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노인에겐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삶의 지혜와 경륜이 있다는 의미다. 당연히 대우를 받아야겠지만, 도서관이 너무 많아 희소가치가 떨어지거나 용도가 많지 않아서인지 대우를 제대로 못 받고 있다. 아는 것을 말이나 글로 조리 있게 표현할 줄 몰라서 사장되기도 한다. 자기 전문 분야를 강연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회도 잡기 어렵다. 고려청자의 비법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하고 사장된 것처럼 대부분의 노인이 입을 다문 채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나는 30년간 댄스스포츠에 몸을 담았다. 5000여 편의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댄스 칼럼’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댄스는 몸으로 하는 것이므로 글로 표현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댄스의 본 고장인 영국에 유학 가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선생으로부터 열심히 댄스에 관한 글을 쓰라는 격려를 받았다. 유능한 댄스 교사는 몸뿐 아니라 글로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다행히 나는 영어에 능통해 외국 서적과 인터넷에서 얻은 댄스 정보를 번역해 소개했다. 세계 챔피언급 선수들과의 교류와 인터뷰로 궁금한 내용들도 물어봤다. 세계 댄스 기구, 각국 문화원에 문의해 정보를 얻어 칼럼도 썼고 책도 여러 권 냈다. TV에도 출연했다. 그럼에도 대학교수가 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교수가 되기에는 나이가 많기도 했지만 인맥이 없으면 대학 강단에 서기 어렵다.
‘ISTD’는 ‘Imperial Society of Teachers of Dancing’의 약자다. 영국에 본부를 둔, 100년 넘은 댄스 관련 민간기구인데 ‘영국 황실무도교사협회’로 번역되어 회자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곳에서 주는 자격증을 딴 사람이 많다. 명함이나 그들이 출간한 책자에는 버젓이 ‘영국 황실무도교사협회’ 회원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얼핏 보면 영국 황실 산하단체로서 대단히 권위 있는 기구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 단체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그래서 ISTD 본부와 영국문화원에 문의해 이 단체가 ‘영국 황실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답을 받아냈다. ‘Imperial’이라는 단어가 ‘황제의, 황후의, 황실의’라는 뜻도 있으나 ‘제국의, 대영제국의’라는 의미도 있는데 ‘영국 황실’을 갖다 붙인 것이다. 100년 전 영국은 ‘대영제국(The British Empire)’이었다. 거기서 나온 ‘제국’이라는 의미라 했다. 영국문화원에 이어 ISTD 본부에서도 같은 답을 보내왔다. 일본에서는 그냥 ‘ISTD’라고 부른다 했다.
이 일은 내가 댄스와 관련해서 한 일 중 가장 큰 업적이다.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ISTD’는 여전히 ‘영국 황실무도교사협회’로 오역되어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댄스계에 몸을 담고 있었기에, 영어가 가능했기에, 또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얻어낸 결과다. 댄스에 관한 한 나는 버젓한 도서관 한 채라고 자부한다.
신문에 보니 국내 연구 결과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의 10~28%가 근감소증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이 줄어들어 70대에는 30~40대에 비해 30%나 적다는 것이다. 근육량이 줄어들면 근육뿐 아니라 뼈, 혈관, 신경, 간, 심장, 췌장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근력이 악화되면 보행 장애가 오고 일상생활도 힘들어진다. 2차적으로는 당뇨병, 심혈관 질환이 온다. 균형 장애까지 오면 낙상, 골절 등의 위험까지 따른다. 몸이 약해지면 운동을 더 게을리 하게 되니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얼마 전 건강박람회장에 갔다가 근육량 체크를 받아봤다. 맨발로 기계에 올라가 있으면 자동으로 근육량이 체크되는 검사였다 그런데 담당자가 검사 결과를 보고 깜짝 놀라며 무슨 운동을 하느냐고 물었다. 근육량이 같은 연배와 비교할 때 월등히 많다는 것이었다. 댄스스포츠 선수라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 기초 골격은 중학교 시절 2년간 유도를 배울 때 형성됐다. 어른들과 매일 유도를 하다 보니 어깨도 벌어지고 근육도 생기면서 한창 성장기에 기초 골격이 완성된 것이다. 그 후로는 직장생활로 바빠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았다. 성장기의 운동은 평생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퇴직 후 댄스스포츠 선수생활을 할 때는 하루 4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 훈련을 한 적이 있다. 파트너를 잡고 뛰는 운동이라 무척 고되었다. 그러나 덕분에 각종 대회에 나가 예선부터 결승까지 체력 저하 없이 무난히 뛰었다. 고관절 부위의 근육은 그때 강화된 듯싶다. 양쪽 고관절 앞쪽의 근육은 허벅다리와 골반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근육인데. 단련하기가 쉽지 않다.
