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탑골공원, 종묘공원처럼 인천의 자유공원, 안산의 화랑유원지, 청주의 중앙공원 등 노인들이 모여드는 곳은 주로 공원이다. 청주 중앙공원의 모습은 적막한 서울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하루 400여명의 노인이 모여 5만~10만원씩 적지 않은 금액으로 내기 윷놀이를 하거나, 술판을 벌이고 소란을 피우는 등의 행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공원 내 음주소란·사행성 오락 등 불법 무질서 행위 강력단속’이라는 경찰의 현수막이 내걸리며 그들은 또 다른 테두리 안에 갇혀버렸다.
인천 자유공원 역시 노인들이 모여드는 것을 반기는 이는 거의 없었다. 지난 4월 브라보 마이 라이프 기획취재 당시 고량주 나발을 불며 길거리를 활보하는 노인을 지켜보던 김모(29)씨는 “집에 계시는 것이 적적해 나온 것은 이해하지만 술 마시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에는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말했다. 정모(68)씨는 “젊은이들의 눈치가 안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라도 와야 바둑을 두는 사람도 있고, 말벗도 있어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공원마다 노인들의 모습과 분위기는 달랐지만, 이들 모두 ‘그것이 있어 그곳에 간다’라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기자가 안산의 한 공원을 방문했을 당시 한 노인에게 “무엇 때문에 공원으로 모이는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그럼 공원 말고 우리(노인)가 어디에 가야 어울리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의 말처럼 공원만큼 노인과 어울리는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젊은사람들은 노인들에게 뭐든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탔다가 ‘특별히 할 일 없으면, 이렇게 사람 많은 시간은 피해서 타면 안 되나. 어차피 공짜로들 타면서’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이제는 할 일 없는 노인이라는 이유로 뭐든지 뒷전으로 밀리는 거 같아 화도 나고 서운했다.”
종로3가 지하철역사에서 만난 70세 노인의 푸념이다. 그는 그나마 종로에 노인들이 몰린 곳에 오면 ‘그런 양보’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노인들이 공원으로 모이는 까닭은 ‘그들(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들(젊은이)이 원해서’가 아닐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모든 욕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젊은 시절 못해 봤던 것, 더 나이 들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로 그 어느 세대보다 욕구, 아니 욕망이 넘친다. 하지만 그들의 욕구를 ‘욕심’ 또는 ‘주책’이라 말하는 젊은이들의 시선에 그들의 꿈은 점점 작아져만 간다.
세상은 어제보다 오늘 더 빠르게 변한다. 의학이 날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기대수명은 늘어가고 있고 있고, 전 세계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속도 빠른 고령화로 인해 우리 사회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발 빠르게 적응해 나가는 젊은이와 그렇지 못한 노인을 갈라놓고 있다. 노인은 노화에 따른 건강악화와 현대 지식과 기술습득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급격한 사회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변화에 민첩하지 못하다 해서 과거에 머무르기만 하고 욕구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인 역시 다른 세대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욕구를 갖는다. 그들의 욕구는 노인 자신의 노력과 의지, 사회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실효성 있는 노인복지정책 등에 의해 충족된다.
하지만 누더기처럼 실속 없는 노인복지제도와 그들을 대하는 차가운 젊은이들의 시선은 그들의 욕구를 허구로 만들어 버린다. 사회의 잉여로 전락해 공원 등의 퇴적공간에만 머물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노인. 그 현상과 문제점 그리고 우리가 가야할 길에 대해 짚어봤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도입부에는 한 노인복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노인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환경과 선입견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거북이, 너무 느리다”, “얼굴이 두껍다, 나이 들면 창피한 게 없어진다”, “쾨쾨한 냄새가 난다” 등 다양한 학생들의 의견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 학생이 “탑골공원이요. 거기가면 노인들이 많으니까요”라고 답한다. 영화에서처럼 언젠가부터 ‘노인’하면 ‘탑골공원’, ‘탑골공원’하면 ‘노인’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이 당연해졌다. 그 당연하다는 무의식이 노인을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군집. 이른바 노인들의 섬으로 불리는 종로 탑골공원을 찾아가 그들의 표정을 살펴봤다. 10여명의 노인이 공원 입구로 들어서는 삼일문 그늘 아래에서 시름을 달래고 있었다. 30도를 웃도는 폭염, 하루 중 해가 가장 뜨겁다는 오후 2시. 이 무더위에 노인들은 신문지 한 장을 깔고 누워 낮잠을 자는가 하면,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손부채질을 하며 땀을 식히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안부는 이곳에서 ‘그래도 이런 날엔 집이 더 편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탑골공원인가. 이곳에 오면 뭔가 더 특별한 것이 있을까. 노인들이 많이 있기만 했지 특별히 모여 무언가를 즐기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그들의 표정은 전혀 흥미롭지 않다는 듯 내리쬐는 태양 아래 한껏 이맛살을 찌푸린 모습이다. 대화를 하는 이도 거의 없다. 대부분 홀로 공원을 찾아와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낸다. 인근에 회사와 학원이 많아 평일에도 사람들로 붐비는 종로에서 탑골공원을 찾아와 쉬는 젊은이는 없었다. 공원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지만 공원에는 노인뿐이었다.
탑골공원에서 5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한 패스트푸드점을 방문했다. 이곳 역시 테이블 하나 당 노인한명이 자리 잡고 앉아 조용히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커피 등을 마시고 있었다. 공원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곳에 노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곳에 노인들이 제각기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시니어들이 진정 원하는 실버타운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입주자들에게 어떤 인상을 안겨 주고 있을까? 올해로 76세가 되는 전광현 목사는 부인 신명휘 씨(71)와 함께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있는 실버타운인 서울시니어스강서타워에 입주해 있다. 스스로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전 목사의 목소리를 통해 실버타운 입소시 체크사항을 알아본다.
전광현 목사는 올해로 76세였지만 얼핏 보기에는 60대라고 해도 충분히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젊고 쾌활해 보였다.
“저희 맏형님이 신당동에 있는 서울시니어타워에 입주해 있어요. 그래서 실버타운이 어떤 양상인지에 대해선 미리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셈이죠. 그러나 그 곳에는 방이 없었고, 대기자만 수십명이 기다리고 있던 터에 추천을 받아 온 것이 여기 서울시니어스 강서타워였어요. 딱 34평형 1곳이 남아있었다고.”
