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니 뭐니 해도 겨울은 겨울입니다.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에서 차디찬 냉기가 느껴지는 게 엊그제 불던 가을바람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아, 정녕 봄은 아직 멀고 복수초는 눈 속에 묻혀 있는 12월입니다. 제아무리 ‘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도라고 해도 한겨울 해변에는 세찬 바닷바람만 오갑니다. 초가을부터 서너 달 동안 바닷가를 지켜왔던 보랏빛 해국도, 제주 해변 특유의 왕갯쑥부쟁이도, 노란색 감국과 산국도 저마다 여기저기 한 무더기씩 깡마른 흔적만 남긴 채 스러졌습니다.
‘봄은 아직 멀고 복수초는 눈 속에 묻혀 있는’ 한겨울, 그러나 제주도의 바닷가가 그저 텅 빈 것만은 아닙니다. 모든 꽃이 지고 스러진 계절 바닷가 현무암 더미 위에, 그리고 바다를 에둘러 난 둘레길 길섶 곳곳에 송골송골 황금빛 꽃송이를 가득 단 국화가 노란색 카펫이 깔리듯 풍성하게 피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 이름도 낯선 갯국입니다. 등심붓꽃이나 뚜껑별꽃, 국화잎아욱, 좀양귀비 등과 마찬가지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외국에서 들어와 제주도의 자연 상태에 적응하고 뿌리를 내린, 일종의 귀화식물인데 기존의 자생식물들이 겨울나기에 들어간 시기 쓸쓸한 바닷가에 황금빛 활력을 불어넣는 ‘핀치 히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제주도와 남해안의 벼랑이나 길섶에만 자생하기 때문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최근 일부 수목원이나 식물원 등지에서 일부러 심어 가꾸고 있지만, 대개는 눈여겨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대부분의 식물도감에도 소개되지 않고 있고,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재배식물로 분류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애초 원예용이나 조경용으로 들여온, 일본 동해안이 원산지로 알려진 갯국은 특히 제주도의 바닷가에 잘 적응해 갈수록 자생지가 늘고 있습니다. 덕분에 12월부터 1월까지 눈 내리는 한겨울 제주도를 방문하는 이들은 황금색 갯국이 핀 장관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자생지의 특성을 따서 해변국화, 꽃 색을 반영해 황금국화라고도 불리는데 꽃 못지않게 잎이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잎 뒷면에 하얀 솜털이 촘촘히 돋았는데, 그로 인해 잎 가장자리에 은색 띠를 두른 듯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촘촘히 난 솜털은 눈 내리는 동지섣달에도 갯국이 시들지 않게 보온재(保溫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겨울 살을 에는 추위와 바닷바람을 이기고 피는 갯국의 특성을 반영한 듯 꽃말은 곧은 절개, 일편단심입니다.
Where is it?
지금까지 알려진 자생지는 제주도 및 거제도 등 남부 다도해 지역에 불과하다. 제주도에서는 최근 수년 동안 해변 및 해안도로를 따라 자연적으로 피어난 야생 갯국이 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반 주택의 화단 등지에서 가꾼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서귀포 송악산 인근 해안도로변에 핀 갯국은 저 멀리 눈 덮인 한라산과 우뚝 솟은 산방산, 짙푸른 하늘과 바다, 검은색 현무암과 어우러져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어 인기다.
1998년 무렵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법조인 이태영 변호사가 치매를 앓는다는 사실을 알고 필자는 탄식했다.
‘여성들의 권익을 찾아주기 위해 평생 헌신하신 분에게 이런 병이 오다니… 누구보다 두뇌활동을 열심히 한 분도 피해갈 수 없는 질환이란 말인가….’
머리를 잘 안 쓰는 사람들이 치매에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필자는 큰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치매는 쥐도 새도 모르게 다가오는 병 같다. 필자가 평택에 살았을 때 아래층 70대 할머니가 그랬다. 자녀들이 분가한 후 홀로 지내던 분이었는데 젊은 시절 한 미모 했을 것같이 고왔고 말도 자분자분 조용히 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하고 어울린다거나 대화를 나누는 일이 거의 없었고 집 안에서 혼자 폐쇄적인 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이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고 갔다.
필자와 인연이 있는 서울농대 농화학과 P교수님도 치매를 피하지 못했다. 40대 후반 무렵 교수님 댁에 놀러갔을 때의 일이다. 사모님은 P교수님이 퇴직한 후 유럽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사진 속에서 교수님과 사모님은 다정하게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와우! 사모님 부러워요. 완전 잉꼬부부시네요!”
물색 모르는 필자가 감탄하자 사모님은 웃으면서 P교수님이 알츠하이머병이 와서 손을 꼭 붙잡고 다닌 거라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손을 놓으면 아무데나 막 가버리셔서 잠시라도 손을 놓을 수 없었어요. 앞날을 기약할 수 없었던 날들이라서 서둘러 유럽여행을 떠났지요. 즐거워야 할 여행이 얼마나 쓸쓸하던지….”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1970년대 필자가 농대 학과장실에 근무할 때 학생지도위원이었던 P교수님이 가끔씩 들리셨다. 방문 여는 소리만으로도 P교수님이라는 걸 단박에 알았다. 문을 유난히도 씩씩하게 열어젖히셨기 때문이다. 그토록 건강하시던 분이 치매에 걸리다니… 인생무상이 이런 것인가 했다.
고령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치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점에서 최악의 질병이다. 치매는 진행 속도를 줄일 수는 있어도 완치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병이 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다.
