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KDB 시니어브리지 아카데미 송년 모임에서 복면 가왕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180여명의 동문들이 모이는 큰 행사였다. 복면 가왕은 TV에서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행사 열흘 전 심한 독감으로 몸져누워 있는데 주최 측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복면 가왕 프로그램에 노래하는 사람으로 출연해달라는 것이었다. 목소리가 안 나오는 상태라서 거절할까 하다가 날짜가 열흘이나 남았으므로 일단 승낙했다. 큰 돈 들여 전문팀에게 의뢰하여 하는 행사인데 출연자가 너무 적어서 인원 보강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준비위원회의 한 사람으로서 도움이 되어야 했다. 노래는 조장혁의 ‘중독된 사랑’으로 하기로 했다.
빨리 감기가 나아서 목소리가 원 상태로 돌아가야 했다. 하루쯤은 그냥 버텼으나 완치를 앞당기려고 화이투벤 한 갑을 사서 복용했다. 목감기 전용으로 필자에게 잘 맞는 약이었다. 십년에 한 번 쯤 감기에 걸리는데 그때마다 화이투벤으로 치료했다. 약값이 여전히 2천원이었다.
화이투벤 한 갑은 10알로 이틀 분이었다. 그런데 차도는 있었으나 여전히 목 상태는 기침이 멎지 않았다. 목 상태를 봐서 쉬운 노래로 바꿀까도 생각해 봤으나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다른 송년모임이 있었다. 감기를 핑계로 술을 안 마시려 했으나 겉보기에 멀쩡하니 구차스러웠다. 그래서 일단 적당량 마셨다. 혈액순환이 좋아져서 빨리 나을 수도 있고 안 되면 빨리 악화 시키는 것이 치료를 단축하는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연 효과가 있긴 했다. 다음 날 아침 목이 부드럽게 풀린 느낌이었다.
드디어 무대에 서는 날이 왔다. 필자에게 베정된 복면은 은색 눈 가리개에 보라색 천으로 된 것이었다. 거기에 망토를 걸치는 것이었다. TV에서만 보던 복면을 써보니 필자 얼굴보다 작아 얼굴을 양 옆에서 조였다, 잠시 불편할 것이므로 그냥 하기로 했다.
필자 순서가 되자 신나는 음악이 나왔다. 중앙무대로 나가는데 저절로 춤이 춰졌다. 복면 가왕 프로그램은 원래 복면 쓴 출연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야 하는데 그 바람에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말았다. 노래하기 전에 그렇게 춤을 추면 숨이 가빠진다. 그러면 차분이 노래에 들어가기 어려워진다. 몇 년 전 노래자랑 무대에 나갔다가 똑 같은 경험을 하고는 절대 노래 부르기 전에는 춤을 추면 안 된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무대 뒤에서 필자 노래는 원 음정 F키에서 아래로 조정하여 C#으로 해 달라고 했었다. 그러나 노래는 이미 Eb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정해달라고 부탁할 처지도 아니라서 그냥 불렀다. 시간 관계상 모든 출연자들의 노래는 1절만 부르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필자 노래는 1,2 절 구분이 애매하므로 다 하는 것으로 협의 되었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후반부 고음부분인데 그전에 반주가 끊겼다.
노래가 끝나고 춤 솜씨를 제대로 발휘 못했다며 빠른 음악이 나왔다. 원래 정통 댄스스포츠 춤이라면 자신 있는데 무대가 작고 어울리지도 않아 막춤을 췄다. 발라드로 점잖은 체 했던 분위기를 춤으로 푼 셈이다. 송년회는 분위기가 점잖아서 좀처럼 분위기가 띄워지지 않는다. 그럴 때는 누군가 망가져 주면 일시에 분위기가 고조된다. 제 몫은 하고 내려 온 셈이다. 또 하나의 추억의 한 장면으로 기록 될 것이다.
IMF 금융위기의 여파로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가 이혼 얘기를 꺼냈다. 20년 직장생활에서 밀려난 것 하나만으로도 충격이 큰데 너무하다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벗는 김에 다 벗어버리자 생각했다. 아내의 이혼 요구에 응했다. 그리고 완전히 혼자가 됐다.
아내가 이혼 때 들이민 재산 분할 제안서를 보니 나는 빈손이었다. 단칸 전세 얻을 돈 정도밖에 없었다. 아내의 내역서는 그럴싸했다. 혼자 벌었어도 안살림을 한 사람의 공로가 절반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했으니 당연히 아내 몫으로 절반을 줘야 했다. 나머지 재산에서 아들딸 결혼비용을 또 떼어야 했다. 나중에 필자가 더 어려워지면 그 몫도 없어질지 모르고 재혼을 한다든지 하면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내게는 퇴직금과 약간의 주식이 있었고 내 재산으로 분류돼 있었다. 그런데 IMF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그렇게 빈털터리 홀아비 인생이 시작됐다. 막막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필자는 정신력이 강했다. 체력도 좋은 편이었다. 아직 젊으니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냐 했다. 가진 돈이 없으니 사업을 할 수도 없었다. 재취업을 하자니 또다시 남 밑에 들어가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불안한 직장생활을 하기는 싫었다. 여생은 나를 위해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다행히 현직에 있을 때 가깝게 지냈던 외국 바이어들에게 안부를 전하니 도와주겠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소량 주문은 받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가격에 관리비까지 얹으면 가격경쟁력이 없었다. 그러나 혼자 하니 관리비도 절감되고 오히려 소량 주문이 더 취급하기 적당했다. 때마침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특수를 타고 주문이 폭주했고, 꽤 큰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집도 사고 평생 노후 걱정은 할 필요 없을 만큼 금융자산도 모았다.
