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우리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선진국의 실버타운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실버타운이 가장 발달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900년경 300만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70년 동안 미국의 총인구가 약 3배 증가할 사이 노인인구는 7배가 늘어날 정도로 노령화 속도가 빨랐고 실버타운을 비롯한 실버산업도 함께 발전했다.
◇민간주도로 은퇴자 도시 형성된 미국
미국의 실버타운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은 이미 1960년대부터 비영리단체나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0여개의 CCRC가 조성돼 있으며 80%는 민간기업이 운영이 운영한다. 주로 기후가 온화하고 경치가 좋은 버지니아, 플로리다 등 남동부 지역과 서부 캘리포니아에 집중돼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애리조나주 피닉스 근교의 선시티(Sun City)로 약 1090만평(여의도 120배)의 대지에 2만6000가구(4만2000명)가 주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미국의 대표적 은퇴자 도시다. 55세 이상만 입주할 수 있다. 골프, 테니스, 수영, 컴퓨터 등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과 편의시설을 즐길 수 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목수출신 건설업자 델웹은 2차대전 후 미국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은퇴자 마을조성을 구상했다. 그는 피닉스 인근 목화밭을 개발해 은퇴자를 위한 거주시설을 공개했고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거주자와 면적이 꾸준히 커져 하나의 도시가 됐다. 선시티의 성공으로 미국 전역에서 CCRC와 은퇴자 도시가 형성됐다.
◇유료 노인홈 사태 이후 규제 나선 일본
고령화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일본도 1963년 일본 노인복지법을 제정하면서 노인주거시설인 노인홈을 규정했다. 일본의 노인홈에는 노인복지법 규제를 받는 양호노인홈, 특별양호 노인홈, 경비노인홈이 있고 노인복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유료 노인홈이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특별양호 노인홈으로 전국에 6200여개가 있다. 수용인원은 44만명 정도로 같은 수만큼의 노인들이 입소를 대기하고 있을 정도다. 입소하려면 보통 2~3년은 기다려야 한다. 65세 이상으로 신체상, 정신상 현저한 장애로 인해 상시 개호(간호)가 필요한 노인만 입소 가능하다. 특별요양 노인홈이 이렇게 인기를 끄는 것은 복지시설로 월 100만원 정도(6만~15만엔)의 저렴한 비용으로 입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노령화로 간병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폭발하자 재정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민간 업자의 진출을 적극 장려했다. 민간업자가 운영하는 유료 노인홈을 노인복지시설에서 제외해 완전히 민간사업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운영업체의 부실운영 등이 불거진 ‘유료 노인홈 사태’를 겪으면서 유료 노인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설치단계부터 행정지도를 받아야 하고 운영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시설을 폐지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유료 노인홈 설치 운영 지도 지침‘을 1994년 제정해 규제를 시작했다.
◇정부와 민간이 적절히 조화된 독일의 실버타운
미국과 일본이 상대적으로 민간주도의 실버타운이 강한 반면, 독일은 정부와 민간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노인의 주거시설을 마련하고 있다. 독일의 실버타운은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알텐본하임, 가사를 보조해주는 알텐하임, 요양원인 알텐플레게하임으로 구분된다.
모두 유료지만 입소 노인들은 자신의 연금과 보험금으로 그 비용을 지불하고 부족한 부분은 국가가 사회부조로 채워준다. 가장 큰 특징은 사회복지법인만이 운영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적으로 행정적 통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민간이 주도하는 실버타운에 비해 보다 안정적인 운영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핀란드의 경우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실버타운을 만들었다. 지난 2000년 친구 사이인 은퇴 할머니 넷이 모여 노인공동체 설립을 추진했고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협동조합의 출자금으로 2006년 58가구가 수용 가능한 7층짜리 아파트가 완공됐다. 이 아파트의 이름은 로푸키리(‘마지막 전력질주’라는 뜻)로 붙여졌다.
입주 노인들이 직접 아파트 설계와 디자인을 계획했다. 이들은 공동의 생활 규칙을 만들고 식사·청소·빨래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을 서로 분담, 협동해 해결한다. 서로 심리적으로 의지하면서 핀란드에서는 불황으로 노인 자살률이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로푸키리에서 자살한 노인은 한명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장경영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고령화를 일찍 경험한 선진국은 실버타운을 포함한 모든 고령화 이슈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개선해왔다”며 “한국은 선진국의 선례를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면서 보완해 나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를 비롯한 중장년층은 마음 놓고 은퇴하기도 어렵다. 고령층에게 ‘편안한 노후’는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유토피아다. 높은 수준의 노인 빈곤율은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 기준 우리나라 고령층의 빈곤율은 45%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이런 상황에서 LG경제연구원은 고령층이 보유한 자산을 처분하더라도 노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는 가구가 3분의 2에 달한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중장년층에게는 재취업을 하거나 미리 자산을 축적해 대비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지난해 5월 LG경제연구원 류상윤 책임연구원은 통계청의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세부 자료에 포함된 노인가구 2884가구의 표본조사 결과를 분석해 ‘대한민국, 은퇴하기 어렵다’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노인가구는 가구주가 60~74세이면서 혼자 살거나 부부가 함께 사는 세대를 말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가구의 71%인 180만 가구가 현재의 자산과 공적연금만으로는 사망 시점까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체의 59%인 151만 가구는 최소 생활비인 월 68만~157만원조차 조달이 어려웠다.
보고서는 노후 생활비를 위해 필요한 자산으로 가구당 평균 2억5000만원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이는 연령별 적정 생활비에서 노인가구가 받는 공적연금, 기초노령연금, 사회수혜금 등을 빼고 기대 수명을 따져 계산한 값이다. 표본 노인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2억6000만원으로 생활비 충당이 가능한 것으로 보였지만 가구별로 따지면 표본가구 중 보유자산이 2억5000만원에 미치지 못한 비율이 71%에 달했다. 자산을 매각해 최소한의 생계비조차 충당할 수 없는 가구도 59%나 됐다. 전체 254만 노인가구로 환산하면 180만 가구는 사망 시점까지 생활비를 조달할 수 없고, 특히 151만 가구는 최소한의 생계비조차도 댈 수 없는 셈이다.
