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의 계절 여름이 찾아왔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올여름 휴가 풍경을 크게 변화시킬 전망이다. 해외여행은 사실상 어려워졌고 생활 방역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국내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실제 한 글로벌 여행사가 국내 성인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7%가 ‘올해는 국내로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고 복지시설들이 휴관하면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시니어들은 여름휴가만큼은 재충전의 기회로 삼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휴가를 계획할 때 건강과 안전에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한다.
올여름 휴가 시즌에 가장 주목받을 여행 테마는 인파가 몰리지 않는 ‘산과 들로 떠나는 여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들과 거리두기도 용이하고 환기도 자연스럽게 이뤄져 실내보다는 코로나19 감염 위협에서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파가 몰리지 않는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자차를 이용해야 할 경우가 많다. 또 휴가철이라 교통대란을 피하기 쉽지 않다. 올여름 휴가는 국내로 여행하는 사람이 많아 더더욱 그럴 것이다.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도로 위에서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더구나 앉은 자세는 서 있을 때보다 허리에 가해지는 하중이 1.5배가량 늘어난다.
차량에서 앉은 자세로 오래 있을 경우 척추에 부담이 돼 목과 허리가 뻐근해지기도 하고 통증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척추피로증후군을 의심해봐야 한다. 척추피로증후군은 장시간 불편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을 때 발생하는 근골격계 질환이다. 방치하면 추간판탈출증(디스크)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척추·관절 노화가 진행 중인 시니어는 대수롭게 여기면 안 된다.
척추피로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목과 허리 근육의 긴장을 줄여야 한다. 장거리 운전 시에는 엉덩이를 운전석 뒤로 밀착해 허리와 목을 곧게 펴야 척추가 받는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 적어도 2시간 간격으로 휴게소나 졸음쉼터에 차를 세우고 스트레칭을 해줘야 한다. 귀가 후 온욕으로 긴장을 풀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40℃ 전후의 따뜻한 물에서 즐기는 온욕은 수축된 몸을 이완, 완화해준다. 이때 목욕물에 한약재나 허브를 넣어주면 더 효과적이다.
만약 피로가 쉽게 해소되지 않거나 목과 허리 통증이 3일 이상 지속된다면 전문가를 찾아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 한방에서는 추나요법을 비롯해 약침, 침 등 한방통합치료로 척추피로증후군을 포함한 허리 통증을 다스린다. 추나요법은 경직된 관절과 뭉쳐서 굳은 근육을 교정해 신체 균형을 바로 잡고 통증을 해소해준다. 한약재를 정제한 약침과 침 치료는 기혈과 체액의 순환을 촉진해 빠른 회복을 돕는다.
올여름은 여느 해보다 더 더울 것이라고 한다. 더운 날씨는 신진대사를 빠르게 하고 땀을 많이 흘리게 해 기운을 소모시킨다. 지친 상태의 몸은 자연스레 면역력도 떨어져 각종 질환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
따라서 여름에는 섭생이 중요하다.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먹어 양기를 몸 안에 저축해야 한다. 삼계탕, 장어, 추어탕 등과 같은 보양식을 이따금씩 섭취해주면 좋다. 등산이나 산책 등 적당한 신체 활동과 함께 규칙적인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것도 체력 저하를 막고 체내 기운이 원활히 순환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름은 ‘내실을 기하는 계절’이다. 휴가를 즐기는 데 집중하느라 건강관리에 소홀하면 양기를 소진한 상태에서 가을과 겨울을 맞이하게 돼 잔병치레를 할 수도 있다. 휴가지에서도 평상시의 생활 패턴을 유지하면 좋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왔기에 그 감동은 몇 배나 더했다. 순천만국가정원과 순천만습지 두 곳을 관람하기에 하루해가 모자랐다. 입장료도 제법 비싼 편인데 통합관람권으로 구매하니 대폭 할인이 된다. 올해 3월 은퇴하면 해외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로 진즉 포기했다. 대신 국내 여행으로 순천을 선택했다. 대만족이다. 날씨까지 화창하다.
순천만국가정원은 2013년 대한민국 최초로 국제정원 박람회를 개최했던 장소다. 112만 ㎥(약 34만 평) 부지에 23개국 83개 정원이 꾸며진 대한민국 1호 국가정원이다. 넓은 대지에 세계 유명 정원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뽐내고 있다. 언젠가 해외여행을 할 때 봤던 세계 정원과는 판이하다. 그때 본 정원들은 소꿉장난하듯 그 나라의 상징물들로 꾸며져 있었다. 순천만국가정원에서는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다가 숲길 따라 나라별 정원을 관람할 수 있다. 걷는 곳마다 꽃길이라 화사하고 잘 가꾸어놓은 잔디밭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쉬어 갈 수도 있다. 누워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긴 의자도 준비되어 있다. 그야말로 자연 친화적 정원이다.
풍차가 있는 네덜란드 정원에서는 꽃향기에 취하고 각 나라의 정원도 마치 현장에 와 있는 것처럼 감상할 수 있다. 길이 175m인 ‘꿈의 다리’는 세계 최초로 물 위에 설치한 미술관이다. 14만여 명의 전 세계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동천이 흐르는 꿈의 다리를 건너 한국 정원에 이르는 길에 만나는 조그만 산은 전체가 철쭉 정원이다. 봄에 가면 천상의 세계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전통 양식을 잘 보여준다.
부지런히 걸어도 한 바퀴 돌려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릴 듯하다. 돌아 나오는 길에 만나는 호수정원은 그림 같다. 잔디마당과 봉화 언덕이 있어 나선형의 꼭대기까지 걸러 올라가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호숫가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가져온 책을 읽으며 쉬노라니 불어오는 바람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다.
국가정원을 관람한 뒤에는 순천만 습지로 연결되는 스카이큐브가 있어 바로 넘어갈 수 있다. 세계 5대 연안 습지인 이곳은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다. 녹색의 갈대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가슴이 확 트인다. 갈대 숲속에 만든 데크 숲길을 따라 걸으며 갈대들이 서로 몸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다. 정겹다. 문득 올려다본 청명한 하늘에는 흰 구름이 가득하다. 마치 자연의 품속에 안긴 듯하다.
습지에서는 생물들이 살아 숨 쉬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순천만의 상징인 짱뚱어가 진흙 바닥에서 구멍을 뚫고 기어나 오는가 싶더니 다른 놈들과 영역 다툼을 치열하게 벌인다. 그러다가 인기척에 놀랐는지 후다닥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생긴 모양이 우스꽝스러운 짱뚱어는 겨울잠을 자는 동면 어류로 잠둥어라 불리기도 한다. 건강한 갯벌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천만 습지의 또 다른 주인은 게다. 사다리꼴 모양의 칠게는 새의 먹잇감으로 유명하며, 도둑게는 벽을 잘 타고 동작이 재빠르다. 바닷가에 있는 민가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훔쳐 먹기도 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습지에서 한주먹하는 놈은 단연 농게다. 암놈은 몸집이 작고 두 다리도 짧지만 수놈은 한쪽 다리가 크고 길어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분명 기형의 모습인데 힘센 한쪽 다리를 치켜들며 갯벌을 주름잡는 듯한 자세다. 작은 다리로 갯벌의 먹이를 주워 먹고, 크고 긴 집게발은 자랑처럼 휘두르는 것 같아 재미있다. 학창 시절 힘자랑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포기하고 순천이라는 곳으로 달려왔다. 만족스럽다. 유럽의 어느 관광지 못지않다. 가끔은 이렇게 보물 같은 관광지를 찾아 국내 여행을 하는 것도 좋겠다. 계절마다 이곳의 모습은 다를 것이다. 지금은 녹음으로 가득하지만 가을에는 갈색의 갈대숲이 반길 것이고 겨울에는 철새들이 날아드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운이 짙게 남는 여행이었다.
