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사람은 스스로 돌아보고 내면을 다듬는다.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좋은 친구가 있다면 성장하기를 멈췄던 삶이 꽃처럼 피어난다. 무겁고 딱딱한 내용의 책이 아니어도 좋다. 누구나 단번에 읽어낼 수 있는 그림책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백화현(63) 작가는 국내 최초 시니어 그림책 전문 출판사 ‘백화만발’(百花晩發)을 만들었다. ‘온갖 꽃이 뒤늦게 활짝 피어난다’는 뜻의 이름에는 각자의 인생을 꽃피웠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장소 협조 가원 시니어 도서관
백화현 작가는 30년 넘게 국어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학교 안에서 독서운동을 해왔다. 아이들 저마다의 능력이나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교과서와 수업 방식으로 배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진정한 배움을 위해 필요한 것은 독서라고 판단한 그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독서와 도서관 이용을 권했다.
시니어와 독서, 해법은 그림책
2015년 교사를 그만두고 사회로 나와 보니 어른들도 제대로 책을 읽지 않고 있었다. 서점 서가에는 어려운 어휘가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힌 두꺼운 책이 가득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는 비교적 젊은 어른인 3040대가 많았고, 60대부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독서를 곧잘 하던 이들도 나이가 들면 호흡이 긴 책을 읽기 어려워하는데, 대다수 책은 시니어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책을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어른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백화현 작가는 책이 친숙하지 않은 어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책에 대한 장벽부터 낮춰야 했다. 독서의 물꼬를 트는 데는 그림책이 효과적이리라 판단했다. 일반 도서에 비해 비교적 내용이 단순하고, 큼직한 삽화가 있어 빠르게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선택한 이유는 또 있다. 백 작가는 삶의 경험이 다양할수록 진정한 독해가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삶의 굴곡을 겪은 경험 덕에 몇 장의 그림과 적은 양의 글로도 많은 것을 읽어내고 이해할 수 있어서다.
“그림책은 그림과 글의 매력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에요. 그림은 긴 설명을 읽어낼 필요 없이 단번에 사람을 사로잡는 효과가 있고요. 글은 읽으면서 성찰하고 스스로를 치유하게 만드는 힘이 있죠. 그림책의 짧은 이야기에는 함축과 비유가 담기기 때문에 사고력을 키우고 상상의 여지를 만끽할 수 있으니 초심자에게 제격이에요.”
그러나 그림책은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어른도 읽을 수는 있지만, 아이들 시각이 반영된 이야기에 어른이 이입하며 읽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어른을 위한 몇 안 되는 그림책은 지나치게 함축적이거나 예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가뜩이나 책이 어려워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백화현 작가는 기획 아이디어를 적은 종이 한 장 들고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을 찾아갔다. 독서운동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은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시니어 그림책’만 전문으로 제작하는 출판사가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했다. 그렇게 국내 최초 시니어 그림책 출판 브랜드 백화만발이 탄생했다.
“이건 우리 이야기네!”
백화만발의 시니어 그림책은 있는 그대로 시니어들의 삶과 고민을 다룬다. 어린 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를 모아 각각의 그림책으로 엮어냈다. 80대 노인이나 50대 중년, 경비원이나 전업주부로 한평생 살아온 어머니까지. 최대한 많은 시니어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주인공의 상황이나 처지를 다양하게 설정했다.
백화만발 그림책이라면 갖춰야 할 요건이 몇 가지 있다. 70쪽을 넘기지 않아 15분 내외로 읽을 정도의 분량이어야 한다. 7080세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4050세대는 보조인물로 등장한다. 그림에는 지나치게 비유적인 의미를 담지 않고, 어휘는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으며 쉬워야 한다. 글씨는 12포인트 이상이 이상적이나, 글씨가 커져 그림과 배치하기 어려우면 크기를 조금 줄이는 것으로 타협한다. 또 가방에 쏙 들어가는 크기, 하드커버 표지로 제작했다. 자식 세대인 4050이 먼저 사서 읽고, 부모 세대인 7080에게 선물했으면 해서다.
지금까지 총 아홉 권의 시니어 그림책이 세상 빛을 봤다. 2020년 1월, 1권 ‘할머니의 정원’부터 3권 ‘선물’이 처음 출간됐을 때 그는 옛 동료인 은퇴 교원들에게 ‘직접 읽고 부모님께 권해드리라’고 한 권씩 선물했다. 모두들 “이런 책이 있었냐”, “세상에 시니어를 위한 그림책이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이런 책’의 탄생을 반겼다.
각자 이입하는 책은 다르지만 굳이 꼽자면 첫 번째 책 ‘할머니의 정원’이 전반적으로 반응이 좋다. 책에는 자식도 배우자도 떠나고 몸도 성치 않은 채 혼자 살며 괴팍해진 ‘경자 할머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경자는 새로운 가사 도우미 민희와 점차 우정을 쌓으며 마음의 벽을 허물고, ‘정원’이라는 꿈을 가꿔나간다.
‘인생 책’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감정이 북받친 나머지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도중에 덮었다는 후기도 들려온다. 전국의 많은 ‘할머니’들은 아마도 경자 할머니와 자신의 삶이 겹쳐 보여 눈시울을 붉혔을 것이다. 마음의 문을 닫았던 할머니가 진정한 우정으로 인해 밝아지는 장면에서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을 테다. ‘5090세대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꿈을 드리고자 한다’는 백화만발의 기획 의도가 통한 셈이다.
“판매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점은 아쉽지만, 그래서 이미 나온 아홉 권의 그림책이 더 소중해요. 너무 늦지 않게 독자의 관심을 받고 판매돼야 시니어 그림책 시장이 생겨나고 더 좋은 작품이 나올 테니까요. 그러다 보면 시니어들이 ‘함께’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문화가 생겨나겠죠? 시니어들이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찾게 되는 날까지 열심히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려고 해요.”
만나서 읽어야 하는 이유
백화현 작가는 시니어들이 ‘모여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니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림책이 아닌 다른 종류의 책이어도 상관없다. 독서를 주창하는 궁극적 목표가 사람과의 교류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책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교류를 가능케 하는 길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초고령사회’라는 과제와도 관련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준비가 놀랍도록 부족해요.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드는데, 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관심조차 없으니 TV나 유튜브만 보며 외로움을 달래는 노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죠. 마음에 응어리진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으면 슬프고 실망하고 외로워서 괴팍해져버린 ‘경자 할머니’가 되고 말아요. 그런 분들이 우리 사회의 어른이고, 그 수가 점점 많아진다면 그 사회도 함께 암울해지고 말겠죠.”
책과 사람을 잇는 독서 모임은 그래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주체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책을 가운데 놓고 그림과 글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책을 읽기 위해선 머리를 써야 하고, 제대로 대화하기 위해 제대로 질문해야 하며,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집중하며 잘 들어야 한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교류를 통해 사람은 우정을 쌓고, 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희망을 찾게 된다. 경자 할머니의 새 가사 도우미 ‘민희’ 같은 존재가 서로에게 되어주는 것이다.
백화현 작가는 책 읽는 법을 배우고,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삶에 활력을 되찾는 시니어들을 많이 봐왔다. 그림책 읽는 법을 처음 배운 80대 어르신들이 ‘너무 좋다’며 박수 치던 소리가 아직도 그의 귀에 쟁쟁하다. 배운 대로 그림책을 뜯어보며 눈을 반짝이던 이들은 지금도 자체적으로 모여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고 있다.
산발적인 움직임이 문화로 정착되려면 아직 필요한 것이 많다.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편히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 혹은 책을 같이 읽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 여전히 도서관보다 TV, 유튜브를 찾는 것이 현실이지만 희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최근에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국내 최초 ‘시니어 도서관’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독서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시도라, 어떻게 하면 이용자를 늘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죠. 더디지만 독서 모임도 생겨나고 있어요. 독서 운동을 함께 했던 시민단체 중 한 곳으로부터 ‘전국에 5만 개의 독서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을 지난해에 전해 들었죠. 제가 성인을 대상으로 운동을 시작했을 때 잡았던 목표치가 ‘독서 모임 30만 개 만들기’였어요. 한참 못 미치는 수치긴 하지만 대면 모임이 어려운 시기였던 걸 생각하면 의미가 있죠.”