때문에 베이비부머의 노후 대비, 특히 자산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에 자산이 치중된 경우 현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김진웅 연구위원은 “월세를 받는 상가나 건물이면 문제 없겠지만 살고 있는 집이면 돈을 벌기 어려울 수 있다”며 “주택경기가 안 좋은 요즘은 거래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다운사이징도 어렵다. 사는 집이 자신의 자산이라면 주택연금을 활용하는 부분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김 연구위원은 “현금으로 만들고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는 주택연금으로 활용하는 부분을 권할 수 있다”며 “직장인이라면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이 가입됐을 것이다. 그런 부분들은 현금 흐름이 발생되기 때문에 부동산에 편중된 것보다는 낫다”고 전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베이비부머의 평균 연금 수령액은 월 153만원가량이다. 이 같은 금액은 부부 2인 기준으로 평균적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김 연구위원은 “금융자산이 있는 경우 즉시 연금이나 월지급식으로 활용해 추가적인 자산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며 “목돈이 있으면 월 100만원 현금으로 만드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부동산도 없고 금융상품이나 연금도 없으면 현실적 대안은 일하는 기간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도 “월급만큼 현실적으로 안정을 주는 것은 없다”며 “눈을 낮춰 재취업해서 현금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상당수 베이비붐 세대는 노후를 대비해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은행예금은 금리가 너무 낮아 만족스럽지 못하고 부동산투자로도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주식시장으로 대규모 자금이 이동하는 것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처음으로 60대 이상의 주주 수가 100만명을 넘어 104만5000명을 기록했다고 지난달 22일 밝혔다.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주식투자 인구인 502만여명 가운데 21.1%에 달한다. 지난 2008년 59만7000명으로 13%에서 8%포인트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 같은 추세는 50세 이상의 구간에서도 마찬가지다. 50~54세 주식인구는 지난해 67만3000명으로 전체의 13.6%를 차지했고 55~59세 역시 같은 기간 55만6000명으로 11.2%에 달했다. 이들은 모두 122만3000명으로 전체의 20%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하지만 베이비부머들의 주식시장 도전에 대한 우려도 잇따르고 있다. 무계획적 투자로 큰 자산 손실을 볼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개별 종목들의 주가 변동성이 커지고 있으며, 시장과 개인투자자 간 정보 비대칭도 높기 때문에 전문 금융기관에 맡겨 안전한 수익을 도모하도록 해야 한다고 권한다.
영국의 100세 이상 장수노인이 최근 30년간 5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2일(현지시간)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2012년 기준 영국의 100세 이상 노인은 1만3천350명으로 인구 10만명당 21명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90세 이상 노인은 50만명을 넘었으며 105세 이상 초 고령자도 660명이나 됐다.
100세 이상 고령자의 남성 100명당 여성 수는 588명으로 10년 전 828명보다 감소해 수명 격차가 좁혀진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남성은 78.7세, 여성은 82.6세로 조사됐다.
급속한 인구노령화로 영국의 노년층 부양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14%에서 50년 안에 20%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1990년대 이후부터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로 자리 잡은 암은 그 발생자 수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암 발생의 원인은 노령인구의 증가, 암진단 기술의 발달, 조기 검진 활성화, 암유발 촉진 환경 등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만, 무엇보다 식생활의 변화가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 암연구소는 잘못된 식습관이 암 발생 원인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한국건강증진재단이 21일 암 예방의 날을 맞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암 발생 증가는 육류, 지방, 당 섭취 증가와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육류섭취는 1998년보다 2012년에 68%, 지방은 16%가 증가했다. 1인 1일 평균 당 섭취량도 2008년 49.9g에서 2010년 61.4g으로 느는 추세다.
나트륨 1일 섭취량은 2012년 기준 4천583mg으로 권장섭취량(2천mg)의 2배 이상이다.
에너지 섭취의 주요 공급원도 백미, 돼지고기, 라면, 빵, 소주, 우유 순으로 나타나 기름지고 짠 음식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이와 달리 채소·과일의 하루 섭취량은 467.3g으로 권장량인 500g보다 적다.
건강증진재단은 “암 억제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신선한 녹황색 채소 및 과일 섭취를 늘려야 하고 저지방·저열량 식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금연과 절주, 규칙적인 운동 등의 건강한 생활습관 형성과 정기적인 검진을통해 암 예방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건강증진재단은 당부했다.
부산 북구가 2014년 대대적인 노인 일자리 창출사업을 벌인다.
북구는 올해 모두 32억원을 들여 지역 내 65세 이상 노인에게 모두 1천585개의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9일 밝혔다.
북구는 공창·만덕·동원·화정종합사회복지관, 실버벨노인복지관, 북구시니어클럽, 청록복지재단 등 7개 일자리수행기관과 함께 모두 53개 사업에 나선다.
노인 일자리 분야는 초등학교 급식도우미, 주차관리, 노-노케어사업, 환경지킴이 사업 등이며 월 36시간, 9개월 근무에 월 20만원의 인건비를 지급할 계획이다.
황재관 북구청장은 “늘어나는 노령인구에 비해 노인일자리사업이 부족한 실정이지만 고령층을 활용한 사업 다변화로 지속적으로 노인일자리를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동반자살해 많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 2월 26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어머니인 박 아무개 씨(60)와 큰딸 김 아무개 씨(35), 그리고 둘째딸(32)이 집안에 누운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의 비극은 아버지 김 씨가 12년 전 암 투병을 하다 사망했다. 그가 남긴 것은 사업 실패로 인한 상당한 빚과 투병생활로 인해 밀린 병원비뿐이었다. 가정은 어머니 박 씨 홀로 책임졌다. 그는 식당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충당했다. 상황은 어려웠지만 그동안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8만 원인 집에 9년째 살면서 공과금도 꼬박꼬박 납부했다.
박 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니어서 정부의 지원금도 받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빙판 길에 미끄러져 팔을 크게 다친 박 씨는 다니던 일도 그만둬야 했다. 그의 큰딸은 7년 전부터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둘째 딸은 생활비와 병원비를 신용카드로 막다가 결국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악재가 겹치면서 세 모녀는 한 달가량 수입이 모두 끊기고 말았다. 생계가 막막해진 세 모녀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가 방치하고 놓치고 있던 사회적 약자, 바로 경제적 궁핍과 일자리를 잃은 박 씨는 상실감, 퍽퍽함에 계속해서 병들어갔고 구멍 뚫린 사회적 안전망의 허점으로 그들의 삶의 무게는 감당할수 없는 상태가 됐다.
아직도 수많은 노인들이 이들처럼 지독한 가난과 고독감에 싸우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허리가 휠 정도로 불편한 몸으로 남의 밭일을 하는 농촌 노인이나 지하철 택배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 노인 등 가난한 노년은 죽을 때까지 ‘밥벌이의 구차함’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사설 요양병원에서 학대 받는 치매노인, 골방에서 혼자 숨을 거두는 고독사 등 비극적 현장도 소리 없이 늘고 있다.
노인복지관 근방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빈약하지만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릴 기회가 있다. 복지관이 먼 곳에 있으면 밥 한 끼 해결하기 위하여 차를 타고 가야하는 사람은 차비가 없으면 굶는다. 지하철이 무료라 하지만 지하철역까지는 역시 버스를 타야 한다. 노인정이라는 곳도 돈 있는 사람들 사랑방 정도일 뿐이니 그곳 출입도 어렵다. 텃세가 심해서 주눅 들고 만다.
