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아침 기온이 높다는데
얼굴 마주치는 바람의 흐름이 어제와 다르다.
내가 아는 신화엔 반드시 등장하는 바람.
인간에겐 본능적으로 바람에 관심이 많은 유전자가 있는지
영웅호걸이 등장하려면 폭풍이 불거나 회오리 몰아친다.
어떤 형태든
바람이라는 조연이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중간 중간 제 역할 해줘야
등장인물이 돋보이고 신비감 주는 건 당연한 스토리텔링.
예쁘지만
가시라는 양면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장미와 달리
모난 곳도, 가시도 없이
누구와 만났느냐에 따라 전해지는
바다, 비 내음, 삼림살내, 나무, 꽃 향은 탐욕과 고통을 잠재운다.
우리에게는 마파람이라는 봄바람이 있어 흥할 수 있었고
좋은 토질에서 누구도 부러워하는 작물을 생산할 수 있었다.
온 세상 존재하는 것은 무엇 하나 변하지 않는 게 없지만
바람이라는 이름 하나로
죽지도 않고 우리의 몸과 마음 곁에 늘 있구나.
언제 태어나 몇 살인지 아는 이 없고 궁금해 하는 사람도 없지만
적어도 나 보단 훨씬 연배인 건 알겠는데
노후 내가 바라는바와 같이 나이티도 안 낸다.
내가 부르지 않아도
나름의 스케쥴 맞춰 매년 한 차례씩 정해놓고 찾아오고
무엇 때문에 성질났는지 몰라도
가끔 스팟으로 씩씩 있는 대로 성질내며
혓바닥 길게 뽑아 아무거나 핧으며 지랄 떨 때도 있다.
잔디에 흰 구름 보며 누워 즐거움에 젖을 때면
"너 혼자만 재미 있을려구, 너 혼자만 즐길려구" 하며
곁을 차지하지만,
내 품에 안겨지지도 않아 네가 외롭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구나.
아 하
그래서 여기 저기 집적대며
나뭇잎, 풀잎하고도 얘기하자 건드리며 흐느끼는구나.
심술부려 가로등 불꽃 일부러 꺼트린 게 그래서였구나.
다 익지 않은 꽃잎 떨어트린 것도 그래서였구나.
풀내음 다 걷어가며 나뭇잎 떨군 장난도 그래서였구나.
그리고
간다는 말은 없어도, 갔다는 표를 그리 내는구나.
그래도 나는 안다.
차디찬 겨울바람, 훈훈한 서풍, 곡식 병들게 하는 동풍, 꽃 피우는 남풍
너는 보이지 않는 악기로
청 보리밭, 옥수수 밭, 가랑잎, 대숲의 노래를
천만가지 외로움 연주하며 관심을 끌려하는 것을
무슨 이름욕심 그리 많아
산바람, 계절풍, 편서풍, 회오리, 무역풍 말고도
셀 수도 없이 지어내는 것도 외로워 누군가 필요해서라는 거
그래도
역할이 영웅을 찾는다는데
재주 많은 너는 야심은 아닐 것이고
할 수도 없는 일들을 거칠 게 없이 펼치는 바보의 전형이다.
개혁을 원하니
혁명을 원하니
종교는 갖고 있니
적어도 너는 자살은 안 하겠구나.
네 직업이 궁금하다.
바람도 지난 바람이 낫다는데
남에게 바라는 게 없으면 내 마음이 편하다지만
늘 곁에서 네 외로움 달래주는 내가되고 싶구나.
바람 없었으면 글쟁이들 뭘로 먹고 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