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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높은 곳에 있어 상하지 않으니 위태하나 망하지 않는다. 운기가 흉흉하여 얻어지는 것은 적다고 하나 구설시비가 발동하여도 큰 피해는 없을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 자중함이 길하다.
•84년생 : 수화 상극하니 괴로움은 있으나 이성 갈등은 해결된다.
•72년생 : 구설 시비만 잘 피하면 재물이 가히 뜻과 같다.
•60년생 : 바람이 조용하고 달이 밝으니 술이 있어 잔에 가득하도다.
•48년생 : 집안에 사람이 화합하니 화기가 문에 이른다.
◈ 소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호랑이 굴에 들어 가도 정신만 차리면 매사가 여의 할 것이니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 정신만 차리면 무슨일이든 이룬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망동은 삼가하라.
•85년생 : 동북에 출입하면 횡재수가 있으나 망동하면 날아간다.
•73년생 : 재물이 생기지 않으면 영화가 있다.
•61년생 : 눈앞에 보이는 괴로움은 참고 견디면 해결된다.
•49년생 : 하던 일은 힘차게 밀고 새로운 일은 뒤로 미루라.
◈ 호랑이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뜻을 얻은 땅에는 두 번 가지 못한다. 같은 일로 인해 소득은 없을 것이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기이다 어리석게 반복하지 말라.
•86년생 : 집에 있는 것이 길하니 나가지 마라.
•74년생 : 강변이나 해변은 불길하다. 산에 오름이 길하다.
•62년생 : 재운이 성하니 재록이 몸에 따른다. 이성은 조심하라.
•50년생 : 동원의 홍도가 저절로 꽃을 피운다. 새로운 이성운이다.
◈ 토끼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밭을 갈고 우물파서 시원한 물을 마시는 격이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있을 것이니 운기가 길하여 때가 온 것이다. 자만하지 말고 은인자중하라 대길하다.
•87년생 : 열심히 노력하면 얻어지는 게 많다.
•75년생 : 문서에 재물이 있고 문필에 명예가 있다.
•63년생 : 허욕을 발하지 않으면 일신이 편안하다.
•51년생 : 일신이 영귀하니 만인이 우러러 본다.
◈ 용띠 총운 (금전운 : 상 ,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하늘이 비를 내리니 만물이 새로움을 머금는다. 때맞추어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가 내리니 어이 기쁘지 않을 것인가 기다리던 호운이니 역량을 발휘할 기회이다.
•76년생 : 친구와 합세하면 가히 천금을 이루리라.
•64년생 : 귀인이 도와주나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구나.
•52년생 :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을 조심하라. 믿을 사람이 없다.
•40년생 : 집에 있으면 평탄하나 출타하면 손해본다.
◈ 뱀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오고가는 정이 두터우니 만사가 능통하도다. 인간관계에서 이익을 볼 것이니 평소에 대인관계를 원만히 한 사람에게는 호운을 맞을 것이다. 서로 돕고 이익이 증가한다.
•77년생 : 손님 다루기를 잘하면 재운이 열린다.
•65년생 : 낚시를 창파에 던지니 마침내 고기를 얻도다.
•53년생 : 관재를 이기면 문서로 재물이된다.
•41년생 : 신수가 태평하니 재물이 산같이 싸인다.
◈ 말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시비 구설을 미리 막으라. 곤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인간구설에 시비, 손재가 발동하니 일신이 곤고함에서 벋어 나기 힘들다. 망동을 삼가할 것이니 흉한 운을 사전에 막으라.
•78년생 : 도움받는 것 같으나 허송세월이다.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라.
•66년생 : 칠전팔기의 힘을 보여주면 누구든 나를 인정한다.
•54년생 : 재물이 생기지 않으면 자식에게 영화가 있다.
•42년생 : 막힘을 탓하지마라. 건강을 조심해야 한다.
◈ 양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처음에는 서글프나 점차 길성이 나타난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처음은 곤고하나 노력하는 가운데 후에 이룸이 클 것이니 기쁨을 맞보게 될 것이다.
•79년생 : 횡재수가 없으면 이름을 날려도 날린다.
•67년생 : 상하를 잘 중개 노력하면 상받을 일만 생긴다.
•55년생 : 사면초가가 이제야 희망이 약하게나마 보인다.
•43년생 : 자기 것 인줄 몰랐던 것을 잘만 챙기면 큰보물이 된다.
◈ 원숭이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먼산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내 것으로 보인다. 허망한 공상은 시간만 허비할뿐 감나무에서 감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말라.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있을 것이니 길함을 구하라.
•80년생 : 허망한 상상은 건강을 해친다. 재운은 높은 사람이 도운다.
•68년생 : 막중 대사를 앞에놓고 흔들림이 왠말이냐.
•56년생 : 잠안잔 듯 기분이 찌뿌둥하나 잊어버리면 뒤에 길하다.
•44년생 : 용돈 정도 생기는 운이나 날개를 다시 펴보는 운이다.
◈ 닭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뜻을 받들어 부모에게 효도하니 재수도 길하도다. 수신재가 치국 평천하라. 스스로 다스리고 가정을 돌보니 만사가 여의함과 같이 부모님께 효도하라. 길함이 머물게 될 것이다.
•81년생 : 부모에게 잘하면 금전운이 풀린다.
•69년생 : 미리 구설을 원천봉쇄하라. 손재수를 윗사람이 막아준다.
•57년생 : 말조심하고 본분을 지키니 손해가 없도다.
•45년생 : 감언이설로 형제 친구간에 구설이 통하니 조심하라.
◈ 개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매사에 막힘이 있으니 실력만 믿어서는 안되고 조력을 청하라. 자만은 일을 그르치게 하니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라. 그리하면 운기가 길하여 만사가 여의해 질 것이다.
•82년생 : 사람으로 다투는 일이 있으니 양보하라.
•70년생 : 손재가 없으면 처궁을 조심하라.
•58년생 : 북방을 가까이마라 손재가 두렵도다.
•46년생 : 길을 잃은 나그네가 이정표를 찾음이니 희망이 보인다.
◈ 돼지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모든 것이 막힌다. 내일을 기약하자. 오늘일은 오늘만 고민하고 해결하는데 혼신을 다하라. 내일은 길할 것이니 내일의 태양은 내일 떠오르는 것과 같다 하겠다.
•83년생 : 이상하게 일이 꼬이나 억지로 하려하면 잘 안된다.
•71년생 : 적막한 여관에서 공연히 탄식하는 격이라 걱정이 팔자다.
•59년생 : 상가에 가지마라. 음식 끝에 탄식한다.
•47년생 : 벗을 잃은 마음이라 공연히 의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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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하)
오늘의 일진은 아무리 바빠도 세끼 밥은 먹어야 넘어간다. 점검이 필요하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차근히 밟아 나가는 것이 길하다. 먼저 일신을 돌보는 것이 필요한 시기이다. 식사를 거르지 말라.
• 84년생 : 재수가 좋으니 사방에서 도와주니 주머니가 두둑해 진다.
• 72년생 : 귀인의 도움으로 일은 되는데 마음 갈등은 여전하다.
• 60년생 : 문서는 좋은 문서이나 내 것 만들기가 어렵구나.
• 48년생 : 재수도 길하여 문서 잡으면 큰 돈 된다.
◈ 소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함이 더 이상 문제를 크게 안 만든다. 자중하는데 길이 있을 것이니 경거망동은 피하길 바란다. 복은 스스로 들어 오니 궂이 나아가 맞을 필요가 없다.
• 85년생 : 전 과목을 다 잘 할 수는 없다. 한가지라도 충실하자.
• 73년생 : 걱정하던 일은 해소되나 연인이 나를 외면하니 괴롭다.
• 61년생 : 문서에 투자하라 횡재수가 도래한다. 일차는 하고 이차는 그만 두라.
• 49년생 : 밤에도 우는 새가 있으니 횡액이 두렵다.
◈ 호랑이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손재를 피할길이 없다. 감언이설을 조심하라. 남의 일로 나서다가 어렵게 된다. 망동은 금물이니 자중하는 가운데 길이 있을 것이다. 근신하는 하루이다.