4년 전부터 이곳에 와 있는 전 목사는 3억 5천만원 보증금에 식비랑 포함해 공과금 등 총 매달 130만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살고 있다.
16년 전통을 지닌 서울시니어스타워(주)는 현재 수도권에 위치한 4곳 실버타운(서울타워·강서타워·분당타워·가양타워)을 직접 시공·운영하며 총 1,000세대 1,500여 입주자들의 노후를 책임지고 있는 곳이다.
훌륭한 의료 서비스로 죽을 고비 넘겨
전 목사는 서울시니어스 강서타워의 가장 좋은 점으로 의료 서비스를 꼽았다. 대장항문 및 성인병 전문 의료기관 송도병원이 건물 안에 위치해 있는 덕분이다. 서울시니어스타워는 송도병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당연히 의료 서비스에서만큼은 최고의 편의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것이다.
일 년에 두 번 제공되는 무료 종합검진을 통해 무릎 전립선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전 목사는 설상가상으로 발생했던 심장의 물혹까지 확인하여 치료할 수 있어서 건강하게 회복됐다고 말한다. 그 후로 축농증도 발견해서 치료중인 그는 이러한 과정에서 한결같이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주며 상주하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서비스에 감동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건강서비스 외에도 다양한 생활지원서비스도 제공된다. 정기적인 식사관리와 청소서비스는 물론, 지역사회와 연계한 문화·여가서비스가 그것. 그 동안의 가사노동에서 벗어나 다양한 커뮤니티와 문화생활을 즐기고 전문 영양사가 제공하는 제철나물과 과일이 포함된 저염식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전 목사는 이처럼 매일 이뤄지는 식사와 활동 내역을 통해서도 회원 한분 한분의 건강과 안부 체크가 가능하기에 한 번 입주하면 나가질 않는다고 거든다.
실버타운 들어와도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아…더 바빠
전 목사의 하루는 오전 5시에 기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침 기도를 끝내고 6시가 되면 타워에 있는 운동실에 가서 벨트, 러닝머신, 근력 운동과 수영을 한 시간 가량 한다. 사우나에서 땀을 씻고 집에 와서는 아내와 저염식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를 한 후에는 수요일에 타워 안에서 열리는 수요예배 준비를 한다. 전 목사는 수요예배에서 설교를 맡고 있다.
“목사는 원래 은퇴하면 할 일이 없거든(웃음). 그런데 참 고맙게도 여기서 설교를 맡게 됐어요.”
그러나 전 목사는 귀가 어두운 입주자들이 설교를 들을 수 없다는 생각에 고민을 하던 차 마침 타워 안에서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을 알게 됐다. 칠순이 넘어 파워포인트를 배워서 제작까지 할 수 있게 됐고 이제 전 목사는 단순히 말만으로 이끌어가는 설교가 아니라 프레젠테이션식 설교를 한다. 물론 강서타워 입주자들(여기서는 회원님이라 부른다)평균연령이 80세인 구성원들을 감안하여 설교 시간은 적절하게 조율한다고 한다. 이러한 작은 활동들이 전 목사의 보람이다.
“나이 들면 TV나 보면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는데, 고맙게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요.”
아내를 위해 선택한 곳, 만족스러운 노후를 알게 해주다
전 목사가 실버타운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내인 신명휘 씨를 위해서였다. 목회를 위해서 신 씨는 40여 년 동안 전 목사를 뒷바라지해줬는데 그러다 보니 어깨, 다리 수술을 치러야 했다. 신 씨가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전 목사는 은퇴하면 아내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아내를 도와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대로 된 실버타운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침 교회의 금전적 도움이 있었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실버타운에 안착할 수 있었다.
“집사람이 너무 좋아해요. 이 안에서 새로운 걸 계속 배우고 있거든. 아내는 이 곳 강당에서 문화공연을 접하고 수영, 중국어, 일본어 등 교육을 통해 새로운 삶을 즐기고 있거든요. 이 곳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재능기부하는 회원님들도 있어서, 마치 제2의 인생을 사는 느낌이야.”
전 목사는 “이곳에는 100세 이상 회원들이 많아 우울증 치료나 작업치료, 웃음치료 등 심리치료 등을 지속적으로 케어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줬으면 한다”고 바람도 잊지 않았다.
실버타운 선택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전 목사는 “독신이거나 부부가 살기 때문에 큰 평수 보다는 중소형이, 종합병원등 의료서비스가 있어야 하고 산·공원 등 자연과 가까이 있는 곳,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가까운 곳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 목사는 이것만을 꼭 알아야 한다며 운영주체의 신뢰성을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운영주체의 실버타운 관리 능력과 경험 등을 잘 체크해야 입주 후 마음고생도 하지 않고 제대로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서울시니어스타워는 오랜 경험과 입주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의료서비를 챙긴 덕분에 서울 강남 세곡동에 노인복지주택과 주간보호센터가 접목된 선진국형 실버타운‘시니어스HOME’을 분양중이다.
서울의 한 실버타운에 사는 김문경(가명ㆍ72)씨. 그는 최근 아내의 손에 이끌려 동네 비뇨기과를 방문했다.
사연은 이렇다. 김씨는 7살 연하 아내와 요즘도 일주일에 2~3회 부부관계를 한다. 정작 그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내가 딴지를 걸었다. 그녀가 "정상이 아닌거 같다. 비뇨기 검사를 해보자"라며 그의 병원행을 종용하자 어쩔수 없이 동의했던 것. 20대 청춘도 아닌데 이틀에 한번꼴로 부부관계를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핀잔을 듣다가 결국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병원 검사 결과 이후 김씨는 아내 앞에서 어깨를 당당히 펴고 다닌다. 신체, 건강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났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에도 나이에 비해 정정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괜한 의심만 받았다"며 "기 체조부터 테니스까지 안하는 운동이 없다. 아직 건강한데 부부관계를 못할 이유가 않다. 요샌 아내에게 당당히 요구한다"며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봉인해제 된 황혼의 성…비뇨기과 찾는 부부 늘어
이는 분당 일산 등 은퇴한 시니어들이 많이 사는 동네의 비뇨기과에서 종종 볼수 있는 풍경 중 하나다.
