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문 일본 통신원 gounsege@gmail.com
정년퇴직 이후의 삶, 제2의 인생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즐길 수 있을까?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 고민하며 그 실마리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의욕과 체력이 따라주는 젊은 시절부터 ‘취미의 씨’를 뿌려두는 게 중요하다. 취미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그 비결을 물으면 “젊었을 때 했던 취미생활을 다시 시작했다”고 대답하는 분들이 꽤 된다.
그러나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는 걸 방해하는 건 의욕도 체력도 아니고 ‘오래 계속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일지도 모르겠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기회이자 타이밍’이니 남은 삶에 지금까지 맛본 적 없는 ‘재미’와 ‘보람’을 선물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자기 삶의 ‘애호가’일 것이다.
일본 시니어들의 취미
일본에서는 고령자가 계속할 수 있는 취미로 주식, 등산, 워킹, 낚시, 독서, 자수, 골프, 볼링, 시쓰기, 체스, 데생, 원예, 역사, 장기, 분재, 서예, 유화, 과자만들기, 수묵화, 시계수집, 게이트볼, 꽃꽂이 등을 꼽는다. 크게 몸을 움직이는 취미, 머리를 쓰는 취미, 손동작이 필요한 취미 등으로 나눌 수 있겠다. 이러한 취미는 운동 부족을 해소해주고, 치매 예방에도 좋다. 또한 같은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넓혀주고 쓸쓸한 노후의 고독도 피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60대 남녀의 인기 취미 순위
350개 이상의 취미를 소개하는 일본의 ‘취미찾기닷컴’이 조사한 인기 순위를 잠깐 살펴보자. 먼저 60대 남성은 혼자 하는 여행, 사이클링, 오토바이, 재택근무, 사진, 전자공작(PIC), 절과 신사 순례, 주식, 워킹 순으로 조사됐다. 60대 여성의 경우는 혼자 하는 여행, 재택근무, 온천 순례, 절과 신사 순례, 워킹, 자수, 양궁, 등산, 심리학 순으로 인기가 있었다. 참고로 50대 남성의 취미로 사격, 50대 여성의 취미로 소설쓰기, 기타, 퍼즐 맞추기 등이 눈에 띄었다.
내 꿈을 찾아라~ 인생은 60부터
일본의 주쿄(中京) TV는 매주 일요일 아침 5시 45분부터 을 방송하고 있다. ‘아라칸’은 Around Kanreki의 줄임말로 칸레키는 우리말로 환갑을 의미한다. 이 프로그램은 환갑 전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꿈에 도전해 제2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힌트를 제안하고 있다. 이 방송에서 소개된 이색 취미 몇 가지를 소개해보겠다.
2015년 12월 6일 방송에서는 빙상 위의 컬링(curling)이 아닌 날씨와 관계없이 체육관에서 즐길 수 있는 ‘커롤링(curolling)’이 소개됐다. 20여 년 전 나고야에서 시작된 이래 경기 인구 40만 명을 자랑하는 인기 스포츠로 체력보다는 두뇌게임이라는 점에서 ‘마루 위의 체스’라고도 불린다.
2016년 1월 10일에는 미술 취미로 ‘어탁(魚拓)’이 소개됐다. 낚시를 좋아하지 않아도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어탁’은 기존의 수묵(水墨) 중심이 아니라 색채와 구도 등을 바꿔가며 다양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꼭 물고기가 아니어도 되며 모든 사물의 본을 떠서 작품으로 만드는 ‘탁화(拓畵)’라는 장르가 새롭게 소개됐다.
그다음 주인 1월 17일에는 카우보이 복장으로 차려입고 컨트리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컨트리 댄스가, 3월 13일에는 1960~1970년대에 붐이 일어나 일렉트릭 기타에 빠졌던 세대들이 밴드를 결성해 제2의 청춘을 만끽하는 모습이, 4월 17일에는 실제 동물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리얼 양털 퀼트 아트가, 8월 7일에는 다양한 무늬가 특징인 넥타이를 재활용해 가방과 인형 등을 만드는 리폼이 소개됐다. 이 밖에 9월 4일에는 경이로운 종이접기의 세계, 9월 11일에는 걸리버 여행기를 방불케 하는 미니어처의 세계, 10월 9일에는 종이를 오려내 그림을 만드는 ‘키리에(切り絵)’, 10월 23일에는 실제로 사람을 태우고 증기를 뿜으며 달리는 철도 모형 등이 소개됐다. 2017년에 들어와서는 우쿨렐레와 돌하우스(미니어처 장난감 집), 천사의 소리 핸드벨 음악, 볼펜 그림의 세계 등이 전파를 탔다.
이색(異色) 취미보다는 다양한 취미
인구가 많아지고 평균수명이 계속 늘어나면서 취미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 이색적이라는 이유로 주목을 끌던 취미들은 최근 덕후(마니아, 광)들이 등장하며 주류와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고 있다. 그만큼 취미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셈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 역시 새로운 취미에 도전해 개척하는 자세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자들에게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기보다는 치매 예방 차원에서 손가락과 뇌를 자주 사용할 수 있는 주산, 바둑, 장기, 손글씨, 그림, 색칠하기, 민요, 노래방, 꽃꽂이 등을 권한다. 간단한 요리를 만들게 하거나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시키는 것도 좋다.
몸 푸는 기분으로 이런 취미는 어떨까?
사단법인 일본 화살불기 레크레이션협회는 폐활량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취미로 화살불기를 권한다. 실제로 전국의 화살불기 교실에는 60~70대 회원들이 많은데 90세가 넘은 고령자도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수집이 취미인 사람들은 모으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수집한 물건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취미활동을 확대해보는 것도 좋겠다. 예를 들어 도자기 수집을 하는 사람이 도예 교실을 다니며 직접 만들어보거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해 실력을 인정받는 것은 어떨까? 또 인물과 동물, 자연 풍경 등 사진 찍기를 즐기는 사람은 독거노인의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등 자신의 취미와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는 재능기부 나눔을 실천해보는 것도 좋다.
이처럼 좀 더 관심을 갖고 주변을 살펴보면, 의외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취미들이 많다. 먼저 발품을 팔아 정보를 찾아보고 자신에게 ‘안성맞춤’인 취미를 선택해보자.
슬슬 발동을 걸어보자
지난 2014년 5월에 구성된 댄스 그룹 ‘TGK48’은 일본 기후 현 다지미 시의 고령자들이 만든 그룹이다. 그룹명은 일본의 인기 여성 아이돌 그룹 AKB48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다지미, 겐키(건강), 고레샤(고령자)’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었다.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마시고’를 기치로 내걸고 2016년 8월 60대 42명, 70대 21명, 80대 1명 등 총 64명(남성은 5명)으로 구성된 ‘TGK48’은 힙합도 소화하는 본격 댄스 그룹으로 공공시설을 빌려 일주일에 한 번씩 두 시간가량 연습을 하며 구슬땀을 흘린다. 최근 춤을 잘 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크고 작은 행사와 스포츠 대회에 출연,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고 있다. 강사 레슨비 등 연간 100만엔가량의 운영비는 다지미 시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고령자의 의료비와 개호비 등의 삭감과 관련해 길게 내다본 다지미 시의 획기적인 투자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2016년 3월 16일자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TGK48’ 멤버 35명의 체력을 측정한 결과 전 항목에 걸쳐 동세대의 일반인들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깜빡이는 빛을 보고 도약하는 데 걸리는 ‘전신 반응속도’는 무려 0.3초대로 20대 수준으로 나타났다. 5초간 빠르게 스텝을 밟는 ‘서서 스텝핑’의 평균 횟수도 60대 멤버가 40.1회, 70대 멤버가 37.7회를 기록해 젊은이 못지않은 결과를 보여줬다. 이들의 체력을 측정한 기후대학교 교육학부의 가스가 히카루 교수는 “힙합은 빠른 템포의 음악에 몸의 움직임을 맞추는 춤으로 신경에 좋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5월 6일 가정의 달을 맞아 ‘미즈실버코리아 2017 러브 패션쇼’가 개최된다.
서울 남산 한옥마을에서 열리는 ‘미즈실버코리아 2017 러브 패션쇼(이하 러브 패션쇼)’는 ‘나눔·봉사·배려’를 주제로 세대 간 소통과 나눔의 장으로 꾸며진다. 이번 행사는 상업적인 패션쇼의 개념에서 벗어나 시니어와 주니어가 함께 어울리고 즐기는 화합의 무대를 지향한다.