• 86년생 : 너무 서두르면 아는 것도 힘들게 되니 마음을 차분하게 가져라.
• 74년생 : 힘든 일이라면 상대와 오해를 조심해야 일이 열리게 된다.
• 62년생 : 능수 능란한 재간을 가진 자가 나를 도우니 안 되는 일이 없다.
• 50년생 : 주석에서 말조심을 하라 공연히 미움받는 운이다.
◈ 토끼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현무가 문전에 이르니 교묘하고 요사스러운 일이 생긴다. 뜻하지 않은 일로 화를 당하게 되니 매사에 주의를 기울임이 필요하다. 자중하는 가운데 길함이 있으니 근신하라.
• 87년생 : 재수는 대길하나 나를 잘대하는 사람을 조심하라.
• 75년생 : 할 일이 태산 같으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 건강에 유의하라.
• 63년생 : 몸이 쇠약하니 헛것이 보이는 것같이 마음이 허하다.
• 51년생 : 먹을것 없는 제사에 절만 하는 격이니 투자는 불안하다.
◈ 용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당신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다 하는 마음은 모든 일을 그르친다. 나의 이익만을 앞세워 타에게 손실을 입힌다면 다시 되돌아와 나를 해할지 모른다. 자비하는 마음으로 널리 베풀 것이니 복이 그 안에 거한다.
• 76년생 : 정당한 경쟁은 얻는 게 많고 상대를 짓밟는 경쟁에는 힘이 없어진다.
• 64년생 : 좁쌀 한 주먹도 지니지 못하는 격이라 투자하면 큰 손해를 본다.
• 52년생 : 근심 걱정에서 헤어나오니 그 동안 투자해서 회수 못한 돈이 들어온다.
• 40년생 : 슬하에 근심이 없어지니 가슴이 시원하고 재수도 좋아진다
◈ 뱀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맛이 가버린 고기를 어찌하리 안 되는 일은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하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성사되기가 어렵게 된다. 지나간 일은 넘겨 버리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이 길할 것이니 연연하지 말라.
• 77년생 : 다른 일을 추진하면 생각보다 좋은 직업이 된다.
• 65년생 :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내는 방법이 나오니 궁리를 잘 하라.
• 53년생 : 꾀하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니 가슴이 답답하나 다른 것을 생각하라.
• 41년생 : 버릴 것은 버리고 잡을 것은 과감하게 잡아야 한다.
◈ 말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일이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다. 고진감래라 포기하고 있던 일이 노력의 결실을 보게 되니 이보다 더 기쁜일이 있겠는가 기사회생하는 운기이다.
• 78년생 : 침체 속에서도 조금씩 운이 열리니 기다리는 소식은 온다.
• 66년생 : 간과 쓸개를 드러내 보일 정도의 친구를 얻는다. 배반하지 마라.
• 54년생 : 아무리 강직해도 이 일에는 융통성을 발휘하라. 곧 일이 성사된다.
• 42년생 : 생사가 걸린 일이라 승패를 결정지을 때니 심혈을 기울여 처리하라.
◈ 양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천하를 건 한판 도박과 같은 일이라 신중하게 움직임이 길하리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는 시기이니 맑은 해안이 필요하다. 망동은 금물이니 신중하게 처신하라.
• 79년생 : 결정은 본인이 해야하지 누가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 67년생 : 자기 몸에게 보시하는 것이 타인에게 보시함이니 건강에 유의하라.
• 55년생 : 그 동안 뿌린 씨가 제대로 자란 것이니 재수가 대길하다.
• 43년생 : 새로운 문서는 조심해서 다루어야 이득이 있다.
◈ 원숭이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고기가 잡히면 통발을 잊어버린다고 은혜에 보답함을 잊으면 안된다. 어려움에 직면하였을때 여러사람의 도움으로 헤쳐나가니 모든일이 순조로워질 괘이다. 은덕에 보답하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될 하루다.
• 80년생 : 일을 만들어준 친구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 68년생 : 높은 곳을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다 일의 순서를 잘 찾아라.
• 56년생 : 아직도 헤매고 있는 것은 가까운 곳에 있는 해결사를 모름이다.
• 44년생 : 생선 눈과 같은 어리석은 자들과 상종하면 재수가 막힌다.
◈ 닭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돈 바람이 부는 방향을 잘 보고 일을 처리하면 크게 얻는다. 재운이 길하니 이르는 곳마다 재록이 가득하다. 운기에 취해 망동할 우려가 있으니 항상 신중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 81년생 : 나아갈 길이 열리니 찬스를 잘 잡아야 여러 면에 이득이 크다.
• 69년생 : 처마 밑에 떨어지는 낙수가 큰바위를 뚫는다고 계속 밀면 된다.
• 57년생 : 잃었던 보물을 찾는 격이니 재수가 형통하리라.
• 45년생 : 알수없는 힘이 생기니 조심만 하면 생각대로 일이 된다.
◈ 개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입을 막고 혀를 깊이 감추면 몸이 어느 곳에 있으나 편안할 것이다. 경거망동하게 되면 화를 입을 것이니 들어도 못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 하루를 보내야 길함이 있을 것이다. 공연히 나서지 말라.
• 82년생 : 쓸데없는 말이 구설을 부르니 입을 잘 단속하라.
• 70년생 :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만나나 이 것을 잘 이용하면 이득이 있다.
• 58년생 : 말을 함부로 하면 나의 속이 내보이니 손해를 보는 수가 많다.
• 46년생 : 결정을 뒤로 미루면 안 된다. 때가 조성됨이니 처리함이 길하다.
◈ 돼지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하)
오늘의 일진은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경쟁자와 방해꾼으로 인해 다 된밥에 재 뿌리는 격이라. 잘 해놓고도 방해로 막힘이 많다.평소에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리라. 일신이 곤고하니 넓은 아량으로 웃어 넘기라.
• 83년생 : 미미하던 생각이 정리되고 가슴이 열리나 서두르는 것은 금물이다.
• 71년생 : 꿈속에서 나타난 일이 현실로 나타나니 횡재수가 비친다.
• 59년생 : 열매가 익기도 전에 벌레 먹은 격이라 도둑을 조심하라.
• 47년생 : 열 손가락 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자식을 편애하지 마라.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하)
오늘의 일진은 부모님이 내려주신 자신의 몸을 잘 간수하면 효자가 아니겠는가 낙마수가 옅보이니 일신에 상처를 입는 경우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경거망동은 삼가 할 것이며 교통사고, 낙상을 주의하라.
•84년생 : 힘을 엉뚱한 곳에 쓰게되니 몸 상함을 조심하라.
•72년생 : 길 가다가 낙마수라 안전 운전해야 모면한다.
•60년생 :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라 힘들면 쉬어가야 한다.
•48년생 : 힘은 차는 것 같으나 몸이 말이 안 들으니 밀고 나가면 다친다.
◈ 소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정확한 판단만이 내가 나아갈 길이니 다시 한번 조사하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맑은 해안으로 살필 것이니 철두철미한 사전 분석및 자신의 처지를 잘 간파함이 길할 것이다.
•85년생 : 굉장한 대우를 받는 운이나 겸손을 잃으면 화가 따른다.
•73년생 : 적당히 넘어가든 일들도 나를 괴롭히니 아래위를 잘 돌 보라.
•61년생 : 계획을 수정하지 않으면 일이 힘든다. 재수는 길하다.
•49년생 : 작은 투자는 하되 큰돈 투자는 삼가야 한다.
◈ 호랑이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아는 길도 물어보고 가야한다. 엉뚱한 일로 길을 헤매는 수가 있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매사에 부주의로 인해 화가 미칠 우려가 있으니 매사를 신중히 처리함이 길할 것 이다.
•86년생 : 답답하든 가슴이 확 뚫리니 못하든 것들을 마음껏 해 보라.
•74년생 : 힘에 무리되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다. 무리하면 다친다.