상황이 허락한다면 이야기 그림책을 백 권까지 만들고 싶다. 시니어의 취미, 요즘 문물, 향수를 느낄 만한 전통문화 등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책 ‘어른 그림책 여행’처럼 그림책 세계가 궁금한 어른을 위한 길라잡이나, 4050세대를 위한 ‘심화’ 단계 시니어 그림책도 포함된다. 새해에는 백화현 작가의 바람대로, 바지런히 펴낸 그림책을 펼쳐 새로운 삶을 꽃피우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니들 맘대로 사세요”
2030 여성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 광고에 등장한 배우 윤여정은 특유의 시원한 어투로 말을 던진다. 2030 여성 쇼핑 광고에 시니어 모델인 윤여정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화려한 꽃무늬 카디건을 즐겨 입고, 고소한 흑임자 디저트를 즐긴다. 가방에는 고운 색의 전통 매듭 키링이 달려 있고, 손에 들린 스마트폰 케이스에는 할머니집 장롱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자개 봉황이 반짝인다. ‘할메니얼’이라 불리는 2030이다.
할머니 취향 즐기는 ‘할메니얼’
‘할메니얼’은 할머니를 뜻하는 사투리 ‘할매’와 1982년부터 2000년생을 뜻하는 ‘밀레니얼’의 합성어다. 흑임자·인절미·쑥 등 할머니 입맛을 선호하고, 펑퍼짐한 꽃무늬 스커트나 엉덩이를 덮는 카디건을 즐겨 입는 등 할머니의 취향을 즐기는 밀레니얼을 의미한다. 해외에서도 할머니를 의미하는 ‘그래니’(Granny)와 멋과 우아함을 뜻하는 ‘시크’(Chic)를 결합한 ‘그래니 시크’, 할머니(Grandmother)와 밀레니얼의 합성어 ‘그랜드 밀레니얼’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옛것을 세련되게 즐기는 밀레니얼의 부상이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JAJU)에 따르면 2021년 가장 많이 판매된 제품 1~10위 중 9개가 전통 간식이었다. 70만 개 이상 판매된 1위 제품은 달고나였다. ‘발효 보리건빵’, ‘달콤바삭 누룽지 과자’가 뒤를 이었다. 그 외에도 오란다, 연근부각, 두부스낵, 꿀약과 등이 순위에 들었다.
밀레니얼의 최근 관심사는 ‘건강’이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20대는 단백질이 들어갔거나 칼로리가 낮은 과자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또한 운동 관련 산업도 함께 커질 정도로 밀레니얼은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팥, 인절미, 흑임자, 쑥은 왠지 건강할 것 같은 이미지의 식재료다. 밀레니얼에게는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맛이라는 경험을 선사한다. 할머니가 즐겨 먹던 간식이 ‘힙하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재미와 개성을 추구하는 밀레니얼에게 인기를 끌게 된 셈이다.
음식뿐 아니라 ‘할머니 패션’도 유행이다. 알록달록한 색상과 펑퍼짐한 라인이 특징으로 B급 감성을 표방한다. SNS에는 ‘그래니룩’(Granny Look), ‘할미룩’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글이 인기다.
10~20대에게 인기 있는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 따르면 지난해 1~3월 3개월간 롱스커트, 카디건 판매량이 전년 대비 각각 270%, 16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A라인과 주름치마 등 과거 유행하던 제품이 많이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 매듭 공예품, 전통 무늬 스마트폰 케이스 등도 인기가 높아졌다. 인테리어 업계에서도 화려한 플라워 패턴 벽지 등이 유행하는 등 할메니얼 열풍은 음식, 패션을 넘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할메니얼 열풍에 시니어 모델 인기
배우 윤여정은 지그재그 광고 티저에서 “(광고) 잘못 들어온 거 아니니?”라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13초짜리 이 티저 영상은 이틀 만에 100만 뷰를 돌파했다. 본편 광고인 ‘니들 맘대로 사세요’ 편의 조회수는 470만 회를 넘어섰다.
MZ세대 패션 앱 ‘트렌드 리포트 2021’에 따르면 이번 지그재그 광고 모델 인지도는 93%로 매우 높았으며, 모델을 통해 플랫폼의 이미지가 ‘매우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답변 비율은 41%에 달했다. ‘매우 구입 의향이 생김’이라는 답변도 33%로 패션 플랫폼 중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윤여정 배우가 등장한 광고는 2021년 4월에 선보였는데, 이달 전체 거래액은 지난해보다 58% 상승했으며, 론칭 이래 최고 일간 사용자 수와 일 거래액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70대 시니어 모델이 2030 쇼핑 광고 모델로 등장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가 던지는 ‘패션이든 인생이든 왔다 갔다 하며 답을 찾는 것’이라는 메시지에 소비자가 공감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도 좋아지는 결과를 얻었다.
이렇게 할메니얼 열풍에 힘입어 2030을 타깃으로 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시니어 모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농심켈로그는 ‘첵스 팥맛’을 신 메뉴로 출시하면서 64년 차 배우 김영옥이 힙합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광고를 함께 선보였다. 던킨도너츠는 흑임자 꽈배기와 인절미 라떼 등의 제품을 내놓으며 인기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를 모델로 선정했다.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 ‘배민 오더’ 광고에는 배우 문숙이 등장하고, 리더스코스메틱의 바이럴 영상에는 배우 강부자가 나온다.
밀레니얼은 ‘시원하고 스타일리시한’ 할머니들의 멋을 새롭고 재미있는 대상으로 인식하며 하나의 취향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멘토로 삼기도 한다. 푸근하고 정감 있는 ‘세련된’ 할머니가 트렌드로 거듭나는 이유다.
‘유서 깊은 도시이면서 별나고 소박한 곳이자 서울의 심장과도 같은 곳’. 지난해 문화·엔터테인먼트 전문 온라인 매체 ‘타임아웃’이 ‘2021년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29곳’에 종로3가를 3위로 올리며 남긴 한 줄 평이다. 별나고 소박한 서울의 심장에는 유서 깊은 솜씨로 몇 십 년 가까이 그곳을 지키는 베테랑들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한 사람의 고유한 성정이 도드라지듯, 지역에는 정체성이라는 나이테가 남는다. 대학로에는 스물의 젊음이 넘실대고, 여의도 빌딩숲엔 양복쟁이들이 평일만 되면 파도처럼 밀려들며, 홍대앞에는 예술인들의 아지트 같은 작업실이 빼곡히 들어찼다. 모든 과정이 지역을 대표하는 정체성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종로는 다소 오묘한 곳이다. 탑골공원에서는 어르신들이 모여 바둑을 두고, 책가방 멘 청년들은 종로 학원가의 어학원을 들락이며, 그 옆 인사동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바글거린다. 종로의 거리에는 SNS상에서 인증샷 장소로 인기인 카페와 빛바랜 노점상이 공존한다. 서울의 어제와 오늘, 젊음과 노련함이 뒤섞이는 지역을 한 단어로 정의 내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종로의 정체성을 정의해야 한다면 모든 것을 끌어안을 줄 아는 중후함이라 하겠다. 그중에서도 나이테처럼 남아 종로 그 자체가 되어버린 베테랑을 찾아 나섰다. 예지동 시계골목, 귀금속거리와 광장시장, 낙원상가를 들러 네 가지 빛깔의 노련함을 담았다. 가게 문 손잡이에 손때가 묻고, 매일 두르는 앞치마의 색이 바랬을지언정 그들의 열정은 청춘 못지않게 빛나고 있었다.
권동희(85)
58년 경력, 진선미주단
“스물일곱 때 시작해 여기서만 60년 가까이 일했어요. 여기에선 내가 최연장자일걸.”
1904년 개장한 광장시장은 12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 최초의 상설시장이다. 권동희 사장은 광장시장 2층 주단한복부의 터줏대감이다. 곱게 빗어 올린 머리와 화사한 한복 차림으로 58년째 주단을 취급하고 있다.
그가 ‘출근 룩’으로 한복을 고집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사장의 옷차림이 보기 좋아야 손님에게 옷을 권할 수 있지 않겠냐는 논리다. 한 달에 딱 하루, 마지막 주 일요일만 제외하고 매일 한복을 입은 셈이다. 그 덕에 처음 보는 손님과 어울리는 색상의 주단을 뽑아 드는 것쯤은 예삿일이다.