최근 50ㆍ60세대 이상 시니어들의 세상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이들은 노년의 삶을 단순히 수명연장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특히 '삶의 질'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시니어들이 크게 늘고 있다. 무엇보다 사랑과 성생활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실제 노년층이 소수집단에서 다수집단으로 옮겨가며 이른바 '젊은 노인'들이 '황혼의 성(性)'에 크게 눈을 뜨고 있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노인들의 규칙적인 성생활은 건강에도 좋다. 노인 남성은 고환과 음경의 위축이 방지돼 전립선 질환이 예방된다고 한다. 노인 여성은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노화도 방지되고 자신감도 높아지며 심폐기능까지 향상되고 면역기능도 상승한다고. 그야말로 만병통치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보건복지부가 전국의 65세 이상 남녀 500명(2011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현재 성생활을 한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66%로 나타났다. 노년층 3명중 2명 이상이 지속적인 성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80대 이상 노인들의 노익장이 대단하다. 실제 한국소비자원이 60세 이상 노인 500명(2012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0∼84세 노인의 36.8%가 성생활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년층의 섹스라이프는 대략 10년전까지만 해도 당사자나 주변에서 숨기고 싶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최근 영화 '죽어도 좋아'와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 노인들의 성생활과 성욕구를 공론하는 영화 등 문화 콘텐츠들이 등장하면서 사정이 급변하고 있다. 특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노인 아닌 노인'이 증가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들이 할배나 할매라고 불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 특히 꽃노년들의 문화 활동이 증가하면서 시니어들의 연애시장도 활짝 꽃이 피고 있다.
◇사회복지관서 사랑 싹 틔워…함께 집으로!
그 시작은 지역 '사회복지관'이다. 복지관 관계자와 시니어 전문가 등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팔팔한 노인들의 일상은 대부분 복지관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최근 들어 복지관에 골수 매니아들이 늘어나면서 노인 집단도 자연스럽게 서열화되는 일이 비일비재다는 전언이다. 이들도 서로 외모나 능력을 따지며 관계를 맺는 것이다.
2년전 아내와 사별하고 경기도 용인에서 홀로 사는 박완대(가명ㆍ70)씨도 사회복지관에서 연애를 시작했다. 부인을 잃은 마음을 달래려고 댄스 커뮤니티 활동에 나섰다가 우연히 최숙경(가명ㆍ66)씨를 만나 열애에 빠지게 된 것이다. 특히 최씨도 남편과 사별한 사실을 알아내고 박씨가 프로포즈해 연인관계까지 이르렀다. 재밌는 점은 이들의 주된 데이트 장소는 바로 박씨의 집이라는 것. 그는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엔 집이 최고다. 내가 직접 요리를 해서 여자친구한테 대접하기도 한다"라며 "주말엔 기분도 낼겸 잠자리도 함께 한다"고 귀뜸했다.
하지만 이런 정상적인 연인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관 속엔 불륜 등 부적절한 관계도 적지 않다는 것. 여기서도 전적인 선택권은 거의 꽃할매가 쥐고 있다. 잘 생기고 유머러스한 할배들이 환영을 받지만 조건이 부실한 할배들은 집단 중심에서 소외된다. 즉, 꽃할매들의 눈 밖에 나면 연애는 커녕 복지관에서 제대로 기조차 펼수 없는 셈이다. 진정한 실세는 꽃할매들인 셈이다.
◇가짜 비아그라 성매매 성병 불륜 등 부작용 만만치 않아
성 욕구가 커지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도 늘어나고 있다. 일부 노인들은 속칭 박카스 아줌마(공원, 지하철 일대에서 성을 파는 여성)와 매춘을 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기구와 약물을 사용하다가 오히려 큰 병을 얻기도 한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주로 노신다는 남성관(가명ㆍ72)씨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얼마전 비뇨기과를 찾은 남씨는 지난 3월 봄 꽃놀이를 위해 단체관광에 참여했다. 마음에 끌리는 할머니의 연락처를 알아낸 남씨는 집으로 돌아온 뒤 그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만남은 자연스럽게 잠자리로 이어졌고 문제는 그 이후 터졌다. 얼마전부터 성기 주변에 뾰루지 같은게 올라오고 콧물같은 점액이 팬티에 자주 묻었던 것. 병원을 찾은 남씨는 성병에 걸렸다는 얘길 듣고 망연자실했다. 그는 "공원에서 같이 놀던 박씨도 지하철역 주변에서 5만원 주고 성매매 했다가 성병(요로감염) 걸렸다고 했다. 난 성매매 한 것도 아닌데 (이런게)내 일이 될지 꿈에도 몰랐다"고 허탈해 했다.
성병이면 양반이다. 성병은 치료가 가능하지만 종묘광장공원 일대 좌판이나 박카스 아줌마, 농촌 재래시장에서 파는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를 잘못 먹으면 돌이킬수 없는 신체 손상을 가져올수도 있기 때문이다. 짝퉁 발기부전제가 시니어들의 성생활을 크게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비아그라는 제품 자체가 진품이라고 해도 의사의 처방전 없이 살 수도 먹어서도 안된다. 게다가 진품이라고 해도 사람에 따라 두통이나 소화불량 같은 부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물려 물건의 진의여부는 물론, 그 속에 어떤 나쁜 화학적 성분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것을 속아서 구입해 먹었다가 어떤 피해를 볼지 모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비뇨기과 전문의는 "노인들은 성생활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 삶의 즐거움을 느깐다. 특히 성은 단순한 성 관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다양한 교류, 교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이라며 "노년의 성생활은 삶의 질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상대방과의 성기의 삽입을 하는 성관계만이 성생활은 아니다. 포옹이나 키스, 애무만으로도 충분한 성생활이 가능하다. 성생활은 본인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면 정년이 없으며 아름다운 노년생활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에서도 1위이며, 그 수치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노인의 자살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우울증의 경우 적절한 상담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례도 많다. 이처럼 생과 사의 기로에 선 노인들을 직접 만나 진정성 있는 상담을 통해 그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제안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자살예방 상담사’다.
서울노인복지센터 노인 일자리 사업단에서 만65세 이상 12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노인의 자살위기 사례 발굴 및 상담을 통한 우울증 감소를 통해 노인의 자살을 예방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들은 매월 36~40시간 자살예방상담사로 근무하며 소정의 급여를 받고 있지만, 월급보다 더 얻는 것이 많아 항상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자살예방 상담사'라는 제2의 직업을 통해 자살을 고민하는 이들에겐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 자신도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은행 지점장보다 자살예방 상담사로 사는 요즘이 더 보람되고 마음이 풍요로워요."