[관광 안내 정보]
관람시간: 순천만국가정원(08:30~20:00), 순천만습지(08:00~19:30)
입장료: 어른 80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 4000원
통합입장권: 어른 1만2000원, 청소년 8500원, 어린이 5500원 (국가정원과 습지 입장 가능)
주소: 순천만국가정원(전남 순천시 국가정원 1호길 47), 순천만습지(전남 순천시 순천만길 513-25)
내가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90년대 초반 아내와의 신혼여행 때였다. 최초의 행선지는 안나푸르나 지역이었는데, 안나푸르나 라운드도 아니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도 아니고, 그저 푼힐 전망대까지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짧은 여정도 불치의 히말라야병(病)에 걸리기에 충분했다.
첫 만남의 짜릿했던 경험 이후로 나는 한동안 거의 매년 겨울을 히말라야에서 보냈다. 때로는 가족과, 때로는 산행 친구들과, 때로는 원정대원들과 히말라야의 이 계곡 저 능선을 정신없이 쏘다닌 것이다. 광대한 대자연의 장엄미.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히말라야 트레킹의 매력이다. 엄청난 스케일의 파노라마 앞에 서면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고, 그렇게 작아지다가 끝내 소멸해버려도 좋으리라는 야릇한 안도감마저 든다. 현대문명의 여러 이기(利器)로부터 멀어져 단순한 육체적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역시 또 다른 매력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 걷고, 배고프면 먹고, 해가 지기 전에 걸음을 멈춘 다음, 행복한 피로감을 즐기며 잠 속으로 빠져든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풍부한 산행 경험과 대단한 체력을 갖춰야만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입견 내지 오해에 불과하다. 히말라야 지역은 포터 시스템이 매우 잘돼 있다. 그들이 짐을 옮겨다준다. 당신은 그저 작은 배낭에 당일 필요한 물건들만 챙겨 룰루랄라 걸으면 그만이다. 서울 근교의 작은 산에 오를 때보다 배낭은 오히려 더 가볍다. 간식이나 물 따위야 배낭에 넣고 가겠지만 본격적인 식사에 필요한 음식이나 조리기구 등은 모두 포터들이 짊어지고 가기 때문이다. 덕분에 중년을 넘어선 가정주부들은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서면 모두들 입을 벌리고 찬탄을 금치 못한다. 삼시 세끼 남이 차려준 밥을 먹고 설거지를 안 해도 되니까.
히말라야 트레킹의 식사 문제에 대해 한마디. 서양 트레커들은 대체로 현지 음식을 먹는다. 젊은 트레커들은 아예 집채만 한 배낭에 자신이 먹을 것을 모두 싸들고 오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시니어에게 권할 방법은 못된다. 현지 음식을 먹는 것도 한두 번이다. 트레킹 기간이 일주일 이하라면 또 모르겠다. 보름 혹은 한 달 가까이 지속되면, 코리언 쿡(cook)을 고용하는 게 낫다. 코리언 쿡은 한국 요리에 능한 현지인(네팔, 인도, 티베트, 무스탕 등)을 말한다. 특히 네팔 지역에는 수도 없이 오고 간 한국 원정대들 덕분에 음식 솜씨가 매우 뛰어난 코리언 쿡이 많다.
◇구름공장 ‘마나슬루’ 베이스캠프 트레킹
히말라야 트레킹의 시그니처 코스는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다. 두 코스에는 편의시설(숙박시설이나 식당 등)이 잘 발달돼 있어 불편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어찌 보면 트레킹 코스라기보다는 관광지에 가깝다. 베테랑급 트레커는 더 이상 가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초보 트레커라면 일단 이곳부터 졸업(?)하는 게 좋다. 그렇게 해서 일단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해 감을 잡고 나면 이제 무한한 코스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며 당신을 끊임없이 유혹할 것이다.
내가 다녀온 곳들 중에서 추천하라면 ‘마나슬루’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꼽겠다. 이 코스의 최고 매력은 단연 부디 간다키(Budhi Gandaki)다. 부디 간다키는 마나슬루(Manaslu, 8163m)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인데, 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좁고 계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넓다. 나는 해발 4000m가 넘는 곳에서 그토록 유장하게 흐르는 물줄기를 본 적이 없다. 단언컨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본 가장 아름다운 강이다. 마나슬루를 ‘구름공장’(Cloud Factory)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름다운 첨봉(尖峰)에서 끊임없이 구름들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야영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칸첸중가(Kan chenjunga, 8603m)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권한다. 이곳에는 편의시설이 전혀 없다. 있는 것이라곤 희미한 옛길의 자취와 밤마다 해일처럼 쏟아지는 별빛뿐. 덕분에 매일 밤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해야 한다. 코스도 제법 길어 거의 3주 이상 걸린다. 히말라야 트레킹 루트들 중 가장 때 묻지 않은 코스는 아마 이곳일 터. 그래서 칸첸중가 트레킹에는 짊어지고 갈 짐이 많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에도 네팔 혹은 인도 출신의 포터들이 그 일을 대신해줄 것이다. 당신은 지갑을 열어 그들에게 합당한 삯만 지불하면 된다.
심산(沈山)
작가, 심산스쿨 대표, 코오롱등산학교·한국등산학교 강사. 산악 관련 저서로 ‘마운틴 오디세이-심산의 알피니스트 열전’, ‘마운틴 오디세이-심산의 산악문학 탐사기’, ‘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 등이 있다. 대한산악연맹 대한민국산악상 산악문화상을 수상했다.
여행은 떠나는 것이다. 자기에서, 익숙함에서, 나의 성(城)에서. 이것이 여행의 첫 번째 의미다. 이런 떠남의 관성을 가지고 있는 여행은 나에게 세상의 숨결을 들려준다. 그래서 여행은 내 삶의 보물지도다.
여행에서 가끔 마주치는 어둡고 그늘진 자리는 그대로인 채로 그 자리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을 때 아름다운 곳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그늘과 친밀해져야 자아에 더 익숙해지고, 더 강해진다. 우리 근대사에서 수탈의 아픈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도시 목포가 그렇다.
목포는 고즈넉하면서도 생의 치열함과 남도의 향기가 섞이지 않고 각각 공존하는 건강한 샐러드 같은 도시다.
유달산에서 본 굽이진 영산강에서는 망국의 한을 가슴에 묻은 채 바람에 펄럭이는 돛과 노 젖는 소리에 장단 맞춰 사공이 부르는 뱃노래 ‘목포의 눈물’이 들려온다. 구슬픈 가락의 리듬이 애잔하고 참 서럽다.