“일? 안 지겹고 항상 즐거워요. 여긴 행복한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라 덩달아 즐거워지거든.”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와 혼주가 진선미주단의 주 고객이다. 알음알음 입소문 타던 ‘베테랑의 솜씨’가 인터넷에 알려지면서 개량 한복 찾는 젊은이들, 해외로 이민 갔던 사람들 발걸음까지 잡아 이끈다. 한복에 대한 어머니의 열정은 딸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큰딸은 강남에서 한복 사업을 하고, 막내딸은 한복대회 모델로 활동했다.
점차 예식 규모가 축소되고 결혼식 모습이 다양해지는 요즘, 불문율처럼 여겨졌던 한복 차림 혼주들도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됐다. 아쉽지만, 그는 끝까지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려 한다. “한국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전통 한복 한 벌쯤 간직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한국을 대표하고 빛내는 것이 한복이잖아. 요즘 같은 시대에 한복 입는 것이 나라 사랑이나 다름없죠.”
김득균(61)
40년 경력, 한일사
“시계 겉모습만 봐도 안에 무슨 부품이 들어갔는지 훤히 보여요. 이 동네에서 시계수리기능사 자격증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한국산업인력공단은 2005년 시계수리기능사 자격증을 비롯한 40종목의 국가기술자격증 시험을 폐지했다.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해서다. 디지털 시계를 쓰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태엽 감는 기계식 시계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었다.
종묘 돌담길 옆 한일사의 김득균 대표는 시계수리기능사의 명맥을 잇고 있다. 열아홉 소년의 취미였고, 밑천 없어도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시계 수리 일은 40년 넘는 시간 동안 한 가정을 먹여 살리는 든든한 생업이 되었다. 경력을 인정받아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장을 지냈고, 시계기술학원 강사로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기도 했다.
“신뢰를 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손님들은 시계를 맡길 때도 인간성을 보거든. 이 일은 장사하고는 달라서 꾸밈이 없어야 하지.”
진품을 가품으로 바꿔치기 하지는 않을지, 쓸데없는 수리를 추가하는 건 아닐지.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시계를 맡기는 입장에선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는 수리 전과 후 부품 사진을 찍어 고객이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숙련된 솜씨를 바탕으로 저렴하게 수리한다. 한일사에 새로 온 손님은 단골이 되고, 단골은 새로운 손님을 소개해준다. 그렇게 그는 10년, 20년 뒤에도 종로 제일가는 시계 수리 장인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강규철(54)
31년 경력, 삼우주물
“낮에는 청소하면서 몰래몰래 훔쳐보고, 밤이나 새벽에 낮에 봤던 것을 한 번씩 만들어보고. 그렇게 배우느라 손일 익히는 데만 5년이 걸렸어요.”
반지 하나 잘 만들면 집 한 채도 거뜬히 사던 때가 있었다. 한 달 월급은 5000원, 그마저도 못 받고 기술 배우는 사람들이 훨씬 많던 시절이었다. 아는 형님 가게에 실습하러 나왔던 고등학교 시절의 강규철 대표가 주물 기술을 배우고자 마음먹었던 시기도 이때였다. 한쪽 눈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기술을 알려주겠다는 사람이 없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결국 주물집에 ‘시다’로 취직한 그는 남들보다 천천히 스스로를 단련해나갔다.
요즘이야 캐드(CAD) 프로그램으로 제품 설계와 제작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3D 프린터로 직접 샘플을 뽑을 수도 있다지만, 강 대표가 처음 일을 시작하던 시절엔 고무 가다(몰드)조차 없었다. 그럴 땐 열 개고 스무 개고 손수 똑같은 모양으로 주물을 만들어내야 했다. 오래도록 벼린 기술은 IMF 외환위기 이후 금값이 치솟으면서 닥친 불황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는 심지가 되었다.
아귀힘이 약해지기 전까지 마음만 먹으면 평생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는 2, 3년만 더 할 생각이란다. 아들이 더 이상 아버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산속에 들어가 살려고 일찍이 집도 마련해뒀다. 하지만 너털웃음 지으며 덧대는 마지막 말은 퍽 의미심장하다.
“이 일 하다 다른 일 한다고 나갔던 사람들 있죠? 4, 5년 정도 지나면 다 돌아와요. 일하던 가락이 있어서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작업할 거 하고, 자기 하고 싶을 때 일하는 게 편하거든.”
이세문(65)
40년 경력, 세영악기사
“아주 좋은데요. 소리도 괜찮고, 수리할 값어치가 있는 기타예요.”
세영악기사를 찾았을 때 이세문 대표는 30년 넘은 클래식 기타 줄을 튕기고 있었다. 아버지가 창고에 처박아뒀던 기타를 되살릴 수 있을까 싶어 찾아온 손님의 의뢰였다. 기타를 두드리고, 삐져나온 줄을 툭툭 잘라내는 손놀림이 경쾌하다. 관리 상태에 따라 100년 넘게도 사용할 수 있다보니 ‘기타 좀 안다’는 사람들은 멀리서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베테랑인 이 대표를 찾아온다.
“학교 다닐 때부터 기타를 만들었어요. 아는 형님이 기타 공장을 해서 접할 일이 많았거든.”
1982년 상경해 1986년부터 이곳 낙원상가에서 일했다. 지갑 가벼운 학생, 이름만 들어도 아는 기타리스트, 작곡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기타를 들고 세영악기사를 찾았다. 특히 밴드 ‘부활’의 김태원은 기타에 대해 아는 바가 많고 소리에 민감해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수리를 해줘도 맘에 드는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다음 날 다시 기타를 가져와 ‘이 부속 바꿔달라, 저 부속 바꿔달라’ 하는 통에 많이 시달렸죠. 덕분에 기타에 대해 더 배울 수 있었지만요.”
직접 수리한 기타로 녹음한 음반을 챙겨줄 때,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볼 때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정작 그는 기타를 칠 줄 모른다. 기타 생각을 어찌나 지겹도록 했는지, 배우려고 붙잡고 있는 것조차 싫증 나 금방 그만뒀다며 웃는다. 건강만 따라준다면 평생 기타 수리 일을 할 생각이라는 이세문 대표. 그의 손을 거쳐간 기타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 것이다.
2004년에 개장한 상하이 서산 국제골프장(파72, 6831야드)은 상하이 송강 서산 국가관광리조트 지역에 위치하며, 호수 공원 주변에 있는 프라이빗 개인회원 전용 골프장이다. 공원 전체 면적의 77% 골프 코스다.
해마다 총상금 1000만 달러의 아시아 최고 상금액으로 HSBC챔피언십이 열리는 골프장이다. 골프장에는 중식당과 양식 레스토랑, 와인바, 시가바, 다기능 홀, 커피숍, 골프숍, VIP룸 등이 있다. 상하이시 중심에서 30km 거리이며, 홍차오공항에서는 10km로 편리한 교통 여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한국인에게 뜻깊은 골프장이기도 하다. 2006년 11월 양용은 프로가 유럽프로골프투어(EPGA) HSBC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상대로 우승을 차지했던 곳이다.
중국 최고 명문 상하이 서산골프장
상하이 서산골프장은 전체 200여 개 별장이 있으며, 회원 수는 748명이고 한국인 회원은 한때 80여 명이었으나 현재는 20명 정도라고 한다. 회원권은 280만 위안(약 5억 원)이며, 두 명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명 회원권은 500만 위안(약 9억 원)이다.
페어웨이와 그린은 모두 최고급 잔디 벤트그라스를 사용했으며, 중국에서도 특히 관리가 잘된 골프장으로 알려져 있다. 골프장은 열대우림을 능가하는 빼곡한 나무들로 울창한 숲을 이루는 공원풍 코스로, 일 년 내내 밝은 녹색을 띠는 향장나무가 전체 나무 중 70% 이상을 차지한다.
