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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남 주름 가진 사나이, 한정수 동년기자
- 이렇게 세상 편해 보이는 사람 또 없다. 웃는 인상은 기본이다. 모두를 향한 감사가 담긴 듯 등을 굽혀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인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몸짓, 평생 몸에 밴 버릇 같다. 누군가 말을 건네면 온화하게 웃고, 나직하게 말한다. 속 깊게 생각한 뒤 유쾌한 해답을 찾아주는 사람, 한정수 동년기자를 만났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명품 패널! 한정수 동년기자는 최근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네이버 채널 시니어 패널로 등장했다. 1기부터 쭉 동년기자로 다방면에 참여해왔는데 이번에는 영상 출연에 과감히 도전한 것이다. 전자 체온계 사용후기에서부터 신세대 음료 마시기, 다림질 사용기를 통해 적절한 입담과 친근한 표정으로 프로그램 중심을 잡았다. 촬영을 진행했던 후배 기자도 한정수 동년기자의 준비성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촬영하는 거 재미있었어요. 저는 뭐든 시작하기 전에 봐야 할 자료가 있으면 꼭 여러 번 챙겨보고 숙지합니다. 따로 관련 자료도 찾아보고, 다리미 촬영 전에는 아내에게 다림질 방법을 물어도 봤습니다. 뭔가 하나 발견했을 때의 희열, 저는 그런 준비단계가 좋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 나서서 강연을 하는 직업이 촬영 현장에서 제대로 먹혔다. 적당한 타이밍에 호응하고 질문하는 것이 베테랑 방송인만큼이나 능수능란했다. 나서지 않으면서도 옆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실력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나를 가만히 보니까 리더는 절대 아니고 뒤에서 누군가를 보듬어주는 역할이 더 맞더라고요. 어디를 가나 리더들은 많이 흘리고 다녀요. 리더가 놓치는 것을 주워 담는 역할, 목적 달성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거나 낙오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힘을 줘서 몰고 가는 역할이 저에게 맞습니다. 그래서 제 별명이 양치기견인 ‘보더콜리’입니다.” 봉사와 우연이 천명이 되다 올해 일흔두 살의 전문 강사 4년 차인 한정수 동년기자. 변화관리와 인간관계에 관한 주제로 주로 강연한다. 강연장에서 한정수 동년기자의 인기는 정말 남부럽지 않다. 강의가 끝나면 박수뿐만 아니라 사진 찍자고 다가오는 이들에, 명함을 요구하는 이도 많다. “그런데 처음부터 전문 강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사료 사업을 하다가 정년퇴직한 이후 ‘뭘 하면서 살까’를 고민했습니다.” 은퇴자로서의 고민은 봉사활동을 하도록 이끌었고 스피치 학원으로까지 인도했다. 공부를 썩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기에 대중 앞에 서서 방향을 제시하는 선생으로서의 삶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정년퇴직과 함께 ‘경로자 우대카드’를 받아들고 나니 뭘 해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하면서 뭘 배우고 싶어 합니다. 이런 고민으로 대한노인회에 전화를 걸었더니 집에서 가까운 경로당에 가서 봉사를 하라더군요.” 처음에는 성의 없는 답변에 할 말을 잃었다. 화를 누르고 생각해 얻은 결론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모르면 어린애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대한노인회의 조언대로 경로당에 가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봉사하러 가니까 경로당 총무가 ‘할 짓이 없어서 젊은 놈이 경로당에 나오냐’고 언성을 높이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생각한 바가 있어서 경로당에 나간 거잖아요. 한 달 근무를 해보니 너무 열악하더라고요. 정부에서 한 달에 36만 원씩 10개월을 줘요. 그 돈으로 전기요금, 난방비 등을 다 해결해야 하니까요.” 경로당에는 58명의 어른이 계셨다. 이런저런 비용을 따져보니 매일 한 사람당 200원을 지원받는 셈이었다. “안되겠다 싶어서 그 길로 경로당 근처의 절, 성당, 교회, 기업체를 찾아다녔어요. 한 달에 한끼 식사비만 기부해 달라고 했더니 어르신 인원이 너무 많아서 힘들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줄 수 있는 일정 금액을 통장에 넣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3만 원, 5만 원 조금씩 통장에 쌓이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나들이도 다녔다. 멀리 갈 일이 생기면 간호사도 동행했다. “다행히 다니면서 사고 한 번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소문이 났어요. 다른 경로당에서도 봉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어요. 그런데 문제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결국은 돈 달라는 말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걸 많은 사람 앞에서 하려니 말이 잘 안 나오는 거예요. 정식으로 한국언어문화원에 들어가서 스피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6개월 과정 동안 정말 열심히 배웠다. 발성 연습을 할 때는 30분 동안 페트병에 담긴 물을 두 병이나 마셔댔다. 6개월 하고 났더니 물 한 모금 안 마시고도 목소리가 자유자재로 나왔다. “첫 강의는 한국생산성본부에서 했습니다. 스물아홉 명 앞에서 강의했는데 28장 되는 자료를 정말 달달 외워 갔습니다. 