가난과 외로움에 병들어가다
학교 동문, 고향 친구, 직장 선후배, 군대 동기들이 있을 것인데 매일 같이 공원이나 놀이터에는 할일이 없는 노인들이 이웃들과 어울려 잡담이나 세상사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들은 진정한 친구도 이웃도 아닌 그냥 말 상대다.
여지없이 꽃샘추위의 영하의 날씨를 보인 날의 보라매공원.
이날도 노인들은 또래 노인들을 만나기 위해 차가운 바닥에 자릴 잡고 앉았다.
돗자리와 이불까지 들고 나온 노인은 “집에 혼자 있으면 뭐혀. 추워도 이게 낫지”라고 말했다.
이처럼 외로움과 고독의 내리막이 가파르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경제적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는 막막함, 조직에서 떨어져 나가 어떤 기여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은 이들의 일상을 한층 황폐하게 만든다. 게다가 노후의 삶을 어떻게 가꿔갈지에 대해 별다른 학습이나 고민도 없이 황혼을 맞이했고 부딪치는 상황마다 실패와 상실의 연속이다. 이런 어려움의 강도는 현역 시절 높은 직위에 있던 사람일수록 더하다. 어딜 가도 자신을 알아보고 향유하고 대접해주는 환경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스스로 일상을 챙기는 일에 너무도 미숙한 탓이다.
74세 아파도 씨는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내가 죽어야지,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부쩍 잠이 줄어들면서부터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혼잣말을 한다. 그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은 부인과 자식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어서다. 그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 날이 많다”며 외로움을 호소한다.
아파도 씨는 자식들 눈치 보여 집에 있을 수 없고, 잘 차려입고 밖에 나왔으나 갈 곳은 마땅치 않고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아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에 죽치고 앉아 있다.
“죽을 때만 기다리는 거지, 뭐. 옛날에야 나이 많다고 대접받았지. 지금은 천덕꾸러기 신세밖에 더 돼?"하고 내뱉는 아파도 씨의 말에 마음 한쪽이 아릿해졌다. 자조와 푸념 섞인 말들이 그의 의지에서 비롯된 건 아닐듯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회와 가정에서 마땅히 설 곳을 찾지 못하고 외면당하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은퇴하게 되면 주된 생활영역이 직장에서 가정과 지역사회로 옮겨진다. 기존의 인간관계가 직장 동료들과 같은 공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은퇴 후에는 가족 친구와 같은 사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인생후반기로 갈수록 활동 반경이 줄어드는 만큼 인간관계에서 가족은 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집에 들어앉게 되면 평소에 알던 사람들과의 관계마저 소원해지고 차츰 만나는 회수가 줄어들어 결국은 외톨이로 마음의 자리가 상실해간다.
나도 모르게 노인이 돼 있다
은퇴나 퇴직을 한 50대 후반 부터는 어느 곳에서도 활동할 기회가 줄어든다. 그로 인하여 용돈도 궁하여, 친구 모임도 줄어들고 가정에서도 비생산적 소비자로 놀고먹는다는 미안함 때문에 대화도 뜸하고 소외되어 외로워진다.
혜화동 짚풀박물관 부근에서 만난 69세 이희수 씨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하루가 멀다고 하고 사방팔방에서 ‘기초연금’이네 하며 ‘노인문제’를 다룬다. 그렇다 보니 아무런 죄도 없으면서 어느 사이 69세 ‘노인이 돼 있다’라는 사실은 마치 내가 이 사회에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몸둘 바를 모르게 만든다. 마음은 더 약해져 사소한 일에도 눈물을 흘리고 서러워진다. 이제는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자존감 상실과 압박감에 존재의 의미를 못 느낄 지경에 이른다.”
억울한 심정이라 분하고 서글픔이 한계에 이르지만 나이 탓으로 돌리고 억지로 참게 된다. 그러면 속병은 더 깊어진다.
“내 현실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식도 아내도 모른다. 하기야 한 번 뿐인 인생에 아직 노인이 되어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대기업 정년퇴직 후 택시기사를 하고 있는 김정일(62) 씨는 “말로는 어른을 공경하고 우대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럴만한 환경이 아니다. 세상이 너무 급속히 변하고 경제가 어려우므로 젊은이들은 변화를 따라잡기에 바빠 노인을 돌볼 형편이 못되고, 노인들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젊은이들을 의지 하다 보니 시대에 뒤쳐지는 사람, 소비만 하고 할 일 없이 놀기만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노인은 없어도 괜찮고 있으면 불편한 존재가 된 것”이라 단호하게 설파한다.
그렇다면 어르신들 스스로 자기를 사랑하고 개발하여 나름대로 생을 즐기며 가꿔야하는데 그렇게 할 수도 없다.
한 평생 일만 했고, 가족만을 위해 희생만 할 줄 알았지 자기 계발과 봉사나 취미 활동을 해보지 않아서 그렇게 할 줄도 모르고 용기도 없다.
이희수(69) 씨는 “매스컴을 통하여 노년에 취미 생활이나 여가 활용에 적극적인 분들이 소개되지만, 이는 대부분 50~60대로, 의식주 걱정이 없고 여유 있는 극히 소수인의 삶일 뿐. 대부분의 노인들은 지루하게 소외감과 불안 속에서 우울하게 산다. 노인 자살자 대부분 이 70대 이상인 것을 보면 이 연령대가 얼마나 견디기 힘든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70대 이상에 대하여 각별히 관심 가져주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증권 및 은행에서 일하다 퇴직한 최명숙(65)씨는 “노인인구는 급격히 늘어난다는데 정부의 대책이라고는 기초노령연금이 고작이다. 이것도 이런저런 문제에 걸려 지체되고 있다. 지금 70대 이상 어르신들은 우리나라를 오늘에 이르도록 평생 수고했고, 어려운 중에도 자녀교육에 힘써 국가 발전에 기여할 일꾼들을 많이 키워낸 그야말로 ‘국가 유공자‘들이다. 그러다보니 노후 대책은 전혀 세우지 못한 슬픈(?)세대”라고 안타깝게 토로했다.
돈 많은 어르신만 대접받는 사회?
노인 복지가 국가적 화두가 됐지만, 노인들은 정작 대한민국에서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자조가 팽배하다.
‘돈 많은 어르신’ 이외에 모두 가볍게 취급받는 ‘경로(輕老) 사회’라는 비아냥을 누가 반박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가운데 ‘노인들의 4苦’ 즉 신체적 질병, 정신적 고독, 경제적 빈곤, 사회적 고립 등에 시름이 더 깊어져가고 있다.
특히 노인 자살은 질환, 경제적 궁핍, 고독, 상실감, 가정불화 등이 주요 원인이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진 않았지만, 노년의 시간을 행복하게 누리지 못하고 그저 잔명(殘命)으로 힘겹게 버티는 이들이 많다.
학대받고 버림받는 노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복지시설에 가고 싶어도 자식들 때문에 자격이 안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배우자나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 노인들이 최근 3년간 26.5%이상 증가했다.