지난해에 이어 2회째를 맞이하는 러브 패션쇼에서는 전문 모델을 비롯해 미즈실버코리아 수상자, 시니어모델 등 40여 명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일반 모델 및 아마추어 모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특별 이벤트도 진행된다. 무대에서 선보이는 의상과 물품들은 불우이웃을 위한 바자회와 소외된 계층을 위해 쓰일 계획이다.
미즈실버코리아는 50세 이상 중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미(美)의 제전으로 경쟁의 차원을 넘어선 종합문화예술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다. 러브 패션쇼 관련 자세한 일정은 미즈실버코리아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사람이 털북숭이가 아닌 다음에야 살갗을 다치지 않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나아가 추위와 더위를 견디기 위해 거기에 맞는 옷을 마련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원숭이가 아닌 다음에야 질기고 편하고 보기 좋은 옷을 입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도 마땅한 일입니다. 하물며 사람인데 자기에게, 그리고 경우에 따라, 잘 어울리는 아름답고 멋있는 옷을 골라 입는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사람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마땅하고 사람다운 ‘옷 입는 일’이 그렇게 물 흐르듯 인간의 역사를 흘러오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는 어쩌면 앞에서 서술한 흐름의 역류(逆流)라고 해도 좋을 법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옷 문화’는 참 서술하기도 복잡하고,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옷 입는 일에 대한 아무리 짧은 발언을 해도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공감하는 자리를 넓히기보다 오히려 불편하게 얽히고설키는 언짢음을 낳곤 합니다.
사람이 아닌 옷이 주체가 된 세상
생각해보십시다. 우리는 옷 입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말들을 합니다. 이를테면 남자가 여자처럼 입었다느니(반대도 마찬가지이고), 늙은이가 젊은이처럼 입었다느니(이 또한 반대도 마찬가지이고), 감히 귀한 분 옷매를 흉내 낸다느니(반대로 자기가 언제부터 서민이라고~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아예 다 벗지 저걸 옷이라고 걸쳤느냐느니(반대로 아예 옷을 입었다 하지 말고 둘둘 감았다는 게 낫지~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1960년대 복고풍이라느니(반대로 우주시대 첨단 모습이라느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품위가 돋보인다느니(반대로 속물처럼 보인다느니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하는 말들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처럼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준거로 한 의상문화의 서술이 무의미하게 된 새로운 이른바 ‘패션담론’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담론의 준거가 무언지 가늠하기가 무척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유행’이라고 일컬어지는 그것이 무섭게 강한 규범적 가치로 누구나의 옷 입음을 판단하여 누구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새 패션 담론에 어울리지 않는 이전을 준거로 한 패션 서술이 얼마나 적합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한데 그렇기는 하면서도 아직은 이런 묘사를 아주 접고 싶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준거로 하든지 어울림과 그렇지 않음을 통해 옷 입는 일에 대해 발언하는 일은 멈추지 않을 거니까요.
그런데 좀 갸우뚱해지는 것은 이런 ‘옷 담론’을 듣다 보면 ‘옷’과 옷을 입는 ‘사람’의 자리가 묘하게 바뀐 것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주체가 되어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입은 옷’이 사람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요즘 우리네 삶에서 ‘옷 입는 문화’란 사람이 주체가 되어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이 주체가 되어 사람을 드러내면서 그를 판단하고 설명하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고 해야 옳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하는 사실이 묘하게 저를 편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이 불편함이 무언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로워야 할 ‘옷’ 입기
아무튼 아름다운 옷을 입으면 그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고, 비싼 좋은 옷을 입으면 그 사람이 부귀하게 보이고, 이른바 멋스럽게 옷을 입으면 그 사람이 세련되어 보이고, 후줄근하게 입으면 그 사람은 좀 모자라다고 판단되며, 꾀죄죄하게 옷을 입고 있으면 오갈 데 없이 그 사람은 그만큼 너절하게 보입니다. 이는 지금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대체로 우리는 그렇게 판단하며 살고 있고, 그런 판단에 상당한 긴장을 하면서 옷을 입으며 살아갑니다. ‘옷을 통한 사람의 규정’이라고 할 수 있을 이러한 현상은 유니폼 문화에서 아주 직접적으로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좀 과장을 하자면, 특정한 기능 수행을 위한 제복이 마련되면서 그 자리에서는 그 유니폼을 벗는 순간 아예 그것을 입었던 사람조차 사라져버립니다. 존재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아름다움이라는 유니폼, 부귀하다는 유니폼, 멋있다는 유니폼, 때로는 타의에 의해 후줄근하고 꾀죄죄하다고 여겨지는 유니폼, 그런데 그것이 세월 따라 흐르면서 끊임없이 바뀌는 그러한 옷 문화를 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기가 실제로 그렇든 말든 그러한 유니폼을 입고 또는 그런 유니폼을 입으려 애쓰며, 아니면 입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도 또한 다른 형태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필요의 발전만이 옷 문화의 진전’을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옷이 사람을 규정한 것이 오히려 진정한 옷 문화의 전개였던 것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를 잘 드러내주는 것이 아득한 때부터 전해지는 ‘옷이 날개’란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옷 정의에 의하면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내가 내게 날개를 다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를 우리가 승인한다면 어떻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일이 그리 큰 문제일 까닭은 없습니다. 어차피 어떻게 옷을 입어도 옷 입음이 내가 내 날개를 다는 일이라면 아름답게, 부귀하게, 세련되게 입어 그 날개로 내가 꿈꾸는 가장 높고 넓고 자유로운 하늘을 날 수 있도록 하면 되니까요. 옷이 시원찮아 날개 꺾인 새처럼 살 수는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옷 입음이란 결국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유롭기 위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자유롭기 위해 옷을 입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옷 문화가 옷 입음에 대한 어떤 담론을 어떻게 펼치든 간에 아직도 우리가 여전히 옷을 입는 주체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유를 위한 비상(飛翔)이 옷 입기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날개가 날개다워야 합니다. 치덕치덕 온갖 치장으로 날개를 무겁게 하면 그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날 수는 없습니다. 날개가 먼저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또한 내 날개로 날아 자유로울 수 없는 자리나 때라면 그 하늘로 그때 굳이 날 필요도 없습니다. 날개를 바꾸든지 그때나 그곳을 피하거나 포기하든지 둘 중의 하나에 대한 선택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앞에서 지적한 불편함의 까닭을 조금은 서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옷이 사람을 규정하는 일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나도 모르게 내 자유에의 희구를 억제하기 때문일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옷 입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옷 입는 일에서의 이른바 ‘파격(破格)’이 그 자유를 보장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정석(定石)’의 정장(正裝)이 그 자유의 드러남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옷의 주인이 되는 일이 옷의 예속에서 벗어나 내 하늘을 확보하는 자유의 우선하는 규범이었으면 좋겠다는 무척 고루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의 관성적으로 사람의 자리가 아니라 옷의 자리에서 사람을 봅니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내 옷을 챙겨 입습니다.
>>정진홍(鄭鎭弘) 서울대 명예교수
1937년 충남 공주 출생. 공주중, 대전고, 서울대 종교학과 졸. 서울대 대학원 석사, 미국 유나이티드 신학대학원 석사,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 박사. 서울대·한림대·이화여대 교수 역임. 현재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울산대 철학과 석좌교수,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72세에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또 있을까? 연보라색 머릿결이 눈부신 고은아는 지금도 매력 발산 중이다. 여성의 미를 탐닉할 줄 아는 뭇 남성들이라면 그녀를 보는 순간 심장이 몇 초간이라도 멈출 수밖에 없으리라. 고은아와 띠동갑(46년, 58년 개띠)인 한량 이봉규도 사무실(서울극장 7층)에서 그녀를 만난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고은아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아름다움에 놀란 표정을 감추기 급급했다. 필자의 이런 속내를 들킬까봐 재빨리 질문했다. “머리는 염색하신 겁니까? 연보라색 머리 색깔이 너무 잘 어울리십니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염색은 전혀 하지 않고 그냥 컬러린스를 사용하는데, 남대문 시장에 가면 살 수 있다”고 나름 비법을 공개한다. 머리를 감을 때 컬러린스로 행구기만 하면 된다는 것. 그러면 사람에 따라 갈색이나 짙은 회색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녀는 신비하게도 연보라색으로 나온다니 머릿결마저도 축복받은 미인이다. 지금도 매력을 발산 중인데 하물며 꽃다운 22세 그녀를 사로잡아 결혼에 골인한 곽정환 감독은 최고의 행운아다. 나이도 16세나 많고 결혼했던 경력이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2013년 하늘나라로 먼저 간 곽정환 감독 일생일대 최고의 성공 작품은 고은아와의 결혼일 것이다. 지금도 남편과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먹고산다는 그녀의 세세한 증언으로 미루어볼 때 고인 생전에 부부 금실이 얼마나 좋았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곽 감독은 친한 후배 김기덕 감독(1934년생, 대표작 의 결혼식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는 대학생 고은아를 처음 본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때부터 곽 감독은 결혼 시나리오를 썼을 것이다. 그 후 자신이 대표로 있던 ‘합동영화사’의 작품에 여주인공으로 그녀를 발탁하고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충실히 했다. 합동영화사 사무실에서 개런티 협상을 할 때 그녀의 태도가 불만이었던 영화사 측 고위층은 당시 신인이었던 고은아에게 고성을 지르면서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 신인인 주제에 너무 터무니없이 비싼 개런티를 불렀기 때문이다. 그때는 매니저 없이 배우가 직접 협상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녀는 배우를 천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배우생활도 하기 싫어 이판사판으로 높게 불렀다고 한다. 그때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그냥 고은아가 달라는 대로 줘!”라며 방금 전 자신을 윽박지른 남자에게 명령을 하더라는 것. 알고 보니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은 전무였고 문 열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사장 곽정환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키다리 아저씨의 보살핌은 계속되었고 어느새 고은아의 마음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곽 감독의 다음 작전이 펼쳐진 것은 그 무렵. 느닷없이 고은아의 집을 방문해 어머니에게 “따님과 결혼하겠습니다”라고 선전포고를 했다는 것이다.