인체의 근육은 하체에 70%가 몰려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하체 근육에 집중하면 근감소증 문제가 해결된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운동을 한동안 쉬면 허벅다리 근육이 제일 먼저 빠진다. 걷기를 생활화하라는 권고는 그 때문이다. 걷기는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운동 강도가 약하다. 나는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매일 걷는다. 요즘은 걷기 모임도 많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산 주변 둘레길 정도는 걸어야 도움이 된다. 그보다는 중급 난이도 이상의 등산을 열심히 하면 다리 근육이 회복된다. 물론 겨울철이라고 쉬다 보면 다시 빠진다. 나도 지난번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뒤 허벅다리 근육이 되살아났지만 한 달이 지나자 다시 빠졌다.
악력은 좋은 편이다. 악수할 때 손힘이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걸 보면 아직은 끄떡없는 것 같다. 30대 때 평균 악력이 47kg인데 70대에는 절반 정도로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악력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활용한다.
근육을 키우려면 영양 섭취도 중요하다. 특히 단백질이 많은 고기를 먹어야 한다. 지인들은 고지혈증을 염려해 고기를 멀리한다. 곱창을 먹자고 하면 도망가고 삼겹살이나 쇠고기도 기피한다. 이미 심혈관 질환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육식을 할 때는 잘 먹는 후배들과 어울리게 된다.
한창 댄스스포츠를 즐길 때 파티가 있는 날이면 양복 대신 턱시도를 입고 나갔다. 격식을 차려보자는 의미였다. 턱시도를 입을 때는 나비넥타이를 맸다. 검정색, 흰색 나비넥타이가 대부분인데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주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이 눈에 띈다. 처음에는 호텔 종업원이나 연예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나비넥타이를 매는 게 어색했다. 그러나 자꾸 매다 보니 여러 가지로 편리하고 개성 있어 보여 좋았다. 강연이나 파티 등 특별한 자리에 나갈 때는 나비넥타이를 즐겼다. 작은 차이이지만 패션 감각이 남달라 보였다. 그 뒤 남자 패션은 목이 포인트라는 걸 알게 됐다.
그다음으로 관심을 가진 아이템이 스카프다. 역시 포인트는 목이다. 나는 땡땡이 무늬 스카프를 선호한다. 컬러는 검정색이나 회색 등 무난한 것을 고른다. 비스코스 소재로 만든 얇은 스카프를 하고 나가면 “그거 여자 거 아녜요?” 하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남자가 스카프를 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멋을 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 시선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 스타일대로 하고 다녀야 한다. 네팔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갔을 때도 스카프를 했다. 스카프는 스타일리시한 멋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보온성도 있다. 목을 감싸는 넥워머 위에 스카프를 한 번 더 두르면 패션 감각이 돋보인다. 먼지가 앞을 가릴 정도로 혼탁한 카트만두 시내를 관광할 때는 스카프가 마스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송파 노인복지관에서 독거노인 현황을 조사한다며 문자가 왔다. 문자 메시지를 보면 바로 전화해 달라고 했다. 3년 전에도 같은 내용의 전화가 왔다. 65세부터는 노인복지관에서 주기적으로 현황을 조사 관리한다는 내용이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죽거나 중증으로 거동을 못할 경우 남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내가 벌써 요주의 대상이 되었나 하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지만, 내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그때 건강 상태를 묻는 질문에 서울시 장애인댄스스포츠 대표 선수라고 하자 더 이상 걱정할 것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는 담당자가 바뀐 모양이다.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고 안부전화도 하겠다 한다. 그럴 필요 없다고 했더니 질병 유무,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 등을 물었다. 얼마 전에 히말라야에 갔다 왔다고 하니까 건강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주소지 확인과 거주하는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이사 갈 계획에 대해서도 물었다. 여차하면 달려가야 해서 거주지가 확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거 가족이 있는지, 독거노인이 맞는지도 확인했다. 동거가족이 있으면 관리 대상에서 빼도 되지만, 독거일 경우에는 노인복지관에서 반드시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자녀들과의 연락주기도 물었다. 독거노인은 누군가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연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서로 바쁘고 무소식이 희소식인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답하면서 생일, 어버이날, 설, 추석 명절 등 1년에 네 번 만난다고 했다. 그 사이에 같은 동네에 사는 동생, 형수님과도 연락을 한다고 했다.