첫 번째 강의에서 만족도 조사가 아주 높게 나왔습니다. 만점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일을 한다니까 고교 동창들은 희한하게 보더라고요. 어렸을 때 제가 싸움질은 좀 했는데 공부는 못했거든요.(웃음) 처음부터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4년째 하고 있고 지금은 한국언어문화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린 학생이 아닌 강사들을 위한 ‘파워 스피치’ 수업을 진행한다고. 주어진 시간 안에 대중이 알아듣고 또 새길 수 있는 이야기를 펼치는 방법을 전수 중이다. “리더 성향은 아니지만 내 것이라고 강하게 느끼는 것이 생기면 끝까지 남아서 결국은 뭔가 하더라고요. 강의를 4년째 하다 보니 어디서 강의 들은 누구라고 인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강의안 자료를 모아 공동저서로 2015년과 2017년 책을 냈다. 그리고 올해 단독으로 ‘우연은 천명이다’란 제목의 책을 준비 중이다. “저는 공부 잘하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경로당에 갔다가 말을 못해서 스피치를 배우고 눈에 띄어서 강사로 활동하고…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늦게나마 공부를 시작해 참 재미를 느끼며 살고 있어요. 우연히 하나씩 주어진 것을 받아먹은 거죠. 그 결과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길로 들어섰습니다. 제가 태어난 소명은 아마 누구를 가르치고 도우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배우고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한정수 동년기자. 그런데 꼭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란다. 뭔가 알아야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장애인 인권과 관련한 공부를 하고 있다. “사회적인 편견도 있고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인식 부족 탓에 약해지고 비굴해지고 스스로 아무것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장애인들이 꽤 있습니다. 그냥 놔두면 낙오되거나 자연 도태됩니다. 그들을 잘 추슬러 끝까지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앞으로의 인생은 이 방면에서 펼쳐보려고 해요.” 사랑하는 아내 이야기 인터뷰 중간중간 ‘아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우선 3년 전 아내의 친구들이 살고 있는 일산으로 집을 옮겼다고 했다. “강남에 살 때 종종 아내의 친구들이 우리 집에 자주 찾아왔습니다. 아내랑 놀려고요. 그런데 어느 날 힘드니까 저희 부부더러 이사 오라고 하더군요. 아내 친구가 민낯에 슬리퍼 끌고 와서 냉장고 열어 집에서 먹을 거 먹고요. 아내도 외롭지 않고요.” 한정수 동년기자뿐 아니라 친구들까지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는 듯했다. 물론 이유가 있었다. “아내가 근무력증을 앓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치매로 오래 편찮으셨어요.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9년 만에 아내에게도 병마가 찾아왔어요. 그때는 집에 가면 다 환자였습니다. 제가 뭘 했겠어요? 재롱부려야죠. 웃고 싱거운 소리 하면서 맨날 즐겁게 웃었어요. 어느 날 아내가 너무 아파 제가 어머니를 일주일 모셔봤어요. 도저히 못 모시겠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그때 되게 울었어.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젊은 시절 만나 6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돈 열심히 벌어야 했던 시절에는 남편 뒷바라지, 어머니 아프실 때는 병수발. 이제는 자신이 몸이 아파서 하고 싶은 것도 못해보고 나이 들어버린 사랑하는 아내다. 연애 때 얘기 좀 들려 달라 하니 바로 어제 얘기를 꺼내는 사람처럼 얼굴이 빨개진다. 조계사에서 흑석동으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바래다주다 통금에 걸린 일화, 일이 바빠 못 갈 뻔했던 신혼여행을 친구 때문에 다녀왔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많은 것이 부족하던 시절 감내하면서 남편을 믿고 지지해준 멋진 여인이 한정수 동년기자의 아내였다. “제가 지방으로 강의 다닐 때는 아내와 꼭 같이 다닌다고 했잖아요. 아내가 사실 멀미를 해서 버스를 못 타요. 그런데 남편이 운전하는 차는 참 잘 타요. 타자마자 양말 벗고 발도 올려놓고 등도 뒤로 하고 잠도 푹 잘 자고요. 비 오는 날 차 타는 걸 좋아하는데 차 안에서 비 내리는 걸 보는 모습이 꼭 가을날 코스모스를 감상하는 소녀처럼 예뻐요. 생각만 해도 좋아요. 요즘은 아내의 친구들 덕분에 마음이 편해요. 저녁때는 대신 제가 집에 일찍 들어가죠.” 어머니가 남기신 유산 “살아왔던 모든 게 다…. 제가 어디에 글을 써도 은퇴 전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아요. 너무 힘이 들어서요. 다음에 그 얘기로 책 하나 내려고요.(웃음)” 옛이야기 좀 들려 달라고 하니 눈빛이 흔들렸다. 긴 웃음이 깊은 한숨으로 느껴졌다. 1940년대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GDP 60달러 시대. 없어도 너무 없던 시절이었다고 운을 뗐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뇌출혈로 돌아가셨어요. 제가 다섯 남매의 장남인데 아버지 장례 다 지낼 때까지 눈물 한 방울 안 흘렸어요. 아버지가 굉장히 미웠어요. 갑자기 돌아가셨잖아요. 그때 딱 드는 생각이 ‘어떻게 하면 굶지 않나’였습니다. 가족들 굶기지 않으려고 안 해본 것이 없어요. 얼굴에 웃음기도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자꾸 저더러 웃으래요. 