얼핏 봐도 나이가 많은 중년 신사가 느닷없이 찾아와 22세밖에 안 된 딸과 결혼하겠다고 하니 어머니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멍하게 있던 어머니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 거야?” 딸이 진정으로 이 남자와 결혼하기를 원하는지, 둘 사이가 어디까지인지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고은아는 한참을 고민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어머니와 그 사람 둘 다 상처를 받지 않을까. 결국 그녀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할게요!”라고 대답했다. 고은아의 지혜롭고 영특한 대답에 어머니는 금쪽같은 딸의 결혼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곽정환이 이미 수차례 프러포즈한 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툭하면 밤샘 촬영을 해대는 고된 생활에 지쳐서 집에 들어와 잠자리에 누우면 어김없이 곽정환에게 전화가 왔다. 화술이 좋았던 곽정환은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고은아는 듣다가 그만 피곤해서 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한참을 자다가 깨도 수화기 속에서 그의 음성이 계속 들렸다. 그럴 때면 비몽사몽간에 추임새처럼 “네~”를 연발하다가 또 잠이 들곤 했다. 당시 통화를 하면서 곽정환이 결혼하자고 여러 번 한 말을 그녀가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잠결에 “네”라고 했는데, 곽 감독이 이를 프러포즈에 응한 것으로 알고 정식 허락을 받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갔던 것.
결국 그의 진심에 하늘도 감동한 듯 첫 대면에 어머니의 마음까지 녹였다. 고은아의 어머니는 경기여고를 졸업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신여성이었다. 이런 어머니였기에 딸의 사랑을 존중해주고 16세나 나이가 많고 재취자리인 결혼을 흔쾌히 허락하지 않았을까? 결국 어머니의 판단은 옳았고 부부는 행복하게 살았다. “부부 금실이 좋을수록 한쪽이 먼저 가면 남은 사람은 금방 새살림을 차린다”는 어설픈 구전을 믿고 도발 질문을 던졌다. “100세 시대이고 아직도 아름다우시니까 다른 멋진 남성분과 제2의 인생을 살아도 되지 않나?”라고 따지듯 물으니, “남편은 여러 역할자로서 이미 제2, 제3, 제4의 인생을 살게 해주었다. 때로는 오빠로서, 때로는 친구로서, 낮에는 직장 상사로서, 밤에는 연인으로서 매순간 버라이어티하게 행복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이성으로부터의 사랑은 필요치 않다”고 힘주어 말한다.
인터뷰하면서 그녀 사무실 벽면을 보니 각종 감사패와 트로피가 가득하다. 그동안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온 것을 여러 단체에서 알아준 결과다. 2003년부터 생명창고(현 행복한나눔) 대표로 활동하면서 기독교 나눔 문화를 확산하는 데 앞장서 왔다. 또한 파키스탄, 북한, 인도, 아프리카 등 해외 긴급구호 봉사활동을 해왔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정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전부 하나님의 간섭이었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아버지가 기도하다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만큼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를 둔 모태신앙인 고은아. 그러나 대체로 모태신앙인이 부모 따라 마지못해 교회에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그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언니들의 성화에 못 이겨 기도원에 따라갔다. 그때 고은아는 대낮에 산속에서 벌어지는 기도원의 일련의 행태를 보고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실망감에 기도원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런데 그 순간 목사님이 반말로 “너 왜 가니?”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당시 꽤 유명한 영화배우였기에 “나를 몰라보는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고 의아해했다. 그녀는 이런 사람에게 자신의 머리를 내주고 기도를 받을 수가 없어 기분 나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몇 분이 흐른 뒤 어머니와 언니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할 수 없이 기도를 받았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번개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아! 내가 교만했구나! 내 인생 전체가 교만으로 얼룩졌구나!” 그러고는 처절한 반성과 함께 참회의 기도를 올렸다. “앞으로 저의 ‘인기’라는 것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녀의 맹세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몇 달 후 기독교방송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직감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시작한 방송이 공개신앙고백 프로그램 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6년 정도 그 방송에만 몰두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충무로 영화계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지금은 남편의 유업인 서울극장 대표와 행복한나눔 이사장으로서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몇 달 전부터는 첼로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72세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발산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녀의 인생이 신앙과 봉사로 다져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의 본명은 이경희인데 영화계에 들어오면서 예명을 고은아로 지어준 분이 “일생을 내가 지어준 이름대로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단다. ‘고은 아이’라는 의미의 이름처럼 앞으로도 그녀의 인생은 곱고 아이처럼 순수할 것이다.
글박원식 소설가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귀촌을 하자고, 시골의 자연 속에서 노후의 안락을 삼삼하게 구가하자고, 흔히 남편 쪽에서 그런 제안을 먼저 내놓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는 발칙한 발상이라 규탄당하기 십상이다. 아내에 의해서 말이다. 무릇 여자란 명민하게 머리를 쓰는 버릇이 있는 종족이다. 감관이 발달한 이 고등한 생물체는 도시의 아파트라는 쾌적한 온실과 결별하고 시골이라는 야생으로 이주하는 ‘거사’에 따라붙을 온갖 불편과 고생을 미리 훤히 내다본다. 일테면, 시골엔 손쉽게 쇼핑을 즐길 마트나 백화점이 없으며, 우아한 사교를 즐길 문화공간도 열악하고, 자칫 고독을 벗 삼아야 할 신세로 전락할 우려가 있으며, 그 무엇보다 풀이나 해충에게 시달릴 일이 정말이지 몸서리치게 싫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대뜸 반기를 들 공산이 크다.
그럴 경우, 귀촌을 선창한 남편은 머리칼을 득득 쥐어뜯으며 부르짖는다. “아아, 괴롭고 괴롭도다. 마누라는 어쩌면 그토록 나와 취향과 이상이 다르단 말인가? 이는 무슨 잔인한 운명의 농간이란 말이냐!” 소나기처럼 쏟아지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비감에 젖어 속으로 악을 쓰는 것이다. 이쯤에서 어떤 남편들은 자신의 불운을 타박하며 귀촌의 꿈을 허공으로 날려 보낸다. 귀촌생활에의 도도한 로망과 세찬 영감에 사로잡힌 어떤 남편들의 경우엔, 불굴의 의지를 발동해 아내를 기차게 구워삶을 정교한 방책을 새삼 모색한다. 당나귀처럼 드센 고집으로 한사코 도리질을 하는 아내를 설득할 만한, 자못 그럴싸한 유인책을 진지하게 숙고하는 단계에 들어간다. 이 단계에서 충분히 합리적이고 매력적인 청사진을 개발할 경우, 그는 비로소 성공을 거둔다.
나는 지금 경북 예천 풍양면의 시골마을에 있는, 정진성(69)씨 내외가 사는 집 거실에 앉아 있다. 정씨의 귀촌은 순탄한 과정을 밟았다. 상당수의 귀촌 부부들이 난해하고도 예리한 충돌과 협상을 거쳐 어렵사리 귀촌에 이르지만, 그는 아내의 갈채와 자비에 힘입어 쾌조의 시발을 했다는 게 아닌가.
