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평소에 충분히 잔병치레를 했다고 봐주는 일은 없다. 부양하는 가족이 있어도 피해가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것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다. 강서 나누리병원에서 만난 이미정(李美正·54)씨도 그랬다. 연이어 시험에 들듯 시련이 다가왔지만, 그저 묵묵히 이겨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배정식(裵政植·41) 병원장을 만난 것은 자신과 주변 것들에 대해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삶에 준 선물 같은 보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그저 즐거운 일뿐이었다. 악몽 같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전조는 없었다.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사우나의 열기가 아직 몸에 미열처럼 남아 있었지만, 바람을 시원하게 느끼게 해주는 기분 좋은 것이었다. 옆자리 동네 언니와의 대화 주제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었지만 언제나처럼 즐거웠다. 늘 다니던 길 위에서 달리는 차들이 주는 공포도 없었다.
그때였다. 승용차 한 대가 벼락같이 나타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차는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속도를 줄일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속도는 왜 줄이지 않는 건지,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는 건지, 찰나에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그 의문들이 머리를 떠나기도 전에 섬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엄청난 충격이 그녀를 덮쳤다. 사이렌 소리에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구급차 안이었다.
음주 차량이 빼앗아가 버린 삶
이미정씨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유난히 미간을 찌푸렸다.
“2010년 사고가 났어요. 나중에 들었는데, 가해 차량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했다더라고요. 제대로 감속할 생각도 못하고 냅다 들이받았나 봐요. 119 구조대원들이 저를 차에서 꺼내기 위해서 절단 장비까지 써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결국 그날의 사고는 이미정씨의 몸에 생채기를 냈다. 치아가 4개나 부러졌고, 늑골도 부러져 꽤 오랫동안 고생해야 했다. 하지만 정말 치명적인 상처는 다른 곳에 났다. 바로 허리였다.
“허리 디스크 파열이었어요. 디스크 수핵이 터져 수술을 받아야 했어요. 대학병원에서 수술 후 퇴원하기까지 3주나 걸렸어요.”
사고 후 몇 년이 지나면서 허리는 조금씩 나아지는 듯싶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동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상황이 됐지만, 성급한 그녀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반찬장사를 하면서 보낸 십수 년의 세월은 그녀를 뭐든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성격이 이번에는 화를 불렀다.
“건강에 좋다고 등산을 다녔어요. 허리 아픈 사람한테는 쥐약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죠. 허리가 아파오길래 더 열심히 운동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반대였어요.”
상태는 수술 직후보다 더 좋지 않았다. 집에서 20분 거리인 시장까지 한 번에 걸어갈 수가 없었다. 10분만 걸으면 온몸의 맥이 풀리면서 주저앉았다. 밤이 되면 다리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저려왔다. 그 고통의 날들 속에서 배정식 병원장을 만났다.
‘척추수술 후 통증 증후군’으로 다시 병원에
배정식 병원장은 이미정씨를 쉽지 않은 환자로 기억했다.
“임상적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전후 사정이 좀 복잡했어요. 일단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오신 상태였고, 또 그 수술이 잘못된 수술은 아니었으니까요. 이미정씨의 경우는 두 가지 증상이 겹친 상태였어요. 척추에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인 척추관이 좁아져서 생기는 척추관협착증 증세도 있었고, 척추수술을 한 환자에게서 간혹 나타나는 척추수술 후 통증 증후군 증상도 있었죠.”
증후군은 치료 과정에서 섬세한 주의가 필요하다. 트라우마라는 심리적 불안이 병의 치료 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특히 만성통증 환자는 우울증을 동반하기도 해서 배 원장은 신체적인 치료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환자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가가 치료에 많은 영향을 끼쳐요. 환자의 표정을 보면 치료가 어떻게 진행될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데요, 경험상 환자가 시술에 대한 믿음이 높으면 수술이나 예후가 좋은 경우가 많아요. 의심하거나 불안해하면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요.”
척추관협착증은 시니어들이 노화 과정에서 자주 겪는 병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 척추가 노화되면서 척추 뼈마디가 굵어지고 뼈와 뼈 사이에 있는 인대가 두꺼워지는데 이 과정에서 신경이 압박당하기 때문이다.
허리 디스크와 구분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허리를 굽혀보는 것이다. 허리를 굽히거나 쪼그려 앉았을 때 통증이 사라지면 척추관협착증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허리보다 허벅지나 엉치 같은 부위에 더 큰 통증이 있다.
“허리를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분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어요. 농부나 주부에게서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곤 하죠. 보통은 약물을 이용한 주사 요법으로 3개월 정도 치료해보고 수술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심한 경우 대소변 기능 장애가 오기도 해요. 하지만 실제로 수술을 하는 경우는 1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허리 질환 예방은 근육 강화가 최고
그렇다면 건강한 허리를 유지하는 방법은 없을까? 배 원장은 허리 근력을 강화할 수 있는 운동을 하라고 권고한다.
“척추 근육이 단단해지면 뼈와 신경, 인대에 주어지는 스트레스가 분산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허리 디스크에 무리를 주지 않는 운동을 통해 근육을 강화하면 허리 질환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배 원장이 추천한 운동은 30분 정도 속보로 걷는 것이다. 시간을 30분 정도로 제한한 것은 너무 많이 걷게 되면 오히려 척추관협착증을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일 차량으로 이동하는 일상이라면 두 정거장 정도 미리 내려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배 원장의 설명이다.
또 다른 추천 운동은 수영이나 아쿠아로빅 같은 수중 운동. 물속에서 운동을 하면 척추나 무릎 관절에 중력으로 인한 부하가 적게 걸리기 때문에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바닥 생활은 허리에 안 좋다. 바닥에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의 반복이나 바닥에 허리를 굽히고 앉는 자세, 무거운 물건을 드는 자세는 허리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배 원장은 설명한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는 가급적 물건과 몸을 밀착시켜 들고, 정면을 바라보면서 들어야 허리 부상을 예방할 수 있어요. 쉴 때는 가급적 등받이 있는 의자를 이용하시고요. 재채기할 때도 복압으로 인해 디스크 파열이 올 수 있으니 체중 분산 등 주의가 필요해요.”