싫어도 어머니 때문에 입이라도 웃었어요.” 얼굴을 찡그리면 어머니가 역정을 내셨다. 어머니 앞에서만이라도 웃어보려 노력했다. “어머니가 슬퍼하는 게 싫었어요. 힘들어도 싫어도 짜증이 나도 무조건 웃었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습관이 됐고 긍정적인 사고로 이어진 겁니다.” 어머니는 한정수 동년기자에게 호 하나를 지어주셨다고 했다. 덕강(㥁姜)이었다. “어머니가 너는 복이 오는 걸 원하지 말고 덕을 쌓고 살라며 지어주셨습니다. 그분 생각에는 제가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고 있고 또 그렇게 살아지고 있습니다.” 한정수 동년기자랑 마주하고 얘기하다 보니 집중해서 보게 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왼쪽 뺨의 주름이다. 팔자주름이 깊게 패이면 사나워 보인다지만 왼쪽 팔자주름의 의미는 남다르다. 기꺼이 웃을 때 코의 왼쪽 근육을, 인위적으로 웃을 때는 오른쪽 근육을 사용해 웃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 유심히 본다. 한정수 동년기자의 왼쪽 팔자주름은 길고 깊다. 오랜 세월 웃음을 잃지 않고 시대를 이겨내며 살아온 우리 세대 아버지의 얼굴이다. 문득 ‘미남 주름’이란 말이 생각났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려 노력했던 한정수 동년기자. 그의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 브라보 3기 동년기자 릴레이 인터뷰를 본지 에디터가 진행합니다.
- 2018-11-0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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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의 날 단상
- 기억의 무게에 견뎌 내는 일 불쑥 불쑥 과거로 눈 돌려지는 것이 심신 쇠약해지는 것 보다 어려운 크던 작던 한 번 오면 잘 안 떠나려는 병 젊은 청춘 시샘하는 폭군 생애 말 못할 사정 많은 걸 인정하는 솔직 젊었을 때보다 나이 더 먹었을 뿐 풍부한 경험의 편협성을 인정하기 싫은 인생에서 두 번째 아이로 성장해 어쩌면 아이 둘 합친 것 같은 젊은이들이 참고 따라주기에 큰소리 한 번 쳐보는 스스로 노인인 걸 알지 못 하는 계산 해 볼 것 없이 얻은 것 보다 잃은 게 훨씬 많은 늙어보지 않은 청춘에 이해 구하는 그러나 인생을 노인만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 2018-10-0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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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천명처럼 받아들인 일, 강사
- 나는 우연한 기회로 강사 일을 시작했다. 은퇴 후 경로당 봉사를 시작했는데,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잘 못해 한국언어문화원에서 스피치를 배웠다. 몇 개월 후 어느 정도 발성 훈련이 된 듯해 대통령기쟁탈 웅변대회 출전해보자 하고 나갔다가 특등을 했다. 그러자 자신감이 생겼고 2년 뒤에 출전한 대회에서는 대상을 받았다. 그 후 우연히 시니어파트너즈 강사 과정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노느니 한번 배워볼까?’ 하는 마음으로 등록했다. 그런데 교육을 받는데 몰라도 이렇게 모를까, 내가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사실에 무척 당황했다. 교육이 끝나면 필기시험을 봐야 했는데 떨어지면 수료증도 못 받고, 실기시험에 떨어지면 강사 자격증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했다. 얼마나 긴장이 됐는지, 동기생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나만 떨어져 망신당하는 꿈까지 꿨다. 병아리 강사에게도 회사에서 강의 기회를 줬다. 그러나 나는 계속 미룬 채 닥학열공(닥치는 대로 배우고 열심히 공부)하며 내공을 쌓았다. 첫 강의는 29명의 사람들 앞에서 이루어졌다. 어떻게 끝났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박수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강단에서 내려오던 순간의 희열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됐다. 이날을 계기로 나는 강의를 계속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강의의 매력은 신나고 재미있고 보람찬 데 있다. 강사가 마련한 유쾌한 긴장 속으로 이끌려오는 수강생들, 강의의 본질과 개념을 터득해가는 눈빛들, 그 주인공들과 여백을 서서히 채워나가는 뿌듯함이 있다. 온통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사는 이 시대에 눈빛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사람은 아마도 강사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강사가 되는 데는 어려운 점이 있다. 강사의 기본은 스피치다. 말은 그냥 말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이 누군가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면 그 말은 사람에게 행복의 도구로 사용된다. 그러려면 같은 말도 더 맛깔스럽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강의가 끝나고 이메일 혹은 전화로 상담이 들어올 때 이 직업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을 하며 보람을 느낀다.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 못 했는데 그런 내가 연단에 서고 강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를 강사로 이끈 우연한 기회, 그 선택을 이제는 천명처럼 받아들인다.