부부가 의기투합한 귀촌
서울에서 살았던 정씨는 침상에서 벌떡 일어난 어느 날 아침,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이색적인 생각이 퍼뜩 머릿속에 떠오른 걸 알아차렸다. 서울을 냅다 걷어차고 시골로 내려가고 싶다는 충동이 초저녁별처럼 영롱하게 들솟았던 것이다. 인파와 차량이 들끓고, 소음과 미세먼지가 난무하고, 계산과 꿍꿍이가 창궐하는 대도시, 그 머리 아픈 정글을 탈출하고 싶다는 기분을 느꼈던 거다. 이 심상치 않은 기분은 점점 자라 확고한 신념으로 비약했다. 이후 그는 드디어 아내에게 귀촌을 제안했다. 아내 전용숙(64)씨의 반응은 뜻밖에도 매우 우호적이었다. 선선히 동의했으니까 말이다. 결과적으로 정진성씨는 귀촌을 둘러싼 아내와의 논쟁이나 힘겨루기를 일거에 면제받은 셈이다. 그렇게 단숨에 의기투합해서 부부가 시골에 내려온 게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의 일. 아내 전용숙씨의 얘기를 들어볼까.
“보통은 여자들이 귀촌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시골로 가자는 남편의 제안이 차라리 고마웠어요. 남편이나 저나 서울생활에 흥미를 잃어가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서울을 떠나 조용한 시골에서 노후를 보내는 게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게다가 제가 자연을, 그중에서도 꽃을 매우 좋아하는 취향이라서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지요. 귀촌을 하면 실컷 꽃을 가꾸며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어요.”
“꽃의 그 무엇을 매우 좋아하죠?”
“음. 꽃은 그 아름다운 모습이나 향기 자체로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비바람 같은 심한 고통을 겪으며 피어난다는 게 참 좋아요. 크거나 작거나, 소박하거나 화려하거나, 모든 초목마다 제 나름의 역경을 이겨내고서야 꽃을 피우니까. 그런 점에서 저는 꽃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습니다.”
“남편께서 귀촌을 발상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서울생활이 주는 피로감이 한계에 이르렀던 것 같아요. 남편은 토목 기술자로 평생 공사 현장에서 뛰었어요. 대림산업 부장으로 재직했던 1996년엔 석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유능한 엔지니어로 토목 현장을 누빈 사람이었죠. IMF 직후엔 심각한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자부심을 갖고 직분에 최선을 다했다고 봐요. 엔지니어에겐 정년이 없습니다. 일흔 살이 넘어서도 직장생활이 가능하죠. 그러나 6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심신에 공히 무리가 오기 시작했어요. 특히나 비즈니스상의 술자리가 잦아 더 이상 일을 계속하다간 몸부터 무너질 거라 판단했던 것 같아요. 그즈음 귀촌을 착상했는데, 다행히 남편의 고향에 시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뒤로 10년째 비어 있는 집이 있어 결정과 실행이 빨랐어요. 그러고 보면 저희는 귀촌이자 귀향을 한 경우라 봐야겠죠.”
“예수조차 고향에선 배척당했다고 해요. 노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부부에게 쏠렸을 이웃들의 각별한 관심이 불편하진 않았나요?”
“텃세랄까, 그런 거 말이죠? 처음 그런 문제에 염려가 없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어요. 워낙 인심 좋고, 반듯한 풍속이 정착된 시골이라서 오히려 과분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남편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매우 사교적인 성격이라 융화가 쉬었던 것 같아요. 남편은 현재 우리 마을의 노인회장이에요.”
전용숙씨 내외가 사는 집의 풍색은 소탈하다. 시부모님들이 살았던 당시의 구색을 가급적 그대로 놓아두거나 살려냈다. 꼭 필요한 부분에만 약간의 손질과 약간의 단장을 했을 뿐이다. 인간이 마침내 한 줌 흙으로 돌아가듯이, 집이라는 사물 역시 결국은 자연으로 귀환하는 법이니 굳이 거창한 인위를 가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햇볕이 물살처럼 찰랑이며 들이쳐 화단의 풀꽃들을 어루만지는 광경을 바라볼 수 있는 마당이 있으니 이미 만족스럽고, 대기의 입자를 흔들며 불어오는 솔바람, 강바람이 무시로 드나들 수 있는 유리창이 있기에 더욱 흡족하다는 게 전씨의 생각인 것 같다. 그녀가 시골살이 3년을 통해 배우거나 얻은 것 중에 최상의 것은 무욕(無慾)이 주는 마음의 평안이라지.
시골생활이 부여하는 절호의 기회들
집 뒤편으로는 제법 너른 텃밭이 딸려 있다. 12월의 텃밭은 철 지난 해변처럼 썰렁하지만 온기라 할 만한 기운이 여전히 감돈다. 서울에서 아파트 베란다에 꽃을 키워 자연과 땅에 대한 갈증을 간신히 채웠던 전씨에게 시골 텃밭은 숫제 낙원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그녀는 갖가지 작물을 심어 기른다. 풀을 뽑아내는 일이 고역스럽다기보다는 미안스러워 내심에서 우러나는 애도를 보낸다. 텃밭이니 가혹할 정도의 노동은 필요치 않다.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이 아니기에 소출에 욕심을 낼 까닭도 없다. 그럼에도 비지땀을 흘려 공을 들이는 건 작물들이 갓 태어난 손주나 노랑 병아리와 다를 바 없는 애틋한 생명체라는 생각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텃밭 농사를 서정적으로 즐긴다. 도시의 여자들이 찜질방에서 즐기듯이, 찻집에 둘러앉아 애먼 남편들의 흉을 푸짐하게 늘어놓으며 수다를 즐기듯이, 그녀는 텃밭에서 유유하게 노닌다.
텃밭보다 더 오래, 더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오락은 꽃밭에서 구현한다. 그녀는 해마다 30여 종의 화초를 가꾼다. 꽃철이면 울안에도 울밖에도 온통 꽃이다. 경북대 농대에서 원예학을 전공한 그녀에게 꽃은 만고에 친애할 만한 동무다. 유심한 눈길로 꽃을 바라봐 꽃과 바람이, 꽃잎과 햇살이 어떻게 속삭이는지를 재빨리 간파한다. 폭풍에 찢긴 꽃대의 고통을 마치 자신의 고통처럼 느낀다. 만개한 꽃들의 환희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 마음에 기쁨을 담뿍 담는다. 그렇기에 시골의 나날은 태반이 꽃날이렷다. 이런 자각을 할 때면, 그녀는 서둘러 일찌감치 귀촌을 하지 않은 것을 살짝 아쉬워한다.
“서울에 살 때 실내원예연구회라는 단체에서 활동했어요. 실내조경협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고요. 문화센터 원예 강좌에 강사로 나가기도 했어요. 꽃을 즐기며 다양한 경험을 했던 거예요. 원예치료사 자격증도 있어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원예치료 봉사활동도 했습니다. 일상 안에 꽃 사랑이 들어와 있을 경우, 한결 안정되고 조화로운 생활이 가능한 것 같아요.”
“꽃을 너무 편애하는 건 아네요? 사람도 꽃 아닌가(웃음)?”
“맞아요. 사람과 꽃이 다를 게 없다는 걸 시골에 살며 더 실감해요. 일부 도시 사람들은 요즘의 시골 인심도 도시와 다를 게 없다고 보지만 그건 사실과 달라요. 적어도 우리 마을에선 그래요. 뭐든 나누고 돕는 풍속이 여전하거든요. 귀촌한 뒤 원주민들에게 배척당하는 사람들이 있다죠? 그건 시골의 바탕에 깔린 나눔의 정서에 부응하지 못한 탓이라 봐요. 무조건 나누고 베풀어야 해요. 그런 처신이 손해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결국은 이득을 얻는 현명함이라는 걸 아셔야 해요.”
“시골생활이란 이웃들과 나눌 줄 아는 실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라는 얘기로 들립니다.”
“절호의 기회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제가 저 자신에게 바라는 인간상은 이웃에게 쓸모가 있는 인간, 바로 그런 것이에요. 나만을 중심에 놓는 이기심에 매몰되지 않고, 남들의 어려움이나 외로움에까지 손을 뻗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산다면, 그건 참 잘 사는 인생이지 않겠어요?”