치매가 올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필자에게는 있다. 뇌가 여러 번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18세 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며 심각한 생각에 빠져 걷다가 전봇대에 엄청 세게 부딪혔었다. 55세 때는 바위에 부딪혀 정신을 잃었었다. 요즘은 잠의 질이 형편없다. 꿈을 꾸다 깨어나는 일이 많아 머리와 몸이 무겁다.
이 노릇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심히 걱정스러웠는데 때마침 치매예방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 강남시니어 플라자에서 치매 테스트를 받아봤다. 그 결과는? 필자도 놀라웠다. 30점 만점에 30점이 나왔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 먹은 음식.’
이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아침마다 디톡스 주스 한 잔에 사과 한 알, 현미 잡곡밥에 굴 미역국이나 시금치 된장국 등을 먹으며 건강한 밥상을 차리려 노력한다. 먹거리에서 오는 리스크만이라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모델워킹을 하고, 왈츠를 추고, 서울 둘레길 걷기를 한다. 오늘도 필자는 많은 사람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치매가 가까이 올까봐 경계하며 살고 있다.
돈 걱정 없이 사는 방법은 번만큼만 쓰면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되지 않습니다. 시니어의 사회은퇴 전후의 생활은 전혀 딴판입니다. 은퇴 전에는 돈이 부족하더라도 나중에 보충해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수입은 줄고 늘리기 매우 어렵습니다. 소비지출은 오히려 늘고 있습니다. 돈을 버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생활주변에서 지나치기 쉬운 낭비를 줄여야 해답이 나옵니다.
건강관리비
누구든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소망합니다. 건강하면 병원이나 약국을 찾을 필요가 없고 건강식품을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건강관리비를 확 줄일 수 있습니다. 건강하려면 섭생도 중요하지만 운동을 열심히 하여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상쾌한 바람이 부는 운동하기 딱 좋은 때입니다. 산행·마라톤·수영·골프 등 체력과 취미에 맞는 운동을 하면 됩니다. 운동을 쉬지 않고 하여야 효과가 나타납니다. 마음을 다잡이야 운동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창밖을 내다보고 비가 오는지 눈이 내리는지 걱정하면 운동하러가기 싫어집니다. 아침에 창문을 열지 말아야 합니다. 비오면 우산을 들고, 눈이 쏟아지면 털모자 하나 머리에 쓰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먼동이 트면 집을 나서 아침 산책을 하면 하루가 상쾌합니다. 아침 산책길은 맑은 날도 이슬이 내려서 평지보다 미끄럽습니다. 산에서 넘어지면 대형 골절사고가 납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안전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동호인을 즐겁게 사귀면 운동을 지속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친구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운동에 빠질 수 없습니다. 산악회에 참여하여 산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봄과 가을에는 지방 원거리를 찾고 가끔 해외원정 산행을 하면 효과는 더욱 높아집니다. 산행이 어려우면 걷기 쉬운 둘레길을 찾고, 더 낮은 자락길을 걸어도 좋습니다. 신체조건에 맞춰 무리하지 않도록 걸으면 건강에 유익합니다. 햇볕 쪼이고 맑은 공기 마시면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걸으면 됩니다. 누구나 만보를 걷을 수 있습니다.
자원봉사에 동참하면 건강유지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재산기부·재능기부·노력봉사 중 자기처지에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사회에서 터득한 귀중한 체험을 후세대에 전하는 숭고한 일입니다. 참가자들과 함께 어울려서 마음의 평온을 얻고 나눔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회교육에 참여하여 새로운 배움을 익히고, 남녀노소 세대들과 어울리는 일도 건강유지에 큰 보탬이 됩니다. 자기완성을 위한 자존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차량유지비
자동차는 편리한 교통수단입니다. 하지만 차량유지비를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를 구입할 때나 유류가격이 상승할 때 잠깐 고민하다가 금방 잊고 생활합니다. 사회은퇴자는 차를 사용할 필요가 많이 줄어듭니다. 가끔 운전석에 앉으면 차운전이 낯설게 느껴지고 행동이 굼떠져 사고를 내기 쉽습니다. 차는 주차장에서 먼지만 쌓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전을 그만 둬야하는 이유입니다. 차가 보이면 차를 사용하고 싶고 걷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집니다. 차가 눈앞에 보이지 않아야 대책이 나옵니다.
자원봉사활동과 사회교육에 참여하면서 굳이 자동차를 이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도로혼잡에 고생하지 않고 약속시간을 잘 지킬 수 있는 전철과 버스 대중교통 이용이 최선입니다. ‘건강하려면 불필요한 차를 없애자.’ 차 없애기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주위의 눈을 의식하고 차의 편리함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서입니다. 차는 편리하게 이용하되 불필요한 경우에는 과감하게 없애야 합니다. 이를 실행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자동차를 없애면 유류비·수리비·세금·보험료 등 차량유지비가 모두 없어집니다. 새 차 구입하는 목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도로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없어집니다. 비가 오나 눈이 내리거나 교통사고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에 평온이 옵니다. 몸이 건강해지면 건강관리비도 확 줄어듭니다. 한가한 때 전철에 앉아서 책을 읽고, 버스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전철역까지 왕복 걷기를 자주 하고 운동량이 부족하면 다음 날 꼭 보충하는 습관을 기르면 더욱 좋습니다.