- 2018-08-2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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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음을 재촉하는 습관 3가지
- 시간을 멈출 순 없지만, 그렇다고 소홀한 자기관리로 더 빨리 늙을 필요도 없다. 나이 들어 한두 군데 아프지 않은 늙음이 어디 있겠냐마는 몸이 옛날만 못하니 자연히 게으름을 피우게 되고 그러다 보니 빨리 늙는 나쁜 습관을 자연스레 몸에 익힌다. 하늘이 부를 시간도 다가오는데 죽어 썩어질 몸, 빨리 늙으려 애쓰기보다 게으르지 말고, 잠자는 시간 엄수하고, 웃고 또 웃도록 노력하자. 낮잠 어디서 이런 것만 찾아 자기합리화를 하는지…. 중국의 작가 임어당이 매일 반드시 낮잠을 잤다는 말에 자기도 맑은 정신으로 작품을 쓴다고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잠자는 습관이 같다고 해서 임어당 같은 작가가 되는 건 아니다. 기왕 자려면 엎드려 자지 말라. 나쁜 자세는 또 다른 나쁜 현상을 불러온다.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느냐보다 밤에 잠자는 시간을 일정하게 지켜라. 물론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노력이 필요하다. 약속한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습관부터 들여야 한다. 사소한 습관 일 몰아서 하지 마라.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도 어려운 나이다. 표정 주름도 있다. 찡그린 인상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더구나 늙은이의 주름은 이제까지 살아온 역사다. 하회탈까지는 아니더라도 깊이 있는 주름에 어울리는 잔잔한 미소를 갖추자. 예술 그 자체다.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라. 하늘이 당신에게만 그런 특권을 줄 리가 없다. 사소한 건망증을 치매 초기라며 징징대며 두려워 말고 적당히 비우라는 충고라 생각하라. 게으름 물을 많이 마시지 않아 주름이 팍팍 늘고, 운동도 해야지 하면서 숨쉬기 운동으로 그친다. “심하게 하면 더 나쁘대” 하며 핑계도 댄다. 모든 일은 하기에 따라서 득으로 만들 수도 있다. 노인을 빨리 죽게 하는 선물 두 가지가 안락한 소파와 성능 좋은 TV라지만 사용하기 따라서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도 있다. TV는 오래 보는 것보다 그 시간에 앉아 있는 것이 더 문제다. 그러니 20~30분에 한 번꼴로 서성대거나 벽에 붙어 보는 것도 방법이다. 귀찮아도 선크림을 자주 발라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 주름을 줄이자.
- 2018-03-0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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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아픈 인연
- 머리를 박박 깎은 녀석들이 1월의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드넓은 논바닥 옆 부대 정문 앞에서 기간병들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대열을 이룬다. 불안감을 감추기라도 하듯 허허롭게 웃으며.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녀석들과 같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열차를 탔다. 눈치껏 빈자리를 찾아 웅크리고 앉았다. 객차 한가운데 분탄 난로 근처가 최상의 자리였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앉으려 하지 않는다. 옷차림새도 다시는 안 입을 요량으로 집에서 가장 남루한 것을 골랐는지 하나같이 꾀죄죄하다. 거지보다 아주 조금 나아 보이는 행색이다. 모두들 잠을 자지 않는다. 열차가 달릴수록 말수들이 확 줄고 이상한 침묵이 흐른다. 어두워질 무렵 논산훈련소 옆 신체검사 대기 막사에 도착했다. 배정을 받고 들어갔는데 미리 도착해 자리를 차지한 전라도 병력이 서울내기는 다마내기라며 자리 양보를 안 했다. 누구도 선뜻 끼어들지 못했다. 눈치껏 틈새를 비집고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체격이 월등히 좋았던 필자가 틈을 비집고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그제야 하나둘 끼어들었다. 하지만 비좁은 막사에 워낙 많은 병력 인원을 집어넣다 보니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모두 옆으로 누워야 잘 수 있었다. 앞 사람 등에 배를 붙이고 자는 소위 칼잠이었다. 다음 날 아침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다. 필자 앞에서 자던 전라도 김제에서 온 녀석은 3일 전에 도착해 신체검사를 다 받았는데도 일찍 훈련소 들어가기 싫다며 뭉그적댔다. 