1998년 은행 지점장 은퇴 후 크게 하는 일 없이 지내왔던 조희채(70)씨. 그러던 그는 3년 전 인터넷 모집공고를 통해 노인 상담사 일을 시작했다. 당시 일반 상담으로만 이뤄졌던 업무가 자살예방·성(性)인권상담·민생상담 등으로 나뉘자 조씨는 자살예방 상담사를 택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그는 “지난해 전화 상담 중 자살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의 마음을 되돌리려고 40분 넘게 상담을 했죠. 그가 느꼈을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자아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설득해나갔어요. 상담이 끝난 후 119와 경찰에 연락해 그의 자살을 막아냈습니다. 그때 그 일로 노인 자살예방 쪽으로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살예방상담분야를 택하게 됐습니다”라며 그때 그 사건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평소에도 타인과의 대화법이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는 등 친밀감 있는 상담을 진행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고. 그는 상실감을 느끼는 이들에겐 그 무엇보다 목표설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씨는 “먼저 자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해요. 그렇게 하려면 자기 장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거든요. 저는 상담할 때 ‘당신의 장점을 10가지만 써보세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처음엔 ‘나는 장점이 없다’고 하신 분들도 10가지가 아니라 20가지, 30가지까지 써내려가죠. 본인들도 깜짝 놀라요.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스스로 목표를 정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스스로 더 발전하게 되는 거죠”라며 그만의 상담 노하우를 공개했다. 그는 더 친밀감 있는 상담을 위해 관련 책들을 많이 읽고 있다며, 끊임없이 노력해 이 일을 계속 해나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알코올 중독자로 살았던 지난날, 실제 경험을 통한 상담이 사람들의 마음 움직였죠.”
2011년 정년퇴직 후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그동안 학교에서 배우고 가정·사회에서 혜택받은 것을 모두 돌려줘야겠다고 다짐했다는 유을상(67)씨. 그도 한때는 알코올 중독자였다고 털어놨다. 그 역시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경험이 있는 한 상담사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며, 현재 그가 상담사로 활동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했다.
“다른 상담사에 비해 산 경험을 토대로 상담을 하다 보니 더 많이 공감하시고 도움이 된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당신이 뭘 알아?’라고 돌아섰던 분들도 제 앞에선 꼼짝 못 한다니까요. 자살하고 싶은 사람들의 경우엔 빈곤·우울·고독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론적인 이야기보다는 제가 겪었던 일이나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치유 사례를 들려주는 편입니다. 본인 마음이 움직여야 자살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해요”
인터뷰 중 유씨는 아주 중요한 얘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는 빠르게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노인 인구가 많아지니까 그분들이 갈 곳이 없어진 거죠. 대게 노인들이 종로3가 지하철, 탑골공원, 종묘공원 등으로 몰려나오는데, 여기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들은 계속 소통할 사람이 필요하고 상담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처럼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랑 얘기해야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의 귀가 되어줄 가장 효과적인 인력이 바로 우리(노인 자살예방 상담사)라는 겁니다. 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서 저는 이 일을 죽을 때까지 할 계획입니다”라며 노인 상담사 인원이 확충돼 더 다양한 상담을 진행하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 전했다.
“절대로 좌절하지 마세요. 열정·희망·격려를 통해 젊은 세대와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현재 목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복룡(70)씨는 1998년 봉사활동차 라오스에 방문해 마약 중독자들을 접한 후 마약 재활센터에 대한 생각들을 키워나가게 됐다. 국내 재활센터를 비롯해 미국과 말레이시아의 재활센터도 방문해 다양한 훈련을 받아온 그는 최근 이화여대에서 알코올 상담과 관련해 정식으로 2학기를 수료한 상태다. 그는 장차 마약중독 재활센터를 세울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장소만 준비되면 바로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하게 준비했다며 자부심을 드러낸 그다.
김씨는 “마약중독자 대부분이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이고, 실제 자살자도 많습니다. 2년 전, 직접 관리하고 기도했던 지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러한 계기들로 이쪽 상담센터도 오게 됐죠. 앞으로 재활훈련소를 만드는 일을 진행하더라도 노인자살예방에 상담 일은 병행할 겁니다. 노인 자살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정보를 교류해가며 각 분야를 서로 접목해 볼 계획입니다”라며 열의를 다졌다.
그는 인생2막 준비를 앞두고 방황하고 있는 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요즘 어르신들은 나이에 따라서 너무 좌절합니다. 절대로, 결코 좌절하시면 안 됩니다. 앞으로 좋은 신약들이 개발되기 때문에 수명은 연장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시대에 벌써 좌절한다면 자녀들에 치이고, 젊은 세대에 치입니다. 정말로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교육하고 훈련하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이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어려워지고 생활이 고단해집니다. 어르신들끼리 서로 소통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서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열정과 희망 그리고 격려가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자살예방상담사 세 사람 모두 “이 일을 계속 해 나갈 것이고, 현재 직업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은퇴 이전 나 자신을 위해 땀 흘려온 시절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함께 고민하는 지금이 더 가치 있고 행복하다며 미소 짓는 그들이다. 그들은 자신 있게 말한다. “어려움에 빠져있다고 좌절하지 마시고 우리를 찾아오세요. 계속 찾아오세요. 함께 나누면 분명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고민이 있다면, 목표가 없다면, 격려가 필요하다면 그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그들을 찾아가자. 매주 셋째 주 수요일 오후 2시, 종로3가역 육의전광장으로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시대에서 노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평균수명은 늘고 있지만 은퇴연령은 갈수록 낮아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오늘날의 한국이다. 빈곤을 떨치기 위해 일평생을 처절하게 저항해도 나이 들어 맞닥뜨리는 것은 계속되는 빈곤에 소외까지 더해진다.