허망한 투자
세상에 공짜가 없는 줄 알면서도 고수익·고배당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섣불리 투자하였다가 재산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보다 판단력이 떨어지고 체력이 쇠퇴하였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화려했던 젊은 날을 하루속히 잊어야 합니다. 자랑해서도 아니 됩니다. 후세대에 자리를 비켜주고 물러나야 합니다. 유능한 후계자를 도우면서 여유를 가져야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환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현재의 소비를 희생하면서 장기투자를 헤서도 아니 됩니다. 설령 성공하더라도 이미 자신의 관리할 수 없습니다. ‘현금만이 나의 것’ 입니다. 높은 이자를 지불하는 차입금이 있으면 빨리 정리하여야 합니다. 현금수입이 없는 부동산 담보 대출이라면 당장 큰 부담입니다. 이른바 흑자도산입니다. 부동산이 커지면 나중에 자식들의 상속분쟁만 키웁니다. 부동산·장기채권 대신 현금을 확보하여 지기의 소비를 희생하지 않아야 합니다.
후세대 관리
시니어 살림살이는 ‘현금흐름 수지균형’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현금이 부족하지 않아야 합니다. 인생 전반부는 증기기관차처럼 자신을 불태우며 앞만 보고 열심히 살면서 수입을 늘려 재산을 키웠습니다.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에 들어선 후반부는 빈손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부족해서도 아니 되지만 남길 수도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신은 알뜰하게 살았으나 자식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주위에 많습니다. 단호하게 뿌리치지 못하면 자신과 자식 모두에게 큰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이를 거절하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먹는 것보다 먹이를 구하는 훈련을 시키라’라고 흔히 말합니다. 자식들에게는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무조건 자식을 도와주는 것보다 교훈도 함께 전수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5년 전 겨울이었다.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아들의 결혼식 날짜가 정해져서인지 하루하루가 더디게 갔다. 12월 30일에 하는 결혼식 초청장은 다 보낸 상태였다. 사돈댁과의 혼사에 관한 모든 절차와 격식도 예법에 따라 잘 타협이 되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 예비 신부인 며늘아기도 참석했다. 새 식구가 곧 가족이 됨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함께 즐겁게 시간을 잘 보내고 돌아온 그날 밤, 필자에게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밤새 복부 통증에 시달렸던 것이다.
다행히 크리스마스에도 진료를 하는 동네 병원이 있어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가벼운 장염쯤으로 여겨 간단한 약만 처방해줬다. 하지만 회복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응급으로 찾아간 큰 병원에서 ‘대장파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조금만 더 늦었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면서 수술을 서둘렀다.
갑자기 장 파열이라니 믿기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인 것은 아들의 결혼식이었다. 혼주가 될 사람이 결혼 날짜를 코앞에 두고 큰 수술에 입원까지 해야 하는 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인륜지대사인 아들 결혼식을 앞에 두고 벌어진 일이라 상심이 컸다.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천추의 한이 될 것 같은 죄의식이 밀려왔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결혼식장에는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받는 동안 결혼식 당일이 되었고, 필자는 비장한 각오로 담당 주치의를 찾아가 사정 얘기를 했다. 당연히 외출이 불가하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최후의 카드를 썼다. 필자가 의사에게 제시한 것은 각서였다.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병원 측과 담당 의사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겨우 허락을 받고 휠체어에 의지해 예식장엘 갔다.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필자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걱정을 했다. 즐거운 잔치 분위기가 되어야 할 결혼식에서 누구보다 아들과 며늘아기에게 미안했다.
필자의 친구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인라인을 타고 함께 둘레길을 트레킹하던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아들 결혼식장에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구동성으로 “도대체 어찌된 일이야?” 하고 물었다. 필자는 그저 웃기만 했다. 사돈댁에도 죄송스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훗날 며늘아기를 통해 들은 얘기이지만 “그만하시길 다행이다”라고들 했단다.
옛날엔 새 식구가 들어와 우환이 생기면 불행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속설이 있었다. 아마도 사돈댁에서는 혹여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을 한 듯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새 식구가 잘 들어와 더 나쁜 상황으로 가지 않고 수술도 잘되었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필자가 수술한 다음 해에 손주가 태어났고, 아들 식구는 필자 부부와 가까운 곳에서 화목하게 잘 살고 있다. 손주 재롱은 온 집안의 청량제가 되었다. 수술 이후 필자에게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대장파열의 원인이 술과도 연관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끊은 것이다. 가족들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단주였다.
이젠 손주바보 할아버지로 매일매일 즐겁게 지내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이렇게 웃으며 말할 수 있으니 시간이 흐르긴 흐른 것 같다.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 쾨쾨한 매연, 고막을 괴롭히는 소음…. 공해로 얼룩진 도시의 묵은 때를 자연의 민낯처럼 깨끗이 씻어내고 싶다. 일상의 번잡함일랑 잠시 내려두고 너른 자연의 품 안에 뛰어들어보자. 갑자기 떠날 곳이 막막하다면,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국립자연휴양림’을 이용해보는 것 어떨까?
◇ 수도권
아쉽게도 서울에는 국립자연휴양림이 없지만, 도심에서 가까운 경기도에는 5곳이 있다. 그중에서도 ‘산음자연휴양림’은 3km 거리의 ‘치유의 숲길’, 산림치유프로그램, 건강증진센터 등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방문객을 대상으로 산림치유지도사가 진행하는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양주시에 위치한 ‘아세안자연휴양림’은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10개국의 전통가옥과 놀이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곳이다. ‘유명산자연휴양림’은 우리 꽃 자생식물원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라면 유익하다.
-산음자연휴양림(양평군) 산림치유지도사 상주
-아세안자연휴양림(양주시) 이국적인 객실 외관
-운악산자연휴양림(포천시) 가마터 향토유적지 인근
-유명산자연휴양림(가평군) 우리 꽃 자생식물원 보유
-중미산자연휴양림(양평군) 산림레포츠 오리엔티어링
◇ 경상도
한려해상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한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편백나무 숲이 조성돼 있어 삼림욕을 즐기기 좋다. 아울러 전남 여수와 경남 남해 앞바다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통고산자연휴양림’은 불영사 계곡, 덕구온천, 백암온천, 동해안 해수욕장 등과 연계한 관광 코스로 이른바 3욕(금강소나무숲 삼림욕, 해수욕, 온천욕)을 함께 체험할 수 있다. 더불어 관동 8경 중 하나인 월송정과 명사십리의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망양정도 가까워 즐길거리, 볼거리가 풍성하다.
