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은 다른 시에 비해 공원이 많아 노인분들이 갈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살기 좋죠.”
안산시 노인복지 담당자의 말이다.
그 말을 곱씹어 보면 마치 ‘공원’이라는 공간이 노인의 삶에 유익함을 제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 안산시에 공원은 177여 곳으로, 경기도 내에서 수원(289곳)·용인(264곳)·고양(205곳)시에 이어 4번째로 많다(2011년 기준). 안산시의 규모가 경기도 31개 시·군 중 17번째인 것을 고려하면 다른 지역에 비해 공원이 꽤 밀집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노인들은 공원 수와 비례하는 만족감을 표하고 있는지에 대해 직접 찾아가 그들의 표정을 살펴보기로 했다.
안산에서 첫발을 내디딘 곳은 상록수역 부근 늘푸른광장.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급식 행사가 있는 날이면 노인들이 구름떼처럼 몰린다고 한다. 그 정도라면 평상시에도 노인들이 제법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3~4명 남짓한 노인들만이 각각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광장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고모(83)씨에게 주변에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어디인지 물었다. 그는 “우리 집 앞에 보면 공원이 있는데 거기 가면 할매·할배들이 많이 와서 놀지. 같이 가보실라우?”라며 고모씨 집 근처에 있다는 일동공원으로 안내했다.
가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느냐고 묻자, 고씨는 “특별할 게 뭐가 있겠어. 그냥 집 앞이니까 한 번 씩들 나와 보는 거지. 밥 먹고 슥하고 나와서 좀 떠들고, 바둑들도 두고 하다가 밥 때 되면 또 싹 들어가고 그래”라고 말했다. 일동공원에 도착하자 10명이 채 안 되는 노인들이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울에서 거주하다 최근 안산으로 왔다는 유모(72)씨는 “서울은 종로에 가면 노인네들이 우글우글 몰려가지고 왁자지껄 술 마시고 고래고래 싸우고 하더라도 그게 또 나름 재밌었단 말이지. 근데 여긴 살기는 좋은데 좀 재미가 없지”라고 말했다. 재미가 없는데 살기가 좋다고 말하는 그의 말이 의아했다. 이에 대해 묻자, 그는 “점잖고 건강하게 살긴 좋지. 근데 이 할아버지들도 어쩔 땐 개구지게 놀고도 싶고 소리도 박박 지르고 싶고 그래”라며 조용하게 웃었다.
일동공원을 벗어나 안산역으로 이동했다. 택시 기사에게 주변에 노인들이 많이 몰리는 공원을 소개받아 초지동에 위치한 ‘화랑유원지’로 향했다. 유원지 입구를 들어서자 삼삼오오 모여 장기를 두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20명 남짓 모여 있던 등나무 벤치 주변으로 그들과는 섞이지 못한 채 멀찍이 앉아 있는 노인들도 곳곳에 보였다. 장기를 두고 있는 노인들을 등지고 앉아있던 김모(82)씨에게 왜 함께 어울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애들 노는데 어른이 껴서 뭐해. 나도 전에 안양 살면서 노인정 회장만 15년 했던 사람이야. 이제 그런데 가는 것도 재미없고. 그땐 60만 넘으면 다 노인이었는데 요즘은 누가 60대더러 노인이라고 하나. 그러니 애들이라고 하는 거지. 나는 그때도 노인네고 지금도 노인네잖아. 20년 넘게 노인으로 사니까 저러고 노는 것도 이젠 다 시시해”라며 풋내기 노인들 사이에서 진짜 노인들이 소외당한다고 털어놨다.
화랑유원지를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한참을 돌았지만 산책 삼아 나온 몇몇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유원지 입구만큼 노인들이 모여 있는 곳은 없었다. 다시 입구 쪽으로 걸어가던 중 ‘안산 시니어클럽’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이곳이 안산에 노인들이 많이 모인다는 그곳이 맞는가에 대해 안산 시니어클럽 김선희 과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 과장은 “안산에는 곳곳에 공원이 많아 특별히 어느 한 공원에 어르신들이 몰리는 일이 없죠. 다들 흩어져 계시니까요.
오히려 종로 탑골공원처럼 확 몰려서 계실만한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어르신들은 주로 경로당을 많이 가시는데, 경로당을 못 가는 분들이 주로 공원으로 나오는 편이죠. 그리고 실제 어르신들은 경로당을 싫어하십니다. 정말 거기에 가게 되면 노인이라는 기분이 들어서랄까요? 그래서 밖으로 나오시는데 공원 외엔 딱히 갈 곳은 없는 셈이죠”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전에 화랑 유원지 내에 어르신들끼리 의기투합해서 ‘화랑 경로당’이라고 직접 만든 적이 있어요. 원래는 유원지 내에 텃밭처럼 사용하려고 비닐하우스를 두었는데 그곳에 어르신들이 의자도 가져오시고 장기판도 두고 하신 거죠. 어르신들끼리 만든 거니까 회비 없이 가입할 수 있어서 당시엔 꽤 많이들 이쪽으로 몰렸었는데, 어쨌거나 불법이라 결국 철거됐죠. 지금은 그분들이 다 어디로 가셨는지 저도 참 궁금하네요”라며 노인들이 모여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공원이 많아서 노인에게 나쁠 것은 없다. 쾌적하고 안락한 ‘쉼’이라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은 다 하고 있지만, 노인들에게 ‘쉼’을 제공하는 것만이 최우선은 아니다. 언제까지 노인들은 쉬어야 하고 언제까지 그들은 공원에만 머물러야 하는가. 그들에게도 쉬는 것 이외에 또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원곡동 관산공원에서 만난 황모(72)씨는 이런 말을 남겼다. “생각해봐. 노인이 공원 말고서야 다른 곳에 가서 모여 있는 게 어울리는지. 그러니 어디 가려 해도 어색하고 눈치 보여 자꾸 공원으로 내몰리는 거야. 노인네들끼리 신 나게 놀아도 주책이란 소리 안 듣고 갈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그의 물음에 기자의 머릿속에도 커다란 물음표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