유달산 주변으로 역사의 어둠이 남아있는 곳들이 있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
목포 최초의 서구적 근대 건축물로 1900년 일본 영사관으로 지어져 광복 이후 관공서, 도서관, 문화관으로 운영되어 오다가 현재는 전시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영산로 29번길 6
◇ 목포근대역사관 2관
1920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으로 문을 연 착취의 최첨병 역할을 하던 곳이다. 현재는 일제 강점기 사회상을 보여주는 전시장이다. 이곳은 바다를 매립한 지역으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주 거주지였다. 주변에 아직 일본식 가옥 형태의 주택들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목포시 번화로 18
◇방공호 대피 시설
목포근대역사관 1관 뒤편에 있는 당시 미군의 공습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방공호. 동굴 안에는 당시 징용으로 공사에 동원되어 수탈당하는 모습을 인형으로 전시해 놓았다. 지난 시절 아픔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는 생채기다.
해지는 풍경을 좋아한 어린왕자는 슬플 때마다 해지는 광경을 보기 위해 하루에 마흔네 번이나 해지는 구경을 갔다. 유달산 주변에서 느꼈던 아픔이 하찮게 여겨질 정도의 주황빛 노을이 목포에도 있다. 바다와 섬이 만나는 선에 떨어지는 태양은 아픔을 더 큰 슬픔으로 치유해주는 명의다.
바다가 보이는 해변공원은 목포의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행복 바이러스의 진원지다. 평화 광장에는 포토존 ‘LOVE GATE’가 앙증맞은 모습으로 사랑하는 연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 앞 잔잔한 바다 위 워터 스크린에서는 겨울철 과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세계 최대의 부유식 바다 분수와 음악, 레이저 빛이 어우러진 초대형 해상 음악 분수쇼가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276대의 분사용 노즐과 96대의 분사용 펌프가 작동하여 70M 높이까지 분수를 쏘아 올린다. 뿐만 아니라 관람객과 함께하는 사연소개, 프로포즈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여행자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준다.
해안을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걷다 보면 ‘천연기념물 500호’인 갓바위를 만날 수 있다. ‘두 사람이 갓을 쓰고 서 있는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에는 배를 타고 나가야만 볼 수 있었는데, 걸어가서도 볼 수 있도록 보행교를 바다 위에 설치해 놓았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세 가지 종류의 각기 다른 결을 가진 공간이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생의 공간, 지나온 시간을 증언해주는 치유의 공간,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창조의 공간이다. 목포의 미래를 위한 공간은 해안 길을 따라 조성돼있다.
◇ 국립 해양유물 전시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바다 속 수중문화유산을 발굴하여 전시한 곳이다. 해양문화체험 등 종합적인 해양문화전시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무료관람이며, 매주 월요일이 휴관일이다.
제1전시실: 서해와 남해에서 발굴된 유물이 전시되어 고려시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제2전시실: 중국 무역선(신안선)과 동아시아 해상교역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제3전시실: 어촌 민속을 중심으로 전시
제4전시실: 한국의 전통 배를 주제로 한 배 전시
◇ 목포자연사 박물관
7개 전시실을 갖춘 지구의 자연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전시관 앞 공원이 예쁘게 조성되어 있어 각 계절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지친 몸을 달랠 수 있다. 여기의 입장권으로 옆에 있는 문예역사관, 생활도자관 전체의 관람이 가능하다.
아이들과 동행하는 여행이라면 이곳 문화의 거리에서 하루를 보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추천 맛 집
해빔
해변공원 길 건너편에 해초비빔밥이 있다. 이곳에서 멍게해초 비빔밥, 낚지해초비빔밥 등 각종 해초비빔밥을 맛볼 수 있다. 맛의 깔끔함과 해초의 싱싱함이 그만인 곳이다. 목표시 미항로 83
돌집 식당
누구나 한번쯤은 남도식당의 푸짐한 반찬과 인심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근래에는 남도 식당들의 음식도 바닷가 특유의 짠맛이 많이 순화되어 누구의 입맛에나 잘 맞는 편이다. 건어물거리와 종합수산시장 근처에 있는 목포식 백반집이다. 남도식당의 문화와 음식이 가진 장점을 경험할 수 있다. 목포시 복만동 2-38
스무 해가 훌쩍 넘어서 다시 온 파리에 낯섦이 기다려주어 다행이다. 그러나 파리는 이전에 보았던 것처럼 수백 년 된 건물에 거뭇하게 묻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센강은 여전히 느리게 흐르고 있었고 퐁네프 다리도 더 깨끗하거나 새롭게 단장되지도 않았다. 센강 양쪽으로 오래된 옛 건물들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산천은 의구하되 나만 바뀌어 왔다.
김영하 작가의 글에 “한 번 간 곳을 또 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걸 볼 수 있어서가 아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오는 '나'만 바뀌어있다는 것, 내가 늙어간다는 것, 그런 달콤한 멜랑콜리에 젖어 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시 가는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조라는 뜻일 것이다."라고 김화영 선생님이 사석에서 말했다며 덧붙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십 년 세월을 훌쩍 넘겨 찾아와 늙어가는 내가 느릿느릿 걸으며 그런 달콤한 멜랑콜리에 젖어보는 건가. 어쨌든 다시 찾은 여행지의 맛을 느껴본다. 다만 그 옛날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제외했다. 에펠탑은 강 건너 빌딩 사이로 멀리서 탑 끄트머리만 힐끗 쳐다보았다. 샹젤리제 거리나 루브르 박물관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센 강 변을 따라 노트르담 성당 쪽으로 걸었다. BC 2세기경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고 파리시의 기원이 된 센 강의 시테(Cite) 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 그 옛날 찬송 미사가 울려 퍼지던 노트르담 성당을 바라만 본다. 이전엔 알아듣지는 못해도 그들처럼 기도하고 오르간 연주와 장엄한 노래를 들으며 예배에 함께 참여했었다. 높은 천정까지 울리는 오르간 연주와 신부님의 기도소가 온몸을 휩싸던 감동의 시간, 순박한 콰지모도가 치는 듯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던 종탑, 에스메랄다의 물 한 모금 얻어 마시듯 성당의 성스러움을 온몸으로 받았던 그 옛날이었다.
흐린 하늘에 바람이 불고 간간이 빗방울이 흩뿌린다. 비를 피해 지하철역으로 얼른 뛰어들어갔다. 이곳 사람들은 비가 오거나 말거나 걷는 속도는 여전하다. 도무지 비를 피할 생각이 없는 모습이다. 일상의 자연 속에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눈과 비도 함께 하듯.
노트르담 역에서 오르세 역까지는 10여 분이다. 역에서 나와 미술관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이 같은 방향으로 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길가 강변의 가게에서 머플러를 하나 사서 둘렀다. 한결 온기를 준다.
오르세 미술관이 먼저 나타난다. 역시 예상한 대로 입장권을 사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빗속에 길게 이어지고 있다. 저 행렬에 서서 보낼 시간이 없다. 애초에 두 개의 미술관 중에 오랑주리 미술관에 갈 생각이었다. 클로드 모네의 필생 역작인 '수련 연작'을 다시 볼 생각이다.