노인복지를 외치는 이 시점에도 노인들에 대한 학대와 경시 풍조 팽배는 음성적으로 때로는 양성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에 네티즌들의 공분을 일으킨 고교생의 막말 동영상과 대구 패륜남의 등장은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봉사활동을 하라고 보냈더니 귀가 잘 안 들린다고 노인에게 욕설과 반말을 하고, 할머니가 파는 수박을 발로 차는 행동들들. 노인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걸리적거리는 장애물마냥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인식이다.
이런 도리를 언급하기 이전에 노인들은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아버지, 배우자 등 가족의 한 일원일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웃이기도 할 것이다. 비단 노인에 대한 폭행이 생면부지의 타인에게서 나오는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가정폭력의 일환으로서 가까운 사람이 가하는 노인폭행이 문제이다.
노인 학대와 폭행 뿐 아니라 노인 대상 사기는 날로 급증하고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진다. 홍보관 사기, 보이스피싱 사기, 대출 사기, 상조 사기, 효도관광 및 경로잔치 사기, 투자 사기, 공공기관 사칭 사기 등 끝 간 데 없는 노인 대상 사기 범죄들로 난무한 세상이 됐다.
노인을 섬기고 존경하는 한국인의 전통적 가치가 사회의 고령화로 급격히 사라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광복과 전쟁, 그리고 근대화를 거치며 사회 발전을 이끌어온 노인 세대가 치열한 글로벌 경쟁 시장과 성과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더는 유능한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점차 존경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증가하면서 65세 이상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황혼자살이 끊이질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12명의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평소에 잘나가던 사람들일수록 외로움은 더욱 커져서 결국은 대인 기피증 환자들이 되어가는 것이다. 많은 노인들에게 물어보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외로움이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전혀 이해가 될 수도 없는 이 외로움이 노인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처럼 조금씩 조금씩 찾아와서 잠식해 버린다.
젊은 노인이 고령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 시대가 열리고 있는 시점에서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며 노년의 적막을 온 힘을 다해 견디는 모양새다. 그 분들의 노년이 역경의 세월을 헤쳐 온 만큼 존중받고 있는지, 앞 세대의 그것보다 더 길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노년에 과연 ‘살맛’을 누리게 될지, 그러기 위해 100세 시대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궁리해보면 어떨까.
“나 같은 사람도 도와주니 아주 고맙지. 이 늙은이를 찾아보는 사람도 없는데….”
5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한 낡은 벽돌주택.
최민경(26·여) 사회복지사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두컴컴한 방에서 박진순(77) 할머니가 반갑게 맞는다.
방에는 각종 약봉지가 흐트러져 있고 낡은 벽지에는 곰팡이가 슬었다. 난방비가 벅차 전기장판에 의지하는데, 이마저도 남편인 김윤상(82) 할아버지가 없을 때는 꺼두는 바람에 방에는 한기만 가득하다.박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최씨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털어놓는다.
“할아버지가 위암 통증으로 밤잠을 못 이룰 정도여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몇 번이나 시도했어.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오이도로 가려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명동역에서 쓰러져 있었다더라고.”
친딸처럼 할머니의 말을 경청한 최씨는 할아버지를 위한 상담 치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는 주민센터로 돌아와 상담 내용을 전산망에 빼곡히 입력했다. 그의 근무지인 용산구 청파동에 2만2400여명의 인구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 517명, 기초노령연금 수급자 1509명, 등록 장애인 911명 등을 포함해 5531명의 복지대상자가 거주하고 있다.
최씨를 포함해 4명의 복지담당 공무원이 주민센터에 근무하고 있으니 1명당 1400명 가까운 인원을 책임지는 셈이다.최씨는 이날 오전 8시50분에 주민센터에 출근했다. 새 학기를 맞아 무상보육비·임대아파트·문화누리카드 신청 등이 몰리면서 업무 시작 전임에도 주민센터에는 10여 명의 민원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가 오전 9시를 가리키자 최씨의 컴퓨터 모니터에 10개 가까운 창이 띄워지고 전화기는 불이 났다. 마음 같아선 맡은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싶지만, 각종 민원을 처리하다 보면 사무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도 허다하다.최씨는 “민원인이 몰려 가정방문은 오전 늦게, 혹은 오후에야 잠깐 할 수 있는 정도”라며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소외계층 어르신 100여명을 다 찾아뵙고 싶지만,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오전 9시20분께 초등학생 자녀의 교육비를 신청하러 이모(48·여)씨가 왔다.최씨는 부동산 임대차 계약서, 금융정보제공동의서 등 구비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고 아직은 낯선 도로명 주소까지 친절하게 안내했다.“문화누리카드 신청 첫날에는 100명 가까운 민원인이 몰리기도 했어요. 일이 많은 날은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날도 잦죠. 사회복지사들의 업무가 효율적으로 분배됐으면 좋겠어요.”
최근 문화누리카드 사업은 관리 사이트가 자주 먹통이 되는 바람에 접속자가 적은 새벽 시간에 주민센터로 출근해 입력하는 일도 있었다.주민센터는 각종 복지 서비스를 구석구석까지 제공하는 '모세혈관' 같은 역할을 한다. 일손은 모자란 데 주무부처에서 넘어온 일이 집중돼 업무 강도가 높다.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가 작년 4월 발표한 '공공복지전달체계 현황과 개편방안'에 따르면 지난 2012년 6월 기준 우리나라의 3474개 읍·면·동 가운데 사회복지직이 단 1명만 배치된 곳이 1417곳에 달했다. 단 한 명도 배치되지 않은 곳이 31곳이나 됐으며, 5인 이상 배치된 곳은 94곳에 불과했다.최근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 등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 ‘찾아가는 복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복지 행정 현장은 여전히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청파 주민센터의 사회복지를 총괄하는 김종복 팀장은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상황에서 통장이 예전처럼 집집이 다니며 상황을 체크하는 게 불가능해졌다”며 “‘찾아가는 복지’ 중요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주민센터 등에 연락하도록 홍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다짜고짜 욕을 퍼붓거나 불만을 품고 ‘밤길 조심하라’며 협박까지 하는 악성 민원인도 이들을 움츠리게 한다.
대검찰청이 작년 6월 “복지 및 민원담당 공무원이 심각한 육체적·정신적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 같은 행위를 엄중 처벌하기로 발표했을 정도다. 이에 따르면 복지 담당 공무원은 우울증 유병률이 일반인의 3배, 일반 행정공무원의 2배 이상이었고 복지 담당 공무원의 51.9%가 소방·경찰관보다 훨씬 높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작 사회 소외계층을 책임지는 사회복지사들이 돌봄의 손길 바깥에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작년 2∼3월 경기도 성남·용인과 울산에서 사회복지공무원 3명이 업무 과다와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최씨는 “사회복지사는 감정의 소비와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사회복지사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 등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양성근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장은 “현재 인력 시스템에서는 ‘찾아가는 복지’에 한계가 있다”며 “극단적인 경우 한 읍·면·동에서 1500건 이상 관련 민원을 처리하는 경우까지 있다. 최소 6000∼7000명은 충원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26억짜리 저택에 사는 목수와 학자금 대출 갚느라 고생하는 판·검사.’ ‘18세 미만의 아이들에게 1년에 무조건 평균 230만원 지급, 접시닦이로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했을 경우 월 400만원.’