•62년생 : 속상하는 일이 많으니 털어 버리고 여행이라도 하는 것이 길하다.
•50년생 : 집안 단속을 잘하고 하려든 일이 있으면 다음에 하라.
◈ 토끼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올라오는 기운을 잠재우지 못하면 화를 불러일으킨다. 운세가 불길하니 매사에 자중할 것이며 결정해야 할 일이 발생한다면 후일로 미룸이 길 할 것이다. 흉함이 있을때는 자중함이 길하다.
•87년생 : 오늘 하루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푹 쉬는 것이 좋다.
•75년생 : 밖에 나가면 술밥간에 좋은 일이 있으나 지나치면 불길하다.
•63년생 : 위태한 마음이 건강을 손상시키니 산에라도 오름이 좋다.
•51년생 : 재수는 평평하나 신경 쓸 일이 많이 생긴다.
◈ 용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아름다운 꽃이 향기를 잃은 격이니 좋다고 한 일이 나를 괴롭힌다. 의외의 일로 인해 일신이 곤고해지니 돕고자 한일도 득이 없고 원망만 있을 수이니 자중하여 행하는 것이 길할 것이다.
•76년생 : 이성 문제는 갈등이 풀리나 해야할 일이 늦어진다.
•64년생 : 몸도 마음도 지쳐 있으니 신경을 써도 힘이 든다.
•52년생 : 파도 소리가 요란하니 일거리는 오가는데 주머니가 빈다.
•40년생 : 도처에 재운이 흔들리니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많다.
◈ 뱀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말 것이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결과를 기다림에 있어 은연자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조급한 마음으로 망동하다 흉함을 입을 것이니 사태를 관망하라.
•77년생 : 침체 속에서도 하든 일을 계속해야 뒷날의 걱정이 없어진다.
•65년생 : 쉬는 날에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좋은 결과가 있게 마련이다.
•53년생 : 재능을 인정해줄 사람을 찾아봄이 내일을 위해 좋은 일이 된다.
•41년생 : 작은 물도 새면 큰물이 되니 잘 찾아내야 앞으로의 누수를 차단한다.
◈ 말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가정이 화목하니 하루를 집안에서 즐겁게 지낸다. 가화만사성이라 집안이 편해야 모든일들이 잘 되는 것이다. 그동안 소홀한 일이 있었다면 가족간에 정을 돈독히 해 해결함이 길할 것이다.
•78년생 : 계획에 구멍이 없는가를 다시 한 번 점검 해봄이 길하다.
•66년생 : 투자할 항목을 잘 골라두면 내일의 일들이 가볍게 풀린다.
•54년생 : 가정에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잘 살피면 좋은 하루가 된다.
•42년생 : 자손들이 좋은 선물을 가져오니 내 것 나가도 기분이 좋다.
◈ 양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급할수록 돌아가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모든 일이 제대로 된다.급하게 먹은 떡은 채하기 일수이니 차근히 살피어 행하는 것이 길할 것이다. 여유를 가지고 하루를 보내길 바란다.
•79년생 : 불편하던 마음은 가라앉으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구나.
•67년생 : 금일은 아무 것도 생각 말고 조용히 쉬어감이 길하다. .
•55년생 : 쉬는 날에도 어제 일이 잘되었는지 돌아보는 것이 좋다.
•43년생 : 지친 몸을 더욱 괴롭히면 앞일에 지장이 많다.
◈ 원숭이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고기가 봄물에 노는 격이라 기다리던 일을 서서히 준비해 볼 때이다. 노력했던 자에게는 길함이 가득해 복을 받을 것이나 게으른 이에게는 한낮 뜬 구름과도 같은 괘이다. 항상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라.
•80년생 : 갈등 느끼든 일이 가슴을 열어 보이니 풀려 가는구나.
•68년생 : 추진하든 일도 쉬어감이 길하다.
•56년생 : 안 되든 일이 오후에야 풀리니 마음 조리지 마라.
•44년생 : 출 행을 삼가라 나가면 몸 상하는 일이 있다.
◈ 닭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갑갑한 마음에 하던 일을 늦추니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어려움에 국면에 손놓고 하늘을 쳐다 볼 수 없지 않겠는가 오뚜기처럼 일어나는 지혜가 필요 할 것이니 처음과 같이 하라.
•81년생 : 계속 밀고 나감이 좋다. 그만두면 손해를 본다.
•69년생 : 오려든 손님이나 소식이 시간이 많이 지나야 온다.
•57년생 : 그림 속의 떡이라 보는데 만족해야 재수에 이상이 없다.
•45년생 : 늦게 출타하니 어둠이 걱정이라 사고를 조심하라.
◈ 개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밖은 웃고 안은 근심이니 꾀하는 일은 안에서부터 점검하라. 겉은 화려하여 남에게 부러움을 받을 것이나 안으로는 곤고함이 이를 때 없도다. 문제점을 파악하여 빠른 시일내로 해결함이 길하다.
•82년생 : 바라는 바가 크면 이루어지는 일도 크다. 원대한 계획을 세우라.
•70년생 : 눈앞의 어려움에 탈기하지 마라. 곧 좋은 해답이 나온다.
•58년생 : 건강을 위하여 조용히 뒤돌아보며 휴식을 취함이 길하다.
•46년생 : 괴로움과 즐거움이 엇갈리는 운이니 조용히 보냄이 길하다.
◈ 돼지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하)
오늘의 일진은 주인을 잃은 부인의 마음이니 보증 문서 등에 조심하라. 인간구설에 손재가 발동할 우가 있다. 모두가 내맘과도 같지 않으며 사람이 거짓말 하는가. 운이 따라 주지 않으니 타인의 보증은 주의하라.
•83년생 : 보냄은 곧 다시 얻음이니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
•71년생 : 새로운 마음을 가지면 새 일거리가 나선다.
•59년생 : 도장을 조심하라 아랫사람의 일로 문서로 구설 시비 수가 많다.
•47년생 : 골치 아프든 일이 풀리고 재수 대통하니 움직이면 길하다.
닭갈비는 전국적인 요리가 됐다. 그러나 역시 원조는 춘천 닭갈비. 확실히 춘천에 가서 먹는 원조 닭갈비는 타지방 닭갈비와 차이 난다. 그래서 서울 등지에서는 닭갈비를 맛보러 일부러 춘천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춘천에 관광하러 갈 게 아니라면 굳이 닭갈비만 맛보러 춘천까지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포장 판매를 하고, 전국으로 택배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춘천을 찾은 김에 포장 닭갈비를 사서 기자의 고향인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 농촌마을에 갖고 가서 함께 요리, 고향마을 사람들과 함께 맛을 봤다.
대형 프라이팬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오랜만에 동네 이야기를 나누면서 요리를 시작했다. 사 갖고 간 춘천 닭갈비 세트에는 닭갈비, 떡국, 면, 양배추, 깻잎, 고구마, 무, 치즈, 고추장, 양념이 들어 있고 세트에 없는 고추, 마늘, 양파, 김치, 상추 등은 현지에서 준비했다.
큰 프라이팬에 고기와 양념 채소 등을 넣고 20분 정도 지나니까 익기 시작했다. 양배추와 양파 등 채소부터 먼저 건져 먹고 다른 것은 차례로 익는 대로 먹었다. 면과 고구마, 떡국, 닭갈비는 조금 뒤에 익었다. 닭갈비에 채소 그리고 마늘 등을 넣고 깻잎이나 상추에 쌈을 싸서 먹는 것도 별미다.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 별미라며 맛있게 먹었다. 하긴 제주에선 그런 식의 닭고기 요리는 먹은 적이 없었으니. 어른들은 주로 쌈으로 먹고 아이들은 고기와 고구마를 골라서 먹었다.
요리하는 방법도 세트에 안내되어 있어서 그대로 실행하면 큰 어려움이 없었다. 채소와 고기를 먹고 난 다음에 밥을 볶아 먹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춘천 원조 닭갈비는 품질 좋은 닭고기를 사용하고, 부위별로 적당하게 자르고, 양념에 들어가는 재료와 거기에 맞는 채소들을 잘 조화시켜서 제대로 맛을 내는 것 같다.