평상시 그린 스피드는 9.5 정도이며 주말에는 10.6을 유지하지만, 대회 기간에는 PGA 요구 스피드인 12.2를 유지한다고 한다. 2017년 4월 27일 필자가 라운드한 날에는 전날 비가 와서 7.5 정도로 느렸으며, 기온은 11~21℃였다. HSBC챔피언십 대회 기간 총 4일간 3만 5000명 정도의 관중이 찾는다고 한다. 전체 캐디는 110명이며, 하루에 적정 인원 이외에는 예약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골프장에 도착하니 클럽하우스 입구가 단정히 닫혀 있었으며, 로커룸에 들어가 지정 장소를 열면 수건, 슬리퍼, 비닐가방 등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물이 많고 나무가 빼곡하며, 멋진 별장들이 잘 어우러진 계획적인 골프장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맑은 물과 울창한 숲 인상적
첫 홀부터 검은색 큰 고니들이 페어웨이에서 한가로이 거닐며 반갑게 맞아준다. 고니는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피하지 않는다고 한다. 잘 관리된 코스에서 자연과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첫 홀을 시작했다. 10번 홀 그린 뒤와 11번 홀 페어웨이 중간 오른쪽으로 사슴(鹿)이 10여 마리 있다. 자연에 더 가깝게 구성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4번 홀(파3, 175야드) 그린 뒤로 천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멋지게 서 있다. 전체 70%를 차지하는 향장나무와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이 은행나무 두 그루는 각각 암수로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8번 홀(파5, 584야드) 160야드를 넘으면 페어웨이 왼쪽부터 작은 개울물이 다시 진행되면서 페어웨이의 하얀 벙커 3개와 멋진 조화를 보여준다. 티 샷 후 건너가는 오른쪽의 멋진 다리도 인상적이다. 그린 앞에서 10야드 폭의 물길이 가로막고 있어서 스리온이 쉽지 않다. 이 물길은 멋진 바위들과 함께 분위기를 한껏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11번 홀부터 15번 홀까지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20야드에서 40야드 폭의 물길이 흐르며 작은 섬을 둘러싸고 있다. 작은 섬에는 20여 개의 크고 작은 멋진 별장들이 길게 이어져있어 이탈리아 베니스 수로를 연상케 한다.
16번 홀 페어웨이 오른쪽과 17번 홀(파3, 179야드) 앞 깊고 큰 계곡 해저드가 그린 앞과 오른쪽까지 이어지는 위협적인 홀이다. 긴 파3 홀로 4개의 큰 하얀 벙커들이 그린 삼면을 에워싸고 있어 티 샷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린 오른쪽 뒤로 종탑이 멋지다. 가장 도전적인 홀이다.
이날은 특별히 싱가포르 출신의 골프장 관리 전문가인 로저(Roger) 총지배인과 점심을 함께하면서 골프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직접 골프장 곳곳을 소개해주는 등 뜻밖의 환대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게 해준 것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1989)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시인은 자신이 지나온 모든 시간이 머뭇거림과 탄식과 질투로 가득했다고 고백합니다. 끝없이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했지만 끝내 한순간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음을 참회합니다. 혹시 질투의 불길 속에서 자신을 태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질투로 아파하는 모든 분과 마음 미장공 아홉 번째 이야기 함께하겠습니다.
아직도 질투에 사로잡힌 당신에게
살림하는 전업주부로 산 세월이 많던 시절, 무릎 나온 바지에 애들 안 입는 낡은 티셔츠 입고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든 날 아침, 승강기에 같이 탄 이웃을 나도 모르게 훔쳐보게 됩니다. 옷차림부터 머리 매무새며, 들고 있는 서류가방, 풍기는 향수 냄새까지. 저는 물론 세수도 하지 않은 채입니다. 머리부터 발끝, 아니 구두 끝까지 제대로 갖춰 입은 또래로 보이는 여인. 역한 냄새 나는 쓰레기봉투를 든 나와 예쁜 백을 단정하게 든 그녀.
‘아 저 여자는 무슨 일을 할까? 얼마나 전문적이고 근사한 직종에 있는 걸까? 출근해서는 얼마나 재미 있고 또 의미 있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올까?’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보던 때도 많았습니다. 시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아이들 챙기느라 자신을 가꿀 수 없었던 제 모습이 창피스럽기도 했습니다. 발코니에서 내려다보이는 사람들 모습, TV에 나오는 유명인이나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보다가 당신은 시기와 질투, 시샘하는 마음이 올라온 적이 있습니까? 이 감정이 도대체 뭐길래 나를 초라하게 하고 내 신세를 형편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할까요.
질투의 대상과 거리 : 최소한 사촌은 돼야 배가 아프다
친구가 성공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는다.
-고어 비달, 미국 소설가
영성이 높은 한 수도사가 금식 기도하며 수련 중에 있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유혹하고 훼방하려 해도 안 통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오늘 교구 인사에서 당신 동생이 주교가 되었다고 하는데….” 말을 맺기도 전에 “진짜? 말도 안 돼” 하며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질투의 대상은 질투의 거리와도 밀접합니다. 부부나 연인, 형제자매, 친구 사이처럼 그 사람이 나와 얼마나 가까운지가 관건입니다. 거론한 대상이 자신과 너무 동떨어지고 격이 차이가 나면 질투가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또래일 경우 질투의 불길은 활활 타오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사돈의 팔촌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혈연 관계인 사촌이 땅을 샀기 때문에 내 배가 아픈 법입니다. 평생 일면식도 없던 먼 친척이라면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기 마련이니까요.
만만할수록 불붙는 질투심
수십조 혹은 수백억 달러를 상속받았다거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일론 머스크한테 질투를 느끼는 경우는 매우 드물 것입니다. 막연히 부러워하거나 경탄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그러나 매일 같이 운동하는 이웃이 경매로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샀다거나, 내 옆자리 동료가 주식으로 3000만 원을 벌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상대가 성취한 부와 행복의 크기가 내가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할 때 질투가 솟구칩니다. 또 이미 세상을 떠난 과거의 예술가나 과학자에게 질투가 일어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고인(古人)과 경쟁을 하지는 않으니까요. 동시대를 사는,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질투가 한결 커집니다. 질투는 시간적이나 공간적으로 나와 가깝고, 내용이나 크기로도 만만할 때 더 폭발해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질투는 죄가 없다?
질투(嫉妬)라는 글자에서 질(嫉)의 핵심은 계집 녀(女)에 있는 게 아니라 병 질(疾)에 있습니다. 괴로워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하고 성급한 마음 때문에 근심하다 결국 나한테 독이 되고 남에게도 독이 되는 것. 이러한 괴로움이 질투에 들어 있는 병이라는 것입니다. 투(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에 돌을 던졌으니 병이 들 수밖에요. 말이나 행동, 관계 따위로 손해나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병든 상태가 질투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질투의 신은 누구일까요? 바로 젤로스(Zelos)입니다. 한자 문화권인 동아시아에서는 질투를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로 꼽을 만큼 여자한테만 덮어씌웠는데, 서양에서 질투를 맡은 젤로스가 남신이라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젤로스는 폭력의 신 비아와 권력과 힘의 신 크라토스를 형제로, 승리의 신 니케를 누이로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서양 문화권에서 젤로스는 질투의 개념보다는 경쟁, 열의, 전념 같은 긍정적인 뜻을 더 많이 함축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질투의 이중주 : 스타 탄생과 몰락 이야기
1937년 ‘스타 탄생’이란 이름으로 처음 영화로 만들어졌고, 2018년 세 번째 리메이크된 ‘스타 이즈 본’(A Star Is Born)은 사랑 영화이자 음악 영화로 알려져 있지만 질투가 주인공 못지않은 역할을 하는 작품입니다.
애리조나 하늘같이 타오르는
그대 눈동자
날 보는 그대 눈길에 불타고 싶어
내 영혼 깊숙이 캘리포니아
황금처럼 묻힌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빛을
찾아낸 그대
목이 메고 할 말을 찾지 못해
헤어질 때마다 가슴이 아파
해가 지고 밴드가 연주를 멈출 때
우리 모습 영원히 이대로
기억할 거야
(중략)
그대가 날 바라보면
온 세상이 사라지고
우리 모습 영원히 기억할 거야,
이대로
-OST ‘Always Remember Us This Way’(우리 모습 영원히 이대로 기억해)
중에서
나를 발견해주는 사람을 조심하라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외모가 걸림돌이 되어 낮에는 웨이트리스로, 밤에는 무명 가수로 무대에 오르던 앨리(레이디 가가 분). 천재 기타리스트이자 컨트리 뮤지션으로 명성을 날리는 슈퍼스타 잭 메인(브래들리 쿠퍼 분). 순회공연 중 우연히 찾은 바에서 노래하는 앨리를 보고 잭은 첫눈에 ‘캘리포니아 황금처럼 영혼 깊숙이 묻힌’, 그녀도 몰랐던 내면의 빛을 발견합니다. 나를 찾아내고, 무대에 세우고, 나를 키워주고 응원하는 사람과 결혼한 그녀. 내 진가를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무대에서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를 기회를 주었으니, 두 사람은 이제 사랑밖에 할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내가 당신을 망쳤어. 당신이 부끄러워. 안쓰럽고 그래. 당신 더럽게 못생겼어. 얼굴에 자신이 없어서 남한테 잘 보이는 게 더럽게 중요하지.”