남을 진심으로 배려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의 마음이 이미 평온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뜻할 게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망둥이는 자주 길길이 날뛰어 소란 속으로 들어간다. 이와 같은 마음의 동향을 주시해서 단속할 수 있는 기회를 시시때때로 부여받을 수 있는 게 귀촌생활이라는 게 전씨의 생각인 것 같다. 사실 시골생활을 무난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생각과 마음의 스케일을 확대해야 한다. 마을 전체를 나의 집으로, 마을 사람 전부를 내 가족으로 바라보는 광폭의 마음, 그리고 소소한 풀꽃에까지 연민을 느낄 줄 아는 감성까지 가세한다면 귀촌의 나날들은 안전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
“시골에 살며 저는 많은 걸 얻었어요. 서울에 살 때엔 부부간에 대화가 거의 없었지만 여기 내려온 뒤부터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요. 그렇다 해도 남편이라는 존재는 영원한 미스터리이지만, 남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포기할 건 딱 포기해버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어요. 서울에서 지출했던 생활비의 절반쯤이면 너끈히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이점도 매력적이죠. 천성이 게으른 사람들에겐 오직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을 갖가지 노동도 운동이나 춤처럼 즐길 줄 아는 힘이 생겼고요, 덕분에 건강도 좋아졌어요. 남모를 애환? 숨기고 싶은 고민? 그런 게 전혀 없을 수 있겠어요? 인간이란 사실 굉장히 불안하고 모순적인 존재잖아요? 마음에 소용돌이가 칠 때면 강변을 산책해 속을 비워냅니다. 우리 마을의 멋진 강변 풍경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함께 걸어보실래요(웃음)?”
전씨 내외가 앞장서 강변으로 향한다. 첼로의 저음처럼 깊어가는 12월의 강변 오솔길. 강가에 늘어선, 잎 떨군 나무들엔 실존의 깊이가 있다. 군더더기를 다 털어버리고 본질만 남은 모습으로 비쳐서. 사람이 어떻게 저 겨울 나목의 허심(虛心)을 온전히 닮을 수 있을까마는, 가급적 비우고 또 비우라는 소식은 비처럼 쏟아진다. 전용숙씨가 누리는 소박한 시골생활의 즐거운 지향도 비우기에 있다는 것이고.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 , 등의 저서가 있다.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빠르게 흘러간다고들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빠릅니다. 참 빠릅니다. 어느덧 또 새해입니다. 지난 설이 어제 같은데 또 새 설입니다. 날이 빨리 지나기를 손가락 세며 기다려도 더디기만 했던 어렸을 적 새해맞이를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경험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세월 흐름의 빠름을 느낀다는 것은 결국 그 느낌 주체인 내가 지극히 정태적이지 않으면 지닐 수 없는 일입니다. 세월은 흐르는데도 나는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 따라 내 삶이 흘렀다면 흐름의 빠름을 느낄 까닭이 없습니다. 흐름을 좇지 못하는 더딤이 세월의 빠름을 새삼 실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어렸을 적 기다림은 어쩌면 그때 그 어린아이의 삶이 세월보다 더 빨리 앞으로 내달렸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월이 더디어 견딜 수 없어 어서 세월이 내 삶을 좇아오라고 손가락을 꼬박꼬박 꼽았을 것입니다.
글쎄요. 늙어감을 무어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는 그랬더군요. 몸이 회복 불가능하게 퇴행 과정에 들어서는 것이 노화(老化, aging)라고요.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떨지요. 세월을 좇을 수 없이 삶이 더뎌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 노화라고요. 새해가 되어서 그런지 갑자기 그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나이 들며, 해를 넘기며, 어쩌면 세월은 흐르는데 삶은 쌓여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흐르지를 않습니다. 그것을 소용돌이에 빠져 허덕이는 것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늪에서의 침잠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새해를 맞으면서 일상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던 온갖 회한이 새삼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원하지 않았는데도 문득 나도 모르게 멈춰 서서 지난 세월을 마디마디 되새겨보게 되는 것은, 그러다가 참 세월이 빠르다고 읊조리는 것은, 세월을 좇아 흐르지 못하는 내 삶의 무게 탓인 듯한데, 삶이 이렇다는 것을 서서히 곱씹으면서 마침내 나는 늙음의 마디에 깊이 스며드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그렇겠습니다만 모든 것이 더뎌집니다. 초조하기는 한데 서둘지는 못합니다. 되 지을 수 있다면, 한꺼번에 세월을 뒤집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내 몸이 먼저 내게 전해줍니다. 지난 삶은 그것대로 귀하지 않은 까닭이 없으니 그것을 내 자존(自尊)의 바탕으로 삼아 의연하게 뚜벅뚜벅 걸어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내 걸음은 전진도 아니고 후진도 아닌 다만 게걸음의 궤적을 남기고 있음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압니다. 마지막 발견한 감동스러운 황혼의 아름다움조차 기려 오래 그 찬란함에 머물고 싶지만 세월을 좇을 수 없어 내 삶은 그저 그 아름다운 황혼의 끝자락도 잡지 못한 채 머뭇거리다 곧 어둠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은 빠른데 삶은 왜 이리 더딘지요.
가끔 시간을 계측(計測)한 인간의 지혜가 원망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시간 안에 있으면서도 시간에 예속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던 인간이 마련한 시계에서 역(曆, calendar)에 이르는 ‘온갖 시간을 재단하여 이를 관리하고자 했던 묘책’이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세월의 빠름과 삶의 더딤이 빚는 황당한 당혹이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실제로 그러한 삶이 없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정이 다릅니다만 전통적인 아프리카 문명에서는 캘린더가 없었습니다. 자연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생각입니다. 나이를 헤아린다는 사실 자체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시간과 삶은 더불어 진행합니다. 그 둘이 따로 놀 까닭이 없습니다. 물론 세월을 헤아리는 어떤 ‘단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시간 계측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달이나 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내가 장가를 든 다음에…”라든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라든지. 연대기는 없습니다. 자신의 삶이 ‘끊어지고 이어지는 마디’들을 그렇게 일컬으면서 그들은 자신의 삶과 세월을 함께 살았습니다. 더딘 삶도 없고 빠른 세월도 따로 없습니다. 흐르는 세월과 쌓이는 삶이 삐거덕대지도 않습니다.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을 단절하여 끝이라 하고 또 시작이라 하면서 삶을 기막히게 경영하여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한 것은 경탄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낡은 해는 가고 새해가 온다고 하면서 새해를 기리고 새로운 다짐으로 삶을 다시 짙게 채색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가뜩이나 퇴색이 짙은 노년에게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축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축복조차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길 만큼 빠른 세월과 더딘 삶에 시달린다면, 참 많은 경우 그러한데, 우리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월을 좇아 시원하게 함께 흐르면서 더디고 빠른 계측을 아예 넘어서면서 내 삶이 펼쳐질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문명이 남겨준 흔적처럼 그런 시간 계측의 단위를 마음에 두어보는 것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지나치게 연대기에 의해 침윤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이런 것은 어떻겠습니까? 지난해가 없듯이 새해를 맞을 수는 없을까요? 어제가 없듯이 오늘을 시작할 수는 없을까요? 올해를, 오늘을, 생전 처음 맞은 해로, 날로, 그렇게 여기며 살 수는 없을까요? 올해 만난 사람들, 오늘 만난 사람들을 전에 전혀 만난 일이 없는 새 사람으로 만날 수는 없을까요? 모든 일들도 그렇게 부닥치면 어떨지요? 그리고 이 처음 해와 처음 날을 더 다시없는 마지막 해로, 끝 날로 삼을 수는 없을까요? 내일이, 또 다른 새해가 없듯이요.
그럴 수 없는 저리게 아쉬운, 지난 또는 기다리는 세월과 삶이 있으시다면, 그것 여전히 붙들고 조금은 더디지만 게걸음으로라도 세월 따라가며 살겠다고 하시면,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귀하고 귀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처음 만남의 황홀한 신비가 아직 내 몸에 남아 있다면, 그래서 내일 다시 만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오늘 한껏 행복했다면, 오늘 새날에 옛날 만났던 사람을 처음 만나는 사람으로 만나는 일을 한번 감행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그렇게 황홀하게 하루를, 한 해를 마음껏 지내시면 혹시 세월이 삶 속에 스미어 스스로 빠름을 누그러트리면서 내 삶을 받쳐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세월이 빠르든 삶이 더디든 노년은 길지 않습니다. 맞는 새해가, 새날이, 모두입니다. 실은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는 것이 노년의 하루입니다. 감히 고백하건대 저는 올해, 한 해 동안 주어진 날들을 ‘그날만’으로 삼아 황홀하게 살고 싶습니다. 쌓이는 앞뒤 아무것도 없이요.
지난해가 없듯이 새해를 맞을 수는 없을까요? 어제가 없듯이 오늘을 시작할 수는 없을까요? 올해를, 오늘을, 생전 처음 맞은 해로, 날로, 그렇게 여기며 살 수는 없을까요?
>>정진홍 울산대 석좌교수
1937년생인 정진홍(鄭鎭弘)은 종교학을 공부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있다가 은퇴했다.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지금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울산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 , , , , 등 20여 권의 저서가 있다.