이날은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의 수련과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만 시간을 집중하기로 했다. 오르세 미술관은 오르세 역사(驛舍)를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곳이다. 규모도 크고 볼거리도 엄청나서 한나절을 다 보내야 한다. 그 옛날 그렇게 다리 아프도록 실컷 보았던 오르세 미술관이다.
오르세 미술관을 그냥 지나치고 사랑의 자물쇠가 빽빽이 걸려있는 다리를 건너 조금 더 가면 오랑주리 미술관이 있다. 근처에 다다르면서 익숙함의 안도가 생긴다. 그래, 여기쯤에서 잠깐 앉아있었지. 오래전 엄청 추웠었던 공원은 그대로군... 김영하 작가의 글에서처럼 나만 변해서 다시 하는 여행을 맛본다. 기분이 촉촉하다.
시간이란 게 참 별거 아니다. 스물 몇 해 전 꽁꽁 손이 얼던 겨울 속의 파리를 기억하는 것처럼 이제는 이렇게 촉촉했던 파리를 또 기억하게 되었다.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을 향하는 길의 튈르리 정원은 오래된 정원의 멋이 물씬하다. 튈르리 궁전 정원 별채의 자연광이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의 수련 연작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 천정의 빛과 자연광이 날씨에 따라 또는 일출과 일몰에 따라 환상적이다가 몽환적이다가 하며 최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이다.
흐린 날에 찾아간 모네의 대작들은 조용히 그 자리에서 수련의 멋을 보여준다. 오직 자연의 원초적인 빛을 찾아 그의 영혼을 불어넣은 수련 연작이 갤러리 내부에 가득 차 있다. 모네의 메시지가 무엇일지 생각하며 가슴 벅차게 그의 예술혼을 흐뭇하게 느껴보는 시간이다. 모네의 방에서는 그 날의 자연광에 따라서 수련 연작은 언제든 다른 그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여행자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1차 세계 대전의 종결을 기념하여 모네가 작품을 기증하면서 요청한 조건이 있었다.
1. 작품을 시민에게 공개할 것
2. 장식이 없는 하얀 공간을 통해 전시실로 입장할 수 있도록 할 것
3. 자연광 아래에서 감상하게 할 것.
지하로 내려가면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다닥다닥 전시되어 있다. 고풍스러운 액자도 눈길을 끈다. 모네, 마네, 모딜리아니, 피카소, 르누아르, 루소, 마티스, 위트릴로, 시슬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작품들의 맛을 실컷 느껴볼 수 있었다.
더 꼼꼼히 그림을 즐기기 위해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그리고 가이드 투어를 이용해서 작품 이해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을 들러볼 일이다. 그래야만 오랑주리 미술관의 모네 작품과 연결해서 완전한 감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나와 눈을 들어보면 저편으로 콩코드 광장도 보인다. 파리의 동선은 생각보다 길거나 힘들지 않다. 얼마든지 파리를 느끼며 걷기 좋다. 이날처럼 비 오는 날의 여행은 감성지수를 자극한다.
미술관을 벗어나니 센강엔 파리지엔느들이 하나둘 나와 걷고 있다. 바람 불거나 비가 오거나 햇살 좋은 어느 날 오후 미술관 정원을 거닐며 가끔 센 강 변을 거닐며 그렇게 여행자가 되는 파리 사람들, 센 강을 배경으로 여행자처럼 사진을 찍는다. 내가 사는 곳에서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감성은 축복이다. 일상 속에서 즐기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발걸음은 풍경이다. 나는 어떤 여행 중인가.
여행이 끝났어요. 즐거움이 남아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제는 내가 파리와 모네의 정원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에펠탑은 어땠니?' 하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답니다.
'에펠탑은 볼 시간이 없었어.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을 봐야 했거든....'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모네의정원에서 중에서~
겨울에 만나는 썸머 크리스마스, 상상만 해도 마음에 낭만이 밀려들어 오지 않는가. 지난겨울에 하와이를 다녀왔다. 전 세계를 펜더믹으로 몰아넣은 코로나19가 퍼지기 전이다. 12월의 썸머 크리스마스, 푸른 잎사귀들 사이로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거렸다. 반바지에 티셔츠 하나를 걸치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을 허밍 하듯이 따라 부르는 이들은 삶에 여유로운 순간을 선물하려는 하와이 여행자다.
발길 닿는 대로 유유자적, 오하우(Oahu)
일정이 길지 않아 오하우 섬에만 머물렀다. 특별히 하와이다운 관광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해가 뜰 무렵에는 와이키키 비치를 산책하였고, 차를 타고 가다 북적거리는 마을을 만나면 멈춰서 크리스마스 축하 공연을 관람하거나 별생각 없이 상점을 기웃거리며 하릴없이 걸었다.
산 능선에 자리한 집들이 근사해 보여 구불거리는 외길을 타고 올라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왜 이곳에 이런 집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는지 이해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어 화들짝 놀랄 정도로 화려한 붉은 노을을 보겠다고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는 곳을 찾아서 이리저리 골목길을 달렸다.
계속 시야를 가리는 건물들에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려 주택가 사이를 걸었다. 한 컷을 찍고 서있으니 오른쪽 집에서 사람이 나와서는 너무나 아름답지 않냐며 말을 건넸다. 화산 폭발의 흔적, 솟아오른 산과 해안 풍경, 도시와 여행자들, 낯선 이와 함께 나누었던 짧은 감동의 순간까지 소소하나 벅차고 느릿한 여유가 묻어나는 여정이었다.
하나우마 베이(Hanauma Bay)에서 생애 최초 스노클링
하나우마 베이는 파도가 잔잔하고 에메랄드빛 물색이 아름다운 해안이다. 반원 형태로 해안선이 안으로 쑥 들어간 형태다. 하나는 ‘만’을, 우마는 ‘곡선’을 뜻하니 이름 그대로다. 해변을 여는 시간은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므로 비교적 한산하게 스노클링을 하기 원한다면 이른 아침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오후 늦게 가도 사람이 많이 줄어 한가해지지만 저녁 6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을 듯하다. 매주 화요일에는 해안이 문을 걸어 잠근다.
자연보호구역이자 해양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답게 반드시 해양생태계 보전에 관한 비디오를 시청해야만 해안으로 내려갈 수 있다. 10분여 '호누(Honu)'라는 녹색 바다거북과 바다 생물들에 대한 영상을 보며 바닷속 탐험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한편으론 산호초를 밟지 않도록 주의하라는데 수영을 잘 못해 괜찮을까 싶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비디오 시청 후 해안으로 걸어서 내려갔다. 스노클링 장비(스노클링 마스크, 오리발)와 아쿠아 슈즈를 미리 챙겨 왔다. 해안에서 대여도 가능하다. 처음에는 겁이 났으나 어느새 바닷물과 친해지고 물속 열대어와 눈 맞춤하는 특별한 경험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스노클링의 성지답게 수중 도시인 산호초 군락과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가득하다. 운 좋으면 바다거북을 만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보지는 못하였다. 산호초 사이 맑은 바닷물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를 뒤쫓았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숨바꼭질하듯 열대어와 함께 헤엄쳤던 바닷속이 그립다.
돌탑을 올리고 다시 또 올리던 청년
하나우마 베이에서 나와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이 나오면 멈췄다. 몰아치는 바람과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에 세차게 파도가 쳤다. 넘실대는 파도 물결에 두 개의 점이 박혀있다. 아득하기만 한 바다 위에 두 명이 보드 위에 엎드려서 팔을 저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망망대해를 두려움 없이 헤쳐 나가는 저들이 대단해 보였다.