허리수술 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정씨도 약물 요법으로 치료를 시작했지만, 예후가 그리 좋지 않았다. 결국 배 원장은 수술을 결정했고, 이씨는 수술 결정에 동의하는 데 큰 걱정은 없었다고 한다.
“사고를 당하고 처음 수술대에 누웠을 때가 무척 겁이 났죠. 허리수술은 위험하다는데 큰 사고로 수술까지 하게 됐으니까요. 하지만 두 번째 수술은 담담하더라고요. 수술을 결정하는 것도, 수술대에 누워서도 마음이 편안했어요. 원장님을 믿고 모든 걸 맡기자고 생각했어요.”
외과의사 입장에선 의사를 믿고 몸을 맡겨주는 환자가 고맙다. 허리수술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와 소문들이 쌓이면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환자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배 원장도 그런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실제로 무조건 수술을 거절하는 환자도 있어요. 하반신에 마비가 올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데 말이죠. 치료는 모든 방법을 다 고려해야 해요. 약물이나 비수술적 처치도 당연히 고려해야 하고, 만약 수술이 필요하다면 해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치료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검토하고, 환자 상태에 맞는 치료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치료법만 고집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미정씨가 병을 의연하게 이겨낼 수 있었던 데는 딸의 존재가 컸다. 사실 이씨가 큰 병을 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녀의 표현대로 “웬만한 병원은 다 가봤다”고 할 정도로 이런저런 질환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2007년에는 갑상선암 수술을 했고, 그다음 해에는 난소에 문제가 생겨 절제를 해야 했어요. C형 간염 합병증으로 간 수치가 위험할 정도로 올라간 적도 있고요. 그때마다 딸아이가 제 간병인 역할을 했는데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했어요. 당연히 허리 때문에 입원했을 때도 큰 도움을 받았죠. 그런 경험 때문인지 지금은 사회복지 쪽으로 진로도 변경했어요. 간병이요? 전문 간병인보다 나아요(웃음).”
그녀를 다시 일어서게 해준 신앙의 힘
이어지는 육체적 고통 속에서 그를 구원한 존재는 또 있다. 바로 신앙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씨는 최근 총회신학대학원 과정을 수강 중에 있다. 졸업 후 목사 안수를 받는 것이 꿈이다. 그녀는 힘들 때마다 예수님의 고통과 희생을 생각했다. 그러면 자신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릴 때 그분에게 서운한 것이 있어 잠시 교회를 멀리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종이 되어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여러 가지 병이 겹치면서 우울증으로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는데,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죠. 어릴 때 제 꿈 중 하나는 힘든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 같은 시설을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지금도 그 꿈은 유효해요. 건강을 되찾으면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는,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수술 후 재활을 통해 다시 정상적인 삶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몸을 써야 하는 직업인데다, 급한 성격이 허리에 가끔씩 무리를 주는 탓이다.
“조심해야 하는 건 아는데 괜찮다 싶어 최근 몸을 좀 움직였더니 다시 상태가 나빠지려고 해요. 이전보다 몸이 많이 둔해진 걸 알면서도 자꾸 마음이 앞서나 봐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일에도 이젠 익숙해져야겠어요. 요즘엔 다시 조심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스트레칭도 자주 하고, 걷는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허리를 관리하고 있어요. 또 병원 신세 져서 딸아이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요(웃음).”
는 '아들러 심리학'으로 열풍을 일으킨 일본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기시미 이치로가 쓴 책이다. 그는 20대에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간병했고 50대에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꽤 오래 간병했다. 본인도 50세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한때 아버지의 간병을 받았다. 이 책은 아버지의 간병 기록이다.
간병은 힘든 일이다. 간병인은 꽤 많은 보수를 받지만 워낙 일이 힘들다 보니 간병인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남을 간병하는 일은 그나마 형식적으로 할 일만 하면 된다. 그러나 가족일 경우 특별한 감정이 더해져 더 힘들 수 있다. 저자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가면을 벗고 인간으로 마주하라”고 썼다. 오래 간병하다 보면 환자와의 지나간 과거는 물론이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도 될 수 있으며, 자신의 여생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는 것 같다.
간병하는 동안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늘 잠만 잤다. “늘 잠만 주무시니 옆에 간병할 사람이 필요 없겠네요?” 했더니 ”네가 있어 편안히 잠을 잘 잔다“는 말에 찡했다.
치매 환자가 전혀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소통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그러므로 소통이 될 때를 생각하고 환자를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이 이 책의 교훈이다. 어제 얘기할 때는 멀쩡히 다 알아들었는데 하루 지나 전혀 다른 소리를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화내지 말라는 것이다. 화를 내면 본인의 심박 박동만 올라가고 좋을 게 없다는 말이다.
치매 환자는 금방 밥 먹은 것을 잊고 또 밥을 달라고 하거나 안 주면 굶긴다며 화를 내기도 한다는 얘기는 들었다. 이런 현상은 치매로 기억을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배가 부르면 음식물에 대한 욕구가 저절로 떨어지는 ‘만복 중추기능’이 약화되어 그렇다는 것이다.
저자는 간병이 힘들다고 화를 내거나 한숨을 쉴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심리적으로 볼 때 간병인은 환자에게 “내가 이렇게 힘이 든다.”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이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는 심정이 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봐야 환자는 모를 것이니 소용없는 일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힘들면 도와달라고 하면 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치매는 시간의 경과를 잊어버리는 병이다. 간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환자가 불쌍해 보이지만, 시간을 초월해 현재와 지금만 중요하게 여기는 치매 환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저자는 이 책의 끝을 맺었다.
필자의 집안에는 치매 환자가 없다. 가족력으로는 그렇지만, 앞으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행히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이나 방법을 찾아낸다면 몰라도 나이 들면 서서히 다가와 피할 수 없는 질환인 것 같다.
“어느 언론사 기자가 문주장학재단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내가 환갑이 되기 전에 기금 200억 원 달성이 목표라고 마음대로 쓴 거야. 그래서 당신 때문에 200억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랬지. 그래서 달성해 버렸어(웃음).”
