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부터 경상북도 성주군을 이끌고 있는 이병환 성주 군수는 미래 성주를 위해 풀어야 할 두 가지 큰 과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대한민국 대표 작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성주참외의 시장과 문화적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효과적인 귀농귀촌을 통해 외부로부터 인구를 유입시켜 성주군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지금 다행히 양쪽 다 긍정적인 지표가 나오고 있어, 이 군수 입장에서는 좀 더 발전적인 모험을 시도할 여력이 생긴 상황. 그의 군정 방향을 통해 성주군의 미래상에 대해 살펴봤다.
“성주참외는 2년 연속 참외 조수입 5000억 원대를 달성하며 명품 참외의 명성을 한층 더 높여주었습니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겠습니다. 더 과감한 혁신을 통해 미래 농업을 선도하겠습니다. 언택트 수요 급증과 급격히 변화하는 농업 트렌드에 대응하고, 20~30대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온라인 유통 강화와 홍보 마케팅 전략을 마련하여 추진하겠습니다.”
성주군의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인 참외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고품질 참외 생산을 확대하고 명품 참외 종가의 명성을 더욱 견고히 하겠다는 이병환 성주 군수는 언제 어디서나 성주참외 홍보대사다. 정부에서도 성주참외의 성과와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다. 작년에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민생·경제 투어 첫 방문지로 경북을 찾아 23명의 시장·군수와 화상회의를 했는데, 회의를 마친 후 정 전 총리는 페이스북에 ‘면역력에도 좋은 성주참외를 드시라’고 권하는 글을 올렸다. 이를 통해 성주군과 성주참외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홍보 효과를 거둬 타 지자체장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 군수는 “총리님이 참외가 면역력에 도움이 되는지 물어봐 주시고 성주참외에 관심을 보여주셔서 성주군민 모두 감사하다”며 “성주참외 자주 드시고 주위에도 권해주시면 농민들에게 더없는 위안이 될 것”이라는 답글을 달았다.
조수입 1조 원 달성을 목표로
이병환 군수는 최근 과학영농기술 보급을 통한 농업 조수입 1조 원 달성을 목표로 농업 기술을 선진화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성주는 전국 참외 생산량의 70%를 담당하는 주산지이기에 이에 초점을 두면서도, 참외가 주작목이 아닌 농가의 소득 증대를 위해 샤인머스켓, 딸기, 취나물과 공심채 등의 아열대 채소 재배단지를 조성하는 등 다양한 작목 시범과 육성 관리를 병행하는 중이다. 이러한 미래 지향적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선 귀농귀촌 인구 유입이 더욱 절실하다.
“귀농귀촌 인구 유입은 고령화·저출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에 활력소가 됩니다. 또한 농촌 인구 감소 문제를 완화하고, 다양한 산업 분야의 고용 증대와 이용 가능한 서비스를 확대시키는 등 농촌 경제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귀농귀촌인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펼치고 있습니다. 정주 의향 단계부터 이주 정착 단계까지 차별화된 귀농귀촌 유입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귀농귀촌인을 유치하기 위해 ‘귀농인의 집’, ‘농촌에서 미리 살아보기’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 활성화와 우수한 농업 인구 유입에 주력할 예정입니다.”
귀농귀촌 인구 꾸준히 느는 중
현재 성주군의 귀농 현황은 인근 지역과 비교해 높은 편이다. 이는 성주군 소득의 주를 이루는 성주참외의 영향이 크다고 여겨진다. 압도적인 네임밸류 덕분에 고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성주는 지리적으로 참외 등 과채류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다. 분지 지형에 토양이 비옥하고 맑은 물과 풍부한 지하수가 있어 농사에 아주 적합한 곳이라고 평가된다. 또한 낙동강을 기대고 있으며, 기상재해가 적고 겨울철 안개 발생이 거의 없어 옛날부터 당도 높고 품질 좋은 참외가 많이 생산되었다. 농업이 주업이었던 시대에 명당이라고 일찌감치 인정받은 확실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현재 귀농귀촌 인구 유입은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최근 5년간 성주군의 귀농귀촌 가구는 약 6000가구에 달합니다. 경북 내에서도 높은 유입률을 자랑합니다. 농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젊은 층 등 신규 농업 인력의 유입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청년 귀농에 대한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하고, 지역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맞춘 귀농귀촌 시책을 펼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농촌을 떠나는 인구, 즉 역귀농을 방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좋은 지역 여건을 만들어야 하며, 농촌 중심지 활성화를 통한 지역사회 서비스 수준 제고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귀농인의 집’으로 임대형 주택 지원
성주군의 귀농귀촌정책 사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영농정착 지원으로는 귀농인 정착 지원, 귀농 농업 창업 및 주택 구입 지원, 농기계 임대사업 등이 있다. 교육 지원으로는 신규 농업인 현장실습 교육(멘토와 멘티가 함께 현장실습 운영), 귀농귀촌 교육 등이 있다. 주거 지원에는 귀농인의 집 지원이 있고, 추후에 이사 비용 및 주거 임대료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귀농인의 집 지원은 주거할 수 있는 임대형 주택을 파격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귀농인의 집 지원은 귀농귀촌 희망자에게 농촌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안정적인 정착을 돕기 위해 임시 주거 주택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지역의 빈집을 수리하거나, 빈집을 철거 후 신축 또는 이동식 주택을 구입해 귀농인의 집으로 운영합니다. 관리 기간은 조성 후 7년입니다. 입주 자격은 귀농인의 집에 거주하면서 주택과 농지를 확보한 후 성주군에 정착하고자 하는 자 중, 가족 입주자거나 귀농 교육을 이수한 자를 우선적으로 선정합니다. 4곳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용 기간은 1년 범위 내 이용을 원칙으로 합니다. 입주 대기자가 없을 경우 3개월 이내 범위에서 추가 이용이 가능합니다.”
성주군에는 또한 귀농귀촌지원센터가 설립되어 있다. 전문 상담원이 상담 안내는 물론이고 각종 지원사업의 신청 접수 등 귀농귀촌인의 통합 민원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귀촌인들에게 재능기부 교육 지원
사실 귀농귀촌은 도시 은퇴자들의 꿈이고 낭만이기도 하다. 그런 수요를 증명하듯 귀농귀촌 체험은 예능 프로그램 어디를 틀어도 나오는 단골 소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의 귀농귀촌인들은 원주민과의 융화에 애를 먹는다. 이른바 ‘텃세’를 두려워한다.
“살아온 문화가 다르기에 지역주민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귀농귀촌인의 정착에는 마을에 흡수되려는 귀농귀촌인의 노력 못지않게 마을의 귀농귀촌인 수용 분위기와 준비가 중요합니다. 우리 성주군에서는 성주군귀농인연합회 회원분들이 봉사활동 등 마을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귀농귀촌인 대상의 융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귀농귀촌인 교육에 ‘지역민과 융화 및 갈등 관리’ 과정을 편성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귀농귀촌인 상당수는 전문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이다. 성주군에서는 이들의 역량을 활용하는 방법 또한 염두에 두고 있었다.
“경영, IT 등을 경험한 귀농귀촌인들이 농업의 6차 산업화에 기여하고 지역 리더로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귀촌하신 분들이 가진 역량을 더욱 활용할 수 있도록 재능기부 교육 개최, 모임활동 지원 등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적극 지원해줄 계획입니다.”
코로나19 시대의 여가 활동으로 ‘캠핑’(Camping)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은 5인 이상 집결 금지 같은 사회적 조항으로 사람들은 친구, 연인, 가족 등 소수정예로 팀을 꾸리거나, 홀로 자연으로 들어가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면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캠핑 자체를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등산, 트레킹, 사이클, 카약, 낚시, 서핑 등의 아웃도어 활동을 결합하는 식으로 다채롭게 진행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같은 캠핑도 전혀 다른 캠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코너에서는 때와 상황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캠핑 ‘4대 주자’ 자전거캠핑, 오토캠핑, 차박캠핑, 백패킹의 특징에 대해 알아봤다.