그러나 건강이 문제였다. 필자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꽤 있었다. 혹자는 사업을 하다가 망했고 혹자는 사기를 당해 주저앉았다. 그 여파로 건강이 나빠져 세상을 뜨는 사람도 있었다. 건강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선택한 것이 댄스스포츠였다. 그동안에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취미로 해왔는데 혼자가 된 뒤로는 더 자유롭게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필자는 평소 건강은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 사회적 건강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댄스스포츠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켜줬다.
댄스스포츠 덕분에 보람 있고 즐거웠던 추억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거금을 들여 댄스스포츠의 본고장인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것이 가장 잘한 일이다. 덕분에 능력을 발휘할 무대가 생겼고 댄스계에서 유명해졌다. 입문에서 선수생활까지 해본 사람은 아주 드물다. 후회 없을 만큼 만끽했다.
그 사이에 여러 사람을 만났다. 필자에게 접근한 여성도 몇 있었다. 여성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랑이다.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 사랑이 필요한 나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성들은 필자에게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뚫고 들어갈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 또 너무 바쁘게 사는 모습을 보며 한가하게 테이트나 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고 거절당할 것도 같아 아예 말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바쁘게 사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승산 없는 연애질에 정신적, 시간적 낭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뿐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자신을 돌보는 방법은 의식주 중에 먹는 것이 으뜸이다. 집은 있으니 해결되었고, 사고 싶은 옷을 보면 내 마음대로 산다. 두 가지는 해결되었으니 당연히 먹는 것을 중요시한다. 필자는 ‘내 몸은 보배이고 음식은 보약’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적 풍요로움을 위해 독서도 자주 하고 영화도 많이 본다. 스트레스 받을 일은 아예 피한다. 사회적 건강을 위해 여러 사람과 어울린다.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피부과에 가서 얼굴의 점도 빼고 맑은 피부 톤을 위해 레이저 시술도 받았다. 나를 돌볼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비장한 생각으로 산다.
올해 새로 책을 세권 냈다. 댄스스포츠 관련 책이다. 필자가 강의하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댄스스포츠’ 시리즈이다. 댄스스포츠는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댄스스포츠는 몸으로 보여주는 부문 말고도 할 얘기가 많다. 댄스가 무용이라는 예술 장르인데다 댄스스포츠는 생활체육, 엘리트 체육, 장애인 부문까지 범위가 넓다.
댄스스포츠는 관심은 많은데 막상 하려니 용기가 안 나는 사람들이 많다. 잘 모르니 무턱대고 입문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야기로 풀어내는 댄스스포츠’는 글이나 방송, 강의에 적합해서 꽤 인기가 있었다. 올해 강남시니어플라자 특강 때는 100여명의 댄스인들이 만석을 이루고 기립박수까지 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그전에 낸 책들은 기술적인 면을 다룬 책들이었다. 강습 때 머리에 넣어둔 요령,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배운 지식들을 담았다. ‘댄스엔조이’라는 시리즈 제목에 라틴댄스, 모던댄스, 라틴댄스 실전과 이론으로 각각 따로 출간했다. 댄스스포츠 관련 서적이 별로 없을 때라서 나름대로 꽤 인기가 있었다.
2014년에 출간한 ‘캉캉의 댄스이야기’는 필자에게 큰 의미가 있는 책이다. 3,410 페이지의 대작이다. 책값이 104,000원이다. POD(Publish on Demand)방식이라 주문하면 그때부터 책을 제본하여 택배로 보내준다. 전자책도 동시에 냈다. 이 책으로 댄스칼럼니스트로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 낸 책들은 ‘캉캉의 댄스이야기’ 뒤에 쓴 글들이다. 그전까지는 경어체로 글을 썼었다. 그러나 효율성을 감안할 때 반어체가 낫다는 판단으로 글체를 바꾼 것이다.
지금까지 약 5천여 편의 댄스 관련 글을 썼다. 초기에는 강습 때 강사들이 얘기하는 것을 메모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그랬더니 반응이 아주 좋았다. 신생 댄스동호회 카페에 그 글을 올렸더니 그 덕분에 회원이 급증했었다.
영국에 댄스 유학을 다녀온 이후로는 독자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다. 라틴댄스는 댄스스포츠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월터 레어드(Walter Laird)의 ‘테크닉 오브 라틴댄싱’, 가이 하워드(Guy Howard)의 ‘테크닉 오브 볼룸댄싱’ 내용을 분석하고 해설하는 방식의 글을 썼다. 주로 각 동작에 대한 설명이었다. 기술 이론이라고 보면 된다. 그 이전에는 이런 책들에 대한 간단한 직역만 있었고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에 관한 책은 없었다. 국제댄스스포츠 지도자(IDTA) 자격증을 땄으므로 글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다음 단계는 댄스스포츠가 여러 영역과 관계가 있다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글을 썼다. 댄스스포츠가 생활체육으로 건강에 여러 가지로 좋다는 점, 댄스스포츠의 원조 격인 발레의 발전사와 문화사, 커플댄스이면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발생하는 심리적인 문제, 고사성어와 접목해본 시각, 심리학, 인터뷰 해본 사람들, 직접 선수로 뛰어본 경기댄스, 장애인댄스까지 글 소재는 무궁무진 했다.