글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knbae24@hanmail.net)
2017년 정유년(丁酉年)의 새해가 밝았다. 힘찬 닭 울음소리로 새해를 희망차게 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닭띠 연예인들이다. 닭띠생은 지능과 지모에 뛰어나고 앞을 내다보는 예견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날카롭고 단정하며 체계적이고 결단력도 있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이 때문에 연예인 스타 중에는 닭띠가 유독 많다.
정유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겠다는 닭띠 연예인은 누구일까. 대중과 만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2005년생 12세 아역 스타 김유빈에서부터 1933년생 84세 원로가수 명국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연예인이 닭띠다.
가장 어린 2005년생 12세 닭띠 연예인에는 아역 스타 김유빈, 김지영, 홍화리와 리틀 싸이 황민우 등이 있다. 1993년생 24세 닭띠 연예인은 드라마 , 으로 스타덤에 오른 박보검, 가수와 연기자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아이유·정은지, 국민 남동생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펼치고 있는 유승호가 있다. 이 밖에 1993년생 닭띠 연예인에는 힙합 스타 비와이, 최고 아이돌 그룹 엑소의 디오,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로이킴과 백아연 등이 있다.
1981년생 36세 닭띠 연예인 중에는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톱스타들이 아주 많다. 요즘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는 드라마 에서 여자 주인공으로 나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최고 인기를 얻고 있는 톱스타 전지현, 등 수많은 영화에서 강력한 흥행 파워를 자랑하고 있는 최고 미남 스타 강동원,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여성들의 절대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조인성이 대표적인 36세 닭띠 연예인이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사랑을 받으며 드라마 OST 여왕으로 등극한 거미와 린, 저음과 고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목소리 하나로 대중을 감동시킨 9연승에 빛나는 록밴드 국카스텐의 하현우, 매력적인 목소리로 여성 팬들의 가슴을 뒤흔드는 박효신과 케이윌, 여자 힙합 뮤지션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윤미래, god 출신으로 시원한 가창력이 강점인 김태우 등이 36세 닭띠 가수들이다. 원조 걸그룹 SES의 요정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유진, 드라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소유진, 예능과 드라마를 오가며 활동하는 송지효, 강렬한 연기로 존재감이 확실한 김래원, 부드러운 감성을 드러내는 이상윤, 훈남 이미지의 이동욱은 36세 닭띠 연기자이고 개그맨 허경환도 1981년생 닭띠 연예인이다.
1969년 48세 중년의 나이에도 대중에게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닭띠 연예인도 적지 않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코믹 연기는 물론 중후한 연기까지 해내며 다양한 캐릭터 연기를 소화하고 있는 김승우, 작곡가·가수·예능 프로그램 MC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윤종신과 주영훈,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선도하는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 모델 출신 연예인 이소라, 높은 인기를 누리며 연기자로 맹활약하고 있는 하희라, 신애라, 윤유선이 48세 닭띠 연예인이다.
신세대 스타를 능가하며 전방위 활동을 펼치고 있는 1957년생 60세 닭띠 연예인도 많다. 최근에도 신곡을 발표하며 가수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노사연과 최진희, 이용, 김수철, 팔색조 연기로 시청자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송승환, 김갑수, 강석우, 김보연 등이 대표적인 60세 닭띠 연예인이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영화, 무대 등을 통해 대중과 만나는 1954년생 72세 닭띠 연예인은 조영남, 임현식, 선우용녀, 현철, 이상해, 박인환, 박인희, 박일남, 장용, 최주봉, 김도향, 서유석 등이고 84세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여전히 무대에 서는 원로가수 명국환, 원로 코미디언 임희춘 등은 1933년생 닭띠 연예인이다.
2017년 정유년, 자신의 해를 맞은 닭띠 연예인들의 새해 포부는 무엇일까.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무대와 방송에 계속 출연하겠다. 84세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가수로서 열정과 노래에 대한 애정, 그리고 팬이 존재하는 한 노래를 부르겠다. 2017년에는 닭띠 해인 만큼 더 많이 활동하겠다.” 원로가수 명국환의 새해 포부다.
조연 연기자로 최고의 위치에 오르며 수많은 드라마에서 감초 연기로 빛을 발하고 있는 중견 스타 임현식은 “1969년 MBC 공채 1기로 연기활동을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연기를 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지난 48년 동안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청자와 관객들을 만난 것처럼 올해도 드라마 등을 통해 시청자와 만나고 싶다. 특히 올해는 노년의 사랑을 멋지게 소화하는 멜로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며 새해 바람을 피력했다.
여전히 청춘스타의 외모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60세의 강석우는 “나이 들어가면서 더 절감하게 되는 것은 가족의 소중함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생활이 불규칙해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 올해는 라디오 DJ와 드라마 활동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이 갖고 싶다. 연예인으로서뿐만 아니라 가장으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소박한 소망을 밝혔다.
세 아이와 함께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48세의 신애라는 “미국 캘리포니아 히즈 유니버시티에서 밟고 있는 기독교 교육학 박사과정을 충실하게 공부하고 싶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도 소중한 일이다. 미국에서 부모를 잃는 한인 청소년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한인들이 입양해서 맡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올해 더 열심히 노력해서 미국의 많은 한인들이 부모가 없는 한인 청소년들을 입양해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새해 목표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왕성하게 펼쳤던 사랑 나눔을 미국에서도 여전히 실천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2월 출산해 아이 엄마가 됐지만, 여전히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36세의 전지현은 “현재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새해 목표다”라고 말했고 여성 팬뿐만 아니라 남성 팬도 많은 조인성은 “올해는 이전과 다른 모습과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나 작품을 선택해 시청자와 관객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많은 중년 여성 팬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 남동생 박보검은 “새해에도 좋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국내외 팬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작품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닭띠의 해인 2017년 정유년의 가장 큰 목표다”라며 원칙적이면서도 진정성 있는 바람을 드러냈다.
자신들의 해를 맞은 수많은 닭띠 연예인들이 2017년 정유년에 어떤 활동을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글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브라보’는 ‘잘한다’, ‘좋다’, ‘신난다’ 등의 갈채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다. ‘성공적으로 2막을 살고 있는’ 우리 사회 시니어들로부터 ‘인생 2막 설계의 지혜와 조언’을 들어보고자 한다. 리타이어(retire)는 타이어를 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타이어를 새로 바꿔 끼운다는 의미다. 단지 1막의 재현에 불과한 리플레이(replay)도 아니고, 1막을 완전히 지워버린 채 맨땅에서 헤딩하는 리셋(reset)도 아닌, 새로운 재생의 르네상스(renaissance)를 설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퇴라는 용어를 은퇴시키고’ 멋진 2막의 르네상스를 설계하기 위해 ‘이어야 할 것과 끊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본지를 통해 살아온 길의 여정에 담긴 ‘온기’뿐 아니라 살아갈 길의 이정표를 세우는 데 필요한 ‘용기’를 얻길 기대한다.
윤만호 언스트앤영 어드바이저리 부회장(62)은 한국산업은행 부행장, 산은금융지주 사장 등을 역임하며 평생 ‘경제·금융 전문가’로 살아왔다. 이런 전문가로서의 이력을 넘어 주목되는 점은 열성적 은퇴교육 전도사라는 점. 그는 2011년 금융권 퇴직자들을 재교육, 창업자들에게 금융·입지권 조사 등 컨설팅을 해주는 사회공헌자 프로그램인 ‘시니어 브리지 센터’를 만드는 등 일찍이 퇴직자 재교육에 앞장서왔다. 최근까지도 서울시 50+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은퇴자들을 위한 제도적 교육과 일자리를 지원해왔다. 그가 설파하는 신(新)퇴직 또는 은퇴혁명 패러다임의 핵심은 ‘당하는 퇴직을 준비하는 퇴직으로 바꾸라’이다.
과거와 오늘날의 은퇴 의미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인간의 평균수명이 짧았던 과거에는 50이 넘도록 사회생활을 하면 웬만큼 살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요즘은, 생애주기가 바뀌면서 앞으로는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고령화 사회에서의 퇴직은 마지막 골라인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지요. 이제 일은 평생 하는 것입니다. 은퇴란 말을 은퇴시켜야 합니다. 평생 현역이 될 각오를 다져야지요.”
평생 현역은 오늘날 은퇴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인생의 반환점으로 보람찬 2막을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미 고령화가 진행된 우리 사회에서는 80세부터를 본격적 노후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50~60대에 은퇴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적어도 80세까지 평생 현역으로 일하기 위한 키워드는 3가지입니다. 일, 배움, 나눔이지요. 책을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사람도 더 만나고, 일을 통해 경험과 경륜을 더 나누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급변할수록 ‘과거의 경험, 인연, 경력’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일하면서 배우고 나누는 삶이 인생 2막의 패러다임입니다.”