자전거캠핑 | 걸어서 가기에는 먼 곳을 무동력으로 가고 싶을 때
자전거의 몸체에 짐받이 가방과 패니어백, 혹은 자전거 몸체에 연결한 트레일러에 아영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싣고 산악 임도, 해안, 자전거길 등을 이동하다가 어딘가에 텐트를 치고 즐기는 캠핑을 말한다. 바이크캠핑, 투어링캠핑이라고도 부른다. 오지와 같이 한적하면서도 차량 진입이 어려운 곳, 자동차로 가기에는 가깝고 도보로 가기에는 애매한 주변 여행지를 찾아가는 데 자전거는 효과적인 이동 수단이다.
자전거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는 두말할 필요 없이 ‘자전거’다. 즐겁고 쾌적한 자전거캠핑을 위해서는 자전거캠핑에 적합한 자전거를 준비해야 한다. 생활형 자전거, 산악자전거(MTB), 로드자전거, 하이브리드, 미니벨로, 전기자전거 중에서 캠핑 장소와 주로 형태, 이동 거리에 따라 크게 산악자전거, 로드자전거, 투어링 전용 자전거, 산악과 로드 중간 형태인 하이브리드를 선택할 수 있다.
자전거 다음으로 중요한 장비가 ‘복장’이다. 1박 이상 장거리 자전거캠핑을 할 때는 장시간 자전거 주행을 해야 하므로 기능과 안전을 고려한 라이딩용 복장을 추천한다. ‘쫄쫄이바지’로 통하는 ‘자전거 패드바지’는 폴리에스테르 재질이라 구김이 없고 건조가 잘되며, 자전거 안장과 밀착되는 부위에 두꺼운 패드가 붙어 있어 엉덩이 통증을 상당히 줄여준다. ‘저지’로 불리는 자전거 상의는 등 뒤에 주머니가 있어 휴대폰 등의 수납이 가능하다.
자전거캠핑은 온전히 사람의 힘을 동력으로 이동하는 만큼 수납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지만, 반드시 챙겨야 하는 장비라면 자전거용 멀티툴, 휴대용 펌프, 예비용 튜브, 체인 커넥터 같은 갑작스러운 고장에 대비한 미캐닉 장비다. 이외에 헬멧, 선글라스, 바람막이, 장갑, 버프, 모자, 두건, 팔토시, 랜턴, 비상식량, 스마트폰 충전기, 구급약품, 비상식량, 텐트, 침낭, 매트리스, 캠핑용 조리도구, 휴대용 식기와 수저, 다용도 나이프 등이 있다.
오토캠핑 | 자연 속에서 집이 주는 안락함을 누리고 싶을 때
차량에 각종 야영 장비를 싣고 떠나 캠핑장과 유원지 등 지정된 사이트에서 취사와 숙박을 하는 캠핑이다. 차량을 이용해 움직이므로 장비 수용에 제한이 없고, 차량 바로 옆에 사이트를 구축할 수 있으므로 캠핑 장비를 힘들게 옮기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캠핑 초보자라면 오토캠핑을 통해 캠핑에 재미를 붙이는 편이 좋다. 만약 캠핑에 필요한 장비가 없다면 캠핑 업체에서 텐트, 침낭, 취사도구 일체를 제공하는 ‘글램핑’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
오토캠핑에 필요한 주요 장비는 가볍고 견고한 텐트, 계절에 맞는 침낭,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습기를 차단해줄 매트리스, 햇빛을 가리고 비와 바람을 막아줄 타프, 캠핑용 조리도구 스토브와 연료, 휴대용 식기와 수저, 다용도 나이프, 랜턴과 이동식 랜턴(보조배터리),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에 체온을 지켜줄 기능성 의류, 만약의 비상사태에 대비한 구급약품이 있으며,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 그릴, 키친테이블, 아이스박스도 있으면 유용하다.
최근 들어 캠핑카, 캠핑 트레일러를 이용한 오토캠핑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매번 따로 수고롭게 텐트를 치고 접지 않아도 차량 안에서 편리하게 취사와 숙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4000만~1억 원을 호가하는 만만치 않은 캠핑카 가격이 단점이겠다. 11인승 이상 승합차를 캠핑카로 개조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또한 비용은 1000만~2000만 원 정도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카라반 전문 커뮤니티 ‘더 카라반’(thecaravan.co.kr)에서 확인하자.
캠핑카를 대여할 경우 보름 전 사전 예약을 통해 대여 업체 차고지를 방문하거나 홈 렌털 서비스를 이용한다. 렌털료는 1박 2일 기준 국산차 35만~50만 원, 수입차 45만~80만 원이다. 대여 조건은 만 26세 이상, 운전 경력이 최소 1년 이상 운전자. 대인, 대물, 자손 종합보험은 기본으로 가입돼 있으나 자차보험은 빠져 있다. 안전운행수칙 교육 업체에서 1시간 이상 교육을 받아야 한다. 캠핑장 정보는 한국관광공사의 ‘고캠핑’(gocamping.or.kr)을 추천한다.
차박캠핑 | 드라이브하다가 원하는 곳에서 멈추고 싶을 때
오로지 자가용 한 대에서 즐기는 캠핑을 말한다. 부담스러운 가격의 캠핑카,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 확보가 어려운 캠핑장 등이 차박캠핑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번거롭게 텐트를 치고 접을 일도 없다. 또 캠핑카처럼 부피가 크지 않아 기동성도 좋다. 산, 들, 바닷가 등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머물면서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으며, 오토캠핑처럼 취사도구를 이용해 제대로 조리해 먹기보다는 가볍게 때우거나 현지 맛집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차박캠핑이 반드시 SUV 차량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차량 뒷자리인 2열 시트 등받이를 접었을 때 트렁크와 이어지는 면이 수평으로 평평한 상태라면 경차, 소형승용차로도 차박캠핑을 즐길 수 있다. 평평한 바닥에 누웠을 때 본인 키보다 살짝 넉넉한 공간이면 된다. 필요에 따라 자동차 후미에 카트리퍼 혹은 도킹 텐트를 연결해 공간을 확장하기도 하는데 비용은 20만~50만 원 전후다. 차량 지붕 위에 설치하는 루프톱 텐트는 수백만 원 상당이다.
차박캠핑에 필요한 주요 장비는 쿠션감 있는 자충매트리스, 침낭 혹은 집에 있는 가벼운 이불, 외부에서 들어오는 한기를 막아줄 은박매트, USB로 연결 가능한 차량용 전기매트, 랜턴과 이동식 랜턴(보조배터리), 구급약품, 계절에 따라 모기장과 핫팩, 그리고 취사할 경우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 캠핑용 조리도구 스토브와 연료, 휴대용 식기와 수저, 다용도 나이프, 아이스박스 등이 있다. 필요하다면 카트리퍼 혹은 도킹 텐트, 루프톱 텐트, 타프도 구비한다.
차박캠핑의 장점으로 기동성을 꼽을 수 있지만 아무 데서나 차를 세우고 야영할 수는 없다. 법에 따라 전국의 도립, 시립, 군립, 국립공원, 국유림 임도, 사유지, 해안 방파제에서는 야영할 수 없다. 휴게소나 주차장에서 차박캠핑을 하더라도 불을 사용해 취사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차박캠핑 성지로는 당진 왜목마을, 충주 목계솔밭, 강릉 순긋해변과 안반데기, 홍천 모곡밤벌유원지, 여주 달맞이광장, 부산 오랑대공원, 태안 몽산포해수욕장, 부안 모항해수욕장이 있다.