사회관계에 대해서도 물었다. 문화센터나 친목 모임 등에 자주 나가느냐는 질문이었다. 동호회와 인터넷 카페 활동을 하면서 함께 식사하고, 당구 치고, 영화 보고, 걷기 운동도 한다고 했다. 동문회, 동창회, 협동조합 일에도 관여해서 일상이 꽤 바쁘다고 했다. 그렇다면 관리 대상이나 요주의 인물에서 빼도 되겠다면서 나에 대한 현황 조사는 1년에 한 번만 하기로 했다.
평상시에는 상황 체크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장기 여행을 떠날 경우에는 휴대폰을 꺼두기 때문에 걱정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럴 때는 가족 밴드에 여행 일정을 미리 올리면 된다. 일간 신문도 휴독 신청을 해서 문 앞에 쌓이는 일이 없도록 한다. 만약 변고가 생겨서 거동을 못하게 되면 신문이 쌓이므로 누군가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동호회 인터넷 카페 출석표에 매일 체크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앞날에 대해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제까지나 건강하게 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그때 가서 고민할 일이다.
원 투 차차차 쓰리 포 차차차.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익숙한 박자. 혹시 자신도 모르게 몸을 흔들고 있다면 당신은 잠재적 댄서? 문화에서 이제는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 잡은 댄스스포츠를 김종범(63), 박혜경(67) 동년기자가 배워봤다.
촬영 협조 뷰티풀댄스아카데미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127-8 4층)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은 댄스스포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댄스스포츠는 15~16세기에 사교를 위한 목적으로 처음 시작됐다. 이후 18~19세기에 오락 요소를 더한 볼룸댄스(ballroom dance), 즉 사교댄스로 발전했고 1991년 올림픽 종목 승인을 얻기 위해 ‘댄스스포츠’라는 용어로 재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의 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해 한때 사교댄스 교습이 중단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댄스스튜디오, 문화센터, 대학의 교양강좌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댄스스포츠는 빠른 리듬과 열정적인 퍼포먼스가 특징인 ‘라틴댄스(룸바, 삼바, 차차차, 파소도블레, 자이브)’와 우아함과 섬세함이 특징인 ‘모던댄스(왈츠, 퀵스텝, 탱고, 슬로우 폭스트롯, 비엔나 왈츠 포인트)’로 나뉜다. 댄스스포츠를 처음 시작한다면 자신의 취향을 고려해 종목을 선택할 것을 권한다.
김종범 동년기자
옛날엔 춤이라는 게 그냥 고고나 디스코, 블루스 정도가 다였다. 그러다 체계적으로 춤을 배우고 싶어 댄스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 요즘에는 문화센터, 복지관 등에서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기 때문에 새로운 취미생활로도 좋겠다.
박혜경 동년기자
MBC ‘댄싱 위드 더 스타’를 보면서 댄스스포츠의 매력에 푹 빠졌다. 젊을 때만 해도 춤추다 춤바람 난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멋있어 보이기만 했다. 화려한 조명 아래 파트너와 함께 추는 춤이라니.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댄스스포츠, 이것만은 꼭 지키자
향기가 나는 사람과 악취가 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누구와 함께 춤을 추겠는가? 백이면 백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과 춤추길 바랄 것이다. 이처럼 댄스스포츠는 한 쌍의 남녀가 함께 춤을 춰야 하기 때문에 파트너를 위해 예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만 편한 자세를 취한다거나 파트너의 기량에 맞추지 않은 행동은 실례가 될 수 있다. 또 춤을 시작하기 전과 후엔 상대방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댄스스포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화려한 의상이다. 파티에 초대되었다면 장소와 분위기에 맞는 복장을 준비해야 한다. 특별한 드레스코드가 없다면 남자는 단정한 정장, 여자는 원피스를 기본으로 한다. 물론 강습을 받는 상황이라면 간편한 트레이닝복으로 대체할 수 있다.
김종범 동년기자
혼자 추는 춤이라면 막 출 수 있지만, 댄스스포츠는 파트너와 추다 보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은근히 많았다. 혹시 상대방의 발을 밟진 않을까 배우는 동안 조마조마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바닥으로 향하고 여성분의 보폭에 맞춰 움직였다. 파트너와의 호흡이 왜 중요한 건지 알 수 있었다.
박혜경 동년기자
‘댄스스포츠’ 하면 가장 먼저 멋있는 의상이 떠오른다. 그래서 체험에 앞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라틴댄스, 모던댄스에 따라 신발 모양이 달라지는데 라틴화는 모던화보다 굽이 높았다. 이런 구두를 신고도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반복적인 연습이 중요
처음 댄스스포츠를 시작하면 가슴을 쭉 펴고 허리를 곧게 세우는 과정부터 쉽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이때 거울을 보면서 자세를 다듬으면 큰 도움이 된다. 스텝을 배워도 몸 따로 마음 따로 움직이다 보니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황안나 뷰티풀댄스아카데미 강사는 “한 가지 종목을 익히려면 보통 주 1~2회를 기준으로 세 달 정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댄스스포츠를 배우고 싶지만, 같이 배울 파트너가 없다는 이유로 시도를 못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룹레슨을 찾는 대부분의 강습생이 혼자 오기 때문에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 개인레슨의 경우 강사가 파트너가 되어 수업을 진행합니다.”