영화 을 보면 대기업 부사장이 벤처기업의 인턴이 되어 젊은 여사장의 시중을 드는 내용이 나옵니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갑에서 을로의 갑작스런 전락’이 2막 부적응의 이유가 될 것 같은데요.
“대부분의 시니어들이 퇴직 후 피부로 느끼는 것이 갑(甲)에서 을(乙)로의 입장 변화이지요. 이 변화를 약자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도와준다, 기여한다는 적극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시각 전환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퇴직 후 자신을 대하는 세태 변화에 위축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잘나갈 때는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고 일정이 빡빡했는데, 퇴직하거나 작은 데로 옮기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일정도 텅텅 빈다면서 우울해합니다. 이럴 때는 인심을 탓하기보다 ‘그동안은’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나느라 선택당했는데 이제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해 만날 수 있으니 좋다’라고 시각 전환을 해야 합니다. 을(乙)적 사고야말로 창의적이고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것이라고 전향적으로 해석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인생 2막은 성공 마인드보다는 성숙-섬김마인드로 임해야 합니다.”
윤 부회장의 말을 들으니 시니어가 멀리 해야 할 한자로 단단할 ‘고(固)’ 자가 떠올랐다. 고(古)의 울타리[口]에 갇혀 고착돼 있으면 고루해진다는 의미가 떠올라서다. 인생 2막이 힘든 것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성장이 멈추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꼰대적 사고를 그쳐야 퇴직을 종착역이 아닌 간이역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보통 사람들이 퇴직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재정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먼저 현역에서의 퇴직 준비부터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현역, 퇴직 통틀어 지켜야 할 것은 ‘버는 범위 내에서 써야 한다’는 재정 원칙입니다. 현역 활동 때 현재의 수입을 모두 가처분소득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평생 내가 쓸 돈이 얼마나 되는지, 60세 이후 100세까지는 무슨 돈으로 살 것인지 꼼꼼히 계산해보십시오. 버는 것의 30%는 무조건 개인연금을 부어야 합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외에 개인연금을 들어 노후에 ‘3층 연금’의 단단한 방어벽을 준비해놔야 합니다. 특히 요즘은 저금리시대 아닙니까. 10억원을 버는 것도 힘들지만, 이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매달 100만원씩 나오게 하는 현금흐름을 만들어놓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비도 과잉투자해선 곤란합니다. 노후를 잘 대비해놔야 자식 앞에 부모가 바로 서고 자식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이미 퇴직한 분들은 지금이라도 대비해야 할 것들이 있는지요?
“있는 범위 내에서 써야 한다는 원칙은 퇴직자도 같습니다. 막연히 불안해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나의 어셋’은 어떻게 되는지 점검하고 이에 따라 할 일을 리디자인하는 게 필요합니다. 퇴직 후 가능한 일자리 형태는 사회공헌형, 봉사형, 생계형, 전문가형 등이 있습니다. 어느 형태가 되든 평생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이때 연금을 들어놨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집니다. 퇴직 후부터는 버는 것보다 나눔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해요. 저는 flowing-흘려보내기란 말을 좋아합니다. 퇴직 후에는 아등바등 살기보다는 ‘지금까지 나에게 위탁된 것을 잘 이용하고 남에게도 흘려보낸다’는 나눔의 사고가 필요합니다.”
인생 1막과 2막, 그 분수령을 전후해 삶의 정비사항, 중점사항도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요?
“삶이 변하면 사람도 바뀌어야지요. 1막에선 급한 것에 휘둘려 살았다면 2막에선 정말 중요한 것에 따라 여러 가지를 성찰하고 재조정해야 합니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사는 대로 생각’했다면 2막부터는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는지’ 성찰해보고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인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에 따라 증진시킬 것은 증진시키고, 회복시킬 것은 회복시키는 등 삶의 우선순위를 재편, 재조정해야지요. 다시 말해 돈, 시간, 몸을 우선순위에 따라 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윤 부회장은 구체적 성찰 및 재정비의 대상을 관계, 시간, 재무, 건강(정신-육체), 웰다잉의 순서로 꼽았다. 그리고 이 5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의 리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하버드대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하버드대학 학생 268명의 인생을 72년간 종단연구하면서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큰 조건이 무엇인지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성이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적성, 즉 인간관계였으며, 65세에 잘살고 있는 사람의 93%는 형제·자매와 원만하게 지낸 사람들이었다.
많은 가장들이 ‘처자식 먹여살리느라’ 바쁘게 일하다 보니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막상 퇴직하고 나자 ‘찬밥 신세’라며 서러움을 호소하기도 하는데요. 윤 부회장께선 가족관계 경영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도 월화수목금금 일해야 하는 산업화 시대에 공직자로 살았으니 집사람,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갖진 못했습니다.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나가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지요. 하지만 ‘온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갖고 대화를 나누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명절 때면 온 가족이 모여 ‘가위바위보게임’을 하는 등 소소한 재미 디자인을 했지요. 매년 가족사진도 찍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가족들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슴에 따뜻한 가족 램프를 걸어두며 사는 것, 그것 이상 삶의 성공,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의 선친은 고(故) 윤재건 전 제주체신청장이다. 윤 부회장은 “우편제도가 열악했던 시절, 지방이든 해외든 출장을 가면 ‘부인에 대한 사랑, 자녀에 대한 자상한 관심’을 담은 엽서부터 보내는 아버지를 보며 알게 모르게 가족사랑은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해야 함을 배운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일, 재물도 그렇지만 가족관계 역시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부친상을 당하셨는데요.
“(눈시울이 붉어지며) 아버님은 건강하게 사시다가 간암 선고를 받은 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답니다. 소천 전 일주일간 오 남매를 불러 각각 독대 면담을 하며 당부의 말씀을 일일이 남기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 지키고 계획한 대로 산 삶이었다는 점에서 웰리빙, 웰다잉의 표본이셨다고나 할까요. 선친께서는 늘 ‘요행을 기대하지 마라, 노력으로 거둔 보람만이 참된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말고 끝없이 사랑을 주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는데 제 삶의 피가 되고 살이 된 말씀이랍니다.”
선친이 그에게 남겨준 가보 제1호는 17세 때부터 61세 노년기까지 44년간 고이 모아온 우표책 한 질이다. 체신부(지금의 정보통신부)에서 한길을 걸어온 소신과 자부심의 표상을 아들에게 담아 물려준 것이다. 그 역시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우표 수집을 이어가고 있다. 윤 부회장은 지난 1997년 부친의 고희 때 만든 가족 문집 를 가져와 필자에게 보여주었다. 문집에는 부부-부모자녀-손주 간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글, 사진 등 3대 가족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이 팔순이 될 때 이 같은 가족 문집이 더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회의실 8층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여의도공원의 늦가을 경치가 아름다웠다. 같은 낙엽이지만 ‘추풍낙엽’의 조락의 의미로도, ‘만산홍엽’의 서정적 의미로도 묘사된다. 이는 퇴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당신은 지금 미래의 계획 아래 ‘추일서정’의 퇴직을 준비하는가, 계획 없는 미래에 손 놓고 ‘추풍낙엽’의 조락을 당하고 있는가.
>>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등이 있다.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knbae24@hanmail.net)
“유흥업소에 안 간다. 2006년 이후로는 한 번도 안 갔다. 왜냐하면, 4만5000원씩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돈이면 쓰레기더미 안에 있는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 파리가 눈에 알을 낳아도 쫓을 힘이 없는 아이들이다. 그 아이를 살리면 그 아이가 변해서 사회를 살린다. 내가 번 돈이 이렇게 소중한 일에 쓰인단 걸 목격했기 때문에 큰돈을 그렇게 쓸 수 없게 됐다.” 구호단체 컴패션 홍보대사에서부터 북한 어린이 돕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부인 신애라와 함께 사랑나눔 실천을 하는 스타 차인표씨의 말이 큰 울림을 준다.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 사회적 관계 최하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0월 발간한 보고서 이 적시한 한국의 상황이다. 취업난, 양극화 등으로 인해 가족 해체가 급속히 진행되고 부모에게 버려지는 아이들도 급증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사랑나눔이 절실할 때다. 하지만 후원, 기부, 봉사 등 사랑나눔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 스타들이 선행에 적극적으로 나서 많은 사람을 사랑나눔 실천에 참여시키는 아름다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연예인 스타들이 사랑나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81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후원회장을 맡아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3년 전부터는 제로캠프라는 청소년들을 위한 비영리 단체의 이사장직을 맡아 문화 예술을 통한 비행 청소년의 교화에 나서는 등 다양한 사랑나눔 실천을 펼치고 있는 최불암씨와 백혈병 어린이, 위안부 할머니, 네팔과 중국 지진 피해자 등에게 거금을 쾌척하는 등 전방위적 선행을 펼치고 있는 송중기씨 등 많은 연예인 스타가 사랑나눔 실천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연예인 스타들의 사랑나눔의 양태가 진화하며 선행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다. 그동안 불우이웃이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성금 기부나 자선단체의 홍보대사, 방송사의 자선 프로그램 출연 등이 스타 선행의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김혜자·한지민·유재석의 재능기부, 김정은·이영애·문근영·한혜진·박해진의 국내외 빈민지역에 학교, 병원, 도서관, 우물 등 시설 기부, 최불암·정애리·고두심·김제동의 재단을 통한 불우 청소년 지원, 이효리·송혜교·송중기의 위안부 할머니 지원 등 스타들의 사랑나눔의 스펙트럼이 크게 확장됐다.