백패킹 | 두 발로 정처 없이 걷다가 하룻밤 쉬고 싶을 때
야영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넣은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산, 숲, 트레일, 해안 등을 이동하다가 어딘가에 텐트를 치고 즐기는 캠핑을 말한다. 백패킹의 가장 큰 매력은 인적 드문 고요하고 신비로운 자연에서 잠들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장비를 짊어지고 이동해야 하기에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만드는 이른바 BPL(BackPacking Light)이 관건. 이동에 제약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장비와 식량을 꾸려야 한다. 장거리 트레킹의 경우 배낭 무게는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
배낭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추리니 자연스럽게 백패킹 이후 나오는 쓰레기 또한 줄어든다. 내가 머문 자연의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 바로 LNT(Leave No Trace)다. 백패킹 문화가 발달한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의 백패킹 인프라는 아직 부족한 편이지만,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그 속에서 잠시 쉬어간다는 생각은 백패커라면 가져야 할 공동의 마음일 것이다.
백패킹에 필요한 주요 장비는 트레킹 위주의 백패킹을 할지, 야영 위주의 백패킹을 할지에 따라 다소 달라지지만 크게 운행 장비, 주거 장비, 취사 장비로 나눌 수 있다. 트레킹 중심의 백패킹이라면 무게가 중요하다. 오래 걸으며 산행하기 위해서는 편한 트레킹화와 배낭을 기본으로 스틱, 헤드램프, 랜턴, 텐트, 침낭, 매트리스, 모자, 취사도구, 식량 등이 필요하다. 야영 위주 백패킹의 경우 이동 거리가 짧기에 소화 가능한 캠핑 장비를 추가할 수 있다.
백패킹에서 가장 중요한 트레킹화와 배낭에 대해 좀 더 설명하면, 우선 트레킹화는 평소 신는 신발보다 한두 치수 크게 신을 것을 권한다. 등산용 양말이 두껍기도 하고 피로로 인해 발이 붓기 때문에 너무 딱 맞으면 산행을 지속할 수 없다. 배낭은 여름철이라면 50~60L급, 겨울철에는 80~90L급 배낭에 수납한다. 역시 법에 따라 전국의 도립, 시립, 군립, 국립공원, 국유림 임도에서는 야영할 수 없으며, 자연휴양림 혹은 야영장에서 야영할 수 있다.
현대차 ‘포레스트’, 자동차를 넘어 움직이는 집으로서의 가치
현대자동차 소형 트럭 포터Ⅱ를 기반으로 한 캠핑카 ‘포레스트’가 최근 핫한 캠핑카로 떠오르고 있다. ‘포레스트’는 어디에서도 캠핑할 수 있는 편안하고 넓은 실내 공간을 갖춰 ‘움직이는 집’이라는 콘셉트로 4인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캠핑카다. 국내 캠핑카 등록 대수는 2014년부터 5년간 약 5배 증가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여가 활동 수요와 캠핑카 개조 규제 완화로 캠핑카가 늘고 있다. 정부는 연간 6000대 차량이 캠핑카로 개조되면서 1300억 원 규모 시장이 생겨날 것으로 전망했다.
포레스트는 스마트룸, 스마트베드를 적용해 실내 공간을 전동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스마트룸을 사용하면 차량 뒷부분이 800㎜ 연장되고, 확장된 부분은 침실로 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베드 기능으로 침실을 두 층으로 나눌 수도 있다. 포레스트는 2열 승객석에 상황별로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가변 캠핑 시트를 탑재해 내부 공간 활용도를 끌어올렸다. 가변 시트는 주행 중에는 시트, 캠핑 시에는 소파, 잘 때는 침대 용도로 쓸 수 있다. 또한 캠핑지에서 샤워실, 화장실 등의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겪는 사생활 침해 등 불편을 고려해 독립형 샤워부스, 실내 좌변기를 선택사양으로 적용할 수 있다. 차량 내 각 창문에 커튼이 설치됐다.
또한 태양광을 전기로 바꿔주는 태양전지 패널도 사양으로 선택할 수 있으며, 대용량 배터리 및 효율적인 충전 시스템을 적용해 캠핑 중 배터리 방전에 대한 걱정을 줄였다. 이밖에 현대차는 포레스트 내에 냉난방기, 냉장고, 싱크대, 전자레인지 같은 각종 편의사양을 제공해 고객들이 집과 같은 안락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캠핑카 기능은 포레스트의 직관적인 터치식 통합 컨트롤러로 제어 가능하며, 블루투스 연결을 통해 스마트폰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예고도 없이 찾아든 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상이 멈춘 듯 움츠러들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감성을 찾아 떠나고 싶을 때다. 여전히 여행은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갑갑한 일상에 갇혀 있는 자신을 가끔씩 끄집어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물결이 비단처럼 고운 바닷가
삼척을 대표하는 항구 정라진(汀羅津)은 말 그대로 비단처럼 잔잔하다. 그 수면 위로 비치는 바닷가 마을이 고요하다. 한때는 동해안 최대 항구이기도 했던 삼척항이다. 지금은 그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소박한 어촌 마을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원도 지도에서 가장 아랫녘에 위치한 삼척, 한때는 동해를 대표하는 무역항이었다. 최고의 호황기였던 1970~80년대 수많은 어선이 항구로 몰려들었고, 노가리와 대구, 정어리, 오징어가 풍년이었다. 그 무렵의 삼척항은 몰려든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는 밤새 잡아온 오징어 손질에 바빴고, 햇볕 좋은 나릿골 마을은 온통 오징어 건조장이었다.
그뿐 아니라 태백산지의 지하자원 덕에 시멘트 공장과 석탄을 원료로 하는 화력발전소까지 들어서서 돈이 넘쳐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도 있었다. 시멘트 공장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은 옛 영화가 사라진 소박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향수 어린 친근한 이름 정라항(汀羅港)은 여전히 어민들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정라항은 삼척시에서 2km 정도 거리에 있다. 마을과 가까이 맞닿아 있어 바다를 바라보면서 비릿한 갯내음과 더불어 곰치국이나 싱싱한 활어회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그 거리에 들어서니 조용하다. 가끔씩 통통배의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고, 어선의 깃발이 바람에 살랑대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활기찬 항구의 소란함이 다시 찾아오길 고대한다.
조용한 항구를 뒤로하고 입구의 말랑이슈퍼를 지나 나릿골 마을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 한적하다. 그 길로 좁다랗게 비탈진 골목이 미로처럼 쭉 이어진다. 경사가 어찌나 가파른지 눈비 내릴 때는 어떻게 다닐까 걱정될 정도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나릿골은 예전엔 층층이 골은 낮지만 물이 풍부해서 습기를 받은 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어났다고 한다. 지금은 나릿골에서 볼 수 없는 꽃이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나리꽃처럼 정감 어린 감성 마을로 변모하는 중이다.
지나가는 담벼락에 듬성듬성 벽화가 그려져 있어 심심치 않다. 몇 년 전부터 정라항 주변 나릿골을 ‘오감이 피어나고 웃음이 번지며 걷고 싶은’ 감성 마을로 조성해 언덕 마을에 표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동해안 여행자들의 한 달 살기 등을 지원하기 위해 빈집 6채를 사들여 게스트 하우스로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그 골목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숨차게 오르면 그 끝에 무엇이 있을까.
나릿골의 작은 집 4채
나릿골의 작은 집 4채를 삼척시로부터 지원받아 교육관 1동, 전시관 및 체험관 2동, 외부 작가가 거주할 작가의 집 1동으로 리모델링한 미술관이 언덕 끝에 기다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유휴시설 활용사업 일환으로 탄생한 문화 공간이다.
나릿골의 좁다란 골목길 걷기도 여행의 색다른 재미지만, 미술관을 편히 가려면 산등성이까지 자동차로 갈 수도 있다. 차량 통행이 어려울 만큼 비좁았던 길이 도시재생사업으로 조금 넓어졌다. 걷기가 용이하지 않을 경우엔 택시나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으니 누구나 가파른 그 언덕 끝까지 오를 수 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오르는 길에는 잘 가꾸어진 작은 카페와 아기자기한 시설들이 소소하게 자리한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오면 작은 공원이 있을 뿐 주변 공터는 한산하고 깔끔하다. 요즘 많이 알려진 다른 벽화 마을처럼 예쁘거나 특이한 카페, 또는 포토존 같은 시설은 보이지 않는다. 원하건대 더 이상 부대시설을 늘리지 말고 지금의 단순함을 유지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전망대에 서서 바라보는 바다, 가슴이 뻥 뚫린다. 하늘과 바다와 바람 속에서 머릿속이 청량해진다. 저 멀리로 정라항의 잔잔한 물결이 비단처럼 살랑거린다. 소박한 도시 삼척과 시멘트 공장을 감싸 안은 봉황산의 능선이 부드럽다. 마을 전체가 미술관처럼 보인다. 산언덕 드문드문 알록달록한 색감의 지붕들 사이로 그들의 애잔한 삶이 엿보이고, 텃밭에는 보송보송 파꽃이 피어났다.