김종범 동년기자
처음엔 자신 있었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왼발이 나가야 할 때 오른발이 나가고, 오른발이 나가야 할 때 왼발이 나가는 등 실수 연발이었다. 스텝이 계속 꼬이는 와중에 박자까지 맞춰야 하니 마음처럼 쉽게 될 턱이 있나.(웃음) 그래도 몇 번만 더 연습하면 금방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 옆, 제자리에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파트너를 리드하면서 춤출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부부가 함께 배우면 더 좋겠다.
박혜경 동년기자
역시 난 몸치구나 하는 걸 느꼈다. 원래 처음부터 몸치는 아니었다. 한때는 춤 잘 춘다고 칭찬도 들었다. 이럴 때는 세월이 야속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웃음) 다른 사람이 할 땐 정말 멋있어 보였는데 거울 속 내 모습은 왜 이렇게 엉성한 건지. 잘하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줘서 아쉬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운동량이 많다. 몇 번 움직이니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신나는 올드팝과 함께 즐거운 춤사위가 봄바람을 타고 흐른다. 나도 모르게 흔들어댈 수밖에 없는 마력(魔力)에 빠지는 순간! 길가를 지나는 사람도, 서서 구경하는 사람도 손끝, 발끝, 엉덩이, 어깨, 허리를 도무지 주체하지 못한다. 힘찬 함성과 웃음소리의 발원? 바로 라인댄스! 라인댄스!
날씨가 흐리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서울지하철 3호선 매봉역에서 내려 양재천까지 걷는데 하늘색이 신경 쓰였다. 꽃눈이 소복하게 쌓였던 4월 어느 날, 양재천 벚꽃길에서 시니어를 주축으로 한 댄스 연합팀이 라인댄스 공연을 한다기에 찾아갔다. 한국댄스스포츠협회 라인댄스분과 이미경 이사를 중심으로 모인 연합팀으로 강남시니어플라자, 의왕국민체육센터와 라인댄스 지도자 동아리 등이 한데 어울렸다. 이미경 이사는 라인댄스를 알리는 것과 함께 춤을 추고 배우는 제자들과 시니어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다양한 무대를 찾아 공연 기회를 잡는다고.
라인댄스란 말 그대로 사람들이 줄을 맞춰 같은 방향을 향해 추는 춤이다. 지나간 시간을 더듬어보시라.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배우 김수로의 꼭짓점 댄스가 기억나는가? 여러 명이 줄을 서서 사방을 돌아가며 추는 군무가 라인댄스라고 생각하면 쉽다. 춤 종류에 구애받지 않고 같은 동작을 함께하는 춤이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이날은 20여 명의 라인댄서들이 모여 올드팝은 물론 트로트 가락에 몸을 맡기면서 멋진 무대를 선사했다. 젊음이 넘치는 춤사위는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아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박수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웨스턴부츠에 카우보이 조끼를 입고 등장한 강남시니어플라자의 시니어 댄서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50대 70대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세련된 율동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함께 만드는 기분 좋은 에너지
라인댄스는 오래전부터 미국의 카우보이들이 즐기던 춤의 한 방식이다. 율동만 같으면 되기 때문에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게 큰 장점이라고 이미경 이사는 말한다.
“카우보이들이 술집에서 한잔 먹고 다 같이 포크댄스처럼 췄던 게 라인댄스의 시작이에요. 지금은 모든 장르의 음악을 다 라인댄스로 엮을 수 있어요. 스포츠댄스, 모던댄스, 삼바, 맘보, 힙합, 펑키, 재즈 모든 음악이 라인댄스로 가능해요.”
시니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몸이 소화해낼 수 있을 만큼만 안무를 짜서 보급하기 때문이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제대로 만든 춤을 추니 성취감에 협동심은 배가된다. 좋은 에너지가 그대로 전해지는 이유가 따로 있겠는가. 춤을 추는 댄서들의 얼굴이 웃음꽃으로 만발했다.
우리 모두 건강한 춤을 춥시다!