국내 디벨로퍼(부동산개발 업체) 1세대의 대표주자인 문주현(文州鉉·58) MDM 한국자산신탁 회장은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서 비범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문 회장은 자신의 회사와 함께 문주장학재단을 세웠다. 그리고 재단은 어느새 회사 자본금보다 더 큰 규모가 됐다. 이제 남부럽지 않은 경력과 성취를 이루게 된 그가 어째서 그토록 사회 환원을 추구하는 걸까? 문 회장이 갖고 있는 돈과 사회, 그리고 시니어로서의 삶에 대한 철학을 들어본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 사진 이준호 기자 jhlee@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만 하는 ‘노예’처럼 살았던 그는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독하게 가난했다. 후배 집에 얹혀살면서 생활비를 벌어 겨우겨우 필요한 돈만 메꿨던 생활. 2015년 매출액 4193억원을 기록한 MDM의 회장이자 한국자산신탁 회장을 겸하고 있는 국내 디벨로퍼 1세대 성공 신화의 주인공 문주현 회장의 20대 시절 얘기다.
가난한 사람이 돈의 소중함을 안다
“그러던 시절, 대학교 3학년 때 모 독지가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때가 시작이었어요. 세상에 아무런 조건 없이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내가 돈을 벌게 되면 나도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그의 약속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현재 200억 원가량의 기금으로 운용되는 문주장학재단을 갖고 있다. 2014년 기금 100억 원을 달성한 후 불과 2년 만에 그 두 배를 달성한 것이다. 재단은 2002년부터 초·중·고·대학생 175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2001년에 장학재단을 세우니 직원들 사이에선 회사 일을 안 하려나 보다 하고 소문이 났어요. 그러나 사람은 자기만족이잖아요? 내가 약속한 거고 신세를 졌는데, 해야지.”
문주장학재단의 수혜 대상자는 무조건 형편이 어려운 사람으로 선정된다. 그 외 특별한 선정 기준은 없다. 요즘은 돈을 많이 가질수록 공부도 더 잘하는 세상이다. 문 회장은 가난한 이들은 돈을 소중하게 쓴다는 신념이 있다. 그것은 그 누구보다도 본인이 세상에 증명한 사실이다.
“장학 대상자는 웬만하면 바꾸지 말라고 해요. 다만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면 바꾸라고 하죠. 돈까지 대주는데 공부를 안 하는 건 기본이 안 된 거니까.”
돈이란 내 것이 아니다
문 회장은 장학재단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이 쑥스럽다고 말했다. 그저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할 뿐이라는 말이었다.
“장학재단을 하다 보니 나를 돈을 많이 벌었다고 소개를 안 해주고 좋은 일을 한다고 소개해줘요(웃음). 아 세상이 이렇구나 싶었죠. 물론 나보다 돈 많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 거겠지만, 회사보다 자본금이 더 큰 장학재단을 갖고 있어서 그렇겠죠.”
문 회장의 사회를 향한 지원에는 장학재단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향인 전라남도 장흥의 모교에 씨름부를 만들고 공공버스도 운용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덕분에 전국 우승도 다수 경험하는 강한 씨름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에 마련된 서울책방이 다시 문을 여는 데는 문 회장이 쾌척한 1억원이 있었다. 국내 최초의 여자바둑대회에는 2억원을 내놨다. 모교인 경희대학교에도 매년 1억원 이상을 기부한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그가 갖고 있는 돈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돈이란 무엇인가? 내 것인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사회로부터 얻은 거고,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관리하라고 맡긴 겁니다. 이걸 갖고 자기 거라고 유세를 떠는 건 잘못된 거예요. 그리고 이 돈이 내게 관리하라고 온 것은 일정 부분을 사회에 내놔야 한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을 돕지 않으면 이 사회의 양극화가 해소될 방법이 없고 시장경제가 지탱할 수 없다. 문 회장의 ‘돈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그러한 진실을 우회해서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그가 유독 젊은이들에게 기부의 타깃을 맞춘 것도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잘못 만난 것은 자기 탓이 아닙니다. 대신 정신이 올바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문주장학재단은 예술계 쪽 지원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아직 본격화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방향에서 검토하는 중이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보니 문화예술계 쪽이 굉장히 어려워요. 그런 사람을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능력 있고 자질 있는 사람을 골라서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예를 들어 ‘이상문학상’처럼 공모를 통해 권위가 있도록 만들어야겠죠. 아직 밑그림을 정확하게는 안 그렸지만 오페라, 소설, 악기 쪽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시재생, 사회를 위한 또 하나의 인생 목적
최근 문 회장이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도심재생 사업이다. 그에게 시기가 괜찮은지를 물어보자 확신처럼 ‘해야 할 시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시재생을 지금까지는 자기 지역, 구역 별로 민간에서 했는데 민간이 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앞으로의 세계는 도시가 국가 브랜드입니다. 싱가포르, 홍콩, 도쿄, 뉴욕 등등을 봐요. 관광할 때 그 나라를 왜 가느냐는 겁니다. 관광은 자연관광과 도시관광으로 나눌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자연관광이 취약합니다. 그렇다면 도시관광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을 도시 관광 국가로 만들려면 도시재생이 이뤄져야 합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살 거주 공간으로서의 도시의 공급이 부족했다. 그래서 신도시를 마구, 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저출산, 저성장기가 도래했다. 더 이상 신도시는 안 만들어질 것이라고 문 회장은 진단했다. 그렇다면 오래된 도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도시재생이 중요해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문 회장은 발 벗고 뛰는 적극적인 ‘전도사’였다.
“공청회나 세미나를 하자, 우리나라의 발전 방향을 토론해보자. 하다못해 광화문, 테헤란로 등등으로 나눠 섹터 별로라도 하자라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는 민간과 같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에요. 도시 부동산은 대개 개인 소유라.”
문 회장은 우리가 아이디어가 부족한 나라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관광을 대개 일본이나 홍콩, 싱가포르로 가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가서 보는 게, 결국 우리나라 건설회사들이 지어 놓은 걸 보는 거예요.”
