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잉여’가 아니다-갈 곳 없는 노인들]②인천 자유공원, '쉼터'에서 내쫓긴 노인들

기사입력 2014-04-02 08:36 기사수정 2014-04-02 19:30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인천 자유 공원에서 많은 노인들이 바둑과 장기를 두고 있다. 불과 7~8년전만 해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1호선 지하철의 끝 인천역 근처의 차이나타운. 그 가파른 언덕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지나 언덕의 정상까지 도달하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숨이 넘어갈 듯 말 듯 하던 찰나. 그 차이나타운의 최정상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공원 ‘자유공원’이 있다.

쓰레기 하나 떨어져있지 않은 깔끔한 공원. 주로 신중년과 노인이 많이 찾는 공원인 탓인지 조작이 어려운 공원 디지털 안내판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한 채 꺼져있다. 이것 빼곤 벤치와 기타 시설물들 중 고장이 난 것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깨끗한 공원이다.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해 추위가 기승하던 3월 중순. 매일 콧바람을 쐬러 자유공원을 찾는다는 95세의 여성은 “오늘은 추워서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러나 노인의 말과는 달리 꽤나 많은 중년남녀가 자유공원을 찾았다. 그 여성이 매일 이곳을 찾는다고 했으니 아마 이곳을 찾는 평균 인파는 더 많은 것 같다.

▲중년과 노인이 많이 찾는 인천 자유공원 중심부.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우뚝 솟아있다. 양용비 기자 dragonfly@

챙이 긴 모자를 쓰고 팔을 위아래로 크게 흔들며 운동하는 여인. 굵은 컬의 파마머리를 한 중년여성과 빛바랜 헌팅캡 모자를 눌러쓴 중년남성은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잡고 데이트를 즐긴다. 장기판과 바둑판에 삼삼오오모여 훈수를 두는 남성과 이를 제지하는 바둑 플레이어들도 있다. 중년과 노인들이 많은 공원이었지만 깨끗하고 잘 정비된 공원이라 그런지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커플도 눈에 띄었다.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과는 달리 남녀노소가 뒤섞인 공원이었다.

반면 곳곳에 술에 취해 술기운을 폴폴 풍기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고량주 나발을 불며 길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도 보였다.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신변의 위협을 느꼈는지 그 취객을 축으로 ‘비잉’ 둘러서 돌아간다. 이러한 광경을 본 29세 김 모씨는 “집에 계신는 것이 적적해 나온 것은 이해하지만 술 마시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에는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손사래를 쳤다.

중년들도 할 말은 있다. 68세 정 모씨는 “솔직히 젊은이들이 보면 싫어 할 것 같다. 칙칙하다고. 젊은이 눈치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동네에는 갈 곳이 없다. 이곳에는 바둑을 두는 사람도 있고 말벗도 있어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꽃샘추위로 옷깃을 두껍게 여몄던 3월 중순 임에도 추위를 무릎 쓰고 이곳을 찾는 이유 중 하나였다.

7~8년전 까지 만해도 오히려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곳이 이곳 자유공원이었다. 그렇다면 신중년과 노인의 발걸음이 자유공원으로 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과거 노인 쉼터로 사용되던 2층 건물. 노인의 쉼터에서 여성 합창단이 쓰는 건물로 바뀌었다. 여성 합창단도 중구문화센터로 본거지를 옮겨 현재는 자유공원 관리사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양용비 기자 dragonfly@

◇ 여성합창단에 내준 노인 쉼터

다소 쌀쌀하고 흐린 날씨에도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이곳은 젊은이들의 데이트 명소였다. 인천광역시 중구의 한 투어 코디네이터는 “7~8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자유공원에서 중년이나 노인들은 현재만큼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중년과 노인들의 발길이 잦아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쉼터 건물을 여성합창단이 사용하면서 자유 공원으로 나오는 중년과 노인이 많아졌다”고 대답했다. 현재 공원 한 쪽에서 하고 있는 장기와 바둑 같은 게임들은 과거 2층 건물인 쉼터에 모여서 이뤄졌다고 한다. 많은 노인들이 찾아와 여가 생활을 즐겼다는 것이다.

코디네이터의 말에 근거해 지역 주민에게도 물어본 결과 여성 합창단이 사용하기 이전 노인들의 쉼터로써 사용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인천 중구에 문의했지만 여성합창단이 사용하기 이전 어떤 건물로 이용됐는지 파악한 중구의 부서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노인 복지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현재 노인의 쉼터에서 여성합창단에게 자리를 내준 건물은 공원 관리 사무소로 구실을 하고 있다. 중구 여성합창단은 지난해 본거지를 인천 중구 신흥동 3가의 중구문화회관으로 옮겼다. 그곳이 더욱 크고 좋다는 이유에서다. 중년과 노인들의 쉼터는 그대로 사라진 채 말이다.

▲현재 관리사무소 입구 앞에 버려진 현수막과 술병을 비롯한 쓰레기들. 양용비 기자 dragonfly@

중구 노인복지관 관계자는 “현재 자유 공원 주위에 특별한 노인 쉼터는 없다”며 "노인들을 위한 쉼터의 설립 계획은 특별히 없는 상태"라고 언급했다. 여성합창단과 같이 중구를 홍보할 수 있는 단체를 위한 투자는 커지고 있는 반면 노인들을 위한 안식처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중년과 노인에 젊은이도 적절히 배합된 공간. 어떻게 보면 세대를 아우르는 특별한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세대 간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데이트를 즐기거나 운동을 즐기는 젊은이들 사이로 이곳저곳에 말을 건낼 공간을 찾아 눈치를 보는 노인들이 보인다. 자유공원에서 만난 중년과 노인이 이 시대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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