녀석이 필자 손을 잡고 신체검사장을 안내하듯 데리고 다녀 그날 하루에 검사를 다 마칠 수 있었다. 서류도 함께 제출하고 훈련소도 같은 날 들어가게 된 녀석은 군번이 나보다 하나 빠르다고 자기가 고참이라고 우겼다. 그 후 자대 배치가 달라 녀석과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져 각자 군대생활을 했다. 그런데 의장대, 병기근무대, 유격대에서 근무하던 중 공수부대 차출을 명령받아 필자가 김포로 간 날 전라도 친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같은 기수로 온 것이다. 군번이 하나 빠르다고 고참이라 우겨댔던 친구는 필자를 보더니 얼싸안고 엉엉 울었다. 훈련을 마친 뒤에는 자대 복귀가 원칙이었다. 그 친구는 백마부대로 필자는 유격대로 가야 했다. 그런데 필자 몸에 이상이 생겨 수도육군병원에 입원해 한 달 반을 보냈다. 이후 친구를 만나고 싶어 유격대가 아닌 백마부대 근무를 신청했는데 도착해 보니 녀석이 없었다. 월남 팀에 합류해 오음리 훈련장으로 가버린 상황이었다. 필자도 친구 따라 월남 팀에 지원을 하고 오음리 훈련장으로 갔지만 이미 앞 기수들은 훈련을 마치고 일주일 휴가 중이었다. 결국 친구는 만나지 못했다. 필자가 훈련을 시작한 첫날 그들이 월남으로 출발했다는 소식만 들었다. 이후 필자도 훈련을 마치고 일주일 휴가를 받았다. 그런데 몸에 또다시 이상이 생겨 수도육군병원에 재입원하게 되었고 월남 팀에 합류하지 못한 채 자대인 유격대로 되돌아와야 했다. 어느 날이었다. 교육생들끼리 대화를 하는데 그 친구 이름이 들려왔다. 혹시 동명이인인가 해서 자세히 물으니 전사를 했다는 것이다. 육군본부를 찾아가 확인했다. 사실이었다. 비좁은 막사에서 같이 칼잠을 잤던 친구. 얼싸안고 부둥켜안으며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었던 친구. 그 친구는 지금 필자 곁에 없다.
- 2018-02-0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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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영감의 아내
- IMF로 나라 경제가 바닥일 때 잘 나가던 회사가 적자로 돌아섰다. 2년 먹고 살 것 남겨 놓았지만 매출은 “0” 시간도 생겼으니 공부나 하자는 생각으로 대학원 유통, 마케팅 과정을 신청해 등록허가를 받았다. 인생은 한 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준다더니 내 생의 한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다. 수업이 야간 늦게 끝나기에 서로 바삐 차로 귀가들 하는데 캄캄한 길을 걸어가는 분이 계셔 방향을 물었더니 조금만 돌아가면 되는 코스여서 함께 가자했다. 그 다음부터 수업시간이면 자연히 옆 자리에 앉아 함께 수업을 받았다. 수강생 인적사항이 나왔기에 훑어보니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고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나 날짜만 12일 늦은 사람이 있기에 새삼 인사하고 늘 셋이서 몰려 앉아 수업을 들었다. 개인사업 하는 동갑내기 사려 깊은 친구. 나이 차이는 있어도 생각하는 바가 총명하고 주관이 남다른 여성. 골초였던 남편 사별하고 비가 오나 바람 부나 비석 옆 상석에 징징대며 담배 피어 올려주기, 술 따라놓았다 뿌려주기 6개월을 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골초 주당에 입문했단다. 할 일없어 사별한 남편 잊으려 뭐라도 하려다 대학원 등록하고 우울증 생겨 늘 자살유혹에 시달려 낯에 문방구를 시작했다. 남편 친구 분이 큰 회사 계열사중 한 곳에 문방구 납품을 시켜줬는데 화물차 운전을 할 줄 몰라 1톤 차를 새벽서부터 연습하기 시작해 이틀 만에 거리로 나가기 시작 문방구 사업을 넓혔다. 또 다른 남편 친구의 주선으로 초창기 하이마트에 잡화 납품 시작 문방구화 함께 수직 고속 성장. 그러나 잠시라도 시간이 비면 우울증으로 여전히 자살 유혹이 항상 내재되어있었다. 더구나 여자 혼자라고 침 바르려는 수컷들이 주위에 드글드글 하다 보니 남편 생각이 더 나서 잠시도 쉬지 않고 일했다. 수업 끝나고 집에 도착까지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 보니 많은 걸 알게 되었고 늘 셋이 붙어 다녔는데 한 친구가 키가 작은 편이라 큰 영감, 작은 영감이라 불러주던 친구가 본사를 수원 영통에 지어 승승장구 잘 나가다 보니 시간이 없어 만남이 뜸해졌지만 너무 둔하지 않게 함께 점심도 하곤 했다. 어느 날 점심 함께 하려는데 한 남자를 데려와 재혼할 사람이라며 큰 영감 작은 영감에게 첫선 뵈는 것이라 한다. 혼례는 신랑 될 분의 집에서 했다. 냇물이 흐르고 넓은 잔디밭에 갤러리동이 있고, 작업동과 넓은 집이 함께 있는 예술인 촌 중 독립된 한쪽이었다. 그 후 사업이 계속 번창해 대전에 지사도 내며 얼굴 볼 새 없이 SNS로 안부 묻기만 몇 해 하다 보니 많이 뜸해졌는데 지난 해 갑자기 집에서 만나자기에 작은 영감과 갔더니 그 동안 위암수술을 했다며 안색이 덜 좋았다.