한국으로 귀화한 러시아 출신의 박노자 교수는 지난해 펴낸 책 ‘나는 복지국가에 산다’를 통해 노르웨이의 일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박 교수는 노르웨이의 복지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돈 벌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당당하게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
‘시장 사회에서 노동을 팔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생계와 복지를 사회가 당연히 책임진다. 모든 시민들이 똑같은 사회적 권리를 누리며 똑같은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 같은 이념이 복지국가 노르웨이를 지켜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노르웨이는 노인 복지에서도 ‘천국’ 수준이다. 지난해 미국 경제 전문 매체 CNBC의 보도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노인들의 연평균 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로 조사됐다. 노르웨이 노년층의 연평균 소득은 지난해 7만8637달러(약 8339만원)로 집계됐다. 이에 비해 65세 이상 노년층의 세계 평균 소득은 1만4541달러(약 1543만원)에 불과했다. 톨비요른 홀테 주한 노르웨이 대사를 통해 노인들이 ‘천국’에 가까운 생활을 누리고 있는 노르웨이에 대해 알아봤다.
◇유토피아에 가까운 복지제도
노르웨이는 세계 여러 국가 중 가장 유토피아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 나라다. 고등학교까지 완전 무상교육이고 공립학교의 경우 대학원까지 무료로 다닐 수 있다. 병원비는 공짜다. 병에 걸려 직장에 못 나가면 국가에서 돈을 준다.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은 기본이고 실업자와 장애인에 대해서도 수당을 지급한다. 풍족한 복지제도로 인해 노르웨이에는 개인연금이 필요 없을 정도다.
홀테 대사는 “노르웨이 복지시스템은 사회복지의 원칙에 따라 만들어졌다. 복지를 통해 인생 경로 전반에 걸쳐 벌어질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고 있다”며 “노르웨이 노인복지의 핵심은 국민연금이다. 연금 제도의 기본 원칙은 스스로 돈을 벌수 없는 사람들에게 재정적이고 사회적인 보장을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복지제도는 긴 투쟁과 타협의 결과다. 이미 19세기 후반에 노동 운동에 의해 실업급여 도입으로 시작된 복지제도는 사회 보험 체계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발전했다. 건강 보험에 대한 최초의 법률은 1909년에 제정됐고 퇴직 연금법은 실업수당법이 생긴지 2년 후인 1963년에 채택됐다.
세계2차 대전 이후, 복지 국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놓고 정치적 충돌이 있었다. 좌파는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세금을 재정기반으로 하는 복지국가를 건설하고자 노력했다. 반면, 우파는 연금이 은퇴 이전 소득에 따라가는 시스템 을 추진했다. 1950년대의 정치권에서는 좌파가 우세했기 때문에, 1956년에 건강보험 제도가 모든 주민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1960년대 이후에는 다시 연금제도의 균형을 잡았다. 1966년, 의회는 모든 복지 제도를 하나로 병합해 은퇴 이전 소득을 기본으로 책정되도록 했다. 홀테 대사는 “오늘날 노르웨이의 복지 시스템은 오랜 투쟁의 결과이며,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보장뿐만 아니라 은퇴 이전 소득과 연계되도록 한 타협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인에 대한 노르웨이의 정책은 긴 전통을 가진 종합적인 복지시스템의 일부다. 노르웨이 복지시스템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이 삶의 기본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이라며 “노르웨이의 사람들은 복지 제도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꺼이 세금을 납부하려고 한다. 때문에 정부에 대한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지속 가능한 복지 정책을 위한 부의 재분배 원칙은 노르웨이 정치권 전반에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급속한 고령화로 노르웨이도 정책 수정
노르웨이가 꿈같은 복지제도를 실행할 수 있었던 데는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컸다. 노르웨이는 정권 변화에 연금제도가 영향 받는 것을 최대한 차단해 연금 가입자에게 신뢰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노르웨이의 복지제도를 설명하기는 충분하지 않다. 복지제도를 위한 재원을 노르웨이는 도대체 어디서 충당했을까.
알아둬야 할 것은 노르웨이는 세계 10대 산유국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1960년대 후반 북해를 시작으로 해안선을 따라 잇따라 유전이 발견되면서 산유국 대열에 합류했다. 노르웨이는 유럽국가 중 대륙붕에 가장 많은 석유와 가스 매장량을 갖고 있는 나라다. 현재는 세계 7위의 원유수출국이고 가스생산량은 세계 3위다.
노르웨이 복지제도 재정의 근간은 노르웨이 정부연금기금(GPFG)이다. GPFG는 세계 최대의 국부펀드다. 지난 1월 기준, 자산규모가 약 8300억달러(약 880조원)에 달한다. 노르웨이 인구가 500만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니 국민 1인당 약 1억8000만원에 가까운 금액을 나눠가질 수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펀드 자금은 대부분 거대 석유 기업들이 내는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석유 산업을 통해 인구에 비해 연금기금을 든든하게 쌓아놨기 때문에 노르웨이의 넉넉한 복지제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노르웨이도 급속한 고령화의 충격에 연금개혁에 나섰다. 2011년부터 1963년 이후 출생자에 대해 기초연금을 폐지하고 저소득층에만 선별적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최저보증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은퇴를 늦게 할수록 연금 수령액을 높여 좀 더 일을 오래하도록 유도했다. 이웃 나라 스웨덴처럼 연금제도를 명목확정기여 방식으로 변경했다. 자신의 소득수준에 따라 보험료를 내면 경제성장률과 기대수명을 반영해 연금을 주는 것이다. 지출되는 연금도정부의 예산에서 나가도록 하고 GPFG의 사용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석유고갈에 따라 GPFG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홀테 대사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노르웨이도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은퇴자를 부양하기 위해 1967년 3.9명 근로자가 필요했지만, 2050년에는 1.7명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연금개혁의 배경을 설명했다.
연금제도의 개혁에도 세대 간 갈등이나 진통은 없었을까. 홀테 대사는 “노르웨이에서는 복지 시스템에 대한 세대 간의 갈등을 찾아보기 힘들다. 수십 년의 과정을 거쳐 개발됐고 복지 정책의 효율성이 입증돼 대중의 신뢰가 생겼다”며 “복지 시스템의 기초에 대한 폭 넓은 정치적 합의로 세대 갈등을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노인 복지정책에 대한 조언을 묻자 한국인 특유의 효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노인 봉양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한국의 가정이 노인복지 정책에 큰 자원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노령 환자를 돌보는 가족을 지원해 노인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노르웨이에서는 노인을 돌보는 가족에 지원금을 줘 출근 하지 않고도 노인을 돌볼 수 있게 한다. 가족만큼 노인을 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는 노인 복지 정책에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년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는 전 세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모여든다. 인구 1만명에 불과한 한적한 시골마을인 다보스는 포럼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는 스위스가 얼마나 강소대국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구는 800만명에 불과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8만 달러에 육박하고 각종 국가경쟁력 조사에서 1위를 휩쓰는 나라.