실로 예리한 한마디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개발과 보존은 공존해야 합니다. 북촌이나 서촌 같은 문화적 가치가 있는 지역은 보존해야죠. 다만 재개발해야 하는 곳은 과감하게, 제대로 개발해야 합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성공하면서 흔히 강남스타일이라는 표현을 하지만, 막상 강남을 가면 갈 데가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밤이 되면 거리는 죽고 뒷골목만 살아난다. 문 회장의 주장대로 도로 옆에 문화공간을 배치하여 문화 향유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함으로써 진짜 ‘강남스타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건설회사는 도면대로 짓고, 도면이 없으면 한 삽을 못 떠요.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죠. 반면 디벨로퍼는 지휘자고 소프트웨어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상상력을 실현하는 이들이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에도 종합부동산 금융그룹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버타운, 도시와 함께 하는 공간이 되어야
“나이 들어 은퇴하면 인생에 낙이 없어요. 즐거움, 기쁨, 재미가 없어지죠. 젊었을 때는 뭐든 재미있었는데. 그래서 더욱 손주에게 끌리는 거겠죠. 나도 늦둥이가 있어요. 지금 제주도에 있는데 ‘네가 아빠 희망이지’라고 말하곤 해요. 손주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시니어이자 부동산 전문가로서 문 회장은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의 마음도 꿰뚫고 있었다.
“실버일수록 도심으로 들어오고자 합니다. 전철, 공원, 병원 옆으로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손주들을 못 보기 때문이에요. 실버가 되면 외롭습니다. 그러니 무조건 전철역 근처에 자리를 잡게 되는 거예요. 어느 성공한 시니어가 하는 말이, 자식들이 손주를 데리고 와서 자신에게 맡기고, 장을 보러 간다든지 하면 손주와 함께 있는 게 그렇게 즐겁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신이 지방에 있으니 전화만 하고 안 와서 섭섭하다는 겁니다.”
문 회장은 실버타운을 짓는다면 신경을 써야 할 부분으로 기능적인 구분을 꼽았다. 몸이 불편하여 간병인 등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과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친구들과 취미 생활 등을 할 수 있는 시니어 타운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두 영역을 합친다 해도 중간에 병원을 두어 병원을 중심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둘 다 도심에 있어야 한다는 건 공통된 조건이다.
“실버타운은 구성원의 특성상 죽음과 밀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젊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사람들과, 도시와 섞여 살아야 해요. 구분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장은 굉장히 성장할 것이고,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주위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산다
문 회장은 올해로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됐다. 그에게도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 있을까?
“사실 후회를 좀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돈은 벌었을지 모르지만 내 청춘이 가버렸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제가 연애를 잘 해봤겠어요? 당구도 못 치지. 그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삶 자체가 옆을 볼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죠. 아내가 저에게 ‘음악을 알아?’, ‘그림을 알아?’ 하고 물어요. 그럼 저는 ‘몰라’라고 대답할 수밖에요. 저는 솔직한 얘기로 너무 안 해본 게 많고 모르는 게 많아요. 내 업무와 내가 하는 부분만 알지. 그래서 요즘은 정말 여행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될 수 있으면 비행기로 6시간 이내로 끊어서 가려고 해요. 좀 더 많은 여행을 하는 것, 그게 제 인생을 위한 중요한 일이겠네요.”
문 회장은 아내가 자신을 보며 종종 불쌍하다고 말한다고 한다. 일밖에 모르니까. 그런데 그는 일이 없으면 공허해지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말하자면 문 회장은 자신을 돌보고 아끼는 데 익숙하지 않은, 그 부분을 일로 채우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렇게 안 하려고 해도, 그게 쉽게 안 돼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비빔밥이에요. 비벼서 빨리 먹고 일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인 거죠. 그리고 비생산적인 데에는 투자를 안 하려고 해요. 와이프는 왜 남은 도와주면서 자기는 그렇게 안 하냐고 타박합니다. 그런데 남을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는 일이죠.”
힘들었던 어린 시절, 서른 살이 넘어 입사한 나산에서의 승승장구, IMF 한파로 인한 퇴직, 퇴직 후 MDM 설립과 한국자산신탁 회장이 되기까지. 고난과 성공을 오가며 쉼 없이 살았던 그가 살면서 이것만은 지켜야겠다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주위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내 돈 몇 푼이 중요한 게 아니고 뭘 하든지간에 같이 상생할 수 있는 일을 우선했습니다. 이 일을 하면 참여자들이 만족하느냐, 소비자가 만족하느냐, 사회가 만족하느냐가 기준이었죠. 그래서 저는 디벨로퍼의 도덕성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짓는다고 했을 때, 이걸 짓다가 멈춰 서버리면 사회적 악이 돼요. 금융사, 시공사, 협력업체, 분양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시의 흉물이 되잖아요. 그만큼 디벨로퍼란 정> 문주현 MDM 회장
1958년 전남 장흥에서 9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1978년 대입 검정고시를 보고 군대까지 다녀온 뒤 1983년, 27세의 늦은 나이에 경희대 회계학과에 입학·졸업했다. 1987년 나산실업에 입사, 부동산개발 사업에 발을 들였고, 7번의 특진을 통해 최연소 임원이 됐다. 하지만 나산그룹은 IMF 외환위기를 맞아 부도를 맞았다. 그는 재취업을 고민하다가 1998년 분양대행 업체인 MDM을 만들었다. 2007년 첫 시행사업에 나서기 전까지 ‘분당 코오롱 트리폴리스’, ‘분당 파크뷰’, ‘목동 현대 하이페리온’ 등 굵직한 주상복합 건물의 분양대행을 도맡았다. 2001년 재단법인 문주장학재단을 설립해 현재 출연금을 200억원까지 늘렸다. 2010년 한국자산신탁을 인수했으며 2012년 한국자산캐피탈을 창립했다. 2013년부터 서울시탁구협회 회장, 2014년부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 2015년부터는 전국검정고시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대표작 와 가 한 무대에 오른다. 두 작품은 노령화, 치매, 빈 둥지 증후군, 우울증 등 현대사회 중·장년이 겪는 사회적, 심리적 증상들에 대해 다룬다. 다른 해에 발표됐던 작품이지만 닮은 부분이 많은 점에 착안해, 하나의 무대에서 주중에는 번갈아가며 공연하고 주말에는 연이어 상연한다. 독특한 점은 는 박정희, 는 이병훈이 연출을 맡아 여자가 바라본 아버지, 남자가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다는 것이다. 두 연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출하며 아버지/어머니가 가장 생각났을 때
[이병훈] 어렸을 때 효자상도 받고 해서 그런지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를 연출하면서 그동안 내가 과연 어머니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동물적 사랑도 느낄 수 있었고, 자식을 향한 집착이나 다 큰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어머니라는 존재의 비극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무서운 박탈감, 집착 그리고 사랑의 한계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박정희] 작품 후반부에 아버지 앙드레와 안느가 얘기하면서 간병인 로라를 기다리는 장면이 나온다. 앙드레는 로라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즐거워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생각났다. 여행을 많이 다니셨던 내 아버지는 출발하기 전이면 큰 기대감으로 즐거워하셨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가족과 만난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곤 했는데, 그러한 아버지와 앙드레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많이 겹쳐졌다.