초기에는 댄스스포츠의 소개와 건전한 보급에 초점을 맞췄다. 소설 자유부인, 박인수 사건 등으로 댄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서 댄스스포츠도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믾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글로 쓴 것이다. 80년대 동아문화센터, 중앙문화센터에서 본격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하여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시범 종목, 대한 체육회 정가맹 단체, 대학교 정식 학과까지 개설되면서 위상이 달라진 것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이번에 새로 낸 책들은 전자책이라 얼마나 파급효과가 있을지는 모른다. 사실은 큰 기대는 안 한다. 요즘 사람들은 책을 워낙 안 읽기 때문이다. 그래도 필자는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낼 것이다.
나이 65세가 되면 전철ㆍ공원 무료에 국민연금 수급자가 된다. 방학을 맞는 학생처럼 가슴이 부풀었다. 고생은 끝나고 안락한 행복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하지만 앞으로 30년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스스로 물었다.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있는가? 대답이 쉽지 않는 대목이다. 세월이 번개처럼 흘러 2016년 한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고령자가 된지 어느덧 몇 년이 됐다. “건강하고, 경제문제가 해결되면 행복하다”고 모두가 입을 모은다. 친구가 있고 자원봉사활동을 하면 더욱 좋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사에 정신 차리기 어렵다. 머리 싸매고 배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몇 해 전까지 없던 나이제한이 보편화 되었다. 고령자는 수강이 제한되고, 수입창출 알바기회도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젊은이 위주의 취업과 창업만이 성행하고 있다. 시니어들이 주축으로 하는 재능기부 자원봉사단체가 많다. SNS를 비롯하여 노래 부르기ㆍ그림그리기ㆍ스포츠댄스 등 배울 곳은 많다. 시대변화에 따라서 배움을 멈출 수 없다.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행동이 나태해지기 쉽다. 이를 방지하려면 일과표를 작성하고 꾸준히 실행하여야 한다. 올 겨울은 다른 때보다 추위와 찬비, 미세먼지가 많아 마음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휴일 이른 아침, 몇 번이나 창밖을 살피고 나서야 친구들과 산행하려고 집을 나섰다. 창문을 내다보면서 비가 올지 걱정하지말자. 비가 오면 우산 들고, 눈이 오면 방한복 하나 더 입고 아침부터 집을 나서자. 망설이면 하루를 헛되게 보내고 만다. 은퇴 전보다 더 엄격한 일정관리를 하여야 한다.
정기적인 모임이 운동을 쉬지 않고 하는데 도움을 준다. 운동을 지속하려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 같은 운동을 하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동호인과 사귀면 운동하는 재미가 난다. 30년 넘도록 산행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도 친구들과 정기적인 동호인 모임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시니어 소비지출 항목 중에서 건강관리비가 상당함을 누구나 경험하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체력 단련비 등은 필요하지만 병원비, 약값은 건강을 미리 챙겼다면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이다. 건강이 행복의 시작이면서 소비절약의 중요한 요소이다. 건강한 생활을 하는 방법으로 운동ㆍ공부ㆍ자원봉사 등이 있다.
손주와 친하게 지내도록 노력한다. 주말에 가까이 사는 쌍둥이 손주와 세종에서 올라 온 외손자 등 세 녀석이 한 달여 만에 ‘합숙’을 열었다. 초등학교와 유치원 다니면서 자기들의 세상이 열렸다. 깔깔 웃어대고 놀이에 몰두하면서 할아버지ㆍ할머니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세 녀석을 옆에 뉘이고 잠자리가 불편할 새라 한밤을 지켜도 즐겁기만 하다. 손주는 인생의 제일 큰 행복이며 세대를 따뜻하게 이어줄 것이다.
어릴 적 할아버님, 할머님께 사랑 받았던 기억이 뚜렷하다. 손주들에게 그만큼 잘할 수 있나 종종 스스로 묻는다. 자식을 기르면서 한 세대를 다시 살았고, 손주를 돌보면서 또 한 세대를 다시 산다. 절묘한 자연의 순환이다. 건강을 지키면서 행복하게 사는 길은 손주와 친하게 지내는데 있다.
춤을 무대 공연으로만 생각해 대중은 무대 위의 댄서가 춤추는 것을 바라만 보던 시대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할 수 있는 발레나 아크로 바틱 등은 일반인이 흉내 낼 수없는 재주였다.
댄스의 역사에서 버논 캐슬 부부의 공로를 크게 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춤을 대중화시킨 사람이기 때문이다.이들 부부는 20세기 초 자연가로운동을 주창하며 춤은 거리를 걷듯 일반인들도 쉽게 출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기초해 영국이 전 세계 댄스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나라마다 다르고 심지어 같은 나라에서도 춤이 달라 불편했던 것을 통일시키는 작업을 한 것이다. 춤을 일부 전문가만 추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100년 전 일이다. 이런 정리는 왈츠, 탱고, 폭스트로트 같은 볼룸댄스가 먼저 진행됐고 이후 라틴댄스도 같은 방식으로 체계화됐다. 덕분에 댄스가 댄스스포츠로 발전해 오늘날 생활체육으로도 즐길 수 있게 됐다.
이런 작업이 진행된 것은 당시 사회 전반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던 시기였다. 제조업이 발달하자 농촌 인구가 줄어들었고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모든 것이 실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사고도 팽배해졌다. 예를 들면 긴 드레스는 일하는데 비효율적이라 점차 편한 옷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 즈음 영국에서는 여성들의 참정권 요구가 있었다. 일부 돈 있는 남자들에게만 있던 것을 여성들도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비록 30세 이상의 여성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었지만, 1918년 드디어 받아들여졌다.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은 10년 후인 1928년에 이루어졌다.