-검마산자연휴양림(영양군) 책 4000여 권의 숲속도서관 운영
-남해편백자연휴양림(남해군) 편백나무숲 산림욕, 나비더테마파크
-대야산자연휴양림(문경시) 문경 8경 중심부, 천연염색체험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울주군) 통행차량이 없는 고즈넉한 분위기
-운문산자연휴양림(청도군) 야생식물관찰원, 농경시대 귀틀집
-지리산자연휴양림(함양군) 토요 숲속야학, 한지체험관 운영
-청옥산자연휴양림(봉화군) 그린스쿨, 자연학습 체험 교육
-칠보산자연휴양림(영덕군) 금강송숲 탐방, 숲속 작은 음악회
-통고산자연휴양림(울진군) 3욕(삼림욕·해수욕·온천욕) 체험
◇ 충청도
충남 서부의 최고 명산으로 불리는 오서산 자락에 있는 ‘오서산자연휴양림’은 가족 단위 방문객이 편히 쉴 수 있는 휴양관과 물놀이장, 야영장, 숲속교실 등을 고루 갖췄다. 휴양림에 자생하는 대나무 숲을 거닐며 숲 해설은 물론, 활쏘기 투호 등 놀이체험과 목공예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희리산해송자연휴양림’은 산 전체가 해송(海松)으로 뒤덮인 희리산의 푸름을 만끽할 수 있는 명소다. 휴양림 수종의 95%가량을 차지하는 해송에서 피톤치드와 테르핀 성분이 다량 분비돼 삼림욕을 하기에도 제격이다.
-상당산성자연휴양림(청주시) 유아, 학생 대상 산림교육 프로그램
-속리산말티재자연휴양림(보은군) 휴양림 내 토속 식용·약용식물 자생
-오서산자연휴양림(보령시) 어린이물놀이장, 대나무숲 체험장
-용현자연휴양림(서산시) 백제 후기 문화유산·유적지 인근
-황정산자연휴양림(단양군) 황정산 암벽지대 소나무 군락 경치
-희리산해송자연휴양림(서천군) 해송 삼림욕, 솔방울 공예 체험
◇ 전라도
‘방장산자연휴양림’ 내 ‘에코어드벤처’에서는 숲속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동하면서 자연을 감상하는 친환경 레포츠 ‘집라인(zipline)’을 경험할 수 있다. 이외에도 편백나무를 이용한 비누, 문패, 액자 만들기 프로그램 등이 마련돼 있어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 좋은 곳이다. 낙안읍성민속마을 2km 지점에 자리한 ‘낙안민속자연휴양림’, 덕유산국립공원, 무주리조트 등과 가까운 ‘덕유산자연휴양림’, 변산반도국립공원에 위치한 ‘변산자연휴양림’ 등은 주변 관광지, 휴양지와의 접근이 편리하다.
-낙안민속자연휴양림(순천시) 낙안읍성민속마을 주변 경관
-덕유산자연휴양림(무주군) 야생식물관찰원, 반딧불이 관찰
-방장산자연휴양림(장성군) 에코어드벤처 친환경 레포츠
-변산자연휴양림(부안군) 모항해수욕장, 변산해수욕장 인근
-운장산자연휴양림(진안군) 휴양림 내 7km의 갈거계곡
-진도자연휴양림(진도군) 2017년 개장, 남도소리체험관
-천관산자연휴양림(장흥군) 휴양림 진입로에 동백·비자나무숲
-회문산자연휴양림(순창군) 유아·청소년 대상 ‘열려라곤충나라’
◇ 강원도
1989년 개장한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휴양림 ‘대관령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대관령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휴양림 내 50~200년생 아름드리 소나무 숲 중 일부는 1920년대 인공으로 소나무 씨를 뿌려 조성해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다양한 목공예 프로그램을 즐기고 싶다면 ‘백운산자연휴양림’을 추천한다. 휴양림 내 ‘숲속공예교실’은 2013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로부터 지속가능한 발전교육(ISD) 공식프로젝트로 인정받았다. 또한 대한걷기연맹에서 지정한 ‘제1호 건강숲길’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가리왕산자연휴양림(정선군) 정선오일장(아리랑시장) 인근
-검봉산자연휴양림(삼척시) 오토캠핑장, 산림문화 프로그램
-대관령자연휴양림(강릉시) 숯가마를 활용한 체험·공예 프로그램
-두타산자연휴양림(평창군) 두타산 두근두근둘레길 탐방
-미천골자연휴양림(양양군) 휴양림 내 통일신라시대 선림원지
-방태산자연휴양림(인제군) 인근 내린천 래프팅 체험
-백운산자연휴양림(원주시) 숲속공예교실 문화 프로그램 특화
-복주산자연휴양림(철원군) 용탕골 계곡과 잠곡리 경관 수려
-삼봉자연휴양림(홍천군) 오대산국립공원 인근 활엽수
-용대자연휴양림(인제군) 다람쥐 등 다양한 야생동물 서식
-용화산자연휴양림(춘천시) 등산·캠핑 전문 산림레포츠 휴양림
-청태산자연휴양림(횡성군) DIY목공교실, 인도네시아전통전시관
필자 지인들은 은퇴 후에도 어울려 재미있게 지낸다. 몇 달에 한 번씩 모였던 동창들도 더 자주 모임을 갖고 우정을 다진다. 하지만 일원 중에 허풍쟁이가 있으면 화기애애한 모임 분위기가 가끔씩 망가지는 경우가 있다.