의 윤소정/의 박근형 두 배우와의 호흡이 어땠는지
[이병훈] 연습 초반에는 윤소정 선생님과 서로 스타일이 달라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품을 하며 서로를 맞춰가는 과정은 필수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연습이 진행될수록 윤소정 선생님은 소탈하고 겸손한 분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약점을 듣고도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소위 ‘쿨’하게 받아들인다. 뿜어내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그것은 지적인 이해보다는 본능적인 감각과 즉흥적인 에너지에서 나온다. 그런 선생님의 연기술을 이해하며 좀 더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됐다.
[박정희] 박근형 선생님과의 호흡은 좋았다. 코멘트를 받으면 꼭 실행하고 더 발전하기도 했다. 앙드레라는 역할에 대해 창조적으로 해석하며, 능동적으로 연습에 참여했다. 원로배우이시지만 영리한 배우라고 느꼈다.
중·장년 관객이 공감할 만한 부분
[이병훈] 중년에 찾아오는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 어머니의 삶의 비극성을 그려낸 작품인 만큼, 어머니 자신들의 사랑과 좌절을 통해 의타적 삶에서 주체적 삶으로 바뀌어 가기를 희망한다.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가족들에서 발견하는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을 떠나보내고 삶의 허망함에 맞닥뜨렸을 때 보면 공감할 수 있는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우리는 살면서 ‘나’를 주장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타인들과의 관계도 자기중심적으로 맺는다. 하지만 ‘나’라는 정체성은 ‘기억’이라는 모래 기둥처럼 부실한 발판 위에 세워진 건물과 같다. 기억은 뇌가 노화되거나 병들면 점차 사라지고 기억을 잃는다는 건 한 사람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바람이 있다면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정체성’이라는 허상을 깨닫고 가족과 함께 사랑으로 채워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작품이 치매를 다루긴 하지만, 공연의 메시지는 충분히 철학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다.
일정 8월 14일까지 장소 명동예술극장 연출 박정희, 이병훈 출연 박근형, 윤소정 등
최근 그림을 취미로 하는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 사이에 회자되었다. 배우 김혜수와 구혜선의 그림이 아트페어에 걸린 이야기가 화제가 되더니, 배우 하정우의 그림이 수천만원에 거래된다는 이야기도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러다 가수 조영남의 대작 논란으로 ‘아트테이너’에 대한 관심이 절정에 이르렀다. 이쯤 되니 그림은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유희’로 여겨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물론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젤을 세운다. 그리고 하얀 캔버스를 올려 조금씩 스케치를 한다. 아마 노후의 취미생활을 꿈꾸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상상해 본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통계청의 ‘2015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50대는 53.2%가, 60세 이상은 56.4%가 노후를 보내고 싶은 방법으로 취미활동을 꼽았다. 자원봉사나 종교활동 등 다른 활동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였다. 그러나 실제 여유시간을 보내는 여가활동으로 50대의 72.2%가, 60대 이상의 81.2%가 가장 간단한 TV 시청을 꼽았다. 대다수가 이상과 현실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예술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응답은 3%도 되지 않았다.
심리적 장벽이 높은 취미 ‘미술’
미술은 시니어들을 위한 취미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분야 중 하나다. 시니어 대상 교육기관에서 미술은 빠지지 않는 단골 분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붓을 손에 쥐지 못하는 시니어들이 적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선입견이라고 권인수 화백은 설명했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에서 5년째 일반인과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회화를 가르치고 있는 화실 ‘아트담’의 대표이기도 한 권 화백은 회화나 미술에 대한 편견이 장벽처럼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학교가 입시 교육에 집중하면서 학생들이 미술, 그러니까 아름답게 그릴 수 있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초등학교에서 멈춘 셈이죠. 잘 못 그리는 것이 당연해요. 그런데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재능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에요. TV 프로그램 에 나오는 수많은 달인들을 보세요. 그들이 자기 직업에 대해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오랜 직장생활과 노력 덕분이죠.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다른 선입견 중 하나는 그림은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는 것. 그러나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도구만 따지면 결코 그렇지 않다. 화실 수업료를 제외하면 이젤과 물감, 붓 등의 구매비용은 25만원 내외에 불과하다. 사진이나 자전거 등에 비교하면 되레 저렴한 취미인 셈이다. 이나마도 캔버스를 제외한 나머지 재료들을 강습생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교육기관도 있다.
학원…화실…본인에 맞는 곳 선택을
실제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주변에서 ‘스승’을 찾는 일이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회화 등 미술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은 각 자치구가 운영하는 문화회관과 백화점 등이 운영하는 문화센터가 있고, 개인이 운영하는 학원이나 화실 등이 있다.
구청 문화회관이나 백화점 문화센터는 다른 취미와 병행이 쉽고,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교육 인원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강사가 1대 1로 지도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학원은 입시 미술을 겸하거나 정해진 강의 위주로 운영하는 형태가 대부분이고, 화실은 1대 1 지도를 중심으로 수업을 한다. 미술학원은 대학 인근에 많고, 화실은 반대로 주거지역 주변에 많다. 수업 형태나 시간, 수업료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상담을 통해 충분히 교육기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본인에게 맞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림이 시니어에게 주는 장점은 다양하다. 미술 수강생들은 운동에 비해 체력적으로 제한이 없는 취미이면서, 고도의 집중을 통해 잡념을 사라지게 한다고 입을 모은다.