20세기 초인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4년간 이어졌다. 전쟁 통에도 사치보다는 실용적인 의상으로의 변화가 요구되었다. 산업 현장에서는 전쟁으로 부족한 일손을 여성들이 담당했고, 전쟁터에서는 직접 탄약을 나르고 간호를 하는 등 바빴다. 해리 폭스라는 사람은 이 무렵 폭스트로트라는 춤을 만들었다. 이때 여성들 드레스 밑단이 1인치 올라가며 비로소 발목이 보이게 됐다. 이전까지 여성의 의상은 발목을 가리는 것이 관습이었다.
초기 발레는 긴 드레스를 입고 췄다. 그러다가 의상이 점점 짧아졌고 20세기 초에 들어오면서 클래식 발레에서 보다 자유로운 다리 동작을 위해 드레스가 무릎 위로 올라가는 튀튀가 나오게 됐다. 1920년에는 샤넬라인이 등장했다. 여성의 드레스 밑단이 무릎 아래까지 올라온 것이다. 이는 사람들에게 미니스커트에 못지않은 충격을 줬고 거의 혁명적 사건이었다. 1900년 초 이사도라 덩컨이 유럽 무대에서 현대 무용을 펼친 것도 비슷한 시기의 움직임이다. 이전까지 발레는 발레복과 토슈즈가 필수였는데 이사도라 덩컨이 맨발 혹은 헐렁한 옷을 입고 춤을 춰서 그런 형식마저 무너뜨린 것이다.
우리나라도 해방 후 한국전쟁 때 서양 춤이 미군에 의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당시 우리나라 여성들의 춤 의상은 긴 치마였다. 하지만 춤추는 데 방해가 되었고 불편했다. 긴 치마라도 관계없이 우리 식으로 발전시킨 춤이 바로 ‘지르박’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지터벅’이다.
폐경 후 5년이 지나면 골밀도가 50%로 감소한다고 한다. 골밀도가 감소하면 골다공증으로 골절 위험이 높다. 30세가 지나면 근육량도 일 년에 1%씩 감소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운동밖에 대책이 없다. 중·장년 여성들에게 권하는 운동으로 체중부하 운동으로는 달리기, 줄넘기가 있고 심폐기능강화 운동으로는 걷기, 수영, 에어로빅이 좋다고 한다. 근력운동으로는 볼 맨드, 덤벨이 좋고 유연성 운동으로는 요가, 필라테스, 요통체조가 좋다고 한다.
그런데 달리기는 걷기운동 단계를 거쳐야 한다. 줄넘기는 제자리에서 하는 운동이라 금방 식상해진다. 수영, 에어로빅 등은 수영장이나 에어로빅을 가르치는 곳에 가서 배워야 한다. 볼, 밴드, 덤벨 등은 헬스클럽에 가서 하는 운동이다. 요가, 필라테스, 요통체조도 마찬가지다. 단체로 배우는 운동은 남들과 어울려야 한다.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연령대가 안 맞아 힘겹거나 지루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걷기운동이다. 요즘은 양재천, 성내천, 탄천, 안양천, 중랑천 등 개울 옆에 산책길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걷기운동을 할 수 있다. 걷기운동하는 사람들은 제법 많다. 그런데 걷기운동도 매번 장소가 똑같으면 흥미가 떨어진다. 다른 곳에서도 해봐야 하는데 혼자 계획을 짜기가 쉽지 않다. 계획을 짰다 해도 실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동호회 회원들이나 지인들과 약속을 정해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좋다.
개울가나 시내 길은 대체적으로 평탄하다. 운동 효과를 높이려면 약간의 높낮이가 있는 둘레길이 좋다. 평탄한 길을 걸을 때 사용하는 근육과 오르막 또는 내리막을 걸을 때 사용하는 근육은 다르다. 심폐량도 다르다. 그런데 둘레길에서는 중년 여성들이 잘 안 보인다. 부부가 손 잡고 오는 모습은 종종 보이지만, 중년 여성들끼리 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둘레길은 인적이 드물어 안전상의 문제가 있기는 하다. 어떤 코스는 남자 혼자 가는데도 너무 호젓해서 신경이 쓰인다. 신문이나 뉴스에 종종 오르내리는 멧돼지와 조우할 수도 있다. 이런 길은 여러 사람이 함께 다니는 게 안전하다.
둘레길 걷기는 좋은 운동이지만, 날씨에도 영향을 받는다. 비바람 불면 가기 싫고 가더라도 고생한다. 혹서기나 혹한기도 그렇다. 실내운동으로 댄스스포츠를 겸하면 좋다. 지루하지 않고 체중부하 및 근력 강화, 심폐지구력까지 골고루 좋은 운동이다.
싱글 남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지난 8월 말부터 매주 금요일 모여 난타 연습과 스포츠 댄스를 배운다. 강남시니어플라자 대표 싱글 모임인 회원 중 8명. 11월 말에 있을 플라자 내 교육 프로그램 발표회에서 난타 공연을 할 예정이다. 싱글들의 모임이라 그럴까? 생기가 넘친다. 왠지 모를 자연스러움에 나이까지 잊게 만든다. 그렇지만 속내는 알 수 없다. 탐색을 하고 있는지, 정말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 말이다. 격 있는 싱글들이 모인 김에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당신들의 속내, 지금 연애가 하고 싶습니까?