살기가 팍팍해지면서 노화는 단순히 나이로만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닌 것이 됐다. 오근재 전 홍익대 교수(현 연세대 특별초빙교수)가 자신의 저서인 ‘퇴적공간’에서 지적했듯 건강한 신체와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 해도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면 한 순간에 노인으로 전락한다. 노화는 한 개인이 노동시장으로부터 밀려나는 거리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이는 저성장시대에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환경 속에서 누구나 노인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한때 사회를 이끌어온 주역이었으나 지금은 떠밀리다시피 ‘잉여’의 존재로 전락한 그들. 청주, 인천, 안산에서 만난 노인들은 하나같이 ‘갈 곳이 없다’고 호소했다. 왜 다른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노인의 군집현상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를 남보다 먼저 고민한 오근재 교수(사진)를 통해 들어봤다.
◇전통적 가족붕괴가 노인 소외의 뿌리
“가까운 일본에는 서울의 종묘시민공원 같은 노인들만의 퇴적공간은 없습니다.”
오 교수는 한국 노인의 군집현상을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붕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본도 에도시대 장인들 사이에 장남에게 직업을 물려주는 은퇴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일정한 연령을 기준 삼는 방식이 아니라, 언제든지 부모가 장남에게 ‘이제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자식에게 직업을 물려주는 방식이었다.
부모는 장남의 휘하에 스스로 들어가서 가게의 일을 도왔고 은퇴한 노인들은 아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세습자의 조력자로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 일본의 이런 세습제는 지금도 여전히 큰 흐름이 유지되고 있다.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은퇴한 노인은 가정과 사회에서 배제된다. 가족제도의 붕괴로 개인의 고립이 심화되면서 노인들이 위안을 구하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퇴적공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오 교수의 분석이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수많은 이웃을 목격함으로서 안도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빠른 산업화는 가족제도 붕괴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가족제도의 붕괴가 가속화됐기 때문이다.
“서구의 산업혁명은 약 25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사회적 충격을 흡수하면서 점차적으로 진행됐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난 50년 동안에 속도 빠르게 이뤄졌어요. 지금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급속하게 사회가 변해가는 과정에서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그 충격으로 쓰러졌습니다. 현대인들은 변화의 내용보다 그 변화의 속도에 충격을 받아요. 그 결과로 지금의 노인 집합이 나타났다고 봅니다.”
소외란 원래 자기 자리에 있어야 할 존재가 어떤 이유로 그 자리로부터 떠나 있는 현상이다. 노인의 소외는, 노인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잃어버리고 그 자리를 떠나게 됨으로 일어난다.
그는 “가족구성원인 노인 가족의 존경을 받으며 가정을 지킬 때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 전통적인 가족제도에서는 그 자리가 노인의 자리였기 때문”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일차적으로 가족제도의 붕괴가 노인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내다팔 것이 없는 노인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오 교수는 가족제도의 붕괴뿐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노동력의 상실도 노인이 소외되는 중요한 이유로 지목한다.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돈으로 바꾸면서 자신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살고 있는 인간은 돈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시장에 내다 팝니다. 지식도, 체력도, 몸매의 아름다움도, 심지어 감정까지도……. 사람들은 이들을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다 팔아서 동가물인 화폐와 교환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원래 인간에게 고유한 것들입니다. 인간 활동과 감정은 인간 자신의 구성물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모조리 팔아서 소진되었을 때, 인간은 소외된다. 원래 자기의 것들을 모조리 팔아버려서 이제는 더 이상 팔 것들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인간은 어느 순간 자신이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마치 술병에 술이 더 이상 남지 않을 때처럼 말입니다. 이때도 그 병은 술병일까요? 자본주의 체제에서 젊음을 바쳐온 이 시대의 노인들도 마치 빈 술병처럼, 자신의 것들을 모조리 팔아버리고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돈이 될 만한 것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오 교수는 빈곤층과 노인의 소외현상을 비슷하게 평가한다. 인간은 개나 소처럼 생물학적인 존재지만 문화적 가치를 높게 친다.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모든 교환가치는 결국 문화적 가치와 연계된다. 이런 식의 가치부여가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가치를 형성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빈곤층은 노인들처럼, 시장에 내다 팔가치를 지니지 못한 계층입니다. 그러므로 문화적 존재에 근접하지 못하고 생물학적인 존재에 근접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인들이나 빈곤층을 이루고 있는 하층계급에 속한 사람들, 이들은 원래 문화적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살아야 마땅하며 그렇게 살고 싶은 존재들인데, 그들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와 생물학적인 존재에 가까운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지정책은 가족관계 복원에 힘써야
오 교수는 정부의 복지정책도 가족해체와 노인소외의 중요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더 많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서는 가족과의 관계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현행 복지정책이 노인의 고립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다. 현재와는 정반대로 가족관계를 강화시키는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오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복지제도가, 어린아이든 젊은 부부든 노인이든 가족관계로부터 이탈되면 이탈될수록 지급액이 커지는 지급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노인들을 소외시켜나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지금의 복지제도는 인간을 개인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영유아를 집에서 엄마가 직접 양육하는 경우보다 영유아 보호시설에 위탁하는 경우에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금이 많아집니다. 노인도 홀로 남아 있을 때일수록 보조금 지급액이 커집니다. 아무리 혼자 힘들게 생활하더라도 아들이나 딸이 서류상 가족관계로 남아 있으면 그들로부터 실질적으로 아무런 생활보조비를 얻어 쓸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정부로부터의 복지비용은 격감합니다.”
노인들이 한 푼이라도 복지비용을 더 받으려고 자녀들과 자신의 삶이 부정하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게 오 교수의 견해다. 그래서 그는 우리 사회에서 복지정책 뿐 아니라 모든 정책이 가족관계를 복원하는 방향으로 입안되고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민 개개인의 소외감을 줄이고 행복감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다.
“이는 안보와 국가방위의 문제와도 직간접적으로 연계됩니다. 지켜야할 부모나 자식도 없고 사랑하는 이웃도 없는 국민들로 국가가 구성되었을 때, 자기의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킬 수 있는 개인은 흔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노인들을 돌보는 복지센터와 같은 곳도 가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센터는 ‘상처 싸매기’와 같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보다 바람직한 일은 노인들이 가정으로부터 더 이상 시가지를 배회하지 않도록 새로운 복지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법의 정신은 마침내 법 없는 사회를 추구한다는 말처럼, 길거리에서 소일하는 노인들의 숫자가 줄어들어 노인복지센터가 쓸모없는 기구가 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저는 복지정책의 입안자도 시행기관의 관리자도 아니지만 보다 길고 인내를 요구하는 정책을 세우고 이를 시행해나가야 한다고 보는데……. 이러한 일을 공약으로 내거는 정치집단이나 정치가는 없겠죠. 그러한 공약으로는 표를 얻어낼 수 없을 테니까요.”
