생을 바꿨고, 한국 파크골프의 출발점이 됐다.


잔디밭에서 시작된 한국 파크골프의 첫 장면

전영창 수석부회장이 우리나라에 파크골프를 처음 들여온 것은 2003년이다. 귀국 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환경공원 설계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제안했다. 넓은 공원을 어떻게 시민들에게 열 것인지 고민하던 그는 “파크골프는 고비용·고난도의 스포츠가 아니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생활형 야외 활동이자 공원시설의 일부”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에 대한 반응은 차가웠다. “누가 이런 운동을 하겠느냐”, “괜히 땅만 차지하는 시설 아니냐”는 말이 이어졌다. 골프라는 이름이 붙은 것만으로도 부담스럽다는 시선이 많았다. 노인을 위한 시설로 보기엔 생소했고, 일반 시민을 끌어들이기엔 낯설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파크골프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파크골프장을 조성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친을 설득해 조성했지만, “이용자들이 다시는 이런 데 데리고 오지 말라”는 말이 공공연히 오갔다.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붐비는 지금의 풍경을 떠올리면 믿기 어려운 장면이다. 당시만 해도 파크골프는 ‘어정쩡한 운동’, ‘정체 불분명한 시설’로 인식됐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사단법인 한국파크골프협회, 대한파크골프협회 등을 만들어 파크골프를 홍보하는 데 매진했다. 파크골프가 ‘잘 치는 사람만 하는 운동’이 아니라 ‘누구나 밖으로 나와 즐기는 운동’임을 꿰뚫어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크골프장은 고령자들이 집 밖으로 나오는 몇 안 되는 이유가 됐고, 하루의 목적지가 됐다.


(스민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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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기대하게 만들다

전영창 수석부회장은 파크골프의 핵심은 ‘성취 구조’라면서 “운동을 처음 접해도 30분이면 공을 맞힐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실 부상이나 비용 문제로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50대 이후 세대가 주저하는 이유는 바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파크골프는 그 장벽을 낮췄다. 특히 여성 중장년층의 반응이 빨랐다. 테니스·탁구·배드민턴처럼 순간적인 순발력과 파워가 필요한 운동은 진입장벽이 높다. 반면 파크골프는 파워보다 컨트롤이 중요하다. 거리도 짧고, 규칙도 단순하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형성된다. 전 수석부회장은 파크골프를 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유심히 관찰해 또다른 답을 찾았다.

“이분들은 과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내일 어디서 칠지, 다음엔 누구를 만날지가 대화의 핵심이에요. ‘내일’, ‘다음’을 얘기하죠. 다시 말해 파크골프가 기대감을 주는 운동인 거예요. 은퇴 이후 삶에서 사라지기 쉬운 것이 ‘기대감’인데, 파크골프는 그 기대를 다시 만들어주는 거죠.”

운동 자체보다 ‘사람을 만날 이유’, ‘외출할 명분’, ‘내일을 기다리게 하는 약속’이 노인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힘이다. 건강은 그다음이다. 걷고, 웃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움직인다.

그는 “파크골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생활 리듬을 되찾게 하는 장치’”라고 강조했다. 기록을 남기기보다 내일을 만들기 위한 운동. 그 점이 중장년에게 깊이 스며든 이유다.


(스민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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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스포츠라는 편견을 넘어

은퇴 후 많은 중장년이 겪는 공통된 문제는 ‘할 일이 없는 하루’다. 남성은 사회적 관계가 끊기고 여성은 빈 둥지 이후의 공허함을 마주하는 그 틈을 비집고 파크골프가 들어왔다. 비용 부담이 적고, 혼자서도 가능하며, 무엇보다 사람을 다시 만나게 만들면서 생활체육으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전 수석부회장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현재 전국의 파크골프장은 450여 곳, 스크린 파크골프장도 400여 곳이 있다. 공식 등록 동호인만 20만 명이 넘는다. 유례없는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성공이 오히려 새로운 한계를 만든다고 판단했다.

“생활체육만으로는 산업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스타플레이어도 나오지 않고, 미디어도 붙지 않죠.”

그가 지적한 파크골프의 고질적인 이미지는 세 가지였다. ‘노인 스포츠’, ‘하천변 운동’, ‘게이트볼의 연장선’. 이 프레임을 깨지 못하면 파크골프는 더 확장될 수 없다고 봤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파크골프의 프로화’였다.