높은 국가경쟁력과 함께 스위스는 복지국가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특히 ‘은퇴 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은퇴자가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위스는 어떻게 은퇴자에 여유로운 생활을 보장하면서도 국가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일까. 요르그 알 레딩 주한 스위스 대사에게 그 비결을 물어봤다.
◇다양한 재원의 스위스 연금제도
스위스의 국민에게 노년은 인생의 황금기로 불린다. 이처럼 노년층이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든든한 연금에 있다. 스위스는 ‘3층 연금제’를 통해 은퇴 후에도 국민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3층 연금이란 공적연금, 기업(퇴직)연금, 개인연금을 말한다. 다양한 재원을 통해 퇴직 전 연봉의 60%이상을 보장받기 때문에 은퇴전과 비교해도 생활수준이 그리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3층 연금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노년에 일정 수준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게 해준다.
먼저, 가입이 의무인 공적연금은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같이 근로자와 기업이 절반씩 부담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가 노년층을 부양하는 직불방식 연금이라는 점이다. 스위스 공적연금은 노령과 사망 위험에 대한 보장과 장애 위험에 대한 보장을 함께 해준다. 최저생계비는 공적연금으로 그럭저럭 커버가 된다는 의미다.
2층 보장인 기업연금 역시 근로자와 기업이 함께 부담하는 것은 같다. 스위스에서는 공적연금 뿐 아니라 기업연금의 가입도 의무화한 것이 특징이다. 공적연금의 재정 압박을 줄이기 위해서다. 3층 연금인 개인연금은 가입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래도 가입률은 90%에 달한다. 스위스 정부가 세금공제 등 세제혜택을 줘 적극적으로 개인연금 가입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는 공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보니 세대 간 갈등 문제도 크게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익숙해있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낮은 공적연금 의존도에서도 어떻게 스위스 노인들의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할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풍요로운 노년의 비결은 ‘근면’과 ‘여성’
레딩 대사는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간단하게 “스위스 국민은 일하기를 좋아한다”고 짧게 답했다. ‘노년층에 대한 연금보장과 일하는 걸 좋아하는 게 무슨 관계가 있나’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근로시간이 길기로 둘째가기 서러울 정도인 한국인 앞에서 무슨 근거로 당당하게 스위스 국민이 일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일까.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2092시간(2012년 기준)으로 OECD 평균은 1705시간에 그쳤다. 우리보다 근로시간이 높은 국가는 멕시코(2317시간), 칠레(2102시간) 밖에 없다.
레딩 대사는 “스위스 국민 중 30%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70% 정도는 17살가량부터 일한다. 20살부터 연금에 가입해 65살까지 납부한다. 그래서 취업자의 노년층 부양율이 높다. 반면, 한국은 25살 취업해 55살에 은퇴한다. 연금을 내는 기간이 짧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국민들은 이른 나이에 취업전선에 나설 뿐 아니라 은퇴연령도 65세로 높은 편이다. 공식 은퇴연령은 여자가 64세, 남자가 65세다. 은퇴를 일찍 하면 연금이 줄기 때문에 대부분 정년 근처까지 일한다. 근로시간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짧지 않다. 지난 2002년에는 주당 근무시간을 42시간에서 36시간으로 줄이자는 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됐고 2012년에는 최소 유급 휴가일수를 4주에서 6주로 늘리는 법안도 통과되지 못했다.
레딩 대사는 “스위스의 근로시간은 세계적인 기준으로 봐도 높다”며 “작은 국토에 자원도 없고 노동력에 의존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일정시간이상을 일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한국이 하루 14시간 일하고 이른 나이에 은퇴한다면 스위스는 8시간씩 정년까지 일하는 셈이다. 일과 휴식의 균형이 맞는다”라고 전했다. 이어 “여성 노동인력이 많아서 연금 기여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스위스는 여성 고용률이 70%가 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50%대를 기록하며 OECD 국가 중 매년 최하위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대비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스위스를 방문하면서 높은 여성 고용률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연금문제에서 ‘국가는 거들뿐’
스위스의 연금체계에서 국가는 보완자의 역할에 머문다. 철저한 페이고(pay-go) 원칙에 따라 최대한 공적연금의 비율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이고 원칙이란 국가의 비용이 들어가는 새로운 정책을 만들 때 정부지출을 줄이거나 정부수입을 늘리는 등 재원 확보 방안을 함께 마련하도록 의무화한 것을 말한다.
연금 뿐 아니라 노인복지와 관련한 대부분의 사안도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한다. 주(canton) 등 지자체가 노인복지에 1차적 관한 권한을 행사하고 정부는 안전망을 만드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단위로 4성급 호텔수준의 요양시설이 있어 노인들이 외롭거나 불편하지 않게 생활할 수 있다. 본인 주택에서 생활하는 노인은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건강을 체크한다. 정부는 지자체를 재정적으로 보조한다. 레딩 대사는 “스위스 국민들은 국가가 모든 해결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정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위스는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어떤 법안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민과 정당이 수용할 수 있고 사회적 합의가 조성됐는가가 중요하다. 연금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으로 균형이 쏠리는 정책이 나올 확률은 국민투표를 거치면서 줄어들게 된다. 물론 국민투표로 정책을 정하는 것이 다소 소모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레딩 대사는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할 때 연금정책도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며 “국민투표를 통해 연금정책 지원에 대한 국민의 승인을 받는 것만으로 가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구가 점점 줄면서 더 적은 젊은이가 더 많은 노년층을 부양하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스위스에도 노인복지에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한국의 노인복지 정책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재정상황, 인구구조나 개인의 책임감 등 각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니까 하나의 방안으로 모든 국가에 적용할 수 없다”면서도 “스위스는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유입돼 이들도 연금체계에 기여한다. 국가가 얼마나 개방적인지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창간기획 시리즈] 풍요 속 극한 고통 ‘치매 대재앙’ 온다
①젊은 치매, 삶의 지옥이 열리다-上
치매는 노년기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든지 가장 두렵고 무서운 질병으로 대두되고 있다 .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인 시대다. 치매 환자가 늘어나는 것은 노령인구 증가가 가장 큰 이유지만, 치매 예방이나 극복 노력이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탓도 있다. 치매는 처음 진단 후 12년~15년 이상의 기간을 앓게 되는 동안 가족들이 부담해야 할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고통은 곧 사회의 재앙이다. 의학적으로 치매를 조기 발견하여 진행을 2년만 늦추어도 병원이나 시설에 입소하는 치매환자들의 50%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학문적 정설이다. 치매의 조기발견과 예방 그리고 환자가족들의 애환과 치료법 치료 시설, 전문 명의, 전문병원, 보험 등 통합적인 대처법을 시리즈 9회로 나눠 집중 분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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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초기치매’
젊은 치매, 삶의 지옥이 열리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초기 치매 자가진단 테스트
② 뇌는 한번 망가지면 회복되지 않아
조기진단 예방이 절실
: 치매 연구 어디까지 와 있나?