11년째 송파에서 화실 ‘모노그라프’를 운영 중인 서양화가 김용일 화백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시니어들에게 제공하는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평생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중 하나죠. 적은 비용에 비해 얻는 성취감도 크고요.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배우면 남에게 그림을 선물할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서는데, 그 과정에서 얻는 자존감도 상당합니다. 그룹 전시회를 통해 본인의 그림이 남에게 인정받거나 팔리는 경험은 시니어들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화실에서 형성된 커뮤니티를 통한 사회활동도 그림을 배우는 과정이 주는 매력 중 하나다. 앞서 소개한 아트담은 인근 구치소 면회자들을 위해 대기실에 그림을 전시하기도 했고, 모노그라프의 경우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그림 봉사활동을 진행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전시회 활동은 그림에 대한 욕구를 재충전하는 기회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 일부 지역의 경우 화실은 체면을 내려놓는 휴식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고소득층 수강생들이 많은 한 화실의 관계자는 “재벌이나 정치인, 연예인 등이 신분을 숨기고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유난히 걸레질이나 설거지에 열중했던 한 회원이 지자체장의 부인이라고 밝혔을 때 주변에서 적잖이 놀란 적도 있어요. 사교를 위해 일부러 모인다기보다, 본인의 원래 모습을 찾아 순수한 문하생으로서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니 관계가 홀가분해지는 것 같아요.”
그림 그리기는 치매 예방에 큰 도움
그림은 심리적인 부분 이외에 실제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의 유명한 병원인 메이요 클리닉의 신경과 전문의 로즈버드 로버트는 지난해 발표한 연구 논문을 통해 “그림 그리기 등 노년의 미술 활동이 경도인지장애(치매의 전 단계)에 걸릴 가능성을 73% 낮춰준다”고 발표했다. 그는 4년간 256명의 85세 이상 노인을 관찰했는데, 미술 활동이 수공예(45%), 사교활동(55%), PC활용(53%)보다 인지기능 보호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선미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림 그리는 것이 경도인지장애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미술 활동을 통해 마음과 정신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손의 미세한 운동과 관련된 신경을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자극들이 신경세포의 퇴화를 방지하고, 새로운 신경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면서, 인지기능 유지에 사용되도록 변화를 일으키는, 일종의 신경가소성 효과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그림 창작활동은 치매 예방뿐만 아니라 시니어들의 전반적인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미술 활동은 인지기능이나 창의력 향상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 추억 회상을 통해 의미있는 대화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더불어 의사 소통 능력도 향상시키죠. 자아감이나 자존감의 회복에도 도움이 되고, 심지어 치매환자 간병인의 삶의 질까지 향상시킨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마포복지관에서 수채화를 가르치고 있는 류영선 강사는 “소질을 걱정하는 회원분들에게 관심이 곧 소질이라고 늘 말씀드려요. 그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릴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니까요. 실제로 시작하고 나면 기대 이상으로 쉽게 적응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붓을 잡고 행복하다는 말씀을 연발하시는 회원분들을 보면 다른 분들도 주저하지 말고 빨리 시작하셨으면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내년부터 간병비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1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포괄간호서비스의 건보 적용 방안을 논의했다.
포괄간호서비스는 보호자나 간병인 대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간병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것으로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은 20% 수준에서 검토되고 있다.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내년에 지방 중소 병원을 대상으로 건보 적용을 시작해 2017년까지 서울의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을 제외한 대다수 병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포괄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은 28곳에 불과하다.
간병비는 입원비에 포함돼 책정되는데, 종합병원 6인실 입원비용이 1만원 정도라고 한다면 포괄간호병동 입원비는 본인부담률 20%가 적용돼 1만2000원∼1만6000원 선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루 2000∼6000원 정도만 더 내면 하루 평균 6만∼8만원 수준인 간병비 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포괄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 등과 협의를 거쳐 연내에 입원비를 확정할 예정이다.
포괄간호병동은 누구나 입원할 수 있지만 정신과 환자, 담당 주치의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입원이 제한된다.
남편 입장에서 보면 부인의 역할은 젊을 때는 애인, 중년일 때는 친구, 말년의 간병기 때는 간병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여성의 기대수명은 남성보다 약 6~7년 더 길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사망하는 남편의 간병을 자연스럽게 부인이 맡게 됩니다.
남편 입장에서 보면 부인의 역할은 젊을 때는 애인, 중년일 때는 친구, 말년의 간병기 때는 간병인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인에게 의존하게 되는 남편의 신세를 잘 나타내주는 말이지요. 은퇴후 부부관계는 행복의 원천입니다.
서울대학교 고령화연구소가 조사한 부부생활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부부관계가 행복하다고 대답한 사람은 4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부부간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23%), 불만족(37%)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부관계를 좋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전문가들은 부부간의 평등한 자세, 상대를 배려하는 교감하는 자세, 평소 좋은 추억을 많이 쌓는 취미여가 등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은퇴후 부부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 좀더 행복해지시길 소망해봅니다.
부부관계,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은퇴설계의 요소입니다.