바쿠의 구도시를 걷다 보면 누군가 옆으로 다가와 근교 일일투어를 권한다. 사실 택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자유여행으로 바쿠의 근교 투어를 하는 건 시간 면에서 비효율적이다. 가격을 좀 깎아달라고 하니 여행사 사무실을 안내해줘 그곳으로 갔다. 결국 1인당 20AZN(한화 약 1만4000원)을 할인받아, 다음 날 4만9000원짜리 일일 투어를 했다.
아침 9시, 구시가지 성문 앞에서 가이드와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 6명을 만나 일일투어를 시작했다. 준비된 미니버스를 타고 아름다운 카스피해를 바라보며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달려갔다. 고부스탄(Gobustan)에 도착한 뒤에는 대기해 있던 여러 대의 낡은 승용차로 갈아탔다. 왜 차를 바꿔 타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목적지인 머드 볼케이노(진흙 화산)까지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10여 km 더 가야 했기 때문이다. 운전기사는 그 길을 ‘사파리 투어’라 표현했다. 그러나 마케팅 목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 동물 구경은 할 수 없었다. 억지스러웠지만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차창 밖 풍경은 영화에서 봤던 모습과 비슷했다. 미국의 텍사스나 어느 사막 지역처럼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이었다.
전 세계 700여 개의 진흙 화산 대부분이 아제르바이잔에 있다고 한다. 그중 일부가 이곳에 있었다. 용암 대신 진흙이 흘러내리는 화산 가까이 다가갔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화산 분화구에서 진흙이 끊임없이 부글거리며 기포가 부풀어 올랐다가 터졌다. 피부에 좋은 효과가 있는지 남자 몇 명이 머드팩을 즐기고 있었다.
진흙 화산에 오기 전 미니버스에서 내렸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사시대로 여행을 갈 수 있는 관광지가 있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부스탄 암각화 문화경관구역’이다. 공원 입구에는 박물관이 있었고, 암각화 구역은 입구에서 1km를 더 가야 했다. 탐방로를 따라 걸으면 넓은 사암지대에 흩어져 있는, 약 5000년에서 2만 년 전에 원시인들이 돌에 그린 그림을 불 수 있다. 지나온 시간의 무게가 주는 중량감 때문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 모습, 사냥하는 모습, 바다에서 고기 잡는 모습, 춤추는 모습 등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풀, 돌, 바위만으로 구성된 암각화 공원을 본격적으로 탐방하기 전 앞서 가던 가이드가 넓고 평평한 바위를 만나자 갑자기 타악기처럼 두드리기 시작했다. 돌에서 맑은 소리가 났다. 이 지역의 타악기 ‘가발 대시’(Gaval Dash)를 만들 때 사용하는 석재라고 했다.
조로아스터교 사원의 꺼지지 않는 불
불을 접하기 쉬워서 그랬는지 바쿠의 동쪽 외곽에 조로아스터교 성지인 ‘아테시카 사원’(Ateshgah Temple)이 남아 있다. 사원 안에는 470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꺼지지 않고 타고 있는 불이 있다. 불을 숭배해서 배화교로 알려진 고대 페르시아 종교 조로아스터교. 현재는 신도 통계가 없을 정도로 사라져가는 종교다. 하지만 최근 이슬람 극단주의에 환멸을 느낀 쿠르드족들이 개종하면서 그쪽 지역에서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 얼마 전 한국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록 밴드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조로아스터교의 후손인 파르시(Parsi) 출신이기도 하다. 수도원이었던 사원 내부는 박물관으로 개조됐다. 방마다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설명과 모형,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교세는 미약하지만 조로아스터교를 경험할 수 있는 건 바쿠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었다.
이외에도 바쿠 외곽에는 불과 관련한 ‘야나르 다그’(Yanar Dag)라는 이름의 불타는 언덕도 있다. 지하에 어마어마한 양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어 가스가 나오는 분출구에서는 계속 불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자원 개발로 지하 압력이 내려가 과거에 비해 불꽃이 많이 약해졌다고 한다.
아제르바이잔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
현재와 과거의 절묘한 조화, 손님과 이방인에게 친절한 문화, 동서양의 경계선 위에서 유럽을 향해 있는 도시, 맛있는 음식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 바쿠 여행을 하면서 받았던 인상이다. 아직 구 소련 치하의 흔적도 남아 있고,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등 여행 인프라가 부족한 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제르바이잔 관광청이 글로벌 캠페인으로 선정한 ‘기대, 그 이상의 아제르바이잔’(Take Another Look)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그들 사회에 내재돼 있는 역동성과 경계를 넘나드는 수용의 문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트빌리시행 야간 특급열차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주황빛으로 바뀌면서 나란히 뻗어 있는 녹슨 철길 위로 떨어졌다. 검은색 섞인 파란 하늘이 배경이 될 무렵 그림자도 사라져가는 플랫폼 앞으로 둥근 쇳덩이가 슬며시 발을 들이밀었다. 흰 수증기를 내뿜으며 거친 숨을 내쉴 것만 같은 짙은 암녹색 기차였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브론스키’와 ‘안나 카레니나’를 운명처럼 만나게 했던 그 기차다. 조지아의 고리 시(市)에 전시돼 있는 스탈린 전용 열차도 같은 색이다. 소설 내용처럼―창 너머로 플랫폼에 서서 기차를 전송하고 있는 사람들이 마치 뒤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었다. (…) 규칙적으로 덜커덕덜커덕 흔들리면서 플랫폼을 지나고 (…) 열차는 점점 신나고 매끄럽게 경쾌한 소리를 내며 레일 위를 미끄러져 갔다―그렇게 바쿠와 이별했다.
오래된 열차이지만 2인 1칸인 1등석은 불편한 점이 전혀 없었다. 새것으로 바꾼 하얀 침대 시트가 마음에 들었다. 바쿠를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전 시추공에서 나오는 가스 때문에 큰 불꽃이 타오르는 공장들이 창밖으로 스쳐지나갔다. 때맞춰 창틀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 ‘왈츠 Ⅱ’가 흘러나왔다. 출발 전 역에서 산 와인으로 영혼을 적셨다. 그렇게 떠나는 아쉬움과 새로운 풍경을 만나러 가는 길의 떨림을 가라앉히며 수없이 꿈꿔왔던 침대열차에서의 밤을 보냈다. 기차는 쉬지 않고 트빌리시를 향해 달려갔다.
저녁 9시에 출발한 기차는 꼬박 12시간을 달려 다음 날 아침 9시경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도착하기 전 새벽 5시쯤 조지아 입국 절차가 한 차례 있었다. 카메라가 연결된 노트북을 들고 조지아 군인들이 열차로 올라왔다. 입국신고서 작성, 여권 제출, 사진촬영, 그리고 이어진 간단한 가방 검사로 국경 통과 절차가 끝났다. 조지아는 한국 여권 소지자의 경우 무비자로 360일 체류할 수 있는 나라다.
미국 조지아가 아니고 ‘조지아’
“조지아? 미국 조지아?” 이번 여행 목적지는 ‘조지아’라고 하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한결같았다. 몇몇 사람은 구 소련이 지배하던 시절의 ‘그루지야’는 알고 있었다. 1991년에 독립하면서 국명을 ‘조지아’로 바꿨다고 설명하면 미국과 가까워지고 싶어서 이름이 그러냐는 반응들을 보였다. 정말 그랬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는 ‘농부’를 뜻하는 그리스어 ‘게오르기오스’에서 빌려왔다는 설과 트빌리시의 핫플레이스 ‘자유광장’에 황금동상으로 우뚝 서 있는 조지아 수호성인 ‘성 조지’에서 따왔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다.
조지아에는 스위스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프랑스처럼 풍요로운 와인, 이탈리아처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스페인처럼 정열적인 춤과 음악이 있다.