미술관은 조붓한 골목길을 따라 몇 걸음 더 내려가야 한다. 길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뉘 집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바닷가 산동네, 그 올망졸망함이 문득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군데군데 빈집들이 보인다. 마실을 간 것일까. 나릿골을 두고 먼 곳으로 떠났을까.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정라항 그리go 작은 미술관’. 나릿골의 감성과 바닷가 마을이 만들어낸 멋진 소통의 공간. 1전시관과 2전시관은 하얀 담장을 두고 몇 걸음 떨어져 있으며, 앞면이 모두 투명한 창으로 되어 있어 바다와 마주한다. 그리고 전시 작가가 머물 수 있는 작가의 집이 전시장 아래쪽에 위치한다. 신선한 물빛 감성을 가득 채우는 시간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더 멋질 것 같은 곳.
바이러스를 피해 방구석만 지키기에는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겨울이었다. 정라진 항구 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향수 어린 그 시절의 그리움에 잠깐 젖어보는 것도 괜찮다. 해풍에 오징어가 말라가는 자연 속의 건강한 풍경으로 수분을 채우고 위로받는 하루, 기꺼이 만들어볼 일이다. 바닷길과 감성 마을 골목을 천천히 올라 다다른 작은 미술관에서 버석하던 일상에 감성을 채우고 에너지를 얻는다.
어디쯤엔가 와 있을 봄, 삼척항 호젓한 산등성이에 올라 바라보는 비단 물결 반짝이는 바다,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하루다.
주변 볼거리
여행 중에 잠시 휴식을 주는 곳, 죽서루
동해가 아우르는 지역에서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는 죽서루(竹西樓). 시간 여행하듯 삼척 읍성 성곽로를 따라가다 보면 나타난다. 누각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삼척시 서편으로 오십천(五十川)이 절벽 아래 흐른다. 관동팔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죽서루는 삼척 시내에 있어서 삼척 주변을 여행 중이라면 잠시 들러 쉬어가기 딱 좋다. 죽서루는 송강 정철의 가사에 나오는 터이기도 하다.
평온한 마음의 휴식, 성내동 성당
삼척의 성내동 성당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천주교 발전사에 의미 있는 곳이다.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으며,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진 야고보 신부의 순교 기념비와 기념 건물을 볼 수 있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다 공산군에게 피살된 진 야고보 신부의 족적을 천천히 따라가 보자. 성전을 한 바퀴 돌면서 조용히 묵상의 시간을 가지고 성당 주변 풍경에 잠겨보는 것도 특별하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도경리역
삼척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도경리역이 있다.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그곳에 가려면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려야 한다. 예전엔 아주 깊은 산골이었을 듯싶다. 삼척시와 동해시의 경계에 위치하는데 두 도시는 이웃 마을처럼 아주 가깝다. 1939년에 지어진 도경리역은 현재 영동선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랜 역사(驛舍)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98호다. 일제강점기에 자원수탈의 도구로 역사나 터널을 만들었는데 이 역도 그중 하나다.
일연 스님(1206~1289)은 몽골의 침입이라는 국난에 맞서 한민족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스님은 입적하기 전 5년 동안 5권 2책의 ‘삼국유사’를 완성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며 나름의 답을 했다. 정사에서는 볼 수 없는 한민족 역사의 대기록이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를 밝힌 고조선과 단군신화, 14수의 신라 향가는 고대 문학사를 실증하고 있으며, 이 땅의 사람들이 남긴 기억을 모아 통일된 서사를 완성했다.
이처럼 한민족 정신사에 족적을 남긴 일연 선사의 자취는 군위의 인각사(麟角寺, 사적 제374호)에 남아 있다. 그의 생애를 기록해두었다는 보각국사비(普覺國師碑)를 보러 가자. 인각사로 가는 여행은 일연 스님의 정신과 그 비문에 얽힌 간곡한 마음 하나 알아보려고 떠난다.
인각사의 비문에 존재한다는 문장을 마음속에서 떠올려본다. 그 비문의 이름은 보각국사비다. 당시 이름난 민지(閔漬)라는 문장가가 글을 지었고, 왕희지의 서체로 4000여 자를 집자했다고 한다. 인각사라 자리한 군위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가는 김에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왔다는 혜원(김태리 분)의 근사한 집도 들러보고 추억의 기차역 화본역도 다녀왔다. 카메라와 번역본 ‘삼국유사’ 한 권을 배낭에 짊어지고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를 거쳤다. 과연 온전히 이 글의 주인공의 드높은 정신세계를 느끼고 비문을 찾아볼 수 있을까? 비에 새겨졌다는 일연 스님을 찬하는 민지의 문장이다.
“말할 때 우스개가 없고(語無戱謔), 꾸며대지 않는 성품이며(性無緣飾), 참된 마음으로 사물을 대했다(以眞情遇物). 여럿이 함께 있어도 홀로인 것 같았으며(處衆若獨), 높은 위치에서도 낮게 처신했다(居尊若卑). 스승에게서 배워 공부하지 않고(於學不由於師), 저절로 환하게 알았다(自然通曉).”
인각사를 빛내주는 것은 바로 학소대에 노니는 학처럼 고고한 선사의 정신세계다.
참된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는 힘은 일연 스님의 끝없는 수행의 결과가 아닐까?
경북 군위는 세간의 시선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고장이다. 대구에서 가수 김광석 거리와 달성공원을 둘러보고 하루의 일정을 보낸 후 다음 날 아침 군위로 향했다. 간밤에 눈이 내려 앞산 정상이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시내는 금세 녹았지만 대구를 분지로 만들며 빙 둘러 병풍처럼 서 있는 산들은 만년설을 두른 듯 하얗다. 군위 방면에 있는 팔공산의 설경은 겨울답게 눈이 부시다. 대구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힘이 눈으로 더욱 영험해진 듯하다.
일연 스님이 말하고 싶은것은?
팔공산의 품은 넓고도 높아 군위로 향하는 내내 시선을 머물게 한다. 군위로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추위 탓인가, 코로나19 때문인가? 텅 빈 들판과 낙엽이 떨어져 벌거벗은 겨울나무 숲은 조용히 추위를 견디고 있다. 응달에는 아직도 하얀 눈이 쌓여 있다. 인각사로 향하는 지방도로는 산길로 접어들어 굽이진 길을 간다.
영천 방향으로 산길을 위태롭게 오르내리며 가는데 영락없는 산촌 풍경이다. 이런 궁벽한 산골에서 고려의 국사였던 일연 선사가 하안소(下安所)로 인각사를 선택하고 ‘삼국유사’의 저술을 마무리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는 얼마나 멀고 먼 땅이던가? 어렵게 산길을 거쳐 왔어도 막상 사찰은 평지에 있었다. 화산의 봉우리 끝에 상상의 동물인 기린의 뿔과 닮은 곳에 세웠다 하여 인각사라 명명했다 한다. 절의 맞은편 위천(渭川)이 흘러가는 강변에는 학이 깃들어 산다는 학소대(鶴巢臺)가 우뚝하다. 일반 여행객이라면 절에 눈길을 주기 전에 틀림없이 이 절벽에 주목할 만큼 절은 평범하다.