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선지 자꾸 짐을 꾸려야한다는 강박증이 생기네요. 집안 정리 해두고 길 떠나는 아낙처럼 언제라도 주변이 구질스럽지 말아야겠다는 강박 그렇다고 죽을 지경으로 아픈 건 아니고요. 그냥 마음이 그렇군요. 작은 영감도 잘 지내시죠?” 그제 새벽에 갑자기 연락이 왔다. 늘 당당하고, 자존심 강하며, 옷 잘 입고, 운전을 잘해 파리다카르 랠리 선수로 참여해 보는 게 버킷 리스트에 들어있는, 옹골차고 당당한 여자. 화장 끼 전혀 없는 얼굴에, 가끔 툭 튀어나오는 엉뚱함이 매력적인 친구, 그가 아프다한다. 깜짝 놀라 두 영감이 들렸다. 남편 보낸 것에서 시작하여 욱일승천(旭日昇天) 기업을 성대하게 이뤘지만 하고많은 것 중에 하필이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줄이야. 굴곡의 연속이 삶이라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마무리를 강요당하다니. 돌아오는 내내 서로 할 말을 잃었다. 반쪽 아내와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두 영감의 아내가 점점 방전되는 게 보인다.
- 2017-11-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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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동계올림픽을 미리 가보다
- 찬 공기 가르며 새벽부터 서둘러 약속장소로 향한다. 액티브 시니어 과정 동기들의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한 응원 차 미리 탐방해 보는 방문길이다. 집합 시간 오전 7시. 집행부의 마지막 3시에 전해진 버스 2대에 분승하고 가는 인원명단과 좌석 배치도, 현지 날씨 영하라는 세심한 정보가 속속 들어온다. 날씨에 맞춰 내복, 모자, 장갑, 복장부터 시작해 간식까지 스케쥴 적어놓은 종이에 하나씩 체크하며 사방에서 꼭두새벽부터 서둘렀을 동기들의 부산함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곁에서 지켜보는 옆 지기에게 이것저것 부탁하고 확인 받는 2중 체크가 있었을 텐데 그분들은 외출하는 사람 새벽부터 기분 상하지 않게 하려 꽤나 긴장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조심해 다녀와요.” 휴~ 보내놓고 다시 꿈나라 가셔도 한참을 더 주무셨겠지. 환승 3번해야 하는 전철이 필자가 도착하면 바로 눈앞에서 출발하고를 계속한다. 머피의 법칙. 약속시간을 맞추려면 여유 있게 전철 간격시간도 챙겨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걸 보면 아직도 멀었단 생각을 해 본다. 그래도 지각한 적 한 번도 없는 걸 보면 습관 된 여유 덕을 보는 거겠지. 어렸을 때 덕과 예의 세상을 꿈꾸라는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약속시간은 반드시 지키고, 말은 줄여 경청하고, 역지사지를 생활화 하라고 배운 그때 습관으로 굳은 때문일 것이다. 도착하니 10분 전. 인사 마치고 앉았는데 아침으로 제공될 김밥이 오질 않아 시간이 지체되어도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의 히히덕 수다로 어수선하다. 20분 늦게 출발 했더니 와~ 고속도로가 주차장처럼 행락객으로 꽉 차 만원이다. 맛있는 김밥과 생수를 배정받고 먹기 시작하니 좀 조용해지긴 했지만 거의 서 있다시피 하며 동서울 톨게이트까지 오는데 시간 다 잡아먹은 듯하다. 그래도 새로 뚫린 제2영동고속도로를 들어서니 뻥 뚫려 밥도 먹었겠다 생리도 해결하고 기지개라도 펴라 양평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다시출발 평창동계올림픽장 까지는 일사천리 단숨에 왔다. 시설 돌아보려는데 아직 마무리 안 된 곳은 볼 수 없어 대신 대관령 트레킹하기로 결정하고 난이도에 따라 A, B, C조로 나뉘어 3시간 후에 점심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A, B조가 먼저 C조는 나중에 출발했다. 왼쪽 무릎이 안 좋은 필자는 대관령 고랭지 배추와 유기농 재료로 실습하는 김치체험장 내에 있는 쌍화탕 다리는 향이 가득 찬 카페에서 가져간 책을 읽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약 2시간 반 지나 C조가 내려와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가질 않고 함께 먹으려 A, B조가 내려오는 지점으로 마중을 갔지만 좀체 내려오질 않아 1시간여를 더 기다려 합류했다. 대관령의 특식인 오징어와 돼지고기를 같이 만든 오삼불고기로 점심을 했다. 이곳이 오삼불고기로 탄생된 배경은 냉장시설이 안 좋을 때 동해안에서 잡은 오징어를 육지로 판매하러 가는 상인들이 대관령을 넘다가 맛이 간 오징어를 불고기에 섞어 끓여보니 맛이 괜찮아 시작하면서 부터라 한다. 오후 3시 반이 넘다보니 배들이 허해져 조용하지만 허겁지겁 끝냈고 바리스타인 분이 드립커피를 잔뜩 가져오셔 함께 음미하며 즐겼다 애초 시간보다 한참 늦은 시간에 출발하다보니 엄청난 정체를 뚫고 왔기에 서울에 늦게 도착했지만 오랜만에 동기들과의 여행은 추억으로 남기기에 손색없는 하루였다.