난타와 댄스스포츠를 가르치는 이복자씨 속사정
난타 소모임의 반장격인 이복자씨를 제일 먼저 만나 살아온 얘기를 들어봤다. 초등교사로 은퇴한 이복자씨는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무용을 공부했고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면서도 무용학교 입시 안무가로 젊은 시절 제법 잘나갔다. 스포츠 댄서로서도 한 획을 그었다고 자부하는 이복자씨. 그랬던 그녀는 재작년 황혼이혼을 했다. 작년 9월부터는 싱글의 몸으로 봄빛클럽 회원이 됐다. 지금은 나름의 재능을 살려 회원들에게 난타와 댄스스포츠를 가르친다.
이복자 황혼이혼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남편의 술버릇 때문이었죠. 젊을 때는 교사라서 못하고, 아들 결혼식에 빈자리를 만들기 싫었습니다. 결국 이혼했어요. 아들이 결혼하고 나서 호주로 떠났는데 제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웠어요. 자존심상 주위에 혼자된 사실을 알리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다가 봄빛클럽을 알게 됐습니다. 법적으로 혼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상담도 받은 뒤 회원이 되면 싱글들끼리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건전하고 나 또한 싱글이니까 마음놓고 얘기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봄빛클럽 안에 최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말 그대로 탐색 중이다. 그녀에게는 분명한 것 하나가 있다.
이복자 남자 경제력은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 연금으로도 두 명 충분히 살 수 있거든요. 마음이 맞고 편한 상대를 만나고 싶어요. 사실 제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분에게 당신이 편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뭐 어때요? 여자라도 마음에 들면 말하는 게 맞죠. 말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웃음)?
하나, 둘 회원들이 모이고 왁자하게 웃음꽃이 폈다
난타 모임은 발표회를 위해 급조된 모임이다. 이곳에 모인 회원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매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진 촬영을 위해 테이블 주위에 회원들이 오순도순 모였다. 봄빛클럽 단장이었던 이활주씨와 난타를 가르치는 이복자씨, 이영조·최연서·현정원·김순섬씨. 그리고 이복자씨의 댄스스포츠 파트너인 박노용씨도 나오지 않은 회원을 대신에 자리를 채웠다. 이날 모인 사람 중 유일하게 가정이 있는 남자다.
본격적으로 싱글 남녀와 대화를 열다
싱글이신데 젊었을 때와 지금 이성을 만나는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요?
이영조젊을 때는 좀 화끈하잖아요. 그런데 나이든 사람들의 만남은 하루하루 만나면서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는 거죠. 서로가 함께 있으면서 취미를 공유하고 같이 모이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봐요.
이복자 모여서 떠들면서 스트레스도 날리고 외로움도 해소하는 거죠.
최연서 젊었을 때의 연애는 쓰나미 같은 것이고, 지금의 연애는 밀물 같아요. 이 나이에는 쓰나미처럼 사랑할 수 없어요.
Q.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최연서 우리 생각은 시시때때로 바뀌어야 맞잖아요? 다른 사람 보면 또 바뀌고 그래야죠. 우린 싱글이니까요. 어떻게 사람이 같은 사람만 좋아할 수가 있어요(웃음)?
이복자 취미활동을 하다 보면 마음이 맞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러다가 개인적으로 만남을 갖는 사람들도 생기지 않을까요?
Q. 주로 어디서 만나시나요?
이영조사람이 그리울 때 저는 주로 저희 집으로 오라고 합니다. 집에 볼 만한 영화도 많고, 노래방 기계도 있어요. 그런데 전부 다 모여 먹고 마시다 보면 같이 영화 보고, 노래 부를 사람이 없더라고요. 다음에 영화 볼 때는 몇 사람만 와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때 갑자기 최연서씨가 이영조씨와 이복자씨가 함께 영화 을 봤다는 얘기를 꺼낸다. 야한 장면이 나오는데 둘이 괜찮았냐며 소녀처럼 묻는다.
이복자 문제는 그런 거를 같이 봐도 아무 감각이 없었다는 거 아냐? 이제 완전히 고목이 됐나봐. 지금 연서씨가 얘기하니까 그런 게 있었나보다 하지. 이제는 그런 장면을 봐도 감정이 막 생기고 그런 게 없더라고요.
Q.댄스스포츠 같은 거 하다 보면 찌릿한 느낌 없나요?
최연서 그럴 만한 사람을 만나면 그렇겠죠. 그런데 친구 사이로 생각하는데다가 배우는 데 집중해서 그런지 잘 몰라요, 그런 거.
이복자 지금은 댄스스포츠를 배우고들 있으니까 배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라도 더 배워서 안 잃어버리려고 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잘하나 못하나 그거에만 신경을 쓰지 남녀라는 느낌이 없어요.
이영조 지금 자꾸 내용을 그런 쪽으로 몰고 가는 거 아닌가요?
수줍어서인지 즐거워서인지 다들 박장대소한다. 격조 있는 싱글들이 만났으니 뭔가 있을 거 같다고 느꼈다.
이활주 우리가 만나봐야 한 달에 번개까지 해서 한두 번 만나요. 좀 얘기하다가 식사하고 노래방 가고,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쁘니까 따로 시간 내서 한잔 더, 혹은 차라도 한잔 이런 걸 못 해요. 지금 그것을 파악하는 중이지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서로를 많이 알게 됐어요.
Q.솔직히 말해보셔요, 다들 연애는 하고 싶으세요?
최연서 좋은 친구는 만들고 싶죠.
김순섬 마음 통하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Q. 얘기가 잘 통할 때 연애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으신가요?
이영조 희망사항이죠. 문제는 생각하는 이성이 없는 건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서 이곳에서 혹시 남녀가 불이 붙으면 이 모임에 나올까요(웃음)? 관둡니다. 그건 분명해요.
이복자 자기들끼리 만나야 하니까.