고려의 명승 일연 스님이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천년 고찰 인각사도 온통 추위 속에 서 있다. 인각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에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 이곳에서 구산문도회를 두 번이나 개최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전국 불교의 본산임을 알 수 있다. 인각사 경내에는 보물 제428호인 보각국사탑과 비가 있다.
도로변 평지에 위치한 인각사에는 엄청난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마침 주지 스님은 본찰인 은해사에 가서 부재중이었다. 직원에게 딸기 공양을 맡기러 컨테이너로 된 종무소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순간 발이 얼어붙는 듯했다. 계곡 바람이 차가웠다. 문을 닫고 종무소 안으로 들어가니 시골집 아랫목처럼 따뜻했고 뜨거운 차는 반가웠다. 부처님 품속에라도 들어온 느낌이었다.
다시 밖으로 나와 보각국사탑과 비를 본다. 비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몇 동강 나 있고 글자는 알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30여 개의 탁본이 남았고 금석학자들의 노력으로 대부분 해독이 가능하다고 한다. 글자가 명필 왕희지체여서 인기가 많아 수많은 탁본을 떴으며, 과거를 보는 선비들이 효험을 보려고 비를 갈아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에게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연 스님이 남긴 민족 역사의 대기록 ‘삼국유사’
민지의 비문으로 일연 스님을 기억한다면 우리 가슴에 새겨진 영원한 비문은 ‘삼국유사’다. 40년간의 몽골항쟁 후 ‘삼국유사’가 쓰였다. 외세 침략을 극복하고 민족 자존감을 고취하기 위해 한민족의 자존 용기와 기백을 그렸다. 스님이 활약하던 시기는 무신정권이 들어서고 몽골과의 길고 긴 항쟁을 하던 시기였다. 결국 장년기에 들어서는 원의 간섭을 받던 시절이었다. 스님은 대장경 간행에도 관여했으며, 출가 시절부터 전국의 사찰을 다니면서 민초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았고 누구보다 그들의 힘을 믿었다. 국사라는 안락한 자리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효도의 예를 다했으며, 당시 시대의 과제를 피하지 않고 민족혼을 일깨웠다.
700여 년 전 일연 스님이 남긴 민족 역사의 대기록 ‘삼국유사’, 마지막 생을 불태운 그의 기록은 민족의 뿌리를 기억하게 하는 보물이다.
지금 이 시대에 왜 ‘삼국유사’이고 보각국사비인가? 인간이 되려고 인고의 21일을 견딘 웅녀의 끈기와 태백산 신단수 아래 나라를 세우며 내세운 홍익인간 같은 사상이 필요한 때다. ‘삼국유사’에는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한민족 최초의 스트리퍼라 불리는 정수 스님의 이야기는 상징적이다. 한겨울 길거리에서 만난 산모에게 옷을 다 벗어주고 간 스님의 이야기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일연 스님의 생애를 새긴 보각국사비 양기(陽記)의 마지막 문장은 ‘온 산하가 다 불타 없어지더라도, 이 비만은 홀로 남아 전해주소서’라는 뜻이다. 비록 비는 부서졌어도 일연 스님이 말하고자 했던 뜻과 문장은 향기롭게 남아 시대의 등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군위 여행의 맛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많은 저작을 남긴 이윤기 작가의 고향이다. 그도 자신의 고향이 ‘삼국유사’의 고향인지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이 고을의 대표 브랜드는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다. 군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김수환 추기경의 자서전을 읽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 지역의 사계와 먹거리를 요리로 표현한 김태리 주연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가면 더욱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다. 영화는 경쟁적 도회의 삶에 지치고 허기져서 귀향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추억 속의 시루떡은 달지 않은데 단맛이 나고 지금 먹는 떡은 짜지 않은데 짠맛이 난다.” 영화는 엄마가 딸에게 주는 인생 레시피다. 군위에서 듣는 일연 스님의 이야기는 시대와 역사가 주는 가르침이다. 군위 여행은 ‘삼국유사’라는 거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뜻밖의 깊은 맛이 난다. 우울함을 단번에 행복감으로 바꿔주는 영화 속 음식 크렘 브륄레처럼, 코로나19 시대 위기를 극복하는 ‘삼국유사’의 비기를 찾아가 보자.
산 아래 마을을 지나 언덕을 오르자 이내 숲속이다. 밋밋한 야산이지만 솔이 지천이라 푸르다. 길 오른편으로는 얼어붙은 도랑이 이어진다. 그러다 순식간에 풍경이 바뀐다. 옹골차고 미끈한 바위들이 계곡을 채운 게 아닌가. 송암폭포 일원이다. 바위 벼랑에도, 소(沼)에도 얼음장이 두꺼워 고적한 정취를 자아낸다. 해빙이 되고 봄비 내리면 물은 날듯이 활개를 치리라. 소쿠라지는 폭포 소리로 후련하리라. 기차게 변전하는 산중의 사계를 두고 딴 데에 원림(園林)을 둘까보냐. 고릿적 선비들은 산을 좋아해 산에서 노닐기를 관습으로 삼았다.
작디작은 별서를 만든 건 여기가 허허롭게 사는 이의 피안이란 뜻인가. 만휴정(晩休亭)은 계곡 옆 둔덕에 마냥 소탈한 품새로 들어앉아 있다. 있으나 없는 것처럼 티끌 없이 고요하다. 정갈한 고로(古老)의 반쯤 감긴 눈매처럼 그저 잠잠하다. 세상과 동떨어진 정적과 고독이 짙어 가슴으로 스며드는 풍경이다. 초목이 길차게 우거졌으나 서늘한 겨울 숲엔 새소리도 그쳤다. 부질없이 번잡한 건 사람의 속기일 뿐. 여기에서 속세의 먼지를 털어냄직하다. 조선 전기의 문신 보백당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만년을 누린 원림이다.
원림에도 유형에 차이가 있고 투자에 격차가 있다. 은근한 치레로 슬쩍 자랑하는 원림이 있는가 하면, 담박한 성정을 담은 정자 하나로 할 말 다하는 원림이 있다. 만휴정은 후자의 전형이다. 몇몇 선과 면으로 조촐하게 그린 먹그림을 닮았으니. 그러나 성정의 경향만 좇아 지었으랴. 주변 산천의 형세와 스케일을 가늠하는 심미안 역시 건축의 주춧돌로 쓰였다. 자연 풍광이 제법 빼어나니 덧칠이야 허세로 여겼을 테고, 비좁아 옹색한 골에 큼직한 원림을 꾸릴 수는 없는 일이라 순리를 따랐다.
계곡 위로는 다리가 놓여 있다. 만휴정 출입문과 곧장 이어지는 다리로 후대에 가설했다. 세 뼘 남짓한 비좁은 다리지만 광폭의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요리에 견주자면 애피타이저? 풍경을 보는 눈에 포인트가 담기며 구미를 촉발하기 때문이다. 저 위편으로는 입이 떡 벌어지도록 널찍한 너럭바위가 보인다. 이 거대한 바위의 위용으로 숲도 덩달아 묵직한 위엄을 머금는다. 만휴정이 피안이라면, 다리를 건너는 일은 속세와 결별하는 여정인가. 그러고 보면 단아해서 아름답고 고요해서 심원한 만휴정의 모습을 선계의 기척이라고 말 못 할 것도 없겠다.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얹은 만휴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졌다. 초창 이래 중수와 보수가 거듭됐으나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이 일부 남아 있다. 전면 전체를 개방해 툇마루로 처리한 대목은 흔치 않은 양식이라더라. 누각의 3면을 두른 계자각 난간과 창방 위에 올린 연꽃 화반의 조각에도 공들인 흔적이 완연하다. 아무려나 곱상하게 잘 늙은 집이다. 산야에 피고 지는 꽃들, 산 위로 모이는 별들, 계곡으로 흐르는 달빛을 다 볼 수 있으니 덧없는 세상이야 까먹은 셈치고 숨어 살기 좋은 집이다.