요즘은 모이면 막걸리 한 사발씩 돌리기보다는 건강 음식을 먹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둘레길 산책·문화유적지 탐방·영화 감상 등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야 모임이 활발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꽃향기가 진하게 풍기던 지난 봄, 고등학교 동창 몇십 명이 ‘안개 낀 장충단 공원’에서 만나 호젓한 성곽 길을 걸어 남산에 올랐다.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며 친구들과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그날은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대화 소재였다. 대부분 손주를 거느린 할아버지이지만, 손주를 안아보기는커녕 아직 결혼도 안 한 자녀와 함께 사는 친구도 있었다.
그날도 딸만 있어서 서운하다는, 평소 말을 많이 하는 친구의 딸 자랑이 여느 때처럼 뻥뻥 터졌다. “딸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격한다”면서 하나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상식선을 넘고 있었다. “말 같은 소리를 해라.” 듣다 못해 한 친구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필자 기억으로도 얼마 전에 하던 얘기보다 허풍이 더 심한 것 같았다. 물론 사실일 수도 있지만 그 내용이 점점 더 믿기 어려웠다.
이 친구의 딸 자랑은 이전에도 있었다. 처음에는 두 딸의 효도 이야기에 모두들 감동하며 부러워했다. 친구들은 “딸이 효녀네~ 행복하겠어~”라며 칭찬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더 부풀려진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도 친구들은 열심히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얼마나 딸 자랑을 하고 싶으면 저러는가 싶어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듣는 사람이 추임새라도 넣어주면 그의 이야기는 어느새 산더미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한두 번도 아니고 이번에는 딸 자랑이 좀 위험하게 들려왔다.
그렇다! 듣는 사람 중에 아직 결혼도 안 한 자녀 때문에 속이 새까맣게 탄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망각한 것이다. ‘이야기를 할 때는 듣는 사람 입장도 생각하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실감했다. 결국 이번에는 필자가 못 참고 터지고 말았다. “한 번쯤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항상 그럴 수는 없을 거야!”라며 허풍쟁이 친구를 쏘아붙였다.
남산타워가 우뚝 솟은 262m 높이의 나지막한 남산. 광장에 가 보니 붐비는 여행객만큼 수많은 사연이 담긴 사랑의 자물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지나온 세월이 문득 그리워졌다. 젊은 시절에는 케이블카 좀 타보려고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렸다. 중년에는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던 길, 이제는 건강을 위해 그 길을 다시 걷는 나이가 되었다. 빌딩이 가득한 시가지 모습이 눈에 가득 담겼다. 고층 건물이 몇 개밖에 없었던 젊은 시절에는 삼일고가도가 웬만한 건물보다 높았다.
친구와 함께 걸으며 아름답게 추억할 일도 많은데 마음이 소란스러워졌다. 허풍을 떨면서 딸 자랑을 늘어놓는 친구 때문에 마음이 상했을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맞춰 걸어본다. “그 친구 말은 거의 허풍이야.”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짓는다. 그 미소를 보니 끓어올랐던 화가 슬며시 가라앉는다.
일부에서는 현대 의학이 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아직도 몇몇 질환은 경험 많은 의료진도 쉽게 발견해내기 어렵다. 명의를 찾아 의료 쇼핑을 하는 환자가 적지 않은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병원에 가면 병을 속 시원히 밝혀내고 치료해주길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더조은병원에서 만난 심재숙(沈載淑·73)씨도 그랬다.
심재숙씨는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꽃중년이었다. 출가한 자녀가 가끔 걸어오는 전화를 기다리고, 남편과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즐기는, 은퇴한 부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가끔 저리곤 하는 다리가 신경 쓰였지만, 아직은 장보는 일도, 산책을 다녀오는 일도, 집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도 큰 문제 없었다. 집 앞 도봉산 등산은 엄두를 내기 어려웠지만, 주변의 둘레길 정도는 쉽게 다닐 수 있었다.
무릎이나 다리가 문제인 줄 알았는데…
그러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작년 초쯤이다. 다리가 저리는 날이 점점 더 많아졌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극심한 통증이었다. 심재숙씨는 그 당시 자신을 괴롭혔던 통증을 출산의 고통에 비유했다.
“엄청났죠.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처음엔 조금 먼 데를 다니는 것이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집에 가만히 있어도 욱신거렸어요. 너무 아파 눈물이 날 정도였죠. 마치 다리 속을 헤집고 누가 힘줄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찾은 곳이 더조은병원. TV를 시청하다 알게 된 병원이었다. 그때만 해도 TV에 출연했던 그 의사를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저 몸 아픈 것이 더 심해지면 저길 가봐야겠다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통증은 더 심각해졌고, 지난해 2월 더조은병원 도은식(都恩植·59) 병원장을 만나러 갔다. 심씨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무릎이나 다리가 문제인 줄 알았는데 허리가 문제라고 하더라고요. 난생 처음 들어본 병명이었어요. 옆구리 디스크라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덜컥 겁이 나서 일단은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는 시술을 먼저 해달라고 했어요. 병원에선 임시방편이고 또 아파올 것이라고 했지만, 당장 수술을 결정하기엔 두려웠거든요. 그래서 신경성형술 시술만 받고 퇴원했어요.”
병원에서 맞은 크리스마스와 새해
도 원장은 심씨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환자 중 한 명으로 기억했다.