이영조 맞아요.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둘이 만나니까 안 나오더라고요.
Q. 혹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헤어졌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김순섬 다시 들어오지는 않겠지. 자존심이 있는데 헤어졌다고 들어오나?
이활주 사실 예를 들어 “나 누구하고 만난다”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존심이고 뭐고 없어요. 시치미 떼고 다시 오면 오는 거죠.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모임 회원 중 많게는 몇 사람 혹은 한두 사람은 서로 신상 탐색을 위해 밖에서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Q. 이 모임은 싱글 모임인데 다른 모임과 차이가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이복자 제 친구들 중에는 싱글이 많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하고 모임을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바삐 집으로 가요. 남편 밥 챙겨주러요. 집안일이 그렇게 딱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같은 싱글들은 집에 빨리 가야 하는 부담이 없어서 좋아요. 여기는 싱글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위화감은 없어요.
Q. 싱글 모임을 하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요?
김순섬 다른 내 친구들은 싱글이 아니니까 내가 만나고 싶을 때 못 만나요. 그런데 여기는 내가 전화하면 만날 수 있어요. 요즘 다른 친구들한테 자랑해요. 너희들 없어도 요새 나는 잘 놀고 있다고요(웃음).
Q. 같이 갔던 장소 중에 좋았거나 기억에 남는 곳이 있었나요?
현정원 춘천 갔을 때도 재밌었고, 대하도 먹으러 갔었어요. 11월에는 충남 태안에 천리포수목원으로 2박 3일 계획하고 있어요. 봄빛클럽에서 희망하는 사람들만 갑니다.
솔직하지 못한 싱글 남녀들의 머뭇거림에 이날 객원 멤버로 참여한 무용실 원장 박노용씨가 한마디한다.
박노용 너무 생각이 깊어요. 만나는 거 자체는 흥미롭고 좋은데 열지 못하는 거죠. 가정이 있는 제가 느끼기에도 몇 가지 장단점이 느껴집니다. 자유로운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 좋아 보이기도 하네요. 각자에게 주는 감정이 참 세밀합니다. 그런데 젊음이 떠나서 그런가 들이대는 게 부족해요(웃음).
이활주 그 말이 맞을 거예요. 다른 사람 눈치를 보게 돼요. 가족의 눈 등 일단 다른 사람들의 눈이요. 좋아하는 상대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알아가면서 좋은 감정을 만들 수도 있으련만.
최연서 자신에게도 신중해야 하고 남들도 생각해야 하고 젊었을 때랑은 다를 수밖에 없죠.
이복자 나이 들어보니 감정은 뒷전이고 이성적으로 이것저것 가리게 되니까 빨리 뭐가 안 이뤄지는 거죠.
박노용 남녀 간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따뜻한 친구는 얻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싱글 모임이 좋은 거 같아요.
최연서 누군가 말하기를, 이성 친구는 딱 보고 1분 내로 결정하라더군요. 단 지성과 양심 중에 양심 쪽을 택하라고 하더군요.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은 만남이 달라요.
시니어 싱글 남녀. 이들도 결국은 진짜 사랑을 만나고 싶고, 지금까지의 삶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젊은 사람들처럼 사랑을 표현하고 내세울 수 없다. 삶에 대한 책임감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보다 클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마음이 시니어들이 사랑을 생각하는 방식이 아닐까.
지난 달 양재동 케이호텔에서 열린 마스터즈 댄스스포츠 대회 중 한 프로선수의 은퇴식이 있었다. 경기 대회 중간에 은퇴식을 넣어 주는 것이다. 은퇴 댄스 시범을 보이고 박수를 받고 마치면 주최 측에서 준비한 은퇴 공로패 정도를 받고 문하생들이 꽃다발을 안겨준다.
그날 은퇴한 선수는 30대 중반의 나이였다. 아직 상위 급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데 왜 벌써 은퇴하느냐며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그날 우승한 선수의 아버지도 아들을 3년 후에 은퇴시키겠다고 했다. 할 만큼 다 해봤고 이젠 돈을 벌게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정상에 있을 때 화려하게 은퇴하는 것이 보기 좋다고도 했다.
선수들이 은퇴할 시기를 잡는 것은 선수마다 다르다. 그날 우승자처럼 정상에 있을 때 내려오는 것이 이미지 관리 상 좋다는 사람도 있다. 평생 그 이미지로 남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다른 선수들은 더 이상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 한계를 느낀다.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고 그 때문에 밀리면 나이 들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나이 들었음을 깨닫는 것은 또래나 후배들이 먼저 은퇴하고 심사를 보고 있을 때 느끼는 모양이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다. 선수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댄스 선진국 영국이나 이탈리아 등지에 자주 레슨을 받으러가야 한다. 알량한 레슨비 벌어 둔 것을 그때 가서 다 쓰고 오면 다시 빈털터리가 된다. 그 생활을 연속하다 보면 모아둔 돈은 없고 가정을 꾸몄을 때 경제난에 봉착하게 된다.