김계행이 이곳에 머물기 시작한 건 일흔 살에 접어든 때였다. 넌더리 나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 장인인 남상치의 별서였던 쌍청헌(雙淸軒)의 옛터에 만휴정을 조성하고서였다. 김계행은 명민한 재목이었으나 이채롭게도 50세에 이르러서야 식년시에 붙어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벼슬에 나아가기 전의 긴 세월을 주로 ‘열공 모드’로 정진했다. 따라서 학문이면 학문, 수신(修身)이면 수신, 어느 면에서든 그를 능가할 이가 드물었다. 점필재 김종직과 함께 영남 유림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이지 않은가. 처신은 칼칼하고 운신은 꼿꼿해 조정에 대고 쏘아붙인 직언도 잦았다. 배울 만큼 배운 자가 지닌 투명한 정신의 발현이었다. 그랬으니 치고 들어오는 ‘안티’와 잠정적인 침몰도 필연이라 부침이 자심했다.
김계행의 인품을 짐작케 하는 일화가 있다. 젊었던 날의 그에게 집안의 장조카로 궁궐의 실력자였던 학조대사가 찾아왔다. 학조는 김계행에게 왕실에 줄을 대줄 테니 중앙 관직으로 나아가라 했다. 이에 격분한 김계행이 학조의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회초리로 후려쳤다. “청탁으로 벼슬을 살라고? 우리 집안의 정신이 겨우 그 정도더냐?” 이렇게 딱 부러지는 기개로 청정했으니 미혹이 침범할 틈이 없었을 테다.
“우리 집엔 보물이라곤 없지만, 오직 청백(淸白)만이 보물이다.” 이는 김계행이 일찍부터 게송처럼 읊조린 삶의 나침반이었다. 그를 청백리의 표상으로 보는 사람도 많았던 걸 보면 언행일치에 차질이 없었던가 보다. 이쯤에서 만휴정의 저 화장기 없는 매무새의 행간을 다시 읽게 된다. ‘청백’의 개결한 심지로 안분지족한 자연옹(自然翁)의 뜻을. 은자는 무욕으로 세상과 세월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무시무시한 무적함대다.
답사 Tip
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다. 만휴정에서 북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는 묵계종택이 있다. 김계행이 살았던 고택으로 한옥 체험 숙박을 할 수 있으며, 종택 옆엔 묵계서원도 있다.
1976년 연극 ‘하멸태자’로 데뷔 후 46년째 연기의 길을 걷고 있는 배우 남경읍. 그는 배우이기도 하지만 조승우, 황정민, 소유진, 오나라 등 4000여 명의 제자를 양성한 뮤지컬계 대스승이다. 그런 그가 공교롭게도 뮤지컬 ‘올드 위키드 송’에서 슬럼프에 빠진 천재 피아니스트를 가르치는 ‘요제프 마쉬칸’ 교수 역을 맡았다. 후배들이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빛을 함께 찾아주며 멘토가 되어주었던 그에게 이번 작품은 어떻게 다가올까. 또 이 자리에 서기까지의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인생을 하나의 ‘슬럼프’라고 비유한 배우 남경읍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요제프 마쉬칸’은 어떤 인물인가?
마쉬칸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겪었던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를 감추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특유의 유쾌함과 웃음으로 그 아픔을 가리며 살아가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더욱 괴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죠. 하지만 ‘스티븐 호프만’을 만나고 사제 간 음악으로 하나가 되면서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기 시작합니다.
Q. 스승으로서 작품이 주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제자들을 가르치다 보면 다양한 학생을 만나게 되는데요. 보이는 것이 전부인 학생이 있고, 지금은 재능이 보이지 않지만 숨겨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학생도 있어요. 좋은 선생은 그런 재능을 가진 학생을 찾아내고, 키워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또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중요하죠. 많은 제자의 재능을 끌어내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이 도움되었습니다.
Q. 사제 간 교감을 극대화하는 넘버가 있다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슈만의 ‘시인의 사랑’은 숨은 열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메시지가 강한 곡이에요. 그중 마음이 가는 노래는 제1곡 ‘이 아름다운 5월에’입니다. 마쉬칸이 이 곡을 가르치면서 스티븐의 열정을 끌어내기 위해 하는 말이 있어요. “인생이란 건 언제나 그렇게 명확할 수만은 없는 거야. 이 안에 마음이라는 게 있어. 그걸 움직이라고!”
Q. 연기하며 와 닿았던 대사는?
마쉬칸의 대사 중 이런 말이 있어요. “비탄 속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비탄을 모르니 커다란 기쁨에 대해서 이해하지도 못하는 거야.” 그의 말처럼 항상 행복한 사람도, 슬럼프를 겪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든 슬럼프가 오지만, 그것을 극복할 때 행복하고 기쁘죠. 좋고 나쁜 일을 번갈아 겪다 보면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슬럼프이며 터널이지 않을까요?
Q. 슬럼프를 극복한 일화가 있다면?
힘든 시기에 겨울 산을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찬바람과 싸우는 나목의 황량한 모습이 그 당시 저와 참 비슷하다고 느꼈죠.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아! 다른 계절에는 나뭇잎 때문에 햇빛이 땅까지 비추지 못하지만, 잎이 다 떨어진 겨울 산은 햇빛이 오롯이 땅을 비추고, 그 덕에 땅속에서 수많은 광합성이 일어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 현실이 겨울이라도 춥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죠.
Q. 관객에게 전하는 위로의 한 말씀
코로나19 또한 인생의 우여곡절, 리듬이라고 생각해요. 영원한 어둠은 없습니다. “기쁨과 슬픔의 결합. 이게 바로 핵심이야!“라는 마쉬칸의 대사처럼 지금은 큰 비탄을 겪고 있지만, 두 주인공처럼 커다란 기쁨을 이해할 날이 곧 오겠지요. 그 시간을 견디는 가운데 이 작품이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주리라 생각해요.
뮤지컬 '올드 위키드 송'
일정 3월 1일까지
장소 예스24스테이지 3관 연출 우진하
출연 남경읍, 남명렬, 이재균, 정휘, 최우혁 등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았다. 이처럼 춥고 궂은 날씨가 늘게 되면 그만큼 야외활동과 운동량이 줄고 관절이 경직된다. 낙상에 의한 골절 위험이 더 올라가는 셈이다.
이때 노년층이나 골다공증 환자가 주의해야 할 척추질환이 있다. ‘골다공증성 척추압박골절’이다. 최두용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골다공증이 있는 60~70대 이상 노년층의 경우 눈길에 살짝 허리를 삐끗하거나 재채기 등의 사소한 외력에도 척추뼈가 주저앉아 압박골절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했다.
척추는 위로는 머리를 받히고 아래로는 골반과 고관절을 통해 하체로 연결돼 몸의 구조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또 신경 다발이 지나가는 중요한 구조물로 이러한 기능을 위해 척추체, 추간판, 후궁, 후관절이라는 구조물로 이뤄져 있다.
척추는 원통 모양으로 골절이 발생하면 높이의 감소나 변형 등을 보이는 압박골절의 형태로 나타난다. 골다공증성 압박골절이 흔히 발생하는 위치는 체중을 많이 지탱하는 흉추·요추부(등허리)다. 허리가 무너지는 듯한 심한 통증이 발생해 거의 움직일 수 없고 통증이 가슴이나 배로 뻗쳐 내려가는 양상을 보인다. 등이나 허리에 통증이 없어도 발생할 수 있고, 평소 척추관협착증이나 디스크 등으로 만성적인 통증이 있는 60대 이상의 고령, 특히 여성에서 큰 외상없이 살짝 엉덩방아를 찧거나 허리를 돌리던 중 또는 재채기 도중에도 발생할 수 있다. 정자세로 누울 때 통증은 다소 줄지만 다시 일어서려고 하면 등이나 허리에 무너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이때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몸이 점점 앞으로 굽는 척추후만증이나 옆으로 굽는 척추측만증과 같은 변형이 올 수 있다.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최두용 교수는 “골다공증에 의한 척추압박골절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러 개의 척추뼈에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특징이 있는데 척추체 앞쪽 높이가 계속 감소해 등과 허리가 심하게 구부러지는 척주후만증을 일으키게 된다”고 했다. 이어 “이런 경우 등과 허리가 점점 더 굽어지고 만성적인 통증으로 악화한다. 또 보행도 힘들어지고 전반적인 몸의 기능이 떨어져 폐렴이나 호흡곤란 등 전신적인 합병증을 유발한다”고 덧붙였다.