“MRI를 찍어보니 극외측 디스크였어요. 환자들이 병명을 어려워해 옆구리 디스크라고 설명해줘요. 이 질환은 보통의 디스크와 마찬가지로 허리가 노화되는 과정에서 디스크가 밀려나와 생기는 병인데, 뒤쪽이 아닌 옆으로 밀려나오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골치 아픈 것은 밀려나오는 부위에 신경절이 있는데, 디스크가 이곳을 건드리면 아주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요. 신경들이 몰려 있거든요. 평범한 디스크하고는 비교가 안 되죠.”
병원에서 심씨에게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반년은 평범한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문제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가 다시 아파왔다.
“그래도 수술을 피해보려고 다른 병원에 갔어요. 수술 없이도 허리를 잘 고치는 병원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가봤는데 허사였어요. 계속 주사만 놔주는데 효과가 하나도 없었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통증은 더 심해졌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생각나는 사람은 도 원장뿐이었다. 바로 병원을 찾아 12월 27일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다들 크리스마스며 들뜬 연말 분위기를 즐길 때였지만 그런 것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심씨의 허리는 그마저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수술 날짜까지 기다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병원 침대에 누워야 했다.
“수술을 사흘 앞두고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았어요. 얌전히 누워 있어도 통증은 멈추지 않았죠. 수술 날짜까지 기다릴 수 없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병원을 찾았어요. 일단 입원부터 해서 무슨 수를 써서든 통증부터 가라앉혀야 살겠다 싶었죠. 지금 생각하면 병원에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결국 새해를 병원에서 맞이했어요.”
디스크 환자 중 극외측 디스크는 약 15%
결국 심씨는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 23일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과 함께 통증을 줄이는 처치도 진행됐다. 도 원장은 심씨의 당시 반응이 충분히 이해된다고 말했다. 극외측 디스크 환자들이 대부분 겪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극외측 디스크 환자의 공통점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는 거예요.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통증과는 차원이 달라요. 그리고 중년 이후의 고령 환자들에게 많아요.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니까요. 다리에 힘이 풀리는 증상도 흔해 다른 병원을 거쳐 오시는 분이 많아요. 안타깝게도 극외측 디스크는 진단 과정에서 발견 안 되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병원에서 허리 진단을 위해 MRI 촬영을 할 때는 대부분 시상촬영이라는 방식을 사용한다. 허리를 환자 옆에서 본 모습으로 촬영하는 것인데, 일반 디스크 환자를 진단할 때는 이러한 촬영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시상촬영만으로는 극외측 디스크를 진단하기 어렵다는 것. 척추를 위에서 본 모습으로 단면을 촬영하는 관상촬영을 해야 극외측 디스크를 잡아낼 수 있다.
디스크 환자 중 극외측 디스크 환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더조은병원에서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1년간 내원한 환자 13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극외측 디스크 환자는 약 15% 정도였다. 적지 않은 숫자다. 디스크 환자 중 15% 정도는 자칫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도 원장은 극외측 디스크는 수술도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디스크나 튀어나온 부분이 손이 쉽게 닿을 만한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평범한 디스크는 등 쪽으로 튀어나오니까 절개 부위가 크지 않아도 수술이 가능해요. 수술시간도 짧고 회복도 빠르죠. 그러나 극외측 디스크는 수술이 꽤 까다롭습니다. 만 명이 넘는 환자를 수술한 저도 두세 시간이 훌쩍 걸리니까요. 또 자칫 수술이 제대로 안 되면 다리저림과 같은 후유증을 앓을 수도 있어요. 의사 입장에선 신중을 기해야 하는 수술입니다.”
요즘 척추수술을 하는 신경외과 전문의들에게는 한 가지 딜레마가 있다. 병원들이 무리하게 척추수술을 한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사회에 확산되면서, 수술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 도 원장은 제대로 된 진단을 통해 정확한 치료가 이뤄지면 문제가 없는데, 나쁜 선입견 때문에 되레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가 수술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최근 신경외과나 정형외과 병원에선 전체 치료 중 수술이 차지하는 비율이 몇 % 이하라며 광고할 정도다.
“일종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증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해요. 허리 수술이 필요 없다면, 왜 1년에 12만 건 이상의 수술이 전국에서 이뤄지겠어요. 분명 허리 상태에 따라서는 수술만이 해결책인 경우가 있어요. 환자에게 한 가지 치료법을 고집하고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다행히 수술이 필요 없다면 보존적 치료를 하고, 어쩔 수 없다면 수술 치료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의 사랑 큰 힘 돼
심씨의 수술은 모두의 바람처럼 무사히 끝났다. 미국에 있다 놀라 귀국한 막내딸과 남편이 병원을 지켰다.
“수술이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았어요. 허리에 칼을 댄다고 해서 처음엔 겁이 났지만, 워낙 통증이 심해서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죠. 그리고 옆에서 늘 지켜주는 남편이 있어서 두렵진 않았어요. 제 수술 때문에 남편이 고생 많았죠.”
사실 심씨의 큰 수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건강검진에서 대장암 판정을 받고 암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때도 힘이 되어준 사람은 남편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찾아온 몇 차례의 고비는 부부의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해줬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과 저녁 한두 시간의 짧지 않은 산책을 거르는 법이 없다고 심씨는 말한다.
“남편에겐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수술 후 집안일도 많이 도와줘서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이젠 주변에서 허리 치료에 대해 물으면 수술도 아프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여유를 찾았어요. 빨리 수술할 걸 괜히 겁냈다 싶기도 해요. 앞으로 허리 때문에 더 이상 고생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몸이 좀 더 나으면 다른 운동도 해볼 생각이에요.”