신체적인 문제도 있다. 고된 훈련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 나이 들면서 체력이약해지면서 경쟁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 30대 중반에 은퇴하는 프로 선수들이 많다. 그때쯤이면 여자 파트너도 임신 출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시 복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파트너와 더 이상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그 참에 은퇴해 버리는 선수들도 많다.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해서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새로 파트너를 구해야 하는데 다시 손발을 맞춘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 100세 시대에 30대 중반이면 은퇴해야 하는 현실은 너무 빠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 경우도 은퇴할 때 협회에서 은퇴식을 해주겠다는 제의를 한 적이 있다. 프로도 아닌데 언감생심이라고 사양했지만 대회 중간에 은퇴식을 위해 잠시 시간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현재는 파트너가 없어 휴업 상태라서 현역으로 뛰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발을 끊은 것은 아니니 은퇴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은퇴라고 생각하니 서글퍼지기도 한다. 댄스가 아닌 직장생활 현역에서 퇴직했을 때는 오히려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가슴이 설레었었다. ‘은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은퇴’는 완전히 손을 때고 뒷방에 물러앉는다는 의미가 있어 내키지 않는다. 혹시 파트너가 생긴다면 마지막으로 프로 전향을 하면서 은퇴식을 갖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2003년이니 스포츠 댄스를 배운지 10년쯤 되었을 무렵이다. 당시만 해도 댄스에 대한 이미지도 아직 개선되지 않았었고, 스포츠댄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스포츠 댄스를 가르친다 하여 등록했으나 배우다 보니 스포츠 댄스가 아닌 포크댄스였다. 지터벅 같은 사교댄스를 가르치기도 했다. 3년쯤 지나자 그 강사 밑에서는 더 배울 것도 없고 지루해 하던 차에 집이 이사 가면서 집근처 다른 문화센터로 옮겼다. 이 강사는 스포츠 댄스를 제대로 배운 사람으로 덕분에 많이 배웠다. 그러나 강사의 동작을 따라 하는 교습 방식이라 늘 이론에 목이 말랐다. 그런데 “춤은 몸으로 하는 것이지 이론은 필요 없다”며 이론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다시 다른 사정이 있어 다른 곳으로 옮겨 라틴댄스를 배우게 되었다. 내가 전체 회장이 되면서 강사와 가까워졌다. 어느 날 강사의 차 안에서 표지도 없이 너덜너덜한 상태로 굴러다니는 책 한권을 발견하고 호기심 있게 봤다. 스포츠 댄스의 모든 종목과 모든 동작이 남녀 스텝 따로 자세히 나와 있는 책이었다. 다만, 영어로 되어 있고 각 스텝이 차트 방식으로 정리 되어 있었다. 중국 무술 영화에서 비장의 기술을 적어 놓은 책 같은 영감을 받았다. 비기가 적혀 있는 책을 습득하기만 하면 산 속에 들어가 혼자 연마하여 중원의 일인자가 된다는 중국 영화가 많았다.
그 책에 대해 강사에게 물었으나 영어가 약한 강사는 더 얘기해줄 것이 없다고만 했다. 다만 그간 원어인 영어로 하자니 혀도 안돌아가고 수강생들도 못 알아들으니 춤 동작은 번호로 통 했었다. “자이브 1번부터 10번까지 해 보세요” 식이다. 이 책을 보니 동작의 이름이 명확하게 나와 있었다. 영어에는 자신이 있던 터라 책을 빌려 탐독했다. 그러나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일종의 비밀서책인 셈이다. 이 책 덕분에 인터넷에 내 이름으로 댄스에 대한 칼럼을 올리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댄스를 말로 풀어주는 칼럼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이 강사가 압구정동에 있는 한 강사를 소개시켜줬다. 이 책을 공부해서 댄스의 본고장 영국에 가서 세계적인 강사에게 레슨을 받고 국제 댄스 지도자 자격증을 따 온다는 프로그램이었다. 표지도 떨어져 나가 그간 제목도 모르던 이 책이 월터 레어드가 쓴 ‘테크닉 오브 라틴댄싱’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룸바, 차차차, 자이브, 삼바, 파소도블레의 남자 동작, 여자 동작의 모든 스텝, 타이밍, 박자, 다리 위치, 발바닥 사용법, 액션 명칭, 회전량, 선행 동작, 후행 동작 등이 나와 있다. 이 책을 통째로 달달 외우고 각 스텝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희망자가 10명이 넘었으나 갈수록 사람이 줄어 6개월이 지난 후에는 여자 프로 선수 한명과 나만 남았다. 영어로 배우는 수업도 어려웠고 매일 개인 레슨 방식으로 이론을 배운다는 것이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결국 두 명이 대망의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런던의 100년 넘은 유서 깊은 ‘쌤리 댄스스쿨’이란 곳이었다. 세계 챔피언 급의 유명 선수들이 와서 연습하고 배우고 하는 곳이다. 내 담당 강사는 쥰 먹머르도(June MucMurdo)라는 70대 할머니였다. 월터 레어드가 1961년에 라틴댄스를 세계에서 최초로 체계화 하여 이 책을 만들 때 옆에서 타이핑하던 비서였다고 했다. 댄스도 같이 배워 그 당시 이미 댄스계의 유명인사이며 세계적인 댄스 강사였다. 그런 사람을 스승으로 두고 배운다는 것은 내 댄스 인생에서 큰 영광이었다. 실제로 자격증 시험 과정에서 커플댄스 시연이 있는데 그 선생이 내 파트너가 되어 같이 5종목을 다 보여 줬다. 그리고 조목조목 각 세부 동작에 대한 이해를 묻는 실기와 이론 시럼을 무사히 마치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같이 갔던 여자 프로 선수는 영어가 약했기에 책 하나를 통째로 외우는데 애를 먹었다. 새벽6시부터 밤 12시까지 학원에 나가 스텝을 익히고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으나 시험 보름을 앞두고 정신 장애를 일으켰다. 너무나 육중한 스트레스를 이겨 내지 못한 것이다. 영어로 된 책을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데 그냥 외워서 하려니 몸 따로 이론 따로 였다. 유사한 동작들이 서로 엉켜 머리가 백지가 되었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도 시험을 보고 왔다.