전성기에서 갈수록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잭과 달리 앨리는 스타 시스템에 힘입어 대형 토크쇼에 초대되는가 하면, 그래미상 3개 부문 후보로 선정될 정도로 승승장구합니다. 기쁜 소식을 들은 바로 그날, 잭은 술과 마약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독설과 폭언을 퍼붓습니다. 심지어 신인상을 받게 되어 시상식에 초대된 날, 앨리가 수상 소감을 말하는 옆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소변을 보고 맙니다. 그 뒤 마음을 다잡고 알코올 중독 치료도 하는가 싶더니, 아내 앨리의 대형 해외 투어를 앞두고 목을 매달아 세상을 등집니다. 한 여자를 살렸지만 자신은 살리지 못했던,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남자. 앞선 기형도 시인의 독백과 겹쳐집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죄
질투는 오로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부정적인 감정 상태로 자신을 방치해 병이 되게 해서는 곤란합니다. 열의, 열정, 전념을 담당하는 젤로스 신을 불러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제가 처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게 된 것은 남편의 공이 큽니다. 그 옛날 원고지에 글 쓰던 시절, 시외삼촌의 권유로 타자를 배운 남편을 보면서 마음에 질투의 불씨가 당겨졌습니다. 하지만 질투에 굴복하지 않고 선의의 경쟁과 열정이란 긍정적인 감정으로 바꾸어 저도 당시 ‘한메타자교사’로 컴퓨터와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물리적으로 매우 가까이에 있는 친밀한 관계에서 생기는 질투를 내 삶의 좋은 에너지로 바꿀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뭔가를 해내는 것을 지켜보는 건 자신에게 굉장한 자극을 주기 때문입니다.
질투를 놓아주고 나부터 행복해집시다! : 마음의 주인 노릇
질투에 함몰되어 자기 비하와 자학으로 자신을 파괴할 것인지, 그 감정이 나를 옭아매지 않도록 방향을 선회해 자기 발전, 자존, 자족, 건강한 자극으로 동기를 부여할 것인지 그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주인이 나일 때만 가능합니다.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그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질문해보세요. 질투는 남보다 나를 망칩니다. 내 화살로 나를 쏘는 것과 같습니다. 남을 질투할 시간에 나를 더욱 사랑해보면 어떨까요. 남과 견주며 끝없는 고통과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지 말고 나부터 행복해집시다.
남프랑스 니스에서 일주일 살기
어느덧 니스에서 일주일 살기도 중반을 넘어간다. 니스에서 10km 남짓 떨어져 있는 자그마한 중세마을 에즈 빌리지를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날이다. 아침부터 하늘이 유난히 눈부시게 새파랗다. 니스의 숙소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 역시 짙푸르다. 어쩐지 하루의 예감이 좋다. 작은 손가방에 머플러와 500리터 물 한 병 담아서 호텔을 나섰다.
바닷가에는 반바지 차림으로 조깅하는 사람들이 내 옆을 휙휙 지나간다. 모래밭으로 내려가 아침 햇볕을 정면으로 맞아들이면 남부의 여행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다. 선탠하거나 알콩달콩 연애 중인 이들 옆을 지나가며 나도 너그럽게 행복해진다. 이곳에 일주일 머물면서 니스의 해변을 즐기는 일은 이렇게 틈틈이 해야 한다. 그게 새벽이든 한낮이든 밤바다이든 언제든 바라볼 수 있고 다가갈 수 있어서 어찌나 뿌듯한지.
니스에서 버스로 여행하기
니스에서 에즈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 먼저 트램으로 여섯 정거장을 가야 한다. 여섯 정거장 거리의 트램 안은 벌써 사람들로 꽉 차서 꼼짝달싹 못하고 서 있다가 Vauban역에서 내렸다. 그런데다가 에즈 빌리지행 112 버스는 떠날 시간이 되어 이미 시동을 걸고 있었고 빈자리가 없다. 서서 가야 한다. 참고로 니스 가리발디 광장에서 82번 버스도 있다. 버스비는 편도 1.5 유로 정도. 물론 기차편도 가능하지만 불편함이 커서 대부분 여행자들은 에즈행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 여행 중 삼사십 분을 서서 가는 건 버스 창가에 앉아 편하게 지중해 풍경을 보는 즐거움 하나를 놓칠 수 있다. 하지만 지중해의 차창 밖은 어디서 바라보아도 언제나 무한 아름다움이다. 해안가를 즐기려면 버스의 오른편에 앉는 게 좋다. 아침부터 짙푸른 하늘과 바다를 멋지게 보여주더니 잠깐 이렇게 다리품을 팔라고 한다.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선채 버스 차창 밖으로 에즈의 산비탈과 지중해의 풍광을 고스란히 눈에 담았다. 에즈 빌리지(Eze Village)에 도착했을 때는 온 산하가 투명한 햇살의 빛 내림으로 환했다.
니스 근교의 선인장 마을 에즈빌리지
눈앞에 교회의 시계탑이 있는 건물이 보인다. 여행길에 시계탑을 만나면 대부분 그곳이 목적지 인양, 마치 이정표 삼아 시계탑을 향해 걷는다. 어차피 느슨하게 보낼 셈인 하루다. 먼저 거길 오르지 않고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아랫동네를 즐겨본다. 골목마다 햇볕이 뿌려져 있고 몇 마리의 잘생긴 개가 왔다 갔다 한다. 마을조차 한가롭고 헐렁하게 여유만만이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에 평화로움이 번진다. 언덕 돌담에 걸터앉아 사람 구경도 하고 할 일 없이 두리번거리며 마음껏 여유 부리며 가벼운 마음을 얻는다.
아껴두었던 걸 꺼내먹듯 이젠 비탈진 에즈 빌리지 언덕으로 올라간다. ‘사실 중세마을이 다 비슷하지 뭐’ 하면서 별스럽지 않다는 생각으로 처음엔 무심히 걸었다. 비좁은 골목마다 콕콕 박혀있는 작은 상점들이나 갤러리, 교회 건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걸을 수 있다. 직접 만지면서 느낄 수 있는 시간여행 시작이다. 손바닥의 감촉으로 거슬러 가보는 중세기 마을이다.
중세기의 언덕에서 만난 지중해, 그리고 니체
동굴과도 같은 조붓한 골목을 이리저리 걷다 보면 길을 잃을 수도 있는 해발 427m의 작은 성벽 마을, 그 모습대로 독수리 둥지라는 별명도 있다. 에즈는 13세기 로마의 침략을 피해 산꼭대기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마을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흑사병이 한창이던 14세기에 이곳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이때부터 지금껏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중세마을로 자리 잡고 있다.
계단을 오르는 중에 예쁜 공방이나 기념품점이 줄지어 이어지고 테라스가 매력적인 갤러리가 자꾸만 튀어나온다. 남프랑스의 따스하고 환한 햇살과 꽃들로 어우러진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행복이 넘친다. 느릿느릿 에즈 빌리지의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걸으며 만나는 가시를 뻗치고 있는 다양한 선인장과 여신의 조형물들이 이 마을의 수호신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을 정원에 뿌리내리고 오랜 시간 동안 저렇게 지중해를 지키고 있구나 하는...
13세기 지중해 높은 절벽 위에 만들어진 작은 요새 마을 에즈 빌리지. 수백 가지의 선인장이 독특하게 가꾸어진 길을 걸어 400m 높이에 위치한 열대 정원에 서면 바람결이 확 다르다. 해변 마을에서 에즈 빌리지까지는 니체의 오솔길이 있다. 니체가 사랑했던 연인 루 살로메에게 실연당하고 찾아온 니스와 에즈 빌리지에 머물며 가장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다고 한다. 14세기에 지어진 문이 마을 입구에서 맞는다. 그 길을 걸으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구상했다는 철학자를 떠올려 본다. 걸으면서 사유하기를 좋아했던 니체의 자연을 마주하는 비탈진 산책로를 두리번거리며 산책하듯 걷는 성벽 마을의 시간여행이다.