오 교수는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 사라지고 우리 모두가 어우러지는 공간을 꿈꾼다. 분리되고 격리돼 있기 때문에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방황하는 노인들의 군집이 많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그 만큼 불확정성이 높은 사회라는 지표이기도 하다.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시설, 좋은 운영시스템을 지녔다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사회의 주류로부터 격리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사회가 분류되고 찢기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어울려 사는 사회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나가야 할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산은 다른 시에 비해 공원이 많아 노인분들이 갈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살기 좋죠.”
안산시 노인복지 담당자의 말이다.
그 말을 곱씹어 보면 마치 ‘공원’이라는 공간이 노인의 삶에 유익함을 제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 안산시에 공원은 177여 곳으로, 경기도 내에서 수원(289곳)·용인(264곳)·고양(205곳)시에 이어 4번째로 많다(2011년 기준). 안산시의 규모가 경기도 31개 시·군 중 17번째인 것을 고려하면 다른 지역에 비해 공원이 꽤 밀집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노인들은 공원 수와 비례하는 만족감을 표하고 있는지에 대해 직접 찾아가 그들의 표정을 살펴보기로 했다.
안산에서 첫발을 내디딘 곳은 상록수역 부근 늘푸른광장.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급식 행사가 있는 날이면 노인들이 구름떼처럼 몰린다고 한다. 그 정도라면 평상시에도 노인들이 제법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3~4명 남짓한 노인들만이 각각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광장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고모(83)씨에게 주변에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어디인지 물었다. 그는 “우리 집 앞에 보면 공원이 있는데 거기 가면 할매·할배들이 많이 와서 놀지. 같이 가보실라우?”라며 고모씨 집 근처에 있다는 일동공원으로 안내했다.
가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느냐고 묻자, 고씨는 “특별할 게 뭐가 있겠어. 그냥 집 앞이니까 한 번 씩들 나와 보는 거지. 밥 먹고 슥하고 나와서 좀 떠들고, 바둑들도 두고 하다가 밥 때 되면 또 싹 들어가고 그래”라고 말했다. 일동공원에 도착하자 10명이 채 안 되는 노인들이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울에서 거주하다 최근 안산으로 왔다는 유모(72)씨는 “서울은 종로에 가면 노인네들이 우글우글 몰려가지고 왁자지껄 술 마시고 고래고래 싸우고 하더라도 그게 또 나름 재밌었단 말이지. 근데 여긴 살기는 좋은데 좀 재미가 없지”라고 말했다. 재미가 없는데 살기가 좋다고 말하는 그의 말이 의아했다. 이에 대해 묻자, 그는 “점잖고 건강하게 살긴 좋지. 근데 이 할아버지들도 어쩔 땐 개구지게 놀고도 싶고 소리도 박박 지르고 싶고 그래”라며 조용하게 웃었다.
일동공원을 벗어나 안산역으로 이동했다. 택시 기사에게 주변에 노인들이 많이 몰리는 공원을 소개받아 초지동에 위치한 ‘화랑유원지’로 향했다. 유원지 입구를 들어서자 삼삼오오 모여 장기를 두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20명 남짓 모여 있던 등나무 벤치 주변으로 그들과는 섞이지 못한 채 멀찍이 앉아 있는 노인들도 곳곳에 보였다. 장기를 두고 있는 노인들을 등지고 앉아있던 김모(82)씨에게 왜 함께 어울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애들 노는데 어른이 껴서 뭐해. 나도 전에 안양 살면서 노인정 회장만 15년 했던 사람이야. 이제 그런데 가는 것도 재미없고. 그땐 60만 넘으면 다 노인이었는데 요즘은 누가 60대더러 노인이라고 하나. 그러니 애들이라고 하는 거지. 나는 그때도 노인네고 지금도 노인네잖아. 20년 넘게 노인으로 사니까 저러고 노는 것도 이젠 다 시시해”라며 풋내기 노인들 사이에서 진짜 노인들이 소외당한다고 털어놨다.
화랑유원지를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한참을 돌았지만 산책 삼아 나온 몇몇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유원지 입구만큼 노인들이 모여 있는 곳은 없었다. 다시 입구 쪽으로 걸어가던 중 ‘안산 시니어클럽’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이곳이 안산에 노인들이 많이 모인다는 그곳이 맞는가에 대해 안산 시니어클럽 김선희 과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 과장은 “안산에는 곳곳에 공원이 많아 특별히 어느 한 공원에 어르신들이 몰리는 일이 없죠. 다들 흩어져 계시니까요.
오히려 종로 탑골공원처럼 확 몰려서 계실만한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어르신들은 주로 경로당을 많이 가시는데, 경로당을 못 가는 분들이 주로 공원으로 나오는 편이죠. 그리고 실제 어르신들은 경로당을 싫어하십니다. 정말 거기에 가게 되면 노인이라는 기분이 들어서랄까요? 그래서 밖으로 나오시는데 공원 외엔 딱히 갈 곳은 없는 셈이죠”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전에 화랑 유원지 내에 어르신들끼리 의기투합해서 ‘화랑 경로당’이라고 직접 만든 적이 있어요. 원래는 유원지 내에 텃밭처럼 사용하려고 비닐하우스를 두었는데 그곳에 어르신들이 의자도 가져오시고 장기판도 두고 하신 거죠. 어르신들끼리 만든 거니까 회비 없이 가입할 수 있어서 당시엔 꽤 많이들 이쪽으로 몰렸었는데, 어쨌거나 불법이라 결국 철거됐죠. 지금은 그분들이 다 어디로 가셨는지 저도 참 궁금하네요”라며 노인들이 모여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공원이 많아서 노인에게 나쁠 것은 없다. 쾌적하고 안락한 ‘쉼’이라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은 다 하고 있지만, 노인들에게 ‘쉼’을 제공하는 것만이 최우선은 아니다. 언제까지 노인들은 쉬어야 하고 언제까지 그들은 공원에만 머물러야 하는가. 그들에게도 쉬는 것 이외에 또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원곡동 관산공원에서 만난 황모(72)씨는 이런 말을 남겼다. “생각해봐. 노인이 공원 말고서야 다른 곳에 가서 모여 있는 게 어울리는지. 그러니 어디 가려 해도 어색하고 눈치 보여 자꾸 공원으로 내몰리는 거야. 노인네들끼리 신 나게 놀아도 주책이란 소리 안 듣고 갈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그의 물음에 기자의 머릿속에도 커다란 물음표가 그려졌다.