다음에 차를 세운 곳이 마카푸 포인트다.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절벽 전망대로 마카푸는 ‘튀어나온 눈’이라는 의미이다. 절벽 아래 해안에는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절벽 위에 서니 시커먼 구름이 갑자기 밀려오더니 간간이 비까지 뿌렸다. 세찬 바람과 떨어지는 빗방울에 사람들이 차 안으로 후다닥 피신하였다.
카메라를 든 나와 한 명의 청년만이 절벽 위에 그대로 서서 비와 바람을 맞고 있었다. 나는 셔터를 누르기 바빴고 그는 돌탑을 쌓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납작한 돌을 쉽게 얹는 것이 아니라 날카롭게 날이 선 큰 돌과 작은 돌을 번갈아 탑을 쌓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올려놓으면 무너져 내렸다. 다시 올리고 무너지고를 반복하면서도 청년은 돌탑 쌓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을 몇 컷 찍었다. 한참을 머물다 자리를 떠날 때까지 그는 여전히 돌을 올리는 행위를 반복하였다. 그는 분명히 원하는 모양대로 돌탑을 쌓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소망에 대한 간절함이 옅어진다
하루가 지겹고 답답해질 때면 마카푸 포인트의 그 청년을 떠올린다. 돌탑을 쌓던 그가 품은 간절함의 크기를 가늠해 보며 앞으로 내가 이루고 싶은 소망의 크기를 생각한다. 마카푸 포인트의 그 청년은 소망이 버거워 멈추고 싶은 마음이 들지라도 멈춰 서지 말고 될 때까지 계속 나아가라고 말한다.
김용택 시인은 ‘봄날’이라는 시에서 “나 찾다가 / 텃밭에 /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 예쁜 여자랑 손잡고 / 섬진강 봄 물을 따라 /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라고 노래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상이 바뀐 이즈음, 책을 가까이하며 위로를 받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정갈하고 고즈넉한 책들의 고향, 종이의 고향에서 시집을 펼쳐 보고 흐드러진 벚꽃 사이로 봄맞이 산책을 떠나도 좋겠다.
‘종이의 고향’으로 떠나는 소박한 여행
파주출판도시는 책들의 고향이자 건축의 도시, 영화의 도시, 생태의 도시다. 출판인들이 모여 도시 건립을 위한 ‘위대한 계약’을 체결한 지 올해로 20년이 흘렀다. 이곳에는 출판사, 인쇄소, 영화사를 포함해 500여 개의 업체가 자리를 잡았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들부터 책방, 박물관, 북카페, 갤러리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다. 근거리에는 야트막한 심학산이 있고, 거리 곳곳에 아담한 벤치가 있어서 잠시 멈춰 쉬기에 좋다. 겨울에 갈대가 우거졌던 샛강 변은 지금 서서히 초록빛으로 변하고 있다. 운이 좋으면 얕은 강 위를 한가롭게 거니는 재두루미도 만날 수 있다.
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오다가 문발IC로 진입하면 오른쪽에 ‘출판도시의 심장부’라 불리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가 있다. 이곳은 건축물과 주변 환경의 조화가 돋보이는 건물로 2004년 제14회 김수근 건축문화상을 받았다. 박물관, 강연장, 숙박 시설이 있는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으로 인문학 강연, 작가와의 만남, 예술작품 전시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2014년 이곳 1층에 개관한 ‘지혜의숲’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동의 서재이자 독서공간이다. 여기에 있는 책들은 모두 개인과 출판사에서 기증받은 것으로, 15만여 권의 책들이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내부에는 카페도 있어 커피를 한잔 마시며 독서삼매경에 빠질 수도 있다. 안쪽에는 ‘북소리’라는 할인서점이 있고, 2층에는 헌책방 ‘보물섬’이, 3층에는 출판산업체험센터가 있다.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 책에 둘러싸여 느긋하게 하루를 지내면 어떨까.
바로 옆 ‘지혜의숲3’ 1층도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기증한 책들이 다양한 형태의 서가에 들어차 있고, 좌석들은 편안한 형태로 꾸몄다. 2층부터 5층은 게스트하우스 ‘지지향紙之鄕’이다. ‘종이의 고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곳 객실은 TV가 없는 대신 책들이 비치돼 있다. 79개의 객실 중 박경리, 박완서, 김훈 등 작가들의 전집이나 소장품으로 꾸민 ‘작가의 방’과 출판사 책으로 구성한 ‘출판사의 방’도 있다. 객실 크기는 9평 정도로 TV없는 하룻밤을 보내기에 적당하다.
건물 왼편의 응칠교 근처에는 전북 정읍에서 ‘김동수 씨 작은댁’의 사랑채를 옮겨 세운 ‘서호정사’가 있다. 열화당 이기웅 대표가 쓴 안내문을 보면, 1971년 중요민속자료 제26호로 지정된 ‘정읍 김동수 가옥’은 김동수의 육대 조상 김명관이 1784년경에 지었다. 김명관의 둘째 아들 김상하가 1834년에 김동수 씨 작은댁을 십여 년에 걸려 지었으니, 현재 186년의 역사를 지닌 고가다. 출판도시에 하나뿐인 이 건물에는 한옥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도시를 지향한다는 출판도시의 뜻이 담겨있다. 5월이면 한옥 담장을 따라 흰 꽃 등나무에 향긋한 꽃이 주렁주렁 피어날 것이다. 국어학자이자 시인인 일석 이희승 선생이 아끼던 50년 수령의 나무를 옮겨 심었다.
지혜의숲 뒤편에 놓여있는 야외 벤치에 앉아 갈대 샛강을 구경하거나, 건너편 책방거리까지 갈 수 있도록 꾸며놓은 ‘김소월 시의 다리’를 산책하노라면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이 얼굴을 간질인다. 진달래꽃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야간조명 덕분에 밤에는 더 낭만적이다. 출판도시에서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부터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책 만들기’까지, 책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열화당책박물관, 미메시스아트뮤지엄,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등을 해설사와 함께 투어할 수 있는 특별한 산책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건물 정면 맞은편에 있는 피노키오뮤지엄과 카페 헤세도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한가롭고 여유 있게 책과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소박한 여행을 떠나보자.
주소: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구좌읍 세화리 바닷가를 걷는데 ‘호오이 호오이’ 휘파람 같은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 하기엔 기이했다. 물고기가 그런 소리를 낼 리는 없고. 바닷가에 새만 있으니 새소리려니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그 소리가 해녀의 숨비소리임을 알게 됐다. ‘호오이’ 소리를 내며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민 해녀를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잠수하는 여자(潛女) 해녀
제주 해녀(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는 1~2분간 숨을 참으며 수심 10m까지 잠수해 소라, 전복, 성게, 해삼 등의 해산물을 딴다. 숨 쉴 때는 물 위로 떠올라 재빨리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이때 ‘호오이’ 숨비소리가 난다. 해녀는 이 과정을 반복하며 여름철에는 하루 6~7시간, 겨울철에는 하루 4~5시간 물질을 한다. 산소마스크도 없이 말이다. 해녀가 잠수에 특화된 신체를 갖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반복된 물질과 훈련을 통한 결과다.