출처 : 서울대학교 고령화연구소, 2012년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치매’다. 2013년 57만 6000명이었던 국내 치매 환자는 2025년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를 유형별로 보면 알츠하이머가 71%, 혈관성치매가 24%, 기타 치매가 5%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등 국가에서도 치매는 두려움과 ‘대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개인이나 사회, 국가 모두 이 힘겨운 과제 앞에서 정부, 학계, 민간 모두 중점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는 영국이 지난 2012년 부터 ‘치매와의 전쟁’을 국가적 보건 프로젝트로 내세워서 정부·학계·민간 함께 싸운다는 보도를 전했다.연합뉴스에 따르면 영국은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함에 따라 치매 환자도 함께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조기진단 시스템을 확립하고 ‘치매 친화적 환경’을 조성해 환자들의 고통과 사회적 비용을 줄이자는 것이 요지라고 전했다.영국은 2015년까지 치매 조기 진단과 연구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다. 이 같은 정책의 일환으로 브리스톨대는 정부로부터 5년간 1200만 파운드(약 208억원)를 지원받아 치매환자를 위한 스마트 헬스 케어 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140만명 가량인 영국의 8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35년이면 36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영국 보건부와 알츠하이머학회는 2012년을 기준으로 영국의 치매 환자가 80만명(잉글랜드 67만명)이고, 이 가운데 65세 이하도 1만 7천명 가량으로 집계했다.영국 내 치매 환자 수는 2037년이면 두배에 가까운 14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치매가 영국 경제에 지우는 비용부담 역시 같은 기간 연간 230억 파운드(약 40조원)에서 500억∼800억 파운드(약 87조∼약 139조원)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영국 정부는 이에 치매 진단 기간을 18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하고 초기진단율을 기존 42%에서 두 배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진단 시스템 마련, 전문 의료기관·인력 양성, 치매 친화적 환경 조성 등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면 상태가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은 ‘치매와의 전쟁’을 위한 학계나 민간 차원의 노력도 활발하다. 브리스톨대의 '스피어'(SPHERE·Sensor Platform HEalthcare in Residential Environment)는 치매환자 등 노인인구 간병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다.
스피어는 다양한 감지장치를 통해 자택에 머무는 치매환자를 관리하는 일종의 원격 돌봄 프로그램으로 이 대학은 지난해 말부터 5년 계획으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이 프로그램은 치매환자의 움직임과 전자기기나 수돗물 사용량 등 집안 내 모든 활동을 센서 등으로 감지해 이를 토대로 환자의 행동패턴을 분석한다. 환자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등 이상징후가 보이면 담당 지역보건의(GP) 등 주치의나 돌보미에게 통보하는 방식이다.
연합뉴스를 통해 브리스톨대 엘리자베스 블랙웰 연구소 부소장 제러미 타바레 교수는 “아직 초기단계라 정확한 비용을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간병인을 두는 것보다는 훨씬 싸며 정확도도 높다”며 “의료진의 반응도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브리스톨대는 올해 하반기 중으로 이 프로그램을 학내 기숙사에 설치해 시범실시에 들어갈 예정이며 5년 내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이 대학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연구하는 케이 조(한국명 조광욱) 교수는 “치매환자의 경우 익숙한 환경을 떠나 요양병원에 입원하면 상태가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며 “증세가 가벼운 치매환자들에게는 (스피어가) 효과적인 관리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케이 조 교수는 “치매에 들어가는 비용은 대표적 사망요인인 암보다 월등히 높다. 암환자 1명당 간병인 1명이 필요하다면 치매의 경우 3명이 있어야 한다”며 “한국에서는 아직 치매 전문 연구인력도 적고 사회적 대비도 미비한데 치매의 위험성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처럼 복지 선진국가 영국이 치매를 개인과 가족이 아닌, 사회와 국가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례는 고령화와 치매환자 급증 등에서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도 유익한 참고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남양주 ‘재산 기부’ 유서 남기고 모녀 동반자살
고양에선 생활고 시달리던 부자 극단적 선택
서울 세 모녀 이어 도내서도… 사회안전망 시급
경기도내에서 치매 노인을 모시던 효심깊은 자식들이 부모와 함께 세상을 등지는 동반자살 사건이 잇따르면서 치매노인 가정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달 서울 송파에서 발생한 세 모녀 동반자살로 이른바 ‘세 모녀법’까지 발의되며 복지사각지대 해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치매 문제도 법률적ㆍ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30일 보건복지부 조사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노인인구가 500만명에서 580만명으로 17% 증가했으며 같은기간 치매노인은 26.4% 증가해 2012년 기준으로 이미 54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우리나라 치매인구는 20년마다 두배씩 늘어 2020년에는 80만명을, 2050년에는 270만명을 넘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하거나 인지저하증을 겪는 노인을 수발하는 가정들의 대비는 부실하기만 한 상황으로 생활고까지 더해지면서 동반 자살 등 극단적인 결과까지 발생해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 29일 낮 12시50분께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모텔에서는 70대 노인과 4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는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7년 동안 돌봐온 A씨(48)와 그의 아버지(75)로, 이들 곁에는 재만 남은 번개탄과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사업을 하던 A씨는 아버지가 7년 전 치매 증상을 보여 병원에서 5년 간 생활했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고 사업까지 실패하며 생활고에 시달리자 2년 전부터 아버지를 직접 간호하며 살았던 효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지난 27일 오후 7시20분께 남양주시 별내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P씨(55ㆍ여)와 어머니 L씨(90)가 숨진 채 발견됐다.
P씨로부터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받은 친오빠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원은 안방 화장실 앞에 쓰러진 L씨와 화장실 안에서 목을 맨 상태인 P씨를 발견했다.
유서에서 L씨는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 P씨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써달라’고 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조사 결과, L씨는 최근 뇌경색 증상으로 일주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으며 치매 초기 판정을 받고 퇴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숨진 P씨는 약사 출신으로 결혼도 미룬 채 간병인을 두지 않고 줄곧 뇌경색 등의 지병을 가진 노모를 보살폈던 효녀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배기수 경기도의료원장은 “치매 환자 문제는 부부간은 물론 부모와 자식간, 형제간에 갈등을 촉발해 가정파탄까지 이를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며 “정부도 7월부터 경증치매노인에 대해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주는 등 나서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홍석 심평원 수원지원장은 “인천만해도 시립으로 운영하는 치매전문병원이 있지만 아직 경기도에는 없는 상황”이라며 “민간 요양병원들이 있지만 치매노인을 전담하기에는 병원마다 차이가 있는 만큼 정부나 지자체의 좀더 깊은 관심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경기일보 이명관ㆍ하지은기자 mklee@kyeonggi.com
치매와 관련된 여러 상황들을 접하다 보면, 치매 환자들과 가장 가까이서 생활해야 하는 이들, 바로 요양보호사들과 만나게 된다. 치매 환자의 삶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을 지원해줘야 하는 어렵고 힘든 직업중 하나다.