트빌리시는 재즈다
종착역이 가까워지면서 기차 속도가 느려졌다. 트빌리시는 BC 4세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AD 5세기 말에 조지아의 수도가 된 오래된 도시다. 창문 밖으로 트빌리시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폐쇄된 기지창에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는 녹슨 객차와 화차들, 네모반듯한 현대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신도시, 트빌리시의 랜드마크인 나리칼라 요새와 ‘조지아 어머니 상’이 있는 구도시가 줄지어 얼굴을 드러냈다. 마치 한 곡의 재즈를 듣는 것 같았다. 이곳 사람들은 ‘재즈적’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연결될 때 주로 사용한다. 그만큼 조지아 사람들은 뭐든 잘 받아들인다. 혼합에 익숙하다. 트빌리시라는 도시도 그랬다. 색소폰의 끈적한 느낌과 와인의 나른한 분위기가 뒤섞여 있는 듯 보였지만 퇴폐적 숨결이 느껴지지는 않는 골목의 모습이 그랬고, 클래식함과 모던함이 서로 뒤엉켜 하나가 된 도시의 풍경이 그랬다.
올드 트빌리시가 보여주는 것들
트빌리시는 도시를 관통하는 ‘므츠바리’(Mtkvari) 강(쿠라 강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을 중심으로 남쪽의 ‘올드 트빌리시’(구도심)와 북쪽으로 나누어진다. 잘 알려진 관광지 대부분이 구도심에 몰려 있어 걸어 다닐 만하다. ‘아블라바리’(Avlabari) 전철역에서 내려 강 언덕에 있는 ‘메테키 교회’(Metekhi Church)로 먼저 갔다. 13세기에 세워진 이 교회는 서른일곱 번이나 다시 지어진 사연으로 수많은 전쟁에 시달렸던 조지아의 얼굴이 됐다. 구 소련 시절에는 감옥과 극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최근에서야 교회 역할을 하고 있다. 교회 옆에는 수도를 트빌리시로 옮긴 ‘바흐탕 고르가살리’(Vakhtang Gorgasali) 왕의 기마상이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기마상이 있는 곳에서 북쪽을 보면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강 오른쪽으로 ‘리케 공원’(Rike Park)이 있다. 시민과 여행자들에게 은은한 꽃향기로 피로를 풀어주는 곳이다. 강변에는 1200개의 LED 전구가 빛을 내는 ‘평화의 다리’가 있어 므츠바리 강의 밤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2GEL(한화 약 810원)을 내면 ‘메테키 다리’를 건너 므타츠민다 산 정상에 있는 나리칼라 요새까지 케이블카로 올라갈 수 있다.
도시 전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 요새는 4세기에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요새 바로 옆 능선에는 왼손엔 와인 잔, 오른손엔 칼을 들고 있는 ‘조지아 어머니 상’이 있다. ‘친구에게는 와인 잔을 건네지만 적에게는 칼을 든다’는 의미로 건국 1500년을 기념해 만든, 높이 20m의 대형 석상이다.
트빌리시를 사랑한 작가들
러시아의 문호들은 조지아를 사랑했다. 막심 고리키는 이곳에서 일하며 처녀작 ‘마카르 추드라’를 썼다. 이때 사용한 필명이 ‘고리키’다. 그는 “코카서스 산맥의 장엄함과 낭만적 기질을 지닌 이곳 사람들 덕분에 방황에서 벗어나 작가가 됐다”고 회고했다. 톨스토이도 이곳에서 주둔군으로 4년을 복무한 후 조지아를 배경으로 몇 편의 소설을 썼다. 푸시킨의 시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쓴 ‘코카서스의 죄수’가 대표적이다. 누구보다도 조지아의 와인과 음식을 사랑한 푸시킨은 대표적인 친조지아 인사였다. 그래서인지 구도심 자유광장 옆에는 ‘푸시킨 공원’이 있다.
구도심 중앙에 위치한 ‘자유광장’은 주변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교통의 요충지로 트빌리시의 시작이자 끝이 되는 장소다. 마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광장 같은 곳이다. 레닌 동상이 있던 광장 중앙에는 조지아 수호성인 ‘성 조지’의 황금동상이 있다. ‘자유광장’에서부터 ‘루스타벨리 메트로 역’까지 이어지는 거리를 걸었다. 러시아 간섭에 저항하는 조지아인들의 데모가 토요일마다 열리는 국회 앞 광장, 조지아 국립박물관, 루스타벨리 극장, 트빌리시 오페라·발레 극장, 트빌리시 현대미술관들이 이 거리에 있다. 중간중간 보이는 작은 카페와 거리의 화가들 작품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트빌리시의 숨결을 애써 들으려 하지 않아도 트빌리시의 과거와 현재의 눈부신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행복했다. 아무리 걸어도 질리지 않는 하염없이 걷고 싶은 길이다
므츠바리 강을 건너는 ‘사브뤼켄’(Saarbruecken) 다리 옆 ‘데대나’(Dedaena) 공원에서는 트빌리시 최대 규모의 벼룩시장이 열린다. 구 소련의 군용 제품에서부터 은식기,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등 온갖 물건들이 거래된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랜 세월이 빚어낸 추억의 물건들이 과거를 되돌아보게 한다. 지치지 않고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조지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찰나에 그들의 얼굴을 스쳐지나가는 희망과 그리움, 설렘도 봤다.
설날이 되면 웃어른에게 세배를 드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복을 기원하는 인사를 건네곤 한다. 교감이 있는 사람과의 새해 인사만으로도 복이 나의 마음속에 찾아든 듯 기쁘다. 삶의 안녕을 빌어주며 서로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의 힘이 크다.
복조리는 한 해의 복을 받으라고 설날 새벽에 벽에 걸어둔다. 대나무가 들어가 있는 것이 전통 복조리다. 최근에는 다양한 형태의 복조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조리는 대나무나 싸리 가지의 속대를 엮어 만들어 쌀을 일어내는 데 이용하는 기구다. 조리를 일어 한해의 복을 취한다고 하여 “복 들어오는 조리”라는 뜻에서 복조리라고 부른 것이다. 섣달 그믐날 자정부터 정월 초하루날 아침 사이에 조리장수가 복많이 받으라고 소리치며 복조리를 집마당에 던져 놓고 했다. 주로 마을 청소년들이 팔았다.
설날에 장만한 복조리는 1년 내내 쓰게 되지만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한 귀퉁이에 그대로 걸어두기도 하며 갈퀴와 함께 전지(부엌)문 앞에 걸어두기도 한다. 이는 갈퀴로 복을 끌어들어 복조리 속에 담으라는 뜻이다. 복조리의 풍습이 1980년대 이후 우리 주변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
설날 떡국에 대한 좋은 이야기가 많다. 설남에 떡국 한 그릇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떡국은 차례상에 빠지지 않게 오르는 설날 대표 음식이다. 선조들은 새해 첫날 정결한 흰떡과 자극적이지 않은 국물을 먹으며 한해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했다. 떡국의 재료인 가래떡에는 장수를 기원하고 한 해를 밝게 보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또한 조상들은 엽전과 비슷한 모양의 가래떡으로 떡국을 만들어 1년동안 재화가 풍성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았다.
옛날에는 떡국 국물을 꿩고기로 우려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꿩고기가 비싸고 구하기가 어려워서 서민들은 닭고기를 이용해 육수를 만들고 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설 명절 온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떡국 한 그릇에는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는 소망이 담겨져 있다. 이제 다가오는 설에도 가정마다 든든한 떡국 한 그릇으로 희망찬 새해를 설계했으면 한다.
경자년 설날을 맞으면서 복조리와 떡국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올해는 국가적으로도 많은 큰 일을 앞두고 있다. 모든 일이 원칙과 순리대로 잘 처리되기를 기원한다. 떡국을 먹으며 우리 모두 건강하고 소원을 이루기를 희망해본다.
설이 다가온다. 이때쯤이면 제주 출신 나이 든 사람들은 고향의 빙떡이 생각난다. 빙떡은 제주의 메밀전병이다. 강원도, 경상북도 등지의 메밀전병과 또 다른 맛의 전병이다.