제주 해녀의 물질 기술은 바닷가 마을에 사는 소녀들이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눈치껏 배우고, 훗날 딸에게 가르치며 대를 이어 전승됐다. 해녀는 물질 능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 상군해녀가 대장 해녀이며, 해녀 공동체를 이끈다.
오랜 기간 물질을 한 상군해녀는 채취 기술이 뛰어나고, 바닷속 해산물 서식처와 조류와 바람에 관한 지식이 해박하다. 해녀들이 물질할 수 있는 날씨인지 아닌지를 일기예보보다 상군해녀의 말을 듣고 판단할 정도라고 한다. 제주 해녀의 이런 독창적인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2016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해녀가 다니던 숨비소리길
해녀들은 물질뿐만 아니라 밭일도 하며 생계를 꾸린다. 그녀들이 물질하러, 밭일하러, 부지런히 누비던 길을 스토리로 엮은 것이 ‘숨비소리길’이다. 제주올레처럼 바닷가도 지나고, 마을 골목길도 지나고, 밭도 지난다. 이 길을 걸으며 고된 해녀의 삶을 짐작해보고, 봄기운 무르익은 들판과 비췻빛 바다를 만끽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아쉬워 아껴 걸었더니 한나절이 훌쩍 지났다.
숨비소리길의 출발점인 해녀박물관은 제주 여행 필수 코스다. 제주 해녀의 역사·생활풍습·세시풍속·무속신앙·해녀 공동체 등의 자료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 해녀 항일운동사까지 정리돼 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바다 전망 포인트이기도 하다. 3층 전망대에 오르자 비현실적인 빛을 뽐내는 세화 바다와 세화리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해녀박물관을 둘러보고, 뜰에 있는 해녀상 뒤쪽으로 가, 숨비소리길 첫 이정표를 찾았다. 이정표가 갈림길마다 세워져 있어, 세상없는 길치이지만 걷는 내내 두렵지 않았다. 해녀박물관에서 마을길로 접어들어 세화 축구장을 지나자, 야트막한 언덕 아래 자리한 ‘삼신당 여씨할망당’이 보였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돌집 안에 여씨할망신위를 모셔두었다. 제주에서는 할망당, 해신당을 흔히 볼 수 있다. 할망당을 뒤로하고 면수동마을회관 앞을 지날 무렵, 아름드리 팽나무, 네 그루에 눈길이 갔다. 왠지 인사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았다. 제주 사람들은 팽나무를 ‘폭낭’이라고 부른다. 여름 태풍과 겨울 찬바람에도 견디는 폭낭은 마을 쉼터 역할을 한다.
제주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밭담’
면수동마을회관 사거리에서 하도리 별방진에 이르는 약 2km 구간에는 무, 당근, 보리 등을 심어놓은 밭이 끝없이 이어졌다. 잔잔한 바다처럼 보였다. 세로선보다 가로선이 많은 풍경에 맘이 평화로워졌다. 파스텔 빛 바다도, 진초록 보리밭도, 노란 유채밭도, 검은 현무암 밭담도 모두 나지막이 가로누워 있다. 이 구간이 ‘밭담길’이다.
돌이 많은 제주도에서는 고려시대 때부터 돌을 쌓아 밭 경계로 삼았는데, 이를 밭담이라고 한다. 밭담을 쌓은 뒤로 토지 분쟁이 사라지고, 가축이 농작물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 줄었으며, 농경지 면적이 늘어 제주 농업 발달에 기여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밭담에도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밭담은 제주도의 전통문화 산물로 평가받아, 국가중요농업유산과 FAO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세화리에서 하도리로 이어지는 이 밭담길은 바다를 오가며 생계를 꾸몄던 해녀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평상시에는 밭일이나 집안일을 하다가 물때가 되면 바다에 나가 물질을 했다. 알고 보면 고된 물질도 부업일 뿐이었다.
별방진 품에 안긴 하도리
밭담길을 지나 하도리 골목길을 지나면 별방진이 나온다. 별방진은 마을 사람들이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다. 하도리의 옛 지명인 별방에서 이름을 땄다. 성의 총길이는 1008m, 높이는 3.5m.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타원형이다. 별방진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별방진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하도리 마을이, 오른쪽에는 자그마한 하도리 포구가 마주보고 있다. 별방진 안에 초록, 빨강, 파랑 지붕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풍경이 동화 속 그림 같다. 하도리 마을이 유난히 평온해 보이는 건 태풍도 왜적도 다 막아줄 것 같은 별방진이 있어서가 아닐까.
별방진 이후로는 줄곧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제주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닷가에 그물처럼 돌을 둥그렇게 쌓아놓은 원담과 해녀들이 물질하기 전에 옷을 갈아입던 불턱들을 차례로 만났다. 제주 해안에는 마을마다 서너 개의 불턱이 있다. 구좌읍에 해녀들이 특히 많이 살고 있어, 숨비소리길 구간에서만 서동 불턱, 보시코지 불턱, 모진다리 불턱, 생이덕 불턱 등을 볼 수 있었다. 1970년대 초 고무 잠수복이 보급되고, 1985년 전후로 현대식 탈의장이 설치되면서 불턱의 역할은 줄었다.
비췻빛 바다가 매력적인 세화리
세화리 바닷가에 이르자 해녀와 어부들이 물질 작업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갯것할망당’이 눈에 띄었다. 제주 해녀들은 물질하기 전에 해신당에서 용왕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 음력 1월 초부터 3월 초까지, 약 두 달 동안 34개 어촌계에서 해녀굿을 봉행한다. 해녀굿 중 바람신인 영등신을 맞이하고 보내주는 영등굿을 가장 성대하게 치른다.
갯것할망당 옆에는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바닷가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를 가둬놓은 ‘도구리통’이 있다. 제주 사람들이 용천수 둘레에 네모난 담을 쌓고, 식수를 뜨거나 빨래를 하던 곳이다. 수도 시설이 잘돼 있는 지금도 물통에서 채소를 씻는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도구리통을 지나면 곧 해녀박물관이다. 이미 둘러봤으므로 세화해변까지 이어 걸었다. 제주도에서 물빛 좋기로 소문난 곳이 협재, 금릉, 함덕, 우도 등인데, 요즘은 세화를 추가해 손꼽는다. 세화 바다는 협재나 함덕처럼 번화하지도 않고,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감성 카페와 책방, 소품 가게들이 고요히 자리한 사랑스러운 곳이다.