사방을 빙 돌며 파노라마 전경을 바라보느라 가슴이 벅차다. 가슴이 뻥 뚫린다. 좁은 골목의 올라오며 느꼈던 신비로움과는 달리 탁 트인 해방감으로 시원하다. 절벽 아래 붉은 지붕의 마을이 해안선의 아름다운 결을 따라 평화롭다. 발아래 지중해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눈앞에 펼쳐놓은 건 누구일까. 내가 본 지중해 풍경 중에서 최고다.
지중해 마을 정원의 기억
니스에서 모나코 가는 길목에 위치한 보석처럼 매력적인 마을, 놓쳤으면 후회했을 뻔했다. 아랫마을로 내려와 노천카페에 앉아 토르티야 샌드위치로 때우는 늦은 점심도 충분히 즐겁다. 오래된 중세 마을에 부는 가을바람 속에서 한나절이 그렇게 가고 있었다.
내게 에즈 빌리지는 여행길에 잠깐 들러 보는 곳이었다. 아니 누구에게나 작은 마을일뿐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머무르려는 발걸음이 되어 느릿느릿 길게도 놀았다. 돌아와서도 종종 생각나는 걸 보면 나와 잘 맞는 곳인 듯하다.
에즈 여행은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계절이어야 한다. 푸른 지중해를 멀리서 바라보기 위해서 다시 한번 들러보고 싶은 마을, 에즈 빌리지(Eze Village)다. 지중해와 이토록 아름답게 어우러진 선인장 마을의 정원, 그 옛날 이곳엔 누가 살았을까. 그곳은 누구의 정원이었을까.
파리에서의 1박 2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애초에 생미쎌의 소르본느 주변에서 어슬렁 놀다가 미술관 한 군데 돌아보는 걸로 여유롭게 일정을 잡았기에 쫓기는 기분 없이 잘 보낸 1박 2일이었다. 틈새 여행으로 아쉬움 없다.
오를리 공항에서 탄 작은 비행기는 새하얀 구름 속 푸르디푸른 하늘 구경에 잠깐 정신 팔린 사이에 금방 니스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창밖의 하늘과 구름은 어찌나 푸르고 새하얗던지 반짝거리는 니스의 푸른 바다와 콤비를 이룬다. 온통 코발트블루의 세상을 보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건 니스만의 블루다. 지중해의 니스 블루라고.
지중해의 니스 블루
사실 니스는 여행지로 생각지도 않았던 곳이었다. 때로는 이렇게 예상치도 않은 여행지를 다녀볼 수도 있다는 게 기분을 달뜨게도 한다. 공항 건너편의 버스정류장에는 칸느와 모나코행 버스가 늘 대기하고 있다. 또 한쪽엔 니스 역 방향의 98번 버스가 서 있다. 우리는 니스 해변 쪽으로 가는 99번 버스로 지중해가 펼쳐지는 숙소 앞에서 내렸다. 환한 햇살이 맞이할 것 같았던 니스는 비가 내린 후의 한기가 엄습했지만 다음 날부터는 니스의 햇빛 좋은 날씨가 날마다 이어졌다.
끝을 알 수 없는 코발트블루의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해변가의 전망 좋은 방. 호텔 방에 앉아 광활한 지중해의 풍경을 마음껏 볼 수 있도록 위치 좋은 곳의 전망 값을 더 지급했다. 발코니에 앉아 새벽을 바라보고 찬란한 햇빛을 눈부시게 볼 수 있었다. 아름답게 휘어진 니스의 해안선에 내리는 노을을 향해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며 짜릿했다.
니스에서는 모든 것을 털어내고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맨발로 몽돌을 밟으며 걷는 해변엔 여행객들의 거리낌 없는 일광욕 자세가 민망할 것도 없이 금방 적응된다. 느릿한 트램을 타고 거리를 지나거나 메세나 광장에 나가보아도 무표정하거나 심각한 얼굴은 보기 어렵다. 경직된 근육 없이 자유를 가득 품은 몸짓이었고 더없이 편안한 표정들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도 모두 친절했다. 적대감 따윈 하나 없이 무장 해제된 표정들. 구시가지의 고풍스러운 골목을 걷다가 나와서 길 가던 노신사에게 지도를 들고 길을 물었더니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아예 다리 사이에 내려놓고 안주머니에서 펜을 꺼낸다. 그리고 내 지도에 동서남북을 그리며 상세히 설명을 한다. 그냥 "조~오기로 돌아서 가면~"이라고만 해주어도 좋으련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기분이 든다.
노천카페마다 의자에 팔걸이를 하고 느긋하게 앉아 지중해를 즐기고 니스를 즐기는 모습들이다.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거나 와인과 지중해의 해산물 샐러드를 앞에 놓고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런 모습이 여행자에게 전해지고 덩달아 행복감 충전이다. 하루쯤 지나면서 긴장감이라곤 일 그램도 없는 나를 발견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니스(Nice)는 나이스(Nice)다.
가끔 가십 기사로 프랑스 배우나 허리우드 스타들이 니스에서 휴양 중인 파파라치 사진들을 기억한다. 따스한 햇살로 반기는 곳 니스는 누구라도 마음 놓고 쉴 수 있게 하는 도시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바다와 알프스 산맥을 모두 품은 세계적인 휴양도시답게 여유와 풍요함이 흘러넘친다.
니스가 좋은 이유
니스는 프랑스 남부의 항만 도시로 프랑스의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다. 모나코와 칸느가 옆동네이고 이태리 국경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당일코스로 하루씩 칸과 모나코를 다녀올 수 있다. 현재 니스는 프랑스령이지만 역사적으로 이태리와 영토분쟁이 있었고 한때는 이태리 령이기도 했다. 그래서 니스지방 사람들의 이름 중엔 이태리식 이름이 많고 풍습이나 음식도 이태리풍이 많다. 무엇보다도 신선한 지중해의 식재료로 요리한 해산물 요리가 풍성하면서도 가격도 부담 없는 편이다. 숙소 또한 비싸진 않지만 찾는 이들이 많아 성수기엔 예약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이곳은 평균 기온이 15℃이고 연중 고르게 온난한 날씨다. 여름엔 덥고 건조한 편이긴 하지만 대체로 전형적인 지중해 도시로 시기와 상관없이 사계절 니스를 즐길 수있는 기후다. 내가 갔을 때는 시월인데도 해변가엔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풍경이 일상처럼 자연스럽다.
야자수 나무 사이로 다정히 손잡은 연인이 서 있고 바다를 향한 벤치에 어깨를 감싼 부부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자전거를 탄 젊음이 쌩쌩 지나가고 잘 생긴 개를 끌고 걸어가는 모습이 여유롭다. 이처럼 여유자적한 풍경 속에 내가 있다.
지끈지끈한 일상의 피로나 두통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가벼워지는 듯했다. 마음껏 늦잠을 잘 수도 있고 거리를 지나가다 아무데나 들어가서 홍합이 가득 뒤덮인 지중해의 해산물 파스타를 먹는다. 골목길이든 대로든 해변가든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긴다. 몇 걸음 걷다가 야자수 가로수길 어드메쯤에 아무렇게나 털썩 앉아 지중해의 반짝거림을 언제까지나 멍하니 바라볼 수 있다니. 며칠 후면 다시 별스럽지 않은 내 일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괜찮다. 얼마든지 괜찮다.
남프랑스 맛의 기억
물론 남프랑스의 맛이란 제목으론 당치도 않다. 여행 중에 그곳의 맛을 골고루 맛본 것도 아니고 좋은 것을 찾아다니며 먹은 것도 아니다. 그나마 먹는데 정신 팔려 사진으로 남길 생각을 못해서 찍히지 못하곤 했다. 어쩌다 먹고 어쩌다 찍힌 별스럽지 않은 사진 몇 컷 일뿐이다.
니스의 메인스트릿을 지나 골목길 포장마차처럼 생긴 레스토랑 Temple Bar. 가족단위의 손님이거나 연인들이 가득 차서 바글바글했던 저녁시간. 파스타도, 홍합요리도, 감자튀김도 푸짐 푸짐했다. 이런 인심 대환영이다. 맛있다. 그런데 국물이 간이 좀 세다. 조금만 덜 짰으면 좋으련만, 하긴 괜한 트집이다. 그 분위기 속에선 이렇게 잊지 못할 또 다른 맛을 낸다는 사실이다.