메밀전병은 지역마다 소가 다르다. 강원도에서는 갓김치를 넣으며 배추김치와 돼지고기도 넣는다. 경북에서는 표고버섯과 실파를 소로 넣는다. 충북에서는 당근과 쇠고기, 우엉 등을 넣는다. 그러나 제주도의 빙떡은 소도 가장 단순하고 부침개에 가깝다.
제주 빙떡은 한마디로 “삶은 무나물을 메밀전으로 싼 것”이라고 보면 된다. 소는 무채만을 넣는 것이다. 메밀가루를 반죽해 돼지비계로 지진 전에 약간의 간을 한 무채를 넣고 말아 만든다. 반죽에 무채를 넣어 '빙빙 만다'고 해서, 또는 '빙철(빙떡이나 전을 지질 때 사용하는 번철)'에 짓는다 하여 빙떡이라고 부른다. 또 멍석처럼 말았다고 해서 '멍석떡'이라고도 불린다.
제주 지역의 메밀 생산량은 전국 시.도 중 가장 많아 전국 전체 생산량의 35.5%를 차지한다. 지난해의 메밀 재배 면적이 845Ha(헥타르)로 메밀 생산량이 321톤이다. 제주에서 옛날부터 메밀 음식 선호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설이 되면 제주도에서는 빙떡과 함께 메밀묵 등을 많이 해 먹는다. 명절과 잔치, 제사 등의 큰일이 있을 때는 메밀 빙떡과 메밀묵을 만들어서 상에 올리고 제사 후에 나누어 먹는다. 메밀 빙떡을 보관하는 것도 습기가 돌면 빙떡이 떠지기 때문에 대나무로 만든 차반지에 보관한다. (*차반지 : 공기가 잘 통하고 떡이 달라 붙지않음)
제주도 서귀포시 지역에서는 빙떡을 전기떡 또는 쟁기떡, 멍석떡이라고도 한다.
예전엔 큰 프라이팬이 없어서 깨끗한 무쇠솥 뚜껑을 뒤집어서 불 위에 올려 달군 후 미지근한 물에 메밀가루를 묽게 반죽해서 얇고 둥글게 전을 부쳐내곤 했다. 요즘은 당연히 프라이팬을 사용한다. 메밀과 무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이 간편식의 역사는 약 700여년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의 옛 정취를 그대로 담아낸 제주 토속음식 중의 하나다. 단맛을 내는 성분이 하나도 안 들어가 있는 은은하고 은근한 맛이라고들 한다.
빙떡을 만드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식재료는 메밀가루 5컵, 반죽 물 1.6L(8컵 정도), 무 800g(한 개), 쪽파 100g 그외 소금, 참깨, 참기름 등을 적당하게 양념하면 된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메밀가루에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물을 섞어서 메밀 반죽을 한다.
② 메밀가루를 묽게 반죽을 한 후 프라이팬에서 둥그런 모양으로 전을 부쳐낸다.
③ 익힌 메밀 전을 깨끗한 도마나 큰 쟁반 위에 넓게 편 후 속을 준비한다.
④ 속에 들어갈 무채를 약간의 양념(파, 깨, 소금 등)과 함께 버무린다.
⑤ 만들어진 속을 익힌 메밀 전의 가운데에 놓고 메밀 전을 빙빙 말면 메밀 빙떡이 완성된다.
제주의 토속 음식 중에서도 빙떡이 대표 음식 격이다.
이번 설에도 제주도 사람들은 빙떡과 메밀묵을 차례상에 올릴 것이다.
옥돔은 몸길이가 30~50cm 가량의 옥돔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제주도에서는 '솔래기'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에 분포하고 제주도 근해에서 많이 잡힌다. 제주 옥돔은 생선의 황제, 또는 도미의 여왕으로 불리기도 한다. 클수록 맛있고 옥돔찜, 옥돔구이, 옥돔 미역국 등으로 조리한다. 제주도에서는 귀한 손님을 맞을 때 내놓고 잔칫상, 제사상에 옥돔구이를 올린다.
옥돔을 바다에서 잡아서 반찬이나 안주용으로 식탁에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옥돔은 음력으로 9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주로 잡힌다. 제주산 옥돔은 겉면인 머리와 등 쪽이 붉은 기가, 돌고 눈이 선명하며 꼬리부분에 노란색 선이 5~6개 있고 배쪽은 희고 고운 색을 띄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수입산으로 분류한다. 제주도 연안에서 어선들이 주낙 낚시로 고기를 잡고 있다. 어획량도 적고 잡는 방법도 까다로운 생선이다.
배에서 꺼내기 전에 용도에 맞게 장만해 나오거나 아니면 그대로 고기를 가지고 나와서 거래처나 식당 등에 넘기기도 한다. 조림이나 국거리용을 만들 때 배에서 만들어 내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비늘을 제거하고 내장을 뺀 후 고기를 토막을 낸다. 구이용이나 튀김용은 비늘과 내장을 제거하고 고기를 반으로 펴 싸서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이 잘 드는 집 마당이나 올레 돌담 등 깨끗한 곳에 널어서 건조시킨다. 좋은 날 이틀 정도 말리면 고기에 물끼가 없을 정도로 마르게 된다. 자연 바람으로 고기를 말리는 것이 특징이다.
1970년대 이전 옥돔 거래가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제주도 어촌 해변 작은 골목가게나 오일장에서 주로 판매를 하였고 지금은 어시장과 오일시장은 물론 마트나 백화점 등 전국 어디에서나 구입할 수 있다. 집까지 배달도 된다.
옥돔은 찜이나 국보다 구이로 많이 먹는다. 굽는 방법은 1970년대 이전에는 검질(짚) 불에서 구웠고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는 장작불,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는 연탄불, 2010년대에 들어서서 가스불을 이용하여 굽는다.
그러나 옥돔구이의 제맛은 검질 불이나 장작불로 구울 때 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편하게 구우려고 토막을 내고 꽁지를 짤라 버리곤 하는데 그렇게 구우면 맛이 없다. 통째로 머리와 꼬리가 붙은 채로 구워야 한다.
먹는 방법도 통째로 구운 고기를 칼로 자르지 않고 손으로 적당히 쪼개야 제 맛이 난다. 모든 부위가 각각 제 맛을 낸다. 살은 살대로 먹고 머리와 꼬리도 다 씹으면 제맛이 난다. 제주도 옛 어른들은 옥돔 머리 하나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고 했을 정도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옥돔 고기의 살은 애들을 주고 부모들은 머리를 먹기도 했다.
최근 바다의 수온이 올라가 바닷물의 오염 등으로 옥돔의 질이 다소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수입산 옥돔의 보급으로 옥돔의 이미지가 떨어지고도 있다. 제주 옥돔이 제주를 상징하는 고기로서 손색이 없도록 하기 위해 잘 보전하는 노력이 긴요해 보인다.
우리의 전통주는 주정에 물과 조미료를 섞어 만든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증류주다. 몸에 부담을 덜 줄 뿐 아니라, 맛과 고상한 운치가 남다르다. 달콤한 감칠맛, 쓴 듯 아닌 듯 쌉싸름한 맛, 묵직하면서도 쾌청한 알싸한 맛….