◇ 주변 명소 & 맛집 ◇
세화민속오일장
세화해변 끄트머리에 자리한 세화민속오일장은 날짜 끝자리에 ‘0’ 또는 ‘5’가 붙는 날 장이 선다. 규모는 작지만 채소, 곡식, 수산물, 젓갈, 생활용품, 간식거리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다 판다. 낭만적인 뷰는 덤이다. 시장 안에서도 세화 바다가 보인다. 이곳 장터는 1930년대 초 하도리·종달리·세화리·연평리·시흥리 등지의 해녀 1000여 명이 항일운동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매주 일요일에는 시장 앞에서 플리마켓 벨롱장이 열린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1500-44
카페록록
하도리 바닷가에는 전망 좋은 카페가 늘어서 있다. 이 중 카페록록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시원한 바다와 돌담을 배경으로 이국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실내 곳곳에 둔 초록 식물이 온실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인기 포인트. 푸딩처럼 말캉한 에그타르트가 별미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서문길 41 / 10:30~18:30 /카페라테 6000원
연미정
세화리에는 전복돌솥밥으로 유명한 식당이 두 곳 있다. 연미정과 명진전복이 그 주인공. 명진전복은 TV에 출연한 덕에 늘 대기 줄이 길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명진전복을, 가성비를 따진다면 연미정을 선택해볼 것. 전복돌솥밥을 주문하면 1인분이라도 작은 고등어 한 마리와 약간의 활어회가 따라 나온다. 반찬 맛은 평범한데, 전복 내장까지 넣어 지은 돌솥밥이 쫀득하고 구수하다. 제주시 구좌읍 세평항로 14 /09:00~21:30 매월 첫째, 셋째주 수요일 휴무 /전복돌솥밥 1만5000원
햇볕이 쨍쨍 쪼이는 날 어느 날이고 제주도 성산포에 가거든 ‘그리운 바다 성산포’라는 시집을 가지고 가라 한다.
‘아침 여섯 시 어느 동쪽에도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
‘이 시집의 고향은 성산포랍니다.’ 이생진 시인의 시집을 들고 볼가를 스치듯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을 벗 삼아 마음의 고향을 찾듯 성산포로 간다.
성산포는 제주를 수 십 차례 오고 가면서 끝없이 찾아드는 해안가다.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드라마틱한 자연의 변화를 펼쳐 보이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곳에 가면 마음에 위안을 얻는 때문이다. 유난히 현실이 버겁다 싶으면 해안가에 앉아서 몇 시간을 머물다 오기도 하고 바쁜 일정에 짧은 시간밖에 낼 수 없어도 기어코 들러보아야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바닷가 화산 폭발에 의해 생성된 수성화산인 성산일출봉은 일출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99개의 거대한 기암을 호위병처럼 거느린 동쪽 끝 태양이 떠오르는 자연이 만든 성의 모습은 정상에 올라야 보인다. 한 번쯤은 새벽잠을 깨워 해맞이를 해보기를 추천한다. 기기묘묘한 거석들과 수평선 너머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 빙 둘러 천연 요새를 구축하고 있는 성산일출봉에 오르면 자연의 경이로움 아래 태양과 바다 그리고 제주의 모체인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절이나 시각에 따라 오르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
성산포를 온전히 느끼길 원하고, 위안을 얻고자 한다면 해안을 따라 느릿하게 걸으며 발자국을 남겨보자. 걷기의 시작은 이생진 시비거리다. 성산일출봉이 바라다 보이는 ‘시의 바다’에 멈춰 이생진 님의 시를 읽는다. 성산포를 유난히 사랑하는 시인, 이생진은 1978년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펴냈다. 성산포와 해, 바다 그리고 제주 사람들을 사랑하였던 시인이 그려놓은 시의 길을 따라 봄날을 걷는다. 가을에는 갯쑥부쟁이와 해국이 해안절벽을 따라 피어 장관을 이룬다.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이는 잔디밭 길은 15년 전에는 참 한적한 곳이었다. 지금은 올레를 걷는 이나 성산일출봉의 새로운 모습을 보려는 이들로 꽤 북적거린다.
성산일출봉에 가까이 다가갔다 수마포해안 쪽으로 방향을 틀어 광치기해안으로 방향을 잡는다. 광치기해안은 원래 터진목이었다. 파도가 실어 나른 모래가 쌓이고 쌓여 육지와 가까워졌고 거기에 인간의 힘을 더하여 이어지게 되었다. 해안에서 바라보면 성산일출봉의 자태가 유난히 미끈하다.
마음이 유난히 울적할 때면 파도가 거센 해안가에 서보라. 광치기해안은 물때를 잘 맞춰서 썰물일 때 가는 것이 좋다. 물이 빠져 바다가 숨겨놓은 푸르른 암반지대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다. 숲 속 바위에 내려앉은 초록 이끼와 닮은 바다이끼가 돌빌레를 빼곡하게 덮고 있다. 바닥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물빛과 어우러져 가슴에 푸른 동심원을 그리듯 희망을 전한다. 살랑살랑 불어대는 봄바람은 파도를 어루만지고... 수평선 너머를 응시하는 여행자의 상념은 파도를 따라 밀려오고 밀려가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수 천 년이 켜켜이 쌓인 해안에 서면 시간과 공간이 멈추어 선 듯 신비롭다.
광치기해안이 끝나면 섭지코지가 시작된다. 섭지코지는 좁은 땅 이란 뜻을 지닌 ‘섭지’와 바닷가에 불쑥 튀어나온 땅(곶)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인 ‘코지’가 합쳐진 지역명이다. 낮은 풀로 뒤덮인 나지막한 오름 자락에서 풀을 뜯는 말들이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출렁이는 파도를 이불 삼아 성산일출봉이 누워있다. 길은 두 개로 갈리는데 왼쪽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초입에 있는 지역 해녀들이 운영하는 섭지해녀의 집은 겡이죽, 전복죽, 성게칼국수 등을 파는 음식점이다. 작은 게를 갈아 넣어 끓인 겡이죽이 별미다. 해녀의집에서 나와 해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불턱이 보인다. 제주의 해녀들은 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물에 들어가야 했고 이곳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서로를 다독였다. 불턱은 해녀들의 쉼 자리다.
굽이치는 해안선을 따라 파도가 부딪치는 길을 걸어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니 기암괴석과 등대가 있는 섭지코지의 진짜 코지가 나타난다. 등대에 올라 섭지코지의 매력을 한눈에 담은 후에 내쳐 드라마와 영화 촬영 장소였던 올인하우스까지 걸어간다. 현대적인 건물이 있어 분위기를 방해하는 느낌도 있지만 시커먼 바위 절벽 위의 데크를 따라 걷는 길은 충분히 이국적이다. 성산일출봉이 시야에 사라질 듯한 지점에서 걷기를 마무리한다.
이생진시비거리에서 시작한 성산포 걷기가 섭지코지 언덕에서 끝을 맺는다. 서 있는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성산일출봉은 그동안 습관적으로 떠올렸던 성산일출봉의 모습과는 다르다. 언덕과 모래사장을 걸으며 바다에 취했고 이생진 시인의 시구를 떠올렸다. 잠깐 다녀가는 여행자가 아닌 성산일출봉과 동행이 되어 걷는 길에서 답답한 봄날에 위안을 얻는다.
“방향을 꺾으니 갑자기 오른쪽으로 큰 틈새가 열리며 밝은 태양 아래 반짝이는 카즈베기의 만년설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산과 만년설은 어느새 우리 앞으로 와 조용히 우뚝 서 있었다. 그것은 다른 세계의 생물이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산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처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Knut Hamsun)이 자신의 소설에서 카즈베기 산과의 첫 만남을 표현한 문장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품은 산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압도적인 풍광의 카즈베기 산에 깃들어 있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에 3000년을 이곳의 바위에 묶여 고통 속에 지내야 했던 프로메테우스. 그의 어깨를 뒤에서 가만히 안아준 이는 코러스였다. 코러스처럼 진실의 따스한 울림통이 되고 싶은 염원을 안고 산 중간 게르게티 언덕의 ‘성 삼위일체(사메바) 성당’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랐다.