니스의 호텔 조식은 메뉴가 다양했다. 그 중에서 자그마하고 대충 만든 듯하지만 부드러운 크레페가 따끈따끈 금방 구워져 나와 그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크레페(Cr^epes)의 생김새는 동그란 금빛 형태로 밝은 날 떠오른 태양을 상징한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이 춥고 어두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하고 밝은 봄을 맞을 때 먹는 빵이었다는데 이제는 우리의 호떡처럼 길거리 어디서든 사 먹을 수 있으니 그 의미를 떠올릴 틈이 없다.
그리고 어딜 가나 빨강과 보라, 그리고 노랑과 초록으로 선명한 색감이 빛나는 지중해의 채소와 과일들이 가게마다 넘쳐났다. 사진 한 장만으로도 그 시간들이 내게 우르르 몰려온다. 맛의 기억이 여행의 기억이기도 하다.
이번 주 들어 본격적인 폭염으로 낮 기온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 곳곳에서 무더위에 지친 취약계층을 위한 ‘놀이보다 즐거운 얼음 땡!’ 캠페인이 진행된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가 주관하는 ‘놀이보다 즐거운 얼음 땡!’ 캠페인은 1인 가구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아이스 팩과 음료를 기부 받는 활동으로 2020년 시작됐다. 기부받은 물품은 폭염의 위험에 노출된 홀몸 어르신, 야외노동자, 쪽방촌 주민 등에게 전달한다.
이번 캠페인은 7월 26일까지 19일간 서울 시내 100개 지역에서 시행된다. ‘모으기’와 ‘나누기’로 구분돼 진행하는데, ‘모으기’는 주민들로부터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캠핑용 아이스박스, 보냉가방, 아이스팩, 음료 등을 기부 받는 형식이다. ‘나누기’는 자원봉사자가 기부받은 보냉가방과 아이스팩을 선별, 세척한 뒤 음료를 담아 취약계층에 전달한다.
올해는 동네 정보 제공 및 중고 물품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과 협력해 시민들의 캠페인 참여를 돕는다. 당근마켓 애플리케이션에서 동네별 얼음 땡 정거장이 표시된 온라인 맵을 볼 수 있다. 자세한 참여 방법은 아래와 같다.
• 당근마켓에서 얼음 땡 캠페인 참여 방법
① 스마트폰에서 당근마켓 앱 실행
② 앱 홈 화면 상단의 얼음 땡 캠페인 화면 누르기
③ 화면에서 “우리 동네 얼음 땡 정거장 찾기” 누르기
또는 앱 하단 내 근처를 누른 후 당근지도로 얼음 땡 정거장 찾기
④ 준비한 아이스 팩과 물을 가지고 나눔 하기
⑤ 당근마켓 앱 동네생활 탭에 “얼음 땡” 캠페인 주제 선택 후 얼음 땡 정거장 정보 및 후기 공유하기
얼음 땡 정거장 방문이 어려운 시민은 ‘해피빈 기부’를 통해 참여하는 방법도 있다. 해피빈 홈페이지에서 ‘우리 동네 더위 냉장고’를 검색한 후 모금함 기부하기를 선택하면 된다. 기부를 통해 모인 금액은 기후 약자를 위한 물·음료 및 물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더불어 더위에 취약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폭염을 피해 쉴 수 있도록 경로당, 행정복지센터 등을 중심으로 동네 무더위 쉼터가 운영되고 있다. 동네에서 가까운 무더위 쉼터를 찾고 싶다면 ‘국민재난안전포털’에서 지역을 선택한 후 검색 버튼을 누르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 고독사 사망자는 50·60 세대, 특히 남성이 많다고 한다. 100세 시대에 50·60 세대는 젊은 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의 고독사가 잇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와 예방법에 대해 알아봤다.
서울기술연구원 최수범 연구위원은 지난 20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싱크탱크협의회(SeTTA) 주최로 열린 ‘빅데이터 기반 고독사 예방’ 정책세미나에서 ‘고독사 실태조사 자료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고독사로 정식 분류된 사례는 2020년 51건에서 2021년 76건으로 늘었다. 이 기간 고독사로 분류된 사망자 127명을 분석한 결과 사망자 10명 중 8명(76.4%)은 남성 1인 가구였다.
연령대는 60대가 31.5%(40명)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50대 26.8%(34명), 70대 18.1%(23명), 40대 13.4%(17명)로 이었다.
전체 고독사 사망자 중 생계·의료·주거 등 기초생활수급자는 80.3%(102명)로 집계됐다. 나머지 19.7%(25명)는 비수급자로 확인됐다. 비수급 사망자 중 60.0%(15명)는 관리(상담) 이력조차 없던 것으로 나타났다.
중장년 남성의 고독사 위험은 서울시복지재단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서울시복지재단 송인주 선임연구위원은 세미나에서 ‘서울시 고독사 위험 현황 분석’을 발표했다. 송 연구위원은 2020년 기준 서울시 고독사 위험자 사망 건수를 978건으로 분석했고, ‘무직인 50~60대 남성’을 고독사 고위험군이라고 분석했다.
연령별로는 60대가 29.1%(265건)로 가장 많았고 50대 19.3%, 70대 19% 순이었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644명으로 65.8%를 차지했고, 여성은 334명으로 34.2%였다. 무엇보다 서울시 고독사 사망자 가운데 95.4%인 933명이 무직 상태였다. 또한, 일용근로자가 18명, 자활 근로자가 13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송 연구위원은 “무직인 50~60대인 남성은 강제 퇴거나 열악한 노동 환경, 급격한 은퇴를 겪은 뒤 일상이 급격하게 몰락하면서 고독사 위험군으로 이어졌다”라고 진단했다. 더불어 고독사를 한 978명 가운데 61.3%인 599명이 돌봄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최수범 연구위원은 “현재 지원으로는 고독사를 예방하기 어렵고, 위험군 선별에도 어려움이 있다”라며 “위험군을 조기 발견하기 위해서는 수동적인 조사에서 데이터 기반의 위험군 발굴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서울시는 올해 고독사 위험 2천 가구에 고독사 예방을 위한 스마트플러그 기기를 업그레이드해줄 계획이다. 아울러 스마트 플러그를 멀티탭 형태로 제작해 낡은 멀티탭을 교체해주거나 전기요금 보조를 통해 스마트플러그 보급 확대를 모색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대표 유품관리사인 김석중 키퍼스코리아 대표는 확대되고 있는 고독사 문제를 어떻게 볼까. 먼저 그는 한 70대 남성의 고독사가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교사로 일하셨던 분인데 자녀들한테 굉장히 완고한 태도를 보이셨다. 뭐든지 자기 혼자 일을 해결하려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이어 “돌아가시고 나서 정리를 하는데 침대 밑에서 가방이 나왔다. 속옷, 양말, 홑이불 같은 것들을 싸놓으셨더라. 요양병원에 가게 되면 들고 가시려고 준비를 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칠판에 약을 먹은 날을 기록해뒀고,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온 내용을 메모해둔 것도 있었다. 3년 전에 쓴 것들로 보이고 가방도 그때 싸신 것 같았다. 치매 증상이 그때부터 있었다는 사실도 추정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치매 방지를 위해 혼자서 부단히도 노력하신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혼자 해결하시려고 하다 보니 안 좋은 결과를 맞았다고 생각한다”면서 “고인분이 돌아가시고 자녀분들이 매우 안타까워하셨다. 자녀분들이 다가가려고 해도 고인께서 마음의 문을 안 열어주셨다”라고 전했다.
이를 두고 김석중 교수는 “전형적인 고독사의 모습”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는 “무연고 고독사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가족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통이 안 되어서 고독사를 맞는 경우가 많다. 실제 고독사의 본질 문제는 가족 간의 사이 약화다. 가족과 소통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혼자서 해결하겠다는 자세는 굉장히 위험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가족들이 있는 데도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석중 교수는 “혼자 사는 50·60 세대들을 보면 이혼도 있고, 갑작스럽게 은퇴를 한다거나 자영업을 하다가 경기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패배주의가 생겨서 가족들과 떨어져서 혼자 있고 싶어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히 50·60 세대 남성의 고독사가 많은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식사를 제대로 못 챙겨 먹어 영양 불균형이 오면서 건강이 악화되는 것 같다”라고 짚었다.