누워 있는 사람은 앉으세요. 앉은 사람은 서세요. 선 사람은 걸으세요…….이런 말을 나는 즐겨서 쓴다. 나는 아직 걷는 사람군에 속한다. 고마운 일이다. 나는 은퇴하기 이전 현역 시절에 제자가 점심을 산다고 해서 약속 장소를 파고다공원으로 정해 주었다. 제자가 의아해 하면서 **호텔로 약속 장소를 정하자고 했다.
나는 파고다 공원에서 볼일이 있어서 그러니 그리로 오라고 말했다. 나는 파고다 공원 안 팔각정에서 앉아 기다렸다. 공원 안에는 많은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기도 두시고 환담도 나누시고 더러는 커피도 나누면서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측은지심이 들었다.
사실 오늘 이곳에서 만나자고 한 속내는 나도 나이 들어 이곳에 올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예행연습 삼아 약속한 장소다. 측은하게 느꼈다는 말은 아직도 젊었었던 내 눈에 할 일없이 모여 허송세월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자가 나를 발견하고 물었다. “선생님 오늘 여기에 무슨 일이 있으세요?” 나는 내 속내를 이야기 해 주었다. 나도 정년을 맞아 이곳에서 소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라고 했더니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눈을 흘겼다. 적어도 그땐 내가 제일 측은하게 느꼈던 노인들의 모습이다.
내가 SMART AGING PROGRAM을 고안하면서 생각해 낸 M의 뜻은 Movement였다. 움직이기다. 세계보건기구에서 권장한 건강수칙 가운데 이런 쉬운 권고가 있다. “될 수 있으면 자주 걷고 될 수 있으면 멀리 걸어라” 말은 쉽지만 요즈음 현대인들의 속성으로 봐선 지키기가 쉽지만은 않는 권고다. 대중교통이 거미줄처럼 발달되어 있고 자가용 승용차들이 많아서 웬만한 곳이면 모두 이런 교통수단을 이용하니 정작 권유대로 자주 멀리 걷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퇴임을 하고 나도 생물학적 나이가 점점 많아지니 세계보건기구의 권고가 실감난다. 다행히 나는 운동재주가 없지만 어릴 때부터 걷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지금 서서 걸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년퇴임을 맞은 한 교장선생님의 방문을 받았다. 일생동안 자기는 학교와 집을 왕복하면서 봉직한 경험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막상 퇴임을 하면 무엇을 해야 할까 걱정된다고 했다. 그래서 퇴임 후에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가르쳐 달라는 주문이다. “움직이기”를 권했다. 사람이 몸으로 움직이는 동작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징표가 된다.
나이 들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잃고 자리에 누워 있다면 누워 있는 자신도 괴롭겠지만 이 누운 노인을 보살펴야할 자녀들에게도 큰 고통을 안겨 준다. 누가 늙고 싶어 늙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가 또 병나고 싶어 누워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늙고 병드는 일은 인력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이다. 움직이는 일이면 무엇이나 해 보라고 권했다.
교장선생님은 그래도 치료자인 내가 권해 준다면 그 운동을 시작해 보겠다고 졸랐다. 세계보건기구의 권고가 생각나서 걸어보시라고 일렀다. 교장선생님은 그것도 운동이냐면서 탐탁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주지 곁에 운동시설이 무엇이 있는가 물었더니 정구장이 있다고 해서 정구를 권했다.
감사하다고 떠난 교장선생님은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응급실로 실려 오셨다. 이유는 내가 권한 정구를 밤낮없이 치다 보니 탈진한 것이다. 몸에 아무리 좋은 운동이라도 그렇게 급작스럽게 한다고 해서 약이 될 이치는 없다. 정년 후에는 늘 하던 운동이라도 조금씩 심도를 낮추거나 횟수를 줄여나가면서 즐기면 된다. 정말 아무것도 해 보지 않았다면 젊었을 때 해 보고 싶었던 운동이지만 해 보지 못한 운동을 선택해 보면 어떨까.
그도 저도 없다면 세계보건기구의 권고를 아낌없이 받아드려 보자. 눕고 싶은 사람은 앉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앉아 있을 힘이 있다면 서 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설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걷는 취향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내가 현역시절 파고다 고원의 노인들을 보고 측은지심을 가졌던 오만함을 지금은 부끄럽게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선택 받은 상노인이다. 파고다 고원에서 노인끼리 모여 환담을 나눌 수만 있어도 혜택 받은 중산층 노인들이다.
몸과 마음이 불편하여 거동이 어렵거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신이라면 가족이나 사회 그리고 국가적 복지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야 할 노인계층이다. 노인들이 할 일이 없다고 불평해선 안 될 일이다. 있으면 더욱 좋을 일이지만 없다고 화낼 처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기동을 할 수 있는 분은 그렇지 못한 분들을 위해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을 아직도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리에 눕지 않는 건강을 챙기기 위해 세계보건기구의 건강수칙 ‘걷기’를 모범생처럼 지켜보자. 이런 노력은 제일 먼저 노인 자신에게 도움이 되며 이런 건강은 가족이나 사회에 걱정을 덜어 주기 때문에 권장할 일이다. 걷자.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걷자. 그리고 멀리 걸어보자. 그래서 살아 숨 쉬는 기쁨을 만끽해 보자.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14년간 10만 명의 관객을 감동시킨 마당극패 우금치 대표작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우금치는 24일부터 25일까지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에서 마당극 '쪽빛 황혼'을 공연한다.
박영감은 아들의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논밭을 처분하고 서울 아들네로 떠나기 전 당산신에 제를 올린다. 서울의 변두리 천막극장, 노인들을 상대로 장수탕 예술단의 묘기와 가무가 펼쳐진다. 약장수에게 속아 가짜 약을 사왔다고 며느리에게 타박 받고, 늙었다는 이유로 사회와 가정에서 소외당한 노인들이 공원에 모여 신세한탄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할 일 하나 없는 도시생활에 지쳐 가던 최씨 할멈이 치매에 걸려 증상이 심해지자 고향으로 가자며 박영감을 조른다. 박영감은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겠다는 자식들을 뒤로 하고, 할멈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온다. 최씨 할멈을 업고 당산나무 아래에 돌아온 박영감은 함께 지내온 젊은 시절과 지난날을 회상하며 저승으로 떠나게 되는데….