해발 1700m에는 작은 마을 ‘스테판츠민다’(Ste pantsminda)가 있다. 카즈베기 산을 비롯해 주변 트레킹 코스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곳이다. 여기서 출발해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까지 걸어가면
2시간 정도 걸린다. 반대편 능선에는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도로가 잘 닦여 있다. 하지만 편한 길보다는 아름다운 카즈베기의 숨결을 하나하나 느껴보고 싶었다.
가파른 능선으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에 맞춰 마치 윈드서핑을 타듯 하양, 노랑, 분홍색 야생화들이 춤을 추었다. 성당까지 펼쳐진 녹색 초원의 싱그러움은 꿈에 그리던 풍경이었다. 평범한 사람도 사진작가로 만들어주는 자연이었다. 어디를 찍어도 인생 최고 장면을 건질 수 있었다.
14세기에 지어진 사메바 성당은 해발 2170m 높이에서 카즈베기 산을 배경으로 웅장한 샤니(Shani) 산과 마주보며 소박하게 앉아 있었다. 그 자태가 너무 경건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렸다. 이곳의 풍경이 왜 조지아를 소개하는 사진에 많이 등장하는지 수긍이 갔다. 수많은 여행객이 그 사진을 보고 조지아를 찾는다고 한다.
신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곳
마음 한편으로 ‘왜 이렇게 높고 외딴곳에 성당을 지었을까?’ 하는 궁금함도 있었다. 하지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밤 숙소 테라스에서 올려다본 암청색 하늘과 흰머리를 이고 있는 카즈베기 산의 검은 실루엣, 그리고 성당의 숭고한 불빛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풍경에 답이 있었다. 성당의 불빛은 등대였다. 누구에게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진실의 희망이었다.
만년설이 덮여 있는 카즈베기 산 높이는 5047m. 조지아에서는 세 번째, 코카서스산맥에서는 일곱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조지아 사람들은 ‘얼음산’이라는 뜻을 지닌 ‘카즈베기’를 ‘하얀 신부’라고 부른다. 이 지역은 10월이면 눈이 오기 시작하고 1년의 절반 정도가 겨울이다. 마을에서 전망이 가장 좋다는 ‘룸스 호텔’ 테라스에서 일출을 맞이할 때도 여름이었지만 재킷을 걸쳐야 할 정도로 쌀쌀했다. 카즈베기 산의 일출은 벌겋게 물든 바위와 구름으로 시작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원했기에 아늑한 신의 세상을 버리고 참혹한 형극의 땅을 선택한 프로메테우스의 용기를 보는 것 같았다. 붉은 빛 용기는 제우스의 파란 하늘에 과감했다. 카즈베기 산은 대자연의 풍광 속에 신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조지아를 좋아하는 이유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야생화 천국
므츠헤타 혹은 트빌리시에서 출발해 스테판츠민다로 갈 때 이용하는 도로는 ‘조지아 군사도로’인데 ‘즈바리 패스’(Jvari Pass)라고 부른다. 계속해서 가면 러시아 블라디캅카스까지 이어진다. 주변국과의 물자 교류가 이 도로를 이용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트럭이 많이 다닌다. 때 묻지 않은 초원과 야생화 천국에 감동하면서 북캅카스 산맥으로 들어가는 이 도로에서 조지아 최고의 자연 경관을 만났다.
조지아의 알프스 ‘스바네티’
조지아에도 알프스의 스위스 같은 곳이 있다. 바로 ‘스바네티’(Svaneti)다. 이곳의 중심은 코카서스 산 중에서 가장 등반하기 힘든 ‘우슈바’(Ushba·4170m) 산이다. 스바네티의 베이스캠프인 ‘메스티아’(Mestia)까지는 승용차로 갈 수 있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슈굴리’(Ushguli) 마을로 가려면 반드시 사륜구동차가 필요하다. 메스티아에서 우슈굴리까지 데려다주는 영업용 차량을 이용해도 된다.
세계 장수마을로 소개된 메스티아는 해발 1500m에 위치한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동화 같은 산속 마을이다. 특히 탑 형태의 ‘코시키’(Koshiki)라는 가옥이 장관을 연출한다. ‘코시키’는 9~13세기에 만들어진 방어용 탑으로 1층엔 가축들이 살고, 2층은 주거용, 3층은 폭설과 침략자를 감시하고 방어하는 기능을 한다. 밖에서는 입구가 안 보이며, 사다리가 있어야 올라갈 수 있다.
메스티아에서 대부분 비포장인 길을 40여 km 더 깊숙이 들어가면 신이 허락해야만 올라갈 수 있는, 코카서스 산맥 서쪽 끝에 위치한 우슈굴리에 갈 수 있다. 해발 2100m에 옹기종기 있는 모여 있는 4개의 마을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하늘 아래 첫 마을이다. 마을에서 보이는 ‘슈카라’(Shkhara) 산의 높이는 5068m. 조지아에서는 가장 높고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높다. 설산 계곡을 바라보며 초록빛 초원을 걷는 이곳에서의 트레킹은 조지아 여행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마을 북쪽 끝에서 찰리디 빙하까지 왕복 20km를 걷는 코스와 슈카라 빙하 기슭까지 8km를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있다.
설산과 고풍스러운 가옥들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풍광에 넋을 빼앗긴 채 마을 뒷동산 풀밭에 한참 앉아 있었다. 길옆 한편에는 호텔을 짓는 공사장이 보였다. 앞으로 여행객들이 더 많아져도, 지금의 평화와 아름다움이 변함없기를 기원했다.
스테판츠민다 마을 트레킹 코스
조지아 여행의 장점 중 하나는 청정 자연에 흠뻑 빠져 트레킹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카즈베기국립공원은 야생화 천국. 낙엽수와 침엽수 숲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주타(Juta) 밸리 코스 카즈베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지역으로 샤니 산 줄기의 초원을 따라 연녹색 길을 걸을 수 있다. 스테판츠민다 광장에서 차로 데려다주고 다시 데리고 오는 차량 영업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호수까지 두세 시간 걷다가 돌아오는 길이 가장 인기다.
트루소(Truso) 밸리 코스 카즈베기 산을 오른편에 두고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다. 승용차는 ‘트루소 골짜기’(Truso Gorge)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사륜구동차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길이 험해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
즈바리 패스 따라 가볼 만한 곳
아나누리(Ananuri) 요새(교회) 에메랄드빛 호숫가에 위치해 산, 호수와 조화를 이루는 방어 성채.
구다우리(Gudauri) 스키장 해발 2100m에 위치해 있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코카서스 산맥의 멋진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구다우리 전망대(우정 전망대) 조지아와 러시아 조약 2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모자이크 타일의 기념비. 절반은 조지아, 나머지 절반은 러시아의 역사와 상징을 파노라마로 그려놓았다.
코비(Kobi) 리프트 트루소(Truso) 트레킹의 시작점이 되는 코비 마을 입구에 곤돌라 타는 곳이 있다. 카즈베기 산의 웅장함을 배경으로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