- 2017-11-1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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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 어제보다 아침 기온이 높다는데 얼굴 마주치는 바람의 흐름이 어제와 다르다. 내가 아는 신화엔 반드시 등장하는 바람. 인간에겐 본능적으로 바람에 관심이 많은 유전자가 있는지 영웅호걸이 등장하려면 폭풍이 불거나 회오리 몰아친다. 어떤 형태든 바람이라는 조연이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중간 중간 제 역할 해줘야 등장인물이 돋보이고 신비감 주는 건 당연한 스토리텔링. 예쁘지만 가시라는 양면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장미와 달리 모난 곳도, 가시도 없이 누구와 만났느냐에 따라 전해지는 바다, 비 내음, 삼림살내, 나무, 꽃 향은 탐욕과 고통을 잠재운다. 우리에게는 마파람이라는 봄바람이 있어 흥할 수 있었고 좋은 토질에서 누구도 부러워하는 작물을 생산할 수 있었다. 온 세상 존재하는 것은 무엇 하나 변하지 않는 게 없지만 바람이라는 이름 하나로 죽지도 않고 우리의 몸과 마음 곁에 늘 있구나. 언제 태어나 몇 살인지 아는 이 없고 궁금해 하는 사람도 없지만 적어도 나 보단 훨씬 연배인 건 알겠는데 노후 내가 바라는바와 같이 나이티도 안 낸다. 내가 부르지 않아도 나름의 스케쥴 맞춰 매년 한 차례씩 정해놓고 찾아오고 무엇 때문에 성질났는지 몰라도 가끔 스팟으로 씩씩 있는 대로 성질내며 혓바닥 길게 뽑아 아무거나 핧으며 지랄 떨 때도 있다. 잔디에 흰 구름 보며 누워 즐거움에 젖을 때면 "너 혼자만 재미 있을려구, 너 혼자만 즐길려구" 하며 곁을 차지하지만, 내 품에 안겨지지도 않아 네가 외롭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구나. 아 하 그래서 여기 저기 집적대며 나뭇잎, 풀잎하고도 얘기하자 건드리며 흐느끼는구나. 심술부려 가로등 불꽃 일부러 꺼트린 게 그래서였구나. 다 익지 않은 꽃잎 떨어트린 것도 그래서였구나. 풀내음 다 걷어가며 나뭇잎 떨군 장난도 그래서였구나. 그리고 간다는 말은 없어도, 갔다는 표를 그리 내는구나. 그래도 나는 안다. 차디찬 겨울바람, 훈훈한 서풍, 곡식 병들게 하는 동풍, 꽃 피우는 남풍 너는 보이지 않는 악기로 청 보리밭, 옥수수 밭, 가랑잎, 대숲의 노래를 천만가지 외로움 연주하며 관심을 끌려하는 것을 무슨 이름욕심 그리 많아 산바람, 계절풍, 편서풍, 회오리, 무역풍 말고도 셀 수도 없이 지어내는 것도 외로워 누군가 필요해서라는 거 그래도 역할이 영웅을 찾는다는데 재주 많은 너는 야심은 아닐 것이고 할 수도 없는 일들을 거칠 게 없이 펼치는 바보의 전형이다. 개혁을 원하니 혁명을 원하니 종교는 갖고 있니 적어도 너는 자살은 안 하겠구나. 네 직업이 궁금하다. 바람도 지난 바람이 낫다는데 남에게 바라는 게 없으면 내 마음이 편하다지만 늘 곁에서 네 외로움 달래주는 내가되고 싶구나. 바람 없었으면 글쟁이들 뭘로 먹고 살았을까.