극외측 디스크는 보통의 디스크와 마찬가지로 허리가 노화되는 과정에서 디스크가 밀려나와 생기는 병인데, 뒤쪽이 아닌 옆으로 밀려나오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골치 아픈 것은 밀려나오는 부위에 신경절이 있는데, 디스크가 이곳을 건드리면 아주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요.
필자는 중학교 동창들과 산악회를 만들어서 매달 산행을 하고 있다. 가족과 동반해 해외원정ㆍ서울근교ㆍ원거리 산행도 즐긴다. 땀을 뻘뻘 흘리고 정상에 오르면 하늘을 날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된다. 빙 둘러앉아 도시락과 간식을 꺼내놓고 푸짐한 음식과 함께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면 우정은 더욱 돈독해진다.
멀리 산행이라도 갈 때는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마치 학창 시절 소풍 갈 때처럼 즐거운 시간이 된다. 그런데 행동은 느리지만 지구력이 대단한 ‘거북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시간 약속을 해도 자주 지각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버스 출발을 조금 늦추면 되지 뭐 하며 기다려줬고 어느 순간 그의 지각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좀 기다려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 당사자는 전혀 미안한 표정이 없었다. 부인이 동행할 때는 가끔 시간을 맞출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다른 친구들이 그의 지각을 많이 양해해주는 편이었다.
그런데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몇 년 전부터 산행 모임에 변화가 생겼다. 높은 산을 오르기 힘들어진 부인들은 빠지기 시작했고, 시간 여유가 많은 남자들만 남았다. 도시락도 사라지고 하산 후 뒤풀이가 풍성해졌다. 허리띠 풀고 먹고 마시는 시간이 많아지자 친구들은 다른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또 등산이 힘들어진 친구가 하나둘 늘면서 걷기 쉬운 둘레길을 많이 찾았다. 대여섯 시간 산행 시간은 두세 시간으로 확 줄었다. 전철로도 갈 수 있는 경기ㆍ강원 지역 명승지의 둘레길이 우리 나이에 딱 맞는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아차렸다.
지금은 수도권 전철을 많이 이용한다. 경춘ㆍ중앙ㆍ경강선을 타면 가는 곳마다 산행 명승지다. 차가 막혀서 기다리는 일도 없고, 비용도 얼마 들지 않아서 안성맞춤이다. 전철은 편리하지만 운행시각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그런데 상봉역 집결지에 늦게 나타나는 거북이 친구 때문에 산통이 다 깨져버렸다. “친구야 같이 가자.” 지난날 버스 창문을 두드리던 버릇으로 전철을 향해 아무리 손을 흔들어봐야 소용없었다. 그렇다고 차 한 번 놓치면 수십 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몇십 명 친구들이 거북이를 위해 출발을 늦추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몇 번은 친구들이 기다려줬지만 시간이 갈수록 용납이 되지 않았다. “저 친구 좀 뺄 수 없나?” 친구들의 불평이 하늘을 찔렀다. 50년지기가 아니면 참기 어려운 장면과 함께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꿩도 매도 다 놓칠 위기가 닥쳤다. 이 나이에 본인의 의식 변경은 매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야말로 ‘거북이 일병 구하기’ 작전이 시작됐다.
먼저 당일 전화와 문자로 약속시간을 알렸다. 하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화를 받지 않거나 문자를 보지 않았다.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지금은 빛의 속도를 따라야 사는 시대, 운동경기도 수백ㆍ수천분의 1초에 승부가 갈리는 세상이다.
2단계로는 몇 년 전까지 산행을 같이 했던 친구 부인을 설득했다. 산행 안내 공지사항을 친구와 부인에게 함께 보냈다., 당일 전화와 문자도 친구 대신 친구 부인에게 보냈다. 눈을 비비고 나오면서라도 지각하지 않는 거북이 일병을 상상하면서….
“으이구 주책이야, 거북이 일병! 제발 같이 가자!”
하루해가 참 길다. 새벽 4시 반 무렵이면 훤해져 저녁 8시가 지나야 어두워진다. 하루해가 가장 길다는 절기 하지가 6월 21일이었다. 특별한 취미활동이나 소일거리가 없는 시니어는 잠을 깨는 순간부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를 걱정하기도 한다. 특히 날씨마저 흐리면 더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날이면 움츠리고 앉아 있기보다 바깥나들이를 하면 한결 기분이 상쾌해진다.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함께 챙길 수 있는 나들이를 하면 금상첨화지 싶다. 나이 든 사람에게 많이 권하는 운동이 걷기다. 둘레길이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져 많이 활용된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삭막한 도심의 길을 걷기보다 바람과 속삭이는 숲과 물과 산새 소리 들으며 걷는 자연 속의 걸음은 한결 가볍고 여유로운 시간이 될 터이다. 아울러 문화산책도 곁들이면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이룰 수 있어 좋지 싶다. 두 가지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곳으로 석파정 산책 코스를 권하고 싶다.