③ 대한민국 명의가 밝히는 치매의 진실과 오해
:치매 각 분야 전문 치료영역 및 전문의 소개
④ 숨기고 싶은 고뇌-배우자의 치매
:당신은 내 남편이 아니라고요
⑤ 치매 요양사가 밝히는 치매환자들의 눈물겨운 이야기
⑥ 치매환자에게 좋다는 음식과 처방치료제는 안전한가?
:치매 요양병원과 치료기기 및 제품 소개
⑦ 정부 지원책- 요양보험 혜택 -치매등급판정 심사 어떻게 하나?
요양사의 역할과 역량- 전문적인 치매 요양사 양성
⑧ 치매를 극복한 행복한 가족이야기
⑨ 치매보험 무엇이 적합할까?
: 가입조건 및 상품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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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치매’다. 2013년 58만명이었던 국내 치매 환자는 2025년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를 유형별로 보면 알츠하이머가 71%, 혈관성치매가 24%, 기타 치매가 5%를 차지하고 있다.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병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병이 아니다.
이르면 20대, 30대, 40대 무렵에 잉태된 치매의 씨앗은 느닷없이 소리없이 찾아와 조직이나 사회생활에서 큰 장애를 불러일으킨다. 뇌는 한번 망가지면 회복되지 않는다. 때문에 조기진단이 절실하다.
일본 대뇌생리학 대가인 마쓰바라 에이타 박사는 “건강하고 정상적인 40ㆍ50대 가운데 무려 80%에서 이미 치매의 싹이 발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누구에게든 소리 없이 찾아오는 치매, 미리 부터 건강 및 뇌 관리를 해야 한다는 시점에서 예방과 대비를 위한 통합적 대처법을 분석해본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초기치매’
급증하는 노인 인구와 고령화 시대의 도래는 자연스럽게 노년의 삶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고 있다. 노년의 삶에서 가장 큰 화두를 꼽으라면 노화가 주는 공포로서의 치매를 꼽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치매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이전에 비해 인지 기능이 지속적-전반적으로 저하되는 현상으로 정의된다.
치매 전문의에 따르면 “치매는 서서히 뇌에 독성물질이 쌓이다 발병하는 병”이라며 “10∼20대부터 예방에 관심을 가져야 치매 없는 노년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삶의 공포로서의 치매
어찌 보면 우리나라 사회에서 치매는 굉장히 익숙한 ‘사회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회는 오랫동안 유교 사상에 바탕한 대가족 사회였으며 지금도 상당 부분 그러한 형태가 변형된 양상으로나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3대가 함께 어울려 사는 문화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노년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치매 현상을 보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치매는 노년에 맞이하는 급작스러운 폭탄 같은 공포로써 다양한 소설, 드라마, 영화들 속에서 등장하곤 했었다. 드라마에서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던 노인 캐릭터가 갑자기 쓰러져서 가족도 못 알아보면서 헛소리를 하는 장면, 흔하지 않던가.
그러나 사실 우리가 치매에 대해 익숙하게 기억하는 강렬한 장면들이 막연한 공포심만 심어줌으로써 직접적인 접근을 어렵게 만든 점도 없지 않아 있다. 치매에 대하여 어차피 나이 들면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미리 포기해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치매는 원인 질환을 세분화할 경우 무려 70여 가지에 이르는 복잡한 증상이어서 개개의 경우가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치매는 신경과와 신경외과와 같은 물리적인 분야에서의 치료뿐만 아니라 정신과적인 측면에서의 치료도 수반되어야 효과적일 수 있기에 종합적인 방면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점진적인 치매, 알츠하이머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은 매우 서서히 발병하여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초기에는 기억력에서 문제가 생기며 점차 언어기능, 판단력 등 다른 인지기능의 저하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감정적으로도 영향을 미쳐서 성격변화, 초조행동, 우울증, 망상, 환각, 수면 장애 등이 일어난다. 말기에는 경직과 보행 이상 등의 신경학적 장애, 대소변 실금, 욕창 등 신체적인 합병증도 수반된다.
안타깝게도 알츠하이머병의 근본적인 치료방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치매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의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았다는 건 치매가 한동안 삶의 치명적 위협으로 작용하리라는 걸 예상하게 만든다. 다만 증상을 완화시키고 진행을 지연시킬 수 있는 약물들이 임상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에 수반되는 망상, 우울, 초조, 불안 등의 정서적 문제들에 대한 대처도 중요하다. 사실 함께 사는 보호자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부분이 이것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환자와의 교감 자체가 불가능한 만큼 간병의 보람도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호자들은 환자가 보여주는 신체적 어려움들에 대해 약과 식습관 개선 등으로 개선되도록 하고 주변의 환경적인 부분이 보다 편안한 물리적, 정서적 환경으로 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 물론 이 과정에서 환자가 약물에 너무 의지하게끔 만들면 절대 안 된다.
환자 개인적으로 알츠하이머병을 막기 위해선 고혈압, 당뇨, 심장병 등의 문제들을 치료할 필요성이 있고, 과음 및 흡연을 하면 안 된다. 자신이 정기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일이나 취미활동, 운동 등이 필요하며 의식주에 대해서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처리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과도한 음식 섭취는 피하며 오메가3, DHA, 리놀렌산 등 좋은 지방분과 딸기, 시금치, 근대 등 색이 짙은 과일과 채소로 이뤄진 항산화 식품을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꾸준한 운동, 규칙적 습관이 치매 예방의 왕도
치매 현상에서 두 번째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 질환에 의해 뇌조직이 손상을 입어 치매가 발생하는 경우다. 혈관성 치매는 갑자기 발생하거나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소혈관들이 점진적으로 좁아지거나 막히는 원인에 의한 경우 서서히 치매가 이뤄지기도 한다. 알츠하이머병과는 달리 초기부터 한쪽 마비, 구음 장애, 안면마비, 한쪽 시력상실, 소변 실금 등 신체적 증상들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혈관성 치매는 다른 치매들에 비해 예방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위험 요인들로는 고혈압, 흡연, 심근경색, 당뇨병, 고콜레스테롤 혈증 등이 꼽힌다. 혈관성 치매의 예방 방법이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인지하고, 그를 관리하고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 그 자체다.