골다공증 진단 후 꾸준한 관리로 골절 대비해야
골다공증성 척추압박골절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척추 엑스레이검사를 시행한다. 다만 엑스레이검사는 척추체 높이가 가라앉은 것은 확인할 수 있지만 이 검사만으로는 급성 골절인지 오래된 골절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따라서 가장 확실한 진단 검사로 척추 MRI(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를 시행해 골절의 범위와 발생 시점을 파악한다. 골절이 생기면 골절편(부러진 뼈의 날카로운 조각)이 생기게 되는데, 뼛조각에 의한 신경 압박 여부와 정도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있어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골밀도 검사나 골대사와 관련한 혈액검사 등을 통해 골다공증 유무와 정도 등을 확인하고, 모든 검사 결과와 환자 상태를 파악한 후 치료방침을 결정한다.
급성 골절로 진단된 경우에는 먼저 침상 안정, 진통제 등의 보존적 치료를 2~3주 정도 시행한다. 이어 골다공증과 관련한 다양한 골다공증약과 칼슘, 비타민 D 등의 약물치료를 시작한다. 이러한 보존적 치료로 현저히 통증이 감소하면 허리 보조기를 착용한 채 보행을 시작하고 약물치료를 이어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치료에도 심한 통증이 지속하거나 척추체 높이의 감소가 진행되면 대부분 환자가 고령인 점을 고려해 국소(부분)마취 상태에서 주사를 통해 의료용 골 시멘트를 주입해 치료하는 척추체 성형술을 시행한다. 이 경우 심한 통증을 단시간에 호전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드물지만 초기 골절의 정도가 심하거나 뼛조각이 신경을 압박하는 경우 전신마취를 통해 신경을 풀어주고, 골절된 척추뼈와 주변의 신경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한 나사못 고정술 같은 수술 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고령, 당뇨병 또는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 만큼 수술에 앞서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최두용 교수는 “골다공증성 척추압박골절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정과 사회에 의료·경제적 부담과 정신·신체적 피로를 높이는 질환이다. 골다공증 진단을 받은 후에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다른 내과적 질환처럼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척추, 고관절, 손목 등 다양한 부위에 골절이 발생해 수술을 해야 할 수 있고, 이로 인한 여러 합병증으로 고생할 수 있다. 단기간 치료에 그치지 말고, 평생 관리하고 치료하는 질병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ip. 뼈 건강을 지키는 생활 수칙]
①칼슘 흡수율을 높여주는 식품인 표고버섯, 말린 자두, 연어, 고등어, 미역을 골고루 섭취한다.
②술과 커피(카페인) 등은 적게 마시고 반드시 금연한다.
③과도한 육류 섭취를 삼가고, 음식은 싱겁게 먹는다.
④규칙적인 운동과 야외활동을 하며 하루 30분 이상 햇볕을 쬔다.
⑤무리한 다이어트는 피하고 근육을 강화해 뼈를 보호한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바야흐로 봄이다. 지난 3일이 봄이 시작되는 입춘(立春)이었다. 24절기 중 첫 번째인 입춘은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절기로, 입하(立夏) 입추(立秋) 입동(立冬)과 함께 사립(四立)으로 꼽히는 날이다. 옛날엔 한 해 동안 대길(大吉)·다경(多慶)하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풍속이 있었지만, 지금은 입춘축(立春祝)만 붙이는 정도로 의미가 왜소해졌다.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입춘축은 춘축(春祝) 입춘서(立春書) 입춘방(立春榜) 춘방(春榜)이라고도 부른다. 붙이는 위치에 따라 문구는 약간 다르지만, 가장 흔한 것은 역시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다. 올해에도 입춘 며칠 전부터 이 문구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받았다.
‘입춘대길’이라는 문구는 우리나라에서 시작돼 일본 중국으로 번졌다는 설이 있다. 이 말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건 선조실록 26년 계사(1593) 12월 16일이다. “정원(政院, 승정원)이 아뢰기를 ‘오늘이 바로 입춘인데 아직 일이 안정되지 못해 춘첩자(春帖子)를 지어 올리지 못했습니다. ’立春大吉‘ 네 글자를 정성스럽게 써서 행궁(行宮)의 안팎에 붙이는 게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할 만하면 하도록 하라’ 했다.”[政院啓曰 今日是立春 而時未事定 春帖子不爲製進矣 精書立春大吉四字 帖於行宮內外宜當 傳曰 可爲則爲之]
나라가 망해가는 임진왜란 와중에 입춘이고 뭐고 흥이 날 리가 있나. 입춘을 축하하는 시를 새로 지을 여력도, 정신도 없으니 알기 쉽게 이 넉 자를 써서 임시 거소의 안팎에 붙이자는 이야기였다. 선조의 대답도 심드렁하기만 하다. 난 모르겠으니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거 아닌가. 입춘대길은 이렇게 임시변통으로 만들어졌는데, 뜻밖의 대히트를 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조선 후기의 문신 조명채(曺命采, 1700~1763)가 종사관으로 일본을 다녀와서 쓴 ‘봉사일본시문견록(奉使日本時聞見錄)’의 1748년(영조 24) 6월 9일 기록에 이런 내용이 있다. “연로 촌가에서 우리나라처럼 ‘입춘대길(立春大吉)’ 넉 자를 써서 붙인 것이 있는데, 그것을 보니 눈이 새로워진다.” 이게 입춘대길의 일본수출로 해석되는 사료인 것 같다.
입춘대길 건양다경은 立(설 립)과 建(세울 건), 春(봄 춘)과 陽(볕 양)이 잘 어우러지는 대구(對句)다. 건양다경은 어디에서 나온 말인가. 중국에서 온 건 아닌 것 같다. 건양은 1896년부터 1897년 8월까지 사용된 조선시대 최초의 연호다.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정하고, 이때부터 태양력과 함께 건양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이듬해 8월 14일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光武)로 바꾸어 8월 17일부터 사용했다. 고종은 황제가 됐다.
이렇게 건양은 겨우 1년 8개월 가까이 사용된 국호였다. 좋은 뜻 같기도 하지만 좁게 말하면 양력을 도입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도 건양다경이 입춘대길과 함께 고전처럼 오래 전승돼온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잘 어울리는 대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대구는 농담거리로 회자되기도 한다. 어떤 호사가는 ‘입춘대길’에 대해 “봄에 남자의 물건이 서면 집안이나 부부에게 크게 길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건양다경’도 같은 맥락에서 남성의 양물을 세운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다경(多慶), 즉 자손이 번창하고 집안에 경사가 많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건양다경이 출전이 모호하거나 망국의 연호인 게 분명하거나 성적 농담거리까지 된다면 굳이 그 말을 계속 쓸 필요가 있을까. 지난해 내가 소속된 서예단체 겸수회(兼修會)의 공부시간에 이미 이런 의문이 제기됐다. 입춘대길은 그대로 두고, 건양다경만 바꾼다면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후보로 나온 게 초양(初陽)다경, 맹양(孟陽)다경, 가양(佳陽)다경, 시양(始陽)다경, 청양(靑陽)다경 등이다. 이중 청양은 청(靑)이 계절상으로 봄, 방위로는 동방을 가리키는 색깔이라는 점에서 만든 말이다.