당구 프로처럼 대한체육회 산하 생활체육과는 별도의 영역으로 프로 시스템을 구축했다. 최근 232명의 1기 프로를 선발했고, 올해 5번의 정기 투어 대회를 계획하고 있으며, 중계와 기록 시스템도 준비 중이다.

“프로가 생긴다는 것은 스포츠가 한 단계 올라섰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잘 치는 사람을 뽑는 조직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를 만드는 거죠.”

내가 하는 운동에 ‘전문가’와 ‘무대’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인식은 달라진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생활체육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왜 돈 이야기를 하느냐”는 거센 비판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산업화가 필요하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웰니스, 3대가 함께 즐기는 스포츠

전영창 수석부회장은 최근 ‘파크골프 누구나 즐길 수 있다’를 펴냈다. 이 책은 23년간 파크골프계에 몸담아온 개인의 회고록이라기보다, 파크골프라는 운동이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까지 왔고, 앞으로 어디로 갈 수 있는지 구조적으로 정리한 기록에 가깝다.

“파크골프를 여전히 놀이로만 소비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운동을 정책의 언어로, 산업의 관점으로, 지역의 자산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파크골프를 둘러싼 담론이 개인 취미의 차원에 머무른다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6개월간의 집필 과정은 그에게도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파크골프를 비즈니스와 산업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며, 운동을 웰니스·관광·주거와 결합한 확장 모델로 구체화하게 됐다. 현재 진행 중인 충주의 온천 빌리지 프로젝트, 스크린 파크골프 확산, 도심 접근형 시설 구상은 모두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가 반복해 강조하는 키워드는 ‘웰니스’다.

“건강을 지키고 싶은 마음, 맛있는 걸 먹고 싶은 욕구, 재미있는 운동을 하고 싶은 바람은 사람이 있는 한 바뀌지 않습니다. 파크골프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드문 스포츠입니다.”

또 하나 주목하는 점은 파크골프가 세대를 잇는 구조라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이면 조부모, 부모와 함께 즐길 수 있다. 실제로 파크골프장에 가족 단위 방문이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부모가 즐기는 운동을 자녀도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은 다른 스포츠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다. 파크골프가 세대 간 단절을 완화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며 “파크골프는 단독 스포츠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민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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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넘어, 관계와 지역을 움직이다

파크골프의 또 다른 힘은 ‘관계’다. 다만 그 관계는 가족이나 세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영창 수석부회장이 특히 강조하는 지점은, 이 운동이 노인과 장애인을 동시에 밖으로 나오게 하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라는 사실이다. 그는 파크골프의 사회적 의미를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장애인 파크골프 사례를 꺼낸다.

“지인을 통해 ‘장애인에게 잔디밭을 밟게 해준 유일한 스포츠’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 운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공공공간에서조차 접근이 제한되기 쉬운 잔디 위를,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상징성이 크다.

파크골프는 구조적으로 접근성 높은 스포츠다. 완만한 동선, 짧은 이동 거리, 단순한 규칙은 고령자뿐 아니라 장애인에게도 중요한 조건이다. 파워나 순발력보다 컨트롤과 집중이 핵심인 경기 방식은 신체 조건의 차이를 상대적으로 줄여준다.

물론 장애인 파크골프가 제도권에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반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관점 자체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봤다. 여의도 한강공원 파크골프장은 처음부터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해 조성됐고, 이후 장애인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현재 파크골프는 장애인 체육 종목으로 전국 대회가 열리고 있으며, 장애인 파크골프 국제대회도 정례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해외 선수들이 한국을 찾아 경기를 치르고, 한국형 파크골프 모델을 배우는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이를 “한국이 주도하는 드문 스포츠 국제화 사례”라고 설명한다.

이 국제대회가 갖는 의미는 단순한 경기 개최를 넘어선다. 장애인에게 스포츠는 건강관리 수단이자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통로다. 특히 고령 장애인의 경우 외출 자체가 줄어들기 쉬운데, 파크골프는 ‘혼자서도 나갈 수 있는 목적지’를 만들어준다. 기록을 세우거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스포츠가 아니라, 사회에서 밀려나기 쉬운 사람들을 다시 공공의 공간으로 초대하는 장치라는 의미다.

“노인도, 장애인도 밖으로 나올 이유가 없으면 집에 머무르게 됩니다. 하지만 파크골프는 그 이유를 만들어주는 스포츠입니다. 제가 20여 년 동안 이 현장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도, 파크골프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삶의 구조를 바꾸는 힘을 지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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