이에 따라 김석중 교수는 고독사 예방법에 대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심신 건강 유지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은퇴 후의 전원생활을 떠올려 보는 막연했던 꿈, 퇴직을 앞두었거나 이미 직장생활을 끝낸 은퇴자들이 시골살이를 꿈꾸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아이니 새싹삼 이선호 대표(57)는 고민 없이 시작된 귀농이었다. 그렇다고 꾸준한 준비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이리로 오라고 손짓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의 귀농귀촌의 마음가짐이라면 그저 어머니가 살고 계신 고향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전남 담양에서 귀농생활을 벌이고 있는 이선호 대표의 즐거운 모습을 보았다.
"귀농 5년째 들어갑니다. 패션 유통업 쪽에서 30년 일했죠. 그중에 15년 넘게 해외 주재 근무를 했고요. 사실은 어머니가 홀로 계셔서 내려왔어요. 편찮으신 어머니 모시고 할 수 있는 소일거리가 없을까 하다가 이걸 만났죠. 새싹삼. 처음엔 진짜 소일거리였어요. 엄마와 재미있게 살려고 했지 이걸 목표 삼지 않았어요. 하다 보니 직장생활 임원 때보다 수입이 더 낫군요. 귀농 품목으로 소개할만한 아이템이어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오면 누구라도 최선을 다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묻지 않았는데도 상대편에서 무엇이 궁금할지 먼저 파악하고 대뜸 속 시원히 술술 풀어놓는다. 알고자 하는 것을 모두 알려주고 싶어 하는 열린 마음이 시원시원하다. 전직 유통업계 출신의 노하우가 이런 데서도 발휘된다고나 할까. 애초 별생각 없었다고는 말하나 농업도 비즈니스라고 하면서 그동안의 치열했던 이야기를 뜸 들이지 않고 꺼내어 놓는다.
“지금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귀농을 한 사람들이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듣고 싶어 합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니 불안하고 걱정도 되니까 별걸 다 알고 싶어 하죠. 또한 배우고 싶어 하고요. 거리가 멀면 제가 수시로 찾아가보기가 어렵지만 근방으로 귀농하시면 모든 노하우를 일일이 다 가르쳐 줍니다."
섣부른 시작을 경계한다. 선(先)경험, 후(後)결정을 힘주어 강조한다. 오죽하면 “일단 내 작업장 한 귀퉁이를 내어줄테니 일정 기간 연습해 보라고까지 합니다”라고 말할까. 아무리 면밀히 준비했다 해도 무수한 시행착오에 맞닥뜨리고 귀농이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알아간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있을 때 선 경험자의 노하우가 막막한 이들에게 용기가 된다는 걸 그는 안다. “목숨 걸고 가르쳐 준다”는 말에 진심이 느껴진다.
새싹삼은 아주 어린 인삼이다. 생소한듯하지만 뿌리부터 잎까지 모두 먹을 수 있는 건강채소로 요즘에 식당에 가면 애피타이저처럼 몇 뿌리씩 서비스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수 년씩 재배하는 인삼과는 달리 단 기간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인삼에 비해 가격도 저렴해서 가정에서도 건강식으로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웰빙채소다.
-귀농을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이 있다면요?
“물론 있죠. 우선 자본이 얼마였는지 묻습니다. 1억 들었습니다. 아마 지금 스타트한다면 1억 5천 정도는 들것입니다. 물가랑 인건비가 겁나 올랐잖아요. 모종 가격은 제외하고요. 모종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사면되고요. 먼저 군(郡)에서 도와주는 귀농센터에 꼭 들러보는 게 필요합니다. 많은 도움을 얻을 겁니다."
"당연히 매출도 물어보죠. 작년 매출 4억이고 올해는 6억 하려고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어쩔지 모르겠지만 안 되면 내년에 더하면 되지요 뭐. 어떤 상황 변수가 있을지 늘 생각해 둡니다."
시종일관 유쾌하다. 툭툭 던지는 구수한 전라도 말투가 친근함을 만들고 지금의 현실을 긍정적으로 전달한다. 그렇다 해도 하다 보니 저절로 이렇게 되었을 리가. 끝없이 연구하고 잠도 못 자며 밤새워 돌보고 고민하던 시간도 말속에 간간히 들어있다.
"초반 2년간은 안 팔려서 머리 싸매고 겁나 고생했죠. 자리 잡는 동안 잠도 못 잤어요. 특히 내가 애써서 키운 어린 싹들이 죽어갈 때는 밖에 나오기도 싫었어요. 술도 마시고 많이 슬퍼한 적이 있었죠.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어요. 어느 순간 매출이 확 올라가더군요. 쇼핑몰이나 외식업체 쪽으로 판매하는데 오늘도 밀리는 주문량 소화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이야기 하는 그를 보니 앞치마를 거꾸로 뒤집어 입었다. “하루 종일 이 복장인데 흙을 만지는 일이다 보니 흙이 튀어서 주머니에 고여 들곤 해서요. "농사? 잡초와의 전쟁입니다. 풀 겁나 많아요." 말하는 도중에도 시종일관 상자도 옮기고 흙을 토닥이며 풀도 뽑고 잠시도 가만있질 않는다.
-이 품종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40년간 딸기 농사를 하셨어요. 초등학교 때 학교 다녀오면 가방 던지고 돕곤 했죠. 딸기와 벼농사를 번갈아가며 하는 것이 너무 힘든 걸 알았어요. 일하는 여건이 그것보다 더 나은걸 찾다가 서울 귀농 박람회에 갔을 때 새싹삼하는 분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전 준비를 꼼꼼히 했죠. 재배 농가를 수시로 찾아다니기도 했고요. 유년 시절의 농사 경험이 자연스럽게 마음먹기에 이른 점도 있었을 겁니다.”
“이건 부부가 함께 해야 합니다. 새싹삼은 일정 기간 이상 키우면 상품성이 떨어지는 예민한 품종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자라서 판매해야 하는 작물이다 보니 늘 누군가가 지켜보아야 합니다. 시설원예를 하는 동안엔 부부 중 한 사람은 집에 있어야 해요. 저도 서울에 문상 갈 일이 있으면 밤차 타고 갔다가 새벽에 내려옵니다. 그래야만 성공합니다. 모든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 하듯 일단은 잘 보살펴 키워서 정직하게 팔면 모든 사업은 성공합니다. 유통의 기본이죠.”
그러면서 철저한 준비만이 안정적 정착을 보장한다는 걸 힘주어 말한다. 준비도 안 하고 덤비는 열 명 중 여섯 명은 빚쟁이가 되어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선(先)경험을 강조한다. 먼저 재배할 작목파악을 확실하게 하고 시장조사나 전망을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요즘 트랜드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안정적 정착을 위해서 한두 달 실습도 해보고 실제로 파는 연습과 공판장 연구, 본인이 판매할 루트도 알아보고 미리 해보아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 인터넷 쇼핑몰을 위한 매체활용 능력도 귀촌 전략의 필수임을 덧붙인다.
-판로는 어떻게 해결했는지요.
“유통 회사 출신이다 보니 고객님들의 마음을 읽습니다. 전화 통화 한 번이면 그 고객은 끝까지 갑니다. 쌀은 공판장에서 가져가지만 새싹삼은 공판하는 순간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내가 팔아야 합니다. 공판장을 통하지 않고 내가 가격 조절하는 게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어요, 장점으로 만들어야죠. 무엇보다도 정성으로 고객을 대합니다. 고객이 억울하면 절대 안 됩니다. 외식업체면 그 업체가 수익이 날 수 있도록 하고 상대가 이로울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순위입니다.”
-하루 일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 건가요.
“14시간 일합니다. 이곳 150평 농장의 작물들을 관리하고 오후엔 택배포장하고 바쁩니다. 어느 순간 생각해 보니 어머니랑 재미있으려고 했는데 많이 못 놀아드리고 여기에 매달려 있어서 죄송스럽죠. 동네 주민 세 분과 또 아들이 도와주고 있어요. 그렇지만 하루쯤은 쉽니다. 어머니랑도 놀고 나도 사람 만나는 거 즐깁니다.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골프도 칩니다.”
-귀농을 위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두 가지를 말하고 싶어요. 첫째, 반드시 철저히 준비하고 시작할 것. 두 번째, 내가 덜 벌어도 상대를 만족시킬 것. 이 두 가지만 하면 자동적으로 돈이 따라와요. 잘하면 명예도 따라옵니다. 또 하나 보탠다면 남에게 이익을 주는 사업을 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