이미경 이사는 라인댄스를 한국에 들여온 장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수로의 꼭짓점 댄스가 인기가 있었지만 월드컵 특수에 맞물려 이벤트로 끝났다. 우연이었을까. 2002년 이후 미국에서 라인댄스를 추는 이들이 늘더니 몇 년 지나지 않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야 말았다. 미국 전역으로 라인댄스가 퍼져나가던 시절, 마침 이미경 이사도 라인댄스를 접할 기회가 생겼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던 사람이 춤이라니. 하지만 라인댄스는 달랐다. 지금의 삶이 춤과 함께하는 인생으로 바뀐 걸 보면 말이다.
“집안 분위기도 그랬고 저는 정서적으로 춤과 무관한 삶을 살았어요.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정말 우연한 기회에 라인댄스를 알게 됐어요. 그때가 2005년 무렵이었는데 미국에서 라인댄스 붐이 일었어요. 그때 제가 눈이 번쩍 뜨이더라고요. 열심히 배우고 알아가다 보니 미국 YMCA에서 강의도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2008년도에 한국에 왔는데 라인댄스를 아는 사람들이 정말 없더라고요. 남녀노소에게 이 좋은 춤을 알리려고 노력 많이 했습니다. 요즘 시니어 사이에서는 라인댄스가 제대로 인기예요. 문화센터 대기자도 많고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라인댄스를 배우고 건강해지셨으면 좋겠어요.”
화려한 의상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남녀 구분은 더더군다나 없다.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의 정서와 공감대를 맞춰 춤을 춘다면 라인댄스 아래에서 우리 모두 나이를 잊은 그대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mini interview
힘든 일을 잊게 해줘요! 방인순(69)
학교 졸업한 뒤 가정생활밖에 안 했어요. 어려서는 한국무용을 했어요. 나이가 들면서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내 나이에 맞는 운동이 뭐 없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과격한 건 할 수가 없잖아요. 문화센터에 기웃거리다 라인댄스가 저랑 굉장히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건 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들 할 수 있는 그런 춤이더라고요. 한 시간, 두 시간을 해도 관절에 무리가 없어요. 우리 나이에 가장 적합한 운동인 거 같아요. 음악 한 곡 분량이 보통 3분 내지 4분이잖아요. 간결한 동작을 계속 반복하는데 전혀 힘들지 않아요. 아직 라인댄스를 모르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당연히 친구들에게도 많이 전파를 했어요. 줄을 만들어서 같이 신나게 추면 돼요. 최근에 집에 힘든 일이 좀 있어서 쉬다 나왔는데 진짜 활력소더라고요. 춤을 추다 보면 힘든 일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라인댄스 매력에 푸욱~ 박난규(67)
은퇴하고 나서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올드팝을 배우고 있었는데 같은 반 회원이 라인댄스가 좋다고 해서 하게 됐어요. 운동도 되고 아주 좋은 거 같아요. 배운 지 2년 반 정도 됐는데 아직 병아리 수준입니다. 8~9년 되신 분들도 있거든요. 사실 저는 학교 다닐 때 탁구선수였어요. 춤은 춰본 적이 없어 걱정했는데 선생님도 친절하시고 올드팝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3개월 배우고 난 뒤에 두 번째 등록을 했는데 선생님이 강남시니어플라자 개관공연을 한다고 공연팀을 만들자 해서 참여했어요. 라인댄스는 나이 든 사람들에게 좋은 춤 같아요. 삶의 활력이 된다고나 할까요? 저는 라인댄스가 여자와 남자가 붙잡고 추는 춤이 아니어서 좋은 거 같아요. 제가 사실 땀이 많이 납니다. 그래서 같이 맞대고 추는 춤은 좀 부담스럽더라고요. 제게는 라인댄스가 딱 취향에 맞고 좋은 거 같습니다. 아주 깨끗해요.
당구가 2020년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에 도전했으나 다른 종목에 밀려났지만, 2024년 파리하계올림픽에서 정식종목 채택에 재도전한다고 한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당구의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은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당구 동호인으로서도 반가운 일이다.
정식 종목 채택은 당구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달라져 당구의 위상도 높아진다. 당구 치러 간다고 하면 지금은 오락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앞으로는 운동하러 간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프로 당구 선수들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며 당구를 즐기는 동호인들의 자부심도 커질 것이다. 그러면 저변인구는 더 폭넓게 늘어날 것이다.
정식 종목 채택 여부는 세계 몇 나라가 참여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당구는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유럽이 강하다. 유럽 외에는 남미, 이집트, 터키, 베트남, 중국, 일본, 우리나라도 저변 인구가 넓다. 저변 인구 면에서는 자격이 충분하다. IOC위원의 상당수가 유럽 사람들이라는 점도 긍정적으로 보인다.