하지만 가장 알기 좋고 발음도 쉬워 여러 사람의 지지를 얻은 것은 신양(新陽)다경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새롭고 신선한 햇볕이 천지사방에 고루 퍼지는 입춘의 의미를 잘 담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겨울의 어둠과 추위에서 벗어나 새로 출발하는 생명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성적 농담의 대상이 되는 말 대신 이걸 쓰기로 하자. 신양은 음력 11월을 달리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신춘(新春)과 같은 의미이다. 신(新)에는 처음이면서 세상을 다시 새롭게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코로나 19 시대에 발맞춰 탄생한 ‘언택트 돌봄’이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고령자 돌봄에 공백이 생길 우려가 커졌다. 경로당, 복지관, 체육관이 문을 닫고, 장년들이 집에만 머물자 정신적 고립을 느끼며 무기력, 우울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에 각 지자체와 기관들은 돌봄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언택트 돌봄’을 고안해 실행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1. 릴레이 안부 전화 주고받기
대한노인회 대구연합회와 대구경로당 광역지원센터에서 추진하는 운동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1,525곳에 이르는 대구의 전 경로당이 장기간 휴관하며 고독감을 호소하는 노인이 많아지자, 이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고안했다.
연합회장이 전화를 시작해 각 구의 지회장들로 이어지다 다시 역순으로 돌아온다. 또 지회장이 전화를 시작해 분회장, 선임 경로당 회장, 부회장, 총무로 이어지는 전화도 있다. 경로당 회원 간에도 순번을 정해 전화를 주고받는다. 경로센터 직원들이 각 경로당 회장에게 안부 전화를 하기도 한다.
통화에서는 안부 내용을 물을 뿐 아니라 연합회 소식, 지회 운영 내용을 주고받고, 겨울철 건강 관리나 방역 지침 준수도 당부한다.
2. 문화 예술 체험 꾸러미
한국문화원연합회는 ‘청춘문화공방’이라는 비대면 문화 예술 체험 꾸러미를 제작해 전국의 60세 이상 장년들에게 배포했다. 총 604명이 신청했다. 언택트 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목적이다.
청춘문화공방 체험 꾸러미는 장년들에게 친숙한 전통 민화로 만들어졌다. 민화 컬러링북, 부채, 에코백 채색 등 세 가지 체험 팩이 있으며, 집에서 직접 배우고 체험할 수 있다. 민화 컬러링북에는 각 민화의 의미와 상징 설명도 있다.
한국문화원연합회는 SNS에서 꾸러미 체험 후기 인증 이벤트도 진행했다. 이에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에는 이용자들의 다양한 후기가 #청춘문화공방 해시태그를 달고 올라와 체험 경험담을 공유했다.
3. 스마트 홈 서비스
경남 김해시는 2019년부터 장년층 1인 가구 300세대를 대상으로 스마트 홈 시범 사업을 실시했다. 동작 감지 센서를 주택 내에 부착해 응급 상황에 대비하고, 정보 제공과 말벗 기능이 탑재된 인공지능(AI) 스피커를 보급했다. 사회복지관 내에는 ICT케어센터를 마련해 전담 사회복지사 3명이 늘 모니터링하며 위급 시 긴급출동도 지원했다.
ICT케어센터는 최근 AI스피커 기능을 활용한 비대면 프로그램을 돌봄 공백 대안으로 마련해 운영 중이다. 인지 능력 강화 훈련, 명상, 노래 교실, 홈 트레이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요일별, 시간대별로 송출하여 심신 건강관리를 돕고 있다.
김해시 관계자는 코로나 19 장기화로 지친 어르신들의 건강이 우려된다며, 향후 ICT 기능을 활용한 비대면 돌봄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를 먹어가며 조금씩 신체 기능이 저하되고 외부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도 감소합니다. 피부도 역시 여러 요인에 의해 기능이 저하되는데 특히 콜라겐과 엘라스틴의 합성이 감소하면 탄력이 떨어져 주름이 생기고 처지게 됩니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누구에게나 오는 생리적인 현상을 노화라 합니다. 노화는 20대 후반부터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피부도 진피층의 결합 조직을 만드는 섬유아세포 생성기능이 약해져 교원섬유를 만들지 못하게 되면서 탄력이 떨어집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특히 40대 중반 이후에는 누구나 신체 노화 현상을 경험하게 되지만 여성에게서 더욱 뚜렷이 변화가 옵니다. 따라서 중년 이후에는 더욱더 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피부 노화 현상 역시 여성에게서 더 뚜렷합니다. 20대 후반부터 감소한 콜라겐 때문에 40대 이후가 되면 잔주름과 피부 처짐 등 눈에 확연히 보일 만큼 피부 탄력이 떨어집니다. 특히 건조한 겨울철에는 진피 내 콜라겐뿐만 아니라 수분 함량도 감소되어 이러한 변화가 가속화합니다. 그래서 피부 노화는 모든 중년 여성들의 걱정거리이며 관심의 대상입니다.
그럼 왜 나이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피부 노화 현상의 차이가 날까요? 몇 가지 원인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대표적인 원인으로 호르몬 변화를 꼽습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50세 이후에는 더 급속도로 피부 노화를 보이는데 그 이유는 여성의 에스트로겐 결핍에 있습니다. 모든 여성은 10대 초반에 초경을 시작해 매달 배란을 하고 생리를 합니다. 이러한 생리 현상은 50세 전후가 되면 없어지는데, 이후에 나타나는 가장 큰 변화는 난소 기능의 약화입니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분비가 중지되어 혈중 에스트로겐의 양이 급격히 감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후에는 에스트로겐 부족으로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시기에 30~45%의 여성들이 우울증, 안면홍조, 수면장애, 기억력 감퇴, 의욕상실 등의 증상들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특히 현대에는 평균수명의 증가로 한평생의 절반 가까이를 이렇게 에스트로겐 부족 상태에서 살게 되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피부 쪽 변화를 살펴보면 에스트로겐 감소로 피부의 콜라겐 양도 줄어드는데, 이는 에스트로겐이 피부의 섬유아세포에서 콜라겐 합성을 촉진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배란을 멈춘 첫 5년에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져 이 시기에 피부가 급속히 노화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갱년기에 부족해지는 에스트로겐을 보강하는 방법이 이런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로 제시되지만 부족한 에스트로겐을 보충해주는 호르몬 치료는 여러 부작용을 잘 감시하며 시행해야 합니다. 산부인과에서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여러 치료 방법이 시도되고 있으며, 피부과에서도 피부 노화 방지를 위해 에스트로겐 보강 요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에스트로겐 보강 요법은 다른 약처럼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메스꺼움, 구토, 질출혈, 두통 등입니다. 최근에 경구 에스트로겐 치료가 유방암이나 자궁경부암 발생을 증가시킬 수 있고 정맥혈전색전증 발생 위험성이 있다는 경고도 있어 많은 환자와 의사들이 에스트로겐 투여를 매우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호르몬제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구성 성분 역시 약마다 차이가 있어 같은 호르몬제라고 해도 개인에 따라 그 반응이 천차만별로 나타납니다. 담당의사와 상의를 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약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피부는 꼭 먹는 호르몬제가 아니어도 피부에 직접 에스트로겐 호르몬인 에스트라디올을 발라 콜라겐 합성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적은 양이지만 피부를 통해 흡수된 에스트로겐도 전신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폐경기 여성에게 경구 에스트로겐 대신 얼굴에 에스트로겐 연고를 발라주면 노화 완화는 물론 폐경에 따른 전신적인 증상을 좋게 해줘 일석이조의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최근 연구 결과 정제형이 아닌 패치, 젤, 연고 형태의 호르몬 제제는 정맥혈전색전증 위험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많은 양이 피부를 통해 흡수되면 에스트로겐이 전신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의사의 처방을 받고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여러 식물에 에스트로겐 효능을 보이는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물질들을 피토에스트로겐(phytoestrogen)이라고 합니다. 특히 콩에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성분을 충분히 섭취하거나 피부에 바르면 에스트로겐을 보충해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호르몬 보강 요법은 잘 시행하면 콜라겐 생성을 유지해 피부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으며, 골다공증 예방뿐만 아니라 우울증, 안면홍조, 수면장애 등 갱년기 증상 예방 및 치료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가장 적절한 치료 시기는 폐경 후 3년 이내로 전문의와 충분한 상담 후 시행하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