기부 형태도 불우이웃과 시설에 대한 후원, 청소년과 학교의 장학금 쾌척,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성금기탁 위주에서 벗어나 한지민·송혜교 등 스타들의 책 인세 기부, 이승기·박해진 등 쌀 화환 기부, 최강희의 골수 및 장기기증, 차인표-신애라·정혜영-션 부부의 제3세계 어린이 후원금 지원, 김장훈·하춘화의 행사와 캠프를 통한 기부 등 매우 다양해졌다.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던 연예인의 사랑나눔과 선행은 수십 년 동안 지속해서 전개해나가는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김혜자·최불암·고두심·하춘화·안성기·정애리·차인표·김장훈·최수종·유재석·션·장나라 등은 10~40년에 이르는 장기적 선행을 펼치고 있다.
사랑나눔을 시스템화하거나 조직화하는 스타들도 많다. 공연 등 수입원이 생기는 이벤트 수입의 일부를 계속 기부하는 김장훈을 비롯해 적지 않은 스타들이 자신의 연예활동 수입의 일정 부분을 떼어 소년 소녀 가장이나 독거노인, 장애인들을 지속해서 돕는 것을 체계화했다. 김원희·김정은 등은 ‘따뜻한 사람들의 모임’을, 최수종·오윤아·김수로 등은 ‘좋은 사회를 위한 100인 이사회’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봉사활동과 기부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내의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웃을 대상으로 주로 이뤄지던 스타들의 사랑나눔은 아프리카, 동남아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안성기·김혜자·정애리·박해진·이영애·송혜교·문근영 등 많은 스타가 세계 각국의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나누고 있다. 이민호·장동건·이승기·장근석처럼 스타와 팬클럽이 함께 자선활동이나 선행활동에 나서는 행태도 이제는 일상적 풍경이 됐다.
스타들은 왜 사랑나눔에 나서는 걸까. “조그마한 도움이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리고 삶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도움을 받은 아이가 커서 사회와 이웃에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참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다.”오랫동안 청소년들에게 장학금 기부를 하고 장애인단체 홍보대사 등 다양한 방면에서 사랑나눔을 실천하는 고두심씨의 말이다.
40여 년 동안 불우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온 최불암씨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투자만큼 소중한 일이 없다. 더욱이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면 아이가, 사회가, 국가가 긍정적으로 변한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국내에 있는 고아는 물론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아이들까지 몸과 마음으로 포근히 감싸 안는 김혜자씨는 2019년까지 후원금을 미리 내고 이렇게 말했다. “광고를 찍거나 돈이 생기면 후원하는 아이들 것을 떼어놓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늘 불안하다. 내가 돈이 없어 안 주면 걔네들은 굶으니까. 나야 돈이 없으면 우리 아들이 밥이라도 먹여주겠지만, 그 아이들은 안 되지 않나. 당연한 일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오랫동안 9억 원에 가까운 돈을 익명으로 기부하고 시골 지역에 청소년을 위한 공부방 등을 지원한 문근영씨는 “제가 기부 등을 하면서 더 행복하고 매우 기쁩니다. 이런저런 상황들, 사연들, 사정들이 있지만 기부할 때 ‘우리 같이 그래도 열심히 살아봐요’라는 그런 메시지 정도는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라고 기부 이유를 밝혔다.
루게릭병 환자 돕기에서부터 어린이 재활병원건립 후원까지 다양한 자선사업과 캠페인을 왕성하게 펼쳐 ‘선행천사’라는 별칭을 얻은 션. 그는 사랑나눔 실천 공개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사랑 나눔을) 조용히 할 수 있는데 왜 공개하냐고 말한다. 연예인이기에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을 알려서 그걸 공유하면 더 빨리 이룰 수 있다. 겨울을 나는 데 필요한 연탄이 300만 장인데, 혼자서 기부할 수 없는 양이기 때문에 많은 분에게 알리면 300만 장의 기적을 쉽게 이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액티브 시니어들은 젊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며, 감각적인 패션을 추구하고, 자신을 가꾸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아재파탈’이라는 트렌드에서 보듯이 이러한 욕구는 나이와 상관없다. 의존형 소비패턴이 주체적 소비로 바뀌면서 기존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깨는 것이다.
한국노년학회의 한 연구는, 액티브 시니어들의 건강한 삶에 대한 욕구를 3가지로 요약했는데 첫 번째는 외모와 육체적 나이, 즉 ‘신체적 젊음’, 두 번째는 ‘인지적 젊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패션 등의 라이프스타일에서 표출되는 ‘외양의 젊음’이다. 액티브 시니어들은 이러한 욕구를 바탕으로 균형 잡힌 여가활동과 사회 참여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국가적 차원에서 시니어 계층의 활동 욕구를 반영하고 이들이 가진 삶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들 역시 활발하게 생겨나는 추세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복지관 예술 강사 파견 사업을 시작으로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생나눔교실’ 사업에 이르기까지 시니어 문화예술교육은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인생나눔교실’은 시니어 계층이 멘토로 참여해 다른 세대와 교류하는 프로그램으로 이전의 수강형 교육에서 적극적인 의미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인들은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으면 문화예술을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제 전공자들과 소수만이 향유하는 문화예술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즐기고 향유하는 문화예술이 되어야 한다. 좀 더 폭넓은 대중의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술이 대중화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대중과의 소통, 교류, 공감대도 중요하지만 예술이야말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창의적인 생각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활동은 확실히 자신의 정체성이나 삶의 의미를 새롭게 들여다보게 해준다. 이런 면에서 시니어들의 문화예술 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작품 감상을 통해 서로의 관심사는 물론 외로움과 고독을 함께 나누고 문화예술에 대한 시니어들의 욕구를 새로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스스로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얻는 위로와 기쁨들은 시니어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다.
여기서 현대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가 제시한 경영의 3대 기본 요소를 통해 액티브 시니어들에게 구체적인 인생 경영 요소를 제시할까 한다. 첫째는 수익 창출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몰입하고 그 일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이것 또한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둘째는 혁신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져 나태하고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혁신은 몸의 가죽을 벗기는 듯한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삶의 혁신도 당연히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셋째는 사회적 책임이다. 우리들은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구성원의 역할을 통해 그 사회에서의 존립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존립 근거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도 사회에서 매장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니어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한다. 자원봉사도 좋고 자신이 즐겁게 잘할 수 있는 활동을 하며 정체성을 찾고 활력을 찾아야 한다.
혼자 사는 시니어 싱글들은 팍팍한 현실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논하는 행위를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 어쩌다 싱글, 액티브 시니어의 삶에 가깝다. 힘들고 고달픈 일이 생겼을 때 우리에게 활력과 생기를 가져다주는 요소들은 다양하지만, 특히 내 인생을 대변해주는 듯한 노래와 연극 한 편 등을 감상할 때 우리는 많은 위안을 받는다. 시니어들에게 문화예술 활동이 먼 이야기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 많은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문화예술이 시니어들 삶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이 시니어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고, 가족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게 해주며, 삶의 새로운 활력을 얻어 결국 삶의 질을 향상시켜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문화예술교육은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고 파킨슨병 개선 등 건강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다. 이처럼 시니어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은 전반적인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만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제 문화예술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리자.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 체험의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한다. 어쩌다 시니어가 되고 어쩌다 혼자가 된 시니어들의 인생이 문화예술을 통해 ‘브라보(B: Bankable, R: Relation, A: Active, V: Value, O: Occupation) 마이 라이프’가 되길 기대해본다.
>> 진종훈
문화마케팅(경영학 박사) 전문가이자 문화평론가, 교수로 활동하며 문화로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경기대학교 평생교육원 경영학부 교수이자 한국경영문화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며 , ,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