아시안게임에서는 1998년 방콕 대회부터 2010년 광저우 대회까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었다. 2002년 부산 대회 3쿠션 결승에서 황득희 선수가 우승해서 금메달리스트로 남아 있다.
당구는 스누커, 캐롬, 풀(포켓볼)을 3대 큐 스포츠 종목으로 본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강세인 종목은 3쿠션 종목인 캐롬이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 세계팀3쿠션대회에서 우승하는가 하면 김행직 선수는 2017년에 세계 대회에서 연속 2회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들 외에도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가 여럿 있고 자라나는 새싹들 중에도 세계정상을 노리는 선수들이 많다. 반면에 스누커와 풀 종목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대중화 되어 있지 않아 앞으로 국가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종목이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배출한 스켈레톤을 봐도 우리 선수들의 재능으로 볼 때 당구는 훨씬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
3쿠션이 올림픽 종목에 채택된다면 개인전과 세계팀3쿠션대회처럼 단체전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작년에 이어 우리 선수가 연속 우승한 것을 보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딸 가능성은 높다. 유럽 선수들 플레이를 보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공을 맞히기 위해서 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선수들은 한 사람씩 교대로 치는 스카치 방식에서 다음 선수가 치기 좋은 공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이것이 우리의 강점이다.
댄스스포츠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게임에 시범 종목으로 채택된 바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저변인구가 북반구 몇 나라에 국한되어 있고 심판 기준도 애매해서 정식 종목 채택이 어려운 상태이다. 반면에 당구는 심판의 기준이 비교적 명확하다. 판정 시비가 생길 우려가 적다. 필요하다면 비디오 판독으로 더욱 명확한 판정을 볼 수도 있다.
살아 온 날 중에 댄스스포츠 경기대회에 출전한 일들은 하나하나 귀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수백만 명의 댄스 스포츠 동호인 중에 정식 댄스 스포츠 대회에 선수로 참가해 본 사람은 극소수이다. 그러므로 그런 면에서는 행운아인 셈이다.
처음 댄스 대회에 출전한 것은 댄스에 입문한지 10년이 지난 2000년대 초 쯤으로 기억된다. 당시 동덕여대 총장 배 대회에 라틴 포메이션으로 출전했다. 필자 외에 여러 커플이 한 팀으로 출전했다. 주차장에서 연습을 하는데 필자의 옷소매 단추가 파트너의 가발에 걸려 낭패를 본 적이 있다. 필자가 팔이 짧아 소매 단추가 걸린 것이니 팔을 크고 높게 돌리라는 주의를 받았다. 막상 본 대회에서는 우리 팀 중 가장 키가 큰 커플이 같은 사고를 냈다. 소매 단추가 와이프의 가발에 걸리자 가발을 뽑아 내동이친 사람 때문에 꼴찌를 했다. 퇴근 후 모여 밤늦게 까지 연습을 했는데 그런 결과가 나오니 맥이 풀렸다.
올림픽공원에서 500여명이 모여 하루 종일 벌어진 자이브 페스티벌에서는 뜻밖에도 필자가 초대 챔피언이 되었다. 유력한 우승 후보가 결승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필자가 어부지리로 덕을 봤다. 그날 모인 여러 사람들 중에 단 한 커플 챔피언을 가리는 경쟁이어서 기분이 날아갈 듯 했다. 다음 해에도 이어서 계속 챔피언 자리에 오르자 축하 보다는 질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후 모던댄스로 전향했다. 시각장애인을 가르쳐 왈츠 단 종목으로 같이 출전했는데 첫 대회는 동상에 그쳤다. 그러나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후 종목을 늘려 모던 5종목까지 할 수 있게 되고 성적도 좋았다. 그러나 파트너가 고령으로 은퇴하는 바람에 다시 다른 파트너와 시작해야 했다.
2015년은 필자 댄스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해였다. 새로 젊은 장애인 파트너를 만나 가르쳤는데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협회에서도 장애인 대회만 뛰기에는 아까우니 일반인 대회까지 해보라고 했다. 청주대회는 새벽 4시에 만나 하루 종일 대회에 출전하고 서울에 와서 허기를 달래니 다음 날 새벽 4시였다. 여수 대회에서는 오전 장애인 대회에 이어 오후 일반인 대회 장년부, 일반부, 아마추어까지 출전했는데 3부문 모두 결승에 올라 우승, 우승, 준우승의 쾌거를 이뤘다. 모던 5종목으로 출전했으니 대단한 체력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파트너가 밤에 일을 해야 한다고 해서 멋진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하고 부랴부랴 KTX를 타고 상경한 것이 아쉽긴 했다. 그 파트너 덕분에 국립극장 무대에도 서 봤으나 그게 끝이었다. 코앞의 전국체전에서는 다시 새 파트너와 나갔으나 무관으로 돌아 와야 했다. 그러나 얼마 후 남한산성 배 대회 등에 출전하여 트로피를 들었다.