영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필자는 댄스 이론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월터 레어드의 ‘테크닉 오브 라틴댄싱’ 책을 완벽하게 공부하고 온 최초의 동호인이라 자신감이 넘쳤다. 전국 유명 인터넷 댄스 카페에 필자 이름으로 된 방에 댄스 칼럼을 올렸다. 업계 유일의 전문잡지 ‘댄스스포츠코리아’에 편집 기자로도 활동했다. 필자 이름으로 된 댄스 책을 그 후에 5권 냈다. 모두 월터 레어드의 책이 바탕이 된 것이다. 이 책은 필자의 인생 이모작에서 확실히 내 인생을 바꿔준 책이 되었다.
이 나이에 이렇게 책에 치어 살게 될지는 몰랐었다. 뒷방에는 책이 공간의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옷장이라 방의 활용이 안 된다. 거실에도 한 쪽 구석에 쌓아두기 시작하면 금방 그 옆에 다른 줄이 생기고 책에 치여 산다.
어린 시절에는 책이 그리 흔치 않았다. 단편소설이나 세계 문학전집 중 몇 권이 있기는 했으나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해서 책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미성년자가 보기에 적당하지 않았는지 못 보게 했었다.
학창시절에는 술 마시고 어울리기 바빠서 책을 별로 본 적이 없다. 대학시절 한번은 여학생과 미팅을 했는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두 여인 중 어느 타입의 여자를 더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답을 못했다. 그 책을 읽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그 길로 세계 명작 모음집을 사다가 한 번에 다 읽었다. 적어도 스토리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직장 생활 때는 해외 출장 때나 비행기 안에서 책을 읽었다. 흥미 위주로 대충 보고 여행지에서 한국 사람이 있으면 주고 오거나 버리고 왔다. 요즘은 영화 보느라고 그나마 책은 읽을 시간도 없다.
내 방에 책이 쌓이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자비로 출판한 독자투고 모음집 ‘시시비비’를 내고부터였다. 첫 출판이었으니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적어도 보관 분으로 500권은 놔둬야 평생 지인들에게도 나눠주고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2~3년 마다 책을 냈다. 독자투고 모음집이 3권이니 보관분이 1,500권인 셈이다.
이쯤 되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책을 책장에 꽂아 놓는 것이 아니라 20권내지 30권 단위로 된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벽 쪽으로 쌓아 놓아야 한다. 살다보니 내 책에 관심 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독자 투고집은 세월이 흐르면 시의성이 떨어져 가치도 떨어진다. 어느 날 과감하게 각권 20권만 남기고 쓰레기장에 버렸다. 공간이 생기고 나니 속이 다 후련했다.
2003년 영국에 유학 가서 국제 댄스스포츠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댄스스포츠 책을 냈다. 다시 500권을 보관 분으로 빼 넣고 나머지는 주문이 오는 대로 배송했다. 보관분이 2천권인 셈이다. 2005년 댄스 책 3권을 동시에 냈다. 다시 500권씩 빼 놓으니 1,500권이다. 역시 벽 쪽에 포장도 안 뜯은 채 쌓아 두고 다른 책들도 그 앞에 그런 식으로 눕혀 쌓았다. 책이 무너져 내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나마 댄스 책은 세월이 흘러도 반품이 없고 주문도 꾸준했다. 댄스 강의가 있는 날은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2014년에 새로 낸 책 ‘캉캉의 댄스 이야기’는 딱 한권만 보관하고 있다. 책이 3,400페이지라 부피가 크고 나도 사야 하기 때문이다. POD 시스템으로 낸 책이라 필요할 때 주문만 넣으면 된다.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책을 많이 사 보게 되었다. 주로 전철로 이동하는 시간에 읽는다. 여기저기 원고를 보내면 책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문단에 등단하고 나니 문인협회와 관련 단체에서 오는 잡지도 많다. 이럭저럭 책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불어났다. 북클럽 모임 때면 가지고 나가지만, 다른 사람이 가져온 책을 사거나 받다 보면 가져간 것보다 더 많이 가져온 적도 있다.
한번은 친구가 시골에 있는데 다 읽은 책이 있으면 보내 달라 하여 웬 떡인가 싶었다. 한 번에 몇 십 권 씩 택배로 부쳤다. 그렇게 많이 없앴다. 동네 자주 가는 음식점 주인이 책을 좋아한다 하여 갈 때마다 책을 들고 나가 놓고 왔다. 모임이 있을 때면 다 읽은 책을 배낭에 넣고 나가 온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책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문학지 등 월간잡지 종류는 우리 건물 일층에 내다 놓으면 누군가 가져간다.
그렇게 처분하는데도 책이 넘쳐 난다. 뒷방에 둬야 하는데 이미 넘치니 거실 한 구석에도 쌓이기 시작한다. 누굴 주거나 쓰레기장에 버리면 되는데 그게 어렵다. 더 볼 일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버리기는 아깝기 때문이다. 욕심에 일단 서점에 갔을 때 샀는데 아직 못 읽은 책도 점점 늘어간다. 잠실에 중고 서적 매매하는 곳이 생겼다. 상태가 좋으면 700원 정도 준다. 그걸 바라고 무거운 책을 지고 나갈 생각은 없다. 시골에 있는 친구에게 다시 안부를 물으며 택배로 보낼 궁리를 해본다. 모임이 있을 때면 볓 권씩 들고 나가 나눠줄 생각도 한다. 그리고 또 남는 책들은 과감하게 쓰레기장에 버리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