프랑스 와인의 지역 고유 맛에 영향을 주는 테루아가 있듯 전국 팔도 고유의 특산 농산물로 지역의 맛을 보여주는 우리의 전통주는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술의 빛깔, 맛, 향, 스토리, 그리고 곁들임 음식 등은 외국의 유명 술인 와인, 위스키, 사케 등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아쉬움에서 정부 차원의 전통주 지원 정책에 대한 요구가 이어져 우리 술의 가치를 더욱 높일 다양한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전국의 전통주 제조업체들과 원료 공급 농민, 주류연구 전문학자, 유통업자들이 모여 만든 사단법인 한국전통주진흥협회는 장인들의 혼이 담긴 전통 명주의 역사와 맛,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다. 아울러 보다 과학적이고 정교한 테이스팅을 통한 세련된 맛 표현, 사실적이고 흥미로운 스토리 개발, 전통주에 어울리는 마리아주 개발 등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설날맞이로 달콤한 맛, 쌉싸름한 맛, 은은한 맛의 대표 주자인 전통 명주 3인방에 대해 알아본다. 이를 통해 한국 전통 명주의 역사를 알고 우리 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달콤한 맛 ‘감홍로’
제조원 농업회사법인(주)감홍로
유형 일반 증류주(용량 750ml, 375ml)
알코올 함량 40%
원재료 및 함량 쌀(국내산)70%, 조(수입산)30%, 정제수·용안육·계피·진피 ·정향·생강·감초·지초(자초)
Story
감미로운 맛, 황홀한 붉은 빛, 맑은 이슬의 의미를 담은 술. 감미롭고 붉은 빛, 강렬하고 독특한 향이 미각, 시각, 후각을 만족시킨다. 육당 최남선 선생이 ‘조선상식문답’에서 이강주, 죽력고와 함께 조선 3대 증류주로 꼽을 만큼 명성이 높은 술이다. ‘별주부전’에서 자라가 토끼를 감홍로로 유혹하고 ‘춘향전’에서는 춘향이 한양으로 떠나는 몽룡에게 이 술을 내어놓는다.
감홍로는 고려시대 때 평안도 지방에서 만들어진 3대 명주 중 하나다. 6·25 전쟁으로 월남하기 전까지 평양에서 대대로 감홍로를 빚어온 가문의 주조 비법을 후손인 이기숙 명인이 섬세하게 복원했다.
누룩과 쌀로 빚은 술이 발효하면 1차 숙성시킨 후 두 번의 증류 과정을 거친 다음 한약재를 침출한다. 이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까지 숙성시켜 깊은 맛을 낸다. 도수가 높아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하며 묵힐수록 풍미가 좋아진다. 색, 맛, 향이 조화를 이룬 조선시대 최고의 명주. 다른 음료수와도 잘 어울린다. 술에 약한 사람들이 칵테일을 만들어 마셔도 무리가 없는 격조 높은 술이다.
Taste
패션으로 치면 한복 두루마기에 걸친 모피 숄처럼 고급스럽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꽃향기와 계피향이 어우러지면서 내는 풍미가 일품이다. 한 모금 머금으면 혀끝에 살짝 감도는 단맛과 함께 스파이시한 향이 입안에 확 퍼진다. 높은 도수와 강렬한 향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목을 넘어간 후에도 묵직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입안에 계속 머물며 여운을 남긴다. 섬세함과 중후함을 동반한 고급스러움이 가히 한국의 위스키라 불릴 만하다.
Food
맵고 자극적인 음식보다 담백한 안주가 어울린다. 지방이 적은 육포나 대구포도 감홍로의 맛과 향을 잘 살려주는 안주다. 스테이크, 숯불이나 그릴에 구운 돼지고기, 양꼬치구이 등 육류와도 즐길 수 있다. 해산물 샐러드, 신선한 허브로 마리네이드한 연어 등의 해물요리와도 궁합이 맞는다. 초콜릿, 블루치즈, 견과류와 함께 가볍게 마셔도 좋다.
쌉싸름한 맛 ‘진도 홍주·백주’
제조원 대대로 영농조합법인
유형 일반 증류주
용량 750ml, 375ml (진도백주 375ml)
알코올 함량 40%, 38% (진도백주 38%)
원재료 및 함량 쌀(국내산) 99%, 지초(국내산) 1%, 진도백주 쌀(국내산) 100%
Story
“홍매화 떨어진 잔에 봄눈이 녹지 않았나 싶고 술잔에 비친 홍색은 꽃구경할 때 풍경이로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이로 잘 알려진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진도홍주의 맛에 반해 읊은 노래다. 지도 제작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다 각지의 전통주를 접했을 터. 김정호 선생은 흥선대원군에게 완성된 대동여지도를 바칠 때 마치 붉은 눈물이 방울방울 모여 술을 이룬 것 같은 진도홍주를 함께 올렸다고 한다.
진도홍주는 고려시대 때부터 지역 세도가들이나 살림이 넉넉한 민가에서 전통비법으로 빚어온 토속 명주다. 쌀이나 보리에 누룩을 넣어 숙성시킨 뒤 증류한 순곡 증류주. 마지막에 지초(芝草) 침출 과정을 거치면 붉은 빛을 띤다. 지초 뿌리에는 산삼 버금가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 예로부터 이 약초를 넣어 빚은 술은 음용뿐 아니라 치료 목적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효능도 좋지만 무엇보다 지초 뿌리에서 우러난 붉은색이 황홀하다. 입술을 갖다 대기도 전에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조선시대에는 ‘지초주’라 불렸는데, 임금에게 올리는 최고의 진상품으로 꼽힐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진도는 한양에서 먼 남쪽 끄트머리에서도 뭍에서 떨어진 섬인지라 유배지로도 적지(適地)였다. 자연스레 귀양살이하러 온 선비들의 학문과 풍류가 지역사회에 스며들었다. 문장이나 글씨, 그림, 노래 등 수준 높은 문화에 술이 빠질 리 없었다. 시 한 수 읊으며 한 잔, 붓 한 획 긋고 한 잔, 노래 한 자락에 화답하며 또 한 잔. 이렇듯 유배지에서의 시름을 잊게 했던 술이 진도홍주 아니었을까.
진도백주에 붉은색을 띠게 해주는 지초를 침출하면 홍주가 된다. 백주는 국내산 쌀을 이용해 만든 밑술을 발효시킨 뒤 증류한 전통 소주다.
Taste
예상을 뒤엎는 맛. 부드러우면서 강하고 깨끗하고 단아하고 견고한 느낌이다. 황홀한 비단노을 빛 아래 남성성이 숨어 있는 듯하다. 화끈하면서도 묵직한 맛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단맛이 짧은 대신 향의 여운은 오래간다. 다시 말하면, 양면성을 지닌 개성이 분명한 독주. 스트레이트로 혹은 얼음을 채워 음미해도 좋지만 술에 약한 사람은 맥주나 탄산음료에 섞어 칵테일로 마셔도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풍미가 좋아진다. 서가 한 귀퉁이에 놓아두고 가끔 한 모금씩 마시면 김정호 선생이 말한 “꽃구경할 때의 풍경”이 어른거릴지도 모른다.
진도백주는 알코올 함량이 38%. 꽤 높은 도수이지만 순곡주 특유의 고급스러운 맛이 살아 있어 마치 무엇을 그려도 되는 빈 도화지 같은 느낌이다. 목넘김이 자연스럽고 기분 좋은 끝 맛이 입에 맴돈다. 온더록스로 즐겨도 좋다. 화이트 스피릿(White Sprit)으로 활용하면 칵테일 맛을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Food
육류, 생선과 두루 잘 어울린다. 다만 도수가 높고 향이 강해 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음식이 좋다. 어란, 굴튀김, 진도 특산물인 구기자를 이용한 구기자갈비찜, 전복탕 등은 진도홍주에 잘 어울리는 최고의 안주. 큼직하게 썰어 노릇노릇하게 구운 두부스테이크, 쫄깃하고 담백한 문어숙회도 술맛을 돋운다. 기름진 중화요리를 곁들이면 부드럽고 알싸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호두, 아몬드, 대구포 등 가벼운 안주도 무난하다.
진도백주는 생선회나 전류, 산적, 쇠고기구이 등 다양한 한식 메뉴들과 잘 어울리며 육포나 땅콩 등 마른안주와 곁들여도 좋다. 매콤한 겨자 맛이 매력적인 냉채족발이나 샐러드도 궁합이 잘 맞는 안주다.
은은한 향 문배주 명작
제조원 문배주양조원
유형 증류식 소주 용량 750ml, 375ml
알코올 함량 25%, 40%
원재료 및 함량 조(국내산), 수수(국내산), 쌀(국내산), 효모, 정제수
Story
평안도 지방 전통주인 문배주는 고려시대 때부터 임금에게 진상했던 술로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 북한에서는 명맥이 끊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의 문배주 기능 보유자 4대손인 이기춘 명인에 의해 재현돼 1986년에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1990년도에 상품화됐다.