장애인들을 인솔하고 참가한 대구 대회에서는 대회가 끝나고 산중의 정화여상에서 부랴부랴 짐을 꾸려 터미널로 가야하는데 택시는 안 잡히고 시간이 촉박했다. 지나가던 봉고 차를 세워 모두 태우고 가까스로 버스 시간에 맞췄던 일이 잊을 수 없는 무용담이다.
전국의 여러 도시를 돌며 젊은 선수들과 같이 움직이는 일도 즐거운 일이었다. 시간이 나서 같이 바닷가를 거닐던 추억, 저녁에 같이 어울리던 추억, 같은 방을 쓴 룸메이트들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제주대회 때는 당일 경기도 댄스파티 날짜와 겹쳐 댄스파티 참가는 포기했었다. 그러나 주최 측의 강력한 요청으로 부랴부랴 혼자 비행기를 타고 와서 다시 택시를 타고 파티에 정시에 참석한 일화도 흐뭇한 추억이다.
댄스 대회 시작은 장애인과 같이 했으나 그 덕분에 일반인 파트너와도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울산 대회에 KTX를 타고 당일 아침에 갔을 때는 모던 5종목 타임 테이블이 오전으로 변경되어 출전도 못하고 나머지 종목으로 출전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용인대회에서는 오전 예선에 착오로 출전하지도 못했으나, 주최 측의 배려로 결승에 추가로 참가하여 트로피를 건졌다. 대회마다 음악을 트는 순서가 달라 엉뚱한 위치에 서 있다가 당황한 적도 있다.
전국체전에 4번이나 나가 3번 메달을 딴 것도 귀중한 추억이다. 평창 올림픽 폐회식을 보며 대구에서 벌어진 당시 전국 체전 입장식이 떠올랐다. 젊은 선수들과 어울려 스타디움의 수많은 관중들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지금도 댄스 대회장에 가서 쿵쾅거리는 음악을 들으면 몸이 들썩인다. 플로어를 지날 때면 연미복을 입고 경기를 뛰던 생각이 나서 흥분하게 만든다. 아직 선수 은퇴선언을 한 것은 아니지만, 선수로 플로어를 누빌 기회가 다시 올 것 같지는 않다. 집에 있는 몇 개의 찬란한 트로피와 메달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
‘소확행(小確幸)’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조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2018년 우리 사회 10대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꼽았다. 이미 회자되고 있던 ’작은 사치‘와도 비슷한 용어이다. 포미족(FOR ME)의 부상과도 연관이 있다. 빵집에서 가장 비싼 빵을 사 봐야 큰돈은 아니다. 500원 짜리 편의점 커피도 있지만, 점심 한 끼보다 비싼 커피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는 것도 ’작은 사치‘이다. 집값이 천문학적으로 비싸 생애에 아파트 하나 살 형편이 안 될지도 모른다. 그 대신 자동차는 멋진 것으로 사는 것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아파트 값에 비하면 ’작은 사치이다.
소확행의 전제는 긍정적이어야 하고 작은 일이지만, 흡족하고 행복하게 생각해야 한다. 남들이 보는 관점과 달라도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큰 목표를 이루면 좋겠지만, 큰 목표는 성공 확률이 높다. 그럴 바에는 성공 확률이 높은 작은 목표가 좋은 것이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는 ‘달관세대’라 하여 출세에 관심이 없다. 높은 직위에 오르게 되면 사생활을 희생해야 하고, 책임이 많아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을 도맡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식 직원도 마다하고 자유로운 아르바이트를 오히려 선호하는 풍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나름대로 소확행을 즐기는 것이다.
70년대 말 전자오락 게임이 한창 유행이었다. 필자는 그 당시 ‘갤럭시안’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기록 중이었다. 위에서는 포탄이 쉴 새 없이 점점 더 많이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밑에서는 방어물 뒤에 숨어 레버와 버튼을 이용하여 위쪽 적을 공격하여 파괴하는 게임이었다. 순발력과 빠른 손놀림이 동시에 필요한 게임이었다. 서울역에서 갈월동으로 가는 도로변은 전자오락 게임방이 줄지어 있었다. 밤늦은 시간에 가면 그날의 하이 스코어가 8만점대정도로 표시되어 있었다. 필자는 기계마다 20만점에 근접하는 기록을 만들어 냈다. 필자 뒤에는 그것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날도 한창 신기록을 수립 중인데 동료가 그만하자며 뒤에서 갑자기 필자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순식간에 게임이 종료되었다. 필자가 불같이 화를 내자 이해를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동료는 필자가 하이 스코어를 낸다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이름이 남는 것도 아닌데 적당히 하면 되지, 그렇게 몰입할 필요가 있느냐며 반문했다. 그때 마땅한 어휘가 없어 필자의 입장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게 필자에게는 소확행이었다.