마당극 쪽빛황혼은 일방적인 무대공연이 아닌 마당극 고유 양식인 원형 무대를 사용하여 배우와 관객의 거리를 좁히고 열린 호흡으로 함께 만들어 가는 신명을 중심에 뒀다. 전통장르인 풍물, 춤, 소리가 장면사이사이 이야기 전개와 볼거리가 어우러져 지루하지 않으며 관객과의 대거리로 즉흥성과 공감대를 극대화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김명곤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이 작품에 대해 "공연은 관객과 함께 하나 되는 공연으로 단순한 공연관람을 넘어서는 진한 '문화체험'으로 기억되리라 믿는다"며 "특히 젊은이들 중심의 문화에서 벗어나 어르신들과 젊은이들, 그리고 아이들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공연, 그것이 쪽빛황혼의 매력이고 마당극의 진정한 매력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진보적이고 튼튼한 민족예술극단 우금치의 공연은 가장 한국적인 연극방식이며 우리 문화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세계적인 공연양식인 마당극의 참맛을 알게 하는 공연이 될 것이다. 목요일 오후 7시 30분. 금요일 오후 4시, 7시 30분. 학생 1만 5000원. 성인 2만 5000원. 문의 ☎ 042(934)9396.
[기사제휴: 대전일보 최신웅 기자]
1호선 지하철의 끝 인천역 근처의 차이나타운. 그 가파른 언덕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지나 언덕의 정상까지 도달하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숨이 넘어갈 듯 말 듯 하던 찰나. 그 차이나타운의 최정상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공원 ‘자유공원’이 있다.
쓰레기 하나 떨어져있지 않은 깔끔한 공원. 주로 신중년과 노인이 많이 찾는 공원인 탓인지 조작이 어려운 공원 디지털 안내판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한 채 꺼져있다. 이것 빼곤 벤치와 기타 시설물들 중 고장이 난 것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깨끗한 공원이다.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해 추위가 기승하던 3월 중순. 매일 콧바람을 쐬러 자유공원을 찾는다는 95세의 여성은 “오늘은 추워서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러나 노인의 말과는 달리 꽤나 많은 중년남녀가 자유공원을 찾았다. 그 여성이 매일 이곳을 찾는다고 했으니 아마 이곳을 찾는 평균 인파는 더 많은 것 같다.
챙이 긴 모자를 쓰고 팔을 위아래로 크게 흔들며 운동하는 여인. 굵은 컬의 파마머리를 한 중년여성과 빛바랜 헌팅캡 모자를 눌러쓴 중년남성은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잡고 데이트를 즐긴다. 장기판과 바둑판에 삼삼오오모여 훈수를 두는 남성과 이를 제지하는 바둑 플레이어들도 있다. 중년과 노인들이 많은 공원이었지만 깨끗하고 잘 정비된 공원이라 그런지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커플도 눈에 띄었다.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과는 달리 남녀노소가 뒤섞인 공원이었다.
반면 곳곳에 술에 취해 술기운을 폴폴 풍기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고량주 나발을 불며 길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도 보였다.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신변의 위협을 느꼈는지 그 취객을 축으로 ‘비잉’ 둘러서 돌아간다. 이러한 광경을 본 29세 김 모씨는 “집에 계신는 것이 적적해 나온 것은 이해하지만 술 마시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에는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손사래를 쳤다.
중년들도 할 말은 있다. 68세 정 모씨는 “솔직히 젊은이들이 보면 싫어 할 것 같다. 칙칙하다고. 젊은이 눈치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동네에는 갈 곳이 없다. 이곳에는 바둑을 두는 사람도 있고 말벗도 있어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꽃샘추위로 옷깃을 두껍게 여몄던 3월 중순 임에도 추위를 무릎 쓰고 이곳을 찾는 이유 중 하나였다.
7~8년전 까지 만해도 오히려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곳이 이곳 자유공원이었다. 그렇다면 신중년과 노인의 발걸음이 자유공원으로 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여성합창단에 내준 노인 쉼터
다소 쌀쌀하고 흐린 날씨에도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이곳은 젊은이들의 데이트 명소였다. 인천광역시 중구의 한 투어 코디네이터는 “7~8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자유공원에서 중년이나 노인들은 현재만큼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중년과 노인들의 발길이 잦아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쉼터 건물을 여성합창단이 사용하면서 자유 공원으로 나오는 중년과 노인이 많아졌다”고 대답했다. 현재 공원 한 쪽에서 하고 있는 장기와 바둑 같은 게임들은 과거 2층 건물인 쉼터에 모여서 이뤄졌다고 한다. 많은 노인들이 찾아와 여가 생활을 즐겼다는 것이다.
코디네이터의 말에 근거해 지역 주민에게도 물어본 결과 여성 합창단이 사용하기 이전 노인들의 쉼터로써 사용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인천 중구에 문의했지만 여성합창단이 사용하기 이전 어떤 건물로 이용됐는지 파악한 중구의 부서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노인 복지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현재 노인의 쉼터에서 여성합창단에게 자리를 내준 건물은 공원 관리 사무소로 구실을 하고 있다. 중구 여성합창단은 지난해 본거지를 인천 중구 신흥동 3가의 중구문화회관으로 옮겼다. 그곳이 더욱 크고 좋다는 이유에서다. 중년과 노인들의 쉼터는 그대로 사라진 채 말이다.
중구 노인복지관 관계자는 “현재 자유 공원 주위에 특별한 노인 쉼터는 없다”며 "노인들을 위한 쉼터의 설립 계획은 특별히 없는 상태"라고 언급했다. 여성합창단과 같이 중구를 홍보할 수 있는 단체를 위한 투자는 커지고 있는 반면 노인들을 위한 안식처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중년과 노인에 젊은이도 적절히 배합된 공간. 어떻게 보면 세대를 아우르는 특별한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세대 간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데이트를 즐기거나 운동을 즐기는 젊은이들 사이로 이곳저곳에 말을 건낼 공간을 찾아 눈치를 보는 노인들이 보인다. 자유공원에서 만난 중년과 노인이 이 시대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