문배주에 사용되는 누룩은 밀, 술은 조와 수수를 이용한다. 수수와 조는 계약 재배를 통해 수매하고 있어 철저하게 품질이 관리된다. 순수 곡물로 만들어지는 술에서 문배나무의 과일 향이 은은히 풍긴다 해서 ‘문배주’로 불리기 시작했다.
문배주는 빚어서 바로 마시지 않는다. 증류한 후 봉인해서 서늘한 곳에서 1년간 숙성시켜야 은은한 향과 깨끗한 맛을 자랑하는 명주로 완성된다.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국빈을 대접하는 외교주로 쓰였다.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사용되는 등 품격과 가치를 인정받았다.
Taste
25% 부드럽고 편하다. 향긋하고 여리지만 강함도 느껴진다. 곡물로 만든 술인데도 싱그러운 과일 향이 느껴져 기분 좋은 취기가 가시질 않는다.
40% ‘문배주’라는 이름답게 한 입 머금으면 특유의 은은한 향기가 난다. 높은 도수이지만 정갈하고 깨끗하다. 강렬함도 느껴진다. 순곡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소함과 달콤함도 있다. 목을 넘긴 뒤에는 기분 좋은 풍미가 오래도록 남는다.
Food
리코타 치즈와 아몬드 등 견과류를 뿌린 샐러드와 즐기면 좋다. 부드럽고 고소한 풍미를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 민어 등 흰살생선에 달걀옷을 묻혀 고소하게 지져낸 전이나 지리 같은 깔끔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단종이 마지막을 보냈던 영월로 여행을 떠난다. 겨울날, 더욱 가슴이 시리도록 다가오는 청령포와 관풍헌, 장릉으로 이어진 단종의 자취를 따라가는 영월여행은 단순히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할 수 있는지, 채 피어나지 못한 젊음과 죽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은 백성을 만나는 여정에 마음은 더욱 단단해진다.
인간의 욕망은 그 끝을 모르겠다. 특히 다 자란 어른의 권력욕은 치명적이다. 12세에 왕위에 올라 17세에 숨을 거둔 단종(端宗 1441~1457)의 짧은 생애, 임금의 자리에 앉아 있은 지 1년 반 만에 수양대군과 한명회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그를 모시던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으로 내몰렸다. 어린 소년 왕은 스스로 왕위를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1456년(세조 2) 수백 명이 죽어 나갔던 사육신 사건이 후 얼마 후에 어린 소년은 제 삼촌인 세조에 의해 사약을 받는다. 1457년 10월의 일이다.
영월 첫 여행지는 이른 아침의 청령포다. 눈은 오지 않으나 스산한 겨울바람이 부는 청령포를 따라 회색빛 옅은 안개가 외진 땅을 감싸고 있다. 노산군으로 강등된 어린 단종이 이곳에 머물며 지은 시가 그의 마음을 그대로 전한다.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적막한 영월 땅 황량한 산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푸른 솔은 옛 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 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혀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600년 된 관음송(觀音松)만이 그때를 기억하는 듯 처연하다. 어린 노산군이 이 소나무에 앉아 한을 토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한다. 그것을 보고 듣고 하였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관음송과 소나무, 참나무가 어우러진 숲은 흘러간 세월의 풍상에 아픔을 차곡차곡 갈무리한 듯 무게감이 느껴진다. 뒤로는 넘을 수 없는 절벽 산이, 양옆과 앞으로는 시퍼런 강물이 휘돌아 흐른다. 이곳에서 눈물지었을 어린 임금의 심정은 얼마나 막막하였을까.
단종이 죽음을 맞이한 곳은 영월의 관아인 관풍헌이다. 홍수가 나 청룡포에서 관풍헌으로 옮긴 뒤 두 달여 만에 세조가 보낸 사약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한다. 관풍헌 앞에 있는 누각 자규루에 그가 읊었던 시가 그의 피눈물 나는 애통함을 대변하고 있다.
...자규새 소리 멎고 조각달이 밝은데
피눈물 흐르고 꽃송이 떨어져 붉었구나...
자규새는 신하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추방당한 두우가 죽어 새가 되어 촉나라 땅을 돌아다니며 피를 토하며 울었다는 전설 속 소쩍새를 말한다. 단종의 원혼이 이 땅 어딘가를 날며 울고 있지나 않은지.
현재 관풍헌과 자구류는 공사 중이다. 왕방언이 가져온 사약을 마셔야 했을 소년 왕의 모습을 그려보며 그의 시신이 묻힌 장릉으로 향한다.
단종은 죽음 뒤에도 편치 않았다. 세조는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명을 내렸고 후환이 두려운 사람들은 시체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의 죽음을 배웅해준 단 한 사람은 엄흥도였다. 향리의 우두머리였던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들쳐 메고 산으로 올라가서 그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한때나마 왕이었던 이의 죽음이 이리도 초라할 수 있을까. 80여 년 동안 버려지다시피 했던 그의 묘는 중종 33년(1538) 영월 부사로 부임한 박충헌이 꿈에서 단종을 만난 뒤 노산 묘를 찾아 봉분을 정비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묘호가 단종으로, 능호가 장릉이라 부르게 된 것은 숙종 24년(1698)에 이르러서다.
능은 보통의 왕릉과 달리 가파른 능선 위에 있다. 단종의 시신을 몰래 산중에 묻어야만 했던 긴박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이해가 가능하다. 능으로 가는 길에 서있는 소나무는 능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있는 듯하다. 무인석, 병풍석, 난간석은 없고 문인석만 있는 단출한 느낌에 생을 다하지 못한 왕의 모습을 보는 듯 쓸쓸함이 감돈다. 능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와 홍살문을 지나 90도로 완전히 꺾인 우측 끝에 정자각이 위치하고 있다. 홍살문 바로 옆에는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종친․시종 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가 보이고 그 곁으로 단종대왕릉비와 비각이 그나마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제사 때 썼던 우물인 ‘영천’을 지나 정자각에 서면 겨우 봉분 위만 슬쩍 보이는 능이 애달프다. 능 주변의 드넓게 자리한 소나무 숲은 호젓하여 걸을 만하다. 장릉을 돌아 나오는 길에 단종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던 엄흥도를 기린 엄홍도정려각을 유심히 바라본다. 싸라기눈이 가볍게 뿌리는 길을 손을 잡고 걸어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에 새로운 미래를 펼쳐갈 아이를 꼭 잡아주고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어른을 그려본다.
△가볼 만한 식당
*장릉 보리밥집
장릉 주변 맛집으로 말린 옥수수와 소품을 아기자기하게 놓아두었고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이 갖는 정겨움이 있다. 방에 앉아 보리밥을 주문하면 얄팍하게 부친 메밀부침이 먼저 나오는데 함께 나오는 열무김치와 잘 어울린다. 큼지막한 감자가 들어간 감자밥과 짜지 않은 갖가지 반찬의 조화가 꽤 많은 양의 밥을 싹싹 비우게 한다. 반은 비벼먹고, 반은 반찬을 맛보며 깔끔하게 먹는 것도 좋다. 보리밥 8000원
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101-1
*메밀전병과 배추전
메밀전병은 메밀가루를 아주 묽게 반죽해 얇게 펴서 무, 배추, 고기 등을 넣고 말아서 지진 음식이다. 예전에는 좁은 골목길에 이곳저곳 자리했던 전병 집이 영월 중앙시장 건물 안에 쪼르르 모여 있다. 메밀전병이라도 강원도 지역마다 그 맛이 조금씩 다른데 영월은 매콤한 맛이 강하다. 그중에서 미소네맛집을 추천한다. 주인 할머니께서 인터넷을 못해 인터넷 주문은 불가하고 전화 주문 시에는 한 개에 1500원, 직접 가서 사면 한 개에 1000원이다. 살짝 절여 지진 배추전과 함께 먹으면 매콤과 심심함이 어우러져 별미다.
강원 영월군 영월읍 제방안길 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