혈관성 치매는 비교적 급격하게 그 증상이 나타나고 진행 경과에서도 계단식 악화 또는 기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상당 부분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 결과로써 드러나는 것으로, 혈관성 치매 예방을 위해 무엇보다도 강조되어애 하는 것은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의 유지다. 특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흡연 등의 혈관성 위험 요인은 철저히 치료하고 관리하는 게 급선무다.
혈관성 치매에 걸리게 돼도 위에서 설명된 규칙적 생활은 충실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또한 환자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환자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복잡한 일이나 많은 선택권을 환자에게 줘서 혼란을 주지 말고 일은 단순하게 정리하여 할 수 있는 것만 하게끔 하는 정서적 케어가 필요하다. 무기력한 환자의 경우 치료 의지를 북돋는 것도 필요한데, 꾸준한 대화를 통해 ‘할 수 있다’라는 마음을 심어주고 소소한 성공 사례라도 환자 스스로 해냈다는 걸 느낄 수 있게끔 구성해 주는 게 좋다.
일반적으로 치매는 생활에서 발생하는 리스크가 중첩되고 중첩되어 마침내 신체가 견딜 수 없어졌을 때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일찌감치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통해 문제가 될 소지를 없애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발병 후에는 완전한 치료가 불가능한 치매에 있어선 예방을 왕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치매는 이미 개인의 문제를 떠났다
치매에 걸리면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뒤늦게 치료하기 시작하면 효과가 떨어진다.
이미 치매는 개인의 문제 범위를 넘어섰다. 국립중앙치매센터는 전국에 있는 65세 이상 노인 613만 명 중 치매 환자 수가 58만6천여 명이라고 밝혔다. 즉 노인 11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시는 얼마 전 서울시에서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 중 10만6600명이 치매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또한 그 외에 30만800명, 27.8%에 달하는 노인들은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서울시에 사는 노인들 중 40% 인구가 치매 위험에 처해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치매 환자 1인당 사회적 비용이 연간 2,341만 원이라고 밝혔다. 위 통계를 토대로 계산해보면 한해에 서울시가 치매로 인해 소요할 사회적 비용은 2조4천억 원이 넘고 전국적으로 보면 13조7천억 원에 달한다는다는 엄청난 수치가 나온다. 물론 각 개인의 경제적 사정이 다르기에 저만한 사회적 비용이 완전하게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이미 치매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한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보기엔 충분할 것이다.
◆치매로 인한 환청에 시달리다 투신자살을 시도한 ‘30대’
지난 해 5월, 부산에서는 디지털 치매를 앓고 있던 30대 여성 A씨가 투신자살을 시도하려다 경찰의 대처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2년 전 남자 친구와의 헤어진 충격으로 디지털치매를 앓게 된 A씨는 집에 자신을 감시하는 CCTV와 도청 장치 등이 설치되어 있다는 환청과 환각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찰은 다리 위 난간에서 투신자살을 하려던 A씨를 설득한 후 집으로 이동해 수색을 펼쳐 A씨의 환청이 근거가 없음을 입증시켜 안심시킨 후 자살 시도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철수했다.
이 사건은 어느새 성큼 다가온 젊은 세대의 치매 문제를 돌아보게 만든다. 치매가 사회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이제는 치매가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물론 여전히 치매가 노년의 문제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크지만 30대, 심지어 20대와 같은 젊은 세대에서의 치매 발병률은 나날이 상승하는 추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30대~50대에 속하는 ‘젊은 치매’ 환자는 2006년만 해도 4055명이었지만 2011년에는 7768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치매는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30대부터는 대뇌 회백질 혈류량이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기에 사실상 치매의 예비적 지점들이 마련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육체적 특징에 더해 우선 한국 직장 특유의 난폭한 술문화, 식습관의 서구화로 인해 고혈압과 당뇨의 발병률이 젊은 세대에게서도 높아진 걸 젊은 치매 증가의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사무직 직업군의 증가로 인한 운동부족 인구가 늘어난 것도 젊은 세대에서 치매 원인 요인들이 활성화되는 이유이며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업무와 여가가 급증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리고 디지털 매체에 익숙해진 세대일수록 디지털 매체에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또한 뇌를 건강하지 못하게 하여 디지털 치매에 걸리게 만드는 촉매가 된다. 즉 치매는 이제 세대를 가리지 않고 발생할 수 있는 돌발적인 재해가 되어가고 있다.
식습관으로 인한 돌발적인 치매 발생도 문제지만 젊은 세대에게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것은 바로 디지털 치매 현상이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이 사람들의 삶을 보다 편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엄청난 양의 문서와 기록들을 온라인 메일이나 USB에 넣어 원하는 모든 곳에 보낼 수 있으며 길을 찾으려면 주소를 외우기보다는 내비게이션에 저장된 기록을 다시 꺼내오면 된다. 또한 요즘 세대 중에 친구의 전화번호를 정확하게 외우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러나 사람 대신 기억 행위를 수행하는 이러한 디지털 기기의 발달은 건망증의 심화 같은 디지털 치매 현상을 점점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집 주소를 기억하지 못하고 어제 먹은 음식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디지털 기기 의존성이 극단적으로 발달하면 노년의 중증 치매와 별 다를 바 없는 젊은 치매 현상도 볼 수 있게 된다.
◆젊은 치매가 일으킬 심각한 사회 문제에 대한 대처 필요
젊은 치매의 증가세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이유는 사회적 파장에 있어서 노년의 치매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점에서다. 우선 젊은 치매에 속하는 세대들 대부분이 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을 하고 있는 시기다. 역할로 보면 조직의 말단을 책임지는 중추에서부터 중요 관리직까지가 이 세대에 속하며 가정적으로는 이제 막 사회 구성의 첫 단계인 가족을 구성하여 한창 꾸려나가는 중이거나 막 구성할 예정인 시점이다. 즉 한창 활발하게 일하며 사회적 동력을 만들어내야 하는 세대가 치매라는 걸림돌에 걸려 모든 걸 포기하게 될 수도 있고 이것은 고스란히 사회적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
전문가들은 30대가 실제적으로 치매가 준비되는 시기라는 점과 현재 급증하고 있는 젊은 치매 환자 수를 들어 치매에 대한 예방과 이슈화를 젊은 세대에서부터 일찌감치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방이 최선의 치료책인 치매의 성격상 젊은 나이에서부터 치매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예방 차원의 규칙적 생활과 습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치매가 사회 문제로 확연하게 자리잡음에 따라 서울시에서는 시 차원에서 종합적 대책을 준비하기로 했다고 알려졌다. 미래창조과학부의 뇌연구 촉진 2단계 기본계획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수행하고 있는 이 과제는 5년간 ‘치매예측을 위한 뇌지도 구축 및 치매조기진단방법 확립사업’을 진행하여 조기진단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부산시도 치매 조기진단 연구에 나서기로 했다. 늦게라도 치매의 사회적 심각성을 깨달은 행정기관 차원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오고 있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치매라는 현상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