그동안 우리는 요양보호사들의 삶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졌었는가? 여기 한 요양보호사의 목소리를 통해 요양보호사의 삶과 현실, 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치매 환자들의 치료실태를 점검해본다.
이지숙(가명) 요양보호사는 50대로, 간호사 생활을 20여 년 넘게 하고 치매요양병원과 치매센터 등 치매 관련 시설에서 10여 년을 넘게 근무한 베테랑 요양보호사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걸로 자신의 반평생을 바치며 수많은 환자들을 만난 그녀는 기억에 남는 치매 환자들위 얘기를 들려줬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단란하고 멀쩡해 보이는 가정, 그러나 안으로는 치매라는 병에 걸려 곪아 들어가는 슬픈 상황에 대한 이야기. 난간에 매달려 고향에 가겠다고 난동을 피웠던 환자. 그리고 의료 현장에서 치매 환자들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안전사고들. 이 씨의 오랜 경력 뒤에는 그런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비일비재했다.
치매 환자 대처법, "하지 말라고만 하기 보다는 때론 하게끔 내버려 둬라"
어려운 일들을 실제로 겪었기 때문일까. 이 씨가 환자를 대하는 입장에는 나름의 노하우들이 있었다.
“요양시설을 가게 된다면 우선 시설에서 환자를 돌보는 이들이 어떤지를 확인해 보는 게 좋아요.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 등 케어의 질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 씨는 요양시설에서 치매 환자의 성향끼리 분류가 돼 있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불안장애인 환자들과 배회하는 경향을 가진 환자들이 함께 있으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환자군의 증상에 맞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또 치매 환자를 대할 때 하지 말라고만 하는 것보다는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치매 환자를 가장 잘 케어하는 자세라고 조언했다.
“배회하는 환자들 같은 경우에는 배회하는 걸 막지 말고 손 잡고 함께 걷는 게 좋습니다. 손을 잡고 걷다 보면 이분들이 체력이 약해서 함께 걷는 사람보다 먼저 지쳐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쉬게 되죠. 그리고 식탐이 많아서 먹을 걸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흔히 ‘안돼요, 아까 먹었잖아요’라고 대답하는 건 좋은 대답이 아니예요. 그럴 땐 뻥튀기 과자처럼 칼로리는 없되 먹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하게 해주는 과자를 제공해주는 게 좋아요.
도벽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뒤지지 말라고 하면 더 뒤져요. 그럴 땐 차라리 같이 찾아주는 게 좋아요. 노인들이 찾는 물건이란 게 칫솔처럼 뻔한 거거든. 물론 치매 환자가 뒤지거나 찾을 수 있는 곳에 위험한 물건을 두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요양보호사들이 정말 힘든 건 맞아요. 맞는데…”
인터뷰 도중 그녀가 가장 자주했던 말은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무척 힘들게 살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이 씨가 머뭇거리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지금 요양보호사들 인력 풀에 경제활동을 안 하던 사람들이 많이 투입됐거든요.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그 분들이 요구하는 걸 충족시키기엔 아직 복지적인 지원이 허약한 실정입니다.”
요양보호사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얼마를 해야 하는가. 그리고 교육적인 서비스와 직업의 로열티를 어떻게 제공해줘야 하는가. 이 민감한 문제 앞에서 현장에 있는 이 씨는 힘들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현재 상황은 과도기라는 것이었다. 요양보호사들로선 과도기임을 인정하고 그걸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그는 복지 지원시 효율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못하고 무조건 공급 위주로 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얼마 전 시장님이 주최한 정책토론회를 보니까 환자나 요양보호사나 개개인의 욕구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드는 그런 의견들이 있었어요. 때에 따라선 큰 그림으로 가야지 작은 것에 신경 쓰다 보면 큰 그림을 못 그리잖아요? 그런데 큰 건 장기적인 사안이고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건 단기적인 사안들이죠. 그래서 단기적인 사안에 대한 반응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구요.”
이 씨는 시설만 자꾸 늘리는 게 답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치매 예방 및 조기 발견에 더 비중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치매 증상은 악화된 후에 발견됩니다.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가 있는 시골에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가끔씩 가는 게 현실인데, 가끔씩 가서 봤을 때 부모님이 이상하다고 느낄라치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요양보호사 교육의 체계화, 똑바로 해줬으면 합니다
이야기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요양보호사 교육 문제로 옮겨 갔다.
“병원들에서는 간병인으로 대개 조선족을 고용하죠. 인력을 충당하기가 어려우니깐요. 그런데 조선족 출신 간병인들이 우리나라 환자와 제대로 감정 교류가 될까요? 그로 인해 환자 쪽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도 분명히 있어요. 몸에 대한 케어는 있어도 정신에 대한 케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죠.”
이 씨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간병인과 같이 있으면서 치매 환자들이 겪게 될 스트레스를 보다 나은 요양보호사의 양성으로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요양보호사에게 보수 교육을 계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케어의 질과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현재 치매 관련해 제공되는 교육에 있어서 서비스의 질과 더불어 세세한 교육과 관리가 과연 체계화되어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올 7월 치매특별등급제도를 통해 경증 치매노인의 기능악화 방지와 가족의 수발부담 완화를 위한 장기요양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요양보호사들에게 인지자극, 신체활동 등 특성에 맞는 서비스 제공이 요구돼 치매질환에 대한 전문 추가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때문에 요양보호사들에 대해 양질의 교육뿐만 아니라 관리 제도의 총체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궁금해진 부분이 있었다. 힘들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 교육과 서비스의 중요성이 그 어떤 일보다도 큰 일. 그 일을 하면서 이 씨는 자신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 걸까?
“거창하게 사명감 같은 건 없어요. 그러나 주어진 환경에선 최선을 다하려고 했어요.”
이 씨는 환자를 보면서 ‘내가 이 입장이라면 어떨까. 환자가 나라면. 나는 표현도 못하고 생각도 못하는 부분도 있을 텐데. 그때 되면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 그래도 좀 제대로 된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하면 환자에게 보다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이것은 역지사지, 타인을 대함에 있어 우리가 가장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태도를 다시한번 강조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