일 년 내내 전국에서 댄스스포츠 대회가 열린다. 권위 있는 큰 대회도 있고, 고만고만한 실력의 선수들만 참가하는 댄스 대회도 있다.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좋겠지만, 예선을 통과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작은 지방 대회는 우승도 할 수 있고 적어도 등수 안에는 들어 트로피도 탄다. 혹자는 그런 대회에서 우승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무시한다. 그러나 나름대로 보람이 있다. 목표가 크지 않으니 소확행이다.
작년에 마라톤에 입문했다. 10km에 도전했다.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풀코스도 아닌데 감히 마라톤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다. 풀코스를 뛰는 사람도 처음엔 10km부터 뛰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풀코스에 도전하기 위해서 10km로 출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10km 코스면 흡족하기 때문이다. 소확행이다.
‘가성비(價性比)’ 라는 단어가 등장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가심비(價心比)’가 떴다. 가성비란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뜻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격이 싸면 품질이나 성능도 떨어지는 것이 일반 상식인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더라는 것이다. KS기준처럼 어느 정도 품질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시장에 내놓지 못하는 세상이니 품질이 조악해서는 출시 자체가 무리이다. 먹거리도 마찬가지이다. 커피 값이 천차만별이듯이 먹는 것도 반드시 비싼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잘 모르면 비싼 것으로 고르면 틀림은 없다”는 말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싼 것도 가격에 비해 그런대로 좋은 것이 많은 세상이다.
그렇다면 ‘가심비’는 ‘가격 대비 마음’이라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즉 ‘마음의 만족도’를 말하는 것이다. ‘가성비’는 가격이 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가심비’는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마음이 만족하는 정도가 더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작은 사치’라고 수입으로 봐서는 사치에 속하지만 단가 자체가 큰 금액이 아니면 가장 비싼 것을 사 본다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것일 때 예전에는 자신이 희생했지만, 요즘은 자신을 위한 이런 욕망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소비 풍조로 올해 트랜드 중의 하나로도 꼽을만하다.
필자는 1993년에 ‘시시비비’라는 시사 평론집을 자비 출판했다. 당시 1천만 원이 들었다. 책을 내봐야 팔리지도 않을 텐데 굳이 출판까지 해야겠느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책을 3쇄까지 찍었다. 책은 전국 유명 서점 및 GS25 편의점까지 호기 좋게 배포되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자 무참히도 상당한 양이 반품되어 폐기처분해야 했다. 그런데도 ‘가심비’ 면에서는 만족스러웠다. 당시만 해도 책을 출판한 사람이 많지 않아서 나름대로 저서가 프로필에 올라가며 스펙을 한 단계 올려놓는 효과가 있었다. 1999년 대통령 표창을 받을 때 이 책이 결정적인 차별화 요소가 되었다. 이것이 단초가 되어 3,410페이지 초대형 볼륨의 ‘캉캉의 댄스 이야기’라는 책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책을 11권을 내게 되었다.
2003년 영국에 댄스스포츠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갔을 때도 1천만 원이 들었다. 댄스로 먹고 살 것도 아닌데 그런 투자가 필요하겠느냐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8개월의 대장정을 댄스스포츠 국제지도자 자격증(IDTA:International Dancesport Teachers Association) 취득이라는 결과로 가심비를 만족시켰다. 그 후로 위상이 달라지니 날개를 달고 댄스 계를 풍미했다. 1천만 원으로 제2의 인생에서 운명이 바뀐 것이다. 돌이켜 보면 역시 필자 인생에서 ‘가심비’를 만족 시킨 잘한 결정이었다.
작년에 KDB 시니어 브리지 아카데미 총동문회장을 맡고 올해 마지막 사업으로 동문회보를 내기로 했다. 역시 수요도 조사해보지 않고 100만원이나 드는 공약을 꼭 해야 하느냐는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밀고 나가기로 했다. 초등학교 총동문회장 시절 때도 동문회보 발행으로 호평을 받았고 ‘가심비’로 볼 때 충분히 승산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니어들은 가진 재산을 노후에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해볼 나이이다. 한창 돈을 모을 때는 ‘가성비’를 따졌지만, 이제는 ‘가심비’를 따져봐야 할 때이다. 내가 그 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