석파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에 있다. 전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청와대 옆길을 돌아 자하문 터널을 지나면 곧바로 좌측 언덕배기에 보인다. 석파정은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쓰이던 곳이다. 보존이 잘 되어 현재 서울특별시 문화재 26호로 지정돼 있다. 이곳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립 미술관인 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석파정이 있는 지대가 미술관에 달린 사유지이기에 그렇다. 그 미술관도 여느 미술관과 다른 점이 있어 전시되거나 소장된 그림을 감상하는 문화 나들이도 되지만, 전시관 곳곳에 이벤트성 볼거리, 쉼터가 있어 관람을 여유롭게 재미를 더해준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도 예쁘게 만들어 놓았다. 영상과 함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음악감상실, 영화를 볼 수 있는 영상 상영 코너도 마련해두어 재미를 더해준다. 현재 “신사임당, 그녀의 화원”이 관람객의 관심 속에 9월 3일까지 특별 전시되고 있다. 미술관 3층 옥탑을 거쳐서 외부로 나가 만나는 석파정 일원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쉼터와 힐링의 장소로 등장한다. 옥상 잔디정원에서 조각품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북한산의 모습도 새롭다. 선이 아름다운 대원군의 별장 기와가 푸른 하늘과 맞닿아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둘러 서 있는 산책로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한다. 듬성듬성 만들어 둔 벤치에 앉아 중간을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배경 음악 삼고 새소리 들으면 그곳이 낙원 같다. 가파르지 않은 산책길을 따라 느리게 느리게 걸으면 자연의 소리에 취할 수 있다. “물을 품은 길”이라 이름 붙여진 좁은 산책로 또한 정겹고 주변 곳곳에 세워진 아름다운 문구의 팻말이 인생을 배우게 한다. 그 문구 중의 하나인 기욤 뮈소의 에 나오는 구절이 가슴에 와닿았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우리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다” 미술관 관람과 힐링의 산책을 하며 하루를 너끈하게 그리고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곳이지 싶다. 돌아오는 길에 경복궁 옆에 있는 사람 냄새 나는 통인시장에 들러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면 행복한 하루가 되지 싶다. 필자는 올봄에 고등학교 후배인 대학교수이자 화가인 고등학교 후배의 안내로 처음 이곳을 다녀왔다.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어 안사람과 함께 친구와 가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필자에게 사진촬영법과 활용기술을 배우는 남녀 어르신 11분과 다녀왔다. 모두 즐거워하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하루가 되었다고 했다.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아우를 수 있는 서울미술관과 석파정 산책 코스를 걸어보면 어떨까?
강화도는 서울 서쪽에 위치해 있다. 자가용이 있던 시절에 몇 번 가보고 그 후로는 오랫동안 외면하던 곳이다. 초지진, 광성보 등 해안에 초라한 진지가 남아 있을 뿐 별로 기억에 남는 것들이 없다. 마니산은 올라가는 계단만 보고 왔고 전등사는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절이었다. 어느 식당에 갔다가 음식이 너무 맛이 없어 일행들이 젓가락만 돌리고 있어 뒷산에 있는 고들빼기를 좀 뜯어와 겨우 한 끼를 먹은 적도 있다. 폭우를 만나 하마터면 급류에 휩쓸려 일가족이 몰사할 뻔하기도 했다. 석모도에 갔을 때는 불친절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왔다. 강화도의 밴댕이회가 유명하다지만 생선회는 어디나 비슷비슷하다.
얼마 전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회원 40명이 대중교통으로 강화도에 다녀왔다. 강동 쪽에서 전철로 송정역까지 2시간 걸렸고, 송정역에서 다시 3000번 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을 달리고 나서야 강화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음 날부터 시작된다는 장마 때문인지 날씨는 푹푹 찌고 불쾌지수가 높았다.
이번에는 시내 쪽으로 가봤다. 횡단보도 신호등을 대여섯 개 지나자 남문이 나왔다. 남문을 지나서 조금 더 가니 서문이 보였다. 서문 안쪽으로 다시 시내 도로로 되돌아 나오는 길에 용흥궁이라는 표지가 있었다. 도로 안쪽에 작은 표지판이 있어 미리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가면 지나치기 쉽다.
용흥궁은 철종이 19세 때까지 살던 사저였는데 그 후 기와집으로 새로 지었다. 성공회성당이 높은 자리에 위용을 자랑하고 있어 하마터면 못 보고 갈 뻔했다. 이 광장이 이번 관광의 하이라이트였다. 심도 직물이라는 큰 직물회사가 있던 자리라고 했다. 한쪽으로는 강화 문학관이 있고 마침 조경희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지나칠 뻔 했던 곳이 고려 궁지도 관람할 수 있었다. 강화 성당을 보고 언덕을 올라갔는데 초라한 한식 대문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고려 궁지’였다. 입장료는 900원, 경로우대는 무료였다. 서울 선정릉의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곳인데 이곳이 바로 고려시대 몽고의 침략 당시 도읍을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왕이 있었던 곳이다. 1232년부터 39년간이었다. 그 당시에도 불에 탔고 개화기에도 프랑스 선원들이 불에 태워 다시 지었다. 이곳에는 그 유명한 외규장각이 있다. 전철 한 칸의 3분의 1 정도 되는 작은 건물이다. 조선의궤를 따로 보관하던 곳인데 프랑스 선원들이 훔쳐갔던 의궤를 얼마 전 프랑스에서 영구 반환받아 조명을 받았던 곳이다.
고려 궁지 성벽을 따라 북문 쪽으로 올라갔다. 아름드리 벚꽃 나무들이 도열해 있었다. 제철에 오면 볼 만할 것 같았다. 강화도에도 둘레길이 있다. ‘강화 나들길’이라 하여 6시간짜리 코스가 20개나 있다. 지금 이웃 교동도에는 연육교가 있어 강화도와 연결되고 석모도도 곧 다리가 완성될 예정이다. 자동차가 있으면 하루 일정으로 교동도까지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없으며 1박 정도 예상해야 한다. 오가는데 너무 멀어 진이 다 빠지는 것 같다. 그래도 강화도는 서울의 관문으로 외세 침략을 일선에서 막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1970년대 서울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앞으로 역사와 관광의 이점을 잘 살린다면 가볼 만한 장소가 될 것 같다.