- 2017-10-2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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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려동물
- 유명 아이돌 중 한 명의 집 개가 사람을 물어 사망한 뉴스를 접하고 또야 생각이 난다 “다녀 오겠습니다” “미끄럼 조심해” 큰애가 진눈깨비 오는 날 우산 챙겨 외출을 한다 일주일 후 왠 강아지를 안고 들어온다 “아이구 예뻐라 누구네 강아지야“ “엄마 할 얘기가 있어” 왠지 스치는 이상한 예감 “일주일 전 진눈깨비 많이 온 날 아파트 앞에 얘가 흠뻑 젖어 제대로 서지도 못 하고 비틀거리며 있는 거야. 하도 안 되서 동물병원에 데려가 치료해 주라하고 돈도 주고 나왔는데 아까 데려가라고 전화가 온 거야. 우리는 키울 수 없으니 병원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니 요즘 IMF로 이런 강아지가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유기견 보호소로 연락할 수밖에 없는데 주인이 안 나타나면 보름 지나 안락사 시킨데 우리가 키우자” 이상한 예감은 늘 적중한다더니 바로 그 꼴이다 지난해까지 강아지를 키우다가 잃어버려 마음이 너무 아파 이제 다신 키우지 않기로 아이들과 약속도 했는데 다른 두 애들이 들어오면 더 큰일이라 단호하게 안 된다 하자 그때부터 어떻게 죽이냐며 울기 시작한다. 띵똥 아이들이 차례로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이젠 셋이 운다. 우리들이 돌아가며 당번제로 키울 테니 기르게만 해 달란다. “안 돼” 우리 방에서 절대 나오지도 못 하게 하고, 변도 우리들이 치우고, 목욕도 시키고 병원도 우리가 데려가고 모든 비용도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엄마~~ 자식을 누가 이겨 그럼 지난번 나간 애 대신이라 생각하고 이름은 또 들어왔으니 “또야”다 너희들이 약속한 거 하나라도 안 하면 내다 버릴테니 그리 알아 금방 야호 소리가 나고 난리도 아니다 너무 고생하고 힘들었던 스트레스 때문인지 등이 굽은 잡종 또야는 일주일 쯤 적응기간이 끝나 그렇게 한 식구가 되어 집안을 즐겁게 만들기 시작한다 자신을 데려온 게 큰애라선지 집에 큰애만 있으면 그 곁을 떠나질 않는다 아이들 약속은 한 달이 가질 못 하고 모든 게 엄마 몫이 되었지만 워낙 강아지를 좋아하는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밖에 나갔다가도 친구들과 일찍 헤어져 또야 건사하기 바쁘다 식구들이 외출하면 누군가 들어올 때까지 대문 앞에 앉아 아무 것도 안 먹고 기다리고 변은 전 집에서 훈련받은 결과인지 몰라도 제대로 가리고 식구들 외출할 때 차에 태우면 아마 전 주인이 차에 태워 아파트 앞에 놓고 간 기억이 남아 있는지 얼마나 짖어대며 안 탈라하는지 또야는 대단히 호전적이었다. 다른 강아지를 보면 품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듯 뛰어내려 자신보다 몇 배는 큰 개에게도 거침없이 달려들어 물고 흔들어 큰 개도 피할 정도로 법석을 떨어 식구들을 난처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세월이 흘러 또야도 나이가 드니 털이 빠지고 이빨도 빠지고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전담으로 먹이고 용변 뉘고 편하게 해 주려 온 정성을 다 한다 아이들도 일찍 들어와 함께 놀아준다. 몇 달이 지났다 갑자기 옆으로 누워 거의 숨을 못 쉰다. 일반 동물병원의 차원을 넘어선 듯하다 동물들의 종합병원 건국대로 달렸다 각종 검사가 실행됐고 임종이 몇 시간 안 남았다는 판정을 받는다. 병원 권고에 따라 더 괴롭지 않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안락사 시키기로 결정하고 온 식구들과 눈물의 작별인사를 할 때 잠시 반짝 하는 듯 했었지만 결국 커다란 문 안으로 사라졌다 화장(火葬)도 병원에서 알아서 해 주고 유해는 목걸이로 만들어 전해 준단다. 얼마 후 목걸이가 도착했다 선산 부모님 산소 곁에 묻어줬다 산소에 갈 때는 또야 제물도 가져가 부모님 산소 잘 지키라 당부하고 온다 반려동물 보호법만 있고 반려동물 키우기 지침이 없는 게 현실에서 또야 생각이 더 난다.
- 2017-10-2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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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시장
- 재래시장에 갈 일이 생겼다. 떡 장수, 튀김 장수, 꽈배기 장수 없는 것 빼곤 다 있는 전통시장 펄떡이는 생선처럼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곳. 왜 이럴까 비린 생선 냄새도, 발 구르며 떠들썩한 골라골라 소리도 최상의 정원이라는 곳에서 풍기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시작도 끝도 없는 그들만의 잡담도 없다. 영원의 잠이 지배하는 듯하다. 거래하는 동물이 없다. 곰처럼 두껍고 딱딱한 손마디가 힘을 잃었다. 휑한 바람이 피부로 느껴진다. 장바구니 푼돈이 나라경제 척도라는데 대형마트도 장사가 안 된다는 기사 본 게 엊그제 아줌마들은 찬거리를 구입 안 하는 건가 못 하는 건가 혹시나 하고 쳐다보는 눈길이 부담스러워 묻기도 망설여지고 걷기도 민망하다. 빨리 빠져나와 긴 숨 한 번 내 쉬었다. 한 동안 다시 가기 어려울 듯하다.
- 2017-10-23 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